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교회와 목회와 설교”란 주제로 강의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강의할 자격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저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만남과 강의가 우리에게 피차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선 건강한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건강하지 않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5월 5일 우리 합신 교단의 증경 총회장들의 모임인 경친회 모임에서 “책망과 거룩함이 사라진 한국교회” 라는 제목으로 강의 하면서 한국교회의 건강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을 묘사한 일이 있는데 그 때 한 강의를 그대로 여기 옮깁니다.
“책망과 거룩함이 사라진 한국교회”
나는 지난 4월 29일 백석대학의 초청을 받아 봄학기학술대회강좌를 마친 후 어느 교수님 방에 들어가서 저녁 강좌를 기다리면서 잠시 쉬는 동안 옥성호 집사가 쓴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훑어보면서 혼자서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만간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란 제목의 책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옥성호 집사는 오늘의 미국교회와 한국교회가 하나님 중심적인 복음대신 인간 중심적인 심리학과 마케팅과 엔터테인먼트에 물들어있다고 바로 지적했다. 사실 나는 오래 전에 빈센트 필이 인간 중심적인 자기 확신의 심리학과 정신치료법에 물들어있음을 지적했고, 로버트 슐러가 인간중심적인 적극적인 사고와 환상 그리고 쇼핑센터의 기업원리에 물들어 있음을 지적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늦게나마 옥성호 집사가 현대교회가 하나님 중심 대신 인간 중심적 사고와 유행에 물들었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고 유쾌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아버지인 옥한흠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고 목사님의 아들이 어쩌면 그렇게 멋진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옥한흠 목사님은 내가 아들의 책을 좋게 평가하면 아들의 책은 좋은 책임에 틀림 없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내가 아들의 결혼 주례를 해 주었기 때문에 나에게서 어떤 기를 받은 것이 틀림 없다고 말해주었다. 옥한흠 목사님은 별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최근에 옥한흠 목사님 보인 자기 자신과 한국교회에 대한 진솔한 자기 성찰의 모습에 깊은 공감과 존경을 표하고 있다. 나는 최근에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바라보면서도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삼가곤 했지만, 옥성호 형제의 용기를 보고서 나도 용기를 내어 한국교회의 \'부족한\' 또는 \'부끄러운\' 모습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한국교회는 지금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어느덧 감정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에 사로잡혀있다. 여러 가지 악기들을 사용하며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음악 및 율동적인 소양을 지닌 젊은이들이다. 저들은 음악 및 율동을 하면서 감동적인 언어와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감동적인 음악과 율동 또는 통성 기도가 반복되다가 예배로 이어진다. 언제부터 예배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에 사로잡힌 예배의 현상을 대표적인 부흥사인 최복규 목사님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오늘의 예배와 설교에는 십자가도 회개도 성결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지난 4월 28일 지적한 일이 있다. 자리를 함께 했던 합신교단의 존경을 받는 목회자인 김기영 목사도 이와 같은 현상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모 교회가 이와 같은 현상의 주범이란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음악과 율동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성보다 감성에 치우치면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중세교회는 물론 일부 개혁교회들은 감정을 흥분시키는 음악과 악기를 자제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더 많이 자극하고 더 많이 흥분시키기 위해서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다. 감정적인 흥분을 성령충만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서글프고 불행한 일이다. 둘째, 한국교회는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 카리스마에 사로잡혀있다. 목회자의 진실한 삶 보다는 목회자가 각종 두드러진 유명 카리스마를 지니면 그것으로 족하게 되었다. 그것이 설교의 카리스마이든지 방언의 카리스마이든지 치유의 카리스마이든지 뒤집어짐의 카리스마이든지 코미디의 카리스마이든지 정치력의 카리스마이든지 경제력의 카리스마이든지 상관이 없다. 수천 수만 명의 청중들을 사로잡기만 하면 된다. 카리스마가 강하면 강할 수록 사람들은 몰려든다. 나는 「교회성장지」 12월호에서 이런 말까지 했다. \"지금 일부 한국교회는 바른 삶보다는 흥분과 기현상을 나타내 보이고 그것들을 추구하게 만들므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진실한 삶보다는 약간 무당적이고 약간 귀신적인고 약간 이단적인 요소들을 나타내 보여야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 같다.\" 문선명 집단이나 김기동 집단에만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 유명 카리스마가 강하면 강할수록 약간 무당적이고 약간 귀신적인고 약간 이단적일수록 사람들은 몰려온다. 지금 한국교회는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 카리스마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이동원 목사님은 최근에 수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설교 세미나와 능력전도 세미나에 몰려드는 것은 유명한 목회자, 성공한 목회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목회자가 되려는 야심 때문이라고 바로 지적했다. 서글프고 불행한 일이다. 셋째, 한국교회는 지금 아부성 발언과 몸짓에 사로잡혀 있다. 목회자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책망보다는 모든 것을 눈 감아주는 아부성 발언과 몸짓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이미 오래 전에 로버트 슐러가 했다. 죄를 지적하면 안 된다고 이미 로버트 슐러가 조언을 했었다. 결국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 조언에 따라 죄에 대한 설교는 가능하면 하지 않게 되었다. 위로와 축복만 강조하게 되었다. 어느 유명한 목회자는 이런 말까지 했다. \"교회의 신자들이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중진들이 주일을 범하고 주일에 다른 곳에 가서 딴 짓을 해도 모른 척 하여야 합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신자들이 회개와 헌신의 기본 신앙을 지니지 못해도 출석만 잘 하고 헌금만 잘 하면 신앙이 있는 것처럼 치켜 세워주게 되었다. 결국 목회자는 속이고 신자는 스스로 속아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은혜로운\' 목회라고 피차 착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 아무개가 분명히 신앙이 없는데 어느 교회에서는 신앙이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교회는 종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교의 장소로 바뀌어지게 된 것이었다. 피차 격려하고 치켜세우는 아부성 발언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교회는 누구나 가면 기분 좋은 곳으로 바뀌어지게 되었다. 서글프고 불행한 일이다.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는가? 진솔한 자기 성찰이 있다면 소망은 있다. 목회자들이 먼저 자기를 책망하고 그리고 신자들을 눈물로 책망할 수만 있다면 소망은 있다. 목회자들이 가변운 시대의 유행에 편승하는 대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준 고귀한 신앙과 삶을 진지하게 배우려고만 한다면 소망은 있다. 목회자들이 성공보다 성결을 추구할 수만 있다면 소망은 있다. 목회자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교회의 부흥만 추구하는 대신 약하고 작은 교회들을 돌아볼 수만 있다면 소망은 있다. 죄를 무섭게 책망하며 울면서 회개를 촉구하던 이성봉 목사님이나 김치선 목사님의 설교가 그립다. 돈이나 명예나 정욕에 사로잡히는 대신 오직 십자가의 주님께 사로잡혀서 살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보고 싶다. 죄인들에 대한 증오나 정죄대신 마귀새끼 같은 안재선을 용서와 사랑으로 품은 그래서 그와 그의 자녀들을 마귀의 자녀들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든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신앙과 사랑의 선배들이 보고 싶다. 떠들지 않고 조용히 진실하게 삶으로 그러나 감동적으로 설교하던 박윤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다. 깊고 넓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꿋꿋하게 서서 아무에게도 타협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하던 강원용 목사님도 보고 싶다.
