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룻기 서론-
저 자 :사무엘 이라고 추정하나 뒷받침할 만한 정확한 근거는 없다.
기록연대: B.C4세기경이나 바벨론 포로 석방 직전으로 추측하기도 하나 다윗 의 치세 시대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배 경 :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무정부 시대였다. 평화가 없고 배 교와 반역과 도덕의 몰락으로 극도로 혼란으로 살던 시기였다. 그러나 룻기는 이러한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은혜를 갈구하는 겸손한 룻이라는 모압여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역사를 증거 한다.
중심사상 : 이 책은 그리스도의 族譜, 즉 그리스도의 선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메시야의 가족의 시작을 말해 주고 있다.
개 요 : 이 본문은 모압여인 룻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오게 되었으며,유다지파의 유력자인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족보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불신자가 어떻게 교회에 와서 새신자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본문분석:<1장>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이주한 룻. <하나님과 룻의 만남>
*중심구절-(16절 하)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의 되시니라”
1 ~ 5)모압 땅으로 이주한 엘리멜렉의 실패
6 ~14)귀향 길의 나오미를 붙좇는 룻
15~22)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
<2장>보아스의 은혜를 입은 룻. <보아스와 룻의 만남>
*중심구절-(13절)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1 -13)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
8 -16)보아스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룻
17-23)나오미의 격려를 받는 룻
3장>보아스에게서 안식처를 구하는 룻 <보아스의 옷자락과 룻의만남> *중심구절-(9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1 - 5)나오미의 권면
6 -13)보아스의 옷자락을 구하는 룻
14-18)보아스의 호의
<4장>보아스와 결혼하는 룻 (아브라함의 후손과 룻의 만남>
*중심구절-(10절)
“···모압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1 - 6)보아스의 결혼준비
7 -12)보아스의 결혼선언
13-17)보아스와 룻의 결혼
18-22)유다의 후손의 족보
주제:주를 향하여
1장)“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붙쫓는 것이다).
2장)“은혜를 입기 원하나이다”(은혜를 입는 것이다)
3장)“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품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4장)“나의 아내로 취하리라”(후사를 얻는 것이다).
*1장~3장)→ 성도의 자세
*4장)→ 그리스도의 응답
- 설교개요-
주 제 : 그리스도를 향하여
중심구절 : (4:15)
그리스도를 향하여 진취적으로 전진하는 신앙,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마 11:12)이라는 진리를 룻의 신앙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룻이라는 가련한 이방 여인은 적극적이고 점진적인 믿음의 삶을 통하여 그녀의 인생이 놀랍게 반전되는 경이로운 기쁨을 누리게 된다. 믿고 구하고 실행하는 자에게 축복의 문이 열린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를 향하여 적극적인 믿음과 행동하는 신뢰를 갖도록 한다. 룻기는 구약의 복음서이다. 그리스도론의 책이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무능,무감각,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신앙에 커다란 충격과 도전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은혜의 메시지이다.
<1장> 기쁨의 땅을 향하여 (하나님과의 만남)
1 - 5)하나님을 떠나서···
6 -14)하나님을 찾아가자.
15-22)하나님께 나가자.
<2장>은혜의 날개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1 -16)주 날개 아래에서 은혜 받자.
17-23)날이 갈수록 더 은혜 받자.
<3장>안식의 품을 향하여 (보혜사 성령님과의 만남)
1 -13)평화의 안식을 구하자.
14-18)맡김의 안식을 누리자.
<4장>영광의 왕국을 향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만남)
1 -12)새 생명을 주신 이를 바라보자.
13-22)새 인생으로 전환하자.
룻기강해(1)
성경>:룻기 1:1-5
주제>:주님을 향하여
제목>: 하나님을 떠나서···
명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을 나타내신다.
설교목적>:무사 안일주의에 정체된 성도들을 전진하는 신앙인 이 되도록 한다.
43년만에 조국의 품에 돌아온 64세의 조창호 소위가 대통령에게 귀환 신고를 하는 모습은 가히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6·25전쟁, 꽃다운 21세 때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가 64세가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그는 신문기자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집에 가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남한이 바로 내집입니다. 가다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52년 월남을 기도했다가 실패해 교화 노동형을 선고받아 13년간 교도소에서 생활했고, 64년 교도소에서 나와 지하 2백m에서 노동을 했습니다. 이후 줄곧 내가 묻힐 땅은 이북이 아니라 남한이라는 생각으로 2년전부터 압록강 주변 연변에 살면서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조창호 소위는 오로지 내 조국의 품안에 안겨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달리고 전진하고 또 전진하여 드디어 조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아니 그는 조국을 쟁취했습니다.
북한에는 아직도 5만명 이상 되는 국군 포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오직 달리고 달렸던 조창호 소위만 조국을 쟁취했습니다.
미래의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 갈 수 있지만 오늘의 천국은 쟁취해야 합니다.
오늘 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누릴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평화와 사랑과 안식의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창호 소위처럼, 오직 내 아버지의 나라에 안겨서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달리고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낮잠 자다가 얻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은 운이 좋아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권 당첨되듯이 가정에 평화가 있고, 교회가 부흥이 되고 사회가 안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수 대교가 무너지고 충주호 유람선이 불타고 여기 저기에서 대형 사건이 날마다 터지는 이유가 청와대에서 불상을 옮겨 놓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걷은 것뿐입니다. 무사 안일과 복지 부동, 좋은 게 좋은 거, 대충대충, 적당히, 불법을 행하고 편안하게 쉽게 쉽게··· 이렇게 뿌려 놓은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선진국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천국은 쟁취해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쟁취합시다. 교회 부흥을 쟁취합시다. 믿음 충만,성령 충만을 쟁취합시다.
그런데 슬픈 일은 근래에 우리 교회들의 풍조는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들 보다 쉽고 편안하다면 기꺼이 「주님을 등지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해 따라가고, 돈 바라기는 돈만 따라가는데, 성도는 주바라기는 주만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마11:12),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진취적인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도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달리고 달리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사회에 대한 무기력증의 원인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달리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도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성도들의 자화상이 B.C 1300년경 이스라엘 사사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Ⅰ.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입니다. 그는 그의 가족을 이끌고 고향 땅을 떠나 모압 땅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등지고 세상 나라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의 이 떠남은 단순한 이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모압은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이 혐오하는 나라입니다.
시 60:8)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모압은 내 구정물통이라”)
모압이라는 나라는 롯과 그 딸의 불륜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악하고 음란한 혈통입니다. 쾌락과 음란한 우상을 섬기는 소돔의 후예들입니다.
A.그가 하나님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1.그 시대의 풍조 때문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부터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통치가 있기 전까지 약 350년 기간을 사사 시대라고 합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는 왕이 아니라 사사였습니다.
士師는 전쟁이 나면 구원자가 되었고, 평소에는 백성들의 재판장이었고, 스승이요, 지도자였습니다.
이 士師의 통치 시대는 영적인 무정부 시대였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평화할 날이 없는 어두운 고통의 시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던 불순종의 시대였습니다.
사사기의 맨 마지막 구절은 사사 시대의 350년 동안의 시대 상황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삿 21: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 시대의 풍조는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상은 마귀가 준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의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입니까? 삶의 노선이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천대받아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기 노선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엘리멜렉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세상의 풍조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풍조는 어떻습니까? 오늘도 역시 「자기 뜻대로, 제 마음대로」삽니다. 모두들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혼자서 잘난 척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까? 남들이 하는 데로 살아야 편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까? 성경은 성경이고 나는 나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수 없는 이유는
1)마음에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 30: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2)마음에 하나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일 5: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3)마음에 겸손한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상 15:22)···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집과 같아서 시험 환난이 오면 무너지게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이렇게 시대의 풍조를 따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돌아올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시대 풍조를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까?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래도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주님 앞에 회개하며 도움을 청하면 성령께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2.그 땅에 흉년 때문입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엘리멜렉이 하나님의 땅을 떠난 두 번째 이유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흉년이 웬 일입니까? 그러나 사사 시대는 잦은 전쟁과 기근으로 흉년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시는 방법으로 흉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풍년의 때가 아니라 흉년의 때에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궁핍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다면 그 땅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하나님의 보호가 함께 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보호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보호가 중요합니까? 물질의 풍요를 더 쫓습니까, 믿음의 풍요를 더 쫓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거해야 할 장소가 있습니다. 떠나서는 안될 곳이 있습니다.
요 15:5)···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라도 세상에 풍족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에게 흉년이 와 있다면 정신차리십시오. 目下 당신은 지금 시험 중입니다. 흉년을 통과하게 하여 당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업에 자금이 매 말라 갑니까?
당신의 부부사이에 애정의 기근이 왔습니까?
당신의 건강에 흉년이 찾아왔습니까?
“주의하십시오.” 당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십니다.
3.잠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엘리멜렉은 잠깐 모압에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1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임시로, 잠깐만의 외출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아주 눌러 살고 영영히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란 처음엔 잠시,임시로 시작합니다. 마약중독자도 그렇게 시작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원리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에 살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2:11-13)
“이번 주일만 빼먹겠습니다.” “이번 십일조만 이해하십시오.“한번만 거짓말하겠습니다”. “잠깐만 봉사생할 쉬겠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만 신앙생활 쉬겠습니다.”
모든 하나님을 떠나는 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잠시 수영하러 낙동강에 들어갔는데 38년이 되도록 나오지 않는 내 친구처럼,”
임시 우거하러 모압에 갔다가 영영히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못한 엘리멜렉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잠시도 한 눈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쉬지 말고 주님을 향하여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B.하나님을 떠나게 된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1.입술뿐인 믿음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지어 준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입술은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의 삶은 어떠합니까? 이름과는 정반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살고 있지 않습니까?
입술뿐인 믿음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 29:13)“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여도 마음은 내게서 멀 도다”
마 7:21)“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입술의 기도만큼 삶에도 힘씁니까? 말씀에 ‘아멘’한 만큼 생활이 있습니까? 주님이라고 부르는 만큼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입술뿐인 믿음은 언제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2.이름뿐인 믿음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이름은 “기쁜,사랑스러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압에서의 삶은 이름과는 달리 괴로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죽하면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자기의 이름을 ‘나오미’로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라고(20절) 불러 달라고 했겠습니까?
절에 이름만 올려놓고 가끔 시주 돈이나 갖다 바친 사람같이 신앙생활을 하시지 않습니까?
집사란 무엇입니까? 하인입니다. 여자는 종년이요, 남자는 종놈입니다.
성도란 무엇입니까? 구별된 깨끗한 하나님의 소유된 무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입니다. 분명한 자기 인생의 노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름만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有名無實하다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 중에 구실 주의 인생관이 있습니다. 다 제각기 이름 값을 하면 이 나라는 부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자기 구실은 하지 못한 채 남만 원망하고 있습니다.
10월 27일 대만에서도 13명의 사망자를 낸 가라오케 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대주 대만 시장은 이 화재 사건의 책임자로 자신을 처벌해 줄 것을 차청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외토픽으로 전 세계로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서울 시장이 책임을 졌습니까? 애꿎은 그 밑의 부하 직원들만 쇠고랑을 찼습니다.
자기 구실을 해야 모두 잘 살게 되는데 말입니다····
성도 님들이여, 집사님들이여, 자기 이름 구실을 잘 감당합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름뿐인 사람은 언제나 세상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Ⅱ.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 일
A.남편이 죽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만 믿고 고향을 버리고 논밭전지와 이웃과 친지를 뒤로하고 모압 땅까지 따라왔는데, 더 잘 살 수 있다는 남편을 하나님처럼 믿고 따라왔는데 그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시 127: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 함이 허사로다
아내들이여, 하나님 대신 남편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B.자식도 죽었습니다.
3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남편이 죽고 난뒤, 그래도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대개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들은 어려서는 부모님을 믿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믿고, 사별해서는 자식을 믿고 산다고 합니다.
나오미도 두 아들을 하나님처럼 믿고 살았습니다. 성도들이여 자식을 믿지 마십시오. 자식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두 아들을 모압의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습니다.
큰 아들 「말론」은 「룻」과, 작은 아들 「기룐」은 「오르바」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이제 곧 손자를 안을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아들마저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모압에 와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어버린 나오미,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큰 아들의 이름은 「말론」으로 “보잘 것 없는, 병”
작은 아들은 「기룐」으로 “소멸하는,폐병”
이 두 아들들이 얼마나 날 때부터 병약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큰 아들을 “병”이라고 불렀으며 작은 아들을 “폐병”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어쩌면 두 아들의 건강을 위하여 풍족한 땅 모압으로 건너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병약한 두 아들마저 자손도 남기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모압에 온 엘리멜렉의 가족은 10년만에 나오미 만 덩그라니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시리아역 성경은 5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얻어서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들의 날수가 단축되었더라」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 엘리멜렉의 말로입니다.
