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꠲
1. 머리말
2. 오늘의 농촌과 농촌교회
1) 오늘의 농촌
2) 오늘의 농촌교회
3. 농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1) 선교의 정당성
2) 선교의 요청
4. 농촌선교를 향한 발걸음
1) 농민이 보는 농촌, 농촌교회
2) 농촌교회가 보는 농민과 농촌
3) 만들어가는 선교의 터전
5. 맺음말
1. 머리말
다산 정약용이 “대저 농(農)이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으로서 천시(天時, 시기)와 지리(地利, 땅)와 인화(人和, 사람)의 화합을 기해야 그 힘이 온존하게 되고, 심고, 기르는 것이 왕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낳는 것은 하늘이고, 기르는 것은 땅이며, 키우는 것은 사람이다. 이 삼재(三才)의 도(道)가 하나로 모인 다음에야 농사일과 나라일에 모자람이 없게 된다. ····· 그런데 천하의 사람들이 차츰 그 근본을 버리고 끝만 도모하니 기름진 논밭과 살찐 흙을 모두 묵히게 되고, 높은 모자와 좋은 옷을 입은, 놀고 먹는 사람이 늘어난다. ····· 농사일의 고달픔을 어루만지지 못하면서 어찌 모든 백성의 평안함을 기대할 것인가.” 라고 한 말은 21세기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지혜를 제시하는 살아 있는 교훈이라고 하겠다.1)
그렇지만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는 어느덧 과거 7, 80년대의 구태의연한 슬로건이 되고 말았음이 오늘날 국민의식과 정부의 정책에서 명백히 증명된다. “할 일 없으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 “이런 촌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 왜 그리 촌스러워” 등 우리들의 일상언어 생활마저도, 우리 나라가 지난 20여년 동안 공업중심의 경제, 산업의 발전과 대도시 중심의 국토건설로만 치달아, 이로 인해 도시에 비해 농촌이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되고, 경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2)
농촌의 상대적인 낙후는 또한 교회에 있어서도 성장한 도심교회에 비해 오히려 농촌의 교회를 갈수록 퇴보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농촌에서 목회하면서 보고 듣는 일들은 기쁜 것보다는 우울한 것이 더 많아졌다. 농작물 파동이 한 번씩 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 과 교인들 얼굴 보기도 미안하고, 그저 일하느라고 미련스럽게, 또는 대수롭지 않게 미뤄논 병이 악화돼서 큰 수술을 받거나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이 그지없다. 또한 아기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상여매는 소리는 자주 들리고, 이사가는 사람을 보면 저 자리는 이제 누가 채우나하고 답답함만 가득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관심이 머물러 있고, 어렵고 소외된 곳일수록 더욱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구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촌교회가 당면한 농촌실태의 난관은 한국 기독교인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극복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은 전제들 속에서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촌 교회가 처해 있는 일반적인 상황들을 고찰하고 문제점들을 진단함은, 이미 많은 이들의 시도가 있었음에도 그런대로 뜻깊은 일이라고 여겨진다. 나아가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탕으로 이제야 농촌과 농촌선교에 겨우 눈을 뜰려고 하는 한 작은 농촌교회를 통하여 어떻게 씨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우선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열거해봄으로써 “농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제시해 보고자 한다.3)
2. 오늘의 농촌과 농촌교회
1) 오늘의 농촌
오늘의 농촌은 모든 분야에서 큰 병을 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 극심하게 피폐화되었음은 자명한 사실로 우리 농민의 생활수준 역시 도시집중, 부의 편재 현상으로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 지난 해만 보아도 정부는 UR/WTO체제를 허용, 외국 농산물의 유입이 명백해져 오늘의 농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는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과거 약 30년 동안 매년 평균 50만명의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농을 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확연히 입증해주고 있다.4) 여기에다가 정부는 “농어촌 발전 종합대책”을 세워 우리의 농업 구조를 재편성함으로써 농업의 해체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5)
현재 이러한 우리의 농촌에 주어지는 국내외적 도전과 자극은 과거 어느때 보다도 그 강도가 높으며 해결책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우선 외국 농산품의 수입으로 경지의 이용률이 떨어지고 있어 식량자급도는 75년의 73.0%에서 90년에는 40.9%로 하락했다. 또한 농가의 부채는 82년 호당 83만원에서 90년 4백 73만원으로 증가되어 농가의 생계는 부채의 압박으로부터 헤어나기가 어렵다. 94년 5월 18일에 농림수산부가 발표한 “1992년도 농가경제 조사결과”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의 농가경제는 최악의 상태에 있다.6) 농사 소득율이 눈에 띄게 둔화되고,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가 해마다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 3천여 농가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전년도 농가소득(1천4백50만5천원)은 겨우 4.5%가 올랐지만, 농업경영비는 오히려 11.8%나 올랐다.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의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보다 무려 1백76만8천원이나 적어, 그 소득격차가 1991년 보다는 무려 2.2배, 1990년 보다는 무려 6배나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장년층의 이농현상이 심각해서 오늘날 농촌은 인력과 노동력의 부족, 그리고 노령화와 부녀화 현상으로 심각한 농촌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농가인구를 연령별로 구분하면 13세 이하의 경우 70년대에는 전체의 43.5%였으나 계속 감소했고, 반면 50세 이상 고령층은 15.69%이었으나 89년은 35.1%로 크게 증가했다. 나아가서 복지시설 및 생활환경의 열악성은 말할 것도 없고, 농촌총각들의 결혼문제, 교육환경의 열악성 등은 농촌을 도저히 회생시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7)
김태호, 최민호, 정지웅, 김성수 4명이 공동 저술한 “농촌사회 문제론”에 의하면 농촌사회문제의 원인은 대개 정부가 세운 정책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8) 농민을 대상으로 한 그들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농촌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로 정부의 도시편향적 정책(46.8%), 농촌 농민의 단결력 부족(21.4%), 농민 능력의 결여(9.5%), 농민의 세상변화에 대한 지식 부족(8.2%), 농민은 원래 못살게 되어 있다(7.5%)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난 정부의 농업정책을 보면, 사실 정부의 농업정책 담당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국가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아 관리할 수 있는가를 의심받을 정도의 발상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업에 대한 속성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 속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인식도 전혀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농촌환경을 조성해야만 젊고 유능한 사람들을 붙잡아 놓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 21세기의 생명산업으로 각광을 받게 될 농업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오늘의 문제를 대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화, 교육, 경제, 의료, 보건 등 국가의 주요 시설은 대부분 도회지에 집중시켜 놓고 농어민들을 향해서는 비전문적인 탁상공론과 전시(展示)행정을 일삼으며 일반적 추종만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와 행정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9)
지난 80년대 이후로 시행된 대부분의 영농 정책 - 복합영농, 농가소득 증대사업, 농업구조 조정사업, 각종 농산물 재배 및 사육 장려, 농산물 유통개선 등 - 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를 단순한 정책의 실패로만 여겨 관련부처장을 경질하는 것으로 정부에서는 대응하고 있지만, 그 여파로 농촌의 경제는 더욱 부실해졌고 농민들은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다.
1993년 가을의 배추 파동만 해도 우리 농민들이 여름내내 땀흘려 재배했던 배추 1억8천만포기(65만톤)를 그대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의 배추를 정부가 사들일 예산도 없었고 창고도 없었다.10) 그래도 일정한 소비층이 있다는 가을 김장 배추가 이런 파동을 겪고 곤욕을 치르는데, 하물며 소비자의 기호를 바라보며 출하되는 다른 농작물들은 파동 앞에서 아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5년 봄배추는 농민들의 피땀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매체들도 별로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는 것 같다. 1994년 5월 4일 농산물이 생산지에서는 싼 값에 출하되어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값에 팔리는 농수산물 유통구조의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농업 안정 및 가격에 관한 법률”이 가락동 시장내 지정 도매 법인과 중매인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준법투쟁에 밀려 시행 하루만에 철회되어 농민들에게 다시 커다란 상처를 남겨준 졸속 행정이 또 한번 연출되었다.