그러면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대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소박하게 묘사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주일마다 40여명 내외의 신자들을 가진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고 있는데 지난 6월 1일 주일에는 조금 큰 교회인 전라남도 고흥에 있는 고흥 중앙교회에 가서 “교회다운 교회”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의 내용을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전달합니다.
“교회다운 교회 - 건강한 교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남쪽 바다가 있고 파란 물이 눈에 보이는 고흥에 왔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용서와 사랑과 눈물과 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라남도 남단에 왔습니다. 어제 저녁 저희가 고흥에 도착했을 때 고흥중앙교회 목사님 부부와 성도 여러분들의 지극한 사랑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바닷가에 가서 맛있는 음식 대접을 받은 후 바닷가를 걸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인정도 좋았습니다. 장미 꽃다발과 과일을 사랑의 선물로 받기도 했습니다. 신승우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모텔에서 행복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생 시절 김치선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서울 창동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던 목사님이셨는데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를 부르시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대구 주암산에서 김치선 목사님이 인도하시던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부흥회 기간 중 어느 시간에 찬송가 246장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자주 부르던 찬송이었는데 저는 그때 \"피 흘려 사신 교회\"라는 가사를 부를 때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는 대목에 저는 그만 목이 메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슬프게 눈물을 흘리니까 옆에 있던 어느 어른이 무슨 슬픈 일이 있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한 후 계속해서 한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신 보배로운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하나님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이 세상에 교회보다 더 귀하고 더 보배로운 곳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1:23).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딤전3:15).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어거스틴과 칼빈은 교회를 가리켜 어머님의 품이라고 했고 은혜의 창고라고 말했습니다. 키프리안은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도 은혜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기가 힘들었고 교회를 제대로 사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주일날에도 교회에 가지 말고 학교에 오라고 명령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일날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평양 제5인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았지만 때로는 정학을 받았지만 저는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결국 저는 만 11살 때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와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와 동생들을 평양에 남겨두고 혼자서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보다 교회를 더 사랑했고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너무너무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 인간적으로 슬픈고 아픈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도 대구에 피난을 가서도 중학생 시절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 시절 새벽기도를 거의 빠지지 않았습니다. 주일에는 아침에 교회에 가면 저녁예배 마칠 때까지 교회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주일에는 공부를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 중학교 서울 고등학교 서울 대학교를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마음껏 공부를 했습니다. 아마 제가 하나님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 놀랍고 풍성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교회다운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이고, 둘째는 소금과 빛과 착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로 하여금 성막을 만들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성막은 교회의 모형이었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에서 이스라엘과 만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한나는 성막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무엘은 아기 때부터 성막에 올라가서 기도하며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다음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2-16). 성전은 교회의 모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세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얼굴을 감히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우리 죄인들을 만나시는 장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야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120명이 하나님을 만났고 3천여 명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길선주 장로님이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회개하며 말씀을 전하고 회개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령님의 강한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기도회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큰 소리로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 라고 외치면서 지난 날의 죄를 뉘우치며 회개했습니다. 길선주 장로의 회개의 고백을 들은 2천여 명의 청중들은 마루 바닥을 치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장대현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었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곳이 되었고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하나님 만남이 충만한 장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이나 웃기고 울리는 설교로 청중을 사로잡는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교회 안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회개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이든지 사무엘의 기도이든지 세리의 기도이든지 길선주 장로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또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 만남의 장소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해서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도 함께 만나서 모이는 만남의 장소로 묘사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지은 성전이 이스라엘 사람들만 위한 것도 아니고 의인들만 위한 것도 아니고 이방인들과 죄인들을 위한 성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이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저희가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소서”(대하6:18, 32-33). 솔로몬의 기도가 사도행전 2장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주님을 따르던 120명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했고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부터 모여든 3천 여명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2:8-1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1).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가르침을 받는 일과 교제하는 일과 떡을 떼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쓴 것이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만남과 나눔의 장소였고 만남과 교제를 힘쓴 장소였습니다. 만남과 나눔을 좋아하지 않고 힘쓰지 않는 신자는 신자다운 신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남과 나눔을 좋아하지 않고 힘쓰지 않는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남과 나눔을 좋아하고 힘쓰는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 만남의 장소입니다.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이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 남쪽 가사라는 광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습니다.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선지자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의 글을 풀어서 설명을 하면서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바로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결국 가사 광야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인 베드로가 예수의 영에 이끌리어 북쪽 이방의 땅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곳에서 이방인 고넬료를 만났습니다. 고넬료의 집에는 고넬료의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함께 모여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성령의 이끌리심을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성령께서 그곳에 강하게 임재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령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결국 그곳에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착한 사람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보내심을 받아 이방의 땅 안디옥으로 달려가서 그곳에서 이방인들을 만나 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고 모범적인 교회로 부흥 발전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함께 모여서 전도하고 함께 모여서 선교한 것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과 헬라인과 흑인과 백인들이 함께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발전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교회가 만남과 나눔의 장소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교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충만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충만 하려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회개하면서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충만 하려면 사람들과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과 인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봉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교제의 폭을 넓히고 깊이 할 때 사람은 참으로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둘째, 소금과 빛과 착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었고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이룬 교회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저들이 바로 세상의 빛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5:8). 교회다운 교회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첫째로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교회와 신자는 기질과 특성이 소금으로 바뀌어진 존재라고 말씀했습니다. 