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주석 전체

      로 마 서

 

 

 

 

 

 

 

 

 

 

 

 

 

 

 


                목    차

서  론 4
1. 저작 4
2. 주제와 목적 4
본  론 5
제 1 장   5
1.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 사상(1:1-17) 5
2. 죄와 벌(1:18-32) 6
제 2 장    8
제 3 장 10
1. 사람은 다 거짓되되(롬3:1-18) 10
2.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가능(롬3:19-31) 10
제 4 장 1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13
1. 의롭다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롬4:1-8) 13
2. 할례나 율법으로는 의(義)로울 수 없음 14
3. 하나님의 전능성과 그 약속을 확신 15
제 5 장 17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로서 누릴 은혜 17
1. 하나님과의 화평 관계(롬5:1-11) 17
2.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 18
제 6 장 20
   성도의 존재로서 삶의 방식 20
    1. 새생명의 존재(롬6:1-11)  20
    2. 의(義)의 종으로 살 것(롬6:12-23) 22
제 7 장  24
    새로운 존재는 과연 자유로운 성화(聖化)의 삶을 사는가? 24
    1. 율법은 성도의 죄를 판단하는 기준 24
    2. 중생자의 영적 성화를 위한 자아 결투 25
제 8 장 27
    성령의 사람, 성령의 법 27
    1.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롬8:1-25) 27
    2. 성령의 사람을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 주심 28
제 9 장 30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30
    1. 예정된 구원(롬9:1-18) 30
    2. 토기장이와 그릇의 비유(롬9:19-33) 31
제 10 장 33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약속(롬10:9,10)  33
제 11 장  34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님 백성된 차이 34
제 12 장 36
    성도의 기본적 생활 자세는 서로에게 봉사하는 것  36
    1. 믿음의 분량대로(롬12:3-13) 36
    2. 마음을 같이 할 것(롬12:14-21)  37
제 13 장 38
    성도의 이웃 관계와 사회생활(롬13:8-10) 38
제 14 장  40
    1. 신앙이 커 가면서 일어나는 교만에 조심할 것 40
    2. 음식 문제와 모든 일에 믿음으로 행동할 것(롬14:12-23) 41
제 15 장 42
    불신자를 향한 성도의 자세 42
제 16 장 44
    마지막 인사와 축복 44

 

 

 

 

 

로  마  서

 

 서  론


     1. 저작

      1) 쓴   이 : 사도 바울
      2) 받은 이 :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3) 쓴   때 : A.D.56-59년 사이
      4) 쓴   곳 : 고린도

     2. 주제와 목적

      1) 주제 :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의신득구;義信得求)
      2) 목적 :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혼합된 사회 속에 바른
                복음 사상을 전하려는 것

 

 

 

 

 

 

 

본  론


  제 1 장 

1.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 사상(1:1-17)

바울은 1장에서 복음에 대한 간단 명료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1)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부터 증거 합니다.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리고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또한 이 가운데는 누구든지 복음 안에서 종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는데, 이는 억지로 강조하려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복음의 중심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우리 죄인의 사이를 대변하고 있은 것입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복음에 대한 혜택이나 복음을 위하는 사람 모두가 한가지로 부름을 받는 특징을 갖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롬 1:1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6-7)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3) 행위로 혹은 조상의 전통을 자랑하고 혈통을 토대로 구원을 말하는 유대인과 그런 식의 구원론에 대해 한 마디로 복음 사상의 중심은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고 잘라 증명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죄와 벌(1:18-32)


하나님은 인생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자연을 통하여 그 영광을 보이셨고 또한 여러 종교성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정할 만한 내용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1) 만물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의 근거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 감사치 않은 인간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3)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긴 죄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을 모른다 할 뿐 아니라 하나님 대신하여 다른 것 곧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섬겼으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 당시의 인본주의적 사고에 대한 바울의 변증이자 이성주의에 대한 역사적 심판입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지식과 섬기는 것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가 됨을 시사합니다.

