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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의 십자가(十字架)
갈6:14절, 183.184.210장.
헌신이란 자기의 이해를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전문 용어는 아닙니다. 사회사업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은 사람이나 병든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유익을 어떤 전제 없이 나누는 사람들을 일컬어 \'헌신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희생적인 헌신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세속과 단절해야 합니다. 약4:14-16절에“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버려야 할 세상 풍조입니다. 주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맨 먼저 취해야 할 자세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는 일입니다. 세상 풍속이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젖어 살던 세속적 습관과 태도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세속을 좇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 풍속은 우리의 영적 진보를 더디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약4:4절에“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세속과 짝한다 할지라도 단호히 이를 거부해야 합니다. 세속과 단절하지 못하고서는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가 불가능합니다.
2)정욕을 좇는 일의 위험성입니다. 세속적이라는 말은 마귀 적, 정욕 적이라는 말의 동의어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정욕을 좇아서 행한다면 그는 세속과 벗하는 자이며, 주님과는 담을 쌓은 자라 하겠습니다.
육신을 지닌 인간이 여러 가지 유혹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노릇입니다. 여기에는 신앙의 연륜이 오래인 사람이나 초신 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과 평신도 사이에도 특별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쳐서 주께 굴복시킨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그만큼 세상의 유혹이 많음을 보여줍니다.
세속적인 것들이 매력이 있어 보이기에 우리 육신의 정욕은 이것을 좇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절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화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가장 힘든 과정이 절제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쾌락과의 단절을 해야 합니다. 롬8:12,13절에“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습니다.
1)안개 같은 인생의 날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인식 가운데 하나는 인생의 날이 짧고, 빨리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모세의 기도 속에 나오는 것처럼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날들이 신속히 지나가 버립니다. 그는 시간이 “날아간다.”고 표현함으로써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부한 자나 가난한 자, 힘이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가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갑니다.
돈이나 지식, 명예, 그리고 어떤 재능이나 권력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인생의 날이 짧고 신속히 간다는 데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얼마 안 되는 인생이기에 시간이 소중합니다.
쾌락에 허비할 만큼 여유가 없으며 헛된 일에 분주할 만큼 충분하지도 못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습니다.
2)육신을 좇는 자들의 절망입니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육신을 좇는 자들이 처한 실상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짧은 인생이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육신을 좇는 생활은 미래가 없습니다. 인생은 짧지만 그 공과는 영원히 남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까지 마치 이력서처럼 우리를 따라 다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담고 있는 교훈을 잘 새겨서 육신의 일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 선한 사업을 도모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3.그리스도와의 일체감이 있어야 합니다. 갈2:19,20절에“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헌신한다는 말 속에는 일체감을 갖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만일 주님께 헌신한다고 말하면서 그분과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주님과 일체감을 갖는 길은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줄지라도 고난 받는 순간을 괴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므로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사모한다면 먼저 고난에 참여하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난의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고난은 피하고 영광만 취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2)주님을 위해서 헌신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오직 그분만을 위해서 할 수 있어야 참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몫은 다 떼어 두고 나머지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진정한 헌신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예수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다분히 타산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심히 적다는 말입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손해가 가더라도 헌신하는 자를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최고와 으뜸의 자리에 예수가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희생의 표시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성도는 세상과 맺고 있는 연결고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세속과 짝하는 사람들은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쾌락과의 연결고리도 끊어야 합니다. 육신을 좇아 살면 결국은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체부보다 빠른 인생의 날들을 헛되이 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주님과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서 행할 때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직분 맡은 여러분에 주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묵묵히 맡겨진 사역에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 주여! 저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직분을 맡겨주시면 열심히 기도하면서 배워서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하고 자원하는 자에게 하늘의 능력을 주셔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교회 속에서 모든 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직분을 받아 자신에게 맡겨진 부서가 부흥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직분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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