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UBTC)
야고보서 전장 교안 (야 고 보 서 성 경 공 부)
주제 : 산 믿음 (LIVING FAITH)
제1장 산 믿음은 시험을 이긴다.
제2장 산 믿음은 행위가 따른다.
제3장 산 믿음은 온전한 인격의 변화가 따른다.
제4장 산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
제5장 산 믿음은 주의 재림을 소망한다.
제1장 산 믿음은 시험을 이긴다.(제1장)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그리고 국가 어느곳 하나도 문제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근심과 걱정,슬픔과 눈물,질병과 고통,실패와 죽음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야고보 기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1.시험이 몰아닥치고 어려움이 많은 세상입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도피하거나 외면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나 사건을 피하는 것은 일시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몰라도 완전한 해결방법은 아닙니다. 약 1장 2절에서 나오는 시험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시험(TEST)이나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시련(TRIALS)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때 어떤 자세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까?
*: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동안 나에게 다가온 시련에 대해 자신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적어보고 왜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 값진 믿음의 보화를 얻고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어 기쁨과 감사로 충만합니다.
나의 앞에 어려움과 시련이 올때 마다 끓어 엎드려 기도하게 하시고 시련이 길면 길수록 나의 기도는 더욱 길어지고 주님과 더욱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며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어떠한 시련도 넉넉히 이겨 승리케 하시는 능력에 하나님께 무한 감사로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지 않는다는 (고전 10:13) 성경말씀을 믿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시험이 올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시험이 올 때 왜 기뻐해야 하는지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찾아 쓰십시오.
*: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나에게 어려운 시험이 왔을때 기쁨으로 감당해서 신앙이 성장한 경험이 있다면 적어 봅시다.
*:함께 신앙생활을 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에게도 아들이 있고 나에게도 아들이 있어요. 둘이 또 친구인데 같이 성장하다가 친구의 아들은 나쁜 길로 빠져 감옥에 들락날락 하고 나의 아들은 모범생으로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 뒤로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고 나의 아들을 괴롭히며 감옥에 넣으려는 모함이 있었어요.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나의 친구로 부터 오해들 받아 아들친구인 엄마 (바로 나의친구)가 내 아들도 감옥에다 넣어야 한다고 경찰에 호소를 해서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혐의가 없어 풀려나왔어요.
나의가족들과 나에게는 큰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은 주님과 함께 고난의 참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고난주간이었거든요. 그런데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 하다는데...
우리주님은 아무 죄도 없이 멸시 천대를 받으시면 침묵하셨다는 말씀에....
나 역시 주님의 딸이라 모진소리와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침묵과 기도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드렸지요. “저들이 알지 못하고 한 것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그리고 그 친구를 찾아가 아들이 감옥에 간 것을 함께 아파하며 울며 안고 주님께 기도드리고 친구를 위로했습니다.
고난주간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주님의 고난에 아주 작게라도 동참을 한것 같아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할렐루야~
2.믿음의 시련이 무엇을 만들어 냅니까? (3절)
*: 인내를 만들어냅니다
인내란 단어의 본래 의미는 수동적으로 참아내는 뜻만이 아니며, 오히려 그이를 위대한 것으로, 또는 기쁨이 가득찬 것으로 바꾸어 놓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괴로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보잘것없는 인간을 위대한 자로 훈련 시켜서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앙의 소유자로 만들어 주는 일을 합니다.
3.믿음의 시련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화 시킵니까? (4절)
*: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변화 시키십니다.
온전하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지를 아시겠지요? 시련은 단순히 내 잘못 만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높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과 섭리가 있습니다. 마치 훈련된 병사가 전쟁에서 승리를하듯, 시련으로 단련된 신자들 만이 빛나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산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시험을 능히 이깁니다.
당신도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 있습니까?
*: 아멘!....할렐루야~
4.믿음의 시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노력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5절)
*: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구는 \'하나님께 구하라\'(ASK GOD)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은 기도할 때 후히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5.또 하나 시련을 이기는데 무엇이 필요합니까? (5절)
*: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는 풍부한 지식을 쌓는 것과 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함께 보유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우선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아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것 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지혜가 필요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리들이 시험에서 승리하도록 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할렐루야!