4) 로마가 당시에 음란에 빠졌듯이 인간 역사는 주로 방탕함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습니다(26-27).
소돔.고모라가 그랬고 말세가 도덕성의 파괴 때문에 온갖 죄가 나타나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악상입니다
(롬 1:29-31)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 사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6) 이 죄악에서 인간은 받을 형벌이 오직 지옥 뿐이라 했습니다.
(롬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제 2 장  

3. 유대인과 유대인의 율법주의에 대한 죄악

1) 유대인의 이방인을 판단하는 죄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그들의 율법 가운데서 인간관을 사고하고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방인에 대한 혐오감은 저주로 나타나는 아주 극단적인 차별 의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을 비판하는 것은 전혀 의로운 것도 자격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유대인들은 남을 비판하면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갖지 않았고, 제사와 모든 행위에 가증되었습니다.
(마 23: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부터 하심
복음을 먼저 듣게 하신 나라도 유대인이요, 심판도 유대인부터 하심을 경고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것이 실현되었고, 장래에도 그렇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유대인이 마지막으로 환란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반성하고 더욱 신앙을 돈독히 가져야 합니다.

축복도 먼저 받은 유대인이었으나 벌도 먼저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평의 원칙이며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야 할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롬 2:9-10)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3) 율법을 못 받은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율법이라 했습니다
(롬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4) 특히 유대인은 율법을 가진 자이고 율법을 가르치는 자로서 율법을 범하므로 더욱 그 죄가 크다 했습니다.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5) 할례주의는 구원과 무관하고 할례의 진정한 뜻은 내면의 정결에 있다고 가르침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제 3 장


1. 사람은 다 거짓되되(롬3:1-18)

3장은, 인생은 하나님 앞에 거짓되고 어느 족속이라도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심판은 당연하고, 이미 평강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도 못하는 인간으로 실추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롬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고 맡게 된 유대인이 하나님을 제대로 안 믿고 불의 한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이 당연함을 지적합니다.
(롬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롬 3:8) ...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헬라인은 대체로 이방인을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즉 먼저 하나님을 알고 조상 때부터 섬긴 이스라엘이 지금에 와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나 이방인의 무지함이나 꼭 같이 형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롬 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결론적으로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롬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가능
                    (롬3:19-31)

여기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사람이 의롭지 못할 뿐 아니라 율법의 기능이 구원을 얻게 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새로운 계약(新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정의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양심과 율법 안에서 스스로를 죄인 인줄 깨닫게 한 후 구원의 바른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믿는 것을 의(義)롭게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의(義)에 대한 증거로 율법주의적 의(義)와 대조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1) 하나님의 전적 은혜이며 따라서 자랑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 예수의 은혜는 피의 은혜입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믿는 것은 율법을 행하겠다는 것보다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의 심정이고 약속입니다.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은혜는 이방인에게까지 효과를 똑같이 나타낸다는 것이 율법주의와 다른 또 하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롬 3: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사람이 사람을 여러 시대에서 판단하고 의로움을 말하여 왔으나 실로 의(義)에 대한 확실한 대답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참된 의(義)를 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 3:30)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의(義)를 얻어 구원을 얻지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선하신 뜻을 저버릴 수 없고 오히려 더욱 율법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방편이 아니라 구원 얻은 자의 행위에 대한 성실한 신앙의 효과를 가진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롬 3:31)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제 4 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나님께 의롭다 증거를 받는 이것을 아브라함을 모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배경이며 같은 의(義)에 본의(本意)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골자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새롭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약적 의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도 간주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신뢰하고 확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 같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로운 자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新約)입니다.
우리는 일반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행위에 대한 보상 심리로 구원을 이해하고자 하는 지식 때문에 하나님께 무엇을 선행(善行)함으로 구원의 획득을 바라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행위의 태도에 대한 평가로 선택하시는 구원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당신의 약속을 믿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1. 의롭다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롬4:1-8)

사람이 하나님께 의롭다 증거를 받는 것은 어떤 조건일까를 숱한 세월 동안 연구하고 노력들은 했지만 가장 확실한 답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 정의에 근거할 따름입니다.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묻기를,
(요 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결국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니 우리가 그분의 명대로 사함을 얻으면 어떤 자가 하나님을 불의하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없다 하시면 그만입니다. 무죄 선포! 그것은 하늘의 축복이요 인생에 있어 가장 귀한 복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삶의 행복이라 했습니다.
(롬 4:7-8)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2. 할례나 율법으로는 의(義)로울 수 없음
      (롬4:9-16)

