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총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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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총론 세계관 철학적(과학적) 세계관 우주 / 우주는 시간, 공간, 물질 즉 에너지의 연속체(confinuum)이다. 열역학 제1, 2법칙은 우주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시작점이 있음을 증명해 준다. 인간 / 인간은 초월적 존재가 자신의 품성과 일치되는 도덕적 품성과 지성 곧 개체적 특징과 의지를 가진 영으로 창조한 존재이다. 인간의 덕성은 초월자의 품성을 원형으로 하며, 따라서 인간의 덕성은 초월자의 품성을 원형으로 하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과 지력은 물질적 뇌 이상의 실제이다. 신 / 인간과 주위의 모든 세계는 결과의 집합이며, 이 집합된 결과의 배후와 저변에는 우주의 질서와 설계와 균형이 작용한다. 이 실존 실체의 제 1원인이며 지속적 동인이 바로 신이다. 존재 /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모든 실재(實在)는 보이지 않는 양자, 중성자, 전자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작용하는 무한한 힘(E=mc2)이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종교 / 인간이 초월적 존재를 인식하고 이에 대해 외경 또는 신뢰의 정을 느끼며 희생을 바치고 기원, 예배하며, 나아가 제사 의식을 행하고 의무 관념에서 복종하는 생활을 하는 바, 이 관계를 종교라고 본다. 과학 /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특수대상과 그것에 대응한 특수 영역에 작용하는 법칙과 원리들을 발견해 가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 자연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측, 예보하고 문명을 형성한다. 국가 / 일정한 지역을 자기의 영토로 보유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원칙적인 구성원으로 포용하며, 이 구성원들에 대해 통치력을 가지고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문화를 형성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한다. 문화 / 문화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 자연을 적극적으로 형성, 개발하고 혹은 순화하는 것과 그 성과이다. 자연은 인간의 외부 뿐만 아니라 인간 가운데에도 있으므로 물질 문화와 정신 문화가 구별되며, 문화의 존재와 사용은 인간에게만 한한다. 성경적 세계관 우주 / 우주는 하나님이신 말씀이 무(無)로 부터(ex nihil)단번에 완전히 창조하신 것이다. 그 이후로 시간, 공간의 물질로 이루어진 이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 유지, 보존된다(전3:14). 인간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의존적 존재이며, 아울러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신 / 하나님은 삼위일체, 즉 세 분의 인격으로 계시며 이 분들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함으로 아들이라 일컫는 예수그리스도 인격 안에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다. 존재 /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질서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바, 보이는 것과 보이진 않는 모든 실재물은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전능에 의해 유지, 보존되고 있다. 이것이 존재이다. 종교 / 하나님의 주도적인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구체적 응답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이요 관계이며, 이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배와 제도를 함유한다. 과학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창1장)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바, 이를 발견해 내어 인류 평화와 복지를 위하는 것이 과학이요 나아가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는 것이 과학의 참된 목적이다. 국가 / 국가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존재하며(단4:17, 25), 국가의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롬13:1-4). 동시에 국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준행할 때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며,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총체적인 역사 안에 있다. 문화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피조된 자연을 가꾸고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을 부여받았다(창1:28). 인간은 이 명령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고 가꾸어 나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문화는 하나님과 관계성을 가진 인간이 이룩해야 할 사명이다. 개관 신·구약성경 기독교의 모든 진리와 교훈은 성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즉 기독교의 기준은 성경(성서)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해서, 세상에 관해서 그리고 인간과 삶에 관해서 성서는 표준과 그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서는 오늘날 교회 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성서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고 교회 없는 성서는 무가치하리만큼 교회와 성서의 연관성은 강력하다. 따라서 성서에 관해서 주요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명칭 성경 혹은 성서라는 단어는 원래 \'책들\'을 뜻하는 헬라어 biblia(비블리아)에서 유래된 말이다. 처음 이 말은 단9:2에 칠십인역(LXX) 에서는 ta biblia(타 비블리아; 책들)라는 표현으로 나오는데, 그 뜻은 예언자적 저술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온다. 집회서의 서두에 나오는 \'책들의 여분\'이라는 뜻으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구약을 가리킨다. 결국 초대교회 시대 이후 교부들에 의해 기독교 교회의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주후 5세기경 경전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2. 성서의 이해 1) 역사서인가? 성서의 많은 부분들은 역사적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모세오경만 해도 우리는 율법서라 부르지만 실제 율법보다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나온다. 따라서 성서는 역사서인가? 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볼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성서의 역사는 우리가 교회사에서 일반적으로 배운 세속적인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서는 기자가 자기 나름대로 취사 선택하여 쓴 글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악을 분별하여 칭찬하기도 하며, 나무라기도 한 경전이라는 사실이다. 둘째로 이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인류 역사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고 사람을 추적하지만, 성서는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아 그분의 행적을 추적한다. 셋째로 성서는 단순히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된 사건만이 기술되고 소개되고 있다. 때로는 연대 배열을 따르기도 하지만 무시하는 경우가 더 많다. 2) 과학적 진실성이 있는가? 성서를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비과학적 이야기들에 부딪친다. 어떻게 6일만에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가? 해가 멈출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는가? 이러한 많은 의구심들을 통해 마치 미신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책이 과학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비과학적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말이 성서가 과학에 어긋난 잘못된 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성서는 하나님이 처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절대적인 믿음에서 기록된 책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3. 성서의 형성 배경과 역사 1) 계시로 인해 형성됨 성서는 인간의 지식이나 관념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직접 받아 계시에 근거하여 기록하였다. 성서가 세상의 과학과 맞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특수한 계시성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 연구 결과만을 토대로 하여 기술한 것이라면 비과학적인 것같이 보이는 내용을 기술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 영감에 의한 계시 일반적으로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예술가의 영감을 인정한다. 그 영감을 통해 예술가의 작품을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감성은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감성은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독특한 경향성을 지니게 된다. 성서의 기자들 역시 독특한 영감, 즉 하나님의 감동에 의한 영감으로 성서를 기록한 자들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예술가들의 영감과 차이가 있으며, 철저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그렇기에 성서 내용의 과학적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진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 성서의 영감은 축자적임 딤후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있다\"고 증거한다. 이는 어느 일부분만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나머지의 많은 부분들은 영감성과 무관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들을 반박해 주는 좋은 성경 구절이다. 대표적으로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했다(출24:4)고 고백했으며 이사야는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할\"(사30:8)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 그리고 눅24:44에 선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이 축자적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임을 암시해 준다. 4. 성서의 주제 성서는 구약의 율법서, 역사서, 시문학, 예언서로 그리고 신약은 복음서, 사도행선, 서신서, 계시록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야기, 역사, 지혜, 잠언, 연대기, 전설, 시, 설교문, 찬송가, 서간문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무대 또한 방대해서 전인류가 망라되며 시간 설정도 광범위해서 과거를 비롯한 현실 세계와 미래를 포함하는 영원 세계를 바라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광범위한 책들이 한데 묶어지는 놀라운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통일성 이면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즉 성서의 각 책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그 다양성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메시지는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나타내고 있다. 성서 각 저자들은 시대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달랐지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고 조화된다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성경의 영감성과 진리성을 입증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모세의 그들과 예언자들의 언급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문학 표현들과 그들의 역사 기록 속에서 종말에 보내 올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서의 핵심이라면 신약은 이미 찾아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활동과 그 사역이 갖는 구원적 의미들을 가지고 새로운 계약 밑에 영감 되어진 인간들이 세계 속에서 확장되어 감을 보여주고 있다. 5. 성서의 구분 1) 구약 구약은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분류된다. 율법서는 모세오경을 말하며, 여기에는 인류의 원 역사와 선민 족장의 역사 그리고 선인의 형성이 소개된다. 역사서는 선민의 흥망성쇠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삶 한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며 그의 절대적인 섭리와 역사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감을 보여 준다. 시가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며 찬양이고, 기도이며 지혜이다. 예언서는 선민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하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심판과 회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메시야의 도래를 예고한다. 2) 신약 신약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와 계시록으로 구성된다. 복음서는 전지적인 성격을 띤 임재하신 그리스도의 생애, 교훈, 죽음, 부활, 승천의 기록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 종으로 다양하게 소개된다. 사도행전은 역사서로서, 초대 교회 성장과 그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 서신서는 복음의 적용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인생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를 다르고 있다. 끝으로, 계시록은 아직 성취되지 않는 유일한 \'예언의 책\'이다. 6. 성서가 주는 유의 성서는 성서 자체를 가리켜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증거한다. 또 모든 성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담후3:15-17).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처럼 사람을 죄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은 없다. 율법은 죄를 자각시키고, 시가서는 신앙적 감성을 자극하며, 역사서는 감동을 불러일으켜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복음서는 우리를 은혜로 인도하고 사도행전은 신앙의 역동성을 가르쳐 주며, 계시록은 종말에 대한 기대와 고난 극복의 용기를 준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고 선한 마음을 나타내게 한다. 흔히 학자들은 \"구약에서 신약을 읽고 신약에서 구약을 읽는다.\"는 말로 신·구약의 밀접한 연관성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가 주는 유익은 순간적인 안위감이 아닌 영원한 기쁨과 구원의 소망이다. 이 구원의 소망으로 인해 범사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된 삶을 살게 된다. 성서는 단순히 종교적 서책들의 집성이 아니며 나아가 단순히 유대교 및 기독교 문헌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성서는 많은 방식과 다양한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 전체에 있어서 한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즉 성서는 하나님께서 계속되는 시대와 섭리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계시며(엡1:8-10; 엡3:5-9; 골1:25), 마침내 그 계시가 아들의 강림 및 역사와 성령의 보내심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성서는 메시야의 통치 아래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대되어 더 위대한 미래를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개관 구약성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인간을 통해 기술된 것으로 정확 무오하다. 