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절
구십 구 세 때에 -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온 지 25년째가 되던 해로(12:4) 후손
에 대한 소망이 완전히 단절된 절망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나이이다(17,18절). 이처
럼 인간에겐 절망적인 그 순간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비로소 역사하시는 시간인데,
이는 연단을 통해 우리의 신앙 인격을 보다 성숙시키고 또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
뢰케 하려는 목적이 있다(롬5: 4).
전능한 하나님( , 엘 솨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구체적으
로 소개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자신의 약속
을 성취시키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따라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절망중에 있는 당신의 종들에게 이 이름으로 찾아가셨다. 즉
이 이름으로 벧엘의 야곱을 위로하셨고(35:11), 미디안의 모세에게 확신을 주셨으며
(출 6:3),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찾아가셨다(욥 40:2).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름을 통하여 비록 아브람이 늙었으나 그로 하여금 열국의 아비(4절;15:5)
가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께 있음을 재천명하신 것이다.
내 앞에서 행하여 - 직역하면 \'내 앞에서 걸어가라\'(walk before me). 곧 \'목전
(目前) 에서 행하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
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의식하에 매사에 하나님의 전능 하심을 믿는 신앙
과 그분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라는 교훈을 준다(잠 3:1-7).
완전하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밈\'( )은 원래 전혀 비난할
것이 없거나 흠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타락한 인간으
로서는 도저히 이르지 못할 영역이다. 따라서 여기서 요구되는 완전은 무한성을 가지
는 하나님의 완전(마 5:48)과는 달리 그러한 완전을 지향하는 노력을 가리킨다 하겠
다. 한편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람에게 이 같은 명령을 주신 까닭은, 다시는 그가
축첩으로 인한 실수(16:2)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7:2절
내 언약 -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이끄시는 언약 또는 사람들과 이미 체결해서
잘 알려진 언약(6:18;9:9)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별히 아브람에게 거듭거듭 주셨던
후손과 기업에 대한 약속을 가리킨다(12:1-3;13:14-17;15:1-7).
나와 너 사이에 세워 - 반복된 약속에다 인준까지 마친 하나님의 언약이 마침내
실현될 때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아브람이 이 말씀을 받은 때가 99세이고 이삭
을 낳은 때가 100세이니(21:5) 이 말씀을 받은 지 얼마 안 있어 사래가 이삭을 잉
태,하나님의 후손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3절
)이 복합된 말로 얼굴을 비롯한 온 몸을 땅에 완전히 대고 엎드린 것을 가리킨다.
이는 지극한 경외의 자세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예배 자세인데(왕상 8:54).이로
써 아브람은 자신의 축첩행위로 인하여 발생되었던 그간의 가정 불화 및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회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참
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과 순전한 삶을 갖지 않고
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렘 2:19).
일러 가라사대 - 순전한 마음가짐과 합당한 자세를 갖춘 아브람에게 새로운 축복
(언약의 갱신)을 주시려는 일성(一聲)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어그
러진 길로 나갈 때에는 훈계와 책망을 발하시며(1절), 또한 그 음성을 듣고 돌이킬
때에는 또 다른 축복을 주시는데 이러한 꿀임없는 은혜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멸망치
않고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롬 3:23,24).
=====================================17:4절
열국의 아비 - 1차적으로 이 말은 이스마엘에게서 비롯된 모든 종족과 민족들
(25:12-16), 아브람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퍼진 여러족속들(25:1-4), 아브람의 후손이
면서, 갈리어 나간 민족인 에돔 족속(36:1-19) 등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나 구속사
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축복(12:3)을 나눠 가지게 된
아브람의 영적 자손을 염두에 둔 말이다(롬 11:7-12).
================================17:5절
아브람...아브라함 - 후일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32:27,28), 시몬
에게 \'베드로\'란 이름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요1:42)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새 언
약과 함께 주신 새 이름이다(엡 3:;계 2:17). 히브리인들은 보통 할례를 받을 때 이름
이 주어지는데(21:3,4;눅 1:59,60;2:21)아브람 역시 할례를 받기 직전, 이러한 새 이
름을 받은 것은(9-14,23-27)(1) 직접적으로는 언약의 갱신을 상징한 외적 표식이나
(2) 영적으로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와서 맺을 새 언약(고전 11:25)에의 동참을 상징한
다.
==================================17:6절
, 너무 많다)가 결합된 말로 주체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
에 \'심히\'(exceedingly)라는 말이 첨가되었으니 그 풍성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것은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인데(시 127:3-5) 하나님께선 천지 창조 직후에도
이러한 축복을 주셨고(1:28), 노아(9:1), 이스마엘(20절), 이삭(26:4,24), 야곱(28:3)
그리고 요셉(48:4)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주셨다.
열왕이...좇아 나리라 - 이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여러 나라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그의 후손 중에서 유명한 통치자, 현군(賢君)들이 많이 배
출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었다. 이 예언은 특히 다윗왕과 솔로몬왕을 통헤 결정
적으로 이루어졌다.
==========================17:7절
세워서( , 하키모티). \'쿰\'(공고히 하다, 설립하다)의 과거 완
료형으로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언약을 재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재확
인된 사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언약은 아브라함 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
에게까지 영원히 미친다는 점이었다(13:15,16).
영췄한 언약 -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혈통상 그의 직계 자손에게만 적용되
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로 삼으신 모든 인간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적응
될 것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당시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언약의 연
속성을 강조하였고(행 2:39) 사도 바울 역시 이에 근거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였다(행 4:31).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 구원의 약속을 함축하고 있는 말로서 곧 모
든 언약 내용의 핵심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언약을 맺은 자들에게 은혜
로 많은 은사를 주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신까지도 내어주신다. 이는 곧 인간 구원을
예기케 해주는데 ,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 자체로서(요 14:6)자신과 교제하는 자들에
게 영생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이다(요 17:3).
=============================17:8절
영원한 기업 - 하나님의 약속대로 (12:7;13:15) 가나안 땅은 훗날 여호수아의 영
도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속되었다(수 11:16-23). 그러나 후대 이스라엘 역사
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가나안 땅을 영속적으로 차지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범죄할
때마다 그 땅에서 쫓겨났다. 그 최근의 예가 A.D.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근 2,000
여년간의 디아스포라(Diaspora) 사건(마 24:15-28)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기
업이 되게 하리라\'는 말이 조건부적인 성격의 언약임을 알 수 있다(Pulpit
Commentary). 그 조건이란 곧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인간주의 \'믿음\'과 \'순종\'인데(9
절) 이러한 언약의 조건성(條件性)은 출 19:5,6;신 4:25-31;7:9-13;호 9:17 등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인간측이 그 언약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
의 언약은 언제든지 그 효력을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언약은 여전히 \'영원한 언약\'이
다. 같은 맥락에서 천상 가나안도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이다.
=================================17:9절
그런즉 너는...지키라 - 언약의 내용이자 조건이다. 특별히 여기서 \'너\'는 언약
의 대상이 되는 아브라함의 역할을 강조하는 말인데 이는 언약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나\' 라는 말과는 대조가 된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조건들을 규정
하신다는 점에서 본질상 하나님의 언약이 일방적인 성격을 지니나, 모든 언약이 그러
하듯 이 언약에서도 이처럼 언약의 내용과 조건을 준행하여야 할 쌍방이 엄연히 존재
하는 것이다.
============================17:10,11절
할례를 받으라...양피를 베어라 - 남자 성기(性器)의 표피 윗부분을 제거하는
할례 의식은 당시 이미 중동 지역에 널리 퍼진 성년 의식이었다. 즉 양피를 제거하는
이러한 의식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들만이 아니라 이스마엘 족속, 에돔 족속, 암몬
족속 그리고 애굽인들도 이를 시행하였는데 아마 암몬 족속같은 경우는 아브라함의 조
카 롯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탐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의식이 페니
키아인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남태평양 군도 등의 여러 부족사이에서도 행
해졌다는 것이 판명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관련하여
이러한 의식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셨는데 그것은 (1)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육신적인 죄와 부정을 떨쳐 버린다는 정결 의식의 상징적 표현이며(Calvin) (2) 거듭
난 새 생명의 정화(淨化)를 상징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번식 기관인 생식기의 성별과
성화가 요청된다는 의미이다.
============================17:12절
수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에 재물은 대개 수컷이었고(레 1:3-13) 의식(儀式)에의
참석 역시 남성 위주였다. 그러나 성경에서 여성은 남성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2:21-24;엡 5:22-33) 그 효력의 범위와 영향은 양성(兩性) 모두에
게 해당되었다. 따라서 할례 의식 역시 여성을 대표하여 남성이 행하는 상징적
의식임을 알 수 있는뎨(Calvin),이는 할례를 대신할 신약 시대의 세례 의식에 뭇 남성
과 여성이 다 함께 참석하고 있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행 8:12).
집에서 난 자나...무론하고 - 이처럼 아브라의히 후손 뿐 아니라 그의 영향력 아
래에 있는 모든 자를 할례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보편성을 보
여 준다. 이는 신약 시대 교회의 보편성(우주성, catholicity))과 맥락을 같이 한
다(행 2:39).
난 지 팔 일만에 - 이 때 할례를 실시하는 이유는 먼저 생리적으로 유아가 별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동시에 피가 가장 빨리 응고되는 최적기(最適期)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상징적 이유가 있는데 (1) 의식상, 새로 태어난 남자 아이는 7일 동
안 부정하므로(레 12:2) 그 이전에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림이 합당치 않기 때문이
고 (2) 구속사적으로, 제 팔일은 안식일이 지난 첫번째 날로서 그리스도의 부활(마
28:1;막 16:2;눅 24:1;요 20:1)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새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8:10,11).
====================================17:13절
너희 살에 있어 - 일단 할례 의식을 통해 육신의 살에 새겨진 언약의 징표를 보
고 하나님의 언약 내용을 마음 속 깊이 새기라는 말이다(롬 2:29). 이것은 마치 돌비
에 새겨진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의 심비(心碑)에 새겨지지 않는 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17:14절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 아
니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하에 있는 공동체로부터 제외될 것이라는 뜻이다. 즉 하
나님의 모든 언약과 무관한 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Augustine,Willet,Calvin,Murphy,Inglis). 여기서 물론 할례 그 자체가 신성한 것
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의식에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내용의 준수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그것을 경홀(輕忽)히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과 다름
없는 행동이다. 따라서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은총에서 배제되는데, 이는 영
적인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롬 1:17)
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는 것을 예표한다.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비록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주
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모든 언약은 인간의 죄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따라서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 구속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언약 내용을 충실히 준수하여
야 할 책무가 있다(9절). 따라서 만일 인간이 그 책무를 게을리하거나 고의적으로 협
정 내용을 위반할 시에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일이 되어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 관
계가 무효화 되고 마는 것이다.
==============================17:15절
사래...사라 -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5절) 사래에게 \'사
라\'라는 새 이름이 주어진 것은 그녀가 아브라함과 더불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
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혈통을 좇아 날 예수그리스도(15:4)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될 수 많은 영적 자녀의 어미가 되는 것을 뜻한다.혹자는 이제 사래가
교회의 어미가 된다는 뜻으로도 보았다(Jerome, Augustine),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바
사래의 개명(改名)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 관계 수립이라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닌
다.
==================================17:16절
이삭을 낳아 주게 하며 - 아브람에게 약속된 후사가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적자
(嫡子)임을 분명히 계시해 주는 최초의 경우이다(15:4). 즉 지금까지 거듭되어 왔던
자녀에 대한 약속 성취가 눈앞에 이르른 현시점에서 이제 하나님은 그 최대 관심을
약속의 자녀를 낳을 당사자인 사라에게 쏟고 계시는 것이다.
열국의 어미가 되게 - 직역하면 \'그녀가 열국에서 되도록\'(She shall become of
nations). 그러나 KJV,NIV,RSV등과 같은 대부분의 영역본은 이를 \'그녀가 열국의 어
미가 될 것이다\'(She will be a mother of nations)로 의역(意譯)하고 있다. 공동 번
역과 한글 개역 성경도 이러한 번역을 그대로 취하고 있는데 이는 \'사라\'(여장부, 여
주인, 공주)라는 이름에 걸맞는 번역이다.
=================================17:17절
엎드리어 읏으며 - 여기서 \'엎드리어\'( ,이폴 알 파나우)
는 이미 3절에 나온 것(엎드린대)과 동일한 말로 얼굴이 땅에 닿을 정도로 부복(俯伏)
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웃은 것에 대하여서는 불신앙적 태도인지,
아니면 너무 기쁜 나머지 깜짝 놀란 웃음인지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웃다\'에 해
당하는 히브리어 \'차하크\'( )는 흥에 겨운 \'큰 웃음\'과 함께 \'경멸의 읏음\'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요8;56에 근거해 아브라함의 이
읏음은 믿음의 눈으로 사라를 통해 이삭 뿐 아니라 장차 메시아가 날 것까지 보고 기
뻐하였다는 견해를 취한다(Augustine,Calvin,Delitzsch).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영적
인 해석에 치우친 무리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사라의 회임(懷姙)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였으며 곧 이어 이스마엘이나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를 하나님께 기원
하였기 때문이다(18절). 따라서 아브라함의 이 웃음은 비록 일순간적이긴 하지만 90세
된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미소같은 웃음이라
하겠다.
사라는 구십 세니 - 사라의 향년이 일백 이십칠 세였으니(23:1) 이때는 사라
가 폐경기(閉經期)에 들어선 때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사라의 수태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를 표명한 것은 인간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
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만일 아브라
함이 한시라도 하나님의 전능성(1절)과 약속의 신실성(삼상 15:29)을 잊지 않고 있었
더라면 인간적인 모든 의심은 도리어 기쁨과 감사의 읏음으로 화하였을 것이다.
==========================17:18절
이스마엘이나...살기를 -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15: 2,3)라고 대답한 것과 똑갈은 식의 반응이다.
즉 위로해주시는 말과 그 뜻은 고맙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나마 언약이
성취되기를 바란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 방식을 드러내 주고 있는 구절이다. 그런
데 혹자는 각도를 달리하여 본절의 \'이스마엘이나\'를 \'이스마엘 역시\'로 보고,아브라
함이 언약 외의 또 다른 아들 이스마엘도 하나님의 축복에서 배제당하지 않기를 간구
하는 내용이라고 보기도 한다(Lange,Keil,Rosenmuller). 이러한 견해도 문맥에 따라서
는 상당히 일리있는 견해이다.
============================17:19절
이삭( , 이츠학) - \'차하크\'(읏다, 17절)에서 파생된 말로 \'그가 웃다
\'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대로 아브라함은 훗날 이삭탄생 이후 이삭을 볼 때마다
기쁨의 웃음을 띠었겠지만 반면 한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불신앙의 웃음을 읏었
던 지난날의 과오를 상기하며 신앙의 경각심을 늦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영원한 언약 - 오고오는 후손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언약(3:15)은 결코 한 개인이나 한 세대에 국한되
지 않고 역사와 더불어 계속 발전, 확장되어 마침내 전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됨이
또다시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17:20절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려 주시고 그 간구하는 바를
들어 주셨다는 뜻이다.
