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고 당당한그리스도인(아6:4-10)

빛나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아가 6장 4~10절

 

 

어떤 한 사람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차갑고 매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마치 북극지방의 찬 바람을 느끼게 한다는 지적을 받는 그의 얼굴에는 늘 슬픔과 우울함이 가득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냉장고와 같이 차디찬 인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보면서 놀라서 말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냐? 어떻게 이렇게 밝아지고 따뜻해졌냐? 어떻게 네 생각이 이렇게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느냐?”
 어떤 것이 이 사람의 본성일까요? 매정하고 차디차고 부정적인 모습이 이 사람의 본성일까요? 아니면 따뜻하게 다른 사람들을 품고 낙관적으로 인생을 보는 모습이 이 사람의 본성일까요? 다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런 나의 모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닮겠다고 결단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뒤따라가면서 나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고, 말과 행동도 바뀌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여러분의 모습도 이처럼 바뀌어졌습니까? 자신의 모습을 보면 빛이 납니까? 긍정적입니까? 당당합니까? 아니면 아직도 내면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에 비춰지기에 슬프고 우울합니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이 겉모습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열등감과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증상은 자부심이 없고,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늘 나는 자격이 없고,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 연민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는 일이 즐겁지 않고 노력해보지만 금방 지치고 피곤할 뿐입니다. 그들은 나는 지닌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모 덕, 환경 덕, 재능 덕을 받지만 자신은 그런 것도 없고 미숙아와 같은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평가절하 합니다. 그리고 인생에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주저하고 사랑 받는 것도 주저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인생은 따분하고 지루한 것이 됩니다. 열심히 해 보려고 해도 자주 실패를 경험하게 되어 어떻게 해야 이 지겨운 생활에서 탈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다소간에 차이가 있지만 이런 피곤한 열등감이 삶을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부심이 망가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내가 이렇게 가도 되는가?”하는 것을 스스로 묻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맡겨진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 얼마만큼 업적을 들어내느냐 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분노와 좌절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는가, 아니면 즐겁고 자원하는 기쁜 마음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질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된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정체성이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삶은 대체적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나를 칭찬하는가 아니면 비난하는가에 따라서 많이 좌우되어 왔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인한 영향이 삶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님들이 우리를 향해서 ‘너는 도무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에 나는 부모님에게 의미가 없는 존재구나.’하면서 자존감의 결여를 경험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시험을 잘못 봤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학습 부진아구나.’라는 말 한마디를 들은 다음부터 ‘나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야.’하고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나쁜 말, 부정적인 말, 비판하는 말이 우리 인생에 깊숙이 들어와 자아를 붙잡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보통 때는 우리의 삶이 넉넉한 것 같다가도 위기와 어려움에만 부딪히면 속에 숨겨져 있던 분노가 갑자기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맺혀진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속에 있는 슬픔과 맺혀 있는 것들이 풀려지지 않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업적을 쌓고, 많은 소유물을 취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기에 있을 때는 자랑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 때는 다시금 열등감에 빠지고 자부심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노력해도 안 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면서 서서히 무너져 버리고 자기 체념 속에 빠집니다. 체념이 몸에 배면 스스로 무가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낮은 기대치를 부여하고 원래부터 되는 것이 없었다고 한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악순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뜨리는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만 자신을 부정적인 사고로 이끄는 것을 깨뜨리는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속에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었던 잘못된 습관, 악한 습관을 반복하게 될 때 성령의 능력은 이것을 깨뜨려 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얽혀있던 실타래와 같은 복잡한 것들을 다 잘라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 앞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가 흔들릴 때 사탄은 우리의 자부심이 없어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서 윽박지르며 말합니다. “너는 엉망이야. 너는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도무지 자랑할 것이 없어.” 그러면 우리는 주저앉아 포기하고, 사탄의 종으로 남아 반복적으로 어둠의 세력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것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라고 말하는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생의 놓쳐버린 교훈」 이라는 책을 쓴 조 비테일이라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부정적인 자리에서 탈출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몇 분 동안 부정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다가 한 번 거울을 보라. 그러면 나를 둘러싼 어둠이 보일 것이다. 축 처진 어깨 아래로 향한 눈과 찌푸린 얼굴이 보일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변화를 만들어 내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에너지 변화로 감지하고 있다.”
 그는 두 번째로 이렇게 시도해 보라고 말합니다.
 “이제 몇 분 동안 긍정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채워보라. 그리고 나서 거울을 한 번 봐라. 밝은 빛이 보일 것이다. 쫙 펴진 어깨 그리고 반짝거리는 눈 얼굴의 미소가 떠올라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생각은 우리 주변 모든 것에 에너지를 변화시킨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내가 나를 도울 수 있고, 남을 돕고 행복을 부르면 나아가 윤택한 삶을 창조한다.”
 