성경이 비록 인간에 의해 기술되었으나 그 내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경륜, 가르치심, 교훈 등을 담고 있다는 인간의 구원과 삶 등에 주요한 방향 제시를 해주고 있다. 특히 그 내용에 있어서 구약은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본래 구약이라 옛 언약이란 뜻으로 율법 언약을 함축하는데, 이는 그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구약이 율법을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하나 단순히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과 구속 사역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와 그 사역 등을 암시하며 예시하고 있다. 1. 구약의 영감 및 정경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고 했다. 여기에서 모든 성경은 구약 전체를 함축한다. 이는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술된 것임을 암시해 준다. 이런 성경의 영감성을 사도 베드로는 벧후1:20에서 언급했다. 구약성경 자체에는 영감 되어 기술되었다는 직접적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록했다는 말씀이 많이 있다(출17:14; 출24:3; 출34:27; 수18:32; 수24:26). 또한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이 하나님께로 받은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밝혀 주고 있다(사1:1; 렘1:1-3; 겔1:1-3; 호1:1; 율1:1; 암1:1). 사도들은 다윗이 기술한 시편의 영감성에 대해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행4:25)이라고 하였다. 한편 이런 구약성경이 정경, 즉 오늘날의 성경으로 귀착된 것은 성경의 저술 후 오랜 시간이 걸려서 되어진 것 같다. 정경이란 뜻은 \'자, 척도, 규범\'등을 의미한다. 이 말을 성경과 관련하여 교회 역사에서 최초로 사용한 자는 오리겐(Origen A.D. 185-254년경)으로 알려지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신약의 정경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 회의(The Cartago Council)에서 확정되었다. 그러나 구약정경은 그 이전으로 보인다. 구약의 정경은 어떻게 보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던 것 같이 보이기도 하나 현대의 비평적 학설에 의하면 율법서는 주전 432년전 느헤미야 시대에, 예언서는 주전 300-200년경에, 성문서는 주전 160-105년경에 정경으로 정해졌다. 또한 구약의 많은 부분, 즉 율법서(5권), 예언서(8권), 성문서(11권)가 학사 에스라(느8:1; 느12:26; 스7:11)에 의해 구약정경으로 완성되었으며(B.C. 5세기경), 현재의 39권으로 형성된 것은 칠십인경(B.C. 250-168)에 따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2. 구약성경의 언어 구약성경은 두 개의 문자, 즉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술되어 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모두 북방 섬어계에 속한다. 자유주의학자 벨하우젠(J.Wellhausen 1844-1918)은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왕국 초기까지는 아직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전 3000년경에 이미 고대 근동 지역에는 문자를 사용함이 그들의 주요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도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하고\"(출17:14)라고 하셨다. 구약성경 대부분의 내용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창31:47, 렘10:11, 단2:4-7:28 등은 아람어로 기술되었다. 3. 구약성경의 기록 시기 및 저자 구약성경의 내용은 시대별로 광범위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시점부터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교훈 등을 담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약 시대 및 종말의 사건 등을 예언으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기록한 시기는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기록 시점부터 말라기서가 기록된 때까지이다. 이는 대체로 주전 1450년경에서부터 주전 400년경에 이르기까지이다. 이로 볼 때 구약성경은 약 1050여 년에 이르러 모두 기술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구약성경의 저자는 역시 구약성경 처음의 책인 창세기 등 모세오경의 저자인 모세로부터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 저자인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많다. 이들은 약 31명에 이르는 수이다. 이들 구약성경의 저자는 모세와 같은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사회의 지도자로부터 시작해서 여호수아와 같은 군인 사무엘, 아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과 같은 선지자, 다윗과 같은 군인이면서 왕, 솔로몬과 같은 왕, 아모스 같은 농부 등 다양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자들이 성경을 기술한 것은 성경 내용의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한 성령께서 한 흐름 속에서 영감을 주시어 기록하게 한 것이므로 내용에 있어서 통일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들 성경 기자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뜻이나 의도에서 성경을 기술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은 후 그분의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술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기술한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분의 뜻과 계시를 나타내는 것이다. 4. 구약성경의 사본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원본이 있었다(출34:27; 렘36:1-8). 그러나 이후 이 성경의 원본은 인간의 손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성경 원본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그중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근본 죄인 된 자로서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의 사라짐을 허용하신 것으로 보인다. 1) 기독교 이전 사본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기술된 사본들을 말한다. 이 사본들은 1947년 이후 유대 땅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당시 사해 바다 서북쪽의 쿰란 와디(Wadi) 골짜기에 있는 동굴로부터 발견되었는데, 쿰란 제1동굴 사본(1Q), 제4쿨란 동굴 사본(4Q), 11쿰란 동굴 사본(4Q) 등 다양하게 묘사된다. 이외에 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 사본이 있다. 이는 애굽의 골동품 상인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출20:1-7, 신6:4-9 등을 담고 있다. 2) 기독교 이후의 사본들 이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이후에 기록된 것을 말한다. 이 사본들은 다음과 같다. 대영 박물관 오리엔탈 사본(British Museum Oriental Codex 4445): 이는 모세오경의 사본으로서 A.D. 850년 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카이텐시스 사본(Cairensis Codex): 이는 대·소선지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A. D. 895년경에 복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 이는 A. D. 916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다. 성피터스버그 사본(St. Petersberg Codex):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선지서 등을 담고 있다. 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 : 이는 히브리 오경 사본의 수정본으로 알려진다. 5. 구약성경의 신학 구약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구약성경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시간별로 광대하고 관계된 시간이 긴 역사를 담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당시의 사건을 함축하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이 역사는 우주와 자연, 인간 사회, 국가의 역사 등이 포함된다. 또한 이 성경 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시하는 명령, 교훈, 훈계, 지침, 규범 등이 있으며 우주와 역사에 대해서 예언하는 예언, 예시 등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상징적인 말씀, 비유, 지혜로운 잠언 등이 있다. 따라서 간략하게 요약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많은 지면을 요하게 될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짧게 요약하면 당시의 사건 기술 및 교훈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예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와 관련하여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라고 하셨다. 6. 구약성경의 분류 구약성경은 그 내용을 따라 여러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최초의 구약정경의 편찬자로 알려지는 에스라에 의하면 구약성경은 율법서 5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예언서 8권(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12소예언서), 성문서 11권(욥기, 시편, 잠언, 아가서,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서, 다니엘서, 에스라와 느헤미야서, 역대기) 등 24권이 세 분류로 분류되었다. 반면 오늘날 성경 순서를 제공한 칠십인역에 따르면 율법서(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이다. 구약의 39권과 신약의 27권은 성서로서 우리 인생의 표준과 척도와 규례로서 삶의 지표를 제공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죄악 그리고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구약성경은 이러한 포괄적인 내용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된다. 개관 신약성경 신약 27권은 주후 50년부터 100년여간 기록된 것이다. 저자는 8명으로 보는데, 만일 히브리서 기자를 사도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7명으로 볼 수 있다. 신약이란 \'새언약\'이란 뜻으로 이 말은 구약적 용어로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31:31)고 말씀하신 데서 연유한다. 이 새 언약이란 예 언약(구약)과 대조되는 것으로 제사와 율법을 통해 구원받는 시대는 끝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얻는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새 언약의 주체이며 매개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에 우뚝 서 있다. 1. 기록 시기와 저자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신약성경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 공회(The Cartago Council)에서 정경(正逕,Canon)으로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이 쓰여진 것은 그보다 대략 300년 앞선 주후 50 - 100년, 혹은 주후 1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이다. 본래 신약의 저자 가운데 처음부터 문서를 기록하여 남기려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보아 말씀만 빨리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주님의 재림이 늦추어지면서 한 제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죽어가면서부터였다. 즉 예수의 재림은 늦추어지고 부활의 증인이 한 사람씩 살아지자 예수의 가르침과 생애를 기록해서 남길 필요를 느낀 것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형성된 배경은, 사도들의 순교 때문이다. 사도들이 한 복음을 문서로 남길 필요성을 교회에서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의 세대에 재림하실 줄로 믿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물질과 재산도 서로 공유하고 현재의 사회 생활에는 별 관심도 없이 오직 기도와 전도에 힘썼던 것이다(행4:32). 그런데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다 보니, 성도의 사회적 가치나 교회의 사회적 위상들을 정립해 줄 진리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복음이 먼 나라에도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의 구전만 가지고서는 진리 전달에 한계를 느꼈기에 자연히 편지로 사도들의 교훈을 교회에 전달하게 되었다. 신약성서의 대부분이 그와 같은 사도들의 회람편 형식으로 된 것은 그 이유이다. 그외에 각종 이단들의 교회 침투를 예방하기 위하여, 당시 로마 안에 퍼져가는 기독교의 진실성을 변증하기 위하여 복음을 문서화하기 시작했다(눅1:1-4). 그리고 복잡한 사회 구조 안에서 교인들의 신앙적 삶에 대한 지침서가 필요했고, 궁극적으로는 복음 진리를 만민에게 전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복음 진리를 문서화했던 것이다(요20:31). 결국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하고 전하기를 원하며 지키기를 원하는 신앙 선진들의 신앙 열정에서 발로되었으며, 그 배후에는 보혜사 성령님의 전능하신 사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기록 목적 신약성경의 기록은 각 책의 저자에 딸라 약간씩 다르다. 예를 들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리스도의 탄생에서 죽음 그리고 부활 승천에 이르는 생애에 관심이 있다. 반면 사도행전의 저자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떠한 경로로 사마리아와 이방, 특히 로마에까지 전해졌는가 하는 데 관심이 있고, 계시록 저자는 말세에 있을 환난과 최후적인 승리에 높은 관심이 있다. 그리고 바울의 로마서는 믿음과 은혜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 그것을 매우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반면 야고보 서신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실한 행위에 깊은 관심이 있다. 또한 같은 복음서이면서도 요한복음은 당시 횡행했던 이단 사상에 대한 변증의 성격이 짙다. 아무튼 이와 같이 각 책들이 약간 혹은 전혀 상반된 차이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책의 기록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의 기록 목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데 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신약성경의 각 책의 저자나 기록 연대는 각기 다르지만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3. 기록된 언어 1) 셈어계 당시에 팔레스틴 지방의 통용어는 셈어계의 아람어였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많이 사용하였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외치셨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도 아람어였다. 그리고 아바(막14:36), 게바(요1:42), 마태(막2:14, 행1:13), 마라나다(계22:20) 등과 같은 단어의 근원도 아람어이다. 반면 셈어계의 히브리어는 평범한 서술문이라기 보다는 관용적인 표현을 통하여 문장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특징은 하나의 질(質)을 묘사하기 위하여 형용사를 사용하기보다는 제2명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는 \"믿음의 역사와 사람의 수고와 ..... 소망의 인내\"(살전1:3)를 들 수 있다. 2) 라틴어 라틴어는 유대 사회의 일반 상용어가 아닌 동로마 군대에 의해서 주로 사용되었다. 이 언어는 주로 랍비의 히브리어, 아람의 구어, 헬라의 여러 작품들에 영향을 미쳤다. 신악에서 라틴어의 영향은 주로 외래어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백부장(막15:39,45), 세금(마7:25; 막12:14), 군데(마26:53)등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십자가 위의 죄패에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단어가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로 쓰였다(요19:20) 3) 헬라어 신약성경의 기본 언어는 헬라어이다. 