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나미스 신학대]] [호세아서 성경주해] |
|---|
|
[호세아서 성경주해] 1-2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1장1절-호세아,도움 ,구원....주제에 의하면 호세아는 약 60년 또는 65년 동안 자신의 선지 사역을 수행하였다[여로보암(저자의 연대824-810) 웃시야 치하(저자의 연대810-758.IDB연대783-742,카톨릭연대는 781-740)에서 27-30년,요담(저자의 연대758-727,IDB연대742-735,카톨릭연대는 740-735)과 아하스 치하(저자의 연대742-727,IDB연대735-715,카톨릭연대는 735-716?]에서 31년,히스기야 치하(저자의 연대727-698,IDB연대715-687,카톨릭연대는 716-687)에서 1-3년].이것은 또한 그 책의 내용과도 일치한다.3절-고멜은 수동적안 의미에서 완전함,온전함을 의미하고 파괴나 죽음을 나타내지 아니하며 그 여인이 철저하게 그녀의 음행에서 매우 심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디블라임 역시 민수기 33장 46절[알몬 디블라다임]과 예레미야 48장22절[벧 디블라다임] 에서 모압인의 장소의 이름으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고유명사로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그 단어가 에브라임이란 형식과 같이 데브헤라에서 만들어졌고 데브레림은 무화과 떡이라는 의미이다.\"무화과 떡의 딸\"은 \"무화과 떡같은 모습\"과 같은 말이고 3장1절에서 건포도 떡[과자]을 즐기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4절-첫번째 아들은 기손 북쪽에 위치한 비옥한 이스르엘의 평지 이름을 따라 이스르엘이라고 하였다[수 17.16].그러나 그 이름은 명칭상의 의미 즉 \"하나님이 씨뿌리신다\"와는 상관이 없다.이러한 의미는 무엇보다도 2장 22-23절에서 언급된 구원의 선언에서 암시되었다[분산하거나 흩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슥 10.9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아합과 이세벨이 흘린 바 그 모든 종들 즉 선지자들의 피를 응징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엘리사에게 지시하여 아합의 집 전체를 멸하라는 사명을 주고 예후를 왕으로 기름붓게 하시었다[왕하 9.1 이하]예후는 이 명령에 복종하였다.그는 아합의 아들 즉 요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속한 그 땅에 던졌고 동시에 주의 말씀을 쫓았을 뿐만 아니라[왕하 9.21-26],아합의 70명의 자식과 아합 족속의 나머지 전체와 이세벨에게 신적 심판을 집행하였다[9.30-10.17].그리고 결과적으로\"여호와로부터 네가 나보기에 정작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함의 집에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4대[여호아하스-여호아스-여로보암2세-스가랴]를 지나리라\"[10.30]라는 약속을 받았었다.이 내용을 통해서 볼 때 예후의 집에 응징한 바 이스르엘의 피흘린 죄는 거기에서 예후가 아합의 족속을 진멸하였다는 사실에서 살필 것이 아니고 힛지그가 생각한대로 그가 요람과 이세벨을 죽인 것으로 만족치 아니하고 유다의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을 죽음에 처하였다는[왕하9.27,10.14] 사실에서 찿아봐야 한다.그리고 10장11절에서 설명된 대량 학살에서 그 사실을 찿아야 한다.하나님이 칭찬하신 행동과 그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한 자에게 약속하신 것은 본질적으로 피를 흘리는 죄의 행위는 아니다.분몀하게 명령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예후가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을 죽인 것은 실제적으로 역사적 내용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다.왜냐하면 유다의 왕족이 아합 족속의 경건치 아니함에 빠져들어갔고 그 왕조와의 결혼으로 그러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은 아합의 딸 아달랴의 자식들로서 둘 다 아합 족속의 후손이요 기질에 속하였기 때문이다[왕하 8.18,26,27].따라서 신성한 지시에 따라 그들은 그 족속을 진멸하게 되었다....하나님에 의해서 원하였거나 명령된 일까지도 그것을 집행하는 자의 경우에서는 죄가 될 수 있는 일이다.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의 뜻을 평범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고 악함과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하였을때 그러하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남용하고 그것을 그 자신의 악한 마음의 정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때 그러하다.