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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에 시작하여 약 2달에 걸쳐서 호세아서와 요엘, 아모스 서를 상고하겠습니다. 호세아는 기원전 700년경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었는데 북 왕국인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남 왕국에서는 잘 알려진 이사야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했던 예언자 미가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1을 보면 호세아는 50-60년 간 활동을 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음란하다고 해서 고멜을 상상할 때에 창녀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미인이고 재치 있고 재미를 위하여 사는 소위 끼가 있는 여성. 뭇 남성들이 혹할만한 여자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호세아에게 3남매를 낳아주었는데(2-9절) 첫 아들은 호세아 아이인 것 같은데 다음에 낳은 딸과 둘째 아들은 이미 호세아의 아이가 아닌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첫 아들을 낳을 때에만 호세아에게 아들을 낳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고멜과 결혼하려고 하셨을까요? 예언자 호세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예언 활동을 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일종의 계약입니다. 일생동안 서로만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이 계약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계약의 관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보겠다는 계약을 모세를 통하여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계약을 저버렸을 때에 하나님의 느끼는 슬픔과 아픔과 배신감과 분노를 호세아가 이해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음란한 고멜과 결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Ⅰ. 하나님은 감정이 있으시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알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은 감정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태산처럼 거대하고 든든하지만 감정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이 있다면 분노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신다는 생각을 잘 못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감정을 가지셨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뿐더러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뻐하신다는 것은 더 믿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크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미미한 작은 존재라는 의식에서 나온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거대한 하나님이 나같이 미미한 존재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슬퍼하신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 가운데에 ‘Thank you.”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말이지만 어린 자녀가 “Thank you, mommy.” 혹은 “Thank you, daddy.”하면 부모의 마음은 녹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자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실 수가 있습니다. 스바냐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인하여 기뻐하신다고 노래하였습니다(습 3:17).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집회를 잘 인도하고 올 때에 하나님의 기쁨을 느낍니다. “영기야 잘 했다.”라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특히 남을 용서하거나 용서를 빌었을 때에 하나님의 기쁨을 느낍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느끼거나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고 느낄 때에 용서를 하거나 용서를 빌고 나면 억울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억울한 기분을 극복하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목장 사역이 힘듬에도 불구하고 목자들이 기쁨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쁨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멸망으로 향하던 한 사람이 영접 헌신을 한다든지 침례를 받았을 때에 느끼는 하나님의 기쁨을 같이 맛보기 때문에 에너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기쁨을 같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할 때에 특히 어려운 순종을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어려운 희생을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같이 누리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주를 위해 한 일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항상 어깨를 수그리고 아래를 보고 슬픈 얼굴을 하면서 자시 비하를 하는 것이 거룩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쓸모없는 저희들을 사용하시고 별 것 아닌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였을 때에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 어려운 순종을 하였거나 주님을 위해 어렵게 섬겼을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 날 잘했지요?”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같이 누리려 하는 노력이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슬퍼하신다.
하나님은 감정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슬퍼도 하십니다. 나사로 무덤 앞에서 우신 주님(요 11:35)이 바로 하나님의 슬픔을 구체화 시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절망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가지신 분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녀가 대한 입시에 실패하여 낙망하고 있을 때에 사실 부모의 마음은 터질 것 같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의 부모의 마음은 본인보다 훨씬 더 아픕니다. 더구나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낙망하거나 절망하면 하나님의 슬픔은 더해집니다. 이러한 일이 생겼을 때에 아파하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서 절망하는 대신에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Ⅱ. 사역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야한다.
하나님은 호세아가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심정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배신감과 서글픔과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사람을 같이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고멜과 결혼하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질 때에 사역이 효과적일 수가 있습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의무감에서 하는 전도와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향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갖고 하는 전도에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상담도 그렇습니다. 의무감에서 하는 상담과 행복하게 살아야 할 부부가 갈등 가운데에 있을 때에 느끼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갖고 상당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효과적인 사역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사역을 하여야합니다.