헬라어에서 파생된 많은 언어 중 성사가 기록될 당시 사용된 언어는 헬라어koine(코이네)로서 당시 소아시아 세계 및 근동에 가장 널리 사용된 언어이다. 이 헬라어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해석하는 신학적인 용어로 적합하고, 기술적으로 정교하며 정확한 언어였기에 신약이 헬라어로 기술되었다. 4. 각 책의 분류 1) 사복음서 사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일컬어 말한다. 사복음서는 예수가 구약 예언의 성취자시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소개한다. 예수는 구약의 예언에 따라 움직이시며 철저한 하나님의 종으로 구약을 성취하신다. 그분에게는 왕적인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다. 그리고 한마디 가르침 속에도 그 위엄은 서려 있고, 병자가 낫고 귀신이 쫓겨나며 세속의 권세자들이 그 위엄 앞에서 위축된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왕적 권세로서가 위축된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왕적 권세로서가 아니라 겸허하고 비참한 자로서 십자가에 죽음으로 인류를 죄에서 대속하신다. 이렇게 해서 이 책들은 전기적 혹은 역사적 성격을 많이 지니지만 단순한 전기적 위인과는 성격이 다른 구속적인 면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므로 복음서라 불린다. 2)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한 역사로 분류된다. 보기에 따라 누가복음에 이어지는 책이므로 복음서로 분류하는 다소 진보적인 견해도 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어떻게 전파되어 나갔는지를 역사적으로 잘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역사서로 분류하는 데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다. 사도행전의 1-12장까지는 베드로는 활동의 중심 인물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 후반부인 13-28장 바울의 활동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활동과 함께 많은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다고 해서 흔히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서신서 서신서는 크게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으로 분류된다. 바울서신은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을 말하며 공동서신은 그의 저자들의 서신, 즉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서신, 유다서 등을 말한다. 특히 바울서신은 편의상 세 가지로 분류된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교리서신이라 하며,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옥중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그리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는 당신 목회자였던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서신이라 하여 목회서신이라 한다. 당시 교회는 분열을 야기시킬 심각한 문제, 복음을 변질시킬 만한 중대한 문제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 때마다 필요에 따라서 사도들이 각 교회마다 서신을 띄워 그 지역을 회람케 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서신서인 것이다. 4) 묵시록 신약에 제일 마지막에 나오면서도 유일한 묵시서가 요한계시록이다. 본래 이 책은 초대교회의 극심한 박해 상황에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에는 종말의 도래 혹은 전개 과정이 집중되어 계시되어 있으며, 장차 될 일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룬 유일한 책이다. 특히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큰 위안과 용기를 주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신약성서를 간략하게나마 개관해 보았다. 예수님 자신이 아무런 문서를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27권이 정경으로 채택되기에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나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동고 동락했던 제자들이 아니면 그 직계 제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성경이 무오성을 부정할 수 없다.
제1장 모세오경 기독교에 대하여 이해하려면 교회에 나가거나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접해야 하는데, 성경을 펼칠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부분이 모세오경이다. 모세오경을 특별히 율법서(Torah)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이 책들의 중요한 내용이 율법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으며, 또한 다른 구약성경에서 율법(수8:34), 율법의 책(왕하22:8) 혹은 여호와의 율법(대상16:40)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은 성경의 서론 부분과 같은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 모세오경의 성서적 위치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구약성경의 구성이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 등으로 나열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오경은 신·구약을 통틀어 첫 번째 책이요, 구약의 첫 경전이다. 오경이 성경책에서 처음으로 배열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경은 구약 전체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구약의 남은 부분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경은 세상의 기원과 근원을 취급하고 있기에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지기도 한다. 예컨데 구약 없는 신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오경 없는 구약의 이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 모세오경의 기독교 신학적 이해 기독교의 신학은 조직 신학으로 대변되는데, 여기서 신론과 그리스도론 그리고 인론에 대한 체계와 논리를 세울 수 없다면 그 신학은 알맹이 없는 한 학문이나 학설로 그치고 만다. 그런데 기독교 신학의 토대는 창조의 진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에 대한 성서적 교리가 없다면 기독교는 동양의 다른 철학 체계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속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모세오경의 원어적 명칭 구약성경 대부분의 책들에는 이름이 없다. 그 결과 오경도 이름이 없었는데 성경학자들에 의하여 책 첫머리에 나오는 첫 단어에 따라 책명을 붙이게 되었다. 오경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서 불리게 된 것도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 명시된 오경의 명칭의 뜻을 살펴보면 창세기는 우주와 인류 그리고 하나님 백성의 기원을 가리키는 것이며,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탈출, 레위기는 레위인을 중심으로 한 제사의식, 민수기는 인구 조사이며, 신명기는 하나님 계명을 다시 한 번 백성에게 반포했다는 뜻을 각각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오경에 대한 갖가지 명칭이 나타났는데, 마태는 마5:17에 오경을 율법서라 했으며, 누가는 눅24:44에서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였고, 눅2:24에서는 주의 율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 모세오경의 특징 오경은 모든 것의 기원을 말하며 창조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우주 만물의 모든 것에 대한 것이다. 가히 오경은 만물 백과요, 인간사의 해결의 교과서격이라고 말할 만하다. 영적으로는 구속사적 계시로서 여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를 주시겠다는 약속,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축출하실 때 짐승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옷을 입혀 보내심, 아브라함의 소명과 선민의 민족을 세우심, 유월절 사건을 통한 죄 해결의 그림자를 보이심, 가나안 입국을 모델로 한 만인 구속의 모형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오경은 인간의 모든 법의 모체가 된다. 오경에는 인간사에서 벌어질 만한 대부분의 법률이 다 나와 있으며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주신 계명서이기 때문에 현대 법률의 모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경에는 선교의 기원이 있다. 아브라함의 소명은 모든 민족 구원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창12:3), 아브라함 이전에 언급되는 창조의 기사는 창조와 인간의 타락을 통해 선교의 이유와 근거와 당위성을 제시해 주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라고 지어 주셨는데(창17:5), 이는 곧 아브라함을 통하여 열국을 자녀삼겠다는 하나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모세의 소명과 선교 모세의 소명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부르심이었다(창12: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계시할 때에 자존자라고 하셨으며(출3:14), 그 이름을 이스라엘과 바로에게 알리게 하라고 명하셨다(출3:15).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세계 속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일 자체가 큰 선교의 행위인 것이다. 선교 이스라엘만이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중다한 잡족(출12:38)도 함께 동행했으며, 모세의 처(민10:19)와 갈렙(민32:12)도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가나안은 옛부터 정치적, 지리적으로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5. 모세오경의 기록 목적 ① 창세기: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세상의 시작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내려가 신정 국가를 세우기 전의 준비 단계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다. 특히 본 서에는 세계와 사람의 창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 사람의 타락과 족장들의 생활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② 출애굽기: 본 서는 창세기와 나머지 율법서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대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심으로 구원의 모형을 제시해 주셨다.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정 동안에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③ 레위기: 본 서는 성막의 봉헌으로 끝나는 출애굽기의 뒤를 이어 성막에서 드릴 제반 예배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레위기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이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거하심으로 백성들과 더욱 가까이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④ 민수기: 이스라엘 민족의 시내산에서 요단강 접경까지의 여정에 대한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민수기를 통해 광야 생활 속에서 택한 백성을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은총을 알리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⑤ 신명기: 본 서는 출애굽한 구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에게 율법을 교육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또한 앞으로 차지할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6. 모세오경의 줄거리 ① 창세기: 우주 만물의 원역사와 선민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땅의 민족들 중에서 한 가족인 이스라엘을 택하여 자신과 언약을 체결토록 하고 있다. ② 출애굽기: 하나님이 선택하여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애굽에서 구출하여 가나안 복지에 이르도록 이끄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③ 레위기: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민족을 선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며 일상 생활을 해가는 제 규칙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④ 민수기: 가나안 복지의 입국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민족을 점검, 점호하는 것과 이 민족을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을 통하여 연단하신 내용이다. ⑤ 신명기: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모세가 율법을 재강론한 후 다시 한 번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히 지킬 것을 간곡히 권고하여 다짐시키는 내용이다. 7. 모세오경 속의 그리스도 모세오경은 단순히 율법에 관련한 책이 아니다.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예표를 안고 있는 심오한 책인 것이다. 1) 여자의 후손 타락하여 완전히 뒤틀려져 버린 인간의 삶에도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와 구원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실 것이라는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일방적 선언으로 나타난다. 당시 아담과 하와가 그 말씀을 얼마나 잘 이해했을까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와 사랑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2) 유월절 어린양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의 장자를 치는 재앙에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바름으로 화를 면하였다. 이 어린 양의 희생은 정식 제의가 되어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는 기원을 이루었는데, 이는 유월절 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사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인 것이다. 3) 성육신의 예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진멸에 앞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세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여호와와 동일시되고 있다. 또한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더불어 씨름한 한 사람도 하나님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 사람은 자기를 이긴 야곱에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선사하였다. 모세오경은 인류의 기원과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이와 관련된 율법과 제사 의식 등이 기록된 역사적인 책이다. 율법서를 신화나 하나의 전설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만일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성경 전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만큼 모세오경은 성경의 첫 부분에 기록된 책으로 우리의 신앙 전체를 차지하는 귀중한 주춧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제1강 창세기 개관 1. 명칭과 저자 1) 명칭 본래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책이름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모세오경은 각각의 책 첫머리에 나오는 단어를 따서 그 책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창세기도 첫 단어인 tyvarb(베레쉬트)가 사용되었는데, 그 뜻은 시작(beginning), 기원(origin), 세대(generation)등을 의미한다. 그 후 칠십인역(LXX)에서는 본 서의 명칭을 게네시오스(genesio\")라고 불렀는데, 이는 창2:4의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영어성경의 창세기를 가리키는 \'genesis\'란 단어는 헬라어 게네시스(genesi\")를 번역한 것이며, 한글개역성경은 \'창세기\'라는 명칭으로 번역하였다. 2) 저자 창세기의 저자는 오경의 기록자인 모세이다. 