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의 기도문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외국 아이들의 기도문인데, 그 안에 어른들의 마음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뭘 원하는지 다 아시는데 왜 기도를 해야 하나요? 그래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면 기도할게요. - 수잔”
“하나님! 제 이름은 로버트예요. 남동생이 갖고 싶어요.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하래요. 아빠는 하나님께 부탁하래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죠. 하나님! 파이팅! - 로버트”
“하나님, 하늘만큼 크고 지구만큼 힘이 세세요? 너무너무 멋있어요. - 딘”
“하나님, 만일 알라딘처럼 마술 램프를 주시면 하나님이 갖고 싶어하시는 것 모두 다 드릴게요. 돈이랑 체스 세트만 빼고요. - 라파엘”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사랑을 담아서, 테레사 ”
“하나님! 왜 한 번도 텔레비전에 안 나오세요? - 킴”
“하나님! 만일 제가 하나님이라면요, 지금 하나님처럼 잘 해내지는 못할 거예요. 하나님! 파이팅! - 글램”
“하나님! 우리 옆집 사람들은 매일 소리를 지르면서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 크리스”
“하나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點究셀?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 벤쟈민”
“하나님! 하나님은 왜 밤만 되면 해를 숨기시나요? 가장 필요한 때인데 말이에요. - 바바라”
“하나님!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일을 전부 시키시나요? 우리 엄마는 우리들이 엄마의 천사래요. 그래서 우리들한테 심부름을 다 시키나 봐요. - 사랑을 담아서, 마리아”
“하나님! 하나님께서 어디든지 계시다니 마음이 놓여요.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에요. - 마거릿”
“하나님! 지난주 뉴욕에 갔을 때 성패트릭 성당을 보았어요. 하나님은 아주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시던데요! - 프랭크”
“하나님! 착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면서요?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요, 항상 착하지는 않아요. - 미셸”
“하나님, 휴가 때 계속 비가 와서 우리 아빠는 무척 기분이 나쁘셨어요. 하나님한테 우리 아빠가 안 좋은 말을 하긴 했지만요, 제가 대신 잘못을 빌 테니 용서해 주세요. - 하나님의 친구, 그렇지만 이름은 비밀이에요!”
“하나님! 요나와 고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래가 요나를 한입에 삼켜 버렸대요.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 이 이야기가 뻥이래요. 정말 못 말리는 우리 아빠예요. - 시드니”
“하나님! 남동생이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갖고 싶다고 기도한 건 강아지예요. - 조이스”
“사랑하는 하나님! 왜 새로운 동물을 만들지 않으세요? 지금 있는 동물들은 너무 오래된 것뿐이에요. - 조니”
“하나님! 사람을 죽게 하고 또 사람을 만드는 대신 지금 있는 사람을 그대로 놔두는 건 어떻겠어요? - 제인”
여러분! 이 어린아이들의 기도 속에 어른들의 소원과 어른들의 물음과 어른들의 생각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그냥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것들, 때로는 의심, 때로는 기쁨, 때로는 즐거움, 이런 것들을 그냥 하나님께 그대로 올려 드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너무 많이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들이 느끼고 있는 것, 그들이 소원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여러분! 기도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기도에 대한 정의만큼 많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어린아이가 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여러분! 기도를 언제 하세요? 기도는 내가 부족할 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자라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될 때, 내가 자랑스러울 때, 내가 뽐내고 싶을 때, 그때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즉, “제가 아직은 아닙니다. 제가 더 자라나야 됩니다. 제가 지금 이것 갖고는 저 스스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주님 앞에 머리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어린아이들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바뀐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언제부터 즐거워질까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언제부터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될까요?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습니다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될 때, 그때 신앙의 기쁨과 신앙의 즐거움이 생겨납니다. 특별히 내가 갖고 있는 부족한 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 그것이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될 때,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 보람 있는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께서 산상 설교를 하시며 여덟 가지 복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복 중에 첫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의 것이다.” 여러분! 가난한 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직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가난한 사람은 두 가지 반응을 자기의 삶에서 갖게 됩니다. 하나는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 먼저 나오게 되는 불평입니다. “왜 저는 적습니까? 왜 저는 모자랍니까? 왜 저 사람에게는 많이 주고 저에게는 그런 여건을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원망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자라고 부족하고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속에는 또 다른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뢰하게 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게 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제가 갖고 있는 것으로는 스스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신앙의 자리에 들게 됩니다.”
“가난하다.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의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다림을 갖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것과 옳은 것과 참된 것에 대해서 열어 놓는 개방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마음을 갖고 인생을 사는 것은 그런 점에서 축복인 것입니다. “나는 다 됐다! 나보다 더 선한 자가 있으랴! 나만큼 높은 자가 있으랴!” 그런 사람은 복 받는 사람이 아니라 실상은 그 마음이 썩어져 가고 문드러져 가는, 오히려 화를 받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사모하게 됩니다.