농촌의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농어촌 지역 및 도회지 학교의 통폐합 정책은 1982년부터 시행되었다. 폐교기준은 학생수가 180명, 6학급 미만인 학교로 반경 4km 이내에 흡수대상이 있을 때 통폐합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폐교 전에는 반드시 지역 거주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러나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폐교가 결정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두밀리 분교 폐교 사건이다.11)
농촌의 학교들은 1982년부터 13년간 1,133개교가 폐교되었고, 그 중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75%인 887개교가 폐교 조치되었다. 지역에 따라 절반 이상의 국민학교가 없어졌거나 분교로 축소되었다.12) 농촌 학교의 통폐합은 급격한 이농 현상이 빚어낸 농촌 인구 감소, 이에 따른 취학아동 감소로 정상적인 학교운영이 불가능해지고, 1인당 교육비가 증가하여 교육재정이 악화된다는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재정 문제만으로 농촌의 교육 문제에 대처한다면 농촌학교의 통폐합이 오히려 이농을 가속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13)
우리의 헌법은 거주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국민이면 누구나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을 보장하고 있다. 국민이면 누구나 자유·평등·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농촌에 단 한 명이 남아 있더라도 국민이 누려야 할 모든 권리와 교육의 기회가 그들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94년도 농사인구 증감내역을 보면, 0~14세 인구만이 유일하게 다른 세대에 비해서 감소된 농가인구 보다 증가된 농가인구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증가된 농가인구가 406512명이고, 감소된 농가인구는 652,802명으로 나타났는데, 여러 연령층에서는 다 그만큼 감소했지만, 0~14세 인구는 출생 및 기타 원인에 의한 인구증가가 101,859명이고, 사망 및 기타 원인에 의한 인구감소가 83,887명으로 나타나,14) 그래도 아직까지는 농촌에 아이들이 희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결코 농촌에 관한 모든 정책은 권위주의와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다루어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교육을 마치고 농촌에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면 허락한다고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91.8%가 “반대하겠다”고 응답했으며, 나머지 8.2%중 6.5%가 “자녀들의 의사에 맡기겠다”고 답해, 거의 모든 부모가 자녀들의 귀향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결코 농민들의 이기심 때문만은 아닌, 오늘의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15)
농촌에 대한 도회지의 사고는 더욱 우울하게 한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앞으로 이 사회를 책임질 젊은층의 생각이다. 80년대의 대학가는 농민을 변혁운동의 주력 부대로 인식했고, 농촌활동도 농학 연대사업으로서 비중있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연례적인 봉사활동 수준에 머물고 있다. 96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농촌활동 폐지가 공약으로 나왔고, 그 이유로는 부실한 농촌활동 보다는 핵폐기장 건설지에 가서 환경운동을 하거나, 빈민 활동을 하는 것을 들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른 농촌 해체 가속화와 양극분해로 농민의 변혁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16) 농촌 해체가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농촌의 가장 큰 비극이다.
2) 오늘의 농촌교회
농촌이 앞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면, 농촌교회도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농어촌부는 현재 농촌교회가 약 2천 8백여곳인데, 이중 1천 2백교회가 미자립교회이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미자립교회가 2천교회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17) 이미 농촌 가구당 평균 부채가 5백여만원을 넘어서고 있고, 전체농가중 92.3%가 농업소득만으로 생계가 곤란하고, 여성농민 노동시간 18시간, 농약중독경험 57%에 이르며, 빈집, 빈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농촌 현실에서 농촌교회 또한 빈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복음화율은 23%에 이르는 반면 농촌은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8) 이는 아프리카 평균 복음화율인 12%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충남북지역 교회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농촌교회의 평균 가정수는 29가정, 십일조를 하는 신도수는 평균 14가정이며, 5명 이하가 46%나 된다. 농촌 목회경력은 3년 이하가 50%, 1년 이하가 20%로 나타나 현지 목회경력이 평균 3년 9개월이며, 외부 지원을 포함한 연간 예산은 평균 1천5백만원으로 나타났으며, 3백만원 이하가 11%에 이르고 있다.19) 예수교장로회(통합) 농어촌부의 발표에 의하면 목회자들의 한달 가계비의 평균은 약 74.3만원인 반면에 평균 사례비는 58.2만원이며, 따라서 전체 조사대상자 60% 이상이 부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목회자들의 경제적 생활수준에 만족하는 비율은 12%, 불만족은 64%로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으나, 70% 가량의 목회자들은 그래도 농촌교회를 지켜야한다고 응답했다.20)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이었던 고(故) 김용기 장로는 “농촌이 살아야 민족이 살며 농민 복음화는 곧 민족 복음화”21)라고 강조하며 농촌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생활로 본을 보여야 한다고 생전에 주창했다. 그러나 농촌의 피폐화현상에 연쇄 반응적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농촌교회는 교역자 자녀교육문제, 교회교육문제, 경제문제 등 제반 사항으로 인해 온전한 복음전파마저도 가로막히고 있다. 농촌 목회자들의 문제 해결은 농촌교회만의 태도개선으로는 부족하다. 농촌교회의 문제는 결코 교회 자체의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농어촌교회는 전체 교회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농촌선교에 대한 관심은 점점 식어지며, 농촌 복음전파율도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교회는 3만 5천명이 넘는 선교사가 1백 25개 국가에서 해외선교를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 6번째 선교사 파송국이 되어 비교적 활발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22) 그러나 농촌선교정책이 확고하게 수립되어 있는 교단은 그리 많지 않다. 대개 교단의 농촌 선교는 피폐된 농촌지역의 소득증대라든지 또는 농촌교회의 총괄적이며 구체적인 활로 모색을 위한 사업이라기 보다 구호성내지는 선언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며 일부 실질적인 협력관계가 있다해도 전체적인 측면에서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오히려 농촌으로 나가는 목회자를 무능한 목회자로 인식하는 풍조가 점차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반적인 농촌교회가 당하는 위기상황은 정치적이고 정책적이며 행정적인 영향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요소라 볼 수 있다. 근본적인 사회적 요소들이 문제 해결책에 부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농촌 목회자들이 농촌목회에 대한 철학을 소유하지 못하고, 때로는 도시목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고, 변화의 요구에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농촌목회에 대한 철학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농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공업화로 인한 높은 소비성향과 돈의 가치가 떨어짐으로 나타나는 상대적 빈곤감을, 빈곤에 대한 성서적인 고찰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도시의 부와 그에 따르는 도시목회를 농촌목회와 비교함으로 더욱 더 무력감에 빠져가는 것이다.23) 농촌교회의 문제가 결코 교회 자체의 문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적으로 생겨나는 무력감은, 농촌에 대한 이해를 갖지 못하게 하고 농촌교회의 문제를 크게 부풀리고 있다.
이제 한국 농촌선교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라 특수한 정황 가운데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분명히 농촌교회도 세상 사람들을 선교하며, 삶을 돕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할 당위성이 있다. 이것은 아무리 농촌이 피폐하고, 농민들이 의욕을 잃고 농촌을 떠난다고 해도 그렇다. 오히려 농촌에 소망을 불어넣는 것이 이 시대의 농촌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이 소망이 다시 한 번 기독교인들의 생활의 지배적 요인이 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교회의 할 일에 대한 열심이 솟아 올랐다.24)
3. 농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1) 선교의 정당성
농촌, 농민, 농촌교회, 농촌선교에 대해서 이제까지 여기저기서 말해 온 것만 해도 그 이론은 결코 모자라지 않다. 그러나 때때로 기독교인들이 농민, 농촌, 농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합리적이기 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었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겠다. 그러므로 농촌과 농민의 선교를 위한 실천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농촌과 교회, 선교와 교회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먼저 선교에 대한 봉사가 교회에 대한 봉사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히려 교회에 대한 모든 봉사가 단 한 가지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에 대한 모든 봉사가 선교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25) 사실 위험은 교회 자체가 선교의 출발점, 목표, 주체로 되는 데 있다. 이것은 성서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 행동하시는 분이시고, 그를 믿는 자들을 그의 나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회도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26) 오늘날 농촌선교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농촌교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교회라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행동의 결과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교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교회의 성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즉 현재의 농촌의 모든 어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그속에 뛰어 들어와 일하는 자원하는 목회가 아니라, 떠밀려와 일하는 목회가 되면, 교회의 역할 보다도 성장내지는 무관심 속에 머물 수밖에 없고, 교회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나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교회라기 보다는 교회 자체로서의 일을 하기 위한 교회로 머물 수밖에 없다.