구약성경 자체가 오경의 기록자가 모세임을 증명하였고(출17:14; 출24:4-8; 레4:12; 레6:11; 민5:2-4; 신31:9; 수11:15; 왕상2:3), 신약성서 역시 오경이 모세의 저작임을 증명하였다(마8:4; 막1:44; 눅5:14; 요5:47), 이렇듯 오경이 모세의 저작이 분명하다면 출애굽기에 나타난 역사가 창세기 역사의 연속이라는 점과, 출애굽기와 마찬가지로 창세기 역시 동일한 정신과 의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출애굽기의 저자 역시 창세기의 저자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애굽어 사용과 요셉의 역사 이야기에 묘사된 애굽인의 생활 양식에 대한 세밀하고 정확한 지식은 모세의 교육과 경험에 일치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창세기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서 모세보다 더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은 없다. 2. 기록 목적과 연대 1) 기록 목적 오경 가운데 제일 첫 권인 창세기는 세상의 시작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내려가 신정 국가를 형성하는 준비 단계까지에 이르는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창세기는 광범위하게 말해서 두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째 단락은 천지창조로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창 1-12장). 어느 정도 소극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특수한 민족을 이 세속에서 분리시킬 필요성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둘째 단락은 족장들의 소명과 그 소명에 대한 준비를 말하고 있다(창 13-50장).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분리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기록 연대 창세기의 정확한 기록 연대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출애굽부터 모세가 죽기까지의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출애굽부터 모세가 죽기까지의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에서 애굽의 투트모세 3세(Thutmose Ⅲ, B.C.1504-1448)는 이스라엘의 강퍅한 탄압자였다. 그 아들 아멘호텝 2세(Amenhotep Ⅱ B.C.1450-1420) 때까지 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탄압과 강제 노역이 계속 되었다. 따라서 아멘호텝 Ⅱ세 때 출애굽 사건이 이루어진 것을 볼 때 약 주전 1446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120세에 세상을 떠났다(신34:7). 그러므로 본 서의 저작 연대는 주전 1446년부터 1406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주제 창세기 전체는 복과 저주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복의 약속은 족장들에게 후손을 줄 것이며, 그 후손들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반면에 저주는 후손을 불화하게 하며 약속된 기업을 빼앗고 상속권을 박탈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나중에 예언자들과 역사가들은 이 주제를 확장시켜 미래의 사건들에까지 적용하였다.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주제들이 시작에 관한 책인 창세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복을 주다\'(to bless)라는 동사는 기본적으로 \'부요하게 하다\'(to enrich)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특히 창세기에서 사용된 복의 약속은 크게 가나안 땅에서 얻을 후손과 관계가 있다. 반면에 구약성경에서 \'저주하다\'(to curse)라는 동사는 어떤 움직임이나 다른 능력들에 활동 금지령이나 장애물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저주는 하나님이나 그에 의하여 특별한 힘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사자에게만 속한다. 특히 창세기에 나타난 저주는 복의 장소 또는 심지어 복을 받은 사람들로부터의 단절을 포함한다. 따라서 복과 저주의 대조는 인간의 신앙에 의한 순종이나 불신앙에 의한 불순종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승인이나 부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4. 창세기의 신학 창세기는 하나님이 존재하며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말씀과 행동으로 그분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기록되었다. 또한 창세기는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기보다는 단순히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스라엘을 세우신 일이다. 창세기는 신정(神政), 곧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의 확립이라는 오경의 주요 주제에 대한 서론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신정 확립의 배후에 있는 기원(Origin)들, 특히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에 거하리라는 복의 약속을 보여 준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속박으로부터 구출되어 그들에게 계약이 수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레위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규범집이다. 민수기는 군사적인 배역과 광야에서 인구 조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신명기는 계약의 갱신을 보여 준다. 이처럼 창세기는 하나님의 웅장한 계획을 전개함에 있어 우주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속성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 불순종과 불신앙은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러한 계시를 통하여 독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11:6)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연구1천지만물 창조(창1,2장) 창세기 1, 2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대 전제하에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내력을 서술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스스로 존재하신 분으로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을 선포함으로 그 막을 올린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인간이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그 존재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이고, 창조주 하나님과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1. 천지창조(창1:1-2:3) 본문은 창조주 하나님의 일주일간의 천지창조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6일간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나? 그리고 하나님은 왜 인간을 제일 마지막 날에 창조하셨는가? 또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며, 수행해야 할 의무는 무엇이 있는가? 또한 하나님은 왜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시길 원하시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왜 창조 완성 후에 안식하셨는가? 1) 천지창조와 안식 하나님의 창조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지으셨다는 의미는 아니며, 하나님에게서 유출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창조의 불질이 존재하지 않던 상황에서 존재를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마다 모든 것에 매우 깊은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하셨다(창1:4, 10, 12, 18, 21, 25, 31).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은 모든 지상 위에 인간이 편만하여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과 왕이심을 드러내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육과 번성 그리고 정복을 요구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그분의 본질적인 성품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역할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기에 안식하였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종결을 의미하며, 휴식을 취하는 거룩한 날이다. 2) 하나님의 형상회복 하나님은 자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사이에 독특한 관계를 세우셨다. 그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기에 이르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형상을 다시 회복시키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이 되도록 진실하게 추구해야만 된다. 2.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창2:4-17)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지키며 다스리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설한 에덴동산이 가지는 영적이며 신약적인 의미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선악과 금지 명령 속에 담겨져 있는 근본적인 뜻과 목적은 무엇인가? 1) 노동과 순종 본문에서 인간의 거처인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속적 계시가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이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키고 정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곧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이 주신 3중직을 동시에 수행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할 뿐 아니라 노동도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덴에서 선악과 금지 명령을 통하여 인간과의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이며, 인간의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2) 노동에 대한 성도의 자세 인간은 다스릴 뿐 아니라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다. 이 노동은 동산에서의 3중직의 사명을 수행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동산에서의 인간의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그것은 타락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은 저주가 아닌 신성한 의무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성도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노동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누구든지 일 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살후3:10-13). 3. 에덴동산의 가정제도(창2:18-25) 본문에서 하나님은 왜 각종 짐승들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는가? 또한 동물의 이름과 성격을 파악할 줄 아는 아담의 지식의 출처는 어디인가? 그리고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하와를 보고서 아담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는 고백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조력자 하와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모습을 보시고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스스로 자기의 배필이 필요함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짐승들을 그에게 이끌어 오신다. 그리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으로 짐승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동반자가 없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아담은 그에게 오는 짐승들의 특성을 파악할 줄 아는 지식이 있었다. 그 지식은 창조 당시에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그 지식은 하나님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다. 지식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음을 인식케 하고 난 후에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다. 아담이 여자를 봤을 때에 그는 여자가 자기처럼 창조된 피조물이며, 자기와 똑같은 인간임을 알고서 동일하게 의미를 부여해 준다(창2:23). 이렇게 하여 아담은 하나님에 의해서 조력자, 하와를 맞이하게 되었고 새 가정을 동산 안에서 꾸민다. 2) 기독교인의 결혼관 성경은 여자가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한다. 물론 남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임을 전제한다(창2:21). 이 말은 남편과 아내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육체라는 신비로운 친밀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혼 제도 또한 하나님께서 창설하셨는데, 하나님은 결혼의 필요성을 아시고 여자를 만드시어 그들이 부부임을 선언하셨다. 그래서 결혼은 거룩한 것이며, 인간이 인위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막10:9). 이 점에서 결혼은 노동과 안식과 더불어 창조 규정의 하나이다. 창세기 1, 2장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안식, 노동과 결혼의 규정을 통하여 어떻게 문화 명령을 수행해야만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올바로 인식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뿐 아니라 문화 명령을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향하여 수행하는 충실한 종들이 되어야 한다.
