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9:4-19 변함없는 신앙
어떤 시집 간 딸이 친정 어머니를 찾아 왔습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포기하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부엌에 들어가서 냄비 3개를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딸이 보는 앞에서 그 냄비에다 물을 각각 넣고 하나에는 당근을 담그고
또 하나에는 계란을 담그고 하나에는 물에 커피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전부다 가스 불에 올려놓고 끓일 때까지
한 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들이 이제 다 끓었습니다.
그제야 친정 어머니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 이것들을 한 번 봐라.\"
\"똑 같이 다 끓었다.\"
그런데 어떻게 생겼느냐? 한번 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뚜껑을 열어서 당근을 끓인 것을 보니까 단단한 것이 물렁물렁 해졌습니다.
다음에 계란은 물건에 닿으면 금방 깨질 것같은 것이 아주 단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는 물속에 녹아서 따끈하게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기서 끓이는 불은 우리에게 있어서 연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시련이 왔는데도 당근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계란같은 사람이 있고 커피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근같은 사람은 시련이 오기 전에는 단단해서 무엇인가 하고 있는 사람 같이 보이지만
연단 안으로 들어가자 물렁물렁해 졌습니다.
시련이 오니까 신앙이 물렁물렁해져서 더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계란같은 사람은 끓이기 전에는 금방 깨질 것 같지만 많은 연단을 통과하고 나니까 단단하게 되어서 어떤 어려움에도 얼른 안 깨어지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평소에도 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할까라 의구심을 갖지만
의외로 시련 앞에 단단해 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커피같은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커피는 물속에 자기가 녹아서 들어가서 물 자체를 변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을 통과하고 나서 자기가 없어 짐으로 인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당근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계란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커피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스스로 우리 속에서 한번 점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오면 금방 물렁물렁 해져서 금방 환경에 넘어져 버리는 사람인가요?
어려움이 와도 도리어 더 단단해져 쉽게 넘어가지 않고
어려움을 자신의 유익으로 삼고 그것을 통해서 완전히 바꿔고 변화되어
꼭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는가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당근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래도 계란같이 그때는 조심스럽고 금방 깨질 것 같지만 열을 가하고 나니까
단단하게 되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또 더 좋은 것은 커피같이 내가 물에 녹아져서 완전히 그 속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금방 흔들려 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직 성숙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어떤 때도 흔들리지 않고 늘 변함없이
우리 주님의 심정을 알고 우리 주님의 애쓰심 알고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늘 깨닫으면서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내용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다 완성하고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난 다음 7월 24일 날
이스라엘 모든 민족들이 많이 모여서 민족적으로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데
레위인 8사람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일어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마땅이 일어나 하나님을 송축하고 경배해야 한다고 하면서
옛적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도 주시고 마음이 충성됨을 보시고 이 땅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말씀대로 이루셨으니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고 높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많이 모르고 배반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시내산에도 강림을 했고 그리고 율례를 주었다 또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하나하나 인도를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변함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을 하면서 선민으로서의 사상을 고치시키면서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회개의 계기가 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베풀었지만
우리가 그렇게 따라 가지 못했다고 하는 그런 부분을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우리가 이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해서
이 말을 듣고 다 회개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왜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7절과 8절입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왜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해야할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금 이 레위인들은 아브라함을 가지고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일어나 여호와를 송축하고 경배해야 된다고 하며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갈대아 우르에서 있었는데
그 중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을 했으며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도 주셨으며마음이 충성됨을 보시고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시며 가나안 7족속의 땅을 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약속을 이루셔서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고 고백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브라함 때부터 느헤미야 때까지 어떻게 이끌어 오셨느냐?