크게 번성케 할지라 - 아브라함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일 뿐 아니라
일찍이 하갈에게 약속하셨던 축복(16:10)의 재확인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죽지 않기만을 간구하였는데(18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보존은 물론 자손 번성
까지 약속해 주셨으니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
자하심이 후하심\'(시 86:5)을 재삼 깨달을 수 있다.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 이 약속은 25:12-16에서 성취되었는데 그 열두 방백은
주로 아라비아 중부 및 북부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멀리로는 바벧론 지역에까지 진출
하였다.
=============================17:21절
명년 이 기한 - 계속된 언약의 반복을 통하여 마침내 구체적인 이삭 탄생 시기가
계시되었다. 이처럼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된 뜻에 따라 점진적으로 주어지는데 인간
에게는 비록 더딜지라도 언약된 바가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는 데에 그 특성이
있다(합 2:3).
==============================17:22절
떠나 올라가셨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 )는 1차적으로 \'오
르다\', \'올라가다\'는 뜻 외에 2차적으로 \'회복하다\', \'복구하다\', \'거두어 들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가시적인 형상을 입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계시하신 후 본연의 무형상적 실체로 돌아가셨다는 뜻이기도 하다(35:13).
===============================17:23절-27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아름다운 순종 기사이다. 그는 할례의 이유에 대하여 일언 반구도 없이 말씀하신 대로(23절) 다 순종하였으며 당일에(26절)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다.
===================================17:24절
구십 구 세 - 17절의 \'백 세\'와는 상치된 말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7절은 \'백 세를 목전에 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17:25절
십 삼 세이었더라 - 오늘날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 족속들은 생후 8일째에 할례를 시행치 않고 13세 되는 해에 시행하는데(Josephus) 아마도 이것은 자기네들의 시조(始祖)인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던 때를 기리기 위함인듯하다.
창세기 제 18장
=======18:1절
마므레 상수리 수풀 - 예루살렘 남방, 헤브론 근교에 위치한 곳으로 롯과 헤어진 아브라함이 일찍부터 정착지로 삼아 지금까지 거주해 오고 있던 지역이다.
오정 즈음에(케흠 하욤) - \'때\'(욤)와 \'열\'(하맘)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더운 그 때에\', 곧 태양이 하늘 중앙에 치솟은 때를 가리키는데 이때 팔레스틴 거민들은 대개 식사와 함께 잠시휴식을 취한다(창 43:16;아 1:7).
=======18:2절
사람 셋 - 13절과 19: 1에 의거할 때 이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머지 둘은 천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천사가 이처럼 가시적(可視的)인 사람의 형상을 입고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까닭은 어디까지나 계시 내용을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무형상적이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월자이시므로 그 본연의 모습으로서는 뜻하는 바 계시 내용을 유한한 인간에게 적절하게 전달할 수 없으므로 이처럼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달려나가 - 생면 부지의 나그네들에 대하여 적극적이고도 진실된 사랑으로 영접한 행위이다. 여행 중에 지친 나그네를 대접하며 그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당시 히브리인들의 관례로 굳어긴 아름다운 풍습이긴 하지만 이처럼 아브라함이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나가 따뜻하게 영접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이자 그의 삶이 항상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는 삶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몸을 땅에 굽혀 - 귀한 방문자에 대하여 갖추는 근동의 인사 양식이다. 야곱이 에서를 맞이할 때(창 33:3), 요셉이 그의 아버지를 환영할 때(창 48:12) 또한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를 맞이할 때(왕하 2:15)에도 이러한 인사가 행하여졌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의 신분이나 연령 등을 묻지도 않고 이러한 예우를 표한 것은 그의 인격이 평소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18:3절
내 주여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에 대하여 단수인 \'내 주여\'(my lord))를 사용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이에 의거해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중 한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즉시로 깨달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1)이는 세 사람을 총칭하는 대표 단수이며 (2)\'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종교적 의미 뿐 아니라 남편(12절)이나 상전(24:12) 또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일반적인 의미도 함께 지닌 단어란점 (3) 아브라함이 부지중(不知中)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는 점(히13:1) 등에 의거할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즉 아브라함은 이후 서서히 그들의 정체를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17,22절) 아직은 그들을 단순한 나그네로 알고 일반적 차원에서 존칭어를 사용한 것이다.
======18:4절
발을 씻으시고 - 아랍과 팔레스틴 지역은 대부분 모래와 먼지가 덮인 거친 사막길로 되어 있다. 따라서 샌들(Sandal) 같은 간단한 신발만 신고 먼지 길을 오래 걸은 여행자들에게는 발 씻을 물이 절실히 요구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가져다 주는것이 필수 관행이 되었는데 이는 손님 접대에 있어서 최상 최적의 예우였다.
나무 아래서 쉬소서 - \'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안\'은\'기대다\'. \'눕다\', \'의지하다\'는 뜻으로 곧 나무 그늘에서 휴식하며 식사하기에 편한자세를 취하라는 의미이다. 오늘날도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왼팔로 몸을 바치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서 혼히 찾아볼 수 있는 식사법이다(요13:23).
====18:5절
쾌활케(사아드) - \'세아드\'(원조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견고케 하다\'(잠 20:28), \'힘있게 하다\'(시 104:15), \'원기를 되찾다\'는 뜻이다. 장거리 여행으로 인하여 쇠진한 기력을 힘있게 회복할수 있게끔 쉬라는 뜻이다.
======18:6절
떡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가\'는 \'레헴\'(떡, 빵)보다 더 고급스런 빵으로 뜨거운 돌에 구운 일종의 \'펜 케이크\'(pan-cake)를 가리킨다.
=======18:8절
나무 아래 모셔 서매 - 나그네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고 \'그들이 나무 밑에서 먹는 둥안 곁에 서서 시중든 것\'(공동번역)을 의미한다. 이것은 손님에 대하여 극진한 예우를 갖추는 행동이다.
그들이 먹으니라 - 유대 주석가 및 일부 카톨릭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해석하기를 그들이 단지 먹는 척하였뿐이지 실제로 먹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에 비추어 볼 때 지지될 수 없는 해석이다. 물론 영적 존재가 육적인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과 수행 천사가 기꺼이 음식을 드신 까닭은 마므레의 환대 사건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 사건었다는 점을 족장에게 확신시키고 동시에 아브라함과 보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 것(눅 24:41-43)과 같은 이유이다.
======18:9절
사라가 어디 있느냐 - 세 나그네가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보통 여행자들이 아님을 시사해 주는 질문이다. 즉 이들은 이미 족장의 아내인 사라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라에 대한 특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특별히 방문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18:10절
그가 가라사대 -TEV는 \'그\'를 \'그들중 한 사람\'(one of them)으로, RSV는 \'주\'(the lord)로, 공동 번역은 \'하나님\'으로 각각 번역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방문한 목적을 밝히려 하시는 것이다.
기한(에트 하야). \'시간\'(에트)과 \'생명\'(하야)이 복합된 말로 직역하면 \'생며의 시간\'이다. 이는 \'소생할 때\', \'해가 바뀔 때\'란 의미로 만사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네게로 돌아오리니 - 하나님에게 있어 \'임하다\' \'돌아오다\' 등의 표현 (출 3:18;민 10:36;시 50:3;90:13;슥 14;5)은 그분이 어떤 사건에 직접 개입하셔서 사역하시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지금은 약속만을 가지고 너를 방문했지만 다음에는 약속의 실현을 가지고 다시 찾아오겠다\'란 뜻이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 이로 보아 아브라함 가족들의 거처인 장막은 나그네들이 앉아 쉰 나무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대 유목민들의 장막은 대개 칸막이가 처져 있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바깥 부분은 주로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사랑방으로 남자들이 사용하였고, 안쪽은 생활 필수품과 취사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여자들이 내실로 사용되었다. 사라가 하나님의 말을 들은 곳도 바로 내실이었을 것이다.
=====18:11,12절
늙었고 - 문자적 의미는 \'생명의 날들이 지나갔다\'인데 이는 생식 능력의 때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단어이다.
속으로 웃고 -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상황이 근거해 자신의 수태 가능성을 불신한 자궤적(自潰的) 웃음이다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 \'내가 어찌 부부간의 즐거움을 가지리요\'라는 뜻으로 자신의 수태 불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8:13절
사라가 왜 웃으며 - 낯선 여행자로서 족장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9절) 그녀의 심중의 생각까지 감찰하고 있는 점은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입증해 준다(요 21:17;히 4:13).
어떻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움남\'은 \'참으로\', \'진실로\', \'확실히\'란 뜻이다. 따라서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인 줄로 철저히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14절
능치 못할 일 - 문자적으로는 \'너무 어려워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일\'.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는 있을 수 없음을 역설하시면서(렘 32:27;마 19:26;눅 1:37) 사라의 불신을 불식시키는 약속을 거듭 주고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재삼 죄인에 대한 그분의 인내와 사랑의 열정을 깨달을 수 있다.
=====18:15절
두려워서 - 자신의 속마음이 확연히 드러나 버린데 대한 두려움이자, 단순한 나그네로만 알았던 자의 권능에 대해 느끼는 놀라움이다.
승인치 아니하여 - 자신의 잘못이나 은밀한 생각 등이 폭로될 때 당혹감 내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거짓말, 변명 따위를 늘어놓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에 기초한 일반적 성향이다(3:12,13). 이러한 태도는 사라에게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는데 그녀는 말하고 있는 상대방의 정체가 하나님일 것이라는 순간적인 생각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드러난 데 따른 두려움에 못이겨 거짓말을 하고만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더 이상의 거짓말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엄숙한 선언이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불신앙을 거짓말로 은폐해 보려 했던 사라의 경솔하고도 어리석은 죄악을 책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이에 대하여사라가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것은 하나님의 책망에 온전히 굴복당하고 말았음을 나타내 준다.
======18:16절
소돔으로 향하고 - 직역하면 \'소돔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마치 심판주 하나님께서 왼편에 있는 저주받을 자들에게 얼굴을 향하듯(마 25:41) 심판을 위한 진노의 얼굴을 소돔 쪽으로 돌리는 장면을 연상시켜 준다. 한편 아브라함이 기거하고 있는 헤브론 지경에서 소돔까지는 약 30km정도의 거리로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함께 나가니라 - 유대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일행들과 함께 헤브론 북동쪽에 있는 \'카퍼바누케\'까지 동행했다고 한다. 이곳은 아주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지역으로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사해와 그 연변의 여러 성읍들을 한 눈에 관찰할 수있다.
====18:17절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멸하시려는 계획을 알려 주신 이유는 이어 나오는 18,19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1) 축복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즉 택한 민족 이스라엘의 조상이될 뿐 아니라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아브라함(18절)에게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19절)이 진정한 축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자식과 후손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할 사명과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2) 구속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즉 심판이 없는 구속은 의미가 없으며, 구속이 없는 심판 또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요 5:29;롬 5:9) 하나님께서는 구속과 심판, 축복과 저주의 두 길을 아브라함에게 제시함으로써(요 3:18) 오고 오는 그 모든 후손들이 소돔의 멸망을 경고로 삼아 축복받는 구속의 길을 택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8:18절
천하 만민은...복을 받게 될 것 -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 태어날 그의 후손 메시야로 인해 지구상의 온 족속에게 미칠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
=====18:19절
이는...이루려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로 하여금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하는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여호와는 불변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이 언약한 바를 반드시 이행하시지만 여기에는 그 언약의 수혜자인 인간측의 마땅한 자세도 아울러 요구되는 것이다.
=======18:20절
소돔과 고모라 - 아드마, 스보임, 소알과 더불어 사해(死海)남단 싯딤 골짜기에 있던 다섯 도시 중 두 도시이다(14:2,3). 이곳 사람들은 극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이 두 도시는 \'죄악의 도시\'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부르짖음 -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한 부르짖음 곧 원성(怨聲)을 뜻한다. TEV는 이를 \'고소\'(complaint)1로 번역하였다. 억울한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호소한다는 고대인의 사상에서 나온 말로(4:10),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겁고 큰 것이었음을 상징한다.
=======18:21절
내려가서 - 고지대인 헤브론에서 해안 평지 지역인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보고 알려 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이는 그분께서 타락상을 직접 보고서 확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시겠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갈대아역(Chaldee)에는 \'만일 회개하기만 한다면 내가 그들을 벌하기 않겠다\'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뒤이어 아브라함이 중보 기도하였을 때 그들 중 열명만이라도 회개하였더라면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는 멸당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18:23절
가까이 나아가(나가쉬)- 기본 뜻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경배하다\', \'함께 눕다\'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이는 아브라함이 위치적으로 뿐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하겠다.
=======18:24절
의인 오십 - 당시 소돔 성의 인구가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돔이 비옥한 평지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13절)을 감안할 때 오십 명이라는 수는 전체 인구수에 비해 지극히 적은 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이렇게 적은 수를 내세워 소돔 성읍의 구원을 간구하였던 것은 의인 오십이라도 크게 생각해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18;25절
공의를 행하실 것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에만 매달려 무조건적인 사유(赦宥)를 간구하지 않고, 그분의 공의에 근거한 재판상의 공정성을 호소하였음을 보여 준다(Keil)이러한 아브라함의 신관(神觀)은 당시 근동의 샤마니즘적인 여타 종교의 저급한 신관에 비해 대단히 차원 높고 성숙한 것이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윤리성을결여한 여타 잡신들과는 달리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공의의 신이심을 깊이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18:26절
온 지경을 용서하라 - 하나님께서 대표의 대야의 원리에 입각해 인간을 구원하심을 보여 준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한 사람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셀 수없이 많은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신약 시대 십자가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는 비록 죄인이라도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기보다는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에 기인한 큰 은혜이다(겔 33:11).
======18:27절
티끌과 같은 나 - \'티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파르 와에페르\'는 \'먼지\'(아파르)와 \'재\'(에페르)가 복합된 말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정확히 파악한 진솔한 신앙 고백이다(롬 9:21-23).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찰할 줄 알았던 아브라함은 먼지에서 시작하여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마는 자신의 존재(3:19)에 대하여서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중보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에 근거한 기도 였음을 알 수있다.
======18:28-32절
앞 부분(23-25절)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한 호소였던데 반해 이 부분은 그분의 자비와 긍휼에 더욱 의지한 간절한 호소이다. 마치 황금 사슬이 하나하나 연결되듯 의인오십, 사십 오인, 사십, 삼십, 이십, 십 인으로 진행되는 이 간절하고 끈질긴 아브라함의 기도속에서 소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타는 사랑과 그의 간청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엿보인다.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데, 특히 그의 중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예표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18:32절
이번만 더 - \'창조자에 대한 피조물의 신앙적 파렴치성\'(F.Delitzsch)을 드러낸말이다. 그러나 마치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듯한 이 말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기도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러한 기도와 간구 자세를 원하시는데(사1:18;마 7:7-11; 눅 11:5-13;18:1-8)그 까닭은 인간의 그러한 파렴치성에도 불구하고 봇물 같은 사랑을 부어 주시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18:33절
즉시 가시니 -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나 하늘 거처로 올라가신 것 뿐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벗으시고 무형상적 실체로 돌아가신 것을 함께 의미한다.
