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강해

마태복음 2장 강해(레마)|(강해) 마태복음
 

         동방박사들의 경배
                  본문:마 2:1,2
  예수 그리스도는 크게는 전인류의 메시야로 오셨지만 작게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왕을 맞는 이스라엘은 당연히 큰 축제와 함께 기쁨과 감사와 영광을 예수께 돌려야 함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께 경배한 자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머나먼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유대인조차 알지 못하고 경배하지 못했던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신 예수를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이 알고 찾아와 경배하였을까요?

  1. 동방 박사들은 예수의 탄생을 알았습니다.
 1) 이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신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신18:14)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ㅂ하던 자들잉ㅆ고, 따라서 언제나 거의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방인이 만왕의 왕이 되셔서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았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반하여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옛부터 학수고대하던 메시야가 성경의 예언대로 탄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출신 성분이나 신앙의 연조, 또는 신앙의 가정에서 생활로 인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만남이요 그분이 주시는 선물을 받음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2) 예언의 성취입니다. (사49:6)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사건은 성경에서 예언된 사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장소(마5:2), 고난(시22:6-8), 부활(시16:10),승천(시68:18)등을 예언하였으며, 이러한 모든 예언은 하나도 빠짐 없이 성취되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이러한 예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상한 별이 나타나자 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생각해 닜고, 그 결과 머나먼 유대 땅까지 찾아와 모든 인류의 메시야로 탄생하신 그리스도께 경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은 자들이요, 그 율법을 매일 읽고 암송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언과 말씀에 무관심하였고, 따라서 메시야가 탄생하였음도 불구하고 말씀을 읽고 항상 그 말씀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지름길입니다. 예수에 관해 성경 외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읽고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모르고 어떻게 영접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착념해야 예수를 알 수 있으며, 예수를 알아야 그를 그리워하고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메시야를 가가이 하는 것이며, 날마다의 생활에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왔습니다.
 1) 그들은 별을 보고 좇아왔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예룻ㄹ렘에 이르기까지 별은 그들의 안내자였고 빛이었으며 소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안내자이시며 소망이시요 빛이십니다. 우리의 눈은 하늘을 향해야 합니다. 땅을 보고 좇아온 동방 박사들이 예수를 만나고 경배할 수 있었듯이 참된 구주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며,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2)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찾아 자신들의 소원을 구하고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를 만난 그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에게 경배하고 자신들이 준비해온 예물을 정성스레 드린 다음 자기들 갈 길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예수께 많은 목적을 가지고 나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그리고 어떤 이는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기 위해서 나아옵니다. 물론 이러한 목적으로 예수께 나아오는 것이 틀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 그들의 모든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며,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위의 여러가지 소망들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병을 낫고자 교회에 나오는 자는 병만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개념이나 충성, 또는 헌신이나 봉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병이나 물질 만을 위해 간구하다 그것이 해결되면 다시금 주님을 떠납니다. 이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주께 경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그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오로지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듯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구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친구와 아들로 삼아 주시는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소동
                  본문:마2:3
1. 동방박사의 내방
  우리 옛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일을 잘 알아야 할 고에서 오히려 더 모른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메시야를 대망하던 유대인들이 먼저 환호를 올려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 탄생은 유대인이 아닌 동방의 박사들에게 먼저 알려졌습니다. 당시의 동방의 해뜨는 곳으로부터 유대 땅을 기준으로 하여 유브라데스 강 유역의 메데 파사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박사들은 천문학과 점성술에 능한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상당히 먼 곳에 동방으로부터 새 왕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처러 이방인들이 주님을 먼저 알아보고 유대인의 왕을 찾아왔으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 뿐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미치는 것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왕궁의 소동
  유대인의 왕을 찾아온 박사들은 곧장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 왕이 될 왕자가 태어날 곳은 유대의 통치 중심지인 왕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본디 유대인이 아닌 에돔 족 출신으로서 당시의 국제 관계와 정치적 기류를 이용하여 로마 황제에게 아첨하고, 바리새인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사두개인을 제거하는 등 비양심적인 일을 서슴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짓기도 한 교활한 지략과 잔학성을 겸한 폭군이었으므로 유대인의 왕으로서 정치적 정통성을 갖지 못하고 백성들의 전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박사들로부터 새 왕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백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왕위에 대한 위협과 백성의 반란의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영적으로 눈이 먼 자였고, 권력의 욕구로 말미암아 사리를 잃고 방황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ㅈ기가 이미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빼앗길까봐 두려운 나머지 수많은 영아를 살해하였고, 심지어는 자기의 친자식까지도 살해하는 미치광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3. 예루살렘의 소동
  박사들은 소문을 듣고 소동한 또 한 그룹이 있었으나, 그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동요는 최소한 헤롯의 공포와 유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유대인 왕의 탄생을 듣고 소동해야만 했겠습니까?
 1)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3:15에서부터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구세주를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메시야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메시야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금 재연되었습니다. 즉 완전하신 왕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그들을 통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대상 22:9,10;사11:1)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메시야의 약속을 관념 속에서만 믿고 있었지 실제적인 삶 속에서 실현되는 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해야 할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서 단지 소동할고 있는 것입니 .
 2)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는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사는 처지였습니다. 또한 당대의 통치자를 둘러 싼 정권 쟁탈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의 \'새왕조\'라는 고지는 또 다른 왕위 찬탈의 암투와 그로 인한 혼란을 암시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즉 현재 왕좌에 있는 헤롯을 대신하는 \'새왕\'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전쟁과 공포와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좁은 시야 였습니다. 단지 세상의 일, 오늘 시시 각각으로 일어나는 문제에만 온통 쏠려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영원하신 영광의 왕의 탄생을 들었을 때 오해한 채 소동했습니다.