연구2 인간 범죄와 타락(창3-5장) 하나님은 천지창조의 면류관이며, 자신의 축소된 복사물인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와 교제 관계, 즉 자기의식과 자기 결정권을 가져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인간과 자녀와 백성과 친구의 관계를 갖기 위하여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낙원에 죄가 들어오게 되어 하나님께서 만든 창조의 질서는 깨지고, 아담에게도 죽음의 형벌이 내려졌다. 또한 아담의 죄와 형벌은 그의 후손들에게 유입되어 확산되기 시작했다. 1.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언약(창3장) 본문은 평화로운 동산에 사단이 뱀을 통하여 여자에게 접근하여 유혹함과 하나님의 은혜 언약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면 뱀이 여자를 유혹할 때 그 내용은 무엇이며, 인간의 타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의 타락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인간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속에 내포된 비밀은 무엇인가? 1) 타락과 은혜언약 아담은 창조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서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이 관계 속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계약 계명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단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여자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창2:17) 정면 도전함으로써 여자로 하여금 의심과 강한 욕망을 갖게 하였고,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를 품게 하여 불순종한 행동을 하게 한다. 이것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이다. 인간의 타락은 곧 창조시에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피조물임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되려는 도전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을 거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는 언약의 규정처럼 불가피한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는 원인을 제공한 뱀과 당사자들에게 모두 내려졌다. 이 저주는 계명에 이미 선포되어 있었다(창2:17). 그런데 저주의 내용에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저주가 저주로 끝나지 아니하고 메시야 약속이 주어져 그들에게 다른 삶의 길과 구원을 약속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메시야 약속은 그분의 은혜 언약이며 인간에게 베푸신 자비 행위이다. 영원 전에 구속을 계획하셨기에 타락 후에도 약속은 주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러한 징계는 사단에게 기울어진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며 메시야 약속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 삶과 구원을 허락한다. 2) 사단의 간교한 전술전략 사단은 지위 고하, 신앙의 깊고 넓음에 상관없이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사람의 성격과 인품 그리고 영적인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전술을 펴고 있다. 그러므로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그의 전술을 파악하고 진리와 성경으로 무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아벨을 죽인 가인(창4장) 본문은 아담의 타락의 결과가 어떻게 현실화되는가를 보여 준다. 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계시는 무엇이며, 그 계시가 어떻게 진행되어 나가는가? 그리고 가인의 살인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또한 가인의 살인과 함께 가인의 족보를 소개함으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1) 살인과 악의 상징(뿌리) 창세기 4장은 아담의 타락과 함께 가인의 살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가인의 살인을 기록한 주된 이유는 ① 살인을 통하여 죄악(타락의 결과)의 무서움을 나타내 주며, ② 타락과 함께 하나님께 대하여 무관심해져 버린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창4:6,7), ③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상실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기(히11:4; 요일3:12)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은혜 언약(창3:15)을 통해서 계시하신 메시야의 약속을 아벨이 아닌 셋을 통하여 전개해 나가신다. 셋은 후손을 통해서 자신의 구속의 계시를 전개해 나가시기 위해서 셋을 보내신 것이다. 그러나 가인의 족보는 그 의미가 다르다. 본 서의 저자는 가인의 살인과 함께 그의 족보를 소개함으로써 이 세상에 사단의 뜻을 좇는 후손들이 어떻게 번성해가는가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2) 진행중인 하나님의 구속역사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사단의 방해가 아무리 심해도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사회에 악이 관영하고 개인의 마음이 완악할지도 하나님은 자신의 구속의 무대를 계속 진행하신다. 사단이 아벨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셋을 보내 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셋의 후손들(창5장) 본문은 \"아담 자손의 계보는 이러하니라\"(창5:1)고 지적하면서 그의 후손들을 소개하며, 아담의 공식적인 계보를 잇는 자는 가인이 아니라 셋임을 밝힌다. 저자가 셋을 자기의 형상을 아들(창5:3)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셋의 계보를 소개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노아의 탄생을 소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1) 구속사와 말씀성취 아담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먼저 가인에 대한 언급을 하고 곧바로 셋과 그의 후손을 기록하고 있다. 셋의 계보는 가인의 계보와는 대조적이며, 노아를 겨냥해서 쓰여진 계보이다. 따라서 셋의 계보를 소개하는 저자의 분명한 의도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과정을 소개하여 메시야의 역사를 드러내려는 것이자. 즉 원시 복음 혹은 은혜 언약의 역사를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계보를 소개하면서 \'죽었더라\'고 강조하는 역사적 의미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말씀의 성취를 뜻한다. 그리고 노아의 탄생을 소개하는 목적은 구속의 역사의 진행 과정이 그에게 이어졌으며, 앞으로 있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려는 데 있다. 2) 성도의 산소망이신 그리스도 인간의 타락은 산소망되시는 메시야를 불러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야를 약속하시고 셋의 후손을 통하여 이 땅에 보내셨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산소망이었던 메시야는 오늘날 성도에게도 산소망이시다. 소망되시는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인간 본인에게 있다. 타락은 인간의 죽음의 시작이며 죄악의 관영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도 타락한 인간에게 내려졌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이 사랑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이 사랑 때문에 성도들을 멸망당하지 아니하고 소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연구3 홍수 심판 구원(창6-9장) 본문은 5장에 이어 인류의 타락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류의 타락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심판을 그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신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셋의 후손 노아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그와 그 가족을 살리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들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제단을 쌓은 노아의 가족들에게 축복하시며 언약을 체결하신다. 1. 인간의 악행과 노아(창6:1-22) 본문은 셋 계열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시고서 한탄하시는 하나님과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노아를 소개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한탄하심(창6:6)의 근본적인 동기와 의미는 무엇인가?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노아의 생활 보습은 어떠했나? 그리고 당시에 많은 사람들 중에서 노아에게 은총을 주시고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선택받은 노아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행할 역할은 무엇인가? 1) 선택됨과 방주 셋 계열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번성한 것처럼 사단의 계열인 가인의 후손들도 급성장하였다(창6:1,2). 따라서 인간의 악행은 땅에 가득했고, 급기야는 하나님의 자녀들까지 타락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인간을 홍수로 심판하시려고 계획하시고 한탄하셨다. 또한 그의 변덕스러움이나 전지 전능함을 제한 또는 부정하는 말을 묘사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이 표현은 신인동형 동성설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셋의 10대 후손인 노아를 선택하여 그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그가 하나님께 은총을 받는 이유는 그의 구별된 삶 때문이었다(창6:9). 셋을 통하여 이루어 오셨던 구속 역사를 노아에게 전승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이 특별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2) 심판과 구원의 전령자 하나님께 은총을 받아 선택된 노아는 심판과 구원의 뜻에 대한 전령자의 사명을 다하였다. 우리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전령자이다. 미래에 있을 심판과 구원의 전령자로서 성도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특권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받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 2. 대홍수와 노아(창7:1-8:19) 본문은 홍수로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했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선택받은 노아의 가족이 살아남는 역사적 사실을 소개한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방주는 어떤 의미를 주며, 심판 후에 물을 감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방주를 만들고 홍수가 마칠 때까지의 상황이 정확하게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 1)구원받은 노아 가족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과 생물들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방주를 준비케 하셨는데, 따라서 방주는 노아 가족을 보호해 주는 구원의 장소요, 피난처가 되었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하나님의 한탄하심과 근심의 반영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창1:28)과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겠다(창6:18,19)는 구원의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심판도 저주만이 아니라 축복이 된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사 비를 그치게 하시고 지상의 물을 감하게 하신 행동 속에서도 드러난다. 성경이 심판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성과 신빙성을 보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곧 성경의 홍수 심판이 고대 근동의 창조 설화 및 홍수 설화에 근거하여 편집된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2)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사의 모든 죄악들을 간과하시지는 아나한다. 아담의 후손들의 죄악의 관영함을 보시고 심판하신 것처럼 우리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준비되어 있다. 이 심판은 주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이 준비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은 환난날에 피할 처소가 되시는 하나님뿐이다. 피난처되시는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선포하신다. 3. 홍수 후의 노아 가족(창8:20-9:29) 홍수 후에 노아 가족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은 홍수 심판의 결과를 보시고, 예배를 받으신 후에 그 가족들에게 축복을 하시며, 언약(창8:20)을 맺으신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 가족들의 제사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번제를 흠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축복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생명의 피에 대해서 왜 강조하고 계시는가? 1) 생명 보존의 언약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저주만이 아닌 또 다른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이다.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노아의 가족은 새롭게 된 세상의 대표자로서 구원의 감사와 새 세상을 주심에 대한 감사 그리고 자기들의 앞으로의 삶을 보호해 주시기를 원하는 제사를 드린다. 이들의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창조시에 선포했던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또다시 약속하신다(창9:1,7). 또한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축복 선포에서 생명의 피를 언급하신다. 모든 생물들은 허락하셨으나 \'피\' 만은 용납하지 아니하셨다. 이유는 사람이 짐승처럼 사나워지고 날고기를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종국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보혈 대속을 예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신약의 모든 성도들이 얻을 영생의 모형이 된다. 2) 구원의 감사로서의 예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많은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드려지는 예배에는 초점이 없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드린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감사로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노아의 방주 속에 있던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멸망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그들에게 구원의 서광을 주었다. 이 구원의 서광은 미래에 있게 될 심판에서 소망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자신, 혹은 교회라는 방주 속에 있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언약 백성으로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연구4 바벨탑 사건(창10,11장)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후손들이 홍수 이후에 어떻게 번성하여 땅의 열국 백성으로 나뉘게 되었는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다음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사람이 어떻게 각각의 방언과 인종에 따라 땅 위에 퍼지게 되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향방 없이 흩어지는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셈족에 그 초점을 맞추고 결국은 아브라함의 출현을 보게 된다. 1. 번성한 노아의 후손들(창10:1-32) 본문은 홍수 후에 노아의 세 아들, 곧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를 저자의 의도적인 방법에 따라 소개한다. 그러면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를 소개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또한 본문의 족보의 형식이 본 서의 다른 족보에 비해서 어떤 독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1) 편만해진 족속들 하나님은 홍수 심판에서 노아의 가족만을 구원하셨고, 그들에게 새로운 땅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케 하는 복을 내리셨다. 노아의 세 아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하심에 의해서 멸절되었던 이 땅위에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온 땅 위에 편만해진 인류의 모습을 드러내고 또한 심판 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노아의 세 자녀들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본문의 족보는 창세기의 다른 족보와 그 형식이 유사하다. 특히 본문의 족보는 저자가 선택적으로 후손을 택하여 일정한 숫자를 만들었으며, 족보의 구조 또한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족보는 족속과 방언 그리고 지방과 나라를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창5:20,31). 따라서 본문의 족보는 저자의 뚜렷한 목적과 방법으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번성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하여 노아와 그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 친백성으로 남게 되었다. 첫 언약의 목표가 하나님의 백성 됨이었듯이 노아의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 됨을 회복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인 노아의 아들들은 언약 안에서 번성해야 했다. 그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2. 