아브라함을 들어 본보기로 삼은 것은 그의 신앙과 함께 역사적 의의를 지닌 것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때는 율법도 없었고 할례도 아직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본받을 기본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바울이 선택한 것은 물론 성경 안에서 선택한 것이지만 이론적으로 여지없는 모델 선정이라는 점에서 현명한 처사였습니다. 이 또한 이방인이 된 자들에게 복음의 효력을 증거 하기에 적당한 것입니다.

(롬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우리 이방인도 결국 아브라함 같이 하나님의 약속(우리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약(新約))을 믿는 자이면 영적으로 그의 후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롬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3. 하나님의 전능성과 그 약속을 확신
        (롬4:17-25)

아브라함의 신앙을 신약의 하나님 약속을 믿는 중심으로 이어주는 정의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신약 시대에 성도가 가질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을 가졌으며 의롭다 칭함을 얻었습니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이것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전능성과 약속에 대한 신뢰를 가진 것입니다. 기독교가 약속한 모든 것이 과연 이성(理性)으로는 깨달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신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합리적 사고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경험된 지식을 우리가 경험한 양으로 신뢰해 버릴 때 그것을 신앙이라고 형용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나이 백세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본인의 건강으로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은 것입니다. 신앙은 의지가 아니라 믿음 그 자체입니다.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이 자신의 몸으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또한 아기를 갖기에는 죽은 몸과 같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롬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할래야 할 수도 없었고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확신을 할 수 있었으니 믿음 그것 마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러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상식으로 이해되는 바가 아니므로 신뢰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 믿음을 보고 하나님은 신약에 이를 의(義)로움으로 아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믿는 것은 고집과 편견을 버리지 않고는 신앙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시(100세에 아들을 주신다는)를 믿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롬 4:34)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제 5 장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자로서
누릴 은혜

본 장에서는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은 자가 받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성도가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고 삶의 역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과의 화평 관계(롬5:1-11)

화평이라는 말은 원수된 사이가 화친하게 됨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원수된 것이었지 하나님 편에서 원수 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평은 먼저 하나님과 이루어 져야 진정한 이웃과의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진정한 화평으로 영적 자유이며 죄짐에서 놓이는 것을 말합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이 이제 우리에게 죄인의 신분에서 자유케 하셨으므로 우리는 이제 험한 세상에 어려움이 와도 인내할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 가운데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 인간은 어쩐지 어느 나라에서나 문화사적으로 볼 때 자연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며 발전하여 그것들이 한 형식을 이루어 종교가 되거나 금기 사항으로 남거나 합니다. 또는 하나님을 감히 인간이 부르거나 만나는 것조차 생각하기에 두려워 한 것을 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룸으로써 이제 아무런 두려움이나 무서워 할 것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인생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실려고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따라서 이 화평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준비하시고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1) 화평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 영광의 자리에 계신 독생자를 보내시고 찾아 오셨습니다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2) 희생을 통한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3) 너무나 크신 사랑이므로 죄인은 도리어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하게 된 내용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 시도된 하나님의 전적 사랑의 희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본 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믿음의 내용을 간직하도록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2.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
      (롬5:12-21)

예수께서는 오직 구원의 길로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참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바울은 본문에서 인류사의 갖은 죄악과 사망의 원초적 동기로 인간의 모델로 시도된 아담의 불순종을 거론하며 이에 대응하여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은 은혜스런 구원의 영향력을 대조적으로 피력하려 합니다.
그것은 단일 구주에 대한 강조 뿐 아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 때문에 죄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첫 아담이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 와서 율법이 없는 자에게도 그 사망(마귀)의 세력이 역사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순종하여 희생되시므로 모든 이가 이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설적 대조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 구주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이제 누구의 의로운 행위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도 아담으로서 사망을 가져 왔듯이 의(義)에도 예수 그리스도 홀로 가져오신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로마에 있는 혼탁 되어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 첫 아담이 가져온 사망의 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에 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주시게 된 생명의 구원의 은혜를 역설하는 것입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마지막으로 율법주의를 외치던 개종 유대인이나 유대주의자들에게 율법은 우리 인간을 더욱 죄인이 된다는 심판을 가중할 뿐이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구원을 강조하므로 마무리를 합니다.
(롬 5:20-2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제 6 장


