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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새해들어서도 계속 말씀을 통하여 듣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다윗은 사울의 위협을 피하여 가지 말아야 할 땅 블레셋 가드까지 피해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위급했으면 자신이 골리앗을 죽였던 이유로 다 이겼다고 여겼던 전쟁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한을 품고 있던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까지 피신을 해야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자신의 몸을 피하기를 요청을 했을 때 신하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강경했습니다. 과거 전쟁의 역사를 끄집어내며 엘라골짜기에서의 전투에서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장본인이라며 오히려 죽이기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이 또 다시 다윗의 눈앞에 닥친 것입니다. 블레셋이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킨 그 장본인이 우리 앞에 있다며 죽여야 한다는 신하들의 이야기에 다윗은 정말로 사면초가였습니다. 독 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그 때 다윗은 기지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미친체 하여 왕 앞에서 말하면서 침을 흘리기 시작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자 왕은 신하들에게 \"우리나라에도 미친 사람이 많은데, 그 수가 부족해서 이 사람을 더하려고 그러느냐\"면서 죽일 필요도 없이 그냥 쫓아내라고 하였습니다.
사자의 아구까지 들어갔던 절대절명의 위기의 상황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후의 상황이 오늘 본문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이제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난 다윗은 유다 골짜기, 특히 사해 주변의 석회암 동굴이 많은 골짜기로 몸을 피했습니다. 아둘람이라는 굴로 피해 있는 동안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을 했습니다. 요약해 보면 네 유형의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그룹은 가족들이었습니다. 1절에 보면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윗에게로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부모라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새입니다. 이새를 비롯한 형제와 그 가족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다윗은 형제 중 말째였습니다만 사실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이새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만 해도 말째인 다윗은 면담의 기회 조차 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설움을 받았던 다윗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며 사무엘을 일깨우시지 않았다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다윗은 면담의 기회 조차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들에서 급히 오느라 전혀 몸을 다듬을 만한 어떤 준비의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목동의 모습 그 대로 주의 종 사무엘을 만났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삼상 16:12) 내가 기다린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던 다윗도 세월이 지나면서 의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면서 오히려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형제와 부모까지 다윗에게로 찾아와서 그에게 의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환란당한 모든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치열한 삶의 전선에서 낙오자가 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둘람에 있는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본문말씀을 생각하면서 22년전의 평안의 공동체를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이 역곡은 2층건물이 몇 채 밖에 있지 않았던 촌락이었고,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공원있는 자리, 부안초등학교가 있는 자리 그리고 청실이나 현대아파트가 있는 자리는 모두 아카시아 나무가 듬성듬성 나있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민둥산이었습니다.
처음 이 곳에 개척을 했던 장소가 지금 여러분들이 큰 길에서 들어오시다 보면 오른 편에 아직도 서있는 아주 오래된 2층집 지하였습니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교회도 18평 지하실이었고, 담임목사 거처도 2층 집의 단칸 지하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전도해서 등록한 성도의 가정도 지하실이었습니다. 반듯한 지하실이라면 조금은 위로가 될 터인데 마치 방공호 같은 지하실이어서 고개를 반 쯤은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마음은 더욱 아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교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개척되었기에 설교를 듣는 사람은 아내 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전도밖에 없어보였습니다. 전도가 사명이요 전도가 해답이라고 여기면서 하루에 200가정, 일주일이면 1,000가정, 한달에 4,000가정 정도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전도하여 한 두 가정이 열매를 맺을 때의 기쁨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재수없다며 소금을 뿌려도, 짜증내며 욕을 해도 그것은 문제가 되질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평안의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리게 된 줄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그렇게 전도된 가정들을 심방 가보면 그들은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전도사님, 기대하지 마세요. 우리는 6개월 정도 있다가 서울로 올라갑니다\" 전도사인 저를 실망시키지 않게하기 위하여 미리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그렇게 힘이 없는지 맥이 탁 풀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좌절감을 맛 보면서 놀랍게도 새로운 도전이 생겼습니다. 