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강해설교 12편

전도서 강해설교 12편\"|수요일밤설교
 

본문 : 전 1:1-18

 

제목 :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서론

 

헛되다는 말은 덧없는 것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말하기를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시 39:5)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시 62:9). 그렇다고 불교에서 말하는 허무주의는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존재론적 염세주의를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깨닫는대로 모든 존재는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론적 염세주의를 말합니다. 즉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을 하나의 신기루로 간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창조자를 부인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창조자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구속의 도리를 믿지 아니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타력에 의하여 구원받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헛되다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고 모든 것이 속히 소멸된다는 뜻이며 인생의 욕망을 만족케 못한다는 뜻입니다.

 

1.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7-8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의 한계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바다가 차고 넘치는 법이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의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눈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정욕을 만족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만족에서부터 인생의 불행은 싹이 트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오욕을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만되면 일반에 들어가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열반에 들어가려고 세상을 등지고 입산수도 하는 고행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처럼 인간의 욕망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정한 만족을 얻으려며는 영원을 사모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만족을 얻는 유일한 비결입니다(전 3:11, 12 :13). 그리고 주 안에서 현재 먹고 입고 쓸 것이 있은즉 만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딤전 6:6-8).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땅에 있는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2.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14-18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보았음이로도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하였습니다. 바람을 잡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그 무엇도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영원히 잡아 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내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 하면서 묶어 둘 수 있는게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지혜나 지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의사라고 해서 죽을 자를 살릴 수 없고 과학으로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잡을 수도 없지만 잡은 것도 영원히 붙잡아 맬 수가 없으니 헛되다는 것입니다.

 

3. 죽기 때문입니다.

 

본문 4-6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것으로 돌아가고\"하였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며 바람이 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도 진리입니다. 같은 원리에서 인생은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 것도 정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저자는 말하기를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전 3:2)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하였습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하였습니다. 죽음은 만민의 공도라서 아니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욕망은 죽음이라는 것이 헛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죽음 앞에서는 명예, 권세, 재산, 부귀영화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헛되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 모시고 만족하게 여기며 허망한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죽음을 대비하고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 전 2:1-11

 

제목 : 어떤 것이 쾌락인지?

 

서론

 

솔로몬은 인생으로 태어나서 최대로 즐겁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버을 가리지 아니하고 쾌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미친 짓을 했을 뿐 그와 같은 것도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보다 주 밖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참 기쁨 즉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다시 근심과 걱정에 빠지게 되어 마약을 복용한다거나 상습도박을 한다거나 음란에 빠져 몸을 망치고 후회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4)하였습니다. 여기에 문제는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쾌락을 누려야 하겠는데 주를 떠나서 육신의 쾌락만 찾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1. 술을 마셔 보았습니다.

 

본문 3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하여\"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쾌락을 체험할까하여 술을 마셔보았습니다.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마음을 기쁘게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쁨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시 104:15)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쾌락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방탕케 하는 술 가지고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술은 사람을 거만하게 하고 떠들 게 하며 미련하게 합니다(잠 20:1). 그리고 술은 사람을 가난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며 미치게 만들어 버립니다(잠 23:20-30). 그래서 술로는 진정한 쾌락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사업을 크게 하여 보았습니다.

 

본문 4-8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를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하였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쾌락을 얻기 위하여 수돤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사업하는 일에만 총력을 기울였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쾌락을 위하여 좋은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어 포도원을 만들고 동산에다 과원을 만들고 과목을 심고 일할 수 있는 노비는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집에서 노비들이 낳기도 하여 일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소와 양떼는 더욱 많고 은금보화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가수들도 두고 처와 첩들도 많이 얻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만 가지고는 진정한 쾌락을 맛볼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호화롭게 지나친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도 진정한 쾌락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3.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았습니다.

 

본문 9-11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엿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역대 어느 왕보다 잘 되고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터득한 것은 허무와 인생무상함을 느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다고 그의 경험담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취해보아도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만족이 없다는 말은 쾌락도 일시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깨달은 것이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3:12)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하였습니다. 눈으로 보아 느끼는 욕망대로 다 해보았으나 그것도 헛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결론

 

솔로몬은 쾌락을 구하는 것은 미친 것이라고 하였고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주안에서 영원을 사모하면서 현재 만족함을 누리며 수고하여 기쁨을 맛보는 것이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진정한 쾌락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기쁨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 전 3:12-15

 

제목 : 인생의 삶의 목표

 

서론

 

