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부터 난 지혜

위로부터 난 지혜/야고보서 3장 13절로 4장 3절, 7절로 8절 상반절|

 

위로부터 난 지혜

 

추석 연휴가 짧아서 대부분 시골에 찾아왔던 자녀들이 이미 돌아간 집들오 많이 있을 거예요.

어제 밤에 지리산 고등학교까지 산책을 하면서 보니까, 오랜만에 집집마다 불들이 환하게 켜있어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해만 지면 다 불들을 끄고 잠을 주무셔서 깜깜해지는 곳이 우리 동네인데, 어젠 늦게까지 불들이 켜있어서 집집마다 마당까지 환하게 비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열시도 되기 전에 자녀들이 다 떠나고 나니까 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깜깜해지더라고요.

 

저는 금년 추석에는 고향에도 못 갔습니다마는 부모님들은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자녀들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렸던 자녀들도 왔다가는 하루 이틀을 못 머물고 금방 또 떠나버리는 걸 보면 자식들도 믿을 것이 못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손님 치르느라 고생들이 많으셨습니다.

자식들도 며느리들도 다 왔다 가면 손님들이지 뭐예요?

며느리들은 며느리들대로 모처럼의 휴일을 시댁에 가서 고스라니 다 바쳐야 했으니 고생들이 많았을 겁니다.

하여튼 모두 모두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길지 않은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내 맘대로, 내 멋대로 살 수가 없는데, 특별히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세상을 살아가는 특별한 기술을 가리켜서 ‘지혜’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은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있는데, 지혜는 없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면 해결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낙심을 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특별히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솔로몬도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무엇을 구했습니까?

오래 사는 것이나 부나 명예나 자기 원수가 멸망 당할 것을 구한 것이 아니라 뭘 구했다고요? -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듣는 마음이 뭐라고 말씀 드렸죠? 그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구약에 있는 잠언이나 전도서 같은 말씀들이 대표적인 지혜서들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있는 야고보서 말씀을 ‘신약의 잠언’이라고 말을 하기도 해요.

그만큼 야고보서 말씀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득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에는 야고보라는 인물이 네 사람이 등장을 하는데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가 있어요.

이들 중에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고보서에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과 매우 유사한 말씀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지혜가 있느냐? 너희에게 총명이 있느냐? 너희에게 믿음이 있느냐?’

‘그러면 너희들의 그 지혜와 총명과 믿음을 한번 보여 봐라!’ 그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우리들의 지혜와 총명과 믿음을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선행을 통해서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약2:17)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치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없을 거예요.

하다못해 원숭이 같은 짐승들도 꾀가 있어서 얼마나 영악하게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물며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그걸 가지고 자식을 가르치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하고, 사람들을 사귀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처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지혜라고 다 똑같은 지혜가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어요.

이 땅의 지혜와 하늘에서 온 지혜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것들이 이 땅의 지혜들입니까?

이 땅의 지혜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이 땅의 지혜들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가 있어서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치고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 똑똑한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싸운단 말입니다.

왜 그래요?

세상의 지혜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어때요?

17절 말씀을 보니까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다 같이 읽어 봅시다!

17절부터 18절까지 말씀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자, 우리들은 이미 세상적인 지혜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성도님들처럼 60, 70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은 나름대로 세상사는 지혜가 다 있으세요.

그런데 세상 지혜들은 결국 독한 시기와 다툼을 가져온다고 했거든요.

세상 지혜들은 다 정욕의 것들이고, 귀신의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뉴스에 보니까 요즘 농촌 마을에도 좀도둑들이 들끓고 있다는 거예요.

밭에 있던 하우스 파이프는 물론이고, 콤바인 부품이나 심지어 가마솥까지 몽땅 훔쳐가고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몇푼 안 되는 돈까지 다 털어 갔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도둑들을 잡아서 보면 다 똑똑한 놈들이어서 IQ도 높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살다 보니까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지혜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여섯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결’입니다.

성결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고 기뻐하실 만한 것입니다.