창세기 제 19장
====19:1절
저물 때에 - 소돔성의 타락상을 바로 살필 수 있는 최적의 때이다. 왜냐하면 음란과 음란과 방탕, 각종 사악한 죄악들이 활개치는 때는 주로 어두운 밤 시간이기 때문이다(잠 7:7-9). 이런 의미에서 어두움은 성경상 죄악의 신세를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때에도 어두움을 사랑한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치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요 1:4-11;19:15). 오늘날 여전히 어두움의 때에 처해있는 우리들(눅 22:53) 역시 불법과 각종 죄악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살전 5:6).
두천사 - 타락한 소돔 성을 불로 심판할 목적을 띠고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분노의 천사\'(삼하 24:16)들이다(18:22).
성문에 앉았다가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장소, 사업 거래소, 고지(告知)) 장소및 사교생활의 주요 무대였다. 따라서 성문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는데 롯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지도층 인사로서 그곳 거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추측케 해준다.
일어나 영접하고 - 숙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동일한 나그네 대접 행위이다. 이러한 롯의 친절은 소돔 주민들과는 달리(4-9절)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롯에게 남아 있는 경건성의 반영이다(벧후2:7,8).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잘못은 죄악으로 가득찬 타락의 도시 소돔을 과감히 떠나지 않고 계속 그들 속에 함께 섞여 산 데 있다(살전 5:22).
======19:2절
내 주여 - 이 역시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롯도 천사들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일반적인 존칭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호브\'는 \'넓은 공터\', 즉 성문 안의 \'광장\'을 의미한다. 삿 19:15에 의하면 집으로 초대받지 못한 여행자들은 이러한 성읍의 길거리에서 유숙하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사들이 롯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려 한 까닭은 소돔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19:3절
식탁(미쉬테) - \'솨타\'(마시다, 술취하다)에서 온 말로 \'마실 것\', \'향연\'의미한다. 이는 여행 끝에 지친 나그네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음료수나 포도주를 대접한 것을 나타낸다.
====19:4절
무론 노소하고 - 이처럼 늙은이나 젊은이나 예외 없이 정염(情炎)에 사로잡혀 몰려왔다는 사실은 소돔 성읍이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를 확실히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성읍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13절)을 시사해 준다.
=======19:5절
저녁에 네게 온사람 - 두 천사는 완전한 사람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18:2) 그들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용모는 금방 소돔 주민들의 눈에 띠었을 것이다.
상관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본래 \'경험을 하여 상대방을 아는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성교(性交). 즉 동성애(同姓愛)를 가리키는 완곡어로 사용되었다(삿 19:22). 남색(男色)을 가리키는 영어 \'sodomy\'는 소돔 주민들의 이러한 성적 문란에서 파생된 치욕스런 단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2:24)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롬1:26,27;고전 6:9) 모세의 율법(레 20:13)을 통해 이 죄를 엄격히 단죄하고 있다.
=========19:6절
뒤로 문을 닫고 - 손님들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몸으로 폭도들을 맞닥뜨린 용기 있는 행동이다. 고대 동방에서는 자기집에 온 손님의 안전을 위해 목슴도 불사한 채 보호하는 것이 관례였다(8절).
=======19:7,8절
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들의 순결과 명예를 희생하려 한 것은 소돔 사람들의 막을 수 없는 타락 행위에 대하여 그나마 덜 심각한 죄악으로 대처하려 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분명 죄로써 죄를 막고자 한 세속적 타협안 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악과의 타협은 더 큰 악을 초래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 하나님 앞에서의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따라서 성도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악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대항해야 한다.
====19:9절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 - 롯의 이 두 딸은 이미 소돔인과 정혼한 상태에 있는 딸들이다(14절). 따라서 이 둘을 폭도들에게 색욕거리로 내주려 한 롯의 행위는 딸들 뿐 아니라 정혼한 사위들의 명예까지도 훼손시키는 결례였다.
내가...이끌어 내리니 - 족장 시대에 있어서 자녀에 대한 아비의 부권(父權)을 보여 준다. 당시의 부권은 자식의 생사 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있을 만큼 막강하였는데 드라빔 사건(31:29,32). 다말 사건(38:24), 정탐꾼 사건(42:37)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잇다.
=====19:10절
손을 내밀어 -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고서는 황급히 집으로 롯을 끌어들인 행동을 의미한다.
====19:11절
눈을 어둡게 하니 - 왕하 6:18에 나온 것과 동일한 초자연적 역사로 일시적인 시각 장애 현상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착시(錯視)현상으로 인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도 엉뚱한 곳을 헤매었던 아람 군대처럼(왕하 6:19,20), 소돔 거민들 역시 시각 장애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천계의 신령한 능력과 지상의 마귀적 충동이 정면 충돌한 필연적 결과\'였다고 평하였다. 그리고 아벤 에즈라(Aben Ezra)는 \'눈과 아울러 마음까지 어둡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19:12,13절
롯에게 이르되 - 천사들이 롯에게 그를 방문한 목적을 일러주고 있다. 그것은 곧 롯에게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는 것이자 심판이 임하기 전에 롯과 그의 가족을 그 심판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롯은 그때서야 비로소 나그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자녀나 - 이처럼 천사들이 롯의 딸들 뿐 아니라 아들들에 대하여서도 언급한 점을 들어 비평학자들은 본장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문서들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천사들이 롯의 가족 구성원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언급한 것일 뿐이다. 본절에서 롯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역시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14절
농담으로 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하크\'는 \'비웃다\'(17:17), \'희롱하다\'(39:17)는 뜻으로, 롯의 사위들이 장인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 말을 단지 조소와 건성으로만 대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아는 영적 귀가 없었던 탓인데(사 6:9,10)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노아 홍수 때에도(벧후 2:5), 소돔, 고모라 때에도, 그리고 말세에 고통하는때인 오늘날에도(딤후 3:1) 그것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의 것이다(계 2:7,11,17,29).
======19:15절
재촉하여 가로되 - 하늘에서는 이미 진노의 유황불이 다 준비된 상태에서, 구원에로의 간곡한 초대이다(벧후 3:7). 그런데 오늘날의 상황은 이보다 더 긴박하며 이미 심판의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인 지경이니(마 3:10)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아니할 때에는 아낌없이 찍히워 심판의 불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다.
=====19:16절
롯이 지체하매 -본래 재물에 욕심이 많았던 그로서는(13:10,11)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다 놓고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머뭇거렸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던 노아(6:13-22)나 아브라함(12:1-4;22:1-12) 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만고의 진리인데, 오늘날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헛된 일에 분요하며 오직 재물 쌓기에만 급급하니(시 39:6)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두어야 할 진정한 창고는 하늘에 있으며(마 6:19-21), 생명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순종하는것이 곧 참된 부요의 유일한 길(요 8:51)임을 부지런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손을 잡아 인도하여 -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역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까닭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부르심(롬 8:29;엡 1:4)과 죄사함의 은혜(롬 5:21;히 10:14) 때문인데 만일 이러한 은혜가 없었더라면 롯도, 우리도 모두 사단이 잡아당기는 손에 의해 죽음의 수렁으로 던저정을 것이다(벧전 5:8).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헴라\'는 상대방의 행위에 상관없이 그저 베푸는 \'긍휼\'이나 \'동정\'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롯이 노아처럼(6:9)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여러 죄악된 요소에도 불구하고(8절) 아브라함을 기억하사(29절 ;18:22-33)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19:17절
돌아보거나 - 없어질 세상 재물이나 명예 등 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원리인데.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으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6:24).
들에 머무르거나 -멸망의 도성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명령이다. 왜냐하면 죄는 전염성이 강하여 철저히 결별하지 않는 한, 한시라도 틈을 주지 않고 우리를 악에 물들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들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교훈한다.
산으로 도망하여 -죄악의 도성과 구별되는 새로운 삼을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한편 여기서 가리키는 \'산\'은 사해 동편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모압산\'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19:19절
산까지 갈 수없나이다 - 이처럼 롯이 이의를 제기한 까닭에 대하여선 (1) 멸망의 긴박성에 따른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높은 산을 오르기에는 역부족인 육체적 연약성 때문에 (2) 소돔 성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등으로 추측할수 있다.아뭏든 이는 어디를 가든지 함께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못미더워한 일종의 불신 행위인데. 이에 대해서까지 인내하시고 들어주신 것(21,2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를 더하셨다\'(16절)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19:20절
작기도 하오니 - 소돔 다섯 성읍(14:2) 중 소알은 가장 작은 성읍이니 다른 성읍에 비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조금만 미쳐도 능히 보존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물론 자신에게 베풀어진 인자(16절)에 근거한 간청이긴 하지만 (1)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산으로 피신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포 자기하는 나약성을 보인 행위란 점 (2)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구원의 방도(17절)에 대하여 의심하며(19절) 순종치 않는 행위란 점에서 책망받아 마땅하다.
=======19:21절
네 소원을 들었은즉 - (나사티 파네카). \'나사\'(받아들이다)와 \'파님\'(얼굴)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너의 얼굴을 가납하였은즉\'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얼굴\'을 \'소원\'으로 의역한 까닭은 간절한 소원을 아뢸 때 대개 얼굴을 땅에 대던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기인한다. 한편 롯의 소원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천사가 이를 대뜸 수락한데 대하여선, 달리 지체할 촌음의 여유가 없을 만큼 하나님의 심판이 촉급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22절).
=======19:22절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 목적이 선과 악을 함께 멸하는데 있지 않고. 악한 것을 멸함으로 선한 것을 보존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분께선 의인의 생명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천하를 멸하실지라도(6:13-22), 심판을 포기하면 하셨지 결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는 않으신다(18:25;계7:3). 그러나 여기서 다시한번 기억할 사실은 롯이 구원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29절)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16절) 때문이었지 결코 자신의 의(義)때문이아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구원받은자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소알 -\'작다\'는 뜻이다. 본래 명칭은 \'밸라\'(\'삼키다\')였으나 본 사건 이후 그 이름이 바뀌었다.
=======19:23절
해가 돋았더라 - 영적으로 각성치 못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졸지성(猝地性)을 강조해 준다. 즉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그 아침의 하늘에 심판의 불이 예비되어 있으리라고는 소돔 거민 중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14절). 마찬가지로 심판주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인즉(눅 17:28-30). 우리는 매순간 순간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마 24:43,44). 한편 롯이 소돔을 떠날 때는 동틀 무렵이었는데(15절) 꾸물거리고서도(16절) 소알에 도착한 때가 해돋는 아침에 불과하니 그 거리가 얼마 만큼 가까운지를(20절) 능히 짐작할 수 있다.
======19:24절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일부 학자들의 견해처럼 심판하시기 위하여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18:1)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또는 성자하나님(16:1)과 성부 하나님을 구별짓고 있는 구절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 어법이다 즉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함으로써 강조 효과를 노리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성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형식이다(1:27;5:1;9;16).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로 번역하고 있다.
유황과 불을...내리사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이 자연적인 화산 폭발이라는 일부 학자(Lynch, Kitto)의 학설을 배격해 주는 구절이다. 설사 그같은 자연 현상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을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두 도성의 멸망 원인과 심판의 주도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음을 증거하는 구절이다.
=====19:25절
온 돌 - 이 말은 \'요단 평지\' 전역을 뜻하지 않고 그 중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한 반경(半徑)의 특히 기름진 지역을 가리킨다(13:10). 이는 소돔, 고모라 멸망 이후에도 요단 평지에 위치한 몇몇 성읍이 여전히 언급되었던 점에 의해 뒷받침된다(왕상 7:46; 대하 4:17).
다 엎어 멸하셨더라 -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완전한 심판의 결과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역청이 많은 곳이었으므로(14:10) 그곳에 대한 하나님의 불심판은 자연히 지각함몰, 침강 현상을 초래하여, 오늘날 그곳은 수표면이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2Km가 더 낮은 죽음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12-29절 강해).
=====19:26절
뒤를 돌아본 고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트\'는 \'골똘이 바라보다\'는 뜻과 함께 ‘마음속에 간직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LXX,Vulgate). 따라서 이것은 롯의 아내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뒤돌아본 것이 아니라, 소돔에 있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돌아본 것임을 잘 나타내 준다. 게다가 그녀는 소돔 성 멸망에 대한 천사의 고지(告知)조차 못미더워하였을 것이다.
소금기둥 -문자적 뜻은 \'소금으로 된 화석상(化石像)\'. 그런데 엇비슷한 위치에 있던 롯의 일행 중 유독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만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Calvin, Kalisch)은 (1)사건의 초자연적 성격과 함께 (2)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해당자에게 개별적으로 엄격히 적용된다는 사실(렘 31:30)을 보여 준다. 한편 오늘날에도 사해 연변에는 롯의 아내로 전해지고 있는 특정한 소금기등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생히 깨우쳐 주는 산 교훈감이라 하겠다(눅 9:62;빌 3:13,14).
=====19:27,28절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 -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를 전송하러 동행했다가 멈춰서 하나님과 대화했던 곳으로 헤브론 북동쪽 언덕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중보 기도 드렸던 성읍이 과연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조카 롯에 대한 염려로 인해 날이 밝는 대로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비옥한 애굽 땅과 같았던 성읍과 지경(13:10)이 마치 옹기점 연기같이 - 불타오르는 장면만을 목격하는 재난의 증인이 되고 말았다.
========19:29절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 비록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긴 하였지만 아브라함의 간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 중에서도 자신의 자비(16절)와 롯의 최소한의 믿음(1-8절;벧 2:7.8), 그리고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 기도(18:23-320에 의거하여, 롯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큰데(약 5:16),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위해 드리는 도고(禱告)에 더욱더 귀를 기울여주신다(딤전 2:1-3).
======19:30절
산에 올라 거하되 - 여기서 산은 천사가 피신하라고 명했었던 바로 그 산, 즉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산\'을 가리킨다.
====19:31절
이 땅에는 - 이 말은 멸망당한 소돔성 일대를 의미하지 결코 온 세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세상의 도리(데레크 콜 하아레츠) - 여기서 \'도리\'에 해당하는 \'데레크\'는 \'습관\', \'행동 양식\', \'풍습\'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직역하면 \'온 세상의 습속\'이 되는데 이는 곧 혼기에 찬 남녀가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는 \'혼인 풍속\'을 의미한다.
=====19:32절
술을 아시우고 - 여기서 술은 소알을 떠날 때 갖고 나온 것이거나(30절), 아니면 그의 두 딸이 준비하거나 만든 것일 것이다.
전하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는 \'살리다\', \'유전케 하여 소성시키다\'(시 119:25)의미로 종족 보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 같은 인간 본능과 또한 무자(無子)로 말미암는 수치가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아비와 상관함으로써 후사를 얻으려한 딸의 계획은 (1) 인간의 기본 인륜을 저버린 패역이자 (2) 후사를 핑계로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 한 간계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19:33-35절
깨닫지 못하였더라 - 술이나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만,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취하는 것은 도덕성과 신앙이 마비될 뿐 아니라 무서운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타락의 첩경임을 다시 한번 단적으로 증거해 주고 었다. 물론 그 동안 롯이 소돔 재앙과 아내를 잃은 데 대한 슬픔을 술로써 잊으려 했을 것이라고는 짐작이 가며, 일말 동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에 만취되어 방심함으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된데 대한 도덕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실로 노아사건(9:20-27) 이래 술취함은 많은 죄악에로시 첩경이었다(레10:1-9;사 5:11;잠 20:;합2:15). 만일 롯이 술취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기본적인 덕성상(1-8절;벧후 2:7,8) 딸과의 근친 상간이라는 무서운 죄(레 20:11-17)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36절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 술취함으로 인한 한순간의 실수가 당대 뿐 아니라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고 두고 롯의 생애 최대의 치욕으로 남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1) 모압(\'아버지로 말미암아\'란 뜻)과 암몬(\'네 아비의 아들\'이란 뜻)은 근친상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상 롯의 수치를 영원히 후세에 전하고 있으며 (2) 그 결과 롯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성경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약에 얼핏 기록된(눅 17:28,29,32;벧후 2:7,8)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단지 경고를 하기 위한 의미만 담고 있을 뿐이다.