성도의 존재로서 삶의 방식

본 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다 칭함 받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된 성도의 존재가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태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가 된 것은 한 새로움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므로 의로운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심도 있게 지적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부분을 성도의 성화 단계라 하나 필자로서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의 태도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본 장은 성도의 존재가 가질 삶의 태도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1. 새 생명의 존재(롬6:1-11)

성도란 행위로서 인정받은 무엇이 아니라 은혜로 되어진 어떤 존재로서의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칭하신 존재요 하나님이 받으실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아직 죄스럽고 우리의 의지는 수도사같이 정화되고 성화가 다 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치 사형수로 있다가 어떤 이의 희생의 대가로 다시 풀려 나오게 된 은혜 받은 죄수 같아서 아직 죄의 습관이 있고 아직 죄의 태도는 몸에서 떠난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달라졌다는 한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가 살 태도가 분명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된 자는 그 신분상 뚜렷하게 죄된 삶의 본성적 사회 양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새롭게 된 존재는 그 실존적 변화의 역사가 뚜렷한데,

1) 죄된 본성이 예수의 죽음에 함께 동참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형식으로 증명되는 건지는 몰라도 어떤 이는 일생에 두 번 없는 통곡으로 증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는 자는 예수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제 새롭게 살려는 의지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이것이 세례요, 세례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죄의 근원에서 속죄됨을 뜻합니다. 세례는 결코 의식이나 형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본인의 의식에서 크다란 감동과 함께 진실한 믿음의 고백과 깨달음이 동반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본 장에서 옛사람 곧 세례 전의 사람과 세례 후의 사람으로 대조하여 우리 성도된 자는 새로운 존재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과 양식을 가져야 한다고 교훈 하는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2) 새로운 존재가 된 성도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은혜 안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이것은 우리 의식 속에서 약속을 얻었다기 보다 하나님의 은밀하신 의중에 그렇게 지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게 시작되어 영생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나 어떠한 교훈으로 선행의 무슨 법으로나 수도를 통한 자격심사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그 자체가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셨다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곧 성도의 영적 새로운 삶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증명하고 또한 죄의 존재에서 벗어나 영원히 살게 된 의의 사람이 됨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2. 의(義)의 종으로 살 것(롬6:12-23)

인간의 삶 자체가 죄의 종이라면 성도의 삶은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 것을 가르칩니다. 실상 본성의 삶은 인간의 스스로 가진 의지 이전에 영적으로 사단의 지배로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이런 역사관은 성경의 계시인데, 여러 가지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말세론적으로 이 세상이 마귀의 지배로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평범하다는 생활에서부터 하나님이 명하시는 말씀의 근거로 시작하고 교육되어지도록 하는 것이 성도가 살아갈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같은 가르침은 우리 이방인이라도 본성에 따른 습관적 삶의 방식이 따르므로 당연히 들어야 할 말씀이지만 그 당시 유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삶을 이해하던 신자들에게는 더욱 이 같은 영적 역사의식을 고취시킬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주인에게 순종하든 그 주인의 종이 되는 것같이 죄에 순종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종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사도의 정신으로 살지 않고서는 감히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분상으로 종이 있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는 습관이 그러하고 사회적 여건이 그러하고 마귀가 유혹하고 믿음을 방해하고 있는 것 등에서 매우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데 고난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순교적 삶이라 하기 전에 우리가 습관화 된 삶의 방식이 변하는 과정에 따르는 새내기의 훈련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밖에 있을 때 얻었던 진정한 열매란 없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고 타락하고 죄스런 것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아 하나님의 선하신 생명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롬 6:21-22)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종합적으로 성도의 존재가 알 것은 세상의 필요한 것들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새롭게 된 실존적 존재가 삶을 영위하는 방법에 있어서 거룩한 영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믿음의 진솔한 부분이며 성도라는 존재의 새롭게 된 영적 삶의 입장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성화(聖化)의 시작이요 근거요 목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시작이며 새싹이라는 점에서 세인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생활 양식으로는 거룩한 삶의 방향에서 불신자와의 삶의 대조되고 비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일축하여 세 속의 삶은 그 끝이 사망이고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이 끝은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제 7 장


