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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 왕과 맞서 싸우던 여호와의 전사로서의 용맹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마지막 승천 장면으로도 매우 인상 깊은 선지자입니다. 엘리야와 끝까지 행동을 같이했던 그의 제자 엘리사는 스승이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우는 엄청난 광경을 직접 목격했고, 이때 스승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엘리사는 조금 전 스승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승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왕하 2:14).
과연 엘리야의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우리는 “여호와께서는 항상 계시는 곳, 곧 보좌위에 계신다”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엘리야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엘리야를 가리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약 5:17).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은 엘리야와 같은 ‘기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수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출신이 희미한 채 엘리야는 장성한 사람으로 구약의 무대 위에 나타났습니다(왕상 17:1). 당시는 악하고 무능한 아합 왕과 지옥의 딸 이세벨 왕후가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도륙해버리고, 대신 거짓 우상 앞에 많은 바알의 제사장들을 세웠던 때입니다. 어둠이 땅을 뒤덮었고 백성들은 죄를 물같이 마셨습니다. 이방 산당과 우상 제사로 더렵혀진 그 땅은 사악한 수천 제단에서 피어오르는 제물의 연기로 가득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들 가운데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고 태양이 그 빛을 잃은 때였습니다. 이 엄청난 타락 가운데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들어 세우셨습니다. 한 무리가 아니고 한 교단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꼭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찾으셨는데,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무너진 데를 막아서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이제 엘리야도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성령님은 그의 생애를 두 마디로 기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했다”(약 5:17-18).
오늘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사람 엘리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행했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세례요한을 들어 엘리야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듯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엘리야들을 찾고 계십니다. 엘리야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늘 문을 잠그고 푼 엘리야 (적용적해석: 하나님을 붙잡아 일함)
17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절=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삼년 반 동안 하늘 문을 잠구어 비를 오지 않게 하였고, 다시 하늘을 열어 비가 오게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엘리야에게 무슨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하늘의 비를 마음대로 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간절한 믿음의 기도로써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붙잡아 일하게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로 엘리야는 기도하는 의인(義人)이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었습니다(16절). 그 누구도 하나님이나 사람을 위하여 믿음의 기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 비판하고 충고해 주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주님 앞에 엎드려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무릎의 사람의 수효가 많다면, 교회는 일 년 이내에 부흥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의 사람은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높은 이상(Vision)을 보았으며 동역자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비록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했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영적 전투의 외로운 싸움에서 흘린 눈물, 그가 견뎌야 했던 영혼의 번민(煩悶), 그리고 그가 토해내었던 말할 수 없는 신음소리들은 하나님의 역대지략(歷代誌略)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마침내 엘리야는 하나님의 무오성(無誤性)으로 엄청난 사실을 예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이 반석같은 사람은 당시의 절대군주 아합왕 앞에서도 길르앗 산맥처럼 웅장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한마디 말로써 하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선지자가 믿음의 열쇠로 하늘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어버리자 아합 왕과 왕을 따르는 무리들은 떨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잡아 쓰실 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만, 기도의 사람이 하나님을 붙잡아 일할 때 세상은 더 큰 기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성령 안에서 신음할 때 경천동지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 이 시대의 하나님의 엘리야가 필요합니다.
2. 몸을 숨긴 엘리야 (적용적해석: 인내와 순종)
17:2-4=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을 향해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가뭄을 선포한 엘리야에게 이제 몸을 숨길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해치려고 그를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엘리야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결코 위험에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시편기자가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시 46:1)이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적이 드문 그릿 시냇가로 몸을 숨겼고, 하나님은 까마귀들을 동원하여 아침 저녁으로 떡을 공급케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인내하였고, 말씀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엘리야의 인내와 순종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왕들을 책망해야 할 때 숨긴다면 어리석고, 성령께서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 이르실 때 설교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입니다.
엘리야는 요단 동편 시냇가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그곳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거했던 장소로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삼았던 곳입니다. 조상들은 이곳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이곳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사역을 마친 장소이기도 합니다.
엘리야는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인내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 이 시대의 하나님의 엘리야가 필요합니다!
