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예수/아5:9-16
아가서는 사랑의 노래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더욱이 아가서에는 하나님이란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정경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솔로몬의 모습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가서에서 주님을 발견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데, 오늘의 본문은 이 부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열기가 점차 식어지면서, 신랑 솔로몬을 가다리는 간절함도 소원해진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 밤이슬을 맞으며 찾아온 애인을 돌려보냈고, 그후 후회를 하면서 그를 찾으려고 거리로 좇아갔으나 행순하는 자에게 봉변을 당하고 허탈하게 돌아오면서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신의 애인을 만나면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는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질문
예루살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의 부탁을 받고, 너의 애인이 다른 사람의 애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가고 묻습니다.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아 5:9).
그러자 술람미 여인은 그의 애인에 대하여 소개를 하였는데, 오늘은 그가 소개한 솔로몬 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우선 예루살렘 여인들의 질문에서 영적인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여인들도 솔로몬에 대하여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 느끼고 체험한 솔로몬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느낀 솔로몬 왕이지만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몸소 모시고,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면서 느끼고 체험한 솔로몬 왕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과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은혜를 받지 못하였을 때는 예수님에 대하여 막연하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다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달라졌습니다. 더욱이 그의 말씀을 상고하면 할수록, 기도를 하면 할수록 느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에 대하여 예루살렘 여인들이 가지는 관점이 있고, 술람미 여인이 가지는 인식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에 대해서도 세상 사람이 가지는 인식이 있고, 그리스도인 가지는 인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 여하에 따라 영생과 죽음이 엇갈리게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떤인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다운 예수님 관(觀)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그대로를 가지고 있습니까?
희고 붉다
이제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대답한 것을 중심으로 주님의 모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 대하여 개론적으로 언급하고(아 5:10), 다음으로 10가지 특징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아 5:11-15).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아 5:16). 오늘은 그가 지적한 10가지를 모두 설명할 수 없고, 그 중 몇 가지만을 설명하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아 5:10).
그는 솔로몬이 희고도 붉다고 하였습니다. 이 희다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흰색이란 뜻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마 17:2) 그 옷의 광채가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다\"(막 9:3)고 하였는데, 그렇게 흰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의 얼굴이 희다는 것은 왕자로서의 존귀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눈이 부시도록 희다는 것은 하늘 나라의 색상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최후의 대심판을 진행하시는 보좌를 \"크고 흰 보좌라\"(계 20:11)고 하였고, 천상의 \"24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보좌를 둘러앉았다\"(계 4:4)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입은 흰 세마포는 속죄를 받은 것을 의미하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고 하신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흰색은 그리스도의 무죄함과 성결, 그리고 그의 신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주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히 7:26)로써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희기도 하려니와 붉기도 합니다. \"붉다\"는 히브리 원어는 아름 ( )이란 말인데, 붉은 피란 말에서 유래 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보통 혈색이 좋다는 뜻으로, 건강미가 넘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말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될 때는 그의 인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죄인까지도 지극히 사랑하는 뜨거운 심정을 가진 분으로써 십자가에서 붉은 피를 흘려주신 사랑의 주님이심을 가르치는 낱말입니다. 과연 주님의 인애하심은 만인 위에 초출(超出)하십니다. 그와 견줄 아무도 없을 만큼 유일무이한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솔로몬이 희고도 붉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말로써 예수님은 흰색의 신성을 가지고 계실 뿐 아니라 붉은 피의 색으로 상징되는 인성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정금같은 머리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아 5:11).
정금이란 히브리 단어는 케뎀, 파즈 ( )란 복합 명사입니다. 케뎀이란 간직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금은 보통 은밀한 곳에 저장하여 두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요즘 말로는 장롱 속에 감추어진 금괴란 뜻입니다.
파즈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였다는 뜻으로써 100% 순금이란 뜻입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솔로몬의 머리는 정금과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미국의 유명한 영화 배우 율 부른너와 같이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머리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솔로몬은 금으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썼고, 얼굴은 불그스레하여 건강미가 넘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의미는 솔로몬 왕이 금 면류관을 쓰고 전국을 통치한 것처럼 만유의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천상 천하를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으로써 그의 머리는 정금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해몽할 때, 그를 정금 머리에 비유한 것처럼 만대에 빛나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정금에 비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애모하면서도 그를 단순한 애인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일국을 다스리는 영광스런 왕으로 생각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인이며 왕으로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며 충성하며 그에게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반석 다리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아 5:15).
