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혜미야서에 비추어진 지도자상

느헤미야서에 비추어진 지도자상

| 구약 연구 | doxoori

 

느헤미야서에 비추어진 지도자상

서론
리더쉽은 역사가 말하듯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리더쉽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따라서 단체, 사회, 나라의 성패가 좌우되게 마련이다. 리더쉽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평가한다면 그 명암이 갈라질 것이다. 히틀러는 리더쉽 측면에서 볼 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처칠 수상 역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리더쉽이 미친 영향은 명백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잘못 사용된 리더쉽이 세계를 얼마나 파멸로 몰아넣는지 역사는 증언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리더쉽은 그만큼 중요하다. 오늘날 리더쉽의 부재로 단체, 사회, 교회,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된다. 리더쉽의 부재로 각 분야마다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이 리더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리더쉽은 한순간 형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훈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리더쉽이다. 리더쉽을 평생 배움을 통해 발전시켜 나아가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리더쉽이란 우리말로 \'지도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더쉽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조직체의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격려해서 조직체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활동이다. 둘째, 사람들을 움직여서 조직체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일이익을 다하도록 하는 영향력이다. 셋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향을 미쳐서 조직체의 목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 조직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응집력 있게 협력하도록 하는 시멘트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쉽이란 조직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 제반활동이라 설명할 수 있겠다. 이처럼 리더쉽은 지도자에게 있어 생명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지도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참된 지도자는 어떠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는지 연구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특히 140년동안 성전재건을 하지 못한 어두운 시대에 시작하고 있는 느헤미야서를 통해 한 사람의 지도자를 발견케 된다. 그를 통해 우린 이 시대에 참된 지도자상을 그리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리더십의 원칙을 설명해주는 교과서와 같다. 지금까지 기록된 책 가운데서 지도력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느헤미야서에서 가르쳐주는 리더십의 원칙들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의 목회현장에 적용해보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이방 왕의 술을 따라주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선택했는가\'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가 어떤 지도자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왜 느헤미야가 지도자로 선택되었는가?
①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1:2)
느헤미야는 성공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왕의 곁에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삶에 있어서 최고점에 도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마 그는 급여도 많이 받았을 것이고, 상당한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위태하게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아마도 바벨론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의 문제는 멀리 떨어진 곳의 남의 일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았던 관심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민족에 대한 소식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가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그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 오늘 우리는 너무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진정한 문제를 느끼고 살아가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대부분의 관심사는 개인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성공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 자신의 문제에 대한 관심에만 몰입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이 \'나\', \'우리 가족\', \'우리 교회\'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 즉 하나님은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에 우리의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느헤미야에게서 배워야 할 귀중한 교훈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이 파괴된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관심을 느헤미야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택하신 것이다.

② 느헤미야는 신실한 사람이었다.(1:11)
왕의 술을 따라주는 관원의 위치는 왕이 그를 신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왕은 자신의 생명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이는 왕이 느헤미야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인 것이다.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그만큼 신실했던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신실하게 섬기는 자세로 감당하는 사람이야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시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고 있느냐를 보시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대형목회만이 성공적인 목회라 여기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성도가 모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권에는 목회자들이 남아도는데 도서지역, 농어촌 산간 지역에는 목회자들이 부족하다니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기는 법인데 이를 모르는 것일까? 하여튼 느헤미야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그를 택한 것이다.

③ 느헤미야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1:11, 2:5)
느헤미야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왕에게 스스로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하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민족의 어려운 일을 향해 \"내가 가겠습니다! 나는 건축업자가 아니지만 가서 성벽을 쌓겠습니다\"라고 자원하고 있는 것이다. 왕에게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하는 자였던 그가 그 일을 감당할만한 기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그를 선택하셨음을 본다. 기술은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심장을 가진 자였으며, 신실했고, 나아가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일에 뛰어들 열정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보다는 신실함을, 그리고 모든 것을 잃는다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열정을 더 보신다. 우리는 한결같이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나는 특정한 은사나 재능이나 지식등이 없다\"라고 말하며 주저 앉으려하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식지 않는 열정이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리더십에 의해 올라가고 내려간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도자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열정이 중요한 것이다. 믿음의 열정은 하나님을 움직이게 만든다. 따라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의 열정인 것이다.

2. 느헤미야는 어떤 지도자였는가?
(1) 기도하는 지도자였다.
러더십의 첫 단계는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헤미야 1장에 나와 있는 기도는 그가 4개월 동안 한 기도의 모형이다. 그가 4개월 동안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면 그의 기도는 이렇게 발전했을 것이다. \"하나님,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셔야 합니다. 제발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마도 이렇게 서너 주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느헤미야야, 너 자신이 위선자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네가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왜 네가 그 일에 뛰어들지 않느냐?\" 넉 달을 기도하는 동안에 느헤미야의 마음에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느헤미야는 이 음성에 \"하나님 저를 사용하기를 원하시면 제가 성공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도의 4가지 요소를 정리해 보자.