신약의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말로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밖에는 진정한 생명의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상의 어디를 가도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Ⅲ.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간섭하십니다. 때때로 괴롭히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당신을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매를 드십시오. 간섭을 하십시오. 벌을 주십시오. 괴롭히십시오. 그래야 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던 일이 잘 안됩니까?
일마다 꼬입니까?
괴로운 일이 자꾸 생깁니까?
나오미처럼 하나님처럼 믿었던 사람이 떠났습니까? 애지중지하던 자식이 떠났습니까? 이럴 때일 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위치를 확인해 보십시오. 당신의 생활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어려울 때일수록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키질의 원리를 생각하십시오.
키질을 할 수록 점점 안으로 다가서는 것은 알곡입니다. 껍질과 겨는 점점 밖으로 밀려 나갑니다. 환난과 시험은 참된 신자를 가려내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알고 보니 그것이 축복이었습니다.
기독교 인기 작가 김성일씨의 간증에 의하면
그는 한 때 패기 있는 문단의 총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우 그룹의 이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사상을 신봉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에게 나오미의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교통사고로 건강이 깨져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큰 수술로 죽어 갈 때 더 깨졌습니다.
부인이 위암으로 투병할 때 완전히 깨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밤중에 교회에 나가 차디찬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복했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신호에 응답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는 수많은 신앙의 소설을 써내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기독교의 인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혐오하는 땅에서 풍성히 잘 사는 것보다 그 곳에서 다 죽었버린 일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나오미의 비참한 실패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품속을 향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실패했습니까? 하나님의 그래도 당신을 보호하고 영원히 존재하고 계십니다.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결언:
「주님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어떠한 고난과 시험이 닥쳐도 천성을 향하는 성도의 길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64세의 노병 조창호 소위처럼 43년동안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조국의 품에 안기어 대통령께 눈물의 거수 경례를 붙이며 귀환 신고를 하는 저, 감격적인 장면을 보십시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달리고 달린 역전의 신앙용사에게 “잘하였구나 눈물을 씻겨주시면 생명의 면류관을 씌여 주실 것입니다.
낙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실패한 엘리멜렉의 집안이 어떻게 주님을 향하여 다시 일어섰으며 전진하는가?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을 향하여 달려갑시다.
룻기강해(2)
성경>:룻기 1:6-14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하나님을 찾아가자
명제>:하나님을 찾아는 사람들의 신앙 관을 통하여 인도하신다.
설교목적>:올바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로 세워 진취적인 신자가 되게 한다.
옛날에는 「문맹」이 문제였습니다. 요즈음은 「컴맹」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성맹」입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막 살아 갑니다.
하나님은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제사장 나라가 되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세아 4:6)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해줍니다.
무식한 사람은 용감합니다. 미련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식한 사람은 어쩌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미련하게 사는지 참 용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바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간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늙고 과부 나오미와 연약한 과부인 두 며느리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들려 온 소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땅, 이스라엘에 풍년이 들어 양식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모압이 살기 좋다하여 찾아왔더니 결과는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시 풍년이 들어 풍성해졌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의 계신 곳에 영원한 풍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떠난 자들이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자부인 룻과 오르바를 대동하고 이스라엘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나오미」 「오르바」 「룻」
이들은 모두 함께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서로 달랐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형태를 보면 가지 각색입니다. 부지런한 사람, 땀흘리는 사람, 그러나 잠자는 사람,마지 못해 끌려가는 사람, 쉬는 사람, 아예 멀리 도망가 버린 사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따라 신앙생활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Ⅰ.나오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오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신앙은 율법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법을 어기면 죽어야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합니다. 율법은 늘 죄인을 고발합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늘 두려운 하나님만을 섬기게 합니다.
1.율법적인 신앙은 죄의 짐에 시달립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10년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 때에 그는 늘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지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는 고향에 돌아가 반기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괴로운 죄책감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늘 과거의 죄에 대하여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입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하나님은 과거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회개한 사람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롭게 된 성도들의 과거를 비난하는 사람도 율법적인 사람입니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을 고소하는 바리새인들은 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율법적인 신앙은 징벌에 시달립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10년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 때에 그는 늘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지냈습니다. 이러다가 무서운 하나님께 매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연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남편을 잃고 남은 두 아들과 가산을 다 잃었습니다.
14절에서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
뒷뜰안에서 새벽마다 정한 수 떠놓고 귀신에게 비는 할머니들의 신앙, 옥황상제, 하늘님, 용왕님을 섬기는 할머니들이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두려움으로 섬깁니까? 제사 드릴 때도 부정탄다고 얼마나 조심합니까? 이사도 함부로 못하고, 못도 마음대로 박지 못하고…
그들의 신은 두렵기 만한 존재입니다. 매맞을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임당수 깊은 바닷물에 제물로 팔려서 던져진 이유는 용왕님께 정기적으로 제물을 상납하지 않으면 진노하셔서 바다에 풍랑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주일 성수를 꼭하고 십일조, 새벽기도, 하루에 성경 5장씩 읽기를 꼭하지요.”
대단히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더니 「매맞을까봐」 한다는 것입니다.
매맞을 까봐,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드리고, 봉사하는 신앙은 매 안 맞으면 하다가 중단하게 됩니다.
열심을 내다가 중단하는 분들은 대개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인격자이신 하나님을 의붓아버지로 삼지 마십시오. 엄하시나 자비로운 친아버지입니다. 여러분과 사랑의 교제를 원하십니다.
매 맞을까봐 신앙생활하시는 분, 겉보기에 신앙이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이 누구 신지도 모르는 초보적 유아 기적인 신앙 상태인 것입니다.
3.율법적인 신앙은 의무감에 시달립니다.
이런 분들의 신앙 생활은 무거운 짐이요, 힘든 고역입니다. 나오미의 이름의 의미는 「희락」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의 삶은 희락은 커녕 괴로움과 고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신앙의 초청을 하셨지요.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 기독교 신앙은 쉼의 신앙, 즐거운 신앙인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영적인 결혼 생활입니다. 오늘 당신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드립니까? 아니면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입니까? 이런 분들은 될 수 있는 데로 책임을 맞지 않고 구경하는 신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4.율법적인 신앙은 무관심에 시달립니다.
나오미는 두 자부 룻과 오르바를 함께 데리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중도에서 나오미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8절)
왜 나오미는 하나님을 향하여 떠나는 복된 길에 자부들의 동행을 만류했을까요?
유대인들은 율법적인 하나님만을 고집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인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혀 전도할 필요가 없지요. 영혼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정죄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됩니다.
나오미도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인을 멀리하라고 했기에 나오미는 모압에서 얻은 두 며느리들을 이스라엘로 데려가는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스 10:10)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 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오랜 세월 가진 고생함께 하며 정든 착한 며느리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진노의 하나님이 율법으로 이방인을 금하셨는데 두 자부들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가면 또 어떤 벌을 받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인을 아내로 삼거나 며느리고 삼는 일을 엄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애써 며느리들을 떼놓고 가려는 것입니다.
당신의 곁에 있는,이방인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커다란 죄입니다. 혹시 마음 속으로 “저런 사람은 가망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그가 복음을 거절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고 말도 붙여 보지 않치는 않습니까? 우리들 스스로 선을 긋고 이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행위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그리스도인의 좌우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적으로 경우 바르고 예의 있게 양심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그들의 영혼을 얻기 위함입니다.
나오미처럼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2.오르바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어머니 나오 미는 두 자부들에게 자기를 떠나 달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룻 1:11)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계대 결혼의 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 지파별로 분배한 땅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업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이 기업을 상속받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으면 이 상속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형이 아들이 없이 죽으며 그 동생이 형수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하여 형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계대 결혼」이라고 합니다
신 25:5)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돌아가라는 이유 중에 두 번째 이유입니다. (12-13절)
나는 늙었으니 아들을 얻을 수도 없고 설사 아들을 얻었다 해도 그 아이가 언제 자라서 너희의 기업을 이을 아들을 낳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와 동행해 보았자 땅 한평없이 알거지로 고생만 할 테니 일찍이 마음 고쳐먹고 모압에 남아 새 남편 얻어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오르바는 기꺼이 이별의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다가 중도에 포기한 사람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입니다.
오르바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율법의 하나님」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경외 심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좇으면 재물의 복을 받고 만사가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바아니고 오직 내게 복만 준다면 따르겠다는 마음입니다.
도깨비 신앙입니다. 빌어줄테니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오라 뚝딱」 하는 식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은 각기 신앙의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한 분, 장사가 잘되기를 원하시는 분, 자녀들이 복되기를 원하시는 분,수양을 위한 분, 그러나 이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면 실망합니다.
교회 출석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무율법적인 신앙은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현대인에게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신앙 형태입니다. 십계명은 율법이니 예수 믿는 성도는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홀히 여기는 행위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율법은 필요합니다. 다만 그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인 10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인격의 성화를 이루어 가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훈과 책망이 없이 자기 멋대로 자란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한 주일 성수, 온전한 십일조, 주초의 금지, 세속적인 문화를 멀리하는 것은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당연히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부모의 매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란 아이는 부모를 소홀히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입니다. 당신을 간섭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무율법적인 신앙은 재물을 섬깁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의 기본 심리는 자기 유익입니다. 특히 물질의 유익입니다.
흔히 교회는 돈이 없으면 다니지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서커스에서 나온 청년이야기)
예수님도 이점을 경고하셨습니다.
마 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재물을 「맘몬」이란 말로서 신으로 표현했습니다. 무율법주의자들에겐 돈이란 하나님보다 큰 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신의 충실한 신도들입니다. 돈이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고 죽으라 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을 돈 시편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돈을 부립시다!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권세를 가집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최고로 섬길 때 그런 권세가 옵니다. (십일조는 돈을 부리는 권세를 얻습니다.)
오르바의 나오미를 쫓던 목적은 이스라엘 엘리멜렉 가문의 재산이었습니다.
3.무율법적인 신앙은 중간에 탈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애정도 경외 심도 없고 오직 자기 유익만을 구하던 오르바는 기꺼이 나오미와 함께 가던 길을 돌아섰습니다.
룻 1: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오르바는 여전히 섬기던 모압의 우상 신에게도 돌아갔습니다(15).
결코 뒤 돌아서지 마십시오. 중간에 돌아선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히 10:38)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3.룻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오르바는 중간에 탈락해 버렸으나 그러나 룻은 달랐습니다.
룻 1: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붙좇다→「Cling」:붙잡고 늘어지다,들러붙다,고수하다,집착하다(재산에 대하여, 엄마에 대하여)
룻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사랑의 하나님, 복음의 하나님입니다. 치셨으나 싸매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룻의 신앙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룻기는 구약의 복음서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기독론」입니다.
룻은 율법적인 신앙인인 시어머니 나오미을 붙좇으므로 말미암아 복음의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운 하나님을 알았으면 사랑의 하나님도 알아야 합니다.
1.복음의 신앙은 죄를 용서받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하찮은 이방 며느리와 돌아오는 죄인 된 나오미의 마음은 참으로 처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나오미를 룻은 붙좇았습니다. 가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은 용서받습니다.
「회개」란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180도 바꾸어 하나님의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해가 다 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가던 길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룻의 길이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등진 엘리멜렉의 길이었습니까?
방향을 바꾸십시오. 삶의 방향을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180도로 바꾸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때, 붙좇은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망해버린 「엘리멜렉」의 가문이 다시 일으키십니다. 룻을 통하여 엘리멜렉의 끊어진 가문을 살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문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죄인 된 집안이 의인된 집안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자에게 용서하시고 의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롬 3:28-29)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29」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공로 과거의 모든 죄가 용서받음을 믿고 있습니까?
2.복음의 신앙은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룻은 모압에서 시아버지를 여의고 남편을 잃고 홀로된 시어미를 모시고 슬픔과 고통의 세월을 살았으나 하나님의 품에 안겨 그리스도의 조상인 오벳을 잉태하므로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오미는 상실했던 기업을 이을 아들이 태어났다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룻 4: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 찌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말하노니 기뻐하라”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하늘의 기업을 받을 수 있음에 기뻐합니까? 감격의 예수님, 구원의 기쁨, 감격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분들은 세상의 죄악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신앙인들이 교회에 대한 예배생활, 헌신,봉사,전도에 대하여 적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3.복음의 신앙은 존귀와 영광을 받습니다.
