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연속 강해 설교

1 다시 살리시는 은혜
본문: 시 85:1-13 (12월29일 설교)

사람에게는 4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도 이웃도 모두 사랑하지 않는 유형입니다. 자신의 삶에만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사랑하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유형입니다. 십자가에 있어서 수직적인 관계만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원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신앙 이기주의 유형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으면서도 이웃과는 원만한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의 특징은 무척 분주하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할 여유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늘 시간이 모자랍니다. 이런 유형을 우리는 세상 이기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과의 수평적인 관계는 있는데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는 유형입니다. 여러분 정면에 보이는 십자가형의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기에 모두에게 원만한 그런 관계를 가지고 사는 유형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가마솥에 삶으면 \'사랑\'이라는 것만 남는다\" 고 말합니다. 십계명도 결국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로 합치면 사랑입니다. 결국 성경 말씀 전체는 \'사랑\'이라고 하는 주제로 통합되는 놀라운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52주 동안 성도 여러분들은 그 사랑이라고 하는 명제와 얼마나 친근하게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셨습니까? 또 우리의 이웃들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로 지내셨습니까? 아니면 서로 원망하고 오해하면서 피곤한 관계로 지내셨습니까? 간절히 바라기는 사랑이 삶의 동기요 결론임을 선언한 성경 말씀처럼, 우리의 한 해동안의 삶의 결론도 사랑 때문에 살았고 사랑 때문에 또 한 해를 시작할만하다는 확신으로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시인의 \"우리의 인생은 많은 고단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만하다\" 는 수필도 매력이 있었지만 그런 철학적인 명제에서 출발하는 인생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의 우리는 정말 한 해 한 해를 살아가는 힘과 소망의 원동력이 \"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까?\" 라는 기대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할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그 감격을 고라 자손들이 고백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야곱의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고, 죄악을 사하시고 분노는 거두셨으며 진노를 돌이키셨다\"고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덮어주셨고, 용서해 주셨고, 회복시켜 주셨고, 이제는 새롭게 인도하시겠다고 하는 소망과 은총의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보에 소개한 \'마더 테레사\'의 고백처럼 이 연말 연시는 사랑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화해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주님이 오셨고, 주님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게 벅찬 새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는 또 1년을 그냥 보내야만 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전, 먼저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하기 위해 전심을 다하였고, 회개와 감사의 삶을 회복하였을 때, 예루살렘 성은 다시금 백성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던 예루살렘 성이 이제는 웬만큼 복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복구를 하긴 했지만 과거 다윗 왕이나 솔로몬 시대 처럼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 되기엔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당시를 묘사한 말씀을 찾아보면 \"예루살렘은 변방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주변의 공격과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에 기꺼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기도하면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백성의 두목들이 먼저 들어가자\" 성경에 보면 백성의 지도자들이 먼저 예루살렘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기로 결단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희생은 지도자들의 몫입니다. 지도자의 권위란 명령과 지시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 의해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자 백성들 중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저렇게 위험이 아직도 남아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도 따라가자\" 하며 자원하는 백성의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예루살렘이 정상적인 도시의 기능을 하기엔 부족하였습니다.