소금이 하는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썩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생선이 썩지 않습니다.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무와 배추가 썩지 않습니다. 소금은 썩는 일을 방지합니다. 두 번째는 맛을 내는 일입니다.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맛있는 굴비도 되고 맛있는 고등어도 됩니다.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맛있는 김치가 됩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세 번째는 스스로 없어지는 일입니다. 소금은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녹아서 없어지고 맙니다. 세상에 대한 신자와 교회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와 교회는 첫째로 썩어져 가는 세상과 사회를 썩지 않도록 막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과 사회는 그 대로 놔두면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짓과 부정 부패 그리고 폭력과 향락과 퇴폐가 판을 치고 있는 곳이 이 세상이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와 교회는 둘째로 맛이 없는 이 세상의 삶을 맛이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복음이 어느 지역에 들어갈 때 복음은 사람들의 삶에 보람과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소명의식과 사명의식을 부여해 줍니다. 가정을 돌보는 일을 비롯해서 노동하는 일, 공부하는 일, 사업하는 일, 정치하는 일에 보람과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맛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신자와 교회는 셋째로 세상의 어느 곳이나 깊이 파고 들어가서 녹아서 없어지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없어진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하고 손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도 손해를 보고 시간도 손해를 보고 건강도 손해를 보고 마지막에는 생명도 손해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체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사람은 소금이 되지도 않았고 소금의 역할을 할 수도 없습니다. 소금이 된다는 것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정과 높임을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희생하고 죽는 것을 말합니다. 소금은 세상을 살리고 자신이 없어지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둘째로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교회와 신자는 기질과 특성이 빛으로 바뀌어진 존재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래는 빛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기질과 특성이 빛으로 바뀌어진 존재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존재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빛이 하는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두움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숨어 있던 것들을 밝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더러운 것도 드러내고 잘못된 것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둘째는 밝음과 따뜻함을 가져다 주는 일입니다. 빛이 비치면 따뜻함과 기쁨이 생깁니다. 빛이 비치면 아름답고 좋습니다. 셋째는 방향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등대의 빛은 배가 항해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자동차의 전조등은 자동차가 운전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빛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세상에 대한 신자와 교회의 사회적 책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와 교회는 첫째로 어두움을 몰아내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어두움과 죄악을 드러내는 심판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100여 년 전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한국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던 도덕적 사회적 죄악을 드러내는 일을 했습니다. 미신을 타파했습니다. 첩 제도를 타파했습니다. 남녀 차별제도를 타파했습니다. 신자와 교회는 둘째로 어두운 이 세상에 밝음과 따뜻함을 비치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어둡고 차가운 이 세상에 밝음과 따뜻함과 사랑의 빛을 비치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따뜻한 빛을 비칩니까? 우선 얼굴에 웃음을 나타내며 빛을 비칩니다. 그 다음에는 부드러운 말과 칭찬의 말을 하면서 빛을 비칩니다. 그 다음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를 부르므로 빛을 비칩니다. 교회가 세상에 밝음과 따뜻함과 사랑의 빛을 비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따뜻해지고 즐거워집니다. 신자와 교회는 셋째로 혼돈 가운데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세상은 지금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그 이유와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목표와 방향을 보여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셋째로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소금과 빛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착한 행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삶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자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씻어주고,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고, 상처 입은 자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고 신자들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바로 착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착했고 바나바가 착했고 도르가가 착했습니다. 고넬료와 루디아와 브리스길라부부가 착했습니다. 착함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대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가리킵니다(고전10:33).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권면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할찌니라”(갈6:10).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목적도 결국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착한 일들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신자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와 신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세상에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 교회나 신자는 참된 교회도 아니고 참된 신자도 아닐 것입니다. 착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존재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행실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목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때 존재와 행실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존재와 행실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둘 때 우리의 존재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되고 우리의 행실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공부하는 목적도 결혼하는 목적도 자식을 낳는 목적도 직업을 가지는 목적도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목적도 자기의 이익과 행복 추구에 둡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는 목적도 자기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자기의 삶이 더 행복해지는데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을 행하는 목적도 자기가 칭찬을 받는데 두기도 합니다. 결국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때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의 존재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고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가 하는 일에 회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은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하되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고 분부하십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교회다운 교회는 첫째로, 만남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하나님 만남과 사람 만남이 충만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둘째로,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는 교회이고 세상에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립 48주년을 맞는 고흥 중앙교회를 만남이 충만하고 소금과 빛과 착함이 충만한 교회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만남의 주체와 통로로 만드시고 그리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과 착함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건강한 목회”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한경직 목사의 목회가 목회다운 목회요 건강한 목회라고 생각해서 한경직 목사의 목회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합니다. 제가 한경직 목사 탄신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목회자 한경직 목사”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인간 한경직을 세 가지로 나누어 (“고난과 약함의 사람” “참회와 회개의 사람” 기도와 눈물의 사람”) 묘사한 후 목회자 한경직을 네 가지로 나누어 (“복음 전파의 목회자”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 “화평과 협력의 목회자” “역사 의식의 목회자”) 묘사했는데 여기서는 목회자 한경직 목사에 대해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건강한 목회 – 한경직 목사의 목회”
이제 목회자 한경직의 면모를 살펴본다. 목회자 한경직을 논할 때 목회의 방법이나 기술이나 업적이나 성공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목회자 한경직의 삶의 자세와 인격과 비전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위에서 살핀 대로 인간 한경직은 민족의 수난 시대에 고난과 약함을 체험하며 참회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서 목회자로 만들어졌다. 인간 한경직은 민족의 수난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민족 앞에서 몸부림 치며 자신을 하나님과 민족을 위한 희생의 제물로 드리면서 목회자로 만들어졌다. 한경직 목사는 목회를 성공이나 실패의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목회자는 충성된 예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목회를 성공, 실패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아야겠고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목회자는 충성된 예수님의 종이 되려는 자세만이 요청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생활이어야지요. 온유하고 겸손하며 거룩하고 정직하며 부지런해야 합니다. 또 화평을 도모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비젼이 있어야 합니다.” 한경직 목사는 “목회자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지켜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목회자는 자신의 생각을 지켜야 하고 자신의 말을 지켜야 하고 자신의 행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목회는 일이라기 보다는 사람이요 인격이라고 강조했다. 목회자 한경직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민족과 사람들 앞에서 몸부림 치면서 진실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청빈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사랑을 베풀고 화목과 화평을 도모하면서 살아간 한 인간의 인격과 삶이다. 이제 목회자 한경직의 면모를 살펴본다. 그것은 복음 전파의 목회자,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 화목과 화평의 목회자 그리고 역사의식의 목회자이다.