6.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할 때 나타나는 결과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6-8절)
*:첫째. 기도할 때 의심 할 수도 있고 둘째. 믿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수도 있고 믿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에 대해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지 그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에 따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우리는 의심할 수 있는 자유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심하는 자의 결말이 어떻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6-8절)+
*: 의심했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당신이 기도한 후 의심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적어 봅시다.
*: 팔이 아파 낫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 놓고
내 팔은 늘 아픈데... 약을 먹어도 안 낫는데 이것은 직업병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의심을 하였습니다.
“주님!
의심 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굳건한 믿음 주시옵소서!
주께서 허락하시면 나을 줄 믿습니다. 아멘! “
때가되면 주께서 고쳐주시리라 믿습니다. 혹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며 겸손히 살겠습니다.
의심은 신앙인의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또한 의심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기도 합니다.
8.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12절)
*: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시험은 시련(TRIALS)으로 번역되어야 하고, 이는 생명의 길로 나를 인도하고, 13절에 나오는 시험은 (TEMPTATION)으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는 나를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9.사람이 가는 길에 두 가지 길이 가로 놓여 있는데 무엇입니까?
(1) 믿음 - 시련 - (인내) - (온전함) - 생명의 길 (3-4절)
(2) 믿음 - 유혹 - (욕심) - (죄) - 사망의 길 (14-15절)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을 미혹하거나 유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신 우리 성도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10.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이기려면 죄악의 궁극적인 결과를 알아야 합니다.(14-15절)
우리가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죄값으로 지옥에 가야 하므로 그 결과를 생각하면 순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죄에는 일락이 있으므로 우리가 그것에 미끼가 되어 순간적으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죄악의 낙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잠시 뿐이고,그 후에는 큰 고통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11.우리가 유혹이 주는 잠시의 낙에 속지 않을 수 있는 구체적인 비결이 무엇일까요?
(1)말씀을 잘 듣어야 합니다. (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말씀을 잘 행해야 합니다. (22절)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입니다.
특히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잘 듣지 못합니다. 철학자 제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두 개의 귀를 주셨음에 반하여 입은 한 개 밖에 주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의 갑절로 하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서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것처럼 우리도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산 믿음은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시험을 이기는데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어봅시다.
*:나에게 시험을 이기는데 부족한 것은 “정”(사랑)입니다.
잘못인줄 알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강력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는 제일 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진리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면 믿음의 담대함을 얻어 힘을 얻고
그들도 바른길을 제시 해줄 수 있습니다.
제2장 산 믿음은 행위가 따른다.(제2장)
성도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가정을 이루고, 동네를 이루고, 교회를 이루고 ,나라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사회생활을 통해서 산 믿음의 소유자는 바른 인간관계를 맺고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1.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인간관계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1절)
* 예수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의 관계는 이해관계로 전락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2.사람을 외모로 취할 때 결정적으로 우리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4절)
*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자신의 악한 판단 착오로 인해 심한 편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판단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외적인 판단으로 인해 상대방의 내적인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모독입니다. 성도가 쉽게 범할 수 있는 외모에 대한 죄 중에 \"사람은 첫인상 이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말하는데 이것 또한 아주 잘못된 편견이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추한 외모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 때론 본이 아니게 외모로 잘못 판단할때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족함을 주님께 회개하며 말씀과 기도로 힘쓰고 있습니다.
당신의 교회에는 외적인 것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은 없습니까?
*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건물과 교인의 숫자를 보고 축복 받았다 안 받았다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외적으로 보이는 건물과 교인의 숫자만 보고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성도들이 교회에 있는가 하는것 이 더 중요합니다.
3.사람을 외모로 취할 때 범하게 되는 죄는 무엇입니까? (3절)
* 우리가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것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은 평범한 자를 더 많이 지었으니, 하나님은 평범한 자를 더 사랑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빈부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으나 그것 때문에 사람들
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서로 봉사의 기회로 삼으면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할 때 행함의 대상이 제한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만약 나 자신이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을 외모로 취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적어 봅시다.
외모로 나쁜쪽보다 좋은쪽으로 본바면...
목사님들은 주님의 종이니
하시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 하였습니다.
