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연속강해 설교

5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
제목-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
본문- 누가복음 2: 8- 14

우리 옆사람들과 인사하길 원합니다. \"기쁜 성탄이 당신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오늘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연합하여 성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샬롬앙상블팀이 지난 여름부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할렐루야 찬양대와 협연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중에 다양한 악기를 통하여 영광 돌릴 수 있음이 큰 기쁨인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길 원합니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람들은 성탄 다음날을 \"복싱데이\"(Boxing day)라고 해서 행사를 갖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해하기는 성탄절에 선물 사느라 많은 돈 지출하는 일 등으로 부부가 서로 의가 상했으나 그날은 꾹참고 있다가 다음날 감정풀이 하는 날이 그날인가 했습니다. 권투경기를 복싱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날인가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매우 좋은 의미를 가진 날이었습니다. 성탄절에 받은 많은 선물 중에 일부를 상자(box)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 날 주변에 어려운 이들이나, 평소에 고마웠던 이들을 찾아가 선물을 나누는 날이 복싱데이였습니다. 상자에 넣어두었다가 전한다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우리 평안의 성도들이 어려운 중에도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벌이고 있는 \"성탄절 사랑의 쌀 나누기\"가 바로 복싱데이의 정신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평소 사회봉사부에서 성도들이 주일마다 가져오는 성미를 사랑의 쌀독을 통하여 2말씩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기는 하지만, 특별히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이런 모습은 바로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이실 정도로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미가서 5장에 보면 예언하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고 하신 것처럼, 이름없이 빛없이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며 오셨으나 결국 이 땅의 소망이 되시고 구세주가 되신줄로 믿습니다.

작은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그 흔한 텔레비젼 중계방송도 이벤트 행사도 없었습니다. 미리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방조차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정부가 지배하는 모든 제국의 백성들에게 호적을 등록하라고 명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군대의 징병을 위해, 다른 하나는 세금징수를 위해서 였습니다만 유대사람에게는 징병의 의무는 면해주었기에 세금징수를 위한 목적으로 모두가 호적을 해야 했습니다.

마치 설날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아서 천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상황을 연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유에서 계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제일 먼저 찾아와 경배한 사람이 놀랍게도 왕이나 유명한 인사가 아니라 밤에 자기 양떼를 돌보던 목자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당시 목자는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도 목자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잔잔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양떼를 인도하는 사명으로 분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밤중에 주변의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 우리 입구에 가로누워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악한 짐승들이 들어온다면 먼저 목자를 헤친 다음에야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목자의 모습,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이와 같기를 원합니다. 가장 험하고 어려운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지요. 내가 조금 수고하고 내가 조금 더 불편을 감수한다면, 우리 공동체가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 목격하고 축하한 목자들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리라..\" 무슨 소식입니까?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해 구주가 나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들이 제일 먼저 뵐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자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성실하게, 이름 없이, 빛 없이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은혜, 가장 복된 기회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들이 별에 인도함을 따라서 예수님이 계신 그 여관까지 갔을 때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강보에 싸여서 구유에 뉘여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목자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흔하고 정감 있는 모습입니다. 늘 보아왔던 자기들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특급호텔에서, 좋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나시지 않으셨냐고 그런 생각하기 이전에 그들 목자는 자기들과 아주 가까운 정감 있는 구유에 누인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주님께 경배를 돌려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야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주님의 있는 곳을 찾아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목자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들을 드렸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유 한 통을 드렸을지, 버터 한 덩어리를 드렸을지, 아니면 양털로 만든 돗자리 하나를 드렸을지 목자들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자기들이 소유할 수 있는 그러한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황금을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떤 분은 아주 작은 것을 드릴 수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드리느냐 보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목자를 위해서 가장 낮은 자, 가장 유명하지 않은 자, 가장 이 땅에서 약한 자들을 위해서 오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은 한 해를 사시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우리가 늘 감사를 말하면 나는 감사할 것이 없는데, 성탄절에도 성탄절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그러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야말로 감사가 없는데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글과 말로 선포하기에 유명한 노먼 빈센트필이라는 목사님이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언젠가 노먼 빈센트 목사님께 중년 남성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열심히 살았지만,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실패한 인생 같습니다. 나는 정말 감사할 것이 없는 인생입니다. 나는 정말 인생을 잘 못 사는 것 같습니다. 남들을 보면 다 성공한 것 같은데, 나만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난 목사님이 종이 한 장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종이 한 장을 주면서 내가 물어볼 테니까 거기다가 좀 써 보십시오. 무엇을 씁니까?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부인이 있으십니까? 아유, 부인이야 있지요. 우리 부인은 얼마나 착한지 내가 이렇게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겪음에도 불평 한마디 안 하고, 나를 뒷바라지 해 준 우리 부인이 있지요. 그렇게 쓰십시오. 불평 한 마디 없이 뒷 바라지 해 준 좋은 아내 이렇게 쓰십시오. 그렇게 받아서 썼습니다.

두 번째 물어봅니다. 자녀는 있습니까? 아휴, 우리 아이들 몇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우리 아이들 귀엽지요, 우리 아이들 건강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쓰십시오. 귀엽고, 건강한 자녀들.

세 번째 묻습니다. 친구는 있으신가요? 전 친구 하나는 끝내줍니다. 헌신적인 친구들이지요. 어려울 때 얼마나 도와주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쓰십시오. 헌신적인 친구들.

또 묻습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아휴, 건강 하나는 제가 확신합니다. 그러시군요. 그렇게 쓰십시오. 건강한 자신. 이렇게 몇 가지를 받아 써 내려 가다가 중년의 남자는 목사님에게 목사님, 알았습니다. 목사님, 제 인생이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아무 것도 감사 할 수 없는 그런 인생으로 생각을 했는데, 지금 목사님과 몇 가지를 받아 쓰다 보니까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 내게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헌신적인 아내가 있고, 귀엽고 건강한 자녀가 있고, 헌신적이고 정말 어려울 때 마음에 위로가 되는 친구가 있고,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 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 알고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몰랐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2005년 52주의 마지막주를 맞이하면서 여러분 마음을 감사와 감격으로 마무리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어떤 한 해보다도 내게 귀한 가정을 주셨고, 나에게 배우자를 주셨고, 자녀를 주셨고, 건강을 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식을 투자하고, 그 주식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투정하셨습니까? 템플턴이라고 하는 세계 최고의 주식투자가는 템플턴상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일년에 400억을 기증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분이 기도하면서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투자한 주식이 오르라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주식에 투자한 분들, 우리가 투자한 아무개 전자, 아무개 기업이 주식값이 오르라고 그렇게 기도하십니까?

