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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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 목사주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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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 사람 : 누가
·기록한 연대 : 주후 62년 이전
·기록한 장소 : 로마
제 1 장 예고
(대 지)
一. 서 론(1-4)
二. 세례 요한의 출생예고(5-25)
三. 예수님의 탄생예고(26-38)
四.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함(39-45)
五. 마리아의 찬미(46-56)
六. 세례 요한의 탄생(57-66)
七. 사가랴의 찬송(67-80)
(본문강해)
一. 서 론(1-4)
. 1:1-2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말씀의 목격자 요한복음1:1에 \'말씀\'은 예수님이라고 했으므로, 이 말은 예수님을 목격한 자를 가리킨다.
일꾼 된 자 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그 말씀을 친히 들은 자들이 많이 있었고, 또 그들이 전하여 준 것을 사실대로 기록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1:1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였다. 이렇게 기록한 것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에 대한 내력을 저술한 자가 많다는 것이다. 본서를 기록한 누가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자도 아니요, 주님의 열 두 제자 중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가 예수를 믿고, 사도 바울의 수종자가 되어서 듣고 배우고 살핀 바를 기록한 것이다.
. 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기록할 때 첫째, 근원부터 살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의 출생부터 기록하였다. 둘째, 자세히 살펴 기록하였다. 누가는 모든 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셋째, 미루어 살펴보고 기록하였다. 미루어 살핀 의 헬라 원어 (파라콜루데오)는 \'가까이 따라감\'의 뜻으로, 연구자가 그 뜻을 그 사실에 가까이 연접(連接)하여 알아봄으로 확실히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누가는 이와 같이 처음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서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복음)에 나오는 170개의 이야기 중 48개는 누가복음에만 있고, 다른 복음서에는 없다.
우리도 진리에 대하여 대강 강령만 알지 말고,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서 자세히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17:11에 베뢰아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성경을 상고하였기 때문에 귀하다고 하였다.
누가는 이 글을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써 보내었다.
데오빌로 는 본서의 수신자인 동시에 사도행전의 수신자도 된다(행1:1). 이로써 본서와 사도행전의 기자가 동일인(同一人)이며, 곧 누가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데오빌로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또는 \'하나님의 친구\'로 모든 성도를 다 포함한다는 설이 있으나, \'각하\'라는 직명이 붙은 것을 보아 개인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각하라는 말은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붙여 준 호칭이다. 누가는 높은 관직에 있는 데오빌로에게 그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누가 복음을 써 보낸 것 같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누가와 같이 상대를 존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해야겠다.
차례대로 순서대로 또는 체계적으로 써 보내는 것을 말한다.
. 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데오빌로는 이미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배워서 알고 있었으나, 누가는 그에게 좀더 확실하고 자세하게 근본적인 것을 알게 하려고 본서를 써서 보내었다. 이미 복음을 받아 알고 있는 자에게도 좀더 자세하게, 좀더 깊이 깨닫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복음을 믿고, 진리를 안다고 해도 깊은 진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복음 진리를 자세하게 깊이 알지 못하는 신자는 부리가 깊이 박히지 못한 나무 같아서 바람이 불면 넘어지기 쉽다. 그러므로 좀더 깊이, 좀더 자세하게, 좀더 근본적인 것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二. 세례 요한의 출생예고(5-25)
.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헤롯은 대헤롯을 말한다. 그는 에돔 자손으로 주전 37년부터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해까지 유대의 분봉왕으로 있던 폭군이었다.
아비야 반열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을 다윗 때에 24반열로 나누어 1년에 2회 성전에 들어가 1주간씩 봉사하게 하였다. 아비야 반열은 24반열 중 제 8반열이었다(대상24:7-19; 대하8:14). 사가라는 아론의 자손으로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도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이었다.
. 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의인이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이다. 그들은 또한 행위 면에서도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 같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리키고, \'규례\'는 의식적인 율례와 제도와 법칙을 말한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성경 말씀(구약)을 잘 순종하여 하나님을 성기고, 율법적으로 흠이 없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시켜 귀하게 사용하신다.
. 1: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그들은 나이가 많도록 무자하였다. 무자한 자나 고자라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신다(사56:3-7 참조).
. 1:8-9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 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 분향하고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 24 반열은 6개월에 한 반씩 그 반의 순서대로 교체가 되어 1주간씩 성전에서 봉사하였다.
제비를 뽑아 한 반열 안에도 제사장들이 많으므로 제비를 뽑아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봉사하는 6일간 매일 4회씩 제비를 뽑았는데, 아침 첫번에 뽑힌 제사장은 제단을 청소하고 불을 준비하고, 두 번째 뽑힌 제사장은 촛대와 향단을 청소하고, 세 번째 뽑힌 제사장은 향단에 향을 피우고, 네 번째 뽑힌 제사장은 제단에 제물을 바친다. 제사장의 총수는 2만 명이나 되므로 일생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제사장도 많았고, 한 번 뽑힌 제사장은 다시 뽑힐 수 없었다고 한다. 사가랴는 성소의 향단에 분향하는 직무를 행하도록 제비가 뽑혔다.
. 1: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향단에 향을 피워 향연을 하나님 앞에 올리는 동안 모든 백성은 밖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린다. 분향하는 성소는 지성소가 아니고 첫 성소이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 백성들은 그 제사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위하여 기도를 드린 것이다. 제사장과 백성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 더욱 잘 상달된다.
요한계시록8:4에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고 하였다. 여기 향연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향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올라간다. 오늘날도 우리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향기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교역자와 성도가 서로 협력하고, 마음과 정성을 합하여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향연이 상달 되도록 항상 힘써야 된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서 그 향연을 받으시고 응답해 주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아간다.
. 1:11-12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그 때에 주의 사자 즉 천사가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서 있었다. 우편은 요긴한 자리이다. 천사를 본 사가랴는 놀라며 무서워하였다. 그것은 예기치 않았던 일이 갑자기 생겼기 때문이다.
. 1: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천사는 무서워하는 사가랴에게 먼저 무서워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안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사가랴의 간구는 무엇이었을까? 사가랴는 그 때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기도했을 것이며, 사적인 것이나 자기 유익을 위하여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면 그것은 국가를 대표해서 외국에 나간 사신이 그 나라 왕에게 사적(私的)인 것을 구한 것과 같다. 의인인 사가랴가 그 때 사욕으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간구했을 리가 없다. 그는 반드시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간구했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를 속히 보내 주시기를 간주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간구함이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리스도도 보내 주고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요한도 보내 주시겠다는 것을 천사를 보내어 알려 준 것이다.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요한\'은 여호와의 총애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미리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은 것은 이름 자체를 중요시 한 것이 아니고, 그의 인격이 여호와의 총애를 받는 자가 되겠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인격이 바로 되지 못하면 좋은 이름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신앙 인격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출생하게 되므로 그 부모도 기뻐하고, 모든 사람이 기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오면 불원간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소개받아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겠기 때문이다.
. 1: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여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이다(마태복음 강해서11:11 해석 참조).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선구자의 역할을 하겠기 때문이요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겠기 때문이다.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구약 시대에 \'나실인\'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았다. 나실인은 일주간 하나님께 몸을 바치면서 포도주나 독주를 입에 대지 않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구별된 생활을 한다(민6:1-14).
삼손, 사무엘 등은 일생동안 나실인으로 하나님 앞에 바친 바 된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나면서부터 일생동안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는 나실인이 될 것을 가리킨다.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도 일생동안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몸 바치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산 몸이 되었다(고전6:20). 따라서 성도는 항상 몸으로써 하나님 앞에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또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무엇에나 도취되지 말라는 뜻이다. 요한계시록17:1에 음녀의 포도주에 온 세상이 취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 세상주의에 도취된 것을 가리킨다. 무엇에든지 도취되는 생활을 하면 거기에 마음과 시간과 정력과 재물과 힘을 다 빼앗겨 믿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 도취되지 말고 푯대 되시는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영적 생명이 산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것은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이요, 진리 충만이다.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자기 사명을 완성하게 되었다.
. 1: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신령한 이스라엘 백성, 즉 택한 백성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회개 운동을 일으켜 많은 택한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다니엘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떠나 옳은 데로 돌이키게 하여 하나님을 믿게 한 사람이 복이 있으며, 이미 믿는 자를 바른 진리로 가르쳐서 믿음의 길로 바로 인도하는 자도 복 있는 자이다.
. 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이 구절은 말라기4:5-6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엘리야가 하던 일, 즉 회개 운동을 일으켜 모든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였다(마17:10-13).
엘리야의 심령은 첫째, 죄를 미워하는 심령이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세벨의 꾀임을 받아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것을 아주 미워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서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심령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기도로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제단을 태울 때에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셋째, 인간의 윤리를 바로 세우는 심령이다.
말라기4:6에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식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리로 돌이키고 자녀들은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고 순종하도록 들이켜서 인륜과 도덕이 바로 되게 하는 것이 엘리야의 심령이다. 인륜과 도덕을 바로 지키려면 먼저 회개하고 들이켜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운동이 필요하다.
성도는 자녀들이 아무리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거역하더라도 그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이켜야 되고, 또 자녀 된 자는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켜서 순종하도록 해야 한다. 교인들의 마음은 교역자에게로, 교역자의 마음은 교인들에게로, 제자의 마음은 선생에게로, 선생의 마음은 제자에게로 돌이켜 서로 사랑하여 인간의 윤리가 바로 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아무리 잘못할지라도 죄는 미워하고 그 사람은 사랑하면서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바로 해 나아가야 모든 것이 바로 되어 나간다. 이 일은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 1: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사가랴가 자신이 늙은 것과 아내도 나이 많아 생리적으로 자녀 생산이 불가능한 것만 생각하고,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 알리요는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겠습니까\'라는 뜻이다.
. 1: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가브리엘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장이고, 미가엘은 싸우는 천사장이다. 세상 나라 관리에 비유하면 가브리엘은 문관(文官)이고, 미가엘은 무관(武官)인 셈이다. 사가랴가 인간의 생리적 조건만 생각하고, 천사의 말을 잘 믿지 않으므로 믿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은 하나님의 사자이며 하나님께서 그 일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어서 당신의 할 일을 하신다.
. 1: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지 않는 사가랴에게 천사가 또 한 가지 징조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이 말씀이 성취되는 날까지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사가라는 천사의 말대로 벙어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그 말씀을 성취할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이와 같이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며 실제로 벙어리가 되지 않아도 말문이 막혀서 할 말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의 만능으로 성취될 때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을 믿을 때에 그 일을 보게 되고, 말문이 열리고 신령한 귀가 열려서 신령한 말씀을 더욱 잘 듣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신령한 귀와 입이 막혀서 벙어리가 되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야 입이 열려 찬송도 하며 증거도 한다(64절).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입이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도 잘 증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 1:21-22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밖에서 기다리는 백성들은 사가랴가 성소 안에서 지체하게 됨을 이상히 여기던 중 사가랴가 성소에서 나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어떤 이상(異像)을 본 줄로 알았다. 사실이 생기면 징조가 나타나는 법이다. 사가랴가 말을 못함으로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고, 하나님의 정한 때, 즉 그 일이 성취되기까지 벙어리로 있게 되었다.
. 1: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는 벙어리가 되었으나 그 직무의 날이 다하기까지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성전에 머물러 있었다. 직무의 날은 6일 동안이다.
. 1:24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수태하지 못하던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되었으므로 기뻐하였고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드러내지 않고 숨어 지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고요히 간직하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임했을 때 그것을 조용히 간직하고 길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야고보서1:19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더하며\"라고 하였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후에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알릴 수 있었으나 알리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때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 빨리 나타내지 말고, 고요히 때를 기다리면서 자신을 길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를 나타내려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 1:25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육신의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것이 아니다. 참 성도에게는 자녀가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 부끄러움을 없게 했다는 것은 요한의 출생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으므로 부끄러움이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엘리사벳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될 아이를 낳아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자기도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으므로 인간의 부끄러움을 없게 했다고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 몫 메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 몸을 바쳐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고 구원 운동을 위해 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이처럼 하늘 나라를 위해 종살이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많이 이용당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三. 예수님의 탄생예고(26-38)
. 1:26-27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여섯째 달에 엘리사벳이 수태한지 여섯 달이 된 때를 말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가서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 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은혜를 받은 자여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쓰시려고 전부터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이번에도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용하기 전에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또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자체가 큰 은혜이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먼저 평안을 전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만 뜻밖에 천사가 나타나서 인사하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대단히 놀랐고, 또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천사의 인사를 듣고 무서워하는 마리아에게 무서워 말라고 위로와 안심을 주고,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은 자\"라고 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였다.
.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것은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이다(마1:21).
.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저가 큰 자가 되고 예수님은 창조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시므로(임마누엘) 천상 천하에 가장 크시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마리아에게 잉태한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성자)이시다.
다윗의 위는 다윗의 왕통을 계승할 왕위를 말한다. 다윗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셔서 영원한 왕위에 오르신다는 예언이 성취 될 것을 뜻하는 것이다(삼하7:13-16).
.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야곱의 집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사내를 알지 못하니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리아의 처녀의 순결성을 증거하는 말이요, 남자와 관계없는 자기가 어떻게 잉태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동정녀가 잉태하는 것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나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잉태하게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다. 그 때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들어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고 탄생하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완전한 사람이시다.
. 1: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증거로 수태하지 못하던 그의 친척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엘리사벳이 지금까지 수태하지 못했고, 이제는 늙어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여섯 달이 되었다고 천사가 가르쳐 주었다. 이와 같이 마리아에게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잉태될 것을 확실히 깨닫도록 천사가 말해 주었다.
.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윗 구절들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한번 말씀해 놓은 것은 하나님의 만능으로 반드시 성취하신다.
.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계집종이오니 마리아가 지극히 겸손하였다. 주의 종의 자리에 있는 것이 참된 신앙의 자리이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자기의 몸과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순복하였다. 당시에는 약혼한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쳐죽이는 법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마리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예수님을 잉태케 하신 것이다.
四.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함(39-45)
. 1:39-40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 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친족이었다(36절). 마리아가 자기 친족인 엘리사벳이 수태하였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은 엘리사벳과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함이고, 또 정확한 증거를 보고 더욱 확신에 거하기 위함이었다.
.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마리아의 문안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다. 이는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세례 요한이 마리아의 복중 있는 예수님을 영으로 알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뛰논 것이다. 이로써 복중에 있는 아이도 영혼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며, 복중의 태아도 예수를 알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믿었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15절).
그러므로 성도는 모태에 있는 아이에게도 전도하고, 또 출생 시부터 전도하면 성령의 역사로 그 아이가 그 말씀을 영으로 받아 믿게 된다.
또 운명하기 직전 임종시에 의식을 몰라도 예배드리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 주면 택한 백성들은 그 영으로 알아듣고 믿고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천당에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년부 학생들에게도 동화나 세상 이야기를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 주어야 한다. 알아듣기 쉽게 한다고 동화나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수단이요 주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이다. 현재 깨닫지 못해도 마침내 성령으로 깨닫게 해줄 날이 온다.
. 1: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네 태 중의 아이도 복이 있으며 네 태 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구주를 잉태하였으니 얼마나 복 있는 여자인가! 여자 중에 제일 복이 있는 자이다.
네 태 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님이야말로 복 있는 자시요 복의 근원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실 분이시다.
. 1:43-44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엘리사벳은 복중에 있는 아이(요한) 때문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모친인 것을 알았다. 엘리사벳은 복중에 있는 아이가 뛰는 것을 감각할 때에 성령으로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배우는 데는 연령의 차이가 없다.
. 1: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이것은 모든 믿는 여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나 특히 마리아에게 대한 찬사이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만능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며, 특히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신 말씀(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다는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엘리사벳이 신앙으로 증거한 말씀이다.
五. 마리아의 찬미(46-56)
.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본 절에서 55절까지는 마리아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찬송한 말이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데 대하여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심령으로부터 찬송이 나오게 된 것이다.
.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리아의 영에서 나오는 찬송은 마음을 통하여 나왔는데 그로 인하여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된 것이다.
. 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지금도 겸손하여 자기를 가리켜 비천한 계집종이라고 하였다. 비천한 자기를 돌보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마리아가 감사와 송영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 성도가 전에는 이리와 타조 같고, 또 죄로 인해서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영원히 멸망 받을 비천한 자이었다. 그러나 성자께서 우리의 비천함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구원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영생 복락을 주시기 인해 영광의 보좌와 권세를 내어놓고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한량없는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 드리며 찬송을 아니할 수가 없다.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만세에 복 있는 자이다.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일과 그의 구속 사업에 그만큼 봉사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의 사역에 이용당하고 봉사하는 자는 누구나 그 이용된 것만큼 영원한 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물질과 몸을 바쳐서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큰 이적을 행하셔서 동정녀인 마리아 자신이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음을 찬송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심은 참으로 큰 이적이요, 하나님의 거룩과 능력과 긍휼(50절)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큰 일이다. 그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긍휼하심은 하나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이다.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경건한 성도를 가리킨다(행10:2, 22; 계14:7; 15:4). 이러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계속 임한다.
.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본 절에서 53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보여 준다.
그의 팔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그의 팔로 힘을 보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나타냈다는 뜻이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하나님은 마음의 죄까지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물리치신다(벧전5:5; 약4:6).
. 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그 권세를 꺾으시고 내리쳐서 미약한 자가 되게 하신다.
비천한 자는 겸손한 자, 또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참으로 발견한 자는 자기의 미천함과 부족함을 깨닫는다. 또한 하나님은 이러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고 교만하거나, 부자가 물질을 자랑하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
. 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주리는 자는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 가난한 자는 보편적으로 마음이 겸손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받는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했다(마11:5). 누구나 겸손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신령한 양식으로 배부르게 된다.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세상 재물이 많거나 지식이나 권세가 있는 자는 대개 마음도 부요하기 쉽다. 마음이 부요한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모하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자는 신령한 것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마19:24).
. 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그 종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대대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을 가리키며, 또는 이방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히 그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들은 이스라엘에 속한다. 이러한 자를 하나님이 언제나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고 도와주신다.
. 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영원토록 긍휼히 여기사 도와주시고 기억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그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마25:34).
.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가 석 달을 엘리사벳과 같이 있으면서 서로 믿음 안에서 도와주며, 복중의 아이를 잘 길렀다.
六. 세례 요한의 탄생(57-66)
. 1:57-58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세례 요한이 탄생하자 이웃과 친척들은 주께서 그 가정에 베푸신 긍휼에 대하여 듣고 함께 즐거워했다. 무자(無子)하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노년에 아들을 낳았으니 기쁜 일이며, 더구나 하나님의 큰 사명을 가진 아들을 낳았으니 더욱 기쁜 일이었다.
. 1:59-60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이스라엘 남자는 출생 후 팔 일만에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행해야 한다(창17:12 ; 레12:3 ; 빌3:15). 그러므로 세례 요한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이름을 짓게 되었다. 친족들은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이름을 짓고자 했으나 그 모친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요한이라 하게 하였다.
. 1:61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그 때 친척들은 \"네 친척 중에 그런 이름이 없다\"고 반대했다. 그것은 보통 부친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 1:62-63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친족들은 사가랴에게 손짓으로 형용해서 아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 것인가 물어 보았다. 이 아이가 잉태할 때에 사가랴가 벙어리 되고 귀머거리 된 것이 아직 열리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형용으로 물은 것이다. 그 때 사가랴가 서판을 달라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썼다.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다 기이히 여겼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범사를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모든 사람들은 기이히 여긴다.
.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가랴의 혀가 풀려 말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 때에 벙어리 되었던 입이 어느 때 열리게 되었는가? 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② 하나님이 능력으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을 믿고, ③ 자기가 순종함으로 그 일을 이루어 나가고, ④ 열매가 성취 될 때(아이를 낳을 때)에 입이 열렸다.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지 못했고 초자연적으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몸으로 그 구원 역사에 참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또 열매도 없었기 때문에 벙어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회개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이를 것을 믿고, 자기 몸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자기 몸에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썼고, 그 아이가 출생하여 열매가 나타날 때에 입이 열려, 찬송이 나오고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도 신앙의 열매가 나타날 때 입이 열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담대히 증거하게 된다.
. 1:65-66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
세례 요한의 출생과 이름 지은 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시대로 되었고, 그 때 그 입이 열린 것이 하나님의 이적으로 되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그 소문이 유다 산 중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그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다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꼬 하고 호기심을 가졌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 요한에게 특별히 주의 보호와 섭리의 손길이 컸다. 주의 손이 세례 요한과 함께 한 것은 ①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쓰시기 위함이었다. ② 요한은 겸손하여 선구자의 사명을 완성하겠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 예언대로 자기는 낮아지고 쇠해져도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만 잘 되고 흥해지면 좋다는 신앙 정신을 가지고 사명을 다하였다. 요한복음3:30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겸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이 늘 저와 함께 하셨다. 반대로 누구든지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손이 떠나게 된다. ③ 고요한 중에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이 빈들에 거하면서(8절)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을 계속했고, 마음에 늘 주님만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자격을 준비했다. 그러므로 주의 손이 늘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일을 완성하려고 애쓰는 자에게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어떻게 되든지 자기만 잘 살고 잘 되려고 하는 자에게는 주의 손이 떠나게 된다.
七. 사가랴의 찬송(67-80)
.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서 요한이 출생했고 입이 열린 사가라 더욱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언하게 되었다.
.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본 절에서 79절까지는 세례 요한에 대한 사가랴의 예언 찬송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겠으므로 감사하여 찬송하리로다 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속량은 종으로 팔렸던 자를 값을 주고 사서 구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셔서 죄 가운데 종살이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피로 값 주고 사서 구원해 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 뿔은 능력 또는 권세를 가리킨다.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킨다는 것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권세와 능력을 가지시고 나셔서 죄와 마귀의 세력을 멸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구원의 능력을 얻어 모든 죄와 마귀를 이기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은 갑자기 또는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라 예로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예언했고 약속한 일이 성취되는 것이다.
.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우리 원수는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과 마귀이다.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부패성도 우리의 원수이다. 바울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였다(고전9:26-27).
이러한 모든 원수에게서 우리를 건져내어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뢰하고 바라보고 그 말씀대로 나갈 때에 모든 원수를 다 이기고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 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그리스도가 오시는 일주 하나님께서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어야만 믿음의 조상이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히브리서11:40에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여기에 대한 해석은 본인의 히브리서 강해서 참조)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뜻이다.
. 1: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택한 백성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변치 못하시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약속과 맹세이다(히6:13-14). 하나님께서 이 맹세를 변치 아니하시고 그 맹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또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되었다.
. 1: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원수는 죄로 인하여 오는 사망이요 마귀이다. 이 원수에게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들을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여 주신다.
. 1: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사가랴가 아들 요한에 대하여 예언을 한 말이다. 세례 요한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의 자격으로 그리스도가 내 뒤에 오신다고 증거했고, 모든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 주의 길을 예비했다.
.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주의 택한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을 알게 해 주었다.
. 1: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말라기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한 말씀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다. 돋는 해나 의로운 해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돋는 해와 의로운 해가 되어 생명의 빛을 비추어 살려 주고, 모든 심령의 병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죄악의 어두운 것과 모든 욕심의 어두움을 다 걷어내고 치료하는 광선이 심령 속에 비취게 하여 모든 병을 고침 받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과 막혀 있는 것이 없어야 그 빛을 받아서 치료함을 받을 수가 있다. 하나님과 막히는 것은 두 가지인데 첫째, 죄악이다. 이사야59:2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다. 둘째, 자기이다. 자기가 없어져야 하나님과 교통한다. 고린도전서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했다. 하나님과 막히는 것이 다 제거될 때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춰서 자기의 심령의 병을 치료받을 수가 있다.
. 1: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어두움과 죽음은 죄로 인하여 영적 흑암을 만난 것과 영이 죽은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영이 죽음과 흑암에 처해 있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생명의 빛과 치료하는 빛을 비추어 주셔서 생명과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아이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
심령이 강하여지며 영이 자라난 것을 가리킨다. 영이 자라나야 심령이 강하여진다. 우리 영도 자라나서 점점 강해져야 된다. 영이 자라나서 강하게 되면 이기지 못하던 것을 이기게 되고 끊어 버리지 못하던 것을 끊어 버리고 실행하지 못하던 성경 말씀을 점점 실행하게 된다.
빈들에 있으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중대한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좀더 정확한 진리를 깨닫고 좀더 은혜를 받아 실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고요한 광야에 가서 오랫동안 기도하며 모든 것을 터득한 것이다. 사명이 큰 자는 큰 은혜를 받아야 되고 거기에 대한 확실한 진리를 깨달아야 된다. 세례 요한은 광야 기도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그 영권으로 그리스도의 선구자의 사명을 감당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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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탄생
(대 지)
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24)
二.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영접함(25-35)
三. 안나가 그리스도를 영접함(36-40)
四. 열 두 살 때의 예수님(41-52)
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24)
. 2:1-2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최초의 황제로서 주전 31년부터 주후 14년까지 45년간 로마를 통치하였다. 유대 나라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의 통치를 받았다. 당시 로마 제국이 호적하라고 한 목적은 세금 거출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구레뇨는 예수님 탄생 당시의 수리아 총독으로 그는 두 번 총독직을 역임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두 번 호적 조사를 하였는데 첫 번은 주전 4년에, 두 번째는 주후 7년에 했다고 한다.
. 2:3-4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모든 사람들이 호적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요셉도 당시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으나 호적이 고향인 베들레헴에 있었으므로 호적하기 위해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호적할 때는 지파와 족속과 집을 밝혀야 되게 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한 예언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역사의 작은 부분까지도 주장 하셔서 하나님의 예정을 이루는데 이용하신다.
다윗의 집 족속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으로 다윗의 자라난 베들레헴(삼상16:1, 삼하23:15)이 그의 고향이었으며 호적도 그 곳에 있었다. 그리하여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으며 그때 마리아는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어 산기가 가까운 때였다.
. 2:6-7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다 되었다. 호적하러 온 많은 사람이 먼저 사관에 들어 빈방이 없었으므로, 요셉과 마리아는 방을 구할 수 없어 밖에서 그 밤을 지내다가 아이를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사관은 숙박소나 휴식소로 사용하는 집이었다. 강보는 천으로 만든 보자기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탄생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하다. ① 예수님은 나실 때부터 지극히 낮은 자리에 처했으며, ② 고난을 취하셨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예수님이시요, 처음부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이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체휼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려면 지극히 낮은 자리, 지극히 겸손한 자리에 내려가야 하고, 또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교만하고 안일한 자리에서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다.
. 2:8-9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왕이나 귀족처럼 유명하고 지혜롭고 통달한 자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고, 보잘 것 없는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천사)가 나타났다. 이 목자들은 밤에 자지 않고 양을 지키며 고요히 묵상하며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고대하였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고 사모하는 자들을 찾아서 당신의 비밀을 알게 해주신다.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가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소식이다. 이 소식이야말로 가장 기쁜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벌에서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오신 구주시다.
.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천사가 그리스도에 대한 표적으로써 강보에 쌓인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날 때부터 이와 같이 고난을 받으시고, 장차 고난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취하실 것을 가리킨다.
.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천군 전사의 일종이다. 하늘에는 많은 천군이 있다(단7:10 ; 마26:53 ; 계5:11-12). 천군은 곧 하늘나라의 군대인데 이 군대가 천사와 함께 평화의 왕 그리스도가 나신 것을 선포하며 찬송한 것이다.
.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지극히 높은 곳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지극히 높은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께 영광이요 예수님의 탄생은 곧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 이유는
①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큰사랑이 사람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주심으로 그 큰사랑을 인간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가 영광스럽게 되는 길임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그 의가 천국에 영원히 남아 있고,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피 흘려주셨다.
②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보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히 성취시킴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③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택한 백성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가 영원한 하늘 나라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된다.
④ 마귀를 모두 멸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귀의 세력을 다 멸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케 될 것이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땅 위에 평화가 임하게 되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은 기뻐하심을 입게 된다. 그리스도는 진리이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을 받을 때에 기뻐하심을 입는다. 따라서 성도가 그리스도를 점점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받아 생명으로 삼을 때에 심령 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기쁜 소식을 듣고 즉시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 되어진 사실을 보고자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들은 자는 즉시 그 말씀대로 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약1:22). 복음을 받는 자가 즉시 순종하면 확실한 증거를 얻고 나가서 전할 용기와 능력을 얻는다.
. 2:16-18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찾아서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믿고 그 다음에는 실제로 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 볼 때 하나님께서 일해 놓으신 것을 볼 수 있고(막16:4),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목자들은 즉시 찾아갔으므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었다.
.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에 천사가 전해준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차에 목자들이 전해준 말을 듣고 그 말을 마음에 지키어 간직했다는 뜻이다.
이로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감사와 사명감을 느끼면서 아이를 기르게 되었다. 말씀을 마음에 지키며 되새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흘러 떠내려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그 말씀을 마음에 지키고 그 말씀에 착념하며 실행하여 열매가 맺히도록 해야 한다.
. 2: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은 천사가 일러 준 그대로 되어진 모든 사실을 듣고 보았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했다. 그들이 말씀을 믿고 즉시 순종하였으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정확한 증거를 얻게 되었다.
. 2: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할례할 팔 일에 보통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준다. 마리아도 천사가 전해 준 말씀대로(마1:21) 순종하여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짓게 되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해 줄 자\'라는 뜻이다.
. 2: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레위기12:1-4에 의하면 남자를 낳은 산모는 사십 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진다고 했고, 그 기간이 지나면 그 깨끗케 띔을 인하여, 번제나 속죄제로 희생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였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모세의 법을 따라 결례를 행하고자 예루살렘에 올라 간 것이다.
.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바로왕과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의 처음 난 자를 다 죽였으나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살려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하나님께 속하여 대대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다(출13:2-16). 마리아도 이 규례대로 예수님을 하나님께 바쳐드렸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바침이 되었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을 다 실행하여 흠 없는 제물이 되기 위함이었다.
.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레위기12:8에 가난하여 힘이 없는 자는 생축 대신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반구(비둘기의 일종) 둘로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예수님의 가정도 가난하여 이러한 것을 제물로 드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또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고난과 가난을 겪으신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하기 위함이었다.
二.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영접함(25-35)
.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①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또 행함으로 의를 이루어 나간 사람이었다. ② 경건한 사람이었다. 경건은 죄에서 멀리 떠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이다. ③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다.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자라는 뜻이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온유하여 성령의 인도를 잘 받았으므로 성령이 항상 그 위에 계셨다. 그러므로 그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알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행하였다.
.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그는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중대한 구원 사역의 비밀을 성령으로 깨달은 자는 복 있는 자이다. 시므온은 늘 깨어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았고, 마침 부모가 결례를 행하기 위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만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믿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성전에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도 깨닫지 못했으나 성전 생활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은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고 영접하였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금생과 내세에 복 있는 자이다.
.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시므온은 성령을 힘입어 심령으로부터 나오는 찬송을 드렸다.
.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주재여 주권자, 주장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과 친상천하의 모든 것을 홀로 주장하시는 대주재이시다.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종은 시므온 자신을 가리키고, 평안을 주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자유와 평안을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마귀의 세력에서 종살이하는 모든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고 새 생명을 주고 영원한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는 놓임을 받은 자유자이다. 비록 육신적으로 남에게 종살이하는 자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적으로 자유자이다(고전7:21-22). 그러나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된다(요8:34). 성도가 물질이나 사람에게 얽매어 신앙 양심을 쓰지 못하면 물질과 사람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무엇에나 얽매이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참된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겠다.
.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예수를 본 자는 구원을 본 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리의 지혜와 의와 생명과 구원이 되시기 때문이다(고전1:30).
.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을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요, 만대 만민의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분이시다.
.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이와 비슷한 말씀이 이사야49:6에도 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한 대로 이방인의 빛으로 오셨다. 또한 영적 흑암과 사망의 그늘 아래 있는 모든 이방인에게 영적 빛을 비추어서 하나님과 영생의 길을 알게 해주셨다.
이스라엘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큰 영광이시다. 왜냐하면 구주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나시고 복음이 이스라엘에서부터 만민에게 전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46:13에서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고 하였다.
. 2:33-34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예수님의 부모는 시므온이 성령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복된 말을 듣고 기이히 여겼다. \"기이히 여겼다\"는 것은 영적으로 신기하게 여기며 즐거워하며 그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두는 것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믿지 않거나 믿어도 그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패하게 될 것이다.
비방을 받는 표적 예수님은 죄를 용납치 않고 책망하는 분이기 때문에 비방 받는 표적이 되었다. 요한복음7:7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눅6:26).
.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마리아가 말할 수 없는 심적 타격을 당할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마리아의 마음이 칼로 찌르듯 하였다.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시기 때문에 이 빛이 비추이면 선악간에 모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다 드러난다. 악한 자들은 예수를 미워하여 비방하고 욕하고 십자가에 못박았고, 택한 백성은 믿고 구원 얻게 되었다.
三. 안나가 그리스도를 영접함(36-40)
. 2:36-38 또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여 선지 안나를 아셀 지파에 속한 바누엘의 딸이라고 한 것은 그 계통을 밝힌 것이다. 복음 운동에 등용된 사람들도 계통이 있다(계7:4-8). 그와 같이 그는 아셀 지파라고 하는 신앙 계통에 속한 자였다. 그가 시집가서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84년이 되었다. 20세에 결혼하였다 하더라도 과부가 된지 84년이면 111세의 연로한 나이였을 것이다. 이렇게 연로하기까지 신혼(身魂)이 강건하여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영접하고 증거한 것은 참으로 귀한 신앙이다(시71:9, 18).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안나는 ① 항상 성전 생활을 하였다. ② 금식하며 주야로 기도했다. ③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보며 기다렸다(그리스도를 기다림). ④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⑤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그는 84년 동안이나 과부로 지내면서도 남편이 있는 자보다 백 배나 나은 신령한 축복과 선물을 받았다(사56:3-6 참조). 오늘날에도 안나와 같이 성전 생활을 하며, 자기를 쳐 복종시키며(금식하는 정신),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는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영접하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를 참으로 영접한 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행전4:20에 사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할 때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다.
. 2:39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에 대한 결례를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지혜가 충족하며 이것은 예수님의 영이 자라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몸이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졌고, 신령한 지혜가 더욱 자라났다. 우리도 육신의 건강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심령이 강해지며 신령한 지혜가 자라나도록 힘써야 한다.
四. 열 두 살 때의 예수님(41-52)
. 2: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믿음이 독실한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예수님의 부모도 유월절 제사를 위해 매 해 예루살렘에 올라가곤 했다.
. 2:42 예수께서 열 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예수님이 열 두 살 되셨을 때에, 마리아와 요셉도 전례대로 예수님을 데리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 2:43-46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 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절기를 마치고 마리아와 요셉이 집으로 돌아갈 때에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냥 머물러 계셨다. 그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 알고 하룻길쯤 내려가서 친척과 아는 사람 중에서 예수님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이것은 그 부모가 예수님께 대한 무관심과 등한히 여긴 실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것이야말로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 열 두 살의 어린 아이 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귀히 여기며 깊은 관심을 두고 주의했더라면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위하여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방심 부주의하면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 착념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지 않고 그냥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다 된 줄로 아는 교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를 잃어버린 자이다.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그들이 동행하는 친족과 아는 자 중에 예수님이 있는 줄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오늘날에도 동행하는 교인들 중에서나 동지들 중에서나 혹은 가난하고 불쌍한 민중 속에서 예수를 찾으려는 자들은 다 잘못된 것이며 거기서는 예수를 찾지 못한다.
잃어버린 예수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①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야 된다(45절). 즉 영적 신령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거기서 찾아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29:13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다. ② 성전에 들어가야 된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났다(46절). 안나도 성전 생활하다가 예수님을 만났다(37절). ③ 성경을 강론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났다(46절).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요14:6) 성경을 강론하며 연구하며 배우는 가운데 만날 수 있다. 요한복음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했다. ④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요한복음4:23-24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다.
잃어버린 예수를 찾는 방법은 세상일을 뒤로 미루고 회개하고 들이켜서 신령한 세계를 찾아 영적 성전 생활을 하며 진리 가운데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기도를 많이 하여야 영적 성소에 들어갈 수 있고 거기서 말씀 가운데로 들어가야만 예수를 만날 수 있다.
.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예수께서 성경의 깊은 뜻을 묻기도 하고, 성경의 본 뜻을 대답하는 것을 보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 기이히 여겼다. 예수님이 성경을 많이 읽고 배워서 구약 성경에 정통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는 예수께서 복음서에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잃어버린 예수님을 삼 일만에 찾은 부모는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며 예수님이 잘못한 것처럼 말했다.
사실은 예수님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다.
이들은 ①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 잘못이요, ② 예수와 동행하지 못했던 것이 잘못이요, ③ 예수님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찾은 것이 잘못이었다.
. 2:49-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아버지 집은 성전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그의 뜻을 수행해야 할 분이시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성전에 계신다. 신령한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한 곳이요(창28:16-17), 하나님 안이요(天父內), 하나님과 같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세계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곳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양친은 그 말씀의 신령한 뜻을 깨닫지 못했다.
.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모친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양친과 함께 고향 나사렛으로 내려가서 양친을 잘 순종하며 받들었다. 우리도 부모를 잘 순종하며 받들어야 한다. 또 선생이나 윗사람에 대해서 잘 순종하고 받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다.
. 2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지혜가 자라난 것은 영이 자라난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몸만 자라난 것이 아니고 영도 자라났다.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과 똑같으므로 자라나지 않지만 인성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영이 있으므로 육신과 영이 자라나야 된다. 본 절에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영이 자랐다는 것이다.
영은 지적인 면과 정적인 면과 의지적 면이 있다. 영이 자라났다는 것은 영적 지혜와 사랑과 능력 등, 영의 속성들이 자라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성도의 영도 자라나야 한다(마5:19).
우리 영이 자라나면 ① 영적 지각과 분별력이 생겨서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 역사를 잘 분별할 수 있게 되고, ② 도덕적인 면으로는 사랑하지 못하던 자를 사랑하고 용납하지 못하던 것을 용납하고 참지 못하던 것을 참고 선으로 악을 이겨 나가게 된다. ③ 영적 능력이 점점 강해져서 능력자가 된다. 이리하여 지.정.의(知.情.意) 전 인격이 장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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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세례 요한
(대 지)
一.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1-20)
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21-22)
三. 예수님의 족보(23-38)
(본문강해)
一.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1-20)
. 3: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 역사가인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현과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때의 연대와 인물들을 다른 복음서보다 자세하고 치밀하게 기록하였다. 중대한 사실을 기술함에 있어서 그 당시 배경과 연대를 밝히 기록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한 일이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 다섯 해 디베료 가이사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자이다. 그가 로마 황제로 즉위한 때가 로마 연대로 767년(주후 14년)인데, 그가 즉위하기 2년 전부터 섭정으로 정치를 하였으므로 그의 섭정 된 때부터 15년이면 주후 27년이 된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출현과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이 주후 27년이며 그 해 예수님은 30세이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해석이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주후 26년부터 36년까지 재임한 제 15대 총독으로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사형하도록 판결한 자이다.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이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 헤롯 안디바스로서(마14:1)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이었다. 대 헤롯이 죽은 후에 그 영토를 사분(四分)하여 그 아들 넷이 각각 분봉왕이 되어 그 한 부분씩 차지하였다.
그 동생 빌립 대 헤롯의 아들로서 이두래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이 되었다. 이 지방은 갈릴리 바다 동쪽에 있었다. 이 빌립은 19절과 마가복음6:17에 기록된 헤로디아와 결혼하였던 빌립과는 다른 빌립이다.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그가 주후 36년까지 이 지방에서 왕 노릇했다고 한다.
.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안나스는 주후 7년에 대제사장이 되어 7년째 되는 주후 14년에 발렐리우스라고 하는 유대 총독에게 면직되고(당시 로마 정권에서 대제사장을 세우고 폐했으므로) 그 사위 가야바가 주후 17년에 대제사장이 되어 당시까지 그 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었으므로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도 대제사장으로 호칭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말라기 선지 이후 400년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된 것이다. 요한은 선지자요, 또 그리스도의 선구자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권고이다. 흑암 가운데 있는 자에게 이와 같은 빛이 들어온 것은 하나님과 천국이 임한 것이다.
. 3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였다. 이는 죄를 깨닫는 자라야 예수님께 올 수 있고, 회개하는 자라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본 절에서 6절까지는 세례 요한에 대한 이사야선지가 예언한 말씀을 인용하여 증거한 것이다(사40:3-5 참조).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요한은 자기가 소리라고 하였다(요1:23). 소리는 말씀을 나타내놓고 없어진다. 그와 같이 요한은 말씀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 놓고, 자신은 없어지는 소리의 위치에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의 위치이다. 모든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리스도만 나타내고 자신은 없어져서 보이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자기를 나타내면 말씀이 가려지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도적질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낸 것은 주의 길을 예비하여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것이었다.
첩경의 헬라 원어 (트리보스)는 \"다져진 길\", \"길\", \"큰 길\"을 뜻한다.
.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본문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방법이다. 골짜기와 같이 깊은 욕심과 음모와 술수가 없어져야 되고, 모든 산과 작은 산과 같은 교만, 자존심, 자기 자랑을 버리고 낮아져야 되고, 굽은 것 즉 굽은 마음, 양심을 쓰지 않고 정직하지 못한 것, 불의한 마음과 외식하는 것을 다 회개하고 곧아져야 되며 험한 길이 평탄하여져야 한다.
험한 길은 올무와 술수와 음모와 악한 죄와 범죄의 길을 가리킨다. 이런 것을 다 회개하고, 평탄한 길, 즉 정직과 정도와 선하고 의로운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다.
.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육체는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인류를 구원해 주실 것을 가리킨다.
. 3: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는 독을 가지고 사람이나 동물을 해하는 짐승인데, 마귀를 상징한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마귀의 자식이다. 누구나 이와 같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로마서3:13-14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하였다. 또 야고보서3:8에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 속에는 누구나 부패성이 있어서 열린 무덤 같고, 독사의 독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베드로전서2:1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라고 하였다. 속에 있는 악독과 시기로 남을 비방하고 해하고 죽이려고 한다. 이러한 모든 죄를 회개하고, 겸손히 믿음에 서야만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있다.
.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과 의식적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므로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며 행위로 그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오늘날에도 의식적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오직 속에 있는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회개하고 믿음에 서서 말씀대로 열매를 맺어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임박한 진노를 면하게 된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돌 감람나무로도 참 감람나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돌 감람나무는 이방인이고, 참 감람나무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참 감람나무되는 유대인이 회개치 않으면 돌 감람나무 되는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대인이 순종치 않으므로 이방인을 불러 믿게 하여 신령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다(롬11:17).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 다(롬2:28-2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갈3:6-7).
.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뜻이다. 도끼는 심판의 도구이다. 나무 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곳곳에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놓여 있다. 예레미야1:13-14에 끓는 가마가 북방에 있다고 하였다. 심판의 도구가 북방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휴전선 위에 놓여 있고, 미국에는 쿠바에 놓여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을 징계하기 위한 몽둥이요 도끼이다. 기독교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잎사귀만 무성하여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심판의 도끼로 찍어내어 때릴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속히 회개하고, 열매를 맺어야 되겠다.
. 3: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들은 무리들이 마음에 찔리어 무엇을 하여야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잘 모를 때에는 물어 보는 것이 좋다.
. 3: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회개의 행위는 각인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다르다. 옷이나 먹을 것이 넉넉한 자는 없어서 궁핍한 가운데 있는 이웃을 도와주라는 것이다. 자기만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회개의 열매이다. 하나님이 재물을 주신 것은 쌓아 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해서 쓰고, 선한 일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다.
. 3:12-13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세리는 세금 징수에 대하여 죄를 범하기 쉽다. 당시 로마 정부에서 지방 세리에게 자유로이 과세하는 권을 맡기고 정부에 일정한 금액을 상납케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많은 세금을 과세하여 치부하였다. 그러므로 세리들에게 정한 것 외에 더 받지 말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탐심을 물리치고 재정(財政)에 대하여 부정을 하지 말고, 양심을 똑바로 쓰라는 것이다. 재정을 취급하는 자는 재정에 대해서 양심을 바로 써야 믿는 일을 할 수가 있다.
늑징은 관원이 그 권력을 이용하여 돈이나 물품을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행위이다.
. 3: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군병들은 강포하며 무소하는 죄를 범하기 쉬우므로 이를 금하였다.
강포는 잔인하고 불법하게 사람을 해하는 것이다. 무소는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서 고소하는 일이다. 군인들은 자기 권력을 믿고, 죄 없는 사람을 까닭 없이 고소하기 잘한다.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군인들이 월급을 적게 받지만 그것을 가지고 절제하여 쓰고 자족을 배우라는 것이다. 잠언30:15에 \"거 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라고 했다. 이것은 족한 줄 알지 못하고, 욕심을 채우려고 불만에 살며 계속 더 받으려고 하는 언행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을 배워야 믿는 일을 바로 할 수가 있다(딤전6:7-8).
.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며 회개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는 것을 보고, \"요한이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 요한은 자신에 대하여 백성들이 잘못 알고 있으므로 자신에 대해 밝히 증거하였다. 자신에 대하여 과분한 대접을 할 때에 아니라고 밝히 드러내는 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요 바로 되는 것이다.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요한의 세례는 죄인을 회개시켜,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한 세례이다.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요한이 그리스도를 바로 알았고, 자신을 바로 안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로 깨달은 자라야 자신을 바로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는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시요, 요한 자신은 죄인이요, 그 앞에 설 수 없는 자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로 알았다.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누가복음12:49-50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라고 했다. 여기 \'나의 받을 세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한 것은 십자가 구속의 진리의 말씀을 땅 위에 전파하러 왔다는 뜻이다. 불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도를 가지시고 우리에게 믿게 하고 정결케 해나가는 일을 하실 것을 가리킨다.
본 절의 \'불\'을 성령이라고 하면 성령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결론이 된다. 왜냐하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성령의 불덩이가 하늘에서 사람에게 내려와 뜨끈뜨끈해지는 것이라고 잘못 가르친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바람, 불, 혀, 갈라지는 것 네 가지로 나타났는데 \'불\'은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행2장 강해서 참조).
. 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손에 키를 들고 키를 가지고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어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 사르는 것과 같이, 믿어 열매 맺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열매 맺는 자는 천국 창고에 들이고, 열매 없는 자는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심판 때는 택자와 불택자를 나누어서 택자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 들어가고, 불택자는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간다. 또한 택자라 해도 행위의 열매가 없으면 불붙는 가운데서 나온 사람 같이 벌거벗은 구원을 받게 된다(고전3:15). 베드로전서4:17에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집(교회)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된다.
. 3:18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세례 요한은 ① 죄를 책망하고, ② 여러 가지로 권면하고, ③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좋은 소식은 복음이라는 뜻인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방법이다. 전도자에게 이 세 가지 방편이 필요하다.
. 3:19-20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 안디바스를 가리킨다. 이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라 하는 여자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았다. 그 악행을 세례 요한이 면책하였다. 이것은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그 일로 인하여 헤롯왕이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막6:17-17).
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21-22)
.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왜 세례를 받았는가? ① 순종하기 위해 받으셨다. 세례의 제도는 하나님이 내셨으므로 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다. ②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이다(마3:15). 세례 요한이 세례 주는 일은 하나님의 의(구원 운동)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므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구원 운동에 참여하는 일이요, 하나님 의의를 이루는 것이다. ③ 모본을 보이시기 위해서이다. 예수께서는 성도에게 모본을 보이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였다(벧전2:21).
하늘이 열리며 신령한 하늘 문이 열린 것이다. 중대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이 열리게 하셨다(행7:56, 계4:1).
.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성령이 임했다(마3:16). 이는 예수께서 물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없는 데(육지)로 올라오셨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물위로 올라온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이 물에서 땅으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말이 없다. 또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세례의 유례가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였으므로 물을 끼얹어서 세례 주는 것이 세례의 뜻에 맞는다.
\"세례 주다\" (밥티조)라는 말은 \"잠그다\", \"적시다\", \"씻다\", \"씻어서 정결케 하다\"는 뜻이 있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그다\"는 뜻에만 국한하여 침례를 주장한다.
\"세례 주다\"의 헬라원어가 (밥티조)인데, 변형되어 (밥토), (밥티스마), (밥티스테스)라는 말로 성경 여러 곳에 사용되었다. 누가복음11:38에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 하심을 \"의 \"손 씻지\"나 요한복음13:26의 \"한 조각을 찍어다가\"의 \"찍는다\"가 라는 말이 변형된 말이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그다\'는 뜻에만 국한하여 다른 뜻을 무시해 버리는 것은 원문을 바로 해석한 것이 못된다. \"밥티조\"가 \"잠그다\"는 뜻도 있지만 \"씻다\", \"적시다\"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단어의 뜻만 가지고는 잠그는 것인지, 씻는 것인지, 적시는 것인지 확실히 나타낼 수 없다. 침례교파에서는 일방적으로 \"잠그다\"로만 해석하여 침례만이 참된 세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를 무시하고 의식에 치우쳐 침례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옳지 않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줄 때에 사람들을 물에 담갔다가 꺼냈을까? 아니면 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었을까?
세례의 기원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전에 없던 세례를 세례 요한이 새로이 시행하였다고 하면 백성들이 당연히 \"세례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느냐?\"고 물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세례는 구약 시대부터 유래한 것이며 세례 요한이 특별히 많이 행한 것뿐이다. 그러면 세례가 구약 시대에 무엇에서부터 유래되었는가? 모세가 송아지의 피를 뿌려 성소를 정결케 하였다(출29:16 참조).
에스겔36:25에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 문둥병 걸렸다가 정결케 된 자는 살아 있는 새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한 마리는 죽여서 그 피를 제사장이 찍어 문둥병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라고 한다(레14:5-6 참조). 이와 같이 구약 시대의 모든 정결케 하는 예식이 모두 물이나 피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도 뿌려서 정결케 하는 예식의 일부였다.
베드로가 하루에 삼천 명이나 세례를 주었는데, 삼천 명을 모두 물에 담갔다가 꺼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물에 담갔다가 꺼낸다면 철야하여 24 시간 동안 세례를 베푼다고 하여도 삼천 명을 다 세례 주지 못한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서 금식 기도하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 기도를 받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지 물에 나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다. 방에서 기도하다가 일어나 세례를 받은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16:33 참조). 강에 가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요, 목욕통을 만들어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었다. 즉시 머리에 물을 끼얹어 세례를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고전10:1-2 참조).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왔는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고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그것을 곧 세례라고 하였다.
침례파에서는 세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다시 말하면 물속에 들어간 것은 옛사람이 죽어서 장사지낸 것을 상징하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사람이 살아 올라왔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세례의 참 뜻은 \"씻어서 정결케 한다\"고 해야 성경 전체의 사상에 맞는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을 때에 꼭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적수 세례가 옳다고 본다. 침례교파에서 적수 세례를 무시하고,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삼위의 이름으로 건전하게 세례 받은 것은 피차간 인정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삼위와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을 취소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의식주의이고 독선적이다.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성령의 모양이 비둘기 같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 분이시고, 영이시기 때문에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한 것은 상징적인 뜻이 있다. 비둘기는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새이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 그러므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시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게 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물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예수님이 아들로서 다 받았다는 뜻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계시를 다 받아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전부 전달해 주신다. 예수님은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완전히 다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구원 운동을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三. 예수님의 족보(23-38)
.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예수님이 성역을 시작한 연령에 대하여 본 절에서 명증하였다. 30세는 레위인이 성전 봉사를 시작하는 나이이다(민4:3). 30세는 모든 성 역자들이 성역을 맡을 적당한 시기이다. 본 절에서 38절까지는 마태복음 1장과 같이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기록이다.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했으므로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기록했으나, 누가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기록했으므로 예수님께로부터 거꾸로 인류의 조상 아담까지 기록하고, 창조자 하나님까지 기록했다. 즉, 누가는 예수님에서부터 인류의 시조 아담까지와 창조주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족보를 기록했다. 마태가 기록한 족보와 누가가 기록한 족보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같으나 그 외 부분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두 사람 외에는 모든 이름이 다르다.
두 족보가 서로 다른 이유는 ① 마태는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였고,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한 까닭이요, ② 마태는 이스라엘의 양자 계승 제도, 혹은 계대 혼인제도(신25:5-6)대로 기록했고, 누가는 실조(實祖)를 기록한 까닭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실지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고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마리아의 아들이다.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마태복음 1장에는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고 했다.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인데 요셉이 헬리에게 양자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셉의 실부(實父)는 야곱이므로 마태는 실부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아담, 셋, 에노스, 가이난과 같은 조상을 열거한 것을 보아 믿음의 계통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 분명하다. 믿음에서 서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계통이다. 이것은 누구나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준다.
. 3:24-27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그 이상뿐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이들은 포로 이후의 조상들인데 이 중에 마태와 누가의 족보에 일치되는 것은 스룹바벨과 스알디엘 두 사람뿐이고(27절), 그 외는 모두 다르다. 이것은 마태는 요셉의 조상들을 기록했고, 누가는 마리아의 조상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스룹바벨 다음부터 요셉의 조상과 마리아의 조상이 갈라졌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네리가 여고냐의 아들 스알디엘(대상3:17)을 양자로 삼은 경우에 있어서 마태는 스알디엘의 실조를 기록했고, 누가는 스알디엘의 양부(養父)의 조상을 기록한 경우에 두 족보가 달라졌다고 한다(박윤선).
. 3:28-31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포로 이전의 조상들로부터 다윗까지 기록되었는데, 마태복음의 족보와 비교할 때에 다윗 외에는 전부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 3:32-34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이 부분은 다윗에서 아브라함까지로 마태복음의 족보와 일치한 이름들이다.
. 3:35-38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이 부분은 아브라함부터 하나님까지의 족보이며 마태복음에는 없는 부분이다. 마태는 유대인을 위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까지만 기록했고, 누가는 전 인류를 위해 기록했기 때문에 인류의 시조 아담까지 소급해서 기록을 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류의 창조자 하나님까지 기록했다. 또한 아담의 아들 가인의 계통은 제외하고 셋의 계통을 기록했는데, 그 이유는 신앙의 계통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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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승시(勝試)
(대 지)
一. 예수님의 승시(1-13)
二. 갈릴리 전도(14-15)
三. 나사렛 전도(16-30)
四. 가버나움 전도(31-44)
(본문강해)
一. 예수님의 승시(1-13)
. 4:1-2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셨다. 예수님은 성령 충만함을 입어 항상 성령에게 이끌린 바 되셨다. 예수님의 시험을 승리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나가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시험을 당하셨는가?
① 연단을 받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이 신성으로는 하나님이시지만 인성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연단을 받아야 한다(히5:8-9 참조).
② 우리가 시험 당할 때 체휼하시고 도와주시기 위함이다(히4:15-16).