인생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각자의 나름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목표는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를 알고 사는 날까지 현실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말며 크게는 내세를 위하여 작게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많은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물질을 모으며 어떻게 즐기느냐에 많은 관심을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는 점점 황폐화 되어지고 있습니다. 보다 더 고상하고 차원높은 인생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고상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 타인을 위하는 것이 되고 공부하는 목적이 인류의 복지와 평화를 위하여 기여하는데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시한부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2 \"사람이 사는 동안에\"하였습니다. 이는 이 땅에서의 인생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였으니\"(행 17:26)하였습니다. 이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육신의 생명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목표도 거기에 상응해야 할 것입니다. 즉 영원한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걸맞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세도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삶은 제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결과는 허무와 탄식뿐 그 외에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말한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8-9)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구상에서 사는 것으로 인생의 삶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내세를 바라보고 영원을 사모하면서 소망속에서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선을 행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2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분명한 목표를 세워놓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공부가 목표달성을 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돈이나 벌어서 즐기면서 사는 것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세상은 더 발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목적이 취직이나 잘해서 좋은 직장에 다니며 많은 급료를 받아 남들보다 호의호식하고 사는 것이라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노력하고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산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선은 하나님만 소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섬기는 이들이 그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자체가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일을 행하고 선한(복음)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인라\"(딤전 6:17-19)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복음 사업을 많이해야 할 것입니다.그래야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나기 때문입니다(단 12:3).

 

3. 수고하여 낙을 누려야 합니다.

 

본문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하였습니다. 사람은 일하여 얻은 결과로 즐거워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불로소득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이마에서 땀이 나도록 열심히 일해서 대가를 받아야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누구나 수고하여 먹고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창 3:19).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댈고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2)하였고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 3:10)하였습니다. 수고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얻는다면 먼지와 손톱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도적질이나 강도 및 사기 공갈 협박 같은 짓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열심히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신 28:12). 무엇이나 수고하면대가는 없어지고 고귀하여 마음에 흡족하고 기쁠 것입니다.

 

결론

 

인생이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다면 세월을 낭비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고 하신 바울 사도의 교훈을 받아서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엡 5:16). 그리하여 시한부 인생임을 알고 선을 행하며 열심히 일하여 남에게 구제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 전 4:9-12

 

제목 : 서로 힘을 합치면

 

서론

 

사람이 혼자 살면 많은 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홀로 거처하는 것)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돕는 하와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 2:23)하였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라 혼자는 살아가기가 매우 불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여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 인 자를 보면 작대기 둘로 버티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서로라는 단어는 너와 내가 성립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모여서 사는 공동체 형성이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1. 넘어질 때에 도움이 됩니다.

 

본문 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하였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도 도와 주지 않고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인생을 고달프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독불장군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가 도와야만 현실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너와 내가 성립되어 가정과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조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여 돕고 살아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돕고 자식과 부모가 도우며 이웃과 이웃이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말하기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하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가 연합하여 살면서 서로가 도움을 주면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혼자 살면서 몸에 병들어 눕게 되는 것하고 둘이 살다가 병드는 것하고는 차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혼자 살면 돕는 자가 없지만 둘이 살면 도와주는 자가 있으므로 좋다는 것입니다.

 

2. 외로울 때에 위로가 됩니다.

 

본문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하였습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짐승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슬픔을 당하면 아내가 위로하고 아내가 슬픔을 당하면 남편이 위로해야 합니다. 그래야 슬픔을 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상대를 사모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땅의 모든 것을 사모하지만 영원까지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전 3:11). 그리하여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진정한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죄악이 관영한 이때에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4:15-18). 그렇습니다. 모여서 살면서 위로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3. 적과 싸울 때에 힘이 듭니다.

 

본문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삽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싸움의 대상자는 혈과 육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힘을 모아서 마귀들과 전쟁을 해야 합니다. 혼자면 힘이 없지만 둘이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싸워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가난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힘을 모아서 도와준다면 틀림없이 가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병과도 싸워야하며 마귀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서로가 힘을 합치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힘만 합친다면 이 세상 무엇과 싸워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힘을 합치면 싸움에서만 유리한 것이 아니고 모든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힘을 합쳐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한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하였습니다.