① 확신의 기도이다.(1:5-6a)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확신하는 기도이다. \"주 하늘의 하나님,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 주를 사랑하는 이들과 세운 언약,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과 세운 언약을 지키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보여준다. 의로운 하나님이시고 위대한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느헤미야는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은 내게로부터 들으시고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빨리 받게 하는 비결이다.

② 내가 무엇을 했고 누구인가를 고백하는 기도이다.(1:6b-7)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를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합니다. 저와 저의 집 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주께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라고 기도하는 느헤미야는 \"우리\"라는 말을 통해 자신 역시 죄의 주범임을 동일시하고 있다. 죄를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죄로 인정하고 시인하는 데에서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범죄했습니다. 저는 잘못 행했고 불완전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있는 것이다. 그의 고백은 매우 구체적임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나아가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하는 기도이다.(1:8-9)
우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일방적인 우리의 요구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기도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약속을, 즉 말씀을 상기시켜드리는 기도이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주의 종 모세를 시키시어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신 그 말씀을 이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나는 당신이 누구이신 지를 압니다. 내가 누구인가도 압니다. 당신이 무슨 약속을 하셨는지도 압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습니다.\"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가 문제를 해결한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은 약속을 내 것으로 외치는 것이다. 성경 상에 나타난 수많은 약속들을 내 것으로 삼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④ 헌신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헌신없는 기도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기도하고 나서 가만히 누워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기도는 분명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임과 동시에 나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중노동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느헤미야의 기도는 \"주님 종의 간구를 들어주십시오.…이제 주의 종이 하는 모든 일을 하여 형통하게 하여 주시고 왕에게 자비를 입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헌신의 기도로 끝나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제가 기도의 응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제 자신을 헌신합니다. 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옵소서.\"

진실로 느헤미야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그 세상에 대한 해답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출발점은 그가 아침에 읽은 조간 신문의 뉴스였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조국 예루살렘의 형편을 소식으로 듣고 훼파된 예루살렘의 참상을 보고 기도를 시작한다.(1:2-4) 그는 닫힌 귀가 아닌 열린 귀의 소유자였고, 닫힌 눈이 아닌 열린 눈의 소유자였다. 역사의 현장을 떠난 곳에 기도는 설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곧 역사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상황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책임의 자리에서 서게 한다. 여기서부터 기도는 출발한다. 기도의 사람은 우리가 처해 있는 그 현실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눈물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지각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책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도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가르쳐준 기도의 4단계를 사용해 실제로 기도해 보라. 먼저 우리의 마음을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고, 정말로 기도하고 싶은 분야를 정한다. 정해졌으면 첫째,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맞추라. 둘째,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라. 그리고 용서를 구하라. 그리고 나서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주장하라.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달라고 할 수 없다면 다른 일을 시작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헌신의 기도를 하라. \"하나님, 제가 문제 해결의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위하여 어떤 방향으로라도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것이다.


(2) 섬기는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마땅히 누릴 것도 포기하고 백성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 5:14-16) 여기서 느헤미야는 당시 부패한 지도자들의 대표적인 3대 타락상, 즉 뇌물과 독재와 부동산 투기에 전혀 깨끗하다고 담대하게 고백한다. 그의 이런 고백은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월급도 포기했다는 데에서 진실임을 알 수 있다. 느헤미야처럼 자기 의무까지도 반납할 수는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지도자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고통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고 기쁨을 주는 자리인 것이다. 느헤미야가 사역의 최전선에서 다스리며 감독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 3장에서는 그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감독관을 임명하고 모든 사람이 그들의 권위 아래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3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주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믿음으로 행한 위대한 일꾼들의 목록인 것이다. 느헤미야는 공로를 받을 자에게 그들의 공로를 인정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앞세우지 아니한 섬기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3)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음 철저하게 비밀조사를 하고 있음을 본다. 무조건 일을 진행해 나간 것이 아니라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임하였다. 느헤미야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리더쉽 스타일을 다양하게 복합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3장과 5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서로 의견과 배경이 다른 종족들을 잘 다루어 성벽 재건에 협력하게 하는 장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용기있게 싸우는 지도자였다. 그는 간신들의 음모와 원수들의 공격과 백성들의 원망의 문제를 용기있게 행동과 기도로 풀어 나갔다.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대적들의 비난에 단호하게 대처하였고, 대적들이 쳐들어 오려하자 일꾼들로 하여금 무기와 연장을 함께 들게 하였다. 이처럼 그는 문제가 다가올 때 그 문제앞에서 절망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지도자였다.