위기에 휘말려 있는 농촌의 한 가운데 세워져 있는 교회가, 교회 자체를 모든 출발점과 목표로 삼아버린다면 그것은 무너져 내리는 모래 위에서 앞날을 계획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서 자신을 하나님의 선교의 처분권에 내맡기지 않고 세상을 섬기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업, 즉 그의 주권에 제약을 가하려는 것이 된다.
이제까지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온 한국교회의 일부로서 농촌교회도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까 선교지와 쉽게 융화될 수 없고, 나아가서 상대적 빈곤감 속에서 도시교회를 바라보다가 지쳐서 이제는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성장을 포기해 버렸다. 문제는 성장을 포기해 버리니까 교회의 목표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27) 이것은 우리나라의 신학교육이나 목회방법론, 또 많은 목회세미나들이 도시교회에 맞는 획일화된 것이어서, 별다른 생각없이 농촌에 그대로 적용하면 그 기준은 언제나 도회지가 될 수밖에 없고, 교회성장주의를 최우선으로 삼는 도시교회 앞에서 농촌교회는 늘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라도 농촌교회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농촌에게, 또는 농민에게 말씀하신 바를 바로 깨달아, 오늘 이른바 후기산업사회의 더욱 소외받는 농민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농민은 물론 농민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 바로 알려주어야 한다.28)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이며, 일이라는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회가 분명히 자신의 길을 안다면 비록 농촌의 현실이 참담하고 어려워도, 교회는 희망의 실현, 곧 기대의 기능을 심어줄 수 있다.
워렌(Warren) 박사는 그의 저서 「비전의 진리」(The Truth of Vision)에서 “교회가 자기의 본래적 과제인 선교를 유효하게 실천하는 문제는 확실히 교회가 지닌 희망의 성격에 달려 있다. 이에 수반하여 또한 당연한 귀결로서 그 희망의 성격이 선교의 성격을 크게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29) 어려움 속에서도 갖는 희망의 성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잘 보여주신 것이다.
교회는 선교가 하나님께 속한 활동, 즉 하나님의 선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모든 것 - 하나님의 구속의 나라가 완전히 성취되는 일 - 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어서, 사람들이 죄와 세상 나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하나님과 사귈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30) 교회는 자기 스스로 임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또 교회는 여러가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교회가 수행해야 할 하나의 본래적 임무를 버리고 자기 스스로 임무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교회 본래의 임무를 떠나서는 모든 부수적 임무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다.31)
그렇다면 농촌교회의 임무는 분명한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임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농촌에서, 농민들 속에서 활동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역할이다. 마태복음 11장은 그런 점을 보여준다. 거기서 예수는 “당신이 오실 그분이십니까? 즉 당신이 참으로 메시야적 평안을 주실 메시야이십니까?”라고 질문을 받으신다. 그 대답은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보여주어라. 맹인이 보고 ····· 나병환자가 깨끗해 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다”이다.32)
교회는 듣고 본 것을 보여줌으로 희망의 실현, 곧 기대의 기능을 심어줄 수 있다. 단지 이제 복음이 선포되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이해하도록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입장에서 특별히 농촌과 농민의 입장에서 저들의 상황을 이해하며 보여주는 것이다. 머얼 데이비스(Merle Davice)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앉아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고 또 그의 보혈만이 죄에 서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선포된지 한 세대 후 마다가스카에서 기독교의 메시지 를 무시해 온 한 부족의 늙은 추장은 저들의 무관심의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소를 기르고 있는 부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을 싫어하지요. 우리들은 먼젓번의 선교사 들에게 하나님의 보좌에 양을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를 위한 보좌도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었는데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된 후 기독교의 복음에 마음을 닫아버린 것이지요.”33)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도록 만들어서는 안되고, 모든 사람들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인정할 때 진정한 선교의 영역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봉사(Diakonia)를 통해서 나타난다. 교회가, 특별히 농촌교회가 교회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서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 속에서 지역을 위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봉사이다.
모든 사람들의 입장에서 저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선교의 토대로 삼는다면, 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은 봉사이다. 우리가 복음서의 핵심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낱말이다.34) 즉 어떤 사람이 변화시키기 위해서 왔는데, 그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35) 치욕, 자기부정, 십자가, 그리고 죽음을 지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모든 일은 봉사라는 낱말 속에 요약되어 있다.
기독교인의 생활은 “섬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성서는 그들을 “가난한 자” 혹은 “작은 자”라 부른다) 가운데 있도록 지정되어 있는 것이다.36) 또한 성서는 “가난한 자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37)고 이야기한다.
농촌선교를 위해 농촌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농민들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일인데, 이것은 바로 지역에 있는 교회의 봉사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고, 힘에 벅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농민들은 언제나 교회의 “섬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교회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역할에 충실할수록 비록 어렵고 힘든 농촌이지만, 언제나 선교의 정당성은 살아 있다. 이것을 잊어버릴 때 변화의 요구에 무감각해지고, 선교의 정당성도 상대적 빈곤함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되는 것이고, 오히려 교회가 “섬김을 받을” 존재로 남게된다.
2) 선교의 요청
농촌선교의 대상인 농민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답하는 사람의 선 자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낱말 뜻에서 시작해 본다면, 농민은 “농사짓는 백성”이다.38) 농사는 “논밭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일”39)로서, 곧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농민은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백성이다.
이는 신약성경 헬라어와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농민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낱말들이나 표현이 땅을 가리키는 낱말에서 온 것과 맞아떨어진다.40) 곧 “게오르고스”라는 헬라어는 땅(게)에서 일하는 사람, 땅을 가는 사람을 뜻하고, “이쉬 아다마”나 “오베드 아다마”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각각 땅(아다마)의 사람, 땅을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편, 농민은 농사짓는 한 개인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인간의 모든 다른 활동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농사란 본디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민을 말하려면 인간의 공동체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농민의 공동체성은 땅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성이다.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민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가장 가깝게 일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그것은 애초에 땅을 갈 사람과 더불어 이 땅에서 식물이 솟아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41) 그래서 성서에서도 농민과 농사일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이 있다.42) 또한 농민과 농민의 활동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기준과 소재가 되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을 두고서 “하나님의 포도밭”이라 하고,43) 하나님 스스로를 가리켜 포도원지기라 함은44) 그 좋은 본보기이다. 이스라엘의 포도 농사는 우리나라의 벼농사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진 세계를 말할 때에도 지금까지 서로 무섭게 싸우던 나라들과 민족들이 그들이 쓰던 칼과 창을 쳐서 보습과 낫을 만든다고 한다.45) 곧 전쟁 무기를 부서뜨려서 농기구를 만드는 시대가 바로 평화로운 시대라는 뜻이다. 이 경우 농삿일은 하나님이 이루신 새 세상에 흘러 넘치는 평화를 상징한다.46)
농민과 농삿일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데도 교회는 사실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농민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모자라는 바가 많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농사를 안 지어 본 사람이, 또 농민이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내 아버지는 농부라”는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리 없다. 가을걷이의 기쁨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추수감사절의 뜻을 바로 알고 느끼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땅을 갈아서, 먹을 것을 내기 위해 땀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47)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성경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영생의 양식이 주님께 있다는 말씀의 뜻도 바로 알 수 없다. 물론 농민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문명이 발전한다고 해도 땅을 가는 일을 우습게 보는 한,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우리들 자신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땅을 갈아야 할 사람들이 자꾸 떠나고 있고, 늙어가고 있다. 농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의 치명적인 결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때, 땅을 갈아서 먹을 것을 내는 농민의 입장에 접근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농민과 농촌을 향한 선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는 일이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것이다. 이제 농촌을 향한 선교는 땅을 갈 사람들이 떠나지 않도록, 그리고 돌아오도록, 그래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그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일이다.
