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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의 메시지 (요약)
1. 역사적 배경 요나서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기적을 신화나 전설로 유추 해석한다면 요나서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기적들이 메시지다운 구실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즉, 기적은 하나님의 능하신 사역의 역사에 속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으며, 요나서는 예언적 역사 서술의 문학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보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나서는 선지자인 저자 자신이 그 해석을 제시하고 그 내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해석된\'(interpreted) 역사인 것이다. 요나서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중엽으로 보여지며, 이 사건의 주연인 요나는 아모스 선지자와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한 초기 시대의 인물로 추정이 된다. 이 무렵 앗수르는 쇠퇴를 거듭하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 번영은 왕하 14:26-27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여 주어진 상급이 아니라 혹독한 훈련에 대한 은혜로운 위로의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야웨의 선지자들인 아모스와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집요한 영적 간음과 이에 수반되는 부도덕 때문에 새로운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훈련의 일환이었던 시리아의 번영은 이제 앗수르에게 참패하고 하맛과의 지친 싸움으로 사경 길에 놓이게 되었다. 요나의 예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다시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고,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심판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지속적인 완고성 때문에 다시 한번 낮아져야 했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올라온 한 이방 나라였다. 그 당시 이러한 번영의 역사와 그 당대 선지자들의 심판 선포의 결과는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반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주권 적으로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이 백성의 역사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열국 중에 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열국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그러나 선민인 이스라엘은 선민이라는 특권뿐만 아니라 봉사를 위해서도 구별되었으며 만방에 대한 야웨의 증인으로 선택된 도구라는 근본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소경이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은 영적 소경이었으며 도덕적으로 사악함에 빠져 있었고 이러한 병폐는 돌 비에 쓰여진 율법으로나 그 당시의 선지자와 제사장이나 왕들도 전혀 치유 불가능이어서 이스라엘은 계속 죄악 속으로 빠져 들어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더욱 타락된 이방인들을 징계의 도구로 자주 사용하시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종교적 배교와 도덕적 부패의 상태에서 완고하게 버팀으로서 자신이 자랑하던 특권을 상실했으며, 열국 중의 한 나라처럼 되어서 만국의 주님 야웨의 특별한 은총을 바랄 권리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은총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 놓여 있을 때 야웨께서는 자신의 선지자 요나를 머나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셔서 그 나라의 모든 악독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신 것이다.
2. 저자와 그의 메시지 요나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언제 기록했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요나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든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네러티브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메시지가 그 서술의 특별한 내용과 구조를 통해 전달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 이 책은 야웨의 지대한 관심이 이방 민족들에게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축복이 열방들에게 확대되는 것은 구원사의 종말론적 목표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역사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목적을 성취하시는 일에 비록 이스라엘이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안에서 자신의 구원 사역을 수행하신다는 것이다. 또 요나의 복지에 대한 수부들의 관심은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요나의 냉담한 태도와 의미심장한 대조를 이루면서 요나가 겪은 이 사건들은 죄를 짊어진 완고한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의 원인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다시 일으킴 받아서 순종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만방에 성취시켜야 하는 것이다.
3. 요나의 역할과 그의 사명 요나서의 네러티브는 요나의 사역을 서술한 것도, 수부들이나 니느웨인들의 행동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야웨의 행동에 대한 네러티브인 것이다. 그러므로 야웨가 특별 출연이 아닌 주연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요나의 사명 가운데서 야웨께서 이스라엘에도 역시 말씀하셨음을 알리려고 했음이 틀림없다고 가정되어야 할 것과 아울러 이 선택된 민족의 왜곡되고 편협한 정신을 한 몸에 구현한 요나는 하나님에 의해 부득이 자신의 뜻과는 달리 니느웨에 하나님의 긍휼을 전하는 사명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요나의 역할은 세 가지로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첫째는 인간의 대표로 생각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선지자적 사역을 맡은 사람들의 대표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요나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요나서의 저자가 인간 요나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단지 한 선지자의 불 충성이라는 주제보다는 \'세계\'라고 하는 광대한 무대 위에서 더 큰 주제를 설정하고 있음을 시사해 주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세계 열방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무엇인가 말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또한 선상 경험에 대한 네러티브는 하나님의 심판의 위협에 직면한 이방세계의 많은 나라들(수부들에 의해 상징)과 그들 가운데 위치한 이스라엘(요나에 의해 상징)을 통해 당시의 세계 상황을 묘사함이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요나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일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며, 요나와 함께 책망 받을 만했다는 점, 바로 이것이 저자의 의도한 바였다는 사실이다.
4. 하나님의 목적 3-1. 니느웨 성을 향한 긍휼하심의 표현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을 죄 값으로 멸망시키려 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먼저 그 성읍에 경고의 말을 전함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3-2. 완고한 자기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는가? 위의 3-1에서 언급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나서의 네러티브는 이스라엘인들을 주된 독자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요나서 저자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듯하다. 이스라엘이 인식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은 그의 은혜를 모든 열방에게 드러낼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불성실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전적 배교로 인해 선민인 그들이 불가피한 종국적 멸망과 더불어 이방인의 소망마저 상실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고치시려고 열방이 반드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5. 표적의 의미 요나의 표적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대표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그들이 반드시 죽어야 할 것을 선포하는 다시없는 표현일 것이다. 또한 그의 부활은 그 세대에게 예수님께서 실로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가 진리임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표적일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실제적인 죽음을 봐야만 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는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표적과 그들 자신의 새로운 생명의 참되고 유일한 소망을 보아야 한다.
6. 요나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우리는 이 예언서에서 말씀선포의 중심적인 내용들을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주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은 영감 시키시는 성령님께서 그 선지자를 감동시켜 기록하게 하실 때의 그 특별한 의도를 파악하고 세심하고도 건전하게 해석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구원사의 특정한 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래의 의도와 목적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 그 특정한 때의 이후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말씀으로서 의미를 계속 지니고 있다는 \'점진성\'과 \'연속성\'을 부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요나서라는 예언의 말씀이 구원역사가 전개됨에 따라서 여전히 이스라엘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또한 주지해야 한다. 구원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시기 이후인 지금도 계속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성육신, 생애, 죽으심, 부활, 승천 가운데 과거의 모든 구원역사를 절정에 이르게 하시고 동시에 성취하셨으며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 구원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역사상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에게 구약 예언의 말씀들을 새롭게 듣게 될 근본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역사의 중심인 이상, 우리는 반드시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에 비추어서 구약의 예언서들을 해석해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에 대한 신약의 증거에 비추어서 구약의 말씀을 새롭게 들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말씀 선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요나서의 어떤 요소를 선포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온 세상에 미친다는 것과 둘째, 구원역사에 있어서 개인적인 축복이나 특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멸망 받을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과 셋째, 요나로 대표된 이스라엘이 비록 불성실하여 구원사역을 감당치 못했지만, 요나의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만방에 구원을 가깝게 하셨다는 사실과 넷째,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일지라도 자신들의 옛 죄성에 대해서는 죽고 새로운 순종에로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및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옛사람에 대해 죽어야 하며 또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분의 부활능력으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 만민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명을 담당하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예언서로부터 선포되는 메시지는 오직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구원은 야웨께로서 말미암나이다\"라고 외치는 고백과 찬양에 진심으로 화답할 때 비로소 그 메시지에 충실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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