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바울의 기도

[골로새서강해] 제2강 - 바울의 기도 (골 1:9-12)|(강해) 골 로 새
 
[골로새서강해] 제2강 - 바울의 기도 (골 1:9-12)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9절)

여기서부터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바울이 에바브라를 통해 들은 골로새 교회의 상황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상황,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 맺는 생활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다소 불안한 점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골로새 지방의 지리적인 원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은 늘 이방신들로 가득하고 기독교인들을 유혹하는 요소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곳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오늘 바울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 지 또 그 기도의 음성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1.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신령한 지혜와 총명”(9절)을 「공동번역성서 개정판」은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분명 “지혜와 총명”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오늘 예배를 드리러 갈까? 말까? 주말인데 산과 들로 갈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까?
이거뿐이겠습니까? 대학의 진로, 이사의 장소, 교회를 결정하는 일,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하기를 ‘우리는 양쪽이 천 길 낭떠러지인 조그마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선택하며 나아가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잘못 선택하면 우린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만큼 결단과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목양의 성도들은 성령이 주시는 은혜로 지혜와 총명이 있어 바른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 지혜와 총명은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게 되기를”(「공동번역성서 개정판」)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와 총명이야말로 참 지혜와 총명 아니겠습니까?

2.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지식이 지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행실을 지향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둘째,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이며
‘열매를 맺게’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는데 이는 성도의 삶이 계속해서 열매 맺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열매를 맺었으니 오늘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의 삶이 그러하고 오늘의 삶도 그러하며 내일의 삶도 열매 맺는 삶이어야 합니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과 더불어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의 구체화이며 실천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같은 의미일 수 있으나 전자가 후자보다 더 깊은 영적 성장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후자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지만 안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지식 적인 앎이 아니라 영적인 연합 말입니다.
흔히 내가 너를 알기를 원한다고 하는 표현은 친밀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10절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3. 하나님의 권능으로 강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11절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주께 합당한 삶, 그리고 열매 맺는 삶을 넘어 하나님의 권능을 골로새 교인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힘’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더듬어 올라갈 수 없는 초월적 영역에서 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의 예수를 일으킨 능력이요,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약한 자녀가 아니라 강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잘 감당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시련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에서 ‘견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은 정해진 목표 지점을 향해 고난을 무릅쓰며 정진하는 것을 뜻하는데, 경주자가 총력을 기울여 달려가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우리 말에 극기복례(克己復禮)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결국 \'견딤\'은 유혹과 저항을 물리치고 한 곳 목표만을 향하여 묵묵히 달려가는 것을 뜻하며. 또한 \'오래참음\'은 무거운 짐에 눌리거나 실패를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불굴의 투지를 가리킨다. 분명 \'견딤\'과 \'오래 참음\'은 즐거움과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기쁨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바로 ‘영광의 힘’ 곧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합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12절)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 ‘기업’은 곧 유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영토를 분배받았던 것을 육적인 기업이라고 말한다면,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분깃은 ‘영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하늘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11-12절 「공동번역성서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