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성경 강해

시편 산책
<제목 차례>
1. 도입(1p) 3
● 시편 1편과 23편이 닮은 점은 무엇인가? 3
1) 총체성 3
● 시편은 계시이다. 4
원래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다. 4
행위은혜라는 부분에서, 영역교회라는 말을 쓸 수 있다. 5
시74편과 시79편을 보자. 5
● 시편해석의 원리 6
1) 전체를 통째로 삼켜라. 6
2) 신약적으로 해석하라. 8
시편1편은 대조법으로 많이 사용한다(8p). 14
1. 시편의 표현법으로서의 평행법(parallelism) 14
1) 고대 히브리시의 거의 유일한 표현법이 평행법(parallelism)이다. 14
2) 이것이 여러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 16
2. 평행의 경우들(3p) 22
1) A - A\' 23
2) A - X - A\' 23
3) A - B - A\' - B\' 23
4) A - B - X - B\' - A\' 23
3. 시편의 인식론, 인격체로서의 거울인식론, 거울인격체(3p) 23
1) 평행법은 표현에서 어떤 사실을 나란히 두는 것을 말한다. 23
2) 인간의 문화별 인식론의 차이 23
3)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을 거울인식론, 거울인격체(mirror mentality) 23
4. 시편의 기초로서의 오경(4p) 23
1) 형식상의 이유들 : 24
2) 상식의 탈피 필요 : 24
3)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적 삶의 내용이 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시편(4p). 25
4) 언약적 삶은 원리적으로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26
5) 언약적 삶의 역사적 자취를 볼 수 있다(7p). 46
5. 시편해석의 원리(8p) 51
1) 전체를 통째로 삼켜라. 51
2) 제 2경륜의 시편은 제 3경륜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제 3경륜의 원리(신약적)로 재해석하여 적용해야 52
3) (문학적, 신학적)구조를 파악하라(기승전결)(10p). 54
4) 하나님의 인칭의 변화에 주의하라. 54
5)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라(11p). 59
6) 문체의 변화 등의 문학적 기법에 주의하라(11p). 63
7) 내용의 전환(12p), 기도에서 찬송으로, 기도에서 확신과 권면으로의 전환에 주의하라. 69
2. 본론(14p) 71
1. 하나님과 관계의 출발과 발전(14p) 71
1) 시 131편 71
2) 시 42-43편(14p) 73
2. 죄, 죄성, 죄의 결과의 발견과 극복(16p) 74
1) 시 19편 74
2) 시 25편 75
3) 시 51편(19p) 76
3. 언약법을 따르는 삶(20p) 77
1) 시 119:65-72 77
2) 시 15편 78
3) 시 24편 (언약갱신예식시편)(21p) 78
4. 자연계시와 특별계시(22p) 79
1) 시 8편 79
2) 시 19편(23p) 81
5. 그리스도의 의의 절대성(23p) 81
1) 시 22편 81
6. 그리스도인의 의의 중요성(24p) 83
1) 시 17편(24p) 83
2) 시 18편 94
7. 영적전쟁(26p) 95
1) 시 3편 95
2) 시 27편(27p) 97
8. 고난을 극복하는 삶(28p) 100
1) 시 64편 100
9. 지혜자의 찬양(29p) 101
1) 시 32편 101
2) 시 37편 : 땅을 차지함. 103
10. 언약공동체의 원리(30p) 103
● 두 가지 막강한 진리 무기 103
1) 시 133편 104
2) 에베소서 106
3) 시 84편 107
11. 언약공동체의 찬양시(33p) 109
1) 시 100편 109
12. 언약공동체로의 회귀(34p) 111
1) 시 120-122편 111
13. 언약공동체의 발전(37p) 117
1) 시 127편 117
2) 시 128편 117
14. 언약공동체의 회복(37p) 117
1) 시 126편 117
2) 시 90편: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기도 118
15. 다윗의 왕권과 시온의 영원함(39p) 122
1) 시 2편 122
2) 시 132편 123
Q&A 124
1) 구약전체에 대한 도표는 없는가? 124
2) 경륜에 대한 설명을 좀 해주시면 124
3) 15가지 원리로 나눈 원리는? 124
4) 추천도서 124
5) 다윗이 언약신학을 잘 따랐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124
1. 도입(1p)

● 시편 1편과 23편이 닮은 점은 무엇인가?
1) 총체성
한 인생을 시작했다 끝나는 점을 이야기 하는데 인생의 3단계를 3단계로 나눈다.
각 단계를 2절씩 배열하고 있다(1-2: 인생의 초기, 3-4: 인생의 중기, 5-6: 인생의 말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나운영의 곡은 시편 해석상으로 실패한 곡이다.
그 이유는 3-4절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중반기가 없이 노년기로 바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결혼도 하지 않고 바로 노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또 다른 이유는 서울의 종교교회 출신인데 그 교회를 좋아한다.
3-4절은 인생의 고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상을 받는데 120점을 받는
하나님이 내게 잔치 베풀어 주시는 것이 좋은데 더 좋게 하려는 것이다.

