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건강한 목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1-33page)
UBS 실천신학 박사원
노원두
건강한 목회
1)교인수
건강한 목회와 교인수에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익명성이 아니라 정체성을 전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300명이라고도 하고 400명이라고도 하고 적게는 200명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건 중요한 것은 상호 간에 정체감을 가지고 만날 수 있는 규모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사회적인 참여
그러나 또 한 가지 교회의 건강함의 조건에는 교회의 외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외향성이라 함은 사회적인 참여를 의미합니다.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실로 건강한 목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너무 적은 인원이다 보면 사회적 참여가 별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공동체 내부의 와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반면 너무 많다보면 회사처럼 사업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로 변질되는 한계도 많이 노정됩니다.
3)소교회지향
언젠가 작은교회 네트워크 모임에서 우리가 말하는 작은교회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선 쉽게는 숫자적으로 정의하는 것입니다. 회원들은 대략 3-500명 가량 모이는 교회에 담임을 해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교회의 분기점은 몇 명이냐는 질문에 맥시멈 300명 정도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습니다.
평화적으로 의사소통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모두가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규모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건강성은 담보되지 못할 것입니다.
4)달란트와 적성에 따라서 교회의 규모
교회도 메가처치만이 살아남는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로만 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다 메가처치의 꿈만 꾸고 있을 때 심각해집니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와 적성에 따라서 교회의 규모(물론 그것이 우리 계획대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를 가늠해보고 목표를 세워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평화교회 세미나참조)
조용기 목사 입장
(백석신학대학원 설교)
“신학생들이여, 지금 살아있는 예수를 전하라”
1)신대원에게 권면
신학대학원생들에게 ‘2천 년 전 기적을 베푸신 예수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를 전하라’고 조언했다.
▲조용기 목사가 예장백석 산하 신대원에서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목회 여정을 전했다.©뉴스미션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큰 일을 하게 됐다”
2)조용기목사의 희망 목회사역 본보기
조용기 목사는 불광동 천막교회 시절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달동네에서의 첫 목회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조 목사가 “목회 현장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말 그대로 신학은 신학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고 말하자 신대원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지금 사는 삶이 지옥인데 어디 지옥이 있느냐’는 동네 아주머니의 고함소리와 귀신 들린 의사 부인이 새벽기도에 와서 소름끼치게 웃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기도하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신학을 잘못 알았다. 나는 죄 지은 자는 죄를 용서해 주었고, 귀신들린 사람에는 귀신을 쫓아냈고, 병든 사람은 낫게 해 주었고, 배고픈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었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그 때 이후 평생의 목회 방향이었던 ‘희망 목회’를 하기 시작했다”고 조 목사는 회고했다.
이어 조 목사는 “옛날에 예수님이 귀신도 쫓아 내셨고, 병자를 고치셨고, 성령을 보내셨다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조롱을 받았을 뿐”이라며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먹고, 입고, 마실 수 있는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진지하게 예수를 믿게 되더라”고 고백했다.
당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교회를 찾았고 교회가 부흥돼 지금의 여의도에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2)꿈과 목표 있으면 어려움 가운데서도 집중하게 된다
계속된 설교에서 조 목사는 이들 신학생들에게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목회의 길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마음에 분명한 것이 있으면 방황하지 않고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늘 분명한 꿈을 그리고 집중하라”면서 “나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꿈에 집중했을 때 오늘날 까지 왔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주의 종은 온갖 시련과 환란을 경험하지만, 내 체험으로 볼 때 마지막에는 승리한다”며 “여러분에 체험을 해야 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난과 병, 고통과 같은 예수의 죽음이 우리 몸에 나타나지만 그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기 위함”이라고 신학생들을 격려했다.
조 목사는 설교 말미에서 자신이 현재 파킨슨 병에 걸려 있음을 고백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3)희망 목회를 한 것, 십자가 복음을 전한 것, 영성을 계발해 4차원 영성으로 나를 돌아본 것밖에는 없다
그는 “내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은 희망 목회를 한 것, 십자가 복음을 전한 것, 영성을 계발해 4차원 영성으로 나를 돌아본 것밖에는 없다”며 “나이 70이 넘으면서 파킨슨이라는 병에 걸려 손발이 굳어지고 입이 굳어지지만, 나는 휠체어 탄 내 모습이 아니라 건강하게 목회하고 설교하는 내 이미지를 생각한다”고 말해 신대원 학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백석대학교 대학원은 예장백석 산하 신대원으로 예장백석 교단에서 조용기 목사를 초청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출처] 조용기 목사 “신학생들이여, 지금 살아있는 예수를 전하라”|작성자 뉴미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중요한 것
1) 목회적 소명, 가르치는 소명, 기독교 기관에서 활동하는 소명,
선교적 소명, 또는 봉사적 소명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목사 후보생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신학생시절이든지,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든지, 아니면 언제든지 간에 반드시 주님께로부터 받은 분명한 소명(calling)이 없으면 시간을 허비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마냥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 나를 신학을 하게 하셨는지 늘 확신하지 못하고 사색에 빠지게 된다. 재정적 걱정과 염려, 자녀의 교육적 걱정과 염려, 가정적 책임 완수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즉 자녀로서 효도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어떤 때는 비관할 수도 있다. 이러할 때 분명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확신해야만 한다.
2)기도
이러한 소명을 갖기 위해서는 간절한 기도가 요구된다.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하고 눈물과 콧물과 하나님께 매달려야만 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늘 인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을 철저하게 점검해야만 한다. 그리고 말씀을 상고하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한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말씀과 함께 교회사에 나오는 위인전이다. 신앙의 선배들의 소명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들의 고민과 헌신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고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은은히 흘러나오는 찬송으로 인해 하나님의 소명을 확신하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3)헌신
소명을 확신한 후 가져야하는 것은 그 소명을 위한 헌신이다. 그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신학교에서 일반적인 신학들을 배워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했으면 이제 구체적인 공부를 해내려가야만 한다. 신학적 바탕을 두고 적용을 위해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뭇가지를 치는 것이나 더 크고 맛있는 과일을 위한 노력과 같은 것이다. 미국에 있는 집 뒤뜰에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열매가 맺힌다. 과일을 먹음직스럽게 하려면 다른 나무들을 눈물을 머금고 따버려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보니 작은 열매만 남고 말았다.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신학교 생활이라면 이제 맺히는 과일을 위해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것은 소명을 구체적으로 이뤄가는 작업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성취할 수 없다. 그것들 중 하나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다. 그것을 위한 노력은 마치 아까운 가지를 치고, 열매들을 버리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노력을 하나의 온전한 열매를 위해 헌신해야만 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물질이 함께 동반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헌신이 더욱 요구된다. 친구를 만나는 시간, 자신의 여유시간, 가족적 단란한 시간 등등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구체적으로 소명을 이뤄 가는데 힘이 벅찰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킬 수 없다. 그것은 욕심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들에게 주신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소명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 달린다. 그리고 마치면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영광을 돌린다.
신학생의 시기는 나뭇가지를 치듯이 자신의 모습을 말씀, 신학, 인간관계 등등을 통해 형성시켜 나가고 성장시키는 시기이다.
다일교회 담임 최일도 밥퍼 목사 목회관
창공을 제 마음대로 날으는 새들은---
1)일찍 은퇴(기득권포기)
“가난한 사람 돌보는 것도 목회활동”다일교회 담임 최일도 밥퍼 목사,
담임목사직 은퇴==54세로 은퇴
2)물질기부
봉사전념위하여 퇴직금 4억원은 장학금 내놔(2010년2월11일 부산일보22면 사람)
3)목회자의 목회마인드의 패러다임 쉬푸트/가난한 사람 돌봄이 목회
“수백명 앞에서 설교하고 세례하는 것만이 목회인가요. 가난한 사람 돌보는 것도 목회지요. 거리·골목·사창가에서도 목회는 이뤄지는 것이지요.
4)유형교회 보단 무형교회 우선
교회는 단지 건물일 뿐인 것입니다.” ‘밥퍼’ 목사로 잘 알려진 최일도(54·사진) 목사가 지난 7일 다일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놓았다.
5)후임사역자 바로세우기
최 목사는 교회에서 정한 65세 정년을 11년이나 앞서 은퇴하면서 담임목사직을 김유현42) 목사에게 넘겨줬고 앞으로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 활동과 영성수련 인도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10여년 전부터 담임목사직을 내놓는 것을 생각해 왔다”며 “개신교계에서 담임목사 정년을 70세, 심지어 75세까지 늘리는 교회도 있다고 하지만,
임지를 못 찾는 후배 목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한 교회에 장기 목회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 고민해 왔다”고 설명했다.
6)사회참여 목회 모범
1988년 청량리역 주변 노숙인과 행려병자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면서 나눔운동을 시작한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 밥퍼나눔운동본부,
다일천사병원, 다일자연치유센터, 다일웰빙센터와 해외 각지의 다일공동체를 이끄는 지휘관이다.
최 목사는 교회가 준 퇴직금 4억원은 교회에 되돌려주면서 전액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고, 목사 사택 전세보증금 2억원도 세 자녀가 결혼하고 나면 장학금에 보태고, 부부가 사망하면 나머지 1억원도 교회에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해 교계 안팎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최 목사는 “나 이외에도 그런 목사님들이 많다”며 “내가 퇴직금과 사택을 반납하는 것이 크게 내세울 만한 일 또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속회살리기 목회전략세미나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창 40:21-41:1)
1. 요셉은 꿈을 꾸었다.