예후가 이것과 같이 그러한 동기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것은 왕하 10장29,31절에서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없이 하였으나 느밧의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고 벧엘과 단에서 송아지 숭배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다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법에서 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저자의 증거에서 분명하다.5절-이스라엘의 활 즉 그 힘은 [활은 전쟁에서 사용한 주요병기이고 제유법적 수식어이며 지속적인 나라가 유지되는 바 전체 군사력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고 렘 49.35, 일반적으로 힘의 상징이다.참고 창49.24,삼상 2.4]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산산조각이 난다.7절-여호와는 자신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알고 경배하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전능하신 도움을 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유다는 기적적으로 구원을 얻었다[왕하19.4,37].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망각하고 파멸에 이르러서 필요한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맛 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10절-갈대아에서 주어진 자라는 뜻을 가진 나중 견해의 정당성은 포로의 땅에서 그들이 올라온 것이 언급된 11절에서 입증된다.이런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변화가 포로지에서 되어 진다는 것이 분명하다.11절-함께 모이는 것 즉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은 유다가 이스라엘과 같은 상황에 있게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다시 말하면 유다가 주에 의해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통합의 목적은 그들 자신이 한 두목을 세우는 일이다.그리고 그 땅에서 올라오게 된다.두절의 단어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이집트에서 떠나는 것을 마음에 회상시킨다.그들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운다는 표현은 민수기 14장4절을 모방한 것이고 그곳에서 패역한 회중이 스스로 이집트로 돌아가기 위래서 한 두목을 세우려고 한다.모세를 지적한다.그리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장10절에서 나온 곳이다...이 견해의 정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2장 16,17절에 등장한다....성경의 역사서[에스라,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가 단순히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더불어 스룹바벨과 에스라 치하에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일부와 10지파의 일부가-이들은 귀환할 때에 자신들을 유다에게 속한 것으로 하였거나 수년이 지난 후 갈릴리에 되돌아왔었고 끌려갔던 사람중 매우 소수에 불과하였다......메시야때에 이루어진다....이러한 것은 베드로전서 2장10절과 로마서 9장 25절,26절에서 우리의 예언을 이 내용과 조화시킨데서 나타난다.베드로가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이예언의 말을 인용했을 때와-이석은 현대의 거의 모든 주석학자들이 이방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바울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방인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부르셨다는 증거로서 똑같은 단어를 인용할 때에[2.1 과 1.10을 비교할 것] 2장2절-여인의 입장에서 순결이 없는 것은 신체의 이러한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행한 바 담대함과 수치없음을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함이다.7절-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이 찿았던 것을 얻지 못할 것 즉 사신 하나님의 형벌로서 보내신 바 재난에서 예상된 해방을 얻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12절-포도밭과 무화과밭은 신중하게 울타리를 치고 가꾸어졌는데 숲으로 변하게 된다.다시 말하면 그 울타리와 좋은 땅이 변하여서 들짐승들이 그러한 것을 먹게된다.15절-금지규정에 으히여 주에게 바쳐짐 바 여리고의 약탈물 중 일부를 취한 아간의 죄때문에 이스라엘은 금지규정을 범한 죄에 해당되었고 따라서 주께서는 자신의 도움을 철회하셨으며 아이를 치러나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주께서는 고난의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만드신다. 즉 그분은 자신의 교회의 죄를 도말하시고 그 교회에 자신의 은혜를 입히시어 그와의 우호스러운 언약관계가 더이상 그것들에 의해서 손상되지않게 하시거나 죄인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베푸시어 그러한 긍휼이 진노속에서도 스스로 나타나게 하고 심판과 긍휼을 통하여 사함을 받은 죄인들이 더욱 더 확고하게 내적으로 그분과 연합하게 하신다.