룻은 멸시받던 모압의 여인이었지만 나오미를 붙좇아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갔고 엄청난 축복, 다윗왕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마 1:5). 영광스러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더라고 하나님이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 주십니다.
오늘의 고난이 장차 나타 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인정하십니까?
4.복음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합니다.
나오미는 두려움과 진노의 하나님을 섬긴 신자라면 룻은 은혜와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긴 신자입니다. 나오미는 진노와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룻을 사랑과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오미를 붙좇아 달려간 것처럼 하나님께 적극적인 사랑의 헌신 자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도 룻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차적으로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신앙생활은 사랑하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지난 5월부터 시작하여 2주 전까지 마쳤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1:3에 「신령한 복으로 시작하여 6:24의 「은혜가 있을 지어다」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신령한 복으로 시작하여 충만한 은혜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24절을 마음 판에 새겨 놓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변덕스러운 사랑은 피곤합니다. 예수님도 피곤하시고 목사도 피곤하고 옆사람도 피곤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결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올바른 신앙 인의 길을 걷게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우리는 나오미와 오르바와 룻을 통하여 율법적인 신앙과 무율법적인 신앙과 복음적인 신앙의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공포의 하나님으로 대접하면 당신은 날마다 불안과 염려로 살아갈 것입니다.
얼간이 하나님으로 대접하면 당신은 날마다 하나님을 조롱하여 무서운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러나 엄위하신 하나님으로 최고로 경외하면서 경배하며 사랑으로 대접할 때,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하나님을 붙잡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힘찬 발걸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기강해(3)
성경>:룻기 1:15-22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하나님께 나가자
명제>:결심으로 하나님께 나온 자와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나온 자는 쉼을 얻는다.
설교목적>:하나님께 나온 자는 어떤 유익을 얻는가를 알게 하여 진취적인 신앙인이 되도록 한다.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쉼을 얻습니다. 휴식을 얻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마음의 쉼,영혼의 안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하여 10년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는 함께 과부된 첫째 자부 룻과 함께 이스라엘 베들레헴 땅,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나오고 있으며, 하나님은 어떤 위로와 휴식을 주셨는가를 살펴봄으로서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휴식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굳게 결심하므로 나오고 있습니다(15-18).
모압 여인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간 사람입니다(마 1:5). 이방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그것도 그리스도의 조상의 자리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는 낮잠 자다가, 운 좋게 복권 당첨되듯이 얻은 영예가 아닙니다. 천국의 문은 아무렇게나 굴러가다가 들어가는 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문은 저절로 열리는 문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굳세게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얻으려고 결심하여 애쓰고 땀흘리는 자에게 열리는 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습니다. 인격의 세 가지 요소는 知.情.意입니다. 알고, 느끼고,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의지는 마음의 결심입니다. 알고 느낀 것에 대하여 결심하므로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은 모두 행동하는 믿음 가들입니다.
마 7:20)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오늘 우리의 육체와 현실에 필요한 것을 더 얻어내기 위하여 땀흘려 노력하며 실천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축복의 문은 두드릴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도 굳센 결심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를 듣고 고개를 끄떡이는 분은 많으나 땀흘려 그 진리에 결심하여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실천하기로 결심하는 자의 것입니다.
마 11:12)…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을 얻으려고 결심하고 쟁취하는 자에게 천국은 오늘도 얻어지는 것입니다.
룻은 굳게 결심하므로 천국의 평화와 안식을 얻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1.함께 동행하는 결심을 했습니다(16).
룻은 시어머니와 동행하려고 결심했습니다.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4).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16)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께로 나가는 사람을 잘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이 좋아지려면 믿음이 좋은 사람을 붙잡고 동행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이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인생의 표본을 삼고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세상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입니까?
나오미는 인간적인 배려와 율법적인 두려움으로 룻을 두고 혼자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룻은 결심했습니다.
룻 1: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제가 목회의 길을 가려고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부부를 맺어 주신 목사님께서는 목회의 길을 만류했습니다. 기왕에 입학했으니 졸업하여 훌륭한 장로님이 되라는 것입니다. 목회자인 당신의 길을 따라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희를 사랑하시는 인간적인 배려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붙좇았습니다. “목사님이 가시는 곳에 저도 가겠습니다.” 그 목회자의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결심했기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저의 신학 동창 중에는 아직도 목회의 길에 결심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에게 다가오는 첫 경험은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방해입니다. 예수 믿는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쉽고 편안한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구와 동행하겠습니까? 세상의 친구들입니까? 믿음의 친구들입니까?
결심하십시오. “주님 가신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 “주의 종들이 가신 길, 목사님이 가시는 길로 나도 가겠습니다.” “집사님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라고,
마 7: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8절을 보십시오.
결심은 논쟁을 불식시킵니다. 결심은 만류를 물리칩니다. 결심은 인생을 바꿉니다.
2.함께 살고 죽는 결심을 했습니다(16-17).
사람이 죽기로 결심하면 무서울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17절을 보십시오).
룻은 독한 여자입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하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독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파송하실 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마 10:16)
고 하셨습니다.
비둘기와 뱀은 둘다 적에게 민감합니다. 결단력이 강합니다. 적이 나타나면 비둘기는 도망가는데 재빠르고, 뱀은 공격하는데 재빠릅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잡혀 먹습니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 생명의 길은 우물쭈물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가다가 쉬는 길도 아니요, 힘들다고 뒤돌아 가는 길도 아닙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결심하고 실천하므로 즉 결단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결단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결단하셨습니다. 사탄은 십자가를 지지 말도록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마 26:39)…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성경에 나타나는 신앙 가들은 모두 대단한 결단 가들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빌 1:20-21)…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우유부단한 사람, 맺고 끊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할 때, 그들의 결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16절에 룻의 결심을 다시 보십시오.
부정적인 것은 시어머니의 청이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주일 성수,제사,십일조,십계명 지키기 등등」, 무엇하나 우리의 무서운 결단력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3.함께 믿고 섬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16).
성수 대교가 무너진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성수 대교를 만든 사람과 관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분들의 변명은 대개 “바쁘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없다는 핑계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에 불충하는 분들의 변명은 구구하나 사실은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결심은 마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룻은 마음을 세웠습니다.
룻 1:16)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참으로 위대한 결단입니다.
위대한 결단이 있는 곳에 위대한 인생이 태어납니다.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그는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마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와 같이 자기 결심을 말했습니다.
수 24: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무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데 사람들이 많이 둘러싸여 만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결심했습니다.
눅 19:3-4)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4」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어라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마 15:26)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숙녀 전도사님을 보십시오.
이분은 감리교여선교회 전국대회에서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분으로 한국 교회의 기둥 같은 큰 일꾼인 김선도,김홍도,김국도,김건도 네명의 목사님의 어머님이 십니다.
평안도 선천에서 출생하신 이분은 일제시대와 6.25사변이라는 민족의 고난의 틈바구니에서 가난과 남편의 박해 속에서 6남매를 눈물의 기도와 무서운 신앙의 결단으로 키워 가며 교회에서 전도사로 교사로 봉사하며 주님을 섬기신 분입니다.
눈물의 기도와 연단의 세월 20년만에 그렇게 핍박하던 남편이 목회자로 돌아섰고, 40년만에 4명의 아들이 모두 하나님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차돌같이 단단한 그분의 신앙을 자식들이 물려받아 차돌 같은 목회자가 되었고, 차돌 같은 목회자를 통하여 차돌 같은 성도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전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를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차돌같이 독하게 믿는 사람, 굳센 결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후손들이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충,적당히, 얼렁뚱땅으로 예수 믿으면 자신도 피곤하고, 예수님도 피곤하고, 교회도 피곤해집니다. 물렁물렁한 쇠로 무엇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이를 악물고 독한 결심으로 나옵시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룻은 결심으로 하나님께 나오므로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간 축복된 성도였습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의 복을 얻었습니다.
Ⅱ.환난 가운데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이방 며느리 룻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10년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온 성읍에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녀가 10년 전 베들레헴을 떠날 때 만해도 그 이름만큼이나 기쁨과 행복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웠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지 10년만에 다시 나타난 나오미는 예전의 아름답고 도도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고 늙고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아니 당신이 10년 전에 우리를 떠났던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아니요?”
(룻 1:19)…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는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나오미는 베들레헴 고향 사람들의 환영하는 것에 자신이 추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부끄러운 것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룻 1: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1)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2)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그러나 다행히 나오미는 그 모진 환난 가운데서 부끄럽지만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고난과 풍파로 늘 괴로움을 당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나를 이토록 치실까? 나오미처럼 「하나님에 대한 공포 의식」에 싸인 분이 게십니까?
끝이 없는 고통과 아픔의 세월 속에 하나님의 존재조차 의심할 정도로 신앙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남들은 모두 평탄한 길을 가는데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시련을 주시는가 이해할 수 없어 의심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두려움과 의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나갑시다. 나오미처럼 끝까지 환난 중에도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나옵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환난 가운데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20).
1.쓴 환난은 인생의 약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전능 자가 자기를 심히 괴롭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모압 생활 10년만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가산을 다 잃었습니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마라」→(괴로움,쓰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 15장으로 돌아가 「마라」의 샘을 생각해 봅시다.
출 15: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1)마라라 하였더라「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진입하였습니다. 수르광야에서 3일 길을 걸었지만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중에 반갑게 만난 샘의 물을 마셨더니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샘물을 「마라」라고 칭하며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나무 가지를 물 속에 넣게 하였고 그 나무를 넣자 물이 달아져서 모든 백성들이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쓴 물로 인도하시고 나무가지고 물을 달게 한 사건을 통하여 중요한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셨습니다.
출 15:25-26)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쌔「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쓴 물을 단물로 치료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쓴 고난이 닥칠 때 해결 방법은 하나님과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꿀 송이 먹는 것 같이 살게 되면 하나님을 영영히 잊게 됩니다. 인생의 고초가 심할 때야말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쓴 물이 달아질 것입니다. 아이가 병이 들면 엄마는 약을 싫어해도 강제로 먹이 우는 것은 병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오미의 모압생활이 쓰디 쓴 괴로움의 고초가 있었기에 전능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 55:6-7)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7」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2.치신 것은 다시 싸매 주시기 위함입니다.
나오미는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지경이 되도록 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성도들을 정말 치실 까요?
그러면 물어 봅시다. 여러분은 자녀를 매로 쳐본 일이 있습니까? 왜 칩니까? 죽으라고 미워서 칩니까? 잘되라고 치는 것이지요.
잠 13:24)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히브리서 12:5-6절을 보시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 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남의 징계에 대한 잘못 된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매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매를 노엽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매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히 12: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 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돌아온 나오미는 이제 하나님의 다시 싸매 주심으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저의 종아리를 치고 제가 잘 때에 종아리에 약을 발라 주며 우셨던 할머니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그 종아리의 회초리가 없었던들 오늘의 제가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돌아오십시오. 몸만 오지 마시고 마음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싸매 주십니다.
2.비웠으나 채워 주십니다(21).
1.비어 돌아오게 하셨으나 풍성히 채워 주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들이 빈털터리로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 풍성한 수확의 때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빈 그릇을 다시 채워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풍성함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빈 그릇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풍성히 채워 주시기 원하십니다.
창 27: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풍성히 채움을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고 바로 놓은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마음의 그릇이 깨끗하고 바로 놓이기까지 비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머니가 비어 갑니까? 가계부에 적자가 납니까?
마음의 그릇을 준비합시다. 깨끗하게 바르게 준비할 때에 비로소 채워 주십니다.
2.하늘의 축복을 채워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먹는 육신의 양식보다 더 고귀하고 기쁜 것이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를 용서받는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죽었던 엘리멜렉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시는 기쁨을 채워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의 구원자이신 구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룻 4:17)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마 1: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4」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결언:
당신 이스라엘의 시대 풍조는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환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나오미의 가정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하여 펼쳐지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나오미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평강을 찾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강력한 문민정부 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극도로 혼탁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곳곳에 대형 사건이요, 흉악범죄 사건이요, 어지러운 일들 투성입니다. 이것이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의 책임입니까?
우리 그리스도 인의 책임입니다. 어쩌면 우리 교회가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와 같이 성도들의 삶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에 발생된 결과가 아닙니까? 영적인 무정부 시대를 청산합시다. 그래야 갖가지 환난을 잠재우고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룻처럼 새로운 결심으로 하나님께 나오며
나오미처럼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옵시다.
겸손하고 진정한 태도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달려나옵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이 사회에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쉼과 휴식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룻기강해(4)
성경>:룻기 2:1-16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주 날개 아래에서 은혜받자
명제>: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준비된 마음에 채워진다.
