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단상

 


「설교의 착상」

    요즘 위로의 설교를 많이 해야 된다는 주장들이 있다. 세상살이에 시달린 성도들이 일주일 한 번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위로와 평안 그리고 격려성 설교를 해주어야 된다는 논리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설교는 성경 전체를 아울러서 해야 되는 것이지 어느 단일 주제에 치우쳐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연속 설교를 한다. 때로는 어느 주제를 가지고 연속 설교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느 한 책을 가지고 연속 설교를 한다.
  연속 설교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이점은 설교자의 의지가(본문 선택에서) 별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차례대로 하기 때문에 무엇을 설교할까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없고 주어진 본문을 어떻게 충실히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하게 된다.
  연속 설교를 하다 보면 때로는 죄에 대한 책망, 또는 삶의 교훈, 교회 생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게 된다.
  오늘 이 본문을 대하게 되었다. 다루다 보니 그 주제는 위로와 격려, 소망의 설교가 되었다. 이 설교 속에서 절망적인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능력으로, 믿음으로 치유와 평안을 얻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설교하는 자신도, 듣는 성도들도 큰 은혜를 경험했다.
  특히 설교 후 찬송으로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를 부르는데 성령의 위로가 임재하심을 보았다.
  참으로 위로와 소망이 필요한 시대며 성도들의 아픔과 힘든 삶을 보게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설교>

제목 : 삶이 절망스러울 때
성경 : 눅 8:43-48

  지난 2월 17일 한국과 중국의 축구경기가 열렸습니다. 이 경기에서 가장 주목을 받게 된 선수는 마지막 역전골을 장식했던 ‘곽태휘’ 선수였습니다. 왜 그가 주목을 받았는가? 그는 1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것도 평발이라는 악조건을 가지고 축구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공에 왼쪽을 맞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12시간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암흑이었다. 결국 그는 휴학을 했고, 주위에선 다른 길을 모색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축구를 향한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1년 뒤 다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2005년 프로축구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허정무 감독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고 불과 3경기만에 2골을 기록하는 쾌거를 거둠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입니다.
  비단 곽태휘 선수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항상 형통하게 된다거나 그렇다고 항상 실패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살다보면 하는 일마다 형통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사업은 번창하며, 자녀들은 하나같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 반듯하게 살아가는 형통의 복을 누릴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는 일마다 막히고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때도 있습니다. 거센 풍랑을 만난 것과 같은 환난이 닥칠때도 종종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풀리고 막혀서 답답하고 절망적인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찌보면 우리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아가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을 보면, 4가지 사건이 나오는데, (1)풍랑을 만난 제자들(22절이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떠난 여정 속에서 거센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수십년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을 깨우지 않을 수 없는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2)거라사 귀신들린 사람(26절이하)의 사건입니다. 그는 군대 귀신에 사로잡혀 고난을 당하던 사람이었으나 역시 예수님을 통해서 자유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3)야이로의 12살 된 딸이 사망하게 되는 사건(40절이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4)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43절이하) 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멈추지 않는 출혈로 인해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지만, 재산만 허비하고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한채 고통당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잡았을때 치유되는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과 고통은 모두 달랐지만, 결국 모두 절망가운데 빠져있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혈루병 여인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이 여인의 절망적인 상황입니다(43절).
43절을 보면, 무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통을 당해왔습니다. 혈루병이 어떤 병입니까? 이 병은 피를 흘리는 부인병으로 불규칙한 출혈로 12년 동안 만성출혈로 고통당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가진 것을 모두 허비했지만 어떤 의원을 통해서도 나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시회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져 격리된 삶을 살아왔으니 얼마나 외롭게 비참한 삶을 살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1년, 2년 병원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본인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이겠으며, 가족들의 고통은 또 어떠하겠습니까? 게다가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당했습니다. 그리고 가진 재물을 모두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에게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현재 우리 나라는 파산 신청자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업이나 주식, 도박 등으로 파산을 신청하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60대 이상의 노인들 가운데는 병원비로 인해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급증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장기간 병원생활 하게 되면서 본인도 힘들지만, 가족들 또한 적지않은 병원비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종종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자살률이 OECD 30개국 가운데 최고라고 합니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10년 전보다 2.4배나 늘어 하루 평균 32명이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중장년층이 많고, 남자가 여자보다 2.2배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염세나 비관이 43%로 가장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위가 병고로 26%였습니다. 결국 삶의 고난과 어려움을 자살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 역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절망 가운데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기쁨이란 단어, 행복이란 단어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곳을 가도, 누구를 만나도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소망의 빛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빛이 무엇인가?

둘째, 이 여인에게 비친 소망의 빛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여인이 절망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한 가닥 빛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란 분이 갈릴리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잠잠케 하시는 분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열병에 걸린 사람도 손을 대고 기도할 때 나음을 얻고, 소경이 눈을 떴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여인이 한 가닥 소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만나면 소망이 생길 수 있겠구나’ 그러나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떳떳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여인이 잡은 옷자락입니다. 옷자락에 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건에 능력이 있는거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자신에게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44절을 보면, 이 여인이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믿음으로 눈을 뜹니다. 백부장 역시 믿음으로 자기 하인의 병을 고친 것입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던 가나안 여인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문제해결을 받게 됩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16절에서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도 ‘십자가는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에게만 영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치유의 능력도 예수 이름에 있습니다. 절망적인 환경속에서 이 여인이 예수님의 이름을 발견했던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아무리 힘들다 할지라도 주님의 능력을 믿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능력이 여인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사람들이 많아서 오다가다 스쳐지나 간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나온 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는 이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래서 46절을 보면,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믿음으로 손을 댄 자에게 능력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능력은 치유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죄사함의 능력으로도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나오면 이런 능력을 힘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48절을 보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소망의 말씀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구원, 평안 이 세가지 입니다. 참된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하고, 그 구원이 결국 평안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삶이 어렵지 않습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자식 때문에 지금도 마음조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주 낙심하고 절망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에게 소망을 두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손으로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 은총, 평안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의 능력을 믿고 손내밀어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때, 우리에게도 주의 능력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