인생의 외적인 것을 자랑하는
많은 열매를 맺은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말기는 하나님 안에서 되는 것이다. 심판
이런 면에서 시1과 23편은 유사한 점이 많다.
어린 시절, 초기 단계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것을 보여준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말씀 속에는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자기 아들의 이름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지키시는
청년기 자체에는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많다.
내게는 손해 보는 점이 있지만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시는
내게 체험ㄷ괴고 느낌 되지 않아도 나와 맺은 언약을 위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욕먹지 않게 하시는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것 역시 인생의 중반부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인생의 중반기에 많이 닥쳐온다. 시심지어는 목회자들도 이런 생각을 할 상황들이 있다.
서울의 경우 한강 다리가 얼마나 많은가? 그 다리에 가고 싶다는 것
자기 자신의 잘못과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그 역사를 인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초기 단계에는 왜라는 단어를 쓸 때가 많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럴지라도 그런 상황에서도 주의 안위와 위로가 있다.
맞을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나운영씨가 이런 인생의 중반기를 빼먹은 것이다.
마지막에 상다리가 뿌러지듯 차려진 상도 좋지만 중반기에 있는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술꾼들이 술잔이 넘치는데 넘친다고 해도 넘치도록 붓는 것을 본다.
이렇듯 하나님도 우리의 잔이 넘치도록 채우시고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보여준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의 집은 영원한 점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시23편을 많이 쓰는데 이 6절 때문이다.

● 시편은 계시이다.
원래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다.
여기에는 기도와 애원, 감사와 찬양이 담겨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성경에서 항상 계시만 생각하고 반응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종교개혁에서 오직 은혜만 강조하다보니 은혜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들이 간과되었다.
하나님 우리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런 것은 없다.
이런 부분은 너희들이 할 일이다 왜 내게 해 달라고 하느냐 내게 미루지 말라.
우리가 해야 할 부분들을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해달라는 것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공부 잘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부분은 부모가 할 일은 공부방을 만들어주고 공부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공부 잘하는 부분은 아이의 부분이다.

행위은혜라는 부분에서, 영역교회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우회를 통해 영역교회를 이루고 그 영역에서 (고전15:10-11)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
여기서 3번의 은혜가 나오는 데 내가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성취한 것에 내가 결정하고 실행한 다음 그것이 성취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받는 은혜와는 다른 행위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행위은혜를 말하지 않으니 행위로 하는 기도와 찬양이 무능해졌다.
그러다보니 시편에 나오는 행위들에 대해 약해진 것이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한 사함 줄어듭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시렵니까? 하는 기도가 많다.

시74편과 시79편을 보자.
시74편은 교회가 풍비박산이 나서 깨어진 것을 보여준다.
(시74:3-9) 영구히 파멸된 곳으로 주의 발을 드십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에서 훤화하며 자기 기를 세워 표적을 삼았으니 (5) 저희는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 이제 저희가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 저희의 마음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것을 진멸하자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9) 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주의 백성: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가 비참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이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시90편은 절묘한 시편이다.

토라학교는 설교식 강의와 강의식 설교를 한다.
인터넷에 가면 시편에 대한 강의식 설교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그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언약적 개념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도록 두들겨 패니 아들이 아버지 그럴 수 있소라고 하는 정도의 시편이 많다.

시편에 정말 기도를 가르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시편 150편 속에서 말하는 기도를 통해 깊어지는 기도를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데 애를 먹이다가 주시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구약과 신약이 다른 책과 다르게 대비된다.
롬8장의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한 이해
기도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구약신학이 기초위에서 시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언약신학을 기초로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연구하면서 언약신학을 알게 되었다.
언약신학의 기초는 모세오경이다.

● 시편해석의 원리
1) 전체를 통째로 삼켜라.
위의 두 번째 설명의 적용이다. 한 시편은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그러므로 그 기승전결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 궁극적 이해에 실패한다.
전체를 살피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신학적, 문학적) 구조분석이다.
예1 : 시 1편: 악인과 의인의 대조적 삶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2절: [A-인생의 시작] : 악인 - 의인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Walk)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stand)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sitdown) 아니하고
동사: 좇지(Walk), 서지(stand), 앉지(sitdown)
명사(복수): 악인, 죄인, 오만한 자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오직은 여성형 명사로 단수이다. 다수와 소수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주야로 묵상하는(읊조리는, 눈으로 읽지 않고 입으로 읽는다. 입으로 읽을 때는 눈과, 귀로 함께 읽는 것이 된다)하고 즐거워하는
3-4 [B-인생의 중간] : 의인 - 악인
2절은 악인은 다수이고 의인은 소수이다.
그러나 3절은 의인이 다수이고 풍부한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꽝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든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을 보면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랑할 것이
5-6 [C-인생의 결과] :
악인-의인 / 의인-악인
3-4절의 인생의 중반부로 심판하지 말자. 인생의 노년기인 5-6절에 가봐야 알 수 있다.
빌리그래함을 보더라도 인생의 중반기와 노년기를 통해 볼 수 있다.
광성교회를 다니는 누나와 매형을 통해 보는 중반기와 후반부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한경직 목사님의 경우도 노년기에 치매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하는 이야기들......,
진실 된 그리스도인들이 치매에 걸릴 수 있는가?
로이드 존스는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경직 목사가 탬플상을 받을 때 자기는 옛날 신사참배를 했기 때문에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도 한번 감동을 받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정한 회개라면 그 후에 그 때 분열되고 상처받은 교단과 사람들을 찾아가 잘못을 빌어야 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후에 치매가 걸려 하나님 모른다는 말을 한 것 등

예 2 : 시 23편
1-2 [A-인생의 시작]: 하나님 함께하심
3-4 [B-인생의 중간]: 하나님 함께하심
5-6 [C-인생의 결과]: 하나님 함께하심
대개 시 23편을 작곡할 때에 3-4절을 빼는 것은 인생을 이해하는 데 치명적인 잘못을 남긴다.