그렇게 기도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부터는 그런 기도는 포기하세요.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수 없는 어리석고 무지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은 육신의 이익을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평화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 그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이 마치 베들레헴에 여관방이 없어 구유에 누인 주님처럼 여러분의 집이 구유와 같다고 할 지라도 어떤 가정은 집이 누추해서 목사님 심방을 받기가 어려워서 나중에 아파트 사면 그 때 심방 받지요. 그런 가정도 있습니다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가정에 우리 주님께서 오시고, 여러분 가정에서 여러분의 삶을 주장하시고,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오실 수 있는 구유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땅에 우두머리와 첫 번째 아버지 하나님, 머리됨을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을 오시지 않았습니다. 부귀와 명예를 가진 이들을 위해서 화려하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멸시 받는 자들을 위하여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으나 자신의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이들 앞에 주님 먼저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밤 중에 자신들의 양 떼를 지키기 위해서 성실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왔던 목자들처럼, 주님을 가장 먼저 뵈며 기뻐했던 그들처럼 저희들도 그러한 목자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오셔서 진정으로 평화를 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알게 하신 주님, 이번 성탄절을 통하여 받은 바 은혜들을 나누어 갈 수 있는 평안의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4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본문- 누가복음 24: 1-7
제목- 예수 다시 사셨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산 소망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새벽은 지금보다 더 많은 성도들이 이 자리를 가득 메울만큼 부활의 열기가 뜨거웠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지난 사순절 40일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개근자만 97명이 되었을 만큼 성도들의 동참은 놀라웠습니다.

수도권을 새벽마다 뜨겁게 달구는데는 멀리 안산에서, 일산에서, 서울 신림동과 사당동에서, 원효로에서 목동에서, 그리고 가까운 인천에서 한몫을 하였습니다. 40일 동안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영성과 십자가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용기들을 우리에게 주신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발걸음들이 이 성전을 가득 메워 마지막 때의 사명인 가서 증인됨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부활절은 우리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축제요 은혜의 날입니다. 성탄절이나 감사절기가 있으나 부활절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사도도 부활의 비중을 강조하면서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도 헛것이요 가장 불쌍한 자’라고 선언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오늘날 사는 이유도 바로 부활의 주님이 계시기에 의미가 있는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교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면서 맞는 매우 뜻 깊은 부활주일입니다. 저 역시 이번 부활절은 더욱 더 감개가 무량합니다. 저를 만나는 분들마다 관심이 이제는 머리쪽에 가 있어요. ‘염색하셔야 되겠네요’ 그런 인사를 심심치 않게 받습니다. 오늘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어제 동네 이발소를 찾았는데 거기서도 이발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염색하는게 좋겠네요\"하는 점잖은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갔다는 이야기겠지요.

20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저와 함께 이 제단에서 보내신 여러분들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부활 주일은 우리에게 더욱 뜻 깊고 애착이 가는것인지 모릅니다. 40일 특별새벽기도회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어떤분들은 일찍감치 끝나면 어떻하느냐고 염려하는 분들도 있었스니다만, 혹시나 맛있는 아침이 끊겨서 그런것은 아닌지요? 이렇게 40일 특별새벽기도회는 우리에게 짧게만 느껴지면서 은혜의 막을 내렸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님께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부활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시간, 주님께서 평소에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신뢰했던 여성들은 무덤을 향하여 미명에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말씀대로 신뢰하는 자세가 필요한줄 믿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고 미련한 것 같은 어린 아이 같은 모습말입니다.

현대인들을 가리켜 \'영악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러한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혹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에 속히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예수로 옷입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벽 미명에 무덤에 찾은 여인들은 영악한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계산적인 여인들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것이면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순수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뵙게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것입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좀더 세상적인 안목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 문밖을 나가면 로마 군사들에게 체포당하리라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 계산에서 나온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어 무덤을 찾지 못했던 제자들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사모했을 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세례를 충만히 받을 수 있었고 그들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며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들로 하여금 담대해지게 한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서 오는 것인줄 믿습니다. 성도의 열정은 충동에서 오는 삶의 무절제한 열기가 아니라, 소명에 따라 자신을 철저하게 굴복시키며 다듬어진 모습으로 헌신하는 뜨거움입니다.

아주 훌륭한 연주가이며 신학자였던 슈바이처는 어느날 흑인들을 생각하며 깊은 묵상에 빠졌습니다. 유럽인들이 얼마나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해서 몹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난 이후, 그는 그들을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그들의 삶의 자리 가운데로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의대를 지원하였습니다.