결국, \"백성 중에서 1/10을 제비를 뽑아서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자\" 는 결정이 내려 졌습니다. 처음부터 제비 뽑아서 백성의 1/10을 보내자고 했으면 반발이 컸을텐데 지도자들이 먼저 자원하는 희생과 백성의 일부가 동참하는 분위기가 되자 불평하는 무리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아름다운 지도력의 모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놓고 기대에 차 있습니다. 벌써 그 당선자 주변에 일가 친척들에게 청탁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고 당선자가 밝혔어요. 그리고 이렇게 그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전에는 청탁을 해서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청탁을 하는 그 사람을 패가망신 시키겠다\" 대단히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기대해 보고 싶어요. 나라는 지도자 한 사람의 정직함이면 충분합니다. 교회는 담임목사 한 사람의 성실과 진실함이면 충분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관장 한 사람의 헌신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감동하고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지도자라면 속회든, 지역이든, 혹은 선교회든, 교회학교든, 성가대든 여러분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오늘 이 예루살렘을 위해서 백성의 두목들이 우리가 그 위험하고 아직 삶의 터전으로서 불합리한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그곳에 우리가 먼저 가겠다고 자원했던 것처럼 그런 희생의 마음만 있다면 그 공동체는 건강하고, 또 강건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채찍하셔서 깨닫게 하셔서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일에는 다른 어느 것도 주님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신앙이 회복만 된다면, 그들의 영적인 말씀이 회복이 된다면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향했던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로 돌아만 온다면 다른 것은 묻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성경은 표현했듯이 그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채찍을 맞으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조상을 탓했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니 자식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의 문제라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랬습니다. 심지어는 그 바벨론의 우상의 힘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들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어요. 선지자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들의 환경도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들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사람 두 사람씩 조용히 그 바벨론 포로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나면 밤중에 새벽에 그 주변의 강가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하와 강가에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큰 무리가 되었어요. 상상할 수 없는 무리로 커지면서 이스라엘 전체에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조상 탓도 아니요, 하나님이 약해서도 아니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결국 그 신앙이 회복되면서 그 인간의 고집을 꺾으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했더니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도 쉽게 풀렸어요.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신 줄로 믿습니다. 괜히 고집 부리지 마시고, 괜히 자존심 걸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멸망하겠다고 작정하셨을지라도, 심판하겠다고 결정하셨을지라도 그것 취소하시고, 용서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시고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를 덮어주시겠다고 했어요. 사실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하나님 앞에 가져간다면 조목 조목 회개를 하고 용서를 받아도 참으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할 때 마지막날 유월절의 은혜처럼 그냥 넘어가시는 거예요. \"넘어가자. 내가 그냥 덮어주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 한가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그 약속만 한다면 내가 그것만 보고 넘어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월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유월의 은혜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따져보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지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리니 너희들이 그 예루살렘이 변방이라고, 위험이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고, 아직 삶의 기반이 닦아져 있지 않다고, 살 수 없다고 기피했던 그곳, 그러나 자원해서 희생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겠다고 한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이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좋은 땅의 개념이 무엇입니까? 축복의 삶의 자리의 개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바로 그곳이 축복의 자리요, 열매를 맺는 땅인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주님이 함께 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면 예루살렘이 중심이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예루살렘도 폐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자리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장 중심이 되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원래 예루살렘은 중심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그곳에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던 그곳을 성전을 짓도록 마음을 갖고 자기의 후손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했습니다. 사실은 그 터를 가장 소중한 가격을 주고 거저 주겠다고 하는 그 백성의 간청에도 뿌리치고 \"하나님의 제단을 값없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귀중한 값을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중심으로, 정치의 중심으로, 경제의 중심으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어요. 우리의 삶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이 다 해놓은 거 들어가서 그냥 영광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개척하는 은혜가 큰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속회도 마찬가지고, 새로운 여러분의 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다듬어져 있는 부서도 있겠지만 새롭게 개척해야 할 부서도 있어요. 글쎄요, 저 같은 경우는 새로운 부서를 맡겨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마음껏 하나님 주신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20년 전에 그 좋은 자리를 다 거절하고 이곳에 개척을 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척의 삶은 고단하지만 보람이 있어요. 평생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떳떳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어요. 돌멩이를 걸러내고 쇠고랑으로 밭을 일구는 수고가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서 자라는 기쁨처럼 큰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여러분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 그냥 대강 대강 지나가는 분이 아니시지요. 또 새로운 한 해에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의 자리를 제가 늘 여러분에게 권하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능력에 맡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다시 살리시니 감사합니다. 폐허가 되었던 예루살렘에 하나님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니 그곳이 축복의 자리요, 그곳이 삶의 중심이 된것 처럼,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곳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는 성도들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마무리하여 새로운 출발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