한 시편을 절대 부분 부분 잘라서 하지 말라. 전체로 해야 한다.
한 시편에 기승전결이 있고 발전이 있기 때문에 잘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교나 성경 공부할 때 절대 부분을 잘라서 하지 말라.
실제 창세기나 출애굽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아가 시편과 성경전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2) 신약적으로 해석하라.
시편은 제 2경륜의 책이다. 이제 제 3경륜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이것을 다시 제 3경륜의 원리(신약적)로 재해석하여 적용해야 한다.
시편은 그대로 하면 안 되고 신약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시편은 구약시대 사람들에게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더 깊고, 넓게 산다. 그러므로 그대로 가지고 와서 한다면 유치원생들에게 하는 것처럼 시시해진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재미있는 일이 많다.
이들은 시계가 4시에 4번을 치고 4시 반에 다섯 번을 친다. 그리고 다섯 시에 다섯 번을 치고 다섯 시 반에 어섯 번을 친다. 그 이유는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이다.
성경을 항상 본문 두 개를 놓고 한다. 그런데 꼭 신약과 구약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
영구의 경우는 신구약의 본문을 가지고 한다.
그런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주본문과 보조본문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한 본문을 예로 들면서 성경본문을 가지고와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왕은 집사, 제사장은 성도. 예언자는 목사로 발전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에 나오는 말씀 전하는 자, 교사와 목사 등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약을 하거나 시편을 하면서 연결된 본문을 가지고 와서 설교하고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 요한복음 10장을 가지고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성경을 볼 때 칼라 팬을 가지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빨간색: 절도, 강도
목자: 파란색
그러나 이 후에는 지그재그로 나온다.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이 문맥은 10장부터가 아니라 9장부터 시작해 10:21절까지 간다. 그러므로 9장 41절과 10장 1절이 연결되어 있다(요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서기관과 바리새인)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10:15-21)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그리고 10:22절부터 새로 시작된다.
평화의 복음과 칼의 복음을 동시에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본문이다.

(요 9: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요 9: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요 9: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요 9: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 것을 의도적이었다.
안식일이라는 외적인 날짜 지킴보다 그 원리가 중요한데 법 자체를 지키려는 것으로 인해 법정신을 없애고 법만 지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을 통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한다.

8장도 마찬가지이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한마디의 말로 죄인과 의인을 뒤집어 놓는 것을 보여준다.
목자, 목사라는 것은 요21장이다.
서기관들은 에스라에게서 왔다고 보는데 그들은 마귀라고 표현한다.
주님을 직접 따르는 자로 성도들을 섬기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크다.

요10장은 요9장과 관련해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도들과의 역할을 보고 사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시편 산책의 도입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약적이라는 말의 의미

십계명 강해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적극적 자살: 그 사람은 죽이고 내가 대신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지말라.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지말라가 아니라 상을 주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자기가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행동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 9계명: 거짓말하지 말라.
서초구청 보건소에 근무하는 사람이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았는데 그 수당이 나오는 것을 인해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과 대치되어 이것을 하지 않기로 하고 진행을 하는데 노조, 상사, 신우회원들이 협박하고 반대했다.
그러나 영국이 하는 것처럼 토라학교가 월급을 보정하고 진행했다.
십일조를 하는데 의에 십일조를 내서 의롭게 투쟁하는 일을 진행하는 변호사들이 있다.
그리고 십의 일을 올려서 십의 이, 삼, -구까지 하는 일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공동체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엄청난 수입이 있었지만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토라학교에서는 십의 구를 헌금하고 십의 일로 사는 일을 목표로 하고 진행하고 있다.
십계명은 신약의 산상수훈의 8복을 대조해 이 시대에 적용해 고차원적인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신12:26절에는 십계명을 세부적으로 설명한 것이 있다.
신5장의 모세언약의 세부법이다.
출애굽기는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말한다.
신명기에는 가나안에 들어가 행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이것이 중앙성소법이다.
법자체는 법 정신과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경륜: 하나님의 역사 구분

미꾸라지 같은 년: 요4장의 여인
산은 신12장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구약적 상황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와서는 이 여인이
23절에서 말씀하는 것으로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것으로 말씀한다.
공간과 태도가 함께 잘 지켜진다고 하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어디에 모이던 그 장소를 초월한 태도가 필요하다.

제2경륜과 3경륜에서의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다(신14: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16:1)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신16:9-13) 칠 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 15:1-2) 매 칠 년 끝에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 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신 15:9)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면제년: 해방, 내가 면제해 주는 해로
4계명의 목적은 해방이다(신 15: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이곳에서는 때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

(행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이후 가난한 자가 없어지는

교회가면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없어지는 칠년마다 행하는 것이 아닌
공간과 시간의 초월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마다 일이 많아지면 수납공간이 없어진다. 그러면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교회 뒷 벽면으로 창고로 사용하도록 수납하는 공간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서울에는 공간과 장소 문제로 치열하게 싸운다.

옛날에는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공간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공간의 문제를 초월해 태도로 그리고 나아가 시간의 초월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영국을 갈 때 24시간을 갔는데 지금은 12시간이면 간다.