4. 일어나야 할 소동
  그리스도의 탄생은 진정 온 천하 만민이 소동해야 할 일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면 수없이 많으 ㄴ사람들이 소동합니다. 자기 자신의 유쾌한 향락을 위해 소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흥가에선 매상을 올리기 위해 소동하고, 은행은 은행대로 때마침 몰려오는 많은 고객 유치를 위해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종류의 소동으로 일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소동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죄인을 죄 중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의를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이야말로 전혀 새로운 나라의 도래임을 알고 우리 함께 왕의 오심을 높이 찬양하며 즐거움으로 맞이하고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소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완악한 심령과 불신의 죄악을 모두 청소하는 소동을 벌입시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과 삶에 일어나는 참다운 소동을 보고 많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찾는 두가지 유형
            본문: 마2:4-6
  1. 동방박사드르이 찾음
 1)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
  박사들이 주님을 찾게 된 동기는 자신들의 연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피조물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동방 박사들이 주님의 탄생을 자신의 연구에 의해 알 수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주님은 여러가지 일반은총을 이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되 성경이 아닌 꿈이나 이상, 문학이나 자연과학등을 통해서 죄인을 자신에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찾는 방법
  박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구약의 율법도 선지자의 예언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가진 학문을 통해 전에 볼 수 없는 \'별의 한 징조\'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어떤 이들은 말씀을 읽다가, 어떤 이는 기도하다가, 어떤 이들은 박사들처럼 자신의 학문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찾는 목적
  그들은 아기 왕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예물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마굿간 구유에 놓인 그리스도를 찾았고 경배한 후 정성어린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경배로 인해 그들 스스로도 매우 큰 기쁨과 감격 속에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2. 헤롯왕의 찾음
 1)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
  사실 유대인들은 메시야 탄생에 관한 예언을 갖고 있었고 그 장소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말을 듣고 당황한 나머지 비로소 그 사실에 대해서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2) 그리스도를 찾는 방법
  헤롯은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인정받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의 자구를 해석할 수 있었을 뿐 메시야도 하나님의 섭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방법은 그리스도를 찾는데 이르지 못했고 오히려 수많은 생명을 살해할 뿐이었습니다.
 3) 그리스도를 찾는 목적
  겉으로는 \'경배하려 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고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행위가 어떤 자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됩니다. (고후 2:16)

 

 

 

 

 

 

 

 

 

 

 

 

 

 

 

 

 

 

