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강해 / 교회의 큰 문제들

 

 {마태복음 12장 강해}   교회의 큰문제들

 

본문: 마태 11장1-30  /   설교자 권 다니엘 목사

2009년 11월 15일 주일말씀 Cell:1-703-371-4613

 

 

 

주성령교회 (예수교장로회 국제연합총회) UP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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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사건과 예수의 훈계 (1)
마12:1-4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9)는 예수님의 초청은 무거운 갖가지 짐에 눌려 사는 인간에게 더할 수 없는 위로와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하나님을 끊임없이 고뇌와 죄의 속박에 가두어 두려 하듯이, 주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이 주신 율법 위에 자신들이 만든 규정을 더 중요시하여 자신들도 감당치 못하는 무거운 짐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어길 때에는 가차없이 정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안식일 사건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정죄와 예수의 훈계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자세를 돌이켜 보겠습니다.


첫째 : 주일의 문제와 안식일 문제 (교리문제)


1.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1. 안식일에 일어난 일
추수기에 접어든 어느 안식일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밀밭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주님을 따라서 분주한 여행에 시장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눅6:1) 이러한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조항을 들어 주님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생인들은 율법의 자구 하나하나에는 충실했지만 그 율법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정신에는 어두웠습니다. 이 사건만 해도 구약의 율법서 중의 하나인 신명기에도 혹 이런 경우 처한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의 조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리라\'(신23:25). 이 말씀은 분명히 굶주린 나그네를 보호하려는 율법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조항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그 깊은 곳에 사람을 사랑하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정죄하는 바리새인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따먹은 행위는 충분히 정죄받아야 할 만한 범법 행위로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5절) 이것은 마치 덫을 놓은 사냥군이 노리던 동물을 생포하고 의기 양양해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 말 속에는 정죄와 야유가 가득차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원수는 쉬지 않고 감시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라는 말씀처럼 원수 사탄은 쉬지 않고 우리를 고소할 것을 찾으며, 삼킬 기회를 찾아 감시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벧전5:8)
2) 주님과 제자들은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하며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는 근거를 그의 제자들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주님께 영광이 될 수 있고 또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3) 인간이 만든 규정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랍비들이 만든 수많은 안식일 금지 조항에 근거하여 안식일에 이삭 따는 행위는 \'수확\'이고 손으로 비비는 행위는 \'탈곡\'을 의미하기에 제자들은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 . 이와같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사람을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규정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굶주린 그의 자녀가 전도 여행길에 지쳐 밀 이삭 몇개를 따먹은 것을 안식일에 수확하는 일, 탈곡하는 일을 했다고 정죄하실까요? 우리는 우리가 만든 규약을 가지고 거기에 매어 타인을 쉽게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훈계하시는 하나님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적의에 찬 시선과 비난하는 질문을 들었습니다. 이는 마치 유대인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살기등등하여 예수께 시비를 걸던 자세와도 흡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엄숙하게 성경적 근거를 들어 결코 그 제자들이 안식일의 범법자들이 아님을 훈계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훈계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당신의 권위를 잘 나타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윗의 경우를 실례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삼상 21:1-6에 있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분노로부터 도망하고 있을 때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자기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 먹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른 음식이 없었으므로 제사장만이 먹도록 되어 있는 거룩한 떡 진설병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인용하시면서 율법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히셨습니다. 즉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막2:27) 이는 율법의 존재의미가 되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하나님의 율법을 바리새인들은 타인을 정죄하고 괴롭히는데 사용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축복해 주시기 위해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은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타인의 구원을 위한 생명의 말씀으로 사용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안식일 이나 월삭에 얽메이지 말고 주님께 붙어 있어야한다.

안식일사건과 예수의 훈계(2)
마12:5-8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주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은 행위를 안식일 범법행위로 간주하고 비난했습니다.(마12:1,2) 이에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율법의 바른 의미와 해석으로 그들의 잘못을 훈계하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은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며, 또 마음의 뜻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히4:12)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무지를 깨우치시는 주님의 훈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들로서 스스로 율법에 대해서만은 남다른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때문에 안식일에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인가를 놀라웁게 지적합니다. 즉 5절에 보면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속한 모든 것은 무엇이나 허용되는 날입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행하는 일들은 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된 일입니다. 율법이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에 쉬라고 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일까지 쉬라고 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율법을 피상적인 지식은 남을 정죄하고 자신을 율법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2.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주님이 앞에서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 예외를 인용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선언하십니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예수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시며, 그는 율법을 수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에게는 하늘과 땅의 권세가 있으십니다.(마28:18) 때문에 그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행한 일이 결코 범법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에만 무지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들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 성전보다 더 큰 이, 곧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이런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자기 앞에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시16:8) 보이는 성전 안에서는 거룩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일상생활에서는 거룩하지 못합니다.

