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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2 :1~6, 10~17 , 히브리서 7:23~28]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본문말씀 : 마가복음 10 : 4 6 ~ 5 2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 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우리교회의 역사 이래 어느새 스무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본래 미국에 있는 교회들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그것은 미국 사람들 이야기이고 우리는 우리들 나름대로의 감사절을 만들어 가자’해서 추석 때 햇곡식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감사절을 지키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마틴루터가 독일의 빗덴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였던 것을 계기로 이룩한 ‘종교개혁기념주일’을 택하여서 추수감사절로 지냅니다. 10월 마지막 주를 전후로 하여 적당한 주일을 택해서 우리 교회의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스무 번째 맞이하는 우리 교회의 추수감사절에 여러분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라는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 금요일 저는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회에 20년 동안 출석했던, 올해 27살 된 우리교회 청년인 이승헌군- 인천에 올라오면 성가대에도 앉고 하는데 대전에 있는 한밭대학교, -전에는 국립산업대학교였습니다만 이름이 국립한밭대학교로 바뀌었는데- 를 졸업하면서 졸업작품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어 방문을 포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시간을 내어 가게되었던 차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선 승헌군의 휴대폰이 고장 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간다고 알릴 수가 없었고 급히 e-mail로 보내기는 했는데 그가 메일을 체크할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전시회장에 승헌군이 늘 상주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오후5시에 문을 닫는다는 전시회장의 위치를 잘 알지도 못했고 시간도 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전시회가 열리는 대전국립중앙과학관에 가서 출품작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운 좋게 승헌 군을 그곳에서 만나서 격려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대전에 내려갔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물어물어 국립과학관에 도착한 시간이 4시 45분쯤 됐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며 전시회장에 들어가 방명록에 싸인을 하고 작품을 찾고 있는데 마침 친구가 와서 작품과 여러 곳을 소개하고 있던 승헌 군을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도 갑자기 찾아온 친구를 안내하기 위해 막 왔다고 하면서 우리가 더 일찍 왔어도 못 만날 뻔했다며 반가워했습니다. 20년 동안 우리교회와 함께 성장해 온 한 청년이 전공하고 만들어 놓은 산업디자인의 작품을 보고 격려하며 \'좋은 공부를 통해 기술과 실력을 많이 닦았구나!\' 생각하며 저녁을 대접해 주고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저는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일곱 살짜리가 교회 출석을 했는데 벌써 스물 일곱이 돼서 공부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직장을 얻으려고 나아가는 때가 되었구나!
20년간을 교육한 우리의 젊은이가 이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 샘터교회의 역사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 될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 일할 수 있도록 능력을 허락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스무 살 청년이 되어서 이제는 뭔가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의미에서 올해의 감사절은 더욱더 뜻 깊은 감사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좋은 상황에서만 감사한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과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감사라고 하는 것은 불행 가운데, 고통가운데서도 드려지는 감사입니다. 걸어온 길이 평탄한 길이었고, 승승장구 발전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감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시련과 고통이 있었고, 우리들의 교회에 있어서도 좌절과 절망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서 오늘까지 오게 되었던 것, 그것을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인줄로 믿습니다.