좋든싫든....틀리던 맞던간에 그래서 많은 복을 받았지만
분별치 못해 힘든일도 격었습니다.
4.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할 때 정면으로 위배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8절)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기독교의 최고의 법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별하면서 사람을 사랑하면 이 말씀에 정면으로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랑은 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사랑입니다. 성경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없는 사람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톨스토이는 \"나의 이웃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지금 당신과 대면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 예 , 아멘!
5.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행함이 없을 때 우리의 믿음이 어떤 상태라고 말해주고 있습니까?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 받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자는 반드시 외부로 믿음의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행위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말씀에 근거하여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정의합니다. 믿음에는 살아 움직이는 믿음과 죽어 행동하지 않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산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 믿음의 모습이 행위로 나타나야합니다.
6.산 믿음의 소유자는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것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 2:15-16)
(1)죽은 믿음
죽은 믿음의 소유자는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을때 그냥 지나치든지 아니면 쓸것과 먹을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로만 합니다.
(2)산 믿음
산 믿음의 소유자는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것을 보고 입을것과 먹을것을 나누어 줍니다.
(3)나의 모습
나의모습은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것을 보고 오른손이 하는것 왼손이 모르게 도와주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것은 나누고 나도 없을때 에는 함께 안타까워하며 누군가가 도와주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아멘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모든 행위는 믿음의 소산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위가 없으면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이 헐벗고 굶주려 있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도록 둔다면 믿음이 있는 자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해서 그 사람의 필요를 따라 도와주는 것입니다.
7.귀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19절)
* 성경은 귀신도 하나님이 한분인 것을 믿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귀신은 수많은 무신론자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믿음없는 자보다 훨신 똑똑한편 입니다.그러면 귀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그것은 지직적으로만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지적인 믿음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 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믿거나 신뢰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다시말해 지식적으로는 알되 인격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지식적으로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것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이것은 마치 귀신이 하나님이 한분인 것을 알고는 있되 진정으로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우리의 교회안에도 이러한 지식적인 성도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혹시 당신은 지식적으로만 하나님을 믿되 행동이 없는 성도는 아닙니까?
*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믿고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8.성경은 아브라함을 산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행동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까? (21-24절)
* 이삭을 제단에 드릴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산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는것은 행함으로만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그 믿음이 확인되었고 또한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9.기생 라합의 행함있는 믿음이 대표적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서 나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보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5절)
*나의 부족함도 우리주님이 아시듯이
나의 믿음 또한 주님이 아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버려도 주님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인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해도 주님 떠난 내 심령은 살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안에 계심을 믿기에
우리 주님 나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심을 압니다.
10.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18절)
*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함으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행함이 없다고 한다면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제3장 산 믿음은 온전한 인격의 변화가 따른다.(제3-4장)
산 믿음의 소유자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 우리의 마음이- 즉 우리의 중심-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말을 조심하며 남을 유익하게 하고 덕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외부적인 것보다는 마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갑니다.
1.산 믿음은 말과 생각을 잘 조절할 때 온전한 인격으로 변화됩니다.(3:1-12)
본문은 말씀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언어생활과 사과하는 생활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있어서 두 가지의 중요한 것이 언어와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말하며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사람일수록 말이 많고 생각이 건전하지 못합니다.
(1)왜 우리에게 선생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까? (1-2절)
* 사실 좋은 교회는 선생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종이 많은 교회 입니다.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잔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겸허한 자세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더욱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 행동하는 사람보다 말을 앞세우는 사람이 많으면 그 교회는 매우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을 좌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생활에 심각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치 혀의 위력을 깨닫고 혀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혀는 놀라운 생명력과 파괴력을 가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혀의 파괴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2)혀의 파괴하는 능력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 또한 그 이유도 적어봅시다.(5-8절)
* 불로 비유합니다.
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무서운 파괴력과 엄청난 재난을 가져옵니다. 우리의 혀도 불과 마찬가지로 잘 사용하면 참으로 좋은 것이로되 잘못 사용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들 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혀를 무엇을 파괴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으므로 조심해서 혀를 사용해야 합니다. 모든 짐승은 길들일 수 있으나 사람의 혀는 결코 길들일 수 없으므로 절제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당신의 혀는 어떻습니까?
