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감사절 기념 예배 설교 자료
청교도 정신 (히11:13-16)
청교도는 영국의 종교 개혁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형식으로 굳어진 영국 국교회의 예배를 거부하며 그들만의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려 하는 그들에게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정든 고향을 떠나 미지의 신대륙으로 향하게 된 그들을 받치는 힘,
그 정신은 무엇이었는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 행적을 통해 살펴 봅시다.
①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13절) - 그들은 믿음을 따라 세상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들을 핍박하고 요동케 하였지만 끝끝내 요동치 않고 믿음을 따라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② 약속을 확신했습니다(13절) - 그들은 비록 현재 고통을 당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을 도우시고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기에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③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습니다(16절) - 세상과 타협하면 그들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잠깐 왔다 돌아가는 나그네임을 알았고, 또한 그들에게 준비된 본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그들에게는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에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신실한 믿음과 약속에 대하 신뢰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경우는 다르지만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과정속에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향은 이세상이 아닌 하늘에 있는 것임을 알아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영원한 본향에 대한 소망으로 능히 이를 이겨내는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이런 자만이 진정 하나님께 올바른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재난을 당한 욥의 찬양 (욥1:13-22)
하나님 보시기에 순전한 자였던 욥이 순식간에 커다란 재난을 당했습니다.
막대한 재산을 잃고 충직한 종을 잃고, 사랑하는 자녀를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버리신 것과 같은 상황인데도 오히려 욥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를 찬양합니다.
이렇게 고난 중에도 욥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그의 찬양을 통해 살펴봄으로 우리도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들이 됩시다.
① 만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21절) - 모든 만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② 자신은 청지기에 불과함을 알았습니다(21절) - 인생은 빈몸으로 왔다가 빈몸으로 갑니다.
욥은 자신의 영화는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고, 자신은 이 세상에서 그것들을 잠시 잠깐 맡아
주관하는 청지기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그것이 본래 주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갔음을 알았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셔야 함을 알았습니다(21절) - 재산과 자녀 모두 잃어 버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욥은 원망하며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은 오직 찬양만을 받으시는 분임을 알만큼 욥의 신앙이 순전한 것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혹 지금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나 처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입술에 불평의 말을
담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존재함만으로도, 아니 주님께서 지금 당장 우리의 생명을 취하신다 할지라도
감사해야 할 그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재난 중의 욥의 신앙을 돌아보면서 모든 여건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문둥병자의 감사 (눅17:11-19)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은 문둥병자는 모두 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 나음을 인하여 예수님께 감사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 단 한명뿐이었습니다.
그는 감사함으로 인해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받는 축복을 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이방 문둥병자를 통해 주님의 은혜와 성도의 감사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① 은혜를 간구했습니다(13절) -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였고 이 간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간절히 구할 때 주님은 기쁨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② 받은 은혜에 감사했습니다(15절) - 병의 치유함을 받은 열 사람의 문둥병자 중
감사함으로 나아온 자는 사마리아인 단 한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사람은
이처럼 적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리는 고백이 인색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③ 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17-19절) - 이방의 문둥병자는 감사함으로 인해 영혼까지도
구원받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받은 은혜에 감사할 때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는 더 큰 축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십니다.
은혜를 간구하는 것은 성도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감사는 은혜받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인 그 일로도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성도님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을 주님께 드린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더 큰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가 주는 유익 (골3:15)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감사\'는 성도의 생활과 어떠한 관계가 있기에 바울은 자신있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감사는 믿음을 온전케 합니다(눅 17:11-19) - 감사는 은혜받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될 때 우리는 더욱 더 그 은혜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② 감사는 생활을 윤택하게 해 줍니다(요 6:11-13) - 감사는 우리로 또다른 감사의 역사를 경험
하게 합니다. 계속적인 감사는 우리 영혼의 기쁨이며, 우리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것입니다.
③ 감사는 우리의 장래를 확실하게 해 줍니다(빌 4:7) - 감사는 미래의 소망을 확신하는 자가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은 은혜와 더불어 장차 받게 될 은혜를 확실히 믿으며
감사함으로 아뢰는 자에게 그 마음과 생각을 지켜 그 소망에 이르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감사는 이처럼 우리의 신앙을, 생활을, 소망을 윤택하게 합니다.