            헤롯왕의 관심
                        본문:마2:7,8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곳이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듣고 이내 발걸음을 재촉하여 베들레헴으로 향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헤곳 왕이 박사들 일행을 불러들여 새 왕에 대한 여러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왕을 찾는 즉시 자기에게 알려서 자기도 아기 왕께 경배하게 하라는 신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본래의 의도는 아기 예수의 목숨을 찾고자 하는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본문에 나타난 헤롯 왕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우리를 삼키고자 하는 사탄의 흉계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들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자를 찾아왔다\'는 예기치 않은 외국인들로 인해 헤롯왕은 물론 온 예루살렘 성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들 방문객을 당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점성술의 대가들이었기에 그들은 대단치 않은 사소한 일로 인해 수천리에 달하는 길을 왔다고 생각할 수 없었고, 더구나 그들의 질문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헤롯 왕가는 물론 왕궁 전체는 커다란 충격으로 소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권 왕이 버젓이 살아서 통치하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한 왕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반역이나 다름 없는 일이요, 피를 부르는 정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뭏든 정권에 눈 멀고 교활하기로 유명한 헤롯이 이 일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박사들을 내실로 불러들였고 온유를 가장한 간교한 말로 \'가서 찾게 되면 나로 경배하도록 하라\'고 가증스럽게 말함으로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사탄 역시 성도의 삶을 다스리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달갑게 생각할 리 만무합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종을 순순히 내어줄 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에게는 사탄이 가만히 들어와 유혹하며 매번 타협을 요구해 옵니다. 모든 일을 결정하기 위해 타협과 대화가 필수적이지만 신앙의 결단에 있어서는 그리고 세상과 마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절대 금물입니다.

2. 상세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들을 불러들인 헤롯은 처음 별을 보게 된 시기이며 태어날 새 왕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그 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듣고 난 후 치밀한 계획하에 아기 예수를 제거하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이같이 악의 세력을 치밀하고도 조직적입니다. 비록 이들의 세력이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사탄의 역사는 우리 인간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굉장한 세력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던 사탄의 교활성을 보십시요. 처음에는 마치 신앙의 동류인 양 가장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말로 의문을 제기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것을 금하셨느냐?\'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교묘한 술책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척하면서 다가선 후 이내 우리의 신앙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 것이 이단의 특성입니다.

3. 예수께 경배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는 말이야말로 능청스럽고도 간악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오히려 헤롯은 \'내게 알리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고 했어야 옳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거짓말하는 영입니다. (요8:44) 사탄은 하나님께서 명백히 금지하신 선악과를 앞에 두고도 정반대의 거짓말을 진실인 양 천연덕스럽게 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에덴동산으로부터 시작된 사탄의 거짓된 미혹은 아담의 모든 후손을 거짓말하는 영의 세력권 안에서 살게 했으며, 심지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까지라도 넘어뜨리려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4. 안전한 아기 예수
  아기 예수를 살해하려는 헤롯의 교활한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왕 예수께서는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호령하던 헤롯도 나이 늙어 수한이 찼을 때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사탄의 세력은 궁극적으로 멸망할 것이며, 만 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 되신 예수께서는 \'경배하리라\'고 했던 헤롯의 말과 같이 세상 열왕들로부터 경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탄으로부터 엄습해 오는 영육간의 허다한 유혹이나 핍박을 두려워하거나 물러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기 예수를 보호하셨듯이 당신의 자녇된 성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반대하는 무신론자들과 성도를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헤롯과 같이 기독교를 안 연후에 미혹시키고 멸망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간교한 계략을 간파하고 대적함으로 물리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나타난 별
                          본문:마:2:9,10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을 나섰을 때 동방에서부터 기이하게 빛나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베들레헴의 요셉과 마리아가 묵고 있는 사관에 이르렀을 때 그 별은 멈춰 섰습니다. 이처럼 동방에서부터 새 박사를 베들레헴까지 인도하여 아기 예수가 누우신 곳 위에 머물러 찬연히 빛났던 이 별은 곧 왕권을 상징하는 예언된 별로서 아기 예수가 인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왕권을 가지고 오셨음을 상징합니다. (민24:17)

