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설공 하십시오


예배에 성공하십시오/롬12:1-3, 창15:9-21


1998년도에 미국 기독교 언론보도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성인의 비율은 선진국 중에서 미국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시간 대학이 당시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주 드려지는 예배나 종교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전체성인 미국인 인구의 44%인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전 인구의 38%인 캐나다와, 27%인 영국 그리고 21%인 프랑스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며, 이밖에 독일은 14% 일본은 3%, 러시아는 25%인 것을 각각 조사되었습니다. 이 조사를 실시한 로널드 잉글하트 연구원은 미국이 이처럼 다른 선진국들보다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노령인구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느 곳으로 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잉글하트는 주장하기를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종교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 가난한 나라 특히 경제적인 불안정이 만연한 곳일수록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결과의 분석이 우리나라 교회현실을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분석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들을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재적 교인수에 비례하여 주일 낮 예배 출석율과 주일 찬양예배 출석률과 수요기도회 출석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습니다만 저희교회를 간단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던 해 1998년1월 평균 출석을 보면 주일 낮 예배에 665명이었습니다.

오후 찬양예배는 276명, 수요기도회는 143명으로서 주일 낮 예배 출석 기준으로 할 때, 오후찬양예배는 41.5%, 수요기도회 참석은 21.5%였습니다. 반면에 금년 1월 평균 출석을 보면 낮 예배가 1,320명, 찬양예배가 450명, 수요기도회는 327명으로서, 출석률을 보면 찬양예배는 34%, 수요기도회는 24.7%였습니다. 8년 전보다 저녁예배 출석률이 7.5%떨어졌고, 수요예배는 오히려 3.2% 높은 출석률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수요일은 낮에 1부가 있기 때문에 더 높지만 저녁에만 기준으로 했?때 약19%로서 2.5%정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재적 교인 대 주일 낮 출석율도 보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도시교회 중심으로 보았을 때 재적대비 70-80%사이였으나 현재는 60-70%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약10%가까이 낮아졌습니다.

삶이 부유해질수록 신앙심이 약화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지만 하나님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있다고 고백하는 신앙임을 볼 때 예배 참석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예배에 대한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배가 당신의 신앙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높습니까? 모든 시간 중에 가장 우선입니까? 아니면 제2, 제3의 순위로 밀려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동창회, 회사직원 회식, 집안 모임, 교회의 각종 모임, 예배 모임 등 여러 가지가 겹칠 때에 여러분은 어느 모임을 가장 우선에 둡니까?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신앙심을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제가 오늘 예배에 관한 말씀을 하는가 하면 예배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성도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중요성이 점점 약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예배에 실패할 때에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예배를 위해 창조하셨는데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벨은 예배에 성공함으로 순교자가 될 수 있었지만, 가인은 예배에 실패함으로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석유재벌가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둔 록펠러는 세계제일의 부자였습니다. 뉴욕에 가면 록펠러 제단 빌딩이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안에서 키웠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아들 록펠러에게 남긴 유언이 아홉 가지 있는데, 그 중에 두 가지가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는 ‘예배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으라’는 것이었고, 다음은 ‘주일 예배는 본교회에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하나님 없는 삶에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지식과 물질과 과학과 쾌락이 우리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 보면 주인공 파우스트는 인간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고민합니다.

허무함에 빠지고 허탈감에 빠져서 걷잡을 수 없는 파우스트는 자살을 하려고 집을 떠나게 됩니다. 그 때에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땡- 땡- 하면서 종소리가 울립니다. 교회 종소리는 신령한 소리입니다. 하늘의 종소리입니다. 내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입니다. 나를 부르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파우스트는 깨달았습니다. 그곳에서 찬송 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그는 교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 놀라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새로운 마음에 기쁨을 얻었습니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자신도 모르는 기쁨과 감사와 소망을 마음에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몸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 최고의 가치와 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기뻐하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 인간은 새 힘을 얻어서 능력 있는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현대인들의 제일 큰 병이 뭔지 아세요. 모르는 병이랍니다. 잠이 안오는데 왜 안오는지 모릅니다. 전문가에게 물어도 모릅니다. 집이 싫은데 왜 싫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정을 떠납니다. 아내가 싫어지고 남편이 싫어지는데 왜 싫어지는지 자신도 모르겠답니다. 별로 문제가 없는데 괜히 싫대요. 아프기는 아픈데 왜 아픈지 모릅니다. 어디에 병이 있는 모릅니다. 그런데 아픕니다. 병원에도 가봐도 잘 모릅니다.