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입장에서 이 운동에 응답을 하게된다. 카톨릭 새번역 2장 {암브로지오 스쁘레아피꼬,4-25절은 쌍무적 논고의 문학유형에 따라 씌여졌다.쌍무적 논고에서는 뮤죄와 유죄를 판가름하기 위하여 두 사람의 논쟁자가 만난다.쌍무적 논고에서는 판결문을 제시하는 외부의 재판관이 없고 두 사람사이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이 경우 논쟁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이다.이스라엘은 어머니요[4,7] 아내[4]로 소개되고 하느님은 남편이다[4.18].고발로 사건은 기소되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최초의 관계가 재개되거나 그 관계는 결정적으로 투쟁 관계에 머물 수 있다.13절-여자는 \'바알의 날들\'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보상으로 땅의 재화를 갖게 되기를 기다린다.그러나 이와같은 주기성은 선물을 부정하는 것이다.주기적으로 재화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재화를 주고 받는 형태의 관계가 설정되기 때문이다.우상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주님의 선물이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선물의 無償性무상성을 잊어 버리게 된다.여자는 하느님의 선물이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상들을 쫓아가 우상을 숭배하며 산다. 14절-\'달래고\'라고 번역된 동사는 유혹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곧 하느님은 속임수로 당신 백성을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신다.이런 행위를 통해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서 땅을 빼앗고 애인들에게서 멀어지게 하신다.유혹하는 하느님은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애인들과의 관계를 그만두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21-23절-주님은 풍요로움의 참 하느님으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으셨음을 주시해야 한다.비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응답하는 것이 하늘이고 소출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소출을 제공하면서 응답하는 것은 땅이다....이러한 방법으로 자연의 풍요로움은 마술적인 명령이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자율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초월성이 자연의 이러한 힘과 혼동되어서는 안됨을 가르친다[참조 예레24.7,32.38;에제36.28].
카일 & 델리취 3장2절-호멜은 10밧 또는 에바에 해당하고 레텍은 반 호멜에 해당한다.결과적으로 선지자는 은 15세겔과 보리 15에바를 지불하였다.그리고 특별히 왕하7.1과 16.18을 검토할 때 그 당시의 보리 한 에바가 한 세겔의 가치가 있었다고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된다.출21.32에 의하면 그 경우에 전체값[은30세겔]을 노예 한 사람을 살 수 있는 그러한 양에 해당한다.그리고 전체값을 반절은 돈으로 그리고 반절은 보리로 지불하였다.4절-마짜바는 주상이고 바알에게 바쳐진 것이며[출23.24] 그것을 세우는 것은 그 이유때문에 율법에서도 금지되었다.[레26.1;신16.22;왕상14.23]...에봇과 드라빔은 예배의 조직의 한 부분을 구성하였다.그러나 그러한 것 역시 미래를 살피는 데 사용된 방편으로서 특별히 언급되었다.대제사장은 어깨에 두르는 옷으로서 에봇은-거기에 우림과 둠밈이 붙어 있었다.여호와께서 자신의 계시를 백성에게 전달하였다는 방편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사용되었었다[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그것을 우상숭배하는 방법에서 모방되었다.삿17.5,18.5].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이었다.그것은 세상의 번영을 주는 자로 숭배되었고 미래사건에 대한 예언신이었다.선지자가 언급한 대상은 여호와 숭배와 우상 숭배에 둘 다 관련되었다.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이스라엘에서 함께 혼합되었기 때문이다.5절-[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파아드 엘 예호와 즉 여호와께 흔들거나 떠는 것이고 \"떨면서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에 대한\"함축적인 표현이다.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그들 자신의 죄와 무가치를 의식하면서 떠는 것이나 그들의 절망을 의식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떠는 것을 의미한다[카톨릭새번역,주님과 그분의 선물을 향해 떨면서 돌아오리라].4장11절-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으로 부터 신성한 계시를 묻는 일이다[렘10.3;합2.19].