육신의 질병도 그의 사역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만, 특별히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이 그로하여금 의학을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그는 유명한 교수였고 저명한 연주가이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아프리카로 가느냐며 말리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슈바이처는 의학에 열중하다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간호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어쩌면 아프리카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주위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의학을 공부한 이유는 아프리카 영혼들을 치료하며 사랑하기 위해서이며, 의사가 되면 아프리카의 밀림으로 가야하는데 당신도 나를 따라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헬레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정식으로 의학을 공부한 자격있는 의사라면, 나도 정식으로 간호학을 공부한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도 없이 의사가 어떻게 혼자 의료활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나도 아프리카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아프리카의 영혼을 사랑하는 한 의사와 한 간호사로서 주님의 사랑을 무려 30년 동안이나 밀림에서 그들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었습니다. 유럽인에 대한 복수심과 원한에 가득차 있던 그들에게 백인으로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해 나갈 때 그들은 사랑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왜 당신은 그 곳에 갔느냐?’고 물었을 때, 슈바이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랑 때문에 갔노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변하여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게 만든 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크다고 하는 사실을 사도요한은 복음서 3장 16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에게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어서 붙잡혀 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당신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인류를 사랑하는 당신의 삶을 온전히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골고다의 언덕으로 가게 한 것은 바로 그 사랑의 힘이었는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그 주님의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다가온 여인들을 만나주시면서 그들은 부활의 첫증인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빈무덤을 향해 찾아온 여인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역사상 이 말보다 더 강력한 반문은 없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오늘도 이 세상을 향해서 우리 주님께서 계속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질문이기 합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아직도 이 나라에도 4천만이 넘는 수많은 영혼들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 자신들에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에게서, 공장에서 만든 신에게서 그들은 자신의 소망과 미래를 찾고 있습니다만, 호세아의 고백처럼 어찌하여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며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신이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독생자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그 사랑에 붙잡혀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오게 한 힘도 다름 아닌 주님의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아가서는 고백합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던 여인들 처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라고증거할 수 있는 증인의 삶을 살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성도가 \'혀 암\'을 앓았습니다. 흔치 않은 암인데, 결국 의사의 진단은 혀를 절단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을 해 보시지요? 혀를 잘라야 한다면, 이제는 더이상 말할 수 없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있겠습니까? 가족들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환자 자신도 침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담당 주치의가 와서 ‘이제 곧 수술에 들어가야 할텐데, 지금이 당신이 혀를 가지고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니 남길 말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치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묻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면서 눈물을 흘리다가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나의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혀를 가지고 한 마지막 그의 고백은 감사였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같아선 꽤 할 말이 많을 것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죄악가운데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이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여전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 영원히 주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가지고 살게하심으로 이제는 사단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써 살게 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이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늘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복된 부활절 아침에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되신 그 주님을 높이고, 우리의 생명이 있는 한, 우리의 언어가 가능한한 그 살아계신 주님을 온 땅에 증거하는 삶을 넉넉히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리시고, 다시금 일으키시사 소망이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주님의 자녀로서 허락하신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서도 당당히 주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감격의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님을 송축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이제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산 자를 찾는 어리석음을 청산하고 유일하신 하나님, 곧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다윗같은 용기와 요셉같은 순결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3 마리아에게 임한 축복
본문: 눅 1:26-38 (12월22일 설교)

지난 한 주간은 우리 나라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언론들은 한국민이 새로운 변화를 선택했다고 논평을 하였습니다. 더 마음에 감동이 되었던 것은 대통령 당선자의 인사 중에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7,000만 국민 모두가 승자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과거처럼 재벌들의 돈에 의한 선거가 아니라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모아진 성금에 의해 치루어졌고, 젊은이들의 인터넷을 통한 여론형성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가히 선거혁명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선거 문화의 정착을 알려주는 희망적인 사건이었고 우리 모두는 당선자의 인사처럼 패자가 없는 모두의 승리를 만끽하며 기쁨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 한 사람을 뽑는 일도 잘 선택이 되어지면 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듯이, 모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 예수를 마리아를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역사상 가장 크고 놀라운 사건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은 하나님께서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에 주신 은혜의 말씀에 이어서 마리아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잘 대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여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아름다운 열매로 결론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있는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서 지난 시간에 이어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하심을 전달하는 메신저는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였습니다. 성경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많은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있는 외경 가운데 \'에녹서\'에는 여러 천사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하나님의 군대를 지휘하는 천사장으로 미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가브리엘이 쓰임받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엘리사벳이나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는 천사는 가브리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하나님의 뜻을 가감하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했던 여성에게 수태 예고를 하자 모두가 두렵고 놀라워했습니다. 사가랴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12절에 보면, 무척 두려워하였다고 하였고, 마리아 역시 30절에 보면, 무서워하고 있는 마리아를 천사가 위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나, 이삭의 아내 리브가, 그리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같은 경우에도 본래 수태할 수 없어서 고통의 세월을 보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그들에게 자녀를 주실 때 사용하신 표현을 보면 \"태를 열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라의 태를 열어주셨고, 리브가의 태를 열어주셨으며, 한나의 태를 열어주셔서 당신의 사역자로 사용하신줄 믿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은 6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엘리사벳의 경우에도 남편 사가랴와 함께 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기다릴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가브리엘은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임하여 아들을 주시겠다고 했을 때 부부는 두려워했습니다. 사가랴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내가 늙고 나의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자신의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리아 역시 천사가 자신에게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며 좀 더 놀라운 반응을 보엿습니다. 엘리사벳과는 경우가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결혼한 노부부로서 아이를 얻지 못한 경우이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상황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일은 우리에게나 당시 이스라엘에서나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법에 있어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처녀가 아이를 갖는 경우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죽음을 각오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러한 천사의 이야기에 쉽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천사는 거듭해서 \"은혜를 받은 자여,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임하도다\" 하며 선포하고 있지만 지금 마리아에게는 그것이 은혜로 느껴지기보다는 두려움으로 전해지고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사명을 주실 때에도 아마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어떤 분은 평생에 내게 이러한 사명을 주신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받아들이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이건 내게 너무 부담스럽고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반응은 어쩌면 정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리사벳도 그랬고, 마리아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확고한 뜻이 계속 전해지면서 그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가랴는 엘리사벳과 함께 감사로 수용을 했습니다. \"주께서 나를 돌아보셔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셨도다\" 라고 했고, 마리아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38절에 보면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의 번민과 심적 부담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만 결국 마리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주의 백성으로서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임은 분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자녀를 갖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엘리사벳 가정이나 처녀로서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두려워했던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에 하락하신 세례 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셨고, 마리아를 통해 주신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이었습니다.

주님은 30세가 될동안 고향 갈릴리에서 묵묵히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하셨고, 6개월 앞서 태어난 세례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그 사명을 철저히 감당하느라 온 유대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분명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영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 군더더기를 다 떼어버리고 나면 결국 회개하는 일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회개의 모습이 아니고서는 결코 그 분 앞에 설 수 없고, 회개없이는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누릴 수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없는 말씀은 말씀일 수 없고,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는 결단이 없는 삶은 그저 허공을 치는 수고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럴수록 먼저 우리에게 선행되어야 할 성도의 모습은 회개라고 하는 것이지요.