우리가 법조인들을 통해 통일 헌법을 가장 성경적인 법으로 만드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청교도 정신으로 성경적인 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일을 하기 위해 서울의 부장판사들과 만나 성경적 통일헌법을 만들 생각을 안 해보았는지 물으니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깨끗하게 사는 것만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땅 끝이 기업이 땅 끝이고 사람들이 터를 삼아 살고 있는 곳을 땅 끝으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현대교회는 모판으로 생각하고 땅 끝으로 나아가서 전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
지역교회는 각 땅 끝에 들어가 단순한 신우회를 넘어 영역교회가 되게 해야 한다.
벽산에서 사목으로 단순히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물질을 나누어 고아원, 독거노인, 장애인들을 돕도록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하게 한다.
이 일을 통해 아버지를 목욕시켜 보지 않은 그들이 노인들을 섬기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구약, 시편 산책을 하는 것으로 설교를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땅 끝에 영역교회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한 의로움이 아니라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시편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편을 통해 알고 가져와야할 것이 더 중요하다.

20050718 오전1강 끝



시편1편은 대조법으로 많이 사용한다(8p).
20050718 오후1강 시작
1. 시편의 표현법으로서의 평행법(parallelism)
1) 고대 히브리시의 거의 유일한 표현법이 평행법(parallelism)이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의 시작(詩作)법이다.
운율을 따지는 것을 중요시 여기던 고대시대의 법처럼 히브리 시도 평행법이라는 것을 중요시한다.
(1) 한절 안에서: (시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시 104: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2) 문단 안에서: 시19:1-6과 7-14절
자연계시와 핵심이 되는 태양: (시19:1-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과 (시7:1-14)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2)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5)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특별계시의 핵심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토라): (시19:7-14) 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며 궤휼을 낳았도다
자연계시와 핵심이 되는 태양과 특별계시의 핵심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토라)
이것이 대칭이 되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a. 같거나 반전되거나 발전되는 내용을 나란히 소개하는 기법이다.

b. 이런 표현법은 근본적으로 인식을 독특하게 하기 때문이다 : 거울인격체
그리스적 신화나 문학 들을 가지고 와 히브리 성경의 평가하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반복을 싫어한다.
그러나 반면에 히브리 사람들을 반복을 좋아한다.
그러니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창세기 1-3장을 E, J 문서라는 것으로 분류했다.
창1-2장: 창조, 2장: 행위. 3장은 언약
이런 상황이니 문서설은 토론할 여지도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칭을 해서 생각하는 것이 역사와 산문뿐만 아니라 지혜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혜서에 비유가 많다.
비유는 모든 문학 속에 있다. 그러나 그중에 고대 히브리 문학에 더욱 많다.
우리는 골빈 당이라는 것을 돼지 코에 진주를 콱 매단 것이라고 표현

평행법은 예언서에도 많다. 소돔의 백성, 고모라의 백성들아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다. 알아듣기 쉽지만 히브리인들에게 인식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울에 비추어 놓고 거울에 비친 것을 생각하고 인식하는 방법이다.

히브리 산문, 지혜, 예언, 예수님의 비유 등이 평행법이다.

c. 이런 모습은 성경에서 시편에서 평행법 외에 다른 장르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히브리 산문 : 반복
히브리 예언서 : 평행법의 반복
히브리 잠언 : 속담(mashal, saying) 나란히 던지는 것.
신약의 비유 (parable <--paraballoo)
para(나란히) + balloo (던지다)
(예수님 :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니라” 막 4:34)

2) 이것이 여러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

a. 한 절 내에 두 문장으로 표현
예 : 35:1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소서 !”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

b. 두 절 내에 (같거나 반대되는) 내용의 표현 :
예 : 시 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도다 !”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 !”

c. 한 시편 전체로 문단별로
반복 / 발전 / 반전을 이루는 경우 :

예 1 : 반복(시 98편 : 찬양시)
(시98:1-9)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2)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9)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1-3 : 구원주 하나님 찬양(과거)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2)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chesed we emet
자비: 언약적 자비(하나님), 죄를 고백하고 토할 때 품지 않는 아버지가 없다. 대신 회개하라고 말한다(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그러나 회개하면(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자다가 깬 자처럼 하신다(시 78:65)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러나 죄를 고백하면 무조건적인 자비를 베푸신다(애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
하나님의 자비와 성실이 보통 성실이 아닌 언약적 성실(에매트)이다. 한번 말한 것을 끝까지 지키시는
언약적 자비와 공의가 살아있는 것을 보여준다.
3절을 보라. (시98:3)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공의는 하나님이 언약한 것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화냥년 짓을 할 때 그냥 놔두지 않고 주어 패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집에 행하시는 인자와 성실이다.
이것은 구원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4-6 : 통치주 하나님 찬양 (현재)
여기의 핵심 단어는 한 글자로 왕이다.
왕이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현재적 관점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7-9 : 심판주 하나님 찬양 (미래)
여기의 핵심 단어는 9절의 판단이다. 이 시점은 저가 땅을 판단하실 미래를 말한다.