다시말하면 드라빔에게 묻는 행위이다[비교 3.4;겔 21.36]....막대기는 백성이 우상으로 만든 막대기이다.다음 절에서\"저희에게 고하나니\"즉 미래사건을 보이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에 의해서 미신의 관습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그는 그것을 갈대아인들의 창안이라고 하고 두 막대기를 똑바로 세우고 이어서 주문의 형식이 진행되고 신탁이 그 막대기가 떨어진 방법 즉 앞이든지 뒤든지 죄편이든지 우편이든지 그 방향에서 주어진다고 생각한다.행하는 과정은 소원의 막대기를 사용하는데 관련된 것과 매우 유사하였다.백성들은 음란의 귀신이 그들을 추;히게 한다고 생각하여서 이것을 행한다.루아흐[영,카톨릭새번역은 \'얼\'] 제누님으로 음행이 귀신의 힘으로 표현되었다.이것은 그 백성에게 행하여졌다.제누님은 육체적이고 영적인 행음을 포함한 것 같다.왜냐하면 우상 숭배 특별히 아세라 숭배는 지극한 방종과 연관되었기 때문이다.13절-참나무[상수리나무],버드나무[70인역과 벌게잇역에 의하면 흰버드나무,창37.30 또는 70인역이 창37.30을 번역한대로 스토락스나무]그리고 상수리나무[테레빈나무]의 열거로 푸른나무아래[신12.2;왕상14.23;렘2.20,3.6]라는 빈번한 표현이 개별적인 의미로 나온다.15절-길갈은 요단 골짜기에 있는 길갈이 아니고 산지에 있는 북쪽길갈이다.그리고 이곳은 실로의 남서쪽 길갈 질지리아에 보존되어 있다[신11.30;수8.35].엘리야와 엘리사 때에 그곳은 선지자 학교였으나[왕하2.1,4.38] 후에는 우상숭배의 한 형식이 행하여 진 곳으로 택하여졌다.그러한 것의 기원과 성격은 알려진 바가 없다[비교 5.15,12.12;암4.4,5.5].벧아웬은 벧엘 남쪽에 위치한 그 곳 즉 수 7.2에서 언급한 바 그 이름의 장소가 아니고 암4.4과 5.5에서 분명히 보여주는 대로 호세아가 암5.5에서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그곳에서 금송아지의 섬김으로 인하여 벧아웬 즉 우상의 집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벧엘[현재의 베이틴]에서 택한 이름이다.5장1절-미스바는 다볼에 대한 동의어이고 길갈의 높은 미스바나[삿10.17,11.29] 라마-미스바[이곳은 현대의 에스샬트의 자리에 위치한 것 같다.신4.83]에 해당되는 것 같다.따라서 다볼이 요단의 이편에서 그 땅을 표현하기 위해서 택해진 것이다.두곳은 새를 잡는 곳으로 특별히 유명한 곳이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다볼은 지금도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8절-소팔[쇼파르,뿔나팔]은 목자의 뿔이고 굽은 뿔로 만들었다.투바[하쪼제라]는 구리나 은으로 만들었고 전쟁 때나 명절 때에 불었다.기브아는[사울의 기브아,수18.24] 사무엘의 라마[수18.25]와 더불어서 베냐민 지파의 북쪽 경계선의 중요한 두 것이었다.그곳의 높은 위치때문에 신호가 잘 보였다.이러한 독특한 마을의 등장은 -이곳은 이스라엘 지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유다지파에게 속하였다-적이 이미10지파의 나라를 정복하였고 유다 지파의 변경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적이 베냐민 뒤에서 온다는 것은 선언된 심판이 이미 베냐민의 끝부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10절-\'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는 신19.14에 따라서 만들어졌고 설명될 수 있다.유다의 방백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들이 되었다.이것은 이스라엘나라의 적대적인 침공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과 유다간의 경계선은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진 거이 아니기에 유다의 방백의 입장에서 그 경계표를 범하는 것은 심각한 죄로 간주될 수가 없었다.-하나님이 4.15에 의하면 정한 합당한 경계표를 옮기고 에브라임의 죄에 동참하므로 즉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지계표를 옮기는 자들이 되었다.따라서 그들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 경계선을 옮기는 것 다시말하면 단 하나의 경계표를 옮긴 일이다.12절-좀과 썩이는 것은 파괴력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상징들이다.좀은 옷을 망치고[사50.9,51.8;시39.12] 썪이는 것은 나무와 살을 해친다.6장6절-인애-헤세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그 뿌리를 둔 의와 사랑에서 나타난다.따라서 4.1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련되었다.9절-세겜은 에발과 그리심사이에 있는 에브라임 산지위에 한 장소이고 현재의 나불루스이며[수17.7] 도피성이요 레위 성읍으로 성별되었었다[수20.7,21.21].이 내용을 통해서 최근의 주석학자들은 세겜 출신의 제사장들이 그들 자신의 허물을 감쌀수 있는 그들 성읍의 특권을 이용하여 그곳으로 성급하게 도피한 자를 그들에 대헤서 악행을 행하였던 주동인물의 명령에 따라 죽게 하였거나 탐욕이나 단순한 잔인성때문에 다른 여행자들에게 살인 행위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그러나...