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벗어 나는 생활
죄에서 벗어난 생활| 롬 6:6,7, 11, 14
1. 성경에서 믿는 이에게 정하신 생활은 어떤 생활인가요?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생활을 해야 정상적인가요? 성경의 말씀에 의하면 요한일서 3장 9절에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범치 아니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즉 정상적인 하나님의 자녀라면 죄를 범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10절은 더 나아가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로마서 6장 17-19절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라고 하며 6:22절은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주 예수님도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일단 예수를 믿으면 죄에서 벗어나며 거룩한 생활을 살 수 있음을 말해주는 구절들입니다.
2. 그러나 오늘날 실제적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그러한가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여러모로 보며, 우리 자신을 보더라도 한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님을 봅니다. 성경 로마서 6장 14절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일단 생수를 주시면 영생하도록 솟아난다고 했는데, 진정 그렇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가요? 그렇게도 말하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던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했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3. 그러면 무엇이 죄인가요?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죄란 내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성질내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데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미운 마음이 들면 그것이 죄입니다. 내가 더러운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더러운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시기가 없고 탐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시기가 생기고 탐심이 올라오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라고 생각하는 그 죄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로마서 5장 마지막 부분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습니다. 어떤 죄가 있다해도 보혈의 공로는 그 죄를 다 씻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4.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난 생활을 할 수 있는가요? 어떤 분들은 아침에 많이 기도하고 말씀을 많이 읽고 나서면 죄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말씀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매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많이 읽고 기도한다해도 죄의 권세는 때로 성도들을 넘어뜨립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그 능력으로 죄를 이길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되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 내 자신의 체험으로도 아침에 좋은 기도와 말씀과 감동이 있었지만 그 날 형편없이 넘어지는 경우도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성도들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5. 이에 대하여 로마서 6장은 우리에게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롬 6: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죄를 지어도 은혜는 더 하겠지만 어찌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우리도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롬 6:5-8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해답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된 것은 출생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아예 죄악으로 잉태한 사람이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분의 피는 우리 죄인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만 흘리신 것이 아니라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분이 돌아가실 때 우리를 포함하여 함께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함께 돌아가셔야 했나요?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출생으로 죄인이 되었으니 죽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짜여져 태어났으니 어떻게 해도 우리의 죄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그분이 돌아가실 때 우리를 모두 그분 안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 6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리고 7장은 더욱 말씀하십니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은 자만이 죄에서 벗어난다는 놀라운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어야만이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성경은 여러분의 옛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보지 못하셨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이미 죽으셨기에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죄가 십자가의 피로 사해진 것이 사실이듯이 사실입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 7장에는 아직도 죄가 속에서 살아나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죽었다고 알지만 율법이 우리를 속여서 우리가 힘쓰게 만들기 때문에 다시 육체가 고개를 들게 되고 우리는 다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 7장이 필요한가요? 그것은 우리가 6장에서 죄에 대하여 죽었지만 7장에서 율법에 대하여도 죽임을 당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7장 4절은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처럼 율법에 대하여도 죽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7. 7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왜 죄를 짓게 되는가? 죄가 우리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15-20), 그 죄는 우리 속에서 계명이 올때마다 우리를 속이고 그것으로 우리를 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11절). 바울 사도는 죄에 대하여 한 법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 속에 죄라는 것이 다만 세력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계속 죄를 이겨보려고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나요? 우리의 마음의 법은 약해서 죄의 법에 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결국은 죄를 짓고 말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질낼 수 밖에 없고, 탐심과 시기를 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7장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죄는 더욱 우리를 죄를 짓도록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8. 그러므로 7장에서 바울은 죄의 법을 자기가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절규를 하는 것이 나옵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것이 죄에서 벗어나는 첫째 음성이라고 봅니다. 누구든지 죄를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것을 알았을 때에 벗어날 길이 있게 됩니다. 여기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없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9.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 죄를 이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만 아는 것도 큰 복음이고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해주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 이미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6장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었다고 하셨고, 7장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죄에서 벗어난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십자가의 보혈로 이미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어진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6장 14절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라고 한 것입니다.
11.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여러분은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가령 여러분의 성질이 대단해서 이길 수 없는 상태라고 합시다. 여러분은 그 성질 때문에 이겨보려고 기도도 하고 여러 가지 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질을 이기는 방법이 성질이 날 때 조용히 누르고 화장실에 가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성질이 가라앉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질은 화장실에 가기 전에 먼저 폭발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또 주님의 이름을 부를 마음이 생기지를 않고 성질 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부르고 싶지를 않아집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나도 젊은 그리스도인 시절 이 문제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씀을 깨닫고 해방을 얻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씀을 깨닫고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모릅니다. 사도바울은 도리어 고린도 후서 12장에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명의가 한분 있다면, 또 여기에 굉장한 질병의 환자가 있다면 그 환자의 질병은 그 명의의 능력을 한 번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병자도 다 고치셨듯이 지금도 주님은 여러분 속에서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하십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깨닫는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놓는다는 말을 합니다. 영어로 let go입니다. 그냥 두세요. 죄를 이기는 일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항복이요, 이것이 손을 놓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지 못할 일을 왜 하려고 합니까? 예를 들어 500kg 짜리 역기가 있다면 여러분은 들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여러분의 힘으로는 들어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12. 복음은 무엇인가요? 믿음입니다. 단순한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어떤 신학교 학장님이 이 구절로 괴로움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자기는 아직도 죄가 자기를 주관하고 있는데, 성경은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한다 하니 무엇이 사실인가? 내 체험이 사실인가 성경이 사실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학장님이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말씀을 믿지 못했구나 하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참된 것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할 수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주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13. 또한 적극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 안에 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과거에 십자가에서 못박히사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사해주셨지만 지금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8장에 주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늘 돌보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늘 돌보아 주시는가요? 기도할 때마다 돌보아주시나요? 아닙니다. 죄인이 죄를 짓는 것이 죄와 사망이 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의 성령도 법으로 주셔서 죄를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고아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함은 있는데 부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주셔서 늘 성령님이 법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밤이 오고 낮이 오는 것은 법으로 된 것입니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 일하는 것도 법입니다. 자려고 애를 써야 자는 것은 병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을 법으로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죄를 짓고 죽게 되는 것은 법으로 다 적용됩니다. 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법이 있습니다. 8장은 보혜사 성령의 돌봄과 대책의 장입니다. 그 대책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속에 죄와 사망의 법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욱 힘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어서 우리를 이미 해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방법은 이렇게 근원적이고 완전한 것입니다.
13. 누가복음 18장 18-27절 말씀에 의하면 한 관원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관원은 자신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청년은 그만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여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그가 모든 것을 팔 수 없는 사람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주님이 그 청년에게 원한 것은 자신의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많은 죄를 해결했지만 어려운 한 두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해주실 수 있는 한 분이 계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기적을 행할 기회가 한 번 주어진 것으로 알고 기뻐하면 됩니다. 여러분 속의 주님은 그렇게 여러분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 하나 돌보아 주기 위해 살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서 고민하는 분이 계신가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요? 여러분은 그에 대하여 아무 상관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개선해보려고 하는 순간 다시 죄는 짓게 됩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 계시므로 당신만 손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버둥대지 말고 완전히 힘이 빠질 때 하나님의 성령과 생명은 여러분을 구원해주십니다. 오늘 손을 내려놓기만 하고 주님의 하실 수 있음을 믿기만 하면 오늘 벗어나게 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미 여러분을 해방한 것을 믿으시면 됩니다. 이 사실만 알고도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을 얻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