    새로운 존재는 과연 자유로운 성화(聖化)의 삶을 사는가?

본 장은 성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의 실제적 어려움을 가르치고 있으며 의식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율법과 성화의 관계를 말해 줍니다.


    1. 율법은 성도의 죄를 판단하는 기준
        (롬7:1-14)

세상에서 성도를 심판할 아무런 법이라고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회 규범이 아니라 영적 존재의 미래에 대한 종교적 재판입니다. 왜냐면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허락으로 속죄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새로운 존재로서 시작된 새생명을 가졌으나 죄의 본성으로 인하여 항상 죄를 지을 수 있는 똑같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은 완전하다든지 어떤 종교적 용어로도 완전을 형용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율법-죄에 대한 기준에 걸려 있게 마련입니다.

(롬 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은 율법이 인간의 삶에 있어 항시 죄를 판단할 근거가 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한 남편이 죽으면 다른데 시집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경우처럼 예수 안에서 성도된 자에게는 그 율법이 아무리 행위에 대한 심판을 한다 하여도 영생을 위협하거나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와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롬7:2-3).
그런 뜻에서 우리는 율법에서 메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그러나 율법이란 영원히 하나님의 선하신 죄의 판단 기준이 죄시므로 성도에게도 역시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죄를 규정하는 것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영원히 심판합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하나님의 법이 없을 때는 자아가 맘대로 당위하게 여기는 대로 살았으니 죄에 자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에 죄라 규명하니 죄에 대해 자유 할 수 없고 율법은 살고 본 자아(自我)는 죽는 경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 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따라서 율법은 성도에게 선한 규정이 되고 영적으로 신령하게 인도하는 경계선이며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성도가 되기 전에는 율법이 우리를 단순히 사망으로 몰아 넣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레에게 의로우며 선한 성도의 양심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2. 중생자의 영적 성화를 위한 자아 결투
        (롬7:15-25)

바울은 중생하였고 사도로서 영적으로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 가운데 역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죄 때문에 고민하고 우리 성도의 본질적 고민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죄를 짓는 성도의 본질적 문제를 어떻게 알고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숨길 수 없는 죄의 진상을 우리는 방황할 것이 아니라 바울의 증거를 통해 낙심하지 않고 전진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로 죄가 무엇인지를 성도의 새로운 양심에 입각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롬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바울의 이 같은 고백은 우리들의 양심을 터놓게 합니다. 원치 않는 죄! 그러나 이것을 도시 어찌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에게는 이와 같이 감당 할 수 없는 본의 아닌 죄성이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그 죄가 우리를 주관하였으므로 우리는 죄인이 되고 갈등을 초래합니다.
(롬 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와 같은 입장을 우리는 바울처럼 얼마든지 생활에서 깨닫게 됩니다. 처음 믿음에서 거룩한 존재로, 의로운 존재로, 새로운 존재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의 방향을 가진 자라도 육신이 있는 동안 짓는 죄에 대해서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사함을 얻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다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제 8 장


    성령의 사람, 성령의 법

본 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영적 상태를 보다 명확히 하려고 합니다. 믿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통하여 많은 교훈을 접하지만 결국 성령으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성도는 영적 존재로서 죄스러움에 대한 갈등이나 삶의 방향에 대한 의문이 올 때 바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처세할 것에 대한 교훈입니다. 바울은 8장에서 성도의 삶의 근거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매우 심도 있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롬8:1-25)