세례 요한은 그 일을 통해서 모든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로 광야에 나가서 이 말씀을 증거했지만 오히려 백성들은 광야로 나아와 말씀을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놀라워서 당대의 헤롯 왕 조차도 그를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인기도, 지명도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랬던 그가 어느날 주님께서 광야로 나아오시자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말합니다. \"나는 주의 신들메를 풀기에도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본래 종들만이 주인의 가죽 신의 끈을 매고 풀렀는데 세례요한은 자신은 그러한 위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겸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세례 요한의 말에 도대체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는 무명한 자이었으나 세례요한은 유명한 자이었고, 예수는 사람들이 무시했으나 세례요한은 헤롯왕도 무시못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자기의 위치와 영역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의 명성과 모든 영광을 송두리째 주님에게 드렸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제자들조차도 다 주님에게로 보냈습니다. 준비하는 자로서의 모습, 철저하게 무대 뒤에서 주인공을 위해서 헌신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에서 모세를 위해 뒤에서 말없이 헌신했던 갈렙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세례 요한을 먼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엘리사벳 가정에 주셨고, 그리고 마리아에게 천사를 통해서 수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를 통하여 모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마리아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지요. 성육신의 도구로서 마리아의 태를 빌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리아를 복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뜻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도구로 쓰신다면 얼마나 영광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실 때 감격과 고마움의 모습보다는 \"내가 또 이 일을 함으로서 또 1년 동안 시간 많이 빼앗기게 되었구나. 또 피곤하게 되었구나\" 심지어는 \"골치 아프게 생겼구나\" 이런 생각을 혹시 하는 분은 안계신가요? 마치 어린 아이가 선생님의 심부름에 왜 내가 그걸 해야 되느냐고 대드는 아이의 모습 같이 그런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순수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순수한 심령에 너무나도 많은 찌꺼기와 때가 끼어 있어요. 공해로 찌들어 있어요. 정말 유리가 끼어 있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투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기만 해도 그저 기쁘고 감사해서 \"주님, 오실 것도 없어요. 말씀만 하세요. 주님, 오실 거 없습니다. 사도여, 오실 것 없습니다. 그저 손만 들어 주셔도, 손수건만 들어주셔도 우리는 만족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치유의 은혜가 임한 줄로 믿습니다. 뭐가 놀라운 거예요? 손수건이 위대합니까? 아니잖아요. 그들의 순전한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이루는 키가 된 줄로 믿습니다.

순수함, 지금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성이나 사회적인 환경보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되겠다고 하는 순수함이 지금 요구되고 있는 거예요.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일에 세상적인 어려움도 그들에게는 당연히 생각되어졌지만 결국 그들은 감사함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부끄러움을 면하게 해주셨도다. 내가 주의 여종으로서, 내가 주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결론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고자 하는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는 곧 사랑이요,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3일 후면 성탄절입니다. 여러분들은 벌써 성탄절에 축하하는 카드를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늘 안타까운 일은 저도 수많은 성탄 카드를 받지만 때때로 요즘은 이메일로 축하 카드를 받지만 상당수는 아직도 성탄과는 관계가 없는 그런 카드라고 하는 것이 \'근하신년\' 성탄절에 근하신년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나가면 그건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지금 성탄절에 무슨 근하신년이예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 작년까지만 해도 시청 앞에 성탄 트리라고 시청에서 수천만원 들여서 만들어놓는 그 성탄 트리, 그것이 성탄 트리입니까? 제가 신문 1면에 늘 나올 때마다 보면 성탄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전화를 겁니다. 신문사 아무개 담당이 밑에 나오잖아요. \" 사람 좀 바꿔 주십시오\"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들 눈이 있으세요?\" \"무슨 일이신데요?\" \"지금 성탄 트리라고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그것도 칼라로 내놓은 이 사진 좀 봐요. 그게 성탄 트리 맞습니까?\" \"왜요? 뭐가 문제입니까?\" \"자세히 좀 보세요. 거기에 성탄에 관계된 이미지나 문자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정말 그렇네요.....\"

얼마전에는 파주 국가대표축구 트레이닝 센타에서 개최된 전국 목회자축구대회에서 축사하시러 오신 회장님께 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분도 매우 안타까워 하시면서 지혜를 구해보자고 하셨는데 어제 받아본 신문에는 분명 달라진 시청앞 성탄트리가 있었습니다. 그 사진이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가 분명하고, 축 성탄이라는 글씨가 사면에 분명한 진정한 성탄절 트리가 시청 앞 광장에 세워졌습니다. 할렐루야!

기사 내용을 읽어볼까요.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20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크리스마스 트리는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가 서울시에 정식으로 요청하여 설치 비용 등을 일체 부담한 가운데 세워졌다.\" 무엇이든지 일을 반듯하게 하려면 희생이 따르지요. 입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한기총 회장님께 참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성탄 트리가 시청앞 광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라고 하면서도 주님은 없는 성탄절, 성탄절이라고 하면서도 구유에 정작 예수는 계시지 않은 그런 빈 성탄을 우리는 지금까지 보내오지 않았습니까? 성탄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진정한 성탄의 주인은 주님이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성탄도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그리고 드려지는 모든 예배, 예배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중심이 되시고, 그분을 높이시고, 그분을 송축하는 성탄의 시간,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성탄을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엘리사벳에게 세례 요한을 주셔서 그의 가정에 부끄러움을 면하게 하셨던 주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 예수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거룩한 주의 도구로 사용됨이 얼마나 복인지를 알게 하신 주님, 이 시간 주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마다 마리아처럼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감사의 수용이 우리의 삶의 결론이 되게 하옵소서. 성탄의 기쁨과 감격이 우리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원하옵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엘리사벳에게 임한 축복
본문: 눅 1:39-45 (12월15일 설교)

이번 주간 강림절을 맞이해서 주님의 오심을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그리고 깊은 믿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뻐하는 성도들의 모습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는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녀가 사랑으로 만나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가정을 이루고 또 가정에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자녀를 주셔서 태의 열매가 기쁨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가정의 모든 희망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가정에서의 축복의 열매이기도 한 자녀를 얻지 못해서 고민하고 또 힘들어하는 그러한 가정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랬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그랬고, 삼손을 낳은 마노아의 아내가 그랬고, 또 사무엘을 낳았던 엘가나의 아내 한나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소개되어져 있는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도 그랬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본래 잉태치 못한 자더라\" 그랬습니다. 낳지 않으려고 안 낳은 것이 아니라 정말 낳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사모하지만 낳을 수가 없는 그런 여성들이었습니다.