성결은 인간적인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빼어낸 아주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성결한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깨끗하고 거룩하겠어요?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어떤 복을 받게 된다고요? -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세상의 더러운 것들은 불로 태우거나 비누로 깨끗이 씻으면 되지만 우리 인간들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주님의 보혈 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둘째는 ‘화평’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들로서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들과 하나님은 원수가 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 되었던 것을 화평케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웃과 이웃이 원수 되었던 것을 우리 주님이 화평케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위로는 하나님과 아래로는 사람이 서로 원수 되었던 것을 예수님이 이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이쪽저쪽, 좌우에 있는 우리 이웃들과 원수되었던 것을 우리 예수님이 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화평하게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온 지혜, 세 번째는 ‘관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부인하고 이웃을 용납하는 건데요, 화평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관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뭐예요? ‘양순’하며…

양순하다는 말은 착하고 순하다는 뜻입니다.

양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양순한 사람은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독한 사람의 눈은 꼭 독사의 눈처럼 생겼거든요.

양순한 사람의 눈은 꼭 비둘기 눈처럼 생겨서 얼마나 순해 보이는지 몰라요.

한번 옆 사람의 눈을 한번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더 양순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더 양순한 사람인가?

마태복음 5장 5절 말씀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늑대나 이리들은 지금 거의 멸종 위기에 있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런데 토끼같은 짐승들은 온 땅을 차지하고 뛰어다니는 걸 보면 역시 사납고 포악하다고 해서 땅을 다 차지하고 사는 건 아니구나 싶어요.

이 땅에 착한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다섯 번째는 뭐예요? -‘긍휼’입니다.

긍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불상한 마음을 가지고서 구체적으로 이웃을 찾아가서 도와주는 것이 긍휼이에요.

저 이북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하는데, 남쪽엔 쌀이 남아돌아서 농부들은 쌀값이 폭락을 해서 난리들이잖아요?

그런데도 쌀 한 톨 못 주겠다고 하는 건 긍휼의 마음이 없는 거예요.

불쌍한 이웃을 보면 조건 없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해일이 일어났다고 하는 뉴스를 보셨죠?

아마 모르긴 해도 수천 명이 생매장이 되었을 겁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시찰에서도 금서교회와 청현교회가 화재로 교회와 사택이 전소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날은 추워지는데 목사님 가정이 거처할 사택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교회가 서로 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선한 열매’입니다.

선한 열매는 이웃에게 베푸는 우리들의 선한 덕행들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사랑의 사람들에게서는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게 마련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에게서는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게 마련인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하는 선한 열매들인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떠니저떠니해도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거예요.

이단 사이비를 분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예요?

그들의 열매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주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한 열매를 맺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변장이나 속임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약삭빠르거나 남을 속이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아서 변함이 없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혜입니다.

그 속에는 순결함과 평화, 온유함과 겸손, 자비와 선한 열매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사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4장 7절과 8절 상 반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세상 지혜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가까이 하고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누구를 가까이 모시고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께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어제가 추석이었는데요, 예로부터 이맘때가 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마련이지요.

그만큼 지금 이 때가 일 년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때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우리 상황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경기침체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추석이 다가 오는 것이 기다려지더라고요.

가슴이 설레면서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거예요.

어린 아이도 아니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아직까지 추석이 기다려지더라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역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우리네 조상님들의 넉넉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비단 물질의 넉넉함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우리가 소유하면서 누리고 사는 것들이 너무나 많죠.

그러나 그 보다는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사방팔방 어디를 둘러봐도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과 들에는 무르익어가는 곡식들이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최근에 동남아와 남태평양을 강타한 지진이나 해일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 분들께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우리들은 참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누리는 이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요즘 계속해서 뉴스에 보도가 되고 있잖아요?

그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우리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그 사람들이 겪는 불행과는 상관없는 복을 누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한민국만 같아라!’라는 말로 바꾸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 대한민국의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는 얘기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우리가 얼마나 풍성한 축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 몰라요.

이제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를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눔으로 말미암아서 보이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조한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