제가 가정 교회 사역을 제법 잘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갖게 해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교회에서 분쟁이 생겨서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교회 건물 2층에서 장로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1층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었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건물 소유의 문제로 패가 갈려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교회 뜰에서 몸싸움을 벌였나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속에서 통곡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빈축 거리가 되어 하나님에게 수치를 심어드린다는 사실에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기쁨을 심어드리고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드릴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가 가정 교회를 시작하게 만들었고 가정 교회 전파에 혼신을 다하게 만듭니다. 사역에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진정한 사역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같이 느낄 수 있어야합니다. 시청각 사역을 하는 분들도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름다운 예배가 드려졌을 때에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기쁨을 같이 누리는 마음을 갖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러할 때에 열매가 있거나 없거니 기쁨을 갖고 섬기게 될 것입니다. 영아 유아부를 섬기는 분들도 아기를 본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린이들이 잘 되어 모세와 다윗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소원을 갖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러할 때에 하나님의 기쁨을 같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Ⅲ. 우상을 경계하여야한다.
2:8에서 하나님은 탄식을 하십니다. 역사적으로 여로보암 시대는 북 왕국의 전성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풍요함을 허락하시니까 주신 금은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그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그것을 우상으로 만드는 성향은 지금도 많이 발견됩니다. 우상이라고 하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골 3:5).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재물을 축복을 주시면 주신 재물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의 소원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버는 재미, 쌓이는 재미에 빠져서 재물이 우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종종 봅니다. 질병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에게 간구하여 하나님이 고쳐주시니까 건강을 갖고 이웃과 주님을 섬기는 대신에 건강 유지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건강을 우상으로 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신 것을 거두어가십니다(2:13). 우상으로부터 하나님에게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2:6-7).
우상이란 만족을 주지를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바람둥이 남자가 여자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람둥이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데리고 놀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걷어찹니다. 고멜도 다른 남자와의 재미를 찾아서 신실하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호세아를 버리고 집을 나갔습니다(2:5). 그러나 나중에 나오지만 남자들에게 노리개 노릇을 하다가는 마침내는 창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상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약속합니다. 돈을 약속하고 성공을 약속하고 행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우상을 좇아가서 얻어지는 것은 실망 밖에 없습니다.
Ⅳ. 일이 꼬일 때에는 하나님에게 돌아오라.
그러므로 우리도 일이 꼬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야합니다(2:9). 사업을 해도 일이 될 듯 될 듯하면서 꼭 막판에 가서 꼬입니다. 가정에서 부부나 자녀 관계도 해결이 된 듯 싶으면 또 문제가 생기고 해결이 된 듯 싶으면 또 생깁니다. 일이 꼬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첫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까? 첫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회개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잊지 못하셔서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축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 때에 풍요함을 약속하셨습니다(2:21-22). 하나님께서만이 진정한 행복과 풍요함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사 55:1-2).
Ⅴ. 축복이 우상 되지 않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돌아오는 것도 하나님이 반기시지만 그러나 우리 쪽으로는 아예 주신 축복을 잃지 않아야하겠습니다. 복에 복이 더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를 하면 됩니다.
1. 영성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사업이 잘 안 될 때에는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아니하고 목장 모임도 빠지지 아니하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을 허락하시면 모임 참석도 게을러지고 기도도 게을러집니다. 맡은 사역도 내어 놓습니다. 축복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축복을 받으면 더 받을수록 더 극기와 자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 시간과 말씀 읽는 시간을 더 철저히 지키고 전에는 주일 예배를 가끔 빠졌더라도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을 것을 결심하여야합니다. 전에는 일이 생기면 목장 모임에 결석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목장 모임 참석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합니다. 이것이 축복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는 비결입니다. 우리 교회 목자나 특히 집사님들 가운데에는 축복을 우상으로 만들기 않고 복에 복을 더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영성관리를 철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2. 축복을 섬김의 도구로 사용한다
축복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주신 축복을 이웃과 주님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여야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한마디로 섬기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으러함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잘 섬기라고 풍요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축복을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여야합니다. 물질을 주셨으면 이웃과 주를 위하여 쓰고 영향력을 주면 이를 이웃과 주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암 치료를 받기 위하여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분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료 받기 위하여 새로이 오신 분을 심방하고 음식을 해다주고 돌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을 섬김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에 절대 축복이 우상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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