현대 과학은 자녀를 얻지 못할 때 부부 모두를 클리닉해서 남자에게 문제가 있는지, 혹은 여자에게 있는지를 분명하게 가려주고 또 문제를 해결하도록 치료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아마 과거에는 그런 과학적인 그러한 분석은 어려웠을 것이고, 우리 나라의 전통을 보면 아이를 낳지 못하면 거의 대부분 그것은 여자의 몫으로 그래서 쫓겨나기도 하고, 평생토록 기죽어 살기도 하고 그랬던 것이 과거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것은 이들 여성들이 잉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겪고 가정의 불화가 생기기도 했고, 그리고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나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는 그런 케이스였고, 또 이삭 같은 경우에는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했을 때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간절하게 이삭이 하나님께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아내의 태를 열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기도가 더 힘을 얻었든지, 아니면 남편의 기도가 더 상달되었든지 중요한 것은 그 부부가 하나님 앞에 자녀를 위해서 눈물겨운 기도와 사모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1장에 보면 사라는 자기의 남편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해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창세기 25장에 보면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60세가 되던 해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노아의 아내는 삼손을 낳았고, 한나는 사무엘을, 그리고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 평안의교회 안에도 자녀를 사모하지만 얻지 못했던 사랑하는 평안의 가정들 위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본래 잉태치 못한 자였지만 사모하며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그들을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그들 가정에 임함으로 태를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았고,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사렛에서 무려 130㎞나 떨어진 예루살렘 근처의 아인카림이라고 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제가 봉독해 드린 말씀은 마리아가 그 먼길을 떠나서 친족이기도 한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그리고 그 방문한 마리아를 맞이하면서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축복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봉독되어졌습니다.
마리아를 보면서 엘리사벳은 말합니다. \"여자 중에 복이 있는 자로다\" 많은 여성들 중에서 여러분 자신이 \"나는 여성들 중에 복이 있는 여성이다\"라고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나는 많은 여성들 중에 그 많은 행복하고 정말 살 맛 나는 그 많은 여성들 중에 왜 나만 이럴까?\"라고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자기를 평가 절하하는 그래서 마음 아파하는 여성들이 계실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갈 때 그리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축복이 선언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만나자마자 마리아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여자 중에 복있는 자로다\"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겠어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고민하셔야 합니다. 어떤 말로 상대방을 축복할까? 만나자마자 속상하고 김새는 소리하지 말고 아무리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요. 기분 좋게 차리고 나왔는데 말 한마디 때문에 그날 기분을 온통 망가뜨려 놓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참 안타까운 일들이지요.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축복할까? 어떻게 세워줄까? 어떻게 그들에게 삶의 의욕을 돋구어줄까?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가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처녀로서 이 앞에 제가 소개한 이 여성들은 결혼한 아내로서 가정으로서의 고민이었는데 마리아는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정혼만 해놓은 상태였는데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복이 있는 자로다\"하면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아들을 낳게 할텐데 그 아들을 예수라고 해라. 모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고, 그는 왕 중의 왕이 될 것이고, 다윗의 위를 이어갈 것이고, 모든 사람이 그로 인하여 기뻐할 것이다\" 너무 엄청난 말씀을 했을 때 마리아는 그저 당황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난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짧게 말씀했지만 아마도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는 많은 대화가 오갔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주어졌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성령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능력의 덮으심이 너와 함께 한다고 했을 때 그냥 그 자리서 \"아멘!\"하고 받아들일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어요? 아마 저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성 논리적으로 말하겠지요. \"내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 나는 아이도 기다리지 않았는데..\" 여러 가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성적인 이유들이 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부분을 보면 주님께서 이 마리아의 대화 중에 여러 대화 중에 결론적으로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다시 말하면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뜻을 너에게 전하는 것은 물론 메신저로서 전하는 사명을 가졌지만 분명히 네가 알 것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이성이나 과학이나 이런 부분에서 접근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신앙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으로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의 부활하심을 결론적으로 마리아에게 전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리아는 38절에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결론은 마리아도 믿음으로 받은 줄로 믿습니다.

결론이 중요하지요. 주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십자가를 지셔야 할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힘들어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이셨지만, 반면에 참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주님은 피곤하실 때 피곤해 하셨고, 슬프실 때 눈물을 흘리셨고, 괴로울 때 마음 아파하셨어요. 십자가를 진다고 할 때에 육신을 가지신 그 주님으로서 감당해야 할 그 고통도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합니다. \"할 수 있거든 이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지만 주님의 결론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제가 성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 하면 결론을 가지고 오는 사람입니다. 다 자기 맘대로 해놓고 와서 보고의 형식은 갖지만 사실 보고는 아니예요.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할텐데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맞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얼굴색이 변하지요. 그런 사람들은 제일 목회하기가 피곤한 사람들이예요. 결론을 가졌으면 가져올 이유가 없어요. 그냥 하시면 돼요. 자기 뜻대로 자기 멋대로 하면 되는 거지 그걸 뭐 또 체면치레로 가지고 옵니까? 준비 과정에서 기도하는 과정에서 그때 와서 상의를 해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하면서 나눌 수 있고, 그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함께 순종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결론을 다 지어놓고 그리고 형식 차례를 치루는 사람들은 참으로 힘든 사람입니다.