======19:37,38절
본 기사는 일부 자유주의 학자(De Wette)의 주장처럼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이나 혹은 증오를 나타내기 위하여 허위로 꾸며낸 기사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진실만을 구속사적 측에서서 진솔히 기록한 기사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바로 모압 여인 롯에게서 나왔으며(마 1:5,6), 뿐만 아니라 그의 혈통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셨기 때문이다(눅 3:23-31)
===============================20:1절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헤브론 지경 아므레 상수리 수풀(13:18)에서 장막을 걷고 남방(the south country),곧 팔레스틴 남쪽 지방인 네게브(Negeb)로 이주한 것을 가리킨다.이주 원인은 아마 그 무렵 헤브론 지역에 침입한 셋 족속(23장)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랄 - 팔레스틴 남부, 사해 서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읍이다. 후일 이삭도 흉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였으며(26:1)유다 왕 아사가 구스 군대를 크게 격파했던 곳이기도 하다(대하 14:13).
==============================20:2절
누이라 하였으므로 -이에 대하여 문서설(文書設,documentary hypothesis))을 주장하는 학자을은 12:10-20에 나오는 동일한 사건의 반복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앞서의 사건은 아브라함 75세 때 애굽왕 바로와 관계된 일이었으나, 본장의 사건은 아브라함 99세 때 그랄 왕 아비멜렉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아뭏든 이처럼 아브라함이 20여년 전에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잘못을 또다시 범한 것은 (1)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면 반드시 시험에 빠지고 말았다는 점과 (2) 한번 지은 죄에 대하여선 쉽게 재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
사라를 취하였더니 -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관습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국의 통치자는 어떤 처녀라도, 심지어는 그 땅의 일시적인 방문자 일지라도 마음에 들면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이유는 90세가 다 된 사라의 미모에 반해서라기 보다 정략 결혼을 통해 자기 영토권내로 이주한 부유하고 강력한 족장 아브라함과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Delitzsch).
============================20:3절
현몽하시고 -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방편으로 꿈을 사용하신 경우이다. 물론 택한 백성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선 꿈으로 계시하셨지만(28:13-15;37:5-11;왕상 3:5;마 1:18-24), 이러한 일은 특히 이방인에게 자주 일어났는데(31:24;41:1-13;삿 7:13,14;단 4:4-27;마 2:12), 이는 꿈이 하나님의 현현(theophany)보다는 차원이 낮은 계시의 방편임을 시사해 준다.
네가 죽으리니 -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남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 제도의 신성함을 부인하고 기본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도 그대로 승계되었는데 거기에는 결혼한 여자를 범하였을 경우 쌍방다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20:4절
가까이 이니한 고로 - 하나님의 약속(17:19)에 근거한 비상 섭리의 결과이다. 만
일 아비멜렉이 실제로 사라와 관계하였더라면 시기적으로 볼 때 사라가 낳은 아들 이
삭(21:2,3)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것이다.
의로운 백성( , 고이 차디크) - \'백성\'에 해당하는 \'고이\'는 대
개 \'이방 나라\',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직역하면 \'죄없는 이방인\'이란 뜻
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은 어느 정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을 알고 있었으며 도덕적으로도 주변 성읍과는 달리 다소 나았던 것 같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 그들이 함께 심판당하지 않았던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19:24,25). 아뭏튼 아비멜렉의 호소는 \'구체적인 죄가 없는데도 벌주시려나이까\'란
의미의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호소라 하겠다.
==============================20:5절
이는 내 누이라 - 아브라함의 이 말은 혈통 및 가계상(家系上)으로는 맞는 말(12
절)이라 하더라도, 신앙 양심을 거스리고 세상 사람의 눈을 속이려 한 말이었다는 데
아브라함의 잘못이 있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 -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당시대
의 합법적인 왕의 권한을 뜻한다. 그중 \'온전한 마음\'은 사라에 대한 내적 동기를
가리키며, \'깨끗한 손\'은 그녀를 자기 내실로 데려오도록 시도한 외적 행위를 가리
킨다.
===============================20:6,7절
아비멜렉의 행위는 그의 도덕 양심과 당시의 윤리 기준으로 볼 때에는 악
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신성한 섭리에 누(累)를 끼쳤기 때문에
선지자의 중재를 통해서만 죄 용서 받을 수 있었다.
선지자( ,나비) - 원뜻은 \'쉬임없이 말하다\'로 신적 영감을 받아 말하
는 \'대언자\'(출 7:1)를 가리킨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는 일차적
사명 외에 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을 \'선지자\'로 칭하신 까닭은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또한 아브
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 아브라함이 선지자인 이상, 아비멜렉이 그의 아내
를 취하려고 한 것은 선지자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범죄 행위였다.
따라서 이러한 아비멜렉의 죄는 아브라함의 중재 기도를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었
다. 한편 이 같은 아브라함의 선지자적 기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소돔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한 중재 기도에서 발휘된 적이 있었다(19:29).
=============================20:8절
모든 신복을 불러 -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 앞에, 그것도 아랫사람 앞에서
시인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자신의 잘못을 그들에게 고함으로
저들도 연대책임을 느끼고 각성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도록 하였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의 겸허한 마음과 참된 용기가 잘 드러나 보인다.
============================20:9절
합당치 않는 일 - 직역하면 \'행해서는 안 될 일\'. 즉 아브라함은 (1)먼저 하님
님의 보호하시는 섭리와 손길을 불신하고 (2) 나아가 이웃을 실족케 하는, 행해서
는 안 될 일을 범하였던 것이다.
===========================20:10절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한 정확한 의도가 무
엇이었는지에 대한 아비멜렉의 질책어린 물음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질책을 당하고 있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숨으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이 잘못했을 때 그부모가 낯을
들 수 없듯 아브라함은 일찍이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친구이며(대하 20:7) 대
언자였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교회와 성도가 세상 사
람로부터 이유 있는 조소와 질책을 당할 때 그것은 다시 한번 예수의 손에 못을 박는
행위가 됨을 명심해야 한다.
===========================20:11절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 소돔.고모라와 같은 여타 성읍처럼이곳 거민들도
하나님을 경외치 않을 줄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물론 아브라함의 이러한
변명은 그랄 족속이 어느 정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고, 도덕적으로도 타성읍보다
다소 나았기는 하나 이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족속이었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전의 에굽사건(12:10-20)을 통하여
신변상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잔꾀를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고서도 (1) 다시금 인간적인 두
려움에 사로잡혔으며 (2) 이를 타개하기위혜 재삼 사람을 기만하려 들었으니 큰 잘
못일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셨다면 아브라함의 이러한 잘
못을 빌미로 그와 맺으셨던 언약(12:2,3)을 파기할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는 그러하지 않으시고 그 크신 사랑과 자비로 참고 또 참으시사 그 언약을
유지시켜 나가셨다. 따라서 이처럼 아브라함이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결코 그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나의 나 된 것도 역시 동일한 하나님의 은
혜에 의한 것이다(고전 15:10).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지 자긍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처신해야 할 것이다(롬 11:18-21).
===============================20:12절
실로 나의 이복 누이 - 이에 대하여 혹자는 사라가 이스가와 동일 인물(11:29)
로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딸이 될 뿐이지 이복 누이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Lange). 즉 사라가 아브라함을 가리켜 \'내 오라비\'(5절)라고 한 것은 단지 서로가
그례게 부르도록 약정했기 때문이지 결코 서로가 이복 오누이 관게였기 때문이 아니
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뒷받침해 주는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또한 \'실로\'
( , 옴나)라는 단어 역시 불변사로 \'분명히\', \'확실히\', \'참으로\'라는
강조적 의미이기 때문에(수 7:20)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따라서 데라가 아브라함의 어
머니 외에 또 어떤여자를 취하여 사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자 그대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던것으로 보아야 한다(Keil).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 이러한 근친 결혼은 (1) 인구가 미분산(未分散)되어 있
고 (2) 가문의 혈통 보존을 중요시 여겼던 고대 사회에서는 도덕률과는 무관한 자연스
런 관행이었을 것이다.
===========================20:13절
내 아비 집을 떠나...하실 때에 -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나님께 소명(召命)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12:1). 이때 그는 이미 자신이 나그네와 같은 자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될 운명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의 가는 곳마다 - 아브라함이 애굽에서도 사라를 가리켜 이복 누이라 칭
한 것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12:13). 이브라함 당시대의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자신
의 아내가 실제 누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내를 가리켜 누이라 칭하는 것이 관례적인
표현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처신이 결코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이거나 치졸한 변
명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순수한 마음에서 그렇게 처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여 이를 자구책(自救策)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데서부
터 결국 모든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은혜( , 헤세) -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선으로 갚는것과 같은
모든 자비, 연민, 사랑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은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를 위해 죽음에 내어 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20:14절
양과 소와 노비...사라도 - 애굽 왕 바로처럼(12:16,19) 아비멜렉도 사라 뿐
아니라 예물까지도 딸려 보낸 것은 기대 이상의 친절한 호의이다. 이것은 아브라함
이 지레 짐작한 모든 두려움, 불신(11절)등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 준
다.
=======================20:15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 아브라함을 자신의 영토내에서 내보내었던 바로
(12:20)와는 대조되는 태도로 아브라함에 대한 아비멜렉의 우호적인 자세와 관대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호의에 의거해 이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영토에서
우물을 파고 지낼 정도로 장기적인 체류를 하였다(21:25,34).
=========================20:16절
은 천개 - 은 천 세겔을 가리킨다. 여기서 \'세겔\'(Shekel)은 히브리인들의 화폐
단위(대상 21:25)가 아닌 무게 단위(삼하 14:26)로 대략 11.4g(약 3돈)에 해당된다.
따라서 은 천 세겔은 11.4kg에 달하는 상당한 양이었음알 수 있다. 이것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 했던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속전(贖錢)이자 동시에 아브라함과
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화해의 선물이기도 하였다(신 22:28,29).
네 수치틀 풀게 하였노니( ,케수트 에나임) - \'카사\'
(덮다, 가리다)와 \'에나임\'(눈)이 복합된 말로, 직역하면 \'네 눈을 가리우게 하였으
니\'. 이는 곧 \'네 눈에 베일을 씌워 보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로 사라의 순결성을
표현한 말인데 먼저 (1) 사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범하려고 한 아비멜렉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란 뜻이며 (2)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베일로 가리운 것 같
이 \'사라를 우정의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란 뜻이다(Calvin).
네 일이 다 선히 해ruf 되었느니라 - \'선히 해결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
카흐\'( )는 \'증명하다\', \'바로잡다\', \'변론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네가 모든 사람 앞에 결백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공동 번역)란 뜻으로 곧 사라
의 순결성을 표현한 말임을 알수 있다.
===============================20:17절
아브라함이...기도하매 - 조금 전까지만해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로 인해 아
비멜렉 앞에서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움에 처해 순식간에 권
위를 회복하는 장면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궁지에 몰린 아브라함이 선지자적 권위(7
절)를 회복할 수있도록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 집안의 우환을 치료하여 주심
으로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을 우러러보도록 도와 주셨던것이다(18절).이 처럼 오늘날
성도들도 자신이 잘나서가 결코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 때문에 빛 된 사명을
다할 수 있는데,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일생 빚진 자임을 자각하고 더욱더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고전 4:2)
여종 - 여기서는 단순한 하녀(maidservant)와는 구별되는 아비멜렉의 첩들을 의
미한는 것 같다.
=======================20:18절
태를 딛히셨음이더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전가족을 일시적으로 불임 상태로 만드신 것은 사라를 위한 이적적인 보호이자 또한
그녀를 통하여 탄생될 약속된 자녀(17:19)의 순결성 유지를 위한 특별한 보호 조처였
다. 한편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헤 가운데 주신 언약은 인간의 실수나 잘
못에도 불구하고 그 효력이 상실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1:1절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 여기서 \'그말씀\'이란 일전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
셨던 언약(17:19-22;18:9-15)을 가리킨다. 이제 예고하셨던 기간이 이르자(2절) 그 언
약을 말씀대로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성을 증거해 준다.
권고하셨고( ,파카드) - 문자적인 뜻은 \'방문하다\'. 이 말은 종종 특별
한 인물에 대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혹은 호의의 행동을 가리키기도 하고(50:24;
롯 1:6;삼상 2:21), 반대로 심판의 행위(사 24:21;렘 9:25;호 12:2)를 가리키기도 한
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사라를 돌
보신 것을 뜻한다.
행하셨으므로 - 사라가 잉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생명의 잉태와 죽음 등과 같은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테(사 44:2) 특히 90세에 이르는 사가 단산(斷産)하였으나 잉태하는 힘
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히 11:11).
====================21:2절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 - 이삭의 출생이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
니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과 아브라함 간의 언약 기간(17:21)을 가리킨다. 그런데 분
명한 첫계시 (15:4)이후 13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시
키신 까닭은 (1) 아브라함 나이 100세가 되어 그의 몸이 죽은 것 같은 때(롬 4:19)를
기다림으로써 이삭 탄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
조하기 위함이며(히 11:11,12) (2) 언약의 일부분인 이스마엘 (16:10-12; 17:20)이 독
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도록 기다리시기 위함이었다(13,21절)
아들을 낳으니 - 거듭된 약속과 오랫동안의 고대 끝에 마침내 \'약속의 씨\'가 태
어난 순간이다. 이처럼 구약의 인물 중 그 누구보다도 이삭이 대망(待望)가운데 태어
나게 된 까닭은 언약의 첫 열매인 그가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고전 15:20,23)를
예표하기 때문인데 그러한 그의 예표적 생애는 모리아 산 사건(22:2)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21:3절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 이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다(17:19,21). 히브리인들의 이름은 그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특징, 운
명 등을 반영하고 있는데 \'웃다\'는 뜻의 이 이름은 역시 탄생전 수태고지 시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던\'사건에 기인한다. 동시에 이 이름은 이삭이 오랫동안 고
대하던 아들로서 온 가족들의 기쁨 중 태어난 것을 보여 준다. 그는 단순한 한 가
정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먼 홋날 모든 민족에게까지 미칠 언약(12:2,3)의 상속자
였으니 그의 탄생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웃을 큰 경사(慶事)가 아닐 수 없다.
=========================21:4절
난 지 팔 일 - 하나님의 원(原)창조기간인 7일(2:1-3)이 지난 재(再))창조의 첫
날(막 16:9)로서 거듭 태어난 새 생명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날이다.