2. 요셉은 관심을 가졌다.
매사에 사랑과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3. 요셉은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을 증거했다.
4. 요셉은 신앙인답게 당당했다.
그의 삶이 흐트러지지 않고 당당하고 분명했다.
5. 요셉은 성실했다.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 40:15)
신실한 신앙을 생활로 보여주었다.
6. 요셉은 끈질긴 인내심이 대단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있는데”(창 41:1)
감옥에서 나오기까지 이 년이 걸렸다. 잘 참고 기다렸다.
형들이 노예로 팔아버린 것, 성폭행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것, 총리가 된 것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로 보고 감옥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연간 속회 운영 전략 : 박용호 목사님(북수원 교회)
교통사고가 나면 누가 먼저 달려오는가?
속도원을 돌봐주는 사람이 속회지도자.
속도원들이 하나님께 감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하게 이성적이다.
속도원들이 구경만하고 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의 전체를 보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한 말씀만 적용하여 오용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속회 활성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속도원들에게 얼마나 감탄하고 있는가?
목회 리더십 통한 성장 목회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다.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
아픈 사람이 제일 먼저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인가?
성화란?
하루하루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한발자국씩 걸어 나간다.
성화 지향 방법
1. 돌봄
속도원의 영적인 상태를 아는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
2. 세움
선교사들이 삶으로 하나님 형상을 보여주었다.
속도원들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로 세워주셨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하여 세워주셨다.
통로의 흠·결함을 하나님께서 메우고 통로로 세워주셨다.
축복을 흘려보내면 된다. 통로의 역할만 하면 된다.
3. 증인의 역할 담당
성경·속회공과를 묵상하면서 나와 함께 하신 성령님을 전달한다.
삶에 있었던 기쁘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회복되어진다.
나의 삶 속에 함께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치 기준
1.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사고방식이 아니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2. 예수 그리스도의 삶
3. 성령님의 능력
내 마음, 내 생각으로 성경을 읽지 말고 성령님의 보청기로(도우심) 바로 들어야 한다.
속장 코칭 전략 목회 : 지성업 목사님(대전산성교회)
속회를 회복하기위해 연구해야 한다.
동기가 부여되면 심사숙고하여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 담임 목회자의 마인드
2, 소그룹 지도자의 마인드
3. 속회의 구조
속장과 함께 담임 목회자의 목회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목회자의 목회 철학·방향·영성과 속회 존재 목적 등 같은 비전을 공유하도록 코칭
속장이 위임받아도 목회자가 인식되어서 같은 방향으로 간다.
소그룹은 교회의 시작부터 존재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1.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목적은 ‘성화’
성화를 위한 방법이 소그룹이다. 속회에서 성화가 일어나야 한다.
신앙이 성숙되어야 한다.
2. 속장은 목회의 동역자
속장이 담당하기 쉽도록 구조를 바꾸었다.
- 남자속회, 여자속회, 부부속회, 연령별, 속회에 속하지 않은 교인(목사님이 관리)
교회와 가정에서 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속회는 예배가 아니다.
설교, 성경공부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감당한다.
속회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누는 것이다.’
1) 속회는 가정이다.
부모와 같은 사랑과 돌봄이 있는 공동체
2) 속회는 학교입니다.
사람이 성장해야 한다. 가르쳐서가 아니라 보고 배워서 성장해야 한다.
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모델링(modelling) 교육 방법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걸음, 한걸음 앞서간 사람의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한다.
3) 속회는 병원입니다.
치유와 회복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아프고 고통스런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과 기도로 치유와 회복이 되도록 해야 한다.
4) 속회는 교회입니다.
속회는 교회안의 작은 교회
전도할 때 사람들이 교회보다는 집으로 밥 먹으러 오는 것이 쉽다.
가정에서 시작하여 교회로 인도한다.
속장 세우기 전략 목회: 김철한 목사님(오목천교회, 속회연구원장)
속회를 살려내기 위해서 평신도가 세워져야 한다.
평신도의 정체성 확립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
성전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몸에 붙어있는 지체이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예수그리스도가 구원하셨다.
예배를 위해서도 구원하셨다.
사명을 위해서도 구원하셨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목회에 훈련된 사람의 중요성
집에서 모이는 모임의 속장을 잘 세워야 한다.
목회자는 속장을 준비시키고 깨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밭 갈기가 중요하다.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목회자가 집중력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훈련된 사람을 세우면 속회가 살고 교회가 살고 목회가 산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쇄물로 만들어 비전 제시
변화를 싫어하는 것을 목회자의 기도로 깨뜨려야 한다.
‘속회성장부’를 조직하여 속회를 홍보한다.
속장 세우기 훈련 - 속회 지도자 학교
속장을 지도자 학교의 훈련을 통해 섬김의 리더로 세운다.
섬김의 리더가 되는 자질은 인성, 영성, 전문성이다.
인성(성품)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지도자 학교의 커리큘럼 속에 담기는 어렵지만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 속에서 우리의 인성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로 성품이 개발될 것이다.
영성과 전문성의 배양은 지도자 학교 커리큘럼 속에 배어 있다.
커리큘럼
13주 과정에서 12주는 분임토의를 하고 1주는 기도원에 가서 성령을 받게 한다.
▷ 속회란 무엇인가?
소책자를 만들어 준다. 영상물로 만들어 보여준다.
속회의 기능
1. 돌보는 일을 한다. 신앙을 키우게 한다.
2. 삶을 나눈다.
3. 전도, 선교한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성화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 중보기도 : 성령님이 회복과 부흥을 주신다.
▷ 제단기도 : 속회를 위해 기도한다. 속회에서 지원하는 열방 선교를 위해 기도한다.
▷ 행정적으로 세우기 : 임명 예배로서 사명감을 고취한다.
목회자의 목회 중심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어야 한다.
속회에 관심을 집중하고 목회의 모든 영역이 속회를 위해 모아지도록 하라.
교육 목회를 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성령 목회를 하고 있다.
작은 속회를 역동적으로 운영하게 한다.
건강한 속회의 회복을 통해 평신도가 움직이는 목회로 변화되어 재미있고 놀라운 열매들을 보게 된다.
진정한 평신도 활성화 목회는 속장 세우기로 시작된다.
목회자 리더십의 요건은/“영성∙지식∙건강한 목회를”
교회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정보화∙사이버 시대를 맞은 21세기형 목회의 방향은 무엇인가. 미래학 연구와 리더십 이론으로 명성을 쌓아온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는 미래목회에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로 영성과 리더십을 꼽고 있다. 건강한 목회를 뒷받침할 건강한 목회자의 요건을 이 목사에게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첫째, 사이버 시대 영성의 트랜드를 읽어라.
정보화 시대의 삭막해진 사회에 영적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되라. 미래 사회에 대한 처방은 미래학이 아닌 영성학에서, 정보가 아닌 영성에서 찾을 수 있다. 미래학은 아무리 공부해도 그 속에서 사회를 구원하는 해답이 없다. 정보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 사회를 구원할 수는 없다. 사회를 구원하는 해답은 영성에 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입어 개인 성화와 공동체 성화에 힘쓰는 자가 된다.
영성이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의미한다. 교회가 건전한 영성을 제공하지 못하면 사회는 불건전한 영성에 미혹된다. 성령에 감동된 영성으로 사회를 감동시키는 교회가 되도록 목회하라. 현대인들의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은 영성과 편의성이다. 교단에 상관없이 영성적인 교회를 선택하고 편의성이 충족되는 교회를 선택한다. 영성이 높은 가르침과 접근이 용이한 교회 건물과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영성회복의 선도자가 되라.
기독교 영성이 쇠퇴하면 사이비영성이 득세한다. 점술과 귀신 이야기, 예언 등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젊은이들조차 사이버 점술에 미혹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진정한 영성의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교회는 마음이 허한 현대인에게 생명 공급의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에게 하늘 생명을 공급하여 영적 무기력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는 생명 공급의 센터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 이 세상을 살리기 위해 구태와 구각을 버려야 한다.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교회의 전통 때문이 아니라 영성 때문에 교회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영성을 회복한다면 허례허식을 버릴 수 있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모든 구시대적인 것을 과감히 버리고 세상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 복음에 관해 이런 열성이 있는 교회가 진정한 영성적 교회이다.
셋째, 삶을 변화시키는 영성적 교회를 세우라.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처럼 생활에서 실천이 없는 영성도 죽은 영성이다. 기도의 골방은 있지만 실천의 행함이 없는 크리스천은 약골 크리스천이다. 영성생활의 단계는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삶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영성생활의 진수는 일치인데, 전인적 균형을 개발하는 삶이며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 자신이 이 일치를 지향할 때 교인들도 자연히 일치의 영성이 배양된다.
개인적으로 신령할수록 도덕적이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지탄받는다면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없다. 삶의 영성은 개인의 도덕, 수면, 식사, 의복 등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잠은 잘자야 하지만 잘 깨기도 해야 한다.
잠의 절제가 필요하다.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패션의 노예가 아니다. 속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옷을 입어라.
넷째, 정보화 시대는 지식목회를 요청한다.