그리스도인은 철학적 이론에 입각하여 구별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역사에 따라 되어진 영적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달리 표현할 때 곧 성령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와 영적 교감을 나누시는 것입니다.
본 장 1절과 2절은 뜻을 같이 하는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성령 안에서 죄가 해방된다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것은 감각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고백으로서 가능 할 것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성령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분리하여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볼 수 없고 다만 믿음을 간직 할 때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성령이 우리 영혼의 상태를 중심으로 붙들고 계심을 믿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의 사람이 되어 있음은 관심의 방향이 다른데, 곧 육적 사고의 이념에서 영적 관심으로 변한 것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 성령의 사람을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 주심
         (롬8:26-39)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사람이 거룩한 삶을 영위하려는 곳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실상 인내와 승리의 비결은 사람의 의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성화(聖化)의 삶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1) 하나님의 구원은 계획적이시다
하나님의 구원은 계획적이고 영원히 불변하다 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인내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경주하라는 것입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이상 모든 환난은 다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 자들을 구속하시겠다고 약속하신(新約) 것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벽한 구원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 율법에 구속받지 않고 우리의 갈등에도 구속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의지와 주 예수의 은혜로 영원히 구속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미하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얼마나 힘이 되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제 9 장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하나님의 구원 예정에 대해 바울의 결정적인 신학 논증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이성주의자에 대한 궁극적 답변이자 소위 칼빈주의 예정론의 기초가 되는 바 로마서 9장은 로마서에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 중에 구원을 의도하시고 여러 사건을 경유하여 예정된 자에게 복음이 닿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끝까지 구원하시는 전 과정이 모두 하나님의 작정이요 홀로 주관적 계약과 섭리로 되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1. 예정된 구원(롬9:1-1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역사에서 오직 선민(選民)의 관심을 얻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외식과 불신 가운데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된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된 씨, 즉 사라의 아들에게로 된 후손이 참 하나님의 축복된 자녀가 된다 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한 백성이 참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선택받은 자가 될 때 구원이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롬 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심은 그들의 행위 이전에 이미 예정된 일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때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예정 그 자체에 순응할 뿐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이러한 모순 아닌 모순에 대한 의문 때문에 하나님을 공의로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 주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이성주의 입장에서는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 반박은 현대 신학에서 이성주의적 사고와 관념적 신학이 초래하는 것이었습니다.
(롬 9: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 하나님의 주관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심판하시는 주권을 행사하신다는 원칙 아래서, 버릴 자에 대해 바로를 모델로 설명합니다. 바로 왕은 마음이 완악했습니다. 그것 마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악하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그 완악한 자로부터 스스로 구원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었음을 알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롬 9: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2. 토기장이와 그릇의 비유(롬9:19-33)

이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해 결론적인 답으로 한 비유를 통하여 정립해 줍니다. 그것은 사람은 흙(흙에서 왔음, 창1:)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라면 그것을 만든 토기장은 하나님이시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여러 목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귀한 것 천한 것 할 것 없이 그의 주권적 의지대로 만들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가 어찌 의문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신분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따른 자들이 구약 시대에서도 구원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말세에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유대인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하나님의 구원이 이제 믿음을 가진 자로 한정하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만이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롬 9:30-3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구원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될 것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된 의지를 개인적으로 알고 싶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믿음을 저버릴 때 버리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찌 이방인으로서 믿음을 태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얻게 된 신약 백성으로서 특이한 것은 이미 이 믿음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선택받은 자들이 갖게 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제 10 장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약속(롬10:9,10)

바울은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의 근거는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나 자기들의 형식적 율법에 치우쳐 제대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소위 인간적 의(義)를 지키노라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롬 10:2-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믿음의 절차를 볼 때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있어야 하고 전할 자가 있어야 하고 들을 때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으로 인하며, 참된 복음 사상은 이제 성경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본 장에 1절에서 시작된 바울의 의도같이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한 심판과 아울러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 11 장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님 백성된 차이