도표1: 시편을 통째로 삼킬 것

구분
핵심단어


NT
1-3절
구원
구원주
과거

4-6절
왕
통치주
현재

7-9절
심판
신판주
미래



도표2: 신약적으로 해석할 것

구분
핵심단어


NT
1-3절
구원
구원주
과거
유월절
4-6절
왕
통치주
현재
칠칠절, 오순절
7-9절
심판
신판주
미래
성부 하나님의 세상 심판

구원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우리 속에 유월절이 완성된 것과 같다.
유월절- 예수님- 완성(과거)
예수님이 유월절에 죽으신 것은 하필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다. 완성을 위해. 그러므로 이제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
칠칠절, 오순절은 성령이 오심을 말하는 것이다.
오순절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그 날짜에 일치하여 부어진 것. 그러므로 구약의 오순절을 끝이 나고 신약의 오순절이 시작된 것이다.
성부 하나님의 세상 심판: 재림시에 주어질 것은 장막절에 주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98편은 성자, 성령, 성부를 찬양하는 시편이다.
삼위 하나님의 총체적 사역을 보게 하고 그 삼위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위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부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성령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과거, 현재, 미래 사역의 균형 있는 것을 잘 보여준다.
히브리 사람들은 시로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잘 했다.
우리 시대에 잘 쓰는 방법으로 하는 것과 같다.

시98편은 고대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찬양이다.
20050718 오후1강 끝
20050718 오후2강
예 2 : 반복 / 반전 / 발전
73-83 아삽(가계)시
84-89 고라(가계)시
42-49,고라(가계)시
50 아삽(가계)시
그 중간에 다윗시가 있다.

42-49: 고라(가계)시 50: 아삽(가계)시 다윗시 73-83: 아삽(가계)시 84-89: 고라(가계)시

찬양을 맡은 레위인들의 가계로 찬양만이 아니라 영성이 있는
50편의 아삽 시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종들 그중에 제사장 계열을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시편의 표제들을 신뢰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전통 가운데 하나 아삽시를 본다. 이것이 다른 전통시와 함께 중요한 것인가를 볼 수 있다.
50편보다는 73편이 더 어렵다. 개인적인 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평행법 가운데 사용하고 있다.

시 73편 :
1-2절 : 시인의 고백 (1)
1-12 [A] : 죄인의 형통
13-15 [B] : 의인의 고난
16-17절 : 시인의 고백 (2)
18-20 [A\'] : 죄인의 결국
21-26 [B\'] : 의인의 결국
27-28절 : 시인의 고백 (3)

73편에 거울을 놓는 지점(16-17절)이 있다.
16-17절을 전환점으로 A와 A\' B와 B\'로 평행된다.
A는 악당의 형통 A\'는 악당의 결국을 다룬다.
B는 의인의 고통 B\'는 의인이 결국을 다룬다.
그중에 1-2절은 도입부이다. 27-28절은 결론부이다.
시작할 때 매우 곤란하더니 이것은 곤란한 것 때문만이 아닌 악당의 형통함이 곤란한 것을 말한다.
어려움이 단순히 자신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악당의 형통이 더 고통스럽다 이것을 심정론(theodicy)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3-12절의 악인의 형통은 길다.
13-15절의 의인의 고통은 짧다.
여기까지는 암흑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이후(16-17)는 밝음이다.

악인이 외적인 형통(시 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이 있으니 교만해 진 것이다(시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 73: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천지를 다니며 외치는 말을 보여 준다. 이 말의 과녁은 11절의 하나님 자신이다.
(시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하나님 당신이 너무 높으시니 안 보이시죠? 라고 씹는 것이다. 그래서 12절은 한탄한다.
(시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이것은 자기들의 마음이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시 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 73: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17절은 전환점(turning point)이다.
(시 73: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이것은 개인시이다.
(시 73: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시 73: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악인의 형통함에 비해 나는 왜 이렇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옵소서.
(시 73: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고통을 참고 악인의 형통을 보고 행하는 나는 짐승 같은 모습이네요 하는 표현이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일 때문에 짐승처럼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사참배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이해된다. 그렇지만
(시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윌리암 윌버포스는 24세 때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곡한 존뉴톤을 만난 후 자기의 친구인 소피트는 수상이 되었지만 자기는 노예해방을 이루기 위해 일평생을 싸우다 죽기 며칠 전 국회가 노예제도법을 폐지한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고난을 견디면서 그 고난을 참고 행하는 모습. 이제 마지막 모습으로
(시 73: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이것이 믿음이 사람들의 모습이다. 고난 가운데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형태에서나 내용에서 완전한 시이다.

이것이 시편해석의 제일 원리인 통째로 삼키라. 는 것이다.

신약적으로 재해석하라
남은 고난에 의도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부족한 것에 동참하라. 잘못 이해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부족한 것이 아닌 부족하도록 보이고 그 부족하도록 보이는 것을 채우라는 것이다.
적장의 목을 치라고 아버지가 말하고 그 목을 치는 공로를 아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렵지만 아버지가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상황을 만들어 아들에게 행하게 하고 아들에게 주는

이처럼 우리도 악인의 형통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한 대 잘 되는 것이 잠깐이다. 악인의 형통은 죽음을 앞두고 한상 잘 차려 먹는 것과 같다.

구약의 십계명과 신약의 십계명이 다른 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구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내어주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사는

공동체 전체가 이 일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2. 평행의 경우들(3p)
한 절이나 한 시편 안에서 다양한 경우들로 평행을 이루는 것이 발견된다. :

1) A - A\'
2) A - X - A\'
3) A - B - A\' - B\'
4) A - B - X - B\' - A\'
이것을 생각할 때 여자는 거울을 생각하고, 남자는 팽이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가 신명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런데 무식에 바른 약이 없는 것처럼 무식한 자들이 신명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3. 시편의 인식론, 인격체로서의 거울인식론, 거울인격체(3p)

1) 평행법은 표현에서 어떤 사실을 나란히 두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식을 이렇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2) 인간의 문화별 인식론의 차이
서양인들은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눈을 빤히 쳐다보고 이야기 한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아 직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비유적이고 총체적인 경향이 있다.
직관적인 것으로 분석한 것이 종교개혁 이후 성경이 엉망이 된 것이다.
루터의 선생이었던 Jarl start가 성경비평학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구약성경을 서양적인 관점으로 하다 보니 엉망이 되었다.
그러니 히브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구약성경을 새롭게 보고 있다.
서양인 : 직관적 / 분석적
(고대)근동(양)인 : 비유적 / 총체적

3) 이렇게 고대동양인의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을 거울인식론이라고, 이렇게 인식하는 인격체를 “거울인격체”(mirror mentality)라고 부를 수 있다.