1. 그들의 성급한 판단이 그들로 하여금 별을 잃어 버리게 하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유대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그들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들을 통하여 이미 유대에서 인류를 다스리고 구속할 왕이 탄생할 것을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대인의 왕은 당연히 유대의 왕궁에서 태어날 것으로 여겨 별의 인도를 받지 않고 곧장 예루살렘 왕궁으로 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별의 인도를 무시한 순간 별은 그들에게 사라졌습니다.
 1) 성급한 인간의 판단은 진리의 빛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처음 예루살렘 궁전으로 가려고 판단 내릴 때는 그것이 매우 지혜롭고 옳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인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순간에 진리 자체는 고사하고 진리로 인도해줄 빛 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기의 지혜를 앞세워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뛰어나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한 것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25)
 2) 성급한 판단은 허탄한 말을 의지하게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 왕궁에서 아기 왕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베들레헴으로 가라는 지시와 함께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는 헤롯의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사악한 성품을 모르는 그들은 그것을 100%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성급한 인간의 판단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빛을 버리고 허탄한 인간의 말을 의지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지혜와 지식에 의존하는 성급한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겠습니다.

2. 때로는 우매할지라도 진리를 찾으려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빛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박사\'란 명예를 얻을만큼 지식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어리석다고 생각될 정도로 성급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앙을 불신앙으로 성급히 단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급한 판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기 예수를 만나려는 그들의 신앙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다시 동방에서 그들을 인도하던 별을 허락하셔서 그들을 아기 예수께서 누우신 사관까지 인도했던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찾느라 피곤하고 지친 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십니다.
  긴 설명을 않더라도 예루살렘 왕궁 문을 나서는 동방 박사들의 발에 힘이 빠졌을 것은 당연한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왕궁에만 가면 새로 나신 유대인의 왕을 다시 찾아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야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새로 나신 메시야를 못 만나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비탄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그 별을\'비춰주심으로써 그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게하셨습니다. 글므로 우리는 진리를 찾다가 낙망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큰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본문은 이들의 기쁨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이처럼 기뻐했을까요? 그들은 먼저 그들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그들이 오랜 여행 끝에 예루살렘 왕궁에 도착했음에도 유대인의 왕을 만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의 확신이 틀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동방에서 나타났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자 자신들의 확신이 틀리지 않은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물론이요 아기 왕이 태어난 곳을 찾는 것이 매우 큰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찾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3)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얄팍한 지혜나 지식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분명한 지명을 알고 찾아가는 그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별로써 그들을 인도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인간의 지혜나 지식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케 하셨던 것입니다.

 

 

 

 

 

 

 


        보배합을 열자
                 본문:마2:11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 당시 지도자들은 종교적 안일에 빠져 예수님의 탄생을 기대하지 않았으며, 외식함으로 그들의 탐욕만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천사들에 의해 유대인 목자들에게 알려졌으며,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에게 별을 통하여 알려지게 됨으로 유대의 낮은 자와 이방인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1.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1) 그들은 장소를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박사들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멀리 동바응로부터 올 때에는 기대가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별을 따라 찾아간 곳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마굿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그들은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이 아기가 유대인의 왕이란 말인가? 이 아이가 정말로 와아 중의 왕이며,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란 말인가?라고 실망을 금치 못하며 의심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명했습니다. 그 모습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분별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외형적 장소를 의식하지 않고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2) 그들은 자기의 주관을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궁으로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2절)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견해를 버리고 그들을 인도한 별빛을 따라 초라한 마굿간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왕궁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그들의 주관을 버리고 순순히 별빛을 따라 유대 베들레헴으로 향했으며, 초라한 마굿간이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주관이 옳다고 무조건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가 오시지 않았다 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관을 버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3) 그들은 경배의 대상을 확실히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아기께 경배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고 하여 \'성모\'라고 부르며 동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존경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리아 외에도 신앙의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어거스틴을 비롯하여 웨슬레,칼빈등의 인물들은 우리가 존경하며 본받아야 할 대상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광적으로 추종한 나머지 복음보다는 그들의 신학만을 옳은 것으로 인정하거나 성경보다 그들의 신학을 우선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을 뿐 아니라 완전한 계시인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2. 동방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1) 그들은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왕께 드려지는 예물들을 가리킵니다. 고대 사람들은 왕을 알현할 때는 황금을 선물로 드리는 것이 예의였으나 박사들은 황금 외에도 예수님께 왕으로서의 모든 예의를 갖추기 위해 가장 갑지고 귀한 몰약과 유향까지도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값진 것을 드림으로써 예수님께 향한 그들의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3. 우리는 주님의 탄생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합니까?
 1)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우리의 보배합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보물이 묻힌 밭을 산 자(마13:44)와 같이 우리의 모든 가치를 예수님께 두어 우리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버리는 심정으로 보배합을 엽시다.

