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사랑 하는자(아3:1-5)

마음에 사랑하는 자/아3:1-5

오늘은 여러분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아가서를 본문으로 선택하였습니다. IMF 사태로 긴장 상태가 고조되면서 웃음이 사라져 가는 요즘, 저는 정초부터 여러분에게 영적 부흥을 강도 높게 요구함으로써 무거운 마음을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아가서를 통하여 긴장을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한가지 명심할 것은 아가서 강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아가서를 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감미롭고 짙은 로멘스를 체험하고, 인생의 기쁨을 생활 속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가서란 히브리말로 쉬르 하쉬림( )이란 말인데, 노래 중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금강산을 보기 전에는 산의 경치를 자랑하지 말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전에는 폭포를 말하지 말며, 아가서를 읽기 전에는 시를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가서는 신비함이 넘치는 시이며 노래입니다.

이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것인데, 그가 젊은 시절,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열렬하게 사랑에 빠져 결국 혼인을 하였는데, 그 때의 화려하고 황홀하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기록한 시입니다. 이 시에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조물주께서 주신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성이라고 고백하였고, 술람미 여인은 들녘에서 양이나 치던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솔로몬의 큰 은덕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대화형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내용은 활발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하여 독자들에게 감미로움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풍성한 영적 은혜를 온 몸으로 느끼도록 해 주는 시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시를 유월절 마지막 날과 결혼식에서 낭독하였는데 오늘은 우선 3장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성중의 순행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1-5)

밤에 신랑을 찾음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다\"(아 3:1)는 말씀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연모하여 밤에 침대에서 찾은 경험을 고백하는 것인데, 어떤 학자들은 이것은 실제 사항이 아니라 꿈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본문의 밤이란 단어는 \"밤들\"( 삘레일로드)라는 복수명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밤들이란 낱말의 뜻은 길고 지루한 겨울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어떤 학자는 밤들이란 \"밤마다\"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여하간 술람미 여인은 긴 겨울밤이 되었던, 매일 밤마다가 되었던 자신을 사랑해 주는 솔로몬을 그리워하고, 애타게 기다렸고, 마음 조리며 찾아 다녔습니다.

여기서 아가서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할 영적 시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아가서를 해석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고, 세 번째는 전형적인 메시아적 해석 방법인데, 메시아적 해석 방법이란 아가서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은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의 사랑하는 애인 술람미 여인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극한 사랑은 성도를 향한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하고, 술람미 여인의 존경과 찬양은 성도들이 신랑 되시는 주님을 향하는 경외심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다. 우선 밤이란 말의 첫 번째 뜻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둡고 스산한 시련과 고통의 환경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화초가 맑은 공기와 햇빛을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때로는 밤도 있어야 성장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어두운 밤과 같은 고난의 시절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은 영적 성장을 위한 필요악이란 뜻입니다.

두 번째, 밤이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주님을 믿으면서도 그분과 호흡을 같이 하는 깊은 교제가 없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에 젖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침상에서 찾음

다음으로 그는 침상에서 신랑인 솔로몬을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에 타성이 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쉽고 안일한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주님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 북 왕국 이스라엘은 번영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상태를 아모스 선지자는 \"상아 침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암 6:4) 켠다고 하였고, 호세아 선지자는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고 침상에서 부르짖었다\"(호 7:14)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성도들도 침상에서 주님을 찾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벽기도회는 줄어들고, 철야기도는 아예 심야기도로 바뀌었으며, 주일 성수는 주일 낯 예배로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의 풍속도는 약간 달라지기는 하였지만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아 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게으름과 안일한 방법으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는 신앙 생활에는 주님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어렵고 고통스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침상에 누어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인생의 폭풍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도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일어나 찾음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아 3:2)

