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와 같은 사랑

포도주와 같은 사랑 (아 1:2-4)
영적 주제 : 사랑의 갈망

요 약

주님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를 통해서 싹트게 된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특히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신다. 그 이름다움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구속의 사랑이요, 우리 심령을 감동시키는 은혜와 진리의 충만이시요,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은혜로운 직분들이요, 조금도 차별 없으신 주님의 사랑이시다. 이 사랑을 아는 성도들은 주님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고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설 명

1. 내 용
⇒ 술람미가 연인에 대한 연모함이다.

2. 본서에 대한 3 견해
2인 주역극 : 솔로몬과 술람미와의 사랑
3인 주역극(1) : 솔로몬과 술람미와 목자와의 삼각관계
3인 주역극(2) : 술람미가 목자를 떠나 솔로몬에게 시집옴

3. 초기상태의 영적 경험의 특징
1) 알 것만 같은 감동적인 것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1절)
① 포도주 같은 사랑 - 구속의 사랑
② 향기름 같은 사랑 -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심
③ 쏟은 향기름 같은 이름 -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직분들
④ 모든 처녀들의 사랑 - 차별 없으신 주님의 사랑

2) 이기적인 속성
“-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3절)

4. 주님을 갈망하게 된 동기
1) 장소 : 포도원 - 그리스도의 교회
2) 만남 : 목자의 모습 - 교회 생활을 통해 받는 은혜

5. 실재적인 만남을 위하여(4절)
1) 사모하라 2) 도우심을 구하라 3) 적극적으로 신앙하라

6. 적 용
(가정) 이해하고 도와줌에서 애정이 발생한다.
(신앙) 설교를 통해 받는 은혜를 시사한다.


아가 1:2-4
2 (술람미)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원 문
2 ינקשׁי 잇솨케니(그가 내게 입맞추려 하노라) והיפ תוקישׁנמ 민네쉬코트 피후(그의 입술로) םיבוש־יכ 키 토빔(그것은 좋도다) ךידד 도데카(그의 사랑이) ןיימ 미야인(포도주보다)
3 ךינמשׁ הירל 레레아흐 쉬마네카(네 기름의 향기가)
םיבוש 토빔(아름답고) קרות ןמשׁ 쉬멘 투라크(기름이 쏟아지는도다)
ךמשׁ 쉬메카(네 이름에) ןכ־לע 알 켄(그런고로)
תומלע 알라모트(처녀들이) ךובהא 아헤부카(너를 사랑하는도다)
4 ינכשׁמ 마쉐케니(나를 이끄소서) ךירחא 아하레카(당신 뒤로)
הצורנ 나루차(우리가 달려가리라)
ינאיבה 헤비아니(나를 인도하시는도다)
ךלמה 함멜레크(왕께서) וירדח 하다라우(그의 침실로)
הליגנ 나기라(우리가 기뻐하여) ךב החמשׂנו 웨니스메하 바크(당신으로 인해 즐거워하리이다) הריכזנ 나제키라(우리가 찬양하리이다)
ךידד 도데카(당신의 사랑을) ןיימ 미야인(포도주보다 더한)
םירשׁימ 메솨림(올바르게) ךובהא 아헤부카(그들이 당신을 사랑하는도다)

스 토 리

오빠들의 강압에 의해
자기 포도원에서 쫓겨나
오빠들의 포도원지기로 채용된 술람미는
오빠들의 불친절과 힘든 노동으로 낯은 검게
그을고 마음은 늘 찌들어 있었다.
때 마침 자기의 유업을 돌아보러 온 목자 차림의
솔로몬에게 술람미는 자기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목자는 그녀의 이러한 처지를 이해하고 온갖 배려를 다 하였다.
그 목자의 친절과 진실 앞에 술람미의 마음에는 호감이 싹트고
날이 갈수록 목자를 연모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
입맞춰주기를 날마다 사모하기에 이르렀다.
술람이가 마음속에 그리는 목자에 대한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고 감람유보다 향기로운 것이었다.
특히 그 목자가 이 나라의 왕이며 온 세상을
진동시킨 지혜로운 솔로몬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술람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녀는 그가 온 나라 처녀들의 선망의 대상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나타나 침궁에서 꼬옥 껴안아 주기를 심히 갈망하였다.
그녀의 마음은 벌써 시녀들을 따라 왕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자신의 신분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포도주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을 느낀 처녀라면
누구든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포도주와 같은 사랑”입니다. 본 절은 술람미가 솔로몬이라는 연인을 사모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갈망함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단순한 남녀간의 애정시가 아니라 구약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신약에는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아름다운 구속적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본서의 전체의 줄거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솔로몬과 술람미라는 2인 주역극으로 보는 우리 전통적인 해석과, 자유주의학자들이 많이 지지하는 솔로몬과 술람미와 술람미의 애인인 목자 등 3인 주역극으로 보는 설, 그리고 술람미가 사귀던 애인인 목자를 버리고 결국은 솔로몬에게 시집온다는 3인 주역극의 다른 유형이 있습니다.