첫째, 설교와 전도를 쉬지 않은 복음전파의 목회자 목회자 한경직은 첫째 설교와 복음전파의 목회자였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한경직 목사는 설교하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한 평생 설교하며 복음을 전파한 말씀의 목회자였다. 이종성 박사는 한경직 목사의 목회의 특징 세 가지를 지적하면서 첫째는 설교 중심적 목회 둘째는 봉사 중심적 목회 셋째는 협력 중심적 목회라고 말했다. 한경직 목사가 이렇게 회고한 일이 있다. “목사로서 중요한 것은 설교, 심방, 교회운영이다. 설교를 통해 전도하고 양을 먹이어야 한다.” 그리고 설교의 목적은 전도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어떤 설교를 하든지 꼭 몇 마디라도 전도 설교를 해서 그들을 건져내야 한다.” 한경직 목사는 신의주 제2교회에서도 그랬듯이 영락교회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3대 목표를 전도, 교육, 봉사로 정했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를 시작할 때 전도를 교회의 첫째 사명으로 삼으며 교회 이름을 아예 베다니 전도교회라고 불렀다. 한경직 목사는 목회 시초부터 설교를 통한 복음전파에 주력했다. 한경직 목사는 1955년 11월 영락교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며칠 동안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진 후 영락교회의 3대 사명을 교인들에게 다시 발표했다. 그것은 혼란한 교계와 사회상황에 부응하는 것으로 첫째 진리 수호 둘째 복음 전파 셋째 사회봉사였다. 결국 한경직 목사는 전도, 교육, 봉사 또는 설교, 전도, 봉사를 목회의 사명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래서 강단에서는 설교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회중과 사회를 향해서는 복음을 전파하며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폈다. 한경직 목사가 그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복음 전파와 교육과 봉사에 주력한 것은 첫째는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이 바로 그 길이라는 확신에서 비롯했고 둘째는 그의 성서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교회관에서 비롯했다. 그는 불행한 민중을 \'죄\'와 \'무지\'와 \'가난\'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전도와 교육과 봉사에 있음을 확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확신은 오산학교 시절 이승훈 선생과 조만식 선생으로부터 애국 정신과 현대 교육과 예수 믿음의 필요를 배운 데서 비롯했다. 조만식 선생은 나라를 살리려면 사람들이 변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변하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한경직 목사가 그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복음 전파와 교육과 봉사에 주력한 것은 둘째는 그의 성서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교회관에서 비롯했다. 그는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교회설립 1주년 기념 설교에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한 일이 있다. 교회는 복음을 전파해서 죄인들을 살리는 구원선이고 나라와 민중을 인도하고 살리는 등대와 안식처라는 것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면서도 시대적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한 평생을 바쳤다. 이제 한경직 목사의 목회의 가장 중심적인 요소인 설교의 특징을 살펴보자. 마치 연약한 체구의 암브로스의 설교가 어거스틴에게 놀라운 영적 감화를 미쳤던 것처럼 병약해 보이는 한경직 목사의 설교가 영락교회 성도들에게 놀라운 감화를 끼쳤는데 그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가?. 「영락교회 50년 사」는 한경직 목사의 설교에는 절대적인 ‘영적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그 설교의 특징은 ‘대중성’ ‘신행일치’ ‘인간사랑’ ‘실존성’ 등이라고 분석했다. 한경직 목사는 평생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 진리와 은혜의 말씀을 선포했다. 그의 설교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며 상황적인데 평이하고 경건하고 은혜로웠다. 한경직 목사는 목회자에게 있어서 설교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설교의 특징 세 가지를 거듭 기술한 일이 있다. 설교는 성경적이어야 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실존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목회자가 강단을 통해서 하는 일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생명의 꼴을 양에게 먹이는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설교에 있어서 첫째,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둘째,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분명한 설교의 목표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셋째, 실존적인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이들의 형편과 정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설교를 뜻합니다. 그리고 설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서, 확신에서, 생활에서,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에서, 성령으로부터 옵니다.” 한경직 목사의 복음전파의 열정은 군복음화운동과 학원복음화운동과 아세아복음화운동 세계복음화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한경직 목사는 어느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그의 마지막 소원을 민족복음화와 아세아 및 세계복음화라고 밝혔다. “온 교회가 하나 되기 바랍니다. 민족이 복음화 되고 그 힘이 합하여 공산당까지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평화통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십자가가 서고 태극기가 휘날리는 이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와 목회자가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겠습니다. 이 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아시아와 온 세계 복음화의 발판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자기 세력확장과 자기 왕국건설에 여념이 없는 경쟁시대에 나라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일념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서 한 평생을 바친 복음전파의 목회자를 우리는 한경직 목사에게서 발견한다. 한경직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 생애를 건 복음 전파의 목회자였다.