이제 두 부류의 성민에 대한 구별입니다. 하나는 육적 이스라엘로서 참된 믿음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또 하나는 영적 이스라엘이 된 이방인 기독 신자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보였듯이 하나님을 바로 믿는 자들이 구원을 얻었음을 봅니다. 말세에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유대인을 구원 할 것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는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방인은 감람나무에 비유되어, 돌감람나무로서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했습니다. 따라서 더욱 조심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본래 법이 없었고 하나님을 모르던 자였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으니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버려진-유기된 이방인으로서 당연히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롬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범죄 할 때마다 가차없이 심판하시고 개인적으로도 벌하셨습니다.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은 더더욱 하나님의 간섭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롬 11:21-22)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롬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종말론적으로 해석되는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는 이방인이 주 예수를 많이 믿어 하나님이 정하신 수(數)에 차기까지 이스라엘은 더욱 악해져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계시록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이 말세에 큰 고통의 날에 하나님을 떠난 죄로 적그리스도를 맞아 큰 환난을 겪게 되어 부르짖으며 남은 마지막 기간동안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여, 이방 기독 성도와 함께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스라엘을 이단으로 알거나 한 선지자 정도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고 조상의 지은 죄(메시아를 죽인 죄)를 아직도 잊고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에서 하는 말입니다.
(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 11: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구원과 만물이 다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한 깊은 계획을 우리 인간은 다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러는 이성주의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반박하며 이성에 맞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 합니다. 바울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 알 수 없다고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하나님의 주관적 섭리를 이해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역사를 인간의 의지로서는 다 깨닫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만물 그리고 구원에 대한 전반적인 섭리를 주권적으로 통괄하심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신뢰함을 8장에서 계속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롬 11:33)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6)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제 12 장


성도의 기본적 생활 자세는 서로에게 봉사하는 것

이제 성도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은 거두며 성도로서 가져야 할 활동에 대해 가르칩니다. 바울은 당시에 종교적으로 교만하던 유대교 신자 및 정치적으로 교만하던 로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성도의 중요한 겸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속적 유행이 사람들의 마음을 부패케 합니다. 이러한 조건은 당시의 로마에 있는 성도에게도 같은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시대를 본 받지 말고 경건하여 하나님께 드릴 만한 예배적 활동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 믿음의 분량대로(롬12:3-13)

하나님은 구원을 동일한 은혤 주신 후 또한 믿음을 딸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량을 정하여 주셨습니다. 구원의 믿음도 은혜이며 믿음으로 봉사할 수 있는 역량도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롬 12:3-4)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우리 몸의 기능이 각각 다른 것같이 교회도 믿음으로 담당하는 역할이 각각 다르고 그 힘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지체가 되었느니라

봉사하는 정신은 오직 사랑 가운데서 행할 것을 권고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이 터반이 되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여러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12:10-11)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2. 마음을 같이 할 것(롬12:14-21)

봉사의 기본 원칙이 섬기는 자세에서 시작되고 섬기려면 교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봉사 자체에서도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겸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봉사하는 중에서도 교만하여 봉사의 대상자들로부터 미움을 도로 받는 수가 있습니다.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영적으로는 마귀의 세력과 다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마귀가 싫어하므로 사람을 통해서 혹은 직접으로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일에는 잡음이 따릅니다. 이 잡음에 대한 이해를 보다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사단의 궤교임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의지하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봉사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의 일은 황무지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의 원주민을 상대하여 싸움을 통하여 그 땅을 쟁취하는 것에 비유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봉사 활동에는 영적으로 원수된 마귀의 궤계가 있으므로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면서 이룰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롬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제 13 장


     성도의 이웃 관계와 사회생활(롬13:8-10)

성숙된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활동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구원의 은혜에 희열을 느끼고 잠시 사회 활동을 잊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구원의 충격은 매우 강도 높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첫째로 강점이 되면서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모두 마귀의 세상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정치가 부패한 것도 성경 상의 내용으로 의미를 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서 13장에서 기독인이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적응해야 할 것을 권고 받게 됩니다. 비록 예수님 당시 세상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다 하여도 권세자들이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헤롯 정치의 시절에도 세금은 내고 국가 기관이 움직이는 법에 따랐던 것을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권세자들의 통치 영역이 얼마나 옳은가에 대한 평가로서 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국법이면 국법으로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세상 권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여러 잡다한 일들을 법대로 처리하고 생명을 사형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법적 행위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실행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롬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이웃에 대하여 성도는 사랑 가운데서 봉사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롬 13:8-9)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주의할 것은 세속은 술과 친하고 술이 일과 함께 항시 거주하고 있으며 성도는 시험받기 쉬운 것을 경고합니다.
(롬 13: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제 14 장