할례를 행하였더라 - 당시 할례는 비단 히브리인 뿐 아니라 애굽, 에디오피아
같은 고대 이방 민족들도 시행하던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할례는 단지 어떤
고통과 질병 따위를 제거하려는 미신적인 성격을 가졌거나 혹은 출산 능력을 증가시
키고자 하는 생식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녔지만, 히브리인들의 할례는 언약과 관
련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철저히 종교적이고도 영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21:5절
백 세라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고향을 떠난 지 25년째 되던 해이
다(12:4).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비록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다 이루
어지고 만다. 따라서 성도는 그러한 기간 동안 신앙의 인내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롬
4:18-22)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롬5:4).
============================21:6절
사라가 가로되 - 언약의 아들 이삭의 탄생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머니
사라의 찬송시이다. 이것은 후일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마리아 송가(Magnificat)의 전
조가 되었다(눅 1:46-55).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 이전 수태고지 시에 웃었던 불신의 웃음(18:12)
과는 달리 이삭의 탄생을 이웃과 함께 진정으로 기뻐하는 노모(老母)의 억제할 수 없
는 환희와 신앙의 웃음이다.
=========================21:7절
누가...말하였으리요 - 여기서 \'누가\'( ,미)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한 놀라움과 경탄을 나타낸 단어이다. 즉 사라는 미리 계획
하시고 예정하신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비웃고 불신할 만한 일을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 오늘날 능히 이루신 데 대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1:8절
젖을 떼는 날에 - 당시 문화권에서는 아이들이 오늘날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젖을 떼었는데 대개 3살경이었다(삼상 1:22-24)이 때 히브리인들은 종교 의식과 더
불어 이웃과 함께 큰 잔치를 베푸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이때 이삭의 나이는 17세
가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16:16).
===========================21:9절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 \'희롱하는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차헤크\'( )
는 \'멸시하다\', \'비웃다\'란 뜻 외에 \'핍박하다\'란 뜻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장난기 섞인 단순한 희롱이 아니라 17세나 된 이스마엘이 적자(嫡子)이삭의 탄생으
로 말미암아 상속권을 상실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불만을 품고 고의적으로 동생을 멸
시하고 핍박한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처럼 애굽 여인의 소생인 이스마엘(16:1)
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핍박한 본 사건은 (1) 역사적으로, 장차 애굽에서 애굽인들
에게 이스라엘이 당할 400년간의 핍박 생활(15:13)과 (2) 영적으로,성령을 따라 난 신
자들이 육체를 따라 난 불신자들에 의해 핍박당하는 것을 예표한다(갈:29).
===============================21:10절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 사라가 하갈을 기리켜 \'여종\'이라고 칭한 것
은 종에게서 난 자식이 주인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
다. 그리고 여기서 \'내어 쫓으라\'( , 가라쉬)는 말은 \'이혼하다\'(레 21:7;민
22:13)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로 곧 법적 절차를 밟아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
에 대하여 지니고 있던 권리 및 관계를 제거시키라는 의미이다. 사라의 이러한 요구
는 하갈이 여전히 그녀의 몸종이었던 이상(16:6)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합법적인 것이
었다(Nuzi Tablets). 그러나 한때 사라가 자녀생산을 위해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었던 목적(16:2)에 비추어 볼 때에는 잔인하며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처사가 아
닐 수 없다.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 아브라함의 가계(家系)를 이으며 가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뜻.
=========================21:11절
근심이 되었더니 -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하라는 사라의 요구에 대하여 아브
라함이 깊이 번민한 까닭은 (1)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한때 이스마엘을 약
속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그의 부성애 때문이었으며(17:18) (2) 또한 하갈이 비록
사라의 몸종이긴 하나 주인에게 자식을 낳아 준 여종은 함부로 추방하지 못한다는 것
이 족장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풍습이었기 때문이다(Nuzi Tablets).
===============================21:12절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 14절에 의거할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
였던 때는 밤 시간이었으며 계시 전달 방법은 꿈이었던 것 같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 언약의 후손에 참여할 수 있는 범주를 이삭 후손으
로 제한하셨다는 거듭된 확약이다(17:21). 이러한 제한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
곱 중 야곱만을 택함으로써 다시 한번 축소되었다(25:23).
===============================21:13절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역시 이스마엘의 문제로 근심하는 아브라함을 위로하
기 위하여 주신 이전 약속(17:20)의 재확인이다. 성경에 나오는 거듭된 약속이나 충
고, 경고 등은 모두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에서 주어지는 것들이다. 한편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은 후일 이스마엘에게서 12방백이 태어남으로써 실제로 성취
되었다(25:12-26).
===============================21:14절
아침에 일찌기 - 인간적인 갈등에 사로잡혀 한때 번민하고 고통하던 것과는
다른 자세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좇아 순종하기를 지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떡과 물 한 기죽부대 - 여행 길을 떠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
물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이외에도 아브라함이 얼마 만큼의
금품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왜냐하면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
는 애정과 재산913:2;20:14-16)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9절;16:1).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쪽 약44km지점에 위치한
팔레스틴의 국경 도시이다(삼상 3:20). 그런데 하갈이 이곳 들판에서 방황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고향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애굽을 떠난지 이미 20년이 지난
뒤였으므로(16:3) 길을 잃고 헤매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21:15절
물이 다한지라 - 하갈은 본시 애굽 출신의 여종으로서 사막의 열기 가운데에도
장시간 힘든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지만 부유한 족장의 집에서 자란 이스마에은
전혀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 사막의 불볕 더위하에서 물이 떨어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21:16절
살 한 바탕( ,하르헤크 타하 케세트) - \'거리\' (하르헤크)
와 \'화살 쏘기\'(타하 케세트)가 복합된 말로 \'화살이 미치는 거리\'(bowshot), \'활쏘
기에 알맞는 거리\'를 가리킨다. 이는 대략 300m정도의 거리이다.
마주 앉아...방성 대곡하니 - 속수 무책(束手無策)인 상태에서 자식이 죽어 가고
있는 비참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멀찍이 떨어져 앉아 그저 목놓아 울고만 있는
애처로운 광경이다.
==============================21:17절
하나님이 - 언약의 하나님인 \'여호와\'(12:1)가 아닌 능력의 하나님인 \'엘로힘\'
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남으
로 더이상 언약적 하나님의 보호하에 있지 못하고 다만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만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Keil).
하나님의 사자 - 일전에 \'술 길 심물 곁\'에서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여호와의 사
자\'(16:7)와 동일 존재인 것 같다.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 일전의여러 경우(17:1;18:1,2;19:1)와 같이 가시적
(可視的)으로 현현하신 경우이다.
두려워 말라 - 아브람(15:1)과 이삭(26:24), 다니엘(단 10\"12),요한(계 1:17)에
게도 들려졌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의 말씀이다(사 41:10;43:1-3). 철저히
절망적인 상황 중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자들에게는 오늘날에도 시공
을 초월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질 것이다(마 10:30,30)
==================================21:18절
붙들라( ,하자크) - \'강하게 하다\'(신 31:6), \'굳세게 하다\'(사 35:4)는
말로 이스마엘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라는 뜻이다.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미약한 시작을 위대하게 만시는 하나님의 구
속사적 사역을 증거해 주는말로(고전 1:26-29) 광야에서 길을 잃고 기갈(飢渴) 중에
죽어 가고 있는 보잘것 없는 소년 이스마엘이 장차 아라비아 족속의 원조(元祖)가 될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이다.
======================================21:19절
눈을 밝히시매 - 기적적으로 영안(靈眼)을 밝혀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발
견 불가능한 것을 섭리적으로 보게 해주셨다는 뜻이다.
샘물을 보고 - \'샘물\'에 해당하는 원어 \'베에르\'( )는 \'보르\'(저수지)와
는 구분되는 말로 땅속에 묻혀 있는 물이 솟아나는 \'샘\'을 의미한다(26:19;아 4:15).
대개 이러한 샘물들에는 돌로 입구를 막고 특수한 표시를 해놓기 때문에 그 샘의 표
시를 모르는 자는 찾아낼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간섭하셔서 그녀로
하여금 이 같은 샘을 발견하도록 역사하셨다. 그러므로 메튜 헨리(Mattnew Henry)는
이 샘을 가리켜 \'은총의 계약으로 이미 주어졌던 샘물\', 즉 죄 가운데 방황할 때
발견 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발견되어지는 샘물(요 4:13,14)이라
고 묘사하였다.
=============================21:20절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 활은 광야 생활의 필수 도구로서 이스마엘이 크게 성
장하여 활을 사용하는 한 부족으로 번창했음을 암시해 준다(Murphy).
================================21절
바란광야 - 아카바 만과 수에즈 운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가데스 바네아 남쪽
지역이다. 이로 보아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에서 기적적인 구원을 받은 후 계속
팔레스틴 남방으로 여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 하갈과 히브리인 아브라함 사이
의 혼혈아인데 그 역시 애굽 여인과 결혼함으로 후손 아라비아인들은 히브리, 애굽인
간의 완전한 이중 혼혈족이 되고말았다.
=================================21:22절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 -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지역(34절)의 최고
통치자인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관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까닭은 상호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즉 이미 하나님의 간섭(20:3-7)을 체험한 바 있는 아비멜렉은 하나
님에 의해 점점 창성해 가고 있는 아브라함이 두려워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 원하였
던 것이다. 인구도 부족하고 국가 조직도 미비된 당시 상황에서는 약자에 대한 강
자들의 약탈이 빈번하였기 때문에 강력한 이웃의 세력과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바
로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사였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후일 언약의 후손 이삭(26:28)과 야곱(30:27),
요셉(39:3)도 이방인들로부터 이와 동일한 고백을 듣는데 , 바로 이 점이 성도를 불
신자들과 구별지어 주는 근본적인 특징이다(마 28:20).
=================================21:23절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 상호동맹 조약의 효력이 당대 뿐 아니라 자손들
에게까지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아비멜렉에게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아브라함을 창
대케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인지할 수 있다
이제...맹세하라 - 그 즉석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기를 염원하는 아비멜
렉의 간청이다. 한편 \'맹세\'( , 솨바)란 말은 \'세바\'(일곱)에서 파생된 말
로 맹세의 엄중성 및 신성성(神聖性)을 강조해 준다. 그 까닭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서 \'7\'이란 숫자는 천지 창조 기간과 관련하여 더하거나 감할 수 없는 성수(聖數)
및 \'완전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 맹세와 일곱의 관
계는 그리스도의 가상칠언(架上七言, 마 27:46,47;눅 23:34,43;요 19:26-30)에서 결정
적으로 나타났다.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 아내 사라에 대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인해 곤경에 빠
질뻔한 상황 중에서도 아비멜렉이 그에게 각종 예물과 거주지를 제공하였던 일
(20:14-16을 가리킨다.
============================21:24절
내가 맹세하리라 - 화평의 사람 아브라함(13:9)이 아비멜렉의 화친 제의에 기꺼
이 응한 것은 참된 신앙 인격이 결코 독선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세상적인 것을 피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웃이나 친구를 멀리해서
는 안 될 것이다(고전 5:9-13).
=================================21:25절
우물을 늑탈한 일 - 팔레스틴 남부 사막 지대의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우물은 생활의 필수 요건이자 가장 큰 재산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우물을 장악하기 위한 분쟁이 종종 일어나곤 하였는데(26:17-22) 심할 때는 대대적인 전쟁으로 비화(飛火)되기까지 하였다.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 아비멜렉의 영토 안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텃세를 부리며 자신의 우물을 강제로 빼앗는 일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 왔었다. 그러나 이제 우정의 동맹 조약을 맺게된 마당에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에 항의를 표한 것이다.
=================================21:27절
양과 소를...주고 - 동맹 체결을 확정하는 의미에서 주는 선물이다. 즉 고대 근동에 있어서 국가나 개인간에 선물을 수납하는 것은 화친을, 거절은 불화와 전쟁을 의미하는 행위였다(사 30:6;39:1).
=================================21:28-30절
일곱 암양 새끼 - \'7\'이란 상징수를 통하여 맹세의 엄중성을 강조하려 한 \'일곱
의식\'아다. 즉 아브라함은 앞으로의 권리 침해에 대비하여 특별히 일곱 마리의 짐승을
아비멜렉에게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우물 소유권에 대한 왕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려
한 것이다.
===============================21:31절
브엘세바 - 일곱 암양 새끼로 맺은 맹세를 기념하는 명칭으로 \'일곱의 우물\' 또
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21:32절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 34절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
나 당시에는 블레셋 땅 뿐 아니라 여러 족속, 국가에 오늘날과 같은 뚜렷한 국경 개념
이 없었다. 따라서 본절은 아비멜렉과 비골이 그들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돌아
갔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비멜렉이 그랄 왕임에도 불구하고(2절) 그의 통치령을 \'불
레셋 족속의 땅\'이라 칭한 까닭은 그곳에 불레셋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
다.
==============================21:33절
에셀나무 - 위성류(渭城柳, tamarisk)로서 사막의 모래 언덕이나 염분이 많
은 늪지대에서 잘 자란다. 아브라함이 단단하고 수명이 긴 이 나무를 심은 이유는 아
비멜렉과 맺은 언약의 공고성과 지속성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였다.
영생하시는...이름을 불렀으며 -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분께 찬양
과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일찍이 여호와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
님\'( ,엘 엘욘)으로 불렀으며(14:22),할례 언약시에는 \'전능하신 하
나님\'( ,엘 솨다이)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
( ,엘 올람)으로 부름으로써 하나님은 오고 오는 세대에 걸쳐 자기 백성
을 돌봐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신지식(新知識)이 더 한층 깊어졌음을
알수 있다.
================================22:1절
그 일 후에 - 여기서 \'일\'( , 다바르)이란 문자적으로 \'말\'(言語)을 의
미한다(11:1). 따라서 지금까지 주어진 축복 혹은 언약의 통괄 지칭으로 볼 수 있
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건\'(롯 3:18)이란 뜻도 지니므로 \'그 일 후에\'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 전개에 대한 머리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앞의 사
건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있음을 나타내 주는 문장 연결어로도 볼 수 있다.
이때는 이삭이 번제용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만큼 충분히 자랐을 때이다(6절).
시험 하시려고 - 성경에 나타난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단에게서
기원한 시험으로(엡 2:2), 인간을 타락케 하는 유혹(temptation)이다(3:1-6).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시험으로 성도의 신앙을 증험(證驗)해 보는 테스트(test))
이다(욥 23:10). 여기서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후자의 경우로 그를 믿음의 조상
으로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 인간적인 생각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순종의 시
험이었다.
그를 부르시되 - 일전에 말씀으로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였던 것과 동일한 방식의
계시이다.
아브라함아 하시니 - 명령을 계시하시기 위한 부르심인데 단 한 마디로 이루어
져 있는 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당시 상황의 긴박성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
분하였을 것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무슨 일이든지 이르는 대로 청종하겠다는 결의에 찬 응
답이다(사 6:8). 이는 성도가 항상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대답인데 언제 어느 곳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신의 영적 현주소는 \'하나넘 앞\'(coram Deo)이란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
==================================22:2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 3중으로 강조된 점층법적 표현이다.즉 (1)하나
님의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 (2) 그중에서도 100세에 낳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자 (3) 이스마엘이 떠난후 자신에게 넘은 유일한 혈통이
며 25년을 기다려 얻은 \'언약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한 말이다. 이 말에는 이삭에 대
한 아브라함의 애정을 최고도로 불러일으켜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그러한 상
황하에서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토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연단의 의미가 담겨있다.
