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강 주께 하듯 하라

[골로새서강해] 제9강 - 주께 하듯 하라 (골 3:18-25)|(강해) 골 로 새
[골로새서강해] 제9강 - 주께 하듯 하라 (골 3:18-25)


오늘은 제 2차 전도폭발 훈련 수료의 날입니다.
2004년 년 초에 우리는 수진 마을 전도와 기타 전도 대회를 갖으면서 몇 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훈련된 전도 대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행하였던 전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나름대로 전도의 효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도 방법은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일에 불과 했습니다.
70인 전도대가 모였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일반 전도대원과는 달리 아파트 전도를 하며 벨을 누르고 우리가 준비한 전단지나 목양 신문 등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70인 전도대도 홍보물을 나누어 주고 돌아 일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제가 2003년 10월 중순부터 선교부를 맡고서 5개월이 조금 넘어섰을 때입니다.
먼저 선교부에서 실시한 것은
새 신자 양육부서를 조직 개편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16명의 양육위원이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전도 훈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교인들과 함께 전도하며 얻은 귀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걱정이었습니다.
함께 공감하며, 함께 은혜 나누며, 함께 전도 할 수 있는 전도 훈련 프로그램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진우 전도사와 의논을 하던 중에
전도 폭발 훈련교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교제를 가져오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달에 걸쳐 공부하고 검토하고 검토하였습니다.
결론은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OK사인을 주셨습니다.

1기생으로 4명을 선발하여 실험적으로 모델을 삼고 정식적으로가 아닌 샘플로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2기생 8명을 모집하여 오늘 수료 예배를 드림에 하님께 감사드립니다.
49명에게 복음제시를 하고 70% 이상의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병원 전도, 노방 전도, 공원 전도, 아파트 전도 등의 훈련을 거듭하였습니다.
결과는 우리들이 생각한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3 기생들이 접수를 하고 훈련을 받게 됩니다.
수요일에 8명, 주일에 4명 특별히 남선교회 회원들이 이 훈련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선교회 회원들은 이미 토원 약수터 전도를 하고 있는데 그 훈련의 장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와서 말씀 드립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도와 관련 시켜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내, 남편, 자녀, 아비, 종….. 정말로 가까운 관계입니다. 이 관계야 말로 삶의 근간을 이루는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문제는 이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고부간에 갈등,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으로 교회에 가지 않게 다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이 다니는 교회, 저런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도하려면 얼마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자녀가, 남편이, 아내가,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직장 동료가 믿음 생활하지 못하고 있다면 누구의 잘못입니까?
내 잘못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누가하는 것입니까?
전도대원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어지럽게 꼬여 있는 이해관계를 내가 풀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인도되어 질 수 없습니다.
18절에서 22절의 내용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을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형제, 동료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주님을 대하듯 한다면 그들도 하나님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럴 때 복음을 전한다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기업의 상” 이 문구 역시 노예들을 상대한 말입니다. 노예들이 “육신의 상전”에게서는 종의 대우를 받고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녀의 명분으로 장차 기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업을 받는 자는 그 집 노예가 아니고 언제나 그 집 자녀일 것입니다. 성도가 내세에 들어가서 받게 되는 영생과 그 영광을 가리켜 “유업”혹은 “기업”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1) 거저 받는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자녀의 처지에서 받는 영생의 복은 그의 어떤 공로와의 교환 조건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세에 그 성도들에게 주실 영생은 불변하는 것입니다(벧전 1:4-5). 자식이 그 아버지에게서 받는 기업은 일시적 상급이 아니고 영구한 것입니다(요 8:35).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 문구는 노예들의 봉사의 의의(意義)를 결론적으로 밝힙니다. 그들의 봉사가 직접으로는 인간을 상대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상대한다. 어떤 학자는 여기 “섬기느니라”를 “섬기라”란 명령사로 번역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불의의 보응” 이것은 그 행한 불의에 해당한 벌을 가리킵니다.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여기 \"외모\"는 모든 외형적 차별들이 인종, 지위, 빈부, 귀천 등의 차별입니다. 끝날의 심판 때에는 지위가 높았던 사람이라고 해서 받을 형벌을 면할 것이 아니며, 혹은 낮은 지위에 있었다는 이유로써 마땅히 받을 정죄에서 방면(放免)될 바도 못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오직 각 사람의 소행을 따라서 실행될 것입니다.

오늘 목양의 성도들이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 귀한 상급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