둘째, 돌봄을 쉬지 않은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 목회자 한경직은 둘째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였다. 한경직 목사는 1933년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교회의 3대 목표를 전도, 교육, 봉사로 정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다. 그에게 있어서 봉사는 복음의 생활화요 신학의 실천이었다. 그것은 나라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는 1936년경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보았다. 복순이라는 다리 하나 없는 가엾은 어린 소녀를 돌보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두 아이로 시작했다. 1939년에는 남 신의주에 땅을 얻어 벽돌집을 신축하여 고아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공동체적 복지 시설인 \'보린원\'을 만들었다. 1942년 일본경찰에 의해 교회에서 추방된 후에는 보린원 원장으로 그의 모든 시간과 정성을 고아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일에 다 쏟아 바쳤다. “그는 넓은 밭을 직접 일구고 분뇨를 나르며 거름을 주었다. 보린원에서 보낸 3년은 가난한 고아들의 아버지로, 선생으로, 농부로 살면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성경을 읽고 명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보린원 출신의 사업가 김재걸 집사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고아원 보린원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복순이라는 다리 하나 없는 여자 아이와 국섭이라는 사내 아이 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보린원에 있으면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5학년 때는 보린원에 50명이나 되는 큰 식구로 불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목사님께서 남 신의주에 터를 장만하고 거기에 고아원과 양로원 건물을 새로 짓고 이사를 갔습니다. 목사님께서 아침마다 예배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같이 농사도 지으시고 심지어는 똥통도 같이 메고 저희 원생들과 같이 식사하시며 같이 주무시고 했습니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으례히 그러는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커서 세상 물정을 알고 나서야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린원 원생 김재걸과 윤승호는 해방직후 함께 월남하여 한 사람은 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의학박사와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렇게 그의 소감을 피력했다. “나와 윤 박사 부부는 한 피 받은 친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가 1945년 10월 월남 후 12월 2일 서울 저동에 베다니전도교회를 설립하고 월남하는 피난민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동시에 양식과 거처할 숙소를 마련하는 일을 했다. 1946년 11월 베다니교회는 영락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영락교회는 피난민들과 실향민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새로운 삶의 출발지가 되었다.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3대 목표 중의 하나를 봉사로 정하고 봉사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창립 1주년을 맞은 1946년 12월 1일 주일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민중들을 인도하고 돌보는 사회 봉사임을 밝혔다. “교회야말로 국가의 정신적 간성이며 황야에 헤메는 대중을 인도하는 진리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며 암야의 행로를 밝히는 광명한 등대이며, 거친 세해, 죄악의 파도에 빠져 죽어가는 인생들의 구원선이며, 피곤한 자의 안식처이며, 수난자의 피난처입니다.” 이승준 목사가 지적한 대로 한경직 목사는 “한국교회의 어느 목회자보다도 먼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사회구호사업을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삼은 인물”이었다. 한경직 목사의 봉사의 목회는 그의 성서적인 교회관에서 비롯했다. 그는 교회에 대해서 설교할 때마다 교제와 봉사를 항상 강조했다. 1958년 6월 1일에 행한 “은혜 받은 초대교회”란 제목의 설교에서도 교회의 본질과 내적 생활의 중요한 것은 한 몸을 이룬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인데 이 교제란 말은 사귀면서 나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즉 은혜를 서로 나누고 경험을 서로 나누고 특히 물질을 서로 나누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요 내적 생활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 초대교회의 된 일을 볼 것 같으면 이렇게 은혜만 나눈 것이 아닙니다. 경험만 나눈 것이 아닙니다. 물질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알던지 모르던지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불쌍한 사람, 배고픈 사람, 헐벗은 사람이 있을 때에 세계의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힘 있는 대로 물질을 바쳐서 그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 몸이 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아름다운 행실인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영락 보린원을 비롯해서 모자원, 경로원, 노인요양소, 농아원, 장애아원, 어린이집, 재가노인복지 상담소 등을 세웠다. 그리고 1990년 1월 17일부터는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폭 넓게 펴나갔다. 그는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그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입술과 손 발을 하나님의 도구로 다시 쓸 수 있게 힘을 준 은총에 감사합니다.” 한 평생 영락교회와 대광중고등학교에서 한경직 목사를 보필한 이창로 장로는 목회자 한경직의 특징중의 하나는 ‘긍휼’의 목회자라고 지적했다. 한경직 목사는 항상 “긍휼하신 주님,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라고 말씀했는데 한경직 목사의 사랑과 봉사의 삶은 긍휼에서 비롯했다고 이창로 장로는 말했다. 한 목사님이 모든 계층을 뛰어넘은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그가 ‘긍휼’의 정신을 온 몸으로 실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목회자 한경직은 긍휼의 사람, 사랑의 사람, 봉사의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래오래 남아 있다. 그는 한국의 프랜시스요 한국의 슈바이쳐요 한국의 테레사로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 있다. 한경직 목사의 봉사는 이기적인 봉사도 과시적인 봉사도 아니었다. 이타적인 봉사였고 드러내지 않는 숨은 봉사였다. 동족 사랑과 주님 사랑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봉사였다. 자기 과시와 자기 명성을 위한 꽹과리 소리가 요란한 선전시대에 이름도 소리도 없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소유와 자신을 모두 허비한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를 우리는 한경직 목사에게서 발견한다. 한경직 목사는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였다.
셋째, 화평을 추구한 협력의 목회자 목회자 한경직은 셋째 화평의 목회자였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 일을 보면서 제일 애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것은 화평이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교회 일을 보시면서 제일 애쓰신 것은 어느 점이었습니까? 교회 안의 화평이었습니다. 좋은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먼저 화평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할 수 있었던 일도 하지 못하고 마는 경우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뜻이 훌륭해도 온 교회가 하나 되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손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 안에서 온유와 겸손을 바탕으로 화평을 이루어간 화평과 협력의 목회자였다. 최창근 장로는 한경직 목사의 목회의 첫째 특징을 화평의 목회라고 지적하며 한경직 목사의 화목의 목회를 이렇게 회고했다. “제가 1961년도에 장로 장립을 받았는데 그 어른의 당회 운영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새삼 깨닫고 은혜 받은 바가 정말 많았습니다. 워낙 30여명이나 되는 여러분들이 모여 의논하는 자리인 만큼 당회가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는 것은 어디서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께서는 당회 진행 중에 어쩌다 의견이 분분하여지면, ‘여러분 다 저의 덕이 부족하여 이렇게 된 듯 합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하며 조금도 노여움을 품는다든지 어느 누구를 원망하는 일 없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평화로운 가운데 당회를 마치시곤 합니다. 특히 덕을 세우지 못하는 당회원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시고 사랑으로 심방도 하시니 한마디로 은혜스럽고 덕스러운 일밖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화평의 목회는 한경직 목사의 교회관에서 비롯했다. 영락교회는 “한경직 목사 성역50년”에서 한경직 목사의 교회관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머리에 붙은 몸인데 그 몸의 통일성과 공동성이 결코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업보다 인화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다. 그리스도가 분열될 수 없는 한 교회의 통일성과 공동성이 파괴될 수 없다. 사업보다도 인화가 더 중요하다. 다양의 극치 속에서도 조화를 찾아 총화의 아름다움을 드높이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다. 인간은 항상 인간의 부족과 유한성을 인지해야 한다. 