 

본문 : 전 5:2-7

 

제목 : 함부로 작정하지 말라

 

서론

 

사람은 기분에 따라서 좌우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쉽게 작정하고 실행하지 아니하는 일들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1-23)하였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무엇을 쉽게 작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 급하게 작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3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느니라\"하였습니다. 사람의 실수는 무엇이나 급하게 작정하고 실천하지 않는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급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생각하고 그 다음에 작정하여 빈틈없이 이행해야 신용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신용을 잃어 인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 앞에도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무엇을 작정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하여 신용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작정한 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본문 4-5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상대해서 거짓말을 하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도 아닌 하나님과 서원을 해놓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작정하고 이행하지 아니하는 것은 차라리 작정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작정하기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엥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0-22)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딸이 강간을 당하고 그 일로 인하여 많은 환난을 당하고 후에 다시 약속대로 벧엘로 올라갔습니다.(창 35:1-3).

 

3. 작정 후에는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6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제사장, 말 2:7)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마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하였습니다. 사람은 간사해서 자신이 작정해 놓고도 얼마 안가서 후회하는 일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 앞에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거짓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박을 한다든지 술을 마시고 돈을 내버리는 것은 후회할 일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헌금하기로 하고 작정한 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가 임직식을 할 때에 서약한 것은 더욱 잘 지켜야 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나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될 때에 서약한 것은 후회해서도 안 되고 후회할 성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잘 지켜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한번 약속을 했으면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저자는 말하기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같으니라\"(잠 25:14)하였습니다. 이는 약속하고 이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실망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날이 가물어서 비가 오지 아니하는데 구름만 끼었다가 벗어지면 농부들에게는 큰 실망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약속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본문 : 전 6:1-6

 

제목 : 소유하고 누리지 못하는 자

 

서론

 

세상에는 많이 가지고도 가난한 사람이 있고 없으면서도 부요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유하고 누리지 못하는 불행자라는 것입니다.

 

1. 부귀는 소유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본문 2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하였습니다. 은과 금이 산더미 같이 쌓였는데도 하나도 써보지도 못하고 눈으로 보기만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사람은 모으기 위하여 돈을 번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귀영화는 얻었는데 누리지 못하고 죽으니 이것도 헛것입니다. 옛말에 초년고생은 금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장래에 늙어서 누리기 위하여 저축하는 것을 위한 말인 줄 압니다. 그런데 많이 모으는데는 성공했는데 누리는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고생하다가 먹고 살 만하니까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우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누리는 복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만족하게 여기고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로 살면서도 누리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누림의 복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자녀를 소유하고도 낙을 누리지 못합니다.

 

본문 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몸이 매장되지 못하며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것보다 낫다 하노니\"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자녀가 없어서 한나 같이 우는 이들이 많은가 하면 자녀가 많아서 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녀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녀를 원수같이 취급하고 자녀가 없어서 고통하는 사람들은 자녀를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녀를 낳고 살지만 그 자녀들로 인하여 낙을 누리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로 인하여 그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도 불량한 자녀들로 인하여 근심하고 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야곱도 열 두 자식을 낳았지만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리는 복이 무엇보다도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자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3. 장수는 소유하고 낙을 누리지 못합니다.

 

본문 6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 아니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오래만 한다고 해서 복은 아닙니다. 낙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복입니다. 만약에 백년을 사는데 그동안 병들어서 대소변을 받아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와 같은 장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말하기를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그렇습니다. 80년을 산다고 해도 장수한 결과는 수고와 슬픔 뿐입니다. 야곱도 나그네 생활 백삼십년을 했는데 결과는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창 47:8-9). 그러므로 오래사는 것이 중요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땅에서 오래사는 것만으로는 복이라고 할 수 없고 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비록 많은 재산은 없지만 매일 같이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사는 것은 매우 큰 복이며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고 선한 사업을 하기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 장래에 좋은 터를 쌓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딤전6:17-19). 그 이유는 누리는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 전 7:1-4

 

제목 : 더 나은 것

 

서론

 

사람의 성품은 언제나 보다 더 좋은 것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최신 유행된 것과 값싸고 실용적인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누구든지 더 좋은 것을 싫어하지는 아니합니다.

 

1. 죽음이 출생보다는 더 낫습니다.

 

본문 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하였습니다. 이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출생하면 잔치를 베풀어서 즐기고 초상이 나면 모든 사람들이 애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죽음이 무엇이며 죽음 저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하여서는 깊이 연구도 해보지 아니합니다. 전도서 저자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나는 살아있는 산 자보다 죽은 자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전 4:2-3).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녀의 죽음이며 성도들과 영원한 쉼을 얻기 때문입니다.(계 14:13). 여하간 죽음은 무엇보다도 좋은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이제 새로운 세계의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 잔치집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본문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하였습니다. 잔치집에 가면 죽음에 대하여는 조금도 생각지 아니하고 먹고 마시며 춤추는 것만 생각하여 소돔성 사람들처럼 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가면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게 되면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되고 사색을 하다보면 진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삶이 언제인가는 저렇게 한 줌의 흙으로 변하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나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생각지 아니하고 세상 물질에만 급급하다 보면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가서 죽음을 생각하고 현실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낫습니다.