③ 마귀를 이기고 정복하기 위함이다(계5:5).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사단에게 시험을 받는 동안 들짐승들과 함께 있었으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의 몸이 상치 않도록 보호해 주셨다(막1:13).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힘입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고요하고 한적한 광야에 나가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성령께서 주신 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오늘날 우리 성도가 시험을 받을 때에도 광야 생활을 통과해야 된다. \'광야 생활\'이라는 것은 아무 의지할 데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쓸쓸하고 거친 지경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시험 당하는 동안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들짐승들과 같이 해하려고 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리하여 그 때에는 가까운 사람들도 모두 짐승처럼 물어뜯고 잡아먹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때에도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손해 받지 않게 해주시고 승리하도록 보호해 주신다. 그러므로 시험받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걸어가면서 시험을 이겨야 한다.
. 4:3-4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이 시험들은 마음으로 받은 시험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마귀를 따라 성전 꼭대기에 올라갔을 리가 없다. 또 실제로 천하 영광이 다 보이는 산은 없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마귀가 예수님의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을 넣어 주어 마음속으로 받은 시험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의심케 한 것이 아니고 \'아들로서 아들의 일을 하려면\'의 뜻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할 일을 다 하려고 한다면 권능이 있어서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의 뜻이다.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제일 초단계의 시험은 물질 시험이다. 예수님이 사십 일 동안 금식하고 주린 형편을 마귀가 알고, 그 틈을 타서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만일 이 때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지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나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마귀에게 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할 수 없게 된다.
마귀는 항상 기회를 타서 그럴 듯한 말로 미혹을 한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성경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다(마4:4).
\'살 것이라\'는 말은 영이 살 것이라는 뜻이다. 영이 사는 것이 첫째이고, 다음에 육신도 하나님께서 살게 하심으로 산다. 영이 살아 있으면 육신이 죽는다고 해도 실상은 산 것이다.
예수님이 죽어 있는 나사로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다(요11:11). 나사로의 영이 살아 있으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육신이 살았다 해도 영이 죽었으면 실상은 죽은 것이다. 디모데전서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육신은 살았으나 심령은 죽었다는 뜻이다. 영이 살아서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다고 하여도 벌써 죽은 것이며 실패한 것이다(약2:17).
교역자도 자기 영이 살아서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외부적으로 아무리 교회가 잘되어 나간다 해도 벌써 실패한 자이고 마침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만다(고전9:27 참조).
야고보서4:16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세상의 것이 성공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다 헛된 것이며 악한 것이라는 뜻이다.
성도는 먼저 영이 살아야 한다. 영이 살지 못하고 육신만 살아가는 것은 허탄한 것이며 실패한 것이다. 세상의 것은 허탄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아도 반드시 다 없어질 날이 온다. 그러나 영이 잘 되면서 육신의 것이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는 줄 믿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에서 영이 힘을 얻어 나가도록 힘써야겠다.
떡으로만 여기 \'만\'자가 왜 들어갔는가? 영은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떡으로 살기 때문에 \'만\'자를 붙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과 떡, 둘 다 있어야 산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성경에 맞지 않는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말씀과 떡\'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산다고 하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므로 부당하다. 누가복음10:41-42에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간 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것은 몇 가지뿐이며, 오로지 필요한 것은 말씀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말씀 하나만 있으면 된다. 말씀 하나만 있으면 영과 육신이 다 살게 되는 것이다.
\'떡으로만\'에서 \'만\'자가 들어간 것은 떡을 부인하지 않는 태도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말씀에만 있으며, 말씀만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떡도 주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영과 육이 사는 것은 말씀에만 있다.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영을 살리시고 떡도 덤으로 주어서 육신도 살리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에 육신을 만드셨다. 사람을 먼저 만들고 다음에 사람이 거할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이 먼저 영의 양식(말씀)을 먹고 살게 되면 육신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주신다. 마태복음6:33-34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육신에 필요한 것들인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필요한 것들을 더해 주신다는 뜻이다. 성도가 말씀만 붙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떡을 주셔서 육신도 살릴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말씀과 떡\' 두 가지를 다 가지려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요 마침내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첫째, 영을 살리는 영의 양식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영의 양식을 받아먹고 영이 소생하며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둘째, 도덕이 포함되어 있다. 물질보다 도덕이 있어야 사람이 산다.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화목하고 도와 가면서 살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소를 잡아먹으면서도 날마다 싸운다면 채소를 먹으면서 서로 화목하고 도와주는 것만 못하다(잠15:17). 또한 성도가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물질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수전노가 되어 물질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물질보다는 바른 도덕이 항상 먼저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므로 바른 신앙과 도덕(바른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물질은 적든지 많든지 희락과 화평으로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다.
성도에게 바른 신앙과 도덕이 없다면 물질이 아무리 풍성해도 그 물질 때문에 도리어 망하게 된다. 현재에 물질이 없을지라도 바른 신앙이 있고 도덕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필요한 물질을 주실 것이다. 17세기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황무지와 같은 곳이었고,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빈손으로 그 곳에 갔으나 하나님께서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셨는가? 아메리카 대륙만큼 자연적으로 풍성하게 축복 받은 땅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당시에 스페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금을 얻기 위해) 남미 대륙으로 갔으나, 지금은 저개발 국가의 처지를 못 면하고 있다.
마귀가 예수님께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고 할 때에 예수님이 왜 만들어 먹지 않았는가?
마귀가 만들라고 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바른 대답이 못된다. 또한 마귀가 간 다음에 예수님이 스스로 떡을 만들어 먹어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돌로 떡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기 때문이다. 이적을 자기의 사사로운 일에 사용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적을 행할 수 있으나 자기를 위하여 이적을 행하는 것은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시지 않고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것만 행하시고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셨다(요5:19 참조). 예수님이 40일 동안 굶어서 말할 수 없이 배가 고프셔도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지 않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다. 두 번째 시험이나 세 번째 시험도 모두 말씀으로 이기셨다. 우리도 말씀이 아니면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
마귀는 사람보다 강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힘이나 자기의 지혜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마귀보다 더 강하고 더 지혜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신 것이다.
.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 시험이 마태복음에는 세 번째 시험으로 기록되었다. 마태복음의 기록대로 이 시험을 세 번째 시험으로 보고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을 두 번째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마태복음에는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갔다고 했다(마4:8). 이것은 예수님의 몸이 끌려 다닌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받은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고 하였다. 요한일서5:19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요한일서2:16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고 하였다.
마귀는 하나님이 허락한 그 한도 안에서만 불신자나 불순종하는 자의 속에 들어가 주장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마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마귀는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만 사람을 괴롭게도 하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 권세와 영광을 마귀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도 안에서 마귀에게 집행권이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 날 수가 없다. 마귀가 자기에게 절을 한 번만 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말씀을 양보하는 것과 신앙 양심을 양보하는 것은 다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선한 양심을 양보하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은 마귀에게 절하고 얻은 것이요 허탄하고 악한 것이다(약4:1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려면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버리고 모든 물질이나 권세도 포기해야 한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든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택하든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 말씀을 내놓으면 세상 영광을 가질 수 있으나 말씀을 택하면 세상 영광을 내놓아야 한다. 오늘날 마귀가 천하 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준다고 할 때 그것을 버리고 믿음 지키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마귀가 성도를 유혹할 때에 예수를 믿어도 좋으나 성경을 조금 양보하여 천하 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얻으라고 하며, 마귀가 절을 여러 번 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단 한 번만 절하면 모든 영광을 다 준다고 한다. 성도가 한 번 마귀에게 절하여 천하 영광을 얻어 놓은 다음에 믿는 일을 잘 하겠다고 하면 어떠할까? 그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한 번 마귀에게 절하면 믿음을 팔아먹은 것(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을 팔아먹은 다음부터는 믿는 일이 되지 않고, 믿음을 다시 찾으려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를 해야 한다.
.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시험도 신명기6:13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경배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뿐이라는 뜻이다.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경배하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다만은 다른 것은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이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다른 것도 붙잡고 말씀도 붙잡으려고 하면 \'다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끌려가게 된다. 다만 하나님만 섬겨 나아갈 때 마귀가 떨어져 나간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다 주신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시편37:25-26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다 하나님이 먹여 살리는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하나님이 굶겨 죽일 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게 되며, 결국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세상의 명예 영광도 잃어버려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다만 하나님 섬기는 일만 하겠다고 할 때에 마귀는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떨어져 나간다. 말씀만 붙잡고 모든 시험을 이긴 예수님께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다(마4:11).
. 4:9-11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시험은 마태복음의 순서대로 보아 두 번째 시험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은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여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크고 기이한 일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된다고 하는 시험이다. 시편91:11-12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발이 상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나 붙들어 주지 않나 한 번 시험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것도 된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종교적인 시험이며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을 받으셨는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므로 마귀가 그것을 이용하여 시험하였다.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마귀는 그 틈을 타서 들어와 시험을 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하려면 무슨 비상한 역사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는 이적이 나타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고 따르게 되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잘 성공되어 나갈 것이라고 마귀가 유혹한 것이다.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는 것과 같은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행함으로 모든 사람 앞에 자랑할 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인기를 얻어 많은 사람에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나님의 사업이 성공될 수 있다고 미혹하여 종교적 사업, 인기, 명예 영광으로 성도를 시험한다.
다윗도 이런 시험을 당하여 많은 실패를 거듭한 뒤에 바로 깨달았다. 그리하여 시편131:1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 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사람을 미혹한다. 자기의 명예나 인기나 자랑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이용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시편91:11-12에 있는 말씀의 뜻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여 말씀대로 걸어 가다가 위태한 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붙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뜻대로 자기의 명예와 유익을 위하여 모험심으로 이 말씀을 이용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는다. 성경대로 한다고 하여도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행해야 한다. 성경의 바른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하지 아니하면 성경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권고가 떠난다.
마귀는 성경을 제멋대로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다 성경을 바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성경을 이용하는 때가 많다. 마귀가 악랄하게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예수님이 \"또 기록하였으되\"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경 다른 곳을 또 상고하여 원리대로 해야 된다는 뜻이다. 성경의 일면만을 내세워 성경의 다른 면에 어긋나게 적용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한 면에만 치우치지 말고 성경 전체에 맞는 성경의 본 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하여 그 뜻대로 이루어 드려야 한다. 바리새인의 고르반 사상도 한 면만을 맞춘 것이다(막7:11-13 참조). 또 이단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성경 말씀을 근거하여 주장한다. 예컨대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는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성경에서 근거를 대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를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하면서 성경을 근거로 주장한다. 그러나 주일에 일하는 것은 분명히 죄이다. 그들은 성경을 내버리고 믿는 자들이다. 마귀는 성경을 본 뜻에 어긋나게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고등술법을 사용한다. 일제시대에 신사 참배를 하면서도 성경대로 한다고 했다. 그들은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라고 한 로마서13:1의 말씀을 이용하였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도 고린도전서 12장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제일 작은 것이 방언인데 제일 작은 것도 못하는 자가 어떻게 큰 것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방언을 못하는 자는 성령을 못 받은 자이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성경 본뜻 에 맞지 않는다.
고린도전서12:30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 한 것은 교회(교인)가 모두 다 방언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14:23에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도 했다.
마귀의 종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람을 미혹시킬 때 우리는 \"또 기록되었으되\"를 말해야 한다. 다른 성경에 또 무어라고 말했는가? 성경해석은 성경 전체의 원리에 맞아야 한다. 한 성구만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면 성경의 본 뜻에서 이탈된다. 이단들은 대개 여기서 한 성구, 저기서 한 성구씩 뽑아서 자기들 생각대로 해석하여 자기들의 교리를 세워 놓고도 성경대로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죄이다. 고린도전서10:1-1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60여만 명)이 네 가지 죄로 인하여 광야에서 쓰러졌다. 네 가지 죄란 ① 우상 숭배한 죄, ② 간음한 죄, ③ 하나님을 시험한 죄, ④ 원망한 죄였다. 그 중에 제일 많이 죽은 죄가 하나님을 시험한 죄였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대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보호해 주실까 하고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하였으면 되는 줄로 믿어야 한다. 되겠는지 안 되겠는지 한 번 해보아야겠다고 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하였으면 이미 된 줄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것은 아주 악한 일이다.
.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마귀가 떨어져 나갔으나 얼마 동안만 떠났다. 마귀가 예수님께 이렇게 참패를 당하고도 얼마 있다가 또 온다는 뜻이다. 마귀가 우리들을 시험하다가 실패한 다음에도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후에는 다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참으로 악착스럽다. 성도가 시험을 이겼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그러므로 근신하고 깨어 항상 마귀를 대적해 나가야 한다. 마귀를 한번 이겼다고 방심하면 그 다음에는 마귀에게 진다. 김현봉 목사님은 하루에 세 번만 마귀의 종노릇을 하여도 괜찮겠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보통 하루에 세 번 이상 마귀에게 지고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마다 사사건건 마귀를 이겨 나아가야 한다. 불쾌한 마음이나 섭섭한 마음이 들어오고, 남을 원망하고 혈기를 내는 것도 마귀에게 넘어간 증거이다. 또 적극적으로 믿음을 써서 영의 세계에서 새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지 못하는 때도 마귀에게 진 때이다. 그러므로 항상 삼가 조심하여 마귀에게 화평한 마음과 영적 사랑의 생활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二. 갈릴리 전도(14-15)
. 4:14-15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더욱더 성령과 권능이 충만하였다. 시험을 이긴 것만큼 권능이 커지는 법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권능으로 가르치시며 능한 일을 하였으므로 그 소문이 사방에 퍼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순진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과 성경의 참된 진리를 들을 때에 좋아하고 칭송하게 된다.
三. 나사렛 전도(16-30)
.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예수님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를 세워 놓았다. 우리도 규례를 따라 주일을 잘 지키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회당의 예배의 규칙은 처음에 신명기의 일부를 읽고 다음에 예언서를 읽고, 그 다음에 회당장의 지시에 의하여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하였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허락을 받아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신 것이다.
.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회당장은 예수님에게 이사야서를 주었다. 성령께서 회당장을 감동시켜 예수님이 읽으려고 하는 책을 주게 한 것이다.
.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님은 이사야61:1-2 상반 절까지 읽으셨다. 이 내용은 장차 그리스도가 하실 일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이었다. 2절 하반 절은 그리스도가 장차 재림하여 심판하실 일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읽지 않았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이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5:3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의 것을 사모하며 찾는 자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심령이 부한 자가 있고 물질적으로 부요해도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세상의 것이 부요한 자는 심령이 가난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다(마19:24).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누가 구원을 얻으리요 라고 할 때에 예수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마19:26). 하나님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자의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뜻이다. 세상의 것이 많든 적든 심령이 가난하여 복음을 잘 받는 자가 복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런 자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구속 주로 기름 부어 세웠다는 것이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죄의 종노릇하는 자와 마귀에게 포로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여 영의 자유를 주실 것을 선언한 말씀이다. 요한복음8:34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했다. 요한일서5:19에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고, 요한복음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하였다. 모든 인류는 다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으로 포로 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지 않으면 해방 받을 길이 없다.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심령의 눈이 먼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영안을 열어서 신령한 세계의 모든 것을 보게 하신다. 눌린 자를 자유케 죄로 인하여 마음이 눌린 자를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해주신다. 시편32:3-4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했다. 죄를 지은 자는 눌리어 있는 자이다. 죄는 마음과 양심과 심령을 계속 내리누르고 있다.
그러므로 잠언28:1에 \"악인은 좇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라고 했다. 이렇게 눌려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져내어 영적 자유와 평화를 주신다. 갈라디아서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적 해방과 자유를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비록 육신적으로 사람의 종살이를 하는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육신적으로 주인이나 종의 차별이 없고 계급에 관계없이 다 같은 자유자요 다 같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고린도전서7:21-22에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와 성경 진리대로 믿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자유가 제재를 받으면 영적 생명이 중단된다. 성도는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이 자유를 따라서 생명길을 걸어가야 한다. 영의 자유와 진리대로 믿는 자유를 억압하는 마귀의 세력과는 생명을 내어놓고 싸워 끝까지 자유를 누려야 한다.
.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은혜의 해는 50년마다 맞는 희년을 가리킨다(레25:1-55). 희년의 첫날에 제사장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나팔을 불며 희년을 선포하였고(레25:8-17) 그 해에 노예를 석방하고, 샀던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구약 시대의 희년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사죄와 해방을 주실 것을 상징한 규례였다. 이제 그리스도가 왔으니 그 희년의 내용이 영적으로 성취되어 은혜와 구원의 때가 된 것을 전파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고린도후서6:2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이 곧 주의 은혜의 기간이다. 이 구원의 날은 늘 있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지나간다. 말세에는 어두움의 세력이 오고 대환난이 온다. 그 때가 되기 전에 회개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그 은혜를 받는 자가 되며, 영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사용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겠다.
오늘날 해방신학자들은 이 성구(18, 19절)를 근거로 기독교는 정치적, 경제적, 계급적, 인종적 억압자들과 그 권세를 타도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가진 자의 경제적인 억압으로부터 갖지 못한 자를 해방시켜야 되고, 정치적으로 억압하는 정권으로부터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시켜야 된다고 주장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합법적, 비합법적, 폭력적, 비폭력적 투쟁으로 혁명을 완수해야 된다고 한다.
해방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구령(救靈) 운동을 사회 구원 운동으로 타락시킨 이단자들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은 적 기독 운동이요 마귀의 역사이다. 그들은 성경적 신령한 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 해방을 제도적인 해방으로 바꾸고 영적 자유를 육신의 자유로 곡해한 것이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성도들의 믿음이 타락되어 신령한 믿음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하시려고 그러한 사상이 나오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말세에는 적 기독 국가가 나오고 교회 안에서 적 기독 단체가 나와 적 기독 운동을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파괴하려고 한다. 그러나 참 교회는 영적 신앙과 인내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보존되어 나갈 것이다.
.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성경책을 읽을 때는 서서 읽고 해석하여 가르칠 때는 앉아서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영권과 성령으로 가르치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주목하게 되었다.
.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 자신에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 4: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께서 이사야의 예언이 자기에게 성취된 사실을 전해 주었으나 고향 사람들이 그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길 뿐 예수님과 그 말씀을 받지 않고 배척했다. 그 이유는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육신적인 면과 가정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적 면과 하나님의 역사하는 면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님이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 별로 내놓을 것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자인데 어찌 그리스도가 되겠느냐 하는 뜻이다. 마가복음6:3에는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고 했다. 이 역시 예수님의 육신 면과 가정 면만 보고 무시하는 말이다.
예수께서 고향에서 큰 은혜를 베풀었고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으나 사람들이 예수님의 외부적인 면과 육신적인 면만을 보고 배척한 것이다. 육신적인 면에 치우치면 신령한 면이 가려져서 보화를 잃어버리게 된다. 복음의 사역은 마치 질그릇에 담긴 보화와 같아서 그 안에 있는 보화를 보지 못하면 질그릇만 보고 천대하게 된다.
. 4: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의원아 너를 고치라\"하는 속담이 그 당시에 있었다. 나사렛 사람들이 이 속담을 인용하여 예수님께 말하기를 의사가 남을 고치기 전에 자기 병부터 고치는 것같이 그리스도의 권능을 다른 곳에서 행하기 전에 먼저 고향에서부터 행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해 나가라는 것이다.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그들은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한 권능의 역사를 듣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들어서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것이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사사건건이 트집만 잡아서 공격하였다.
. 4: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① 고향 사람들은 선지자의 가족들의 약점과 결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요, ② 선지자의 인간적인 면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 때문에 그 선지자를 통해서 나타나는 진리와 하나님의 역사가 가려져서 선지자를 배척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선지자가 고향 이외의 다른 데서는 환영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들은 가족과 육신적인 면을 보지 않고, 그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만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역자가 고향에서는 대접을 못 받는다. 또, 교역자의 육신적인 면과 그 가족의 결점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은혜를 잘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역자의 가족과 생활 면에 대하여 너무 자세히 알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이 그 종을 들어서 역사하는 면만 보고 그 종을 통해서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만 귀히 여기며, 환영해야 은혜를 받는다.
. 4:25-2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선지자 엘리야 때에 3년 6개월 동안 흉년이 들어 어려울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그 중 한 사람도 엘리야를 영접하지 못하였고 오직 이방나라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의 한 과부가 엘리야를 영접하였다(왕상17:9). 이것은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은 선지자를 잘 영접하지 않고 먼 데 있는 사람이 잘 영접한 증거로 말씀한 것이다.
.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문둥이가 많았으나 그들은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이방 나라 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깨끗함을 받았다(왕하5:1-24). 그는 이스라엘과는 멀리 있는 이방인이었으나 그 선지자를 존경하고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전적으로 믿고 찾아와서 깨끗함을 받았다. 이 역시 선지자가 가까운 데 사람들보다 먼 데 사람에게 환영을 받은 증거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데서 사람들이 배척한다고 해서 진리 운동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옳은 진리가 있고 생명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그 빛이 멀리까지 비추어 나가서 열매를 맺는다. 진리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만 있으면 엘리야 시대에 시돈 땅으로, 엘리사 시대에 수리아 나라로 빛이 나간 것처럼 복음도 반드시 멀리까지 비추어 나가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는 모든 것을 정복하며 진리 운동은 이기고 또 이긴다(계6:1-2).
. 4:28-29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사람들에게 성경 이사야서를 읽고 잘 깨달을 수 있도록 명확하게 가르쳐 주실 때에 성령이 크게 감화를 주었고 또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고향에서 배척한 것처럼 배척하지 말라고 권면해 주었으나,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도리어 동네 밖으로 좇아내고 죽일 목적으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 밀쳐 내리치려고 하였다.
. 4:30 예수께서 저회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께서 고향에서 위급한 상황을 당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셔서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다. 때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피할 길을 주셔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할 일을 마친 다음에야 데려가신다. 그러므로 죽을까봐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 분명하다.
四. 가버나움 전도(31-44)
. 4: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예수께서 갈릴리 각처에 다니시면서 안식일에 가르치셨고 이번에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 4: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예수님은 성령과 큰 능력으로 참된 진리를 가르치셨으므로 큰 권세가 있었다. 그러므로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 진리의 말씀과 권세 있는 가르침에 놀랐다.
. 4:33-34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가버나움 회당 안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그 귀신이 예수님의 권세에 눌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소리지르며 말하도록 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귀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고, 귀신을 위하여 피 흘리지 않고 택한 백성을 위하여 피 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예수님은 귀신을 심판하러 오셨기 때문에 귀신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귀신들은 장차 심판 받아 무저갱에 들어갈 것을 알고 늘 두려워하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다. 야고보서2:19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귀신을 위해서 피 흘려주시지 않고, 택한 백성을 위해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이다.
. 4: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잠잠하고 귀신의 말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예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준다. 그러므로 잠잠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그것을 가만히 두면 예수님도 귀신과 같은 종류로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명령 한 마디에 즉시 귀신이 나가고 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복종한다.
. 4:36-37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귀신들이 예수님의 능력에 벌벌 떨며 복종하였으나 사람들은 예수님도, 그 능력도 모르고 있다가 귀신이 복종하는 것을 보고야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에 놀라며 기이히 여겼다. 이에 예수님의 소문이 사방에 퍼져 나갔다.
. 4:38-39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다.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그 열병이 예수께서 꾸짖는 말씀 한 마디에 즉시 떠났다. 예수님의 명령 앞에는 질병까지도 절대 복종한다. 마태복음8:15에는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라고 했는데 본 절에는 꾸짖으시니 떠났다고 했다. 아마 만지시며 꾸짖었을 젓이다. 수종드니라 고침을 받은 베드로의 장모가 즉시 예수님께 수종들었다.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수종을 들었을 것이다.
. 4: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밤에도 병자를 데려와 고쳐 주시기를 청했다.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예수님은 그 더러운 병자 한 사람도 버리지 않고 사랑하며 불쌍히 여겨 손을 얹어 고쳐 주셨다.
.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
모든 귀신 들린 자에게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할 때에 꾸짖고 말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귀신의 그 말이 바른 말이지만 금한 이유는 예수님이 귀신과 같은 류(類)로 취급을 받겠기 때문이요, 또 그리스도인 것을 정식으로 공포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 4: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님은 늘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시곤 하셨다(막1:35).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도 처소까치 찾아가 예수님을 자기들의 동네에서 오래 유하도록 간청하였다.
. 4:43-4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붙잡는 그 동네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는 여러 동네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복음을 다른 곳에 전파할 사명이 있는 줄 알고 한 곳에서 큰 역사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다른 곳에 가서 또 복음을 전파하도록 힘써야겠다. 최권능 목사는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75개 처에 교회를 개척하여 설립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자기 몸으로 여러 곳에 다니면서 개척 교회를 세운다든가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 복음 전파할 자는 순종하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그 선교사를 도와주며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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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고기잡음
(대 지)
一. 물고기를 잡게 하심(1-11)
二. 문둥병자를 고치심(12-16)
三. 중풍병자를 고치심(17-26)
四. 레위를 부르심(27-32)
五. 금식과 신랑(33-35)
六.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36-39)
(본문강해)
一. 물고기를 잡게 하심(1-11)
. 5:1-2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바다를 가리킨다. 게네사렛 지방 부근의 갈릴리 바다는 게네사렛 호수라 하고, 디베랴 지방 부근은 디베랴 바다라고 한다. 이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많은 사람이 모여 와 그 말씀을 들었다. 그 호숫가에는 시몬의 배와 요한의 배가 있었으며 그 어부들은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어로 작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어로 작업이 끝나면 그물을 씻어 두는 것이다.
.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가 육지에서 조금 띄게 하고, 그 배에 앉아서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앉아서 가르치고, 무리들은 서서 들었다. 요즘 교회에서 교역자는 강단에 서서 가르치고 교인들은 앉아서 듣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5:4-5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깊은 곳은 그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곳이다(5절). 또 이 때는 아침이며 아침에는 고기가 얕은 곳으로 먹이를 찾으러 나가기 때문에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많지 않은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말씀은 밤새도록 잡아 본 경험이나 어로 원칙에 맞지 않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물을 내렸다.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는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에 맞아야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무조건 믿사오니 하는 것은 맹신이요 참된 믿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반드시 말씀대로 역사해 주시고, 만능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 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고기가 심히 많이 잡혔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곳인데 그 많은 고기가 어떻게 잡혔을까? 그것은 예수님이 몰아 온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바다의 물고기도 몰아올 수 있다. 주의 말씀 한 마디면 천지 만물이 다 순종한다. 말일(末日)에는 주의 말씀 한 마디로 친지가 불사름이 될 것이다(벧후3:7).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 말씀만 하시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역사하시고, 말씀대로 성취하시는 주님이시다. 사람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이루어 주신다.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순종할 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넘치도록 풍성하게 축복해 주신다.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몰아올 것은 몰아다 주시고, 쫓아 보낼 것은 쫓아 주시고, 또 살려낼 것은 살려 주시고, 죽여야 할 것은 죽이시고, 건져 주실 것은 건져 주시고, 심판할 것은 심판해 주신다.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만 하면 일은 주님이 해주신다.
이 사건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와 주신 것과 말씀해 주실 때에 제자들이 그 말씀대로 무조건 순종한 것이다. 오늘날도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고 말씀해 주실 때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큰 역사를 보게 된다. 요한복음11:4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고기가 많이 잡힌 그 때에 혼자 먹으려고 욕심을 부렸다면 그 그물은 찢어졌을 것이고 그 많은 고기를 자기 배에 싣지도 못하고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협력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요청 받은 사람은 기꺼이 도와 줘야 한다. 서로 받들어 나가고, 서로 협력하여 나가는 정신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이 성공할 수 없다. 이기주의로 혼자 하는 것은 실패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 도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며, 서로 협력하여 성공시켜 나가야 하겠다.
.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고기가 많이 잡혔을 때가 위험한 때이다. 이 때는 ① 욕심 부리기 쉬운 때이다. \"황금은 선비의 마음을 검게 한다\"(黃金黑士心)는 말도 있다. ② 부하려 하는 마음이 들어오기 쉬운 때이다. 두 배에 가득한 고기를 다 팔면 큰 재산이 될 것이다. ③ 육신과 세상으로 돌아서기 쉬운 때이다.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잘 살아 볼까 하고 육신으로 돌아서면 예수님도 잃고, 자기도 잃어버리고, 사명도 잃어버려 영원한 실패자 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기 많이 잡은 것을 성공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그것으로 세상에서 잘 살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오히려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한 증거이다. 성도가 사업이 잘되고, 돈 좀 벌었을 때에,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면 안 된다. 교역자도 교인이 많이 모여 큰 교회가 되고, 예배당을 크게 짓고, 여러 가지 사업을 많이 한다고 성공한 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무엇이 잘 되었을 때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는 죄인인 줄 알고, 그 발 앞에 엎드러져야 된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 잘된 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10). ②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지각에 뛰어나 그 일을 성취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주님을 발견할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지지 않을 수 없다. ③ 그 지극히 높으시고 전지 전능하시고 참 빛이신 그리스도 살에서 자신을 비추어 볼 때 자기의 죄와 비천함과 악함과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교회가 외부적으로 부흥되고 잘 될 때 그것을 자랑하며 많은 사업을 벌여 놓으면 기독교 사업주의가 된다. 고기가 많이 잡히고, 돈을 많이 벌고 교회가 커질 때에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돌이켜서 주님을 좀더 발견하여 알고, 자기의 죄와 무능을 발견하여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서 회개하며 겸손해져야 주님의 능력이 머물게 된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였다. 그 때에 그것이 큰 시험인 줄 아시고,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해 예수님은 혼자 산에 올라가 밤이 맡도록 기도하셨다(눅6:12).
. 5: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인간 지각에 뛰어나게 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보고,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다 놀랐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러진 것이다.
.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보고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야보고와 요한 형제도 그 엄청나게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놀랐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님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고 두려워하여 엎드러졌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잡힌 증거이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잡은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고기를 많이 잡게 한 목적이 베드로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물고기 잡는 어부였으나 이 후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사람 낚는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해 내는 것을 가리킨다.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은 자기가 먼저 예수님께 잡혔기 때문이다. 자기가 예수님께 잡히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잡을 수가 없다. 오늘날 교역자와 전도자들이 예수님께 잡히지 않고, 먼저 교인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교인들을 잡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예수님께 잡히면 교인들은 자연히 잡히고, 교회가 잘 발전된다.
.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예수님께 잡힌 베드로는 배와 그물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 마침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잡힌 자는 그 예수님이 너무 귀하고, 영광스럽고 보배로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결사각오로 주님을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을 잘 배우게 되고, 나가서 전도하면 큰 능력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구원해 내게 된다.
二. 문둥병자를 고치심(12-16)
. 5:12-13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절을 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실 때에 즉시 그 문둥병이 깨끗하여졌다.
문둥병은 인간의 심령을 썩게 하는 죄를 상징하고 있다. 죄로 인하여 심령이 썩어져 들어간다. 문둥병에 걸리면 육체가 계속 썩여져 들어가 마침내 생명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문중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하면서 간청한 것을 보면 대단히 겸손하였다. 주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고, 원하시면 이 문둥병까지도 깨끗케 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님은 그 문둥병자의 병을 능력으로 깨끗이 고쳐 주셨다. 성도는 심령에 병이 든 것을 잘 발견해야 한다. 육신에 병든 것은 잘 알 수 있으나 심령에 병이 든 것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으나 그 수치를 알지 못하고 외부적인 면, 즉 교회의 사업적인 면만 보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다가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다.
우리가 심령의 병을 예수님께 나아가 고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을 깨달아 이 문둥병자와 같이 병을 낫고자 하는 간절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다음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간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 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는 위로와 응답을 받게 된다.
. 5:14 예수께서 저를 경계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것은 은혜 받은 다음에 그것을 자랑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성경에 명한 대로(모세의 명한 예물)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레위기14:2-13에 의하면 문둥 병자가 그 병이 나은 다음에 정결케 하는 규례에 필요한 예물로 정한 산새 두 마리와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 흠 없는 어린 수양 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 고운 가루 에바 십 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야 한다. 예수를 믿고 죄에서 깨끗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해야 될 의무가 있다. 문중병과 같이 더러운 죄에서 깨끗해진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야 한다.
.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의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이 말씀도 듣고 병 나음도 얻고자 하여 모여 왔다.
.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은 언제나 복잡한 곳을 떠나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새벽 미명에 고요한 곳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다(눅22:39).
三. 중풍병자를 고치심(17-26)
. 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중풍병자를 고친 장소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의하면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의 집이었다. 갈릴리 각 촌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여 온 자들과 반대하고자 하여 주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께 있어서 많은 병을 고치셨다.
. 5:18-19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 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채 메고 왔다. 마가복음2:3에는 네 사람이 메고 왔다고 했다.
. 5:20-21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그리하여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의 누운 상이 내려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저희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와 그를 메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구원해 줄 것을 믿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에, 사람들이 꽉 차서 예수님이 계시는 방안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지붕 위로 올라가서 구멍을 뚫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이것은 난관을 돌파한 신앙이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에 난관이 가로막혀 있다고 할지라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그 난관을 돌파하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아무리 방해물이 많고 길이 막혔을지라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길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힘써 찾을 때에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보내는 방법을 깨닫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자기의 피로 구속함을 이를 것이기 때문에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 중풍병자는 몸만 예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고 마음도 나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을 볼 때에 마음이 서로 통하고 영이 통하였다. 그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상주실 것을 믿고 사모하여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기어이 예수님 앞에 나아간 것이다.
히브리서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다. 중풍병자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이 그에게 사죄와 새 생명을 주셨다. 이 생명은 죄 사함을 받은 결과로 얻은 것이다. 죄 사함과 새 생명을 얻으면 영적 평안과 즐거움이 넘치게 된다. 누구나 믿고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풍성하게 주신다. 이 중풍병자가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는 줄로 알고 오직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나아갔다.
이 중풍병자가 병으로 인하여 좋은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병들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찾을 마음도 생겼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그것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갈 길을 찾게 된 것이다. 또 자기 힘으로 가지 못할 때에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나아갔다. 이 네 사람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일 것이다. 그 네 사람들도 이 중풍병자를 고쳐 보려는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다른 방법으로는 고칠 길이 없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사53:4 ; 미4:6-7). 서기관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죄 사해 주는 권세가 있는 것도 몰랐다. 그러므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참람하다고 생각했다.
. 5: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악한 생각으로 의논하는 것을 아시고 거기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려고 대답 하셨다. 알지 못해서 악하게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가르쳐 주시는 주님이시다.
. 5:23 네 죄 사항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보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이 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 본문의 내용은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더 어렵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더 쉬운 것임을 말한다. 왜냐하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걸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걸어가게 하는 것은 인자가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는 증거이다. 걸어가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을 하면 쉬운 것은 틀림없이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걸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면 쉬운 것은 했지만 어려운 것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것(걸어가는 것)을 하면 쉬운 것(죄 사함)은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병은 대개 죄 때문에 난다고 볼 수 있다. 병이 나아서 걸어가는 것은 벌써 죄 사함을 받은 증거이다. \'일어나 걸어가는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고, 죄 사함을 받은 결과이다. 요한복음5:14에 38년 된 병자는 죄 때문에 병이 났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더 중한 병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다. 요한복음9:1-3에 소경은 죄 때문에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까닭이라는 말씀이 있으나 이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대개는 죄 때문에 병이 난다고 보아야 한다. 야고보서5:13-16에 죄 때문에 병든 줄 알고 병든 자를 위하여 서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병이 들면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어서 병이 났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병자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도 서로 회개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 5: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실 때에 그 사람이 \"예\" 하고 벌떡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이것을 보면 중풍병자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38년 된 병자에게도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요5:8 참조).
왜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을까?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침상을 그대로 두면, 또 그 자리에 누울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나서 누워 있던 침상을 가지고 가서 아주 내버려야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과거에 심령의 병신 노릇하던 그 환경과 분위기를 정리 정돈하여 끊어 버릴 것은 끊어 버리고 없애야 할 것은 없애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러한 자리에 들어 갈래야 들어 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과거에 심령이 병들었을 때에 사귀었던 친구나 나쁜 습관들을 다 내어버려야 다시 거기에 빠지지 않고, 은혜 가운데서 달음질을 할 수 있다.
. 5: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예수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므로 중풍병자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고 순종하니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이 중풍병자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세계를 만났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기쁘고 즐거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
. 5: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나아서 걸어가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고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들리며 심히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또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을 것이다.
四. 레위를 부르심(27-32)
. 5:27-28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마태복음9:9에는 레위를 마태라고 하였다. 레위는 예수 믿기 전의 이름이고 믿은 다음에는 마태라고 불린 것 같다. 베드로도 예수 믿기 전에는 시몬이었으나 믿은 후에는 베드로라고 불렸다. 도마도 예수 믿기 전에는 디두모라 하였다. 레위는 당시에 그 지방의 세금을 받는 세리였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을 가졌으나 예수님께서 \"나를 좇으라\"고 하실 때에 그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가서 제자가 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좇아가는 믿음은 아주 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마태복음을 기록할 수 있는 우수한 제자가 되었다.
.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부름 받은 마태는 너무 기뻐서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다. 그 때에 자기 친구들도 많이 청하였다. 마태의 친구들은 대개가 세리였을 것이다. 마태가 회개하고 즉시 따라오는 것을 예수님이 기쁘게 생각하시고 그의 초대에 응하여 같이 음식을 잡수셨다.
. 5: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문하였다. 당시에 세리는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취급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참 도를 말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어찌하여 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문한 것이다.
. 5: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의원은 병을 치료하여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병이 없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같이 예수님은 죄인에게 필요한 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죄가 있다고 하여도 예수를 믿고 그에게 나아가면 다 사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五. 금식과 신랑(33-35)
. 5:33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자주 한 것 같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식하는 절기를 정하여 놓고 일 년에 네 번씩 금식하였다(슥8:19 참조).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므로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마9:14).
. 5:34-3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혼인집 손님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신랑을 빼앗길 날은 신자가 예수님을 빼앗길 때를 가리킨다. 금식을 의식주의로 자주 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다. 금식하는 목적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다(사58:3-5 참조).
그러므로 이 목적을 떠나서 절기마다 금식하고, 또 남이 금식하므로 자기도 금식하는 것은 의식주의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신랑과 함께 즐거워하고 교제하며, 새 생명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금식할 필요가 없으나 신랑(예수님)을 빼앗길 때에는 금식하면서 다시 찾아야 된다. 또 자기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할 때에는 부르짖으면서 금식할 필요가 있다.
六. 새 포도주와 날은 부대(36-39)
. 5:36-38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금식에 대한 답변을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①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팽창할 때 부대가 터져서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린다는 것이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는 의문과 의식주의를 가리킨다. 로마서7:6에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문과 의식주의는 묵은 것이다. \'새 옷과 새 포도주\'는 진리와 영감으로 이루어지는 새 생명 운동이며 성도들의 영적 생명을 살려 나가는 신령한 운동이다. 영을 살리는 영적 역사는 새 것인데 이것을 묵은 의식주의 속에 넣으면 안 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둘 다 버리게 된다.
요한복음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였다. 영의 운동을 의문과 의식주의의 속에 넣어두면 영적 운동이 실패되고 의식주의도 제대로 안 된다. 교회는 영을 살려내는 일을 하여야 한다. 세상주의와 인본주의와 의식주의로 나가게 되면 영의 운동도 되지 않고 세상 운동도 되지 않는다. 영혼이 살아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요 의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식주의로 기울어지면 영적 운동을 할 수 없다. 영이 자유롭게 진리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생명의 역사가 있고, 반면에 영이 의식에 얽매어 제재를 받는다면 영의 역사는 중단이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새 부대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롬7:6 ; 히8:13 참조). 우리의 중생한 영이 말씀과 영감 속으로 들어가야 우리의 영적 생명이 점점 창성하고 생명의 역사가 커 나간다. 교회를 외부적으로 부흥시키기 위하여 의식주의와 인본주의로 나아가면 안 된다. 교인이야 많든 적든 진리를 바로 밝히고,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세우고 영을 살려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참 빛의 등대가 되는 것이다.
.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묵은 포도주 되는 의식주의에 도취된 자는 새 포도주 되는 새 생명 운동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세상주의와 의식주의와 명예 영광주의에 빠지면 육체적으로는 그것이 좋기 때문이요, 영의 길은 육체적으로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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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제자 선택
(대 지)
一. 안식일 문제(1-11)
二. 열 두 제자를 부르심(12-16)
三. 병을 고치심(17-19)
四. 사복(四福)(20-23)
五. 사화(四禍)(24-26)
六. 사랑의 법(27-36)
七. 비판지 말 것(37-38)
八. 제자와 선생(39-40)
九. 들보와 티(41-42)
十. 나무와 열매(43-45)
十一. 건물 비유(46-49)
(본문강해)
一. 안식일 문제(1-11)
. 6:1-2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한 세밀한 규칙을 만들어 안식일에 이삭 자르는 것도 금하였다. 그러나 신명기23:25에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고 하였다(출12:16 참조). 제자들이 시장하여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율법에 어긋남이 없으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계명보다 사람의 유전을 더 귀중히 여겨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하지 못할 일이라고 비난하였다.
. 6:3-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은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서 진설병을 먹은 예를 들어 말씀 하셨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놉이라는 곳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할 진설병을 먹었다(삼상21:6 ; 22:10). 그러나 성경이 그것을 죄라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성전에서 했고, 하나님의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먹은 것이기 때문이다.
. 6:5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주일(主日)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주인 되시는 예수님은 당신의 뜻대로 안식을 주장하셔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고자 하신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이 안식을 주시고자 함이다.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받아 그 안식 세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안식을 받지 못한 자는 아직도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안식을 누리면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김현봉 목사님에게 어떤 과부 교인이 찾아왔을 때에 그 과부에게 \"요사이 하나님 앞에서 위로를 받느냐\"고 물어 보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누리고 있느냐는 말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고 있으면 과부일지라도 남편보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낙원에서 살게 된다(사56:3-7 참조).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것을 풍성히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심령으로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다. 일평생에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할지라도 헛되고 헛된 것이다.
전도서5:18에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라고 하였고, 전도서5:10에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라고 하였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부귀와 영화가 극치에 달하였으나 모두 지내고 보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하였다(전1:2).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중에 영적 안식을 누리는 것이 참된 복이다. 세상에서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복된 삶이다. 현재 영적인 안식을 누리면 영원한 성공이요, 영적인 안식을 잃어버리면 영원한 실패이다. 성도가 주일날 영적인 안식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나, 먼저 행위로써 주일에 일하지 않는 것부터 지켜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이 토요일이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주일로 변경되었다. 하나님이 친지 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칠 일째 되는 날에 쉬셨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칠일 안식일을 지켰으나 오랜 후에 다시 다른 날을 정하여 이레 중 첫날에 안식일을 지키게 하였다(히4:7-10).
토요일에 지키던 옛 계명이 연약하여 폐하고(히7:18), 새 계명으로 주일을 지키게 하였다. 주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고(마28:1), 부활 후 첫 오순절날(부활일 후 49일째)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는데 그 날이 주일이었다(행2:1). 또 주일에 성부께서 계시를 주셨다(계1:10). 주일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과 말씀과 은혜를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구약 시대에 지키던 제 칠일 안식일을 폐지하고 주일(일요일)을 지켜야만 4계명을 바로 지키는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이나, 월삭, 절기들은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골2:16-17). 구약의 모든 제도는 그림자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 놓은 것이 실체이다. 사도들도 주일을 지켰다(고전16:2 ; 행20:7).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안식의 표징이다.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강제로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더 좋은 안식 세계를 예비하여 놓고, 그 안식을 주기 위하여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다(출31:13). 그러므로 주일에 일하면 안 된다. 주일에는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일지라도 일하지 말고, 자녀나 남종이나 여종이라도 주일에는 일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출20:8-11).
우리가 주일을 지켜야 함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쉬신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영적 안식을 받기 위하여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심령 속에 안식을 받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한 주일 동안 안식을 누리면서 그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또 앞으로 영원한 안식이 올 것을 보여 주는 날이다. 현재에도 주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에 참여하고 동시에 앞으로 천년 왕국과 영원한 하늘 나라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을 믿고, 그 세계를 바라보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성도가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서 버스를 타면 죄인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써 버스를 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주일에 사사로운 일을 보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합당치 않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심방하거나 구제하거나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은 주일에도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주일에 일하면 죄이다.
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외부적인 면과 내부적인 면이 합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완전하다. 나무가 살려면 나무 껍질도 성해야 하고 나무의 속도 살아야 한다. 만일 나무의 속만 중히 여기고 껍질은 필요 없다고 하여 벗겨 버리면 그 나무는 죽고 만다. 영적 안식만 중히 여기고, 외부적인 면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율법을 폐하는 자이며, 나무의 껍질은 필요 없으니 다 벗겨 버리자고 하는 사람과 같다.
내적인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외부적인 면만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나무의 속은 다 죽어 생명이 없는데 껍데기만 잘 유지하겠다는 사람과 같다.
주일은 육신이 쉬는 날이 아니고, 영혼이 쉬는 날이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쉬어야 되겠는데 예배당에 나가면 여러 시간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더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영적인 안식 세계에 들어가면 그 심령이 기쁘고 즐겁고, 또 위로가 와서 육신의 피곤함도 없어진다. 토요일까지 죽어가던 사람이 겨우 주일날 예배당에 나왔다가 하나님의 안식을 받아 육체도 건강해지는 수가 많이 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안식의 은혜를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십계명 가운데 중심 계명이 이 넷째 계명이다. 안식일에 안식 세계에 들어가서 안식을 얻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한 주일 동안 그대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장차 오는 천년 왕국의 안식 세계와 영원한 하늘 나라의 안식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를 위한 준비를 매일 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하라고 안식일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내어버리는 사람이요, 진주를 발로 밟는 돼지와 같은 사람이다.
. 6:6-7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들어왔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낫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송사할 혐의를 찾기 위해 안식일에 그를 고쳐 주는가를 엿보았다.
빙거는 혐의, 고소 이유, 입증 자료를 가리킨다. 바리새인들의 법에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송사하려고 엿보고 있었다.
. 6:8-9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영혼을 살려 내는 일, 다른 사람을 영적 흑암에서 건져내고 선을 베푸는 일들은 안식일에 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기주의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안식일에 무슨 일을 하면 그것은 죄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송사할 재료를 찾고자 하여 엿보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편 손 마른 사람을 회당 가운데 일으켜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과 생명을 살리는 일이 옳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 6:10-11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말랐던 손이 온전히 회복되었다. 그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감탄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나은 데 대한 감사도 하지 않고, 도리어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기 위해 의논하였다.
二. 열 두 제자를 부르심(12-16)
.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이 산에 가서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 열 두 제자를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들을 제자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오늘날도 교회 직분을 세울 때에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를 세워야 한다. 마태복음10:1-7에 보면 열 두 제자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을 고치며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면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였다. 복음 전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이런 권능이 있다. 열 두 제자에게 준 권능을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귀신을 좇아내고, 심령의 병든 자를 고쳐 주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해주고, 주의 나라가 창성해 나가도록 복음을 전해야겠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직접 불러서 보내신 자들이다.
. 6:14-16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가룟 유다라
여기 열 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성경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이 네 곳에 나타나 있다(마10:2-4 ; 막3:16-18 ; 눅6:14-16 ; 행1:13).
셀롯이라 하는 시몬 마태복음10:4에는 가나안인 시몬이라고 하였다. 셀롯은 헬라어요, 가나안은 히브리어인데, 그것은 \"열심\"이라는 뜻이다. 그는 열심 당파에 속했던 사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도 열심 있는 제자이었을 것이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마태복음10:4에 다대오라고 하였다. 가룟 유다 예수를 판 자로서 불택자요 처음부터 믿지 않은 자이다(요6:64).
예수께서 이러한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① 후대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을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②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③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심판) 때까지 함께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④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다(요13:18 ; 시41:9).
⑤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三. 병을 고치심(17-19)
. 6: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예수의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많이 모여들었다.
. 6:18-19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예수께로부터 병 고치는 능력이 나오므로 귀신들린 자와 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예수님을 만지려 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얻었다. 오늘날도 성도가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 접촉하고 의뢰할 때에 그의 능력을 힘입게 되어 마귀를 이기고, 모든 심령의 병을 고칠 수 있다.
四. 사복(四福)(20-23)
.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본 절에서 23절까지 예수께서 네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5복 ① 장수(長壽), ② 부귀(富貴), ③ 강녕(康寧), ④ 유호덕(被好德), ⑤ 고종명(考終命)을 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참된 복이 못되며,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다 없어진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복은 영적 복이요, 친국에 가서까지 영원한 복이 되는 것이다.
그 첫째 복은 가난한 자라고 하였다. 마태복음5:3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 심령이 가난한 자를 왜 복이 있다고 했는가? 심령에 가난을 느끼는 자는 심령으로 사는 증거이다. 심령으로 사는 자는 더욱더 심령에 가난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자는 벌써 천국(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자요, 앞으로 더욱더 천국(신령한 것)을 많이 받을 자이다. 이 천국을 소유하는 자는 금생과 내세에 영원한 복을 받는다. 물질에 가난을 느끼는 자는 그것을 찾고 구할 것이며, 영적인 것에 가난을 느끼는 자는 영적인 것을 찾고 구할 것이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것을 간절히 사모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찾고 구한다. 육신의 것을 찾고 구하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요, 영의 것을 구하고 찾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다(갈6:8).
심령이 가난한 자는 계속하여 영으로 살기 때문에 영의 것이 모자라 늘 가난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자는 계속하여 신령한 것을 받아 가지게 되므로 천국을 더욱더 소유하게 된다. 하늘 나라의 것은 목마른 자, 원하는 자가 받게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22:17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가난하여 목마른 자는 복 있는 자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요한 자는 신령한 것을 받을 것도 없고 받을 수도 없으므로 불쌍한 자이다.
. 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마태복음5:6에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가리킨다. 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어떻게 해야 의의 길을 걸어 나아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하고 하나님의 의를 찾고, 그 의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갈급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취하지 않고, 의 하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
베드로후서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다. 땅에서 의를 이루어 놓은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고린도후서9:9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누가복음19:12-19에는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를,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땅에서 의 하나 이루는 것이 천국에서는 한 고을 권세 만한 것이다. 성도는 천하를 다 준다고 하여도 의가 아니면 행하지 말고, 또 의를 이루는 일이라면 죽음이라도 사양치 말고 나아가야 한다.
스데반은 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다니엘은 의를 위하여 사자굴에 들어갔다. 의가 참으로 귀한 줄 알고, 오늘 이루어야 할 의는 오늘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세례 요한이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례를 베풀고, 헤롯왕을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히어 죽기까지 하였다. 우리 성도가 의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고, 그 의를 이루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기울어야 한다.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의를 이루기 위하여 간절히 사모하며 밤낮 애타는 심령으로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의를 이를 날이 오게 된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하게 될 것이고, 또 자기가 의를 이루어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성도를 이 세상에 살게 하는 목적은 믿는 일을 잘하여 의(하나님의 뜻)를 이루라는 것이다. 의인 줄 알면서도 자기 육신에 매여 따라가지 못하고 돈과 인정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의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의인 줄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재산이나 자기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따라가야 한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바치는 것이 의이다. 주님께서 나귀를 바치라 할 때에 만일 바치지 않으면 그는 불의를 행한 것이요 죄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하실 때에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것이 의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따라오라고 하실 때 따라가지 않으면 불의요 죄이다.
의를 하나 이루면 자기 영이 그만큼 배가 부르고 강해지고 자라나고 커지므로, 하늘 나라에서 상급이 그만큼 크다.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은 마태복음5:4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이다. 우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마침내 기뻐 웃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우는 자인가?
① 자기의 죄를 붙들고 우는 자이다.
②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기를 소망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일, 즉 말씀대로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 때문에 우는 사람이다.
③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해서 우는 사람이다.
우리 성도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갔더라도 좀더 깊은 세계에 들어가려고 울어야 한다. 세상의 것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것을 위하여 우는 자가 복이 있다.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죄 때문에 울면 마침내 죄 사함 받은 기쁨이 있게 된다. 또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울면 마침내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여 울면 드디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고 기뻐하며 웃게 된다. 또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나, 그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애통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능력을 입혀서 말씀대로 만들어지게 하신다. 그 때에는 한량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와서 웃게 된다.
진리(말씀)의 세계는 애통을 통과해야 기쁨이 오고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다. 또한 애통을 통과한 다음에 오는 기쁨이어야 참된 기쁨이다. 그러므로 애통을 통과함이 없이 얻어지는 기쁨은 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일시적이다. 따라서 애통이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성도가 자기의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울면서 말씀의 표준에 도달하려고 힘을 쓰되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교역자들도 날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해 나가야 겨우 교회가 이루어진다. 피와 땀을 흘려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진액을 짜 바치고, 사선을 넘는 수고와 인내가 있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 6:22-23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버림을 당할 때에 복이 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를 따라 감으로 미움을 받고 욕을 먹기 때문이다. 그가 욕을 먹고, 핍박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라가기 때문이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성경대로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영은 벌써 자라났고, 그 의는 영원히 남아 있고,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더 그에게 머물게 되어 하나님께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게 된다.
그 날에는 주를 위하여 미움과 멸시를 받고, 욕먹고, 악하다 하여 버림받을 때를 가리킨다. 성도는 그 날에 기뻐하며 뛰놀만하다. 이는 큰복을 받았고 더욱더 받겠기 때문이다.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유대 사람의 조상들이 참된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미워하였다. 선지자들은 세상을 거스려 진리대로 올라가고, 세상사람들은 진리를 거스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에나 진리대로 걸어가는 성도는 핍박을 면할 수가 없다.
五. 사화(四禍)(24-26)
.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본 절에서 26절까지에는 예수께서 네 가지 화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 첫째 화는 \"부요한 자\"이다. 이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와는 정반대로 심령의 가난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재물과 세상적인 것과 종교의 의식적인 것과 사업적인 것으로 만족하고 부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다. 누가복음12:16-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을 가지고 부요한 마음을 가졌고, 요한계시록3:14-22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교 의식과 사업적인 면과 교인수가 많은 것을 가지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수치를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셨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 것으로 만족하지 때문에 신령한 것은 받지 못하고 받을 수도 없다. 그들은 세상의 것이 없어질 때에 자기도 망하고 만다. 이것이 화이다.
.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회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둘째 화는 \"배부른 자\"이다. 이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반대이다. 이 사람들은 의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배부른 심정과 배부른 태도로 나가는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귀한 진리를 주어도 받지 않고 내어버리며, 의에 대해서 귀히 여기지 않고 등한히 여겨 흘려 떠내려보내고 만다. 이런 자의 심령은 벌써 주려 있는 것이요 앞으로 더욱더 주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화이다.
셋째 화는 \"너희 이제 웃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애통하는 자와 반대로서 육신적 향락 생활과 종교 사업의 성공으로 웃는 자들이다. 이들은 영적 생활을 하지 못하며 영적 생활에서 떠났기 때문에 죄에 대한 애통이나, 의를 이루기 위한 애통이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아가기 위한 안타까움이 전혀 없다. 이런 자는 영에 속한 것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는 세상 것과 외부적인 것이 없어질 때에 애통하며 울게 될 것이요, 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애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화이다.