정보사회는 거미사회이다. 거미는 좋은 길목에 거미줄을 치고 기다렸다가 먹이가 걸리면 잡아먹는다. 거미는 매일 새로 거미줄을 친다. 정보는 매일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어제의 정보는 더 이상 정보로서 가치가 없다. 거미줄은 정보망이다. 늘 신선한 정보를 많이 소유한 자가 강자이다. 당신의 목회 정보량은 얼마나 되며 또 얼마나 업데이트 되었는가.
거미의 자리는 항상 거미줄의 중앙이다. 따라서 정보사회의 인간형은 모두 자기중심적 거미형 인간이다. 이렇게 자아가 강렬한 인간이 목회대상임을 직시하라. 목회자는 지식혁명 시대에 지식의 한계 또한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지식은 절대성을 갖지 못한다. 유한한 지식은 인간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다. 오직 그 지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될 때에만 비로소 인간 지식의 역기능이 해소될 수 있다.
다섯째, 지식 인프라에 집중하는 목회자가 되라.
정보사회에서 합당한 지식을 축적하지 못하는 일은 사활이 걸린 일이다. 그러나 그 지식이 신앙과 합치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지식만으로는 구원할 수 없다. 지식과 신앙이, 정보와 영성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서 구원이 성취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머리만의 회심이 아닌 가슴의 회심이 필요하다.
목회에서 기도만큼 중요한 일이 독서이다. 목회자는 독서를 통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의 폭을 확대하고 다양한 층의 교인들과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 기도와 성경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 목회자는 이 시대와의 의사 소통력을 상실하게 된다.
목회자를 위한 독서 가이드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관심과 전문성에 따라 읽을 책을 선택하라.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 책을 택하여 읽어 나가라. 교양서적과 신앙서적을 번갈아가면서 독서하라. 독서한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라. 독서한 후에는 자료 정리를 하라.
여섯째, 미래목회는 건강한 목회자가 수행할 수 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자신의 육체를 잘 보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자긍심이 있어야 하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적절하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감사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의 육체적 삶과 영적 예배를 분리하지 않는다.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를 하나님이 주신 본래 목적으로 보존하는 것은 영적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적극적인 육체 보존의 자세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육체의 연습도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삶에 유익이 된다. 특히 육체의 연습은 목회의 자세와 일치한다. 모든 운동은 몸을 낮추고 항상 유연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런 기본 자세가 바로 목회적 자세이다. 운동을 통해서 목회를 배울 수 있듯이 육체의 연습 또한 유익이 된다.
일곱째, 건강한 목회 뒤에 건강한 목회자 있다.
샤마니즘의 슬로건은‘굿판은 클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이 교회에도 유입되어 교회도 큰 것을 좋아하게 되니, 목회자도 큰 것 따라 잡으려면 일중독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또한 교회 내에서도 너무 목회자 의존적이 되다보니 목회자의 업무가 과중하게 되어 자연 건강을 해칠 수 밖에 없다. 목회하는 자세로 운동해야 한다. 운동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지키도록 노력하라.
목회자에게 운동이란 여가활동이 아닌 목회의 한 부분이며 삶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목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격과 취향에 맞는 운동을 택해서 해야 한다. 지나치게 경쟁심을 유발하는 운동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자신에게 알맞는 운동을 통해 건강뿐만 아니라 목회적 교훈까지 받게 된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크리스찬투데이
리더십의 카이로스
미국의 저명한 경영 잡지인 「포춘」(Fortune)지는 지난 2005년 6월호에서 “위대한 결단을 내리기”(How to make great decisions)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미 해병대 장군, 공항 관제사, 법관, 야구 심판, 등반 원정 대장 등 미국의 각 분야에서 리더들이 스스로 고뇌 섞인 결정을 내렸던 때를 회고했다. 특히 “역사를 만든 20개의 결단”(20 that made history)에서는 역사상 주목할 만한 주요 결정들을 소개했다. 질레트라는 면도기 회사가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기로 결단했던 때(1903, King Gillette decides to throw away the blades), 포드 자동차가 근로자들에게 당시 파격적인 일당을 지급키로 결단했던 때(1914, Ford offers $5 a day)처럼 하나의 결정으로 인해 조직의 역사가 뒤바뀐 장면들을 소개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한다. 리더에게 이런 때가 있고, 이런 때가 있기에 리더이다. 그리고 이런 때를 ‘결단의 순간’(deciding moment)이라고 한다. 리더십에 있어 중요한 순간인 것이다.
리더에게 반복되는 평상 업무의 시간들도 중요하지만 이런 결단의 순간과 같이 어떤 특별한 사건을 위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간도 있다. 리더들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영적 리더십에서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리더십에 카이로스가 있다
상대성 원리의 가장 큰 공헌은 시간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꾼 데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동일하게 흐른다는 시간의 보편성이 상대성 원리에 의해 깨어지고 객체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이 개인적으로 다르게 경험된다는 것이다(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p.198). 물론 여기서 운동 상태란 물체의 속도를 의미하는데, 운동의 속도에 따라 시간의 흐름도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즉 물리적 시간도 그냥 일방적이고 절대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에 따라 상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을 상대화할 수 있는 요소가 물리학적으로 ‘속도’라면, 신학적으로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물리학적 차원을 넘어 시간이 상대적 차원에서 경험되기도 하는데, 바로 신학적 시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건적 시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것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이 카이로스는 물리적이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일방적인 시간도 아니다. 이것은 시간의 의미에서 상대적이고 사건 중심적이다. 카이로스는 하나님 안에서의 중요한 계절이고 기회다. 카이로스는 시간의 양보다 시간의 의미와 질을 말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물리학적 요소는 ‘공간’과 ‘시간’이다. 이것은 리더에게는 더 절실하다. 공간과 시간은 각각 리더십의 중요한 장(Leadership field)으로서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리더십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이것은 본고의 주제가 아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위한 특별한 시간도 있다. 여행 중에 모든 지점보다 어떤 지점이 중요하듯, 시간도 리더에게 모든 리더십의 시간보다 어떤 특수한 시간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리더십의 카이로스로 리더로서 부르심에 대한 절정의 순간이다. 이것은 결단의 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심각한 사회적 사건이나 역사적 전환점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리더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다.
리더에게 신비적 카이로스가 찾아온다
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적 카이로스가 리더에게 찾아온다.
평상시에 리더십이 잘 발휘되지 못하다가 어느 상황이 오면 그 리더십이 카리스마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한 학자의 말에 의하면 모택동의 카리스마적 리더십도 사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 당시 중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없었더라면 그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적으로 행사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상황적 카리스마’(Situational Charisma)라고 한다. 즉 어떤 시기의 상황이나 사건이 특정 스타일의 리더십을 새롭게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 이전에 무시되던 리더를 어느 시기엔 군중들이 추대하고 열광하게 된다. 닉슨 전 대통령도 이런 말을 했다. “지도자가 위대해지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위대한 인간, 둘째는 위대한 국가, 셋째는 중대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즉 카이로스적 사건은 리더의 리더십을 극대화한다. 목회적으로 봐도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상황적 카리스마’를 세우게 되며 이것으로 리더는 그 교회의 부르심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카이로스 관점에서 제안하는 리더십
카이로스적 시간관을 생각하며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리더십을 제안한다.
1. 타이밍의 리더십
리더는 리더십의 시간(time)을 타이밍(timing)으로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사실 목회자는 1년 단위로 사는데 1년이란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 모른다. 신년 예배에서 연말 당회까지 꽉 짜여진 연간 스케줄 속에서 이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의 일로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다보면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의 시간관은 점차 크로노스(chronos)적이 된다. 선형적 시간선상에서 기계적으로 스케줄을 분배해 시간은 관리해야 하는 하나의 물리적 양이 돼 버린다. 즉 숨찬 일정의 소화만이 있고 어떤 의미 있는 영원의 시간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리더는 연말에 한 번 자신의 리더십 역사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 1년 동안 나의 리더십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하며 자신의 카이로스를 찾아보는 것이다. 많은 일들 중에서도 ‘어느 한 순간, 내가 영적 리더로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자신이 옛날 하나님께 헌신할 때의 초심이 다시 강하게 일어나진 않았는지, 혹은 어느 주일 예배 시에 더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진 않았는지, 또는 묵상 중에 어느 순간 어떤 중대한 영적 결심을 하게 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니면 언젠가 나라의 큰 사건 속에 자신의 설교 메시지가 회중에게 강한 도전을 주진 안았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로서 공동체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로 이끄는 역할을 한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마치 다른 시간들은 흑백 TV 화면과도 같았다면, 이 순간은 생생한 컬러 TV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말로 리더가 연속적 ‘시간’(time)보다 어떤 의미 있는 ‘타이밍’(timing)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리더십이 더 잘 작용하도록 하는 ‘타이밍의 리더십’(From Time to Timing Leadership)이다. 영적 리더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2. 근본 상태의 리더십
리더십의 특수한 카이로스에는 그 리더십의 평상 상태를 넘어서는 또 다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아니 이런 특수한 순간에 오히려 영적 리더십의 본질적 상태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퀸(Quinn)이라는 학자는 리더십의 상태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곧 리더십의 평상 상태(Normal state)와 근본 상태(Fundamental state)다. 평상 상태의 리더십은 현실에 안주하고 외부의 평에 영향을 받으며, 자기 중심적이고 외부와 차단돼 있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반면에 근본 상태의 리더십은 목표 지향적이고 환경과 문화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 타인 중심적이며 변화를 위해 외부 세계에 열려 있다(Quinn, Robert E. “Moments of Greatness: Entering the Fundamental State of Leadership”,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2005).
