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7;11-23 영적인 눈
사무엘하 17장 11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으로
영적인 눈을 가져야 될것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보겟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 찰스 엘리엣이라고하는 총장이 있
었는데
그 총장에게 어느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총장이 보니깐 자기하고 만날려고 오면 그래도
어떻게 정장도 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와야 될 것으로 생각하고 나가서 보니까
행색이 별로 아닌 부부가
기부를 한다고 하니까 조금 기부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잘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일이 바쁘다고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부부가 대접하는 것이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니게
대접을 하니까
거기서 죄송하다고 일어서서 나왔습니다.
그 두 부부는 캘리포니아에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자기 아들이 전쟁에서 죽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따서 대학
교를 설립할려고 왔는데
하버드 대학 총장이 대접을 그렇게 하니까 캘리포니아에서
대학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것이 서부의 하버드라고하는 스탠포드 대학입니다.
스탠포드라는 전쟁에서 죽은 그 아들의 이름을 따서 스탠포
드 대학을 설립했던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그 총장은 겉만 보고 돈을 얼마나 기부하
겠느냐 생각하고 무시를 했던 겁니다.
하버드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이라가거기다가 기부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부부가 거기를 갔었지만 그 총장이 함부로하는 것 때문에
여기는 아닌가보다 생각을 하고 캘리포니아 자기 고향으로
와서 거기다가 큰 대학을 설립한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은 겉모습만 봤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진짜 큰 돈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볼 때 육신적인 눈으로 내 생
각으로
내 입장에서만 보면 오해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적인 눈을 뜨고 어떤 것을 볼 때도
하나님이 무엇을 보게 하실까?
하는 믿음과 생각과 그런 관점을 보고 거기에 들어가서 봐
야 올바로 봐질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은 얼마나 아까웠겠습니까? 어마어마한
돈을 기부하러 왔는데
옷 행색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 사람을 내보냈는데 스탠
포드 대학을 설립하겠다고
신문에 얼마나 많이 발표가 됐겠습니까?
그런데 그 하버드 대학교 총장은 겉으로만 보고 그랬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보이는 모든 현상 내 입장에서 내 관점에서 내
방법으로 보게 되면
상대방도 오해하는 것이고 또 진짜로 하나님이 보게하는 것
을 못보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아주 좋은 모사꾼이 후새와 아히도벨이
라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상의를 했었는데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으로 넘어가 버렸지만
후새는 다윗 편에 서자 다윗이 너는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
서 일어난 일을 다윗한테 얘기를 해주라고 부탁하여 후새가
성 안에서 일어난 상황을 제사장 사독의 아들과 아비아달
의 아들이 엠노겔 샘 곁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계집종을 통
해 전해 주었는데 지금 성 안에서는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청하기를 12,000명의 군사를 주면 다윗을 치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에 그 제안이 채택이 돼서 다윗을 치러갔으면 다윗 군
사는 다 죽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후새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자고 그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후새는 벌써 그것을 다 알고무엇이라고 하냐면 다윗은 어마
어마한 장군입니다.
절대로 군사랑 같이 안잘껍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까지 전쟁에서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후새는 시간을 벌려고 온 이스라엘을 동
원해 많은 군사를 가지고
다윗을 치자고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압살롬이랑 다른 많은 사람들이 후새의 의견이 옳
다고 그것을 선택합니다.
그랬더니 후새가 얼른 계집아이한테 그 사실을 얘기해서
다윗에게 빨리 오늘 저녁에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가라고 얘
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독과 아비아달의 두 아들이 계집아이의 전해준 소
식을 듣고
다윗에게 얘기를 해서 다윗은 도망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은 자기의 의견이 압살롬에게 채택되지 못
한 것을 실망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자살해버리는 그런 오늘 사건의 내용
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눈으로 사건을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영적인 눈으로 이 사건을 봐야 될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자 먼저 11절과 14절을 보겟습니다.
나의 모략은 이러하니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
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
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
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
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어떤 영적인 눈으로 이 사건을 봐야 될 것인지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어 가시네 라고
보아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 아히도벨의 모략은 17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
니다.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
의 뒤를 따라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
만 쳐죽이고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이렇게 아히도벨이 자기 의견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4절에 보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
을 옳게 여겼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윗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후새도 부르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건이든지 우리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을 꼭 이루어
가신 줄을 알아야 됩니다.
아히도벨이 이 모략을 냈을 때 만약에 시행되었다면 다윗은
다 죽습니다.
그런데 압살롬 마음에 누구를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예
요?
후새... 다윗 편의 스파이가 그 속에 들어 있어요.. 후새는
다윗편 사람이예요.
후새가 스파이인지를 모르고 압살롬이 하는데 이것이 하나
님이 하신 일이다 이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되어지는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왜 일이 이렇게 됐느냐 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
나님이 작정하신 것을 이루어 가시네.. 이렇게 우리가 고백
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눈을 뜨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새가 압살롬 앞에 나가서 얘기를 합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은 성치못합니다. 반대 의견에 섭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8절보세요.