 

 

 

 

 

 

 


          다른 길로 돌아간 동방박사
                      마 2:12
  인류를 구속하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구속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시부터 성장과정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인도와 보호는 계속되었습니다. 본문 역시도 그러한 일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 간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헤롯은 무분별하면서도 매우 간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이 새로 탄생하신 유대인의 왕을 찾으려 하자 그들을 불러 새로 나신 왕이 어떤 경위로 태어났는가를 묻지 않고 아기 왕을 찾거든 자기에게 돌아와 그 장소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그 질문이 자신도 가서 경배하기 위함이라고 맗ㅆ지만 사실 그의 속셈은 아기 왕을 죽이는데 있었습니다. 헤롯의 이 말은 진실처럼 들렸고 때문에 동방 박사들은 헤롯의 말에 속아 넘어간 채 아기 예수께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계략이 동방 박사들은 속일 수 있어도 성령님만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누구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성령 앞에서 거짓말하는 것이요, 이는 곧 하나님 자체이신 성령님을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그 결과는 곧 죽음이라고 교훈합니다. (행5:1-11)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성결한 영과 정직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2. 왕궁에 왕이 없을 때 우리는 왕궁으로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맨 처음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을 만나기 위해서 유대의 왕궁인 궁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은 그들의 판단이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기에는 그들이 찾던 유대인의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후에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헤롯이 참된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개닫고, 그럼으로써 그 권위에도 회의를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나타난 성령의 지시는 그들의 발걸음을 완전히 돌리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진리를 찾는자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지 못하는 곳에서는 박사들도 천사들도 목자들도 찾아와 경배할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요 주인이십니다. 그는 마지막 때에 당신을 찾는 모든 백성들에게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깊은 은혜를 체험한 상태에서도 우리는 그 곳에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만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보고 경배하기 위하여 머나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와 같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17:4)라고 말하며,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기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기쁨 가운데 마냥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다음날로 베들레헴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기 왕께 경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는 자기의 생업에 충실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은 결코 세상을 등지고 은혜의 기쁨만을 누리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들에게 위임4된 사역의 터전입니다. 그러므로 깊은 은혜를 체험하면 할수록 그 은혜에 힘입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길이 아니면 그 길이 첩경이라도 피해가야 합니다.
  옛말에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정도가 아니면 그 길이 탄탄대로라 할지라도 피하여 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꿈에 성령의 지시를 받아 자기들이 예루살렘 왕궁으로 가면 아기 왕 예수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예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왕궁으로 통하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갔던 것입니다. 이는 매우 현명하고 의로운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나의 목숨이든지 다른 사람의 목숨이든지 간에 생명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그 길이 첩경이라도 돌아서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면서 하나님의 간섭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그 사역을 멈추지 아니하시고 선한 자에게는 은혜로운 간섭을, 악한 자에게는 공의의 간섭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로운 간섭을 하실 때에는 반드시 은혜의 간섭을 받은 자가 그 받을 은혜대로 하나님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동방박사들과 같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은혜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행위를 하여야겠습니다.    

 

 

 

 

 

 

 

      애굽으로 피하라
            본문:마 2:13
  동방박사들은 갓 태어난 아기 예수께 매우 큰 기쁨과 영광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그 기쁨의 영광에 만족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악한 헤롯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은 바로 아기 예수께 기쁨과 영광을 가져왔던 동방박사들이 별을 끝까지 따라오지 아니하고 성급히 인간적인 판단을 내려 예루살렘 궁전으로 찾아가 헤롯에게 유대인의 새로 탄생하신 왕의 소식을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1. 의인은 고난을 받습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이 세상에 어떤 악한 자라도 갓 태어난 아기를 죄인으로 정죄할 자는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의 자식일지라도 어린아이를 살려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헤롯은 자기와는 전연 원한 관계가 없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에게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에게는 원수가 되며 죽음의 핍박을 받게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의인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둠이 빛을 싫어하기에 빛을 삼키고자 하는 것처럼 의인의 의가 악인의 행악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세상으로부터의 죽음의 고난을 뚫고 일어나야만 하겠습니다.