.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넷째 화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는 것\"이다.
진리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살후3:2 참조). 따라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거스리고 나간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는 진리로 나가지 않는 증거이다. 반대로 진리대로 나가면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핍박도 받고 미움도 받고 욕을 먹는다(22절).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그 사람은 신앙을 양보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사람의 요구와 의견을 따라서 나가는 자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같이 했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은 진리를 양보했으니 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요12:48).
六. 사랑의 법(27-36)
. 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산 믿음을 가진 자는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게 된다. 또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진정으로 잘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도는 말씀으로 중생하였고, 중생한 영은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는 자는 죽은 믿음이요 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육으로 사는 자이다. 따라서 중생한 영을 쓰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겨 용서해 주고 축복해 주며 항상 선으로 대하게 된다. 참 성도는 선을 베풀지 못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축복해 주지 못할 사람에게 축복해 주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해 준다.
. 6: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좌우 뺨을 맞는 것은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일이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해도 내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 즉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생활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영적 성결을 빼앗기지 않고 심령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다.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속옷과 겉옷은 물질 문제이다. 속옷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이며 자기 몸을 가리우기 위해 내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까지 내어놓을지언정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생명의 역사는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마태복음5:41에는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권 유린을 당할지라도 영적 생명의 역사는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뺨을 맞는 인격 모독을 당하거나 내 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희생당하거나 인권 유린을 당할지언정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과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일은 빼앗기지 않아야 된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생명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물질이나 인권 문제보다 몇 만 배 더 크기 때문이다. 저것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없어지나, 이것들은 현세에서 영이 살고 내세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 6: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행20:35).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후하게 주면 그 사람에게 심은 사랑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사랑할 때에 사랑의 그릇이 커지며 자기의 영이 자라나고, 선한 심정은 넓어지며 긍휼이 점점 커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아간다. 이것은 금생과 내세에 큰 유익이 되므로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남을 도와주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
.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남이 자기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자기가 남에게 먼저 해 주라는 뜻이다. 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을 참고하면 일어 성경(일본성서협회간)에는 \"무슨 일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하라\"고 했고, 영어 성경(흠정역)에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네가 그 사람들에게 그대로 하라\"고 번역되어 있다(마7:12의 영역). 저 사람이 나에게 좀더 친절하게 해 주면 좋겠다고 바란다면 내가 먼저 저 사람에게 친절하게 해 주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먼저 자기에게서 이루어져야 하겠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만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그대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볼 때에 그 사람에게 그러한 결점이 없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그러한 결점을 찾아 고쳐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불평 불만하지 말고,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저 사람이 원만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 바란다면 자신이 먼저 그러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 6:32-33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은 자연적 사랑이요 그 사랑은 이기주의(利己主義)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일은 죄인으로 취급받는 부도덕한 사람들도 행하는 일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람이므로 그리스도의 빛이 모든 사람에게 비취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 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은 일종의 선이다. 그러나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려주면 주었다가 받으니 자기의 것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러한 선은 이기심에서 나오기 쉽다. 희생적 동정이라야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다.
.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약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참된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빌리는 것이다.
성도에게 사랑하지 못할 만한 사람이 나오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믿음을 쓰게 하기 위함이요, 그 사람을 사랑하므로 성도의 영이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요, 성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어 나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사람과도 막히면 안 된다. 성도가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히게 된다. 보일러 파이프로 물이 돌아가다가 파이프 어느 한 곳에서라도 막히면 전체 파이프의 물이 돌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라도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히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사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사이에 막힌 것이 있으면 즉시 풀어야 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긍휼을 베풀어주는 자가 되어야겠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빌리는 것은 참으로 믿음을 쓴 것이요 참된 사랑을 베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행동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고 배반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한결같이 자비와 인자를 베풀어주신다.
.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성도는 하나님을 닮아 나가는 자이므로, 천부께서 악한 자나 선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배워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다.
七. 비판치 말 것(37-38)
. 6: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사람을 비판하지 않아야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비판을 받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면 사람에게 대한 것을 바로 해야 한다. 성도가 사람 앞에는 아무렇게 하여도 하나님 앞에만 바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판을 받는다. 비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결점을 덮어 주며 용서해 주어야 자기도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받게 된다(마6:14).
야고보서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받으려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주인이 탕감해 주었는데, 그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서 당장 갚으라고 하였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참아 달라고 하여도 참아 주지 않고, 빚을 갚지 않는다고 감옥에 가두었다. 주인이 그것을 알고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를 불러다가 \"이 악한 종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과 같이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책망하면서 탕감하여 준 일만 달란트를 다시 다 갚으라고 하였다(마18:23-35).
진리에 어긋난 문제는 비판을 가해야 하겠으나,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얼마든지 용서해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에베소 교회가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은 잘하였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으므로 책망을 받았다(계2:2-6). 우리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고 용납하여 긍휼히 여겨야 한다. 형제가 내게 잘못할 때에 일곱 번까지 용서하여 주리이까 하고 베드로가 여쭈어 볼 때 예수님은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라고 하셨다(마18:21-22).
.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갚아 주시되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신다. 먼저 신령한 것을 후히 주시고, 또 물질면에도 후히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남을 사랑하고 희생 봉사하며 연보하고 전도할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헤아린다는 것은 달아본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인격과 심사를 달아보고 헤아려 보는 것을 말한다. 즉, \"저 사람이 몇 푼 짜리나 될까?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자기 생각대로 추측하고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드러났더라도 그 사람을 정죄하는 입장에 서지 말고 그 사람을 사랑으로 권면하고 그 사람이 회개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회개하고 바로 서면 지난날의 모든 잘못은 다 용서해 주고 헤아리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이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바로 섰는데도 내가 그 사람의 잘못을 기억하고 용납하지 아니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내가 헤아림을 받게 된다.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난 후에 \"내가 과거에 잘못 하였으므로 저 사람이 나를 지금도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라고 추측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된다. 남을 헤아리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든 것이다. 성도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세계요, 회개할 때에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는 관용의 세계이다.
八. 제자와 선생(39-40)
.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소경은 영적 소경을 가리킨다. 신령한 세계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또 성경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하지도 않으면서 남을 인도하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인도자와 인도를 받는 자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선생은 예수님이요 제자는 우리 믿는 성도들이다. 제자가 선생 같이 되면 족하다(마10:24). 우리의 선생 되시는 예수님이 남을 섬기는 생활을 하였고, 자기가 희생하여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 성도가 예수님과 같이 되려면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제자가 선생 같이 되어야 온전케 된 제자라는 뜻이다. 선생 같이 되지 못한 제자는 아직 온전케 된 제자가 아니다.
九. 들보와 티(41-42)
. 6:41-4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의 눈 속이 있는 티 형제가 행동으로 잘못한 것을 가리킨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부패성(죄악성)을 가리킨다. 성도는 자기 속에 있는 죄악성이 들보와 같이 큰 줄로 알고 그것을 빼내려고 힘을 써야 한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빼내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믿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형제의 마음속에 있는 죄는 볼 수 없고 행동으로 나타난 죄만 볼 수 있다. 그 나타난 죄는 그 사람의 속에 있는 부패성이 다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일부만 나타났으므로 자기 속의 부패성에 비하면 형제에게 나타난 허물은 극히 작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은 형제가 외부적으로 범한 터보다 굉장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들보라고 한 것이다. 성도가 자기 속에 있는 들보와 같이 큰 부패성을 찾아 빼내버리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이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하였다(딤전1:15). 나는 전적 부패한 자이며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롬7:18). 이 부패성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안타까워하고 탄식하며 그것을 빼내버리려고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진실한 성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외식하는 사람이 된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결점과 잘못한 것만 들추어내면서 자기 속에 있는 더럽고 악한 부패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외식하는 자가 되고 만다. 성도가 자기의 부패성을 제거하려고 힘쓰면서 겸손하고 진실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사람의 속에 있는 죄악성은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이는 것,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와 같은 것이다(막7:21-23). 자기 속에 있는 이러한 큰 죄악성은 보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탄식하고 애통하지 아니하면서, 다른 사람의 외부적으로 나타난 작은 죄만 보고 비난하는 자는 분명히 외식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자기 속에 있는 들보를 날마다 빼내버리는 생활을 하여야 참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게 되며, 다른 사람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된다. 자기가 만들어져야만 다른 사람도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자기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버려야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도 빼낼 수가 있다.
十. 나무와 열매(43-45)
. 6:43-44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히고, 못된 나무에서는 못된 열매가 맺힌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다. 무화과나무에서는 무화과가 열리고,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린다.
. 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마음에 악을 쌓은 사람은 악이 나오게 되고, 선을 쌓은 사람은 선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언행을 보아서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언행이 좋으면 좋은 사람이고, 언행이 나쁘면 나쁜 사람이다. 거짓 선지자도 그 열매, 즉 그 언행을 보고 알 수 있다.
十一. 건물 비유(46-49)
.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셨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치 않는 자에 대하여 다음절에 비유로 말씀하셨다.
. 6:47-49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치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으로 깨달아 거기서부터 행하여진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다. 마태복음13:23에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좋은 땅에 뿌린 씨와 같아서 결실을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맺는다고 하였다. 이것이 반석 위에 지은 자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열매를 맺히지 못한 자이다. 이것은 길가와 돌짝밭과 같은 것들이다(마13:18-22). 이들 가운데는 처음부터 마귀에게 빼앗긴 자도 있고, 환난이나 핍박이나 세상 염려나 재리의 유혹에 넘어가 실패한 자들도 있다.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과 풍파를 말한다. 심령 속 깊이 확실히 깨달은 진리는 어떠한 환난이 와도 그것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심령 속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은 환난이 올 때에 그 진리를 내어버린다. 그것이 곧 집이 무너지는 것이다.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행동으로 순종하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진리를 깨달아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하셨으며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진리를 심령 속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좀더 깊이 깨달아야 되고, 좀더 확실하게 깨달아야 되고, 좀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아야 한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행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행하였다고 하여도 환난과 핍박과 유혹이 오면 다 넘어가고 만다. 확실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환난이 오고, 핍박과 유혹이 오고,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여도 그 진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반석 위에 지은 까닭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확실한 깨달음에서는 반드시 행함이 나온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다(약2:17).
심령으로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그 말씀이 자기 자체가 되고, 생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버릴 수가 없다. 육신의 목숨보다 그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더라도 그 말씀은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을 심령 속 깊이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면 좋을 때에는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환경이 나빠지고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과 핍박이 오고 손해가 나게 되면 그 말씀을 내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모래 위에 지은 자요 어리석은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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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요한 질문
(대 지)
一. 백부장의 신앙(1-10)
二.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11-17)
三. 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증(18-30)
四. 이 세대를 책망하심(31-35)
五. 죄 많은 여자가 예수님께 기름 부음(36-50)
(본문강해)
一. 백부장의 신앙(1-10)
. 7: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예수께서 산상 보훈을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가버나움에는 예수님의 집이 있었다. 예수님이 처음에는 나사렛에 사셨으나 후에 이곳으로 이사하신 것 같다.
.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부대장이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으므로 로마 군대가 주둔하여 치안 질서를 유지하였고, 백부장이 일반 행정까지도 겸하여 주관하고 있었다. 따라서 백부장은 상당한 지위와 세력을 가진 사람이다.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백부장이 자기의 종을 대단히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런데, 그 종이 중풍병이 들어 몹시 괴로워하였고(마8:6), 그 병세가 심하여져서 거반 죽게 되었다.
. 7: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마태복음8:5-6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께 와서 간구한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본문에는 백부장이 유대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그 종을 고쳐 주기를 간청하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장로들을 보내서 간청했고, 잠시 후에 백부장 자신이 직접 나아와서 간청한 것 같다. 누가는 처음 것을 기록했고, 마태는 나중 것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 7:4-5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유대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간절히 구하여 백부장을 위하여 그 종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백부장은 로마인으로서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유대인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선한 일을 많이 한 백부장에 대한 고마움을 그 지방 사람들이 잊지 않고 예수님께 그 종을 고쳐 주시도록 청했다. 이와 같이 남을 도와주고 선을 베풀면, 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 사람을 도와주게 된다. 만일 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 7:6-7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예수께서 백부장의 집으로 가실 때에 백부장이 자기 친구 몇을 또 보내어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백부장은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바로 알아 겸손하였고, 예수님을 바로 알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백부장이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중풍병도 나을 것을 믿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리스도로 믿으며 친지의 대주재로 믿는 신앙이다.
. 7: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자기 하인이 자기 말을 복종하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에 친지 만물이 모두 복종하게 된다는 뜻이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천지의 대주재시요 절대적인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백부장이 믿었다. 아무리 큰 세력이라도 주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고, 사람의 속에 있는 병이나 세균까지도 주의 명령에 복종하게 될 것을 믿었고, 따라서 자기 하인의 중풍병까지도 낫게 될 것을 믿은 것이다.
이 백부장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아무 걱정 할 것이 없다. 예수님은 절대 주권자이시고, 무한한 권능이 있어서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모든 것이 복종하게 되는데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물고기도 복종하고, 바람도 복종하고, 병도 복종하고, 바벨론이나 애굽의 세력도 복종하게 되고, 귀신도 복종하게 될 것이므로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백부장의 신앙을 보시고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실 때에 그 시로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마8:13). 주의 명령 한마디면 육신의 병도 다 나을 수 있고, 심령의 병든 것도 다 나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때로는 주께서 성도가 병든 것을 보시고도 명령을 안 해 주시고 가만 내버려두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회개시켜 바로 세우고, 또 연단시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병든 것을 예수님께서 즉시 고쳐 주시지 않는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바로 설 바를 바로 서 나아가면서 계속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눈병도 주의 명령 한 마디면 다 낫게 하실 수 있으나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게 하시려고(고후12:9) 고쳐 주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 신령한 것을 주실 줄 믿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겠다. 우리는 육의 것으로 구하지만 하나님은 신령한 것으로 주시고, 우리는 잘 모르고 잘못 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쉽고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40년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여 이스라엘을 낮추고 시험하신 후 마침내 복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다(신8:16).
.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백부장의 신앙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제일 큰 신앙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백부장의 신앙은 어떠한 신앙인가? ① 종까지도 사랑한 신앙이다. ②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경외한 신앙이다. ③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이다. ④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복종할 줄 믿는 신앙이다.
. 7: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그의 종을 고쳐 주셨다.
二.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11-17)
. 7:11-13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나인 성은 가버나움에서 약 20 마일(약 32km)쯤 떨어져 있는 작은 성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곳으로 가실 때에 많은 무리가 따라왔다. 그런데 그 성에 사는 한 과부의 독자가 죽어 그를 장사하기 위해 사람들이 메고 나왔다. 그 때 그 과부는 아들에 대한 소망이 끊어졌으므로 슬피 울며 따라갔다.
그 때 예수님은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긴 이유는 그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것 때문이 아니고, 부활이요 생명 되신 그리스도가 와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생명이 없다고 우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참으로 불쌍하기 때문이었다.
. 7:14-15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죽어 관속에 넣은 바 된 그 청년이 즉시로 살아나서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 되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참된 생명이 예수님께 있으니 이제는 아들을 의지하여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죽은 자를 살려 낸 것이다.
.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
표적을 중요시하는 유대인들은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까지 이르렀으나 그 표적의 참된 뜻인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단지 큰 선지자라고만 하였다. 이것이 이적 신앙이다. 이적 신앙은 참 신앙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죽은 자를 살린 예수님의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 언제나 이런 소문은 잘 퍼져 나간다.
三. 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증(18-30)
. 7:18-20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요한의 제자들이 옥에 있는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고했다. 그 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둘을 불러 예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물어 보게 했다.
오실 그 이 메시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이 공생활 하시기 전에 미리 광야에 나가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치며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고, \"내 뒤에 그리스도가 오실 터인데 그는 나보다 먼저 계신 자요,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노라\"고 증거하였다. 또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하여 확실히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에게 나아가셨을 때에도 \"내가 마땅히 당신한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세례를 주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또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임하는 것을 세례 요한이 실제로 보았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또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하여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하였다. 또 예수님이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하며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심판주이심을 확실히 증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한이 어째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였을까?
이것은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의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신앙의 잠이 들어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호한 가운데 빠졌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여우와 같은 헤롯을 당장 심판하시고 세례 요한 자신을 감옥에서 즉시 건져내 주시고 즉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도 예수님은 한번도 와 보지 않으시고 세상은 여전하였다. 그러므로 부자유한 가운데 고통이 너무 심하여 일시적으로 신앙의 잠이 들어 예수님이 심판주 되심을 의심하게 된 것 같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드는 수가 때때로 있다. 엘리야가 신앙이 좋아서 아합왕의 죄를 책망하고,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겨루어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사름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고, 바알 선지자 450인을 죽였다. 또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왔다. 이러한 엘리야도 이세벨이 죽이려고 할 때에 도망 가다가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엘리야의 신앙이 잠든 증거이다.
성군 다윗도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요나도 신앙의 잠이 들어서 박넝쿨이 마르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앙이 좋은 사람도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면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 쉬운 것이다.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의 잠이 들어 실족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7:21-22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성도에게 신앙의 밤이 와서 잠이 드는 수가 가끔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힘을 써 믿음으로 나가면 낮이 되어 잠에서 깨어 날 수 있다.
이처럼 밤과 낮이 여러 번 지나는 동안 신앙이 자라난다. 시험이 올 때는 밤이고, 시험을 이기면 낮이 된다. 이렇게 낮과 밤을 거치는 동안 열매를 맺힌다.
요한계시록22:2에 생명 나무에 달마다 열매를 맺힌다고 하였다. 달이 차서 광명한 밤이 되었다가 그믐이 되어 어둔 밤이 오면 한 달이다. 즉 보름(광명)이 오고 그믐(흑암)이 올 때가 한 달이다. 성도의 신앙은 흑암이 왔다가 광명이 올 때에 열매가 맺힌다. 즉 시험이 들어와서 그 시험을 이길 때에 신앙의 열매가 맺힌다. 그러므로 밤이 올 때에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밤이 와도 성경대로 하고 원리 원칙대로 나가면 반드시 광명이 오고 열매가 맺히게 된다.
. 7:2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것은 세례 요한의 실족한 데 대한 예수님의 책망이다. 실족은 넘어진다는 뜻이다.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 넘어진 것을 가리킨다. 세례 요한이 실족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이다. 책망 받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실족한 사람에게 책망해 주는 사람이 참된 선생이다. 나의 잘한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은 나의 도적이요 나의 잘못한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은 나의 선생이라(道吾善者는 是吾賊이오 道吾惡者는 是吾師니라)는 말이 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을 책망해 준 것은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다음에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칭찬해 주셨다. 사람들이 만났을 때에는 칭찬해 주고, 돌아간 다음에는 욕하고, 깎아 내리고, 비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반대로, 있을 때에는 책망하고, 떠나간 다음에는 칭찬해 주셨다.
. 7:24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줄 때에 무엇을 보려고 너희가 나갔었느냐는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여론에 따라 움직이거나,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움직이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 세운 종이며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사치하고 호화로이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왕궁에 있느니라 왕이 잘못해도 옳다고 하여 아부하는 자들은 권세를 얻어 호화로이 연락하는 생활을 한다.
세례 요한은 부드러운 옷을 입기 위하여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의를 위하여 왕을 면책한 반석과 같이 강직한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이 세상에서 호화롭게 살기를 힘쓰지 않고 의를 귀중히 여기고 의를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세례 요한에 대해 예수님이 가장 바로 알고, 가장 바로 인정해 주셨다. 예수님을 바로 안 사람은 세례 요한이고, 세례 요한을 바로 안 분은 예수님이시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 나타나서 세례를 줄 때에 많은 사람이 요한을 따라갔으나 감옥에 갇힌 후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바로 알고 증거해 주셨다.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 실수하였으나 그것 때문에 그가 일생 동안 해 놓은 것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충성을 잘하던 사람도 한번 실수하면 그 사람을 쉽게 내버리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실수한 것은 책망하셨지만 그 사람이 한 일과 그 사람의 인격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인정해 주셨다. 예수님은 실족한 자일지라도 진정으로 회개만 하면 용서해 주시고, 과거에 잘한 것을 인정해 주시며 다시 쓰신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고 내어버린다.
. 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녀라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에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간 것은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 7: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말라기3:1에 예언된 대로 세례 요한이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사자\"는 세례 요한을 가리키며, 그를 그리스도보다 앞서 세상에 보내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게 하였다. 길을 예비하는 것은 백성들을 회개하도록 할 것을 가리킨다. 말라기3:1과 본 절에 인용한 말씀이 약간 다른 이유는 성령께서 구약 성경을 더 알기 쉽게 계시해 주신 것뿐이다. 성경을 변경시킨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하지 않고 잘 알 수 있도록 다시 계시해 준 것이다. 이것을 성경의 오류라고 하면 옳지 않다.
.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다 여자가 낳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때까지 출생한 모든 사람 중에 세례 요한이 제일 크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왜 세례 요한을 제일 크다고 하셨는가? 창세로부터 그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제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에 대하여 제일 많이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구속주)
② 키를 가지고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하시는 심판주
③ 자신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존귀하신 분(하나님)
④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영원 자존자)임을 깨달았다.
세례 요한만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것을 깨달은 사람이 그 때까지는 없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제일 큰 자가 된 것이다. 하늘 나라에서 큰 자는 진리를 많이 깨달은 자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진리대로 행하게 되므로 그만큼 더 자라나고 그 인격이 더 커진다. 그러므로 누가 진리를 많이 깨달았느냐에 따라서 크고 작은 것이 결정된다.
당시에는 세례 요한이 진리를 많이 깨달았다. 세례 요한이 진리를 많이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살아갔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러 오실 때에도 \"내가 당신한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내게 오시나이까?\"라고 하였고 나는 \"그의 신들에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증거하였다. 또 세례 요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실제로 그 진리에 거하고, 진리를 증거한 생활을 했고, 예수님을 직접 세상에 소개하는 중대한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선지자보다 큰 사명을 받았고, 그 사명을 잘 이루어드린 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 말씀을 보고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지옥에 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세례 요한보다 크므로 세례 요한이 천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알지 못하고 잘못 말한 것이다. 여기서 \"천국\" 이라는 것은 신약 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 성경에서 \"천국\"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뜻을 사용되고 있다. 즉 ① 마음의 천국, ② 교회, ③ 천년 왕국, ④ 영원한 하늘 나라를 가리켜 천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뜻은 신약 교회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데, 구약 시대는 세례 요한 때까지이다. 그 다음부터는 신약시대가 전개된다. 신약 교회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진리를 더 많이 알게 되고 예수님을 더 많이 깨달아 더 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진리, 삼일만에 부활하신 진리, 승천하신 진리와 성령 강림하신 것과 재림하실 것을 세례 요한은 몰랐으나 신약 시대의 성도는 유년부 학생까지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세례 요한보다 인격이 더 나아서가 아니고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아직 다 성취하시기 전이므로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지 않은 때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알게 해 놓으신 때이고, 그 일, 즉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을 다 이루어 놓으신 때이므로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시기 전에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이 알게 하시지 않으면 알 사람이 없다.
신약 교회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하나님의 계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세례 요한이 구약 시대 사람으로는 계시를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아브라함보다도 엘리야보다도 세례 요한이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성도라도 세례 요한보다 더 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어 밝은 빛 가운데 있는 자이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가 크고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난다.
신약 시대의 성도가 인격적으로 볼 때에는 세례 요한보다 못할 수도 있으나 진리를 아는 면과 깨달은 면이 세례 요한보다 크고 그 진리를 가지고 사는 면이 세례 요한보다 크며, 그 진리를 증거하는 면이 세례 요한보다 크다. 진리의 분량대로 영적 세계가 열리고 그 세계에서 살게 되며 그 진리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받은 것이 많으면 이루는 것도 많게 된다.
. 7:29-30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순진한 백성과 세리들은 회개하고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의롭게 여겼으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교만하여 요한의 세례도 받지 않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그들은 안다고 하기 때문에 참 진리를 못 받았고, 섰다고 하기 때문에 넘어지고, 본다고 하기 때문에 소경이 된 것이다(요9:40-41).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약4:6).
四. 이 세대를 책망하심(31-35)
. 7:31-32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세대 사람들이 신령한 면과 진리에 대하여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책망하여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어도 감사할 줄 모른다. 하나님이 자주자주 책망하여도 양심이 화인 맞은 자와 같아서 회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에 우리는 회개하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예수님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 주셨으나 감사할 줄 모르고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므로 신랑을 맞은 혼인집과 같이 즐거운데 그 세대 사람들이 외면하고 아무 반응이 없다는 뜻이다.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슬퍼 통곡할 만한 때에도 슬퍼하지 않고 애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세례 요한이 죄를 책망하여도 그들이 무감각하여 슬퍼하거나 애통함이 없고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주 징계하시고 책망하실 때에 회개하지 아니하고 애통할 줄 모른다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원통히 여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어야 참된 하나님의 자녀이다.
. 7: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세례 요한을 귀신들렸다고 비방하였다.
.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같이 금욕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제자들과 즐거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셨다(눅5:34, 요3:29 참조).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복음에 참여하지 않고 거역하며 \"예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고 비방하였다. 바리새인들이 약간의 근거가 있는 것을 가지고 거짓말을 만들어서 비방하였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했으나 죄 자체를 용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맞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라고 정죄하며 비방했다. 또 예수님이 먹고 마셨으나 먹기를 탐하거나 포도주를 즐긴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로 이와 같이 비방한 것이다.
. 7: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요한의 증거,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것이 지혜이고, 받지 않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참 복음을 받은 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자녀는 복음을 받은 열매를 가리킨다. 지혜 되는 복음을 받으면 복음이 생명이 되므로 그 진리대로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 복음을 받고 회개하고 믿는 자가 지혜 있는 자이며,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받을 때에도 회개하고 바로 서는 자가 지혜 있는 자이다. 바리새인들이 말로는 지혜 있다고 하면서 세례 요한의 책망과 예수의 복음을 받지 않았으므로 미련한 자가 되었다.
五. 죄 많은 여자가 예수께 기름 부음(36-50)
. 7:36-38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죄인인 한 여자 이 여자는 그 동네에서 세리나 창녀 같이 죄인으로 취급받는 여자이었다. 이 사건은 마태복음26:7-13, 마가복음14:3-9, 요한복음12:1-8의 마리아가 기름 부은 사건과는 다른 사건이다. 마리아는 그 동네에서 죄인으로 취급받지 않았다. 또 이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 곁에 선 것과 기름을 분기 전에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춘 사실 등은 마리아가 기름 부은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자기 죄를 깊이 통회하는 태도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감히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인 줄 깨달았다.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죄인을 구속해 주시려고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요, 감사하는 태도이다. 죄 사함 받은 것이 많을수록 감사와 감격도 크다.
자기 머리털로 씻고 여자의 머리털은 여자의 영광이므로(고전11:15), 자기의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이다. 이것은 ① 자기의 낮아짐이나 수욕을 개의치 않고 주님을 섬기는 신앙적 태도요, ② 자기에게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한 모든 것을 단 마음으로 주님께 바치는 태도이다.
그 발에 입맞추고 이 여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자기를 구원해 주시는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의 발에 입맞춘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경외의 태도요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이다.
향유를 부으니 값비싼 향유는 귀중하고 존귀한 자에게 붓는 것이다. 예수님보다 귀중하고 존귀한 자가 없기 때문에 가장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은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몸을 바치고 물질을 아낌없이 바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것이다.
.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은 영적 면은 보지 못하고 외부적인 면만 보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알고 향유 붓는 그 여자를 죄 많은 한 여자로만 보았다. 따라서 그는 ① 여자가 왜 남자의 발을 만지는가. ② 선지자가 왜 죄 많고 더러운 여자임을 모르는가. ③ 죄인을 가까이 하면 예수님도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④ 예수님도 그 여자와 같은 죄인의 친구로 취급받지 않겠는가 하고 여러 가지로 예수님께 대해서 합당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주님을 발견하여 믿고 보니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의 주만 보였고, 그 주님께 감사와 사랑과 헌신과 헌물과 경배를 드린 것이다. 이 세계는 신령한 믿음이 아니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받는 자밖에는 알 자가 없다(계2:17).
. 7: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예수님은 이미 바리새인인 시몬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그 깨닫지 못하고 잘못 생각하는 도리를 말해 주시려고 하였다.
. 7:41-42 가라사대 빛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한 사람에게 빚진 자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다. 그 둘 중에 누가 더 저를 사랑하겠느냐고 질문하셨다.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자는 많은 죄를 사함 받은 것을 가리키고, 오십 데나리온은 적은 죄를 사함 받은 것을 가리킨다.
. 7: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때 시몬은 그 사건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순진하게 \"많이 탕감 받은 자니이다\"라고 답변했다. 시몬은 진리의 깊은 뜻은 몰라도 겸손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참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가 대답한 것을 기초로 하여 그 여자의 신령한 신앙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
. 7: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오백 데나리온과 같은 많은 죄를 사함 받은 이 여자의 깊은 신앙적 행위와 오십 데나리온과 같은 적은 죄를 사함 받은 바리새인 시몬의 행위를 비교해서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구속의 은혜가 감사해서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내 발을 씻었다. 그러나 너 시몬은 나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 7:45-47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 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 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시몬은 입맞추지 않았다. 또 이 여자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으나, 시몬은 감람유도 예수님의 머리에 붓지 않았다. 향유는 감람유에 비하면 엄청나게 값이 비싸다.
죄 많은 여자가 아름다운 신앙을 소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 여인은 많은 빛을 탕감 받은 자와 같이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이다. 죄를 많이 사함 받으려면 죄를 많이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자기 속에 있는 지극히 작은 죄 하나까지 깨닫고 회개해야 많은 죄를 사함 받는다.
둘째, 더 많은 감사와 감격이 넘쳤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부인한 것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다.
넷째, 예수님을 사랑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죄를 사함 받은 자는 사랑함이 많다고 하였다(47절).
다섯째, 영적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생한 영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생명으로 삼는다. 예수님과 깊은 영적 관계를 갖게 되었으므로 예수님을 생명과 같이 사랑하고 자기의 몸 전체를 바치고 자기의 가장 귀한 젓을 아낌없이 바치게 된 것이다.
여섯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의 역사가 더욱더 많이 머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전에 지은 죄와 자기 속에 있는 죄를 찾아 날마다 회개하면 그것이 영이 자라나는 밑거름이 되어 영적 역사가 커지고 열매가 많이 맺히게 된다.
다윗은 한 번 지은 죄를 인하여 요를 적시고 침상이 뜨도록 회개했다(시6:6-7). 바울도 믿기 전에 예수를 훼방하고, 성도를 핍박하며, 성도에 대해 폭행한 것을 회개하여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다(딤전1:13-15). 이처럼 성도들도 자기에게 있는 죄를 다 내어놓고 회개하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여 주의 은혜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어야겠다.
.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이 여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벌써 죄 사함을 받았으나, 예수께서 이 여인에게 죄 사함 받은 것을 알게 해주셨다.
. 7: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바리새인 시몬을 위시하여 함께 앉았던 사람들은 이 여자의 실질적 신앙에 대하여 자세하게 증거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죄 받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 여자가 구원받은 사실을 증거해 주시고, 또 평안을 주셨다. 사람들은 이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괴롭게 했으나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사죄와 구원과 평강을 주셨다. 이것이 믿음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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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물결을 잔잔케 하심
(대 지)
一. 여인들이 예수님을 공궤함(1-3)
二. 씨 뿌리는 비유(4-15)
三.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 비취게 하라(16-18)
四. 진정한 모친과 동생들(19-21)
五. 바람과 물결을 명령으로 잔잔케 하심(22-25)
六.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심(26-39)
七. 혈루병을 고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40-56)
(본문강해)
一. 여인들이 예수님을 공궤함(1-3)
. 8:1-3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 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고 순회 전도를 하면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다.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긴 것과, 예수님께서 여인들의 인격을 인정해 준 것을 기록 한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이다. 이 여자들은 예수님께서 악귀를 쫓아 내주고 병을 고쳐 준 여자들과 또 예수님으로 인하여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고 영의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감사해서 예수님을 따르며 봉사한 것이다.
막달라는 갈릴리 바다 서안에 있는 작은 촌락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다가 예수님이 고쳐 주어 나음을 얻은 여자로서 신령하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졌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갔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는 제일 먼저 예수님을 만난 자이다.
헤롯은 헤롯 안디바스로서 대헤롯의 아들이었다.
청지기 헬라 원어 (에피트로포스)는 넘겨준다는 뜻으로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재무장관을 가리킨다고 한다.
구사의 아내 요안나 이 여자는 유덕하고 부요한 여자였을 것이다. 수산나라는 여자도 있었다. 이 여자들 중에는 귀부인도 있고, 비천한 여자도 있었다. 그들이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예수님을 섬기며 주의 일을 받들었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잘되어 나갔다.
오늘날에도 누구나 생명 있는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일할 사람도 보내 주시고, 거기에 수종들 사람도 보내 주시고, 물질로 봉사할 사람도 보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고, 생명의 역사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따라오는 사람, 희생하여 물질을 바치는 사람, 몸을 바쳐서 봉사할 사람이 나오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생명 있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것만큼 다른 사람도 그에게 붙잡히게 된다.
二. 씨뿌리는 비유(4-15)
. 8: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각 동네에서, 큰 무리가 예수께 나아왔으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셨다.
. 8: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이 씨를 뿌리는데 있어서 수종드는 사람들이며, 이용되는 기구들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8:1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굳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1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자기와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새들이 먹어 버렸고 새는 악한 자, 즉 마귀이다(12절).
. 8: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돌 위에 얇게 덮여 있는 흙에 묻혀서 싹이 나기는 하지만 돌 때문에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못하기 때문에 해가 돋으면 곧 말라죽고 만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로 받아서 일시적으로 기뻐하지만 마음속에 바위와 같이 굳은 고집과 자기 지혜와 지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말씀의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환난과 핍박이 오고, 반대 세력이 생겨 어려운 난관이 닥치면 못 믿겠다고 포기해 버리는 자이다(13절). 싹이 말라죽은 것을 보니 이런 자는 영이 중생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도를 즐거워한 것에 불과하다.
. 8: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가시 세상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고 참으로 믿는다. 또 교회에도 잘나오고 봉사도 잘한다. 그러나, 지내는 동안에 생활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향락주의 때문에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온전히 결실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농사할 때에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가시가 기운을 다 흡수함으로 곡식이 잘 되지 못한다. 비료를 주어도 가시가 다 빨아먹고, 곡식은 잘 자라지 못하며 제대로 결실하지 못한다. 이러한 자는 뿌리와 곡식이 말라죽지는 않았으니 중생한 사람이다. 중생하였으므로 그 생명이 죽지는 아니하나 열매가 별로 없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일생 동안 예수를 믿으나, 세상의 염려와 물질에 대한 욕심과 방탕한 생활로 기운이 그리로 다 빠져나가 믿는 일에 진보도 없고, 열매도 별로 맺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남 앞에 가기는 하지만 믿는 일에는 힘쓰지 아니하고 세상 걱정과 돈버는 일과 향락을 즐기는 일에 시간과 정력과 재산을 다 소비해 버렸으므로, 영광스러운 구원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깨닫는 자이다. 깨닫는 자는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15절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하였다. 말씀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대로 실행한다. 한 알의 비가 땅에 떨어졌지만 열매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마13: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 증거이다. 가령, 양잿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양잿물을 먹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 말씀 한 마디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다. 성도의 마음이 옥토와 같이 되어야 신앙의 열매가 잘 맺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묵은 밭을 기경하라\"고 했다(렘4:3). 가시가 나고, 잡초가 난 묵은 밭을 갈아 좋은 밭을 만들라는 뜻이다. 길가와 같은 완고한 고집을 버리고 회개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돌짝 밭과 같은 사람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뿌리가 깊이 박히게 하여야 한다. 인간적인 기존 지식과 지혜 위에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뿌리가 박히지 못하여 환난과 핍박이 들어올 때에는 넘어지고 만다. 예를 들면, 유교 사상이 강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성경 말씀을 유교 사상에 비교하여 그 사상에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뿌리가 박히지 못한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다 내어 버려야 한다.
또 가시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욕심과 일락을 버려야 한다. 믿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그리로 기운이 다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시고 \"너희 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신다\"고 하였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를 힘쓰고,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에 또 무슨 대책이 나온다. 장래 문제를 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셨다(마6:33-34 참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영적 귀가 열린 사람은 들으라는 뜻이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영적 귀가 열리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 8:9-10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락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영적 구원과 내세와 영생에 대한 것)을 택한 백성에게는 알게 하시고, 불택자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이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줄 수가 없다.
. 8:11-15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이 귀절의 내용은 위 5절부터 8절의 비유들에 대한 해석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본 장 5절 8절의 해석을 참조하라.
三.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 비취게 하라(16-18)
. 8: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등불은 기독 신자를 가리킨다. 신자는 세상의 빛이다(마5:14). 신자가 왜 빛인가? 신자 속에 중생한 영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고, 말씀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빛을 비추어 내보낸다. 그러나 그릇으로 덮어놓으면 빛을 비추어 내보낼 수 없다. 이 그릇을 영어 성경에는 container로 번역했다. container는 육면체로 된, 사방이 밀폐된, 큰 용기(容器)이다. 이것은 마음에 있는 욕심을 상징한다. 속에 욕심을 품으면 어두워지고, 그릇으로 덮어놓은 것과 같아서 빛이 비취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속에 있는 빛을 비추어 내보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릇을 깨뜨려 내버려야 한다. 또 평상 아래 등불을 두어도 빛을 비추어 내보낼 수가 없다.
평상은 침대와 같은 것으로 잠잘 때 사용한다. 이것은 성도가 신앙이 잠들어 육신의 안일주의에 빠진 것을 상징한다. 이렇게 일락을 사랑하고 심령이 깨어 있지 못하면, 빛이 가려져서 비추어 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빛을 비추어 나가려면 이러한 것들을 다 내어버리고 등경 위에 등불을 두어야 한다.
등경 위에 두는 것은 첫째, 신앙 양심과 믿음 지키는 것을 모든 세상 것 위에 두라는 것이다. 믿음 지키는 일을 세상일보다 먼저하고, 세상 모든 것을 여기에 이용하고, 오직 믿는 일 하나만 해 나갈 때에 빛이 잘 비추어 나가게 된다. 둘째, 자기 희생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한 세례 요한의 신앙이 등경 위에 놓은 등불이다. 말씀의 빛이 비추어 나가게 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복음의 빛이 많은 사람에게 비취어 나간다. 오병이어를 주께 자친 어린아이로 인하여 주의 역사가 나타나 많은 사람에게 주의 빛을 비추이게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의 생명이 살게 되었다.
. 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숨은 것은 영으로 들은 복음을 가리킨다. 마태복음10:27에는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것을 지붕에서 전파하고, 어두운 데서 들은 것은 광명한 데서 전파하라고 하였다. 영적 골방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나가서 전파하라는 것이다. 깨달았으면 자기 혼자 좋아하고 기뻐하지 말고 전파하라는 말이다.
.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있는 자는 진리를 깨달은 것과 믿음 쓰는 것이 있는 자를 가리킨다. 이런 자는 더욱 더 많이 받게 된다.
없는 자 진리를 깨달은 것과 믿음 쓰는 것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조금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진리를 깨닫는 자가 복이 있고, 그대로 실천하여 믿음을 지키는 자가 더욱 많이 받는다.
四. 진정한 모친과 동생들(19-21)
. 8:19-21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왔다. 마가복음3:21에는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그들이 듣고 왔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마귀의 종이 되어서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무너뜨리려고 온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벌써 다 아시고 나가 보지도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내 모친과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이다. 믿는 자는 중생한 자이므로 새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가지고 사는 자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형제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시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형제요 자매라고 한 것이다. 같은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형제요 자매이다. 진리를 같이 받아서 같은 진리대로 영이 살아 나가는 것이야말로 참 형제요 참 자매이다.
五. 바람과 물결을 명령으로 잔잔케 하심(22-25)
. 8: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되었다. 이 호수는 갈릴리 호수였다.
. 8:23-24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4:35-39의 말씀과 같은 사건인데, 거기에는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제자들이 말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광풍이 일어나서 물결이 배에 부딪히고 배에 물이 많이 들어와 대단히 위태하게 되었다. 그때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죽을까봐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예수님은 평안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운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배를 타고 같은 사건을 만났지만, 제자들은 죽을까봐 벌벌 떨었고, 예수님은 평안하였다. 예수님은 믿음이 크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믿음의 인도자이다. 풍랑을 만나고 죽을 지경을 당해 보아야 큰 믿음도 드러나고 믿음 없는 것도 드러난다. 예수님의 믿음은 왜 큰 믿음인가?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물결이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다. 풍랑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으면 죽을까봐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려면 평소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적은 일부터 연단을 받아 믿음이 자라나야 한다. 믿음이 자라나면 큰 환난을 만날 때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째, 예수님은 육신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영의 생명으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기 때문이다. 육신은 죽는다고 하여도 영의 생명은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빌립보서 1:21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영적 생명은 빼앗기지도 아니하고 영원히 죽는 법도 없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육신이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로 사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육신이 죽는 것은 영혼이 쓰고 살던 장막집을 벗어놓고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고후5:1 참조).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다(요11:25-26).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오히려 감사 기도를 드렸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았고 몸이 죽는다 해도 영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믿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다. 아무리 풍랑이 심하게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능력으로 그 물결이 능히 해하지 못하도록 해주시고 풀무불 가운데서도 타지 않게 하고 홍해 바다나 요단강도 갈라서 육지와 같이 만들고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은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을 믿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낸 목적은 구속을 이루려고 보내셨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업을 이루기 전에는 하나님이 데려가시지 않는다. 제자들도 자기들의 사명을 믿었다고 하면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하려고 하나님이 택하여 가르치고 훈련시키다가 왜 도중에 죽이겠는가!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의 사명을 다 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두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왜 멸망시키지 아니하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맡긴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이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잔잔하여졌다. 시험이 지나간 다음에는 잔잔하여진다. 문제는 그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여 합격되었는지 합격되지 못하였는지가 중요하다. 시험에 합격이 되지 못했으면 믿음이 적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원통한 마음으로 통회해야 한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으나 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가슴을 치면서 대성 통곡하였다. 시험이 들어왔을 때에 믿음으로 통과하면 감사와 기쁨이 나오고 실패하면 억울하고 분하며 자기 자신이 밉고 원수처럼 생각된다. 그 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한다.
. 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회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에게 무슨 믿음이 없었는가?
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과,
② 사명을 믿는 믿음과,
③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다. 예수께서 바람과 물결까지 순종케 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발견하고 더욱 기이히 여겼다. 예수님은 이로써 제자들의 신앙을 연단시킨 것이다.
六.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심(26-39)
. 8:26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거라사 땅은 갈릴리 바다 동쪽 가다라 지역 내에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8:28에는 그 곳을 가다라 지방이라고 하였다.
. 8:27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귀신 들린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귀신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적 의의 옷을 벗게 하여 수치를 드러내고, 그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게 한다. 또한 무덤 사이에 거하는 것처럼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살 만한 안식처에 살지 못하고 사망의 골짜기로 끌려가서 괴로움을 당한다. 귀신 들린 사람과 정신병자는 다르다. 정신병자는 정신적인 기능에 장애를 일으켜 생긴 병이고, 귀신 들린 사람은 귀신이 접하여 귀신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귀신이 나가야 나을 수 있다. 오늘날도 마귀 시험에 들면 악한 곳에 빠지거나 사망의 골짜기로 끌려가 많은 수치를 당하게 된다.
. 8: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귀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았다. 야고보서2:19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다. 그러나 귀신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① 예수님은 택한 백성을 구속해 주었을 뿐, 귀신을 구속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1:21). ② 예수님은 마귀를 심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요일3:8).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시고,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으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마귀는 예수님이 자기와 상관없는 것도 안다.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마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서 괴로움을 당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8 ;29에는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 8: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는 능력이 많으셔서 귀신도 다스리고 주장하신다. 귀신도 예수님의 치리권(治理權) 내에 있다. 귀신이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귀신은 사람보다 강하므로 사람을 붙잡아 자기의 도구로 삼고 여러 가지 해독을 끼친다. 그 맨 것을 끊고 사람의 힘으로는 쇠고랑을 끊을 수 없으나 귀신의 능력의 역사로 쇠고랑을 끊었다. 귀신은 사람보다 강하다.
귀신에게 몰려 귀신에게 붙들려 그 귀신이 끄는 대로 제 정신없이 끌려 다닌 것이다.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도 자기 본의 아니게 죄 가운데로 끌려가서 가련하고 불쌍한 자가 되며 많은 해독을 입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 귀신에게 붙들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욕심에 끌려서 신앙 양심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가 신앙 양심을 쓰고 선한 양심을 따라가면 귀신을 능히 이길 수 있다.
. 8: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것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고 귀신의 정체를 나타내어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군대는 헬라 원어로 (레기온)이라고 하는데 본래 라틴어에서 유래된 헬라어이다. 이것은 로마 군대 육천명 가량의 군단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대란 귀신의 수가 많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많은 귀신도 예수님 앞에서는 벌벌 떨고 두려워하였다.
. 8: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무저갱의 헬라 원어 (텐 아뷔쑤)은 \'밑이 없는 깊은 곳\'을 가리키는데, 요한계시록20:1-3에 마귀가 일 천 년 동안 갇혀 있게 될 곳이라고 했다.
. 8:32-33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예수께서 그 귀신의 요구대로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허락하여 돼지가 물에 빠져 몰사하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귀신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욕심으로 하는 사업은, 예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구약 시대에는 쪽발 갈라지지 않고 새김질하지 않는 짐승을 먹지 말라고 했다(레11:7). 돼지는 족발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안하므로 먹지 못하는 짐승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금하신 짐승을 이천 마리나 많이 먹인 것을 보면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떠나 욕심으로 돈만 따라가는 사람이다. 욕심으로 돈만 따라가면 하나님이 이렇게 징계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약의 의문과 증서를 도말했으므로 지금은 구약에 금했던 짐승을 먹어도 괜찮다(골2:14-16).
둘째, 귀신은 반드시 해독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였다. 사람에게 해독을 주지 않으면, 돼지에게라도 해독을 주는 것이다.
셋째, 귀신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사람에게 있다가 돼지에게 들어가니 사람은 낫고, 돼지는 죽는 것을 보면 귀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한 사람의 영혼이 돼지 이천 마리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예수님이 귀신의 요구대로 돼지 떼에게 들어가기를 허락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요구를 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 귀신이 구한 것뿐이다. 예수님은 귀신이 구하든 구하지 않든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만 하신다.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귀신이 구했다고 하여하지 않게 되면 귀신에게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시고자 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제재 받지 않고 다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 8:34-37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기를 간구하였다. 귀신 들린 사람이 나와서 온전해졌으니 얼마나 기뻐할 일인가! 또 예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게 나타났는가! 이것을 통하여 그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영접하여 믿으면 얼마나 축복인가!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돼지도 죽을까봐 두려워서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가시기를 간구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돼지를 더 중히 여겼고, 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긴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물질에 눈이 가려져서 주님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고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참으로 가련한 자가 되었다.
. 8:38-39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구했으나 거절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복음 운동에 유익 될 사람도 있고, 집에 돌아가서 집안 식구와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복음 운동에 유익 될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다.
七. 혈루병을 고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40-56)
. 8: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본 동리인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영접하였다.
. 8:41-42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 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회당장 야이로가 열 두 살 되는 자기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예수께 와서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한 사건이 일어났다.
. 8:43-44 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혈루증 앓는 여자는 12년간을 이 병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였는데, 예수님의 뒤로 와서 겉옷 가에 손을 대므로 병이 깨끗이 나았다. 이는 그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마9:21).
. 8:45-4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그 여자는 병이 나은 후 가만히 숨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시며 그 여자를 찾으셨다. 그 때 베드로가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읍니까 하는 뜻이다. 그 때에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고 재차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그 여자의 믿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혈루병을 고쳐 주셨으나, 그 여자는 그것을 숨기려고 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여자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고백하였다. 이것은 은혜를 받은 다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은혜를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은혜가 소멸된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믿음을 써서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를 하여야 한다. 그 은혜에 감사하여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물질을 바쳐 드리고 변화된 생활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
변화된 생활은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을 충성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믿음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그 은혜를 써야 자라나고 열매가 맺히고 더 많은 것을 받을 수가 있다. 또한 은혜를 받은 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성도로서 마땅한 도리이다.
. 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그 여자의 믿음이 참으로 좋은 믿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줄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자기 혈루증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같다. 그리스도 외에는 자기의 병을 고쳐 줄 분이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사모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예수님께 나아갔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예수님의 깊은 면을 점점 더 알게 된다. 사람은 깊이 사귀면 사귈수록 점점 결점이 드러나게 되는데, 예수님은 깊이 사귀면 사귈수록 점점 더 능력이 많고, 사랑이 충만하고, 완전 무결하고, 생명이 넘치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좀더 깊이 생각하고, 좀더 깊이 사귀도록 힘써야 한다. 이 여자가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찾을 때에 자기 심령 속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보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능력이 무한하시고, 사랑과 긍휼이 무한하시고, 생명이 넘치는 분이심을 알았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자기의 병이 나을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의 뒤로 가서 겉옷을 만졌다.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그 여자의 병이 과연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이 그 여자의 모든 것을 아시고, 만능으로 그 여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영적 평안도 주셨다. 이것은 구원받아 영이 산 증거이다.
. 8:49-50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회당장이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도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더 괴롭게 마시라고 하였다. 그 때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믿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도 있고, 또 영원히 죽지 않는 영적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만능이요 부활이요 생명을 받는 방편이다.
. 8:51-54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예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다른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하시니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 곧 일어났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게 해준 것이다.
.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께서 명령하셨다. 살려 놓은 다음에는 먹을 것을 주어야 계속하여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살려 놓았으면 먹을 것은 너희들이 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네가 할 일은 네가 해야 한다\"는 뜻이다.
. 8: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메시야의 은닉사상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다음에야 메시야 인 것을 공적(公的)으로 알리시게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 십자가 후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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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변화산
(대 지)
一. 열 두 제자 파견(1-6)
二. 예수에 대한 평판(7-9)
三. 오병이어의 이적(10-17)
四. 베드로의 신앙고백(18-22)
五.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지 말 것(23-27)
六. 변화산에서의 변화(28-36)
七.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37-45)
八. 천국에서 큰 자(46-48)
九.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임(49-50)
十. 사마리아인의 적대심(51-56)
十一. 종주각오(從主覺悟)(57-62)
(본문강해)
一. 열 두 제자 파견(1-6)
. 9:1-2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불러 여러 가지 권능과 권세를 주어 전도하도록 내어 보냈다. 마태복음10:1에 의하면 귀신을 제어하며,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약한 것을 강건케 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이 능력과 권세는 열 두 제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고,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마귀를 이기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며, 죽은 자(영이 죽은 자)를 살려 내는 능력이 있다. 죄로 인하여 문둥병과 같이 심령이 썩어져 들어가는 것을 깨끗하게 하며 심령의 모든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하나님만 의뢰하고 믿음으로 나갈 때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복음으로 영혼을 살리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마귀를 이기고, 많은 사람을 깨끗하게 하고 심령의 병을 고칠 수 있다.
. 9: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은 본 절에서의 \'지팡이\'는 피곤하고 약할 때 의지하는 지팡이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가복음6:8에는 지팡이를 가지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지팡이는 능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주머니 여행할 때에 다른 것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자루와 같은 것이다. 양식이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주머니와 함께 여행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가지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다.
의식주에 대한 대책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한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이다. 물질이 풍부하다 해서 그것을 의지하고 나가는 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실패하게 된다.
누가복음22:36에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영적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즉 영적인 전대, 영적인 주머니, 영적인 검(성령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이다. 영적 전대와 주머니를 가지라는 것은 영적인 실력과 영적인 양식을 가지고 나가라는 뜻이다. 전에 전도할 때에는 별로 준비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보다 좀더 능력을 덧입고, 좀더 말씀의 무장을 하여 영적 양식과 영적 실력을 준비해야 환난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웠으므로 영적 무장과 영적 실력을 갖추어야 실패하지 않겠기 때문이다.
. 9: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마태복음10:11에는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머물라고 하였다. 충성되이 복음을 전하면 믿는 사람이 나오게 될 것이고, 믿는 사람이 나오면 거기에서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집에 머물라는 것이다. 전도할 때에 유력한 자나 돈 많은 사람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합당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전도자가 전하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그 전도자를 영접하고 협력하며 받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복음을 영접하는 자는 자연히 전도자를 영접하여 그에게 협력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러한 사람이 합당한 자이다. 전도자가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일심전력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면 이와 같이 합당한 자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 그의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합당한 자를 만났으면 떠나기까지 그 집에 있어야 되고, 더 좋은 데가 있다고 옮기면 안 된다. 또 괴로움이나 조금 섭섭한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옮기면 안 된다. 복음 안에서 사귀고, 복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참고 변함없이 나가야 한다.
. 9: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복음을 전하면 세 종류의 사람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첫째, 전도자를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둘째, 전도자를 영접하였으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자는 복음을 받기는 하지만 잘 받지 못하고, 잘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에게는 평안이 임할 수 없다.
셋째, 복음을 전할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고 반대하는 자가 있다. 그 사람에게는 먼지까지 떨어버리고 오라고 하셨다. 그 집에서 한 가지라도 물질을 얻거나 갖지 말고 신세도 지지 말라는 뜻이다. 전도자가 물질 때문에 양심을 쓰지 않고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빛이 가려진다. 전도자는 특히 물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한다. 먹어서 안될 것은 주어도 먹지 말고, 받아서 안될 것은 주어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뜻은 복음을 거절하여 멸망하는 책임을 그들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복음 전하는 자는 책임을 다했으므로 그들이 멸망하는 직책에 대해서는 깨끗하다는 것을 뜻한다(행13:51 ; 18:6 참조).
. 9: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제자들이 주께서 주신 권능을 믿고 나가서 그 권능으로 복음을 전하여 큰 역사가 나타났다.
二. 예수에 대한 평판(7-9)
. 9:7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헤롯이 요한을 목베어 죽인 죄로 인하여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차에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를 듣고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했다. 죄를 지으면 언제나 가책과 공포심이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증거이다.
. 9:8-9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구약시대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먼저 와야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바리새인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그리스도보다 엘리야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또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알아보지 않고 돌아가는 말만 듣고 자기들의 생각과 추측대로 판단하였으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였다. 헤롯은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자기가 목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나 그러한 권능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예수님을 한번 보고자 했다. 의인을 핍박한 자나 죽인 자는 언제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三. 오병이어의 이적(10-17)
. 9:10-11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 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순교 당한 소식을 들으시고 고요한 자리를 찾아 벳새다 들로 나가셨다. 기도하시며 생각하시기 위하여 가셨을 것이다. 그런데 큰 무리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그 곳에 또 찾아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시고 불쌍히 여기사 병을 고쳐 주셨다.
