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성장을 위한 설교 |
|---|
|
교회성장을 위한 설교
교회성장을 위한 설교의 8가지 특성 - 켄트 헌터(Kent Hunter) - 어떤 설교가 교회를 성장시키는가? 어떤 경우에 설교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이 되는가? 물론 많은 경우에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 때마다 나는 왜 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설교에 관하여 점검하지 않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설교는 흔히 교회 생활 가운데 가장 잘 눈에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와 담임 목사의 설교와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일반적 특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즉 많은 교인들은 교회의 목적과 사명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교회에 다니는 목적의식이나 비전, 초점과 방향감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교인들이 스스로 뿐 아니라 비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시킨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에는 흔히 설교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설교 때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는 대위임(Great Commission)을 설교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잃은 양을 찾기 위한 예수의 고난은 정기적으로 선포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하느님의 백성들이 제자화의 사명에서 각자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을 명확하게 선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에 초점을 맞추어 목회하는 경향이 있다. 설교에 있어서도 각자의 은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설교 스타일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강해식으로 설교하거나, 회중들에게 설교의 요약을 미리 나누어주어 호흡을 맞추도록 하거나, 아니면 설교할 때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사용할 수도 있다. 당신의 영적 은사와 재능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은사와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설교 스타일과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설교 청탁을 받을 경우에는 나는 그 교회 교인들의 연령 분포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곤 한다. 나의 이런 요청에 대하여 많은 교회의 사무원들이 곤혹스러워하는 태도를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그 교회들이 매주일 교회에 참석하는 청중들의 연령 분포에 대하여 한 번도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밖에도 그 교회 교인들이 특별히 당면한 문제나 상처는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당신이 매주일 같은 청중들에게 설교한다면, 설교 준비의 중요한 한 부분은 당신의 청중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당신의 청중들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말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심방, 상담, 혹은 속회 등의 모임 시간도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회중의 맥박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자주 아침 식사를 함께 하거나 차를 마실 필요도 있을 것이다. 만일 예배 참석 인원이 800명 정도라면, 당신은 매주 40시간 정도를 할애해야 하며, 2000명 정도라면 매주 100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래서 대교회에서는 부목사들이나 전도사들, 혹은 선교회장들을 중심으로 한 의도적인 조직이 있어서 그들이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여 담임 목사에게 전달함으로써 설교가 청중들의 삶의 문제에 정확하게 관통하도록 돕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 흔히 나이 많은 교인들은 담임 목사의 설교를 칭찬하는 반면에 젊은 교인들은 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설교자들은 나이 든 교인들에게는 호소력을 가지지만 젊은 교인들은 설교에 대해 별로 호감을 갖지 못한다는 말이다. 나이 든 교인들은 담임 목사의 설교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교인들은 담임 목사의 설교가 매우 지루하다고 말한다. 즉 그 설교자는 그 교회의 오래된 교인들과 함께 늙어 가지만, 급속히 변화하는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결국에는 젊은 교인들과는 제대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청년들에게 담임 목사의 설교를 1에서 10까지의 숫자로 평가하라고 할 경우, 간혹 10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대개의 경우에는 담임 목사가 \"우리 청년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우리들의 문제와 욕구를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것은 담임 목사가 반드시 젊기 때문만이 아니다. 때로는 은퇴할 때가 가까운 나이의 목사이지만 그들이 청년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그들이 무슨 책과 잡지를 읽는지, 그들이 무엇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지를 이해하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비신자들에 관해서 알고 있어야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설교자들이 비신자들과는 거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나는 그 목사들이 비신자를 만나 인터뷰할 때, 비신자들에게 (1) 당신 생각에 우리 사회의 희망은 무엇인가? (2)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3) 교회가 이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설교자들이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비신자들을 이해하는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1950년대나 60년대, 혹은 70년대나 80년대와는 매우 다르다. 그러한 신학적 보석들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선포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났을 경우에는 생수(生水)에 관하여 말하고, 어부들에게 이야기하실 때에는 고기 잡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다. 대신에 그는 하늘 아버지와 도우시는 이(Helper, 보혜사)에 관하여 말하였으며,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긴 탕자에 관해 말하였다. 그는 또한 인자?? 밤에 도둑처럼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교인들은 담임 목사의 설교가 부정적인 것이라고 불평한다. 내 생각에 설교가 나쁜 소식이 되는 경우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설교자가 설교 시간의 90%를 문제들에 관해서 언급하고 나머지 10%의 시간을 그 해결책에 관하여 설교하는 경우이다. 문제와 해결책에 관하여 시간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며, 그 해결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에 관하여 더욱 많이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설교 스타일이 너무 부정적이기 때문에 기쁜 소식조차도 나쁜 소식처럼 들리게 된다. 이러한 일이 생기면 설교자 자신이 지쳤거나(burned-out), 아니면 영적으로 내리막길에 처한 상태임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교인들이 담임 목사의 설교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경우에는 나는 그 목사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진단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의 삶 가운데 나쁜 소식을 많이 듣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것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당신은 죄의 현실이라는 나쁜 소식에 대해서도 당신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정직하게 접근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 숟갈의 설탕물은 쓴 약을 넘어가게 한다\"는 진리를 설교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예배 시간에 교회당이 꽉차서 더 이상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럴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최소한 기성 교인들을 위한 예배와 교회에 처음 출석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를 별도로 드릴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당신이 비신자들에게 접근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상처와 욕구에 적합한 기독교의 초보를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제자들을 양육시키기를 원한다면 말씀의 우유를 먹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말씀의 살을 먹여야만 한다.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가장 전략적인 방법은 하나의 교회 안에 또 다른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방법이다. 이것은 주일날 다른 시간대에, 아니면 다른 날에, 다른 스타일의 예배를, 가능하면 다른 장소에서 드리기 시작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지역사회에서 아직 교회에 출석한 적이 없는 집단을 선교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그들의 욕구를 특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시간에 맞추어 적절한 예배 스타일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또한 선교 현장에는 많은 기회도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설교하는 일은 흥미진진한 시간이다.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로서의 특권이며 영예이다. 또한 설교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며 교회를 성장시키는 핵심적 요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