그런데 카이로스적 리더십은 이런 리더십의 근본 상태를 요한다. 리더들에게 계속되는 수많은 업무 속에서도 평생에 한 번쯤은 ‘아, 내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이 자리에 있구나’라고 직관적으로, 영적으로 느끼는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카이로스로서 그때는 리더십도 더욱 본질적으로 혁신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평상 상태에서 근본 상태로의 전환인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 그 타이밍에 이런 리더십의 본질인 근본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근본 상태의 리더십’(Fundamental state Leadership)이다.
카이로스의 리더십을 발휘한 성경의 사례
누가복음 2장에는 특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이름은 시므온과 안나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인생의 오랜 평상 상태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한 것 같지 않으나, 일생의 어느 한 순간에 그들의 삶이 어느 한 시점에 수렴되면서 그들의 소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카이로스이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보자 이렇게 외친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6~31).
그리고 안나도 이 한 순간에 일생의 절정을 이룬다.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카이로스를 말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된 이유가 그것이다. 즉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절정의 한 순간을 맞게 된 것이다. 모르드개는 자기 민족에게 위기의 시간이 오자,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그렇다. 리더들은 특히 영적 리더들은 어느 시점에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올 것이다. ‘내가 리더가 된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내가 리더가 된 것이 바로 이 사건과 상황을 위함이 아닌지?’ 시므온, 안나, 에스더 그리고 많은 영적 리더들은 그동안 크로노스적 시간의 집적으로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한 시점인 카이로스(‘이제’, ‘이 때에’)에서 그들의 온 생애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영적 리더는 그들의 카이로스에서 그 리더십의 의미를 갖는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적 시간에서 이뤄지는 그들의 리더십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크로노스보다 카이로스가 더 의미 있다
요즘 서구의 지나친 영향으로 인해 직접적이고 연속적이며 관리적인 시간관이 팽배하고 있다. 그래서 선형적으로 디자인된 시간이 리더들에게 중요해져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리더십의 축적과 업적의 달성 등과 같은 가치가 많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시간관도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의 소명이 어느 한 순간(Moment)을 위해 있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 시간관은 더 중요하다. 즉 인생에는 반드시 ‘더’ 혹은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시점이 있다. 이 순간이 바로 그 리더가 헌신한 이유이다. 이 순간이 바로 그때 본 환상이 이뤄진다. 이 순간을 위해 리더는 죽을 수 있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인생 전부를 거는 결단을 해야 한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드디어 외쳐야 한다. 이 순간이 오면 리더는 자기 생명을 바쳐야 한다.
몇 십 년을 리더로서 충성하며 그 시간을 모두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Chronos), 비록 리더로서 시간의 양은 적지만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사건적 사명을 완수한 것은 더 의미가 있다(Kairos). 리더의 위치에서 흘러가는 수많은 시간들! 그러나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느 시간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더 의미 있고 역사적이다. 한 리더의 삶에서 어떤 한 시간은 그가 리더로 된 이유일 수 있다. 리더의 시간의 의미가 그저 크로노스적으로 한 순간 한 순간 리더십의 행위들의 총합인 누적된 시간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시간 중의 어떤 한 순간, 카이로스의 한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의미를 잃은 많은 영적 리더들이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것 같은 사역들 속에서 좌절한 많은 리더들이 있다. 그러나 리더는 그 긴 리더십의 시간 중에서 어떤 순간이나 사건을 위해 특히 더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인간의 수명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의미이다. 인간의 물리적 시간보다 역사적 시간이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리더에게도 리더로서의 재직 기간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순간 그의 리더십의 깊이다. [object TEXTAREA]
김광건 _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 | 2005. 11.
영적 리더십에 여러 차원이 있다
영적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특히 분석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매우 유기적이고 신비적인 것이다. 영적 리더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우리가 정형화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모양과 기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 리더십은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 한다거나 어떤 하나의 패턴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미숙한 접근이다. 영적 리더십에도 여러 패턴과 차원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인물, 최고의 리더
지난 1999년 12월 31일에 「타임」지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올해의 인물이 아닌 ‘금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을 발표했다. 누가 지난 10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가를 알리는 작업이었다. 2차 대전을 서방의 승리로 이끌었던 세계적 리더 처칠이나 고르바초프 등 여러 위대한 인물들이 거론됐다. 그런데 20세기 마지막 호 「타임」지의 커버에 실린 금세기의 인물은 의외였다. 그 사람은 바로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ibert Einstein)이었다.
20세기의 인물 즉 지난 한 세기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군중들의 선두에 선 정치인이나 군사적 리더가 아니었다. 「타임」지가 아인슈타인을 선정한 이유는 이렇다. 헝클어진 머리에 정장이 아닌 스웨터를 즐겨 입고 어린 아이와 같이 행동하는 이 할아버지는, 이전 사람들이 바라본 우주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도 생각으로만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는 공동체 속에서 물리적으로 지휘한 적이 없으며 특정의 ‘파로워’들을 거느려 본 적도 없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타임」지는 이 사람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과학자로서만의 공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방법과 틀을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도 리더십이라고 단언한다. 리더십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한마디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세기의 인물’인 아인슈타인은 역시 ‘금세기의 리더’(Leader of the Century)였던 것이다. 이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리더십에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적 리더십 1차원: 영적 관리
영적 리더십 1차원은 ‘영적 관리’(Spiritual Managem-ent)다. 현재 사회에서 리더십의 가장 보편적인 차원으로서 관리, 경영의 역할이다. 이런 리더십의 1차 목표는 조직의 현상 유지 내지 기존의 구조에 기초한 발전이다. 하지킨슨과 같은 학자는 리더십은 결국 이런 차원의 행정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사실 리더십이 실제 공동체 상황에서 실행되는 데 필수적인 차원이라는 뜻이다. 조직의 목표들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국 구체적인 행정과 관리가 있어야 하는데 조직화, 인사 관리, 재정 관리, 교육, 양육, 계획 수립, 전략 등을 뜻한다. 현재 세간에서 부각되고 있는 리더십의 패러다임은 대부분 이런 차원이며 이를 위한 트레이닝과 개발론이 많이 발달해 있다.
영적 관리와 경영의 차원은 이전의 지도자가 카리스마적 리더였고 그 공동체도 카리스마적 공동체였을 경우에 매우 중요하다. 이전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퇴장하고 나서 대개 1차원의 영적 매니저 스타일의 리더가 등장해 그 과도기를 관리하고 시스템을 세우게 된다. 이런 현상을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의 구조화’(Institutionalization of Charisma)라고 했다. 현재 한국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약점을 지적하자면 바로 1차원의 결핍에 있다.
즉 관리와 유지 그리고 안정이라는 기능의 리더십 차원이 비교적 소홀히 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영적 리더십 2차원: 영적 개혁
영적 리더십 2차원은 ‘영적 개혁’(Spiritual Transfor-mation)이다. 바로 아인슈타인과 같은 ‘패러다임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리더는 공동체 속에서 물리적인 지휘를 하거나 특정의 ‘팔로워’들을 이끌지 않는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리더라고 할 수 없지만, 이는 일종의 간접적 리더이자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명이 있다. 세계 역사에서 기억되는 위대한 리더는 대개 이 차원이거나 관리와 개혁의 차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마르틴 루터 킹, 고르바초프, 마오 쩌둥, 프로이드, 아인슈타인 등이 있다.
성경에도 한 패러다임 리더가 나온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나니아다. 그는 성경에 별로 언급되지 않다가 사도행전에서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는 한 공동체를 위한 1차원의 리더가 아니고, 다른 리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2차원의 리더로 나타난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큰 적이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진 후에 눈이 멀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명하셔서 사울에게 가서 기도하게 하신다(행 9:17 ~18). 사울이 바울로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 순간 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바울의 문화적, 사회적 기존 패러다임은 벗겨져 나가고 진리를 새롭게 보게 되는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나니아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바울을 위한 패러다임 리더였다. 바울의 옛 세계관을 벗겨 버리고 새로운 시야를 주는 리더였다. 그는 1차원 리더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조용한 종 아나니아는 한 리더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는 간접적 리더였다. ‘우리 눈의 비늘을 벗겨 주는 자’, 필자는 아나니아를‘리더를 위한 리더’(Leader for leaders)라고 부른다.
2차원의 리더십은 1차원과 달리 공동체 상황에서 실제적인 리더십 행위(Leadership Behaviors)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1차원의 리더십을 행사할 리더들을 위한 패러다임의 개혁과 수립을 담당한다. 이것은 더 큰 스케일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영적 리더십이다.
미국에는 참 기이하고 매력적인 대기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애플 컴퓨터 회사다.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으로 꿈의 세계를 현실화시키는 기업인데 그곳은 자유분방함 속에서 천재적인 창의성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전통적인 사고와 규칙을 혐오하며 거의 히피 문화에 가까운 괴짜 직원들의 공동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이끌어가는 한 리더가 있다. 그가 바로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다. 일찍이 그는 어린 나이에 획기적인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낸 천재인데 계속해서 기존의 상식을 넘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미국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업계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리더의 특징은 이윤의 논리를 넘어서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의 과거는 젊은 시절부터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그는 재미없고 창의적이지 않은 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기존의 틀을 바꾸며 꿈이라는 것을 현실화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거는 인물이다. 그의 리더십의 의미는 현상 유지나 관리와 같은 1차원에 있지 않다. 애플의 슬로건이 이를 잘 반영한다. “박스를 넘어서!”(Beyond Box!),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스티브 잡스, iCon, p.14).