2. 사역을 감당할 마땅한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인류의 구세주로서 자기의 생명을 인류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너나 이러한 사실이 예수님께서 갓 태어나자마자 아무런 의미도 없이 헤롯에게 무참히 살해당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땅히 죽음당할 시기와 장소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십자가 위였으며 시기적으로는 모든 공생애 사역을 마친 다음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예수님께서는 죽어야 했지만 지금 당장은 피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주님을 위해서 몸과 전재산을 드린다 해도 그것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시기에 맞춰서 해야 합니다. 우리의 귀한 육체와 희생이 헛된 것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의 흉계를 알고 계십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이 말씀은 비단 외모가 초라한 의로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가 화려하나 속이 검은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2:8)고 말하였던 헤롯의 마음을 꿰뚫고 그의 마음 속에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생각을 읽어 낸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입니다.\'(램17:9)

4. 애굽은 의인의 피난처입니다.
  일찌기 아브라함은 기근을 당하였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 피하였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가 피할 수 있었으며 후일에 비록 애굽 백성에게 고난을 받긴 했지만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과 혼합되지 않고 순수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애굽은 확실히 의인의 피난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곳은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연단하시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린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의 완전한 민족으로 자라났으며 아브라함 역시도 그곳에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역경을 거쳐 하나님의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은총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보면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나 산모는 물론 이들을 인솔하는 요셉에게도 조차 애굽으로 가는 여정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시면서도 동시에 그곳을 연단의 장소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연단속에서도 하나님의 평안을 찾을 수 있어야 하며 평안 속에서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성도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아무 의미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썩는 것 같은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그러한 시간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40년, 시내광야에서 40년을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때에야 비로소 그 80년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무 의미없는 시간과 장소 속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더욱더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애굽에서 불러낸 아들
             본문:마2:14,15
  본문에는 밤에 환상을 본 요셉이 즉시 일어나 어린아기인 예수와 그의 모친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간 그것이 선지자 호세아에 의해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호11:1) 이제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요셉의 순종과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의 순종
  본문에 나타난 요셉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이 얼마나 신실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피하라고 하신 주의 사자의 명령을 듣고 즉시 일어나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곳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창12:1) 그리고 요셉의 경우는 애굽이라는 지정된 땅이 있었지만 그곳은 이방인의 땅이었고, 아무도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브라함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요셉이 가는 길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더 어려운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브라함과 요셉에게 그 곳을 떠나게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1:19) 그는 그의 약혼녀가 동거하기 전 잉태한 것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으나 주의 사자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였던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세상의 풍습에 물들어 세상을 좇아가던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신속히 명령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상보다도 하나님 만을 믿고 의지하는 신실한 믿음이 있ㅇㅆ고 이러한 그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사역
  \'애굽엣거 내 아들을 불렀다\'. 선지자 호세아에 의해 예언된 이 말씀은 역사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의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애굽으로부터 불러내셨습니다.
  헤롯왕을 피하여 애굽에 몸을 숨기고 그 왕이 죽어 더 이상 예수를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애굽에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어 감히 하나님을 믿노라 하며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을 피하여 그곳으로 도망온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암담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해하려고 하던 자들이 다 죽었으니 다시금 이스라엘로 돌아오라고 지시하심으로 자신의 구원사역을 드디어 하나하나 성취하시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2) 그의 거룩한 백성들을 영적 애굽인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십니다.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사역의 두번째 의미는 구우너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의 백성들을 영적 애굽인 세상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진실한 성도 한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죄악에 물들어 있는 세상, 즉 애굽으로부터 불러낸 그분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이끌어 내시기 위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이렇듯 세상으로부터의 부르심은 그의 사역의 첫번째 단계요 구원의 시작입니다.

