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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강해] 제8강 - 주 예수의 이름으로 (골 3:12-17) “그러므로” 로 시작되는 오늘 본문은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사람”을 입었으니, 마땅히 이행해야 할 바가 있다는 결론을 소개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 를 직역하면, “택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사랑하심을 입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물론 그리스도 성도들이니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그 택하심을 입은 결과로, 그들은 거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영원히 입는 것입니다. 1. 다섯 가지 미덕 이제 본문은 기독교의 다섯 가지 미덕을 소개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긍휼\"이란 말은 직역하면, \"긍휼의 감정\"인데 인격의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불쌍히 여기는 열정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부요한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의 가련한 처지를 살피는 데 민감합니다. \"자비\"란 말은 성격의 인자함을 의미하는 데, 이런 성격은 위에서 말한 긍휼을 근원으로 하고 대외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겸손\"은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온유\"란 남에게서 손해와 방해를 받고도 격분되거나 원한을 품거나 반동하거나 복수하지 않는 것이고, 사람을 교훈하거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조급, 경솔, 조포(粗暴), 열광, 잔인, 속단, 흥분등과 정반대되는 인내, 시중, 조절, 포용, 침착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참음\"은 나를 괴롭게 하는 시험거리로 인하여 변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 있지만, 특히 남이 해하거나 혹은 은혜를 배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노하지 않고 변함없이 덕행(德行)을 계속함을 의미합니다. 2. 용납과 용서 13절 본문은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미덕(美德)의 실제적 적용을 말한 것인데,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의 적용으로서의 \"용납\"과, 긍휼, 자비의 적용으로서의 \"용서\"입니다. \"피차 용서하되\"란 말은 어떤 번역에 의하면, \"너희 자신들을 용서하되\"라고 합니다. 이 번역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뜻은, 골로새 성도들은 서로 용납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서 서로 용서하는 자리에 있어야 할거니, \"용납\"은 피동적이요 소극적이고, “용서”는 능동적이요 적극적입니다. 이러한 용납과 용서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로 완전하게 묶는 띠, 사랑 이제 이러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묶는 띠, 사랑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12절에 열거된 다섯 가지 덕도 중요하지만, 그것들 이상으로 더 중요하여 그것들의 기초를 차지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 피차간의 용납과 용서를 생산하는 다섯 가지 미덕(12절의 긍휼,자비,겸손,온유, 오래 참음)이 사랑의 띠로 결속(結束)되면(14절), 교회 안의 평화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골로새교회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평화를,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내주(內住)를 희망합니다. 4.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에서 여기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평화입다. 그런데 이제 그 평강을 이루시는 주님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그 평강을 이루는 자로 여기신 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곧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하나 됨의 선봉에 우리를 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선봉을 서게 하는 왕에게 감사하는 것처럼 오늘 말씀에서도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 감사의 표는, 그들이 이 부르신 목표(한 몸이 되게 하는 것)에 순응하여 서로 화합하는 것이겠습니다. 칼빈은 여기 \"감사하는\"이란 헬라 원어를 “유화(柔和)하는”으로 번역했는데, 그것은 친목적, 화합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5.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도 내주하면 우리의 영성은 풍성해집니다.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시련쯤이야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내주는 우리의 삶을 시와 찬송과 감사의 생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성을 더욱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여기 말한 “가르침”, “권면”.“찬송”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내주의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내주가 없으면 가르침이나 권면이나 찬양이 참되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불러서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입니다. 성도가 모든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주요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함이 아니고,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6. 주 예수의 이름으로 힘입어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이제 주님의 이름으로 힘입어서 우리는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합니다. 격려의 말을 하고 위로의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로 소망을 준다는 것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전하고는 싶은 데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가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온갖 듣기 싫은 소릴 들으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싶겠습니까? 누가 힘들여서 봉사하기를 원하겠습니까? 그 때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힘입어서 감당해야 합니다. 아니 힘이 나는 것입니다. 봉사해 본 사람만이 그 속에 누릴 수 있는 은혜와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고 복음을 증거한 사람만이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l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서 하는 말과 행동은 우리교회를 살리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