주님의 결론,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원대로 하겠다고 하는 말은 이것은 이성으로 되어지는 결론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되어지는 결론도 아닐 것입니다. 마리아가 주님 앞에 고백하였듯이 이것은 바로 믿음의 고백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향해서 축복을 몇 가지 하는 중에 마지막 45절에서 이렇게 축복합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네가 지금 성령으로 잉태되고 하나님의 능력의 덮으심을 입는다고 하는 사실을 네가 말씀으로 받아들인 바로 너가 놀라운 하나님의 복이 임할 거다\" 엘리사벳으로서도 자기의 친척인 마리아가 그런 믿음으로 그런 상황을 감당하였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대견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 속에는 믿음으로 고백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는 그래서 언제나 사도신경으로 시작합니다. 성경 66권 전체 중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주님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짧게 짧게 되어 있지만 그 하나 하나가 그냥 지나갈 것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 제일 먼저 뭐라고 고백하십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천지창조에 대한 고백이 안되면 사도신경은 시작할 수가 없지요. 그것까지는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오셨습니까?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지요? 그거 고백이 안되면 그 다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냥 예배 자리에 자리만 하나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그 한 소절 한 소절, 끊어서 읽지요? 저는 사도신경을 보면서 읽습니다. 못 외워서가 아니라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로서 단 한마디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함께 따라하면 다같이 하는 것은 쉬운데 마이크 앞에서 크게 하려면 한 마디라도 틀리면 예배에 덕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사회할 때는 늘 제가 보고합니다. 그리고 읽을 때 가능하면 한 소절, 한 소절 끊어서 읽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리고 숨을 한번 쉽니다. 숨을 한번 쉬는 것은 육신의 호흡이지만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해요? 마음으로 아멘! 아멘이 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도신경이 한 소절 소절마다 계속 믿음으로 믿음으로 되어진 다음에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하고 마지막 아멘은 최종적인 거예요. 그것이 신앙고백으로 되어지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으로 내게 다가왔을 때 그것이 다른 이성이나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그것을 전하고 있어요. \"믿은 여자에게, 바로 너에게,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인 너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도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인카림에서 생활하면서 그해 대제사장의 반열에서 그는 반차에 따라서, 순서에 따라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도 나이가 많이 들어감에도 자녀가 없어서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성경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인데 놀라운 일은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더라\" 그랬습니다. 남편 신앙과 아내의 신앙이 하나님 보시기에 다 좋았다는 말입니다.

부부 신앙은 수레바퀴와 같아요. 같은 수준에서 가야 합니다. 뭐 100% 같을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가야 합니다. 수레바퀴 하나가 그 지름이 짧으면 어떻게 돌아갑니까? 이상하게도 큰 바퀴 중심으로 돌지 않지요? 작은 바퀴 중심으로 돌게 되어 있어요. 이게 우리가 알 수 없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마 고등학생들은 다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만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럽니다.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신적이고 충성한 진실된 사람들이 많지만 잘못된 사람이 하나 문제를 터뜨리면 온 세상이 그곳으로 흙탕물이 튀깁니다.

예를 들어서 경찰관이 무슨 총을 가지고 강도질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럽니다. \"요즘 경찰관들 다 썩었어\" 그렇게 말을 하지요. 그러나 경찰관의 99.9%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정직하게 살고, 시민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목사 중에 한 사람이 잘못되어서 신문에 나면 \"요즘 목사들 다 썩었어\" 이렇게 말하지만 그런가요? 99.9%는 정말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일생을 내어놓고 헌신하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그 작은, 잘못된 작은 부류들이 전체에 흙탕물을 튀겨놓는 것이지요.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아내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신앙적으로 가정은 발전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아무리 눈물겹게 헌신을 하려고 해도 남편이 뒷바라지, 신앙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면 정말 그것은 가시밭길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서 부부는 늘 함께 믿음의 길도 함께, 소망의 비전도 함께, 언제나 함께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그들 두 사람이 모두 의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7절에 보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의인이고 주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삶을 살은 그 가정에 수태치 못하더라\" 그랬습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부부가 의롭게 사는 가정이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가정인데 그런데 왜 아이를 못 낳습니까? 이런 것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고민을 주고 때때로 힘들게 하는 거예요. 신앙생활 잘하는 의인의 가정이면 아이도 잘 낳아야 되는데 \"주님, 이번에는 아들주세요\"

그러면 아들을 쑥 낳고, \"주님, 이번에는 딸입니다\" 그러면 딸을 쑥 낳고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 부부를,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 부부를 왜 하나님은 수태하지 못하게 하셨을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인도 가질 수 있는 고통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주의 종의 가정에도 고통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위해서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반열에 따라, 차례를 따라 제사장 직무를 행합니다. 기분 나쁘겠지요. 아무리 헌신되게 주의 일을 했어도 자녀가 없으면 아마 실족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사가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고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 나와 계신 분들은 다 행복하신가요? 여기 계신 모두는 모두가 다 만사형통한 분들만 오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고민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주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명은 반차에 따라, 순서에 따라 신실하게 감당하는 이 모습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이 이 사가랴 가정의 모습과 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잘될 때만 잘하는 것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 기뻐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평범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노라\"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당신의 자녀로, 특별히 삼으셨는데 지나가다가 그냥 만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 특별한 존재인,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중요한 존재인 내가 하나님 앞에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때로 고민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사가랴 가정에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서 말씀합니다. \"내가 너의 가정에 아들을 줄 거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에 큰 은혜를 주셔서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그러면서 그 낳아야 할 아들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아들을 낳으면 너도 기뻐하고 너를 아는 모든 이웃들이 기뻐할 거다\"

우리의 태어남의 존재가 기쁨의 존재가 되어야겠지요? 생일 축하할 때 장난삼아 이런 노래합디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우리 크리스챤들은 장난으로라도 그런 노래하면 안됩니다. 우리 성도로서는 입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지요. 아무리 코미디이고 장난이라도 해야 할 것이 있고, 안 할 것이 있어요. 부부가 앉아서 장난한다고 \"여보, 우리 이혼 한번 해볼까?\" 그런 얘기를 농담으로 합니까? 그거 무덤까지 갈 동안 정말 그 단어는 쓰지 말아야지요. 그 단어를 쓸 때에는 천지가 개벽해야지요. 조그만 말다툼마다 그런 단어가 나온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의 태어남에 대해서 그 자신도 기쁨이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도 기쁨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축복이예요. 자녀의 주심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저가 태어나면 우선 너희들이 기뻐할 것이요,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태어날 그 아들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요....\"

여러분, 자녀를 축복하실 때 좀 크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어느 방송을 들으면서 제가 우리 친구 목사님 딸 결혼식을 다녀왔는데 딸 결혼식을 다녀오며 제 생각에 \"아, 나도 이제 곧 이 자리에 서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자, 다녀오는 동안에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주부가 글을 써서 게스트가 읽는데 자식이 이뻐보이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그 아이의 귀에 점이 있으면 \"얘, 귀에 점이 있으면 복이 있는 자라고 그러던데 어쩌면 너는 귀에 점이 있어서 이렇게 복이 있니?\" 뭐 자기의 손의 모습이 아주 동글동글하면 \"야, 손이 동글동글하면 재능이 있다던데 넌 어쩌면 그렇게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니?\" 그냥 하나 하나를 모두 뜯어서 그렇게 축복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자식이 늘 잘하지 만은 않지요? 속을 썩이고 아주 힘들게 해도 이 어머니는 그렇게 욕을 한다고 합니다. \"이 크게 될 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큰 일을 할 놈\" 이러면서 욕을 한대요. 그건 욕이 아니라 축복이지요. 저는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분이 상담대학원을 나왔나...\" 보통 수준의 어머니가 아니지요?