지금 농민과 농촌이 처한 현실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소비자와 농민은 마치 경제적 이해를 달리하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고,48) 정부는 세계적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96년도를 제2의 녹색혁명의 원년으로 삼아, 쌀 재배면적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다면서도, 그 방법에 있어서는 농민을 배제한채 자본에 의한 농업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49)
자본에 의한 농업의 침투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 또 자연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무시한채 경제이윤의 극대화에만 목표를 둠으로써, 환경 및 생태계 파괴는 물론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가도록 더욱 부추킨다. 결국 이것은 농민들은 떠나 보내고, 해외 의존형 원료에 의한 농산물 가공 산업50)의 발전을 도와 국내 농업의 해체를 더욱 촉진시키는 일이 된다.51) 이것은 오직 시장경쟁만을 의식한 나머지 대량생산, 대량유통에 치중함으로 일어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촌, 농민, 그리고 농촌교회와 농촌 선교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농촌 실정에서 제기되었지만, 이를 단순히 농촌과 농민의 문제로만 보는 한 그에 대한 바른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는 농촌과 농민과 농촌교회를 넘어서서 온누리가 함께 살고 죽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아는 동시에,52)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깨져가는 데 대한 심각한 반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 농촌을 향한 선교는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선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녀왔던 이른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점을 강조한 구원신학의 입장에서만 행해지는 선교라기 보다는, 창조신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하나님과 땅과 사람의 바른 관계를 밝히는 선교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구원신학이 별개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땅을 갈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이 살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분명히 응답할 때, 농촌을 향한 선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자연의 주(主)이신 동시에, 모든 역사의 주(主)이심을 분명히 고백할 기회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4. 농촌선교를 향한 발걸음
1) 농민이 보는 농촌, 농촌교회
결국 농촌선교의 최일선의 자리는 농촌교회요, 시작과 끝을 여미게 될 곳도 농촌교회이다. 그러므로 농촌교회가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보다 확고한 선교의식과 선교전략을 갖고 있지 않으면 농촌선교는 아무리 도시의 기독교인들이 애를 쓴다고 해도 요원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한국 도시교회의 성장은 사회의 중요한 변동요인이었던 지난 30여년간의 농촌의 이농현상에 힘입은 바가 크다. 즉 도시의 흡입력이 어려운 농촌에서 애를 쓰던 이들을 끌어 당겼고, 농촌에서 복음화되고 성장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도시교회를 만들고 그 구성원이 되었다. 도시교회의 성장에서 보듯이 농촌은 그저 도시로 빨려들어가는 곳에 불과한 듯 했다. 그런데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가 비대해짐에 따라, 이제 사람들이 농촌에 대하여 갖는 생각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53) 우선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먹거리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은 농촌의 문제를 함부로 할 수 없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자리로서 전원을 찾기 시작하고, 정보혁명의 물결은 도시만이 갖고 있던 기능들을 무력화시키고54)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본다면, 지금의 농촌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라고 여겨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앞으로의 농촌의 모습이 농민들을 위하는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앞서 살펴본대로 지금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농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에 의한 농업경영 추구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농촌의 현실은 매우 어둡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은 농촌을 살리는 데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농촌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농촌선교의 최일선에 서 있는 농촌교회가, 특히 농촌 목회자들이 어떤 신앙과, 농촌목회에 대한 어떤 철학으로 농촌을 바라보느냐이다. 지금까지 농촌교회가 성공했다는 기준을 교회당을 건축했다, 세례를 몇 명 주었다, 자립했다는 등에 두었다면, 앞으로는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가 중요하다.
절대적인 기준은 그 누구도 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농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면, 동참하는 모든 교회와 모든 사람들이 그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런점에서 충남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시온교회도 그 기준을 향한 출발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55)
시온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신죽리는 신죽1, 2, 3리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이다.56) 주로 하는 농사일은 채소 농사와 축산, 그리고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벼농사인데, 벼농사만 하는 지역 보다는 그런대로 생활수준이 괜찮다고 이야기들을 하는 지역이다.57) 특별히 문화생활을 줄길만한 곳은 없고, 그리 멀지 않은 온천58)에 다녀오는 것과, 봄 가을로 가는 관광여행 정도가 문화생활이라고 들라면 들 정도다.
신죽1리가 50집에 인구수가 193명, 신죽2리가 56집에 인구수가 203명, 신죽3리가 63집에 인구수가 193명으로, 총 169집에 인구수가 589명이다.59) 그가운데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48집에 110명 정도이다. 그러니까 마을 전체 집 수의 약 28%이며, 인구수는 약 18%이다.60) 집 수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이유는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비율인 여성의 수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남성의 출석이 적기 때문이다. 즉 한 집에서 여성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농촌의 평균 복음화율인 6%에 비교할 때는 대단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겠다.
신죽리의 농민들은 농촌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의견들을 물어봤는데61), 우선 절반 이상이 농촌의 문제로 고령화 현상을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노력한 만큼의 소득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62) 셋째로는 정부의 정책부족과 수입농산물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
◉ 신죽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농촌문제 (표 1· 단위:가정數) | |||||
|
도시와 격차 |
고령화 현상 |
노력의 댓가부족 |
정부의 잘못 |
수입 농산물 |
정보의 부족 |
|
9 |
7 |
4 |
2 |
1 | |
|
1 | |||||
정보화 시대에 있어서 정보부족을 들기도 했는데, 사실 이상의 이야기들은 어디서나 모두가 느끼고 있는 심각한 농촌의 문제들이다. 그래서 신죽리 지역만의 문제들에 관한 의견들을 물었는데, 다양한 의견들이 나와서 꼭 어느 것 하나를 꼬집어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일 많이 나온 이야기는 환경오염이었다.63)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이야기는 이기주의 문제였다. 이것은 아마도 경제이윤의 논리가 농촌으로 파고 들면서 서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 길을 넓히기 위해 땅 한평을 내놓는다는 것이 예전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교통문제, 수자원 부족, 기반시설 확충문제, 교육문제, 행정구역문제, 의욕상실 등이었다.64) 그리고 덧붙여 신죽리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새로운 농사방법에 대한 인식도가 좀 낮은 것이 아닌가 한다. 나중에 덧붙이겠지만, 생산물의 판로에 있어서도 개척의 노력이 좀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농사정보 부족에서도 올 수 있지만, 한쪽으로 편중된 지역적인 특성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65)
|
◉ 신죽리의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표 2 · 단위:가정수) | |||||||||||
|
이기 주의 |
교통 문제 |
교육 문제 |
환경 오염 |
수자원부족 |
의욕 상실 |
경지정리안됨 |
노령화 |
행정구역문제 |
기반시설문제 |
자금력 |
저소득 |
|
4 |
2 |
1 |
5 |
2 |
1 |
2 |
1 |
3 |
2 |
1 |
1 |
이런 문제들에 비해서 신죽리의 장점을 물었더니, 절대적인 답변이 근면성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즉 일은 그야말로 열심히들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서로들 친근감이 있다고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이기주의가 경제이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친근감은 본래의 살아가는 모습은 순수하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농촌의 생명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기후조건과 토질의 특성이 좋아서 축산과 밭농사를 짓기에 유리하다고 이야기했다.