구속의 역사를 한번도 단절되지 않고 때로는 축복으로 인도하시고 때로는 징계를 하시기도 하시면서 계속되었는데 선민의 모습을 많이 상실하고 있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부심을 고취시키며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손길을 회고하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느냐를
쭉 설명하면서 잘못 살아온 것을 지적을 하여 회개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올바르고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우리를
하나님이 핀센트로 집어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가슴 뭉클하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 같이 큰 축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속에는 자꾸 현실적인 축복을 얻어 보려고
자꾸 애를 쓰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마움 이외는 다른 것을 말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가나안 땅에 집어넣으시고
거기에 있는 가나안 7족속을 다 쫓아내고 아브라함을 거기에서 살게 하겠다고
하나님이 약속을 했는데 여호수아때 그것을 다 이루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인도해 주셔서 정말로 하나님은 너무나너무나 귀한 분이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 나 같은 사람을 택하시고
지금 까지 인도 해 주시는 것이 우리 안에서 늘 감사함으로 느껴질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택하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다 있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편23편에 2절에서 4절까지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이것을 썼는데 여덟 아들 중에 막내인 다윗를 택하시고
지금 왕으로 택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것이 너무나 깊게깊게 안에서 느껴져서
이렇게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다윗이 고백하듯이
이렇게 고백하며 늘 변함없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더는 포로로 바사에 가서 있었는데 왕후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다 죽일려고 하만이 음모를 꾸밀 때에
왕후라도 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나가면 왕후도 죽습니다.
왕이 홀을 내밀지 않으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으면 죽으리라 3일 금식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왕 앞에 나갔더니 왕이 홀을 내밀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하만을 뒤집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이 에스더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자기 혼자 왕후 되어서 잘 먹고 잘 살면 참 좋겠지요?
그런데 자기 혼자가 아니라 민족을 먼저 생각을 하고
나 같은 사람을 왕후로 택해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사오니
나도 우리 민족을 위해서 애를 써야 되겠다고 변함없는 신앙으로
왕 앞에 나아갔더니 하만이 죽는 큰일을 하는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에스더와 같이 정말로 죽으면 죽으리다 변함없는 믿음으로 나가서
하나님께서 택해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늘 내가 감사하며 신앙생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자 두 번째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9절 10절입니다.
\"주께서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고난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저희가 우리의 열조에게 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왜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해야할까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애굽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에게 이스라엘 열조가 고난받는 것을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부르짖는 것을 들으시고 홍해에서 기사를 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혀 있고
양 옆으로는 도망갈래야 갈 수 없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광야인데
그 속에서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지게 해서
바로 이 바로의 군사를 홍해 속에 다 수장시키고
그 사람들을 다 죽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으며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춰주시고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율법을 주셨으며 주림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를 주시고
목마름으로 인하여 반석에서 물을 주셨으니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그러면서
변함없는 신앙을 가지라고 오늘 이 본문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찰하시고 그 홍해의 고난에서 건져 내셔서
광야를 가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지금도 지켜보고 계시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내가 얼마나 지금 위험에 처해 있는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보고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옆에 계시고 우리 앞에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어떤 고난이 와도 홍해를 갈랐던 그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을 알고
고난에서도 구원해 주섰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을 하며
또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내가 어떤 형편 처지가 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고난에서 구원해 주시는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을 가슴속에 늘 기억을 하고 그 때 그 하나님이 변함없으시기 때문에
오늘도 나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늘 기억을 하고
또 인식을 하고 변함없는 신앙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하 22장 3절에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이렇게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성품을 여러 가지로 고백을 하고 있듯이
우리도 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고난에서라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구원을 해 주신 것을 우리는 늘 기억을 하고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 모든 삶을 그 분이 다 아시고 보시고 나를 지금도 인도하시고 계시며
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하나님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사실을 우리는 알아서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변함없는 신앙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사람은 원래 베들레헴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드니까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과 같이
모압 땅으로 가서 그 흉년을 피해 보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10년을 있다가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며느리 둘만 남았는데 베들렘헤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서 돌이갈려고 하는데
젊디젊은 며느리들을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며느리들의 고향 자기 친정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룻은 친정으로 안 돌아 갑니다.
늙은 시어머니를 기어이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때 행색이 얼마나 초라했겠습니까.