이렇게 줄거리에서부터 의견이 분분한 것은 그만큼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노래인지 아가서의 본문만 구별할 수 있어도 상당한 것입니다. 아가서를 해석하려면 문자적인 이해만 가지고도 안되고 그 시대의 풍습과 언어와 지리에 정통해야 하고 솔로몬이 쓴 다른 책들에 나타난 그의 표현법도 익히 알아야 하며 다른 성경과의 연관성도 발견해야 하는데 그럴지라도 해석되지 않는 것이 아가서입니다. 왜냐하면 아가서는 온갖 비유와 상징과 풍유와 은어들을 동원하여 부부생활을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을 해석한 후에도 다시 신령한 관점에서 재해석하되 그것도 우리의 깊은 영적 체험이 되도록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아가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해도 영적 체험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가서가 지혜의 대왕인 솔로몬의 수많은 노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라고 한다면 솔로몬만큼의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니면 그 풍성한 의미를 유감없이 해석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 것은 아가서는 열려있는 책이며 저자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가서는 가극이기 때문에 잘 해석된다면 한 편의 아름다운 가곡의 줄거리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은 물론이고 주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성숙한 신앙적 감화 가운데로 이끌어 줄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방황도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서는 부부간의 생활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은유를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도록 직유로 풀어서 사실적인 면이 드러나더라도 가정생활세미나에 참석했다는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 사실적인 내용을 기초로 거룩한 영적인 것을 말씀할 때 부부생활로 영적인 진리를 말하다니 그럴 수 있느냐는 유교적 고정관념을 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기록한 책이며 사실적인 묘사도 많은데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을 말씀한 것이라고 말들은 잘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유교적인 관념을 가지고 본문에 대한 사실 이해마저도 긍정하기를 꺼리는데 이는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럼 아가서 줄거리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먼저 3인 주역극설(1)이 있습니다.

먼저 술람미와 목자간의 사랑으로 본 3인 주역설은 솔로몬에게 정조를 지킨 술람미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영화를 한없이 누린 대왕 솔로몬이 아름다운 동녀 술람미에게 반하여 사랑의 야심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여자를 납치하여 예루살렘 궁전으로 데리고 와서 그 모든 권세와 지혜를 다 보이고 그녀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이미 고향 전원의 목자에게 혼인을 맹세한 술람미를 궁중의 영예도 행복도 권력도 왕의 찬탄과 아부와 추종과 감언으로도 그 마음을 돌려놓지 못합니다. 끝까지 승리한 술람미는 사랑하는 목자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거기서 애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순결한 사랑과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의 절대성을 노래하며 막이 내린다)는 줄거리입니다.

또 다른 3인 주역극설(2)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3인 주역설은 (술람미가 삶의 터전에서 자연적으로 사귀게 된 첫 애인인 목동을 사랑하지만 두 번째로 나타난 솔로몬과 혼인의 약속을 맺고 왕궁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술람미는 소시부터 동락하였던 목동을 잊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목자를 찾지만 결국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눈물을 머금고 왕궁으로 돌아와 솔로몬과 결혼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그리고 2인 주역극설이 있습니다.

