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1915년 10월 조교개혁 기념설교에서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인 종교개혁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축복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신교도라는 것을 자랑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짓눌렀던 미신을 행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고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특별히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교회가 개혁을 위한 땀방울을 흘리는 데 인색한 것을 경고한 말로 보여진다.
한국교회도 종교개혁으로 인한 개혁교회이며, 개혁정신이 그 기초이다. 그런데 개혁교회의 특징은 언제든지 개혁을 거듭하는 데 있다(Ece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따라서 ‘교회 갱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위성을 지닌다. 지상교회는 문제가 없는 온전한 교회가 아니어서 늘 갱신되어야 하고, 목사와 교인은 개혁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하기에 개혁하자는 소리는 항상 필요하며 개혁교회는 그 이름에 부합되도록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개혁을 거듭하고 교회의 타락을 막고 역사 앞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현실교회를 과감하게 갱신하는데 땀을 흘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改革(Reformation)과 更新(Renewal)은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조금은 차이가 있다. 영국의 존 스토트(John R. W. Stott)목사는 갱신에 대해 독특하고 의미있는 해석을 하고 있다. 즉, 갱신은 개혁과 부흥을 결합시키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개혁이란 16세기에 일어났던 것과 같이 성경에 따라 신앙과 삶을 개혁한다는 의미이고, 부흥이란 하나님이 죄인들을 회심시키기 위하여 교회나 공동체를 초자연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갱신이란 교회를 개혁시키는 말씀의 능력과 개인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사역을 결합시키는 운동을 말한다는 것이다.
개혁은 교회가 비본질적으로 되어진다든지 신앙의 내용이 성경 진리와 달라졌을 때 그것을 본래의 신앙 원리대로 바로잡고 되돌려 놓는다는 뜻이다. 갱신은 본래대로 되돌아갈 뿐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새로워지는 단계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회와 목회자가 자신의 잘못과 비리를 뜯어 고쳐서 다시 새로워지는 것이다. 즉,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 사명으로, 목회자가 그 원래의 소명으로, 교인이 그 본래의 신앙원리로 되돌아가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가 갱신의 주체와 객체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이 이렇게 썩은 것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또한 작금의 한국 교회가 세속화되어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로 오염되고, 형식주의와 편의주의로 타락해가는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는 것도, 그리고 신자들의 평균적인 도덕적 수준과 사회의식이 매우 낮고 부끄러운 상태에 있는 것은 한국 교회가 부패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교회가 썩은 것은 상당부분 목회자들의 책임이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는 목사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 목회자는 자신의 인간적인 충동과 본능적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비기독교인들도 목사의 엄격한 도덕성과 정직성을 바라보면서 복음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지나친 관심, 명예의 노예가 된 사람, 이성과의 적지 않은 파문, 품위의 상실, 낮은 교양수준, 예의범절에 대한 무시, 이중적 인격, 성실성의 결여, 그리고 학위 취득에 대한 잘못된 열정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스스로 실추시키는 목회자가 증가하고 있다.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으로 생겨난 무자격 목사의 배출,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비윤리적인 사건의 증가는 이렇게 교회를 부패하게 만들었고 교회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어서 교회 안팎에서 교회와 목회자의 갱신을 부르짖게 만드는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배경이 된 것이다.