 인간의 긍정적인 사고 하나만 가지고도 인생이 바뀝니다. 자기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긍정적 사고의 기초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 내면세계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되고 우리 얼굴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때 당당한 그리스도인 될 수 있습니다.
 10년, 20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내 속에 슬픔이 가시지 않는 것, 우울한 것이 가시지 않는 것, 맺혀진 분노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할 존재임을 알져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잘못된 자기 암시가 있습니다. 과거가 현재보다 훨씬 좋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보여주십니다. 과거가 아무리 좋았어도 지금이 더 소중한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더 축복 받은 때이고, 지금이 더 기뻐할 때입니다. 어제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미소를 지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하나님의 기쁨으로 기뻐하겠다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묵상하고 그것을 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혈관 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인생을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고통과 아픔이 있고, 때로는 외로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고,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에 삶을 새롭게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 누린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내일 누릴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랑으로 인생을 산 축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이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놀랍고 재미있는 사랑의 찬가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을 적나라하게 그려준 책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책이 성경에 있을까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 땅에서 탈출시켰던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절기에 아가서를 읽었습니다. 8일 동안 유월절을 지키면서 춥애굽기를 읽었고, 맨 마지막에 아가서를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한 여인을 사랑한 것처럼 백성을 사랑하셨다고 고백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가서는 기쁘고 즐거울 때 읽는 책이기보다는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야 할 때 읽는 책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고, 선택된 신부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들의 모습으로 비유한다면 교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입니다.
 구약성경 중에 구약의 인간상을 잘 나타내는 세 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욥기입니다. 욥기는 우리 인생의 계절 중에 고난의 계절을 표현한 성경입니다. 그는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자기에게 부딪힌 아픔 때문에 신음하고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서 투정합니다. 또 어떻게 고난을 이겨내야 하는지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부르짖으며 말합니다. “난 이제 죽겠습니다. 살 의미가 없습니다.” 그가 죽는 것을 바라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절망과 고난을 극복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약속된 소망을 주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소망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바로 욥기입니다.
 두 번째 책은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인생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지적하는 책입니다. 산다는 것이 허무와 무상이며, 해 아래 새 것이 없어 따분하고 지루한 인생임을 선포합니다. 인생자체가 권태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준 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의 모습에 너무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에 열광하다가도 금방 권태를 느낍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사랑하다가도 반복되는 허무 속에 빠져 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보면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허무 속에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아픔을 지적해줍니다. 전도서가 보여주려는 메시지는 이 허무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허무를 꿰뚫고 들어오는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모든 삶이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인생을 새롭게 살기 원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전도서를 읽어야 합니다.
 세 번째 책은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인생은 사랑이고,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삶은 반드시 존재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인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기쁘고 감사하게 살려면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 속에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고, 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해서 죽음조차도 멈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허무를 꿰뚫는 것이 이 사랑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가서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쁘게 살려고 하느냐, 감사하면서 살려고 하느냐, 보람 있게 모든 것을 활기 있게 살려고 하느냐를 깨닫고 싶은 사람은 아가서를 보면 됩니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에 최고봉인 사랑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솔로몬이 아가서에 나오는 여인을 향해서 6장 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랑아”
 
 이것은 영어성경에 “마이 달링(My darling)”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만 홀로 있는 것처럼 다가와서 사랑하는 고백을 합니다. 이 사랑받은 여인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10절 말씀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는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구나”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험입니다. 인생에 사랑이 들어가면 우울함과 슬픔이 물러갑니다. 좌절과 절망이 깨져버립니다. 인간의 탄식이 변화되고 찬양과 기쁨이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 니다. 우리 인생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내 사랑하는 자야!”라고 부르셨을 때 인생이 바뀝니다. 여인은 그 주위에 솔로몬의 왕비와 시녀들과 후궁들이 많은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말합니다.
 “너는 내 완전한 자 하나뿐이구나. 너 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 주위에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충성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달란트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헌신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해 주시는 것에 때로는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세상에 너 혼자 있는 것처럼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시며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찾아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찌꺼기처럼 가슴에 남아있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통해서 변화 받으십시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마가복음 1장 11절을 암송하듯이 머릿속에 반복해서 외웁니다.
 
 “너는 내 사랑 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말씀을 들으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니!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다니! 어제의 아픔, 어제의 슬픔, 어제의 좌절이 다 뒤로 물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로 오늘 내가 다시 서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잠에 들기 전에는 시편 18편 1절을 암송합니다. 아침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저녁에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렇게 날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잠을 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자여!’라고 불러주시며 찾아오십니다. 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는 이제부터 기뻐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내면세계에 있는 기쁨이 얼굴에 가득 차서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당당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속에 맺혀진 것이 풀려지지 않고 때로 슬프고 좌절하고 낙망했던 모습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습니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주님을 사랑하며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