설교목적>: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경만하지 않고 체험하는 신앙인이 되게한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편 65:4)
한번 말해 봅시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선 축복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궁색하게 살아간다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 의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제일 부자 나라인데 일본 사람들은 궁색하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는 부강한데 국민들은 찌들어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모순입니다.
그 말도 안되는 모순이 우리에게 있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닙니까?
나오미와 룻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풍년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모두들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여 넉넉함을 누리는데 그들은 아직도 한끼의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함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 만하고 자신은 갈급해 하는 모순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지 맙시다.
배가 고프면 극장엘 갑니까? 식당엘 갑니까? 식당에 가서 이 사람 구경, 저 사람 구경하고 나면 배가 불러집니까?
요즈음엔 극장도 구경만 하는 스타일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마당극」은 구경하다가 신명이 나면 같이 나와 춤을 추고 어울립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하고 합니다.
구경만 하는 신앙 생활은 얼마 안가 싫증을 내고 맙니다.
성가대 구경, 대표 기도 구경, 설교 구경, 아!···, 싫증하고 피곤합니다.
「복받은 여자 룻」은 구경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곧 참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 사람들이 누리는 풍년의 축복을 함께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적극적인 초신자, 「나중 되었으나 먼저 된」 성도 룻의 신앙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서 여러분들에게도 구경만 하던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챙겨 돌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Ⅰ.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했습니다(1-4).
인생은 드라마입니다.하나님이 연출자라면 사람은 배우입니다. 김경태 장로님의 간증집 「웃으며 살자구요」에 보면 웃지 못할 웃기는 얘기가 있습니다.
신인 탤런트의 첫 번째 출연, 의사 역할을 맡겼다.
대본에 의하면 주인공이 병원에서 운명하는 장면에 의사가 들어와서 눈을 까뒤집어 본후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한 후 나가는 단순한 역할이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운명하셨습니다”를 외웠다. 드디어 촬영하는 시간,병실에 들어온 후
다짜고짜 하는 말이 “운명하셨습니다”. “캇” 연출자는 노발대발하며 중지시켰다. 대본
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대본에 의하면 「눈을 까뒤집어 본후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하라」 고 되어 있었다.
신인 탤런트는 바짝 긴장을 하였다. 첫 번째 NG를 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 으리라 하리라 다짐하였다. 다시 연출자의 “큐”신호가 떨어졌다.
의사 역할의 신인 탤런트는 정중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눈을 까뒤집어 본 후, 엄숙하게 말했다. “운명하셨습니다”
순간 촬영장 세트 내는 요절복통 사람들이 배를 움켜잡고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족들도 데굴데굴, 심지어 죽었던 시체도 난데없는 폭소에 눈을 번쩍 뜨더니 침대에서 뛰쳐나와 데굴데굴 굴렀다.
이 신인 탤런트는 천연덕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찬찬히 유족들을 둘러
본후 자기 눈을 까뒤집어 본후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에 남을 NG를 낸 것이었다.
한참을 따라 웃다가 나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하나님이 연출자였다면 나는 배우였다. 아, 나는 하나님의 대본과 관계없이 엉뚱한 짓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연출자이며 내 인생의 연출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본에 없는 엉뚱한 짓을 하여 웃지 못할 NG를 내고 있습니다. 인생의 NG는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하심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경륜」대로 전개되기를 원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인생의 NG를 낼 때는 ‘캇’이라고 멈추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입니다. 여러분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를 믿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는 첫째 비결입니다.
A.룻은 하나님의 인도하신 손길을 의지했습니다(1-2).
모압 여인 룻은 낯설은 타국에 왔습니다. 친정도 친구도 조국도 버리고 시어머니 따라 이스라엘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룻은 스스로 시어머니를 따라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따라 이 곳에 온 것을 믿었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땅이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이 인도하셨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하여 반드시 일터를 주시리라 확신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당신이 궁핍해지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합니까? 내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을 고백합니까?
<잠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분은 아무리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B.룻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필연이었습니다(3-4).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추수하는 밭에서 떨어지는 이삭을 줍도록 허용하는 것이 큰 미덕으로 삼고 있었습니다(신 24:19).
룻은 처음 전혀 안면이 없는 베들레헴 사람들의 밭을 찾아갔습니다. 이삭을 줍도록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우연히’이른 밭이 바로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습니다.
‘우연히’ 룻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필연이었습니다.
룻의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우연」이라는 말은 기독인의 사전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저절로’, ‘어쩌다가’, ‘재수 없어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인간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입니다.
과학에서 신봉하는 ‘진화론’은 원숭이가 우연히 사람으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필연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지어졌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중 유력한 자인 보아스」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나타난 구세주였습니다. 보아스의 혈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룻에게 준비된 보아스는 성도에게 준비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아스를 만나 인생의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룻이었습니다. 싯체말로 「팔자를 고쳤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팔자가 뒤집어져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포로된 자에게 자유가, 눈먼 자가 광명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준비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풍성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구경만 하시렵니까? 모시어 드리십시오. 기뻐하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하여」 룻처럼 달려갑시다.
Ⅱ.하나님이 주신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5-11).
하나님의 주권 적인 섭리는 인간의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축복은 사람의 구체적인 노력으로 얻게 됩니다.
A.룻은 부지런히 일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습니다(5-9).
룻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보아스의 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
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밭에 들렸다가 이삭을 줍는 생소한 여인 룻을 발견하고 사환에게 물었습니다.
그 사환의 룻에 대한 소개의 말을 보십시오.(7절)
그녀의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이삭을 주웠습니다.
부지런한 모압의 여인을 보고 보아스는 마음에서 호의가 우러나왔습니다.
이제부터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짓궂은 남자 일군들로부터 보호받도록 명하였습니다. 목이 마르면 일군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시도록 배려하였습니다(8-9).
예수 그리스도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어떤 축복도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게으른 자는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는 사람입니다.
시 128: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기쁨입니다.
둘째, 예쁨입니다.
세째, 바쁨(부지런함)입니다.
1.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발로 차는 행위입니다.
잠 6:9-11)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10」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11」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영적인 사람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게으른 사람은 영적인 일(기도 생활, 봉사 생활, 전도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부지런하나 육체로 사는 사람은 게을러집니다.
2.게으름은 악한 행위입니다.
마 25:26)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늦는 행위는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게으른 사람은 아무런 은혜도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속수무책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더 먹게 됩니다.
룻은 부지런함으로 보아스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부지런히 예수 믿고,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전도하고, 봉사하고, 자기의 일을 하는 성도에게 풍성하신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B.그의 성실함이 소문났습니다(10-11)
룻은 이 예상치 못한 보아스의 호의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아스가 룻을 처음 대면하였지만 그녀의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문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룻의 성실한 효부였습니다. 며느리로서 책임을 성실히 행한 일이 어느덧 소문이 나서 보아스의 귀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당신에 대한 평판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알고 있는 당신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것일까요?
성실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입니다.
열심히 자기 맡은 일에 부지런히 성실히 땀흘려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임할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게으르고 불성실한 태도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대본에 없는 엉뚱한 짓을 하고 축복해 다라고 하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Ⅲ.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12-16).
우는 아이가 젖을 더 먹습니다. 보채는 아이에게 엄마의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습니다.
축복을 구경만 하지 않으려면 축복을 탐내야 합니다. 야곱같이 탐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베풀어주시는 축복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풍성한 은혜를 누립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목마름에 괴로워할 줄 압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성도입니다.
A.룻은 하나님의 「그 날개 아래」로 보호받으러 왔습니다(12)
보아스의 보호 아래에 살기 원하는 룻을 향하여 보아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하였습니다.(12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하십시오. 교회 생활에 충실하십시오. 교회가 멀어지면 예수님이 멀어지고,예수님이 멀어지면 하나님의 축복의 날개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에게 이렇게 탄식하며 우셨습니다.
마 23: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교회의 목사, 집사, 성도들이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암탉이라면 성도는 그의 병아리입니다.
시 17:8)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룻은 한 마리의 병아리가 되어 하나님의 품을 찾아왔습니다. 보아스의 축복을 보십시오.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로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가까이 교제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며 살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지 않고 누리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은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시 36:7)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 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B.룻은 보아스의 은혜를 입기를 원했습니다(13-16).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주는 호의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은혜가 베풀어져야 축복이 옵니다.
비가와야 땅에 곡식이 풍성해지는 원리입니다.
은혜가 베풀어져야 가정에 행복이 오고, 부부간에 사랑이 오고,육체에 건강이 오고, 마음에 기쁨이 오고, 사업에 일감이 오고, 교회에 부흥이 옵니다.
‘축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하기 전에 「은혜를 내리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1.겸손하게 은혜를 입습니다(13).
겸손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입니다.(10절)
겸손으로 은혜를 구하는 룻은 자신을 보아스의 시녀로 낮추었습니다.(13절)
하나님의 은혜는 강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쭈씨옵쏘써”
하나님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벧전 5: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겸손한 것과 아첨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첨하는 사람 곁에 가면 구역질이 나지만, 겸손한 사람 곁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는 사람입니다.
2.말씀을 기뻐하므로 은혜를 입었읍니다(13).
룻은 보아스의 베풀어 준 은혜에 감격합니다. 보아스의 위로의 말씀에 마음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꿀 송이 같이 즐깁니까? 설교 시간에 주님이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감사하며 기뻐합니까?
주님의 말씀 듣기를 멀리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C.룻은 배불리 먹고도 남았습니다(14-16).
룻은 이제 남의 배부름을 구경만 하는 배고픈 자가 아니었습니다.
1.보아스의 잔치에서 배부르도록 먹고도 남았습니다.
배는 부르고 볼 일입니다. 배고프면 만사가 짜증만 납니다. 잔치 집에 각서 배부르게 먹고나면 ‘그 집 잔치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구경만 하는 성도는 교회에서 짜증만 내고 불평 거리만 찾습니다.
배부른 성도는 예수 자랑, 교회 자랑, 목사 자랑, 성도 자랑합니다.
잔치 집에 차린 것은 많은 데 먹는 사람이 없으면 참 꼴불견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초청하였습니다.
먹기를 원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룻은 보아스의 초청을 받고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니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곡식 베는 자는 설교자입니다. 설교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의 떡을 잡수십시오. 그리고 남겨서 싸가지고 가십시오.
음식은 남겨서는 안되지만 말씀은 내 마음에 차고도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남에게 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목회는 먹회입니다. 잘 잡수십시오.
은혜 받아 축복된 사람은 배불러 남아 남에게 까지 축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2.보아스의 밭에서 풍성하게 얻었습니다(15-16).
룻은 배불러도 또 이삭을 주우러 일어났습니다(15).
우리는 이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주의 말씀을 채우고 또 채우며 주의 은혜를 채우고 또 채우며, 성령 충만을 채우며 또 채우기를 원하는 사람, 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 풍족함을 누립니다.
그런 분은 언제나 열심히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삭줍기는 추수가 끝난 빈들에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일군들에게 명하여 일부러 곡식 단 사이에 줍게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결언: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선 축복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궁색하게 살아간다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편 65:4)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구경만 하고 자신은 갈급해 하는 모순을 겪지 맙시다.
하나님은 풍요로운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풍성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간절히 원하십시오.
하나님의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가 당신에게 넘칠 것입니다.
룻기강해(5)
성경>:룻기 2:16-23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날이 갈 수록 더 은혜 받자
명제>:주님의 은혜를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히 누리자.
설교목적>: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히 누리는 신앙인이 되게 한다.
[막쪄낸 찐빵]→「찐빵 주의자의 삶의 이야기」 (카피라이터 이만재씨의 신앙 일기)
“식어 버린 찐빵이 되지 않기 위하여 살겠다”
식지 않는 찐빵이 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솥안에 계속 머무는 것이지요. 그러면 항상 따끈따끈한 찐빵인 채로 있을 수 있습니다.
12월 첫주를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1월의 간직했던 마음의 찐빵이 아직도 따끈따끈합니까? 식어 버렸습니까?
「할아버지 복서」조지 포먼이 46세의 나이로 20년 아래의 ‘마이클 무어러’선수를 10회 KO로 물리치고 WBA-IBF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소식을 기억하십니까?
이렇게 「조지 포먼이 이번에 다시 왕좌에 오른 것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더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한 은혜」 이것만 있으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첫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보십시오(계 2:5-).
처음 신앙을 잃어버린 낡은 신앙가들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모두들 「왕년엔···」 「왕년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았었다고 자랑할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만을 자랑하고 오늘의 은혜를 간직하지 못하는 인생의 미래는 어둡고 참담할 뿐입니다.