 

본문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하였습니다. 현대 철학은 애통하는 것을 실패와 고통과 사망의 산물로 보고 어떻게 해서라도 애통만은 피해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실패해서 우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실패와 고통과 사망을 미리 막고 예방하며 극복하는 방편으로서 애통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서도 좋아서 웃는다면 이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자식이 없어서 우는 울음이나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은 죄를 회개하며 우는 울음과 다른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 울었고(히 12:17)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울었습니다(마 26:75).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울음이 있지만 죄를 회개하면서 우는 울음이 값진 눈물이요(욜 2:12-14),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우는 울음이 값진 울음이며(렘 9:1),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우는 눈물이 값진 눈물입니다(눅 23:28). 그래서 웃음보다는 울음이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애통한 결과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기 때문이고(시 126:5) 위로를 받으며(마 5:4)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사 57:15)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히 5:7). 그래서 울음이 웃음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저주보다는 축복을 선택하고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며 육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을 택하여야 하고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택하여야 하며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을 택하여야 합니다. 여하간 더 좋은 것을 택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더 나은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본문 : 전 8:7-8

 

제목 :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서론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 신(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대담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복을 주고 병도 고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같이 군림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음을 시인하고 겸손하게 인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1. 장래일을 알 수 없는 일들입니다.

 

본문 7 \"사람이 장래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랴\"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장래일을 알지 못하도록 지어주셨습니다. 구원 문제는 성경을 통해서 알도록 하셨지만 세상 일은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저자는 말하기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언저자는 말하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런지 네가 알 수 없느니라\"(잠 27:1)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은 누구도 장래에 대하여는 알 수 없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래를 모르는 것이 정상이요 장래를 아낟고 하는 것이 비정상인데 장래를 안다고 하는 이들이 인기가 만점이고 모른다고 하는 이들이 무능한 취급을 받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들은 장래를 알아보려고 인간에게 매달리는 불신자 되지 말고(전 9:1, 10:14) 장래를 주께 맡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빌 4:6-7).

 

2. 생명을 주장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본문 8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므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주장하실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6:7)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좌우하시지 사람은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호흡은 하나님께서 시작하게 하시고(창 2:7) 끝나게 하십니다(눅 12:20). 그러므로 목사도 사람의 생명은 좌우할 수 없고 의사도 약사도 그 누구도 좌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생명이 십오년간 더 연장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독단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생들은 겸손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죽든지 살든지 주께 맡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본문 8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는 없으며 악이 행악자를 건져낼 수 없느니라\"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다든지 징계하시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풍랑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배를 육지에다 대려고 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요나가 고기 배속으로 들어가서 고생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고기에게 명하여 그를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고 받은 괴로움은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온역으로 인하여 많은 백성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저자는 말하기를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 그 도모(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가 소멸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하나님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본받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가서 피해야 합니다. 노아홍수나 소돔성이 망하는 것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소리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언제나 사람이지 하나님과 같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말한 것처럼 인생은 누구든지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과 같이 군림하는 자들은 대접과 존경을 받는데 정직하게 인간의 양심을 따라 겸손하게 생활하는 자들은 바보처럼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여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 전 9:7-10

 

제목 :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니다

 

서론

 

기독교를 잘못 인식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은 금욕을 해야 신령한 줄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그리고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8:8). 그리고 결혼하지 아니하여야 신령하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고전 7:9). 그래서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 기쁨으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본문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는 식물을 섭취할 수 있게 지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하였습니다. 단 먹지 말라고 하신 것만 먹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으라고 하신 것은 무엇이나 먹어도 죄가 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금식만 한다고 신령한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도 굶주렸을 때에 하늘의 천사가 먹을 빵과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호렙으로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농사 짓지 못하여 양식이 없을 때에 하늘에서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이는 인간들이 먹지 아니하면 죽는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느니라\"(고전 8:8)하였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딤전 4:4-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얼마든지 먹어도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 부부간에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남 일녀로 결혼을 하게 하심은 서로 도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헛된 날을 부부간에 행복하게 살아가라 하신 것입니다. 즉 아내와 남편이 아니면 재미없어 살맛이 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저자는 말하기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19)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고전 7: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내와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금욕만이 경건한 신자인양 우쭐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남편이나 아내가 각자의 도리를 못하면 가정 파탄을 몰고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딤전 5:8). 그래서 부부간에 행복하게 살아서 가정을 작은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3. 기쁨으로 일해야 합니다.