모리아 땅 -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브엘세바(21:32-34)에서 사흘 길 거
리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산악 지대이다. 한편 \'모리아\'( , 모리야)는 \'마
르에\'( )와 \'예호와\'( )의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이란
뜻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을 지정하시고 선택하셨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
서는 이곳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곳 뿐 아니라 훗날 솔로몬 성전이 건립될 장소
(대하3:1)로 이미 택정해 놓으셨던 것이다.
번제로 드리라 - 인신 제물(人身祭物)로 바치라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
령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나 신앙으로는 받아들여야만 하
는 난제(難題)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1) 이는 피흘리는 것을 싫어하며 생명의 존
엄성을 강조하던 하나님의 속성(9:4-6)과 상치되며 (2) 거듭된 약속과 맹세 속에 겨우
태어난 유일한 약속의 씨 이삭을 다시 거두어 가려 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약속
(17:5,6)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22:3절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서두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
라함이 기쁜 마음으로 명령에 순종했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밤잠을 못 이루면서
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순종밖에 없고 하나님은 어떠
한 식으로든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어 주실 줄 믿었기에(롬 4:21) 그는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을 것이다(막 14:36).
번제에 쓸 나무 - 번제(Burnt Sacrifice)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火祭)이다. 따라서 불을 피우는 데 사용될 나무
가 필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틴의 구릉 지대엔 대부분 나무들이 없었기에 번제용 나무
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한편 아브라함의 집에는 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짐승과
다른 종들도 있었는데 굳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불에 태워 바치라고 요구하셨으니 이것
은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벧전 4:12)이었음올 알 수 있
다.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길, 즉 약 80Km 여정(旅程)은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이어 주는 헌신과 순종의 길이자 지성소를 향한 속죄의 길이었다
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이 번제로 드려졌듯이(13절)
훗날 이곳에 세워진 솔로몬 성전에서도 역시 인간을 대신한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드
려졌기 때문이다(대하 5:6).
===============================22:4절
제 삼일에 - 지시받은 날(1절)로부터는 나흘째이다. 상징적이긴 하나 이것은 유
월절 나흘 전에 미리 양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출 12:3,6)과 일치한다.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이 지정한 곳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셨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하나님은 햇빛에 영롱히 반사되는 구름 덩어리
를 그곳 모리아 산에 머물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쉽게 제단 쌓을 곳을 발견할 수 있
었다고 한다.
============================22:5절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 원어 성경에 의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우리\'라는 복
수 1인칭이다. 이는 종들을 따돌리기 위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의 몸
에서 독자 이삭의 기적적 탄생을 체험한 아브라함(롬 4:18-22)은 비록 지금 이삭이 죽
임당하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다시 살아날 줄을 믿었다(히 11:17-19)고 성경이 친
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22:6절
이삭에게 지우고 -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독생자 예수 그
리스도에게 옮겨 지우신 대속(代贖)사역(사 53:4-6;요 19:17)을 연상시켜 주는 장면으
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닌다.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이끌고 가는 아브라함의 내적
고통은 그를 침묵케 하였을 것이고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표정은 이삭에게 긴장감
과 당혹감, 참된 여행 목적에 대한 궁금증 등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22:7절
내 아버지여...내 아들아 - 어색한 긴장감과 침묵을 깨는 대화로 부자(父子)간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존경과 애정의 부름과 응답이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이는 (1)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가 이미 모
세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증거해 주며 (2) 아브라함의 경건 생활과 제사 행
위를 통해 이삭이 제사를 드리는 절차와 방법, 필요한 제물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이 질문은 이러한 사실적 의미 외에도 영적의미를 지니
고 있는데 곧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든 인류가 안타깝게 부르짖는
공동의 물음이란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수없는 어린양을 죽이고서도 그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사 1:11-14). 그러나 성경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
다.(요 1:29).
============================22:8절
하나님이...친히 준비하시리라 - 이삭의 질문에 대한 거짓말도 아니고 하나님께
서 사전에 이삭을 대신할 다른 제물을 준비해 놓으시겠다고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뜻
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그리고
선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믿는 확신에 찬 대답일 뿐이다(히11:17-19). 이러한 그의 태
도는 이전의 몇몇 경솔했던 처신(12:10-20;6:1,2;20:1-18)을 교훈삼아 아브라함이 보
다 현명하고 성숙된 신앙인으로 변화하였음을 보여 준다.
==================================22:9절
이삭을 결박하여 - 이로써 이삭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
려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혈기 왕성한 이삭은 하려고만
하였다면 노쇠한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는데 아마 아브라함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작정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삭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를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한 그리스도의 순종(빌
2:8)과 속죄 사역(사 53:5)을 예표한다.
=============================22:10절
칼을 잡고 - 아브라함이 할 수 있었던 순종의 마지막 행위이다. 따라서 이제 이삭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구태여 이삭을 죽이지 않더라도 아브라함의 신앙은 입증되었으며 제사의 정신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신 까닭(12절)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비록 이삭은 죽지 않았으나 죽었고, 죽었으나 다시 살아났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페러독스(paradox)이다(마 10:39;16:25;dy 12:15). 한편 여기서도 이삭의 순종은 간과되어선 안 되는데 아브라함의 칼 앞에서잠잠했던 이삭의 모습은 병정들의 창칼 앞에서 잠잠했던 그긔스도의 모습을 예표해 준다(마 26:47-56).
================================22:11절
여호와의 사자 - 일전에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분(16:7)과 동일한 성육신(成肉
身)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다급한 반복은 사태의 긴박성과 함께 이름이 지니고 있
는 의미를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이삭은 결코 죽임당해서는 안 되며 아
브라함은 약속의 상속자인 이삭을 통해서만 진정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해
준다(17:5).
===============================22:ㅣ2절
네 손을 대지 말라 - \'아무 일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
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셨다는 의미로 이제 그에 대한 시험이 끝났음을 시사한
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믿음만이 가득 차 있는 이
상 더 이상의 시험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사자가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은
그가 제 2위 성자(聖子)하나님이심을 뒷받침해 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 자신이 근본 하나님이면서도 여호와의 사자가 이처럼
하나님을 객관화시켜 이야기 하고있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같이 구별된 위
격(位格)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아노라( , 야다티) - 이는 체험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수용한 지식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삭 헌납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함을 확인하셨다.
===============================22:13절
수양( , 아일) -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는 문장( , 엘로힘 이르에 로)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 )와 우연히 일치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
는 분명한 물중(物證)이다.
수풀( ,사바크) - 팔레스틴에 흔히 있는 잡목들의 가지가 어지럽게 뒤엉
킨 상태를 두고 한말이다(시 74:5).
아들을 대신하여 - 이삭을 대신하여 죽은 한 수양 뿐 아니라 역사 이래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수없이 죽어간 흠없는 짐승들(출 12:5;29:1레 1:3;민 6:14)은 오로지
흠없는 한 어린양의 영원한 제사, 즉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대속 죽
음을 계시한다(히 9:11-14;13:11,12).
=============================22:14절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돌보신다\'는 뜻으로 8절에 의거하여 명명한 이름이
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쓸 것을 미리 아시고 때에 따라 공급해 주시는 분(마
6:25-32)임을 찬양한 기념비적 이름이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이
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였던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마련해 둔 수양을
보게 되는 축복을 얻었듯이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두신 구원 계획에
우리가 믿고 순종할 때 비로소 온전히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요 1:10-12).
===========================22:16절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 맹세라는 것은 본래 자기보다 높은 자가 아니면 절대
자의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 관례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맹세의 권위가 서기 때문
이다. 따라서 대개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곤 한다(삼상 19:7;왕
상 1:30;느 13:25;사 19:18).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그분만이 절대자이시며 지고자(至高者)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맹세
할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영원한 삶과 존재를 담보로 맹세한 그 약속은 결코 변개
(變改)될 수 없으며(삼상 15:29) 또한 가장 엄숙히 시행될 것이다(히 6:13-17).
==============================22:17절
하늘의 별과...같게 하리니 - 지난날에 주셨던 언약(13:16;15:5)의 유효성을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재차 보증한 부분이다.
네 씨가...문을 얻으리라 - 문 곧 성문은 성내의 주민들과 성읍의 안녕(安寧)을
지켜 주는 방어물이니 이러한 문을 얻고 열어 젖힌다는 것은 성읍을 점령하였다는 말
과 상통한다. 따라서 본절의 일차적 의미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원수를 물
리치고 약속된 성읍 가나안을 점령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에는 보다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곧 장차 메시야를 통하여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 즉 아브라함
의 영적 후손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는 뜻이다(갈 3:7-9,14).
================================22:18절
네 씨로 말미암아 - 복의 근원자가 될 특정한 씨, 곧 발꿈치로 사단의 머리를 상
하게 할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3:15;갈 3:16).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
로써 그들이 구원의 축복을 얻게되는 것을 뜻한다.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 육신의 번민과 애정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장면이다. 이러한 인정은 누구든
지 악에 물들지 아니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간 자이면 다 받을 것인데 하나님께
서는 그러한 자들을 자신의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해 주실 것이다(마 25:21).
==================================22:20-24절
네 씨로 말미암아 - 복의 근원자가 될 특정한 씨, 곧 발꿈치로 사단의 머리를 상
하게 할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3:15;갈 3:16).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
로써 그들이 구원의 축복을 얻게되는 것을 뜻한다.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 육신의 번민과 애정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장면이다. 이러한 인정은 누구든
지 악에 물들지 아니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간 자이면 다 받을 것인데 하나님께
서는 그러한 자들을 자신의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해 주실 것이다(마 25:21).
============================22:21절
우스 - 본절에 언급된 셈의 손자 우스(10:23)와는 다른 인물이다.
아람의 아비 그므엘 - 아람족의 시조(始祖)는 아니고 다만 그 가계(家系)의
한 조상일 뿐이다.
===========================22:22절
게셋 - 갈대인의 조상이거나 그 후손인 것 같다. 욥의 재산을 약탈한 자들이 바
로 이 갈대인이다(욥 1:17).
브두엘 - 매우 경건했던 자로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의 아비이다
(24:15,24,27).
==========================22:23절
리브가 - 이삭의 사촌 형제의 딸로서 후에 이삭의 아내가 되었다(24:67).
===========================22:24절
마아가 - 마아갈 족속(신 3:14;수 12:5)의 시조(始祖)로 추정된다.
===============================23:1절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 성경상에서 여자로서는 나이가 언급된 유일
한 경우이다. 이러한 연유는 사라가 \'약속의 자녀\'의 어머니(17:19)로서 모든 성도들
의 믿음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히 11:11,12).
===============================23:2절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며 - \'기럇아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뜻으로 헤브론
의 옛 이름이다(수 14:15; 15:13; 21:11). 이곳은 애굽의 소안보다 7년 먼저 세워진
역사 깊은 도시일 뿐 아니라(민 13:22) 고대 사회의 문화중심지이기도 했다. 한편 이
곳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후 그랄(20:1)과 브엘세바(21:31-34)에 거하기 앞서 약
20년을 살았던 곳인데(13:18) 사라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것은 곧 전장(22장)의 사건
이후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다시금 이곳으로 이주하였음을 의미한다. 훗날 아브라함
이 죽어 장사(葬事)된 곳도 역시 이곳이다(25:7-10).
들어가서 - 빈소(殯所)에 들어간 것을 뜻한다(공동 번역).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 리세포드 웨리브코타) - \'슬퍼하
다\'( , 사파드)는 가슴을 치며 크게 곡(哭)하는 것(삼하 11:26)을 뜻하며, \'애통
하다\'( , 바카)는 스스로의 감정을 자제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렘 9:1)을 뜻한
다. 이 두 행위는 모두 장례 의식에서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자
신과 함께 나그네같은 생을 살아 온 아내 사라가 먼저 죽은 사실에 대하여 견딜 수 없
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이것은 평소에 아브라함이 얼마나 사라를 아끼며
사랑했는지를 잘 대변해 준다. 아뭏든 내세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는 자라 할지라
도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억제할 수 없는 슬픔임에 틀림없다. 이점은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조차도 우신 사건이 분명히 드러난다(요
11:35). 하지만 성경은 부활의 소망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슬픔을 자제하는 것(살전 4
:13)이 죽음을 대하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교훈하고 있다.
============================23:3절
헷 족속 - 이들 족속의 원류(源流)는 B.C.18세기경 소아시아의 수리아 지방에 정
착한 철기 문명의 주인공 힛타이트족(Hittites이다. 본절에 언급된 \'헷 족속\'은 이
들을 떠나 고대근동 각지로 퍼져 나간 일파로서 후대에 이르러선 \'가나안족\'과 동일시
되었다(신 7:1). 한편 성경 역사상 이들은 선민(選民)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
고 있는데(삿 3:5,6;삼상 26:6;왕상 11:1;스 9:1,2;겔 16:3), 특히 헤브론 근처에 거
주하였던 헷 족속은 홋날 완전히 셈족에 동화되었다.
===============================23:4절
나그네요 우거한 자( , 게르 웨토솨브) - \'나그네\'(게르)는 고
향이나 고국을 떠나 사는 자를 가리키며 \'우거한 자\'(토솨브)는 낯설고 정이 들지 않
는 곳에 체류하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의 상속자로 인정받은 아브라
함(13:14,15)이 도리어 헷 족속에게 이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예언
이 성취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바른 역사 의식과 고
매한 인격을 반영해 준다. 더 나아가 그의 기업이 단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
라 하늘에 속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히 11:13;벧전 2:11).
매장지 - \'파다\', \'뚫다\'( , 카바르)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땅이나 언
덕에 굴 또는 구멍을 파서 시신을 안치해 두는 장소를 의미한다.
장사하게 하시오 - 팔레스틴은 북위 31도 15\'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더우면
서도 지중해의 영향을 받아 다습(多濕)한 기후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시체가 금방 부
패하기 마련인데 사후(死後) 24시간 이내에 장사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브라함이 사
라의 죽음을 놓고 마냥 슬퍼하고 있지만 않고 서둘러 매장지를 구한 까닭도 이 때문
이다.
================================23:6절
내 주여 - 히브리인들에 의해 \'여호와\' 대신 하나님을 호칭하던 단어로 사용되
긴 하였으나, \'주\'( , 아도나이)는 단순히 상대방을 높여 부르던 일반적인 존
칭어이다.
하나님의 방백 -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높은 자리에 임명한 자\'이다. 이로 미루
어 보아 헷 족속들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영
적, 물질적으로 큰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뭏든 이러한 평가
는 아브라함이 자신을 낮추어 얘기한 것(4절)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무릇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진리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 준다(마
23:12). 한편 히브리인들은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존재들을 묘사할 때 \'하나님\'의 이
름을 동반하여 표현하기를 즐겨하는데 여기서도 그러한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 당시 아브라함의 사회적 지위와 주위사람들에게 끼친
중후(重厚)한 인품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말이다.
==============================23:7절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 자신이 막벧라 굴을 매입하는 데 있어 헷 족속
이 거간(居間) 역할을 수행해 주도록 부탁하기 위한 정중한 자세이다. 당시 고대 근동
의 풍습에 의하면 모든 거래에 있어 보증인의 역할을 하는 중개인의 입회가 필요하였
다.