자식을 축복할 수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대부분 축복보다는 저주를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 한 세대 위의 부모님들,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퍼붓는 욕은 저주에 가깝지요? 제가 이 강단에서 할 수가 없는 욕들입니다. 기가막힌 욕들을 우리는 밥먹듯이 들으면서 대부분의 한민족 자손들이 듣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지요?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향한 말들은 축복이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요한을 축복하십니다.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요한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엘리야의 능력과 심정을 가지고 그 일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차를 운전하실 때는 주로 우리 맹집사님과 민전도사님이 하시지만 가끔은 성도들이 할 때도 있지요. 운전할 때는 늘 목회자의 심정으로 하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차가 사고가 나거나 교통 법규를 위반했을 때 얼마나 하나님 영광을 가릴 것인지까지 생각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일할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대강대강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례 요한을 사가랴 가정에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늙어서까지 아이가 없으니까 \"한번 너희들 품에 아이를 한번 안아봐라\"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주신 거예요? 그건 아니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주실 때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자녀들은 다 주님의 뜻이 있어요. 그 뜻을 분별키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뜻에 여러분들이 늘 맞추어 가면서 살기를 원해야 합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을 사가랴의 가정에 주신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자, 그 말씀이 바로 17절에 나와있습니다.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사역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주신 이유는 첫째로 주 앞에 앞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연령으로 보면 6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사역을 앞서서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30세가 되어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까지 조용히 고향에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6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는 이미 30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지역에서 아주 능력과 권위가 있는, 백성의 존경을 받는 그런 선지자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도 그를 두려워했고, 심지어는 헤롯 임금도 그를 두려워할 정도의 영적인 파워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늘 자신 뒤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일을 위해서 그의 사역을 감당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을 그의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가랴 가정에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비하는 축복, 예비하는 자의 축복입니다. 그렇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연극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연극에서는 예수님이나 혹은 마리아나 요셉, 이런 사람들은 주인공에 버금가는 위치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방의 박사들도 나올 것이고, 헤롯 왕도 나올 것이고, 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목자들이 사람들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지 몰라요.

늘 교회에서 이런 연극을 이렇게 배역을 맡기다 보면 우리 선생님들은 고민이지요. \"누구에게 이 배역을 줄까?\" 사실 저의 가정은 보면 목회자의 가정이라고 너무 플러스 알파가 아니라 마이너스 알파의 어려움이 많아요. 맨날 우리 아들 사탄을 시키고, 뭐 지나가는 사람 시키고, 속상해 해요.

사실 세상적으로 하면 아빠가 담임목사니까 요셉을 하고 마리아를 하고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것을 원치 않지요. \"야, 사탄이라도 있어야 천사가 돋보이지. 열심히 해보아라... 오히려 격려합니다. \"아마 선생님이 너는 목사님 아들이라고 너는 그것 시켜도 시험에 안 들 것 같아서 그거 시켰을 거야. \" 늘 마이너스 알파이지요. 손해가 많습니다. 배역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장로님의 아들들이나 권사님 딸들을 다 마리아를 시키거나 다 요셉을 시킬 수는 없겠지요.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만은 그러나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준비하는 자의 축복, 이 세례 요한은 자기의 그 명성과 권위와 능력을 주님이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러 오셨을 때 송두리째 주님 앞에 내어놓았어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조차도 모두 다 주님께 보냈어요.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나는 아니라\" \"그러면 누구입니까?\" \"내 뒤에 오시는 바로 저 분이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것들이 다 그 분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하면 그는 사역을 출발하면서 사역의 의미를 알고 있었어요. 영광을 자기가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되는 것도 기쁠 지 모르지만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 주님을 위해서 준비하는 자로서의 삶을 철저하게 살았고 그리고 그는 가장 헌신적인 주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우리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줄로 믿습니다. 사가랴 가정에 주신 자녀는 그와 같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가랴를 말을 못하게 하셨어요. 아이가 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말을 하지 못하면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사람들이 말 못하는 사가랴를 보고 얼마나 많은 추측을 하고 여러 가지 억측을 했겠습니까? \"저 사람이 갑자기 말을 못하나?\" 제사장이, 목사님이, 왜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나? 아이를 낳는 동안 얼마나 정신적인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하지만 그는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하다가 아내가 세례 요한을 낳은 후에야 주께서 그 입을 열어 주신 줄 믿습니다.

오늘 \'엘리사벳의 임한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의로움과 신실함으로 살지만 때때로 우리에게 수태치 못하는 것과 같은 고통과 고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 앞에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말없이 감당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그들에게 하나님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 놀라운 주의 일꾼을 그의 가정에 주셨고,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준비하는 앞서 준비하는 은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엘리사벳을 통하여 허락하신 놀라운 뜻을 분별케 하시고, 순종케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언제나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주의 종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1 부활하신 예수
본문: 눅 24:1-6 (4월4일 설교)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줄 믿습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믿음의 근거를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하고 복된 시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이 없었다면 기쁨의 시간도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다. 그러나 때로는 천하보다 귀한 그 생명이 아주 부끄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인류를 위해서, 어떤 이는 작은 감정 때문에 죽어갑니다.
인도 동부 벵골주에 사는 한 부인이 50파이세라고 하는 작은 동전 하나를 남편의 옷에서 꺼내다가 차(Tea)를 하나 샀습니다. 50파이세라고 하면 우리 돈으로 1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돈이지만 남편이 자기의 돈을 꺼내간 것을 알고서 부부 싸움을 했습니다.

