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겸손한 복종
욥의 겸손한 복종
욥40:1-24
I. 서론: 하나님의 질문
하나님께서 욥의 교만을 꺾기 위하여 그에게 내리신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어려운 질문을 무수히 퍼부으셨는데, 이는 자연사에 대한 욥 자신의 무지를 통하여, 그가 섭리의 방법이나 계획을 판결하기에는 얼마나 자격이 없는 자인가 하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한 가지 요구를 더 하심으로써 쐐기를 박으시는데, 이 요구는 전체적인 적용을 자명적으로 전제합니다.
하나님도 엘리후가 했듯이 욥으로 하여금 자기의 할 말을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잠시 중단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욥은 너무나 당황하여서 침묵을 지킨 채 그냥 있었고 따라서 하나님은 욥으로 하여금 대답하도록 요구하십니다(1, 2절).
이 말씀은 전과 같이 \"폭풍 속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그 때문에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조용하고 미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으나(왕상19:12,13), 엘리야처럼 욥에게는 폭풍이 한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 교훈은 비와 같이 내릴 것이며\" 그리고 나면 그것이 기이한 일을 행하리라. 욥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을망정 하나님은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생각을 아시사, 그들의 침묵에 대하여 정당한 대답을 돌려 주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확신시키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전능자와 다투는 자가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가 하나님의 지혜에게 지시를 하겠다고 나서며 하나님의 뜻에게 명령하겠다고 주장할 것인가? 하나님이 모든 편벽된 불평객들에게 교훈을 받으며 그를 기쁘게 하시기 위하여 자기가 취하셨던 수단을 변경하시겠느냐?\" 이것은 경멸하는 질문입니다.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욥 21:22) 이것이 암시해 주는 것은 하나님과 언쟁하는 자들이란 실상 하나님께 그가 하신 일을 개선하도록 방법을 가르쳐 주고자 진력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와 같은 타인들과 어떤 일이 잘못 시행되었다고 해서 다툰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그 잘못된 일을 개선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어느 인간이든 그가 자기의 조물주께 가르치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용납될 것인가? 하나님과 다투는 자는 그의 원수로 간주되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그가 하나님께 명령할 정도로 그 다툼에서 우세하였다고 자처하겠는가?
우리는 무지몽매하고 근시안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만사가 적나라하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의존하는 피조물이지만 그는 주권을 가지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교훈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해독합니다. \"어떤 지혜든지 전능자와 다툴 지혜가 있느냐?\" 대답은 쉽습니다. \"없다\"입니다. 그런 짓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에게 반대하면 우리가 파멸될 게 뻔하고, 그에게 복종하면 우리의 이득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자, 그런 자와 다투는 게 지혜이냐?
하나님은 그 물음에 대한 신속한 대답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비난하는 자는 자기 양심을 따라 이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라. 그래서 이처럼 대답하라. 전능자와 다투거나 그를 교훈할 생각은 내게 없다\"라고.
그로 하여금 할 수만 있다면, 내가 한 모든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여라. 그로 하여금 자기의 주제넘음과 오만불손함에 대한 답변을 하게 하며, 당황스럽게도 그것을 하나님의 법정에서 답변하게 하여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은 무엇이든지 비난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해선 높이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하찮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Ⅱ. 본론 : 욥의 겸손한 복종
1. 이제야 욥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서 경건한 슬픔 속으로 녹아 들기 시작합니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설득하고자 하였을 때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음성은 강력하십니다. \"진리의 영이 나아 올 때에는 그도 확신을 얻게 되리라.\" 욥의 친구들은 그를 악인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엘리후조차 그에게 신랄하였습니다(욥34:7,8,3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토록 가혹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친구들로부터 경험하는 것보다 하나님께로부터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함직 하며, 우리의 행위에 대한 더 솔직한 해석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은 이점에 압도당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붙잡힌 포로로 바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범죄자라고 자백하며, 그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4절). \"보소서! 나는 미천하오니이다. 천하고 말할 가치도 없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악하고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는 이제 그가 범죄하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악하다\"고 일컫습니다. 죄악은 우리를 가치 없게 만들며, 참회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낮추고 꾸짖으며 수치스럽게 여기고 당황하기까지 합니다.