==========================23:8절
당신들의 뜻일진대 - 직역하면 \'당신들의 영혼에 부합되면\'이다. 흔히 \'영혼\'은
사람의 전의지(全意志)를 대변한다(시 105:22). 이처럼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구입함
에 있어서 헷 족속 전체의 의사를 고려한 것은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를 피하며 또한
그들의 매장지 중 하나를 단순히 호의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보다는(6절) 적법한 절차
를 밟아 확실한 소유권을 획득하기 위함에서였을 것이다.
소할의 아들 에브론 - \'에브론\'은 \'새끼 사슴\'이란 뜻이다. 10절에 의거하면 그
는 성읍의 최고 통치자는 아니었을지라도 덕망 있는 지도자적 인믈이었음에는 틀림없
다. 왜냐하면 당시 각종 행정과 사법 등의 일처리를 위하여 성문의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던 자는 지도자급 인사에 한하였기 때문이다.
===============================23:9절
막벧사 굴 - \'막벧라\'는 \'이중의\'(double)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팔\'( )
에서 파생된 말로 \'이중으로 된 굴\'이란 뜻이다. 아마 이는 (1) 입구가 두 개인 굴을
가리키거나 (2) 굴 속에 또 하나의 물이 있는 겹굴 (3) 아니면 두 사람이 함께 장사될
수 있는 큰 굴을 말할 것이다. 여하튼 특이한 형태를 지칭하던 이 말은 은연중에 장소
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굳어지고 만 것 같다.
준가( , 케세프 말레) - \'케세프\'(은)와 \'말레\'(많은, 풍부한,
풍성한)가 합쳐진 말로 \'많은 은(銀)\'을 뜻한다. 이는 \'충분한 돈\', 즉 당시 거래되
던 가격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의미인데 물물교환의 매개체로 귀금
속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성경상의 첫번째 기록이다.
=========================================23:10절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 정확한 등기법이 아직 없던 시대에 거래의
합법적인 공증(公證)을 받으려면 이처럼 모든 거래 행위와 공공 생활의 중심지였던 성
문(34:20;삼하 15:2;느 8:1;렘 17:19)앞에서, 그리고 여러 증인 앞에서 공식적인 거
래를 하여야 했다.
================================23:11절
그 밭을...그 속의 굴도 니가 당신께 드리되 - 아브라함이 매장지로 사용하기 위
하여 막벧라 굴만을 사려 했으나 에브론이 굴 뿐 아니라 그 굴이 위치해 있는 밭까
지 아브라함에게 무상(無償)으로 주려한 것은 굉장한 호의임에 틀림없으나 그 이면에
는 다분히 이해 타산적인 동기가 담겨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법에
의하면 땅 주인이 그 땅에 속한 모든 것의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으니 막벧라 굴만
을 아브라함에게 양도하면 그 굴에 대한 납세 의무는 여전히 에브론에게 남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에브론은 납세 의무의 원천이 되는 밭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아브라함
에게 완전히 넘겨 주려 하였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밭\'
( , 사데)이란 좁다란 개간지가 아니라 넓은 들판을 가리킨다.
====================================23:12절
몸을 굽히고 - 표면적이나마 에브론이 보여 준 호의에 대하여 일단 감사를 표하
는 자세이자 헷 족속 앞에서 굴과 더불어 밭을 무상으로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제
의를 정중히 거절하기 위한 몸가짐이다.
====================================23:13절
합당히 여기면 - \'참으로 굴과 그 밭을 양도하려고 한다면\'이란 뜻이다.
그 밭값을...주리니 -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기업
(基業)으로 주시겠다고약속하신 땅이다(13:15).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일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막벧라 굴과 밭을 무상으로 양도받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는 자신의 기업
을 하나님이 아닌 이방 족속으로부터 받은 셈이 될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가 되니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제의를 거절하고 끝까지 그에 준
하는 값을 치루려 한 것이다.
===================================23:15절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에브론이 받기 원하는 가격이
정확히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밭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땅
의 가치를 헤아려 볼 때 이는 아브라함의 부(富)와 지위를 최대로 이용한 터무니 없는
비싼 가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 사백 세겔은 4.56kg(약 1,200돈)에 해당
하는 중량이기 때문이다.
어찌 교계하리이까 - 서로 상당한 부와 명예를 지니고 있는 실력자들끼리 어찌
밭 하나 주고 받는 일로 셈하고 흥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이는 호의를 가장
하여 자신의 탐욕스런 저의를 숨기고 있는 교묘한 말이다.
===================================23:16절
상고( , 사하르) - 원뜻은 \'돌아다니다\', \'뛰다\', \'배회하다\'로 여기서
여러지역과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무역하는 \'상인\'이란 뜻이 파생되었다(42:34;왕상
10:28).
통용하는 은 - 상인들 사이의 거래에서 공적으로 사용하던 은인데 보통의 은에
무게를 표시하는 표식(mark)을 찍어서 그 가치를 나타내었다.
==================================23:18절
헷 족속 앞에서 - 합당한 대금을 지불하고 체결된 정식 계약을 여러 증인들 앞에
서 공증(公證)하기 위함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당시에도 초보적인 문자가 있기는
하였으나 아브라함과 에브론은 문서가 없는 구두 계약(口頭契約)을 맺었거나 아니면
간략한 매매 계약서와 함께 여러 사람 앞에서 공증받는 병행 계약을 맺었던 것 같
다.
=================================23:19절
사라를...장사하였더라 - 사라가 처음으로 묻힌 이래 이곳에는 아브라함(25:9)
과 이삭, 리브가, 야곱과 레아(49:31;50:13) 등의 3대 족장과 그의 아내들이 묻히었
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요셉은 야곱이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세겜 땅에 장사되었다
(수 24:32).
마므레는 곧 헤브론 이라 - 엄밀히 얘기하면 마므레는 헤브론 지경 내의 한 지역
이다(13:18). 그리고 \'마므레\'란 지명은 그곳을 점령한 아모리 종족의 한 부족장 이름
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14:13).
================================23:20절
마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 마므레의 매장지가 아브라함의 소유로
등기 이전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 위해 재언급되었다. 한편 가나안의
상속자 아브라함(13:15,17)이 가나안에서 실제적으로 소유한 유일한 땅이 의미 심장하
게도 자신의 최후 안식처가 될(25:9) 한 조각 장지(葬地)였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
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가나안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를 시사해 준다. 그
것은 곧 그의 궁극적인 기업이 죽음과 함께 유업으로 받을 하늘 가나안, 즉 천국
인 것이다.
==========================24:1절
아브라함이...늙었고 - 사라의 죽음(23장)에 연이어 아브라함이 늙었다는점이 강
조 되고 있는 것은 서서히 한 세대는 물러가고 이삭이라는 또 한 세대가 구속사의 전
면에 등장할 시점이 되었음을 예고해 준다. 또한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과 관련하
여 아브라함이 나이많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일이 아브라함 노년(老年)의
최후의 중대사이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촉급한 일임을 의미한다.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래(12:4) 175세로 세상을 하직하기까지(25:7) 험난한 나그네 생활을 하며 많은 고초
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의 생을 가리켜 범사에 하나님께 축복받은 삶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의 삶 전체가 의로운 것이 되게 하시고 믿
음의 아비가 되게 해주신 것(17:5)을 의미하지 단순히 때마다 물질과 권력, 건강 등과
같은 축복을 내려 주신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신 28장,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
=========================24:2절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 - 여기서 \'늙은\'(oldest)으로 번역된 원어\'자켄\'(
) 은 \'장로\'(elder)로도 번역된 말로(50:7;롯 4:2) 존경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이
노종은 약 60년전에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지명되기도 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15:2) 로 추정 되는데 이스마엘과 이삭 탄생 후 아브라함의 집사장(執事長)으로
최선을 다하였기에 존경을 받았던 것 같다.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 충성의 맹세나 절대 복종, 친밀하고도 엄숙한
서약을 표하던 고대의 관습이다<1-9절,환도뼈 맹세>.
===============================24:3절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심을 의미한다 (느 9:6). 이는 인간의 운명도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음을
인정하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의 결혼에 대하여서 조차 직접적으로 섭리하여
주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확신을 드러내 준다 (7절). 또한 이삭의 결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대사(大事) 이므로
(keil)전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진행되어야만 했다.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택하지 말고 - 이삭을 자기 혈통과 결혼시켜 순수성을
보존할 뿐 아니라 가나안 족속의 방종한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구별짓기 위함이다. 즉
가나안 족속의 도덕적 문란을 익히 알고 있던 아브라함(18:16-33;19:27,28)은 이삭이
그들의 딸과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악에 물들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려 하였던 것이
다. 한편 훗날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스라엘인이 우상 숭배 행위에 탐닉해 있는
가나안인과 혼인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 되었는데(출 34:16;신 7:3) 이는 믿는 자와
함께 멍에를 같이 함(고후 6:14)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알 수 있다<고전 7장,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24:4절
내 고향 내 족속 - 갈대아 우르(11:28)가 아닌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의 하란
지역을 가리킨다(10절;11:31, 32;12:4).이지역 주민들은 가나안 주민들보다 덜 문란할
뿐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완전한 여호와
종교의 추종자로 볼 수는 없고 라반(31장) 집안의 경우처럼 몇몇 이방신과 더불어
여호와를 경배했던 혼합종교주의자로 여겨진다. 한편 아브라함이 에벧의 후손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들(11:15-26)0을 \'내 족속\' 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아직
이스라엘 민족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10장, 히브리인과 아스라엘인>.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이러한 근친 결혼은 순수한 신앙전수와 셈족의
언약적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데라 가문의 오래된 전통이었다<11:29>.
==========================24:5절
여자가...오고자 아니하거든 - 문명의 도시 하란에 비해 가나안은 척박한
곳이었으며 하란과 가나안은 20여일이 훨씬 더 소요되는 먼 길 (약800km)이었고 여
인의 몸으로 일가 친척과 친구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 낯 모르는 사람을 따라
낯선 땅으로 따라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신부 될 여인이
신랑 될 사람의 얼굴이나 직접적인 정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엿으니 이러한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주인의 아들을...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 작은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출본토(出本土) 사건(12:4)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인간적인
대안(代案)이다.
===========================24:6절
삼가( ,솨마르) - 본분을 지켜 온전히 행하라는 뜻이다(18:19). 여기서는
\'너 자신을 조심하여\'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는 아브라함이 그 종에게 매우 간곡히
당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돌아가지 말라 - 본토를 나온것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함께 받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또 다른 지시가 없이는 가나안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전에 인간적인 생각을 좇아 행동했던 아브라함의 지난 날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것으로(12:10-20;20:1:7) 말씀만을 좇아 행동하는 그의 성숙된 신앙 인격을
보여 준다.
=============================24:7절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보내실지라 - 여기서 \'씨\' 는 이삭을 포함한
아브라함의 전후손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후손을 얻기 위하여선 필수적으로
이삭에게 아내가 있어야하니 하나님께선 반드시 그러한 처녀를 예비하시어 가나안 땅
이삭에게로 보내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으로 굳게 믿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신 7:9).
=============================24:8절
만일 여자가...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오려는
여자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예비하려는 것이
분명하므로 그에 순응하는 도리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이는 마음의 소원과 일의
계획은 인간에게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이다(잠16:1)
==============================24:9절
이에...맹세하였더라 - 고향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구하고 못 구하고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을 뿐 종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제의는 종이 쾌히
응락할 만큼 지극히 만족스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24:10절
약대 중 열 필 - 이렇게 많은 약대는 신부될 자와 그의 가족에게 줄 예물을
운반하는데 필요한 것이었기도 하겠지만(52절) 여행 목적이 성공할 줄로 굳게 믿고
돌아올 때 신부와 그 일행을 태워 오기 위한 준비물이었을 것이다(61절).
메소보다미아( , 아람 나하라임)- \'두 강\'(나하라임)과 \'아람\'이
합쳐진말로 \'두 강들의 아람\' 이란 뜻. 여기서 두강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키고 \'아람\'은 \'고지\' 또는 \'산지\'란 뜻이다. 이는 곧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고원 지대를 가리키는데 세계 3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로 히브리와 헤라
문명에 크게 영향을 준 근원지이다.
나홀의성에 이르러 -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15절;11:26)이 거주하던 성읍 곧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에 도착하였음을 가리킨다(28:10). 나홀은 아마 우르에서 아비
데라를 따라 함께 왔다가 하란에서 정주했거나 아니면 데라가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것이다<11:31>.
=================================24:11절
약대 중 열 필 - 이렇게 많은 약대는 신부될 자와 그의 가족에게 줄 예물을
운반하는데 필요한 것이었기도 하겠지만(52절) 여행 목적이 성공할 줄로 굳게 믿고
돌아올 때 신부와 그 일행을 태워 오기 위한 준비물이었을 것이다(61절).
메소보다미아( , 아람 나하라임)- \'두 강\'(나하라임)과 \'아람\'이
합쳐진말로 \'두 강들의 아람\' 이란 뜻. 여기서 두강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키고 \'아람\'은 \'고지\' 또는 \'산지\'란 뜻이다. 이는 곧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고원 지대를 가리키는데 세계 3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로 히브리와 헤라
문명에 크게 영향을 준 근원지이다.
나홀의성에 이르러 -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15절;11:26)이 거주하던 성읍 곧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에 도착하였음을 가리킨다(28:10). 나홀은 아마 우르에서 아비
데라를 따라 함께 왔다가 하란에서 정주했거나 아니면 데라가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것이다<11:31>.
=================================24:12절
순적히 만나게 하사( .하크레 나)- 직역하면 \'만나는 일이 일어나게
해주소서\'이다(27:20).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음을 순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믿음에 찬 간구이다.
은헤를 베푸시옵소서 -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경건 생활을 몸에 익힌 엘에리셀이
인간적인 수단을 강구(講究) 하기에 앞서 기도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장면이다. 즉 그는 매사에 기도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만이 참된 지혜이자
문제해결의 지름길임을 깨달았는데 그의 기도는 뒤이어 알 수 있듯이 그즉시로 응답
받은 기도(사65:24)였다(사6:36-40;사 38:1-8).
==============================24:13,14절
우물( , 아인) - 원래의 뜻은 \'눈\'(eye)이다. 이는 아마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오는 현상이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현상과 유사성을 지니기 때문인듯 하다.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 약대 곧 낙타는 긴 여행 끝에 상당히 많은
물을 섭취해야 하는 짐승이다. 따라서 여행자 뿐 아니라 그와 동행하는 낙타에게까지
자원해서 물을 길어 먹일 정도의 여자라면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씨와 함께센스(sense)
까지 겸비한 여자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이처럼 순수한 사랑과 봉사 정신,지혜를
갖춘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택정해 다라고 기도한 에리에셀은 그 역시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지혜를 갖춘 자였음에 분명하다.
==============================24:15절
리브가 - \'끈\', \'고리\'라는 뜻이다. 이삭과는 오촌간이면서 그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언약 혈통을 잇는 자가 되었다는 데 그 이름의 뜻이 있는 것 같다
<22:23>.
