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습니다(아2:10-14)

봄이 오고 있습니다/아2:10-13

‘에델바이스’라는 꽃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 꽃은 높은 산에서 자라는 고산식물로서, 일교차가 심하면 심할수록,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더 신비로운 색깔을 낸다고 합니다. 훈훈한 봄바람에 눈이 녹으면 에델바이스는 비로소 청초하고 앙증스런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 에델바이스는 겨울의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해낸 꽃입니다. 또 바이올린을 만드는 명장들은 일부러 차가운 북풍을 맞은 나무를 재료로 선택한다고 합니다. 모진 북풍과 추운 겨울밤을 견뎌낸 나무가 보통 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따뜻한 봄날보다 차가운 겨울을 만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민자의 감소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유가 폭등, 등으로 생겨난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가 이러한 고생을 하려고 뉴질랜드까지 왔나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 큰 꿈을 품고 뉴질랜드에 왔다가 ILTS 시험성적이 생각보다 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청년들도 있을 것입니다. NCEA시험 날짜는 다가오는데 시험보기가 겁이 나는 고등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말도 아닌 영어로 코피 쏟아가며 공부하여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취직이 되지 않아 미래가 어두운 대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이 찬 바람 부는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가운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겨울은 우리를 성숙시킨다

첫째로, 차가운 겨울과 같은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할까요? 일반적으로 아무 일이 없을 때 기도합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합니까? 물론 이 자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려움을 겪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고통과 시련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도하는 기회를 부여해줍니다

. 또 한 가지 질문할까요? 일이 잘 풀릴 때, 겸손해집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겸손해집니까? 일이 잘 풀릴 때도 겸손한 분들은 진짜 겸손한 분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이 잘 풀릴 때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겸손해집니다. 그러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겸손하게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 우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물설고 낯 설은 가나안 땅에서 고통스러운 이민생활을 하다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일만큼 사깃꾼이었던 야곱은 20년 동안 객지에서 힘들고 어려운 양치기를 하다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셉은 13년 동안의 종살이와 옥살이 끝에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고 난 후 수백만을 이끄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인물들은 한결같이 고통과 시련의 찬 바람을 통과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19편 71절에서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밤을 통해 새롭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시련의 찬바람이 우리 인생을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봄날은 반드시 온다

둘째로, 봄날은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차가운 겨울은 언젠가는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겨울 대신 봄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 한때 ‘강철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네기에 대한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네기는 평생 동안 그의 사무실 한 가운데 벽에 커다란 그림 하나를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골동품과 같은 값비싼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 그림은 썰물(Low Tide) 때에 바닷물에 밀려서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커다란 나룻배 하나와 배를 젓는 노가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아름답기는 커녕,

무척 절망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씌어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그 그림을 평생 동안 사무실에 걸어놓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 그림에 대한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가난하고 못살던 청년 시절에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러 다닐 때, 어느 노인 댁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 그림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8세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찾아가 그림을 자기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해서 그 노인으로부터 그 그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그 그림을 평생 동안 소중하게 보관했고, 그 그림 밑에 쓰여 있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말을 그의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닷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닷물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입니다. 바닷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밀물(High Tide)‘과 ’썰물(Low Tide)‘이라고 부릅니다. 하루에 두 번씩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많은 돈으로도, 엄청난 권력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로도 밀물과 썰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밀물 때가 있으면 반드시 썰물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썰물 때가 있으면, 반드시 밀물 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낮과 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이 되어도 지구가 돌면서 생기는 남과 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계절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막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적도 부군의 무더운 지역이나 남극과 북극 근처의 추운 지역과 같은 곳에서는 사계절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세상 어느 누구도 변화하는 계절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지나면 반드시 무더운 여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반드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지나면 반드시 추운 겨울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 오전 제가 잠시 밖을 나갔다가,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도 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지난 두 달 동안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제 보니 동네 곳곳에 동백꽃이 활짝 피어있고, 어느 집에는 이미 조생종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헤글리 공원에 있는 수선화가 꽃망울을 피우기 직전으로, 머지않아 시내 곳곳에 수선화 꽃으로 가득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 5월 말부터 약 3개월 동안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몇 십 년 만에 강추위가 왔었고,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많은 눈이 켄터베리 평야에 내렸습니다.

