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제사장인가? 골로새서1:1-2

목사가 제사장인가 /골로새서 1:1-2|……──장년 설교
 

목사가 제사장인가
골로새서 1:1-2

1. 시작하는 말

초대 교회 이후의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교인들과 그들을 양육하고 지도하는 목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아니고 교인들도 아니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이십니다. 교회에는 목사의 효율적 사명 수행을 돕기 위해 교인들 중에서 뽑힌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와 집사, 권찰과 기관장 등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와 세상 공동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주 예수님 안에 있는 것과 주 예수님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행정은 세상 공동체의 가장 효과적인 운영 방법인 민주 행정이 아닙니다. 교회 행정이란 주 예수님의 뜻과 말씀을 순종하는 하향 행정입니다. 목사와 교인들이 회의를 해서 결정한 대로 한다면 주 예수님은 필요 없지 않습니까? 교회의 회의란 주님의 뜻과 말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순종하는가를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란 매우 중요한 신분입니다.




2. 목사의 신분

어떤 목사나 교인들은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하고, 어떤 목사나 교인들은 예언자라고 하고, 어떤 목사나 교인들은 제사장이자 예언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를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사자인 제사장이나 예언자의 반열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서신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적 의미의 예언자나 제사장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셨을 때에나, 열두 제자를 선택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있었고, 세례 요한이 예언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열두 사도는 물론, 바울 사도는 율법과 예언으로 대표되는 토라인 구약성경의 완성 이상의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구약성경적 의미의 제사장들도 예언자들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유대교의 경전인 율법 곧 토라의 일꾼으로 파송되지 않았고, 그 초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으로 파송되었습니다. 복음의 일꾼인 목사란 바로 복음의 일꾼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사도의 반열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바울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이라고 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오른팔인 제자 목사로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란 복음의 일꾼인 목사의 궁극적 기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교회의 일을 부분적으로 감당하는 교인들과 달리, 전 생애를 바쳐 교회의 일을 전담해야 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목사가 됐다는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목사가 됐다는 인식이 없으면, 목사의 기본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확고한 인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리사욕이나 명예욕이나 교권욕을 위해서 소신껏 목회 아닌 목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요 사도의 반열인 목사는 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며 일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Χριστοῦ Ἰησοῦ)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제사장과 예언자와 왕이 여기에 해당되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그 세 직능의 초완성자로서의 주 예수님을 지시합니다. 주 예수님은 당신과 당신의 복음을 위해서 전 삶을 바쳐 일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들의 반열인 목사는 예배를 집전하는 제사장의 역할과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의 역할과 왕 중 왕의 전권대사 역할을 부여받은 성직자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함께한다 해도 유한한 인간으로서 세 가지 역할을, 무한자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감당하는 것은 여간 어렵고 힘든 게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불치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등의 은사들과 영력과 신령한 지혜를 받는다 해도 충분할 수 없습니다.

“사도”의 헬라어인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는 ‘대리자’, ‘파송된 자’, ‘보냄 받은 자’, ‘전권 대사’를 의미합니다. 사도라는 칭호를 들은 사람들은 12제자 외에도 바울과 바나바, 실루아노와 디모데 등이 있습니다.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와 터틀리안(Tertullian: 160-220)은 70제자들도 사도로 일컬어졌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사도이자 제자의 반열인 목사는 자기의 뜻이나 계획이나 목적이나 야망 등을 위해 소신껏 밀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13:2 이하를 보면,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주님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앞장서서 순종하며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존경과 대�! ♣� 받을 권위란 제자로 삼으시고, 교육하고 훈련하여 보내신 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교인들은 이런 목사의 신분과 임무를 잘 이해하고, 목사의 양육과 지도를 잘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 하늘나라 시민다운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온맘닷컴에 인용된 서울사대부고 동창회 사이트의 유머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약속이 있어 급히 가야 하는데 그날따라 길이 무척 막혔습니다. 앞에 늘어선 차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목사님이 불법으로 차를 유턴하는데, 호루룩 소리와 함께 경찰관이 다가왔습니다. 차를 세우자 다가온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아니십니까?” 거수경례를 하고 서있는 경찰관을 보니 자기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살았다는 표정으로 “아 자넨가. 시간이 바쁜데 하도 길이 막혀서 그만….” “목사님, 싼 것으로 하나 떼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날, 시간에 늦지 않게 무사히 설교를 끝내고 돌아온 목사님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여사무원이 목사님 앞에 와서 우물쭈물하며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 범칙금 통지서가 하나 왔는데요.”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요 그게 좀….” 무심코 여사무원에게서 통지서를 받아 든 목사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레 씹은 표정이 됐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노상방뇨죄’(路上放尿罪).

이런 목사와 이런 교인의 상부상조는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예레미야 3:15을 보면,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목사가 ‘우리의 마음에 맞았으면 좋겠다.’라거나, ‘우리의 뜻과 생각에 맞춰 일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목회하려는 목사를 고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인들은 목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기를 바라며 기도해 주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고 지도해 주기를 바라며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한때, 바울은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에 능통했고, 유력한 유대교 지도자였지만, 그 탁월한 지성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기는커녕,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겨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은, 부활하신 주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변화되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메이첸(J. G. Machen)과 스트와트(J. S. Stewart)는 바울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었다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재해석‧재형성하게 되었고,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참된 가치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주 예수님을 알고 나서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모든 목사가 본받아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주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교단장 자리도 배설물처럼 여기는 목사가 많아졌으면 싶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가리켜, 주님을 믿는 충성스럽고 신뢰할 만한 성도들이요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이란, 접붙여진 나뭇가지가 새 나무의 생명을 분여받아 의존해 살며 열매를 맺는 것처럼, 주 예수님과 영적으로 연합하여 살아가면서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교인의 정체성을 알고, 교인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아 누리도록 목회해야 할 것입니다.




3. 맺음말

자기의 신분을 잘 알고 처신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법조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소신껏 판결하면서 자부심을 갖는 판사들은 판사의 신분을 모르는 것입니다. 판사가 법전에 의거해서 판결해야지, 소신껏 판결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사장 역할과 예언자 역할과 주님의 전권대사 역할을 해야 하는 목사는 결단코 소신껏 해서는 안 됩니다. 택해서 교육하고 훈련하여 보내시는 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일해야 합니다. 목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교인들이 사단에 속한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잘 받아 누리도록 목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