물 항아리( ,카드) - 일반적으로는 물을 길어 나르는 조그마한 항아리나
바께쓰(bucket)를 가리키는데 예외적으로 저장용 큰 항아리나 통을 의미하기도
한다(왕상 17:12).
=================================24:16절
심히 아리땁고 - 마음씨 뿐 아니라 외모도 아름다운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야곱의
아내들의 공통점이다 (12:11;26:7;29:17). 즉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외모와 행실이
어긋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착된 아름다움으로 사랑과 총명이 겸비된
아름다움이었다. 행실과는 동떨어진 채 퇴폐한 목적과 허영에서 겉으로만 다듬는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못할 뿐더러 주위 사람들에게 순결하고 참된 기쁨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앞서 신앙으로 다듬어진
인격과 행실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이다(딤전 2:9,10).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 - 남자와 성 관계 (sexual interoourse)를 갖지
아니한 숫처녀를 뜻한다.즉 순결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에 비해 \'소녀\'(
,나아라)란 \'젊음\' 을 강조한 말이다(사21:12).당시 리브가가 얼마나 미모가 출중하며
생기 발랄했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한편 성 윤리가 혼탁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혼전(婚前)성 행위가 비일 비재하며 간음 죄에 대한 법규가지도 철폐하라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지만 모든 남녀가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왜냐하면
성(性)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이며(아 5:18,19;전9:9) 결혼을
통하여서만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도록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다<아 5장,
올바른 성 윤리>.
==================================24:18절
급히 그 물 항아리를 - 처음 보는 나그네의 요구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물을
마시우게 한 것은 마지 못해 응한 선대(善待)가 아니라 진실된 친절로서 리브가의
상냥한 마음씨와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선행은 비록
보상을 바라고 행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성경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가르치고 있다.
===================================24:19,20절
배불리 마시게...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 낙타는 항상 위(胃)에 물을
저장해 두는 덕에 장기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반면 한번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엄청난 양을 마신다. 따라서 여행 끝에 지친 열마리의 낙타들 (10절)
이 배불리 마실 수 있을 만큼 구유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리브가가 우물에 몇 십번을
왕래하여야만 했음에 틀림없다.
==============================24:21절
묵묵히 주목하여 - 비록 자원한 일이긴 하나 리브가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물동이를 이고 우물을 몇 십번이나 왕래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니 엘라에셀이 이를
만류할 수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아마 그 까닭은
(1)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그렇게 신속히 응답해 주신 데 대한 놀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으며 (2) 좀더 신중하고도 안전하게 리브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부를 알고자 - 친절한 마음씨와 태도, 아름다운 용모에 있어서는 이삭의
아내감으로 부족함이 없으나 과연 그녀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일가 친족인가 하는
여부를 알기 위함이다.
===================================24:22절
금고리 한 개와...금 손목고리 한 쌍 - 신부에게 주는 예물 (53절)이 아니라
리브가의 친절한 행동에 대한 감사 표시로 준 선물이다. 결혼 예물은 여자 집안의
가장(家長) 허락없이는 제공될 수 없다(50-53절). 한편 여기서 \'금고리\'는 원어로
\'네젬\'( )인데 귀고리(35:4;삿8:24)나 코고리(47절;겔16:12)를 가리킨다.
==================================24:24절
밀가가...브두엘의 딸 - 성(姓)과 이름의 문화가 별로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이처럼 친족 관계를 밝히는 것이 통례였다. 이 소개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혈족임이 밝혀졌다.
밀가가...브두엘의 딸 - 성(姓)과 이름의 문화가 별로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 근동
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이처럼 친족 관계를 밝히는 것이 통례였다. 이 소개로 리브
가가 아브라함의 혈족임이 밝혀졌다.
===============================24:25절
짚과 보리가 족하며 - 사람 뿐 아니라 여전히 약대에 대하여서도 관심을 멈추지
않는 리브가의 세심한 배려이다. 이처럼 짐승과 하찮은 풀 한 포기라도 귀히 여길 수
있는 자세는 천지 만물과 그 모든 것들의 생명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임을 깨닫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다(욥 12:10)
===============================24:26절
여호와께 경배하고 -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인도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엘리에셀의 경건한 신앙 자세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도록 기도한
표징(14절)이 그당장에 나타나자 하나님이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음을 깨닫고 즉시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 아브라함 집안에서의 이삭의 위치를
설명해 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언약 자손(17:21) 으로서 아브라함의 혈통(15:4)과
기업(21:10)을 이어받을 유일한 상속자였던 것이다.
==========================24:27절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 엘리에셀의 찬송 중에 나타난 하나님은 (1)성도에게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2) 성도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시는 하나님(시5:8;23:2;27:11
;48:14)이시다.
인자( ,헤세드) - \'은혜\', \'자비\',\'긍휼\'등으로 번역된는 단어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총을 의미한다<20:13>.
=============================24:28절
어미 집에 고하였더라 - \' 아비 집\'이란 말 대신 \'어미집\' (mother\'s house)이
사용된 데 대하여 혹자는이것이 리브가의 집에서는 여자가 가장(家長) 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리브가의 오라비인 라반이 가족의 대변자로
나타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이없다(31-33,50절). 아마 이러한 말은 당시
여자들이 남자들의 장막과는 따로 구분된 장막<18:10>에서 생활한 데서 나온 표현으로
아비나 다른 형제들에 앞서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간 것을 가리킬 것이다.
===============================24:29절
라반 - \'하얀\', \'백색\'이라는 뜻이다. 표리 부동하며(29:26) 물욕(物慾)이 많은 자
(31:6,7)였는데 집안 일에 아비 브두엘(50절)보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볼
때 장자로서 당시 연로한 아비를 대신하여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것 같다.
=====================================24:30절
고리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 이러한 선물은 라반으로 하여금 엘리에셀
일행을 환대하게 한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31-33절).
===================================24:31절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 뒷날의 행적을 살펴보면 라반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지 않은 자였음을 알수 있다(331:30). 따라서 이러한 인사말은 라반이 누이
동생으로부터 엘리에셀의 행동을 전해 듣고(28절) 그가 부른 하나님의 명칭(27절)에
의거해 갖춘 예우에 불과하지 결코 라반이 여호와 제일주의의 신앙자였음을 보여 주는
말이 아니라 하겠다.
===========================24:32절
종자( , 에노쉬) - 일반적인 \'남자\',\'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나이 든
엘리에셀을 도와 함께 여행 길을 떠나 온 아브라함 집의 종들을 가리킨다. 이처럼
라반은 \'종\'들 조차도 자기 집에 채아온 \'남자\' 곧\'손님\'으로서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
다.
발 씻을 물을 주고. 사막 지방의 경우 손님이 자기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장 먼저
행하던 접대 풍습이다<18:4>.
=============================24:33절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 일반적인 상황하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식사 후에 담소(談笑)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오랜 여행 끝에 지칠 대로 지쳤으면서도 여독을 풀 수 있는 식사 시간을
갖기에 앞서 자신의 여행 목적을 밝히려 들었는데 이는 (1) 자신이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파송된 종이라는 점과 (2) 주인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환도뼈
언약(9절)을 잊지 않은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맡은 바 사명을 다하려 한 아름
다운 모습이다.
==========================24:34절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 자신을 아브라함 집의 집사장<2절>으로 소개하지 않고
그저 종이라고만 소개한 것은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일 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자신을 감추고 주인만을 내세우는 겸손한 태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인 모든 성도들이 필히 견지해야할 태도이다(고전 1:31;15:10)
=============================24:35절
창성케 하시되 - 리브가를 시집보내도 좋을 만큼 아브라함의 재력(財力)과 기반이
튼튼함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한 그가
패배자적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1절>.
==============================24:37-41절
자신의 친족 중에서 며느리를 얻기 원한 아브라함의 소원과 이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거되고 있다. 이는 엘리에셀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나안에서 하란까지 여행한 동기와 목적을 밝힌 것으로 리브가를 보내
달라는 간접적인 요구이다.
==============================24:40절
섬기는( ,할라크) - \'함께가다\'(19:2) \'따라가다\'(삼하16:13)\'걷다\'(렘10:23)
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의 명령을 좇아(왕상
14:8)더불어 왕래하는 것(삼상 30:30)임을 시사해 준다.
==============================24:42-48절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 택정해 놓은 배필(配匹) 임을 열변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엘리에셀의 이러한 열변은 추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그로 말미암은 확신에서 나온 구체적인
것이었으니 라반을 공감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28-60절 강해>.
=============================24:49절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 리브가에 대한 청혼의 수락 여부를 분명히 해주어야
자신이 주인과 맺은 약속, 즉 본토 혈족 중에서 신부를 구하는 일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공동 번역). 이는 라반이 청혼을 거절한다 하여도 낙심치 않고 속히
다른 곳에 가서 신부를 찾아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다.
===================================24:50절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라반과 브두엘이
도리없이 굴복당하는 장면이다. 즉 라반이 여호와를 온전히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청혼에 응한 것은 (1)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와
(2)아브라함의 확고한 신앙심(7절) (3) 엘리에셀의 불타는 사명감(33절)과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겸손한 자세 등에 굴복당했기 때문이다.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 청혼에 대하여 수락 여부를 얘기해 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는데 어찌 인간이 이에 대해 \'좋다\',\'나쁘다\'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공동 번역).
========================24:51절
데리고 가서...되게 하라 - 자녀에 관한 모든 일, 그중에서 특히 결혼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견보다 부모와 가문의 의견이 더 중요시 되었던 것은 비단 옛날의
우리 나라 뿐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이었다<28-60절,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의
부모의 권위>. 또한 여기서처럼 아비를 도와 오라비가 누이 동생의 결혼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당시의 관습이었는데(34:5,13,25;삿 21:22;삼하13:22),때문에 라반과
브두엘의 결정에 따라 이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로 확정되었다.
===========================24:53절
은금 패물과 의복...보물 - 22절과 같이 단순한 감사 선물이 아니라 결혼 성립을
뜻하는 공식적인 예물이다. 즉 이는 고대의 관습을 따라 여러 증인들이 있는 자리
에서 신랑과 신랑측의 이름으로 신부와 신부 가족들에게 준 결혼 빙폐(聘幣)인 것이다
<34장,빙물과 예물>.
==============================24:54절
아침에 일어나서...돌아가게 하소서 - 엘리에셀이 이처럼 서두른 이유는 아마 (1)
자신을 보낸 후 그 결과를 고대하고 있을 아브라함에게 한시 바삐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은 충정과 (2) 일의 결과를 보고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사명이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 투철한 사명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24:55절
소녀로 며칠을 - 갑작스러운 혼인에 대하여 여러 준비를 갖출 뿐 아니라 리브
가와의 이별에 대비하여 마음 정리를 하는 데는 적어도 며칠간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
함이 자명하다.
=============================24:57절
그에게 물으리라 - 결혼의 수락 여부를 묻겠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당장 떠나느냐
아니면 며칠 후에 떠나느냐의 결정권을 리브가에게 일임하겠다는 뜻이다.
===============================24:58절
가겠나이다 - 하나님의 뜻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과 용기 있는 대답이다.
아마도 리브가는 엘리에셀이 자신의 여행 목적을 밝힐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뜻을 깨닫고 믿음을 굳힌 것 같다. 아뭏든 이러한 결단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속히 족장의 아내로서의 길에 들어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는 언약
백성의 족보(마 1:1-16)로 이적(移籍)하게 되었다. 이는 비록 우리의 한 순간적 신앙
결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잘 가준다 <28-60
강해>.
=================================24:59절
그의 유모와 - 이름은 드보라이다 (35:8). 유아 시절부터 신부를 계속하여
돌보아온 유모를 신부의 시중을 위해 함께 시집에 보내던 일은 당시 부유층과 저명
인사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관례적인 일인데 지금도 아라비아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행
하여지고 있다.
=============================24:60절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얻게 할지어다 - 자손 번성과 장막의 터를 넓히기를
기원하는 이러한 축복은 고대 근동 여인들에게 주어지던 최대의 축복이긴 하다. 그렇
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22:17)을 알리 없는 리브가의 가족들이 그녀
에게 그것과 한치 틀림 없는 동일한 축복을 기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어 재확인한 자신의 약속이자 예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24:61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이 신부 리브
가를 신랑 이삭에게로 인도해 가는 모습은 성도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
께 인도하려 한 바울의 열심을 연상시켜 준다(고후 11:2)
==============================24:62절
브엘 라해로이 - \'나를 아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우물\'이란 뜻이다.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곳으로 가데스와 베렛사이의 술(shur)길가 샘물이다 (16: 7 -
14).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 사라가 사망했던 당시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역에 거주
하고 있었다(23:2). 그런데 아직도여전히 아브라함의 거주지가 그곳이었다면 엘리에셀
일행은 남방 브엘라해로이에 오기 전 먼저 그곳에 들렀을 것이다.그러나 엘리에셀이
그러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사라의 죽음 이후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헤브론을 떠나
이미 남방에 이주하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4:63절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 \'묵상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수아흐\'( )는 상념에
젖거나 슬픔에 잠기는 것 또는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 이삭은 모친 사후
(死後) ,고요한 저녁 무렵 들판에 나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이즈음은 결혼 문제가 눈 앞에 닥친 때였으니 만큼 이일을 놓고 하나님
께 기도드리곤 하였을 것이다.
============================24:64,65절
石肉【 내려 - 상대방에 대한 겸양의 표시이다. 특별히 여자가 낙타를 타고가는
경우 남자를 만났을 때 잽싸게 내려 상대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보편적인 예법이 었
다고 한다.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 \'면박\' ( ,차이프)은 보통의 수건이나
베일(veil) 보다는 훰신 큰 \'너울\'(공동 번역)을 가리킨다. 리브가가 이러한 너울로
자신을 가리운 것은 결혼하기 전의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되던 당시의 관
습에 따른 것인데 신랑에 대한 신부의 겸양(謙讓)과 복종, 순결을 나타내 준다(고전
11:10).
===========================24:67절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 당시 족장이나 부유층의 사람들은 여러개의 크고
작은 장막을 갖고 있어 가족의 신분에 따라 적당한 장막을 분배해 주었다. 따라서
족장의 부인인 사라가 생전에 기거하였던 장막은 아브라함 집의 소중한 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이 리브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다 함은 이제 리브가가 실질적인
새 안주인으로서 아브라함 집의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존귀한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 이러한 이삭과 리브가의 모습은 일부다처주의가 팽배
했던 시대에 세상 풍속을 좇지아니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를 좇은
아름다운 장면이다<4장, 일부 다처주의의시작>.한편 타락한 세대일수록 사랑은 결혼의
목적과 조건에서 밀려나기 십상인데 그럴수록 우리는 사랑이 참된 결혼의 본질적인 요
소로,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께서 원하시는 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냐하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거룩
한 결합을 상징한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엡5:31-33).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 학자들간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삭 탄생시 사라의 나이는 90세였고(17:17;21:5)사라 운명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23:1),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때였으니(25:20) 이삭
이 3년 동안이나 사라를 위해 애도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식적 애도 기간은 보통 30일 내지는 70일이었다(50:3;민
20:29;신 34:8).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이삭이 노년에 자신을 낳고 기뻐하던 어머니
의 모습과 각별히 자신을 사랑해 준 어머니의 정을 못 잊어 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
할때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