. 9: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도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 큰 무리들의 먹을 것 때문에 걱정이 생겨 예수님께 말하되 \"이들을 마을로 보내어 먹을 것을 사 먹고 유숙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 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그 때에 예수님께서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때 \"다른 데 갈 것 없다 너희가 해결해 주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또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신다. 우리에게 당면한 일은 우리가 해결하라는 것이 주의 명령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이 보잘것없을지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순종만 하면 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우리에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얻어 오거나 원조를 받아서 하려고 하지 말고 너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해결(먹게)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고 아무 보잘것없어도 그것을 하나님께 다 바치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큰 일을 하신다.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없어서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현재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게 해주신다.
. 9:14-15 이는 남자가 오 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내게 있는 것을 바친 다음에는 주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된다. 무리를 앉게 하라고 하시면 앉게 하고, 떡을 떼어 나누어주라고 하면 나누어주면 된다. 그리하면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셔서 그 일이 성취되도록 하신다.
. 9:16-17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바치라 할 때에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치고, 앉으라 할 때에 앉고, 나누어 주라 할 때 나누어주니 주님께서 축복하셔서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로 오 천 명을 배불리 먹게 하시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나 거두게 하셨다.
이 이적의 궁극적인 목적은 첫째, 예수께서 당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주어 많은 사람을 살려낼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6:53-5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했다.
둘째, 생명의 떡을 주는 동시에 육신의 떡도 필요하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였다. 오늘날도 예수님이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어 우리의 영을 살려 나가신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의 떡이다. 오늘날 성도가 이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받아먹고 심령이 만족하며 힘을 얻어 생명 있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엘리야도 하나님이 까마귀를 시켜서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었고(왕상17:6), 또 천사가 주는 떡과 물을 먹고 힘을 얻어 40주 40야를 달음박질하여 하나님의 산으로 갔다(왕상19:6-8). 우리가 보리떡과 같이 보잘것없고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려 나가신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장사하여 이(利)를 남겨서 그 돈으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현재 가지고 있는 그것을 다 바쳐서 충성되이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고 큰 역사를 하셔서 구원 운동이 성공되어 나아가게 하신다.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신 것은 ①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차고 넘친다는 뜻과, ②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부스러기라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아무리 보리떡과 같은 사람이라도 몸을 바쳐서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여 많은 사람을 살려 내는 구원 운동을 하신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이름난 선비나 학자가 없고, 훌륭한 인격자나 부요한 자도 없다. 세리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격도 좋지 않아서 혈기를 부리고 서로 높아지려고 싸우고 다투는 보리떡과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 드리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큰 역사를 나타내셨다. 하나님께 바치느냐 바치지 않느냐가 문제이다. 하나님께 생명 전체를 바쳐 놓고 결사 각오하고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죽을 곳이라도 가라 하면 갈 각오하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만능으로 역사하시고 당신의 할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
四. 베드로의 신앙고백(18-22)
. 9:18-19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여론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고 제자들을 가르치려는 목적이었다.
세례 요한 헤롯과 같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서 그 능력이 속에서 역사한다고 말하였다.
엘리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을 엘리야인 줄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말라기4:5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선지자 중의 하나 예수님을 구약 시대의 훌륭한 선지자와 같은 분이라고 믿는 자들도 있었다.
. 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이 예수를 누구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제자들이 예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가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복음 운동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답변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그리스도로서 우리를 구원하여 온전케 해주실 분이라는 뜻이다.
마태복음16:16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주로서 하나님이 보내어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살려 주시고, 또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해 주시고, 능력을 입혀 줄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부어 세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는 이 세 직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성취해 주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영을 밝게 해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얻게 해주시고, 신령한 눈을 뜨게 해주시고, 귀가 열리게 해주시고, 신령한 지혜와 지식이 점점 자라나게 해주신다.
②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속죄해 주시고 도덕적으로 점점 깨끗케 만들어 나가신다. 지금도 하나님의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점점 벗어져 나오게 하신다.
③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며 그의 왕권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다. 그 능력을 입혀 주시려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그 시련과 인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점점 입혀 나가신다.
. 9: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그리스도의 은닉사상인데, 그리스도의 직분 완성은 십자가와 부활로써 완성되기 때문에 그 일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전에 널리 알리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 성취에 방해가 되겠기 때문이다.
. 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제일 처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아야 될 것과 부활하게 될 것을 말해 줌으로 그 신앙을 한층 더 진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깨달은 진리에서 전진하여 좀더 깨달아 나가야 영과 인격이 자라난다.
또 십자가와 부활을 미리 알려 줌으로써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낙심치 않고 소망을 가지고 담대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五.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지 말 것(23-27)
.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을 거절하고 인정치 않는 것이다. 자기는 없어져서 무(無)요 공(空)이 되고, 빈 마음으로 예수를 따라가서 그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고난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따라 가려면 고난을 각오하고 그 고난이 올 때에 당연한 것인 줄 알고 달게 받아야 한다. 예수를 바로 따라가려면 마귀의 세력이 방해하고 불신 가족이나 친척들이 핍박과 방해를 많이 한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모든 세상이 핍박과 방해를 하기 때문에 고난을 많이 받게 되어 있다.
.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육신의 목숨을 중히 여겨 그 목숨을 살리기 위해 주님 따라가는 것을 중지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를 잃게 된다. 영적 생명의 역사를 소유하려면 자기 육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어떤 환난이 와도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마귀의 시험에 든 사람은 육신 중심이기 때문에 영적 생명보다 육신의 생명을 더 귀히 여긴다. 그것은 육신의 생명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을 위하여 육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 영적 생명을 찾는다는 뜻이다.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기도 하지만 영적 생명은 새롭게 살아가며 새 생명의 역사가 더욱 더 커 나아간다. 이것이 참으로 산 것이다.
. 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생명을 빼앗기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육신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고 영의 생명은 육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다. 왜냐하면 영이 사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고 육신의 생명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기를 잃든지 영적 자아(靈的自我)를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를 찾아 가지고 사는 사람이요, 육신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사람이다.
빼앗기든지 자기 영의 사람과 인격을 만들 요소를 빼앗긴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를 만들 요소를 많이 주셨다. 그것은 ① 목숨, ② 건강, ③ 시간, ④ 재산, ⑤ 환경, ⑥ 시험, ⑦ 지혜와 지식, ⑧ 세상만물 등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말씀)대로 이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모든 자본을 전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용하면 자기가 잘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말씀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을 것(육신의 목숨)이 생명에게 삼키어져서 영원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고후5:4). 하나님이 주신 그 모든 자본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사용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한다고 하면 그것은 전부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의 것을 붙잡느라고 말씀을 양보하고 옳은 줄 알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만들라고 주신 것을 다 빼앗기는 것이다. 신앙을 양보하고 자기 만들 것을 다 빼앗기면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해도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 천하가 몇 일 가겠는가! 그러므로 이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천하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하나님 말씀만 끝까지 따라간다. 이렇게 할 때에 환난과 핍박이 오지만 그 사람은 자기를 잘 만들어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세상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영광으로 재림하실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마16:27).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이러한 자는 불신자도 있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 빌립보서3:18-19에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고 세상일만 생각하는 자가 있다고 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보다 자기와 세상을 더 사랑하는 자요 주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유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다. 예수께서 영광으로 재림하실 때에 이러한 자들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당신의 것으로 인정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주의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 예수님이 재림할 때는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천사들의 영광으로서 오신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겨 사모하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 순종한 자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의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것 때문에 말씀을 양보한 자는 예수님 재림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한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얻고도 하나님 말씀과 자기 영의 생명의 역사를 잃으면 영원한 실패이다.
. 9: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모양을 예표적으로 볼 자들도 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며칠 후에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한 것과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심판한 것은 주님의 재림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六. 변화산에서의 변화(28-36)
.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팔 일쯤 되어 마태복음17:1에는 \"엿새 후\"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한 후에 팔 일쯤 되어서 변화하셨는데 신앙고백을 한 그날과 변화하신 날을 합하면 여드레가 되고 그 이틀을 제하고 계산하면 엿새가 된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신 것은 그들을 특별히 훈련시키기 위함이요, 또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가면 주님이 기도하시는데 방해가 되겠기 때문이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기도하는데 방해가 된다.
산 이스라엘 북방에 있으며 해발 9,100척이나 되는 산으로 유다에서 제일 높은 헤르몬(Hermon)산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거기에 가신 것은
첫째, 기도하시기 위하여 가셨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시고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다. 엘리야도 갈멜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고, 모세도 호렙산(시내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둘째, 변화하실 것을 목적으로 올라가셨다. 본문 29절에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하였다.
셋째, 세상을 멀리 떠나기 위해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넷째,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려는 정신으로 올라가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높은 세계를 사모하고 앙망하여 그 세계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가까이 찾아오신다.
우리의 마음이 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바쳐서 기도를 해야 한다. 올라가려고 힘을 써야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한 계단씩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올라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힘도 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도 않고 올라가지도 못한다.
.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이 높은 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 이 변화는 속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 외부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심령이 깨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영광 속에 들어가 성령으로 기뻐하며, 하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었다.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의 심령이 변화되니 옷까지 변화되었다. 또 땅까지 빛나고 아름답게 보였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사셨으나 여기에서만 특별히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 성도에게 변화된 영광의 세계를 알게 하여 주시기 위함이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위하여 돌에 맞아 죽기까지 희생하고 순종할 때에 심령이 변화되고 기쁨이 충만하였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속에서부터 외부에까지 나타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 이것이 성도의 변화이다. 믿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어 그 심령이 변화되면 얼굴도 변화되며 의복이나 그 거처도 아름다워 보인다.
. 9:30-31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이 세 제자들에게 보였다. 그 내용은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일이었다. 변화된 자리에는 변화된 사람만 참여한다. 엘리야는 죽지 아니하고 승천한 자이며, 모세는 육신이 죽어 장사되었으나 두 사람이 모두 변화되어 나타났다. 엘리야의 승천은 앞으로 있을 성도 부활의 예표로 보여 준 것이다. 에녹의 승천도 성도가 승천할 것을 예표로 보여 준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왜 나타났을까?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하였으므로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이다. 율법과 선지서는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율법과 선지서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즉 율법과 선지서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성경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다. 또는 모세가 나타난 것은 예수를 믿고 죽은 성도가 주님 재림 시에 부활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고,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살아서 믿는 성도가 주님 재림 시에 변화될 것을 예표한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그들이 예수님과 의논한 문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구속을 이를 것이었다. 예수님의 구속은 율법과 선지서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 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세 제자는 기도의 동산에 가서도 졸기만 했다. 이것은 심령이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졸다가 갑자기 예수님이 변화된 것과 영광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고 실수하였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졸다가 말고의 귀를 자르는 실수를 범했다. 성도는 항상 깨어 있어야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는다.
.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잠시 후에 모세와 엘리야가 떠난 것은 율법과 선지서의 진리는 예수께서 성취하시고 그 의문과 증서는 도말될 것을 가리킨다(골2:14-17). 예수님만 남은 것은 그 진리만 예수님께 남아있는 것을 가리킨다.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자고 한 것은 큰 실수이었다. 그 이유는
① 예수님이 초막에 계셔야 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셔서 구속을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어야 할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이 만든 초막집에다 모시려고 한 베드로의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장소에 예수님을 모시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은 어디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에게 같이 하신다. 예수님을 영으로 모시지 아니하고 인간적이고 제도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모시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고 따라가야 한다.
②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동등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③임시로 보여 준 변화의 세계를 영원히 붙들어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④자기의 사명 즉, 주님을 증거하고 구원 운동을 해야 될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⑤산 아래에 있는 아홉 제자와 또 불쌍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 9:34-35 이 말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구름 영광의 구름이요(마17:5),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가리킨다.
무서워하더니 하나님의 위엄을 무서워한 것이다.
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을 다 소유했고 그것을 또 우리에게 주신다.
택함을 받은 자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택함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릴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린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의 영광을 붙잡아 두려고 하거나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하고, 그 말씀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으로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받을 수 있다.
. 9: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변화산의 영광과 모세와 엘리야도 없어지고 하늘에서 나는 소리도 그쳤다. 그것들은 예수님 한 분을 좀더 알게 해주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깨닫고 사명을 받은 다음에는 예수님 한 분만 모시고 잠잠히 자기 사명에 충성하면 된다.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큰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침묵하여 그 은혜를 보존하며, 그대로 살아 행실의 열매로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받은 은혜를 자랑만 하면 마귀에게 그 은혜를 빼앗기고 열매 맺지 못하는 수가 많다.
七.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37-45)
. 9:37-40 이튿날 산에서 내려 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질러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쫑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끊어 엎드려 간질병 앓는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겨 고쳐 달라고 하였다. 귀신이 자기 아들을 자주 불에도 넘어지게 하고 물에도 넘어지게 하고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한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마귀를 내어쫓지 못하였다고 했다.
.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 그 귀신을 내어쫓지 못한데 대한 예수님의 책망이다. 예수님이 오랫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가르쳐 주시고 믿음으로 인도하여 주셨으나 아직도 그들이 믿음이 없어 마귀를 물리치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의 심정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 9:42-43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최후 발악을 하고 나갔다. 그 때부터 아이가 나았다. 믿음이 없는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마귀라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쫓겨 나갔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
. 9:44-45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저희는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오래도록 마음 깊이 간직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고난받을 것을 두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다. 변화산에서 보여준 영광의 나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 성취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일만을 기뻐하지 말고, 제자들이 고난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라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 진리는 아직 인을 떼지 않고 숨기워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진리는 인(印)을 떼야만 알 수 있다(계5:4-5, 6:1-2).
八. 천국에서 큰 자(46-48)
.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제자들이 서로 세상에서 높아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을 하였다. 이것은 그들에게 교만하고 자고(自高)한 마음과, 시기와 분쟁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하고 변론할 때에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임을 교훈 하시고자 어린아이를 데려다 곁에 세우셨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①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교만한 자이다. 나이가 어려도 교만한 자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도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만 의지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자요,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도 어린아이의 자리를 떠나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물리치신다
② 어린아이는 부모를 의지하고 산다. 어린아이는 제 스스로 살 수 없는 자이다. 부모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의뢰해야 살 수 있다. 이와 같이 항상 주님을 의뢰하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성도가 어린아이이다. 잠시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살지 못 할 줄로 알고, 주님을 의지하고 항상 주님을 앙망하고 사모해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 없이는 살지 못할 줄로 알고,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생명과 기쁨과 평강을 주신다.
그러나 자기를 지혜 있고 통달한 자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없고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게 되며 결국 실패하고 만다.
③ 어린아이는 젖을 사모한다. 베드로전서 2:2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다. 갓난아이는 먹는 것이 일이다. 성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항상 신령한 젖(말씀)을 얻어먹고 심령이 자라나서 큰 자가 된다. 시편 119:131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하였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하며 친국을 소유하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받아먹을 때에는 꿀보다 달고,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어 자라난다.
④ 어린아이는 배우고 모방하는 정신이 강하다. 그리하여 부모나 형제가 하는 것은 무엇이나 모방하여 닮아간다. 그와 같이 하나님 배우기를 힘쓰고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성도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배우고 주님을 배워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어린아이의 자리를 떠난 사람이다.
⑤ 어린아이는 순종하려는 정신이 있다. 어린아이는 마음이 순진하여 어른의 말을 잘 듣는다. 그와 같이 어린아이와 같이 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에 잘 순종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것은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⑥ 어린아이는 항상 부모와 동거하고 동행하려고 한다. 부모와 떨어지면 죽는 줄로 알고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어디라도 따라가려고 한다. 성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힘써야 한다.
성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첫째,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난다(엡4:15).
둘째, 하나님을 더욱더 많이 발견하고 하늘 나라에 깊이 참여할 수 있다.
셋째,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더 많이 이루어 나가게 된다. 이로 큰 자가 된다.
. 9:48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자 속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주님이 같이 하시기 때문에 그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요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된다.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어 가장 작은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모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자기를 가장 작은 자인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증거이다. 그것이 벌써 커진 것이요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다.
九.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임(49-50)
. 9:49-50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요한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자가 자기들을 쫓지 않기 때문에 금했다. 요한은 너무 마음이 편협하였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만을 따르지 않아도 주의 이름을 전파하기만 하면 결국 주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어떤 모양으로 하든지 주의 이름만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만 전파되어 나가면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는 것이다.
빌립보서 1:16-18에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했다.
주의 이름을 전파하는 자 중에는 사명과 분야와 차원이 각각 다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자가 전파하는 일과 병 나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과, 오병이어의 이적을 본 자가 전파하는 일과, 70문도가 전파하는 일과,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시련 받은 12제자들이 전파하는 일은 전연 다르다. 그러므로 남의 일은 간섭하지 말고 자기 사명과 직무만 충성되어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복음 전파하는 자에 대하여는 단호히 반대했다(갈1:6-7). 왜냐하면 적은 누룩(다른 복음)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이다(갈5:9)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자기와 같은 단체에 속하여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자도 복음과 구원운동에 반대만 하지 않으면 위하는 자인 줄 알고 감사하며 서로 도와 나가야 한다. 이와 반대로 잘못된 교훈이나 비진리를 반대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교훈이나 교리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은 반대하여 진리를 밝혀 나아가야 생명이 산다.
十. 사마리아인의 적대심(51-54)
.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수님은 십자가가 가까웠을 때에 죽음만 보시지 않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담대히 나가셨다. 그리하여 결사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이다. 요한복음 11:6에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고 했다. 그 당시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분위기가 예루살렘에 가득하였으므로 제자들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줄로 알고 결사각오하고 갔다.
성도에게 결심이 필요하다. 굳게 결심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갈 때에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여 주신다. 우리도 앞으로 올 대환난을 통과할 각오를 하고 굳게 결심하고 전진해 나가야 한다. 이사야 26:3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라고 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음부(淫婦)와 같다고 했다(겔16:30).
. 9: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사자들은 제자들 몇 사람을 말할 것이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유의하지 않고 사마리아에서 유숙하시려고 숙소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사자 몇 사람을 앞서 보낸 것이다.
. 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로 통과하며 거기서 유숙하려고 했으나 그들이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다. 사마리아인들은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사로잡혀 생명의 주를 배척한 것이다.
. 9:54-55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쫓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야고보와 요한이 \"우뢰의 아들\" 이란 별명을 받은대로(막3:17) 그 성격이 급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자기 일행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멸망케 하자고 예수님께 청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으며(요3:17),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기를 심판때까지 하시는 분이시다(마12:20). 구원 역사를 하는 시기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벼락불로 멸망시키는 것은 큰 손해가 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다. 구원운동만 잘 해 나아가고 거역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우려가 있으므로 추수때까지 참으며 곡식만 잘 길러 나가야 한다(마13:29-30).
. 9: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당신을 영접하지 않는 자를 벌하지 않고 또 섭섭하게 생각지도 않고 온유하고 태연한 자세로 다른 촌으로 가셨다. 이 동네에서 핍박을 하면 저 동네로 가라고(마10:23) 가르치신 예수님은 그 교훈대로 몸소 실천하셨다. 성도가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온다고 하셨다. 이것은 신앙의 길을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의 권고가 온다는 뜻이다. 언제나 성도의 갈 길은 남아 있다.
十一. 종주각오(從主覺悟)(57-62)
. 9:57-58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쫓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들 곳이 없도다 하시고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사마리아인들은 배신하고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살기가 등등한 그 때에 이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가겠다고 나섰으니 얼마나 귀하고 반가운 일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붙잡으려고 하거나 과잉 친절을 베풀지 않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들 곳이 없다\"고 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임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여우와 같이 간사하고 교활한 자도 안식처가 있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13:32에 헤롯을 여우라고 하였다. 헤롯은 여우와 같이 간교하고 교활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세상에서 머리들 곳이 있다. 간교하고 교활하여 남을 잡아먹고 이용하는 자는 세상에서 잘 산다. 그러나 오히려 진실하게 예수만 따라가는 사람들은 육신적인 고생이 많다.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새는 마귀를 가리킨다(눅8:5).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도 일시적으로 세상에서 평안을 누린다는 뜻이다. 인자는 머리들 곳이 없도다 머리들 곳은 쉴곳 또는 안식처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안히 쉴 곳이나 안식처를 가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 안식처와 피난처를 삼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편히 쉬고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도 세상에서 안식처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가며 하나님으로 안식처를 삼고, 그리스도 안에서 편히 쉬고 안식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영적 생활을 해야 한다.
. 9:59-60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지금 부친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장사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부친을 모시고 살다가 언젠가 부친이 세상 떠나면 장사 지낸 후에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좀 연기해 달라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장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친 장사를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중지하거나 연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죽은 일 때문에 산 일, 즉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죽은 자들은 영이 죽은 자이다(엡2:1). 말씀 따라가는 일을 중지하고 부친을 장사하는 일은 사망에 속한 일이다. 이것은 성도가 할 바가 아니며 영이 죽은 불신자들이나 하게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일을 범할 수밖에 없는 직업, 남을 범죄케 하는 직업,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직업 등은 불신자들이 하도록 두고 성도는 생명의 일 즉, 말씀을 따라가는 일만 해야 한다. 성도는 죽은 일을 버리고 끝까지 생명 길을 걸어가야 한다.
. 9:61-62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쫓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세 번째 사람은 먼저 가족을 작별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이 사람은 예수 따라가는 것을 일단 중지하고 먼저 가족을 작별 한 뒤에 예수를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예수 따라가는 것보다 가족이 첫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생명인줄로 깨달았으면 즉시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마치 쟁기를 잡고 밭이나 논을 갈다가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논이나 밭을 바로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은 쟁기를 잡고 농지를 기경하는 것과 같으므로 마음을 거기에 두고 그것만 눈으로 바라보면서 오직 그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여 해나가야 된다. 만일 뒤를 돌아보면 즉시 그 일이 실패가 된다. 그러므로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세상을 돌아보는 자이다. 성도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달음박질해야 한다. 빌립보서 3:13-14에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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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칠십인
(대 지)
一. 칠십인 파송(1-9)
二. 복음을 받지 않는 자의 화(10-16)
三. 칠십인의 보고와 복(17-20)
四. 복음을 받지 못할 자와 받을 자(21-24)
五. 선한 사마리아 사람(25-37)
六. 마리아와 마르다(38-42)
(본문강해)
一. 칠십인 파송(1-9)
. 101: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무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칠십인을 세우사 예수께서 70 제자를 세우시고 권능을 주어 전도자로 파송하였다. 달리 70제자를 세웠다고 한 것을 보아 12 제자는 여기 들지 않은 것같다. 12 제자는 특별히 훈련시켜 신약 교회의 기초로 삼고자 세우셨고(엡2:20 ; 계21:14), 70 제자는 복음을 널리 전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2 제자나 70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것은 같고, 복음을 위한 사명을 받은 것도 같으나 단지 그 위치와 사명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누구나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70 인을 내보낼 때에 권능을 주어 보냈고, 그들은 그 권능을 사용하여 병자를 고치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귀신들을 항복시켰다(9, 17, 19절). 이 권능은 12 제자에게도 주셨고(마10:1), 후에 모든 전도자에게도 주셨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죽은 자를 살리며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었고, 마귀의 세력을 제어할 권세도 주셨고, 전갈과 독사와 같은 것을 제어할 권능을 주어 심령이 죽은 자를 살려내며 죄로 인해 문둥이와 같이 썩어 지는 것을 깨끗케 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전도의 사명을 받은 자는 아주 큰 권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전도자가 믿음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 권능이 나타난다.
둘씩 마태복음 18:20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고, 전도서 4:9-12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면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다. \'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도간에 연합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또 둘은 증거자의 숫자이다(계11:3).
예수께서 가시려는 동네에 전도자들을 앞서 보내신 것은 제자들이 앞서 가서 천국이 가까왔다는 소식을 전파한 후에 예수님이 친히 가셔서 복음을 전하면 더욱 효과가 크겠기 때문이다.
.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요한복음 4:35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라고 했다. 만기가 되어 빨리 추수하지 않으면 익은 곡식이 곧 삭아 떨어지게 된다.
일꾼이 적으니 영적 생명을 살려내고 진리를 바로 세워 나갈만한 참된 일꾼이 적다는 것이다.
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추수할 일꾼 양성을 시급히 해야 한다. 신학교를 세워 참된 일꾼을 양성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도 하나님이 해주셔야 한다. 전도자로 보낼 때에도 먼저 가야 할 사람이 있고, 나중에 가야 할 사람이 있다. 기초 공사할 사람이 있고, 기초 위에 건설해야 할 사람이 있으며, 심어야 될 사람이 있고, 물을 주어야 될 사람이 있다(고전3:6). 한가지 일을 위해서도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
신학교나 개척 교회나 선교사를 보내려면 보통은 돈이 없어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성경 말씀에는 돈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 않고 일꾼이 없어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전도자가 참으로 복음을 바로 전하고 주의 능력에 붙들려서 일하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돈은 하나님이 주신다.
. 10: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리와 같이 성도를 잡아 삼키려 하며, 물어뜯어 상처를 주려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뱀같이 하고 순결은 비둘기같이 하여야 해를 받지 않는다(마10:16).
\'뱀의 지혜\'는 자기 속에서 나온 지혜가 아니고 자기밖에 있는 신(마귀)의 지혜를 받은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 성도들도 자기의 지혜로 하지 말고 자기밖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이리와 같은 세력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 세상이 험악하고 이리와 같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 가득 차서 잡아먹으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말씀대로만 걸어가면 악한 마귀가 손을 대지 못한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비둘기는 온유하고 깨끗한 짐승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회개하여 깨끗하고 온유하며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가리킨다. 이리 가운데 있는 양은 목자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목자의 곁을 떠나지 않아야 이리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우리는 이리 가운데 있는 양인 줄 알고 언제나 목자 되시는 주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만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능력으로 지켜주시고, 이리의 세력을 다 눌러 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신다.
. 10: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전대\'는 돈을 넣는 것이고, \'주머니\'는 먹을 것을 넣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전도자가 돈과 먹을 것과 신발을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나가라는 뜻이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이것은 인사차로 문안하는 일을 금한 것이 아니고 전도하러 가다가 문안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데 문안하느라고 지체하여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상심이 되면 그 일을 성과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음 전하는 자는 오직 그 일 하나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여 충성해야 겨우 열매가 맺혀 나가게 된다. 전도자가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사람에게 좋게 하느라고 복음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여 충성치 못하면 형식적인 전도가 되고 전도의 열매가 없다.
. 1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평안을 주기 위함이다. 이사야 52:7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면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라고 썼다. 복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평안을 전해 주는 일이므로 복음을 받은 사람은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이 머물게 된다.
. 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평안을 받을만한 사람이 그 집에 있으면 그 평안이 그 집에 머물 것이고, 만일 그 평안을 그 집에서 받지 않으면 전도하는 사람에게 그 평안이 되돌아온다. 예수의 이름으로 한번 빈 평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복음 전파하는 것은 육신의 평안뿐 아니라 영적 평안과 영원한 평안을 전해 주는 일이다.
.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면 배척하는 자도 있으나 반드시 영접하는 자가 있다. 그 영접하는 자의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옮기지 말라 대접을 더 잘 받으려고 다른 집으로 옮겨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먼저 영접한 집에서 섭섭할 것이고 다른 사람 보기에 대접이나 잘 받으려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됨으로 그리스도의 빛이 가리워지게 된다.
예수님은 대접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했다(마20:28). 그러므로 전도자는 대접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처음 유하던 집에 끝까지 머물면서 복음의 빛만 드러나도록 힘쓰고, 자기의 사명만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 10:8-9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으로 심령의 병을 고쳐 주면, 육신의 병이 낫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전도자는 주께서 주신 능력으로 심령의 병을 고치는 일, 건져내는 일, 일으켜 세우는 일, 죄로 인해 문둥이와 같이 썩어지는 것을 정결케 하는 일,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일,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일,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하여야 한다. 복음 자체에 큰 능력이 있고(롬1:16), 전도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큰 능력이 있다. 이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면 먼저 그들의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고 육신의 병도 낫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육신의 병 고치는 것을 위주로 해서 병 고쳐 주고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면 점점 능력이 떠나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된다.
二. 복음을 받지 않는 자의 화(10-16)
. 10:10-11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①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대접 받지 말고 신세지지 말라는 것이다. 복음을 반대하는 자에게서 티끌만한 신세라도 지면 복음의 빛이 가리워지고, 전도자의 권위가 떨어지게 된다. ② 심판대 앞에 가서 그들이 복음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 증거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도록 한 것이다.
. 10: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등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복음을 받지 않는 동네는 소돔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돔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망했으나, 그들은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에도 고통의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큰 죄를 졌으면 더 큰 고통과 형벌이 오게 되고, 복음의 빛을 많이 받은 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 10:13-14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 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고라산과 뱃새다 갈릴리 바다 부근에 있는 지방들이며 가버나움에서 가까운 곳이다. 마태복음 11:20-21에는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곳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큰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심판날에 형벌이 더 클 것이다.
두로와 시돈은 이방 도시로서 전연 받지 못하고 죄 값으로 형벌받는 도시이다(겔26:3-7, 28:22 ; 렘25:22). 고라신과 뱃새다는 예수님이 행하는 이적과 권능을 많이 보고 주의 빛을 크게 받고도 회개하지 않고 거역했으므로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다면 그들이 베옷을 입고 회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복음의 큰 빛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죄가 더 크고 형벌도 더 크다.
. 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복음 전도한 근거지였으므로(막2:1), 그들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받들어 드렸더면 하늘의 영광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고 거역했으므로 음부에까지 낮아지게 되었다. 음부는 지옥이나 구렁텅이 등을 가리킨다. 외부적으로 여러 조건이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받고 회개하고 말씀에 서야 높아지는 것이다.
.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그 말씀을 듣는 것이요, 그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하나님의 사자(使者)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해 줄 때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전해 주는 줄 알고 받아야 한다(살전2:13).
三. 칠십인의 보고와 복(17-20)
. 10:17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70인이 전도하고 기뻐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했다. 전도하러 나갈 때 무거움 마음으로 나간 자도 돌아올 때는 기쁨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도해 본 사람은 이 기쁨을 안다. 주님의 권능을 의지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약한 자가 강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귀가 굴복하는 것을 볼 때에 기쁨이 충만하다. 이 기쁨은 자기 영이 자라나고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다른 사람을 살려낸 기쁨이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기쁨과 은혜를 하나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지런히 전도해야 한다.
.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전도하는 일은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에베소서 2:2에 마귀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했다. 복음을 전할 때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들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말씀을 전할 때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 번개가 칠 때는 굉장하고 무서우나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와 같이 마귀가 굉장한 것 같지만 말씀으로 인하여 떨어진 후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뱀과 전갈을 밟으며 뱀과 같이 해독을 주는 사람, 전갈과 같이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발로 밟는 것같이 정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을 복음 전도자에게 주셨다.
원수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복음을 방해하는 모든 권세와 능력들을 말한다. 마귀의 종들이 하나님의 복음 운동을 방해하지만 그 모든 마귀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하나님이 전도자에게 주셨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하나님만 의뢰하고 말씀만 가지고 나가면 해할 자가 절대로 없고, 이기고 또 이기고 계속해서 이겨 나가게 된다.
.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귀신이 항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귀신은 권세가 떨어지면 파리 한 마리에 불과하다. 파리가 항복했다고 해서 크게 여길 것이 없다. 큰 것은 전도자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은 전도하는 동안에 전도자의 영이 자라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다. 택한 백성들의 이름이 창세 전에 하늘에 다 기록되어 있다(시139:16 참조). 그러므로 본 절이 말한 이름은 인격을 가리키며, 전도할 때에 자라난 그 영적 인격이 하늘 나라에 기록되어 영원히 큰 자가 된다. 하늘 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마5:19). 영이 자라나서 영적 인격이 커지면 하늘나라의 영광과 면류관 상급이 커진다. 귀신은 항복했다가 다시 올 수도 있고, 주의 일은 크게 하다가 작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이 자라나서 인격이 커진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스데반은 복음 전하다 돌에 맞아 죽었으므로 세상에서는 아주 실패한 자 같으나 그 이름이 순교자의 명단에 있고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했으니 얼마나 고귀한 자가 되었는가! 그러므로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야말로 참으로 기뻐할 일이다.
四. 복음을 받지 못할 자와 받을 자(21-24)
. 10: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천지를 주장하시고 섭리하시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친지의 모든 것을 우리의 구원에 이용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슬기만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는 자는 감추어진 친국의 비밀을 알고 믿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게 하시는 분이시다(고전1:25-27). 아무 보잘 것 없고 미련한 사람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전적으로 예수님과 그 말씀만 믿고 순종하여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을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인격이 만들어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지게 하여 세상의 지혜 있고 통달한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나은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따라오지 못한다. 보편적으로 세상의 지혜와 슬기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해도 자기 지혜와 지식에 맞추어서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신앙이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의 지혜와 지식을 다 내어버리고, 자기 위하는 것도 다 내어버리고, 주를 위해서 몸과 생명을 바쳐 놓고, 주와 그 말씀대로만 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이다. 아들인 그리스도를 참으로 아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뿐이시다.
.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해서 참으로 아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뿐이고, 또 예수님과 예수님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다. 이는 신적 관계요 신적 비밀이기 때문에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전2:13-14).
계시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이다. 말씀을 받는 자만이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믿고 알게 된다.
. 10:23-24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회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귀가 복이 있다. 과거에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많은 임금 아브라함이나 기타 구약 시대의 위대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그 말씀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는 자가 얼마나 복된 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 후에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 요한복음 20:29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영의 눈으로 보고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역사하신다.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성경 말씀을 읽어 들려 줄 때에 성령이 역사해서 내시가 감동을 받아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8:26-39).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때에 무리에게 성령이 강림하였다(행10:44-45),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령한 복음을 듣는 사람이 복 있는 자이다(계1:3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①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② 영으로 들어야 한다. ③ 성령의 감동으로 들어야 한다. ④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면서 들어야 한다.
五. 선한 사마리아 사람(25-37)
. 10:25-26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사는 율법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 본문 내용은 마태복음 22:35-40이나 마가복음 12:28-34의 내용과는 유사한 점이 있으나 그 내용이 다르므로 별개의 사건으로 본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 율법사는 자기의 어떤 선한 행위로 구원얻고자 한 것이 분명하다. 그 때 예수께서는 그 율법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반문하시고 그가 대답하는 것을 들어서 가르치셨다. 이것이 효과적인 교훈법이다.
. 10:27-28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율법사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바른 대답을 하였다. 그 전반은 신명기 6:5이고, 후반은 레위기 19:18이다. 이것은 율법의 중심적 강령이며 예수님의 의견과 일치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목적은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 아니고 자기(예수)를 믿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요(갈3:24), 구약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고(요5:39), 율법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율법 학자로서 율법에 능통하고 그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율법의 근본 정신과 목적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그가 영생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영이 죽은 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따라서 중생하여 영이 산 자라야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도리를 믿는 자라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자라야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만 거기서부터 사랑이 나오고 모든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나오게 되어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 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율법사는 예수님의 말씀하신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면서도 예수님이 자기의 의견을 인정해 주므로 의기양양하여 내 이웃이 누구냐 하고 다시 질문하였다.
.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그 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답변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여리고는 사해 가까운 곳이며 헤롯당의 별장과 세무서가 있는 도시였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산간 골목으로 통하였으므로 강도들이 자주 나오는 길이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 즉 종교 중심지이고, \'여리고\'는 전에 죄 값으로 하나님의 저주받은 도시이다(수6:26). 이 사람은 성전 중심으로 살던 예루살렘 생활을 떠나서 자기 중심으로 세상 것을 얻으려고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많이 맞고 상처를 입고 거반 죽은 상태로 버림을 받았다. \'강도\'는 마귀를 상징한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마귀의 시험과 올무가 많고 한번 걸려들면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 10:31-32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 길로 지나가면서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으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지나가고 말았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원해 줄 의무와 책임이 있는 자였다. 그러나 한 손가락으로도 도와주지 않고 그 신음하며 구원을 호소하는 소리를 못 들은 체하고 지나갔다. 이렇게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행치 않는 것은 큰 죄이다. 예수께서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은 한 달란트 받는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하셨다(마25:26).
이 제사장과 레위인은 의식주의(義式主義)적인 종교가들을 가리킨다. 의식적인 종교 행사로서는 마귀에게 받은 상처를 싸매 주지 못하고 죽어 가는 심령을 살려내지 못한다. 오늘날에도 의식주의로 나가는 교회와 종교인이 많이 있으나 그것으로서는 사람의 심령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쓰러진 자를 일으키지 못하고, 심령이 죽어 가는 자를 살리지 못한다.
. 10:33-34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불쌍히 여겨 자기 근족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를 이방인으로 취급하여 멸시하는 유대인인 그 사람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그에게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 주고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태우고 자기는 걸어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에게 끌려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상처를 받고 거반 죽어 가는 것을 불쌍히 여겨 건져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밖에는 그 상처를 싸매 주고 치료해 주며 살려 줄 자가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고 쓰러진 심령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은사를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이러한 일을 하여야 한다.
기름과 포도주 기름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으로도 사용했다(막6:13). 기름의 뜻은 신령한 은혜를 상징하고(약5:14), 포도주는 구속의 진리를 상징한다(사55:1). 예수님은 성령의 은혜와 구속의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병든 심령을 고치시고 죽어 가는 심령을 살리신다.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태워서 데리고 간 것은 예수께서 종이 되셔서 성도들을 섬기시는 면을 가리킨다.
주막은 교회를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상처받고 병들어 신음하는 자를 고쳐 주시고 그들을 교회에 맡겨서 돌보아 주도록 하셨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또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마귀에게 상처받고 쓰러져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교회로 인도해야겠다.
. 10: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을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데나리온 둘은 교회에 맡긴 진리와 영감(靈感)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진리와 영감을 교회에 주셔서 상처 받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하고 살려내도록 하셨다. 그외 부비(浮費)가 더 들면 돌아을 때 갚아준다고 하였다.
부비가 더 든다는 것은 두 데나리온 외에 더 드는 것을 가리키는 데, 그 뜻은 주께서 교회에 맡긴 구원 운동과 생명 운동을 위하여 성도들이 마음과 힘과 생명과 재산 등을 드린 것을 가리킨다. 바울이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의 죄 값으로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아야 할 고난을 남겨 놓으셨다는 말씀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구원 역사를 위하여 모든 수고와 노력과 재물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주신 그 두 데나리온은 죽어 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다 고치고 살려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전도자의 일심전력(一心專力)이 들어가고 희생이 들어가야 구속 운동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와 교역자들이 두 데나리온을 가지고 피땀을 흘리고 일심전력을 기울여야 심령을 치료해 나갈 수 있으며 살려 나갈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원 운동을 위하여 일심전력을 기울이고 피땀을 흘리고 모든 것을 바쳐서 희생한 모든 것이 부비가 더 든 것이다. 구원 사역에 희생하여 부비가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가 재림 하셔서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을 위해 당하는 모든 고난과 수고를 달게 받고 많이 희생하여 주님 재림할 때에 많은 것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고래(古來)로 서로 상종치도 않고 원수시하였으나, 이 사마리아인은 원수를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 주었다. 우리도 선한 사마리아인, 즉 예수님을 본받아서 원수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하겠다.
. 10:36-37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율법사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라고 한 이유는 조상적부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원수시하고 상종치 않았으므로 사마리아인이라고 말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서로 막혀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을 너도 가서 이웃으로 만들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본받아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람을 이웃으로 만들어야겠다. 서로 상종치 않고 원수 된 사람들에게 가서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이웃을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六. 마리아와 마르다(38-42)
. 10: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예수께서 베다니라는 동네에 이르셨을 때에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집으로 모셨다. 마리아는 그의 동생이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였다.
. 10:39-40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그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었다. 그 때 마르다는 부엌에서 예수님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대단히 분주하였다. 성도는 언제나 안정되고 고요한 심령을 가져야 하며 이것을 잃어버린 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인도받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주장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고, 동생에게 대해 불만을 갖게 되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이것은 예수님을 순종하는 태도가 아니고 예수님께 명령하는 태도이며, 마리아에게 대한 예수님의 처사가 잘못되었다고 불평하는 투의 말이다. 또 마리아에게 대해서도 불만을 품은 말이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정성스럽게 많이 대접하겠다는 생각은 좋으나 그로 인해 큰 과오를 범하였다.
마르다의 제일 큰 과오는 말씀 듣는 시간에 음식 준비를 한 것이다. 그 시간은 주님이 친국 복음을 가르치는 시간인데 왜 음식을 차리는가!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는 시간에는 말씀을 같이 배우고 말씀 가르치는 시간이 끝난 후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옳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끝나는 시간이 반드시 있다. 하루 24 시간 내내 가르칠 리가 없다.
오늘날 성도들도 말씀 받는 시간에 말씀 받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사경회(査經會)할 때에 강사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예배 시간과 성경 공부 시간에 빠지는 여성도들이 있는데, 이들은 마르다와 같은 자들이다. 말씀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아야 되고, 구원의 날에 구원에 참여해야만 한다(고후6:2).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 그 은혜를 받지 못한다. 마르다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말씀을 듣고 있는 동생까지 자기와 함께 음식 준비하는 일을 하게 하려고 했다.
이것은 기독교 사업주의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도 기독교 사업 주의자들은 예수님과 그 말씀보다 사업을 더 중히 여기고 거기에 치중하며 말씀만 따라가는 사람까지 거기에 이용하려고 한다. 기독교 사업보다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그 말씀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아 실행하므로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 사업에만 치중하고 내적 생명이 없는 것은 껍데기만 크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 10: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했으나 예수님께 칭찬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마음에 합(合)하도록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뜻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고 먼저 말씀을 받고 고요하고 안정한 심령을 가지고 예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또 의식주(衣食住)는 단순하게 하라는 것이다.
. 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몇 가지만 하든지 인생 생활에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한 것,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몇 가지 안 된다는 것이다.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인생이 사는데 반드시 없어서 안될 것은 한가지뿐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 하나만 있으면 사람이 산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면 첫째, 영이 살고, 다음에는 육신의 것도 하나님이 덤으로 주어 살게 하신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다. 먼저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이니 죽어도 살고 그 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육신의 필요한 모든 것도 주신다. 그러나 말씀과 물질 둘을 다 붙잡으려고 하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며 두 가지 모두 실패한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다(마6:24).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말씀 받는 편이 제일 좋은 편이다(삼상15:22 ; 요15:7). 그 말씀 받는 것으로 자기 영이 살고, 생명이 더욱 풍성하게 자라나고, 그 말씀으로 다른 사람도 살펴나가며 그의 나라(천국)와 그의 의를 이루어 나간다. 이 이상 더 좋은 편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하나님의 말씀은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과 기도 시간을 빼앗기면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얻었다 할지라도 실상은 자기 생명과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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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주기도
(대 지)
一. 주기도(1-4)
二. 간절히 기도할 것(5-13)
三. 바알세불에 대한 논쟁(14-23)
四. 한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데려옴(24-26)
五. 참 복 있는 자(27-28)
六.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음(29-32)
七. 등불을 등경 위에 두라(33-36)
八. 바리새인과 율법사를 책망하심(37-54)
(본문강해)
一. 주기도(1-4)
.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제자들은 아직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으므로 제자 중 하나가 예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 때에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 기도이다.
.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모두 열 마디로 되어 있다.
첫째,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만민과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된다. 성도가 자기는 핍박과 욕을 받고 낮아져서 쇠하여질지라도 그 이름이 높아지며 주님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더 크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둘째,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그의 통치를 받는 나라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와 주장을 받는 성도의 유기체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비록 두 세 사람이 모였을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통치를 받으면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자는 한 날을 살아도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사는 자보다 낫다(시84:10).
셋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본문에는 이 말씀이 없다. 그 이유는 위에 말씀하신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그 뜻을 포함해서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 나라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만 영원히 남는다.
. 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넷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양식을 육신의 양식이라고만 말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31-32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은 신령한 양식을 가리킨다. 신령한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도 주어서 살게 하신다. 우리는 신령한 양식을 날마다 구하여 먹고 영이 사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잠언 30:8-9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람의 연약성을 나타내며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기도이다.
믿음이 강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2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다. 또 빌립보서 1:21에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가난하게도 말고 풍부하게도 말아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고 육신의 것이 풍부하든지 빈곤하든지 거기에 제재를 받지 않고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며 자족을 배웠다.
주 기도의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바울과 같은 성도는 주 기도할 때에 이 구절을 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신앙이 약한 사람만을 위하여 주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 리가 없다. 예수님도 날마다 영적 양식이 필요하였고 그 양식을 날마다 잡수셨다(요4:32,34). 그러므로 주 기도의 일용할 양식은 신령한 양식임이 분명하다. 이 신령한 양식을 날마다 먹는 자에게 하나님은 육신의 양식도 주신다.
.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세계는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의 단체인 만큼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법적으로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가 날마다 짓는 죄와 성도간에 서로 막힌 죄의 담을 다 없애 달라는 기도이다. 또한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해 주어야만 하나님께 책망을 받지 않고 하나님과 막힌 것이 열린다는 뜻이 있다(마18:23-35 참조).
이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죄악 생활에서 점점 벗어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사랑으로 연합 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이것은 죄에서 점점 벗어져 나와 성결을 입어 나가는 기도이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모든 성도와 앞으로 구원받을 모든 성도, 즉 택한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이다. 성도가 신령한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죄에서 정결함을 입어 나간다.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나 독선이나 배타주의는 우리의 세계에서 떠난 것이며 이 은혜에서 떨어진다.
여섯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세계는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의 단체인 만큼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법적으로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가 날마다 짓는 죄와 성도간에 서로 막힌 죄의 담을 다 없애 달라는 기도이다. 또한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해 주어야만 하나님께 책망을 받지 않고 하나님과 막힌 것이 열린다는 뜻이 있다(마18:23-35 참조).
이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죄악 생활에서 점점 벗어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사랑으로 연합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여섯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이것은 시험이 없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고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성도에게 시험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완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험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시험에 들어 넘어지면 마귀의 일을 해주고 믿는 일이 실패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하며 힘써 시험을 이겨 나아가야 한다.
본서의 주기도문에는 여섯째 마디까지 있고 그 다음 일곱째부터 열째까지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마태복음에는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일곱째,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 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가 아니면 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능력으로 보호해 주셔서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여덟째, \'나라와\' 성도의 구원이 완성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가리킨다.
아홉째, \'권세\'와 세상 모든 권세를 굴복시킨 하나님의 영원한 권세를 가리킨다.
열째,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천상천하를 통일한 영광 즉 만물을 통일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있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이 세 마디(여덟째 -열째) 위에 \'대개\'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왜냐하면\'의 뜻이다. 이 말이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으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처음 일곱 마디의 기도를 한 다음에 다시 세 마디의 기도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기도합니다 라고 해야 뜻이 바로 통한다.
二. 간절히 기도할 것(5-13)
. 11:5-6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예수께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이유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다. 예기치 않게 친구가 찾아왔으나 떡이 없으므로 밤중에 자기 친구를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요구하였다. 왜 하필 세 덩이를 구했을까? 세 덩이는 한 사람이 시장할 때 먹을 최소한의 양식이다. 욕심으로 많이 구하지 않고 현재 필요한 것만 구한 것이다. 성도가 신앙 생활할 때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구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또 9절에 말씀한 세 가지 즉 ① 구하라 ② 찾으라 ③ 문을 두 드리라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주신다(11-13).
. 11:7-8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 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강청함을 인하여 이미 문을 닫고 아이들과 함께 침소에 누워 있으므로 아무리 친구라도 우정에 의해서는 줄 수 없는 형편이나, 그가 강청함을 친하여 마침내 일어나 주었다. 강청은 우정을 초월하였다. 하물며 사랑이 무한하여 성도에게 그 세 가지를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기도는 성도에게만 주신 특권이요 명령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6에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했으며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다(삼상 12:23).
기도는 하나님의 것을 받는 보급로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절히 구하면 흔들어 눌러서 고봉으로 철철 넘치도록 주신다(눅6:38).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첫째, 욕심을 버리고 회개함으로 구하는 기도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는 것은 ① 죄악이요(사59:1-3), ② 자기이다. \'나(自我)\'라는 자가 언제나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가로막고 있어 기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쳐서 복종시켜 온유 겸손한 마음과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님과 교통이 되고 신령한 기도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
둘째, 간절한 기도이다. 간절히 간청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하는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셋째, 시간과 정력과 공력을 많이 들인 기도이다.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고 일심전력으로 정성을 많이 기울여 하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넷째, 하나님 앞에 해야 될 일과, 사람 앞에 마땅히 해야 될 도리를 다하면서 드리는 기도이다. 자기의 할 일은 하지 않고 자기의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 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하나님을 구하여야 되고, 신령한 세계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더욱더 발견하게 되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속에 벌써 임한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에 자기 욕심대로 자기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 때문이다(약4:3).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성경에서 찾는다.
②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에서 찾는다.
③신앙 양심에서 찾는다.
④성령의 인도에서 찾는다.
⑤원리 원칙에서 찾는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벌써 성취된 것과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나님의 뜻을 찾은 다음에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대로 하려고 하다가 안되면 또 하고, 안되면 또 하고 계속 반복하는 상태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지각에 뛰어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그 일이 성취되도록 해 주신다. 그 일이 성취되면 문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대로 하려고 기도하면서 힘쓰면 하나님이 되게 해 주신다.
예를 들면 독신 생활하는 젊은 사람이 정욕을 이기기 어려우나 하나님께 이기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기게 해 주신다. 술, 담배를 끊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어려우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끊으려고 힘을 기울이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끊어지게 해 주신다. 시험과 환난을 이기려고 기도하고 힘쓰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기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고 힘쓰면 그대로 이루어져 그 말씀이 실상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져 나아가면 점점 거룩해지고 지혜 있게 되어 마침내 성자(聖者)가 되어진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것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가 받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다.
. 11:11-12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 뱀을 줄 자가 없고, 알을 달라고 하면 알 대신에 전갈을 줄 자가 없다.
전갈은 쪼는 살이 있는 작은 동물이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사람은 ① 아담의 죄가 유전되었으므로 날 때부터 악한 자이다(창8:21). ② 자기만 위하는 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악하다. ③ 로마서 7:18에는 사람의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악한 자라도 아들이 구할 때에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데, 절대 선하시며 사랑이시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은 틀림없다.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으로 신령한 세계를 찾게 해 주시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에게 찾게 해 주시며 또 성령으로 두드리는 자에게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三. 바알세불에 대한 논쟁(14-23)
. 11:14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으나
신체의 기능 장애로 인하여 벙어리 된 자도 있고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도 있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셨다. 믿는 자가 기도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 벙어리이다. 어떤 사람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전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도 예수께 나아가 간구하면 입이 열린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왜 복음을 전파하는 자에게 입을 열어 주시지 않겠는가! 성도가 전도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내어버리는 행동이다. 사람이 생각할 때는 못할 것 같아도 믿고 기도하고 순종하며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그 일을 하게 해 주신다.
. 11:15-16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그 중에서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였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이라는 말이다. 또 더러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더 큰 표적을 구하였다. 예수께서 벙어리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친 것은 그들로 보고 믿게 하려 함이었는데, 그들은 믿지 않고 더 큰 표적만 구하였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리 큰 표적을 보여 주어도 쓸데없다.
. 11:17-18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예수께서 비방하는 자들에게 먼저 비유를 들어 답변하셨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페하여지며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겠는가? 따라서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귀신과 귀신이 서로 싸우는 것이니 귀신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너희 아들들은 바리새인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마가복음 9:38에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귀신을 쫓아낸 자도 바리새인의 제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 라고 하면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 될 것이며 따라서 너희 제자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 11:19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나라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제와 역사와 통치를 가리킨다.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피동되어 마귀의 세력을 이기며,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이루어져 나간다.
. 11:20-22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제물을 나누느니라
강한 자는 마귀를 가리킨다. 마귀가 무장하고(영적 무장) 사람 속에 들어가서 점령하고 지키고 있으면 그 집이 완전하다. 그러나 그 집은 마귀의 것이다.
더 강한 자는 예수님이시다. 마귀는 사람보다 강하고, 예수님은 마귀보다 더 강한 분이시다. 마귀가 그 사람을 점령하고 있을 때에는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더 강한 자이신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고 마귀의 무장을 다 빼앗고 그 사람을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려면 마귀보다 더 강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며 말씀만 순종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마귀에게 노략 당했던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다.
. 11: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복음 운동을 반대하는 자요,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복음 운동을 헤치는 자이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복음 운동에 함께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하고 주님과 함께 모으는 일, 즉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여 협력하는 자가 되어야 복을 받는다. 분명히 진리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데도 협조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이기주의요 사욕에 속한 자이다. 결국 그 사람은 진리를 반대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참된 구원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동참하고 협조하여야 된다.
그러나 비진리와 인본주의와 잘못된 것은 어디서나 반대해야 된다. 그것을 반대하지 않는 자는 비진리를 위하는 자가 된다. 왜냐 하면 누가복음 9:50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진리가 나타날 때는 협력하여 그 일을 세워 나가고, 반면에 비진리가 나타날 때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여야 한다.
四. 한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데려옴(24-26)
. 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물 없는 곳으로 \'물\'은 행복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 생명수 즉 생명의 역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또 요한복음 7:37-38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라고 했다. 지옥에는 이러한 물이 한 방물도 없는 곳이다(눅16:24). 그러나 하늘 나라는 생명수가 강같이 흐른다(계22:1-2). 마귀는 물 없는 곳으로만 다닌다. \'물 없는 곳\'은 안식과 위안과 행복이 도무지 없는 곳이요 쉴 수도 없는 곳이요 괴롭고 고통만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더러운 귀신이 다른데 아무리 다녀도 물이 없어서 쉬지 못하고 전에 있던 곳에 다시 되돌아가고자 하여 때때로 와서 살펴보곤 한다.
. 11:25 와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집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소제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회개하여 마음이 정결케 된 것을 가리킨다.