교회 갱신의 최우선 과제는 목회자의 자질 향상이다. 위와 같은 현상들은 목회자의 자질을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동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먼저, 성경이 제시하는 목회자의 자질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목회자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딤전 3:2, 딛 1:6-7) ; 완전무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멀어지려 애쓰고, 이것을 위해 부단히 기도하는 노력을 말한다. 2) 목회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딤전 3:2, 딛 1:6) ; 건전한 가정과 부부 생활의 절 대적 요건이 되는 것이다. 3) 목회자는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딤전 3:2) ; 조심성을 매사에 보이되 융통성이 가미되어 야 한다. 4) 목회자는 아담해야 한다(딤전 3:2) ; 품행과 외모에 있어서 멋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외 모를 보기 때문이다. 5) 목회자는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한다(딤전 3:2, 딛 1:8) ; 자신도 나그네임을 알아 남 대 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호감을 얻어야 한다. 6) 목사는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한다(딤전 3:2, 딤후 2:24) ; 교인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서 로 양육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7) 목회자는 술을 즐겨서도 안된다(딤전 3:3, 딛 1:7) ; 절주가 아니라 단주하라는 교훈이다. 8) 목회자는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딤전 3:3, 딛 1:7) ; 혈기를 다스리며, 남 뿐만 아니라 아 내와 자녀들에게도 매 아닌 구타는 절대로 말라는 것이다. 9) 목회자는 관용해야 한다(딤전 3:3, 딤후 2:24) ; 모난 성격을 다듬어 부드러운 인격의 소 유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과 의논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10) 목회자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딤전 3:3, 딤후 2:24) ; 자기 주장과 고집을 죽일 수 있어 야 한다. 11) 목회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딤전 3:3, 딛 1:7) ; 세상적인 애착을 물리쳐야 한 다. 12) 목회자는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딤전 5:4, 딛 1:6) ; 교인들은 목사의 자녀들을 주목하고 기대 이하일 때 실망이 크며, 잘못딘 자녀는 덕이 되지 못한다. 13) 목회자는 너무 일찍 임직되어서는 안된다(딤전 3:6) ;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되며 차근차 근히 목사직에 접근하기 위해 하나님과 많이 의논해야 한다. 14) 목회자는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딤전 3:7) ; 이웃의 본이 되고, 좋은 이웃 으로 평판이 나야 한다. 15) 목회자는 참을 줄 알아야 한다(딤후 2:2, 딛 1:7) ; 분을 참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16) 목회자는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딛 1:7) ;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와 권위주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17) 목사는 선을 좋아해야 한다(딛 1:8) ; 목사가 평생 선을 행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 에 호기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18) 목회자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딤전 3:2, 딛 1:8) ; 목회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의 해결 방안이 절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19) 목회자는 거룩해야 한다(딛 1:8) ;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이것 이 거룩이다. 세상과 구별된 변화된 인격, 가치관으로 사역해야 한다. 이것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자질론이다. 다음으로 목회 신학상 자질로 주로 샌더스(J. Oswald Sanders)의 견해이다. 1) 훈련받고 훈련할 줄 알아야 한다:하나님의 훈련 뿐만 아니라 미래의 준비를 위하여 자신 이 강하게 훈련받을 때 교인들도 훈련에 협력하고 기꺼이 응하게 된다. 2) 비젼을 소유해야 한다:비젼은 통찰력 뿐만아니라 선견지명도 포함된다. 모세는 보이지 않 는 자를 보는 것 같이 참았고, 엘리야는 신령한 군대를 보았다. 윌리암 캐리는 동료 목사 들이 조그만 교구에 매달려 있는 동안 세계 지도를 보고 있었다. 3) 지혜가 있어야 한다:웹스터 사전은 ‘지혜란 지식을 최대로 이용하는 능력이요.. 성경에서 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진리에 대한 바른 판단으로 말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4) 결단력이 필요로 한다: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면 결과에 개의치 않고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아브라함이 조카 룻을 구할 때, 바울이 회심한 후 명확한 결정을 내리고 속히 행동 했다. 5) 용기있는 사람이어야 한다:신앙적, 도덕적인 용기 뿐만아니라 육신적인 용기도 필요하다. 루터가 보름스(Worms)에 가 황제 앞에 섰을 때, 산헤립의 군대에 직면한 히스기야와 같 은 용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6) 겸손해야 한다:겸손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증명서와 같이 요청되는 조건 이다. 7) 순전함과 성실함이다 : 인격의 투명함이요, 의무 수행의 충성스러움을 말한다. 8) 유머감각을 소유해야 한다 : 기독교 변증가인 훼이틀리 대주교는 ‘우리의 기쁨의 땅을 일 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스펄젼 목사도 성소에서 웃음을 쫓아내면 한심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9) 그외 감화력, 의사소통 기술, 행정적인 능력, 창의적 태도, 긍정적인 자아상 등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목회자의 자질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신앙적 자질, 실력, 윤리적 자질로 구분된다. 먼저 ‘신앙적 자질’은 말씀연구와 기도의 열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영적인 힘과 권위를 갖추었느냐의 문제이며, 소명의식 유무의 문제이다. 둘째로 ‘실력’이란 목사 개인의 행정능력, 설교 구사력, 그리고 기타 지적 능력을 말한다. 셋째로 ‘윤리적 자질’이란 목회자의 도덕성, 감화력, 투명성 등을 가리킨다.