우리가 생활 중에서 감사함으로 얻은 축복은 무엇이었습니까?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해 더 큰 감사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
1,성삼위 하나님께 감사하자 감사에 관한 예화 모음 귀가중이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꼭 3일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싶다. 다음날 이른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날에는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게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몇 십 마일을 간 다음에 드디어 부자는 반갑게 만났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 뿌리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런데 나도 하나 감사하자구나.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 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참 우리 하나님 감사하구나.\" 오늘 이 시대를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한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시대이다. 그런 짓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잣집 아이들처럼 좋은 옷, 좋은 상품 사고 싶어서란다. 그 아이들의 입에는 도무지 감사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기야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소아 암 병동에 심방 갔다가 돌아오면서 요즘은 학군 정도가 아니라 학원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다 빠져버린 핼쑥한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데 갑자기 창문이 열리더니 복면을 한 강도가 불쑥 들어와 시퍼런 칼을 들이밀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옛날 돈 390원이면 큰돈입니다. 그래서 얼른 도망가려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방 선생이 소리를 쳤습니다.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니까 강도와 순경이 찾아왔습니다. 순경이 찾아왔습니다. 순경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선생님 댁에서 강도질을 했다고 하기에 확인을 하러 왔습니다. 맞지요?” 그런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기에 사정이 딱해 보여서 내가 390원을 주었습니다.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갔는데요.” “이 사람이 분명히 선생님 댁에서 돈을 훔쳤다고 자백을 했는데요?” 하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래도 방 선생은 태연히 말했습니다. 내가 돈을 주니까 인사까지 하지 않았소? 돈을 훔쳐 가는 도둑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순경이 돌아가자 강도는 방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방 선생은 강도의 등을 두드리면서 “일어나시오. 사람이 어렵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시오”하고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방 선생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평생 선생님을 섬기며 살게 해주십시오.” 세종대왕 때에는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 관이란 사람은 그의 생활이 청빈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변변한 것을 갖지 못하고 동대문 밖, 그것도 울타리와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때문에 비가 오면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유 관은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이 매사에 감사하였다. 5,6월 장마철이 되어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방 안에는 편히 누울 곳도 없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 관 부부는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비를 피하다가 나중에는 너무도 많은 비가 쏟아지므로 우산을 받쳐들고 마주 앉아서야 겨우 비를 피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소동을 벌인 후 기가 막혀 화가 나있는 아내에게 유 관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산이 있으니 이와 같이 심한 비를 피할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처럼 우산도 없는 집이야 지금 이 비에 오죽이나 하겠오. 그러니 감사하십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끝내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저속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하였고, 하나님은 나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셨으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노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던 청교도였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식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 사람,우찌무라 겐죠가 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몰골이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 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성경책을 머리맡에 펴두고 머리를 받혀놓고 나면 돌아오기까지 그 장 만을 보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은 자기처럼 눈에 박힌 가시를 제해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한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자판을 집어 갈때 윙크하는 방식으로 복음적인 시를 지어 두 편을 발표하였다.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 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 길을 마다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회고적인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다. 가령 산소통을 설치해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경우도 꽤 많은데 물론 보험이 그 경비를 처리하지만 산소통의 산소값이 꽤비싸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은 우리들은 매일 960달러 어치의 산소를 무료로 매고 있는 셈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무사고자인 우리들은 매일 960불씩을 벌고 있는 셈이다. 사실 우리들이 일생 동안들이 마시는 산소값만 해도 실로 엄청난 값일 것이다. 우리 교회의 전기값은 1년에 약4만불 가량 나오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쓰고 있는 [햇빛] 값을 전기 요금 전도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그 반대로우리나라 한국전력공사에서 1년분의 전기값을 면제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 자외선까지 주어서 우리 인간들 동.식물의 성장및 생존에 얼마나 유익하도록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오백여 방언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소경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붙여서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 빌립 E.하워드 - - 스피로스 J.히아테스 -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 - 토마스 아 켐피스 - - 로버트 N. 로덴 메이어 - - 윌리암 A.워드 - 어떻게 보호받았는가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은 항상 두 벌의 안경, 즉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한 것과 멀리 보는데 사용하는 것을 지니고 다녔다. 그러데 그가 마지막 큰 정치 선전을 위해 밀워키 시에서 연설을 하고있을 때 \'쉬렌크\'라는 남자가 대통령를 향해 쏘았다. 루우즈벧트는 다친 몸을 가누고 끝까지 연설을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의사가 그의 몸을 검사했을 때 그는 대통령의 조끼 안에 있던 강철 안경집이 들어온 총알을 튕겨내어 빗나가게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애기를 들은 대통령은 \"그것 정말 놀라운 일이야?\"하며 조심스럽게 구부러진 안경집을 조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두 벌의 안경집, 그것도 쇠로 된 케이스에 담은 무거운 안경은 귀찮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그것을 사용하셨다.\"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읍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 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읍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읍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읍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물울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 천만에요.\"\" 왜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비누가 나오지 않으니까 불평입니다.\" 지난 오사카 세계육상경기대회 여자 100미터 결승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길이 없어서 사진 판독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내려진 결과다. 기록은 불과 0.003초 차이! 눈을 깜빡하는 시간이 대략 0.02초라는데 이보다 6배나 짧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1000분의 3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갈랐으니 선수들이 느낀 행운 또는 억울함을 어디 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비단 이번 경기의 결과뿐이겠는가. 우리가 치르는 입학시험의 합격여부나 입사시험의 당락처럼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우연 같은 시간차나 점수차로 삶과 죽음, 합격과 낙방, 금메달과 은메달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행운 또는 불행, 운수의 좋고 나쁨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창조주의 사랑의 손길로 믿고 좋은 일이든 혹은 나쁜 일이든 오직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