왕도 아시지 않습니까? 왕의 부친과 종자들은 용사예요
.
들에 있는 곰의 새끼를 빼앗긴 것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
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이 아닙니까?
백성과 절대 같이 자지 않을꺼예요. 이제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있을 거예요.
혹 무리 중에서 몇명이 엎드러지면 소문을 듣고 압살롬을
쫓는 자 가운데서
패함을 당하였다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큰일을 당합니다.
비록 용감하여 사자같은 자의 마음이라도 절망할 것이니..
즉 만약에 몇 사람이 거꿀어지면 다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부친은 영웅이요
그 종자들도 용사인줄 알 것 아닙니까? 라고 이유를 설명합
니다.
11절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께로 모으세요.
그리고 왕이 친히 나가세요.
이 말은 무엇입니까?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을 얘기한 것입
니다.
시간 벌면 다윗을 도망가게 만들고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만드는 시간을 줄려고
이렇게 후새는 모략을 베풀었습니다.
자 그랬더니 14절에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4절에서는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아히도벨의 모
략을 옳다고 얘기했는데
이제는 후새가 얘기하자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
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밑에 써져있어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릴려고요.. 그렇게 하신 것
입니다
왜요? 압살롬이 지금 잘못하고 있거든요.
다윗은 잘못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압살롬은 아버지 것을 뺏을려고하는 하나님 앞에 올
바르게 서 있지 않은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시기 때문에
화를 내릴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인 12,000명으로 다윗
을 쳤으면 다윗은 다 죽었습니다.
그 좋은 모략을 파하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우
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어 가시네.. 이렇게 우리는
항상 영적인 눈을 뜨고
이렇게 영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건을 봐야 됩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게 됩니다.
왕은 완전히 하만 편에 넘어가 있습니다.
삼일을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라라 하고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갑니다.
그랬더니 왕이 금홀를 내미는 거예요. 금홀을 내밀면 왕후
를 받아드린다는 거예요.
왕 앞에 누구든지 왕의 허락이 없이 오면 다 죽습니다. 그
런데 홀을 내밀면 삽니다.
왕후가 오니까 하나님이 뿅가게 만든 것이예요.
한달 동안도 왕후가 왕 앞에 나가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삼일을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가니까 왕이
눈이 뿅가버린거예요.
어찌 그날은 이쁜지 저좀 보시라니깐요. 왕후 앞에 이렇게
내밀었어요.
그때 왕후 에스더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작정
하신 것을 이루시네
우리 다 한번 따라해요.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
네..
이런 눈으로 우리가 봐야된다는 거예요.
항상 내편에서 보면 오해가 되고 내편에서 보면 전혀 다르
게 봅니다.
항상 하나님 편에서 고백을 하면서 에스더가 아마 그런 고
백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일이든지 볼 때 하나님이 이루시네. 이렇게 보
시라는 겁니다.
두 번째 봅니다.
두 번째는 18절과 19절을 봅니다.
한 소년이 저희를 보고 압살롬에게 고한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
다가 우물 아구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도무지
알지 못할러라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네 라고 보아
야 됩니다.
이제는 후새의 모략이 압살롬에게 선택됐습니다.
그러니까 후새는 빨리 계집아이한테 그 소식을 알려요.
그러면 엔노겔 샘에서 사독과 아비아달의 두 아들들이 거기
서 기다리고 있으니 전달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두 아들들이 다윗에게 가고 있는데
그 사이에 누가 압살롬에게 그런 사실을 얘기했던 겁니다.
그러자 거기에 압살롬 군사가 쫓아왔습니다.
그들이 바후림에 있는 우물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우물 위를 덮어서 곡식을 말리는 채하
고 이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치 군사들이 와서 물어보는 말이 여기 두사람
못봤냐는 겁니다.
아니 저쪽으로 갔어요.. 지금 어디있죠? 우물 속에 들어있
잖아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
니다.
지금 바후림에 있는 그 여인이 결정적으로 살려줬잖아요.
그렇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항상 하나님은 안보이세요. 영이세요. 누구를 통해서 일하
시냐..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데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일하느냐?
하나님에게 나를 드리고 싶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가 많
은 사람
하나님 것이 되고 싶은 사람 즉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그 여인이 결정적으로 누구를 살린 것입니까? 다윗을 살렸
습니다.
다윗이 누굽니까? 구속사에 큰 주역의 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 다윗이 안죽이려고
다윗을 하나님이 살릴려고 누구를 사용한 것이예요? 그 여
인을 사용했어요.
나중에 그것을 다윗이 알고 그 여인에게 얼마나 고맙게 생
각했겠습니까?
아마 여기 성경에는 안나와 있지만 그 여인을 불렀을 것입
니다.