4. 시편의 기초로서의 오경(4p)
오경이 없이는 시편 해석이 안 된다. 그리고 오경 해석이 바로 안 되면 시편 해석도 바로 안 된다.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것이 모세오경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예언, 역사, 시가서를 따로 따로 하고 나중에 오경을 또 따로 했다.
그렇지만 오경을 먼저하고 오경을 따라 예언, 역사, 시가서를 해야 한다.
모세는 오경을 주었지만 다윗은 다섯 권(1-41, 42-72 등)의 시편을 주었다.
1) 형식상의 이유들 :
a. 오경의 다섯 권의 책 // 시편의 다섯 권의 시편
① 1-41편: 다윗의 등극시
그 중에 1편이 시작인데 그 1편은 토라이다.
유대인의 전승 :
“모세는 다섯 권의 법을 주었고,
다윗은 다섯 권의 시를 주었다.”

b. 시 1편은 시편전체의 서론이고,
시 1편의 핵심은 시편의 토라(torah)이다.
신명기는 오경의 토라이다.
토라는 언약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전도지의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 나 구원 너 구원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황태자와 공주로서의 신분을 가진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분을 가진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을 보여주는 굉장히 친절한 시이다.

2) 상식의 탈피 필요 :
시편의 핵심은 개인시가 아니라 공동체시이다. 개인시는 공동체시의 개인적 적용이다.
이 공동체적 삶의 핵심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관계이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이 S. Mowinokal이다.
시인(Save)이 개인적 축복(구원)을 받은 것이다.
집마다 황제가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시편이다.

황제가 영원한 시각인 전체에서의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행하게 하는 시이다.
이것에 대표적인 시가 131편이다.

예 1 : 시 131편의 필자는 누구인가 ?
(시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을 향한 표현이다.
(시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성도들을 향해서 서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표현하는
1-2절은 하나님이 2인칭이 되는 것으로 기도와 찬양이고
(시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3절은 하나님에 대한 3인칭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명령하는 것으로 설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내는 누구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신인 것처럼 보이지만 공동체의 예배인도자가 예배 중에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고 공동체를 행하여 명령하는 것이다.

이것을 개인시라는 상식을 탈피하는 것이 어렵지만 공동체 예배 가운데 불려진 것을 생각하라.

이것은 또한 주기도문에서 우리 죄를 말하는 것이 개인의 죄가 아닌 공동체의 죄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 2 : 순례자의 시편은 공동체 시편이다.
121-134편의 15개의 시편이다.
120-122편은 굉장히 짧고 간결하다.

3)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적 삶의 내용이 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시편(4p).
그 언약의 역사는 거의 1000년이 흘러갔고 이 동안 이루어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삶의 자취를 시편에서 볼 수 있다.
결혼식(환상)과 결혼의 삶(찌지고 볶는 삶)자체는 얼마나 다른가 ?
연애를 십년하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그 연애시절은 10년이라도 결혼 1년과 비교할 수 없다.
연애는 10년을 하고도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은 다르다.
교회에도 하나님과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는 성도들이 많다. 하나님을 결혼을 원하는데 개인이 연애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언약적 삶을 결혼으로 비교한 것이다.
결혼이 뭐고 찌지고 볶는 것 아니가?
좁은 시각으로 긁어대는 것이 참 힘든 것이다. 이스라엘이 좁은 시각으로 하나님을 긁어대는 것이 시편에 많이 나온다.
우리가 주체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4) 언약적 삶은 원리적으로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언약적 삶(chesed we emet)= 언약적 자비, 언약적 공의
아간과 기생 사건은 같지 않다.
(수2:14)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인자하고 진실하게(chesed): 하나님의 언약적인 인자와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공적 언약관계 체결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7: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바친 물건: 헤렘인데 전쟁의 승패는 전부 하나님이 책임진다 너희는 언약법을 따라 행하기만 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깨뜨린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 주어졌지만 아간은 심판을 받았다.
여리고는 멸망을 받았지만 그중에 기생은 구원을 받았다.
맞아서 엉엉 울고 있는 아내를 지키는 남편처럼 이스라엘이 맞아 울고 있을 때 그들을 보호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이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출19장이다.
a. 언약당사자의 정의 (출 19:1-8) :
하나님과의 공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Segullah(보배)이다. 이것은 대단히 실체적 법적 용어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향해 공식적으로 명칭하는 것이다. 너를 최고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이스라엘 고백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우리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소위 쌍방공식 (mutual definition)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26:18-19)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am segullah- 최고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am qadosh- 구별된 최고백성)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 편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공적이고 법적인 위치가 이스라엘이 기도하고 찬양하는 근거가 된다.