진리수호를 빙자하여 평범한 자기의 고집을 고집하거나 교리수호를 구실로 주도권의 야심을 가지고 분열과 불화를 초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또 하나의 가시관을 씌우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변치 않는 그리스도 자신이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의 안과 밖에서 화평을 추구한 협력의 목회자였다. 자기의 신앙은 보수이지만 교회론에서는 에큐메니칼하다고 지적하곤 했다.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의 지도방침 네 가지를 설정했는데 네 가지 지도 방침 중 첫째가 성서중심적 복음주의 신앙이고 셋째가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협력과 연합을 이루는 것이었다. “에큐메니칼 정신이라 함은 협력, 협동, 동참, 참여의 정신을 의미한다. 백화만발이란 말로 표현하는 꽃의 세계를 볼 때 그 다양성과 통일성은 실로 놀라 마지 않는다.” 한경직 목사의 보수적이면서도 에큐메니칼적인 신앙의 입장을 한숭홍 교수는 정 반 합 중 합의 신앙이라고 표현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신학의 정은 박형룡의 보수주의 신학이고 한국신학의 반은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이고, 박형룡도 김재준도 포함하는 합의 신학은 한경직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의 목회뿐 아니라 한국장로교회와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목회에 있어서도 화평과 협력과 연합을 추구해 나갔다. 한숭홍 교수는 한경직 목사의 에큐메니칼적 포용의 자세를 이렇게 기술했다. “그는 배타주의를 주장하는 옹졸한 사람도 분리주의를 역설하는 과격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분명히 그의 신학사상이 복음주의적 신앙과 에큐메니칼 신학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그와 신학사상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한 형제로 포용하는 포괄적인 사상의 주인공이다. 그는 암탉이 병아리를 자기 날개아래 품듯이 신앙형태의 좌우를 모두 그의 넓은 가슴에 품으려는 사람이다.” 한경직 목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화와 통일을 추구했다. 즉 한국교회 안에서 복음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을 폭 넓게 펴 나아갔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손을 잡고 모두를 협력하며 격려했다. “비록 교파는 다르지만 교파를 초월해서 온 교회가 다 같이 당면하는 일 즉 국가 민족 사회를 위한 봉사나 복음 전파에 있어서 서로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한경직 목사는 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가 교계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 때 그에게 격려의 손을 폈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는 한경직 목사에 대해서 항상 고마운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신현균 목사도 비슷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김준곤 목사도 비슷한 기억을 가슴에 지니고 있다. 누가 그를 가리켜 한국교회를 품에 안고 복음을 위해서는 모두에게 격려와 사랑의 손길을 편 한국교회의 화평의 사도라고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는 기독교연합회 회장(1955-1956),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총재(1982-1984),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주역 등으로 한국교회의 초 교파적 연합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한경직 목사가 한국교회 100주년을 맞을 때 모든 교회, 모든 단체를 하나로 통합, 결집시키는 일을 한 것은 교회사적으로 괄목할만한 일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항상 한국교회의 분열을 안타까워하며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염원했다. 한경직 목사의 화평의 목회가 그의 성서적인 교회관에서 비롯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예수 닮은 온유와 겸손의 인격을 지니지 못했다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온유와 겸손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 주선애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분에 대해선 겸손하신 것이 제일 감화 받은 것입니다. 그분의 겸손은 겸손하겠다 하는 것에서 나온 게 아니고 완전히 몸에 배어 있는, 자기를 비운 그 상태에서의 겸손입니다. 꾸미는 겸손이 아닌 자연스럽게 겸손하신 것, 바로 그것입니다.” 신의주 제2교회시절부터 한 평생을 한경직 목사 곁에서 지냈고 마지만 6년 7개월 동안은 남한산성에서 한경직 목사의 수족과 같은 역할을 했던 그리고 마지막 운명을 혼자서 지켜보았던 백운경 장로는 한경직 목사를 “조금이라도 남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은 정직 온유 겸손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민족을 동서 남북으로 갈라놓은 갈등과 분열이 최고조에 달한 이 시대에 우리는 온유와 겸손과 인내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하나로 치유해간 그리고 민족의 평화 통일을 염원한 화평과 박애의 목회자를 한경직 목사에게서 발견한다. 한경직 목사는 화평을 추구한 박애와 협력의 목회자였다.
넷째, 민족과 세계를 품은 역사의식의 목회자 목회자 한경직은 넷째 역사의식의 목회자였다. 한경직 목사는 역사의식과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산 분이다. 아마 민족과 세계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은 오산학교의 이승훈 선생과 조만식 선생으로부터 배웠을 것이고 후에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폭 넓게 연마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일대학 박사과정에서 교회사를 연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경직 목사는 귀국 후 조선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강의했다. 그리고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몸으로 살아가면서 역사의식을 스스로 터득하며 역사의식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았다. 한경직 목사가 남다르게 폭 넓은 사고와 비전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고 세계를 그의 활동 무대로 삼은 것은 그의 비범한 인격과 함께 그가 터득한 역사의식과 역사적 안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그는 다양성 가운데서 조화를 이루는 역사적 안목의 비결을 지녔다. 이만열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교회사를 공부한 그는 교회가 신학사상을 좀 넓게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교회사에서 그는 교회가 보수와 진보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신학사상을 가지고 싸운다든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한경직 목사는 평생 한국 나라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세계를 품고 사랑하며 봉사한 분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1957년 3월 3일에 행한 “성서적 애국심”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예수님도 애국자이십니다’라고 말하여 나라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성서적 애국심이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성서적 애국심은 혹 우리 사회에서 가끔 듣는 민족지상주의나 국가지상주의는 절대로 아닙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애국심은 민족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국가가 귀하지마는 국가를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민족과 국가가 아무리 귀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상입니다. 애국심이 잘못되어서 변태적으로 발전되게 되면 독재주의가 생기는 것이고 배타주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1958년 4월 27일에 행한 “우주시대와 신앙생활”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우주시대의 신앙생활은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우주시대의 종교는 먼저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이와 같은 종교는 전 인류를 포섭할 수 있는 사랑의 종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셋째는 이와 같은 종교는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속죄, 구령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이기주의와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인류의 연대성을 강조했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만민의 아버지시오, 사해는 다 동포이며 형제입니다. 연대성이라고 하는 말은 서로 연한 것같이 우리 사람은 각자 나뉘어 있지 않고 다 서로 연결되어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연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히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되어 있는 까닭에 사회의 한 분자가 되었고 사회의 한 분자가 된 다음에는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실에 대하여 공동적인 책임을 자연히 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다 한 배에 타고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배 가운데에 어떤 사람이 그릇된 행동을 함으로써 잘못 파괴된다면 그 배에 탔던 선객 전원에게 그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간 생활의 연대성을 생각할 때 내 생활을 얼마나 조심하여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신앙을 자기 개인의 울타리 안에 가두거나 목회를 개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지 않고 이웃과 사회와 민족과 세계의 울타리로 뻗어나가게 했다. 그는 폭 넓은 시각을 가지고 폭 넓은 연계를 이루며 살았다. 따라서 그의 삶과 활동의 범위는 넓고 다양했다. 그의 삶과 사역은 전도와 교육과 봉사는 물론 사회복지, 치안유지, 정당활동, UN 활동, 세계선교와 구호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 미쳤다. 그는 한국 사람과 한국교회가 지니지 못했던 역사의식과 역사적 안목을 지니고 폭 넓게 살았다.