전 7:10)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한 때 「불의 사자」라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누비고 다녔던 종이 이단의 괴수가 되고, 한 때 눈물로 간증하던 가수가 지금은 야간 업소에서 노래하며 돈벌이에 정신이 없습니다.
처음에 뜨거웠던 마음이 어느새 다 식어 버려 연기만 펄펄 피어나고 있는 심령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결같이 풍성한데도 불구하고 ‘기름 떨어진 자동차’같이 슬금슬금 멈춰 버리는 「목마른 신앙 생활」을 이제는 그만 둡시다. 한동안 은혜 안에서 충만하다가 어느새 식어 버리는 냄비 같은 믿음을 청산하고 돌 솥같이 은근하고 식을 줄 모르는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한 은혜를 받는 성도」가 됩시다.
모압의 여인 룻은 하나님께 나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1:14).
그리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굳게 결심했습니다(18).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유대지파의 유력자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고
그를 통하여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한 은혜」속에서 다윗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책에 동참하는 복을 얻게 하였습니다.
룻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풍성한 은혜」 ,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한 은혜」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열기와 신앙의 전진의 속도는 「룻기서」가 더해 가면 갈 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뜨거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 하리라 」의 말씀대로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Ⅰ.가난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17).
2:17)을 보십시오. 룻이 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었다고 합니다. 대략 20되 정도의 곡식을 얻어낸 것입니다. 하루에 얻은 양으로는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보아스를 통하여 부어지고 있습니다. 단번에 주신 것이 아니요, 열심히 이삭을 주우므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신 24: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곡식을 단번에 몇 가마씩 주도록 하지 않고 이삭을 하나 하나 줍도록 하여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이삭을 줍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가 이삭을 줍습니다. 배가 고파도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주인의 호의를 무시하고 곡식을 도적질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의 첫 말씀으로
마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프토코스)단어의 의미는 ‘비천한’‘거지같은’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의 거지는 밥을 구걸하여 얻어먹었습니다. 요즈음의 거지는 돈을 강요하여 뺏아갑니다. 적게 주면 욕을 하고 횡포를 부립니다. 요즈음 거지들은 가난한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성품이 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구걸하는 거지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비천하고 애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거지 노릇을 해보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배가 고파 구걸하는 마음을 상상이라도 해서 그렇게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두 가지 병든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부귀영화를 가지면 인격도 변한 줄로 알아 교만합니다.
또 하나의 마음은 「비굴한 마음」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인격도 따라서 비천해 지는 것입니다.
인격은 물질의 유무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에 배가 고파 「이삭을 줍는 마음」 가난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십니까?
계 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마음이 가난하지 못한 이들의 신앙의 열기는 어떠했습니까?
계 3: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당신은 열심히 식어졌습니까? 기도가 간절하지 못합니까? 말씀의 맛을 잃었습니까? 은혜가 떨어졌습니까? 교회 생활이 힘들어졌습니까?
회개하십시오. 가난한 마음,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만 「날마다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Ⅱ.함께 나누어주는 것입니다(18-20).
룻은 열심히 주운 양식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갔습니다. 시모 나오미에게 보이고 드렸습니다. 보아스와 함께 먹었던 「복음 곡식」도 남겨 와서 드렸습니다. 먹고 배불러 남은 찌끄러기를 드린 것이 아니라 더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가져온 것입니다. 참으로 효성스러운 며느리입니다.
「은혜를 풍성히 입은 자」는 「은혜를 입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날이 갈 수록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누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1.「나누어주는 자」가 복됩니다(18-19).
나누어주는 자 보아스를 보십시오. 그는 베들레헴의 부호요 유대 지파의 힘있는 자였습니다. 보아스는 수하의 많은 종들의 일자리를 주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는 자였습니다.(2:4절을 보십시오)
룻에게 풍성하게 양식을 나눈 보아스에 대한 나오미의 축원을 보십시오.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나누면 상대방으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은 하나님께 전달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내려 주십니다.
샘의 원리지요. 퍼 주고 퍼 줄 수록 샘물은 자꾸만 나옵니다.
복이 있는 자는 잘 나누는 자입니다. 보아스는 복된 자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에게 잘 나누어 준 것 같이 룻도 시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보아스는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은 나누어주시어 복되신 분입니다.
우리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과 모든 사랑을 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 6: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들은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그것이 복받는 일입니다.
남아서 주는 것은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족해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축복된 나눔입니다.
불우한 이웃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조금이나마 함께 나눈 다면 그것은 복 받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선교비를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씨를 뿌리는 일이요, 복받는 일입니다.
2.「나누는 일」은 주신 이를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20).
룻이 풍성한 양식을 나누어주신 이가 「보아스」라는 것을 밝히자,
나오미는 보아스를 축복하며 보아스의 평소에 베풀어 준 과거의 은혜까지도 칭송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남편과 두 아들에게도 큰 은혜를 많이 베풀었습니다(20).
또한 나오미는 보아스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이제 엘리멜렉의 잃었던 토지를 찾아 줄 수 있으며 끊어진 대를 이어 줄 구원자라고 칭송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잃었던 낙원을 찾아 주시며 끊어진 생명을 회복시켜 주신 분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가난한 이들, 죄악된 세상에서 방황하는 이들, 어둠과 죄악으로 고통 하는 자들을 외면한다면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
나누십시오. 물질과 시간과 사랑을 나눌 때 예수님이 높여지면 예수님의 은혜가 저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눅 6:30-31)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주는 훈련을 합시다.
교회는 거저 주는 일을 자주 해야 합니다.
성도는 거저 주는데 이골이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하면 결국 영적 비만증에 걸려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예> 이스라엘 지도를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와 사해 바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LA 흑인 폭동에 유독 우리 교민들만이 약탈의 제물이 된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나누는 자만이 「날이 갈 수록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날이 갈수록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Ⅲ.주신 이에게 더 가까이하는 것입니다(21-23).
날마다 풍성한 은혜를 얻는 세 번째 원리입니다.
혹시 룻에게 다른 밭에 가면 더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은 없었을까요?
성도들도 하나님의 축복 아래 많은 것을 얻으면 주님을 멀리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업에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지속적이 하나님의 은혜를 중단시키는 원리입니다.
1.가까이해야 보호받습니다(21).
보아스는 룻에게 특별한 권면을 하였습니다(21절을 보십시오).
룻 2:9)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 연약한 여인들에게 거친 남종들이 멸시 천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아스는 과부된 룻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밭에 가지 말고 보아스의 밭에서 종들의 보호를 받으며 이삭을 줍도록 권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에 있기를 원하면 그리스도를 가까이하십시오.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 주일 예배를 가까이, 저녁 예배를 가까이, 구역예배를 가까이, 기도를 가까이, 성경을 가까이, 그리고 여러분에게 세우신 「주의 종」가까이하기를 바랍니다. 가까이하면 익숙해지고 닮습니다.
2.가까이하면 날마다 풍성한 양식을 얻게 됩니다(22-23).
보아스의 밭을 떠나지 않고 보아스의 종들과 함께 이삭을 줍는 룻에게는 그 시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양식이 보장되었습니다. 보리 추수를 마칠 때 까지 뿐만 아니라, 그 후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이삭을 주워 겨울에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주님께로 오십시오. 나오는 자는 날마다 풍성한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오매 고쳐 주시니···」(마 21:14)
룻은 보아스의 남종들의 곁에서 보아스의 여종들을 가까이하며 이삭을 주웠습니다(23).
주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람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세상 친구들 보다 신앙의 선배들을 잘 선택하여 따를 때 그를 통하여 「날마다 주님과 가까이」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려면 믿음이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잘하는 사람을 따르십시오. 인격을 바꾸려면 인격이 좋은 사람과 늘 가까이 사귀시기를 바랍니다. 「날이 갈 수록 풍성한 은혜」를 누리려면 「날이 갈 수록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사람과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룻은 모압에서 오르바보다는 나오미를 좇았고, 베들레헴에서는 보아스의 여종들과 함께 하므로 날마다 이삭을 주워 시모와 함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갈 수록 풍성한 은혜」는 「날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허락됩니다.
결언:
「조지 포먼이 46세에 다시 왕좌에 오른 것은 철저한 「은혜 관리」와 「체력 관리」였습니다.
은혜를 잘 관리합시다. 「날이 갈 수록 더 풍성한 은혜」 이것만 있으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은혜에 대하여 가난한 마음(거지같은 마음)을 가지십시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어주십시오, 마음도 물질도 복음도 모두 나누십시오, 주님을 더욱 가까이하십시오. 주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날이 갈 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할 것입니다.
지속적인 풍성한 은혜를 누림으로, 기름을 가득 채운 자동차 같이 주님을 향하여 잘 달려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룻기강해(6)
성경>:룻기 3:1-13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평화의 안식을 구하자.
명제>:안식의 복은 믿고 구하고 실행하는 자에게 얻어진다.
설교목적>:하나님의 안식의 복을 누리는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게 한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으레히 묵은 해를 가리켜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갔다고 합니다. 정말 94년은 「다사다난」하다 못해 정신차릴 수 없었던 한 해였습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소망을 하십니까?
저는 바라기를 95년부터는 우리 나라와 우리 사회가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유럽 선진국들이 300년 걸려 이룩했던 부를 일본은 100년만에 이룩했고 우리 나라는 30년만에 따라 잡으려고 하다 보니 무리가 많았고 그 후유증이 대단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입에서는 「피곤하다」「바쁘다」 「힘들다」「죽겠다」「괴롭다」는 말이 다반사였습니다. 한결같이 부정적이고 여유가 없는 언어들입니다.
새해는 ‘쉼’이 필요한 때입니다. 안식이 절대로 필요한 때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어 마땅히 누려야 할 영혼의 안식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바쁘고 피곤하게 달려가는 삶이 바로 당신의 삶이 아닙니까?
새해에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쉴 수 있는 복,평화를 누릴 수 있는 복 곧 「안식의 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룻을 통하여 그가 어떻게 인생의 안락한 보금자리, 쉼의 보금자리를 얻어 누렸는가를 살펴봄으로 우리 모두에게도 그같은 「안식과 쉼」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1-2).
룻은 보아스의 은혜를 입어 추수가 끝날 때까지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갔지만,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땅 한평 얻을 자손도 없는 이 불쌍한 쌍과부의 장래는 암담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신이야 늙었으니 소망이 없지만 젊은 며느리 룻은 어떤 좋은 남자와 재혼을 하면 모든 장래는 보장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룻은 안식과 쉼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편을 잃었고,대를 이을 자식도 없었고 가난했고 고향도 떠났고 민족이 다른 타향살이에 시집살이에 이삭주워 먹고살기에 너무 시달렸습니다. 참으로 피곤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를 맡아 줄 넉넉한 남편을 찾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사모하는 마음, 우리 성도들이 주님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래”(사 55:1)고 외쳤습니다.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고 외쳤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찾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쉼이 필요한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바쁩니다. 정신없이 서둘러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빨리 빨리 하고 바쁘게 해야 옳은 줄 압니다. 빨리 돈벌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바빠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일하고, 밤을 새워 일합니다. 그러므로 어쩌다가 쉬는 날은 피곤을 풀기 위하여 야외에 나가지만 피곤은 더욱 쌓이기만 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영혼을 안식할 틈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바빠서요” “주일에 왜 예배 참석을 하지 못하셨습니까?” “바빠서요”
“바쁘다”면 안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무리 바빠도 가야만 합니다.
우리 나라는 40대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노동하다가 정신없이 죽어 갑니다. 앞을 향하여 바쁘게 나갈 줄만 알았지 계속적인 나감을 위하여 「안식」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참으로 지혜로운 시어머니입니다. 이삭 줍기에 바쁜 룻에게 안식이 필요함을 말했습니다(3:1). 룻은 정신없이 이삭을 줍는 나날을 보내다가 나오미의 권면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도 자신에게 「안식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참 안식을 사모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쉼의 보금자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당신의 몸과 마음은 쉬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모든 일을 쉬고 주님의 말씀과 은혜를 묵상하며 다음의 할 일들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병원에 가면 대개 어떤 병이든 ‘쉬십시오’,‘안정을 취하십시오’라고 진단합니다.
새해에는 일을 줄이고 나의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이 땅에 필요한 것을 장만하고 채우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 그만두고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점검하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문에서 유력한 자요, 아주 가까운 친족이기에 룻의 장래를 맡아 「안식의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늘 밤에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서 추수를 할 때에 보아스의 품으로 들어가라고 권면했습니다.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아예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밭의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삭을 주워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줍고, 얻어먹는 것으로」 언제고 허덕입니다. 허덕이며 믿는 사람, 넉넉하여 믿는 사람,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렵니까?