바벨탑과 언어혼란(창11:1-9)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해 감에 따라 생활 양식과 문화 그리고 문명이 발달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탑을 건축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바벨탑을 건축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는 무엇이며, 바벨탑의 건축 행위를 중단시킨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바벨탑 건축을 막기 위해 언어를 혼란케 한 하나님의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께 역행하는 행위 바벨탑은 창조자요 통치자요 만물의 보존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항정신의 상징이다. \'우리가 하자\'는 표현의 반복과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의도 그리고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목표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동기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치밀한 계획뿐 아니라 하늘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찬탈 계획을 극적으로 부가시키는 것이다. 곧 이러한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인간은 그 명령에 역행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바벨탑 건축을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케 한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케 하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들의 행위를 방관한 경우에 탑 건축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온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거역하여 흩어짐을 면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흩어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 인간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주권에 의해서 창조 섭리를 이루신 것이다. 2) 교만과 거역 그리고 불순종의 행위 인간은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으로서 자기 이름을 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내며 살아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하여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한다. 이것은 분명히 사단의 속성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마땅하다. 교만하고 거역하며 불순종하는 행위는 심판을 초래한다. 3. 셈의 후손들(창11:10-30) 본문은 인간의 타락과 반역적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사실을 마치고서(창3:1-11:9) 셈의 족보를 소개한다. 그러면 셈과 데라의 족보를 소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족보의 구속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셈의 족보에서 벨렉의 위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1) 구별된 백성들 본문의 셈의 족보는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 자손의 족보와 매우 유사하다. 저자가 셈의 족보를 소개하는 목적은 분명히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이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또한 이 족보는 모든 아들들을 다 적고 있지 않고 오직 각 대의 상속자만을 적고 있다. 이는 고대 근동 세계에서 누가 합법적인 왕위 계승권자인가, 혹은 전통성 있는 상속자인가를 밝히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또한 이 족보에는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세상이 나누이게 된 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벨렉이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이 족보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노아에게서 아브라함에게 전승되어 감을 시사해 주며, 셈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특별히 구별된 백성들임을 소개한다. 2) 구별된 생활 우리는 택함 받은 성도를 가리켜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거룩\' 이란 구별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 셈 계열에 속한 후손들을 통하여 자기의 백성들로 구별하셨다. 오늘날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구별된 사람들은 교회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만 한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 자신의 파멸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심판과 멸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를 반드시 문책하시고 그에 따르는 법을 내리신다. 반면에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노력 또한 끈질기다.
연구5 아브라함의 역사(창12-24장)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시고 민족의 조상, 혹은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셔서 그 후손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살도록 인도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그를 민족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는 내용이다. 1. 아브라함의 소명과 여행(창12-14장) 본문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아브람이 그의 부르심을 따라 고향을 떠났으며, 또한 그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요 내용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선택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이며, 그가 롯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인가?(창13:1-7). 그리고 멜기세덱의 등장과 축복이 내포하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1) 복의 근원 아브람은 노아의 10대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전승받는다. 하나님은 노아를 선택했듯이 아브람을 선택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선택하시면서 7가지의 약속 혹은 복을 주신다(창12:1-3). 이로 인하여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되었고, 또한 아브람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 약속을 받고 가나안 땅에 내려갔으나 그 땅의 흉년 때문에 애굽에 내려가게 된다. 그 후 그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올라온다. 그는 애굽에서 물직의 축복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이 이러한 깨달음 때문에 조카 록과 덱은 살렘 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이 등장은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는 혈통에 따른 합법적인 제사장이 아니요 레위족 제사장 제도가 정해지기 전의 제사장이다. 그래서 그는 신약의 저자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방불한 인물로 소개되었다(히7:3). 2)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경험한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셨다. 그는 자기 스스로 물질의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고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그 노력은 허사였다. 물질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물질의 복을 받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물질의 복은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창15-20장)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후사에 대한 약속(창15:1-11; 창17:15-19; 창18:9-15)이 세 번씩 강조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후사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또한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 수표는 언약 체결인데 언약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 내용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1) 언약과 미래 약속 후사에 대한 약속을 세 번씩 강조한 이유는 의심하고 불안해 하는 아브람 부부를 견고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문자적으로 후사는 이삭이며,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언약 체결의 근거는 창12:1-3이며, 그 내용은 백성의 복으로서 미래의 축복이다. 곧 하나님의 복은 영원한 것이며, 후손 대대로 미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표시로서 할례를 행하게 하시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여 주셨다. 2) 성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 구약의 족장들의 하나님은 약소그이 하나님이시다. 그 약속은 땅을 그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영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성도는 미래에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의 영원한 기업이 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이며, 후사임을 기억하며 그분 앞에서 신실한 믿음을 지켜나가도록 힘쓰자. 3. 시험받는 아브라함(창21-24장)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사실과 이삭을 번제로 받치라는 시험이 소개된다. 그렇다면 이삭 출생의 문자적이고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라와 하갈의 충돌이 내포하는 신약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목적과 그 결과는 무엇이며 순종의 복은 무엇인가? 1)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 하나님의 후사 약속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때에 이삭이 출생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아브라함에서 이삭에게 전승됨과, 약속된 그리스도가 반드시 초자연적으로 탄생할 것을 나타내 준다. 이삭의 출생은 그의 가정에 기쁨을 가져와 주었지만, 하갈과 이스라엘의 추방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시험을 보이게 하신다. 시험의 목적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임을 확인하고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도를 확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그의 행위 속에서 그와 맺었던 언약을 재확인하고 다시 한 번 이삭을 통한 구속의 역사와 번성함, 이방인의 구원을 선포하셨다(창22:15-18). 그리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범사가 형통케 하셨으며(창24:13), 복의 근원으로 세워 주셨다. 2) 참신앙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순종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마땅히 드려야 할 제사이다. 아브라함은 볼 수 없는 후사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롭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을 통하여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았다(요8:56). 그리고 기꺼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정도로 절대적인 순종의 삶을 살았다. 이것이 참신앙의 본질이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고 살아온 족장이다. 그는 실수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알았고, 약속의 참뜻을 깨닫는 복도 누렸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이 되었고, 율법 해석의 열쇠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처럼 될 수는 없을지라도 믿음의 질을 높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6 이삭의 역사(창25-26장)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었고 그의 아들 이삭은 장성하여 그 나이 40세가 되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삭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셔서 그를 지키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창25장)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노년기와 죽음, 이스마엘의 후예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렇다면 본 저자가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스마엘의 후예를 소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25:23)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 또한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선택받은 야곱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씨 또는 여자의 후손을 보존하심의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아브라함은 생전에 이삭을 하갈과 그두라의 아들들과는 구별되게 만들어 놓았다(창25:6).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를 함께 장사한 것은 분명하나 이스마엘의 계보는 이삭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 사건 뒤에 이스마엘의 계보를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앞으로 동생 야곱이 에서를 따돌리고 장자권과 축복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야곱이 특별히 선택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 그를 계약 계승자로 점지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였다. 2) 소중한 성도의 직분과 권리 에서는 이삭의 장자로 태어났으나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으로 그 특권을 야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러한 에서의 어리석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난 망령된 행위라고 경계한다(히12:16).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직분과 권리를 주셨다. 따라서 이 소중한 직분과 권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2. 아브라함의 상속자, 이삭(창26:1-5) 하나님께서는 흉년이 들어 애굽에 내려가려고 하는 이삭에게 나타나 일방적으로 막으시며 순종할 때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왜 이삭이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지시한 땅에서 살기를 원하시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이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이삭이 복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아브라함이 지킨 \'명령과 계명 그리고 율례와 법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1)아브라함의 복을 상속함 이삭이 아브라함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려 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막으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곧 이삭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계승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삭을 통하여 그의 후손들이 축복을 받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삭이 받게 될 축복은 이삭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창26:5). 아브라함은 그가 사는 날 동안 그분의 명령과 계명 그리고 율례와 법도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다. 여기서 명령, 율례, 법도, 계명 등과 같은 법적 용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직 율법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식 요건을 갖춘 법이라기보다는 그 때 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일컫는 것이다. 2)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음 이삭은 이제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야만 했다. 