3.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관을 지적하시고 본래 의도를 파악하도록 이끄십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그 의식자체를 행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목적과 의도로서 임해야 하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무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호세아의 외침을 상기시킵니다. 호세아 당시의 유대인들은 제사 의식에만 치우치고 마땅히 행해야 했던 자비, 곧사랑의 의미는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보다는 오히려 자비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호6:6) 물론 예배의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의식이 합당한 목적에서 이탈된다면 그 중요성은 무시되며 하나님께서도 원치 않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들이 우리를 향한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은 율법의 적용을 정죄의 도구가 아닌 생명을 복되게 하시는데만 응용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3. 주님이 부활 하신 날이 바로 주일 이니 이 날을 지킴 으로 구원을 받는다.

회복케 하시는 그리스도
마 12:9-13
마른 손을 치유하신 사역은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위기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모든 행위에 적의를 품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의도적으로 안식일의 율법을 파괴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위험을 무릅쓰시면서까지 이 일을 행하셨을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을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잃어버린 것을 회복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율법 정신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만든 안식일의 율법 조항은 안식일에는 모든 일을 금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카비 시대에 항거했던 유대인들은 이 약점을 이용한 안티오커스 군대의 안식일 공격에 가축과 함께 일천명의 생명이 무참히 학살당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근본 정신을 망각하고 규칙 준수에만 얽매였던 결과의 대표적 증거였습니다.
1)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주님이 요약하신 율법의 대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22:40) 율법의 근본정신은 \'금지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망각하면 율법은 인간의 생명력을 억압하고 따라서 인간은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2)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안식일의 율법 정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도전해 왔습니다. 이것은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만 안식일의 법이 면제된다는 그들의 율법 사상에 근거한 질문입니다. 율법은 안식일에 병고치는 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히려 단호하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병고치는 것은 선행이며, 안식일이라도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한순간이라도 더 고통당하는 것이 안식일 율법의 의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행을 통하여 사람을 도울 수만 있다면 돕는 것이 오히려 근본 정신임을 밝히셨습니다. (막2:27) 이것은 문자적 해석에 급급하여 잃어버린 안식일 율법 정신을 회복시키신 주님의 귀한 사역이었습니다.

2. 사람의 소중한 가치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 규칙 준수에만 얽매여 보다 중요한 인간의 소중한 가치마저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말씀\'과 그의 \'행위\'로써 잃어버린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1)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는 말씀으로 깨우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들도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낼 줄을 알거든 하물며 사람이 빠졌는데 어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짐승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이 절망과 병고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건지는 일은 매우 당연한 일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 주님 자신의 죽음을 불사한 행위를 통해서 깨우치십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행한 그의 행위로 인하여 바리새인들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날 그의 치유 행위로 인하여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험 부담을 안으시면서까지 안식일에 병고치는 선행을 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소중한 가치를 회복시켜 주시려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3. 삶 전체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이 문제가 아니라 손마른 사람의 \'아픔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치료는 완전한 치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치료함을 받은 손 마른 사람은 그의 삶 전체가 회복되었습니다.
1)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람이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자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특별히 병자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는 위대한 대의사이십니다.
2) 그가 할 일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그에게는 이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손은 봉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일을 의미합니다. 손이 회복된 그는 열심히 일하며 봉사하면서 그를 치료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를 보답할 것입니다.
3) 그는 이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잃고 일자리를 잃은 그는 인간적인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치유는 이 상처입은 사람의 삶 전체를 회복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분입니다. 잘못되고 병든 모든 것을 바르게 회복시키는 그는 우리의 삶 전체를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위대한 의사이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 큰 죄 문제


1. 성령을 훼방 하는 죄가 가장 큰죄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
마 12:31-33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실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사실입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먼저 용서받을 수 있는 죄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훼방은 하나님 혹은 인간을 적대시하는 불순한 언어, 즉 명예훼손, 푸념, 욕설 등의 보편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사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롬6:23) 다시 말하면 사람의 죄와 모든 악한 훼방은 그 결국이 멸망에 이르고야 만다는 원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범죄한 인간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요3:16;막10:45) 때문에 누구든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면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주님의 가르침과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신 주님의 대답은 대인관계에서도 끝없는 용서의 길이 열려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2)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말로라도 주님을 거역한다는 사실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 이전에 신자들에 대해 무자비한 박해를 가한 죄인입니다.(행9:1;22:4;26:9-11;고전15:9;엡3:8;ㅓ빌3:6) 그래서 그는 자신을 스스로 \'훼방자\', \'핍박자\',\'포행자\'(딤전1:13)로, 또한 \'죄인의 괴수\'(딤전1:16)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분명히 이전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로 인자를 거역하기까지 한 죄를 포함한 모든 죄에 있어서 그것이 무지와 오해, 그리고 연약함에서 오는 순수한 인간의 실수일 경우에는 그 어떤 죄라도 용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범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루어야 합니다. 글므로 우리는 여하한 죄일지라도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2. 그러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습니다.
1)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속 사역을 각 개인에게 적용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적용을 본인이 거부한다는 것은 바로 영원한 사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온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행위, 바로 이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커다란 죄가 됩니다. 이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용서를 받지 못하는 죄임을 주님께서는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2:32) 그러므로 모든 죄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흉악하고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겠습니다.
2) 타인의 믿음을 끝까지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타인의 믿음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는 천국 문앞에 버티고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 이러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무섭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마23:13-16) 이들은 자신만 복음에 대하여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영향력을 미쳐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물론 남까지도 멸망의 길로 인도하여 영원한 사망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 역시 사함을 얻지 못하는 중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3)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믿는다면 모든 죄는 사함받고 구원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성령의 역사, 즉 인류를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하나님의 수고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일을 말합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복음을 거부하는 일은 분명히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지난날을 회개하면서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복음을 믿는다면 그는 사함을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와 구원, 그리고 사망과 영생의 분기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를 영접하여 그의 자녀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를 거부, 배척하여 사망과 어둠의 자녀가 될 것인가는 인간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백히 알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됩시다.