「오늘 밤에」(2절), 나오미는 안식의 때를 일러줍니다.
“바로 오늘 밤에 그가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바로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은 주님의 품에서 평화와 안식을 간절히 사모합니까?
언제까지나 얕은 물가에서 서성거리고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의 품안으로 뛰어드십시오.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안식을 찾아옵니다.
주님을 진정 영접한 사람들의 간증은 모두 같습니다.
“평안해”. “좋아” “든든해” 나의 모든 것은 안정되었어!
육체가 안정될 때 모든 병은 떠나가고 영혼이 안정될 때 마귀는 떠나갑니다. 사모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안식할 수 있기를 ···!
Ⅱ.정결히 단장해야 합니다(3-4).
나오미는 룻에게 아름답게 단장하라고 권면합니다. 보아스의 품에 들어가려면 보아스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합니다(3절).
당신이 그리스도의 품에 쉼의 안식의 필요하다면 이제 할 일은 주님께 보이기 위하여 자신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의 품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어야 하듯이,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일이야말로 지혜로운 성도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신부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순간입니다. 「씻고」「화장하고」「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주님의 품에 안식하려는 성도는 그렇게 자신을 가꾸기에 부지런합니다.
1.말씀의 생수로 마음을 깨끗하게 씻으십시오.
엡 5: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복음은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씻어 내십시오. 말씀으로 마음의 내 생각들을 걸러 내는 일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신랑은 정결한 신부를 기뻐하듯이 그리스도는 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성도를 품에 안아 주십니다.
2.성령의 기름으로 마음을 단장하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기름은 아름다운 화장품입니다. 기름은 사람을 윤기 나게 보이게 하고 아름답게 해줍니다.(요일 2:27)
기름 부음은 곧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아름다운 여인의 화장품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가득하게 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므로 안아 주십니다.
3.선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옷을 입으십시오.
계 19:8)그에게 허락 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신부의 드레스는 희고 아름답습니다. 성도의 드레스는 옳은 행실입니다. 늘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만 하십시오. 행실은 옷과 같습니다. 주님의 신부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습니다.
어떤 여자도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것입니다. “목욕하고”, “기름 바르고”,“의복을 입고”
이런 자세로 사는 신부는 평생에 신랑의 극진한 보호를 받고 살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공중혼인잔치를 앞두고 자신을 단장하는 신부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밤거리의 유흥가를 지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조심스럽고 긴장하고 두렵겠습니까? 성도는 이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타락한 약혼자, 타락한 신부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약혼자, 신부는 구별된 사람입니다. 자신을 정결케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할 사람입니다.
대개 그리스도안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자신을 깨끗케 지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지키는 일이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는 지름길입니다.
아가서의 신랑이 신부를 칭송하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보셨습니까?
아 2:14)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Ⅲ.용기 있게 실행해야 합니다(5-9).
나오미는 「오늘 밤 타작을 마치고 보아스가 잠을 잘 때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겸손하게 맡긴다는 표시입니다.
이 얼마나 여인으로서 행하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까?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까? 불안한 일입니까? 자칫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확신을 가지고 권면합니다. “그의 품안으로 들어가라” 그는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주님께 당신을 맡기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품안에 당신의 안식이 있습니다.
대개 생활에 늘 풍파가 많은 분들을 보면 「그리스도의 품에」 자신을 맡기지 못했습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나의 몸과 마음을 다 맡긴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맡길 때, 신랑은 강력한 보호의 의지가 샘솟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들은 각기 주머니가 다릅니다. 남편 통장 따로, 아내 통장 따로 참 불행한 일입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믿을 수 없는 사이는 이미 부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시간도, 젊음도, 힘도, 재산도, 모든 것을 맡기면 예수님은 더욱 더 당신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에 시간을 다 보내다가 세상에서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직장 생활에서 낙오되면, 장사가 잘 안되면 어떠하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면 어쩌나···,
룻은 어머니의 권고대로 자신을 맡겨 버렸습니다.
(5절)「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6절)「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1.거기에 누웠더라(7)
…거기에 누웠더라,
“보아스의 품에 당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 맡기는 행위입니다. 룻은 이미 보아스를 사랑하므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 쉼과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강하십니다. 당신의 모든 삶의 문제의 해답을 다 가지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 누워 편안히 잠든 것 같이,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사이는 이렇게 사랑의 위탁 관계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어떤 일로 마음이 불안하다면, 기도를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마음에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회개하십시오. 당신은 주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품에 눕는 시간입니다. 특히 주일 예배는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시간입니다. 부랴부랴, 허겁지겁, 이미 예배 시작 후, 준비되지 않고 맡기지 않은 마음은 찬송 소리는 장송곡으로 들릴 것이요. 설교는 공염불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회사에 남겨 둔 일 생각, 부엌에 까스바나 불 끄고 왔나 하는 생각, 결혼 식에 갈 생각, 친구 만날 생각, 오후에 해야 할 일의 생각···
전혀 주님의 품에 안기지 않은 자세입니다. 진정한 쉼의 예배가 아니지요.
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고, 노동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예배를 즐거워 하나, 노동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예배를 지겨워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맡기고 ‘거기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평화와 안식」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이 이 새해는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9)
결혼을 원한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룻의 과감한 청혼은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나오미가 룻을 위하여 구한 「안식할 곳」이란 남편과 함께 사는 가정, 즉 보아스와 결혼함으로 오는 안전함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룻이 과감하게 청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보아스를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할 때 결혼을 원합니다. 그 결혼을 통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어합니다. 아내의 헌신에 남편은 목숨을 걸고 보호해 줍니다. 그래서 여자는 행복한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사랑하였고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었고 보호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자여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몸과 마음도 영혼까지도 심지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소유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예수님을 끔찍이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기업을 무를 자였기 때문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결혼을 요청한 것은 잃었던 기업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9).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그 두 아들들과 함께 모압에서 죽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기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기업 즉 토지를 되찾으려면(무르려면), 반드시 엘리멜렉의 혈통을 가진 아들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 가문 중에 가장 가까운 보아스를 나오미는 택하였던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을 해준다면 룻을 통하여 낳은 아이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 중에 결혼을 해주어서 아이를 낳게 해주는 사람을 「기업 무를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레 25:24).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형제라 해도 기업을 무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아내를 또 얻고 자식을 얻는 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토지를 죽은 자의 후사를 위하여 나누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기업 무를 자」란 자신의 토지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업 무를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무를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이제 기업이 있으면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지 않아도 농사를 짓고 안정된 안식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기업 무르기」의 풍습은 신약의 진리로 재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기업 무르기의 본질은 「잃었던 땅」을 되찾는 일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땅은 하나님의 나라의 땅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에덴 동산의 땅을 죄와 사망으로 잃어버렸습니다.
영원한 기업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을 잃고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안식의 땅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기업 무르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기업 무를 자」가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잃었던 기업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 영적인 결혼 관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한 자는 새로 태어난 아들이 되어 천국의 땅, 기업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 예수님과 결혼한 신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 거듭난 자아(새로운 피조물) =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 승천하시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1)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리스도 안에」있으면 영원한 기업을 찾게 됩니다. 처소, 있을 곳을 얻습니다. 천국에 내가 있을 땅, 영원한 기업이 있어야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천국에는 토지임대법이 없습니다.
엡 1: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빚인 죗값을 탕감해 주어 마귀의 노예된 상태에서 풀어 주시고 천국 기업을 회복시켜 되돌려 주는 일로서 토지 문서를 값없이 소유하게 하신 은혜,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입니다.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함은 천국의 토지 문서를 획득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결코 손해보지 않습니다.
Ⅳ.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10-13).
1.내 딸아 두려워 말라(10-11)
이토록 기업을 되찾으려고 결혼을 원하는 룻의 태도에 보아스는 감탄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좇아 젊은 남자와 결혼하려 하지 않고 기업을 좇아 적지 않은 나이인 보아스에게 청혼을 한 룻에게 보아스는 사랑의 보답을 합니다.
“내 딸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여 세상 적인 육신의 정욕을 피하여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맡긴 자에게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요 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그리스도를 끝까지 신뢰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식의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2.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12-13)
룻을 맡아 줄 의무가 보아스에게 있었으나 그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기업을 물러 줄 우선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율법을 준수하면서 약속을 했습니다.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내가 책임을 이행하리라
여호와의 사심으로 보아스는 룻에게 약속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많은 부를 가진 자가 가난하고 비천한 여인을 선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보아스는 어려운 처지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룻을 멸시하지 않고 기업 무를 일을 해결해 주려고 애쓰고 약속하였습니다. 자신의 걸고 맹세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되셨고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걸고 맹세하셨습니다.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보아스는 유력자였습니다. 룻의 근본적이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로서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자였고 엘리멜렉의 새로운 후사를 낳게 해줄 참 능력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룻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형 적이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능력자입니다. 우리의 안식을 빼 앗아가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자입니다.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고 우리를 천국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능력자입니다. 평화와 안식을 오늘도 누리게 하고 내일도 누리게 하며 영원히 누리게 합니다.
결언:
룻에게 있어서 보아스 안에 안식이 있었다면 오늘 우리에겐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이 있습니다.
이삭을 줍는 식의 평화와 안식을 언제까지 계속하렵니까? 얻어먹는 안식은 3일을 가지 못합니다. 1주일에도 몇 번 씩 불안과 염려의 사슬에서 놓이기를 위한다면, 다툼과 불화와 분쟁 가운데서 해방되어 든든한 복된 안식을 누리려면
룻이 보아스의 품에서 들어가서 안식을 얻은 원리,
바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원리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안식을 간절히 사모합시다. 정결하게 준비합시다. 끝까지 신뢰합시다.
현숙한 여인 룻처럼 안식을 얻어냅시다.
룻 3:9)…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든 이들의 가정에 평화와 안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와 사회에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화와 안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향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안식이 있습니다.
룻기강해(7)
성경>:룻기 3:14-18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맡김의 안식을 누리자.
명제>:안식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자가 얻는다.
설교목적>:하나님의 안식의 약속을 믿고 잠잠히 안식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게 한다.
신앙인의 힘은 평화와 안식입니다. 천국은 평화와 안식의 나라입니다. 나에게 천국이 임했는가를 점검하려면 바쁘거나 위급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면 압니다.
풍랑 이는 갈릴리의 밤바다에서 제자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이었 때, 예수님은 평안히 배에서 주무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홍해 바다요 뒤에는 추격하는 애굽군대 사이에서 불안하여 아우성이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출14:13).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영국의 신앙가 요한 웨슬레가 갓 목사가 되어 1736년 미국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배에서 만난 큰 폭풍, 웨슬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아우성을 치고 불안에 떨 때, 독일에서 온 기독교인들은 요동하는 갑판 위에서 고요히 정중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웨슬레는 나중에 그들 중에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니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웨슬레는 부인들과 어린이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아니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웨슬레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풍랑 속에서도 저들은 저렇게 고요한 안식을 누리는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왜, 나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죽을까바 염려했던가?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왜 나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데 저들은 그토록 고요한 평안을 누렸습니까?
고민하며 눈물로 기도하다가 성령을 새롭게 체험했고,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환경 중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있었고 너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지 않느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증거는 마음에 평화입니다. 안식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안식을 누리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급한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을 중단하고 주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주일에 우왕좌왕하는 분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 삶을 맡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맡긴 사람은 만사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룻에게 이 약속을 받아 내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8). 이제 보아스에게 맡겼으니 네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이룰 때까지 가만히 앉아 쉬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농부는 파종을 할 때까지 열심히 수고합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자라고 수확을 얻기까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묵묵히 참고 가꾸며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결단을 가지고 달리고 달려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인내를 가지고 묵묵히 기다리므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돌진할 때」와 내가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믿고 「조용히 기다릴 때」 그 두 가지 태도를 병행할 때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리듬을 가진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한 뒤, 헌금을 한 뒤, 봉사를 한 뒤, 얼마나 조급합니까? 그 응답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얼마나 일을 그르칩니까? 응답의 약속을 받아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응답이 이루어지기까지 맡기고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시 37: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
기다리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열매가 무르익을 때는 꽃이 피고 무럭무럭 자랄 때가 아니라 달려서 가만히 기다릴 때입니다. 사람의 인격이 성숙해질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닐 때보다 묵묵히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며 인내할 때입니다.
그러나 당장에 도움이 필요한 때에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룻은 어떻게 시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보아스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까?