온갖 사진을 다 찍어도 몰라요. 기다려보자고 합니다. 두고 보자고 합니다. 이런 답답한 일이 있습니까? 괜히 살기가 싫어집니다. 왜 싫은지 모릅니다. 잠이 안옵니다. 왜 안오는지 모릅니다.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디에서 오는지 모릅니다. 우울합니다. 왜 우울한지 모릅니다. 공부하기 싫어집니다. 왜 공부 하기가 싫은지 몰라요. 그냥 하기 싫답니다. 인간에게 닥치는 현대인들의 문제는 다 몰라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왜 모르는지 아세요.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인간의 해답이 나옵니다. 왜 인간이 자살합니까?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어 가는데 왜 이렇게 자살률이 갑자기 높아집니까? 왜 인생을 살만큼 살은 노인들의 자살이 많습니까? 이유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고독합니다. 왜 고독한지 모르게 고독합니다. 그래서 자살을 합니다.

여러분 인간이 행복하게 유익하게 사는 길은 우리를 보내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에게는 무한한 은혜와 능력과 가치와 시간과 모든 생애 하나하나가 하나님 앞에 중요하고 요긴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73 : 25 “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인간이 예배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수시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정한 절기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정해 놓으신 주일에 나아가야 합니다. 수요일에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나아가면 좋아하실까요? 시100편1-2절에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고 했습니다.

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믿음은 자신의 부족을 아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것이나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시95편6절에 보면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쇠퇴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가 쇠퇴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한 두 가지를 지적하면, 예배보다 회의가 많습니다. 예배나 기도회에는 참석하지 않지만 회의에는 참석합니다. ‘성경공부합시다’. ‘성경을 읽읍시다’라고 하면 시간이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의하자면 참석합니다. 예배시간은 10분만 길어져도 길다고 아우성인데 회의는 얼마나 길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은 교회보다 기관이 많아지고 발달합니다. 교회는 힘이 없어지지만 교회를 배경으로 한 기관은 발달합니다. 장로회연합회, 여전도회연합회, 남선교회 연합회, 영남지역노회장협의회, 목사회, 동기회 동문회, 총동문회 등등 교회보다 기관이 많아지면 교회가 쇠퇴하는 징조입니다. 예배참석은 잘 안하면서 그런데는 빠지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 신앙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1세기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교회적으로 신앙을 가진 우리 개개인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심히 고달프게 만듭니다. 인간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만남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만남 가운데 인간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편 73편28절 하반 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만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가장 확실한 만남은 예배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가 성공해야 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다 실패합니다. 성공적인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로마서12장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인 예배란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그의 법철학 강요 서론에서 “이성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가장 이성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이라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영적이란 말은 이성적이고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입니다.

영적이란 말은 ‘합당한’‘옳바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최상의 분에게 최상의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를 드리는 것이 영적이라고 한다면 산제사란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채로 드리는 제사요, 생활 전체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배는 다른 사람이 대신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시간에 빠지면 안됩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예배드리는 자는 반드시 제물을 준비하여 자신이 직접 제사장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 제물을 가지고 대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반드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예배가 되려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의 모든 지체를 동원하고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만 와 있어도 안되고, 마음만 있어도 안되고, 영혼만 있어도 안됩니다. 몸은 왔으나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있다면 예배드릴 때 하나님 생각보다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은 있으나 몸은 예배드리는 곳에 와 있지 않다면 진정한 참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영혼을 담고 있는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제사를 드리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하는가? 헌금이 아니라 삶의 거룩성을 말합니다. 이사야 1장 16-17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몸으로 참여하는 예배이지만 그 참여한 몸이 산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할 행동규범이 따라야 합니다. 예배는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드리러 오는 것이지 보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보러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가 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5살에 왕위에 올라 72년간 집권했던 왕입니다. 당시에 페넬론이라는 궁중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정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예배당 안에는 설교자 혼자만 있었습니다. 루이 14세 왕이 “오늘은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고 묻자, 설교자가 대답하기를 “임금님, 오늘은 임금님께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아니, 왜 예배 참석을 안한다고 광고를 하였소?” 설교자가 대답하기를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고, 누가 임금님께 아첨하려고 오는지를 친히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배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려고 오는 것입니다.