세겜의 길은 살이과 유혈 행동의 처소로 언급되었다.왜냐하면 수도 사마리아에서- 실제로 그 나라의 북쪽에서 이 성읍이 위치한 바 10지파의 나라에 속한 주요 예배처인 벧엘로 가는 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대부분 명절을 가기 위해 가는 순례의 길은 이 길을 택하였다.그리고 백성의 하류계층에서 뽑히여진 제사장들은 강도지을 하거나 저항할 경우 살인까지 하면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톨릭 새번역 3장1절-건포도과자는 의식의 한 요소로서 이교고 축제때 사용되었다[2사무6.9;1역대16.3;아가2.5;이사16.7].또한 이것은 하늘의 여왕[메소포타미아에서의 이쉬타르 여신]에게 봉헌한 과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예레7.18,44.19]. 2절-한 호멜은 450리터,한 레텍은 225리터.4장14절-남자들도,히브리말로는 \'그들\'이지만 신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남자들\'로 옮겼다.TOB는\'사제들\'을 첨가시켜 그들의 신원을 밝혔다.\'신전 창녀\'는 매음녀와 동의어인 것 같다[창38.12-30 참조].매음은 풍요다산의 자연신 숭배와 연결되어 있음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신명23.17;1열왕 14.24;2열왕 23.7;아모2.7 참조].여기서 신전창녀로 옮긴 히브리말 \'커데샤\'는 통상적으로 고대 동방 셈족안에서 종교의식을 위해 따로 격리시켜 놓은 거룩한 것을 암시한다.15절-70인역:\"그리고 유다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고...\"길갈은 예리코 근처에 있는 성소로서 잘 알려진 순례지였으나[여호 5.2-9에 성소의 설립에 관한 기록이 소개되어 있다].이 성소에서 거행되던 예배와 의식도 다른 성소처럼 타락하였다[참조 9.15,12.12]..\'불법의 집,악인들의 집\'을 의미하는\'베다웬\'이라는 이름이 \'하느님의 집\'을 의미하는 \'베델\'성소에 적용되었다[10.5,8;아모5.5에서는 베델로 그 이름이 바뀌어 나온다].하느님의 집이 악인의 집이 되었음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이름이 어떤 사물의 본질을 표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바뀐 이름은 예배와 의식의 타락이 끝점에 다다랐음을 강조한다.19절-여기서 바람은 처벌의 폭력을 지칭한다[13.15참조].히브리말에서 바람은 영,얼도 뜻한다.분명히 호세아가 처벌을 야기하는 주원인인 \'창녀기\'[4.12,5.4]라는 개념과 대칭 구조로 삼기 위하여 이 개념을 이곳에 다시 배치하였다.5장1절-\'미스바\'는 \'파수꾼의 탑\'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의 이름이다.적어도 구약성서는 길르앗과 벤야민 지방에 미스바라는 도시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판관10.17;1사무 7.5 참조] 여기서 어느 곳을 암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여하튼 예언자는 여기서 미스바라는 이름과 비슷한 단어인 \'미스파트\'[법,정의,심판,선고]를 가지고 안어유희를 하고 있다.성서에서 서로 비교가 되는 유사한 언어를 통한 유희는 단순히 언어유희를 넘어 한층 심오한 의미를 지향한다.4절-매음의 기운,은 매음의 얼,매음의 영으로도 옮길 수 있다.3-4절은 그들 안에 있는 매음의 기운이 그들을 하느님께 돌아갈 수 없게 할 정도로 강렬함을 표현한다.13절-히브리말로 \'멜렉 야렙\'이다/고유명사로 이해하여 \'야렙 임금\'으로 옮길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야렙\'을 히브리어 동사 어근 다투다,논쟁하다에서 파생한 명사로 이해하여 \'싸우기를 좋아하는 임금으로 옮길 수 있다.사실 \'야렙\'이라는 히브리말 명사는 \'싸우는 사람,복수자.앗시리아 임금의 호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10.6절을 참조하여 \'대왕\'으로 고쳐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히브리말\'말키 랍\'[대왕]은 아시리아말에서의 \'사루라부\'[대왕]를 옮겨 놓은 것 같다.10.6에서 \'대왕\'은 물론 아시리아 임금을 지칭한다.6장6절-BHS의 제안을 따라\"나는[예언자들을 통하여] 너를 산산히 조각나게 하였고\"로 옮길 경우\"[나는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으며\"를 \"[나는 내 입의 말로] 너를 죽었으며\"로 수정해서 읽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직역하면 \"너의 심판은 나오는 빛[이다]\"70인역과 시리아말역 및 타르굼을 참조하여\"나의 심판은 빛처럼 나왔다\"로 옮겼다.이 번역은 본문의 구두점을 조금 다르게 읽을 때 가능하며 이 문장 안에서 이 번역만이 만족스러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8절-유혈 범죄를 질책하고 있는 이 구절은 2열왕 15.25에서 언급하고 있는 \'길르앗 사람들\'이 저지른 유혈참극과 연결될 수 있다. [호세아서 성경주해] 7장-9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7장4절-간음은 하나님에게 배교된 것으로 영적인 음행이다.그리고 문자적인 음행과 관계되는 한 바알 숭배는 방종한 것을 촉진하였다.