. 11: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귀신이 전에 있던 사람에게 와 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 회개하여 소제되고 수리는 되었으나, 주인이 없이 비어 있었다. 주인이 없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지 않았다는 뜻이다.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는 자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은 자는 그 마음이 주인이 없는 집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다시 그 사람에게 들어갈 때에는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간 것처럼 전보다 칠 배나 더 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타락하면 믿지 않을 때보다도 상태가 칠 배나 더 악해져서 자기 자신도 마귀로 인하여 고통을 더 받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칠 배나 더 악한 자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살 때에는 마귀를 능히 물리쳐서 이길 수 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떠나 방심부주의 하고 복잡하고 뒤숭숭할 때에 들어온다. 그러므로 언제나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그와 교통하며 안정된 심령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五. 참 복 있는 자(27-28)
. 11:27-28 이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여자는 평소에 늘 좋은 아들을 낳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어머니가 복이 있다는 말을 하였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또 아들이 없어도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는 영원한 것을 소유했고(벧전1:23-24), 영적 인격이 자라나 하늘 나라의 상급이 커졌으므로 세상에서 어떤 자보다 복된 자이다. 세상적으로 훌륭한 아들과 그 어머니도 얼마 후에는 다 죽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 것은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六.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음(29-32)
.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악한 세대 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세대가 악한 세대요(렘2:19), ②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세대가 악한 세대이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삼일삼야를 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 일만에 다시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즉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서 멸망하게 된 자들에게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 외에 다른 것이 필요 없다. 다른 표적으로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고 죽은 영혼을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희한하고 신기한 표적이 나타나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고 해도, 죄인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죽은 영이 살아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혼하는 처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신랑이다. 신랑 없이 아무리 좋은 패물과 축하객이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적 나타나는 것에 치우치지 말고 요나의 표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그것으로 살고, 거기서 새 생명을 얻고 자라나고 부활의 능력에 점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 11: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요나가 삼일삼야를 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것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큰 표적이 된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후에 부활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그 세대 사람들에게 큰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 11:31-3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니느웨 사람이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였고, 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사모하여 찾아와 그 지혜를 배웠으나, 요나보다 크고 솔로몬보다 큰 예수님의 말씀을 그 세대 사람이 듣고도 회개치 않았으므로, 심판 때에 남방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그 세대 사람을 정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기한 표적을 구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다.
七. 등불을 등경 위에 두라(33-36)
. 11: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는 것은 그 빛을 모든 사람에게 비추어 밝히 보게 하려는 것이다. 등불은 중생한 영을 가리킨다. 움은 지하실 같은 곳으로 빛을 외부로 비추어 내 보낼 수 없는 곳이니 사람의 욕심을 가리킨다. 등불을 움 속에 둔다는 것은 중생한 영의 빛이 사람의 욕심에 가리워서 비취어 나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말은 곡식이나 액체의 양(量)을 측정하기 위하여 만든 통 같은 용기인데, 등불을 그 통(말) 아래 두면 외부로 빛을 내보낼 수가 없다. 물질 제일주의로 나가는 신자는 중생한 영의 빛이 가리워져서 비취어 나가지 못한다.
등경은 불빛이 멀리 비취도록 등불을 올려놓는 대(臺)치다. 신령한 뜻은 성도가 믿음 지키는 것을 첫째로 하고 세상 모든 것을 그 아래 두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말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가리킨다. 기드온의 삼 백 명 용사가 항아리를 깨뜨리고 그 안에 있는 횃불만 높이 들어올리듯이 항아리와 같은 자기 육체는 깨뜨리고, 자기 속에 있는 영의 빛을 비추어 나가야 한다. 또한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한 것처럼 진리의 빛을 높이 들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빛을 등경 위에 두는 신앙이다.
. 11:34-35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눈은 심령의 눈을 가리킨다. 심령의 눈이 밝아야 온 몸이 다 밝고 심령의 눈이 어두워지면 온 몸이 다 어둡다. 눈에 무엇이 들어가거나 가리워지면 잘 보지 못하는 것처럼 성도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오면 어두워져서 신령한 모든 것을 잘 보지 못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였다(눅24:16). 그러므로 우리 심령의 눈이 무엇에 가리워져서 어두워지지 않았는지 항상 살펴보고 회개해야 한다.
.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날마다 죄를 찾아 회개하고 욕심이나 마음에 가리워지는 것이 전연 없으면 심령의 빛이 잘 비취어 나가 온 몸이 밖은 빛 가운데서 걸어갈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길 잃어버릴 염려가 없고 어두운 세상에서도 언제나 빛 가운데서 살아가며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취어 줄 수 있다.
八. 바리새인과 율법사를 책망하심(37-54)
.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의 호의적인 초청에 응락하시고 그 집에 점심을 잡수시기 위해 들어 가셨다.
.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 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예수께서 손 씻지 않고 잡수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은 자기가 배운 장로들의 유전과 맞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겼다. 진리를 잘못 배운 자는 잘못된 그것을 옳은 줄 알고 옳은 것은 잘못된 줄로 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바로 배운 자가 복이 있다.
.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다. 그들은 속에 있는 악독과 탐욕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손을 씻고 먹는 자는 깨끗한 자이며, 손을 씻지 않고 먹는 자는 더러운 자인 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겉만 깨끗이 하고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여 회칠한 무덤과 같이 되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셨다. 사람의 속이 깨끗해야 한다. 아무리 잔과 대접의 겉이 깨끗하더라도 속이 더러우면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속에 있는 탐욕과 악독을 회개하여, 깨끗이 하고 말씀을 받아 믿음을 지켜서 점점 깨끗하게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 11: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밖과 속을 다 만드셨기 때문에 안과 밖이 다 깨끗하기를 원하신다. 밖이 깨끗하다는 것은 깨끗한 행실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 11:41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그 안에 있는 것은 중생한 영이다. 구제하라는 것은 중생한 영을 써서 영의 사람으로 살라는 뜻이다. 탐욕과 악독을 버리려고 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좀더 적극적으로 중생한 영을 따라 살면 모든 탐욕과 악독에서 떠나 점점 깨끗하게 되어 나간다(롬8:13 참조).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고 다른 사람에게 선과 사랑을 베풀며 구원의 복음을 나눠주는 것이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영이 자라남으로 점점 깨끗해진다.
.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박하와 운향은 약재의 일종이다.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까지 세밀하게 십일조를 잘 드렸으나 공의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생명이요, 공의는 빛이다. 그들이 작은 것은 잘 했으나 큰 것을 잃어버렸으며, 의식적인 종교 생활은 잘 했으나 내적 생명의 빛이 없었다.
이것도 행하고는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행하라는 것이다.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십일조 드리는 것도 버리지 말고 하라는 것이다. 구약에도 십일조를 드리라 했고, 본문에서도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십일조를 마땅히 드려야 하며 의와 인과 선을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힘써 행해야 한다.
. 11:43-44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의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노라
바리새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예수님은 내가 섬김을 받으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고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에서는 남을 섬기는 자가 큰 자요 남을 섬길 때에 자기가 만들어진다. 자기를 만들지 못하고 세상에서 대접을 잘 받으면 하늘 나라에서 작은 자가 된다.
평토장한 무덤 죽은 사람을 장사하고 그 위에 봉분없이 평토를 만들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위로 지나갈 때에 그 속에서 시체가 썩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외식하는 종교인들이 속에는 탐욕과 악독과 부정한 것이 가득하면서 외부적으로 거룩한 의식을 행하니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더러운 것을 알지 못하고 속는다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문안을 받지만 속이 어떤가가 문제이다.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시고, 자기 자신도 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알아주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하시느냐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사람 앞에 대접받고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속에 있는 죄를 찾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잘 몰라주어도 나중에 다 드러나서 알아주고 인정해 줄 날이 온다.
. 11:45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할 때에 한 율법사가 자기는 선한 자인 것처럼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라고 예수께 따져 물었다.
. 11:46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율법사들은 사람들에게 행하기 어려운 율법을 행하라고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한 손가락으로도 그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남에게 시키면서 자기는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는 자는 화가 있다. 참된 종교 지도자는 언제나 자기가 먼저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모든 면에 본을 보이면서 따라오라고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먼저 본을 보여 주면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셨고 앞에 가면서 인도하셨다(요10:3-5). 로마서 2:21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기는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고 남만 시키는 것은 악한 일이요 화 받을 일이다.
. 11: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았다. 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것은 그들에게 유익이 있으나 현재의 의인을 의인이라고 하면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인기가 다 그 의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유익을 보려고 현재의 의인과 선지자들은 비방하면서도 과거의 의인들의 이름을 높이고 무덤을 쌓는 것이다.
언제나 타락된 종교가들은 과거의 의인들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의 유익을 보고 현재의 의인과 참 선지자는 비방하고 죽여서 자기들의 유익을 보려고 한다. 이것이 모두 이기주의요, 자기를 위하는 것이요, 자기 중심의 생활이다.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또 자기가 한 것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줄로 알고 회개하여야 한다. 옳은 자를 정죄하고 의인을 죽인 죄는 하나님 앞에 큰 벌을 받는다. 야고보서 5:6에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고 하였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 11:48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자기들의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을 공경한다는 구실로써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지마는 자기 조상들의 악행한 기념비(紀念碑)가 될 뿐이다. 결국 자기들은 그 악행한 조상들의 자손인 것을 증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 11: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증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깨달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유대인들이 더러는 죽였고, 신약 시대에도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죽일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 예언대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 11:50-51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이었다. 아벨이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열납하셨으나, 형 가인이 그것을 시기하여 아벨을 죽였다.
사가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가리킨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다가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대하24:20-22). 마태복음 23:35에 이름이 바라갸의 아들이라고 기록된 것은 스가랴의 아비가 바라갸라는 이름과 여호야다라는 이름 둘을 가졌던 것 같다. 성경에 이름을 둘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최초의 순교자 아벨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돌에 맞아 죽은 사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가 담당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의(義)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그 의인이 받게 되지만, 그 혜택은 이 세대가 공동으로 받게 된다. 예레미야 5:1에 예루살렘 성 안에 의인 한 사람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말씀과, 창세기 18:32에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말씀도 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공동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반대로 누가 죄를 짓든지 그 죄에 대한 죄값은 그 세대가 담당하여야 한다. 내가 지은 죄일지라도 나 혼자 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대가 모두 담당하고 다른 사람이 지은 죄도 그 사람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대가 다 같이 담당한다.
그러므로 나만 죄를 안 지었다고 방심하여서는 안 된다. 나도 죄를 짓지 않아야 되고 다른 사람도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누가 죄를 범하려고 하든지 모두 힘을 합쳐 그 죄를 방지하도록 힘을 쓰고, 누가 의를 행하든지 서로 협력하여 그 의를 세워 나가야 한다. 이 세상이 부패하여 죄가 점점 들어차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온다. 이 세대 사람은 공동 운명을 가지고 있다. 누가 악을 행하든지 이 세대가 공동으로 담당하여야 되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그 죄와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선을 행하고 선한 것을 도와주고, 선한 편에 서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된다.
.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율법사들은 구약 성경을 받아서 가르치는 자이므로 천국 지식의 열쇠를 맡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 열쇠를 가지고 천국 문을 열지도 않고 그 세계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자기가 들어가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들어가게 할 수 없다. 또 열쇠를 그들이 가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은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천국 일을 방해하고 막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크다. 그러나 천국 일을 도와준 자는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으면 자기가 먼저 그 말씀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대로 살고, 다른 사람도 그 세계로 들어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하여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된다.
. 11:53-54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 가지 일로 힐문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
그들은 예수님의 책망하는 말을 듣고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맹렬히 달라붙어 그 말씀의 목을 지켰다.
목을 지키더라 올무를 놓고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올무를 놓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 올무에 걸리기를 기다리며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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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어리석은 부자
(대 지)
一. 누룩을 주의하라(1-2)
二. 핍박을 두려워 말라(3-12)
三. 어리석은 부자(13-21)
四. 염려치 말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12-31)
五.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32-34)
六. 주님 재림을 기다릴 것(35-48)
七. 불을 땅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八. 시대를 분별하라(54-56)
九. 범죄와 회개의 과정(57-59)
(본문강해)
一. 누룩을 주의하라(1-2)
. 12:1 그 동안에 무리 수 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무리 수 만 명이 모여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고 복음을 전파하므로 바리새인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자랑하지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 중에 진리가 세워져 나가지 못하고 누룩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외식과 의식주의를 가리킨다. 마태복음 16:11-12에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교훈을 누룩이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5:9에는 다른 복음을 누룩이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5:6에는 죄와 의식주의를 누룩이라고 했다. 누룩이 가루(粉)를 부패시키는 것처럼 그릇된 교훈과 의식주의와 다른 복음등이 순수한 진리를 부패시킨다. 그러므로 누룩을 주의하여 제거하지 않으면 진리 운동은 조만간에 부패하여 내적 생명의 역사를 잃게 된다. 신자에게서나 교회에서 제일 경계하여야 할 것은 누룩이다.
. 12: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감추인 것이 다 드러나게 되고 숨어 있는 것이 다 알려지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사람 앞에 칭찬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에 가지고 있는 진리와 생명의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반드시 그대로 알려지고 나타나게 된다. 아무리 겉을 아름답게 꾸미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아도 속사람이 숯덩이와 같은 인격이면 그 인격이 나타나게 되고, 아무리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고 비방해도 속사람이 금강석과 같은 인격이면 그러한 인격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른 진리를 많이 깨달아 생명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고, 자기 인격이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은 위선이며 스스로 속는 일이다.
二. 핍박을 두려워 말라(3-12)
. 11: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성도는 자기의 신앙을 숨기지 말고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이다.
어두운데, 골방은 은밀한 곳을 가리킨다.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을 광명한 세상에 전파하고, 또 은밀한 곳(골방)에서 영의 귀로 듣고 깨달은 진리(영감으로 깨달은 성경)를 집 위(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전파하라는 것이다. 핍박과 고난과 방해하는 세력이 많다고 하여도 이 일을 계속해 나가면 진리 운동이 창성해 나간다.
. 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내 친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구\"라고 말씀하셨다(요15:14).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역(聖役)에 동참한 사실을 귀중히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황송한 말씀이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 우리를 핍박하여 육신의 생명을 죽이고, 그 후에 더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 일도 절대로 하지 못한다. 순교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 되어 있는 자만 당하고 그 순교 당하는 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져서 가는 것이므로(고후5:4) 친국에서 상급이 크다. 하나님은 몸을 죽이고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권세가 있으므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 현세는 잠깐이요 내세는 영원하다. 복음의 원수들이 성도를 죽이려고 해도 두려워 말고 말씀을 따라 끝까지 생명길을 걸어가는 자가 승리자요 복 있는 자이다.
. 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의 치밀한 보호를 가리킨다.
앗사리온은 화폐로서 1데나리온의 1/16인데,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다.
참새 작은 새이다. 이렇게 값싸고 미약한 동물의 생명도 보호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아무리 핍박과 고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보호하시며, 우리의 모든 미세한 부분까지 주장하시고 섭리하시는 절대 주권자이므로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목숨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사람들이 죽일 수 없다. 또한 우리의 생명이 참새보다 얼마나 귀한가!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말씀을 지켜 나아가며 신앙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 12:8-9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성도에게 큰 핍박이 닥칠 때 사람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는 환난 때에도 믿음을 지켜야 되고 잡아죽이려고 할 때에도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해야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것을 하늘 나라에서 인정해 준다. 성도가 생명을 내어놓고 담대히 말씀대로 걸어 나가고 신앙 양심을 지키면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면서 면류관을 씌워 줄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육신의 썩어질 생명을 위하여 잠시 더 살려고 신앙을 양보하면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이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성령 모독 죄는 성령 훼방죄와 같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죄이다. 그 이유는 성령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데,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성령을 훼방함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 죄는 불택자의 죄이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일시적으로 반항하였어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그는 성령 모독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죽을 때까지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지 않고 나중에는 순종하여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성령의 감동을 순종하여 나중에는 예수를 믿고 그 인도를 받는 자가 되었으므로 훼방자가 아닌 것과 같고, 강도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후에는 강도가 아닌 것과 같다.
. 12:11-12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서 성도를 정사 잡은 자나 회당이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갈 때에 성도가 두려워하지도 말고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그 생명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하에 있으며, 또 성령께서 무슨 말할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신앙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만 하면 된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나아갈 때 성령의 감동으로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신다. 성도가 만일 무슨 말할 것을 미리 염려하면 인간의 생각과 수단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는다.
三. 어리석은 부자(13-21)
.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 사람은 자기 형이 아버지의 유업을 다 차지하였으므로 자기 몫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리하여 예수께 와서 그것을 나누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그가 예수님을 바로 깨닫지 못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다.
.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재산 분규 문제를 바로 재판하고 그들의 재산을 공정히 분배해 주는 일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예수님이 하실 분야가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사함과 죽은 영을 살려서 지옥 갈 영들을 하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는 사회 구원 운동자들과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신학은 사회 구원을 주장하며, 억압하는 모든 세력을 타도하고 지상에 유토피아(천국)를 건설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폭력적 방법으로 투쟁한다. 이러한 주장은 본문 말씀에 위배된다. 기독교는 영적 구원과 내세주의임을 이 말씀이 증거한다.
.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무리를 향하여 사람은 마땅히 탐심을 물리쳐야 될 것과, 사람의 생명이 소유(所有)의 풍성한 데, 있지 않다는 것과, 재물만 있으면 생명이 살 줄로 아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가르쳐 주셨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있어야 사람이 사는 줄 알고, 물질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으나 이것은 사는 길이 아니고, 도리어 죽는 길이다.
. 12:16-18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셨다. 한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을 만큼 소출을 풍성히 거두게 되었다. 그러므로 곡간을 더 크게 짓고 거기에 많은 곡식을 쌓고자 했다.
.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 해 쓸 것을 쌓아 놓았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자\" 라고 하였다. 그는 사람이 물질로는 영혼이 평안히 쉴 수도 없고 즐거워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또 생명이 하나님께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다.
.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① 생명이 하나님께 달린 것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러 가시면 빈부귀천노소(貧富資賤老少)를 무론하고 1분 1초도 연기하지 못하고 즉시 세상을 떠나야 된다. 사람의 사활(死活)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이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어리석은 자이다.
② 그는 생명이 물질에 있는 줄로 알았다. 사람이 물질만 있으면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 사람이 물질로써 영혼이 평안히 쉬고 즐거워할 줄로 알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 ! 영혼이 물질로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즐거워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③ 이 부자는 영혼의 생명보다 육신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육신의 생명은 잠깐이요 영혼의 생명은 영원허 사는 것이다. 육신은 영혼이 쓰고 살던 장막에 불과하다(고후5:1).
④ 이 부자는 영원한 내세를 위해 준비하지 않고 잠시 잠깐 후에 없어질 현세만을 위해서 살았다. 이 세상은 나그네 생활이요,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다(히11:13-16). 빌립보서 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라고 하였다.
⑤ 이 부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 노릇을 했다.
⑥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살았다.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은 다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만 영원히 남는다(요일2:17).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참으로 자기를 위하는 것이다. 로마서 14:7-8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육신의 생명이 죽는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시면 1분 1초라도 더 살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 세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자는 하나도 없다. 떠날 때에는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다 내어놓고 빈손 들고 가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혼을 불러갈 것을 생각지 않고 사는 자가 있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는 자와 하나님께 대해 부요치 못한 자는 다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자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 진리와 영감으로 영이 많이 자라난 자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 자(마 6:20) 및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자들(눅16:1-9)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이다.
四. 염려치 말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22-31)
. 12:22-23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사람들은 보통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면서 일생을 보낸다. 목숨이 중요한가, 음식이 중요한가? 음식보다 목숨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다. 중요한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왜 그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을 주시지 않겠는가. 우리 목숨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유지시켜 주심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먹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 것이다. 또 몸이 중요한가, 의복이 중요한가?
의복보다 몸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중요한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몸에 필요한 의복을 왜 주시지 않겠는가 !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보호하여 오늘까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몸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몸에 필요한 의복을 주실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깨달은 자는 의복 때문에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만 잘 섬기려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창조해 주셨으니 먹을 것도 주신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주셨으니 그 몸을 위해서 입을 것도 주신다. 농부가 소를 사왔을 때 소가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주인이 그 소에게 먹을 것을 주게 되어 있다. 주인이 먹을 것을 주지 않아서 소가 죽게 되면 결국 주인에게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사람의 목숨과 몸을 내신 하나님께서도 그 목숨과 몸을 위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주실 것을 우리가 믿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 12: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공중의 까마귀는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어서 기르신다. 하나님께서 새를 내실 때에 새가 먹을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 하물며 천부께서 성도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마태복음 6:26에는 공중의 새를 보라고 했다. 새는 공중에 날아 다녀야 먹을 것을 찾아 먹을 수 있다. 그것은 자기 기능을 써서 노력해야만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기선 목사님은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고 했지 목침 베고 낮잠 자는 새를 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낮잠 자는 새는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새가 새벽부터 짹짹거리며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날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도 새와 같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것을 찾아 먹을 수 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식으로 좋은 일만 하겠다고 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아무리 날아 다녀도 일자리가 없다.
사람이 겸손하여 낮은 데 처하고, 아무 일이나 하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일 자리를 찾으면 반드시 일감이 생기고 직장이 생겨서 굶어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좋은 것만 골라서 하려고 하지 말고 아무 것이나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으니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을 것이 없는 것이 마땅하며, 아무 일이나 부지런히 노력해서 일하면 반드시 먹을 것을 주신다.
. 12:25-26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사람이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 없다. 무슨 일이나 염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셔야 된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고 사람이 자기가 해야할 노력을 다 한 후에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고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 12:27-28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들에 핀 백합화는 하나님이 내셨는데 얼마나 아름다운가! 백합화는 아름답고 향기가 좋다. 솔로몬의 옷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백합화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다. 백합화는 생기가 있고, 향기가 나오지만 솔로몬의 옷은 생기도 없고 향기도 없다. 혹 옷에 향수를 뿌려 향기를 낸다고 해도 그 향은 오래 가지 못하고 없어진다. 백합화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보잘것없는 들풀인데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는데 이보다 귀한 몸에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믿음만 잘 지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입혀 주신다.
백합화도 부지런히 일한다. 뿌리에서 양분을 섭취하여 줄기를 통하여 잎으로 보내고 잎사귀에서는 공기와 태양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흡수하여 양분을 만들어 뿌리로 내려보내는 일을 부지런히 한다. 그와 같이 사람도 자기 할 일을 부지런히 해야 먹을 것도 나오고 입을 것도 나오는 것이다.
. 12:29-30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성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친부께서 이 모든 것이 성도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고 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이방인들이나 구할 바요 성도의 구할 바가 아니다.
. 12: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이다. 먹을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입을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도 더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날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 운동으로 영적 생명 운동과 몸의 구속(롬8:23)과 만물 구속(롬8:19-21 참조)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 운동이 완성되어 나가기를 구하고 천국 건설이 잘 되기를 구하는 것이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6:33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구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찾아 옳은 것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옳은 것을 먼저 자기 심령 속에서 옳다고 붙잡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옳은 것을 힘써 세워 나가야 한다. 옳은 것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성경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리해 나아가야 한다. 성경대로 한 것은 의를 이룬 것이고, 성경대로 하지 못한 것은 불의한 것이다.
또 성령의 감동과 신앙 양심을 통해서 옳은 것을 찾아야 된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붙잡지 말아야 한다. 의 하나가 자기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옳은 것을 붙들었으면 죽어도 내놓지 말고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 옳은 것을 계속 찾아서 세워 나아갈 때 영이 자라난다. 그러면 의의 나라가 점점 건설되어 나가고 의의 빛이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의 구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자와 같이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찾으면 금보다 귀히 여겨 그 말씀대로 의를 이루어 나아가고, 의에서 의로 전진하여 의가 점점 커져야 한다. 의가 커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커진 것이다.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런 것은 앞에 말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이다. 성도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더하여 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세워 나아가면 육신에 필요한 의.식.주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필요한 대로 주신다는 것이다.
五.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32-34)
.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적은 무리여 넓은 길로 가는 자는 많으나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적다. 좁은 길로 가는 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며 성경대로 순종하여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마7:13-14 해석 참조).
무서워 말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 또 좁은 길로 가며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에 핍박이 올 것이나 그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왜냐하면 능력의 하나님이 만능으로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핍박을 이기며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의 의가 커지고 자기 영이 자라난다.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성도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 나라에 가기까지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다. 또 성도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여 반드시 성취되도록 하여 주신다.
.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우리의 소유란 재산, 평안, 자유, 목숨, 몸, 좋은 환경 등을 가리킨다. 이것들을 다 희생하고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는 것이다.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는 영적인 주머니를 가리킨다.
주머니는 먹고 살 양식과 요긴한 생활 필수품을 넣는 자루이다. 영이 먹고 살 것을 준비하는 것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이다. 이 주머니를 준비해 놓으면 영원히 먹고 살 것이 거기에 있고,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려면 소유를 팔아 구제해야 한다.
구제는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니 꼭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게 쓰는 것도 구제요 하나님의 일에 필요하게 쓰는 것도 구제이다. 필요한 데 쓰되 하나님의 명령대로 주를 위하는 일에 써야 한다. 만일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의 명예를 위해 구제한다면 그것은 외식이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하나님께만 합당하게 하여야 한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주와 그 말씀만 따라가며 중생한 영이 자라나는 것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이다.
구제를 해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제 생각대로 하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이용된 것만 천국에 남아 있고, 인간적인 것은 하나님 나라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가 무엇을 하든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 하나님께 피동되어 해야 한다.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 것이 되고 중생한 영이 자라나게 되므로 도적이 도적질도 못하고 좀도 먹지 못한다. 그것들은 절대로 손실되는 법이 없고, 영원히 보존되는 보물이다. \"다함이 없는 보물\" 이란 사렙다 과부의 가루통과 기름병에서 가루와 기름이 계속 나온 것처럼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에서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이 영원히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으면 마음도 거기에 가 있다. 그리하면 하늘나라를 마음에 소유한 사람이 되고, 마음은 하늘 나라에 가 있게 되어 하늘 나라가 자기 속에 이루어진다. 또 언제나 소망을 하늘 나라에 두고 보화를 하늘에만 쌓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런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六. 주님 재림을 기다릴 것(35-48)
. 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서 있으라
주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될 것을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자기를 단속하는 것과 근신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이것은 자유 방종하는 생활과 반대되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자유 방종하는 생활을 다 걷어치우고, 근신하고, 삼가 조심하며, 자기를 다스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힘써 나아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등불을 켜고서 등불은 중생한 영의 빛을 가리키고 켜는 것은 그 영을 쓰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6:23에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라고 하였다. \"네게 있는 빛\"은 심령의 빛, 즉 중생한 영이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빛을 가리킨다. 중생한 영이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면 그 심령이 밝아지고 온 몸도 밝아져서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된다. 그러나 마음에 욕심을 품으면 그 빛이 어두워진다.
심령이 어두워진 사람은 회개하여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그 빛이 다시 비취어 나간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중생한 영을 써서 그 인도를 따라 살면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된다.
. 12: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왜 혼인집에서 돌아오시는 주인으로 비유하셨는가? 혼인집은 신랑 신부로 인하여 기쁘고 즐거워하는 집이다. 혼인집에서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도 신랑 신부를 생각하며 즐거움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신부되는 성도를 생각하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돌아오신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준비하고 깨어 있다가 신랑이 오면 즉시 나가 영접하여야 한다. 신랑 맞을 준비는 어떻게 하는가? 첫째, 자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 허리에 띠를 띠고, 즉 자기를 단속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등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늘 깨어 주님 오실 때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심해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 주님이 돌아오셔서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
.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준비하여 등불을 켜고 깨어 있는 것을 보시면 주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할 것이다.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님이 성도들을 영광의 보좌에 앉히고 칭찬과 존귀와 면류관을 주실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원수의 앞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이다(시23:5).
. 12: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이경\"은 밤 9시에서 밤 12시까지이고, \"삼경\"은 밤 12시에서 새벽 3시까지이다. 초저녁에는 깨어 있기 쉬우나 밤 1시, 2시, 3시경에는 깨어 있기가 아주 힘들다. 밤은 환난을 뜻한다. 밤이 깊어지는 것처럼 환난이 깊어져서 큰 핍박과 환난으로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할 때에는 성도가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힘들다. 그러나 그 때에도 신앙의 정조를 지켜 등불을 켜고 있는 자라야 참으로 영원한 복을 받는다.
. 12:39-40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를 하나님께서 알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오실 지 알 수 없다. 마태복음 24:42-44에는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다. 도적은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자기 온다. 예수님의 재림도 갑자기 있게 될 것을 믿고 깨어 기다려야 된다. 오늘 오지 않고 이 다음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적같이 오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실 줄 믿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에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방심 부주의하지 말고,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혼인집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매일 매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겠다.
. 12:41 베드로가 여자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자기들에게만 해당되는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지를 물었다. 그것은 물론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다.
. 12:4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지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 지혜를 말하고 진실은 신앙 양심을 쓰는 것을 가리킨다.
그 집 종들은 택한 백성, 즉 성도들을 가리킨다.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 즉 신령한 진리를 가리킨다. 말세에는 성도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복이 있다. 자기가 낳은 사람에게도 양식을 나누어주면 복이 있다. 자가기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한 사람은 자기가 낳은 사람이다. 또 자기 가족들도 자기가 낳은 사람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가르치는 자가 복이 있다. 우리는 사람이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기를 힘써야 되겠다.
때를 따라 그때그때 적합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환난 당한 자에게는 그에 맞는 말씀을, 시험에든 자에게는 그에 적합한 말씀을 가르쳐서 마귀의 궤계와 시험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해주어야 한다.
이 기선 목사님은 일정 말기 전국 교회에 다니며 신사참배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일본 경찰이 잡아다가 다시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므로 그 다음에는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때 일경(日警)이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그것은 성경 말씀이므로 가르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그 양식(우상 숭배 금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 12: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주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여 그 구원 운동이 커졌고 자기 자신의 구원이 잘 이루어졌으므로 복이 있다. 다니엘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다.
. 12: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등불을 켜고 깨어 있으며, 집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준 종은 자기 인격(자격)을 잘 만들었으므로 주님께서 천국의 모든 것을 그 만큼 더 많이 맡길 것이다. 누가복음 19:12-19에 열므나 남긴 자에게는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게 하고 다섯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했다.
. 12:45-46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님의 재림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여 종을 때리며, 성도를 핍박하고, 잘 먹을 곳만 찾아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세상에 도취한 종은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주님이 재림하셔서 엄히 책망하고, 신실치 않은 자의 받는 율에 처하게 될 것이다.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은 불신자인 경우에는 지옥의 형벌이요 신자인 경우에는 고린도전서 3:15의 불 가운데서 나온 구원일 것이다.
. 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은 종은 그만큼 벌이 크고, 알지 못하고 주인의 뜻을 어긴 종은 벌을 적게 받는다.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 양잿물은 알지 못하고 먹어도 죽는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어긴 자는 매를 조금 맞고, 알고도 주님의 뜻을 어긴 자는 매를 더 많이 맞는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주어 다 알게 해주셨고, 선지자들과 참된 종들을 부지런히 보내어 가르쳐 주셨으나 스스로 배우지 않고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여 바로 행하지 못했노라고 하는 핑계는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님은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찾고, 많이 맡긴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하신다. 하나님께로부터 재산이나 권세나 능력이나 힘을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바쳐야 되고, 재능이나 실력이나 직분이나 일감을 많이 받은 자는 많은 열매를 맺혀 드려야 한다. 다른 사람을 표준하지 말고 자기 실력을 다 기울여서 죽도록 충성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무서운 책망을 받는다.
七. 불을 땅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 12:49-50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불을 땅에 던지러 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렘5:14, 23:29). 불을 성령이라고 하면 안 된다. 마태복음 3:11에 \"그(예수)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라고 했다. 만일 불을 성령이라고 하면 마태복음3:11은 성령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불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해석하여야만 성령과 말씀으로 세례를 준다는 합당한 뜻이 된다.
불을 던지는 것은 예수께서 구속 성취의 진리를 전파하며 실현하는 것이다. 불이 붙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진리를 성취하시고, 그 구속의 말씀을 전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불로 인하여 죄를 씻어 정결케 해나간다. 불은 정결케 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말라기 3:2에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 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었으므로 구원의 말씀(구원의 길)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때이다. 그러므로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때이다. 따라서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원의 도(구원의 말씀)가 이미 성취되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내가 그 이상 무엇을 더 원할 것이 있겠느냐 하는 뜻이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예수님이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으로써 구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으로 인류의 구속을 성취하실 책임이 예수께 있으므로 나의 받을 세례라고 하셨다.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십자가의 구속을 성취하기까지의 예수님의 심적 고난(마26:37-38)과 육체의 고난을 가리킨다.
. 12:51-53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불이 땅에 던져짐과 같이 그 구속의 진리(말씀)가 들어가는 곳마다 분쟁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구속의 말씀을 믿고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마귀를 따라가며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비가 아들과, 어미가 딸과,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분쟁하게 된다. 한 식구 중에도 진리를 받아 믿는 자는 마귀를 섬기며 죄짓던 생활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하고, 믿지 않는 자는 세상과 마귀를 따라가고자 하기 때문에 의견 충돌과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도가 주일날 세상일을 하지 않고, 또 조상에게 제사 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과 충돌이 일어나며, 말씀이 뜨겁게 역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가면, 못 따라가게 하려고 막는 사람들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난다.
믿는 자에게 말씀이 뜨겁고 맹렬하게 역사하므로 이제는 말씀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자가 일어나서 막으므로 그들과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분쟁이 일어날 때에 진리를 양보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이기게 해 주신다. 내가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말씀을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나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고 그 사람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말씀만 따라가야 마침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시고 회개시킬 자들은 회개시켜 믿게 해주신다. 그때에 화평이 온다. 이것이 승리의 화평이다.
八. 시대를 분별하라(54-56)
. 12:54-56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붐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유대 나라는 서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소나기가 오고, 남풍이 불면 더워진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천기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분별치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책망 하셨다. 그 시대에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으로 와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고,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알려 주었다. 오늘날에는 마태복음 24장이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말세의 징조가 많이 나타난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운 때인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잘 해야 한다.
九. 범죄와 회개의 과정(57-59)
. 12: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유대인들이 옳은 것을 판단하지 못함을 예수님이 책망하셨다. 성도가 범사에 성경 말씀대로 하고, 선한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따라가며 옳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하여 떠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악을 행하는 것이다(마5:37).
. 12: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형제와 송사할 일이 있을 때에도 할 수 있는 대로 화목하여야 한다. 송사하다가 두 집이 모두 망한 일이 많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끼리는 불신 법정에 가서 송사하면 안 된다(고전6:4-7).
믿지 않는 사람과는 부득이한 경우에 송사할 수도 있으나 할 수 있는 데까지 화목하는 것이 좋다. 또 이 말씀에 대한 신령한 뜻은 범죄하려는 과정에서 죄짓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 있다. 즉 \'송사하는 자\'는 양심을 가리킨다. 로마서 2:15에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흑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였다. 죄를 지으려고 할 때에 양심이 송사(반대)한다.
법관에게 갈 때 아직 죄는 짓지 아니할지라도 죄를 지으려는 길로 걸어갈 때에 양심이 가책을 하여 송사한다. 그리하여 죄를 지으려고 할 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게 된다. 그 때에 급히 사화(私和)하고 그만 두면 평안할 것인데 양심의 송사를 무시하고 끝까지 죄 짓는 길로 걸어가면 그 송사하는 자가 재판관에게 넘겨준다.
재판장은 율법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2:48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했다(시51:4 참조).
관속은 죄의 세력을 가리킨다. 시편 32:3-4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죄의 세력에 강하게 눌린 상태를 말한 것이다.
옥에 가둘까 \'옥\'은 영적 흑암을 가리킨다. 이사야 42:22에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라고 하였다. 성도가 범죄하면 영적 흑암을 만나 고통을 당하며 영의 자유가 없어진다. 이것이 감옥이다. 죄를 짓기 전에는 율법(말씀)이 가만히 놓아두지만 일단 죄를 짓게 되면 율법이 \"너는 죄인이다\" 하고 정죄(定罪)한다. 죄를 짓기 전에는 율법이 아무 힘도 없어 보이나 죄지은 사람에게는 율법이 매우 큰 권세로 정죄하여 고통을 준다(계16:8-11 참조).
세상의 법도 그러하다. 법이 죄를 짓지 않은 사람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으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 법이 큰 힘으로 정죄하여 징벌한다. 그와 같이 성도가 죄를 지으면 율법(말씀)이 정죄하여 죄의 세력에게 내어 준다. 일단 율법의 정죄를 받으면 죄악의 세력에 눌려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죄의 종이 되면 영적 흑암을 만나고 영적 자유를 잃게 된다.
. 12:59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호리의 헬라 원어 (려톤)은 헬라 동전의 명칭으로 로마 화폐 고드란트에 해당하는 작은 단위의 화폐이다. 범죄하여 영적 흑암과 고통에 빠진 자는 호리라도 남김없이 모두 갚아야 그 감옥에서 나온다.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는다\'는 것은 조그마한 죄라도 남김없이 철저히 회개하는 것을 가리킨다.
죄를 범하여 영적 흑암을 만났을 때 회개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회개를 말로만 해서는 안되고 죄를 다 갚도록 해야 한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회개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자기가 죄 지은 것만큼 통회를 해야 한다. 죄 지은 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죄 값을 갚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면 죄의 영향력이 호리라도 남김없이 완전히 빠져나가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풍랑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1:12) 하며 회개한 것과 같다.
가령 남의 소를 도적질하여 잡아먹고 나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그 다음에 또 한 마리 도적질하여 잡아먹고, 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는 식의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남의 소를 도적질하여 잡아먹은 사람이 호리도 남김없이 회개하려면 그 죄를 깨닫고 죄지은 것을 원통히 생각하여 가능한 한 그 소의 값을 주인에게다 갚아 주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소의 값을 갚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죄 값으로 어떠한 형벌이라도 달게 받으려는 각오를 하고 죄를 원통히 여겨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다윗은 한번 범죄한 것 때문에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라고 하였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한 죄를 원통히 생각하여 침상이 뜨고 요가 젖도록 회개를 한 것이다. 마태복음 18:24-27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빛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게 하라 한대\" 라고 하였다. 일만 달란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소유를 다 팔아서 갚으라는 것이다.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고 다 팔아서 갚으려는 결심을 가지고 나갈 때에 그 주인이 불쌍히 여겨서 탕감하여 주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빛진 것\'은 죄 지은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아야 마땅하다. 호리라도 남김없는 회개를 하려면 모든 것을 다 희생할 각오를 하여야 한다. 이것이 참 회개이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은 또 다시 같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 실수하여 죄를 범하였더라도 호리도 남김없이 다 갚고 죄에서 완전히 돌이킨 사람은 영적 흑암과 죄악의 권세에서 벗어져 나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뼈가 쇠하고 진액이 마르도록 힘을 써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다(시32:3-5 참조).
호리도 남김이 없이 회개하면 죄를 짓지 않았을 때와 같이 영이 다시 자유를 누리고 생명을 얻어 죄의 권세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남을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호리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를 하였다면 그 원수를 만나도 마음에서 진정한 사랑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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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회개 재촉
(대 지)
一. 회개를 재촉하심(1-9)
二.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10-17)
三. 겨자씨와 누룩 비유(18-21)
四.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22-30)
五. 이스라엘 멸망을 애통해 하심(31-35)
(본문강해)
一. 회개를 재촉하심(1-9)
. 13:1-3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하려고 제물을 잡는 중에, 빌라도가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죽여 그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이 일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은 자기 죄 값으로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정치가들은 죄목을 붙여서 숙청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망한다고 하셨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다. 다른 갈릴리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같은 죄인이다. 따라서 죄 값으로 보면, 모든 갈릴리 사람들이 그 사람들처럼 죽어야 마땅하지만, 회개하고 바로 설 기회를 주기 위하여 그 몇 사람만 죽임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가끔 몇 사람을 악한 자들의 손에 붙여 죽임을 당하게 하여 다른 사람을 깨우쳐 회개시켜 바로 서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각자가 자신의 죄를 찾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 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덞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실로암에서 우연히 망대가 무너져서 열 여덟 사람이 치어 죽었다. 그 사람들이 우연한 사고로 애매히 죽은 것 같으나, 사실은 자기들의 죄 값으로 죽은 것이다. 또 살아있는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이 죽은 열 여덟 사람들보다 죄가 없거나 적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똑같은 죄인이다. 단지 그들에게 회개 할 기회를 주어 바로 서게 하기 위하여 죽음을 연기하신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와 같이 망한다.
오늘날 악한 정치가에게 숙청 받아 죽은 사람들이나 우연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죄 값으로 죽는 줄 알아야 되고, 살아 남아 있는 자들도 모두 그들과 같은 죄인인 줄 알고 회개하여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와 같이 망한다. 어느 세대에나 죄가 가득 차면 악한 정치가가 나와서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그 때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악한 정치가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또 우연한 사고로 사람들이 죽을 때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도 각자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 죄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관악한 행동이다. 죄를 타인에게 전가시킨다고 해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예수께서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셨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수나 목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얻기 위해 심는다. 만일,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예수님이 저주하셨다(마21:18-19 ; 막 11:12-14). 특별히 무화과나무는 유대 종교를 상징한다. 유대 종교가 의식과 제도와 외부적으로는 굉장히 훌륭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았으나, 의와 인과 신을 버려 열매가 없었으므로 저주를 받았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훌륭한 의식이나 거창한 종교 사업이 아니고, 신령한 신앙의 열매이다. 양적으로 크게 부흥하고, 의식이 훌륭해도 영적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찍어 내버리신다. 성도가 무슨 열매를 맺혀야 하는가?
①회개의 열매를 맺혀야 한다(마3:8).
②의와 진실과 거룩(엡4:24)과 지식의 열매를 맺혀야 한다(골3:10).
③성령의 열매를 맺혀야 한다(갈5:22-23).
. 13: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주인이 삼 년 동안 열매를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삼\'은 하나님의 숫자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삼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교훈하셨다. 삼 년간을 기다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권면하실 만큼 다 권면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권면하고 은혜 베푸는 기한이 있다. 그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하여야 한다.
찍어버리라 예정한 기간까지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다가 열매 맺지 않으면 찍어 불에 던지신다. 마태복음 3:10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했다. 한국에도 전쟁의 위험성이 있고, 미국은 쿠바에, 중동이나 아프리카에도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이러한 것이 다 하나님께서 도끼를 예비해 두신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나라들도 하나님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도끼를 예비해 놓았다. 강대국들이 지구를 몇 십 번 멸망시킬 원자탄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도끼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세속화되고, 신신학과 그릇된 신비주의로 기울어져 진리에서 떠나고 있다. 참으로 이 때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끼를 들어 찍어버릴 날이 가까이 온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 13:8-9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열매 맺기를 기다리신다는 뜻이다. \'1년\'은 열매 맺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기간이요,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성도가 회개하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시는 마지막 기회이다. 이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과 기회를 단 한번 주신 마지막 기회인 줄 알고 힘써 열매를 맺도록 해야겠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자기 영이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 영이 자라나야 열매를 맺힌다.
二.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10-17)
. 13:10-13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 팔 년 동안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18년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는 여인을 안수하여 고쳐 주셨다.
안수 주의 손이 그 사람과 접촉하기 위하여 안수하였다. 주님이 가까이 찾아와서 접촉하면 큰 역사가 일어난다. 귀신은 언제나 사람에게 영육간에 해독을 주고 괴롭게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상처를 고쳐 주시며 생명을 구원해 주신다.
. 13: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회당장은 안식일에 대한 계명의 외부적인 면만 알고 그 계명의 참 뜻은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친 것을 보고 분내며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금했다.
. 13:15-16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진리를 바로 가르쳐 주셨다. \"사람이 안식일에 자기 소나 나귀도 마구에서 끌어내어 물을 먹이 거든, 하물며 십 팔 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아브라함의 딸을 고친 일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일이 되겠는가\"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회당장은 안식일을 껍데기로만 지켰으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근본 정신을 바로 가르쳐 주셨다. 안식일의 근본 정신은 무엇인가?
①영적 안식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안식을 주시려고 안식일(주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단지 그 규례를 지키는 것만으로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영적 안식을 누리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다. 주일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안식을 받아 한 주간을 그 안식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②영적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이다.
한 주일 동안 죄악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시달리고 얽매여 심령이 뒤숭숭한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주일날 하나님께 나와 예배 드릴 때에 성령께서 같이 하셔서 그러한 데서 벗어져 나와 영이 해방과 자유를 얻고 새 힘을 얻어 안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참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자기 자신이 먼저 영적 자유와 생명을 얻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적 해방과 자유와 생명을 주기 위하여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단지 안식일의 외부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만으로 안식일을 잘 지키는 줄로 잘못 알았으므로 귀신 들린 자를 고쳐서 영적 자유와 해방을 주는 일을 안식일 범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아브라함의 딸 육신의 혈통에 의하여 아브라함의 딸이 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졌으므로 아브라함의 딸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딸이 된 것이다.
.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고, 또 예수께서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실 때에 반대하던 자들은 부끄러워했고, 순진한 무리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과 말씀을 받아 기뻐하였다.
三. 겨자씨와 누룩 비유(18-21)
. 13: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하나님의 나라 여기서는 영원한 하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지상 교회를 가리킨다.
. 13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겨자씨는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이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채전(菜田)에 갖다 심으면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가 깃들일 만큼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 운동도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사람들에게서 작게 시작되지만 그 속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점점 확장되고 창성하여 많은 생명들이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다.
공중의 새들은 마귀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말한다. 교회가 커지고 발전하면 교회를 의지하고 살려는 세상 사람들이 많아진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빛을 좋아하여 많이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 있는 진리의 말씀만 전하면 그 복음 자체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싹이 트고 자라나서 큰 나무와 같이 된다. 그러므로 생명 있는 말씀을 계속해서 전파하면 반드시 큰 성공이 있다.
. 13:20-21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를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누룩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① 누룩은 가루를 부풀게 하므로 복음의 팽창력이라고 하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과 같이 복음이 들어가면 모든 사람에게 속히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② 누룩을 이단 사상이나 외식, 죄악의 요소, 잘못된 교훈이라고 하는 해석이다(눅12:1 ; 고전5:8 ; 갈5:9).
본 장 초두에서부터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했고(1-5절),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릴 것을 말한 다음에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말한 것을 보면 누룩이 교회의 부패상태를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교회의 부패한 면과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해 오다가 잘되는 면을 말했을 리가 없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오늘날 교회가 많이 세속화되어 신신학 사상과 해방신학과 신비주의와 세속화 운동이 많이 나왔으니 이러한 것들이 다 누룩적인 요소들이다.
여자는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킨다. 가루는 빵을 만들어 먹는 밀가루와 같은 양식이다. 서말 3수는 하나님의 숫자이니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누룩과 같은 인본주의나 잘못된 사상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섞여 들어오면 얼마 안가서 교회 전체가 다 부패하게 된다. 미국 신학계에도 처음에는 유니온 신학교에 \'찰스 A.브릭스\' 라고 하는 신신학자(新神學者) 한 사람이 들어와(1891년) 신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얼마 안되어 미국 교회 전반에 신신학적인 교훈이 퍼졌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누룩적인 요소를 용납하면 안 된다.
四.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22-30)
. 13:22-23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각 성과 각 촌에서 가르치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게 되었다. 그 때에 어떤 자가 예수님께 구원을 얻는 자의 수에 대해서 질문했다.
.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시며 구원받는 무리가 적을 것을 말씀하셨다.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요 그 길은 협착한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은 첫째, 예수 믿는 자는 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 자요, 믿지 않는 자는 넓은 문으로 들어간 자이다. 둘째, 믿는 자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자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요 예수를 믿어도 진리를 양보하고 성경 말씀을 어기면서 믿는 자는 넓은 길로 걸어가는 자이다. 이러한 자는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해 받는 구원을 얻는다(고전3:15).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했다(딤후4:7-8).
바울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고 믿음을 지킨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간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 가서 면류관을 받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힘이 들지만 생명의 길이요 주께서 동행하는 길이다. 그러나 넓은 문은 들어가기도 쉽고 걸어가기도 편하지만 주께서 동행하지 않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는 길이다. 누구나 잘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많으나 말씀대로 순종하며 걸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은 것이다.
. 13: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대환난이 오면 구원의 문이 닫힌다. 또한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이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구원의 문은 닫혀 다시는 이 세상에서 더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없이 된다. 구원의 문이 닫히면 아무리 들어가기를 구해도 얻지 못한다.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2:8-9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고 했다. 예수를 믿어도 성경을 내어놓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문 닫히기 전에 이 세상에서 말씀을 순종하여 구원을 잘 이루어야 한다. 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문이 닫혀서 성경 말씀을 배우려야 배울 수 없고, 예배를 드리려야 드릴 수 없으며, 성경도 읽을 수 없는 국가나 사회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문이 아직 열려 있을 때에 우리가 성경을 부지런히 배우고, 전도하며 한 말씀이라도 더 순종하여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겠다.
. 13:26-27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사람들이 주 앞에서 먹고 마신 것, 길거리에서 주께 배운 것 등을 내세워 인정받으려 하나 예수님은 그들을 부인했다. 그 이유는 성경 말씀을 떠나 행악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것이 악이요 성경을 어긴 것이 죄악이다.
. 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선지자들과 그 신앙 노선을 따라간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믿지 않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쫓겨나 지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자기 조상들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 있으나, 자신은 지옥으로 쫓겨난 것을 볼 때에 더욱 슬프고 원통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은 조상들이 잘 믿던 것을 자랑하면서, 자기는 믿지 않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참하게 된 것이다.
. 13:29-30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동서남북 전 세계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나중에 믿은 사람도 성경 말씀을 잘 배우고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면 먼저 된다. 그러나 먼저 믿은 사람도 성경대로 행하지 못한 사람은 자라나지 못하므로 나중 된다. 그러므로 먼저 믿었다, 어려서부터 믿었다, 무슨 직분을 가졌다 자랑하지 말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五. 이스라엘 멸망을 애통해 하심(31-35)
. 13:31-32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를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줄 알고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여기를 떠나라고 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으나 예수님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저 여우에게 이르되 여우는 헤롯왕을 가리킨다. 헤롯이 여우와 같이 간교하게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여우라고 하였다.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좇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예수님이 오늘에 할 일(현재의 할 일)을 하고, 내일에 할 일(다음에 할 일)을 하신 후 제 3일에는 부활하여 완전해지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에 할 일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는 일이요, 내일에 할 일(다음에 할 일)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헤롯이 아무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오늘에 할 일인 마귀의 세력을 멸하고, 사람들의 심령의 병을 고쳐주며,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하다가 내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제 3일에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시는 길을 걸어가신다는 뜻이다.
우리도 오늘에 할 일을 다하고 또 십자가에 죽을 것을 각오하고 나아가야 한다. 죽음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과 구원 성취의 소망을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고, 마귀를 완전히 이길 수 없다.
.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오늘은 현재에 할 일(귀신 쫓아내며 병 고치는 일), 내일은 조금 후에 할 일(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을 이루는 일), 모레는 제 3일에 부활할 일을 가리킨다. 많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죽은 것 같이 예수님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과 구속 운동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을 말씀하셨다.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심령의 병을 고치고,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여 구속을 완성하는 일은 예수님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리도 오늘과 내일의 자기 할 일을 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13:34-3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 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번 권면하였으나 그들이 원치 아니하고 도리어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핍박하고 마침내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것이다. 그 죄값으로 예루살렘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고를 여러 번 받고도 회개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하여 버린 바 되고 만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망하고, 오래 고생하는 동안에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고 기다리게 된다. 그 때에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쫄딱 망한 자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주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우러러보면 마침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해 주었으나, 왕이 순종치 않다가 마침내 징계를 받아 집에서 쫓겨나 짐승과 같이 지내면서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은 새발톱과 같이 되었다. 그후 일곱 때를 지나서 회개하며 하나님을 우러러보았다. 그때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단4:28-34). 그러므로 언제나 회개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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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장 제자 자격
(대 지)
一. 고창병을 고지심(1-6)
二. 낮은 자리에 앉으라(7-11)
三. 갚을 것이 없는 자를 대접하라(12-14)
四. 천국 잔치에 참여하라(15-24)
五. 제자될 자의 각오(25-35)
(본문강해)
一. 고창병을 고치심(1-6)
. 14: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 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바리새인의 한 두령은 바리새인 중 존경받을 만한 지도급에 있는 인물인 듯하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그 사람의 초청을 받아 음식을 잡수시러 그 집에 들어가셨다. 바리새인 중에도 예수님을 대접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잘못된 점을 찾아 책잡으려고 엿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일에 개의치 않으시고 모든 것을 바로 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 14:2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고창병 복부에 물이 괴어 붓는 병으로 신장과 간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이 고창병은 당시의 의술로는 거의 불치의 병이었다. 이 고창병 든 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 온 것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여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14:3-4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처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금하였다(13:14). 그러므로 그 잘못된 점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눌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잠잠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 이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불쌍히 여건 고쳐 주신 것뿐만이 아니라, 안식일에 대한 참된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심령의 병을 고쳐 온전케 해 주시며 마귀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시고, 영적 안식을 주시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마귀와 질병에 눌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안식일에 고쳐 주시는 것은 지극히 선하고 당연한 일이다.
. 14:5-6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저희가 이에 대하여 대답지 못하니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건져내는 일을 하면서도 성도가 병마의 구덩이나 마귀의 올무에 빠진 것을 건져내는 일은 금하였으니 모순된 일이요, 물질 중심이요, 소탐대실(小貪大失)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이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모순된 일에 대하여는 언제나 대답하지 못하는 법이다.
二. 낮은 자리에 앉으라(7-11)
. 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상좌 택함을 보시고 예수님과 함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잔치의 상석에 앉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마23:6-7). 예수께서 그것을 보시고 다음 구절(8-10절)의 교훈을 하셨다.
.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혼인 잔치는 성경에서 친국 잔치로 자주 비유된다(마22:2-14 ; 요2:1-11 ; 마25:1-13). 성도가 믿음으로 살면 혼인 잔치집에 있는 것처럼 기쁘고 즐겁다. 이방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려야 큰 자인 줄로 알고 있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마20:25-27).
. 14:9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자기를 높여 상석에 앉아 있다가 주인이 와서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면 부끄러워하면서 말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자기를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신다는 뜻이다.
. 14: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성도가 어디서나 겸손하여 낮은 자리에 처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여 주시며 그 때에 영광을 얻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법이다.
.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는 반드시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고 믿음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높여 주신다. 마태복음 18: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다. 야고보서 1:9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믿음 지키느라고 환난과 핍박을 받아 낮아진 자는 영적으로 벌써 높아진 자요 앞으로 하나님이 반드시 높여 주신다는 뜻이다.
열왕기하 4:13에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 여인은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라고 했다. 수넴여인이 구하기만 하면 엘리사의 부탁으로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그것을 거절하고 수넴여인은 백성 중에 거하면서 믿음 지키는 것을 더 좋게 여겼다. 자기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사람 앞에 높임만 받으려고 하는 자는 외식하는 자요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자이다(눅16:15).
三. 갚을 것이 없는 자를 대접하라(12-14)
.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어떤 사람을 청하여 대접할 때에 다시 자기를 청하여 갚을 만한 자는 청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다시 청함을 받아 갚음을 받게 되면 그가 천국에서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이나 의를 행하고 사람에게 갚음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마태복음 6:3에도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라고 했다.
. 14:13-14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잔치할 때에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여 대접하면 그 사람들은 갚을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선을 베풀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갚아 주신다. 이와 같은 선과 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정한 것이요, 복을 천국에 쌓아두는 일이다.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성도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이다(롬3:23-26).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이 부활하게 되고, 그 때에 선을 행한 성도는 부활체의 영광이 크고 주님이 그에게 많은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는 뜻이다.