결국, 삶이 깨끗한 청빈의 사람 인간 한경직과 목회자 한경직의 삶과 사역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결국 그분은 예수님처럼 사신 분이었고 성 프랜시스처럼 사신 분이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친히 가난하게 사셨고 성 프랜시스도 “나는 가난이란 여인과 결혼했다”고 선언하고 친히 가난하게 살았는데 한경직 목사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평생 깨끗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한경직 목사는 1982년 8월 11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 저를 부르실지 모르지만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갈 인생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본인의 말 그대로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간 깨끗한 청빈의 사람이었다. 한경직 목사가 2000년 4월 19일 오후 1시15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세상은 입을 모아 그를 가리켜 “청빈의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그를 높이 기렸다. 명예욕과 물욕과 정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부끄러운 오늘의 시대가 가장 보고 싶어한 사람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청빈과 봉사의 사람 장기려 박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 했듯이 청빈과 봉사의 사람 한경직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모두들 아쉬워 했다. 「신앙계」는 한경직 목사를 기리며 그를 가리켜 “3무의 삶”을 실천한 분이라고 지적했다. 즉 “통장, 집, 재산이 없는 3무의 삶을 실천했다”는 것이었다. 청빈이 그분의 삶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분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손봉호 교수는 한경직 목사처럼 청렴하고 철저하게 절제하는 성화된 삶을 산 사람은 “전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평했다. 이우근 부장판사는 이렇게 솔직하게 묘사했다. “그는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 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가장 안락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도, 바보같이 그것을 마다하고, \'월셋방에 사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산꼭대기 20평짜리 국민주택[교회사택]에 들어갔습니다.” 필자는 인간 한경직과 목회자 한경직의 면모를 살피고 나서 처절한 고뇌를 느낀다. 절망적인 부끄러움을 느낀다. 위대한 참 목자 한경직 목사를 존경하고 예찬하고 흠모하는 것이 도대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진실도 없고 겸손도 없고 청빈도 없고 참회도 없고 눈물도 없고 숨김도 없고 사랑도 없는 나와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진실 대신 거짓, 겸손 대신 교만, 청빈 대신 탐욕, 참회 대신 위선, 눈물 대신 강퍅, 숨김 대신 자랑, 사랑 대신 비난 등으로 가득한 내가 설 곳은 어디란 말인가? 처절한 고뇌와 절망적인 부끄러움과 깊은 탄식을 느낄 뿐이다. 단지, 이런 분을 이 땅에 아니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부끄러운 감사를 드릴 뿐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이고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들과 같은 고귀한 신앙의 선배들의 제물된 삶과 죽음 때문임을 고백하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부끄러운 감사를 드릴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제 마지막으로 “건강한 설교”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설교에 대해서 전문적인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우리 모든 설교자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의 설교에 대해서 소박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초두에서 자기는 설교를 할 때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고백한 일이 있는데 그 내용을 소박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건강한 설교 – 사도 바울의 설교”
첫째, 건강한 설교자 사도 바울은 우선 설교자 자신의 권위를 내 세우는 대신 설교자 자신의 약함과 무능과 죄성을 철저하게 들어낸 설교자였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후2:3).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고전3:5-7).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구전4:13).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둘째, 건강한 설교자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 로마의 유창한 웅변술이나 헬라의 심오한 지식을 도구와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눌한 표현을 했고 어리석어 보이는 논리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2:1).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고전2:4). \"말의 지혜로 아니함은\"(고전1:17).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고후10:10).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셋째, 건강한 설교자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고 그것만 전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26:23). 넷째, 건강한 설교자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 심리학이나 마케팅이나 엔터테인먼트나 음악이나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으려는 대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이 움직여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다섯째, 건강한 설교자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 사랑과 책망과 희생의 마음으로 했습니다.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4,15).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4:21).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2:4).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12:15).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여섯째, 건강한 설교자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 대상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1,2).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5:1,2).
끝으로 제가 최근에 프리칭아카데미에 기고한 설교에 관한 부족한 글 하나를 소개하므로 강의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설교를 쉽고 편안하게” 프리칭아카데미 (08.2.)