셋째 : 큰 이적의 문제


1. 큰 이적을 보여 주옵소서!

~. 큰 이적은 예수님의 부활밖에 밖에 없다.


가장 큰 이적
마 12:38-42
1. 표적과 지혜를 구하는 세대
1) 악하고 음란한 세대
여기서 \'세대\'라 하는 말의 뜻은 \'시대\'와 \'사람\'이 복합된 \'이 시대와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세대를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것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사악하다 함이며, 음란하다는 것은 이방인과의 잡혼과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시73:27;사57:3;겔23:27;계2:20) 이런 모든 것들은 믿음을 떠난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의도는 믿음을 떠난 불신의 명령에 사로잡혀 있는 시대와 인간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고전1:22)를 찾습니다. 어느 시대와 사람들은 이적과 지혜를 찾아 헤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잃으면 절망합니다. 왜 믿음을 잃는 것입니까?
2) 불신의 시대
사람들이 믿음을 잃는 이유는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기본입니다. 원칙입니다. 가치입니다. 하나님을 잃으면 이전 모든 것들이 흔들립니다. 거기서 믿음을 잃게 됩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잃는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데서 옵니다.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믿지 아니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핵심이라는 것을 믿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죄사함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란 믿음을 갖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핵심이라는 것을 믿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죄사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란 믿음을 갖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사람도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웃도 믿을 수 없고 자식도 믿을 수 없고 아내나 남편조차도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마7:5) 믿음이 없는 사회, 불신의 시대가 됩니다. 표적과 지혜를 구하는 것은 이와같은 불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책망하신 것입니다.

2. 참 이적-가장 큰 이적
1) 일반이적(표적)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39절) 예수께서 어째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까? 수많은 병자와 소경과 귀머거리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는데 어째서 이런 표적들을 예수께서는 도외시하신 것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반적인 표적은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불쌍한 생명들을 긍휼히 여기신 것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적들이 메시야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며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이러한 일반적인 표적을 행하기 위한 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반드시 메시야가 아니더라도 행할 수 있는 표적들입니다. 오직 메시야만 나타낼 수 있는 표적이 있습니다. 그 표적이 바로 \'요나의 표적\'인 것입니다.
2) 참이적(표적)
그러면 \'요나의 표적\'이란 어떤 표적입니까? 그것은 사흘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표적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3일만의 부활을 예표한 것이기 때문에 \'요나의 표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죽음에서 살아나는 자,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살아나는 자가 아니면 메시야가 아닙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음의 정복\'에 있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승리\'가 메시야의 사명입니다. 부활은 요나의 표적보다 더 완벽한 표적입니다. 참 표적이며, 가장 큰 표적입니다. 부활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여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주는 표적이기 때문에 가장 큰 표적입니다. 이 진리는 만세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비밀 한 가운데 감추어 놓았던 \'하나님의 지혜\'(고전2:7)입니다. 이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한계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는 한계를 극복한 영원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한계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는 한계를 극복한 영원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 이 세대의 심판
1) 회개하지 않으므로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얼마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41절) 왜 그렇습니까? 불완전한 표적의 주인공인 메시야의 말씀을 듣고도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는 강퍅한 심령은 정죄를 받습니다.
2)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므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41절) 이것은 신앙도 다르고 문화적 전통도 다른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찾아왔으나 영원한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계심에도 그들은 지혜를 찾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지혜가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표적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넷째 : 큰 가정 축복 문제


1. 어떤 가정이 제일 행복 하고 복 받은 가정 이냐?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끗대로 하는 가정이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마12:47)

 

ccm무료듣기]목마른 사슴 / 악보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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