四. 천국 잔치에 참여하라(15-24)
.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던 자가 하늘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으면 얼마나 복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나서 하늘 나라에서 떡 먹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예수께서 천국 잔치에 대한 비유로 교훈하셨다.
큰 잔치를 배설하고 천국 운동, 즉 복음 운동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이 잔치집(복음 운동)에 많은 사람이 청함을 받았다.
. 14:17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마태복음 22:4에는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총을 준비해 놓고, 사람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 구속의 잔치에 참여하라고 청한 것이다.
.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초청받은 자가 한결같이 가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항상 잔치 집이며, 기쁘고 즐거운 곳이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와서 구속의 은총에 참22여하면 신령한 떡을 먹고 풍성한 은혜에 참여하여 만족하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잔치집에 가지 않고 일치하게 사양하였는가?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이 사람은 물질 문제에 얽매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물질이나 사업 때문에 그 귀한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오늘날 직장이나 돈벌이 때문에 주일을 범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들은 어리석은 자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는 자이다.
. 14:19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소 다섯 겨리 한 겨리에 두 마리씩이므로 다섯 겨리는 모두 열 마리이다. 10수는 인간의 만수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한 여러 가지 사업을 많이 벌여놓고 분주하게 사는 사람이다. 많은 사업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 사업들로 인하여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서는 성공한 자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 사업 때문에 신령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과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을 첫째로 하면서 그 다음에 사업도 하고 다른 일도 해야 한다. 사업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며 마귀에게 속은 자이다.
. 14:20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이 사람은 장가들었으므로 가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정당하게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정욕주의로 기울어져서 아내의 사랑에 빠지고(삼손처럼), 남편에게 얽매여서 믿는 일을 못하였다. 고린도전서 7:29에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라고 하였다. 남편이나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잔치집에 가는 것을 중지하면 어리석은 자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을 방해하는 남편이나 아내는 사단의 사자요 절도요 강도이다. 그 절도나 강도는 뒤에 놓고 예수님만 힘있게 따라가면 나중에는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37-39에 보면 노아 시대 사람들이 시집가며 장가들다가 다 멸망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정욕주의로 살며, 음란 방탕하다가 멸망한 것을 가리킨다. 말세에도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처음 청함 받은 사람이 모두 거절하고 오지 않았으므로 주인이 노하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자들이요,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 귀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감사하여 즉시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다. 친국 운동에는 이렇게 비천한 자와 아무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많이 참여한다.
. 14:22-23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을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아직도 혼인 잔치에 자리가 남았으므로 주인이 종들에게 길과 산을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 자리를 채우라고 하였다. 복음 운동은 마침내 이방 황무지와 해변가와 산골로 나가게 되고, 이리와 타조 같은 자들을 강권하여 청하여 들이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자들이 천국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먼저 청함을 받은 기존 종교가들이나 지혜 있고 통달한 자들은 참여하지 못하였다.
五. 제자 될 자의 각오(25-35)
. 14:25-27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 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께서는 허다한 무리가 따를 때에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았고, 그 사람들을 잘 붙들어서 자신의 어떤 세력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고난의 길인가를 알려 주었다. 오늘날 교역자들이 교인을 많이 모으기 위해 교인들에게 아부하고 육신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교인들을 바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자들은 교인들을 자기의 이용물로 삼으려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길은
첫째,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 미워하라는 것은 예수님 따라가는 일을 방해할 때에만 미워하고 끊어 버리라는 것이고, 방해하지 않는데도 미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가족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예수님은 모친이 방해할 때에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했고, 또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왔을 때에 나가 보지도 않고 형제로 여기지 않았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나 자기의 목숨이라도 예수님 따라가는 데 걸림이 되면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 만일 그것들을 미워하지 못하고 인정에 얽매여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 따라가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귀의 종인 줄 알고 가차없이 미워하고 끊어 버리고 예수님과 그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가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고 순종하며 형제에 대한 도리를 바로 해야 한다. 대개 가족 때문에 인정에 끌려서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것은 자기 심령을 망하게 하고, 가족도 망하게 하는 길이다. 그러나 성도가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면 자기 심령이 살고 가족도 하나님이 참되도록 축복해 주신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야 한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고, 부활의 능력을 입을 수 없다(빌3:10-11). 그러므로 성도가 고난을 각오하고 그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 핍박을 이기면서 말씀을 따라가야 생명이 살고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져서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 14:29-30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세째,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33절). 망대는 적의 어떤 동태를 관측하기 위해 높이 쌓아올린 건축물이다. 예수 믿는 일은 망대를 세우는 일과 같다. 망대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요, 쌓는 재료는 말씀이다. 우리의 영이 말씀대로 점점 만들어져 나가는 것은 망대가 건축되어 올라가는 것과 같다. 망대가 높아진 것만큼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좀더 먼 곳까지 밝히 볼 수 있다.
초 신자는 처음에 말씀의 깨달음도 미약하고,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에 대한 분별력도 부족하나, 말씀을 순종하여 점점 영이 자라나면 그 모든 것을 밝히 분별해 나갈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11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했다. 그러므로 망대를 세워 나가는 일은 성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망대를 세우고자 할 때에 먼저 준공하기까지의 비용을 예산해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정도와 실력에 맞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높고 크게만 세우고자 하여 욕심으로 시작하면 실력이 모자라 망대의 기초만 쌓고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조소와 비방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들도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적 실력이 망대를 끝까지 쌓아 올라가는데 족할는지 부족할는지 헤아려 보면 누구나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때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아야 망대를 세워 나갈 수 있다.
고린도후서 12:9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이런 자는 끝까지 망대를 쌓아 성공할 것이다.
. 14:31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임금이 전쟁하러 나가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대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이 자신에게 있는지 먼저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무 대책 없이 전쟁을 하게 되면 실패할 것은 정한 이치이다. 일본이 세계 제22차 대전 때 이렇게 예산을 세우지 않고 무조건 미국과 싸우다가 패전하고 말았다. 우리도 바로 헤아려 보아야 한다.
자신이 현재의 영적 실력이 앞으로 오는 대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겠는지, 모든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지 헤아려 보고, 부족하고 약한 것을 깨달아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싸우면 원수가 이만이 아니라 이천만이 와도 다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이길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길은 자기의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 마귀의 시험이 우리에게 올 때 우리의 실력보다 배나 큰 시험이 온다는 뜻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실력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그 때에 이길 수 없다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대책은 자기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 그 때에 자기의 실력이 배나 커지게 된다. 그 다음에는 그 능력보다 또 배나 더 큰 시험이 온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말씀대로 싸우면 승리하게 된다. 그러면 그 승리한 능력은 자기의 힘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배나 더 큰 시험을 통해서 성도의 영적 실력을 길러 나가는 것이다.
. 14:32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화친을 청할지니라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실 것과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실패할 자이니 마귀와 화친하고 그만 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어지면 담대히 나가서 하나님의 만능으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아무리 나의 힘이 약해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만능이 믿어지면 그 말씀대로 순종해 나갈 때 반드시 승리하고 성공한다.
.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가야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받게 되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 자기의 것을 버린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온다(고후12:9). 자기의 약하고 부족한 것을 깨달아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물게 된다. 우리는 망대를 날마다 점점 높이 쌓아 올라가고,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져 그 능력으로 마귀를 날마다 이기고, 모든 대적하는 세력들을 이겨 나가야 한다.
. 14:34-35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소금의 생명은 짠맛에 있다. 그 맛을 잃지 않았을 때는 아주 요긴하고 귀한 것이나 그 맛을 잃으면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그와 같이 성도가 맛있는 소금이 되어야겠다. 맛있는 소금이란 십자가를 지고(27절),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33절), 말씀을 따라가며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반대로 말씀을 양보하고 믿음을 잘 지키지 않는 성도는 맛 잃은 소금이다. 이 맛 잃은 소금은 땅에도, 거름에도 아무 쓸데가 없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사람들에게도 밟히게 된다(마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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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장 탕자 비유
(대 지)
一. 잃은 양 비유(1-7)
二. 드라크마 비유(8-10)
三. 탕자 비유(11-31)
(본문장해)
一. 잃은 양 비유(1-7)
. 15:1-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과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비방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을 의롭다고 믿고, 세리나 죄인들을 정죄하고 멸시하며 멀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마9:13).
. 15:3-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비유를 들어 교훈하셨는데, 그 첫번 비유는 잃은 양의 비유이다. 목자가 양 일 백 마리를 치다가 그 중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아흔 아흡 마리를 들에 두고 들에 내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0:1에 양의 우리에 양을 둔다고 하였다. 아마 들에 있는 양을 우리에 두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짐승이 와서 해하기도 하고 양들이 흩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은 7절에 보면 의인 아흔 아홉이라고 했으므로 예수를 잘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참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사랑하여 유모가 자기 자녀들을 기름과 같이 하였다고 하였다(살전2:7).
. 15:5-7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흡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즐거워하면서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는 그 양을 찾기 위해 수고한 모든 수고와 고난을 잊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잃은 양은 ① 아직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택한 백성이다. ② 예수를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이다. ③ 예수를 믿고 교회에 잘 나오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생활이 하나님 말씀에서 떠난 성도들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벗된 생활을 할 때는 잃은 양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고, 당신의 품안으로, 진리 안으로 돌아오도록 애타게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사29:13 참조).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과, 순종함에 부족한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둘째,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이사야 1:4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라고 하였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월삭과 안식일을 잘 지켰으나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다.
셋째,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한 것도 회개해야 한다. 사무엘상 12:23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기도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인 줄 알고 회개하여야 한다.
넷째, 무엇이나 잘못된 책임을 자기가 지지 않고 남에게 전가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원망하기를 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을 때에 광야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고 모세를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멸망하였다.
다섯째, 그리스도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1:21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다. 언제나 성도는 그리스도로 사는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이러한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께 돌아가면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은 것처럼 기뻐하시고 우리를 어깨에 메기도 하시고 주님 품안에 품어서 안식을 누리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은 피난처요 안식처요 기쁘고 즐거운 세계이다. 예수님을 떠나 자기2 마음대로 다닐 때는 구덩이에 빠지고, 낭떠러지에 떨어지며 가시에 살이 찢기고 이리나 짐승들에게 쫓겨 몸서리치며 죽을 고생을 하였으나 회개하고 예수께 돌아오면 예수님의 품에 안기어 평안히 안식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 돌아온 양은 그리스도께서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
二. 드라크마 비유(8-10)
. 15: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의 두번째 비유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이다.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전의 명칭이며, 한 데나리온(로마의 화폐)에 해당되고 한 드라크마는 장정이 하루 일한 품삯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드라크마는 중생한 영의 역사를 가리킨다. 드라크마를 잃었다는 것은 성도가 중생한 영의 역사를 잃은 것을 가리킨다. \'등불\'은 말씀의 빛을 말한다. 잠언 6:23에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라고 하였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으로 사는 영적 새 생명의 역사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비추어서 찾아야 한다.
집을 쓸며는 회개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음속에 더러운 것을 회개하여 다 쓸어 버려야 한다. 더러운 죄로 말미암아 영의 세계가 가리워져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었으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드라크마가 보이지 않는다. 먼지를 쓸어내듯 더러운 죄를 회개 할 때 드라크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에 있는 더러운 죄를 내어버리고 언제나 중생한 영을 찾아 그 영의 역사로 새 생명길을 걸어가야 한다.
. 15: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으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어 벗과 이웃을 불러모아 함께 즐거워한다. 드라크마를 잃었을 때는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괴롭기만 하고, 은혜가 떨어져 모든 것이 귀찮게 된다. 그러나 회개하여 중생한 영의 세계를 다시 찾고 생명력이 있으면 너무 기쁘고 즐거워 찬송이 저절로 나오고 감사가 나온다. 그때 다른 성도와 함께 즐거워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즐거운 세계를 전해 주려고 한다.
.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한 이유는 드라크마를 찾은 사람이 기뻐한 것을 중심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드라크마를 찾은 사람이 하나님 앞과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한없이 기쁨을 누리게 된다.
三. 탕자 비유(11-32)
. 15:11-12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내게 돌아올 재산의 분깃을 내게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작은 아들이 자기 마음대로 재산을 쓰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소욕대로 해보려는 심사(心思)였다. 아버지는 그 아들의 분깃을 나눠주어 그 소원대로 하게 하였다.
각각 나눠 주었더니 작은아들에게 뿐 아니라 큰아들의 분깃도 정해 놓았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와 같이 살며, 그 재산을 늘려서 장래에 그것들을 차지하기로 하였다.
. 15: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작은아들은 며칠이 못되어 그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갔다. 그가 먼 나라로 간 것은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으로 가서 자기 마음대로 돈을 쓰며 마음대로 놀아 보려고 한 것이다.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생활은 허랑 방탕할 수밖에 없고 재산을 다 허비할 수밖에 없다.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 제 마음대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 굶주림을 당하고 돼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 15:14 다 없이 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다 없이 한 후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허랑 방탕하는 자는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1:5-6에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고 했다.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재산을 탕진해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 먹을 것이 없으므로 곤궁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그가 방탕할 때에 사귀던 친구들은 한 사람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저자의 선친이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서 네게 가르쳐 준 적이 있다. \"酒食累弟는 千人有요 急難朋友는 一人無라.\" 이것은 술과 음식을 먹을 때 친구는 천명이나 되나 급하고 어려운 때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 15:15-16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큰 흉년이 들어 모든 백성이 어렵게 되고 누구하나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는 어떤 집에 가서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이 이제는 돼지와 같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굶주리게 되어 이제는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부잣집 아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가!
쥐엄 열매의 헬라 원어 (케라티온)은 팔레스틴에서 나는 열매의 이름인데, 그 나무 높이는 10m 정도이고, 그 열매의 크기는 25㎝나 되며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돼지를 치며 쥐엄 열매를 먹은 것은 무엇을 비유하는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 정욕대로 사는 자는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이 살 수 없는 들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먹을 수 없는 것(돼지 사료)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 지키지 않고 얻은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도 쥐엄 열매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고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안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아버지의 집에서 신령한 생활을 하던 성도가 세상에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받으나 껍데기만 먹게 되므로 배가 부르지 않고 만족이 없다. 성경을 보아도 생명의 역사가 없고, 기도를 하여도 형식뿐이고 사는 것이 짐승과 같다. 예레미야 17:6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했다.
.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에 스스로 돌이켜 탕자가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하며, 마치 해방된 기쁨으로 잠깐 동안 살았으나, 얼마 못 가서 비참한 가운데 빠진 후에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이제는 아버지의 간섭받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요 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것이 참 복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좀더 일찍 이것을 깨달았다면 비참하게 되지 않았을 터인데 이제라도 깨닫고 돌이키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는 언제나 양식이 풍족하고 행복이 넘친다.
하나님은 성도가 육신의 소욕대로 살면 망하겠으므로 육신의 소욕대로 살지 못하도록 간섭하고 꾸짖고 때로는 매로 다스리기도 하는 것이다.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했다. 육신대로 살면 좋을 것 같으나 영적 생명의 역사가 죽고 그 결과가 비참해진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여 먹었으나 그 결과는 수치와 부끄러움, 비참함과 사망이었다. 아버지 집에서 사는 생활은 육신적으로는 때때로 괴로운 것 같으나 그것이 영생이요 참된 행복이다.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탕자가 생각하기를 아버지 집에는 품꾼도 양식이 풍족한 생활을 하는데 자기 자신은 궁핍하고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주려 죽는구나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면 심령이 주려 죽게 될 만큼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 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탕자가 이제는 그 자리를 떠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난 것과 허랑 방탕하여 재산을 다 허비한 것이 모두 하나님과 아버지께 큰 죄를 범했다고 깨닫고 그 죄를 아버지께 자백하고 이제는 품꾼의 하나로 취급해 달라고 간청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이제는 품꾼(종)의 자리에까지 지극히 낮아지고 겸손해졌다. 이것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의 태도이다.
.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의 집까지는 아직도 거리가 멀었으나 부친이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이 어디서 굶지나 않나, 병이 나서 앓지 않나 걱정하며 매일 멀리까지 나와서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하루는 멀리서 거지같은 사람이 하나 오는데 그 모습과 걸음걸이를 보니 자기 아들이 틀림이 없었으므로 너무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영접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다.
.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탕자가 진정으로 회개하였다. 그 증거는 나는 하늘과 부친께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아들이라 하지 마시고 품꾼의 하나로 보아 달라고 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하늘과 부친께 죄를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는 뜻이다. 탕자는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 조차 감당치 못할 자인 줄 알고 품꾼의 하나로만, 여겨 주어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여 감히 머리를 들 수 없고 죽어 마땅한 자이므로 품꾼의 하나로 여겨 주어도 아버지와 함께 살기만 하면 감사하겠다는 자리까지 낮아졌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이다.
. 15:22-24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우리가 즐기자고 하였다. 아버지가 이렇게 기뻐한 것은 돌아온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찾은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영접해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힌데 대한 신령한 뜻은 구속의 흰 옷을 입혀 주는 것을 가리킨다(계7:9, 14). 손에 가락지를 끼운 것은 영광스럽게 해주는 것을 가리킨다(시8:4-5 참조).
발에 신을 신기라는 것은 복음의 신을 신기는 것을 가리킨다(엡6:15). 살진 송아지를 잡은 신령한 뜻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참여시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요6:33, 53 참조).
. 15: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맏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또 매일 밭에 나가 일하고 있는 것은 참 잘한 것이다.
. 15:26-28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 가기를 즐겨 아니 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그가 밭에서 돌아오다가 자기 동생이 돌아온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고 노하여 집에 들어가기를 꺼린 것이 잘못이었다. 맏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동생을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노하였다.
맏아들이 잘못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중심의 생각이었다. 그가 아버지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아버지가 자기 동생이 돌아온 것을 얼마나 기뻐하고 그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아 함께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자기의 불쾌한 감정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만들었다.
.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둘째, 자기의 잘못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잘한 것만 생각하여 교만했다.
명을 어김이 없거늘 여러 해 동안 맏아들이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섬긴 일과 아버지의 명을 순종한 것은 잘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긴 일이 없었을까? 이번 사건에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 하고 부친의 마음을 근심하게 한 것을 보면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잘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부족한 것을 찾아 회개하며 겸손해야 한다. 또 잘한 것이 있더라도 자기가 하였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전15:10).
. 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세째, 물질 중심, 세상 중심으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온 것을 기뻐하지 않고 동생이 재산을 탕진한 것만 아까워하고 있었다.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물질 중심에 빠져 있다.
넷째, 감사할 줄 몰랐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은혜 안에 살므로 아버지의 것이 모두 자기의 것인 줄 알고 아버지에게 늘 감사해야 했을 것이다.
다섯째,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동생을 사랑했다면 동생이 돌아왔으니 아버지와 함께 기뻐했을 것이다.
여섯째, 효도하는 마음이 없었고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가 효도하는 마음이 있고,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15:31-32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자기의 것이 없어야 하나님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된다. 사실 자기의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것은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의 것이 전부 자기의 것이 된다. 탕자는 재산을 다 없앴으나 회개하여 아버지를 참으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기쁘시게 했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를 잘 공경한 줄 알았지만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를 잘못했다.
우리가 이 맏아들과 같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보자. 오늘날 이 맏아들과 같은 신자들이 많이 있다.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탕자보다 낫고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기 중심이고, 돈만 알고,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고, 자기만 위하고, 교만하여 자기의 잘한 것만 자랑하고, 아버지께 왜 이렇게 하십니까 따지기만 잘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맏아들과 같은 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버지의 근심거리가 된다.
탕자는 잘못한 일이 있으나 그 일로 인하여 지극히 낮아져서 회개하며 아버지 앞에 굴복하고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아버지의 명대로 무엇이나 하려 하고, 항상 감사하고, 무슨 일이나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탕자는 아버지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복종하는 자가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만 위하고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아버지의 명령을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성도는 겸손하여 언제나 자기 잘못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아버지 집에서 살고, 아버지만 위하고, 아버지 명령만 순종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로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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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장 나사로
(대 지)
一. 불의한 청지기 비유(1-13)
二. 율법주의와 복음주의(14-18)
三. 부자와 나사로(19-31)
(본문강해)
一. 불의한 청지기 비유(1-13)
. 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예수께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들어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 부자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청지기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청지기\'의 헬라 원어 (오이코노모스)는 (집)와 (관리함)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집을 관리하는 자\' 라는 뜻이다. 청지기는 주인의 가산이나 종들을 관리하고 주관하는 자였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뜻대로 사용한다면 불의한 일이요, 주인의 것을 허비하는 일이다.
. 16: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셈하는 것은 계산(결산)하는 것이다. 이것은 청지기 직분을 내놓고 주인의 집에서 나가라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에게 세상 모든 것을 내놓고 세상을 떠나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세상을 떠나가지 않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지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청지기 노릇을 하고 있으나 불원간 청지기 직분을 내놓고 세상을 떠나가야 한다.
. 16:3-4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불의한 청지기가 청지기 직을 그만 둔 다음에 어떻게 살까 하고 생각할 때 땅을 파서 농사해 먹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운 일이므로 큰 걱정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가 앞으로 살아나갈 방도를 연구한 결과,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청지기가 아직은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며 주장할 권리가 있었으므로 그 주인의 소유를 가지고 선심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입혀 주면 청지기직에서 쫓겨난 후에 그 사람들이 저희 집으로 영접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빛을 탕감해 주기로 작정했다. 주인이 그 사실을 안다 해도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준 일이니 그다지 큰 죄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 16:5-7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그 빛을 탕감해 주었다. 기름 백 말 빚진 자에게는 오십 말로 그 증서를 고쳐 쓰게 하여 오십 말을 탕감해 주었고, 밀 백 석 빚진 자에게는 그 증서를 팔십 석으로 고쳐 쓰라고 하여 이십 석을 탕감해 주었다. 이렇게 탕감해 주는 것은 현재 자기가 맡아 가지고 있는 주인의 재산에 많은 손해를 입히는 일이다. 그러나 청지기직에서 쫓겨난 후에는 자기에게 큰 유익이 있다.
이것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물질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쓰면 자기 재산에는 손해가 나도 이 세상 떠난 다음(내세)에는 큰 유익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게 있는 재산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내세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불원간 청지기 직을 사면할 때(세상 떠날 때)는 자기 재산을 다 내어놓아야 하며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청지기는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지고 친구 되신 예수님을 사귄 것이요(9절), 내세에 가서 상 받도록 지혜롭게 사용한 것이다. 현재 자기에게 있는 재산을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제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옳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귀고 하늘에 쌓아두는 일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청지기가 행한 일 그 자체는 옳지 않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일을 지혜롭게 행한데 대해서는 칭찬하였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불택자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빛의 아들들은 택한 백성,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다(살전5:5).
자기 시대는 이 세상을 가리킨다. 이 세대의 아들 되는 불신자들은 자기 시대, 즉 이 세상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고, 빛의 아들들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더 지혜롭지 못하다. 그 이유는 빛의 아들은 예수님을 사귀고 내세를 준비하느라고 자기 재산을 거기에 많이 쓰고 세상에서는 많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재산이란 재물과 환경과 시간과 건강과 몸과 생명 전체를 가리킨다.
그 청지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처음에 기름 백 말이었으나 오십 말이 되었고, 밀 백 석이었으나 팔십 석이 됐으니 현재로는 얼마나 손해인가! 이와 같이 성도는 이 세상에서 많은 손해를 보면서 내세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본다. 예를 들면 성도가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돌려 대며, 겉옷을 취하려는 사람에게 속옷까지도 금하지 않는 일이나,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까지 동행하는 일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이다. 또 성도가 주를 위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자기 소유와 가족과 몸과 생명까지 희생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로 보이는 것이다(고전1:18).
.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 모든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자기의 재물은 다 불의의 재물이다. 왜냐하면 친상 천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놓았기 때문이다. 시편 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용하는 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면 얼마나 불의한 일인가.
우리에게 있는 모든 소유는 다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의 몸도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것이요, 우리의 것이 아니다(고전6:19-20). 그러므로 우리의 몸도 우리의 것으로 여기면 불의한 것이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사용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것을 임시로 맡아 가지고 있는 것뿐이며, 세상을 떠날 때는 그것들을 다 내놓고 가야 한다.
친구를 사귀라 예수님을 사귀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누가복음 12:4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15:15에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나라\"고 했다. 우리가 청지기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에 우리에게 있는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사귀는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을 사귀는 법은 그 재물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 운동에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 예수님을 위해서 물질을 바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 물질을 바치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요, 물질로 예수님을 사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물을 세상에 쌓아 놓으면 심판이 올 때에 다 없어지고, 또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다 내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서 물질을 바치고, 재물로 예수님을 사귀는 자가 지혜 있고 복 있는 자이다.
.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지극히 작은 것은 재물을 가리킨다. 물질보다 사람의 몸이 크고 몸보다 영이 크다. 또 사람보다 하나님과 그 나라가 크다. 그러므로 물질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지극히 작은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큰 것에 충성할 수 있겠는가! 물질로 충성하지 못하는 자가 큰 것에 충성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말뿐이요, 실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질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영적인 일과, 진리 운동에 충성할 수 있다. 이 말씀은 현재에 우리에게 당한 작은 일에 있어서 주를 위해 충성하라는 뜻도 있다.
날마다 작은 죄를 찾아 회개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대하여 선을 행하려고 힘쓰고, 믿는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큰 일을 맡기시고 그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 십부장으로서 충성하는 자는 백부장이 될 수 있고 백부장으로서 충성하면 천부장이 될 수 있으나, 십부장으로서 충성되지 못하는 자는 백부장이나 천부장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큰 저수지의 물도 둑에 생긴 지극히 작은 개미 구멍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둑이 무너지고 그 물이 다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작은데서 믿음을 지키고 작은 것부터 양심을 쓰고 계명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어놓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라야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다.
. 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불의의 재물에 충성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참된 것을 맡겨 주신다. 창된 것은 신령한 것, 진리의 열매, 영이 사는 것,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않는 자는 불의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참된 것을 맡길 수가 없다.
.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남의 것은 재물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재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시24:1).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세상을 떠나갈 때에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우리의 재물은 하나님의 것을 임시로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자는 불의한 자요 도적이다.
너희의 것은 영적인 것, 영원히 우리의 소유와 행복이 될 것, 영원히 누릴 존귀와 영광과 상급 등을 말한다. 우리가 남의 것을 가지고 충성하면 하나님이 영원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러나 남의 것을 가지고도 충성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영원한 것을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재물은 남의 것인 줄 알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그 모든 것을 주를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소유할 것을 많이 주신다.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의 것을 주시는가? ① 남의 것을 가지고 충성하는 그 시간에 주신다. 충성할 때부터 벌써 마음에 성령의 위로와 기쁨을 주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영이 자라난다. ② 청지기직을 그만둘 때(성도가 세상을 떠날 때) 주신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남의 것으로 충성한 자는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면 큰 상급을 받는다.
.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우리의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요, 주인은 하나님 한 분뿐인 줄 알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충성해야 한다.
二. 율법주의와 복음주의(14-18)
.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타락된 종교가들은 언제나 돈을 좋아한다. 돈을 좋아하는 자는 언제나 돈을 부인하는 얘기만 나오면 질색을 하고 비방한다.
.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사람 앞에 옳게 보이는 것과 높임을 받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 언제나 사람 앞에 높임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외식과 시기와 질투와 다툼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높임을 받으려 하는 자는 하나님께 미움을 받게 된다. 우리가 사람 앞에 옳게 보이려고 외식(外飾)하지 말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속 사람이 바로 되도록 힘써야 한다.
.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은 모세 오경을 말하고 선지자는 선지서들을 말하므로 구약 성경 전체를 말한다. 구약 시대는 세례 요한 때까지 끝나고, 그 후부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신약 시대가 되었다.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마태복음 11:12에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했다.
\"천국\"은 신약 시대의 교회, 즉 예수님의 구원 운동을 말한다. 이 천국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침노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세례 요한은 원칙적으로 구약 시대에 속하나 그가 예수님을 증거하였으므로 예수님의 구원 운동에 어느 정도 참여한 것이다. \'침노를 당하나니\' 구역 성경에는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였다. 누구나 천국에 가기를 소원하고 힘써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힘써 침노하여 들어가면 천국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천국에 가는데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천국 백성으로서 힘쓰는 자가 더욱 영광스러운 인격을 만들어 친국의 영광과 상을 많이 받게 된다는 뜻이다. 자기가 힘쓴 것만큼 자기의 인격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것만큼 하늘 나라에서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빼앗는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는 친지보다 크고 귀하다. 그 이유는 천지는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또 말씀으로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벧후3:5-6). 그러므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 16:18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성경에 있는 이혼 조건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다. 이는 칠계명을 범한 죄이다. 버림받은 여인은 그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기 전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면 간음죄를 짓는 것이요, 그 남편이 다른 데 장가간 다음에는 시집가도 죄가 아니다. 그 이유는 전 남편이 다른 데 장가간 것은 먼저 간음을 행한 것이 되므로 성경에 간음한 연고는 이혼이 성립되기 때문이다(성경에 허락한 이혼 조건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강해서 5:32 해석을 참조하라).
三. 부자와 나사로(19-31)
.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이것은 비유가 아니고 사실(事實)을 들어 내세의 실상을 보여 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면 호화롭게 살고 연락하는 생활을 하기 쉽다. 이 부자도 잘 입고 호화롭게 연락하는 생활을 했다. 이 부자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이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자기를 위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사치와 연락을 즐기고 방탕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이다.
디모데전서 6:17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라고 하였다. 이 부자는 재물을 가지고 마음을 높이고, 사치하고 호화로이 연락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재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부자가 잘못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재물을 가지고 마음을 높이고 마음이 부요하게 되었다.
②자기를 위해 재물을 사용하고, 호화로이 연락하며 향락주의로 살았다.
③재물을 가지고 내세를 위하여 친구(예수님)를 사귀지 못했다.
. 16:20-21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거지 나사로는 육신적으로는 참으로 가련하고 비참한 처지에 있었다. 가난하여 거지가 되었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었다. 또 있을 곳이 없어서 부자의 대문간에 누워 있었으며 몸은 헌데를 앓고 있었으나 누구하나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는 처지였다.
그러나, 나사로는 그 당한 환경과 처지에서 믿음을 잘 지켰다. 누구나 그 당한 처지와 환경에서 믿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사로는 그 환경에서 마음이 가난하여 자족을 배우고,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받으며 친국을 바라보고 내세의 준비를 잘하였다.
그가 잘 믿은 증거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으로 알 수 있다(22절). 나사로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였기 때문이었다. 물질이 부한 자라도 마음이 가난하고 나사로와 같은 신앙을 가졌다면 나사로와 같이 아브라함의 품속에 들어가게 된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든지 부요하든지 가난해야 하며, 육신이 병들었든지 건강하든지, 자기 몸이 세상에서 존귀하든지 비천하든지 하나님 안에서 영으로 살며 영적 안식과 평강을 누리는 것이 나사로의 신앙이다.
재물이 많아도 그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재물을 쓰고, 항상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으로 신령한 것을 얻기 위해 갈급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믿음으로 달음박질을 잘 한다고 하면 나사로와 같은 신령한 복을 받게 된다. 반면에 육신적으로 가난하더라도 마음이 부요한 자와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는 나사로와 같은 자가 아니요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
일반적으로는 가난한 자가 마음도 가난한 자리에 처하기 쉽고, 물질이 부요하면 마음도 부요하여 사치와 방탕과 향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부요한 선진 국민의 신앙 상태와 그들보다 부요치 못한 한국 국민의 신앙 상태를 비교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19:24에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볼 수 있으니 ①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마음도 부요한 자, ②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마음도 가난한 자, ③ 물질적으로 부요하나 마음이 가난한 자, ④ 물질적으로 가난하나 마음이 부요한 자이다. 물질적으로 부요하든지 가난하든지 심령이 가난하면 복 있는 자이다.
. 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 음부에 들어갔다. 이것을 보면 나사로는 예수님을 믿었고, 부자는 믿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로마서 4:16에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조상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아니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죄값으로 지옥에 가게 된다.
음부(陰府)의 헬라 원어 (하데스)는 (게엔나)나 구약의 (스올)이나 같은 말이다. 그 뜻은 무덤이나 죽음의 상태, 사후에 죄인의 영혼이 가는 불붙는 형벌의 장소, 즉 지옥 등을 가리키는데 본문의 음부는 24절에 \'불꽃 가운데\' 라고 했으므로 지옥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나사로는 살았을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죽은 후에는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가는 낙원에 가서 소원대로 생수를 마시며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되었다.
생수는 진리와 영감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했고, 요한복음 7:38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다. 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진리와 영감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가 계속 흘러나가게 된다. 나사로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믿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 내렸고, 사후에도 생명수 강이 흐르는 낙원에 갔다.
음부에서 고통 중에 부자는 죽은 후에 그 영이 지옥에 들어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요,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요, 물 한 방울도 없어 목이 타는 곳이요, 고통이 심한 곳이다. 물 한 방울이 없다는 것은 생명의 역사와 위로가 전혀 없는 것을 가리킨다. 부자가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나사로가 평안히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옥에서 친국에 있는 성도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절대로 지옥에서 천국에 갈 수 없고, 천국에서 지옥에도 갈 수 없다(26절).
. 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부자가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불러 말하기를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처럼 지옥에는 조그마한 위로나 생명의 빛이 없고, 흑암과 고통이 가득 찬 곳이다.
. 16: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부자는 살았을 때에 세상에서 사치하고 연락하고 방탕 하느라고 사후 내세의 일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사로는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내세 준비를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서 위로를 받았다 혹 나사로가 믿음을 지키다가 쫓겨나서 고난받는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이다.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다(딤후3:12). 이러한 고난을 받는 자는 천국에서 상급이 크다.
애매히 받는 고난도 있다. 우연히 가난하거나 몸에 병이 들어 고난 당하는 자는 애매히 고난받는 자라 할 수 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자도 그 고난 중에 낮아져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를 깨달아 새 생명을 얻는다.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하였다. 나사로가 당한 고난도 이 중에 하나일 것이다.
. 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당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서로 오고 가고 할 수 없다. 별과 별 사이가 공간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단 천당에 간 사람은 지옥에 갈 수 없고, 지옥에 간 사람도 도저히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을 때에 믿고 내세를 준비하지 않으면 죽은 후에는 다시 기회가 없다.
. 16:27-28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부자가 자기는 이미 지옥에 왔으므로 다시 변경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세상에 살아 있는 자기의 다섯 형제는 그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 다섯 형제에게 전도하여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하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하였다.
. 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아브라함이 그에게 답변하기를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갈 필요가 없고,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고 믿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구약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 받는 것을 가리킨다.
. 16:30-31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세상에 나가서 증거하면 세상에 있는 형제들이 회개하고 믿을 줄로 알았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죽은 자가 살아나서 내세의 일을 말해 주어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는 것보다 더 힘이 있고 중요하며 그 말씀을 받는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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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장 열 문둥이
(대 지)
一. 실족케 하는 죄와 용서(1-4)
二. 믿음을 더하는 법(5-10)
三. 열 문둥이를 고치심(11-19)
四.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대한 문답(20-25)
五. 말세 상태와 주의 재림(26-37)
(본문강해)
一. 실족케 하는 죄와 용서(1-4)
. 17: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예수를 믿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은 아주 큰 죄이다. 실족케 한다는 것은 유혹하거나 시험에 들게 하여 신앙의 길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 핍박하여 넘어뜨리는 것도 해당된다. 예수 믿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하나님이 크게 노하시고, 큰 벌을 내리신다.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은 최고의 사형법으로 당시 유대와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귀히 여기시는가를 잘 말해 준다. 성도 하나 하나가 예수님의 생명체이다. 따라서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를 실족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는 자요, 하늘 나라에 영원한 손해를 주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앙화와 저주를 내리신다. 반대로 믿음으로 사는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게 된다. 또한 성도의 영이 자라나는 일에 도움을 준 것은 예수님을 도와 준 것이 된다. 왜냐하면 성도의 영이 자라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가며, 천국이 점점 확장되어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형제가 범죄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계하고 회개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또 그가 회개하면 즉시 용서해 주어야 한다.
. 17: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7\'수는 주 하나님의 만수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용서하여 주라는 뜻이다. 형제가 내게 범한 죄는 얼마든지 용서하여 주는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은 우리가 용서하여 줄 권리가 없고, 하나님만이 그를 용서하여 주실 수 있다.
二. 믿음을 더하는 법(5-10)
.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음을 더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사도들도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구했다.
.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킨다. 겨자씨는 작아도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그 씨를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나서 새들이 와서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그와 같이 우리 믿음이 작아도 생명이 있다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그대로 되어지는 큰 역사가 일어난다.
뽕나무는 보통 나무보다 뿌리가 깊이 박혀 잘 뽑히지 않는 나무이다. 이 뽕나무 뿌리와 같이 우리 속에 깊이 박혀 있어 좀처럼 뽑히지 않는 우리의 죄악성과 못된 습관도 우리에게 생명 있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뽑혀지게 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약2:21). 그러므로 뽕나무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뽑혀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바다에 심기우라 바다는 세상을 가리킨다(계17:1,15). 그러므로 모든 죄악의 뿌리와 못된 습관들을 뽑아서 세상에 버리라는 것이다. 술과 담배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었던 사람도 믿음으로 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끊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모든 죄악성을 뽑아 내버리면 믿음이 자라나고 더해진다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17:20에는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라고 하였다. 성도 속에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다. 이것도 하나님의 명령(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만 된다. 세상에는 태산과 같이 큰 문제와 난관이 있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명령하고 순종하여 나가면 그 태산같은 문제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해결된다. 그 때에 믿음이 더해진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는 일은 태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난관이었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떠났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에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 추병이 따라와 진퇴양난이었다. 이것은 태산과 같은 난관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니 그 바다가 갈라져서 육지와 같이 되었다. 이것이 산을 옮긴 것이다.
스가랴 4:7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태산과 같은 큰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성전 짓는 스룹바벨 앞에서는 형통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라나고 더해지려면 속에 생명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생명 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고 믿음이 자라난다.
믿음을 더하는 법은 먼저 생명 있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쓰는 것이다. 믿음을 쓰지 않으면 점점 쇠퇴해진다. 무엇이든지 쓰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점점 쇠퇴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써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믿음이 더해지도록 해야 한다. 언제나 성경 말씀을 믿고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며, 힘써 말씀대로 순종해 나아가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고 그 때에 신앙이 자라나고 더해진다.
성경에 죄를 끊어 버리라 했으니 끊어버려야 믿음이 더해지고 전도하라 했으니 전도해야 믿음이 더해지고,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해야 믿음이 더해지며, 봉사하라 했으니 말씀을 순종하여 봉사해야 믿음이 더해진다. 그리고 태산과 같은 시험이 와도 성경에 이기라고 했으니 힘써서 이겨야만 신앙이 자라나고 더해진다.
. 17: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 밭을 가는 것은 마음 밭을 가는 것이다. 즉 황무지와 같고 가시밭, 돌작밭, 길가와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옥토와 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도록 회개하는 일이다. 예레미야 4:3에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마음 밭을 갈아 옥토와 같은 마음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파종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밭을 가는 것은 가시밭과 같고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을 회개한 후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심어서 자라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양을 치는 일은 양을 먹이고 기르는 일이다. 양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자신이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꼴을 먹어 생명이 살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 꼴을 나누어주어서 구원 운동에 일비지력(一脣之力)을 감당해 나가는 일이 곧 양을 치는 일이다.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종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후에도 주인 대접을 받고자 하지 말고 종으로서 겸손히 주님을 섬겨야 된다는 뜻이다.
. 17: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성도가 종으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한 후에라도 자기가 영광을 받지 말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종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가 한 것으로 알면 교만한 자가 된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고전15:10), 자기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아 겸손한 위치에서 주님께만 영광과 존귀를 돌려야 자기의 영이 자라나고 믿음이 더해진다.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이것은 주님이 잡수실 것을 예비한다는 것인데, 즉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리킨다.
띠를 띠고는 자기를 단속한다는 것이다.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이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다 받으시도록 수종 들라는 것이다.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이것은 주님의 일을 충성되이 한 후에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면 자기도 영적 양식을 풍성히 먹고 존귀하게 된다는 것이다.
.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주인의 명한 대로 다 했어도, 사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종의 위치이다.
.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자기를 부인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한 것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은 흥해야겠고 나는 쇠하여야겠다\'는 세례 요한의 믿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높여야 한다. 다만 우리가 일한 것은 주께서 무익한 종을 붙들고 당신의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일한 다음에도 자기는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아야 한다.
三. 열 문둥이를 고치심(11-19)
. 17:11-12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것이 가까운 길이므로 예수님은 가끔 이 길로 통과했다. 한 촌에 들어가시니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아와 고쳐 주시기를 간구했다.
멀리 서서 문둥병에 걸리면 부정한 자가 되어 집안이나 그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동네 밖으로 나가서 혼자 살거나 다른 문둥병자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레13:15, 45 참조). 그러므로 이 문둥병자들도 멀리 서서 예수님께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했다.
. 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 선생님이여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선생인 그리스도로 믿은 것이다. 그들이 아마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하여 들은 그대로 믿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들의 병도 고칠 수 있다고 믿어 이와 같이 부르짖었다.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입어야만 문둥병이 나을 줄 믿고 간절히 부르짖었다. 이렇게 간절히 구하며 사모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
. 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레위기 14:2-3에 문둥병이 걸렸다가 나은 자는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예물을 드리는 율법의 규례가 있다. 예수께서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그 영이 나은 증거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 문둥병자들은 그 영이 나을 것을 확신하고 제사장에게 가게 되었다.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는 도중에 고침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는 도중에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는 때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와 보라 할 때는 와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에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발견하기도 하고(요1:46-48), 심령의 병이 낫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도 한다(요11:40).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나아가면 홍해가 갈라지고 아말렉이 항복하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나아갈 때에 위대한 능력이 나타난다.
. 17:15-16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문둥병자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았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사례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겸손히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으며, 예수님께 사례하였다. 심령의 병 고침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겸손히 주 앞에 돌아와 엎드리어 그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 고침을 받은 자는 많으나 예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아홉 사람도 처음에는 감사하는 생각이 조금 있었겠지만 집에 돌아가 가족을 만날 생각이 앞서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육신 중심, 자기 중심,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으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영적 구원에까지는 참여하지 못했다.
. 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문둥병을 고치고 예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예수님을 기쁘게 하였으나, 감사하지 않은 아홉 사람은 예수님을 섭섭하게 했다. 우리 성도가 전에 어려웠던 형편과 현재 나아진 면을 비교해 보면 항상 주님께 감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병들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하지만 병이 나으면 대개는 병들어서 고생하던 일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시면 하나님께 몸을 바치고, 재산도 바쳐서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하다가 병이 나으면 언제 그랬느냐 하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죄 지은 것과 비참한 상태를 늘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다윗과 바울은 전에 범죄한 일을 늘 생각하고 회개하며 감사했다(딤전1:12-15, 시6:5).
이방 사람인 사마리아인 한 사람은 예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나 유대인 아홉 사람은 항상 제사장을 통해서 제사 드리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의식적 종교 생활에 만성이 되어 그 은혜를 감사할 줄 몰랐다. 물고기가 물에 살면서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이방인으로 죄 가운데서 살며 버림받은 사람처럼 살다가 주님의 은혜를 받으니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로마서 5:20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고 했다. 굶주린 사람은 떡 하나만 주어도 감사하나 늘 잘 먹는 사람에게는 많이 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과 같다.
.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 감사하는 믿음이며 속에 있는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고 입으로 증거한 믿음이다. 로마서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다.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구원하였느니라 영이 구원받은 것과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걸어 가다가 문둥병이 나았고, 돌아와 감사할 때에 영이 구원을 받았으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다.
四.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대한 문답(20-25)
.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모든 성도들의 유기체를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히12:22, 23 참조).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여 세계를 통치할 것으로 믿었으므로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시적(可視的)으로 임하는 지상 왕국이 아니라 볼 수 없게 임하는 영적 왕국이라는 것이다.
.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답변하셨다.
너희는 ① 질문한 바리새인들을 말하며 바리새인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이다. 즉 믿지 않는 세계 속에 그리스도가 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간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바벨론 속에 이스라엘 나라가 있는 것과 같다. ② 성도를 가리키며 성도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중심한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중심하여 모인 성도들의 단체나 유기체는 참된 하나님의 나라이다. ③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다.
.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인자의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깨어 있어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 재림하는 날을 보는 자가 많지 않을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말세에 미혹이 많고(23절), 고난이 많고(25절), 노아의 때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이 타락하여(26,29절) 참 믿음을 지키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눅 18:8).
.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들지도 말라
말세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처처에 있겠으나 가지도 말고 쫓지도 말라고 했다. 가지도 말라고 한 것은 거기에 가게 되면 미혹을 받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자칭 재림주라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이 일시에 다 알 수 있도록 오신다. 어떤 사람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할 때에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이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만든 TV를 통해서도 지구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을 지구 전체가 다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주님의 재림을 모든 사람이 보도록 하실 수 없겠는가! 사도행전 1:11에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에 본 그대로 오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승천했으니 볼 수 있게 오시고 구름 타고 승천하셨으니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저편까지 비췸같이 천하가 일시에 알 수 있도록 오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과 영적 빛으로 이루어져 나아가 이 빛으로 점점 확장되어 가다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빛에 속한 자는 다 불러 가신다.
.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① 하늘 나라 운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로써 이루어질 것과, ②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큰 환난이 일어나 전 세계 그리스도교가 큰 고난을 받게 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환난이다. 그 환난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천년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五. 말세 상태와 주의 재림(26-37)
.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말세에는 이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이 될 것을 예언하셨다.
.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노아의 때에 이 세상 상태가 다음과 같았다. 먹고 마시고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데로 기울어져 먹자주의로 나아갔다.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정당하게 결혼하여 부부 생활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노아 당시 사람들이 음란방탕으로 기울어져서 부정하게 성생활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홍수로써 심판하여 다 멸망시켰다.
.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말세에는 롯의 때와 같이 될 것을 가리킨다. 사고 팔고 하나님을 떠나서 이권(利權)만 따라갔다. 그들은 돈이 우상이 되었다. 심고 장래를 위해 세상에 투자하고 세상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집을 짓더니 믿음을 떠나 자기 집 짓는 데만 급급한 것을 가리킨다. 학개 1:9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고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성전은 황무했으나 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 짓는 데만 급급했던 것을 책망했다(학1:4).
. 17:29-30 롯이 소들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소돔과 고모라에 마침내 하늘로서 불이 내려와 다 멸망하였고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었으며 롯과 그 두 딸만 겨우 구원을 얻었다. 말세에도 세상이 다 안일주의와 향락주의로 기울어지고, 정욕에 빠지고 물질주의와 세상주의에 빠져 마침내 불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을 경고했다.
. 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지붕 위에 있고 유대 나라의 지붕은 기도의 처소로도 사용되었다(행10:9). 그러므로 지붕 위에 있는 것은 기도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집안으로 내려오지 말라는 것은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마음이 세상으로 향하여 내려가지 말라는 뜻이다. 또 신앙이 퇴보하지 말라는 뜻도 있다. 밭에 있는 자 밭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데(마13:19 참조), 마음발의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제거하는 회개와 말씀의 씨(눅8:11)를 뿌리고 기르는 일을 하는 사람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믿음으로 달음박질해 나가던 사람은 계속해서 달음박질하여 전진해야 하며, 세상으로 돌이키고 육신 중심으로 돌아서서 신앙이 퇴보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히10:38).
. 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롯의 처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도망쳐 나오다가 천사가 전해준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다.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가던 사람이 롯의 처와 같이 세상의 것 때문에 뒤로 돌이키면 맛 잃은 소금기둥이 된다. 맛 잃은 소금은 자신은 신앙생활의 맛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는 내어버림을 받고 세상 사람들은 발로 밟는다.
.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육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말씀을 양보하는 자는 영적 생명을 잃을 것이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사람은 영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말세의 환난 때에도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을 지켜야 영의 생명이 산다. 만일 육신의 생명이 살고자 하여 말씀을 양보하면 영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17: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그 밤 밤은 환난을 가리킨다.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말세에는 환난이 너무 크고 심하기 때문에 기진맥진하여 자리에 누워 쓰러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5:5 이하에 보면 밤이 깊도록 신랑이 더디 오므로 지혜로운 처녀나 미련한 처녀가 다 졸며 잤다고 하였다. 그것은 환난이 너무 크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두 남자 둘은 증거자의 숫자이다. 다음 절의 두 여자와 대조하여 해석해야 된다. 두 남자가 누워 있었으니 일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니 영적 자녀를 생산치 못한 자이다(고전4:15 참조). 다음 절의 두 여자는 매를 갈고 있었으니 이것은 신령한 양식을 준비한 것이요 환난 중에도 주의 일을 한 자이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마태복음 25:5에 열 처녀가 다 졸며 잤으나 기름 준비한 다섯은 데려갔고, 기름준비를 못한 다섯은 버려둔 것과 같다.
. 17: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매를 갈고 있으매 자기 식구에게 양식을 공급하려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환난 중 일지라도 양식을 공급하는 곳이 있음을 말한다. 전세계 기독 신자들이 큰 환난 가운데에 빠져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상태이나 어떤 모퉁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주고 신령한 양식을 공급해 주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였다.
여자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천직이다(딤전2:15). 성도가 여자와 같이 복음으로 새 신자를 낳는 일과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제 생각과 제 뜻대로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라도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이다.
. 17:36 (없음)
. 17: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주검은 죄를 가리키고, 독수리는 심판을 가리킨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온다는 말이다. 말세에는 전 세계가 노아 시대와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물질주의와 향락주의로 기울어져 죄악이 관영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성도는 깨어 준비하여 환난 중에 믿음을 지키며 주의 재림을 인내로서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겠다.
123456 789101112131415161718192021222324
제 18 장 아이
(대 지)
一. 원한을 풀어주는 기도 응답(1-8)
二.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9-14)
三.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15-17)
四. 부자 청년과의 영생문답(18-30)
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세 번째 예언하심(31-34)
六. 소경을 고치심(35-43)
(본문강해)
一. 원한을 풀어주는 기도 응답(1-8)
.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성도의 특권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요, 영적 호흡이므로 기도가 끊어지면 생명의 역사가 끊어진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다.
낙망치 말아야 될 것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다 주신다(마21:22). 그러나 그것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낙망하기 쉽다. 낙망은 불신앙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낙망치 말고 끝까지 참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 야고보서 5:7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라고 했다.
. 18: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이 재판관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을 보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을 보니 무자비한 재판관이다.
.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이 과부는 도와줄 자도 없고 의지할 자도 없는 외로운 자였으며,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줄 자도 없었다. 그러므로 재판장에게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였다.
자주 그에게 가서 재판장이 처음에는 그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과부가 낙심치 않고 자주 재판장에게 가서 간구하였다. 이 비유는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요 과부의 재판장이시다(시68:5). 과부가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에게도 낙심치 않고 계속 간구하여 들은 바가 되었거든 하물며 사랑이 무한하시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마7:7)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성도가 간주하는 것을 왜 이루어 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잘못 구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내 원수 이 과부의 원수는 아마 사랑하는 남편이나 혹은 자녀를 죽인 원수이거나, 아니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빼앗아 간 원수일 것이다. 원한을 풀어 주소서 과부가 자기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곡한 말로 계속 부르짖었다. 과부는 마음속이 달고, 가슴이 타는 듯한 심정에서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 부르짖음이 너무 간절했으므로 재판장의 마음이 번거롭게 되었고 괴로워하게 되었다(4, 5절).
우리 성도들도 기도할 때에 이 과부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하여 간절히 부르짖어야겠다.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가진 성도라야 이 과부와 같은 기도를 할 수 있다. 우리 성도의 원수는 무엇인가? ① 마귀이다. ② 죄이다. 히브리서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다. ③ 자기 자신이다. 성도는 항상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된다(고전9:27).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망하고 만다. ④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데 방해하고 막는 세력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는 일을 그만두라고 간(諦)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고 하셨고(마 16:23),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하셨다(눅13:32).
말씀을 바로 따라가고자 할 때에 핍박하고 막는 원수가 많이 생긴다. 그러나 그 세력을 다 이기고 끝까지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말씀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라야 승리와 실패의 경험이 있다. 그 실패한 것으로 인하여 원한이 크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원수에 대한 원한이 없으므로 과부의 심정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원한을 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나 실상은 곤고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자이다(계13:17).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이 과부와 같이 하나님께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 18:4-5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그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얼마 동안은 그 과부의 부르짖음을 무시하였다. 그러나 과부가 자주 와서 부르짖으므로 그 재판관이 번거로움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그 원한을 풀어주게 되었다.
. 18:6-7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시7:11)께서 왜 사랑하는 자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택하신 자들의 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녀들이 원한을 풀어 달라고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 우리 성도가 날마다 원수와 싸워 이겨야 하겠으나 우리에게는 그 능력이 없고, 실패한 일도 많아 그 원한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면 모두 이길 수 있사오니 도와주소서\" 하며 원한을 갚아 달라고 낙심하지 말고 밤낮으로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그 원한을 풀어 주신다.
.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과부처럼 성도들이 부르짖는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뜻이다. 이 과부가 계속 부르짖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게 된 것 같이 성도가 간절히 부르짖어 원수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믿음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생명있는 산 믿음, 자신과 세상을 정복해 나가는 믿음을 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성도들이 항상 선한 싸움을 싸우고 혹시 실패하고 손해 본 일이 있으면 그 원한을 풀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여 마침내 그 원수를 정복해 나아가야 한다.
二.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9-14)
. 18:9-10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자기를 의롭다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하여 교훈해 주셨다.
. 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은 ① 따로 서서 기도하였다. 그는 세리와 따로 서서 지성소 가까이 가서 기도한 것 같다. ② 하늘을 우러러보고 기도하였다. 세리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기도한 것(13절)과 대조하여 보면 바리새인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기도한 것을 알 수 있다. ③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신 데 대한 감사가 아니고, 자기가 행한 의에 대하여 감사한 것이다. ④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기도했다. 그러므로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느라고 힘을 많이 썼고 십일조 드리느라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 이 바리새인은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잘못된 점이 많이 있다. 바리새인의 잘못된 점이 무엇인가?
㈀ 자기의 의를 앞세웠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썼다(롬10:3). 이 바리새인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행한 의를 자랑함으로 그것이 자기와 하나님 사이를 막아 하나님의 빛이 자기 속에 들어가지 못하여 심령이 어두워졌다. 사람들 가운데 잘못하고 망한 사람도 많으나 잘하고 나서 망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 중에 잘하고 나서 망하는 사람은 교만해져서 망한다. 잘한 것 때문에 교만해지고, 잘 한 그것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과 막히게 되고, 흑암 가운데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여 망하게 된다.