먼저 목회자의 실력은 날로 나아지고 있다. 무인가 신학교가 문제이기는 하나 오늘날 신학교의 교수와 신학생들의 실력은 날로 나아지고 있고, 자료와 정보의 홍수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목회자의 윤리적 자질은 비도덕적인 목회자로 말미암아 문제가 되고 있으나, 도덕성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상대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실력과 윤리성은 목회자에겐 상대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적 자질은 절대적 요소이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생명은 영적 권위와 힘에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 신앙적 자질이 부족한 목회자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실력은 날로 나아지고 조직력과 행정능력, 설교 구사력은 과거보다 뛰어나지만 이것들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기도와 말씀 연구의 열정이 부족하여 영적인 힘이 약화되어 가는 현상을 보게 된다. 또한 많은 목회자들이 물질적 관심 때문에 자신의 영적 순수성을 잊어버리고, 목회 자료가 풍부한 여건 때문에 자신의 깊이 있는 성경연구의 필요성이 감퇴되어 게을러지게 되었고, 프로그램의 대량 소개로 말미암아 영성보다 수단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영성이 약화된 목회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생명력이 약화된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남게 하였다. 이렇게 영성이 약화되고 소멸되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의 소명의식 부재이며, 이것의 원인은 세속화이다.
목회자의 세속화 - 소명의식의 약화 내지 결여 ‘세속화’란 세상적인 것과 동조(conformity)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세상적인 것을 따라가고 세상과 같아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삶의 원현상(原現象)을 우주속의 유한한 것(물질, 정신, 육체 등)과의 관게속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세속화는 가치관에 있어서, 행위에 있어서, 사고에 있어서 나타나고 있는데 서로 연관성을 지닌다.
먼저 ‘가치관’에 있어서의 세속화는 세상의 물질만능주의, 물량주의, 출세주의, 성공제일주의를 따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행위’에 있어서의 세속화는 세속적 가치관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 목적 성취를 위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속임수나 술수나 기략(機略)을 교묘하게 사용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vir-tu)이라는 소위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에 중독된 때문이다 또한 ‘사고’의 세속화도 무시못할 현상이다. 이것은 매우 은밀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이다. 목회자들도 세속적 정신에 의하여 구성된 준거틀(frame reference)과 세속적 가치를 반영하는 판단의 틀을 수용하여 사고하고 결정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기독교적 정신과 반성이 없이 사고하는 것이다.
소명의식이 약화되거나 상실된 목회자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세속화이다. 이것은 목회자 개인의 위기일 뿐만아니라 교회의 위기를 초래한다. 목회자의 신앙적 자질인 이 소명의식은 목회의 출발점이요, 목회 사역에 있어서 절대적 요소이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없어서도 안되고 약화되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소명없는 목회자는 목회사역 자체가 하나의 직업이라는 세속적 ‘직업주의’에 빠져 자신의 성공과 출세라는 관점으로 그 직을 수행하여 결국 여러 부작용과 역기능을 나타낸다. 신학교를 지망하는 지망생들이 소명 때문이 아니라 세상적인 직업의식으로 지원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 직업의식이 계속될 때에는 구라파의 국가교회가 목회자에게 급료를 지불하여 목회자를 직업인으로 전락시킴으로 교회의 급속한 쇠퇴를 가져온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신학생을 선발할 때에 소명의식의 철저한 확인 보다 목회의 상대적 요소인자인 얄팍한 실력을 통하여 선발하는 방식도 소명없는 목회자를 양산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목회를 소명이 아닌 직업으로, 신학교를 사명이 아닌 장사로 생각하는 한 이 문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리챠드 백스터는 그의 저서 ‘참된 목자(The Reformed Fastor)에서 “목회 사역을 다른 평범한 직업처럼 생각하여 그것을 생계를 위한 방편처럼 여기는 사람은 목회가 일 자체로는 좋은 일이지만 자기가 선택한 일이 그리 좋은 사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라고 충고했다.