3. 그의 아들로서의 의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 애굽, 즉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단 애굽을 떠나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장중에 들어온 사람은 세상 것들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개와 같이 그 토했던 것을 도로 삼키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 믿음르로 거룩한 생활을 하려는 자에게 마귀는 많은 유혹으로 그를 미혹합니다. 이미 포기하고 버린 것들을 그리워하게 하며 그곳으로 마음을 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만나보다도 죄로 물든 세상의 진미와 조잡한 것들에 더 관심을 갖게 하고 간절히 찾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에 넘어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구원의 길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며, 오직 앞으로 나아갈 때에만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나 아래를 향하는 것은 죄의 노예가 되는 것이요 어두움과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앞과 위만을 향하여 전진합시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방해한 무리들
          마:2:16-18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분명히 온 인류가 경하해 마지 않는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땅히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배척하고 방해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1. 사탄의 방해
 1) 사탄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방해합니다.
  하나님ㄲ떼 반기를 들다 쫓겨난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조장하는 악한 존재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켜 영원한 형벌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못 믿게 할 뿐 아니라 이미 믿고 있는 성도들까지도 미혹하여 믿음을 저버리게 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우너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그러나 사탄의 목적은 반대로 한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고 있으며, 오늘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벧전5:8)
 2) 메시야 예언의 성취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메시야 예언은 창 3:15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너\'는 사탄을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훈손\'인 그리스도가 비록 사탄에 의해 \'발꿈치가 상하게\' 되지만 후에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탄은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할 그리스도의 탄생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심을 방해하였고 하수인들을 시켜 죽이려고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2. 헤롯왕의 방해
 1) 그는 유대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기의 통치 기반이 약화될까 우려하였습니다.
  유대의 분봉왕 헤롯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임금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심기가 불편하였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인 경쟁자가 생겼다는 불안감과 자기의 권세와 권위에 어떤 훼손이 생기지 않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사를 풀어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이처럼 오시자마자 박해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은 선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착하고 약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죄인은 의인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핍박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헤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도 받았고 결국 그들의 손에 잡혀 죽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빛을 미워하는 어둠의 아들이며 선을 증오하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2) 그는 자신의 악행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드러날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
  헤롯은 권모술수와 불의와 피흘림을 통하여 왕위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 죄를 끄집어내어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한 그는 항상 죄의식에 사로잡혀 불안한 상태로 전전 긍긍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한 죄인들일수록 예수님앞에 나아가기를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죄악이 낱낱이 드러나게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까봐 주님의 탄생을 방해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지니고 있는 죄악들이 탄로날까 두려워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성도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 종교 지도자들의 방해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은 후에 예수님을 잡아 처형할 정도로 하나님의 계시에 무지했던 사람들입니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언급되어진 메시야 강림의 예언을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로 메시야 대망을 기원했던 그들은 정작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때 한 사람도 그가 메시야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하고 핍박하며 끝내 참람죄를 적용시켜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는 박사입니다. 남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사사건건 예수님을 비방하고 그의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믿음이야말로 기독교의 근간이며 핵심입니다.
 
 

 

 

 

 

 


      악인은 멸하시고 의인은 보호하심
         본문:마2:19,20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은 탄생하자마자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극심한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구속주를 핍박하며 거절하였다고 하여서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원대한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계획을 실현하고자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멸하셨으며 의인과 아기 예수를 끝까지 보호하셨습니다.