나는 프리칭아카데미의 요청으로 2005년 2월 “한 설교자의 설교 준비”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기고한 일이 있다. 이번에는 “설교자가 설교자에게”라는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설교를 쉽고 편안하게” 라는 제목의 글을 쓴다. 지난 번에 지적한 대로 “나는 훌륭한 목회자도 설교자도 아니다. 그저 목회와 설교가 좋아서 지난 34년 동안 부족한 목회와 부족한 설교를 해 오고 있다.” 지난 번에 지적한 대로 설교는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평생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방지일 목사님의 설교는 90여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고 정진경 목사님의 설교는 80여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 하려고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주님 만남과 사람 만남의 경험들이 쌓여야 한다. 은혜 체험도 사랑 실천도 필요하고 고난과 아픔과 슬픔과 실패의 과정을 거치는 경험도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설교를 너무 잘 하려고 하지 않았다. 설교를 너무 잘 하면 설교자가 드러나고 십자가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혜와 로마의 웅변술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기의 모습은 약하며 두려워하며 떠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고전2:1-3). 그런데 요사이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방송국의 유명한 PD를 초청해서 강연 술을 배우기도 하고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은사와 능력을 추구하기도 하는 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동원 목사가 최근에 이런 고백을 했다. “여러 유형의 ‘설교 세미나’에 강사로 불려 다녔습니다. 문득 이런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목회자들은 ‘나도 유명한 설교자가 되어 유명한 설교를 하고 유명한 교회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에 자극 받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교회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의 목회 현실의 장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극렬한 관심은 ‘능력 목회’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 신드롬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성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하는 능력의 출처가 어딘지, 그 방법이 타당한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는지 모릅니다. 필요하다면 사탄의 제단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이방 종교의 마법사를 능력의 사도로 추앙할 채비도 갖추고 있습니다.” 설교를 잘 하려고 동분서주하며 애쓰는 목회자들을 향한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이다. 옥한흠 목사도 최근에 설교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와 죄를 신랄하게 지적한 일이 있다. “여러분 교회 안에 가만히 보세요. 목회자로서 할 말 다합니까? 말씀대로 가르칩니까? 죄를 죄라고 똑똑하게 정말 가슴을 치면서 설교할 수 있습니까? 무슨 설교 하려고 하면, 앞에 앉아 계신 어느 장로님 걸려 못하고, 무슨 설교 하려고 하면, 어느 분이 걸려서 못하고, 무슨 설교 하려고 하면, 또 교인들이 마음 상해서 교인 줄까 봐 못하고 이리 저리 못하다 보니까, 우리는 성경의 반 토막은 잘라 내고 설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속주의에 물들어가는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거든요.”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범하고 있는 간교한 실수와 죄를 진솔하게 고백한 말이다. 설교를 너무 잘해서 성공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이고 설교를 너무 감동적으로 해서 청중을 사로잡으려고 해도 문제이다. 청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귀에 솔깃한 달콤한 설교를 하려고 해도 문제이다. 최근에 김삼환 목사가 어느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에게 설교를 가르쳐 주신 두 분의 스승은 한경직 목사님과 방지일 목사님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과 스타일로 설교를 하셨을까 생각해 보곤 하는데 조용조용한 모습으로 소박한 설교를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솔한 고백이다.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설교를 본 받고 그리고 주님의 삶과 가르침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있는 그대로 조용조용히 소박하게 설교하면 좋을 것이다. 나는 한 동안은 설교와 신학과 은사를 너무 귀하게 여기며 사모하고 추구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음과 같이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은사는 철이다. 주님 닮으려는 삶이 금이다.” 나는 목회 초기에는 설교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설교 준비하는데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 주석 책을 몇 권은 읽어야만 했고 설교 내용도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충실하여야만 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나는 설교를 ‘내 멋대로’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질서하게 되는대로 했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정한 다음 나의 삶과 성도들의 삶과 한국 교회와 사회의 현실에 연계시키면서 ‘내 멋 대로’ ‘자유롭게’ 전개해 나아갔다. 나는 설교의 도입 부분은 물론 설교의 내용을 내가 최근에 개인적으로 부딪힌 국내외적 사건들이나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들이나 여러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채우곤 했다. 그렇게 하므로 오늘의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교훈을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지식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설교자와 성도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 친밀하게 연결시키면서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설교가 나에게 은혜와 즐거움이 되었고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도 은혜와 감동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설교하는 것이 좋고 즐거웠다. 설교하고 싶은 의욕을 가지고 설교했다. 나는 한 동안 주일마다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시리즈”의 설교를 70번이나 계속했다. 성경은 ‘신학 책’이나 ‘도덕 책’ 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 책’이라고 말할 수기 때문이었다. ‘아벨의 순교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이야기 설교는 ‘에녹의 동행 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브라함의 축복이야기’, ‘사라의 웃음 이야기’,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임종 이야기’, ‘모세의 건짐 이야기’에 이어 ‘기생 라합의 놀람 이야기’, ‘기드온의 이김 이야기’, ‘삼손 못 말리는 이야기’, ‘사무엘의 끝내주는 이야기’, ‘다윗의 눈물 이야기’ ‘솔로몬의 헛됨 이야기’ 등으로 이어 졌다. 나의 부족한 “이야기 시리즈” 설교를 듣고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며 글을 쓴 강변교회 신자 두 사람의 글을 여기 줄여서 옮긴다. “이야기 시리즈 설교를 들으며. ‘이야기’라는 독특한 형식이 주는 편안함과 설레임으로 매주일 기대와 호기심으로 설교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편의 ‘이야기’는 먼저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고, 목사님의 깊은 통찰력과 묵상을 통해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믿음의 인물 하나하나의 인생 전체를 기발한 제목과 새로운 시각, 재치 있는 단어를 통해 쉽지만 깊은 메시지로 전해주셨다. 모든 말씀 앞에서 자신이 먼저 회개와 아픔, 눈물로 반응하셨고 성도들의 잘됨을 위해 진심으로 간절히 권면하시고 축복하시는 아비의 심정을 가슴 뭉클히 느낄 수 있었다.” (백혜란권사) “김 목사님의 설교는 예화를 남발하는 법도 없고 신학적인 심오한 고찰도 없다. 유별난 삶을 권하시지도 않고, 영웅을 오히려 경계하신다. 선택된 단어들은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듯이 흘러 우리의 심령에 조용히 고인다. 시간이 갈수록 목사님의 설교는 더욱 단순해지고 쉬워지고 되풀이 된다. 단지 더욱 간절해지고 절실해질 뿐이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느낀다. 왜 일까? 그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요구하는 신앙이 우리의 뻔한 사욕이나, 혼돈되고 혼탁한 이 세상과 전혀 타협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월적이며 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이야기’라는 단어는 선물의 포장지에 매인 리본처럼 다정하게 우리의 마음을 끌어 말씀의 선물을 쉽게 풀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이야기 시리즈 설교 중 노아와 에녹 이야기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울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인상적인 것은 다윗의 눈물 이야기 설교였다. 목사님은, 과장해서 말하면, ‘눈물의 예찬자’ 라고도 할 수 있다. 약함을 예찬하고 정직함을 예찬하고 착함을 예찬하고 고난을 예찬하는데 이 모든 것의 표징을 눈물로 보시는 것 같다. 우리에게 눈물의 사람이 되라고 누누이 강조하실 뿐 아니라 목사님 자신이 흘린 눈물의 고백도 즐겨 하신다.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다윗은 자기의 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며 울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까지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에게도 눈물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신다고 한다. 글로 옮길 수 조차 없는, 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에서 오는 눈물, 분노가 아닌 긍휼의 눈물을, 울 기력이 없도록 울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하신다. 다윗처럼 그렇게 울고 싶다. 목사님의 소원처럼 나도 그렇게 울고 싶다.” (허영숙 권사) 이제 강의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의 설교를 칭찬하는 글로 마무리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사실 저는 평생 왕자병에 걸려서 살아오고 있는데 이 마지막 부분의 글에도 왕자병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사이 점점 더 심한 왕자병에 걸려가고 있는 듯 한데 왕자병은 병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나쁜 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부족한 사람의 강의를 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다소의 도움과 격려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제1회 건강교회아카데미, 0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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