그래, 서울에서 살다가 실패하고 이곳에 내려와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평안의 교회를 통하여 희망을 주어야 겠다며 다짐한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빚진 자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약자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나갔더라면 주님을 못 만났을 사람들이 아마 이 자리에도 있을 거예요. 사업이나 경제 여건들이 마음껏 생각하는 데로 잘 되었다면 아마 주님을 못 만나고 건방떨고 있을 사람들이 이 자리에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경제를 꺾으시고, 그들의 세속적 삶의 물꼬를 막으셔서 더 이상 내 인간적인 방법만 가지고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겠노라며 두 손들고 주께로 나아왔기에 주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며 살게 된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 그룹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 소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다 모였습니다. 그들에게서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거나 위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그저 위로만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기에 다윗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400명 가량이나 몰려 왔던 것입니다. 사실 다윗 자신도 많은 물질이 필요하고 여러모양으로 공급받아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모압왕을 찾아가 부모를 맡겼습니다. 이스라엘 동편에 있던 모압은 이방이었지만, 다윗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면 다윗은 증조할머니라고 할 수 있는 모압 여인 룻의 인연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쳐 왓을 때 그들에게 부모님을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 그룹의 사람들과 아둘람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우선 당장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필요했기에 물 한모금 얻기 위해서도 계곡을 내려가야 했고, 음식 준비를 위해서도 유다 마을로 찾아가 먹을 것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사울의 군대에 노출되기 마련이고 그것은 생명을 거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에게 찾아온 4백명의 환란 당한 자, 빚진자, 원통한 자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도여러분, 평안의 공동체 역시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개척 초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지하실 18평에 형광등 8개가 달려 있었는데 한 달에 전기료가 평균 5,000원 정도 나왔습니다만 그것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제가 무슨 궁상을 떨었는지 아십니까? 강대 앞의 형광등 2개만 키고 예배를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설교 듣는 사람이 제 아내 한사람 뿐이니까 어두워도 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초라한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척하면서 어려워도 그렇지...사람이 궁색맞게 그것이 무엇이냐\"는 책망을 들으면서 너무나 작아진 제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게 원래 제 모습이 아닌데.....눈물로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나서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려워도 다시 불을 키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교인들이 헌금을 못하면, 서울로 가야할 교인이 늦잠을 잤다면서 우리 지하실 교회를 찾아와 예배를 드리고는 ‘아이고, 전도사님, 말씀에 큰 은혜가 되었다\"면서 감사헌금을 하고 가는데 보니까 만원이었습니다. 두 달치 전기료를 허락하신줄로 믿습니다. 먼저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는 신앙으로 주님 앞에 바로 설 때 채우시는 은혜를 체험한 것이지요. 할렐루야!
그런 그들과 두 사람 이상만 보내 주시면 성경공부 하겠습니다. 훈련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베델성서대학이예요. 지금 15기까지 오고 있습니다. 작지만 우리 평안의교회의 힘은 거기에 있어요. 2년동안 담임목사와 침 튀겨가면서 자리가 없어서 성가대석에서, 자리가 없어서 조립식 구석에서 공부했던 그들이 지금 평안의교회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었어요.
이제 그들이 지하실에서, 전세에서, 자기 집에서 하나님께 주시는 은혜와 은총을 입어가기 때문에 제가 입주예배를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들의 삶을 제가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전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그러면서도 땅을 사고, 교회를 지으면서 온갖 헌금을 다해 가면서, 자신들의 삶은 나중으로 미뤄가면서 그렇게 입주예배를 드릴 때 저는 감격한 거예요.
아둘람 공동체로 400명이 모인 그들을 다윗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내게 부담스럽다고 다윗은 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내게 큰 일을 맡기실 때 내가 그들을 잘 양육하고, 챙김으로써 장차 하나님이 더 큰 공동체를 주실 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다윗은 이 아둘람 공동체에서 훈련으로 터득한 줄 믿습니다.
또 400명의 원통한자, 환란당한 자, 빚진 자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훈련을 시켜서 다윗이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 주셔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가를 이루어 가는 일에 그들이 장관으로, 방백으로, 지도자로써 크게 쓰임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충고합니다. 이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유다땅, 유다땅은 위험이 있는 땅입니다. 지금 사울왕이 정예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굴에 숨어 있다고 하니까 지금 샅샅이 찾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24장에 가보면 다윗이 굴에 있을 때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사울이 찾아 왔다가 용변이 마려워서 입구에 보초를 세워두고 자기 혼자 이 아둘람 굴로 들어왔어요. 환한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에 들어온 사람은 안을 볼 수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환한 곳을 보는 사람은 훤히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안 보이다가 나중에는 다 보이는 것과 같아요.