2인 주역설은 가장 전통적인 설로서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오빠들의 핍박과 강제에 의해 포도원지기로 일하던 술람미는 자기의 유업을 돌아보러 다가온 온 목자 차림의 솔로몬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술람미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갖 배려를 다하는 목자를 보고 흠모의 정을 갖게 됩니다. 그 목자에 대한 사모의 정은 날로 더하여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 입맞춰주기를 날마다 사모한다. 결국 술람미는 목자를 찾아 나서 그 마음을 사로잡아 혼인을 약속 받고 두 사람의 사랑은 무르익어 갑니다. 그러나 시골 처녀로서 그리고 검게 탄 얼굴의 소유자인 술람미가 솔로몬의 배우자가 되는데는 많은 장애가 뒤따릅니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고 왕궁의 인식도 변하고 환경도 바뀌어 두 사람은 온 국민의 환호 속에 혼인을 합니다. 시골 동녀 술람미의 신혼과 왕궁생활에는 많은 갈등과 고통이 따르지만 술람미는 이내 극복하고 왕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왕후로 촉망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하여 술람미는 왕의 사랑은 물론 비빈들의 부러움과 온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습니다. 아가서의 절정은 술람미의 고향에서 이루어집니다. 즉 왕과 함께 금의 환향, 왕자의 출산, 그리고 오늘이 있도록 애쓴 오빠들의 숨은 공로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오해는 풀리고 감격하며, 정든 친구들이 몰려와 그녀의 왕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의 분위기는 절정에 오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한 몸 한 마음 한 소망이 되어 이스라엘의 동리를 향해 달려가다가 막이 내린다)는 줄거리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의 희곡적 개관 중에 2인 주역설인 전통적인 개관을 택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본서의 문맥과 구속사적인 흐름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목자와의 사랑인 3인 주역설을 택할 경우 저자요 그리스도의 예표인 솔로몬이 악역인 사단의 상징이 되어버립니다. 또 술람미의 사랑만 부각되고 그리고 점진적인 아가서의 흐름과 부합하지 않는 모순이 생겨납니다. 혹은 절충설 역시 옛 애인 목자라고 주장하는 자리에 “왕”이나 시녀를 뜻하는 “예루살렘 여자들” 등이 나타나 있거나 목자를 찾지 못해 돌아옴이 아니라 도리어 찾음으로 나타나 있는(1:8-11) 등 문맥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적으로는 정조를 잃은 술람미의 모습이 되고 맙니다. 이 설은 성도가 옛 애인인 세상의 그리움을 떨쳐버리고 결국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는 성화의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실재로 본서는 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모함에서부터 출발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본서는 두 남자 사이에 방황하는 갈등의 노래가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사랑의 노래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첫사랑의 영적 경험에 관한 것입니다.

이 첫사랑의 영적 경험에는 몇 가지의 그 특징이 있습니다.

1. 이기적인 사랑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3절에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술람미나 기타의 이스라엘의 처녀들이 솔로몬을 사랑하는 동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동기는 솔로몬과 그의 사랑이 위대하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술람미만이 아닙니다. “처녀들이” 란 용어가 2, 3절에 두 번 나오는데 그것은 이러한 사랑은 술람미만이 아니라 많은 처녀들의 사람의 특징이기도 함을 확실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즉 훌륭하니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예를 들자면 신랑감으로 따지면 이스라엘에서 솔로몬 왕보다 더 나은 신랑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에 대한 성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살고 죽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좋겠지만 최초의 인간의 사랑은 이렇게 철저한 이기적인 특징을 가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아무도 그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영원하신 사랑에 의하여 무조건적이었습니다.

2. 주님의 사랑을 알 것만 같으나 아직 누리지는 못합니다.

2-3절에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했습니다.
본 구절은 술람미에 대한 목자의 특별한 배려에 대한 느낌을 포도주와 향기름과 쏟은 향기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목자의 다정한 위로를 받고 연모하는 술람미의 마음입니다. 여기 연모를 상징하는 세 종류의 물질은 그 연모함의 간절성을 잘 시사해 줍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여기 포도주보다 나은 사랑이란 십자가의 사랑을 뜻합니다. 포도주는 으깨지는 희생을 통하여 만들어지듯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묘사합니다. 그래서 그의 속죄를 믿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시고 사랑의 품으로 안아 주셨습니다.