이러한 정욕적인 상태에서 백성은 저녁에 빵굽는 자가 뜨겁게 만들고 반죽이 발효될 때까지 밤새도록 타게 하였다가 아침에 계속 그 불꽃이 타게하여서 반죽으로 빵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화로를 닮은 모습이다.7절-소페팀이 말레크와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왕과 방백들에게 다같이 적용된다.\"그 왕들은 엎드려지게 하며\"라는 절은 앞에 있는 절에 새로운 특징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재판관들과 더불어서 왕들이 실족하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언급한 것을 더 잘 나타내주기 위하여 부연되었다.\'저희\'는 실족한 왕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의미에서 그 백성 즉 그들의 방백[통치자]을 삼킨 사람들에 해당된다.그 뜻은 다음과 같다.우상숭배에 여념이 없고 방백들을 왕과 같은 수준으로 여긴 흥분상태에서 그들은 그들의 경건치 아니한 행동의 피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으며 어느 누구도 왕들의 몰락을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망각하고 멸망의 심연에 빠진 채 홀로 돕고 구할 수 있는 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이곳에서 선지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여로보암2세 후의 때를 갖고 있다.그 당시의 스가랴가 살룸에 의해 살룸은 므나헴에 의해 그리고 므나헴은 베가의 아들 베가시아에 의해 무노졌었고 매우 빠른 왕위 계승으로[왕하 15.10,14,25] 스가랴와 살룸사이에 1년간의 무정부 상태가 있었다[왕하 15.8-12].동시에\"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라는 표현은 그 말이 이들 사건에 제한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의 모든 혁명에 해당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 절이 널리 퍼진 역사적 해석에 대한 근거는 무엇이든지 간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8-9절-뜨거운 재나 뜨거운 돌 위에서 만든 전병이다.그리고 그것을 뒤집지 아니할 때 아래가 타버려서 전부 잘 구워지지 않는다.이러한 상징의 의미는 9절에서 잘 설명되었다.불에 전병이 뒤집지 아니할 때 그 전병을 태우는 것과 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황폐케하는 전쟁으로 부분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에게 침투한 이방인의 기질로써 이스라엘의 힘을 삼키어 버린다.백발이 얼룩 얼룩할지라도 즉 한 사람에 의해서 상징된 것으로 몸에 이미 늙었다는 표시가 나타나 있고 죽을 때가 닥쳐온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16절-\'속이는 활\'..이러한 활은 그 힘이 없어서 화살로 표적을 맞출 수가 없다....방백들은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의 창설자들로 언급되었고 그들은 백성과 그 나라에서 모든 비극을 자초하였다.자암[거친 말]은 격분을 의미하고 이곳에서는 도전이나 폭력을 의미한다.8장9절-우둔한 들나귀라 할지라도 스스로 그독립을 유지하는데 에브라임은 세상의 나라들과 자연스럽지 못한 동맹관계 즉 다시말하면 그 소명과 전혀 맞지 아니한 동맹을 맺으려고 한다....전쟁부담금이나 유배가 아니라 포로로 끌려감으로써 앗시리아 왕으로부터 당하는 압제하에서 취하게 된다.14절-전각:개역개정,견고한 성읍 9장1절-그것을 바알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더 열심으로 그것들을 섬기려고 한다.타작마당과 관련된 우상 숭배에 대한 어떤 특별한 형식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지만 근거가 없다.4절-고통의 떡 다시말하면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는 사람들의 떡이고[신 26.14] 다른말로 하면 장례식 떡이다.이러한 것은 부정한 떡으로 간주되었다.왜냐하면 시체가 그 집과 그 시체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7일간[민19.14] 부정하게 하기 때문이다.6절-놉[히브리어로 모프=멤피스,제1왕조의 메네스가 창건하였다고 한다]]하류 애굽의 고대 수도인 멤피스의 속된 이름이고 그곳의 멸망의 폐허는 고대 카이로 남쪽[27킬로미터]에 있는 나일강의 서쪽 뚝에서 볼 수가 있다.이 성읍의 신성한 이름은 하-카-푸타 즉 푸타[프타하,흐눔신과 함께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여 공예와 기술의 신이라 한다.미라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고왕국시대에 멤피스의 수호신이었다.소의 신이기도 하다.]의 경배의 집이었다.6절-이쉬 루아흐[감동받은 자]라는 표현의 사용에서 관련 내용이 참된 선지자들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주장할 수가 없다.미2.11에서 언급된 이쉬 루아흐[영의 사람]은 이쉬 허레크흐 루아흐[영적으로 행하는 사람]와 동의어이다.이는 예언은 거짓 선지자들까지도 놀라운 귀신의 힘의 영향아래 있었고 루아흐 세켈[거짓말하는 영]에 이해서 영감을 받아서 말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8-9절-이스라엘은 여호와에 의해서 영감을 받지 아니한 그 자신의 선지자들을 쫓거나 의지하지도 않는다.