|
◉ 신죽리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표 3 · 단위:가정數) | |||||
|
밭농사가 잘됨 |
친근감이 있다 |
근면성 우수 |
좋은 기상조건 |
학구열 |
농업기술 우수 |
|
3 |
5 |
11 |
3 |
1 |
2 |
그렇다면 신죽리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를 물었더니, 여기에는 거의 두가지 의견에 집약되었다. 첫째는 선진 영농기술을 습득하고, 기계화로 나가야하고, 둘째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판로에 대한 행정기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 신죽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표 4 · 단위:가정數) | |||
|
새로운 영농기술 개발 |
정부의 정책적 지원 |
자금 확보 |
협동생산 |
|
10 |
8 |
2 |
5 |
물론 적절한 의견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그동안 정부에서 주장해온 농업정책이 홍보에 의해서 별다른 비판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일단은 선진영농기술의 습득과 기계화라고 하는 것이, 자본을 밑바탕에 깔고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현재의 열악한 농촌현실에서는 정부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정부에서 계획하는 농업정책에 의해서 농업구조가 재편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66)
농촌이 못사는 것이 아직도 농촌에 인구가 많고 농사의 규모가 작고 농삿일이 기계화, 과학화되지 못해 국제경쟁력이 뒤떨어진 탓이라고 하면서, 농사꾼의 수를 크게 줄이고 작은 땅들을 합해 큰 땅을 만들고 대규모 위탁영농 회사들이 그 땅을 사서 관리하면서 기계를 가지고, 적은 수의 농민들이 마치 회사원처럼 일하면서, 이윤을 위해서는 이 땅에서 곡식을 생산하기 보다는 꽃나무를 키우겠다는 식의 농업구조 재편성이 과연 농민들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오늘의 농촌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선진영농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공공투자가 대폭 확대되어야 하고 정부의 역할이 보다 증대되지 않고서는 농민들이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고, 외국 농산물과 맞대응하는 것도 무리다. 그러나 문제는 농민들이 무작정 자본이 계획하는 농업구조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농민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 차원에서만 농사를 계속하려는 경향 때문에 항상 구조적인 재조정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런 것에 대한 심각한 고찰이 없이 선진영농기술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어려움을 가져 올 수도 있다. 선진영농기술은 당면한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67) 그런점에서 세 번째의 의견으로 나온 협동생산을 기반으로 선진영농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업의 공업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후닥닥 팔아치우고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농민에 의한 농업경영의 바탕 속에서 선진영농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농촌이 농민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고 할 때 더욱 그렇다. 위에서 기술한대로 생태계 문제 뿐만 아니라 먹거리 문제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을 생각해보더라도, 농촌이 자본과 시장원리에만 지배되는 농촌이 되서는 안된다. 그리고 판로 문제도 행정기관의 도움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새로운 유통체계를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 농민에게도 일정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만들어 나갈 때, 보다 안정적인 판로가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 농촌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물음에는 거의 모든 대답이 어둡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68) 이것은 지금까지의 농업정책이 정부의 일방적인 판단과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도무지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보지 못한 농민의 입장에서는 현실 위에서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므로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
◉ 앞으로의 농촌에 대한 의견은? (표 5 · 단위:가구數) | ||
|
희망이 없다 |
희망이 있다 |
잘모르겠다 |
|
13 |
3 |
4 |
95년을 마감하면서 국민소득 1만불시대를 열었다고 언론매체에서는 요란하게 떠들어대지만, 현재의 농촌을 1만불시대에 대비해보면 더욱 더 농촌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만을 가질 뿐이다. 더군다나 최근 정부의 정책방향이 국제경쟁이란 측면에서 전업농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중소농들의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불안감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69)
이상과 같이 몇가지 개론적인 문제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모아봤다. 그리고 덧붙여서 같은 마을에 있는 시온교회에 대한 의견도 물어봤다. 교회는 이 마을에서 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때로는 마을과 긴장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평소에 시온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였느냐는 질문에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된다가 제일 많이 나왔고, 아무튼 좋게 생각한다가 그다음이며, 세번째로는 지역의 구심점, 진리를 일깨우는 곳, 평화롭게 보인다 등이 비슷하게 나왔다. 그리고 전도에 적극성이 없다라는 의견도 있었고, 지역과 융화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마도 의견이 이렇게 나오게 된데는, 신죽3리의 60여집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식구 중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나오고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지난 30여년간 한 번이라도 교회에 발을 들여 놓은 적이 있었고, 또 농촌이라고 하는 지역 특성상 같은 마을 내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영향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
◉ 평소 시온교회에 대한 생각은? (표 6 · 단위:가구數) | |||||||
|
지역의 구심점 |
전도열의 부족 |
지역과 융화부족 |
평화롭다 |
진리를 일깨 운다 |
좋게 생각 한다 |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된다 |
기타 |
|
2 |
1 |
1 |
2 |
2 |
4 |
5 |
3 |
그동안 시온교회를 거쳐간 목회자들의 목회방법은 기독교의 보편적인 방법인 구원론에 입각한 것이었다.70) 그러다보니까 마을에 대해서도 교회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고, 농촌의 현실 속에서 농촌의 문제를 통한 접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교회가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들도,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을의 발전을 이야기했다기 보다도,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며, 정신적인 위로의 모습을 가진 교회가 있는 것이 마을에 그래도 도움이 된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온교회가 지역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교회가 마을의 화합을 선도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야 한다가 첫번째로 많아 나왔고, 지역의 학교구실을 해야 하며,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와 지역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가 세번째의 의견을 이루었다. 또 의식개혁에 앞장서 달라는 의견도 있었고, 소득과 직결되는 행사를 가져줬으면 하는 의견도 있었다.
|
◉ 시온교회가 신죽리를 위해서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표 7 · 단위:가구數) | ||||||
|
구심점 |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
지역에 대한 관심 |
진리를 전파 |
지역의 학교 역할 |
의식 개혁 |
소득과 직결 되는행사주최 |
|
5 |
3 |
2 |
3 |
4 |
1 |
2 |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들, 즉 평안, 위로 등 어떠한 정신적인 기능으로서 마을의 화합을 이끌어달라는 의견은 참으로 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교회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같이 움직여보지 못해서, 아무래도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위한 부탁은 어색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농협이나 정부의 어떤 기관 같은데서 이 지역을 위한 일을 물었다면, 거의 삶의 자리를 위한 생산성 향상 등 소득에 직결되는 의견들을 많이 내놓았을 것이다. 또 농촌교회가 그럴만한 힘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위기의 농촌이라고 말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 농촌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고, 농촌선교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교회의 관점으로만 마을을 보는 한, 교회는 선교의 열의에 불타고 있을지 몰라도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지금까지의 선교가 또는 전도가 교회에 대한 봉사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반성해야 한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도 있었으나, 마을의 교회로서의 역할 보다는 교회만의 성장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마을 사람들이면서, 또 같은 농사를 짓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이라는 이중구조가 항상 의식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 자체는 모든 출발점과 목표가 아니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의 선교 도구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섬기러 오셨다는 그 말씀이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지금의 농촌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래가 참으로 어둡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그 어두움 속으로 스스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같이 먹고 마시고 때론 딩구는 모습 속에서 선교가 시작된다. 도시교회는 그렇다치더라도 농촌교회는 이제 분명히 성장 보다는 교회의 역할에 더 치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지역에 대한 봉사로서 나타난다.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다시 한번 농촌목회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소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농촌교회가 보는 농민, 농촌
신죽리 지역의 주 생산물은 아무래도 배추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2년여간 두차례에 걸쳐 배추 파동을 맞았다. 93년 김장배추 파동과 95년 봄배추 파동이다. 공산품 값은 생산자가 생산비와 유통비, 세금까지 합쳐서 결정하는데, 농산물은 소비자가 결정한다. 그래서 농민은 열심히 생산해내도 소비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값 때문에 안절부절하는게 오늘의 농촌 현실이다. 예측가능한 정책의 부재 때문에 오늘날의 농사는 흡사 도박과도 같은 성격을 띠고 말았다. 운이 좋으면 농사를 잘 지은 것이고, 운이 나쁘면 일년 농사를 버리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과 경쟁력을 심어준다는 정책71)을 펴고 있다고 하지만, 도박을 하는 정신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농산물 파동이 날 때마다 그 후유증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우선 열심히 농사지은 농산물이 밭에서 그대로 썩고 있는 모습을 보는 농민들의 허탈감하며, 그동안 들어간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농촌을 점점 희망이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농촌교회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는 농촌목회자에게도 심각한 고민이 된다. 삶의 자리가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의욕을 북돋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교하시는 가운데 교회는 그의 도구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선교의 전초기지로서 봉사하는 교회는 그의 할 일을 만나게 된다.
농촌교회가 크게 부딪치는 일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농촌의 전통적인 전례의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상황이다. 전통적인 상황은 처음부터 부딪쳤던 일이고, 경제적 상황은 이젠 막다른 길목에 들어 서 있다.