1. 악인은 반드시 죽습니다.
 1) 악인의 멸망은 필연적입니다.
  우리는 헤롯의 내장이 썩어 죽었다는 전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은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실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1:6;9:5)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오래 참으시나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반드시 벌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그들의 말로는 비참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닥쳐옵니다.
  그들은 그들이 남에게 행한 악한 일로 인하여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참한 최후를 순식간에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사17:14)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길에 서지 않기를 힘써야 하며, 혹 우리가 악인의 악행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면 인내와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아침 이슬과 같이 악인은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악인에 대한 무모한 대항을 원치 않으십니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현명하기를 원하시며 무모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이 악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행위는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가 악한 헤롯에 맞서 싸우기보다 피하게 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2) 또한 악한 자를 멸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핍박 가운데 두시는 이유는 성도들이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인내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악을 이기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성도들을 그들의 핍박 가운데 두시는 것도 성도들로 하여금 인내가 악을 이기는 유일하고도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체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요셉도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무모한 행동이나 불만등을 터트리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묵묵히 따르며 인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악인에 대하여 무모한 방법으로 대항하기보다는 인내로써 대처하여야겠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핍박 가운데서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보호하십니다.
 1) 악인의 칼날을 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피해를 보면서까지 인내하기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피할 길을 내주심으로써 악인의 칼날을 피하게 하십니다. 비록 요셉이 산모와 갓난 아기를 데리고 머나먼 이국 땅 애굽에 망명하는 고생을 겪어야 했지만 칼날을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아기는 물론 온 가정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당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칼날에서도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낙심되고 좌절될 때마다 위로해 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길은 좌절 후에 더 큰 은혜로 임하는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약혼녀 마리아로부터 깊은 배신감을 맛보았으나 곧이어 메시야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맛보았으며, 아기 예수의 목숨에 위협을 느껴 애굽으로 망명하는 깊은 절망에 빠져 들었으나 곧이어 고국에 돌아갈 수 있는 천사의 소망스런 메시지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과 좌절은 더욱 큰 위로와 소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본문 가운데 깨닫는 또 하나의 사실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메시야를 잉태케 된 사실을 알리신 후부터는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요셉에게 직접 계시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창조의 질서는 하나님 자신이 매우 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일 못지 않게 사역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의 질서도 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나사렛으로 오심
             본문:마2:21-23
  아기 예수께서 애굽으로부터 갈릴리 나사렛 동네로 오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기록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애굽에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오신 사실과 거기서 성장하게 된 모든 사실이 이미 선포된 예언의 성취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예수의 귀향이 이미 구약헤서 예언된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에서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아기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오게 된 사실과 그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기 예수께서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습니다.
 1) 그의 여정은 힘들고 고통스런 고난의 여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애굽으로 돌아오실 때 비록 그의 목숨을 찾던 헤롯은 죽었다 할지라도 헤롯을 이어 포악한 아켈라오가 유대의 왕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귀향길은 여전히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세주 메시야, 그는 이렇듯 나면서부터 그를 노리는 악의 세력의 위협과 험난한 여행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고통을 당하셨듯이 우리 역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핍박, 육신적 피로, 정신적 압박감, 많은 이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외로움 등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마십시요. 그리스도의 크신 위로와 보호하심이 여러분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역의 터전을 연단의 장으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갈릴리 지방은 후일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 사역의 주무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선교의 무대로 삼지 않으시고 교통의 요충지요 상업의 요충지인 갈릴리 지방을 선교의 무대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바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역의 장이 될 갈릴리의 지리와 사정을 충분히 알게 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출애굽을 위하여 모세를 그의 사역의 장이 될 애굽의 바로 왕 궁중에서 40년, 시내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연단시키는데 있어서도 같은 방법을 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비록 지금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 같을지라도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성실한 삶으로 일관해야 합니다.

2. 요셉은 아기 예수를 끝까지 보호하였습니다.
 1) 아기 예수를 극진히 보호하였습니다.
  요셉은 메시야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거나 자아도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께서 그 귀한 사역을 감당할 때까지 자기에게 아기 예수를 지키고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아기 예수를 보호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사역자들도 하나님의 축복에 동반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 이를 위하여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아기 예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요셉은 동시에 자기에게는 아기 예수를 보호할만한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지시하시는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때로 가난하고 무능한 자에게는 요셉과 같이 고생과 죽음을 무릅쓴 절대적인 복종이 사역을 감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서 행동하는 사역자가 되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의 명령에는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사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악인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심으로써 스스로 영광을 얻으셨던(출14:4)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아켈라오가 강퍄한 마음을 통하여 요셉이 아기 예수와 함께 나사렛으로 피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들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사신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늘 평안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의 두려움 역시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사용됩니다.
  요셉이 아켈라오를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요셉에게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갈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이처럼 비록 우리가 우리의 환경으로 인하여 두려워 떨 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섭리를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위의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두려움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하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