Ⅰ.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그 옷자락으로 덮어 달라고 한 것은, 흔한 육신의 정욕으로 인한 접근이 아니었습니다. 보아스 역시 자기 이불 속에 들어와 몸을 맡긴 여인을 음욕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이불 속에 들어간 동기는 순수한 「기업 무르기」였습니다. 20절의 보아스의 룻에 대한 칭찬을 보십시오.
“…네가 빈부를 무론 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크도다”
보아스는 룻에게 부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 전에 일찍이 일어나 돌아가라고 했습니다(14). 혹여 다른 사람이 보면 순수한 동기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이 보아스가 끊어진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이어줄 구원자라」는 말을 믿었습니다(2:20-21).. 나오미가 룻에게 화장하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들어가 그 품에 들어갈 것을 말했을 때 순종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룻은 보아스로 부터 직접 기업을 무를 책임을 다행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룻은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3:13).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같은 세상 적인 동기로 예수님께 나왔다면 곧 바로 실망하고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되지요.
예수님을 여러분의 생명의 구원자로 믿습니까? 잃었던 인간의 최고 기업인 천국으로 인도하실 유일하신 그리스도로 믿으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능력자입니다. 여러분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믿는 다면 어떤 환난과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잠잠히 주님의 선하신 역사를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기다립니다. 가만히 안식을 누립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여주며 이같이 너의 자손이 번창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의인이 되었습니다(창 15:6).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습니다. 사래는 젊은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잃은 그들을 13년 동안이나 외면했습니다.
믿음은 가만히 앉아 기다립니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내합니다. 주님의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손길을 바라봅니다.
살후 1:4)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참된 안식은 주님의 성실하신 역사의 손길을 믿음으로 가만히 기다리는데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요 14: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조급히 서두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無忍不勝」-인내가 없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
Ⅱ.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이른 아침, 돌아갈 때 거저 보내지 않고 보리를 여섯번 되어 주며 “빈 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아스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룻과 나오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기업을 찾아 주겠다는 자비와 긍휼의 증표였습니다. 보리를 머리에이고 시어머니에게 돌아오는 룻의 마음에는 보아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넉넉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자로 불리는 어거스틴이 있기까지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사랑의 기도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혈기 방자한 20세의 나이로 칼타고에서 공부던 어거스틴은 마니교에 심취했으면 창녀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끝까지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했고 아들을 사랑했기에 자비하신 주님의 선하신 손길이 반드시 아들을 구원하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안식이 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18년만에 드디어 탕자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교부 암브로스의 설교에 감화를 받고 그해 8월에 회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잠잠히 기다립니다.
※전용기씨(37)식물인간 상태로 6년동안 전주예수병원에 입원했습니다.
88년 10월 5일 새벽6시30분에 봉고 차에 치어 식물인간이 된 남편은 산소 호흡기로 3개월 생명을 연장한 뒤 주치의가 합병증으로 얼마 못살거나 영원히 식물인간이 될 터니 포기하라고 충고해 왔습니다. 1년이 가까워 오자 시댁에서 포기하라고 했고 아는 사람은 다 떠났습니다.
그 아내 성정식씨는 아이들을 대전의 친정 집에 맡겨 놓고 간병에 전적으로 매달렸습니다. 힘들고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는 병원 1층 기도 실로 달려가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이제 좀 깨워 달라고 부르짖었고 금식 기도와 작정 기도도 수없이 했습니다.
목젖으로 영양을 투입 받던 남편은 식도가 상해 위를 뚫어 호스를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성씨는 남편의 병상옆 간이 의자에서 24시간을 지키기로 작정하고 병원 옆에 짐만 갖다 놓을 5만원 짜리 사글세방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1심,2심,대법원까지 끌고 가면서 보험료를 줄이려는 보험 회사측의 야속함에 성씨는 울면서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입원한지 3년만인 90년 한차례 위기가 왔습니다. 남편이 급성 폐렴에 걸려 다시 중환자 실로 들어간지 40여일 만에 나왔을 때는 폐 한쪽과 남은 한쪽의 반까지 하얗게 죽어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1년에 3-4차례 친정어머니가 데려왔을 때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씨는 남편의 몸에 욕창이 나지 않도록 이틀에 2번씩 목욕을 시켰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휠체어에 태워 운동을 시켰습니다.
그는 지난 10월「아…멘…아…안…녕」이라며 말문을 연 순간 부인 성정식씨(36)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기쁨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렇게 살아온지 정확히 만5년11개월 만인 지난 10일 오후3시. 남편이 어눌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기에 이른 것이다.
남편이 6년만에 내뱉은 첫마디가 「아멘」이었다는 사실로 성씨는 사랑의 주님의 응답이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정식씨는 남편을 사랑했기에 6년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손길을 잠잠히 기다립니다.
Ⅲ.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성실하고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룻 3:18)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은 보아스가 결코 기업 무르기에 대한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는다는 확신과 소망을 가졌습니다.
소망은 기다립니다. 소망은 인내합니다.
사 30:18)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라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기업을 회복시키는 일은 룻의 일이 아니라 보아스의 일이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쉬지 않습니다. 그는 룻에게 보리를 이어주고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룻과 결혼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저버리거나 잊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하여, 참된 안식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땀에 대한 상급을 주시기 위하여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도 주님에 대한 소망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소망은 내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오늘을 넉넉히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 130:5-6)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 도다「6」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롬 12: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눈물을 뿌리면 기도의 씨를 뿌렸습니다. 드디어 70년만에 그들은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안식 처를 얻어낸 것입니다.
소망은 인내합니다. 기다리며 주님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기쁨의 응답을 받습니다.
시 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룻에게 있어서 보아스는 소망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안식의 주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소망입니다. 참된 안식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결언: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잠잠히 기다리는 자의 것이기도 합니다.
애 3:25)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 도다
농부는 파종을 할 때까지 열심히 수고합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자라고 수확을 얻기까지 묵묵히 참고 가꾸며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결단을 가지고 달리고 달려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인내를 가지고 묵묵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18)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주님이 열심히 일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찬송가 217장)
고요한 중에 기다리는 안식,
예수님을 믿기에,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을 소망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쉬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조용히 인내하며 바라보는 안식,
「주님을 향하여」
더 깊숙하게, 더 안락하게, 더 평안하게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룻기강해(8)
성경>:룻기 4:1-12
주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목>:새 생명을 주신 이를 바라보자
명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설교목적>: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일하였는가를 살펴봄으로 그리 스도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까지의 애쓰심을 더 깊이 알게 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악한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사랑이기도 합니다. 보아스가 룻과 그 가문에게 베푼 애틋한 사랑의 이 역사 실화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사랑을 잘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룻기서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위하여 토지를 찾아 주고 끊겼던 가문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헌신적인 사랑의 수고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여 「천국」으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룻에게 베푼 보아스의 사랑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가득히 차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Ⅰ.성경대로 일하셨습니다(1-8).
이와같이 보아스는 아무리 룻과의 약속을 실행하는 일이 급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대로 그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엘리멜렉의 한 형제를 만나서 룻의 기업을 되찾는 책임을 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분배한 토지는 하나님의 토지이므로 누구든지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고 누가 빚으로 팔았더라도 형제 중에 가장 가까운 자가 빚을 갚고 토지를 찾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레 25:24)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25」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보아스는 성문 위에 있는 공적인 장소인 마을 회관으로 갔고, 그곳에서 그 제일 가까운 엘리멜렉의 형제를 만났고, 성읍의 장로 10명을 불러내어 증인을 삼아 룻의 기업을 되찾는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았던 것입니다(1-2). 율법대로 일했습니다.
룻에 대한 자비한 마음이 누구보다 깊은 보아스였으나 성경대로 가장 가까운 그 형제에게 기업 무르기의 책임 권을 양보하였습니다(3-5).
보아스는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목적이 옳으면 방법도 옳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좋으면 방법이야 아무러면 어떠냐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혼전에 미리 동거생활을 해도 별 이상하지 않게 여기거나, 부자가 되는 일이라면 나라 돈이라도 꿀꺽 삼키고, 교회가 부흥되는 일이라면 경품추천대회라도 해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우리의 세태입니다.
보아스는 룻의 기업을 회복하는 일 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의지할 때 없는 룻과 죽은 자 엘리멜렉의 가문에 임한 「기업의 회복」 과 가문의 회복은 보아스가 성경 말씀에 따라 움직이므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보아스가 성경대로 룻과 나오미 가문의 구원의 일을 시작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일하시므로 우리들을 구원하셨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입니다.
성경대로 베들레헴에 나셨습니다(마 2:6). 성경대로 애굽으로 피신하셨고(마 2:15),성경대로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셨습니다(마 2:23). 예수님의 사신 일은 모두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창 3:16).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창 12:3).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와 왕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삼하 7:12-13).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왕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의 핵심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리라” (사 53:1-5)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사셨고,일하셨고,죽으셨고,다시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인 복음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고전 15:1-5)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하십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1500년대 중세 카톨릭 교회는 이상한 풍조에 무너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리아에서 찾았고, 성자들의 뼈에서 찾았고, 교황의 권세에서 찾았고, 면죄부라는 해괴망측한 종교사기권에서 찾았습니다. 청년 신부 루터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1516년 봄, 윗텐베르히 성 교회의 대문에 95개조의 질문을 붙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종교개혁 운동의 중심 사상이었습니다.
나의 개혁, 가정의 개혁, 사회의 개혁, 나라의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1.성경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십시오.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죄인은 심판 받습니다. 죄인의 심판은 지옥입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모든 죄는 용서받고 지옥 불로 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성경에서 교훈을 받아 사십시오. 당신은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으면 천국에서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교훈을 받고, 책망도 받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아 온전한 사람이 되는데 힘써야 합니다.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1)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의 신령한 젖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경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을 사모하십시오.
3.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십시오. 심판 날에 들림 받는 슬기로운 성도가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의 왕 마귀는 그냥 두지 않습니다. 어려움과 유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죄악에 물들지 말고 믿음을 지켜 세상 쾌락과 풍조에 휩싸이지 않는 정결한 하나님의 자녀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이 세상에 오시면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고 깨어 준비한 성도들을 안아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날을 고대하면서 이 세상에서 어떤 유혹과 시험에도 빠지지 말고 정신차려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 24:42-44)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43」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44」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성경대로 일하십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영원한 천국」도 「새 생명」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일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생활의 철학으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Ⅱ.기쁨으로 일하셨습니다.
룻의 기업을 무르는 일에 대하여 그 기업을 무를 자는 처음에 응낙하였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기업을 무르는 일」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일은 엘리멜렉의 땅을 사서 그가 갖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값아 땅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룻을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게 하고 그 아들에게 산 땅을 물려주어 죽은 엘리멜렉의 가문을 되살려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기업 무르기는 모두 주는 일입니다. 밑지는 장사입니다. 그는 깜짝 놀래 고개를 흔듭니다.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6절을 보십시오)
인간은 자기 손해나는 일은 하지 않는 법입니다. 손해나는 일은 남이 해주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떠넘기기를 좋아합니다. 그는 신발을 던져 보아스에게 줌으로 룻에 대한 「기업 무르기」 「빚 갚아 주기」의무를 넘겨 버렸습니다(7절).
그러나 보아스는 기쁨으로 이 일을 맡았습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엘리멜렉의 모든 빚을 떠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값을 지불하였습니다.(9절을 보십시오.)
땅을 사서 죽은 자의 기업을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룻과 결혼하여 죽은 자의 이름을 끊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기업과 후손」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천국」과 「새 생명」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영원한 처소인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기업, 가장 중요한 재산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그리스도는 기꺼이 자원하여 우리의 기업(천국과 영생)을 되찾아 주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시므로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밑지는 장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 죄용서를 받으려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레 17:11). 그것은 육체의 생명이 죄를 지었으면 그 죄의 댓가는 육체의 생명을 바쳐야 속죄되는데 그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피를 흘려서 만이 죄를 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던”(히 9:12)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위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의 사업, 기업 무르기, 빚 갚는 일을 완성하시고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의 선물을 받는 자는 새 생명을 얻습니다.
요 6: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Ⅲ.축복으로 일하셨습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이 “우리가 증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아스의 가문이 번창하기를 축복했습니다. 보아스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소원했습니다. 자손만대로 영원하기를 축복했습니다.
보아스의 가문은 그리스도의 가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빚진 자가 된 우리들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높여 드리는 일입니다. 축복을 빌어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축복을 비는 일이란 어떤 일 입니까?