오랫동안 그는 아버지의 보호 아래서 살았지만 이제 그는 약속의 후사로 가나안 땅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철저한 순종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철저한 순종을 해야 한다. 순종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약속의 복을 받게 되며,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성도가 축복을 받음은 그의 순종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3. 이삭이 누린 복(창26:6-35) 이삭은 그랄 땅에 거하면서 농사를 지어 백 배나 수확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심으로 창대하고 왕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삭이 그랄에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巨富)가 된 이유와 축복받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삭이 거부가 됨에 따라 발생한 블레셋의 태도는 무엇이며, 그 결과로 이삭이 확신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1)하나님의 축복하심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자기 생각에 따라 아비멜렉을 속인다. 그리고 그는 그랄에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지어서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엄청난 거부가 된다. 이삭이 받은 축복은 수확물이 백 배나 되는 당시에는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실제로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창26:2-5).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하심은 그랄 땅의 불레셋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갖게 했고, 그 결과 그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모두 막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삭의 목자들과 그랄 목자들간의 다툼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판다. 그 결과 이삭은 그들의 다툼이 그쳤다하여 르호봇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나…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 (창26:22)는 확신을 갖게 된다. 2) 하나님에게서 오는 축복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의 애굽행을 막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축복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다는 점을 상기시키셨다. 행복을 얻고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봐도 헛것이 되고 만다. 우리 인간사의 모든 축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옴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삭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 축복은 아브라함의 순종의 결과였다. 아내가 자식 그리고 재물은 이삭이 하나님께 받은 복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이은 언약의 계승자, 즉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약속의 씨, 후사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하나님께 바쳐진 점들은 이삭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모형이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7 야곱의 역사(창27-36)
야곱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야곱이 이삭을 이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계승자로서 아브라함에게 속한 복을 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고, 열두 아들을 주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1.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창27,28장) 본문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이삭이 그 복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이삭의 축복이 에서 대신 야곱에게 주어진 근본 동기는 무엇인가? 또한 이삭의 축복 속에 담긴 내용과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는 야곱에게 벧엘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창28:15)라고 말씀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야곱을 인정하신 하나님 야곱을 축복하는 이삭은 자기 아들에게 속아서 복을 빌었으나 그의 행위는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야곱은 리브가의 태속에서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인물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곱이 에서의 장자 명분을 산것도 동기가 된다. 또한 에서가 족속 중에서 아내를 취함으로 언약의 상속권을 포기한 것도 해당된다(창26:34,35). 물론 아버지를 속인 리브가와 야곱의 죄는 간과 될 수 없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재확인하시며, 이삭에게 그 축복을 이양한다. 이것은 곧 야곱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속임수로 축복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그가 언약의 상속자, 혹은 구속 역사의 전승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창27:27-29).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정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임재하심을 통해서 주시는 약속에서도 확인된다(창28:10-15). 이 약속은 언약 전승자에게만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시는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인정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영원히 함께하시겠다는 약속도 주신다. 2)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 성도는 그리스도 속죄의 피로 깨끗하진 거룩한 백성이다. 거룩한 백성이 된 성도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새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으나 막내였던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사용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성도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이다. 하지만 야곱과 다윗처럼 특별하신 인정받음이 있을 때에 그의 삶이 더욱 영광스러울 것이다. 2. 밧단아람에서의 야곱(창29-31장) 본문은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연단받는 내용이다. 성경이 야곱의 결혼과 자녀 생산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재물을 풍부하게 소유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창31:3) 혹은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창31:13)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번영의 복을 받는 야곱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20년 동안 하나님의 연단을 받는다. 그리고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했던 하나님은 그에게 자녀들을 축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20년 동안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주심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약속을 성취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어 창28:14의 약속이 가시적으로 성취되는 복을 받는다. 그리고 야곱은 자손과 재물의 풍부함의 복을 밧단아람에서 받게 되자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한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야곱이 밧단아람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음을 아시고 때가 차매 야곱에게 벧엘에서의 만남을 상기시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땅에 대한 약속(창28:13)을 성취하시려는 의도가 있다. 2)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 아브라함과 이삭을 부르시고 언약의 상속자로 세우시면서 주셨던 약속들을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성취하셨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약속을 성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으며, 하나님은 더딜지라도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입증해 준다. 3. 벧엘에 올라간 야곱(창32-36장) 본문은 야곱이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중에 일어난 사건을 소개한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내용이 담고 있는 뜻과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세겜에서 벧엘에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이유와, 벧엘에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무엇인가? 1) 축복의 장소, 벧엘 야곱은 고향을 향해 출발하지만 에서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한다. 그리고 얍복 나루에서 찬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한다. 야곱은 그 씨름에서 하나님께 축복과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받는다. 또한 그는 세겜에서 디나의 강간 사건 후 하나님의 명령(창35:13)을 듣고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벧엘로 올라간다. 이유는 야곱의 서원(창28:16-22)과 벨엘이 약속을 확증하는 장소이며 언약의 계승자가 머물 곳이 벧엘이기 때문이었다. 야곱이 최초의 약속 장소에 돌아온 것은 그의 신앙 여정의 종결 단계임을 표시한다. 하나님은 벧엘에 올라온 야곱에게 아브라함의 언약 축복과 동일한 복을 주시며(창35:9-15),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여 줌으로써 그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은 언약의 계승자임을 재확인시켜 주셨다(창35:10-13). 2) 문제의 해결사이신 하나님 야곱은 타향살이 20년 동안 형 에서와의 문제, 곧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서와 화해했으나 믿지 못하고 세겜으로 도망가는 어리석음을 행한다. 그래도 하나님은 야곱에게 신실하셔서 의롭게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유일한 해결사이다. 야곱의 생애는 언약의 계승자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인 벧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재확인한 거룩한 장소였다. 벧엘에서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벧엘은 야곱에게 축복의 장소요, 하나님과의 교제의 장소였다.
연구8 요셉의 역사(창37-50장)
요셉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지도 않았고, 직접 대화를 한 적도 없다. 하나님은 요셉의 생애에 공개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지 않고 다만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분으로만 묘사된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의식하고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1. 꿈꾸는 요셉(창37,38장) 저자는 창37:2에서 야곱의 약전을 소개하면서 왜 요셉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가? 그리고 요셉의 두 가지 꿈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신 것은 무엇인가? 또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유다의 수치스런 가정사를 기록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1) 형들의 시기와 음해 저자가 요셉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야곱이 어떻게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으며, 그가 죽어 어떻게 다시 가나안 땅의 그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종살이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에게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주셨는데, 그 꿈은 요셉이 미래의 이스라엘 구원을 위하여 선택된 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요셉을 시기하던 그의 형들은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고 요셉을 죽이려고 한다(창37:20). 요셉의 형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계시에 역행하는 행동이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그런데 창세기는 요셉이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유다의 가정사를 소개한다.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야곱을 이은 언약의 계승자가 요셉이 아닌 유다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 열방이 나오리라는 언약을 세우셨는데(창17:6; 창35:11), 이 언약이 유다의 아들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미래 구원과 말씀 성취(창15:13)를 위하여 요셉을 선택하고 그에게 그 될 일을 꿈으로 보여 주셨다. 그러자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악한 행동을 선하게 바꾸어 자신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셨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2. 애굽에서의 요셉(창39-41장) 애굽에 내려간 선택된 구원자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무엇인가? 또한 요셉이 애굽에 내려감은 무엇을 의미하며, 바로의 꿈과 요셉의 높여짐은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요셉의 새 이름 \'시브낫바네아\' 의 뜻은 무엇인가? 1) 애굽의 총리대신이 됨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영원히 함께 하신 것처럼 요셉과 함께 하셔서 범사를 형통케 하셨다(창39:2-5, 21-23). 저자는 요셉의 모든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에 내려갔다는 것은 애굽으로 이스라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꿈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요셉을 통해 해석케 한다. 바로 왕의 꿈은 요셉을 가장 높이 존귀하게 하는 결과였고, 요셉의 높여짐은 요셉의 어렸을 때의 꿈이 성취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요셉의 높여짐은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데, 그의 높여짐은 애굽식의 이름이 뜻하는 \'세상의 구원자이며 생명의 보존자\'라는 의미에서도 나타난다. 2) 하나님은 구원의 준비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먼저 보내시고, 구원을 준비케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셨으며, 그를 애굽의 처리자로 세워 존귀케 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선택한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꾼을 세우시고 구원을 예비하신다. 3.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창42-50장)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 그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오게 된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요셉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유다의 예언 중에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창49:10)는 무엇을 의미하며 홀, 실로는 누구를 지향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소명 대행자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요셉은 도덕적 성실성의 모범이며 신적 섭리의 통로이다. 