저는 소망교회에 와서 두 가지 단어를 늘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제 마음속에 떠올릴 때마다 감사하고 감격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귀한 성도님들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고, 주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제게 이만큼 나왔던 불평도 사라져 버립니다. 이만큼 나왔던 제 생각 속의 원망도 다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만족입니다. “하나님! 아직도 지혜가 부족합니다. 아직도 말씀을 증거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아직도 기도가 부족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 제게는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 아직도 주님의 품성을 닮기에는 너무 멉니다. 너무 빨리 분노하고 너무 빨리 원망하고 너무 빨리 오래 참지 못하고…, 이런 모습 속에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게 하시옵소서.”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이 불만족의 마음이 그냥 불만족으로만 있으면 불평이 되고 원망이 됩니다. 그러나 이 불만족한 것을 기도로 승화시키면 거룩한 불만족이 됩니다. “하나님, 제게 이렇게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님 앞에 아뢰오니 도와주시옵소서!” 그 불만족은 비평이나 불평이나 원망이나 탄식이나 조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 성숙된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주시는 은총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가장 우선이 되어 주세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다른 어떤 것이 주님보다 더 앞서 가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여러분이 갖고 있는 불만족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역사를 친히 경험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감사와 감격과 만족을 늘 갖게 할 것입니다. 동시에 거룩한 불만족은 우리로 하여금 여기에서 이제 다 됐다고 스스로 착각하지 않게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이 원하시는 곳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에 대한, 하나님의 이해에 대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넉넉하게 용납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을 깨달으면서 기도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라는 책을 쓴 마릴린 혼츠라고 하는 여성이 그의 글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남편 폴은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 아이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제대로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이 마릴린이라는 여성은 십대에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나님께 항의하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면 제 어머니를 좀 살려 주세요!” 하고 그렇게 기도했던 여인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머니는 늘 기도하던 분이셨습니다. 성경공부도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을 아주 잘 증거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고백을 했습니다. 집에는 십대에 불과한 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의 어머니를 데려가시다니 하나님의 결정은 분명히 잘못된 결정임이 확실합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후에 그녀는 어머니의 기도를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돌아가기 전 날 밤에 자기에게 해 준 말이었습니다. 그때 이 마릴린이라는 여인은 십대의 소녀였습니다. “얘야! 내가 네 남편과 네 아이들을 직접 안아 볼 수는 없겠지만, 기도를 통해서 그들을 품을 수가 있단다. 난 너의 남편이 될 사람과 아이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기도해 왔단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다시 확인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머니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몇 년 후에 싹트게 될 기도의 씨앗을 심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비록 우리의 생명은 한계가 있어도 기도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도는 세대를 뛰어넘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내 어머니의 엄청나고 강력한 기도에 힘입어 오늘의 나의 남편, 나,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기억하는 어머니, 아버지, 또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에 대해 간증하라고 하면 “제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습니다.”라고 여러분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시간의 차이를 넘어서,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기도가 세대에 세대를 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룩한다는 것,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를 받는 사람들의 신앙의 간증인 것입니다. 기도의 힘이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그런 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뭘까요?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것, 의심함으로 두 가지 마음을 갖고 나아가는 그것이 기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길에는 늘 두 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이고 하나는 의심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믿음과 의심을 동시에 붙잡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과 의심을 동시에 붙잡으면 무엇이 이깁니까? 믿음이 이기지를 못합니다. 늘 의심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붙잡으셔야 됩니다. 믿음만 붙잡아야 되는데, 내가 믿는 그 믿음조차도 그 뒷면을 보면 의심이 들어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무릎을 꿇고 “주님! 믿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순간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나님!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이렇듯 의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자리로 결정을 해야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의심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의심보다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 그것이 믿음을 가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또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기보다는 문제 해결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축복부터 구합니다. 축복, 그것에 모든 기도가 달려 있는 것처럼 매달립니다. 그 축복이 구해지면 조금 좋아하고, 얻어지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도할 마음도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와 상관이 없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복을 구해야 되지만, 복을 주시는 분을 더욱더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키울 때 자녀들이 요청하면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고 때로는 아주 비싼 것 까지도 자녀를 위해 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자녀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던가요? 그 선물을 주는 아버지에 대해서 관심 있던가요? 선물 주는 어머니에 대해서 관심이 있던가요? 아니면 선물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있던가요? 엄마 아빠는 쳐다보지도 않고 선물만 붙잡고 앉아 있으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야 이놈아, 나 좀 봐라. 그 선물 누가 해 줬는지 좀 봐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지 말고, 하나님께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그분께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얘야! 나는 너와 만나고 싶다. 얘야! 내게 말 좀 걸어 다오! 내가 대답해 줄게.” 토저라는 분은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을 찾아 주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은 많은 이들이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함께 끌어안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함께 사랑하고 싶어하십니다. 이렇듯 우리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시는 그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 그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하나님!” 하며 내 안에 있는 모든 문제를 아뢰면 됩니다. 친구처럼, 구체적으로 “하나님! 제게 이런 걱정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화가 납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제 아들과 딸이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친히 아버지가 되셔서 좀 이끌어 주세요. 하나님! 제 소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작은 일도, 이런 시시한 문제도 하나님께서 들으실까?’
여러분! 기도하기에 너무 사소하거나 기도하기에 너무 버거운 문제가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의 작은 문제는 우리 부모들의 문제입니다. 자식의 큰 문제도 부모의 문제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근심하시게 하라!” 여러분! 기도도 이 정도의 배짱이 있으면 괜찮은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 근심, 내 걱정, 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근심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이 진심으로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기도를 배우는 유일한 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내 문제를 갖다 놓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아픔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과 한 가지 열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의 육체가 숨을 쉬어야 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기도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숨쉬지 않고 사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도하는 것을 배우셔야 합니다. 기도해야 예수 믿는 기쁨이 생깁니다. 기도해야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기도하셨는데, 기도하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의 권리인 것입니다. 특권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기도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올 한 해는 기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세요. 필요하시면 차를 타고 운전하면서 기도하세요. 전철을 타고 가면서도 기도하세요. 밥을 지으면서 기도하세요.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기도의 즐거움을 통해서 신앙의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기도를 저희는 종종 잊어버리고 제가 마치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다 된 것처럼 기도하는 법을 잊어버렸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게 하시고, 저의 연약하고 부끄럽고 못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지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