㈁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하면 감히 그 영광 앞에 가까이 가서 눈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 자기의 더러운 것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하면 어떻게 감히 자기의 잘한 것을 자랑삼아 고할 수가 있었겠는가!
㈂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였다. 바리새인이 자기 자신을 신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하면 자기 속에 더러운 것이 가득 할뿐 선한 것은 한가지도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롬7:18). 그러나 바리새인이 자신을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잘한 것을 자랑하고 타인을 멸시하는 기도를 하였다.
바리새인이 토색.불의.간음하지 않고 금식하며 십일조 드린 것은 잘한 것이다. 사람이 잘한 다음에 망하는 길이 있고, 더 잘되는 길도 있다. 잘한 다음에 더욱 겸손하고, 낮아져서 충성하면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자가 되고, 잘한 다음에 교만하여 잘한 그것을 자랑하면 하나님과 막혀서 흑암 속에 갇히고 망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5:10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라고 했다. 잘한 것이 있더라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되게 해 주신 것으로 믿어야 한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고 나 행한 것은 죄밖에 없음을 깨닫고 자기를 전적으로 부인해야 한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는 죄인인 줄 알고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된다. 만일 바리새인도 이와 같이 했다고 하면 영적 면으로 세리보다 훨씬 나은 자가 되었을 것이며, 더욱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이 자기의 몇 가지 잘한 것 때문에 교만하다가 결국 세리보다 못한 자가 되고 말았다.
.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① 멀리 서서 기도했다. ②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기도했다. ③ 가슴을 치며 기도했다. ④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기도하였다. 세리는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면서 기도한 것이다. 멀리 서서 세리가 자신은 감히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였다. 이것은 세리가 하나님을 발견한 증거이다.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세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았을 때 죄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을 감히 우러러 볼 수조차 없었다. 세리와 같이 외부적으로 죄가 많이 드러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기 쉬우나, 바리새인처럼 외부적으로 의를 좀 행했거나 많은 사람이 의롭게 여길만한 위치에 있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5:20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고 하였다. 죄가 많거나 죄를 많이 깨달은 자는 하나님 앞에 그만큼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지는 사람은 더 훌륭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것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을 곡해하여 은혜를 더하게 하기 위하여 죄를 더 많이 지으면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로마서 6:1-2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죄에서 떠나기를 힘써야 한다.
가슴을 치며 세리가 자기의 죄를 원통하게 생각하는 태도이다. 시편 51:17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라고 했다. 이렇게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는 자를 주께서 기쁘게 받으신다. 불쌍히 여기옵소서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세리가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힘입어 죄 사함 받기를 기도하였다. 시편 32:1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회개한 것이다. 요한일서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했다.
.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자기 의를 자랑삼아 기도한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하나님께 의를 다함을 받고 집에 돌아갔다. 이와 같이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 받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 막는 죄를 통회하고 하나님의 빛을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한 것뿐인데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고 남을 멸시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였다. 바울은 사도가 된 후에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라고 했다(딤전1:15). 사도 요한도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발 앞에 엎드러졌다(계1:17). 만일 이 바리새인이 낮아져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했더라면 세리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이 바리새인도 회개하려고 하면 회개할 것이 많이 있다. ① 행동으로 범한 죄, ② 마음으로 범한 죄, ③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 ④ 의를 행하지 못한 것. ⑤ 하나님을 좀더 사랑하지 못한 것과 전심 전력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 그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된다.
그가 만일 이렇게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여 은혜 가운데 들어갔더라면 세리보다 훨씬 더 좋은 성도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베드로전서 5:6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다.
三.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I5-17)
. 18:15-16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꾸짖었으나,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제자들은 외부적 운동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줄 알았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심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친국을 소유하게 되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하면 천국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①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나이가 어려도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 섰다 하며 교만한 자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도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이며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도 어린아이의 자리를 떠나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된다.
② 어린아이는 부모를 의지하고 산다. 어린아이는 제 스스로는 살 수 없는 자이다. 만일 부모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의뢰해야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성도가 항상 주님을 의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자인 것을 깨닫고 잠시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고 주 안에서 살기를 항상 힘쓰며, 주님을 앙망하고 사모해야 한다.
신명기 17:16에 \"왕된 자는 말(馬)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면 평안할 것이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말(馬)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왕이 말(馬)을 많이 두어 말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항상 겸손하여 하나님 없이는 살지 못할 줄로 알아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여 주시고 생명과 기쁨과 평강을 주신다. 이것이 천국을 소유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지혜있고, 통달한 자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바가 없고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고 내어버리신다.
③ 어린아이는 젖을 사모한다. 베드로전서 2:2에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다. 갓난 아이는 먹는 것이 일이다. 성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항상 신령한 젖(말씀)을 얻어 먹으려고 힘쓰게 된다. 시편 119:131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항상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하며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 그 말씀을 영으로 받아 자기의 생명을 삼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는 자가 된다.
④ 어린아이는 배우고 모방하려는 정신이 강하다. 어린아이는 부모나 형제가 하는 것은 무엇이나 모방하고 닮아간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이 된 성도는 하나님 배우기를 힘쓰고 예수님을 닮아 가려고 힘쓰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배우고, 주님을 배워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어린아이의 자리를 떠난 사람이다.
⑤ 어린아이는 순종하려는 정신이 있다. 어린아이는 마음이 순진하여 어른의 말을 잘 듣는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이 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에 잘 순종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성도는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떠난 것이다.
⑥ 어린아이는 항상 부모와 동거하고 동행하려고 한다. 부모와 떨어지면 죽는 줄 알고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어디라도 따라가려고 한다. 우리 성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 계시를 받는다(마11:25 참조).
즉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그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된다.
㉡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된다.
현재에도 천국을 소유하게 되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을 더욱더 많이 발견하고 하늘나라에 깊이 참여할 수 있다.
㉣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더 많이 이루게 된다.
㉤ 영이 많이 자라난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마5:19).
㉥ 하나님께서 같이 하여 주신다.
四. 부자 청년과의 영생문답(18-30)
. 18:18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복음 10:17에 보면 이 사람이 예수께 와서 끓어 앉아 영생문제를 물어 보았다고 하였다. 이 관원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엄한 종교생활을 하였으나 자기의 영생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하여 예수께 나아와 물어 본 것이다.
. 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절대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하나님만 선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은 선이고 뜻에 맞지 않는 것은 악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선을 행하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해야 된다.
. 18:20-21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인간의 도덕적 계명인 5계명에서 9계명까지를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그가 도덕적 선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한 것을 보아도 그는 외부적인 도덕주의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적인 선을 힘쓰고 그것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을 줄로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깨뜨려 버리고 생명의 도를 가르쳐 주기 위하여 십계명의 도덕적인 부분만 말씀해 주셨다.
열째 계명인 탐내지 말라는 것을 말씀해 주지 않은 것은 탐심은 심리적 문제이고 외부적 도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자신있게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라고 하였다. 마가복음 10:21에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셨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영생을 얻기 위하여 힘을 많이 썼고 계명을 외부적으로 많이 지킨 사람이다.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외부적으로는 계명을 잘 지키고, 종교생활을 착실하게 하였으나 영생문제가 해결이 되지 못하여 심령이 답답한 가운데 있었다. 그리하여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까 하고 도덕적인 선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어둡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태였다.
예수님은 그 의식적인 어두움의 장막을 벗기고 빛의 갑옷을 입혀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시려고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 청년처럼 계명을 외부적으로만 지키면 안 된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고, 계명의 원뜻과 생명의 세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참으로 그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하면 영생을 소유하였을 것이나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가 계명을 지켰다고 하여도, 외부적인 도덕으로만 지킨 것이 분명하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도덕적으로만 지키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참으로 계명의 근본 정신을 지키려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여도 살인한 죄가 되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망에 거하는 죄가 된다(요일3:14-15).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생동안 한 번이라도 미워한 적이 없었겠는가? 또 모든 사람을 항상 진정으로 사랑하였겠는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손해를 주고 자기를 괴롭게 할 때에도 그 사람을 한번도 미워하지 않으며 원수까지 참으로 사랑하였겠는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도덕적으로만 지키려고 하면 행동으로만 간음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한 것이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영적 간음을 행한 것이다. 세상과 벗된 것이 영적 간음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하였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에 있어서도 도덕적으로만 지키려고 하면 남의 물건을 실제로 도적질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데까지 지키려고 하면 남의 물건을 탐내어도 도적질한 것이 되고 마땅히 남에게 주어야 될 것을 주지 않는 것이나 하나님께 바쳐야 될 것을 바치지 않는 것이 다 도적질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 자녀나 몸이나 생명까지 바치라고 하였다(마10:37 ; 고전6:20 참조). 또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명예나 영광을 자기가 받으면 그것도 명예 영광을 도적질한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도 외부적으로만 지키려고 하면 가끔 부모가 좋아하시는 것을 사다 드리고 부모를 외부적으로 잘 대접하면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려면 부모의 은혜를 깨달아 부모를 사랑하며, 주 안에서 순종하며, 부모의 마음을 평안히 해드려야 한다.
예수님께 나아온 청년이 이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한 것은 분명히 외부적으로만 지킨 것에 불과하고, 계명의 근본 정신은 깨닫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가 참으로 계명의 근본 정신을 깨달았다고 하면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그리스도께 돌아와서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계명은 죄를 깨닫게 하고(롬3:20 참조),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때문이다(갈3:24).
오늘날도 이 청년과 같은 성도가 많이 있다. 도덕적으로는 계명을 잘 지켜 예배당에도 잘 나오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만 신령한 세계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생명의 역사가 없는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께 나아온 청년이 자기 생각에는 계명들을 다 지킨 줄로 알았으나 외부적으로만 지켰기 때문에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고 영적인 만족이 없었다.*
.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영생에 들어가는 방법을 예수님이 두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첫째,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것과 둘째,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신앙의 세계는 간단한 것이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청년은 부자여서 재물이 많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갔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다는 것을 보면(막10:21) 이 청년이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물어본 것도 아니고 진정으로 자기의 영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그리하여 결국 영생과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재물을 의지하고 살지 말라는 뜻이다. 재물이 많아서 그 재물이 우상이 되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부요하여지면 생명에 들어가지 못한다. 재물이 많아도 심령이 가난하여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으나 재물이 많으면 일반적으로 마음이 높아지고 부요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였다(딤전6:17). 부하려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게 된다(딤전6:9).
둘째,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백 배나 받고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막10:29-30). 실제는 버리지 않더라도 마음으로는 다 포기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된다. 아브라함도 독자를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갔다. 다니엘도 높은 지위와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다가 사자굴에 들어갔다.
물질이나 가족이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말씀만 따라가야 자기 영이 살고 세상의 것도 여러 배가 되는 축복을 받는다. 예수님과 세상의 것을 다 붙잡으려고 하면 자기의 영적 생명이 죽고 세상의 것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내어놓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양쪽이 다 잘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물질이나 부모나 가족에게 얽매이면 안 된다.
셋째, 의식적이고 도덕적인 부요, 즉 종교의식이나 도덕적으로 만족하고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떠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는 뜻이다(계3:14-22 참조).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지 않으면 천국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려면 가지고 있는 것, 자랑하는 것을 다 내어놓아야 한다. 또 내가 했다는 교만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줄로 알아야 한다.
자존심과 교만과 허영심이 있으면 가난한 심령이 되지 못한다. 부요한 자는 마음이 부요하게 되어 올무에 빠지기 쉽고 그 재물을 의지하여 살려는 생각이 들어오기 쉽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라는 뜻이다. 가난한 자는 재물이 꼭 필요한 자를 말한다. 재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꼭 써야 할 곳에 쓰고, 꼭 필요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 또 하나님을 위하여 바쳐야 될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주를 위해 희생한 것은 하늘에 쌓은 보화가 된다(마6:19-20 강해 참조).
나를 좇으라 예수님을 따라가야 생명이 산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① 마음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② 중생한 영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③ 몸으로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어디든지 가야 한다. 지금도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이 감동을 시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또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가 범사에 말씀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나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나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다. 예수님이 인도하는 곳이면 손해가 나도 따라가고 십자가가 와도 따라가야 한다.
. 18: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재물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자는 마침내는 근심하고 돌아가게 된다. 근심하더라 그가 근심하며 돌아간 것을 보아 예수님을 따라갈 마음이 있었으나 재물이 우상이 되어 도리어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생명길을 밝히 가르쳐 주었으나 이 사람은 마땅히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여 다시 흑암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 18:24-25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부자일지라도 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가난한 심령이 되면 괜찮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으로 전부 하나님께 바쳐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필요한 곳에 쓰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요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성경에 말하는 \'부자\'는 마음의 부자를 말하는 것이며 대개 돈과 지식과 권세가 많은 사람은 마음도 부요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부요한 사람이 있다.
. 18:26-27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므로 제자들이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하고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사람의 할 수 없는 것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사람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부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난한 심령이 되게 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그 부요함을 내어놓을 수 없으나 진리대로 살려고 힘을 쓰고 주의 말씀과 주의 인도를 따라가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세상의 것을 마음에서 포기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가난하게 되어 그 시간부터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사람의 속에서 역사하고 생명에서 생명으로 계속하여 달음박질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서 하는 일이다.
. 18:28-30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쫓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사오니 우리가 무엇을 얻겠느냐고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 그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내세에 영생을 얻고 금세에도 여러 배를 받는다고 했다. 마가복음 10:29-30에는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 하였다(여러 배를 받는데 대해서는 마태복음 19:29 해석을 참조하라).
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세 번째 예언하심(31-34)
. 18:31-33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예수께서 십자가 수난을 세 번째 예고하셨다. 첫 번째(9:22)와 두 번째(9:44)의 예고에 비해 더욱 세밀하게 말씀해 주셨다. 십자가가 가까워 옴으로 제자들에게 최후 준비를 시키시기 위함이었다.
. 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의 말씀의 신령한 뜻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겠다는 말씀을 지식적으로는 알았으나 예수님의 죽음의 필요성과 참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 말씀이 아직 감취어 있는 때요 성취되기 전이기 때문이었다. 때가 되어 인봉을 떼고 보혜사가 오셔야 알게 된다(계5:1-6 ; 6:1-2 ; 요16:13 참조).
六. 소경을 고치심(35-43)
. 18:35-36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유월절이 가까왔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상경했다.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 듣고 알아보려고 큰 무리를 이룬 것 같다. 소경을 눈뜨게 한 사건은 마태복음 20:29이하의 사건과 같은 사건인데 본문에는 소경 한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였으나 마태는 소경 두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들어갈 때에 한 소경이 따라왔고 여리고에서 나갈 때에는 또 한 사람이 와서 두 사람이 함께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에 예수님이 고쳐주신 것이다.
. 18:37-41 저의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소경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자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롬1:3-4). 소경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줄 믿고 계속하여 부르짖었다. 진리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열심히 따라가는 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방해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소경들은 마침내 예수님께 부름을 받게 되었고 그들의 소원대로 눈을 뜨게 되었다.
. 18:42-43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쫓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소경이 육신의 눈만 뜬 것이 아니고 영적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는 구속의 은혜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것을 보는 자들도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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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장 삭개오
(대 지)
一. 삭개오의 믿음(1-10)
二. 므나 비유(11-27)
三. 나귀를 예수께 바침(28-34)
四. 예루살렘 입성(35-40)
五. 예루살렘을 보고 우심(41-44)
六. 성전을 정결케 하심(45-48)
(본문강해)
一. 삭개오의 믿음(1-10)
. 19:1-2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여리고는 향료(香料)의 산지로서 그 세액이 많기 때문에 세무서가 있고, 세리장도 둔 것이다. 삭개오는 여리고 세리장이요 부자였다. 세리장은 요즘으로 말하면 지방 세무서장쯤 되는 지위인 듯하다.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으므로 세리들은 로마 정부의 위임을 받아 자기들의 재량(裁量)대로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 정부에 정한 세액을 바치고 그 나머지는 자기들이 착취하였다. 그로 인하여 세리들은 유대인의 지탄을 받았고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 19:3-4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보고자 하되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보고자 간절히 사모하였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간 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 나갔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옹위하고 가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키가 작은 삭 개오는 예수님을 도무지 볼 수 없었으므로 통나무 위로 올라갔다.
뽕나무에 올라가니 그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첫째,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이로 보면 어른이요, 직위로는 세리장이요, 경제적으로는 부요했으나 교만하지 않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둘째, 난관을 돌파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키가 작은, 불리한 조건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에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그 난관을 돌파하여 마침내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만일 그가 그 난관을 돌파하고자 하는 믿음이 없었더라면 도중에 되돌아갔을 것이고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을 것이다.
마가복음 2:1-12에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이 지붕을 뚫고 병상채 달아내려 그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것도 난관을 돌파한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신 목적이 삭개오를 부르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알았고 그의 이름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 속히 내려오라고 명령하셨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한 것도 예수님이 아시고, 그가 나아올 때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영접해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성도의 이름을 아시고 불러내어 인도해 주신다. 요한복음 10:3에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시몬을 불러 제자로 삼으시고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으며, 부활하신 다음에 무덤에 찾아간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실상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무슨 형편과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우리의 실정을 다 아시고 우리를 불러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는 것은 그 집에 구원이 임한 것이요 영원한 복이 임한 것이다. 예수님을 모신 집은 금생과 내세에 참으로 복이 있는 집이다.
. 19:6-7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급히 예수께서 부르시고 명하실 때에 급히 순종해야 한다.
즐거워하며 영접 믿음있는 자는 예수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영접하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속히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과 더불어 먹을 수 있다(계3:20).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고(요1:12)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유대인은 예수님이 죄인인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비방하였다.
.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음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집에 모시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진리를 많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말씀을 받을 때에 예수님을 좀더 발견하게 되었고 자기를 발견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자기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것과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겠다고 회개한 것으로 증명된다.
소유의 절반을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선을 행할 마음이 생겼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나니 재물의 가치를 바로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재물을 의지하여 살았고 생명이 재물에 있는 줄 알았으나 예수님을 발견한 후에는 모든 가치관이 달라졌다. 누가복음 12:15에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삭개오도 사람의 생명이 재물의 넉넉한데 있지 않은 줄을 알았으며 또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이제는 주를 위해서만 살려고 작정했고 자기의 재물로 선한 일을 하려고 결심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일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또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고 몸까지 단 마음으로 바쳐 드리게 된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시면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시면 그 일에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해야 한다.
사배나 갚겠나이다 출애굽기 22:1에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쓸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고 했다. 삭개오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작정한 것은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성도가 남의 빚을 졌거나 토색하고 사기한 것이 있으면 다 갚아야 한다. 갚을 때에 사 배를 갚는 것이 좋고 그렇게 못할 경우 본전이라도 갚아야 한다. 자기 쓸 것은 다 쓰면서 남에게 빚진 것을 갚지 않는 것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지 그 빚을 갚도록 힘써야 한다.
.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여 재산에 대하여 믿음을 쓰는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고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해 주시려고 오셨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자기의 뜻대로 사는 자들은 다 잃어버린 양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속히 오라고 부르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불러 주실 때에 속히 예수님께 나아가 자기 심령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으며, 주를 위해서 충성하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二. 므나 비유(11-27)
. 19: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예수님이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으로 제자들은 잘못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또 성도들의 구원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나가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그 할 일은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농사는 하지 않고 곡식을 추수하기만 기다리는 것과 같다.
. 19: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어떤 귀인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 예수께서 부활 승천 하셨다가 말일에 왕권을 가지고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이 귀인이 열 사람의 종을 불러서 각각 은 한 므나씩 나눠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하였다.
므나는 은의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로서 한 므나는 백 데나리온에 해당된다. 므나에 대한 신령한 뜻은 기독 신자가 믿을 때에 받은 중생한 영과 그 영이 소유한 은사와 사용할 능력을 가리킨다. 중생한 영은 모든 신자에게 각각 하나씩 똑같이 주신 것이다. 이것은 마태 복음 25:14-30의 달란트 비유와 다르다. 달란트 비유는 사명(使命)을 맡긴 것을 가리킨다. 맡은 달란트 분량이 다른 것은 맡은 사명이 크고 작음을 의미한다.
장사하라는 것은 중생한 영을 쓰고 은사를 사용하여 믿음을 지켜서 중생한 영이 자라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을 힘입어 중생한 영을 써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면 많이 자라나게 된다.
. 19: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백성은 이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러나 그 귀인이 마침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하여 다 불러모았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성도들이 믿음 지킨 대로, 영이 자라난 대로 갚아 주실 것을 가리킨다(마16:27).
. 19: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성수는 세상 만수이므로 중생한 영이 최대한으로 자라난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2 ;2에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으며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 사람은 일생동안 늘 깨어서 영으로 살고 신앙 양심을 쓰고, 주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아서 말씀대로 생명길을 잘 걸어간 사람이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과 건강과 시간과 환경과 여건을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사용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켜 달려갈 길을 마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행20:24).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는 말씀을 따라갔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자기의 생명과 같이 귀히 여기는 독자를 바쳤다. 아브라함도 열 므나 남긴 사람처럼 장사를 잘한 사람이다.
.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주인이 열 므나 남긴 자에게 칭찬하고 상급을 주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그 종이 주인의 명을 순종하여 힘써 장사하였으므로 잘하였다는 칭찬과 착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성도가 이 세상에서 충성한 것은 장차 하늘 나라 에서 받을 상급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일이다(롬8:18 참조).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천년 왕국과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믿음 지킨 성도에게 열 고을 다스리는 것만큼 큰 것을 맡기고 그만한 권세와 영광을 주실 것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5:21의 \"많은 것으로 맡긴다\"는 말과 누가복음 22:28-30의 예수님과 함께 시련 받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하늘 나라에서 많이 맡는 자도 있고, 12지파를 다스릴 자도 있는 것을 보아 성도가 하늘 나라에 가서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일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만큼 영적 인격과 권세와 영광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도 있다(마5:19). 어떤 성도는 구원은 받았으나 불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자도 있다(고전3:15).
. 19:18-19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이 사람은 먼저 사람에 비해 절반을 남긴 자이다. 이 사람은 자기 중생한 영과 모든 은사를 전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재산과 건강과 시간과 힘과 환경을 열 므나 남긴 사람에 비해 믿는 일에 절반만 사용한 자이다. 그러므로 칭찬과 상급도 다르다. 열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라고 칭찬하였으나 이 사람에게는 그러한 칭찬이 없고 단지 다섯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라고만 하였다. 그 이유는 열 므나 남긴 사람에 비해 열심과 충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같은 자본을 받았으나 왜 이 사람은 절반만 남겼는가? 이 사람은 모든 자본을 투자하여 힘써 장사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할 수가 없었다.
이 므나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는 다르다. 달란트 비유는 성도에게 준 사명과 직책을 말하는 것으로서 처음 맡길 때에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큰 일할 사명) 맡기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게(적은 사명) 맡겼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남긴 것이나 두 달란트 맡은 자가 두 달란트 남긴 것이나 칭찬과 상급이 같다. 그 이유는 다 같이 배(培)를 남김으로 충성한 정도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는 같은 자본(한 므나씩)을 받아서 한 사람은 많이 남겼고 또 한 사람은 적게 남겼기 때문에 똑같은 칭찬을 할 수 없다.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한 사람은 열 고을을 다스릴만한 인격과 능력과 권세가 있으므로 열 고을을 맡겼고, 다섯 고을을 차지한 사람은 그만한 능력과 인격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섯 고을을 다스리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똑같이 나누어준 중생한 영과 그 사용 능력을 가지고 장사를 열심히 하여 영이 많이 자라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많은 것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믿는 일에 힘써 인격이 잘 만들어지고 중생한 영이 많이 자라나야 하늘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된다.
. 19:20-21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이 사람도 한 므나를 받았으나 그것을 수건에 싸두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가 장사하지 않은 것은 주인에 대하여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 함 이 사람은 하나님이 엄한 분이시므로 장사하다 밑지면 큰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장사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분이시므로 자기가 장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거둘 것을 거두고 취할 것을 다 취하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가 안 해도 하나님께서 다 하실 줄로 생각한 것이다.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종이 주인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는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리는 둔 것을 취하시고, 심어서 거두도록 하신다. 그런데 이 종이 게을러서 일하지 않고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러한 변명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 19: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악한 종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거역했으니 악한 종이요, 주인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으니 악한 종이다. 또 은행에라도 맡겼으면 변리라도 받을 수 있을 터인데 그 일을 하지 않아 주인의 일에 손해를 주었으니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 19: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은행 이자는 자연 증식 방법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 만물의 원리가 자연 번식(증식)을 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동물이나 식물도 자연 번식되고 의와 악도 점점 자라나게 되어 있다. 장사하지 않고 수건에 싸둔 것은 자연 증식도 못하도록 막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가 그것을 투자하여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자요 하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할 자이다.
. 19:24 성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한 므나를 빼앗는 것은 중생한 영을 빼앗는다는 것이 아니고 중생한 영이 사용할 능력과 은사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준다는 것은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이 더욱 많이 준다는 뜻이다.
. 19:25-26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영의 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이미 있는 은사도 빼앗긴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많은 은사를 주어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게 하신다.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자에게도 지옥에 던진다는 말이 없고 책망만 하였으니 그가 지옥에 가지는 않고 해받는 구원을 얻는다(고전3:15 참조). 그 이유는 그도 한 므나(중생한 영과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번 중생한 자는 절대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그가 빼앗긴 것은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능력과 은사만을 빼앗긴 것이다.
. 19: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세상 불신자들은 예수님이 왕 됨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러한 사람들을 심판하여 지옥에 멸하신다.
⊙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 비교
마태복음 25:14-30에 있는 달란트 비유와 본문의 므나 비유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달란트 비유는 각각 재능대로 그 달란트를 맡겼으므로 많이 맡은 사람이 있고 적게 맡은 사람이 있다. 즉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 한 사람은 두 달란트, 또 한 사람은 한 달란트를 맡았다. 그러므로 많이 맡은 사람은 많이 남겨야 되고 적게 맡은 사람은 적게 남길 수밖에 없다. 힘을 다 기울여도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은 두 달란트 밖에 더 못 남긴다. 그러므로 다섯 달란트 남긴 자나 두 달란트 남긴 자가 칭찬과 상급이 똑같다.
그러나 므나 비유는 각자에게 똑같이 한 므나씩 나눠주었으므로 각자가 힘써 장사하면 모두 열 므나를 남길 수 있으나, 충성한 정도에 따라 어떤 사람은 열 므나를 남겼고 어떤 사람은 다섯 므나를 남겼고, 어떤 사람은 한 므나 그대로였다. 달란트는 성도에게 맡긴 사명과 직책을 가리키고, 므나는 중생한 영과 그 영이 사용할 수 있는 은사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엘리야 같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이요, 사렙다 과부 같은 여자는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 맡은 자이다. 그 과부는 아무리 힘을 써도 맡은 사명이 작기 때문에 엘리야만큼 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과부도 자기의 있는 분량을 다 기울여서 충성하면 천국에 가서 칭찬과 상급이 같다. 그러나 므나 비유는 칭찬이 같지 않다. 열 므나 남긴 사람에게 제일 칭찬이 많았다. 다섯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만 했고 칭찬은 없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이 자라난 정도에 따라 칭찬과 상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三. 나귀를 예수께 바침(28-34)
. 19: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앞서서 가시더라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들로 인하여 공기가 험악하고 살기가 등등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수님이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주저했다(막10:32). 그러나 예수님은 앞장서서 담대히 올라가셨다.
. 19:29-30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예수께서 베다니와 벳바게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어 맞은편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끌어오도록 명하셨다. 벳바게는 감람산의 서남쪽에 있고, 베다니는 감람산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 스가랴 9:9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예수님은 새 예루살렘의 왕이므로 아무도 타지 않은 새 나귀를 타려고 한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곡식의 첫 열매와 첫 것을 바치는 것이 좋다.
. 19: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예수께서는 나귀 임자의 믿음을 미리 아시고 이와 같이 명하신 것이다. 무엇이든지 주가 쓰시겠다고 하면 즉시 바치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 19: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가보니 나귀 새끼를 만나게 되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가보면 반드시 하나님이 일해 놓은 것이 나타나고 좋은 결과가 생긴다.
. 19:33-34 나귀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천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제자들이 그 나귀 새끼를 푸니 임자가 나타나 왜 나귀 새끼를 푸느냐고 물었다.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답하니 주인이 그 나귀를 가져가도록 허락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렇게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된다. 그 주인이 허락한 것은 주께서 쓰시겠다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바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四. 예루살렘 입성(35-40)
. 19: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새끼 위에 걸쳐놓고 예수를 태우니
예수께서 왕의 거동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므로 나귀새끼를 타고 가신 것이다. 그때 만일 나귀를 바치지 않았다고 하면 예수님이 왕의 거동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책임을 그 나귀의 주인이 지고 그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바쳐야 될 것을 바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된다. 그가 나귀를 바쳤기 때문에 예수님이 왕의 거동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그리스도의 왕권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그가 나귀를 바친 것은 영원한 상급으로 천국에 남아있게 되었다. 우리도 주님의 구원운동에 필요하다고 하면 우리의 가장 요긴한 것이라도 아낌없이 바쳐야 주의 구원 운동도 잘 되고 자신도 복을 받는다. 겉옷을 편 것은 왕의 거동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다.
. 19:36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가는 길에도 자기들의 겉옷을 펴서 그 위로 지나가시게 하였다. 이때 예수님을 태운 나귀는 사람들이 펴놓은 옷 위로 걸어가며 영광을 받았다. 예수님께 이용된 나귀도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하면 예수님을 위해서 재산과 생명을 희생해 드린 성도는 얼마나 존귀와 영광을 받겠는가! 그러므로 무엇이나 주께 이용되고 주의 구원 운동을 위해 바쳐 드리는 자가 복된 자이다.
. 19:37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감람산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산으로 여기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약간 경사진 내리막 길이며 그 길로 내려가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예루살렘에 당도하게 된다. 그 길로 예수님이 내려갈 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바라보였고 많은 무리가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 19: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왕이여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 왕이요 우주의 왕으로 믿고 찬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왕으로서, 그 왕권을 가지고 모든 대적 마귀를 다 멸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통치하실 분이시다. 그러므로 \"왕이여\" 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는 평화 이것은 누가복음 2:14에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한 것과 동일한 뜻이다. 왜냐하면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는 영적 평화이며 영적 평화는 곧 하늘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평화가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이것은 누가복음 2:14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라고 한 말과 같은 뜻이다. 가장 높은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그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영적 평화를 주는 것이다.
. 19: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찬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반대하며 책망한다.
. 19: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마땅히 찬양해야 할 사람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들어서 그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돌들은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을 가리킨다(롬11:17). 오늘날에도 먼저 믿고 많은 은혜 받은 사람들이 주를 위하여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죄인으로 취급받는 비천한 사람들을 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주신 은사를 빼앗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 풍성한 은사를 주신다.
五. 예루살렘을 보고 우심(41-44)
.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세 번 우셨다. 첫 번째는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을 때 우셨고(요11:35), 두 번째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보고 우셨다. 세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우셨다(히5:7). 예루살렘은 그 당시 유대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요, 46년 동안에 지은 아름다운 성전은 유대교를 상징하였다. 그러나 유대 종교가들의 타락상과 죄악상을 예수님이 보실 때에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임할 것을 아시고 불쌍히 여겨 우신 것이다.
. 19: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평화에 관한 일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을 대속하여,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려고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은 평화에 관한 일이다. 이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나 이것을 모르는 자는 멸망하게 된다. 그들이 평화의 복음을 배척하다가 멸망할 것을 예수께서 불쌍히 여겨서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좋을 뻔하였거니와 이 문구는 우리 한국어 성경에 작은 글자로 쐬어 있으며 원문에는 없는 말씀이다. 번역자들이 원문의 뜻을 밝히려고 기록한 것이다.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화에 관한 일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타내 보여 주시고 들려 주셨으나 심령의 눈이 어두워서 그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여 멸망의 길로만 나아가고 있다. 왜 눈이 어두워졌는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식주의 종교 생활에 빠져서 외식과 탐욕과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시대상을 보지 못했다(마16:3). 분별할 만한 시대의 징조가 나타났는데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여 주신 징조가 무엇인가?
①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이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으나 그들은 옛날 죽은 엘리야가 살아나야 된다는 그릇된 성경 지식 때문에 깨닫지 못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은 말라기 이후 사백년만에 나타난 회개 운동으로서 많은 사람이 나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큰 구원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② 세례요한이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먼저 계신이요(요1:30),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 하였고(요1:27), 그는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하시고(마3:12),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 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도 믿지 않은 것은 그들의 눈에 숨겨졌기 때문이다. 눈이 어두워서 시대상을 알지 못하였다.
성도들도 신령한 귀가 열려서 신령한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되고 또 신령한 눈이 열려서 그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이 시대가 노아 시대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이 된 것을 우리가 깨닫고, 이 시대를 분별하여 믿음에 바로 서야 한다.
. 19:43-44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날이 이를지라 주후 70년 예루살렘 심판의 날을 예언한 것이다. 그때 로마 디도 대장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는데 그때 로마 군인들이 아이 밴 자들의 배를 찌르고 많은 어린아이들의 다리를 잡고 돌에 메쳐 죽였으며, 성전을 헐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산산조각을 냈다고 한다. 참으로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 이것은 말세 환난에 대한 예언도 된다. 말세에도 종교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할 때가 온다.
권고는 헬라 원어 (에피스코페)로서 방문, 조사, 감독, 처벌이란 뜻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로 권면했으나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권면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심판하거나 멸망시키기 전에 권고하시는 기간이 있다. 그 기간에 권고를 받으면 구원을 받고 그 권고를 받지 않으면 멸망한다. 노아의 때에는 노아를 통해서 권고했고 소돔 고모라 시대에도 천사를 보내서 권고했으나 듣지 않다가 멸망했다. 니느웨는 요나의 권고를 들었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신령한 눈으로 보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앞날을 다 내다 보셨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보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권고를 받지 않다가 얼마 후(주후 70년)에 멸망했다. 오늘날 이 시대는 하나님이 권고하는 때이다. 이 기간이 얼마나 되겠는지 모르나 권고받는 기간에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권고를 받아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六. 성전을 청결케 하심(45-48)
. 19:45-46 성전에 들어 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놓고 돈을 바꾼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특별히 구별해 기른 소나 양을 사서 제사를 드리라고 했고,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진 돈으로 연보하지 말고 성전에서만 쓰는 세겔로 바꾸어서 연보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것을 순종하여 성전에서 소, 양, 비둘기를 사서 제사를 드렸고, 돈을 바꾸어서 연보를 했다. 그러나 실상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 소나 양을 비싸게 팔아서 이(利)를 보고 있었다. 유대종교는 이렇게 탐욕주의와 의식주의와 교권주의로 기울어져서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심판자의 자격으로서 물건 파는 자를 다 내어쫓고 성전을 정결케 하셨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은 하나님을 섬기는 집을 가리킨다. 누구나 부담없이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사귀고 하나님께 은혜받는 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교회이다. 여기에 이권을 개입시키는 것은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이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19:47-48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은 당국자들이 죽이려고 하는 위협을 무릅쓰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이는 아무쪼록 천국 진리를 다 전파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이로 인하여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죽이려고 했고 백성들은 예수님께 귀를 기울여 복음을 받는데 더욱더 열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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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장 납세
(대 지)
一. 예수님의 권세 문제(1-8)
二. 농부 비유(5-19)
三. 가이사에게 납세하는 문제(20-26)
四. 부활에 대한 문답(27-40)
五.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41-44)
六. 외식하는 종교가들을 경계하심(45-47)
(본문강해)
一. 예수님의 권세 문제(1-8)
. 20:1-2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힐문이 들어왔다. 그것은 예수께서 왕의 권세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과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고치신 일에 대하여 두 가지로 따져 물은 것이다.
첫째는 그것이 무슨 권세이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권세를 누가 주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인정하여 준 권세만 참된 권세로 알았다. 그런데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에게 그러한 권세를 준 일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이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유대 나라의 의회요, 재판권이 있는 최고 의결 기관이다. 한 지파에서 6명씩 72명으로 구성되어 이스라엘의 종교에 대한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하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하며, 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에 많은 사람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찬송한 일들이 무슨 권세로 말미암은 것인지 질문하였다. 큰 권세가 나타났으므로 무시할 수는 없으나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는 권세를 준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권세인지 사람이 준 권세인지, 아니면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행사하는 권세인지를 말해 보라는 것이다.
. 20: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먼저 내가 묻는 말에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대답하여 주겠다고 조건을 붙였다.
. 20:4-5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준 것은 하늘로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하고 예수님이 질문하셨다. 그 때에 그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대답하면 하늘로서 왔다고 해야 옳다. 온 백성이 다 그렇게 알고 있었고, 또 그들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세례 요한이 왕을 면책하다가 순교 당한 다음이었으므로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온 것임이 확실히 인정받았을 때이다.
그러나 그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왔다고 말하면 요한도 믿고 예수님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모든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기 때문에 백성들이 자기들을 돌로 칠 염려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 의논한 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정치적인 답변이었다. 실제로 아는가 모르는가가 문제가 아니고 안다고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모른다고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하여 치밀하게 계산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편을 택하여 답변한 것이다. 정치적인 답변은 언제나 양심을 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써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대답하는 것이다.
양심을 버리고 자기의 유익을 따라가는 것은 종교인이 아니고 하나님과 신앙을 버린 사람이다. 종교인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세상 정치인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타락한 것이다. 세상 정치인들은 자기들 입장이 곤란하면 아는 것도 모른다 하고, 또 자기에게 유리하면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여 옳은 것은 옳다 하여야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여야 한다.
성도가 선한 양심을 쓰지 아니하면 믿음이 파선된다(딤전1:19 참조). 무슨 일이나 목적과 방편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한다.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맞더라도 방편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그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하여도 결국 마귀의 일을 해 준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과 방편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되어 가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분별하여 옳은 일만 행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는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선한 양심을 버리고 자기들의 욕심과 시기하는 마음으로 정치적인 답변을 한 그들에게 예수님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지 않으시고 이르지 않겠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모른다고 하면 예수님도 거짓말하는 것이 되므로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겠다\"고 하셨다. 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 양심을 버리고 진리를 찾는 마음이 없이 욕심만 따라가는 그들에게는 진리를 말하여 주어도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진리를 가르쳐 주어도 물고 찢어 손해만 나게 할 것이므로 가르쳐 주시지 않으신 것이다.
二. 농부의 비유(9-19)
. 20:9-12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쫓은지라
한 사람은 하나님을 비유하고, 포도원은 교회(구약 교회나 신약 교회)를 비유한 것이다. 타국은 천국을 가리키고, 농부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때는 하나님이 열매를 요구하시는 때이며, 종들은 선지자들을 말한다.
주인이 열매를 받으려고 종 한 사람을 농부들에게 보내었으나, 농부들은 종을 심히 때려서 보내었다. 주인이 두 번째 종을 보냈으나 농부들은 그도 심히 때려서 보냈다. 주인이 세 번째 다른 종들을 보내니 그들도 심히 때려서 상하게 하여 돌려보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러 선지자들을 핍박한 것을 말한다.
. 20:13-16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흑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포도원 주인이 생각하기를 내 아들을 보내면 저희가 공경하리라 하고 자기 아들을 농부들에게 보내었다.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리킨다.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이니 죽이고 포도원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포도원 밖에 쫓아내어 죽였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것인데, 농부들은 자기의 것을 만들어 놓고 그 아들을 죽였다. 농부들은 도적이요, 살인자요, 배은망덕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주인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주어야 되겠다고 하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 열매를 바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이 포도원(교회)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하나님께 바쳐야 할 열매를 바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큰 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요 인간의 것이 아니다. 목사의 교회도 아니고, 장로의 교회도 아니며, 교인들의 교회도 아니다. 열매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하며 자기가 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교회에 나와서 자기의 유익을 보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김 현봉 목사님이 전에 성경 학교에서 시험치를 때에 학생에게 묻기를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였다. 학생의 대답이 \"천당 가기 위하여 예수 믿습니다\" 하면 낙제였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여 믿습니다\" 해야 합격되었다. 자기를 위해 예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믿어야 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예수를 믿어야 한다. 교회 나오는 것도 자기가 대접받으려고 나오면 안되고, 하나님을 대접하려는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무슨 열매를 하나님께 바칠까? 공부한 열매, 사업의 열매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나그네이다. 하나님이 종을 보내어서 열매를 바치라고 하면 바쳐야 한다.
옛날에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으나, 오늘날은 성도가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 하나님의 감동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행동이다. 또 제 때에 실과를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이 포도원을 빼앗아 제 때에 실과를 바치는 자에게 주신다.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자기를 가리키는 줄 알고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 20:17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이것은 시편 118:22 이하에 있는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하였다.
건축자들은 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건축자가 쓰지 못하겠다고 버린 돌이 가장 요긴한 기초돌이 되었다는 뜻인데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못 쓰겠다고 십자가에 못박아 내어 버렸으나, 그 예수님이 영적 성전의 머릿돌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거대하고도 영원한 영적 성전이 건축되어 나아가게 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이한 일이다.
.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는 깨어지고 멸망한다는 뜻이다.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심판할 것을 가리킨다. 주님의 심판 날에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은 심판을 받아 다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말씀대로 되어진 것만 영원히 남는다.
. 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 앞에 옳게 보이려고 하므로 생명의 도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많은 백성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다.
三. 가이사에게 납세하는 문제(20-26)
. 20:20-21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총독과 권세자들에게 붙이려고 점령을 보내어 예수를 시험하게 하였다. 만일 올무에 걸리기만 하면 정죄하여 매장하려고 자기들의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정탐으로 보냈다(마22:16). 헤롯 당원과 바리새인은 원수지간이었으나 예수를 모함하는데는 합작이 되었다. 그들은 교활하게도 예수님을 칭찬하며 간교한 말로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수단을 썼다. 그리하여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평소에 하던 대로 말하게 하여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의도였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무리들이다.
. 20: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 불가하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다. 하면 유대인의 기대에 어긋났으므로 그리스도의 자격이 없다고 그들은 말할 것이고, 만일 바치는 것이 불가하다 하면 가이사의 반역자라고 하여 총독이나 치리자에게 붙여서 형벌을 받게 하려는 의도였다.
. 20:23-24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데나리온 은전으로 된 로마 화폐인데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국가의 세금은 데나리온으로 냈다. 데나리온에 새겨져 있는 형상과 글에 대하여 예수님이 물으시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답변했다.
. 20:25-26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해서도 죄가 된다. 병역, 납세, 교육, 근로 등 국가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나님께도 옳고, 국가에 대해서도 옳은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
①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② 우리의 몸과 생명과 가족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③ 주일과 십일조는 특별히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에 일 하는 것은 날(日)도적이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다(말3:8).
④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된다.
⑤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돌려야 되고, 인간이 영광을 취하면 안 된다.
⑥ 모든 권세와 능력과 정치의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시편 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라고 하였다. 내가 소유한 모든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마음으로 하나님께 모두 바쳐 놓고 살아야 한다. 무엇이나 \'내 것\'으로 삼아 놓고 살면 안 된다.
교역자가 교회를 자기 것으로 삼이 놓으면 악한 일이며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언제든지 가야 한다. 물질(재산)과 가족과 명예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 놓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값으로 산 것이다(고전6:19-20 참조).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다른 곳에 구멍이 뚫어져 나간다. 사기나 횡령을 당하기도 하고 잘되던 사업이 잘되지 알거나 병이 나서 돈이 병원으로 나가기도 한다. 이것이 전대에 구멍이 뚫어진 것이다(학1:6 참조).
성도는 하나님의 징벌이 국가의 징벌보다 더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한번 불어 버리면 많은 돈이 소리 없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온 나라가 저주를 받고 하나님께 바치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겠다고 했다(말3:8-10). 그들은 예수님이 원리 원칙을 들어서 지혜 있게 말함을 듣고 책잡지 못하고 도리어 기이히 여기며 돌아갔다.
四. 부활에 대한 문답(27-40)
. 20:27-33 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만일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어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저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저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사두개파는 바리새파와 교리가 서로 맞지 않는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영도 없고 천사도 없다고 주장하는 현세주의 자들이다(행23:8). 그들이 신명기 25:5에 있는 말씀을 들어서 후사 문제 때문에 이러한 말로 부활을 반대하였다. 그들이 \"칠 형제가 다 한 여자에게 장가들었는데 부활 때에는 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어 보았다.
. 20:34-36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믿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는 즉시 영혼은 천국에 가고, 육신은 장사지내면 흙으로 돌아가서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된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그때에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신령한 몸이 되어 천사와 같이 거룩한 생활을 하며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데, 그것은 부활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이다.
. 20:37-40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말씀이 옳으니이다 하니 저희는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출애굽기 3:6에 하나님께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아브라함보다 약 600년 후의 사람이다. 모세의 때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죽은지 수 백년 후인데 그들의 영이 죽어 없어졌다고 하면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였겠는가!
사람이 죽어서 그 영이 없어진다고 하면 아브라함이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끊어지고 종결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죽은지 약 600년 후에도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라고 하신 것은 그 때에도 아브라함의 영이 살아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과거의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교제하며 관계를 맺었다는 뜻이 아니며, 현재에 살아있는 아브라함과 교제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부활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행23:8)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천국에 가서 살아있는 것을 보면 영이 있는 증거요 영이 내세에 가서 산다는 증거이다. 동시에 장차 육체도 부활하여 하나님과 같이 산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말씀을 듣고 서기관 중 하나가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라고 한 것은 아마 그는 바리새인으로 자기 교리에 맞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五.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41-44)
. 20:41-4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면 다윗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라고 했겠느냐고 예수님이 물으셨다. 그때 예수님은 시편 110:1을 인용하여 말씀했다. 다윗이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증거했다. 그 뜻은 그리스도가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내 주\"라고 하였고, 인성으로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그리스도가 모든 원수를 정복하고 승리할 것을 가리킨다.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나님 우편은 영광과 능력의 자리요 요긴한 자리이다.
. 20: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뇨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르기 때문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고, 따라서 예수님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六. 외식하는 종교가들을 징계하심(45-47)
. 20:45-46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지방의 유지(有志)인데,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고, 잔치의 상좌에 앉아 많은 사람에게 선생의 칭호를 받으며 명예와 영광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외식하는 자를 삼가라고 말씀하였다. 외식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 20: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과부를 도와 줄 책임이 있으나 수단을 써서 도리어 과부의 재산을 빼앗아 먹는 자들이었다. 그런고로 거룩한 체하고 긴 옷을 입고 거리에 서서 길게 기도하며 사람에게 잘 보이며 칭찬 받으려고 하는 외식을 하였다. 이 같은 종교가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자들이요, 종교를 이용해서 착취하고, 자기를 위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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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장 말세
(대 지)
一. 과부의 헌금(1-4)
二. 말세의 예언(5-38)
1. 성전이 무너질 것(5-6)
2. 말세 징조(7-11)
3. 말세 환난(12-19)
4. 예루살렘 멸망(20-24)
5. 그리스도의 재림(25-28)
6. 종말 징조와 성도 준비(29-38)
(본문강해)
一. 과부의 헌금(1-4)
. 21:1-3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당시 성전에는 연보궤를 놓고 거기에 연보를 넣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연보궤를 놓고 연보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부자는 많은 돈을 넣었고, 과부는 렙돈 두 개를 넣는 것을 보셨다. 렙돈은 헬라 동전의 명칭인데, 이 돈은 로마 화폐 ½ 고드란트에 해당된다. 고드란트는 로마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이다. 마가복음 12:42에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라고 했다.
예수님은 부자가 많은 돈을 넣은 것보다 과부가 두 렙돈 넣은 것을 더 많이 넣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 과부의 마음과 정성과 희생의 제물을 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풍족한 가운데서 그 일부를 넣었으나,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정성과 힘쓰는 면을 보신다.
그러므로 연보할 때 부득이 함으로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①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고후 8:3). ②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야 한다. ③ 내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 ④ 하나님이 감동시키는 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힘을 다하여 바쳐야 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대로 바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도 풍성하게 주신다.
二. 말세의 예언(5-38)
1. 성전이 무너질 것(5-6)
. 21:5-6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루살렘 성전은 미석(美石)으로 꾸며 대단히 아름다웠고 거대한 성전이었다.
헌물은 성전에 바친 물건들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대헤롯이 바친 사람의 신장만한 금제 포도나무와, 아그립바왕이 바친 황금 사슬과, 각국의 왕들과, 유대의 부호들이 바친 보물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전의 외부가 아름답게 잘 꾸며진 것을 예수께 자랑삼아 말하였다.
이 성전은 헤롯이 주전 19년부터 유대인의 민심을 사기 위하여 건축하기 시작하여 주후 27년경에는 완성되지 못한 채 46년이 되었고(요2:20 참조), 주후 63년경에 완성이 되었다. 실로 82년간의 긴 세월을 걸려서 굉장히 아름답게 잘 건축해 놓았다. 그러나 이 성전이 로마의 디도(Titus)장군의 침공을 받아 주후 70년에는 완전히 훼파되고 말았다.
이 성전은 유대 종교의 중심이요, 유대인의 큰 자랑거리였었다. 그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이 긴 옷을 입고, 하나님께 분향하며 많은 생축을 번제로 드릴 때에 연기가 하늘에 충천하였다. 또한 제사하는 의식이 굉장하고 어마어마하였으며, 유대인들은 그 성전을 자랑하고, 그 성전을 의지하며 살아갔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그 성전을 자랑삼아 말한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성전과 굉장한 예배 의식, 그 곳에 모이는 많은 군중, 제사장들의 엄숙한 복장, 엄숙한 제사 의식 등의 외부적인 면을 보고 크게 여기고, 자랑으로 삼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이는 면보다도 보이지 않는 이면(裏面)을 보셨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실 때에도 그들의 외부적인 행위보다도 이면을 보셨으므로, 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같이 겉은 깨끗하나 속에는 탐욕과 방탕과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라고 책망하셨다.
교회가 내적 생명이 없어지면 자연히 외부를 꾸미게 된다. 건물을 크게 하고 아름답게 하며, 예배 의식을 훌륭하게 하고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적 생명력이 없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이다(계3: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외부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나 거기서 행하여지는 종교 생활은 내적 생명력이 없고 의식주의로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을 미리 내다 보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물으셨다(마24:2).
\'이 모든 것이란\' 도덕적 부패와 내적 생명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
2. 말세 징조(7-11)
. 21:7-8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어느 때에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겠으며,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 때에 예수님의 제일 첫 마디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말세에는 많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을 미혹하고, 많은 사람이 거기에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자유주의와 신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바른 진리의 신앙에 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많은 교회들이 이미 신신학으로 흑은 신비주의로 넘어갔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보수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신비주의로 기울어지거나 거기에 빠진 교회들도 많이 있다. 그리하여 신비주의와 현실주의 사상이 누룩과 같이 온통 교회를 부패시켜 망치고 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썩히기 때문에 교회에 누룩이 들어오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누룩을 제거하지 못하면 마침내 전체가 다 썩어서 참 교회가 되지 못한다.
마귀가 사람을 통해서 들어온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도 아담의 가장 가까운 아내를 통해서 마귀가 역사하였다. 대개 사람이 미혹을 받는 것은 사람에게 끌려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나 가까운 이웃에게 끌려서 미혹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린도전서 15:33에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라고 했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욕심을 때려야 한다. 욕심에 끌리면 미혹을 받게 된다(약1:14). 마귀는 물욕과 정욕과 사욕으로써 미혹을 시킨다.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다. 이것이 욕심이다. 먹음직하다는 것은 물욕이며, 보암직하다는 것은 안목의 정욕이요,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이생의 자랑, 즉 사욕이다. 디모데후서 3:6-7에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자기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둘째,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성경이 모든 생활의 유일한 척도요 바른 길이다. 예수께서도 마귀의 유혹을 성경 말씀으로 이기셨다.
셋째, 신앙 양심을 써야 된다. 신앙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선되기 때문에 마귀를 이길 수 없다.
. 21:9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난리와 소란 어지러운 일들이 세계 각처에 일어날 것을 말한다. 말세에는 세계 각처에서 어지러운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니고, 끝이 가까운 징조이다.
. 21:10-11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세에는 민족과 민족이 서로 대적하여 큰 혼란과 전쟁이 일어난다.
민족이 민족을 당파 싸움이나 사상전을 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말세에는 이런 싸움이 처처에 일어날 것이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사상 대립과 작은 당파 싸움이 점점 커져서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으로 확대되고, 마침내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이 말세의 징조이다.
지진은 폭동을 가리킨다. 말세에는 여기저기서 폭동이 일어날 것을 가리킨다. 평안하던 사회가 갑자기 폭동이 일어나서 세상이 요란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사회가 대단히 불안정하게 되며, 사회의 안녕 질서가 파괴되고, 각처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그 때에 자기 그룹, 당파, 민족끼리 뭉치고, 동맹체끼리 뭉쳐서 대립하다가 그것이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이 되고, 마침내 세계적인 분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다.
또 어느 사회에서나 처음에는 어지러운 난리가 일어나고, 그것으로 인하여 혈통이나 사상이 같은 사람끼리 뭉친다. 그리하여 우두머리를 세우고 조직적으로 대항을 하게 되면 마지막 끝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장하는 단체가 아니라 사람이 주장하고 서로 대적하기 위해서 뭉치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오게 된다. 또 말세에는 실제로 지진이 각처에 있을 것이다. 1985년 10, 11월 멕시코 지진이나 콜롬비아의 화산 폭발같은 것도 여기에 속한다.
기근 말세에는 모든 것에 기근이 드는 때이다.
첫째, 영적 면과 말씀에 기근이 든다. 아모스 8:11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와 신령과 진리를 떠나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영적 면과 말씀에 기갈이 온다. 또 세상주의의 바벨탑이 높아져 하나님과 진리가 가리워지므로 영적 기근과 말씀의 기근이 있게 된다. 말세에 큰 환난이 오게 되면 성도들이 예배당에 모이지도 못하고(단11:31),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도 배울 기회가 없다. 이것이 말씀의 기근이다.
둘째, 말세에는 모든 부존자원(賦存資源)이 기근을 당한다. 석유, 석탄, 목재 등 각종 원자재의 기근이 오게 될 것을 가리킨다.
온역은 질병을 가리킨다. 말세에는 각종 병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무서운 일 말세에는 대환난이 오는데, 세상에 무서운 일이 생긴다. 하늘로서 큰 징조는 하늘은 신령한 영역을 가리키는데, 진리가 어두워지고, 교회와 성도들이 많이 타락될 것을 가리킨다.
3. 말세 환난(12-19)
. 21:12-13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말세에는 대환난이 일어나서 성도들에게 손을 대어 임금과 관리들 앞에 들어가고, 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핍박받는 일로 인하여 성도들의 신앙과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가 될 것이다(빌1:13-18 참조).
. 21:14-15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성도가 핍박을 받아 관리들에게 끌려갈 때에 무슨 말할 것을 미리 염려하면 인간의 생각과 방법이 나오므로 믿음에서 떠나기 쉽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신앙 양심을 써서 성경대로 나아가면, 성령께서 지혜와 총명도 주시고, 구변(口辯)도 주시고, 힘도 주셔서 모든 말을 잘하게 해 주실 것이다.