 

본문 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매일 먹고 놀면서 쾌락을 추구하라고는 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일하라는 명령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살후 3:10). 일을 해도 기쁨으로 해야 하빈다. 억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일하고 먹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엿새동안은 자신들을 위하여서 힘써서 일해야 합니다(출 20:9). 그 이유는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데 있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언제나 남의 밑에서 고용살이밖에 할 수 없고 부지런하고 알뜰한 사람은 고용인을 부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잠 12:24). 그러므로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딤전 5:6). 그리고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잠 23:20-21). 특히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해야 복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신 28:12). 기독교는 유행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엇이나 기도만 하면 하늘에서 복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일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금욕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먹고 마시며 타락하는 쾌락주의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적당하게 먹고 마시며 열심히 일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주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 전 10:16-20

 

제목 : 통치자를 저주하지 말라

 

서론

 

나라의 통치자를 잘 만나는 것도 그 국민의 복이요 잘못 만나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종교적으로 신앙인들을 탄압하면 신앙인들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더욱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폭군이 되어서 백성들을 괴롭히면 백성들은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아합과 느부갓네 살 왕과 같은 자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백성들은 죽지 못하여 살고 다윗이나 솔로몬같은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만 저주할 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서 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1. 불행한 국민이 저주합니다.

 

본문 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하였습니다. 그리고 \"게으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18-19)하였습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훌륭한 임금이 나와야 하고 훌륭한 신하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하는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축복하는 국민도 없고 다스리는 임금이 나아가 어린데 보필하는 신하들은 술에 취하여 노는데만 급급하면 그 나라와 백성들은 불행한 것입니다.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잠 11:11)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서로가 축원을 할지라도 저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왕을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정부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는 것이라면 순교를 각오라고 반대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왕만 저주할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왕을 세우는데 동참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그리고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햡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중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은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저주는 불행을 초래합니다.

 

본문 20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하였습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왕을 저주하며 역적을 모의하면 반드시 비밀이 새어 나가서 왕의 진노를 사게 되어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왕을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록 왕뿐만 아니고 누구라도 저주를 하면 저주를 하는 편에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저주가 그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라\"(시 109:17-20)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주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저주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단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는 해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하였습니다. 특히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 전 11:1-6

 

제목 : 장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론

 

사람은 누구나 장래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될 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임을 시인하고 하루 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게 바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1 \"너는 네 식물을 위에 덙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하였습니다. 던지라는 말은 아끼지 아니하고 너그럽게 남을 돕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말하기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욥 22:24-26)하였습니다. 장래를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이나 하나님께 바치고 사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닙니다(마 6:19-21). 쌓아두는 것이 자신을 위하여 저축하여 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다음에 도로 찾기 때문입니다. 물위에 던지라고 하신 말씀은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물위에 던지면 다시 찾을 수 없듯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시 찾으려는 심정에서 드리는 것은 좋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상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께 바치고 사는 것은 장래를 알지 못하는 인생들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2.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2-3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하였습니다. 전도서 저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하므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려면은 그래도 자신의 물질도 희생해야 하고 시간과 몸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은 욕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르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하였습니다.

 

3.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4-6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하였습니다.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 하나 일일이 따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일기를 예상하고 어떻게 곡식의 씨를 뿌리겠습니까? 씨를 뿌릴 시기가 되었으면 그 시기를 놓치지 아니하기 위하여 무조건 현재 좋은 일기면 뿌리고 보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지나 아니할까 비나 오지 아니할까 이것저것 생각하면 씨를 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사를 성취하시는 일을 인간들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씨를 뿌려놓고 보는 것입니다. 장래를 알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히 11:1-6). 그리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행치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롬 14:23). 사람은 무엇이나 하나님께 맡기고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빌 4:6-7).

 

결론

 

사람은 누구나 장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귀하게 여기고 몸도 마음도 물질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살아야 하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며 모든 것을 긍정적인며에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모든 것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본문 : 전 12:9-14

 

제목 :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서론 작성해 봅시다.

 

본문 9-12

 

 

1.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본문 13 \"잠 1:7, 9:10\"

 

 

 

2.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 13 \"신 28:1-3\"

 

 

 

3. 칭찬과 상 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 14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