\"나는 내 아버지께 불효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은혜자에게 배은망덕하게 행하였으며, 내 자신에게는 분별없이 행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악합니다.\"
욥은 지금까지 자기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며, 뽐냈던 것만큼 자기 스스로를 욕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자신들에 대한 사람의 견해를 바뀌게 만듭니다. 욥은 이제까지 하나님과의 회담을 요구하는 데 있어 너무나 무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담판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임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의를 끌 만한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땅 위에 꼼지락거리며 늘 기어다니는 지극히 더러운 벌레임을 시인하였습니다.
욥은 자기 친구들과 담화하는 동안에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는데, 이는 자지가 그들보다 못지 않게 선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말씀하시자 그는 할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비교하면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이 무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무보다 못하고 허영과 악 그 자체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께 무엇을 대답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대답을 요구하셨습니다(2절).
여기에서 욥은 자기 침묵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욥이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못했음을 각성하였기 때문에 잠잠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 많음과 비천함을 진정으로 깨닫는 자들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않으며, 자기가 한때나마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을 부끄러이 여기고 자기의 수치의 표로 손으로 입을 가린다.
2. 욥은 전에 저지른 죄를 더 이상 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엘리후가 자기에게 이 말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알맞은 것이라고 말해 주었던 까닭입니다. 우리가 잘못 말한 때는 그 말에 대해 참회를 하며 다시 그 잘못을 되풀이하거나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침묵을 명합니다(4절). \"내가 내 손으로 입을 가리겠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모든 과격한 생각을 억제하기 위해 재갈을 물리듯이 내 입을 지키겠으며, 그런 정욕적인 생각이 절제되지 못한 말로 튀어 나오지 못하도록, 내 입을 지키겠습니다.\"
잘못 생각하는 일은 나쁘다. 그러나 잘못 말하는 것은 더 한층 나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한 생각의 허용이며, 그것은 악한 생각에게 imprimatur-즉 재가를 내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선동적인 명예 훼손의 글을 출판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네가 악한 생각을 가지거든 네 손으로 네 입을 막으며\" 그것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라(잠 30:32). 그러면 그것이 네가 네 생각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욥은 자기의 악한 생각이 누설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내가 한 번만 그릇되어 말한 게 아니라 두 번씩이나 잘못된 말을 한 셈입니다.\" 즉 \"나는 한 번의 이야기와 또 다른 이야기에서 여러 번 잘못 말하였습니다.\"
\"말을 나는 잘못하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내가 말한 것을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을 다시는 반복하지도 않겠나이다.\"
\"나는 더 이상 계속하지 않겠나이다.\"
3. 여기서 진정한 참회자들은 어떠한지 살펴 봅시다.
(1)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행함 중에서 계속하였던 잘못과 그릇된 원칙을 교정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지녔던 생각이나, 자주 지녔던 생각이라도,
또 우리가 한 번 뿐 아니라 두 번씩이나 호기롭게 주장하였던 것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즉시 우리는 그것을 취소해야 하며, 더 이상 그것을 고수하지 아니하고, 그런 생각을 그토록 오래 품은 우리 자신을 부끄러이 여겨야 합니다.
(2) 그것을 모든 곁길에서 돌이키고, 그 길에 한 발자국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더 하지도 않겠습니다(말은 그렇습니다). 내가 다시는 내 정욕에 그처럼 심하게 빠지지 아니하며, 내 스스로 말했듯 그런 언론의 자유를 가지지도 아니하겠고, 내가 이전과 같이 말하지도 않으며, 이전과 같이 행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회개가 여기에 이를 때까지는 아직도 참회가 부족합니다.
하나님과 논쟁하는 자들도 최후에는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과의 회담을 요구하는 일에 아주 대담하고도 적극적이었으며 그가 자기의 사건을 얼마나 명확하게 진술하리라는 것과 그가 자기의 의로움이 인정되리라는 것을 얼마나 단단히 믿고 있는지를 과감하게 말하였었습니다.
\"그가 왕자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가리라\"(욥31:37). 그가 \"그의 보좌에까지도 나아가리라\"(욥23:3). 그러나 곧 그는 그 일에 진력이 나서 자기의 청원을 포기하며 답변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호와여! 지혜와 정의는 모두 당신 편에 있으니, 내가 당신께 질문을 던짐으로써 어리석게 행하였고 악하게 행하였나이다.\"
III. 결론
욥과 같이 자신의 교만을 다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께 복종하는 주님의영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