그는 가뭄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과, 언약 체결시에 언급하셨던 이스라엘의 이방 노예 생활에 대한 약속을 성취하셨다. 그리고는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 메시야 약속, 혹은 여자의 후손, 또는 아브라함의 참씨, 후사가 끊이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신다. 유다의 후손을 통한 치리자의 권위와 주권이 실로 혹은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끊어지지 아니한다. 신약에서는 실로가 그리스도이며, 그가 다윗 족속가운데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밝히고 있다(눅1:32). 2) 예수는 평강을 가져오시는 분 유다의 후손을 통한 메시야 약속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실로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평강을 이 땅에 가져오신 왕이시다. 그래서 원수들을 정복하고 성도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요셉의 생애에서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시고, 그의 뜻대로 역사를 이끌고 가신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서 영광스럽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실행하시는 과정 속 도구로 사용되기 위한 한 역할임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만하지 아니했고, 형들을 용서하는 모범을 보였다. 제2강 출애굽기 개관 1. 저자 출애굽기의 저자 역시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이다.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모세오경의 모든 말씀을 골고루 인용하시면서 오경이 모세의 글임을 증거하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생생한 환경과 기적을 목격하고 그것을 가장 명확하고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자는 애굽의 모든 학술과 지혜에 능통했던 그 당시의 사람, 모세만이 가능했다. 또한 출애굽 자체도 모세가 출애굽기의 저자임을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출34:28). 2. 출애굽기의 기원과 성격 출애굽기라는 명칭은 구약성서의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LXX)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맛소라 텍스트(MT)는 \"그리고 이름은 이러하니라\"는 말로 책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칠십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역 등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길을 떠나다\' (ex + odos)라는 의미를 담아 \'Exodus\'라 부르고 있다. 한글 개역은 \'출애굽기\'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출애굽기는 애굽 탈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성막 건축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할 당시의 애굽의 역사를 족장들의 행적과 관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출애굽기는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조명한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기는 모세의 이야기와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인 유월절 신앙과 시내산에서의 전통 그리고 성막에 관한 전승을 이어 주는 기록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원 개념과 역사 이해를 살펴볼 수 있는 정경이다(Canon). 3. 출애굽기의 특징 출애굽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이 거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인류의 대속주를 뜻하는 유월절 어린 양과(고전5:7), 생명의 떡을 상징하는 만나의 사건(요6:48), 생수를 의미하는 반석의 물(고전10:4)과, 인류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사장 제도(출28, 29장)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형에 대한연구는 출애굽기연구의 핵을 이루며 신약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둘째는 출애굽기가 보여 주는 구조의 다양성이 서로 일치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출애굽기에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이한 사건들이 한데 어우러져 매우 복잡한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전체 내용에서 이스라엘이 진을 친 장소를 지리상으로 구분해 볼 때, 애굽에서의 이스라엘(1-12장), 시내산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13-18장),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19-40장)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다양성은 모두 이스라엘의 구속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어 있음이 출애굽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4. 출애굽기가 쓰여진 역사적 정황 1)박해시기 이 시기에 있어서 문제는 히브리인들의 주류 혹은 그 구성원에 대한 문제이다. 보수측 계열에서는 성서 그대로 백만 이상의 군중들이 움직였다고 보는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그 시기에 애굽에는 아피루(\'apiru)라고 불리우는 애굽의 노동 계급이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피루(hapiru)라는 천민 계급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yrb[(히브리)로 불렸다. 이러한 관점에서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은 단일 민족이라기보다는 하나님 신앙을 위주로 해서 뭉쳐진 지파 공동체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구약성서는 지파를 강조하고 지파간의 분쟁이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재구성해 보면, 히브리인들의 주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 (출1:8), 즉 투트모스 1세와 라메세스 2세의 시기에 건축 현장에서 일을 했으며, 하나님 신앙에 의해 뭉쳐진 그들은 이 노예 상태에서 탈출하였고, 북쪽으로 이주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갔으며, 거기서 다른 아람 족속들과 연대하여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시내산 계약을 그 연대의 계약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 신앙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파악하였다. 바로 출애굽기는 모세와 그 일행에게 주전 8,9C 혹은 6C의 종교, 제례, 역사, 도덕의 개념을 사용하여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역사와 신앙을 해석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단순히 주전 13-15C의 상황뿐만 아니라 이것이 편집되던 시기의 상황도 많이 개입된 것을 알 수 있다. 2)출애굽 시기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명을 찾아 주고 실제적으로 해방된 인격자로 하나님 앞에 서며, 인간의 관계성이 회복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개방에로의 추구는 그들이 홍해를 건너는 사건에서 역사적 애매성이 드러나는데, 이는 갈대 바다(#ws !y; 얌 숩)를 붉은 바다, 즉 홍해(Red sea)로 오역한 데서 기원한다. 왜냐하면 홍해에는 갈대가 전혀 없으며, 애굽의 통칭상 고센 지방의 갈대 바다(호수 지역)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출애굽의 경로가 다양하게 알려진 것은 후대의 편집에서 각기 다른 전통들의 하나님 신앙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연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그중에서 15C(B.C. 1445-1440)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3) 시내산 여행 출애굽에 나오는 산은 시내산 혹은 호렙산이라고 불리는데, 이 산의 위치는 분명치 않다. 전통적으로는 시내산 남단에 가까운 에벨-무사(Jebel-musa)이다. 그러나 화산의 분출과 같은 사건을 생각한다면(출19:16-19), 아카바 만의 동쪽 서북 아라비아(미디안)의 어는 지점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하나님의 신명의 기원에 관한 것인데, 이것이 모세 혹은 이드로에 의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출15:2에 \'내 아버지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제사장으로 알려진 모세의 장인 이드로(출3:1)가 지혜로 모세를 돕고(출18:13-27), 하나님께 제사와 성찬을 인도하는 것(출18:10-12)을 통해 이드로가 속한 켄족이 이스라엘 민족과 깊은 연관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광야 유랑 시기 광야에서 방황할 시기의 자료는 위치가 애매하고 또 하나는 여러 무리로 흩어진 방랑의 자료가 하나의 전승으로 합쳐졌을 가능성이 있어서 전승 자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팔레스틴 지방을 지나 북쪽으로 진군하지 않고 강력한 블레셋, 아말렉 족속을 피해 농경 사회인 에돔과 모압 족속의 땅으로 우회하여 북진한 것은 13C의 상황과 잘 부합하는데, 이는 지역 요새들을 피해 북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1 애굽 노예생활 모세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고통과 압제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신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모든 애굽의 학문과 풍습을 익히며 성장하였고, 그후 미디안 광장에서 40년간 유랑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훈련시키고 연단 시키셨음을 알 수 있다. 본 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 모세를 부르시고 선택한 사건들을 열거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바로와 일차 접견을 하게 된다. 1. 창세기와의 연결점(출1장) 출애굽기 전체 성격을 파악하려면 서론인 1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박해받는 것과 창세기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가? 1) 70인의 번성 창세기와 깊은 연관성을 출1:1-7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출애굽기 1장의 내용은 1-7절과 8-22절로 나눌 수 있는데, 1-7절은 야곱의 혈족으로서 애굽에 내려간 이는 모두 70인이었다. 이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출12:40) 생육이 중다(衆多), 번식, 창성. 심히 강대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출1:7). 이것이 출애굽 사건의 동기를 제공했으며, 애굽이 학대를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출애굽기 1장은 창세기와 연결되며, 출애굽의 배경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 이스라엘 애굽으로 보내셨다. 2)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70인이 심히 강대해진 것의 의미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이다. 그리고 야곱에게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이 밝히신 약속, 즉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창46:3)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약속으로 출애굽을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꼭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깨닫게 해준다. 2. 모세를 선택하심(출2-4장) 강대해진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인도하여 출애굽시킬 것인가가 난점이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선택하여 그 큰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끄신다. 그렇다면 모세의 성장 배경은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 1) 모세의 생애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수난과 어려움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의 딸의 양자로 궁중에서 40년간 모든 애굽의 학문과 풍습을 익히며 성장하였다. 그리고 출애굽이라는 민족적 대과업을 앞두고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유랑 생활을 통한 연단의 기간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민족의 지도자로 준비시킨 것이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할 사명을 부여한다(출3:10). 그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출3:11)라는 겸손과 함께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4:10)라고 변명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 형 아론을 통해 돕게 하고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을 하신다. 2)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지도자 교육 40년간의 목동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체적 교육 내용과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세가 부르심받았을 때, 모세는 거듭 거듭 사양한다. 그러나 행7:22에 보면 말과 행동에 능한 자로 모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태도에서 40년간의 교육을 통해 모세가 얼마나 낮아졌으며 겸손해졌는가를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묘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뜻한다.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느끼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삶이 필요하다. 3. 바로 앞에 선 모세(출5,6장) 본 장에서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에 의해 이스라엘이 해방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고통과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요청을 하게 된다. 그 요청에 대한 바로의 응답은 무엇이며,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1) 모세와 함께하심 모세의 요청에 대해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출5:2)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분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분에 대해여 도전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이는 자신의 교만과 완악함(출7:14)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 의하여 부과된 여러 가지 무거운 짐과 고역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져 주시겠다(출6:6)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출6:7)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출6:8)고 약속하셨다. 2) 이루시는 하나님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롬8:35)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언약의 신실하신 분임을 깨달을 수 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 강력한 나라(물리적인 강력함이 아니다)이기를 원하셨다. 이 강력한 하나님 나라에 세상의 나라인 애굽이 위험을 느끼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이 갈등에서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즉 세상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지도력의 근원적인 힘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것이어야 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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