특히 경제적인 상황은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농촌을 떠나게 만들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고령화의 문제와 노동력의 문제에 봉착하게 만든다. 고령화 문제는 농촌인구의 자연감소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72) 농사일의 기계화를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여간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힘이 없으면 마음대로 움직여 나가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농촌을 떠난다는 것은 농촌교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든다. 선교의 대상, 즉 섬김을 위한 봉사의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73)
시온교회가 바라보는 농촌의 모습도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농촌의 모습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74) 그리고 여타의 농촌교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똑같이 안고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비슷하다.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가 농촌목회에 대한 어떤 특별한 교육을 받거나, 확고한 농촌목회에 대한 철학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저곳의 농촌운동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막연하게 “앞으로 머지 않아 전세계의 자연이 오염, 고갈되고 도시 생활에 문제가 많아지며 식량 기근이 온다고 하는데, 그 때가 되면 모두들 바르게 농사짓는 사람들을 찾아와 살려달라고 매달릴 것이다. 그 때까지만 우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어 나가자”75)고 꿈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밭에서 썩는 배추를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처음으로 95년 11월달에는 도시교회와 농산물 직거래를 시도해 보았다.76) 11월 중순경 직거래를 시작하면서 확인해 본 서울의 녹번시장77)에서는 배추 한 포기에 1200원을 하고 있었고, 서대문구의 제법 큰 수퍼마켓 몇군데에서는 600원에서 7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배추 한포기의 시세가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생산지인 신죽리에서는 포기당 80원에서 100원 사이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농민들이 이야기하는 배추값의 포기당 하한선은 250원 정도이었고, 그래도 300원은 받아야 어느정도 농사를 지은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78) PC통신을 통해서 확인해 본 가락동 시장의 시세는 포기당 500원에서 600원을 오가고 있어서, 포기당 500원으로 직거래를 시작했다.79)
처음에는 그저 막연하게 시작했던 직거래였고, 또 원만하게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문제가 많이 있었다. 우선 큰 문제는 시온교회의 신뢰도가 마을에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배추를 싣고 갈 차량 준비에 애를 먹었다. 도시교회와 직거래한다는 말에 응했던 마을 사람들이, 막상 운반을 앞두고는 믿음도 별로 서지 않고, 불안감도 있어서, 그래도 그동안 안정적으로 해 왔던 농협쪽으로 차량을 옮겨버리는 일들이 발생했다. 또 교회 내에서도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교인들의 호응도 무관심과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아가서 이런 일이 혹시나 잘못되어,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도시교회와 약속을 몇시간 앞두고서 문제가 발생한 것을 보고, 그동안 교회가 지역에서 신뢰를 쌓지 못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 득이라면 득이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특히 변화가 더딘 시골에서 신뢰를 쌓는다는 것은 오래토록 같이 지내보지 않고서는 어렵다. 그런데 시온교회는 이 지역에서 무려 30여년을 같이 살았고, 설문조사에 나타난 동네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온교회의 모습도 나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좋게 생각하고, 나아가서 마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들이 더 많았는데, 그것이 신뢰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온교회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바라보는 교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교회는 엄연히 다르다. 농촌선교가 교회의 위상을 농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회로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지속적인 선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지, 결코 바라만 보는 하나님은 아니시다. 그래서 교우들 가운데서 농협으로 가기 위해 실어놓은 차량을 부랴부랴 빼내었고, 배추를 제외한 다른 김장 품목들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마을 사람들에게서 충당했다.80)
또 다른 문제는 서울까지의 운반과 소비자들의 가정으로 배달 문제였다. 막상 부딪쳐보니 이것이 직거래 문제중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기존의 유통체계에 맡겨버리면 비록 배추가 생산지에서는 싸게 나가더라도, 유통 단계에 의해서 소비자의 가정까지 움직여지는데, 직거래에서는 생산자가 이것까지 직접할려고 하니까 엄청난 힘이 들었다. 더군다나 농촌에 일손이 달리고 고령화되다 보니까 목회자가 직접 나서야 하는데, 생각하면 많은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도시와 직거래를 주선하고나서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일과성이 되고 마는 것은, 바로 유통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나섰다가 너무 힘이 들어 그만 두는 것이 아닌가 한다.81) 직거래 문제나 또는 교회를 중심으로 생산자 단체가 공동체화 되어서 이미 궤도에 올라있는 곳이라고 할지라도 유통문제만큼은 언제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일손이 달리고 고령화된 일반 농촌에서 이러한 일을 전담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유통 때문이라도 공동체화가 이루어져야하고, 유통관리하는 것도 농사의 일부라는 의식이 있어야겠다.
그리고 또 문제가 되었던 것은 품질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에 견본품을 가지고 갔었고, 2차에 걸쳐서 김장거리를 운반했다. 그런데 갈 때마다 품질이 달라졌다. 그 이유는 비록 작게 시작한 직거래지만, 선교의 차원에서 될 수 있는 한 마을 사람들이 골고루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 밭에서 배추를 뽑다 보니까 품질이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도시교회의 입장에서는 거꾸로 신뢰가 가지 않게 된 것이다. 아무리 농촌선교를 위한 직거래라고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물건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눈 앞에서 당장 차이가 나는 배추를 가지고 농촌선교의 차원에서 동참해달라는 부탁은 소비자의 입장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일 수밖에 없다.82) 아무런 경험없이 시작했다가 부딪친 문제였는데, 이것은 체계가 잡히면 그런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문제들이 있었던 이유는 결국 목회자가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없이 일을 추진했던 데 있다. 즉흥적인 발상으로 시작했던 일은 아니지만, 아마도 도농간 직거래를 시작했거나 할려고 하는 교회들도 처음에 부딪치는 일들이 아닌가 한다. 농촌은 변화가 더디다. 그 변화도 다른 사람이 했거나, 또 여러 경로로 확인된 것에 한해서만 변화해 볼려고 한다.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경제적인 수입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본인이 스스로 검증해 보지 않고서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에서도 직거래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있고, 또한 도시교회도 농촌선교의 정신으로 임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나름대로의 체계적인 소비시장을 갖추어 놓지 않고서는 하기가 어렵다. 농촌의 입장에서는 삶의 문제가 걸린 것이지만, 도시에서는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귀찮은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계속적으로 하기가 어렵다. 도시교회의 상황이 아무래도 지역적인 선교라기 보다는 교회내적인 선교에 치중하기 때문에, 교회, 또는 소속 교인들에게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직거래가 쉽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직거래는 농촌 문제의 해결만이 아닌, 우선 도시의 문제 해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농촌이 도시의 동력을 제공해준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도시교회도 직거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싸다고 싶어 살려고 하면 수입 농산물이고, 우리 농산물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하소연을 귀담아 들을 필요도 있다.83) 점점 더 열려가는 수입개방화 시대에 있어서 꼭 신토불이를 외치지 않더라도, 먹는 것을 고르는 일을 예전처럼 쉽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건강한 생명의 공급원을 확보하는 일이 이제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농촌도 이제는 보다 합리적으로 소비자를 대해야 할 것 같다. 품질의 시대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고품질 생산에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지금 제일 우려되는 것은 시장경쟁만을 의식한 나머지 대량생산, 대량유통에 치중해서 다양성을 상실함으로, 소비자들의 욕구가 꺾이고 소비시장이 원만하게 돌아가지 못해 대량생산이 과잉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떤 작물이 잘 소비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성이 있다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산의 방향을 그쪽으로만 맞춤으로 오히려 소비자도 식상해하고 과잉생산화 됨으로 낭패를 겪는 일은 이미 여러번 맞이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러한 생산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확실히 재고 해봐야 하고, 시장의 흐름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앞장 서서 실제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다른 지역들의 모습을 배우는 데 힘써야 하며, 안정적인 것만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죽리가 지닌 문제점을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데 더디다는 것이다. 신영농기술의 출발은 장래성을 내다보는 데 있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기적 차원에서만 농사를 계속하려는 경향은 앞으로를 대비하려는 자세로는 적절치 않다. 실제로 WTO체제 아래서 단기적 차원의 농사는 농촌을 더욱 어렵게 한다.