이들은 길에서 새잡는 자의 올무와 같다....그 목적과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백성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여호와와 참된 선지자로서 그 종에 대한 적대심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전안에 있다.즉 송아지 숭배를 하기 위해서 세운 전안에 있는 것이다....그사실을 아모스는[7.10-17] 실제적인 본보기로 제시한다.이스라엘은 그 일로 인해서 심히 가증한 상태에 빠졌고 기브아시대같이 죄를 범하였다.다시 말하면 한 레위인의 축첩행위와 관련하여 기브아사람들이 행한 가증한 행동이 있었을 때와 같은 것이다.이러한 것은 삿19장이하에서 언급되었다.그 결과로 베냐민지파는 거의 진멸을 당하였다.이스라엘의 입장에서와 같은 타락상이 지금 주에 의해서 형벌을 당하게 된다[8.13비교] 카톨릭 새번역 7장7절-히브리말로 \'그들의 판관들\'이다.여기서는 임금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다음 줄에 나오는 \'그들의 임금들\'과 병행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통치자들\'이라는 어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저희는 실족한 왕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의미에서 그 백성 즉 그들의 통치자를 삼킨 사람들에 해당한다.14절-몇몇 히브리사본과 70인역에 따라\'그들은 [자기]몸에 상처를 낸다\'로 옮겼다[1열왕 18.28 참조]9장6절-축제를 거행하기 위한 모임은 \'멤피스\'라는 지명이 암시하는 것처럼 죽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바뀔 것이다[참조 예레 8.2,25.22].호세아와 같은 시대인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멤피스는 피라미트로 이미 유명한 도시였다.9절-\'기브아의 날들\'은 부명히 판관19-2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 여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과 관련된다.이 끔직한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이 변형된 것이었다.10절-바알브올은 성서 다른 곳에서 \'벳브올\'로 불린다[신명3.29,4.46,34.6;여호13.20].이 장소는 어느 신의 거주지인 어떤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최근 발표된 성서 지리학 연구에 따르면 \'바알브올\'은 사해 최북단에서 동쪽으로 약 20킬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민수기25.1-18에 의하면 이 장소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성적으로 방탕하게 행동하면서 가나안의 풍요다산 의식에 자기 몸을 맡긴 그곳이다[민수 25.3].13절-예언자는 에브라임을 화려함과 부유함으로 잘 알려진 띠로[에제26-28장]와 비교하면서 현재 에브라임이 누리고 있는 번영과 앞으로 겪게 될 불행을 대조하여 강조하려고 한다. [호세아서 성경주석]10장-14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10장7절-케체프는 거품이 아니고 꺽어진 가지 즉 나무단이나 동각난 것을 의미한다.이는 요엘1.7에서 케차파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과 같다....산을 향해서 \'우리위에 무너지라\'라고 말하는 것은 동굴과 바위틈에서 자신들을 숨기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사2.19,21].그것은 무너지는 산과 작은 언덕밑에 장사되어서 그들이 더 이상 심판의 고통과 공포를 당하지 않게되는 소망을 나타낸다.9절-9.9에서 기브아의 날,레위인의 첩에 대하여 즉 무자비한 죄가 기브아에서 행한 날이 지극히 부패한 때로 언급된 것 같이 본절에서 설명된 이러한 날도 이스라엘의 죄악의 시작으로 설명되었다....기브아의 날이래로 이스라엘은 기브아인들과 같은 죄를 계속하였다.이에비해 이들 죄인들은 전쟁에 의해 응징되고 멸망되었지만 10지파는 어떠한 비슷한 전쟁에 의해 멸망되지 아니한채 같은 죄를 범하고 계속 살고 있다.이제 여호와께서 그 죄로 그들을 벌하시게 된다.11절-곡식을 밟는 것은 다른 백성의 정복이 아니라[미4.13;사41.19] 기쁘고 생산적이고 유익한 수고의 상징적인 표현이다.이스라엘은 스스로 이러한 일에 익숙하였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13.6].그러나 지금은 다르다....이러한 것은 상징적으로 예속과 매임을 나타낸다.유다 역시 8.14,6.11에서와 같이 이곳에서 다시 언급되었다.야곱은 유다와 관련해서 좋은 백성[또는 12지파]의 이름이 아니고 에브라임 즉 10지파 이스라엘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12절-닐닐,이곳과 렘4.3에서 다같이 처녀지를 개간하는데 사용되었다.다시 말하면 아직 개간됮지 아니한 땅을 쓸모있게 하는 것이다.이러한 상징에서 진보된 내용을 보게 된다.즉 그들은 그들의 이전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스스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새로운 영역을 만든다.다시말하면 생활의 새로운 과정을 시작한다.14절-살만은 의심할 여지없이 앗수르의 왕인 살마네셀의 단축형이다....마카비1서 9.2에서 안급된 위의 갈릴리아에 있는 아베라인 것 같다.