리더십의 정의 중에서 이런 것이 있다. “리더십: 리더의 임무는 그의 그룹 구성원들을 그들이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 가는 것이다”(LEADERSHIP: The task of a leader is to take his followers to where they have not been). 이는 논리적이라기보다 영감적인 것이며 이런 리더의 리더됨은 추종하는 공동체의 존재 여부나 그 수에 있는 것이 아니다(김광건, 영적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 pp.54~55). 즉 공동체의 개혁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를 위해 2차원의 리더는 공동체와 차별화되는 무엇인가를 지녀야만 한다.
이제 세상도 단순히 정형화된 1차원의 리더십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즉 여러 차원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개념을 과감히 극복하는 리더십의 혁신을 이뤄가고 있다. 우리의 영적 공동체도 2차원의 리더십을 통해 성령께서 시대적으로 새롭게 주시는 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영적 리더십 3차원: 영적 제사
영적 리더십의 세 번째 차원은 ‘영적 제사’(Spiritual Sacrifice)다. 이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영적 리더십이다. 실로 어떤 물리적 영향력이나 패러다임 영향력의 차원을 넘어서 영계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영향력의 차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리더십의 차원보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개입과 섭리가 극대화되는 차원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리더의 공동체 지휘의 차원을 초월해 하나님께서 한 인물(리더)을 제물로 받으시고 그 피와 희생의 대가가 하나님의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영향력으로 역사에 나타나는 차원이다. 소위 순교 내지 순교적 차원이다.
리더십이 영향력의 과정이라면 과연 이것도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리더 대 ‘팔로워’ 즉 인간 대 인간 간의 직접적 영향력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리더 그리고 하나님과 ‘팔로워’의 보다 영적이며 시간을 초월한 영향력의 과정이다. 한 인물의 희생과 피 혹은 한 밀알이 썩음으로써, 그가 의도했건 안 했건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흠향하시고 한 공동체와 민족에 큰 역사적인 일(영향)을 행하시는 것이다. 밀알 하나가 썩음으로서 많은 열매가 맺는 ‘밀알 리더십’이다. 이것은 우리가 목회 현장에서 임상적으로 경험하는 진리이며 교회사를 통해 선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고차원적 리더십의 사용 방법이다. 즉 사회적 효율성을 완전히 넘어서는 신비한 영적 메커니즘이다.
3차원의 리더(혹은 잠재적 리더)의 피는 그 이하(1, 2차원)의 리더십의 기반이 된다. 바로 한국 기독교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세계적인 한국의 기독교는 일찍이 서구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는 모든 것들이 선교사들의 현장 리더십에 의해서만 이뤄진 게 아니다. 여기에 영적 제사 차원의 리더십이 우선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에 개신교 복음이 실제적으로 처음 전파된 1884년보다 그 전인 1866년에 토머스 선교사가 리더십은 커녕 전도 한 번 제대로 못해 보고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이 희생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그 후에 2차원 이하의 여러 영적 리더십을 일으키신다. 즉 역사적 영향력은 영적 제사 차원의 리더에 의해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 차원의 리더십은 많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리더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많은 책들과 학자들이 효율성을 위해 ‘예수 리더십’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리더십이 아니라 특수한 ‘로드십’(Lordship)이었다. 즉 리더십의 차원을 넘어서는 주님만의 특수 사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모아 사역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물리적 리더십의 전략을 지향하신 적이 없다. 가장 중요한 목적인 그 길을 가셨는데 그것은 오로지 어린양으로서 죽음을 당하는 일이었다. 공동체를 위해 대신 죽으시는 일이었다. 이것이 그분의 리더십의 전부다. 그리고 그 보혈과 희생의 제사로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바로 이 고귀한 차원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적 리더들은 이 차원에 도달하고자 헌신해야 한다.
다양한 차원의 리더십에 대해 유연하게
이상 세 가지 영적 리더십의 차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런 차원이 항상 배타적으로 구분돼 한 리더의 리더십이 한 차원에서만 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각 차원이 서로 유기적으로 혹은 리더십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변화할 수도 있다. 때로 한 영적 리더 안에 여러 가지 차원이 공존하기도 하고 상황과 소명에 따라 동시에 여러 차원을 감당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영적 공동체도 이런 다양한 리더십의 차원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예민하게 느껴야 한다. 리더십 차원의 다양화! 여기에 한국 교회의 큰 도약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object TEXTAREA]
김광건 _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 | 2005. 10.
계승돼야 할 영적 카리스마
얼마 전에 TV에서 어려운 이웃을 소개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한 여고생이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참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하며 고생을 많이 하는 가정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녀는 중학생 때 한국으로 이주해 온 몽골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더욱 대견스럽고 기특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성공해 보려는 의지가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몽골이란 나라는 지난 역사에서 가장 방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초강대국이 아니었던가! 칭기즈칸의 영화를 누렸던 빼어난 민족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초라한 약소국으로 전락해 그 후예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한 나라의 영화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한 국가의 운명이 너무도 급격히 변화한 예를 본다.
과거로부터 온 염려
우리의 관심은 과연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세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장차 강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런저런 위기를 겪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요즘 서점에 가보면 잘 팔리는 책들 중에 한국의 미래 진단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와 있다. 우리의 앞날이 그만큼 불투명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과연 한국은 흉흉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앞으로 어떤 국가로 될 것인가.
나아가 한국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회심 성장보다 교회 간의 전입 성장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교회의 전성기는 지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연 한국 교회는 위기를 넘어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독교 국가로 부상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인가.
한국을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이만큼 끌어 올린 개발의 세대, 영적으로 황무지와 같고 많은 핍박 속에서 강력한 한국 교회를 세운 영적 카리스마의 세대들이 사라져갈 때 과연 우리나라의 영화도 끝이 나는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인 ‘순자’(荀子)에 나오는 것으로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를 가리킨다. 그 말대로 우리의 차세대 청출어람으로 인해 한국 기독교는 다시 비약할 수 있는가. 세대가 교체될 때 국가나 공동체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는다. 크게 번성할 수도 몰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출어람’의 리더십 엘리사
열왕기하 2장 7~14절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손꼽히는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구약의 영웅 엘리야가 이제 때가 되어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은퇴가 아니며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니었다. 엘리야는 신비스럽게도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 그리고 후계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엘리사다.
엘리야가 떠난 이스라엘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장차 누가 엘리야와 같은 힘과 권위를 다시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놀라운 복을 주시는데 그 후계자에게 갑절이나 되는 권능을 주신 것이다. 이제 엘리사는 능력을 받고 곧장 기적을 행하게 된다.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 2:12~14). 이것은 한 마디로 카리스마의 계승 장면이다. 아니 앞선 세대의 카리스마의 능가함을 의미한다. 즉 이 장면은 이후 세대로 갈수록 더 강력해지고 번성하며 특히 영적 파워가 갑절이 됨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청출어람인 것이다.
엘리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갈멜산의 승리에서 보듯이, 그는 전무후무한 영력의 종이었다. 그를 이어서 엘리사가 후계자로 등장한다. 그는 이전까지 그런 파워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야의 배턴을 넘겨받은 순간, 더 큰 영력의 종으로 부상한다. 엘리사는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는데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재발견 그리고 유난히 한국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한
성경에 나오는 여러 사역의 예에서 보듯이, 기독교 사역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리더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많은 경우에 카리스마적 리더를 사용하신다. 발전이 주를 이룬다. 한국 교회에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선호한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해 겉으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이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과 ‘권위주의적 리더십’(Authoritarian leadership)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을 압도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카리스마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카리스마란 권위주의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정의상 ‘직위적 영향력’(Positional influence)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개인적 영향력’(Personal influence)에 의존하는 것을 뜻한다. 즉 직위에 의한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권위에 의존하기보다 리더 개인의 흡인력이나 매력으로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십을 말한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상황에 따라 매우 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조직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큰 변혁과 성취는 주로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해 이뤄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한국인의 문화나 기질 등으로 볼 때, 조직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매우 효과적이며 앞으로 중요한 유형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카리스마 리더십은 권위주의나 독재와 다르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그 리더십의 권위 기반(Authority foundation)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차원에서 권위의 한 유형에 해당한다. 권위주의냐, 독재냐 하는 것은 리더십이 권위 기반을 획득한 후에 나타나는 행사 형태(Leadership style)일 뿐이다. 그러므로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윤리적 중립으로 봐야 하며 상황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한 주요 도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누가 어떻게 카리스마를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한국의 상황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리더십의 유형이다.
한국에서 특히 한국 교회의 공동체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다만 리더십의 스타일에서 권위주의 형이 비권위주의 형이나 탈권위주의 형으로 갈 것으로 예측된다. 즉 ‘비권위주의적 카리스마 리더십’(Non-authoritarian Charismatic Leadership)으로 된다.