협동생산을 통하여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전업농 위주의 정책을 펴는 오늘의 농정은, 중소 농가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가정이 전업농이 될 수도 없다. 그 대안으로 협동생산이 될 수 있다.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84) 현재 신죽리에서는 기업농이 되기가 어렵다. 지역적 여건도 있지만, 한 두사람이 자기의 재산이 많아서 그것을 이용하거나 또는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서 한다면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중소농이 대부분인 신죽리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그러나 협업체계를 건실하게 쌓아간다면,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협업생산은 사실 어느 정도의 양보와 이해가 필요하다. 신죽리 지역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것처럼 실제로 이기주의가 마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신영농기술이란 것의 실체를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과 견주어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데, 신죽리에서는 이를테면 협동생산으로의 전환이 실질적인 신영농기술의 출발이 될 수 있다. 협업체계는 또한 판로에 대한 합리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매달리기 때문에 한 사람이 실패하는 것과 그 차원이 다르다. 협업체계로 나간다면 교회가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단점들이 있겠고, 또 심각한 이해타산이 오갈 수도 있겠지만, 심도있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직거래라고 하는 것도 이런 협동생산의 바탕이 서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농산물도 공산품의 원리를 도입해서, 상품에 철저한 책임을 지는 의식이 필요하다. 지금도 포장에 생산자의 이름을 씀으로 책임성을 부각시키는 노력도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다. 할 수 있으면 공산품처럼 사후 봉사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 바로 소비되는 것이라고 할 지라도, 소비자가 제기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성실하게 응답하며 기억해 두었다가 차후에라도 보상해 줄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85)
도농간의 직거래 알선이나, 농산물 판로 개척만이 농촌선교의 전부는 아님을 물론 잘 안다. 그러나 현재의 농촌이 너무나 어려운 실정이고, 이것이 농민들에 의한 것은 아니고 정치 · 사회적인 요소와 경제적인 이유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농촌선교의 실천목표를 다른 곳으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농촌에서 농민들과 교회가 직접 만나는 가장 좋은 자리가 되며, 그들을 선교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국선명회에서 10여년간 전국 50여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통한 농촌선교를 진행한 보고를 보면, 직접 접촉을 통해 주민들이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더러는 분쟁의 어려움도 겪으면서 참여한 지역은 선교의 결실을 얻었는데, 그러나 교회에서 교인들만을 중심으로 무언가 보여주면 따라오겠지 하는 식으로 계도적인 사업을 전개한 곳은 그 성과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86) 물론 성과에 따라 선교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교회가 선교의 방법을 믿는 자들의 솔선이라는 소극적인 방법 보다는, 적극적으로 농민들과 접촉하는 방법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농촌교회의 자립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현실에서 직거래 운동은 생명을 살리는 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고, 함께 사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키는 운동의 일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거래 운동은 설사 많은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충분히 할만한 가치가 있고 선교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오늘의 농촌교회의 빈사상태는 농민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도시교회의 보조나 지원은 일시적인 방편은 될 수 있어도, 해결책은 아니다. 농민이 살면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면 농촌교회가 살아날 수 있다. 우선은 전체 농촌이 당장 회생되기 어렵고, 복음화가 힘들다면, 부분적으로 농촌교회가 있는 그 지역부터라도 구체적인 선교의 목표를 설정해 나가고, 또 도시교회도 협력할 수 있다. 시온교회는 이제야 시작할려고 하고, 또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지만, 농촌선교가 영적인 구원만이 아니라, 이 사회에 건강한 정신과 생명의 고귀함도 아울러 전해줄 수 있다는 믿음은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성서해석과 신앙으로 신죽리를 향한 선교의 장을 마련할려고 한다. 이것은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신죽리 주민들이 교회에 바라는 사항 중의 하나였던, 지역학교 역할등을 통해서 같이 생각하며, 선교의 장을 만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농촌선교를 교회내적으로만 다루지 말자는 것이다. 폐쇄성이나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지역 선교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선언적 내지는 과시성 정책들은 지양하며, 실현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그 과제로 삼아야 한다.87)
다시 한번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교회 또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행동의 결과임을 생각해 본다. 세상을 섬기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교회의 역할로 나타나야 한다면, 이것은 농촌을 섬기시고 농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농촌교회의 역할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농촌선교의 한 과제로서 시온교회는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신죽리 주민들이 바라는 교회가 해야 될 지역학교로서의 역할도 보다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고려 중에 있다. 거의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지역적 특성이 저마다 다른 농촌의 현실에서, 지역학교의 모델이 고정될 수는 없으나, 그래도 비슷한 점은 많다고 생각된다. 우선은 보고 배우는 데 노력하면서, 그러면서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시작하고 있다.
첫째는 교회 주보를 마을 신문화 시키는 일이다.88) 이미 여러 농촌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것인데, 교회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도 내에서 신죽리 특성에 맞게 꾸밀려고 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주보에 ‘주간농사정보’란을 신설하여 새로운 농사정보와 필요한 농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된 자료의 출처는 PC통신을 이용하고 있다.89) 마을 신문이 잘 활용된다면 어느정도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둘째로는 지역학교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해서 교회의 개방에 노력을 하고 있다. 시온교회는 94년도에 새롭게 건물을 건축했는데, 외부의 장식은 일체 생략하고, 앞으로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배정했다. 교회의 형편상 외부장식까지 건축할 예산도 없었지만, 할 수 있는대로 외부장식 보다는 그 예산으로 내부를 보다 실용적으로 꾸미는 데 힘썼다. 밤예배시 따뜻한 조명색갈까지 염두에 두었으며, 비효율적인 강단의 크기는 대폭 줄였고, 설교단과 강단의 의자도 될 수 있는대로 거부감을 줄이는 데 신경을 썼고, 건물의 보온에 투자를 했다. 그리고 남는 예산으로 아이들의 교육시설을 확충하는 데 썼다.90) 사실 교회의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목회자의 목회관 뿐만 아니라 교우들의 삶하고도 연관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더구나 농촌교회로서는 여간해서는 마련할 수 없는 큰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간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농촌의 일반적인 교회 건축은, 무작정 도시교회의 흉내를 내기 보다는 농촌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의식의 전환 속에서, 그리고 지역선교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교회의 개방이 많이 되지 않았고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지만, 앞으로는 지역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쉽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선 교우들과 함께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는데, 먼저 아이들을 위한 개방으로, 초·중·고생들을 위해서 피아노 교실과 컴퓨터 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는 지역의 농민들도 배울 수 있는 컴퓨터 교실이 되도록 할 생각이다.91)
그런데 이런 기능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가르칠 수 있는 교사의 확보가 중요한데, 사실 농촌교회로서는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목회자가 관심이 있으면 또 그리 어렵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문화활동은 나름대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이 그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안내해주는 역할만 해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신죽리는 조그만 소읍92)과 인접해 있어서 그리 큰 문화행사에 접하기가 힘들지만, 주변 읍의 문화행사까지 점검을 해서 될 수 있는대로 참관할려고 하고 있다.93)
지역학교의 역할로서 제공할 수 있는 또다른 프로그램은 우선 농촌의 현실과 소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좌 개설을 들 수 있겠다. 농사에 관한 공개강좌도 계획 중에 있지만, 우선 실천적으로, 해마다 1월 중에 열어 온 “부흥회”를 96년도부터는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구원론적인 모습에서 확대시켜, 신죽리와 신죽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느낄 수 있는 대외적인 모습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94)
시온교회가 지녀온 교회의 전통도 부흥회는 해야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나름대로 농촌에서 목회를 하는 중에 느낀점도 농촌교회의 부흥회는 그 성격 여하에 따라, 도시교회와는 아주 다른 공동체적인 일체감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천편일률적인 모습 때문에 연례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쉬었고, 내용 또한 언제나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전문적인 부흥강사의 설교로만 이루어져서 농촌선교에 그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농촌교회가 지금까지 부흥회를 치루면서 “심령부흥회”라는 것만을 내세워 마을 사람들과는 무관한 교회내적인 행사에만 머물렀던 것을 반성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보다 넓게 선교의 장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서 96년도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부흥회를 시도해보게 된 것이다. 실험적인 요소들도 상당히 있어서 긴장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힘있게 움직인다는 것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깨달음이었고, 앞으로 더욱 이러한 생각들을 가다듬어간다면 부흥회가 새로운 농촌선교의 한부분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확신도 가졌다.95)
96년도 부흥회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이야기와 수맥(水脈), 그리고 건강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접해보도록 기획했는데, 전혀 교회에 무관심했던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참석했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세세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96) 결국 우리가 죽도록 농촌선교를 이야기하면서도 농민들이 직접 살고 있는 땅과, 저들의 생각을 교회의 관점에서만 판단한다면 그것은 관념적인 선교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성공의 결과를 당장 몇사람이 교회에 나와야만 되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농촌선교는 교회만을 위한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농촌선교는 농민과 교회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터전 위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혹은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다.