동네를 들어가니까 동네 사람들 전부가 다 \"저 나오미가 아니냐고 반가워했습니다\"
나갈 때는 풍족하게 나갔는데 돌아올 때는 아무 것도 없고
여자들만 보따리를 가슴에 이렇게 안고 왔어요.
동네 사람들이 오래만에 만나서 반다워하며 나오미라고 하니까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고 합니다
나오미라는 말은 기쁨이라는 말이고
마라란 말은 쓰다, 고통스럽다, 슬퍼다 그런 뜻입니다.
지금 나오미의 마음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다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져요
룻이 이삭을 주으려고 도착한 그 장소가 보아스 밭이예요.
룻이 돌아온 그 때가 추수 때예요.
보아스가 룻의 남편이 되잖아요.
나오미는 자식을 낳아서 두 명 다 죽어 버렸어요.
그런데요. 이제는 며느리가 와서 보아스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들을 낳는데 오벳이라고 낳았어요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종이라는 뜻의 오벳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나오미는 그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자기가 낳지 안았지만 자기가 난 것으로 되었어요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던 그 하나님을 아마 일평생 기억하며
살아갔던 사람이 나오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에서 구원해 주시는 그 하나님을 나오미는 만나서
정말로 그 삶이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는 그런 신앙생활을 했을 줄 믿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고 얼마든지 우리가 잘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만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변함없는 신앙생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아 9장 16절 17절입니다.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왜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해야할까요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범죄해도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일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12명을 각 지파에서 대표자를 뽑아 준다고 하셨던 가나안땅을 정탐해 오라고 했습니다.
두 명은 거기를 올라 가자고 하며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10명은 가나안 족속들이 커서 그 거인들을 이길 수 없다고 못 간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준다고 하니까 얻어야 되는데 그것을 못 얻는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전부 38년을 돌리십니다.
범죄해도 또 다시 하나님이 올라가도록 그 구세대는 다 처리하고
신세대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서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요. 범죄 해도 자비를 베푸신다고 17절 아래에 보면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구세대는 다 떠나가게 하고 신세대를 통해서
그 땅을 올라가게 자비를 베푸셨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얼마든지 범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우리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날마다 변함없는 신앙이 우리에게 늘 펼쳐지고
우리 주님을 늘 기쁘게 해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를 해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늘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죄지을 때마다 다 심판을 받는다면 이 세상에서 살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말을한 사람부터 진작 다 죽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만큼 자비로운 분이시고 그 만큼 은혜가 많으신 분인 것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 그 많은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에
우리도 변함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에게 보답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2절 보면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을 줘도 그것은 좋은 것을 주기위한 준비 작업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란 겁니다.
그 어려움을 줄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란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함없는 신앙생활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범죄에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변함없는 신앙생활이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사밧이라고 하는 사람은 유다의 왕인데 자기 아들과 아합이라고 하는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하는 왕의 딸하고 정약적으로 결혼을 시켰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사람하고 같이 짝짜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대로 아합의 딸하고 결혼시켜서
여호사밧 아들에게 며느리를 들였는데 \"아달라\"라고 하는 며느리를 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랴가 와서부터 아합 집안에 우상을 집 안에 들어와서
여호사밧 이후부터는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요.
여호사밧은 아합하고 전쟁하려고 같이 나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올 때
예후라고 하는 선지자가 왜 그런 나쁜 사람하고 힘을 합했습니까?
왜 거기에 같이 나갔습니까?라고 지적을 하니까
왕이 그 예후 선지자를 바로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예후 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범죄 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내가 오늘날 살게 해 왔어요라고
이 왕이 속으로 생각하고 그 때부터 신앙을 개혁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개혁을 했던 사람이 바로 이 여호사밧 입니다.
범죄해도 자비를 베풀었던 것을 여호사밧은 늘 기억을 하고
다음부터는 하나님 앞에서 늘 변함없는 신앙으로 신앙생활하여
나라를 잘 다스렸던 사람이 여호사밧이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범죄해도 자비를 베푸신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늘 변함없는 신앙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변함없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죄해도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 앞에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 앞에 늘 감사로 영광 돌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