. 21:16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기독교를 핍박할 때에는 부모나 형제나 친척이 와서 신앙을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때에 자기들의 말을 안 들어주면 그들이 더욱 핍박하고, 또 잡아서 관리나 핍박하는 자들에게 넘겨준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들은 육정으로 생각하여 신앙을 양보시켜 핍박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요, 둘째는, 성도를 잡아 주지 않으면 자기들이 관리나 핍박하는 자들에게 징벌을 받겠기 때문이다.
. 21:17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환난 때는 성도들이 모든 백성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백성들은 대세주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나귀 타고 상경할 때에 호산나 찬송을 부르던 무리들이 빌라도 앞에 가서는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아우성 친 것이 군중들의 심리이다. 군중 심리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
. 21:18-19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큰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성도들의 머리털까지 보호해 주실 것이니 이것을 믿고 성도는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영혼을 얻으리라는 것은 영적 생명을 얻는다, 영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여기 \"영혼\"은 헬라 원어로 (푸쉬케)로서 목숨 또는 생명을 뜻한다. 성도는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야 구원을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
4. 예루살렘 멸망(20-24)
.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역사적으로는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포위하게 될 것을 가리키고, 예언적으로는 기독교가 이방 국가나 반기독 세력에 에워싸이게 될 것을 가리킨다. 기독교가 그 세력에게 몰리워서 에워싸인 성읍과 같이 되고, 종교 활동을 금지 당하고, 핍박과 환난을 받게 되는 그 때는 세상 끝이요,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는 것이다. 현재 이 지구상에는 여러 나라와 여러 곳에서 많은 교회들이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 군대에 에워싸여 있는 것이다.
이 세계 어디서나 죄악이 관영하고, 인본주의와 반기독 세력이 득세하여 성도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군대에게 에워싸인 것이다. 말세에는 참 교회보다 타락된 교회가 많고, 그 세력이 참 교회를 비방하고 핍박하게 된다.
.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유대에 있는 자는 예수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요(갈3:7), 참된 유대인이다(롬2:28-29).
산으로 도망 산은 신령한 시온산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킨다. 말세에는 성도들이 날마다 시온산을 향하여 올라가야 심령이 살 수 있다(갈4:26 ; 계14:1).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소돔 고모라와 같은 죄악의 도성에 빠져 있지 말고, 롯이 소돔성에서 나온 것 같이 그 곳에서 나와서 시온산을 향해 도망치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8:4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발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라고 했다.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촌에 있던 사람들은 도시에서 나와 한적한 곳에서 고요히 신앙 생활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들은 성(도시)으로 들어가지 말고, 계속 신앙의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다. 롯의 처는 소돔 고모라에서 도망치다가 미련이 있어서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롯의 처와 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 죄악 세상에 미련을 두고 돌이키는 자는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히10:38).
. 21:22-23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형벌의 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말한다. 그 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아이 밴 자는 욕심을 잉태한 자를 말한다(약1:15). 욕심을 품고 다니면 마귀가 그 욕심을 미끼로 해서 그 사람을 끌고 가 멸망시킨다. 그러므로 있는 바를 족한 줄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말고, 자족을 배우고, 늘 감사해야 한다.
젖먹이는 자는 믿는 일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다른 것에게 빼앗기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의 마음, 시간, 정력, 재산, 환경은 믿는 일 하는데 사용하여야 할 것이므로 이것들을 다른 데 빼앗기면 믿는 일을 하지 못한다.
누가복음 9:25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했다. 여기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는 것은 자기 만들 요소를 빼앗기고, 영적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 사람은 천하를 다 얻어도 영원히 실패한 자이다. 그러므로 자기 영이 만들어질 요소를 빼앗기지 말고 믿는 일에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 시간, 재산, 마음, 환경을 믿는 일에 사용하여야 한다. 이것들을 세상에 빼앗기는 자는 젖먹이는 자이며 그 사람은 화를 받게 된다.
. 21:24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환난의 날에는 성도가 이방 사람들에게 밟히게 되고, 칼날에 죽임을 당하고 사로잡혀 가게 된다.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기독교가 내내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한 때가 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권고하여 일으켜 세워 주신다. 다니엘 8:13-14에 보면 성소와 백성이 짓밟힐 때가 이천 삼백 주야라고 했다(다니엘 강해서 8:9-14 해석 참조).
5. 그리스도의 재림(25-28)
. 21: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해\'는 진리를 가리키고, \'달\'은 교회를 가리킨다. 달이 햇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교회는 진리의 빛을 세상에 반사하여 비췬다.
\'별\'은 지혜 있는 자, 곧 성도를 가리킨다(단12:3). 말세에는 진리가 가리워지고, 교회가 변질되고(계8:12), 성도들은 많이 타락될 것이다. 이것이 일월 성신에 나타난 징조들이다. 그것은 타락의 징조이다. 그 때에는 진리면이 어두워지고 교회와 성도들이 타락되어 세속화된다.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 바다(물)는 세상을 가리킨다(계17:15). 세상이 어지러워져서 바다의 파도처럼 요란하고 무서운 소리가 나고 요동되고 혼란하게 되어 모든 백성이 우는 것을 가리킨다. 데모나 폭동이나 반란이 각처에서 일어나 혼란하게 되는 것도 이 예언이 응해지는 것이다.
. 21: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말세 대환난시에 세상에 고난이 크므로 성도가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장 미가엘과 모든 천사를 보내어 성도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하늘의 권능들은 천사들을 가리키는데 천사가 성도를 보호해 주려고 일어날 것을 말한다. 다니엘 12:1에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라고 했다. 말세 환난 때에는 천사들을 보내서 성도들을 보호해 주신다.
. 21:27-28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큰 환난 중에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재림하신다.
이런 일은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에워싸이는 일과 일월 성신에 징조가 생기는 일과 세상이 혼란하고 곤고하게 될 일 등이다. 이런 여러 가지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 알고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하였다.
머리를 들라는 것은 깨어나라는 것이다. 안일주의에 빠지지 말고 깨어 기도하고 준비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6. 종말 징조와 성도 준비(29-38)
. 21: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무화과나무는 유대 나라를 가리킨다(렘24:2-6 참조). 예수께서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도 유대 나라가 신앙의 열매가 없으므로 심판받을 것을 가리킨다.
모든 나무는 세계 열방을 가리킨다.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한 것은 9절 이하의 열방에 대해 예언한 것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보라는 뜻이다.
. 21: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무과화 나무가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안다. 그와 같이 이 모든 징조들이 나타나면 주의 재림이 가까운 줄을 알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4:32에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라고 했다.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국권이 회복되고 그 민족이 고토로 돌아오게 될 것을 가리킨다.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이 망해서 유대 민족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약 1900여년 동안 지내오다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국권이 회복되어 세계 각처에서 유대인들이 돌아오게 되었다. 무화과나무는 지금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난 것이다.
.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성도가 신령한 눈을 떠서 말세의 징조를 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소경 노릇하면 하나님께서 예언한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오늘날 이 세대는 무화과나무의 징조가 이루어졌고, 세상 모든 열국에 대한 징조도 다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 이제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 알고 깨어서 대환난을 통과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잘 해야겠다.
. 21:32-3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이 끝나기 전에 이 예언의 말씀이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이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천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되었으며 말씀대로 심판 받아 없어질 것이다(벧후3:5-7).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보다 더 크며 천지는 심판 받아도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다(히1:10-12).
.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스스로 조심하라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이다.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마음을 둔하게 하여 믿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① 방탕함 육욕과 감각의 만족을 위해 자신을 제재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근심하여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언행을 삼가 조심하여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한다.
② 술취함 술에 취하면 정신이 혼미하게 되어 제정신 없이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술취하면 안 된다(엡5:18). 신령한 뜻은 세상 것에 취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요한계시록 17:2에 포도주에 취한 것은 이 세상에 도취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오락이나 물질주의나 향락주의나 세상 문화에 빠져서 거기에 도취되면 마음이 둔해져서 심령이 잠자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걷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부요해지면 방탕과 술 취하는데 빠지기 쉽다.
③ 생활의 염려 가난한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먹고사는데 대한 생활의 염려를 하기 쉽다. 이런 사람은 염려하는데 마음을 빼앗겨 마음이 둔해지고 심령이 잠자고 믿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전심 전력을 기울이며 깨어 생명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마음이 둔하여지고 마음이 둔해지면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서 사소한 죄는 지나쳐 버리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갖지 못하게 된다. 또 말씀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서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깨닫지 못하며 점점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된다. 그러면 동물이 갑자기 덫에 걸리면 도망하여 피하지 못하는 것처럼 환난의 날이 갑자기 닥칠 때에 거기서 나을 수가 없게 된다. 사도 요한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나팔 소리 같이 크게 들렸다(계1:10). 하나님의 음성이 나팔 소리 같이 크게 들린 것은 그의 심령이 깨어 있는 증거이다. 이것은 마음이 둔해진 것과 반대이다.
. 21: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입하리라
이 날은 환난의 날이다. 세상 끝날에 큰환난이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면할 줄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말세 모든 성도는 항상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피하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피난처가 특별한 지역이나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환난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피난처는 어디인가?
성도의 피난처는 하나님 품속이요, 그리스도 안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곳이다. 그 곳으로 피하여 가서 있는 자는 하나님이 만능으로 보호해 주시므로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한다. 단 순교자의 영광스런 반열에 참여키로 예정된 자는 하나님이 악한 자를 이용하여 순교를 당하게 하여 데려다가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앉게 하신다. 그러나 예정한 때가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보호해 주신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생활은 영으로 사는 생활이며 기도해야 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고 힘써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깨어 기도하여야만 장차 오는 모든 환난을 능히 피할 수 있고 예수님 재림할 때에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다.
. 21:37-38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예수님은 매일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쳤다. 이것은 최후까지 가르칠 바를 다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께서 밤이면 나가 감람산에 가서 쉬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즉 쉴 곳을 삼지 않고 하나님으로 쉴 곳을 삼은 증거이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가까울수록 더욱더 기도를 많이 하시며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통과할 준비를 잘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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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장 겟세마네
(대 지)
一. 유다가 예수님을 팔다(1-6)
二. 유월절 준비(7-13)
三. 성찬 예식을 창설하심(14-23)
四. 천국에서 큰 자(24-30)
五. 베드로에 대한 예언(31-34)
六.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35-38)
七.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39-46)
八. 예수께서 잡히심(47-53)
九.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함(54-62)
十. 예수님이 희롱 당하심(63-65)
十一. 공회의 심문(66-71)
(본문강해)
一. 유다가 예수님을 팔다(1-6)
. 22:1-2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보다 백성들을 더 두려워하였다.
. 22:3-6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가 은 삼십으로 예수님을 팔았다. \'은 삼십\'은 종 한 사람의 값이다(출21:32).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의 손에 의하여 종 한 사람의 값에 팔렸다. 세상에서는 돈의 세력이 크지만 천국에서는 의의 세력이 크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와 같이 사람들은 기회를 타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二. 유월절 준비(7-13)
. 22:7-8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무교절의 첫날 예수께서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유월절을 예비하라고 하셨다.
. 22:9-12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유월절 잔치를 준비할 장소를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성내에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를 따라가 그 집주인에게 물어서 그가 보여주는 다락방에 준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락방을 준비해 놓았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 22: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제자들이 순종하여 가보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따라가 다락방을 예비하게 되었다. 그 다락방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었다. 그 집에서 믿음으로 그 다락방을 바쳤으며 제자들은 그 곳에 유월절 잔치를 준비하였다.
三. 성찬 예식을 창설하심(14-23)
. 22:14-15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께서 유월절 잔치 먹기를 원하고 원한 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바치기를 원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몸을 우리를 위하여 희생해 주셨다.
. 22: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예수께서 당신이 유월절 양으로 희생이 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새로운 것을 먹는 신령한 유월절이다.
. 22:17-18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신령한 나라를 말한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6:29에는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새 것\'은 새 포도주인데, 영적 은사를 가리킨다(마9:17). 즉 신령한 나라에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이사야 55:1에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것도 하나님의 영적 은사를 포도주에 비유한 것이다. 이 후에는 예수님이 영적 은사로 너희와 같이 나눌 것이며 이 세상에서 다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성찬 예식을 창설하셨다.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것이요,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 예식은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성찬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시고, 그 성도는 예수님의 살과 피에 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내 몸이라 떡이 예수님의 몸이 되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몸이 떡 속에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속죄 언약의 피이며,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요.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의 떡과 포도즙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고전11:29). 따라서 분별할 만한 연령에 도달하고, 성찬에 참여할 준비가 된 다음에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합당하다. 범죄하고 회개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분별없이 참여하면 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병이 들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전11:30). 우리가 성찬 예식에 참여하려면 회개하여 정결한 심령과 경건한 믿음으로 준비하고 참여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분별력이 없으므로 참여하지 못한다. 믿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 즉 세례 받은 사람만이 준비를 하여서 참여하여야 한다.
. 22: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예수님을 파는 가룟 유다도 그 곳에 왔으므로 예수께서 떡 한 조각을 주어 내어 보낸 다음에 성찬 예식을 거행하였다(요13:30). 그러나 본문에는 순서가 바뀌어 기록되었다.
. 22:22-23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화(禍)가 있다. 우리 성도가 당하는 모든 환난과 고난은 전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서 양심을 안 쓰는 자와 악으로 대하는 자는 앙화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四. 천국에서 큰 자(24-30)
. 22:24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죽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서로 큰 자가 되려고 다투고 있었다.
. 22: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이방 불신 세상에서는 임금들과 권세 잡은 자들이 남을 누르고, 권세로 주장하면서도 은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는 남을 섬기는 자요 으뜸(두목)은 종노릇하는 자이다(마20:28).
.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셨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과 보좌를 내어놓고 이 세상에 오셔서 종살이하다가 마침내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를 흘려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섬기며 희생하여 주셨으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높은 자리인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남을 많이 섬기는 자가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 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험 중에 항상 같이 하였으므로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되겠다고 말씀하였다. 연단을 잘 받은 자에게 나라와 권세가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믿음을 지키고 연단을 받아 자격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도행전 14:22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고, 야고보서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시험을 통해서 연단을 받아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성도로 영적 실력과 인격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이것은 이 세상에서 연단을 받아 실력 있는 자가 되면 천년 왕국과 천국에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五. 베드로에 대한 예언(31-34)
.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밀 까부르듯 키로 밀을 까부를 때 밀의 낱알들이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사단이 성도를 심히 시험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신다. 그러면 왜 베드로가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는가? 이는 그가 믿음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후 즉시 회개한 것을 보면 믿음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떨어졌다면 회개할 수 없다. 회개도 믿음으로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은 본래 믿음이 연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대성통곡하면서 회개한 후에 믿음이 강해졌다(마26:75 ; 눅22:62). 베드로가 대성통곡하며 회개한 것은 믿음으로 목숨을 내어놓고 회개한 증거이다. 베드로는 그 시간에 당장에 잡혀가서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사선을 넘는 회개를 하였다.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회개한 후에 다른 형제의 믿음을 굳게 하라는 것이다. 주의 말씀대로 베드로가 믿음으로 회개한 후에는 모든 형제보다 앞장서서 걸어가며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다.
. 22:33-34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같이 갈 결심을 한 것은 사실이나 그만한 실력이 없었다. 베드로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아 이렇게 장담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가 사선을 넘는 회개를 한 후에 강한 믿음이 생기게 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다(32절).
六.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35-38)
. 22: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예수께서 전에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내어보내실 때에는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었다(마10:9-10 ; 눅9:3, 10:4). 그 때에는 화평시대요 환영받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없어도 복음을 전파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 22: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이제는 어두움의 때요 환난의 때요 예수님을 죽이려는 때이므로 전대나 주머니를 가지고 다녀야 할 시기가 되었고, 또 검도 가지고 다녀야 될 시기가 된 것이다. 전대는 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기구요 주머니는 양식이나 생활 필수품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기구이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어떤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켜 흰옷을 더럽히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이길만한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을 준비해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6:17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다. \'검\'을 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고 자기의 능력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겉옷\'은 두루마기 같은 옷으로 필요 불가결한 옷이 아니고 예절과 위신과 격식을 차리기 위하여 입는 옷이다. 요한복음 21:7에 베드로가 겉옷을 벗고 있다가 주시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둘렀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겉옷은 인생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니고 없어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겉옷을 팔라는 것은 없어도 될 것을 희생하라는 것이다.
생명길을 걸어가는데 없어도 될 것은 희생하고, 없어서 안될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창세기 12:1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한 말씀과 같은 뜻이다. 본토, 친척, 아비집이 다 겉옷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즉시로 순종하여 그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 그가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난 것은 겉옷을 판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간 것은 검을 산 것이다.
마가복음10:29-30에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집, 형제, 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버린 것은 겉옷을 판 것이요 주님과 그 복음의 말씀을 따라간 것은 검을 산 것이다.
누가복음 9:57-62에 예수님을 찾아 온 세 사람은 다 겉옷을 팔지 못하여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한 사람은 평안한 생활을 못 버렸고, 한 사람은 부친을, 한 사람은 가족을 못 떠나서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마태복음 19:21 이하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재산에 매여서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그 청년은 그 재산이 겉옷이었다. 언제나 겉옷을 팔아야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겉옷을 팔지 않으면 말씀을 따라갈 수 없다.
성도가 무슨 말씀부터 따라가야 하는가? 기도하라는 말씀부터 따라가야 된다. 특히 마가복음 1:35에는 예수께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하였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 새벽에 한적한 곳이나 예배당이나 기도원이나 산에 가서 기도해야겠다. 다음에는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드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자기 양심에 가책되는 것을 바로 하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해야 한다. 팔아 겉옷을 회생하는 데도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판다고 한 것이다.
살지어다 말씀을 따라가는데도 전심전력과 많은 공력이 들어가야 한다. 이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을 가리켜 산다(買)고 한 것이다. 지금은 겉옷을 쏟아서 검을 사야 할 때이다. 신앙 생활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 희생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어야 한다. 그리고 말씀(劍)을 사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강건해지고 점점 자라나 그 검으로 모든 마귀의 궤계를 다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검을 사지 않으면 마귀의 궤계를 이기지 못하고 환난 때에 넘어가고 만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희생하여 검을 사서 무장하고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이 되어야 모든 환난과 마귀의 궤계를 이기고 세상을 정복해 나갈 수 있다.
.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이 말씀은 이사야 53:12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인으로 취급받아 죽게 된 것을 이사야가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죄인처럼 죽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예수님에게 관한 일들이 다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 22: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제자들이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하고 검 둘을 보여 드렸다. 예수님은 신령한 뜻으로 검을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검 둘을 내보인 것이다
족하다 검 둘 있는 것이 족하다는 뜻이 아니고 저희가 지금 그만큼 알아들었어도 족하다는 것이다. 신령한 뜻은 몰라도 지금은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 족하다는 뜻이다(신령한 뜻은 앞으로 알게 되겠으니까). 신명기 3:26에 보면 모세가 아바림산(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선 \"그만해도 족하니라\"고 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감으로 족한 것이 아니고 바라만 보아도 족하다는 것이다.
七.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39-46)
.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쫓았더니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 놓고 늘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말세 성도들도 산에서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 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 감람산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예수님의 기도처는 겟세마네 동산이었다.
. 22:40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지 않고는 시험을 이길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40일 금식기도로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고(마4:1-11),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로서 십자가를 이기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산 아래에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고(막9:28-29),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도망치고, 심문 받을 때에 부인하였다.
. 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끓고 기도하여
무릎을 끓고 직접 하나님 앞에 앉는 겸손한 태도이다.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것은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려고 오셨고, 제자들에게도 두 번, 세 번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후에 부활해야 될 것을 가르치신 예수께서 정작 십자가를 져야 찰 때에 그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하셨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십자가는 지되 고난을 면케 해 달라는 것이다 \'잔\'은 고난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순종하는 기도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다 받겠다고 하는 순종의 기도이다. 히브리서 5:7-8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순종을 배우며 기도했다고 하였다.
. 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며 그러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고, 응답해 주신다.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되고(엡6:18),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기도해야 한다.
. 22:44 예수께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한 기도를 하신 것은 십자가 고난을 이기는 기도이었다. 이 기도는 사선을 넘는 기도였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땀에 피가 섞였다는 것이고 땀흘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힘과 심혈을 기울여서 기도할 때에 흘리는 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모든 정력과 모든 심혈과 생명 전체를 다 기울여 하신 것이요 그 때에 흘리신 땀은 보통 흘리는 땀이 아니고 핏방울 같이 귀중한 땀이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 기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하는 자리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다 당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승리적으로 통과하였다. 우리도 모든 고난을 기도의 장소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세상에 나가서 승리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기도의 자리에 앞당겨 놓고,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의 장소에서 이겨야 한다.
이사야 선지 때 앗수르 군대가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에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기도 친히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며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사37:3,14-20).그때 하나님께서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날 밤에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 18만 5천을 격멸시켰으므로 히스기야 왕이 승리하였다.
. 22:43-46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 하라 하시니라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 제자들은 선생이 잡혀 죽게 된 것을 대단히 슬퍼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그것을 이길만한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그들은 믿음이 약하므로 슬픔에 사로잡혔고 또 육신의 피곤에 사로잡혀서 기도하지 못했으므로 실패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다. 누구든지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마귀를 이기지 못하며 결국은 낭패한다. 힘써 기도하는 자라야 모든 시험을 이길 수가 있다.
八. 예수께서 잡히심(47-53)
. 22:47-48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 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예수를 잡으려는 무리를 데리고 가룟을 유다가 앞장서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찾아와서 예수님께 친절한 인사를 하는 것처럼 입을 맞추려고 하였다. 유다의 표리부동한 외식은 더욱 가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고 하셨다. 마태복음 26:50에는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끝까지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다.
. 22:49-51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환도와 몽치가진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므로 베드로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편 귀를 떨어뜨렸다(요18:10). 그 때에 예수께서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시고(마26:52),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시며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었다.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구속사역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이것까지 참으라 정당방위하는 것까지 참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①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잡혀 가서 십자가를 져야 되겠기 때문이요, ②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잔이기 때문이며(요18:11), ③ 예수님은 의를 이루심으로 악을 이기는 길을 걷기 때문이요, ④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기 때문이다.
. 22:52-53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예수님이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쳤으나 때가 이르기 전에는 그들이 잡지 못하다가 이제는 어두움의 때가 왔으므로 그들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잡으려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된 것이다.
九.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함(54-62)
. 22:54-58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예수님이 잡혀서 심문 받으시는 것을 살펴보려고 베드로가 몰래 대제사장의 마당에 들어가 불을 쬐는 사람들 틈에 끼어 들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이므로 자유로이 뜰 안에 들어 갈 수 있었다(요18:15).
베드로가 뜰에서 불을 쬐면서 구경꾼인 체하고 있었는데 비자(여종) 하나가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너도 그 당이라\"고 하니 그때에 베드로가 나는 아니라고 두 번째 부인하였다.
. 22:59-60 한 시 쫌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또 한 사람이 장담하며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6:73에는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도 하였다. 베드로가 독특한 갈릴리 사투리를 쓴 것 같다.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할 때에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강경하게 부인하였다(마26:74). 베드로가 자기 육신의 생명이 우상이 되어 순전히 마귀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 때에 닭이 울었다. 마가복음 14:72에는 닭이 두 번 울었다고 하였다.
. 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그 때에 주께서 돌이켜 사랑의 눈으로 베드로를 보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빛이 베드로에게 비추인 것이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였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할 때에도 예수님은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셨으니 베드로가 심한 가책을 느껴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이 너무 원통하여 자기를 미워하면서 생명을 내어놓고 심히 통곡하는 회개를 한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베드로가 일생 동안 매일 새벽닭이 울 때에 일어나서 기도하기를 \"주여 내가 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한 죄인입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였다고 한다. 인간이 연약하여 일시적으로 쓰러질 수 있으나 예수님이 권고하실 때에 그 말씀을 생각하고 다시 회개하면 소망이 있다.
베드로가 회개하고 다시 일어섰기 때문에 귀히 쓰는 일꾼이 되었다. 한 번 쓰러졌다고 낙심하지 말고 다시 회개하고 일어서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옛날과 같이 은사를 주어 귀히 쓰는 자가 된다.
十. 예수님이 희롱 당하심(63-65)
. 22:63-65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예수님을 지키는 군인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치며 \"너를 치는 자가 누구냐 말해 보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이와 같이 능욕을 당하고 많은 욕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十一. 공회의 심문(66-71)
. 22:66-69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이어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 들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유대인들이 공회를 모을 때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밝히 말씀해 주셨다. 이는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당신을 밝히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을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22:70-71 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녀라 저희가 가로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그들이 다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고 물을 때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라고 명확하게 답변해 주셨다. 이것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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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장 십자가
(대 지)
一.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제1회 심문 받으심(1-7)
二. 헤롯에게 심문 받으심(8-12)
三. 빌라도에게 제2회 심문 받으심(13-25)
四.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26-38)
五. 십자가상의 한 강도의 신앙(39-43)
六. 예수께서 운명하심(44-49)
七. 예수님을 장사함(50-56)
(본문강해)
一.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제1회 심문 받으심(1-7)
. 23: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세워 놓은 유대나라 총독으로 최고의 사법권과 행정권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 23:2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예수님을 고소하는 죄 몫은 세 가지였다. ① 백성을 미혹하는 자, ② 가이사에게 세(稅) 바치는 것을 금한 자, ③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한 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진 거짓말들이었다. 세상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에도 거짓말로 비방하며 정죄한다.
. 23:3-4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유대인의 왕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는 유대 나라에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것은 빌라도에게 큰 문제였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18:37에 보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고 온 왕이라고 했다.
. 23:5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백성을 소동케 예수님을 고소한 무리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한 것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백성을 소동케 하는 자라고 더욱 굳세게 주장했다.
. 23:6-7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빌라도가 듣고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눅3:1)에게 예수를 보내어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때에는 마침 유월절이므로 헤롯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二. 헤롯에게 심문 받으심(8-12)
. 23:8-9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헤롯이 예수를 보고 기뻐한 것은 소문에 듣던대로 예수님이 무슨 표적 행하는 것을 보고자 함이었다. 헤롯이 그와 같이 사욕적인 목적으로 묻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무 대답도 할 필요가 없었다.
. 23:10-1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회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은 자기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자 군병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빛난 옷을 입혀 희롱하고 빌라도에게로 다시 보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이와 같이 멸시와 회롱을 당하셨다.
.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과 빌라도는 평소에 서로 원수이었으나,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서로 원수 되었던 정치가들이 기독교를 핍박할 때에는 하나가 되고 친밀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三. 빌라도에게 제2회 심문 받으심(13-25)
. 23:13-16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룻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빌라도의 일차 판결에서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도 무리가 다시 예수님을 데려오자 예수님을 때려서 놓겠다는 것은 빌라도가 나약하고 비겁하여 그릇 행한 것이다.
. 23:17 (없음)
중요 사본에는 본 절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주더라\"가 있다. 마태복음 27:15과 마가복음 15:6 등에는 이 같은 내용이 있다.
. 23:18-19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민중들은 제사장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님을 없이하고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갇힌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외쳤다. 민중은 선동하는 자에게 쉽게 선동된다. 따라서 민중의 소리는 진리라고 할 수 없다.
. 23:20-23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 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진지라
빌라도는 세 차례에 걸쳐서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선언했고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러나 나약한 빌라도는 옮지 않은 백성의 전리에 굴복하였다.
. 23:24-25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하기를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빌라도가 법과 정의를 떠나서 불의한 백성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사형에 넘겨주고 바라바는 석방했다. 이로써 빌라도는 영원히 죄인이 된 것이다.
四.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26-38)
. 23:26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쫓게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 형틀을 지고 나가시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할 때에 군인들이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그 십자가 형틀을 지워 골고다까지 갔다. 그 일이 예수님의 고난을 감해 준 것은 아니다. 만일 감해졌다고 하면 예수님이 우리 대신 받아야 할 고난을 다 받지 못한 것이 된다.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 형틀을 넘겨 줄 때까지의 예수님이 받아야 할 고난을 다 받으신 것이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 형틀을 대신 졌기 때문에 그 가정이 큰복을 받았다. 마가복음 15:21에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은 루포라고 하였고, 로마서 16:13에는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부인을 자기 어머니라고 하여 존경한 것을 보면 그 여자가 예수를 잘 믿어 큰복을 받은 증거이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때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그 거룩한 모습을 보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신 것을 발견하고 예수를 믿었다. 그리하여 그 믿음을 자기의 아내와 자녀에게 전해 주어 그 가정이 모두 믿고 복을 받은 것이다(마가복음 강해서 p.335-338 참조).
.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이 오전 9시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가시는 것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그 중에 많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예수님을 아끼는 마음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갔다.
.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올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루살렘의 딸들아 예루살렘의 딸들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일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예정과 뜻을 이루는 일이며, 택한 백성의 구속을 이루는 일이다. 또 예수님은 죽었다가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영광스럽게 되는 일이며(요12:23-25), 성공하는 일이다. 또 영광스러운 부활을 바라보며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바라보는 소망스러운 일이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당하시는 그 고난만 보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울었기 때문에 그러한 울음을 울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그들이 울어야 될 일은 ① 그들과 그들의 자녀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영접하지 못한 일로 인하여 울어야 한다. 예수께서 생명의 주로서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② 그들과 그들의 자녀가 앞으로 받을 심판을 인하여 울어야 한다. 조금 후에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 심판을 인하여 울어야 했다.
. 23: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에 대한 예언이다. 주후 70년 디도 대장이 로마군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에 아이 밴 여자는 창으로 배를 찔러서 아이와 함께 죽였고 젖 먹는 어린아이는 다리를 붙잡고 머리를 돌에 메어쳐 죽였다고 한다. 또 그 여자들은 아이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다 처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미리 바라보고 계시므로 그들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고를 받지 않고 있으니 자기와 자기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할 일이었다. 누가복음 19:42-44에 \"가라사대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말세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따라서 말세에도 젖먹이는 자와 아이밴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마24:19).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아이 밴 자\'는 욕심을 잉태한 자를 가리키고(약1:15) \'젖 먹이는 자\'는 세상 것에 구원 이루어 나갈 모든 요소들을 빼앗기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있는 재물과 시간과 힘과 환경은 믿는 일 하라고 주신 것이다. 성도가 이 모든 것을 세상을 위하여 소비하는 것은 젖먹이는 일이다. 젖먹이는 자가 화를 받는다는 것은 그로 인하여 믿는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③그들과 그들의 자녀가 믿음이 없는 것 때문에 울라는 것이다. 앞으로 올 환난이 크더라도 믿음만 있으면 승리로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없으니 통곡하고 울어야 할 일이다.
갈릴리 바다에 풍파가 일어나 물결이 배에 들어올 때에 예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셨다(마8:26 ; 막4:40 ; 눅8:25). 풍랑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 없는 것이 문제이다. 성도는 환난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는 것을 인해서 울며 회개하고 믿음에 서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날과 권고받는 날을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심판날에는 갑자기 새가 그물에 걸리듯 환난과 심판이 닥쳐올 것이니 얼마나 비참한가. 그러므로 그것을 인하여 울라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도 앞으로 닥칠 대환난 때에 자기가 그것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는 것과 또 자녀들이 환난을 이길만한 신앙이 없는 것을 인하여 울며 회개하여 믿음에 서도록 해야겠다.
. 23:30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녀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심판날에는 당할 고통이 크므로 사는 것이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빨리 죽기를 원하여 이와 같이 부르짖게 된다(계9:5-6).
.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는 예수를 가리키며, 의인이나 영적 생명이 있는 자도 가리킨다. 마른나무는 죄인 또는 영적 생명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의로운 예수님도 이처럼 고난을 당했거늘 죄인들에게 임할 고통이야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뜻이다. 의를 행하고 영적 생명으로 사는 자가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이 지켜주고 이기게 해 주시지만 마른나무와 같이 죄를 짓고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더욱 크다.
. 23:32-33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해골이라 하는 곳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산의 모양이 해골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웠다고 한다. 그 곳 이름은 히브리어로 \"골고다\" 라고 불렀고(마27:33 ; 막15:22 ; 요19:17) 라틴어로는 \"갈보리\" 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때 두 강도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한 사람은 예수님 우편에, 다른 한 사람은 좌편에 있었다.
.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 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시면서 그 못 박은 무리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것이 가상칠언(架上七言)중 제일 첫 마디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원수까지 사랑하셨다(가상칠언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강해서 27:46 해석 참조하라).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입었던 옷을 탐내어 서로 차지하려고 제비 뽑았다. 그들은 생명의 주보다 옷 한 가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 23:35-37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백성들은 구경하고 관원들과 군병들은 희롱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택한 백성의 구속을 이루신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예수님의 구원 운동과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이러하다.
. 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각 사형수에게는 죄명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 라는 죄패를 붙여 놓았다. \"유대인의 왕\" 라는 죄패를 붙인 것은 로마 황제 가이사의 반역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남은 유대인(하나님의 백성)의 신령한 왕이요, 진리의 왕이시므로 그 이름이 합당하였다.
五. 십자가상의 한 강도의 신앙(39-43)
.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 중 하나가 예수님을 원망하며 비방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이것은 자기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말이다. 즉 예수님께 \"네가 참으로 그리스도이면 너도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며 비방하며 원망한 것이다. 그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지는 않고 죽음의 고통에서 건짐을 받고자 하는 욕심에서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도리어 예수님을 멸시하고 비방과 원망하는 말을 하였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 주기를 바라고,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과 비방을 늘어놓는다. 이것은 악에 악을 더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행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소망이 있다. 이 강도와 같이 원망하고 비방하는 것은 자기의 죄만 가중시킬 분이다.
.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한편 강도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은 것은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발견한 증거이다. 즉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믿음에 선 것이다.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이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이 사람의 신앙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요.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다. 그는 자기가 받는 형벌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깨달아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모든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줄로 믿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8:11에 십자가의 고난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인 줄로 알고 달게 받으셨다. 성도가 모든 시험과 고난과 십자가가 닥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줄로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이러한 사람은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내어버린 증거이다.
. 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에 당연하거니와 셋째, 그의 신앙은 회개한 신앙이다. 이 강도는 죄를 깨닫고 자기 죄를 생각하면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성도가 모든 잘못된 책임을 자기가 지고 형벌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겨 자기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여야 한다. 만일 죄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비방과 원망을 하는 자는 믿음에서 떠난 자이다.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넷째, 그의 신앙은 전도한 신앙이다. ①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했다. 이 강도는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죽어 가면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고 그 그리스도는 옳지 않은 것이 없는 의로우신 분이심을 증거했다.
2 죄에 대해서 증거하였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라고 하여 자신의 죄와 그 사람의 죄에 대하여 증거했다.
③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에 대하여 증거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 이라고 증거한 것이다. 이 강도가 이 세 가지를 다른 강도에게 증거한 것은 위대한 신앙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는 그 고통 중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전도를 하였다. 누구나 고난이 심할 때에는 고통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말하는 것 조차도 귀찮아진다. 그러나 그는 고통과 죽음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에게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대하여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였으니 위대한 신앙이다.
.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다섯째, 그의 신앙은 천국을 소망한 신앙이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에는 천국이 있음을 믿는다고 하다가 정작 죽음을 당하면 앞이 캄캄해져서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맏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죽음을 앞에 놓고 내세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졌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 앞에서도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을 갖고 죽을 때에 천국문이 환하게 열리는 것을 보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나를 생각하소서 여섯째, 그의 신앙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자기를 구원해 주실 것으로 믿었다. 그는 예수님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그리스도이신 줄 믿고 예수님께 자기의 영적 구원 문제를 부탁했다. 이 강도는 그전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속에 믿음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강도 짓을 하다가 잡혀서 죽게 되었을 때 회개하고 믿음에 굳게 선 것이다. 이 강도의 믿음은 깨어있는 신앙이요, 산 신앙이요, 고통과 죽음을 초월한 신앙이다.
우리도 죽을 때에 이렇게 영이 깨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천국을 바라보며 영혼을 예수님께 부탁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러한 신앙에 서려면 늘 회개하며 날마다 닥치는 작은 고난을 믿음으로 통과하고 이겨서 고난과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회개한 강도는 그 날 즉시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가서 함께 있으리라는 응답을 받았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쓰리고 아픈 죽음의 고통을 이기시고 여전히 빛 가운데서 회개하는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회개한 강도는 비록 몸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당하는 중에 있었지만 고통과 죽음을 초월하여 지금 빛 가운데서 응답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일 매일 닥치는 작은 시험과 환난과 고난에서 시험에 들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 줄 믿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승리해야겠다.
낙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은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라고 했고(요14:12, 17:11), 부활하시는 것은 아버지께로 갔다 다시 오는 것이라고 했다(요14:28). 아버지가 계시는 곳은 곧 천국이다. 예수님은 이 천국으로 가시는 것을 낙원으로 가신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낙원은 곧 천국을 가리킨다. 성도가 죽으면 그의 영은 즉시 천국에 들어간다.
六. 예수께서 운명하심(44-49)
. 23:44 때가 제 육 시쫌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당시 성력은 하루가 24시간이나 그날의 시작을 해질 때 즉 6시부터 시작했으므로 낮 제 육 시는 현재 우리의 시간으로 12시(정오)이다. 그리고 구시는 오후 3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온 땅이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시다. 창조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심으로 태양이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또 자연 만물은 하나남의 자연 계시로서 하나님을 보여 주는 존재이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과 그 영광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만물이 빛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23:45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막았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졌다는 증거이다. 구약 시대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휘장으로 막아놓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들어가 제사하되 피없이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악의 담이 막힌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재물이 되어 속량했으므로 그 장벽이 다 제거된 것이다.
.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셨고 우리와 똑같은 영이 있다. 예수님은 또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한 위(位)를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시고 운명하셨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몸과 영혼도 하나님께 부탁하고 말씀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예수님을 지키던 백부장과 군인들이 어두움과 지진과 그 되어진 일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라고 했다. 마태복음 27:54에는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였다. 성도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믿음을 쓰고,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적을 나타내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하나님을 알도록 하신다(출34:10 참조)..
. 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도 해가 어두워짐과 큰 지진이 나는 것과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
. 23:49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자들도 멀리 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27:56).
七. 예수님을 장사함(50-56)
. 23:50-53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의원이요 부자로서 예수를 믿는 성도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때 되어진 모든 일을 보고 더욱 믿음의 힘이 나서 예수님을 장사할 결심을 하고 담대히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정한 세마포로 싸서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하였다.
요한복음 19:39에는 그때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장사법대로 예수님의 시체에 부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를 위해서 새 무덤을 파 놓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자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 무덤에 장사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실상은 열 두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나 제자들은 무서워서 다 도망치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생명을 내놓고 그 일을 처리하였다. 사람들이 평안할 때에는 잘 믿는 척 하다가 환난이 들어오면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다.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은 어려울 때에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수종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훌륭한 신앙을 성경에 기록하여 모든 성도가 그들의 신앙을 본받게 한 것이다.
. 23:54-56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쫓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장사한 날은 안식일을 예비하는 금요일이었다.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예수님 장사하는 곳까지 쫓아가서 보았다.
. 23:57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안식일 다음 날(주일 날)에 예수님의 시체에 넣기 위해 그 여인들이 향유를 준비했다. 이것은 그 여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정성으로 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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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장 부활
(대 지)
一.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 옴(1-11)
二. 베드로가 빈 무덤을 보고 옴(12)
三. 엠마오상의 두 제자(13-35)
四.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나타나심(36-43)
五. 예수님의 최후의 분부(44-49)
六. 예수님의 승천(50-53)
(본문강해)
一.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 옴(1-11)
. 24:1-2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안식 후 첫날 새벽 주일 새벽이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그 외에 함께 한 다른 여자들이다(눅24:10 ; 마27:56 ; 막15:40, 47, 16:1 참조).
예비한 향품 갈릴리에서 온 여러 여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장사하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 그 날 향품을 예비해 두었다. 안식일에는 쉬고, 첫날(주일)새벽에 여자들이 그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예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가게 되었다. 마가복음 16:3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라고 했다. 이는 예수님의 무덤을 큰돌로 막아 놓았고, 로마 국권으로 인봉해 놓고, 군병들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 돌을 굴려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예수의 시체에 향유를 붓고자 하는 뜨거운 정성으로 아무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믿음으로 간 것이다.
그들이 무덤에 가서 보니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우리도 이 여인들과 같이 가 보는 신앙을 가져야겠다. 가 보기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일도 믿음으로 가 보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놓으시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가 보지도 않는 자에게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옳은 길은 가 보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할 때에도 \"와 보라\"고 하였다(요1:39). 그때 나다나엘이 가서 보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씀을 따라가 보면 하나님이 일해 놓은 것이 있고, 가 보면 하나남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여러 가지 면으로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을 볼 수 있다.
새가 먹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부지런히 날아다니면 먹을 것을 찾아 얻을 수 있으나 날아다니지 않는 새는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없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그들이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갔고, 순종하니 먹을 것이 생겨서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을 순종해서 가 보면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신다.
. 24:3-4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이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으므로 대단히 근심하였다. 이 여자들은 아직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났다.
.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자들은 그 천사를 보고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천사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죽은 예수를 찾지 말고 산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생사화 복을 주관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모든 이종교(異宗敎)는 죽은 사람과 그의 교훈을 믿는다. 유교도(儒敎徒)는 죽은 공자와 그 교훈을 믿고, 불교도는 죽은 석가와 그의 교훈을 믿으며 회교도는 죽은 마호메트와 그의 교훈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부활하여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과 그의 교훈을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과 능력이요, 그 말씀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생명을 주는 운동력이 있는 것이다. 또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며 구원해 주신다.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빠질 때에 건져 주시고 위태할 때에 보호해 주시고, 쓰러질 때에 일으켜 세워주시고 갈 길을 모를 때 갈 길을 가르쳐 주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이시다.
. 24:6-7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천사가 그 여자들에게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가르쳐 기억시켜 주는 것은 중요하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제자들과 이 여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부활에 대한 말씀을 여러 번 들었으나 그 말씀을 망각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도무지 믿지 아니하고 생각지도 않고 있었으므로 천사가 다시 한번 기억시켜 깨우쳐 주었다.
. 24:8-9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천사가 주의 말씀을 재차 가르쳐줄 때에 전에 들은 주의 말씀이 기억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많이 들은 말씀도 자주 반복하여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많이 들어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아도 다시 가르쳐 줄 때에 깨닫고 말씀에 서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사28:9-13 참조).
요한계시록 22:10에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먼저 말씀을 받아 반복하여 새김질하고 기도하며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또 다른 사람에게 반복하여 가르쳐서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천사의 말을 듣고,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고 돌아가 사도들에게 전하였다.
.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던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해 주었다.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이다(8:3),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이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가 아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마10:3), 그의 어머니도 예수님 부활한 날 새벽에 제자들 보다 먼저 무덤에 가서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
. 24:11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여자들의 말을 사도들이 듣고도 믿지 않았다.
二. 베드로가 빈 무덤을 보고 옴(12)
.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한복음 20:1-10에 요한과 베드로가 함께 무덤에 달려갔다가 돌아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에서는 베드로에 대한 것만 기록한 것 같다.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그 안에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도 예수님을 찾아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는데 제자 된 입장에서 그냥 돌아간 것은 너무 무성의(無誠意)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20:11-19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돌아오지 않고 울면서 예수님의 시체를 간절한 마음으로 찾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간절히 사모하여 찾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찾아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정성과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써서 진액을 짜 바치고 부르짖어야 한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가까와지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예수님과 동행할 수가 있다.
三. 엠마오상의 두 제자(13-35)
. 24:13-14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 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이다. 저희 중 둘 한 사람은 18절에 \'글로바\' 라고 하였으며, 요한복음 19:25에 있는 글로바와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다른 한 사람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나다나엘이라는 설과 본서의 저자인 누가라는 설이 있는데 그 중 누가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25리나 되는 엠마오로 향하여 가면서 근일에 되어진 예수님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십 오리는 원문에 60스타디온이라고 했는데 약12km이다. 이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 간 것은 잘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지가 3일째요, 그 날 아침에 무덤에 찾아간 여자들이 와서 예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전했으며, 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말을 여자들이 전해 주었는데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예루살렘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엠마오에 있던 제자라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 사실을 확인해 보는 것이 제자 된 도리요 마땅히 해야할 일인데 오히려 예루살렘을 떠나서 옘마오로 간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일보다 세상일을 앞세우고 주님을 위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 빠져 주의 일을 무관심하고, 등한히 여겼다. 이것이 곧 믿음에서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생활이다.
. 24: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그들이 육신으로 기울여져서 세상으로 내려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찾아가서 동행해 주셨다.
. 24: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 보지 못하거늘
제자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눈이 가리워져서 세상 것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와 심령의 눈이 가리워진 것이다. 물욕, 정욕, 사욕을 따라가면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음성을 들으나 예수신 줄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 것뿐이었다.
이 기선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돈을 눈에 가까이 대고 보면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돈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시므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다 알고 계셨다. 그들에게 질문하신 것은 그들의 신앙을 깨우치고 잘못된 점을 바로 세워주기 위함이었다.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그 마음이 예수님을 떠났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슬픈 빛을 떤 것이다. 누구나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일을 할 때에는 이와 같이 그 얼굴에 슬픈 빛을 띠게 된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세상을 따라 나가면 영적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려 그 심령에 슬픔이 있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자도 버리지 않고 사랑하셔서 가까이 찾아가 동행하시며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하기 위하여 역사하신다.
.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글로바는 심령의 눈이 어두어져서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해서 하지 못할 말을 한 것이다.
. 24:19-20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들은 그간에 되어진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자세히 말했다. 오늘날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그들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관계로 심령의 눈이 어두어서 예수님과 말하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 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구속자라고 믿고 있었으나, 부활 신앙이 없었으므로 실망 중에 있었다.
. 24:22-24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으나 거기에 대해서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세상(엠마오)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신앙 문제보다 세상에 더 관심이 컸던 증거이다.
. 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다. 미련하고 성경을 더디 믿는 자가 미련한 자이다. 또 성경대로 믿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디모데후서 3:15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다.
. 24:26-27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참 신자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부활해야 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왜 믿지 못하느냐고 예수님이 책망하시면서 자세히 설명하여 주셨다. 구약 성경 여러 곳에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것을 예언해 놓았다(시22:1, 14, 16, 41:9, 69:21 ; 사50:6, 53:1-9, 미5:1 ; 슥2:10).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 하셔서 영광 중에 들어가실 것도 예언해 놓았다(시16:10, 68:18, 118:17 ; 단7:13). 그러므로 말씀대로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믿으라는 뜻이다.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께서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셨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32절).
오늘날도 성령으로 성경의 깊은 뜻을 풀어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때에 듣는 자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말씀을 믿어 생명을 얻어 나가게 된다.
. 24: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기도 하고, 성경을 배우기도 하면서 25리의 먼길을 시간가는 줄 모르게 갔다. 예수님과 같이 길가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 때에 예수님이 더 가려하는 것 같이 한 것은 그들이 믿음을 쓰게 하기 위함이었다. 성도는 언제나 갈급한 심령으로 예수님을 모시려고 애써야 한다. 처음 은혜는 거저 주시나, 다음에는 힘써야 은혜와 천국을 더해 주신다(마11:12).
. 24: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강권하므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들어갔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인 줄 알지 못하였으나 그 분을 통해서 성경을 깨달았고 은혜받은 바가 많았으므로 그 분을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으로 알아 같이 들어가자고 강권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분에게 있음을 알고, 그 말씀을 사모하여 강권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대접하려고 애쓴 것이다. 요한복음 6:68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하였다. 두 제자가 처음에는 믿음에 서지 못해서 엠마오로 내려갔지만 이제는 점점 심령이 밝아지고 말씀에 서게 되었다.
. 24:30-31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예수님과 한자리에서 먹을 때에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인 줄 알았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심령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이 밝아지게 된 것은,
①예수님과 동행한 것이다. 그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주님이 동행해 주신 것이 큰 은혜였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동안에 생명의 빛이 비취어 들어가게 된다.
②예수님과 대화한 것이다. 그들은 주님과 동행하는 동안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과 교통하였다. 이것은 오늘날도 성도가 기도 생활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③책망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더디 믿는 미련한 자라고 책망을 받았다. 에베소서 5:13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다.
④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시는 것을 들은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같이 하셔서 심령이 뜨거워졌고 눈이 점점 밝아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깨달아 그 말씀을 풀어서 신령한 양식으로 나눠줄 때 그 양식을 먹는 성도들의 심령이 살고, 눈이 밝아지게 된다. 가르치는 자가 성령으로 말씀을 풀어서 가르쳐야 하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그 말씀을 성령을 힘입어 영으로 받아야 생명이 살고 눈도 밝아진다. 성령으로라야 진리를 깨닫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된다.
⑤사모하고 갈급한 심령을 가졌다. 예수님은 지나가시려고 하시는데 사모하는 마음으로 강권하여 모시려고 하였으므로 눈이 밝아 졌다. 누구나 이와 같이 주님을 갈급한 심령으로 사모하여 간구할 때에 심령의 눈이 밝아져서 모든 것을 밝히 보고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심령의 눈이 밝아져서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자 예수님은 곧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셨다. 그 이유는 부활 후에는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모시려고 하지 말고 영으로 영접하여야 될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부활체는 보일 수도 있고 안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으로 영접하여 동행 동거하여야 한다.
요한복음 20:17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한 것도 부활 전과 같이 육신적으로 모시려고 붙잡지 말라는 뜻이다. 그들이 육신으로 기울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셨다. 영적인 신앙에 들어가 영으로 주님을 모시고 영으로 예수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 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들이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성령께서는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가르치고 깊은 뜻을 풀어서 가르치기를 힘써야 한다. 흑 뜨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뜨거운 마음으로 성경을 배워야 한다. 그 때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
. 24:33-34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곧 그 시로 일어나 그리스도와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는 즉시로 일어나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시 순종할 때에 생명이 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한 다음에 엠마오에서 육신의 일 보는 것을 헌신짝과 같이 내어버리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예루살렘에 가서 다른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전에는 자기를 위하고 세상을 따라갔으나 이제는 주를 위하여 일할 각오를 가지고 올라간 것이다. 열 한 제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니 열 한 제자들도 예수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했다. 시몬은 베드로를 가리킨다.
.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두 사람이 길에서 된 일(예수님이 동행하시며 책망하시고 성경을 가르쳐 주신 일)과 떡을 뗄 때에 예수님을 본 것을 낱낱이 증거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야 한다(행4:20).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전9:16). 우리도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과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는 세상에서 돌이켜 복음운동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해야 한다.
四.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나타나심(36-43)
.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예수께서 열 한 사도와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 친히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하는 신령한 몸이므로 문을 열지 않고 들어오시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신다. 또 사람의 눈에 보이게도 하시고 보이지 않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모여 있는 자들에게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가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평강 주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시다. 모여 있는 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무리들이 자기들도 죽일까봐 대단히 두려워하며 문을 닫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을 주셨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으면 모든 두려움이 없어지고 평안한 마음이 된다.
. 24: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놀라고 무서워하여 평강을 주려고 오신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하여 놀라고 무서워하였다.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은 환난 중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두려워한다.
. 24: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예수께서 믿음이 없는 그들을 책망하셨다. 믿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들어오고 의심이 생긴다.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큰 죄악이다.
. 24:39-40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예수께서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나는 있으니 만져보고 믿으라\"고 하셨다(요20:27). 부활체는 살과 뼈가 있는 신령한 몸이다. 예수님이 믿음 없는 제자들에게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 24:41-43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길 때에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저희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오히려 믿지 못하고 반신반의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그들에게 더 확실한 증거를 주기 위하여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다. 영은 음식을 먹을 수 없으나 부활체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또한 영원히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부활체는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며 빛보다 빨리 왕래 할 수 있다. 이는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좋은 몸이다.
五. 예수님의 최후의 분부(44-49)
.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구약을 3분하여 ① 모세의 율법(모세 오경)과 ② 시편과 ③ 선지자의 글(대 소선지서를 포함하여 모세 오경과 시편을 제외한 구약 전체)로 나눈 것이다. 다른 곳에는 구약을 2분하여 모세의 율법(모세 오경)과 선지서(모세 오경을 제외한 구약 전체)로 구분하였다(눅16:16, 24:27 ; 마5:17).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구약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예수님이 미리 여러 번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라\'는 것은 십자가 고난으로 구속을 성취하시고 부활하신 것을 가리킨다.
. 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주어야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 사도행전 16:14에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엡29:8).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게 하는 것이 내적(內的) 소명(召命)이다.
.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구약에 예언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사야 53장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시편 16:10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요나서에는 그리스도께서 삼일 후에 부활할 것이 기록되어 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삼야를 지난 후에 살아 나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상징한다(마16:4).
.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리킨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직사함 받는 회개 운동, 구원 운동을 가리킨다. 이사야 2:2-3에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했다. 이 성구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었다.
.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사명을 주셨다. 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하여야 한다.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전9:16).
.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을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말한다. 요한복음 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라고 했다(요14:26, 16:7 참조).
이 성은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워지는 비결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행1:4).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서 구속의 진리를 완성한 곳이므로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예루살렘에 있었다. 진리의 대언자 되는 성령은 그 진리가 있는 예루살렘에 임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능력이 입혀지는 이유는 ①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는 성령이시므로(요16:13)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된 구속의 진리가 있는 예루살림에 성령이 임하여 그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일하셔야 되기 때문이다.
② 회개 운동(구원 운동)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그 일터에서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 힘도 주시고 필요한 모든 물질과 기동력을 보내주시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임하여 능력을 입혀 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유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곳은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직도 핍박과 살기가 등등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내어놓아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뜻은 첫째,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요, 둘째, 하나님이 정해 준 위치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요, 셋째, 일할 곳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심하여 생명이 위태하여도 주의 말씀과 자기의 위치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터를 떠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없고 능력이 입혀질 수 없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잘사는 자리, 평안한 자리를 찾지 말고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에서 참고 견디며 사명을 다 하여야 능력의 사람이 된다(빌3:10-11). 제자들은 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에 힘썼으므로 10일 후(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까지 인내하며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명하신 자리에서 사명에 충성하여야 한다.
六. 예수님의 숭천(50-53)
. 24:50-51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하늘로 올리우)시니
예수님은 감람산 베다니 앞에 가서 제자들을 축복하신 후 승천하셨다(행1:12 ; 막16:19).
하늘로 올리우라는 말이 괄호 안에 있는데 그것은 이 내용이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 24:52 저희가(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승리감과 큰 소망이 생겼다. 그들은 ① 모든 것을 승리할 소망과 ② 부활할 소망과 ③ 천국에 갈 소망으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 24:53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으로 돌아가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행1:14). 오순절이 되매 성령이 임하여 큰 권능을 받고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하나님을 찬송하며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