어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잘 나가는 운동선수였습니다. 그는 대학에 가서도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골수 육종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 무릎을 절단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큰 수술을 했고, 목숨은 구했지만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끝이 난 것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학교에 복학하지도 않은 채 매일 술과 마약에 절어서 자기 파괴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차를 몰고 다니며 계속해서 교통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예전의 인기만점이었던 자기를 잃어버린 분노와 세상에 대한 저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자기를 치료하는 물리치료사를 만나면서 그를 통해 이 세상에 수없이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되었고, 그 사건들에 대해서 분노하며 그런 사건은 자기에게만 다가온 것이 아님을 깨달음과 동시에 더 나아가 그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의사의 제안에 따라서 자신과 비슷한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보호자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젊은 여자환자의 병실을 찾아갔습니다. 이 여자는 21살 된 젊은 여자였는데 가족들이 대부분 유방암으로 죽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죽었고, 큰언니도 유방암으로 죽었고, 사촌언니가 유방암으로 죽었고, 자기의 둘째 언니마저 유방암 판정을 받자 이제 21살 된 이 여자는 자신이 유방암에 걸리기 전에 자신의 유방을 아예 미리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여자 환자의 병실을 찾아간 그는 그녀를 위로하며 별별 수단을 다 써서 그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그 여자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를 설득하고, 대화를 시도해 보고, 말을 걸던 이 젊은이가 갑자기 자신의 의족을 자신의 다리에서 떼어내 가지고 병실 바닥에 패대기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패대기치는 쨍그렁 소리에 이 여자가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그순간 그 여자의 눈에 보여 졌던 것은 한쪽발로 깽깽이 춤을 추면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젊은 남자였습니다.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 환자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영어로 하는 것 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If you can dance may be I can sing. 여보시오 만일 당신이 춤을 출 수 있다면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겠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의사 레이체 나오미 레멘 박사가 쓴 \'키친 테이블 위스덤\' 이라는 실화의 이야기입니다. 춤을 출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잘려진 다리로 무슨 춤을 춘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 한쪽발로 춤을 추면서 위로하고자 하는 그 젊은 남자 청년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절망 가운데 있던 유방수술을 한 여인이 응답을 하고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감사 또한 이 두 젊은 남녀가 이루어냈던 기적의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들의 감사는 결코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풍성하기 때문에 드려지는 감사가 아닙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인 마가복음에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바디매오는 여리고라는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 맨 처음 만나는 성입니다. 예루살렘 동남쪽 30Km 지점에 위치한 곳인데 아주 아름다운 성읍이라고 합니다. 이 여리고는 달의 성읍, 혹은 종려의 성읍이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이 도시에는 향나무와 뽕나무와 장미나무 등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리고를 장미의 도시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이 도시를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였습니다. 그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거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이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사렛 예수여!\'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그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는 예수님의 물음에 바디매오는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진리를 보기 원합니다. 눈은 뜨고 살고 있지만 사실 눈을 통하여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떻게 보면 눈 뜬 장님과 같이 살았던 우리들에게 진정한 진리가 보여 지는 사건이 바로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되는 사건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바디매오처럼 주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예수님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우리들은 곧 진리의 사람들이요 빛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아니하고, 흑암 권세의 종노릇하지 아니하고 죄악의 세력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는 자유의 삶인 것입니다. 그것에 우리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욥기 42:1~17절 말씀 가운데에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다시 복을 받는 내용의 말씀이 나옵니다. 욥에게 다시 주어진 복은 그가 맨 처음 욥기 1장에서 가지고 있었던 재물의 갑절에 해당되는, 정확하게 배에 해당되는 수의 재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에 해당되는 재물을 받기까지 그는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 순간에 재물이 다 날아가고, 또 자녀들을 다 잃어버리고, 몸에는 욕창이 생겨나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해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노력했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씨름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갑절의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시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시련은 오히려 나를 성숙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친구로 삼아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갑절로 채워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갑절로 채워주실 것을 믿고 감사 드릴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과거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지만, 성취할 미래에 대해 미리 드리는 감사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신호등이 빨간 불이어서 설 때에, 서면서 꼭 뒤를 보는 습관이 제게 생겼습니다. 왜 백미러로 뒤를 보는 습관이 생겼는가 하면 작년 여름 제 차가 빨간 신호에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차를 박히는 충돌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 기억하시겠지만 그 운전기사는 바로 그 전 날 면허를 딴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을 엑셀을 밟는 바람에 꽝 하고........... 저와 집 사람의 온 몸이 흔들리면서 그 일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부터 뒤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고, 뒤에 와서 서는 차가 제대로 잘 서면 그 순간마다 저는 \'감사합니다. 주님!\' 하며 갑사를 드립니다.순간순간마다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제 인생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감사할 제목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남에 대한 잘못 지적하는 것, 남을 비난하고 세상을 저주하는 것 이것도 습관입니다. 자꾸 그 일만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 대한 비난과 남의 잘못에 대한 지적과 저주,세상에 대한 저주만 내뱉게 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그만 일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어두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우리들의 캄캄한 앞길이 환하게 비쳐질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20년 된 샘터교회에 오셔서 우리의 감사의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에 그야말로 산 넘고 강을 건넌 긴 항해의 20년 세월이었습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들을 붙잡아 주셨음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리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나아가는 샘터교회 안의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