예 1 : 시 74편
이 시편의 근거 : 하나님이 심판하신 우리가 누구입니까 ? 바로 당신의 백성이 아닙니까 ?
히브리 언어는 존대어가 없다. 하나님도 너다.

(시74:1) 하나님(ka)이여 주(ka-당신)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ka-당신)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 (시74:2-7) 옛적부터 얻으시고 구속하사 주(ka-당신)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ka-당신)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ka-당신)의 거하신 시온산도 생각하소서 (3) 영구히 파멸된 곳으로 주(ka-당신)의 발을 드십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ka-당신)의 회중에서 훤화하며 자기 기를 세워 표적을 삼았으니 (7) 주(ka-당신)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ka-당신)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시74:11) 주(ka-당신)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ka-당신)의 품에서 빼사 저희를 멸하소서 (시74:22)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ka-당신)의 원통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ka-당신)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23) 주(ka-당신)의 대적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일어나 주(ka-당신)를 항거하는 자의 훤화가 항상 상달하나이다
당신이라는 표현을 못하니 주로 표현했다. 주는 adonal이다. 그런데 you이다.
이것은 우리가 남이가? 전략이다.
총체적 붕괴에 들어갔을 때에 드리는 기도이다. 우리가 남입니까?

1-11절까지 하나님과의 일치를 따따다 공격하고(제1파로)
한숨 쉬고 재공격을 하는데 12-17절까지는 이상하다.
나는 하나님 나라 지도자인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12-17절은 제2파로 공격하는데 하나님의 창조하신 사건을 지칭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창조를 이야기하면서 공격적 방법으로 말하는 것은 그 능력으로 우리를 구속하소서 하는 것이다. 구속을 창조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창조를 묘사하면서 구속사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언약적 관계에서 묘사하면서 분명한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것은 결혼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20050718 오후3강 끝

20050718 오후4강 끝
b. 언약당사자의 공적 대면(출 19:9-25)
이 만남에서 발전된 것이 전쟁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서로 대면한 것이다. 이 면이 여호와가 두 가지 측면에서 전사가 되시는 이유이다 :
백성들이 나아가서 옷을 빨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올라가니 연기가 나며 굉장한 광경으로 내려오시는데 준비한 이스라엘의 준비는 부실한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도 그러하다.

이스라엘 편에서의 준비는 거룩, 청결이어야 한다.
하나님 편에서의 행동은 능력 있는 능력가운데서의 임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는 것으로 대적에 대한 막강한 능력으로 오시는 것을 보여준다.
아람군대의 전쟁에서 불말과 불 병거로 지켜주신 것처럼

여호와의 전쟁의 이중성
이방도 두들겨 패시지만 이스라엘도 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나타났던 광경이다.
언약법따라 우리가 행하기만 하면 천하무적이다.
대신 하나님의 법따라 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언약 체결 가운데 맺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이다.

시24편
시24편도 통일성에 있어 오해가 많이 된 시편이다.
그 이유는 1-2절과 3-6절, 7-10절에서 도입이후 3-6절과 7-10절이 어떻게 상관관계가 있느냐를 알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3-6절: 자신 없는 존재(이스라엘)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과
7-10절: 자신이 있는 존재(하나님)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한 것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서 황금 돔에 들어갈 때 손과 발을 씻는 것
(시24:1-10)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어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오래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이스라엘이 쓰레기를 막 버리는데 그 쓰레기들이 쌓여 왕이 행차할 때 잘 보이지 않아 단을 더 높이 올리는 것을 머리 들지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내려오는 것을 말하는데 그 때 누가 그 대적자가 되겠는가?

이것을 전체로 삼키면 해석이 바로 된다.
언약 당사자들이 맞선을 위해 대면하는 것이다.

또한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바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자신과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죄성, 정욕, 세상 권세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할 때도 동일하게 시험을 당하셨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이것들을 피하고 아도 내부의 적들이 또 있다.
밖에 있는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을 이기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적 죄성, 지방적 죄성, 민족적 죄성, 세상의 죄성이 있다.

이런 것들을 이길 영성이 필요하다.
집회를 해보면 40대 1-20개, 30대는 10-5개, 20대는 1가지 죄(성적인 죄)를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된다.


1.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을 향해서 전쟁을 하신다.
이방을 벌하시는 하나님
예 1 : 시 2편

2.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전쟁을 벌리신다.
예 1 : 시 50편
통째로 삼키라는 원리를 다라 한 절도 빼지 말고 해야 한다.
rhophany이다.
시내산에서 보여준 anthropo phamy로 하나님의 신현과 인간의 인현을 같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맞선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공적 대면에서 두 대상인 백성과
1-3절: 하나님의 전능자로 혁혁한 모습을 드러낸다.
(시50:1-3)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15절:
(시50:4-15)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개성 있는(개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은 성령도 못 고친다
(출24:3-5)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언약을 깨뜨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나는 yahwa이요 yahwa는 eloheka이시다.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이 시대 백성의 죄는 종교적 위선이다. 십일조, 주일 성수는 잘한다고 하지만
사1장의 너희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말씀과 같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들로 내게 드린다고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가 중요한 것이다.
화목제= 감사화목제(과거), 자원화목제(현재), 서원화목죄(미래)로 드렸다.
죄와 관계된 화목제가 있고 죄와 상관없는 화목제로 드렸다.
헛된 감사제를 드리지 말라.
고대 서원제는 양을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드리지 않고 서원한 것을 책망한다.
서원은 하나님께 한 것이다.
그리고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것은 본래적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그 백성들을 타이르는 것이다.
종교적 위선에 대한 것들을 경고한다.
16-21절절: 본론
지도자들에게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고대에는 제사장, 현대에는 목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독일은 성경을 해석할 때 거의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를 잘한다.
율례를 전하는 것은 선포이다. 매 칠년마다 초막절에 모여 언약 갱신을 했다(신31:1-7)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베푸니라 (2) 곧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일백 이십세라 내가 더는 출입하기 능치 못하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리고 건널 것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며 (4)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언약은 언약법이다. 그러나 실제는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실제 잘못 행하면서 의인을 공박하고 잘못 행하는 것을 경고한다. 그래서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그 잘못에 대하여 철저히 응징하시겠다는 것이다.
22절: 지도자에 대한 마지막 경고
(시50:22-23)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절: 백성에 대한 마지막 경고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내산에서 위엄 가운데 만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아니라 화냥년을 치시는 것이다.