* 말하기 전 생각하고 늘 조심 하고 있습니다.
(3)혀의 생산적인 능력을 무엇으로 비유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9-12)
* 혀의 생산적인 능력에 대해서도 두 가지의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샘과 나무가 등장합니다. 샘과 나무는 아름다우며 신선합니다.
샘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선한 물을 제공합니다.
나무는 인간생활의 동반자이며 언제나 자신의 열매를 맺드시 우리의 혀도 항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산적인 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 입으로 찬송하고 또 한 입으로 저주하는 일을 서슴치 않음을 보면서 우리의 혀가 얼마나 간사스러운지를 느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가지의 사명을 다하는 샘과 나무의 열매보다도 못한 것이 우리의 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언어생활을 통해서 일관성 있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위의 두 가지 혀의 생산적인 능력을 비유함에 있어 우리의 혀에 무슨독이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는 단순히 마음의 생각대로 표현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선 우리의 혀보다 마음의 자세가 어떠 하느냐에 따라서 언어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변화에 더욱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7:21)
(4)우리가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한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 한입에서 찬송과 저주를 한다면 마땅치 않습니다.
2.산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우리의 인격과 마음이 변화 됩니다.(3:13-18)
* 혀의 문제에서 마음의 문제로 화제가 옮겨갑니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서 행동하게 됩니다.우리의 생각은 마음의 동기에 따라 형성되어 집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동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1)세상적인 지혜의 특징은 세가지는 무엇입니까? (3:15)
* 1.세상적 2.정욕적 3.마귀적입니다
1) 세상적 이란 말은
세상의 표준과 가치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표준에 따라 행동할 때 큰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2) 정욕적 이란 말은 동물적이고 자연적인 본능을 따라 살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처럼 먹을 것을 위해서 으르렁 대며 싸우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데, 예수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본 모습입니다. 또
3) 마귀적 이란 말은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화 대신에 전쟁을, 사랑 대신에 미움을, 단결 대신에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서 일으키는 모든 것이 마귀(사탄)적인 지혜입니다. 성도들도 땅의 지혜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성도는 언제나 땅의 것으로 영적인 풍요로움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땅의 지혜가 우리들을 혼돈 시키고 있습니다.
(2)땅의 지혜는 무엇입니까?(16절)
* 시기와 다툼
(3)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17절)
*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열매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산 믿음의 소유자가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온전한 선물과 각양 좋은 은사가 다 위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땅에 속한 지혜와 달리 주께서 각자 에게 주시는 지혜로서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기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제4장 산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제4장)
여기서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 을 따라 사는 것이냐? 아니면 이 세상에게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냐?\" 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 앞에는 치열한 싸움과 분열과 증오 외에 아무것도 존재할 수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1.우리의 싸움과 다툼이 어디서 옵니까? (1절)
*. 정욕으로 쫓아옵니다,
싸우는 정욕이란 재미있는 단어 입니다. 그 말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위기나 전쟁의 나팔소리가 나면 참호 속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싸우기 위해 벌때 같이 뛰어나와 싸우는 모습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다툼과 싸움은 모두 인간의 욕심과 정욕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가 욕심과 정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것들에 의해서 삶이 끌려 다니게 되면 참으로 불쌍한 인생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 것 입니다.이러한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도 살기는 참으로 어렵고 사탄의 도구로 전락될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은 정욕과 자신의 과욕 때문에 일어나는 신앙적인 문제는 없습니까?
* 정욕과 과욕을 부리면 신앙생활이 활기차기 못하고 근심걱정이 많게 됩니다.
마음이 불편하여 찬양이 줄어들고 기도가 힘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이기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님께 나아가 회개 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더욱 찬양하고 말씀보고 기도하면 성령님이 새 힘을 주시고 정욕과 과욕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아멘!