둘째, 준비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15장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시기 전에 먼저 요구한 것이 예배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이것은 모두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드리는 제물들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할 때 예배를 통해서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가장 우선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반드시 제물을 준비해야 하듯이, 우리들도 반드시 하나님께 준비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준비된 예배란 희생이 따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이미 시간의 희생입니다. 헌금도 희생입니다. 우리들도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려면 여러분이 무엇으로든지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희생의 제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대로 드려진 예배가 됩니다. 그래서 봉사가 중요합니다. 헌금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 준비케 하여 드리게 했던 제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말씀하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한 말씀은 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드려라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이란 로마서의 ‘산제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마음에 우러나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매일가는 학교라도 준비가 필요하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라도 준비가 필요하다면 적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준비가 없다면 그 예배는 드려질 수 없는 예배가 되고 맙니다. 철저한 준비는 드려질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큰 은혜로 넘치는 예배가 됩니다.
셋째, 예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17절 말씀 “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아브라함은 준비한 제물 가운데 새를 제외한 나머지 제물은 잡아서 가슴을 양쪽으로 쪼개어 열어젖히고 그것을 단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불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불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임재를 말합니다.

예배는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불이 맨 마지막에 내려오듯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마지막에 임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아침부터 재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재물을 준비해 놓고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기다렸는데 좀처럼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두 눈을 부릅뜨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12-16절의 말씀을 봅시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서산에 해가 질 때까지도 하나님이 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잠이 와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해가지고 땅거미가 찾아오니까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이 말씀을 마치실 때에 비로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쪼개어놓은 사이로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9장에 보면 모세는 아론과 그 아들을 불러 속죄제와 화목제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했습니다. 아론은 모세가 시키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사를 회막에 와서 드렸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모두가 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2-24절에 보면 아론이 제사를 다 드린 후에 나와서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였다고 했습니다. 손을 들어 축복했다는 것은 오늘의 축도와 같습니다.

“아론이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와서 백성들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이 제사를 다 드리고 나올 때까지 마당에서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지 못해서 되겠습니까? 오늘날 참지 못하게 만드는 시대적 문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다른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를 끝까지 기다리며 예배가 끝나기까지, 말씀이 끝났다고 예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축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됩니다.

넷째, 예배의 방해를 막아야 합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거리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예배를 잘 드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꼭 사단이 찾아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제물을 준비해놓고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기다릴 때에 솔개들이 제물을 낚아채려고 내려앉았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솔개를 쫓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습니까?

여기서 솔개는 사단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여러분의 마음을 빼앗아가려고 걱정거리를 만들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괜히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혹시 내가 가스 불을 끄지 않고 온 것은 아닌가? 아니면 문을 잠그지 않고 온 것은 아닌가? 준비는 다 되었는데,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아니면 드리고 있는 중간에도 방해를 합니다. 헌금을 준비해 놓았는데 다른 곳에 쓸 일이 발생하여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사헌금을 드려야지, 건축헌금을 드려야지 하고 준비해놓았는데 느닷없이 쓸일이 생긴다는 것은 솔개가 내려와 제물을 낚아챈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솔개를 다 쫓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예배를 가로 막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발생하더라도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예배를 잘 드리면 어떤 복이 오는지 아십니까?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면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습니다. 어른의 말을 잘 들어도 떡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면 떡만 생기겠어요.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삶이 풍요로와 집니다.

아브라함이 하루 종일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렸을 때 마침내 불이 임하였습니다. 불이 임하여 제물 중간으로 지나갔을 때, 바로 그 시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

몇 년 전에 서해안에 낚시를 갔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으로 배가 뒤집어서 정부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과장급 몇 사람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있었던 한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날에 낚시를 가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명성교회에 초신였다고 합니다. 아내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남편이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아내의 권유에 의해 등록하고 교육을 받아 세례를 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주일날에 부처 안에 동료 과장들이 낚시를 가자고 해서 아내에게 가겠다고 하니까 아내가 남편을 보고 ‘여보. 오늘은 세례 받아야 되는데 당신 안가면 안돼요’ 그렇게 매달렸습니다. 부인 말을 잘 들으면 만 가지가 덕을 봅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별난 부인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 동료들은 낚시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으로 배안에 있던 동료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 남편도 아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 날 주일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었습니다. 주일 날 하나님이 부르시는 예배당에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엉뚱한 곳으로 가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그것이 곧 신앙의 성공이요, 인생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