4백명의 공동체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기침이라도 했다가는 큰 일 날입니다. 3천명의 정예군사가 굴 밖에 대기하고 있고, 왕이 성경에는 왕이 그 발을 가리려고 라고 표현 했지만, 사실 왕이 용변을 보려고 혼자 들어왔어요. 등을 돌리고 용변을 보고 있는 왕에게 아둘람 공동체의 측근이 뭐라 그런줄 아십니까?
24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행하라. 라고 내게 말씀 했으니까 왕이여, 죽여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고통을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피난생활 청산하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님 주신 기회입니다.
아직 아둘람 공동체는 신앙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막 가져다가 붙이는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혹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뜻을 자의 적으로 해석해서 내 멋대로 붙이는 사람들 없습니까?
저는 가끔씩 그런 사람들 만나는데 어떤 사람이 그럽니다. 목사님, 기도하고 응답받고 평안의교회 왔어요. 이런 사람들은 떠날 때도 거의 기도하고 응답받고 떠납니다. 아주 웃기는 사람들이예요. 다 제멋대로예요. 오는 것도 응답받고 오고, 가는 것도 응답받고 간답니다. 그런 사람들을 뭐라 그래요. 저의 집에 오면서 해태 봉봉쥬스를 사오면서 이거 어떻게 사오셨어요? 떠날 때 성령께서 해태 봉봉 사가라고 그랬대요. ‘난 롯데 좋아하는데?’ ‘아니예요. 목사님 해태 사가라고 그랬어요.’ 웃기는 사람들 가끔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아주 맹랑한 이야기 많이 합니다. 자기 식으로, 자기 좋은대로 하나님의 뜻을 가져다 붙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붙이고,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지금 이 아둘람 공동체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지금 등을 돌리고 있는 사울의 등에 한번에 내가 창으로 꽂을 테니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내게 유리하면 다입니까? 내게 유리하면 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다윗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칼로 용변을 보고 있던 사울왕, 그 왕의 옷자락이 얼마나 크고 넓어요. 뒤에 가서 옷자락 한 모퉁이를 베었습니다. 왕이 용변을 끝내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얼마나 순수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는지, 곧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세우신 종의 옷자락을 베는 죄를 범했습니다. 자기가 옷 자락을 벤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어요. 그리고는 자기 공동체와 함께 자기 굴 앞에 서서 건너편에 있는 왕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왕이여, 왕이여!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사울이 돌아보니까 자기가 찾던 다윗입니다. 손에 뭘 흔들고 있어요. 이게 왕의 옷 자락이 아닙니까? 자기 옷자락에서 한 모퉁이가 베어져 나간 것을 보면서 사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데, 나는 저를 죽이려고 찾는데, 그는 나를 살렸노라. 다윗아, 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했는지, 다시는 너를 찾지 않을께. 하면 감동해서 돌아갔는데, 곧 다시 찾아왔어요. 철저하게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것, 상황에 따라서 그 때 그 때 감격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바뀌면 또 사탄에게 붙잡힙니다.
그러한 위기 속에서 다윗이 공동체에서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어느 날 선지자 갓이 찾아왔습니다. 다윗이여, 이 요새를 떠나셔야 합니다. 떠나서 유대땅으로 들어가십시오. 유대땅은 어떤 땅입니까? 사울왕이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시퍼렇게 자기를 찾고 있는 땅입니다. 위험한 땅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은 다윗에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이 요새에 안주하지 말고, 유다땅으로 가십시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이 동굴이 아니라 유다땅입니다. 당신의 사명의 자리는 위험이 있으나 당신이 감당해야 할 자리는 유다땅입니다.
2005년에 하나님께서 우리 평안의교회 많은 일꾼들을 세우셨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만만한 일이 없습니다. 속장이 쉽습니까? 강사가 쉽습니까? 지역장이 쉽습니까? 성가대가 쉽습니까? 교사가 쉽습니까?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이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새에 있지말고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사명의 자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눈물이 있어도, 고통이 있어도 가라는 것입니다. 저와 사랑하는 평안의성도여러분, 2005년 사명의 자리로 사명의 땅으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담대함으로, 단 한가지를 의지하고 갑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라.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그래서 우리는 갑니다. 왜 가냐? 누가 묻거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기에 갑니다. 당신들에게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묻거든 하나님이 맡기셨기에 한다고 말하잖아요. 2005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기대에 부족함이 없는 충성된 사명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순종을 통해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고난의 자리지만, 때때로 어려움의 자리이지만, 주님 원하시고, 주님 명하시니, 유대땅으로, 사명의 자리로 가기 원합니다. 주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