\"왜 허락도 없이 50파이세를 꺼내갔느냐?\" \"나를 위해서 쓴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 마시려고 샀는데 뭐가 잘못이냐?\" 싸우다가 화를 이기지 못한 남편이 독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부인도 5개월 된 딸을 남겨두고 자살했습니다. 인도에서 소문난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목숨을 버립니다. 얼마전에는 수능 모의고사를 본는 것이 부담스러워 목숨을 끊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3학년 학생들의 모의고사 시험이 취소가 되었어요. 시험 때문에 죽고, 기분 감정 때문에 쉽게 목숨을 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생각할 때 그 죽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단번에 죽으심으로 주님은 온 인류를 위해서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신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이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이 되어 성전에 담력을 가지고 나오게 된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피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잘못된 삶으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싸구려로, 값싼 것으로 만드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 살아감으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값싸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에 촛불을 들고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을 사탄 마귀의 세력들이 꺼버렸습니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우리가 빛이라면 어두움의 세력에 저항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고난일 수 있어요. 그러나 \"너희가 의를 위해 내 이름으로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도다\" 할렐루야! 사탄 마귀의 세력들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완전히 어둠의 세력이 승리한 줄로 확신했어요.

그러나 주님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으로 다시 우리에게 오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주님을 본받는 심정으로 촛불 하나를 켜서 온 세상을 밝히겠다고 하는 그런 결심을 한 것입니다. 강단에 촛불을 하나 켜고, 그리고 한 사람씩 촛불을 옮겨가면서 완전히 불을 꺼 어두웠던 이 성전이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성도들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자기의 몫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어두움은 넉넉히 물리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물러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없는 것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지혜와 방법으로 부활의 주님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도 대단합니다. 인간의 방법도 뛰어납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와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막아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그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그랬고, 대제사장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돌려놓으려고 인간의 지혜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사망 권세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망 권세도 주님은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군대의 힘으로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군대의 힘이 강한 시대입니까? 헬라의 알렉산더 군대의 힘, 그리고 그 엄청난 헬라를 무너뜨린 로마 군대의 힘, 아마 요즈음 미국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는 하나의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 구조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칠 것이 없이 세계의 기준은 미국의 기준입니다. 미국의 뜻대로 해야 하고, 미국의 기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계의 정치, 경제, 군사, 어느 부분도 미국이 간섭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걸프전쟁이 그랬고, 요즘 한창 뉴스거리가 되는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분쟁이 그렇습니다. 미국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가입된 NATO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는 막강한 UN도 미국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 미국의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군사력이 아니겠습니까? 첨단 무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힘을 의지합니다. 그 힘을 의지해서 예수의 부활을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니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마태복음 27장 65-66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지으리라\" 그 당시에는 그들이 불끈해서 \"솔로몬이 성전을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지었는데 네가 3일만에 다시 짓겠다고 그러느냐?\" 그때는 무시했어요.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말씀을 증거하면 그 앞에서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심령 속에 메가톤 급의 충격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충격 때문에, 그 부담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거예요.

신문을 배달하는 아이가 재벌회사 빌딩에 출입을 하면서 틈만 나면 회장실을 들어갑니다. 그리고 전도지를 주는 거예요. 그리고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회장님도 예수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회장이 아이 앞에서는 무시해버렸지만 그 아이는 성령 충만한 아이였습니다. 집에 와서 잠을 자려고 하면 그 아이의 말이 확성기처럼 들립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마음에 영적인 부담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성도 여러분, 전도는 누가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성령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도의 120 용사\'를 모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성령의 충만함도, 전도의 열매도 상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 아이를 붙잡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죽지 않겠느냐?\"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회장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셔야 합니다.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모셔야 합니다\" 많이 들었던 말 아닙니까? 평범한 얘기 아니예요? 그런데 그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말하는 것은 결코 허공을 치는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생명을 살리고, 한 생명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은 예수의 무덤을 꽁꽁 돌로 막아놓고, 회를 칠한 후 인봉을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 그 앞에 군사들을 배치해서 무덤을 지키게 했지만 군대의 힘으로도 부활의 주님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돈의 힘으로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2-13절에 보면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거짓 증인을 세운 것입니다.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그들의 양심을 매수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말합니다. \"목사님, 요즘 세상 참 요지경이예요.\" \"무슨 얘기입니까?\" \"내가 무슨 무슨 일을 했는데 사실은 내가 벌을 받아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재판을 했는데 그 변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시킵디다. 그래서 손을 들고 내가 법과 양심에 따라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서를 해놓고서도 내 마음에 있는 양심의 말은 접어두고 변호사가 시킨 대로 무조건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아무 죄가 없는 그 사람은 벌을 받아서 교도소로 가고, 교도소를 가야 할 저는 이렇게 풀려났습니다. 요지경이데요\" 그리고 나서 입이나 다물고 있으면 좋을 텐데 다니면서 세상 다 썩었다고 얘기하고 다닙니다.

돈을 주고 군사를 매수하여 \"예수의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말해라\" 부활을 돈으로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최후의 힘이라고 말하는 그 막강한 돈의 힘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뉴 밀레니엄 시대가 다가왔다고 그럽니다. 한 해만 지나면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뭐가 달라져야 합니까? 물론 생각도 달라져야 하고 사고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달라져야 할 부분은 우리의 신앙인 줄 믿습니다. 죽은 신앙들, 세상에서 맥못추는 신앙들, 예수의 부활이 삶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무기력한 신앙들, 그것들이 다시 새로워져야 됩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면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부활하시고, 사탄 마귀의 세력들이 인간의 지혜와 방법으로, 군대의 힘으로, 돈의 힘으로도 막지 못했던 부활의 그 예수를 우리가 전할 수 있는 새로운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세례를 받아도, 집사가 되어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벙어리 노릇하시겠습니까? 증거하고 싶어도 성령의 충만함이 없으니 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용사가 되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교회에 120명의 기도의 용사를 주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부활의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하게 하셔서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옵소서\" 이 놀라운 부활 아침에 부활 신앙을 소유한 여러분들을 통하여 살아있는 믿음의 삶들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넉넉히 증거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합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연약하기만 했던 저희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의지함으로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입술을 열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