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을 찾는 노래 아 5:1-8
초기 에베소 교회는 매우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3년 동안 눈물로 개척을 하였고
, 사랑의 사도 요한이 이 교회 강단에서 사랑을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또 이 교회를 통하여 주변의 많은 도시들이 복음을 받아 교회를 세우면서 소아시아 지역의 모교회로서 자리 매김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이단들과의 싸움에서 이 교회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점차 떨어지더니 마침내 주님께 경고를 받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에베소 교회는 끝내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여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고 또 우리 한국 교회와 성도들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첫사랑은 매우 열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궁중에서 평안한 생활을 시작하면서 애정이 식어지기 시작하였고, 권태기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성도의 영적 생활도 그러합니다. 처음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을 때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첫 사랑의 열심을 가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 열정이 식어지기 시작하면서 신앙의 권태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쯤이면 더 좋은 교회는 없을까? 더 멋있는 설교는 없을까?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는 신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는 신앙의 매우 큰 위기인데, 만일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불행해 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면 믿음이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신앙의 냉각기는 왜 오는 것이며, 어떻게 치료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냉각기의 원인과 진단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라는 말씀이 서두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래서 잠을 자고 있지만 마음만은 깨어 솔로몬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잠에 빠지는 성도를 가르치는 말씀인데, 세상의 안일과 육신의 평안에 빠져들면 하나님과 신앙에 대하여는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는 비록 교회에 출석은 하지 않지만 믿음마저 버린 것은 아니라고 자위합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지만 내 속마음은 항상 주님을 향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게으름과 나태함과 영적인 연약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결코 잠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는 다음의 말씀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여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팔레스타인은 밤이슬이 많은 고장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새벽에 겟세마네 동산을 다녀왔는데, 이슬에 신발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밤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슬을 맞아야 하고, 의복이 습기로 젖게 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애인은 밤에 찾아 왔기 때문에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였으면 밤이슬에 젖어가면서 찾아 왔겠습니까? 이런 사랑은 술람미 여인만 아니라 우리들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여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을 찾아 오셨고, 밤이슬과 같은 많은 고난을 당하시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당하는 우리를 찾아 헤매셨으며 마지막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슬을 맞아 가면서 밤새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구나\"라고 하십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게으름과 나태함
이런 신랑의 간청을 들으면서도 술람미 여인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아 5:3)
옷을 벗었다고 하였는데, 옷이란 히브리 단어는 속옷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그는 겉옷만 벗은 것이 아니라 속옷까지 벗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라고 하였지만 솔로몬을 기다리지 않고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특히 여 성도 여러분!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면서 속옷까지 벗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의 속옷을 벗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의 속옷, 봉사의 속옷을 벗은 분은 안 계십니까?
\"만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겠다\"(눅 12:45-46)고 하였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여러분은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고 하였는데, 여러분! 속옷과 겉옷을 모두 벗은 것은 아닙니까? 다시 요한 계시록에서 한 절을 읽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
성도들이 준비하여야 할 옷은 첫 번째가 구원을 확신하는 믿음의 옷입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의 아름답고 거룩한 삶의 옷입니다. 세 번째는 맡은 직분에 충성하는 헌신의 옷입니다. 성도가 직분을 망각하고 평안히 자고 놀고 있으면 결코 옷을 준비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도록 옷을 준비하였습니까?
술람미 여인은 옷만 벗은 것이 아니라 발까지 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고 하였습니다. 발을 씻었다는 것은 이제는 더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신랑의 방문을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의미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주님께 헌신할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이, 밤 같은 세상에서 스스로 평안의 잠이나 잘 채비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사 안일 속에서 세속에 빠져 타락과 죄의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직분을 맡은 직분자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발을 씻으신 분들은 안 계십니까? 직분에 충성할 생각도 없고, 성도의 본분을 지킬 마음도 없는 분들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은 새벽기도의 발을 씻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녁예배의 발은 씻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향하는 발은 씻고, 세상으로 향하는 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처럼 찾아온 애인을 술람미 여인처럼 세상의 잠을 자기 위해 홀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문틈으로 손을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아 5:4)
옛 유대인들은 문고리 위에 구멍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는 손을 안으로 넣어 문고리를 채우고, 돌아와서는 밖에서 문을 열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솔로몬은 참다 못하여 이 구멍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열어보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주님의 큰사랑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도 문밖에서 두드리시다가 문이 안 열리면 손을 내밀 때가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회개시켜 바울이 되도록 하신 것은 그가 직접 손을 내민 예입니다. 이것은 택한 백성을 부르시는 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잡히시던 날 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와 눈을 마주쳐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준 것은 바울의 경우와 다른 것으로써 믿는 성도가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지 않을 때, 손을 내밀어 돌이키게 하는 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만사제폐하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만일 응답의 시간이 늦으면 주님은 그의 택하신 자를 부르시기 위하여, 혹은 성도의 회개를 축구하기 위하여 직접 손을 내미시는데, 그때는 매우 섭섭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고, 값비싼 실습비를 지불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마지막 순간에야 \"마음이 동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처럼 신랑이 그를 찾아왔는데, 몸을 아껴 문을 안 열어 준 것에 대한 자책감에 마음이 비통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몸을 일으킵니다.
몰약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아 5:5)
술람미 여인 당시는 사치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몰약 주머니를 품에 품고 다녔고, 밤에는 몰약을 침상에 뿌리고 몸에 발랐다고 합니다. 마치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이제 그는 시골의 포도원 지기가 아니라 왕궁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여성이 된 것을 가리킵니다. 신랑은 침침 심야에 찬이슬을 맞아 가면서 그를 찾아 왔는데, 신부는 그를 맞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사치와 평안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였는데, 그를 믿는 성도는 술람미 여인처럼 예수님 때문에 평안을 누리고, 영광을 얻고, 출세하고, 형통과 축복만을 바라는 호사스런 신앙 생활을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는데, 발을 씻고, 속옷은 벗고, 몸에 몰약을 바르고 침상에 누어서 내 마음은 깨어있다고 중얼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아 5:6)
이것이 주님을 향하여 충성하지 못하고 세상의 단잠을 자는 성도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IMF의 아픔을 체험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그 동안 진실한 믿음은 저버리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는 지지 않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축복만 바랬기 때문에 오늘의 고통스런 현실이 다가 온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뒤늦게 문을 열었을 때, 솔로몬이 물러간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서 주님의 축복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호 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기회가 지나가면 후회만 남는 것이고 축복이 사라지면 고통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치와 게으름으로 신랑을 떠나보낸 술람미 여인이 당한 곤욕스런 현실을 좀더 살펴보십시다.
봉변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아 5:7)
술람미 여인은 과거에도 솔로몬을 찾아 예루살렘 성을 두루 다니다가 행순하는 자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아 3:4). 그때는 조금 도움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전혀 다릅니다. 그는 행순하는 자들에게 매를 맞고, 옷을 뺐기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주님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간 타락한 신자들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자유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모든 것을 뺐기고, 매를 맞는 것 같은 수모를 겪게 되고, 결국 영과 육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야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항상 주님 곁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곳을 떠나면 성공 같으나 실패요, 행복 같으나 불행이며, 자유 같으나 얽매임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 5:8)
사랑함으로 병이 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써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 되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떠난 생활은 인생이 비정상적으로 뒤바뀌는 것이고, 힘은 쇄하고, 의욕은 상실되며,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옷을 벗지 말고 깨어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를 향한 처음 사랑을 저버리지 마시고 발을 씻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신앙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큰 힘과 용기를 얻고 담대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