이곳은 요세프스에서 세포리아와 디베리아사이에 있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한 장소로 빈번하게 언급되었다.11장6-7절-\'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이것은 7절에서 더 상세하게 정의되었다....\'결심하고\'는 문자적으로 배교에 매달리는 것 즉 배교의 결과나 지속적인 실족의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이는 이러한 것이 현재 본문에서 매우 약하게 표현되었고 절의 하반절에는 적당하지 아니한 내용이 될 수 있지만 배교가 나무에 맨 것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 것 같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이다.8절-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망하였다.[신29.23]10-11절-바다에서 즉 애굽과 앗수르 즉 남쪽과 동쪽 땅은 물론 먼 섬과 서쪽 땅에서[사11.11] 오는 것이다.이러한 세 지역은 단순히\'땅의 사방에서\'라는 의미의 특별한 형식이고 사11.11에서 여러개의 먼 나라에 대한 더 상세한 열거와 비교를 하게된다.새와 비둘기에 대한 비교는 그들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신속성을 표현한다.이는 비둘기가 비둘기장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사60.8].12장8절-이스라엘이 이곳에서 가나안[상고]이라고 하였다.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밀착하였기 때문이 아니고[비교 겔16.3] 케나안이라는 단어의 동격의 의미때문에 그렇게 불렀다.이 단어는 가나안인들의[베니기아인] 상업적 습관 즉 장사나 물건거래자의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사23.8;욥40.30].이는 가나안이 거짓된 장사꾼과 같이 압제와 속임수로 큰 이익을 얻을려고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13장10절-소페팀은 ..사림[방백들]과 같이 단순한 재판장이 아니고 왕의 모사들과 그 신하들이다.이들이 왕과 더불어 왕과 더불어 그 나라의 일을 처리하였고 사법상의 일을 주관하였다.14장4절-말을 타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애굽의 군사력에 해당하고[사31.1] 부분적으로는 그들 자신에 해당한다[1.7;사2.7].6절-\'백합화 같이\'즉 향기나는 흰 백합화같이, 이 백합화는 팔레스틴에서 매우 흔하고 가꾸지 않더라도 잘 자란다\'백합화는 다산종이고 한뿌리에서 5개의 줄기가 가끔 나온다\'.\'레바논 백향복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다\'즉 레바논의 깊이 뿌리를 박은 수풀뿐 아니라 \'땅의 견고한 지대\'[미6.2]의 하나로서 산 자체를 의미한다.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가지가 더 멀리 퍼지고 사시사철 결실을 맺는 감람나무와 같이 푸른 잎을 낸다[렘11.16;시52.8] 냄새는 레바논같다.그리고 그것은 그 백향목과 향료로 향기를 발한다[아가4.11]상징에서 나온 바 여러 상징적인 의미는 로젠뮐러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되었다.\'뿌리는 안정을 나타내고 가지가 펼쳐지는 것은 주민들의 번식과 숫자 증가를 나타내며 감람나무의 찬란함은 아름다움과 영광을 그리고 지속적이고 오래가는 것을 의미하고 향기는 환희를 나타낸다\'8절-[IBD,백향목과 더불어 자라는 노간주나무 종류의 하나를 가리킨다.아마 JUNIPERUS EXCELSA BIEB를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카톨릭 새번역 10장2절-\'마음은 거짓으로 가득하니\'의 직역은 \'그들의 마음은 미끄러졌다.\'직역을 수용할 경우 BHS의 제안대로\'주님으로부터\'를 덧붙여\'그들의 마음은 주님에게서 벗어났다.\'로 옮기기도 한다.불가타는\'그들의 마음은 갈라졌다\'로 옮긴다.10절-\'두가지 잘못\'은 과거 기브아에서 범한 죄악[판관19장]과 호세아 시대 기브아에서 범한 죄악 이 두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그러나 주님을 버리고 바알예배에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성립되는 두 가지 불충실함을 생각할 수 있다[참조 예레2.13]11절-BHS의 제안을 따라\'에브라임은 멍에를 메고 유다는 밭을 갈고\'에서 유다를 삭제한 후\'에브라임은 멍에를 메어 밭을 갈고..\'로 옮기기도 한다.14절-현재 요르단강 건너 북쪽에 위치한 이르비드 부근으로 추정된다.베다드벨은 2사무20.19에 나오는 아벨 벳 마아가 처럼 자식으로 불리우는 위성도시들로 둘러싸여 어머니 역활을 하는 중요한 도시로 평가된다.15절-\'새벽녘[또는 아침]\'은 항상 예기치못한 구원과 승리의 동의어로 사용된다[참조 2역대 20.16-20;이사17.14;시편46.6].그러나 여기서 예언자는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희망을 걸어온 것을 뒤엎는다.11장4절-천천히[허리를 굽혀]그들에게 머을 것을 주었다.히브리말 \'아트\'는 천천히 또는 낮게 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는 \'허리를 굽혀\'라고 옮겼다.13장1절-에브라임이 말할 때 모두 떨었다.직역은 \'에브라임이 말할 때 공포가 있었다\'70인역은 공포를 \'법들\'로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