7월에는 전국에서 강우량이 적기로 소문난 크라이스트처치에도 맑은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이 많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려, 시 외곽지역에서는 물난리가 나기도 하고, 잔디로 되어 있는 운동장에 물이 가득해 출입이 금지되는 등, 올 겨울에는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봄 날씨를 만끽할 수 있을 만큼 푸근한 날씨였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몇 차례 닥칠 수도 있겠지만,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는 이미 봄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냄새는 한겨울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냄새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겨울이 지나고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법칙이 우리 인생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에도 따뜻한 바람 부는 봄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지금은 여러분들의 인생이 겨울날씨처럼 찬 바람 부는 인생일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날이 반드시 올 줄로 믿습니다. 지금은 소망이 없는 겨울 날씨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소망이 넘치는 봄날이 분명히 올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혹독한 겨울과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닥친 어려움들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인생의 디딤돌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봄날은 반드시 옵니다.” 다시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힘내세요. 봄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저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이 시점에서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3대 왕이었던 솔로몬 왕이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 보면 이 아가서를 ‘노래 중의 노래’라는 의미의 ‘Song of Songs\'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노래들 중에 최고의 노래‘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는 솔로몬 왕과 시골 처녀 술람미 사이에 있었던 사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솔로몬 왕이 목동의 복장을 한 채 한 포도원을 방문하였다가, 거기에서 새까맣게 햇볕에 탄 술람미 여인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졌습니다. 솔로몬은 그녀를 예루살렘 궁궐로 데려갈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난 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결국 가마를 보내 술람미 여인을 예루살렘 궁궐로 불러들인 후, 자기의 왕비로 맞이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가서를 읽다보면 남여의 깉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아가서 2장 2절을 보면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눈에는 술람미 여인의 피부가 검게 보이지 않고 백합화처럼 하얗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결혼하신 남성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내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다른 여인들은 가시나무처럼 보이는 반면, 여러분들의 아내는 백합화처럼 보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다른 여인들은 백합화처럼 보이는데, 여러분들의 아내는 가시나무처럼 보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입을 열어 대답을 하면, 당장 집에 가서 부부싸움이 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속으로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LA동양선교교회에서 시무하시는 강준민 목사님이 쓰신 책에서, 결혼한 후 아내가 밥 먹는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쓴 것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에 남자는 “많이 드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약혼을 한 후에는 ”더 먹지 그래.“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결혼한 후에는 남편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돼지 같이 쳐먹기만 하는군.“ 아내를 향해 돼지 같이 쳐먹기만 한다고 말한다면 그 남편도 사실은 돼지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내를 돼지라고 부르는 남편들과 달리, 솔로몬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비록 피부가 검지만, 그녀를 향하여 ’백합화와 같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가서에 나타난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은 단지 남여간의 사랑만을 묘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은커녕 오히려 단점 투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솔로몬은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Arise my darling, my beautiful one, and come with me).\"(10절) 한 미디로 말하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여기에 있지 말고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부터 13절을 보면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11절부터 13절을 보겠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우내 내리던 비도 그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그 속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떠났던 각종 새들이 다시 돌아올 때가 되어 어느새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화과가 맺히기 시작하고 포도나무가 꽃이 피어 향기를 내품고 있습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권면을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권면하는 이 말씀은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말씀으로서,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첫째로,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되었으니 일어나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목사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김집사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형제야 박자매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함께’라는 단어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함께’라는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한국에 있는 어떤 가수는 사고 전만해도 춤과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던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 사고를 당한 후,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일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지 못하는 것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나서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팬레터도 꽃다발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는 팬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다르십니다. 세상의 부모는 자기 자녀를 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은 떠날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추운 겨울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언제나 함께 계신 그분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워도 인생이 춥게 느껴집니다. 조그마한 장애물만 만나도 절망하며 추운 겨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추운 겨울과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는 성령님을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설령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을 만났다 할지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날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교제함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와 위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른 사람들과 함께

둘째로,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되었으니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혼자 사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면 일어나서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야 할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야 할 사랑하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야 할 친구들과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가지 못합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인터넷상에 어떤 회사의 직원 선발시험 문제가 떠다닌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따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점검해보는 문제였습니다. 소개합니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골 밤길에 운전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의사,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 차는 2인승이기 때문에 단 한 명만을 태울 수 있다. 당신은 이 세사 사람 중 누구를 태우겠는가? 답을 쓰고 그 답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라.” 여러분들 같으면 여러분들의 자동차에 누구를 태우시겠습니까? 죽어가는 할머니입니까? 아니면 의사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꿈에 그리던 이상형 여인입니까? 누구를 태우시겠습니까? 최종적으로 채택된 답은 이렇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자동차 열쇠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차에서 내려서 제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포기하면 얻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동차를 포기하니까,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평생을 함께 할 소중한 여인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포기하지 못해서 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만을 먹자고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가지 못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고집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가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주장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가지 못합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기 위해서는 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포기해야 하고, 나의 주장을 내려놓아야 하고,

나의 고집을 접어야만 절망해 있는 남편을 향해서 “여보, 일어나서 우리 함께 다시 시작해요!”라고 할 수 있고, 낙심한 아내를 향해서 “여보, 일어나서 함께 갑시다!”라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함께 갑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함께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한 마음을 가지고 한 방향을 향할 때, 함께 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친구 간에 한 믿음을 가지고 한 목표를 향할 때, 함께 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또 이미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주위에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고 있으면서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애인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종로에 있는 모 다방에서 선봤던 그 남자 어떻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때 짝궁이었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꾸만 뒤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지나간 과거를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간 과거를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돌이킬 수 있습니까? 절대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과거를 지나치게 돌아보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나간 과거를 지나치게 뒤돌아보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지나치게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고 합니다. 샘물이 마구 솟아오르듯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이 얼어붙었던 땅에서 생명의 기운들이 마구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의 계절인 봄날에 다시 한번 개구리처럼 한 단계 도약(Jump)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새봄을 맞이해서 지나간 과거는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절로 삼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겨우내 묵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낙심의 자리, 절망의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주장을 내려놓고 주위에 있는 아내, 남편, 친구, 부모님 등과 함께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