환궁해서.. 불러서 정말 고생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역사하시네.. 이렇게 우리
는 얼른 고백을 하고
그런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 갑니
다.
그럴 때 항상 우리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되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이렇게 역사하시네.
.
그렇게 볼 수 있는 눈이 떠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사독과 아비아달의 두 아들이 다윗에게 소식을
전할려고 가다가
압살롬의 그 부하가 압살롬에게 얘기하니까 완전히 일이 깨
져버린 것이예요..
다윗은 그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그 소식을 전할려고 하는
그 두 아들을 잡아서 죽일 것이고 다윗을 쫓아가서 다 멸해
버릴 것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를 안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누구를 사용했어요? 우물이 있는 그 여인을 사
용해서
두사람을 우물속으로 집어 넣어서 곡식을 말리는채하고 거
기서 거짓말해서
도망가도록 만들어 버렸던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
시네 라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하는 영적인 눈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
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은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고 난 이후에 전부다 평정을 하고
요나단 때문에 항상 마음이 걸려서 나라가 안정이 되니까
사울에 집에 누가 살아 있느냐 그렇게 신하에게 묻습니다.
그랬더니 한사람 요나단의 아들이 있다고 그럽니다.
난을 피할 때 므비보셋을 떨어트려서 절뚝발이가 되어 있었
습니다.
그런데 데려오라고 그럽니다. 제일 처음에 마길도 므비보셋
도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막상 가보니깐 한상에 밥을 먹이시는 거예요.
므비보셋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감격, 감격 그 자
체였을것입니다.
므비보셋이 하나님이 다윗왕. 우리 아버지를 통해서 역사하
시네..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22절입니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쎄 새벽에 미
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아히도
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
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
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육적인 것을 끝나게 하시네 라고 보
아야 됩니다.
22절에는 다윗은 후새에 얘기를 듣고 다윗은 다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이 그 소식을 듣고 이제는 자기 모략이 하
나도 선택되지 않았다는
서러움 때문에 자기집으로 가서 목매 달아서 죽어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신 것
입니까?
육적인 것은 끝나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후새는 더 엉터리 모략입니다. 모략으로 보면 아까 14절보세요.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떤 모략이라고 말하죠? 좋은 모략이
라고 했잖아요.
아히도벨의 모략이 좋은 모략이래요.
그런데 후새의 모략이 채택된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작정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후새의 손을 들어주고 아히도벨의 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왜요? 육적인 것은 끝나게 하실려고 그러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어떤 삶속에서도 영적인 것은 오래갑니다.
영적인 것은 분란이 없습니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육적인 것은 문제가 발생되고 자꾸 분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목매어 죽었다 이
말입니다.
육적인 것은 끝내버리시네..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이런 영적인 눈을 가지라고 가르쳐 주고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항상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냐면 영육간에 있을 때 우리
성경 한군데만 찾아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5절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멉니까? 사망입니다. 아히도벨의 생각은 사
망밖에 안됩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후새의 생각은 생명과 평
안이어서 다윗을 살려주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
왜? 아히도벨은 도와야 할사람을 돕지 않았습니다. 아히도
벨은 압살롬을 도왔습니다.
압살롬 자체가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잘못하고 있지만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있는 왕입니다.
이걸 우리는 잘 분간을 해야됩니다.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한
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보세요.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
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끝내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예요.
육적인 것은 다 끝나게 해버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가 늘 생각하는 그런 영적인 눈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유다가 멸망하기 바
로 직전에 항상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하는데 70년 있으면 돌아온다 그러니 항복하라고 계
속해서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왕은 얘기를 듣지 않습니다.
누구의 얘기를 듣느냐 하면 2년 있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하
나냐라는 사람 얘기를 듣습니다.
하나냐는 자기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누가 더 인기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누구 따라갈래요? 하
나냐 따라갈래요?
예레미아 따라 갈래요? 예레미아는 70년 있다가 돌아온대
요. 아이고 나 다 죽어버리겟다.
2년있다가 돌아온다는 하나냐를 따라가야겠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달 있다가 하나냐를 데려가 버려요
.
육적인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아요.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뜻만을 전해요.. 결국 70년있다가 돌
아오게 됩니다.
영적인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항상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일을 보면 하나님 앞에
서 육적인 것은 끝나게해버리시네? 이렇게 보는 영적인 눈
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왜 이러실까? 왜 저렇게 하실까? 라고 하는 눈이 아니라
우리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들도 만나고 사건도 만납니다.
하버드 대학교 총장은 겉으로만 보고 진짜 큰돈을 가지고
기부하러 온 사람을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서만 보고 그 사람
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사람을 만나고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항상 우리는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네. 하는 영적
인 눈을 가져야 되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네 하는 영적
인 눈을 가져야 되고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육적인 것은 끝나게 해버리시네 하
는 영적인 눈을 가져서
날마다 사건을 올바로 보는 영적인 눈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뤄가는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