(4) 동기부여를 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제임스 번스는 바람직한 새 시대의 지도자상으로 감독형의 지도자를 천거한다. 이 감독형의 지도자는 피지도자의 필요를 공급하여 그를 감동시켜 따라오게 함으로 피지도자와 지도자를 궁극적으로 함께 유익하게 지도자형이다. 그가 먼저 앞세울 관심은 자신의 필요이기보다 피지도자의 필요이어야 하고, 피지도자의 필요가 지도자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그 당시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패배의 역사로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느헤미야의 최고 최대 관심은 지도자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보금자리인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순수하고 투명한 목적일진대 하나님이 그 일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 민족과 동료의식을 가지고 함께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였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움직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했다. 이로인해 마침내 백성들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2:18)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사람들이 일을 할 때에 그들이 관심있는 곳에서 일하게 했다. 성을 쌓는데 자기 집 근처에서 하도록 했다.(3장) 이러한 조치는 사역의 동기를 부여하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달성하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잘하는 분야를 개발하도록 돕는다. 바로 느헤미야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줄 아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5)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제비를 뽑아서 일을 할당하지 않았다. 거대한 조직체를 만들지도 않았다. 복잡한 도표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의 조직은 아주 간단했다. 느헤미야 3장을 살펴보면 그는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그룹으로 조직을 했다. 제사장, 여리고의 사람들, 하스나아의 아들들, 드고아의 사람들. 이런 그룹들은 이미 서로 관련이 되어있는 자연적인 그룹이었다. 가장 강한 조직은 가장 간단한 조직이다. 조직을 할 때는 구체적으로 일을 할당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모인 군중들에게 연설을 한 후에 모두가 흥분하여 일을 하고자 했을 때, “당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하시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과업을 구체적인 일로 세분하고 특정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일을 맡겼다. 그는 큰 목적을 작은 일로 세분했다. 이것이 큰 문제를 작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리고 확실한 작업 명세서를 개발했다. 마지막으로 직책과 사람을 조화시켰다. 잘못된 사람이 일을 맡으면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주먹구구식으로 일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일하는 지도자였다. 사람들을 직종별로 나누어 모든 사람이 사역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으며(느3장), 일꾼선정에 있어서 대리 혹은 대표를 위임 선발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느7장) 특히 3장에 보면 \"그 다음은\"이라는 말이 절마다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누가 어느 관할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목록표로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는 일하기 전에 생각하며 계획하는 지도자이다. 그리고 \'기도 없이 계획\'하는 지도자 스타일이나 \'계획없이 기도\'하는 지도자 스타일 역시 바람직한 지도자상이 아니다.

(6) 자기희생을 통해 최선을 다한 지도자였다.
느헤미야는 희생정신이 투철한 지도자였다. 자신의 동포의 참담한 소식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바사 왕실의 안락한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수일 동안 기도하다가 왕에게 간청하여 황폐화 된 예루살렘 총독으로 자청하여 나섰다.(1,2장)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폐화된 곳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화려한 자리에서 지시만 한 것이 아니고 직접 나귀를 타고 밤중에 성벽재건을 위한 조사에 나서는 모습속에서 참된 지도자상을 엿볼 수 있다. 희생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그 성실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참된 지도자는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보여주는 성실성에 의해 돋보이게 되고 존경을 받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고 게으르게 누워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4:9)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그는 기도하면서 언제 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므로 방비하는 일에 최선을 기울였다. 나아가 그는 기도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치하고 있음을 본다.(4:6) 우리는 기도했기 때문에 덜 일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했기 때문에 기도의 힘으로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
지도력은 타고난 것도 아니며 유전된 것도 아니다. 리더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점은 태도에 달려 있다. 즉 우리 자신의 의지, 태도, 개혁에 따라 태어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리더쉽에는 두려운 책임감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는 리더쉽이 악용되고 오용되었을 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경고와 교훈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지도자의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자기통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결단으로, 계속되는 훈련된 삶을 통해,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로, 역경에 대한 감사를 통해, 비전에 대한 일관된 마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다스림으로 얻을 수 있다. 지도력은 신장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해도 정체되어 버린 지도력은 미래가 없다. 끈기 있게 성취해 나가는 지도력이 아니면 성장의 결과를 보장 못한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필요한 능력을 얻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듯 적극적인 훈련이 지도자에게 필요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는 분명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이다. 그가 보여준 리더쉽의 원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