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긴 시일따라
제목:섬긴 시일 따라
본문:(호2:8-13)
영적적용:신앙과 누림은 비례함
요지설명
*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1. 말씀의 실재를 겅험치 못함
2. 성령의 능력을 소멸함
3.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은 행실이 사라짐
4. 인간의 추함이 드러남
5. 은혜도 내게 은혜가 안됨
6.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버림
7. 하나님을 멀리한 만큼 꼭 그만큼 경험함
설교
오늘은 \"섬긴 시일 따라\" 이런 제목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겨 벌받을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경고입니다. 8-9절에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랬습니다.
여기 \"그러므로\" 라는 용어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용어는 이스라엘의 배역의 그 결과를 시사해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빼앗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 말씀의 실재를 경험치 못하게 됩니다.
9절에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랬습니다.
여기 내 곡식을 도로 찾으시겠다에서 곡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빼앗으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씀 망각증을 가리키는가?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실재를 경험치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성경의 놀라운 말씀들이 나와 아무 상관없이 느껴지게 됩니다. 지켜주신다 하셨는데 지켜주신 것 같지도 않고, 사랑해 주신다고 했는데 사랑해 주신 것 같지 않고, 위로해 주신다 했는데 위로도 없고, 채워주신다 하셨는데 채움도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허상처럼 내게 다가옵니다.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이 살아 역사하며 내게 적용될 말씀이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이 다가옵니다. 이것이 주신 곡식을 도로 찾으신다는 뜻입니다.
2. 성령 충만과 능력을 잃게 됩니다.
다시 9절에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그랬습니다.
여기 새 포도주는 신약에서 성령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시겠다는 것은 성령 충만을 거두어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성령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51:11에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기도했습니다. 아론도 모세를 비방하다가 성령이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전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론에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멸되는 은혜가 있는가 하면 소멸되지 않는 은혜가 있습니다. 8절 보면 기름이 나옵니다. 이 기름은 감람유로서 이것도 역시 성령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새 포도주만 거두신다 하셨지 기름을 거둔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의 은사와 능력과 그 임재의식은 거두어 가셔도 우리를 인치시고 중생시키시고 생명으로 함께 하시는 그 구속의 은혜는 거두지 않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 따라가면 성령의 은사와 능력과 그 임재의식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3.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와 행실이 사라집니다.
다시 9절 하반절에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양털과 삼은 의복으로서 성도에게 입혀지는 의의 상징입니다. 여기 양털은 겨울옷이요, 삼은 여름옷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도 겨울옷과 여름옷이 있어요. 그것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아는 전천후 신앙입니다. 우리 성도들 이런 전천후 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을 빼앗으신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아름다운 그 행실이 사라짐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히9:14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입니다. 양심으로 죽었다는 뜻은 범죄할 때 양심이 가책되어 성령이 소멸됨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행실들이 사라짐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의 행실도 기쁨의 행실도 사랑의 행실도 절제의 행실도 온유의 행실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집니다. 이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는 나의 죄를 속하신 보혈 공로에도 서야 하지만 둘째는 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지원을 받아 더 확신에 설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이 가능해집니다.
4. 인간의 추한 것들이 밖으로 드러납니다.
10절에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여기 수치는 범죄한 죄악의 상태를 시사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자기 몸을 무화과 잎으로 가렸습니다. 즉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된 본질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아주 추한 인간의 근성 본질 전의 내 모습 이게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나오려고 합니다. 성령으로 살아지지 않고 육체로 살아지려고 합니다. 이게 다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입니다.
5. 좋은 은혜의 잔치도 나에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11절에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했습니다.
이상의 절기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내신 모든 은혜와 축복의 절기입니다. 객관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예표요, 주관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주시는 다양하고 충만한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폐하신다는 것은 그러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멀리 떠나면 하나님께서 온갖 은혜의 잔치를 베풀어주시는데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씀에서 은혜를 받는데 나에게는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어 있고 겸손하면 작은 일에도 혹은 박해를 받아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잘못되어 있으면 예수님이 오셔서 설교하시고 안수하셔도 은혜가 오지 않습니다. 대신 헛생각만 꾸역꾸역 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6.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사라집니다.
12절에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여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수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멀리 하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사라집니다. 영의 복만이 아니라 육의 복도 그렇습니다.
7. 그런데 여기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가까이 한 만큼 그렇게 하십니다.
13절에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이 말씀에서 발견되는 원리는 정비례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만큼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많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만큼 은혜를 누릴 것이고, 그 만큼 패역했다면 그만큼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믿음대로의 원리입니다.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성화와 축복은 노력한 만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바꾸어 생각하면 모든 은혜의 복음으로 다가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가까이하면 말씀의 실재를 경험합니다. 성령 충만과 능력을 받습니다. 성령의 열매와 온갖 축복과 형통이 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영육 간의 환경은 우리의 영적 삶에 비례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세속과 안일에 빠져 있다면 회개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비한 모든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