또 향기로운 기름이란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성령의 각종 은혜와 은사를 주심을 가리킵니다. 박윤선 박사님도 이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란 여기서도 은혜는 은혜인데 여기서는 우리를 향하여 아낌없이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직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술람미처럼 교회를 통해서 주어지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너무 좋고 좋아서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 사랑은 육신의 이성의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사랑이라는 점 오해 없길 바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초보적인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의 러브스토리가 있습니까? 이 주님과의 러브스토리를 소설로 쓸지라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나를 사랑하시고 훌륭하시며 좋으신 분이시기에 사랑하는 것은 비록 이기적인 듯 보이지만 이것이 우리 주님 사랑함의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에서 우선 많은 감화를 받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3. 그럼,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아가서의 배경을 이해해야합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을 만난 동기는 솔로몬의 소작을 하고 있는 오빠들의 포도원에서 오빠들의 강압에 못 이겨서 포도원지기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술람미가 포도원에 앉아 오빠들의 악함과 힘든 노동에 얼굴은 그을고 심히 상심해 있을 때 자기 소작을 돌아보기 위해 목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솔로몬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목자는 술람미의 처지를 이해하고 찾아올 때마다 술람미에게 많은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마치 양떼를 먹이던 미디안의 이드로의 딸들을 팔을 걷어 부치고 돕던 모세가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 것과 같은 예입니다. 예를 들면 아2:15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했던 술람미의 잠꼬대에도 나타나듯이 솔로몬은 여자가 하기 어려운 일을 도왔으리라고 봅니다. 이렇게 성경의 원리가 같음은 모두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술람미는 이 사랑에 감복하여 목자를 흠모하는 사랑을 갖게 됩니다. 술람미가 그리는 목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포도주와 향기름 그리고 쏟은 향기름과 같이 황홀한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남남의 연모의 관계의 이야기이지만 이 원리는 기성 부부들에게도 계속되어야 할 관계입니다. 혹시 서로 간에 마음이 가깝지 않는 부부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의 작은 고통이라도 이해하여 주고 배려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술람미가 목자를 흠모하듯이 아주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리가 부부생활의 최초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배려가 없이는 여러분의 아가서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특히 남편들은 약한 아내를 이해하고 잔잔한 배려와 사랑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 때 아내는 남편의 가장 아름다운 아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내가 먼저 깨달았다면 남편을 위해 가장 매력 있는 아내로 가꾸십시오. 그러면 남편은 연애시절과 같은 그 사랑을 해 줄 것입니다. 앞으로 아가서에 나타나는 여러 원리들을 도입하여 실행하시면 이 말씀은 여러분의 가정생활을 놀랍게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여기 포도원은 교회의 상징이요 목자는 양떼들을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즉 아직 불신자에게 교회생활은 강압에 가까울 만큼 힘들고 어렵지만 대부분 온갖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교회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충실히 할 때 우리를 향해 특별히 배려하시는 좋으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계시하시는 주님의 구주 되심과 그 위대하심과 사랑하심 그리고 성령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주님을 흠모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이 사랑의 열망이 가슴속에 끓어오르시길 바랍니다.

술람미가 자기에게 온갖 배려를 다하는 친절한 목자를 포도원에서 만났듯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문제의 모든 것에 얼마나 배려를 다하십니까?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주님의 그 깊은 배려에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사랑에 감복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아가서의 본문은 시작됩니다.

4. 그러나 우리가 주님 곁에 서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4절에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술람미가 왕궁의 시녀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왕궁의 시녀들이 나오기 때문에 문맥 이해에 혼란이 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술람미의 마음속에서 그리는 갈망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즉 그녀는 그가 나타나 침궁에서 꼬옥 껴안아 주기를 심히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은 벌써 시녀들을 따라 왕에게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왕을 사모하는 자신의 당위성을 변호합니다. 이 변호에는 자신이 산골 처녀라는 자격지심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산골의 처녀일지라도 포도주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을 느낀 처녀라면 왕일지라도 누구든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등의 생각으로 자기의 신분과 처지를 옹호합니다. 그러면서 술람미는 추상 속에서나마 시녀들의 인도를 갈망합니다.

이는 영적으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상징합니다(요16:13). 성령께서는 일곱 등불이 되사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 앞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신부를 구해서 이삭에게 데려오려는 아브라함의 노종과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온갖 아름다운 신랑의 사랑과 선물을 듬뿍 주시면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혹은 교회에서 은혜를 끼치고 있는 주의 종들에게 대한 당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내신 선물이요,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중매쟁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11:2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했습니다.

<결론>
이제 우리의 관심을 주님 사랑에 돌려봅시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 되기에 과분한 존재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포도주보다 향기름보다 쏟은 향기름보다 더 나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도 술람미와 같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가득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