2.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싸움의 종류를 적어 봅시다.(4:1-12)
(1)자신과의 싸움 (1-3)
* 욕심과 정욕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특히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상대로 해서 싸우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든 싸움이 될 것입니다.특별히 우리가 자신의 욕심과 싸움에서 지게 되어 욕심대로 살려고 해도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리석게도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마음 어느것도 소득이 없는 생활을 반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존재인 것을 빨리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2)세상과의 싸움 (4절)
* 세상과 벗이 되는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과 자신은 원수 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나 홀로 싸운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매력 덩어리입니다. 단지 그 매력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로 끝나지만, 곧바로 또 다른 유혹들이 우리의 욕심을 향해서 손짓을 해오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서 의식적으로 헤어 나오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노력으로는 세상과 끊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3)마귀와의 싸움 (7절)
*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기려면 세상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주관자는 마귀라고 불리우는 사탄이 배후 조종자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도구로 자신도 모르게 이용되다가 종국에는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탄의도구가 되거나 이용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사탄을 대적해야 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성도들을 삼킬려고 시시 때때로 기회를 엿보다가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면 어김없이 공격하여 우리의 신앙을 무력하게 하고 자신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이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4)형제와의 싸움 (11절)
* 비방하지 말아야합니다.
사탄은 한 수 더해 성도들간에 싸움을 하도록 상황을 유도합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성도들 간에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분쟁이 있어 교회를 파괴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왜 같은 형제간에 피차 비방하여 끝없는 소비전 으로 모든 힘을 낭비합니까?
이런 일들을 누가 제일 좋아 할까요? 그것은 당연히 사탄으로 교회의 분쟁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비방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비방이란 말은 현재 이곳에 없는 사람을 헐뜯고 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남의 험담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깁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은근히 상대방을 깎아 내리고 자신을 내세우는 열등의식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남을 자신보다 높이고 자신은 언제나 겸손하게 낮추는 삶으로 일관되어야 합니다.
3.우리의 소모적인 싸움을 종식시키는 비결은 무엇입니까?(4:1-10)
(1)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아야 합니다. (3절)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기도하는 이는 정작 적습니다. 또한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만능의 열쇠로 착각하면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 이지만,기도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과 욕심으로 쓸려고 잘 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중에마음을 숨기고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본심을 아시는 고로 결코 그런 한 기도를 응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주님의 기도처럼 바뀔 때 기도의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2)하나님께 더 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6절)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큰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까? 바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한 사람은 결코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보잘 것이 없는 존재인 것을 알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절)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하루의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바쁜 스케줄을 모두 뒤로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경
건의 시간(Q.T)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가까이 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하나님께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9절)
(약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날마다 드리는 회개 기도야 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당연한 본분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지름길입니다. 하배하고 섬기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우리의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 향하게 됩니다.
당신은 이 시간 하나님께 조용히 고백해야 할 회개가 없습니까?
* 주님은 나의 생각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분이십니다.
내가 지은죄를 가린다고 가리지 못하고 숨긴다고 숨겨지지 못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우는것 같은데....주님 나를 도우사 욕심과 정욕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아멘!
4.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생은 누구입니까? (4:13-17)
(1)안개와 같은 자신의 인생만을 철저히 신뢰하는 자입니다.(13-14)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안개와 같은 인생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치는 자입니다.
사실 인생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요, 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몸이 아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돈이 있고 건강만 있으면 이 세상에 자신외에 그 어느것도 필요없다고 자신있어 하는것이 바로 간사한 인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신을 가질만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너무 철저하게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상은 힘을 자랑하며,지식을 자랑하며,부를 자랑하며, 권세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잠시이고,도리어 그것들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빨리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최대 행복입니다. 한편 성도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살게 되면 그는 그 순간부터 사탄의 도구가 되어 비참한 일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2)허탄한 자랑으로 인생을 사는 자입니다.(16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것으로 허탄한 자랑을 합니다.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삶들을 자랑하기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허탄\'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자신의 삶을 과장하고 허풍을 떠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그마한 자랑거리가 있어도 무슨 큰 사건들이 일어난 것처럼 떠들며,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허탄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자랑하고, 도리어 자신의 약한 것 으로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아멘!