진정한 카리스마를 계승하라
우리는 엘리야와 엘리사 사이에 리더십의 세대 교체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이 세대 교체는 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다른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이양이다. 이제 차세대 리더십도 카리스마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잠재돼 있는 갈망이다. 차세대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고대하는 갈망이다. 그리고 이 본문은 각각의 세대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보여 준다. 엘리야처럼 앞선 세대가 할 일이 있고, 엘리사처럼 차세대가 할 일이 따로 있다.
먼저 엘리야의 앞선 세대가 할 일이다. 그것은 차세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는 것이다.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이전의 한국 사회도 그러했고 한국 교회도 그러했다. 엘리야와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세대였다. 때로 부정적 권위주의와의 혼합이 있었지만, 한국의 사회나 교회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이끌어온 게 사실이다. 우리의 전 세대는 엘리야의 세대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재건하며 기적을 일으킨 세대였다. 특히 영적으로 엘리야와 같은 능력으로 황무지와 같던 이 땅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대부흥을 이룬 세대였다. 그런데 이제 엘리야가 차세대에 묻고 있다.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정말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다음으로 엘리사의 차세대가 할 일이다. 바로 카리스마적 전통의 계승이다. 엘리사는 엘리야 다음에 능력의 종으로 등장하는데, 그 능력은 엘리야의 남겨진 겉옷으로 나타나고 계속 이적을 보인다. 엘리야의 남겨진 겉옷! 엘리야의 능력을 이어받기 위해 그들의 영적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
엘리사와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의 차세대는 다시 번영을 위해 한국의 리더십과 영적 리더십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 그것은 엘리야의 겉옷 즉 카리스마를 가리킨다. 혹자는 카리스마를 구세대의 부정적인 유산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그동안 우리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권위주의나 독재와 같은 유형에서 본 카리스마다. 우리는 한국 문화에서 유용하게 작용한 건강한 카리스마를 잊어선 안 된다.
현재 미국 경영학계에서 정보화되고 다국적화되는 거대 기업 상황에서 그를 총지휘할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은 일본이나 서구처럼 시스템적이고 구조적인 리더십보다 한 인물을 정서적인 차원에서 따라가는 카리스마적 공동체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오해 중에 하나는 민주화되고 선진화될수록 카리스마적인 인물 중심의 리더십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거나 어떤 문화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엘리사가 되기 위한 한국의 차세대가 할 일 중에 하나는 바로 엘리야의 남겨진 겉옷과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차세대는 엘리사의 기도를 하라
그리고 차세대가 집요하게 구해야 할 것이 있다. 엘리사는 승천하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외친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이것을 차세대가 정말 과감하게 구해야 한다. 갑절의 능력! 두 배의 파워! 어찌 보면 참으로 당돌하기도 하다. 그러나 엘리사의 미래 여정을 보게 되면, 이런 요구는 무리가 아니다. 더욱 험난한 사역 환경과 목표를 두고 앞선 세대보다 갑절의 영력을 구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와 교회의 차세대 리더들도 엘리사와 같이 구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단순히 청출어람만을 위함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보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마치 구한말과 같이 급변하는 동북 아시아의 정세와 복잡한 국내 문제 등은 앞선 세대의 리더십을 훨씬 능가하는 파워와 영향력을 갖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예전처럼 단순한 개발 논리와 총칼을 앞세워 권위로만 밀어붙일 수 없게 되었다. 즉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아무나 리더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교회와 같은 영적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각종 문화와 정보의 홍수는 ‘대체 종교’(Alternative religion)의 역할을 하면서 한국 교회의 회심 성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고, 개신교의 이미지 추락 등으로 우리의 입지는 좁아지는 듯하다.
이런 시대 상황에 차세대 리더십은 이전의 핍박 받던 시대의 엘리야보다 갑절의 능력을 받은 엘리사가 돼야 한다.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다원화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선 결코 과욕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살아나는 길은 무엇일까? 국력이나 경제력인가? 군사력이나 외교력인가?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갑절의 영감, 그 리더십을 구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다시 기적을 일으키는 길은 무엇일까?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세속적 방법론으로 빠져선 안 된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한국 교회와 사회가 다시 기적을 일으키는 길은 갑절의 영감 곧 강한 영력이다. 이를 차세대는 과감히 구해야 하고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엘리사적 민족, 엘리사적 교회는 시대적 요구이다. [object TEXTAREA]
김광건 _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 | 2005. 8.
목회자를 위한 참된 성경적 리더십의 의미와 모델을 찾아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세계 기독교계는 성경적 리더십의 의미와 모델을 발견하려고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교회가 가졌던 주요 관심사들 중에 하나도 바로 리더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리더십 이론들의 홍수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차, 최근에 통찰력 있는 리더십 이론들과 성경에 기록된 영적 리더들의 연구들을 담은 신선한 연구서가 발간되었다. 성도들은 물론이고 특히 성경적 리더십의 의미와 모델에 목말라 하던 목회자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하나님 나라와 리더십」은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누구나 사역의 현장에서 즉시 적용해 활용할 수 있는 건강한 리더십 이론들을 담고 있는 실용적이면서도 학구적인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일반 사업체에서 연구하고 적용하는 경영학적 이론이나 지나치게 실용성만 강조한 이론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적이고 순수한 신학적인 연구라는 점에서 한국에 이미 소개된 다양한 리더십 연구물들과 차별을 보인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독교적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공고히 하는 데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리더십 이론들이 해결해야 할 다양한 과제들에 대해 성실히 답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답의 근거로 성경적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리더십에 대해, 세속적인 리더십 이론에 관한 교회의 입장에 대해,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에 대해, 성경이 보여주는 건강한 리더십에 대해, 기독교 역사 속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과 그들의 리더십에 대해 심도 있고 성실하게 접근한 연구서로 리더십 연구의 또 다른 차원과 지평을 열어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1부에서는 “리더십 패러다임”에 관해 다룬다. 영적 리더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의한 후에 성경이 영적 리더십의 기초와 출발점이어야 함을 언급한다. 영적 리더십의 모델로서 예수님의 리더십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성경과 사회 과학이 말하는 리더십의 차이를 명쾌하고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2부에서는 “리더십과 성경 본문”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부분에서 성경 본문에 기록된 영적 지도자들의 리더십 스타일들을 통찰력 있게 살펴본다. 구약의 사사기에 나타난 리더십과 여로보암의 리더십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신약의 누가복음에 나타난 리더십, 바울의 리더십, 히브리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리더십 등이 여러 신학자들의 원문 석의를 통해 비교적 깊이 있게 다루어진다.
3부에서는 “리더십과 인물”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구약의 인물인 느헤미야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교회사에 나타난 영적 거장들의 리더십 스타일을 흥미롭게 나열해 준다.
4부에서는 “리더십의 적용과 실행”을 주제로 두 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일반적 리더십 이론이 교회 사역에 얼마만큼 유익을 줄 수 있는가,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다문화 전도팀 안에서 효과적인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리더십 패러다임
「하나님 나라와 리더십」의 1부인 “리더십 패러다임”은 다섯 편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영적 리더십”을 쓴 이원설 박사는 현대를 리더십 부재의 시대로 규정하고, 현대를 책임질 수 있는 참된 리더십의 특성을 설명한다. 리더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을 ‘희생 정신’이라고 지적하면서 리더는 소명 의식,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명확한 목표와 프로그램 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더십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일반적 리더십 자질론과 대별되는 이 박사의 독특한 리더십 자질론에 관한 것이 있다면 바로 리더들이 지녀야 하는 ‘희생 정신’과 ‘소명 의식’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영적 리더십의 출발점, 성경적 비전 개념의 확립”에서 김덕수 교수는 영적 리더십과 세속적 리더십을 이원화하는 것에 날카롭게 반대의 입장을 전제하고 비저너리 리더십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경적 비전의 참다운 의미를 설파한다. 특별히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존 맥스웰 리더십 이론의 문제점과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는 그의 안목은 매우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리더십과 성경 그리고 사회 과학”에서 박찬호 교수는 성경과 사회 과학의 관계를 균형 있게 다룬다. 그는 지나치게 신화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오류를 지적함과 동시에 과학적 탐구 자체를 거부하거나 터부시하는 신앙적 자세의 위험성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오규훈 교수는 “예수님의 삶이 제시하는 영적 리더십의 패러다임”에서 세속적 리더십과 영적 리더십의 의미가 구별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영적 리더십의 원형을 예수님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세례 요한을 통한 세례 사건, 광야의 시험 사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사건, 십자가 사건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김광건 교수의 “비전에서 메타 비전으로 - 영적 리더십의 근본은 무엇인가”라는 논문은 리더십 전공자로서 탁월한 통찰력과 설득력을 담고 있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바라본 일반 리더십 이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누구보다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지적할 뿐 아니라 영적 리더십의 의미를 학문적으로 분명히 정립해 주는 매우 명쾌하고 도전적인 논문이다.