침상에서 솔로몬을 찾아도 찾지 못한 술람미 여인은 정신이 버쩍 들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환난도 때로는 유익하고, 고난도 성도들을 깨우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 119:71)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나라가 겪는 어려움도 당장은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리고 오늘은 전전긍긍하여야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술람미 여인처럼 신앙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부흥의 동기이며 진행입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깨어나는 성도들을 반드시 유익하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잠에서 깨어난 술람미 여인은 성중을 다니면서 솔로몬을 찾습니다. 그가 돌아다닌 곳을 거리와 큰길이라고 하였는데, \"거리\"란 히브리어로 쉐와킴( )이라는 낱말인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이나 집회장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거리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제사의식을 진행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고, 큰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큰 대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제사의식 속에는 생명의 주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의 큰길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이런 곳에는 많은 종파와 많은 학자와 많은 사상은 있으나 생명의 주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진정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알고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행순하는 자에게 묻다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아 3:3)

행순하는 자들이란 방범대원을 의미합니다. 시민들을 보호하고 우범자를 훈계하기 위하여 만물이 잠들어 있는 야밤에 거리를 순행하는 분들이 행순자이며 파수꾼들이고, 보초들입니다. 행순하는 자, 혹은 파수꾼은 하나님의 종들(겔 3:17)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한 시대를 비추는 위대한 파수꾼들을 많이 소개하는데,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고, 기독교 역사에는 마틴 루터, 죤 칼빈, 요한 낙스와 같은 인물들이 영적 행순자들입니다. 지금도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이 땅에는 많이 세움을 받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파수꾼에게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과 장소를 물었는데 이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우리도 물어야 하고 저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해답을 받았는지 본문에는 명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나 퍽 유익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났다\"(아 3:4)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행순자들에게 묻은 것이 주님을 만나는 비결이었습니다. 이점도 명심하여야 할 사항입니다.

어미 집으로

이제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4)

술람미 여인이 그의 사랑하는 애인을 만난 후의 행동인데, 첫 번째, 그는 사랑하는 솔로몬을 꽉 붙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술람미 여인의 행동은 반드시 본받아, 우리도 주님을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 말씀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여인의 손이 아무리 강해도 남자의 뿌리침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술람미 여인은 어떻게 솔로몬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붙잡았을까요? 그것은 솔로몬의 강력한 사랑을 믿고 신뢰하면서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였기 때문에 그를 강력하게 붙잡게 된 것입니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신뢰가 하나로 결합할 때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떼 놓을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결합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주님의 영원 불변의 사랑을 전적으로 믿으며 신뢰로써 그를 붙잡을 때 주님은 뿌리치지 않고 오히려 품에 안 듯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위로와 소망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두 번째, 그는 사랑하는 솔로몬을 만나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아 3:4)였다고 하였습니다. 내 어미 집이나 나를 잉태한 자의 방은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는데,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매우 깨끗하고 고상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그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 으슥하고 음침한 구석으로 가지 않고, 공개된 장소인 모친의 방을 찾았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이 깨끗하고 순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탐욕이나 명예의 수단으로 신앙을 가질 것이 아니라 순수함에서 나오는 사랑과 믿음, 그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그분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미 집, 나를 잉태한 자의 방\"이란 교회를 상징합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6)고 하였습니다. 즉 예루살렘을 어머니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가지는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그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할은 어머니의 품과 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이 충만한 곳이어야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주님을 만나고, 포근한 사랑을 받고, 깊은 영적인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맺는 말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의 사랑하는 자를 찾기 위하여 여러모로 수고를 합니다. 침상에서 찾기 시작하여, 거리와 큰길에서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만나지 못하였었는데, 행순하는 자들에게 물은 직후에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만일 술람미 여인이 헤매고 다닌 곳이 예루살렘 성이었다면 행순자 곧 파수꾼들을 만난 지점은 예루살렘 성문 근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성문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그곳은 바로 감람산이 됩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감람산입니다. 주님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어디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번화한 도시 한 복판 거리입니까? 일과에 바쁜 사무실입니까? 저속한 연속극이 흘러나오는 T.V. 앞입니까? 아닙니다. 엘리야는 폭풍 속에서도, 지진 속에서도, 번개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다만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주님을 만납니다.

오직 은밀하게 기도하는 곳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용하고 은밀한 기도의 골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랑을 확인하며 깊은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그의 은혜를 체험하고, 위로와 소망을 돈독히 받으며, 깊으신 섭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