“너는 그 시냇물을 마시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시냇가로 인도하신 것은 그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알을 숭배하던 아합과 이스라엘이 가뭄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던 것에 반해, 엘리야는 재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보존되며 결국 바알 숭배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케 될 것을 암시합니다.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우리의 하나님은 의로운 사자를 공궤할 때에 때로는 까마귀와 같이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한 자로 취급받았던 이방 여인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이제 엘리야에게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라고 명하셨고, 선지자는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17:9).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릅니다. 그의 길이 오묘하므로 우리는 찾다가 자주 그를 지나쳐버리지만 그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라고 하셨고, 이 하나님의 선지자는 명령을 따라 굶주려 있는 한 과부의 가정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은 위기에 처한 성도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며, 성도가 어려울 때 능력의 손길을 베푸셔서 충족한 도움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성도가 위기를 만나게 될 때 친히 피난처와 쉴 곳을 예비하시고 궁핍할 때 쓸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환난과 위기에 처한 분들이 계십니까? 견딜 수 없는 시련에 봉착해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인내와 순종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소망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인내와 순종을 보시고 여러분의 기대와 소망을 결코 모른체 하지 않으시며, 속히 능력의 손을 내밀어 여러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3. 갈멜산의 전사 엘리야 (적용적해석: 거룩한 대담성)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하나님의 엘리야는 하늘 문을 잠그고 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 함께 일한 사람입니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처럼 민족의 죄악을 생각했으며, 예수님처럼 죄에 대하여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죄에 맞서서 외쳤습니다. 그는 기도에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바쳤고, 나라의 죄악을 뜨겁게 증오하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부드러울 수 없었습니다. 열정 속에서 설교가 분출(噴出)되었고 그의 말은 쇳물이 살갗에 닿듯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들어갔습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 이야기는 우리가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워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나라를 뒤덮고 있던 바알 우상의 세력들을 갈멜산에 모아놓고, 하나님과 바알 중 어느 쪽이 참 신인가를 표적을 통해 결정짓게 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제단에 올려놓은 제물을 하늘에서 불을 떨어뜨려 태우게 하는 신이 참 신이 될 것이었습니다.
수백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맞선 한 사람 엘리야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거룩한 대담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간결한 기도의 걸작(masterpiece)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의 사람 E.M. 바운즈의 말대로 ‘간략하고 힘찬 공중 기도는 더욱 길고 은밀한 도고(禱告)의 소산’ 입니다. 엘리야는 바알 우상의 제사장들이 멸망받도록 기도하지 않았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소멸하도록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곤경에서 빠져나오시도록 도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아들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도우려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지금까지 후손들이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엘리야는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불을 원하면서 오히려 제단과 제물을 물로 흠뻑 적셨습니다. 18:33-35=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가지는 거룩한 대담성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그 어떤 것도 능히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약속은 우리의 시야를 초월하십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8).
엘리야는 이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온통 적대적인 바알의 무리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 뿐이었지만 그는 거룩한 대담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 하늘의 불로 제단의 제물을 태우고 도랑에 가득한 물을 핥아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갈멜산 위에서 뿐 아니라 온 나라에 크게 나타내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엘리야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엘리야’ 를 찾고 계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예 회복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사람입니다.
이 흑암의 시대에 우리 교회의 목적은 오직 예수 한 분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분의 명예는 더럽혀졌고, 그분의 법은 어겨졌으며, 그분의 이름은 훼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책은 잊혀졌고, 그분의 집은 사회 운동가들의 집합장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그저 하나님께 조언을 드리는 정도가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는 내가 속한 단체를 위한 야심으로 퇴색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기 백성들이 기도할 때보다 더 하나님께 인내심이 필요하실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어떤 식으로 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심판도 하고 검사도 합니다. 요컨대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빼놓고는 다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그는 능력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대로 능력대로...능히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의 가장 큰 문제는 공산주의도 아니요, 자유주의도, 현대주의도, 심지어 로마 주의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문제는 말로만 살아 있는 근본주의,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있는 개혁주의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의 지도자 여러분! 우리는 지난날의 성자들, 순교자, 개혁자들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루터들, 칼빈들, 웨슬레들, 에드워드들을 존경하여, 그들의 전기를 쓰고 기념비를 건립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다 하되 단 한가지 그들을 본받는 데는 인색합니다. 그들이 흘린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고귀하게 여기지만, 우리 자신의 피는 아직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의 때입니다. 이 땅은 하늘 문을 잠그고 풀 하나님의 엘리야들이 필요합니다. 인내와 순종으로 위기를 이겨낼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늘 보좌로부터 불을 끌어내리는 기도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여기 함께 모인 우리가 바로 이 시대 하나님의 엘리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기도의 사람을 키워내는 기도 학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