김 교수는 영적 리더십의 새로운 차원을 의미하는 색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곧 ‘메타 비전’(metavision)이라는 말이다. 그는 메타 비전이 ‘원초적 비전, 순수 비전, 계시적 비전’을 의미할 뿐 아니라 ‘비전 위의 비전’ 혹은 ‘초비전’이라고 정의한다. 나아가 그는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는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패러다임과 비전의 통합체인 메타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메타비저너리 리더십’(metavisionary leadership) 이라고 부른다. 진리와 세계관과 같은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을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리더십이 바로 ‘메타비저너리 리더십’인 것이다. 새롭고 도전적인 리더십의 개념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신선하고 의미 있게 다가가고자 하는 김 교수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리더십과 성경 본문
본장은 구약 성경 고찰을 통해 성경적 의미의 리더십을 연구한 두 편의 논문과 신약 성경 연구를 통해 얻어낸 세 편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적 시각에서 리더십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현우 교수의 “누가복음 22장 24~27절에 나타난 리더십과 제자도”는 누가복음에 대한 심도 있는 주석을 통해 누가복음에 기록된 제자도의 근본 의미가 섬김과 봉사라고 규정하면서, 남을 섬기고 남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자세가 기독교적 리더십의 근본임을 지적한다. 리더십은 신분이 아니라 기능임을 강조한다.
“바울과 십자가의 리더십”을 쓴 권연경 교수는 한국 교회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문화적 현상의 리더십 문제를 비평적으로 다룬다. 권 교수는 바울의 리더십을 ‘역설적 리더십’ 또는 ‘뒤집혀진 리더십’(inverted leadership)이라고 규정한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철저한 자기 인식, 주님의 절대적 리더십에 스스로 복종시키는 중재자로서의 자기 인식, 성령님의 매개자로서 자의식, 주님의 종으로서 성도들을 섬겨야 한다는 사명 의식 등이 바울이 보여준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적 리더십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김성욱 교수가 쓴 “사사기에 나타난 리더십 고찰 - 사사기 8장을 중심으로”에서는 사사기에 기록된 기드온 사건을 통해 성경적 리더십을 들여다본다. 세속적 리더십이 지도자의 능력과 외적 조건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성경적 리더십은 성공과 능력이 아니라 지도자의 ‘충성도’를 요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했는가”가 성경적 리더십의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풍인 교수의 “우리 구원의 리더이신 예수님 - 히브리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는 히브리서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는 예수님의 리더십에 대한 특성이 ‘전적인 순종’이라고 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이 성경적 리더십의 가장 큰 요소임을 지적하면서 지도자 자신이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 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 자기 의지를 따르는 것 등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성민 교수의 “열왕기상 11장 26~14장 20절에 나타난 여로보암의 리더십 - 플롯과 인물 묘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전 교수는 여로보암의 삶의 여정을 통해 그의 리더십 변천 과정을 묘사한다.
리더십과 인물
본장은 잠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깨워 비전을 심어주고 마침내 성전을 완성시킨 느헤미야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리더십 스타일을 인물별로 연구한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비전 형성과 실현 - 리더십 관점에서 본 느헤미야”를 쓴 송병현 교수는 성전 건축을 52일 만에 완공한 느헤미야의 사역 원리를 연구해 얻은 통찰력을 리더십이라는 주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성전 건축의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지니고 있는 다양하고 독특한 원리들을 원문에 기초해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정리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교회사에 나타난 리더들의 목회 유형과 자기 관리”라는 논문을 통해 박용규 교수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지금까지 세계 교회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지도자들의 목회 유형을 분석한 후 그들의 독특한 리더십을 인물별로 정리했다. 설교 중심의 목회, 행정 중심의 목회, 교육 중심의 목회, 영성 중심의 목회, 선교 지향적 목회를 했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비교적 간단히 기술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목회 유형들이 천성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음을 언급하면서 자기만의 장점을 발전시키되 팀 사역과 균형 있는 목회를 통해 부족한 면들을 채워야 함을 강조했다.
리더십의 적용과 실행
본장에는 리더십의 실제 적용과 실행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리더십이 개발될 수 있는가’, ‘선교지에서 다문화 사역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가’ 등에 대해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논문들이 본서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다. 임태조 씨는 “리더십 능력은 개발될 수 있다”라는 논문을 통해 누구든지 훈련과 교육을 통해 자기 안에 감춰진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만 있다면 어느 영역에서나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역할 분담과 리더십 역량의 모델링을 통해 내부에 잠재돼 있는 리더십을 극대화시켜야 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과 노력을 통해 리더십을 끊임없이 배양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다문화 복음 전도팀들 인도하기”를 쓴 고든 니켈은 자신의 선교지 경험을 기초로 다문화 사역팀 안에서 리더십이 어떤 역학 관계를 가지며, 어떻게 발휘돼야 하는지를 기술한다. 그는 ‘파트너십’을 다문화 전도팀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다. 저자는 ‘지위로서 리더십이 아니라 기능으로서 리더십’이 참다운 리더십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서에는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리더십 이론의 위험과 한계를 극복하고 교회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참된 성경적 리더십의 의미와 모델을 찾기 위한 각 저자들의 연구와 노력들이 담겨 있다.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리더십 이론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독교적 정신과 가치를 기반으로 한 ‘성경적 리더십 이론’을 담은 다양한 논문들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된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세속적 리더십 이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들 앞에 한국 신학자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도로 봐도 무방하다. 연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편집 책임을 맡은 김광건 교수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김학유 _ 합동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 2006. 6.
책소개 김덕수 목사의 『
건강한 목회를 통해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
컴퓨터공학자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그리스도로부터의 거부할 수 없는 소명을 받고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된 저자가,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핵심전략을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목회와 신학\' 등의 신학저널에 발표한 글을 엮은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건강한 목회에 대한 제안을 담아냈다.
김덕수 목사의 『건강한 목회를 통해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 컴퓨터공학자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그리스도로부터의 거부할 수 없는 소명을 받고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된 저자가,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핵심전략을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목회와 신학\' 등의 신학저널에 발표한 글을 엮은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건강한 목회에 대한 제안을 담아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소개 펼쳐보기책소개 닫기저자소개김덕수 실천신학 교수로서 석의에 기초한 귀납적 강해 설교, 건강한 교회 계발, 소그룹과 셀 사역, 목회 신학을 강의한다. 뿐만 아니라 ‘목회 리더십’, ‘리더 훈련과 리더십 계발’ 등의 과목을 통하여 목회자들을 위한 변혁적인 리더십의 요소와 함께, 리더 훈련 방안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백석대 부설 현대목회리더십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목회자들과 알로에 마임 사장단 특강 등을 통해 교회 안팎의 각 영역에서 미래의 크리스천 지도자를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제시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의 연속이던 70년대 후반의 역동기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여파를 캠퍼스에서 겪었다. 당시 평신도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평신도 사역자로 섬겼던 그는, 시대에 대한 절망과 원망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학문과 함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유학하던 중 그토록 거부하였던 전임 사역으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 이민 교회 목회자로의 삶의 변화는, 우리나라 교회 목회로 이어졌다.
이처럼 개척 교회로부터 지구촌교회라는 초대형 교회까지, 부교역자로부터 담임목사까지, 목회자로부터 신학교 교수까지의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안정된 삶보다는 부르심만 확인되면 모험의 장으로 뛰어드는 아브라함과 바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어받은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순종의 길을 이어가는 현재 백석대학교 기독신대원 학생처장으로, 현대목회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기독교전문대학원 실천신학 주임교수와 Th.D. 프로그램 디렉터로 한국 교회의 미래 지도자 양성을 위해 뛰고 있다.
과거에 공학 전문가로서 연구할 때 뿐 아니라 한 개인을 제자 훈련하는 삶 속에서, 목회자로 한 공동체를 섬기는 가운데, 교수로 신학생을 양성하는 곳곳마다 그는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주께서 보여 주시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변화와 개혁으로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타고난 변혁가로서의 삶은 항상 더 나은 리더십을 향한 열망으로 고민하게 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리더십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지도자 세우기 과정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정 속에서, 빛나고 변치 않으며 투명하면서도 단단하여 또 다른 사람을 다듬을 수 있는 고귀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변혁적 목회학의 핵심 요소를 다루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영적 리더십의 내면을 위한 ‘개신교 영성 형성 과정’과, 신학적으로 탄탄하며 동시에 실제적인 ‘목회 신학’의 완성을 위해 애쓸 것이다.
한양공대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컴퓨터 관련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과정 중 고든콘웰신학교에서 신학을 한 후 미국에서 담임 목회를 시작하고, 풀러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셀교회 전환과 셀리더 세우기」,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설교」, 「건강한 목회를 통해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 역서로는 「성경적인 설교와 설교자」(공역)가 있다.
실천신학 교수로서 석의에 기초한 귀납적 강해 설교, 건강한 교회 계발, 소그룹과 셀 사역, 목회 신학을 강의한다. 뿐만 아니라 ‘목회 리더십’, ‘리더 훈련과 리더십 계발’ 등의 과목을 통하여 목회자들을 위한 변혁적인 리더십의 요소와 함께, 리더 훈련 방안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백석대 부설 현대목회리더십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목회자들과 알로에 마임 사장단 특강 등을 통해 교회 안팎의 각 영역에서 미래의 크리스천 지도자를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제시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의 연속이던 70년대 후반의 역동기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여파를 캠퍼스에서 겪었다. 당시 평신도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평신도 사역자로 섬겼던 그는, 시대에 대한 절망과 원망보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학문과 함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유학하던 중 그토록 거부하였던 전임 사역으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 이민 교회 목회자로의 삶의 변화는, 우리나라 교회 목회로 이어졌다.