솔로몬의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같다고 하였는데, 첫째로 정금 받침이란 그의 신발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집트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옛날 왕들이 신었던 신발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신발이 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부귀와 영화가 최고로 달하였던 솔로몬이 순금 신발을 신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둘째로 그의 다리가 화반석 기둥같다는 것은 순백색의 대리석과 같이 희고도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의 건강한 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건강한 다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 오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고 빌라도에게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고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합니다(요 19:31).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행악자들의 다리를 꺾었으나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아니하고 아리마데 요셉에게 시체를 인계해 주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요 19:36)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다리는 왜 꺾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왜 꺾지를 못하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그의 다리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두 다리는 그의 신실한 성도의 구원을 보장하는 굳건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옛 뱀의 후손인 빌라도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려고 예수님의 발에 못을 박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대리석 기둥 같은 강건한 다리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죄의 권세를 도말하셨으며, 마귀의 세력을 무찌르셨습니다.
그러나 화반석과 같이 굳건한 다리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리석은 변질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를 향한 주님의 구원의 언약도 변함이 없는 것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는 성정을 버티고 서있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야긴이고 또 하나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야긴이란 영원 불변이란 뜻이고, 보아스란 능력이란 뜻입니다. 야긴과 보아스의 두 기둥이 성전을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건강한 다리는 영원 불변하시는 구원의 약속과 그의 능력으로 사랑하는 백성들을 지키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영원하심을 믿으십니까? 세상은 바뀌고 인심은 변하지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과 섭리와 사랑과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레바논 산과 백향목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아 5:15)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인격의 장엄 수려함이 레바논 산과 같고, 고상함과 출중함이 백향목과 같다는 것입니다. 백향목은 장생하고 장청하는 나무로써 사시사철 울울창창할 뿐 아니라 거센 바람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굽히지 않는 곧고 굳게 서있는 나무입니다. 이것도 역시 그리스도의 성품과 유사한데 주님은 백향목처럼 아름다우며 사시사철 푸르러 공중의 새 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짐승들이 언제라도 그 밑에서 쉼을 얻는 것처럼, 만인이 그리스도에게 와서 은택을 입고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달콤한 입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아 5:16).
이 말씀은 여러분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 결론을 맺기로 하겠습니다. 뽀테헤르(Botteher)라는 학자는 약간 속된 생각을 가지고 이 말씀을 해석하였는데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라고 하신 말씀을 남녀가 Kiss를 할 때 느끼는 감미로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상스럽지 못한 마음과 생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잘못되고 위험한 일입니다.
\"입이 심히 달다\"는 말의 입이란 입술이 아니라 음성을 내는 성대를 의미하는 낱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애인의 언사가 감미롭다는 뜻입니다. 애인의 말속에 사랑이 깃 들어 있고, 지혜가 있기 때문에 감미롭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바 여왕도 \"복 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 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 10:8)고 한 것입니다.
과연 사랑의 언사는 듣는 자의 마음에 안위와 감화를 주고, 삶의 기쁨과 보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범죄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요 8:11)고 하심으로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있는 여인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고 물으심으로 위축되었던 그의 가슴을 활짝 열어주시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자애로운 음성이 나오고, 사랑으로 위로하는 말씀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의 입술이 달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부지간에도 속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진정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서로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고 힘을 돋구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감미로움이 주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미로움이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과 삶에 있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아 5:16). 솔로몬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고백한 말은 매우 귀한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하여도 나와 관계가 없으면 별로 귀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에 대하여 미사여구의 말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모두 빈말에 불과하고, 남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 아니라면 그의 풍성한 사랑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고, 은혜와 인애하심이 넘친다 하여도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이 나의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귀하고 그의 사랑이 내 것이 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 되어야 그의 크신 은혜와 넓으신 사랑이 나의 것이 되고, 그가 베푸시는 축복과 구원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시인하고 영접하셨습니까? 아멘
그의 충만한 은혜가 모두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