‘소명’은 부르심(calling)을 말한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가?’는 재능의 문제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는가?’는 소명의 문제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이 일을 선택했는가 혹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피동적으로 선택되어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목회자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목회사역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한다. 또한 ‘나는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에 올바로 응답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가 자신의 존재(being)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哲學的 思考는 철저한 성찰을 요구한다. 여기서 ‘철저하다’는 말은 어떤 것의 근본과 기원을 표면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깊게 파고듦을 의미한다. 또한 행위의 근거를 반성해 보는 것이다. 즉, 목회에의 부르심이 우연인가,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의 응답인가를 성찰하여 목회직의 근본과 기원부터 다시 물어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소명에 대한 존재유무를 철학적으로 묻는 동시에 성령이 은밀한 중에 마음속에서 하시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성경말씀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로 목회하지 않았으며, 교인들과 사회에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독일의 필립 야곱 스페너(P. J. Spener)도 ‘한 그 루의 나무의 잎이 시들고 죽어가는 것은 그 뿌리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교인과 사회의 규율이 문란한 것은 분명히 그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이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개혁을 계획하실 때에는 흔히 성직 계급의 개혁에서부터 시작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를 먼저 목욕통에 집어 넣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고 목회자들의 갱신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므로 갱신의 우선적인 대상은 목회자여야 한다. 목사가 성경적인 의식구조로 바로 서면 교회와 사회, 교인은 바로 설 수 있다. 종교개혁 전 중세 교회의 엄청난 문제들이 개혁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그 문제에 성직자들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갱신의 우선적인 客體가 목회자라는 말이다. 갱신은 ‘뜯어고쳐 새롭게 하는 것’으로 남의 것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뜯어고쳐 새롭게 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남을 비난하고 시정을 촉구하면서도 자신의 비리를 뜯어고칠 생각은 잘 못하고 있다. 갱신은 나자신 즉, 목회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목사가 갱신의 주도적 역할자요 추진자요 촉매자(Agent)가 되어야 한다. 결국 목회자는 갱신의 主體이자 客體인 셈이다. 20세기 후반 세계적으로 교회 갱신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목회자들은 교권주의에 연연해 있었으므로 평신도들에 의해서 이 운동이 전개되었던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매사는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잇는데 이것을 혼동한다면 ‘수레를 말 앞에 놓는 오류(fallacy of putting the cart before the horse)’를 범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교회의 갑작스런 성장은 엄청나게 불어난 교인들을 이끌 목회자를 필요로 했으나 정식으로 신학교육과 훈련을 받은 목회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교회의 세력이 커져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목회자도 과거처럼 힘들고 무시받는 위치가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비교적 우대받는 위치를 점하게 되었기 때문에 목회를 지망하는 사람들 많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무자격자를 목회로 유인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각 교단과 교파들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계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정적인 면에서는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많은 신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허가도 없이 교단의 허가만 얻어 제대로 교수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하여 質 떨어진 지도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으로 이렇게 배출된 목회자들은 80년대 중반기를 지나면서 목회 현장과 사회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실수와 무인가 신학교, 무자격 목사의 남발은 목회자의 공신력을 실추시키고,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을 저하시키며, 교회의 이미지를 흐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목회자의 자질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목회자의 도덕성 상실의 문제이다. 지난해 5월 ‘한국갤럽’이 ‘직업인들에 대한 윤리수준 평가’를 조사하여 분석한 결과 목회자는 정직-윤리성이 전체 대상 중 6위로 교사보다 낮은 수준을 나타내었다. 가장 높은 윤리성과 도덕성을 요구받고, 또한 나타내야 할 목회자이기에 이와 같은 결과는 충격과 당혹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 조사결과는 목회자들의 도덕성 상실과 비윤리성이 교인들과 사회에 점차 인식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끝을 맺으면서 결국 한국교회 갱신의 첫 대상은 목회자이다. 목회자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질적 저하이다. 학문적 실력이나 윤리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상대적인 문제이다. 더 크고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문제는 소명감의 약화현상 내지 상실이다. 목회자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목회자는 계속 힘써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나 소명의식은 첫 출발이요 중심이다. 이것이 잘 안되니까 모든 세속적이며 비윤리적인 일들이 자행된다. 목회자의 자질 향상이 교회 갱신의 관건이며 이를 통해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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