이처럼 개척 교회로부터 지구촌교회라는 초대형 교회까지, 부교역자로부터 담임목사까지, 목회자로부터 신학교 교수까지의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안정된 삶보다는 부르심만 확인되면 모험의 장으로 뛰어드는 아브라함과 바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어받은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순종의 길을 이어가는 현재 백석대학교 기독신대원 학생처장으로, 현대목회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기독교전문대학원 실천신학 주임교수와 Th.D. 프로그램 디렉터로 한국 교회의 미래 지도자 양성을 위해 뛰고 있다.
과거에 공학 전문가로서 연구할 때 뿐 아니라 한 개인을 제자 훈련하는 삶 속에서, 목회자로 한 공동체를 섬기는 가운데, 교수로 신학생을 양성하는 곳곳마다 그는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주께서 보여 주시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변화와 개혁으로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타고난 변혁가로서의 삶은 항상 더 나은 리더십을 향한 열망으로 고민하게 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리더십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지도자 세우기 과정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정 속에서, 빛나고 변치 않으며 투명하면서도 단단하여 또 다른 사람을 다듬을 수 있는 고귀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변혁적 목회학의 핵심 요소를 다루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영적 리더십의 내면을 위한 ‘개신교 영성 형성 과정’과, 신학적으로 탄탄하며 동시에 실제적인 ‘목회 신학’의 완성을 위해 애쓸 것이다.
한양공대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컴퓨터 관련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과정 중 고든콘웰신학교에서 신학을 한 후 미국에서 담임 목회를 시작하고, 풀러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셀교회 전환과 셀리더 세우기」,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설교」, 「건강한 목회를 통해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 역서로는 「성경적인 설교와 설교자」(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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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도서 제공]
목차
이 책을 펼친 주님 안의 동역자들에게
Chapter 01. 단순한 교회성장에서 건강한 교회 만들기로의 패러다임 전환
건강한 교회, 건강한 목회란 무엇인가?
Chapter 02. 건강한 목회의 기본 -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성경적 설교
말씀을 듣는 능려과 사역
개혁주의 설교 -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설교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
Chapter 03. 건강한 교회의 얼굴 -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나타나는 예배
예배 변혁을 위한 일곱 가지 제안
포스트모던 시대 예배 갱신을 위한 제안
Chapter 04. 건강한 교회의 골격 - 소그룹과 셀사역
한국교회를 위한 소그룹 사역 방식을 찾아서…
셀사역은 장로교회를 침례교회로 바꿔야만 가능한가?
전통교회의 셀교회로의 전환
리더십 측면에서 본 셀사역
Chapter 05. 건강한 교회를 위한 일꾼 세우기 - 제직선발과 훈련
양육과 은사 관점에서 본 제직 선출과 제직 훈련
Chapter 06. 건강한 목회의 토대 - 영성에 기초한 목회
가톨릭 영성과 차별성 있는 개혁주의 영성 확립을 위한 목회적 제안
Chapter 07.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핵심요소 - 성경적 리더십
성경적 리더십의 독특성과 차별성의 기반
현대 목회환경에 적합한 성경적 리더십 (1)
현대 목회환경에 적합한 성경적 리더십 (2)
성공적인 팀목회를 위한 목회자의 역할
Chapter 08. 건강한 교회의 표현 - 현대사회에 맞는 전도
현대 전도운동에 대한 검토와 21세기를 위한 효과적 전도 제안
Chapter 09. 종합적 진단과 실제적 제안 - Test Case: 한국의 장로교회의 경우
한 세기를 보낸 한국 장로교회의 발전을 위한 목회신학적 분석과 제안
(무엇이 진정한 선교인가 목회인가)
What is Christian Missions?
Question: \"What is Christian Missions?\"
Answer: Christian missions is following Christ’s call: sharing the Gospel with the lost world through God’s wisdom and strength.
Christian missions is obeying Christ
After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He commanded the disciples to share the Gospel, the message of His redemption.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the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Spirit,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at I commanded you; and lo, I am with you always, even to the end of the age\" (Matthew 28:19-20).
This Great Commission applies to Christians today. Rather than a burden, obeying His call brings joy and reward in heaven. We should fulfill our mission not out of duty but love: “For the love of Christ controls us, having concluded this, that one died for all, therefore all died; and He died for all, that they who live should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but for Him who died and rose again on their behalf. . . . Now all these things are from God, who reconciled us to Himself through Christ, and gave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namely, that God was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not counting their trespasses against them, and He has committed to us the word of reconciliation” (2 Corinthians 5:14-21).
God could convert everyone using a blinding light and the voice of Christ as He did with the apostle Paul. Instead, He gives Christians the mission of reconciliation (Acts 1:8-9). He works through us, calling sinners to turn to Christ in repentance and faith.
Christian missions is sharing Christ
Our mission is proclaiming Christ as the only way to abundant, eternal life. Whom do we tell? Jesus made it clear that Christians are to reach out to “all the nations” (Matthew 28:19). Instead of countries, he was referring to people groups, those ethnic cultures without a Gospel witness.
Christian missions, however, is not limited to overseas ministry. While believers should faithfully support those who go to the unreached, all Christians have the mission to share Christ on the home field with family, friends, coworkers, and the community.
The Christian mission of sharing Christ does not end with a sinner’s salvation. The commission was to make disciples – not immature believers. Thus, Christian missions involves not only evangelism but also discipleship.
Christian missions is relying on Christ
Sharing the Gospel humbly, boldly, and passionately is our Christian mission. But we cannot do it alone. While our mission is sharing Christ, the power and results come from the Lord. He gives us the wisdom, strength, and desire to witness! Through our witness, He works repentance and faith in the sinner’s heart (2 Corinthians 5:20-21).
Although it is God\'s work, Christians are responsible to understand the Gospel and have a strong relationship with Christ. Such a relationship guards them from hypocrisy. “But sanctify Christ as Lord in your hearts, always being ready to make a defense to everyone who asks you to give an account for the hope that is in you, yet with gentleness and reverence; and keep a good conscience so that in the thing in which you are slandered, those who revile your good behavior in Christ may be put to shame. (1 Peter 3:15-16). Jesus assured that suffering would accompany missions, but God uses it for good.
In sum, Christian missions is obeying Christ, sharing Christ, and relying on Christ. Specifically, God sends missionaries through the support of the church to the unreached. All Christians, however, have the mission of reconciliation. The Lord works through them to rescue the lost. What greater mission can one answer?
Question: \"What is missiology?\"
Answer: Missiology can be defined as “the science of the cross-cultural communication of the Christian faith.” In the Great Commission, the Lord Jesus told us to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Mark 16:15). That command forms the crux of missiology, as it seeks to understand and explain biblical values for evangelism, such as the role of culture in giving the message, both declaring and demonstrating the message of the Gospel as it goes “into all the world.”
Three disciplines direct and enable the study of missiology: theology (mainly biblical), anthropology (including primitive religion, linguistics, cultural dynamics, and cultural change), and history. Missiology seeks to intelligently articulate the Gospel and its power to change lives in a culturally-appropriate context.
Five missiology-related issues that Christians through the centuries have wrestled with in applying and adapting the command to world evangelization are as follows:
• Apostolic Practice - How does the church carry on the method of sending out laborers into the harvest field?
• Church Structure and Mission - How does the church most effectively reproduce itself? What does local church leadership look like in a given region, whether in the United States or in the recessed corners of the world?
• The Gospel and other religions -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od news about Jesus Christ and other religious systems which do not acknowledge His lordship? Is there validity to the religious experience of their devotees, or do they have to give up their religious practices?
• Salvation and non-Christians - Are the heathen really lost? What is their destiny if they have never heard the Gospel and die without ever hearing it?
• Christianity and Culture – The same God who provided the Gospel for all peoples has also prepared all peoples for the Gospel. How does the church present the Gospel to those who have never heard it, in such a way that it makes sense, culturally-speaking, and answers their primary spiritually-related questions?
Missiology seeks to “further the understanding and performance of the Christian mission in our day.” To summarize, missiology is the study of how to best do missions.
(교회개척의 의미는 무엇인가)
What is church planting?
Question: \"What is church planting?\"
Answer: Church planting is the establishing of an organized body of believers in a new location. The process of planting a church involves evangelism, the discipleship of new believers, the training of church leaders, and the organization of the church according to the New Testament model. Usually the process also includes writing a church charter and/or doctrinal statement and finding a place to meet or buying property and erecting a new building.
Church planting is a specific focus within the larger work of “missions.” Church planters are missionaries who concentrate their efforts on preaching and teaching the Word of God. Other missionaries who specialize in certain skills may not be considered “church planters” officially, but they provide valuable service to those who are. Such supporting missionaries include radio broadcasters, aviators, printers, Bible translators, and medical personnel.
The ultimate goal of most church planters is to glorify the Lord in a community by founding an autonomous, self-propagating body of believers. Once this goal has been reached and the church is able to stand on its own, the church planter will usually move on to a different community and begin the process again.
The church-planting focus is biblical. As the apostle Paul traveled through an area, he always tried to spend enough time in each city to establish a local body of believers and train the leadership (Acts 14:21-23). Later, he would try to revisit those churches to confirm and encourage them in the faith (Acts 15:41; 1 Thessalonians 3:2). The churches he established would then begin to send out missionaries themselves, and so the work of church planting continued (1 Thessalonians 1:8).
Recommended Resource: A Revolution in World Missions by Dr. K.P. Yohan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