1.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서 룻의 기업을 회복하게 하는 일을 담당하기로 선포하였습니다(9-10). 그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이 이 일에 증인이 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모인 무리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우리는 온 세상 죄인들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시고 천국의 영생을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이 되어 피의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나 빚진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빚진 자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롬 1:14-15)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5」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당신은 빚진 자의 마음을 갖고 삽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입니다.
2.믿는 자의 무리가 날마다 많아져서 그리스도의 후손이 이 세상에 충만하게 하는 입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장로들은 보아스에 이어서 신부되는 룻을 축복했습니다(11).
야곱의 아내로서 이스라엘의 의 12지파를 낳은 ‘라헬’과 ‘레아’와 같은 축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자칫 후손이 끊어지게 된 유다에게서 자손을 낳아 준 다말과 같은 축복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풍성한 영적 자녀의 출산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라헬과 레아처럼 경쟁적으로 새 신자를 낳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내 집을 채우라」라는 지상 명령을 받은 해입니다. 우리 모두 출산합시다. 해산의 고통을 감당합시다. 라헬과 레아가 12아들을 낳은 것처럼 두 사람이 12명씩만 전도합시다. 서정리 모든 주민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낳읍시다.
교회에 믿은 무리의 수가 날마다 증가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요, 축복을 비는 일입니다.
결언: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회복하기 위해 이렇게 쉬지 않고 애씀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영광스러운 성도가 되었습다.
마땅이 지옥의 불에 들어가야할 우리들에게 천국의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쉬지 않고 헌신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노고를 감사하면서 보답하기 위하여 많은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합시다.
그러므로 더욱 주님을 향하여 날마다 나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룻기강해(9)
성 경>:룻기 4:13-22
주 제>:그리스도를 향하여
제 목>:새 인생으로 전환하자
명 제>: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 인생의 전환을 이루므로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웃에 게 기쁨이요, 자신에게 축복이 된다.
설교목적>:룻이 보아스를 만나 새 인생의 전환을 이루듯이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므 로 새 인생의 전환을 이루도록 한다.
온 세계가 경악한 일본 고베시에서 일어난 지진의 엄청난 재난을 보면서 저는 중요한 몇가지 사실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1.인간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크심입니다.
2.인류의 과학 문명의 허상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무너진 건물보다 그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입니다.
급작스러운 사고가 너무나 많은 위험한 시대입니다. 우리 나라도 대형 사고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가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 갑작스럽게 죽게 되어도 그 영혼이 천당에서 영원히 살게 되지만 그냥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우리는 오늘 룻記의 최종회에 와 있습니다.
룻記는 울고 들어갔다가 웃으며 나옵니다. 죽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생명으로 나옵니다. 죄와 사망으로 들어갔다가 의와 생명으로 나옵니다. 절망으로 들어갔다가 소망으로 나옵니다. 화를 당했으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모압 땅에서 육체적인 풍요만을 찾았던 엘리멜렉은 두 아들과 함께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뿌리 잘린 나무처럼 생명의 근본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뿌리에 접붙은 가지가 살듯이 다시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교회 다녀서 얼마나 착한 사람이 되었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다녀서 새 생명을 얻었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애쓰기 보다 새 생명을 얻으세요.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자연스럽게 수준 높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에는 옛 생명과 새 생명이 있습니다.
옛 생명은 자연인의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다 인줄 알고 육체만 붙잡고 살다가 늙어서 꼬부라져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시는 분들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영원한 고통의 구덩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새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셔드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인 생명을 가졌으니 죽을 수 없습니다. 마치 계란이 무정란과 유정란으로 구별되듯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과 한 몸이 되었으므로 천당에서 영생을 누립니다.
기독교는 윤리와 도덕의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은 얻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고행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죄씻음을 받지 못합니다.
불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성철 스님도 죽을 때 “나는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철저한 금욕생활,수도생활을 했어도 자기 죄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닌 인간이시기에 모든 인류들을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죗값을 치렀습니다.
죗값=생명을 지불해야 합니다(창 2:17).
생명=피에 있습니다(레 17:11).
∴죗값의 지불은 곧 피를 흘려 죽는 일입니다(히 9:12).
예수님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 아니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셨기에 죽으셨고 하나님이시기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신 공로로 나의 죄가 완전히 씻겨졌음을 믿는 사람은 죄를 씻음 받고 심판의 지옥 불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죄를 씻음 받은 후, 당장 육체의 죽음을 당한다해도 그것은 껍데기가 죽은 것입니다. 그 영혼은 슬픔과 고통이 없는 천당에서 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왕으로 모셔드리십시오. 당신은 새롭게 태어 날 것입니다.
죽어야 할 생명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다가온 최고의 충격이자 최상의 복된 소식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룻기」이 중심 내용은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룻의 시대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시기 약 12,300년전의 때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기 위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보아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룻에게서 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은 죽은 자의 아내입니다. 불쌍한 과부입니다.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여인입니다. 출신도 비천한 이방 족속인 모압의 사람이었습니다. 죄인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그런데 룻기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비천한 여인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므로 다윗 왕의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가는 축복을 누리는 새 생명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여인, 모압의 여인 룻의 인생이 새 인생을 이루는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세상 식으로 표현하자면 「팔자 고쳤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새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1.나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십시오.
룻은 죽은 자의 아내로서 절망적인 여인이었으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비와 사랑이 하나님을 기대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붙좇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로 달려 왔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여러분들이 自意로 교회에 오셨든 인도를 받아오셨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시라는 말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위해 머나 먼 타국으로 왔습니다. 정든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찾아왔습니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고, 배고픈 자가 식당을 찾고, 아픈 자가 병원을 찾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 민족의 하나님, 우리 교회의 하나님, 우리 가정의 하나님도 좋습니다. 그러나 먼저 개인적으로 만난 「나의 하나님」이 라야 놀라운 인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됩니다.
어떻게 새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2.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소원하십시오.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왔으나 밭 한평없는 가난한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남의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 연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멀리 타국에 온 룻을 버려두시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 룻의 보아스를 만남이 바로 룻의 일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므로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보아스를 통하여 사랑의 손길을 펼치셨습니다.
당신도 「나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나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요, 그 일생의 놀라운 대 반전을 가져오게 됩니다.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
사울이라는 이스라엘 청년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열심을 낼 수록 하나님을 만나기는커녕 자신의 죄만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천박한 사람들임에도 ‘하나님을 만났다’라고 외치며 기뻐했습니다. 사울은 그들의 행위가 미웠습니다. 역겨웠습니다. 유대교의 이름으로 그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는 고꾸라졌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후 그는 변했습니다.
놀라운 인생의 전환을 이루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핍박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평생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교인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증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관자요, 왕으로 모셔드리십시오. 이제부터 예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을 맡기십시오. 순종하며 주의 종의 인도함에 잘 따르십시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어떻게 새 인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3.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를 소원하십시오.
룻을 보십시오.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을 맡아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마침내 소망 없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죽은 자,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을 아들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 증조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그리스도와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룻에게 보아스가 구세주요, 신랑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요, 신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엡 5:22-33).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맡긴 사람들입니다.
룻은 보아스와 동침하므로 새 생명을 낳았습니다(13).
그리스도는 우리와 동침하여 한 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의 문을 열면 들어와 동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계 3:20). 그리스도는 이제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영원히 사십니다. 성령의 체험은 그리스도와 동침의 사건입니다(요 3:5).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인생의 대 전환을 이룬 사람입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분명히 외모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졌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져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교회 생활을 모든 삶의 중심으로 삼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죄와 짝하던 생활 습관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결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신방을 치르므로 새 생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엘리멜렉의 가문에 입적이되어 죽어버렸던 엘리멜렉의 가문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끊어졌던 대를 잇게 되니 자연히 잃었던 가문의 재산인 토지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다시 난 사람은 다시 태어난 「새 생명」의 아들입니다. 거듭난 자이지요.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잃었던 천국의 기업, 천국의 처소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와 사망으로 완전히 멸망해버린 사람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로운 새 생명으로 태어 난 것입니다.
기독교의 비밀과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감히 어떤 종교도 모방할 수 없는 새 생명의 탄생의 능력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갖고 게십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어떤 귀한 일이 일어납니까?
A.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룻이 아들을 낳자 이웃 여인들은 시어머니 나오미 집안에 자비를 베푸신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14).
절망적이 나오미의 집안에 며느리 룻이 베들레헴의 가장 신망 있는 사람,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므로 가문이 살아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나 한 사람이 예수 믿고 새로 태어나면 먼저 믿는 성도들이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야말로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귀중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찬송드릴 일입니다.
예)평양의 시장 깡패 김익두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그가 교회에 나가 예수 님을 믿고 그 동안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착한 사람이 되어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김익두를 아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제 마음놓고 장사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김익두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후 김익두는 목사가 되어 한국 기독교 역사상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합시다. 이 일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시급한 일입니다. 거듭나서 새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어떤 귀한 일이 일어납니까?
B.이웃에게 칭찬을 받게 됩니다.
시어미 나오미의 살 맛을 찾게 하였습니다.-
네 생명의 회복자, 노년의 봉양자,아기의 양육자(15-16)
이웃 여인들의 마음을 즐겁게 했습니다. 즐거운 축복을 하게 하였습니다.
나 한 사람, 예수 믿고 변화 받으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는 줄 아십니까? 얼마나 편안해 하고 흐뭇해하는 지 모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믿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옆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삽니다.
예)지존파, 그들이 진작에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토록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1.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2.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3.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4.주께서 날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교회의 부흥)
*나 한 사람의 변화→가정의 화목→사회의 칭찬→교회의 부흥→한 사람의 변화
새 생명이 태어나면 어떤 귀한 일이 일어납니까?
C.자신에게 명예를 얻게 됩니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15)가 되었습니다.
룻은 엘리멜렉의 망한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끊어진 죄인의 혈통을 새로운 보아스의 혈통으로 살려놓았습니다. 엘리멜렉에게 7아들이 있었던들, 죄인의 가문이었을 터인데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므로 얻은 아들은 새로운 그리스도의 혈통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가문을 존중히 여기고 족보를 사랑합니다. 집안에서 챔피언이 나고 출세를 하면 온 일가가 좋아합니다.가문을 빛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존파 같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가문에서 추방하고 족보에서 빼버립니다.
저의 가문도 신라 시조「박혁거세」 입니다. 뼈대있는 집안이지요.
그러나 죄인의 족보요, 지옥에 들어 갈 족보들입니다. 엘리멜렉의 족보와 다름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이 세상의 혈통으로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영적인 혈통을 족보를 만드십시오.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17)
18절부터 22절까지의 족보는 이스라엘의 가장 신망 받는 다윗왕의 족보입니다. 룻이 낳은 아들 오벳으로 인하여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대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룻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18-22/마 1:5-6).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제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 책에 기록이 됩니다. 천국은 그 호적이 준비된 사람만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결언:
놀라운 인생의 전환,
전과자들이 고민하는 것은 호적에 붉은 줄이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명으로 모든 전과를 말소시킨다면 그는 얼마나 기쁘고 새 삶을 살아갈까요.
모압 여인 룻은 죽은 자의 아내요, 절망적인 사람이었으나 보아스를 만남으로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영접한 사람은 놀라운 인생의 전환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십시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삼고 순종하며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사십시오. 날마다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3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1-2)
당신은 새롭게 태어났습니까? 새롭게 태어난 자는 날마다 「주님의 품을 향하여」 나가 갈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룻기 4:1-12>
중심사상> 「기업 무르기를 성취하는 보아스」
보충설명> 보아스는 공식적인 절차와 자원하는 마음으로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주 제> 보아스는 공식적인 절차와 자원하는 마음으로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됨을 선언 하므로 그 약속을 성취한다.
<주석적 개요>
1.보아스는 룻의 기업무를 자가 되기 위하여 공식적인 절차를 밟았다(1-8).
2.보아스는 룻의 기업무를 자가 되기 위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언하였다(9-10).
3.보아스는 룻의 기업무를 자가 되므로 증인들의 축복을 받았다(11-12).
<강해적 개요>
1.공식적으로 기업무를 자가 된 보아스(1-8).
2.자원하여 기업무를 자가 된 보아스(9-10).
3.축복으로 기업무를 자가 된 보아스(11-12).
<설교적 개요>
1.성경대로 일하셨습니다(1-8).
2.기쁨으로 일하셨습니다(9-10).
3.축복으로 일하셨습니다(11-12).
<설교 제목> 새 생명을 주신 이를 바라보자.
<설교 명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설교목적>: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일하셨는가? 를 살펴봄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까지의 과정을 알게 한다.
<전환 문장>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