시온교회에서 몇번의 부흥회를 치렀지만, 이번처럼 마을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농촌 목회자는 교인들만이 목회의 대상은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모든 사람들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농촌 목회자도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이 목회의 대상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목회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선교가 교회 내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하나님께서 농민들 속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농민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선교여야 한다.
3) 만들어가는 선교의 터전
현재 우리 농업의 미래는 2004년까지밖에 없는 것으로 종종 비쳐지곤 한다.97) 농민들이 2004년 이후의 정책과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근래에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발행되는 정책보고서에는 이미 2020년, 더 나아가 2050년까지의 농업에 대한 전망치가 나오곤 하지만,98) 우리는 신농정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예산의 투자만 이야기하고 있다.99) 먼저는 정부의 정책 수립에 있어서 미래를 내다보는 자세가 정립되어야 하겠지만, 농촌에 대한 도시인들의 애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농촌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이지 못한다면, 우리의 농촌은 정말로 2004년에서 끝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먼저 농촌에 대한 관심을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 소위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경쟁적으로 더 힘을 쏟아붓는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그 일부분만이라도 농촌선교에 돌린다면, 농촌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보다 원할해 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선교의 터전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뜻에서 도시교회에 제안하는 것은, 도시교회가 농민에게 영농자금을 대여해 쌀, 보리, 배추 등의 계약재배를 하는 신용사업을 벌이고, 10여명 정도의 소그룹 단위로 농산물을 공동구매하는 생활협동조합 같은 것을 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농약과 공해로 찌든 외국농산물로부터 도시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제안일 수도 있다. 도회지와 농촌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쌀시장 개방이 환경파괴와 국토 황폐화를 초래한다.” 이 말은 일본의 소비자 연맹의 쌀시장 개방 반대 구호이다. 쌀 시장을 개방하면 영농 인구가 줄어들고, 영농 인구가 줄어들면 기계화가 필연적으로 진행되게 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과다하게 살포하여 국토가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며 마지막에는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곳에서는 인간들의 건강한 삶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 구호의 내용이다.100) 소비자 연맹 스스로가 생각하는 도회지와 농촌의 공동운명체론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이런 공동운명체론은 농촌선교가 꼭 농촌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일깨워주고 있다. 농촌선교는 오늘의 농민이 처한 사회 · 경제 · 정치 · 문화적인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할 수 없다. 잘살기 운동을 하면서도 정책이나 제반 여건이 바르게 시행되지 않으면 그 한계가 있다. 아무리 농민들이 열심히 일해도 사회 전체가 바르게 가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농사지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더군다나 자본에 의한 농사경영과 수입의 개방화는 농민들의 수고를 헛것으로 돌릴 수 있다. 농민들은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해 왔다.
그러므로 농촌선교는 여러 방면에 걸쳐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교회와 신학은 다른 학문과 농촌에 대한 이해를 가볍게 보는 오만함을 버리고 교회와 신학이 다루지 않거나 다룰 수 없는 문제에 관한 것은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101) 특히 인류 문명의 위기를 절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분야와는 손잡고 함께 일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 여전히 농촌을 지탱하는 전통적인 전례의식과 절기에 대해서도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성육신 신앙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먼저 신학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으로 살으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독교 교리와 전통 전례와의 결합을 시도해보는 작업도 농촌선교의 과제가 된다.102)
이제 농촌선교에 있어서 선교의 터전을 교회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선교의 터전은 농사 일터를 중심으로 해야 하고, 농민이 경험하고 부딪치는 것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그 경험과 부딪치는 것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서 고쳐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농민의 입장에서 농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과 방식으로 해야 한다. 선교의 터전은 큰 작업에서부터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또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촌교회가 크게 시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작은 일들은 시작을 쉽게 할 수 있고 지속적이 될 수 있다. 진실로 몸으로 부딪쳐 볼려고 한다면 농사현장에서 장사꾼 목회자로의 과감한 시도도 해봄직 하다.
5. 맺음말
시온교회는 아직도 여전히 신죽리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색한 점이 많다. 또 시온교회가 생각하는 것들이 저들의 살아가는 것과 그리 연관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온교회 또한 위에서 열거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앞에서 어색한 점이 많다.
그러나 지난 3년여간 신죽리에서 목회를 한답시고 사는 동안 농촌에 관한 여러가지 고민들이 많아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간에도 갑자기 아파 쓰러진 마을 사람들을 차에 싣고서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데려다주고 왔다. 이렇게 운전만 하다보면 어느새 그나마 병원으로 실어다 줄 사람마저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픔마저도 들었다. 결국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인 선교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도전하게 된다. 어려운 농촌 현실에서 당장 제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농촌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가 라는 생각은 농촌교회를 떠나고 싶은 유혹 속에 잠기게도 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성격은 다시한번 자세를 가다듬고 오늘의 농촌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둘러보면 혼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농촌의 어려움을 뚫고 나가보려고 애쓰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농민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교회는 자기 스스로 임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서 그가 일하시고자 하는 곳에서 교회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래서 농촌에 세워지는 교회는 당연히 농촌에서 언제나 선교의 정당성을 가지고, 또 늘 새롭게 선교의 요청 앞에 서 있게 된다.
선교의 정당한 요청 앞에서 그동안 침묵하였다면, 어색함을 탓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의 방법이 서툴고 이미 다른 곳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거쳐간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시온교회는 배우는 자세로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보는 것이 이 글의 또다른 목적이다.103)
위에서 살펴본대로 농촌의 현실은 희망적이지 못하고, 농촌교회 또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농촌에서 선교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농촌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같이 한다. 그런대 나름대로 농촌선교를 성공적으로 한다는 교회들을 보면, 그 관점은 비슷하다.104)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농민들의 삶을 포용력있게 받아들이고, 나아가서 함께 힘들여 구체적인 활로를 모색해 내고, 실제적인 소득향상을 위해 지역 농민들과 같이 살아가면서 선교의 장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 새롭게 시도해 볼려고 하는 교회들은 이들의 방법들을 배워 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지역 농민들의 삶을 교회의 관점으로가 아닌, 저들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선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1세기를 맞는 농촌교회와 농촌선교의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몇가지 제언을 하면서 글을 마치겠다.
첫째는 선언적 내지는 대외 과시성 정책들은 지향하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농촌이 도시의 동력을 제공해준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도시교회는 구호적 차원에서가 아닌 도농직거래나 농촌봉사활동 등에 구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교역자의 생활비 지원도 좋지만, 덧붙여 농촌교회와 직거래하며 생산의 기초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로 농촌교회는 단순히 지난 시기 행해왔던 교회 안의 선교를 과감히 탈피해 교회 밖의 문제에 깊이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평신도 훈련을 통해 목회자의 동역자로 일할 수 있는 평신도 육성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넷째로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이 농촌목회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부터 농촌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훈련장을 마련하고, 신학적 이론과 실천을 실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농촌실정이 정책의 잘못으로 기인되고 있는 만큼, 각 교단의 농촌선교부는, 정부의 농촌 정책의 올바른 계획과 집행을 위해서 끊임없는 비판과 함께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인 구조 조정이 되지 않고서 농촌선교는 요원하다.105)
21세기는 가까워 오고, 농업에 대한 변화의 물결은 농촌을 향해 이미 밀려들고 있다. 농촌선교도 다양한 모습과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대응해 나가는 교회는 대응해 가는 쪽으로, 당황하는 교회는 당황하면서라도 이제 농촌선교의 요구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농촌교회는 농민들과 함께 당당하게 선교의 장을 열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