  1. 신앙이 커 가면서 일어나는 교만에 조심할 것
       (롬14:1-6)

본 장에서는 신앙의 정도가 조금씩 혹은 크게 차이가 있을 때 믿음이 연약한 자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신앙을 주셨고 적은 믿음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판단하지 말고 조심하여 권면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당시에 우상 제사를 한 음식이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 먹게도 한 사실입니다. 이것을 두고 신앙인들 간에 분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믿음대로 먹어도 될 사람은 먹고 신앙에 양심이 아프면 못 먹을 것이라 했으므로 음식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론지었습니다.
다만 이 문제로 신자들 간에 오해를 갖고 비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상 제사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조상 숭배한 음식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오해를 가질 이유는 없으나 불신자들의 구별짓는 비판을 없애기 위해서는 먹지 않을 것을 주장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에 있었던 시장의 음식들이 우상 제물과 섞여 있었으므로 우리가 직접으로 우상 제물이라는 조상숭배의 제사상과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그래서 무엇을 먹든 무슨 일을 하든 그 모든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함부로 비난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말에 심판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2. 음식 문제와 모든 일에 믿음으로 행동할 것
            (롬14:12-23)

형제간에 신앙상의 문제를 놓고 서로 주장이 엇갈릴 때 우리는 싸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오직 서로에게 화평을 중심으로 위협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믿음의 차이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제 15 장


    불신자를 향한 성도의 자세

바울은 이제 성도로서 불신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취할 행동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의 이웃에 대한 의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정신으로 내 몸처럼 사랑하는 중심으로 대할 것이라 했습니다.
(롬 15: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이웃에 대해 기쁨으로 대하고 은혜 가운데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롬 15:5-6)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방인은 실제적으로 희망이 없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이방인에게 소망을 안고 찾아가는 자세로 대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을 선전할 때 소망의 하나님을 보여줄 것을 말합니다. 소망을 줄 사람이라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 할 것입니다.
(롬 15: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불신자인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아 구원을 얻게 된다면 이것은 대가 없이 받게 된 은혜이므로 영적 빚을 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신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먼저 믿는 선교지의 성도들에게 육에 필요한 것들로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영적 은혜를 나누는 목회자와 그러한 선교자들을 돕는 것이 지당함을 아울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또한 믿음의 형제는 전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롬 15:30-31) ...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

 

 

 

 

 

 

 

 

 

 

 

 

 


제 16 장


    마지막 인사와 축복

본 서신을 고린도에서 자매 뵈뵈(밝다, 빛나다라는 뜻을 가짐)를 통하여 로마에 전달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롬 16:1-2)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신앙과 물질적 준비 그리고 명성이 서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뵈뵈는 당시에 사회적으로도 빛나는 인물인 것같습니다. 바울이 이 중요한 서신을 맡겨 로마로 보낼 때는 신앙이 좋은 사람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녀는 대단히 봉사적이고 추천될 만한 이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인명이 소개되고 있으며 초대 교회에 충성된 성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초기에 귀한 일꾼이었기에 성경에 기록이 된 줄 믿습니다.
영광의 이름들입니다. 목숨까지 내놓고, 많이 수고하고, 사도로부터 유명한 성도로 불리고, 인정받는 신자들이며, 주의 택하심을 입은 충성된 집사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분쟁하는 일이 없이 축복 가운데서 사단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롬 16:19-20)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특별히 22절에 나오는 더디오는 바울의 편지를 대필(代筆)해 준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필자로 여기에만 기록되고 있습니다. 더디오는 자세한 소개가 없으나 유명한 대필자요 신앙자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롬 16: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복음의 전파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시이며 이를 바울 자신을 통하여 전달됨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도를 축복하되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바울의 인사말에도 뜻이 있습니다.
(롬 16:27)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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