(3)하나님의 선한 뜻인 줄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입니다.(17절)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자신의 뜻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할 상황이 되었거나 하나님이 선이라고 말씀하신 일들을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일을 거부하는 것은 이기욕이 자신의 수고와 희생을 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제5장 산 믿음은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5장)
1.주의 재림이 가까워지면서 물질주의자를 경고합니다.(5:1-6)
성경은 무조건 부유한 자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부자는 주의 재림을 앞두고 그릇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부를 사용하는 문제에도 잘못이 있는 자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자는 물질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거나 그것 때문에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경고합니까?
(1)그릇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사람을 경고합니다.(4절)
성경은 물질을 어떤 방법으로 모았는가에 대해 큰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정당하게 노력한 댓가와 선한 방법으로 모았는지 아니면 악하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물질을 모은 것을 구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어떤 방법으로 모았는가하는 그 구체적인 방법들을 다 알고 계시며 그것에 대해 주의 재림 때에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한고 있습니다. 이것은 경고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인 책임을 물어 지옥에 까지 보내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물질을 그릇된 방법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2-3)
본문의 부자들은 재물을 모아서 쌓아두는 재미로 알고 살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치와 낭비로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물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들에게 주의 재림 때에 당할 고통을 생각하며 울며 통곡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웨슬레는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의 신앙과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고했습니다. 사실 돈을 가지고 영원토록 살수도 없고 지옥까지 가지고 갈 자도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물질은 정당 노력에 의해서 벌어야지 투기를 하거나 그 외에 다른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우리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하게 쓰는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물질을 선한 일에 마음껏 사용할 때 더 많은 물질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종교개혁자 루터는 \"우리가 남에게 선을 베풀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으로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3)우리의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심판이 있다고 경고합니다.(1절)
물질 사용에 대한 심판의 확실성과 심판날에 대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날을 생각하면서 물질을 선한 청지기 처럼 살아야 합니다. 영어 속담에 \"우리가 붙들고 있으면 잃어버린다. 그러나 드리면 얻는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우리는 돈으로 침대를 살수 있으나 돈으로 잠을 살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을 살수는 있으나 돈으로 식욕을 살지는 못합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으나 참된 가정은 사지는 못합니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사치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을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십자가 아니 금 십자가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살 수가 없습니다.\" 연한 본분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가까이
2.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인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5:7-12)
(1)농부의 인내를 보면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7-9)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 중에 하나가 인내입니다. 인간이 왜 인내심을 상실했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현대의 문명 속에서 자연을 멀리하게 되면서 인내를 상실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기다릴줄 아는 농부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미련한 농부라고 할지라도 곡식이 열매를 맺을 때 까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우리는 인스탄트 시대에 살면서 기다리는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농부의 기다리는 지혜를 배워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때가 되면 약속하신 대로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가지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며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2)선지자와 욥의 인내를 보면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9-11)
인내란 그냥 참는 것만이 아니고, 참으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꾸준히 달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것을 바라보고 기다리다가 죽어 갔습니다. 욥은 자신의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건강이 최악의 상태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주께서 자신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하나님은 때때로 왜 지체하시는가? 하나님은 지체하실 때마다 우리에게 갑절의 축복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서양 속담에 \"세계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의 재림을 다리며 인내하는 자에게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주의 재림을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리십니까?
3.주의 재림이 가까워지면서 기도와 응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5:13-20)
(1)고난 당하는 사람은 기도해야 합니다.(13절)
성경은 고난을 당할 때 인내와 더불어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도 고난을 당할 때 참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는 기도는 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며 위대한 무기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 이라기 보다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려고 하다가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병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14-18)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간구를 들으시고 병을 고쳐 주십니다. 특히 병이 든 사람은 목회자를 모시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기독교 의사 가운데 암부로스 파레는 자기 진료실 앞에 이런 표어를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나 의사 파레는 상처를 치료하고, 하나님은 병을 낫게 하신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할 때 비가 삼년 육개월 안오게도 하고 다시 기도할 때 비가 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기독교인이 가지는 최대의 무기이자 힘입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아픈 곳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3)타락한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19-20)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고난뿐만 아니라 형제의 고난을 돌아보아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안에서 한 몸이요,같은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질병을 가진 형제를 보면 마음이 무겁고 같은 아픔을 느낍니다. 나아가 진리를 떠나 방황하는 형제를 보면 더 괴롭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를 떠난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도하며 권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