반석 위에 시편이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올라가고 하나님이 불꽃 가운데 내려오셔서 만나는데 거기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앞으로 결혼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이 의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법 지상주의는 없다.
언약법을 따라 살면 축복이고 살지 못하면 얻어터진다는 것이다.
torah 시1, 19, 11, 53, 24편 등이다.

선교의 역사는 선교사의 죄악의 역사이다. 2000년 동안 있었던 선교의 역사를 연구한 스티븐 릴의 쓴 책에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공감이 갔다.
다윗과의 싸움은 자신과 싸움(내적, 세속주의), 사울, 블레셋과의 싸움(외적)
우리에게는 세속주의를 정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슬람도 정복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 정복은 죽기를 작정하고 가야 한다. 십자군 전쟁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고 이스라엘이 성지라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장소라는 공간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태도와 시간의 초월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원수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c. 언약법(torah)의 수여(출 20, 21-23장) :
시편에서 결국 하나님의 뜻인 법에 이스라엘이 순종하며 사느냐에 궁극적인 관심이 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시내산을 대치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혔다.
복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을 8가지를 말하면서 10을 탈피하도록 한 것이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죄라는 것으로 적극적 죄에 대한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고 그 생명으로 이 육신과 세상적 생명에 약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7계명을 잘 지키는 것은 결혼을 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과 경건을 지키는 것이다.

수도원 운동의 3대 요소는 ① 순결, ② 가난, ③ 섬김(명예)이다. 이것은 인생의 3대 욕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도하는 영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영성 훈련을 위해 인도로 수도를 가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천주교로 가는 경우, 사막 교부들을 가져오는 것들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더 절제하고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할 수도 있다.
물질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물질을 나누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법의 세 번째 과정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시15편
자문자답하는 12계율이 나온다.
(시15: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 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이 내용을 보면 대단히 구약적이다.
그러나 신약으로 가지고 있는 법의 기준은 대단하다.

법
두 가지 계명(마22:37-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은 인간 자신의 기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기준은 인간의 기준을 넘어선 신적 기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모든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
20050718 오후3강 끝
20050718 오후4강
지난 주 했던 설교를 가지고 그대로 살지 않고 한 주간을 지났으면 그 부분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공동체의 죄를 반드시 회개하고 넘어가야 한다.
고신파의 전통 해석 방법에 따라 우리 민족의 죄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죄, 역사에 있어서의 죄를 심각하게 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은총을 입어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죽인 죄, 그들을 고통스럽게 한 죄를 미국은 고백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 열조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예 1 : 토라시편 : 시 1, 19, 119편
시편 119편은
히브리 알파벳을 따라 이어지는 알파벳 시편이다.
한 알파벳 당 8절을 사용한 것이다. 8×22는 176절이다.
그 8절도 아무렇게난 배열된 것이 아니라 기성전결과 발전이 있고 결말이 있다.
105절과 112절은 8절이다.
97절- 104절
내가 그렇게 노력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보상하신다는
대충이 아니라 상관있는 것끼리 연결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선생님과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그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65-72절을 분석한다.
전체에서 한 부분인 ketword를 가지고 하는데 이 부분은 고난이다.
그중에 A가 4개(65-68)이고 B가 4개(69-92)이다.
A에서는 내가 고난 받는 것은 한 차원밖에 없다.
그러나 B는 내가 고난을 받는데 거기에 악당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119:65-72)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선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으로 자기가 얻어맞는데 그 때에 두들겨 패시는 하나님을 선하시다고 말하는 것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내적으로는 고난이지만 외적으로는 그대로 가는 것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뒤집어쓰는 것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을 말하고 그래야 제대로 지킨다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시119:69-72)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자기가 고난을 당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고 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실제는 쫓겨나고 오물을 뒤집어쓰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깊이를 배우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쓰지 않던 단어인 입이라는 단어를 쓰며 그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승한 것임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것으로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지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의실이 아닌 실제 삶을 통해서 배우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설교할 때 있는 그대로 쌔리 퍼부어 버리라. 그러면 말씀이 그 가운데 역사한다.

이렇게 20시간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강의록을 가지고 끝내지 말고 강의록을 듣고 다시 풀어서 삶에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했던 깊이 쌔리 팠던 것들 때문에 어디를 가서든지 설교할 수 있고, 어디서나 10년 정도 이상을 설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자
20050718 오후4강 끝

20050719. 10:00

오경에 기초한 시편.
언약 체계의 다섯 가지 과정이 시편에 반영되어 있다.
시편 산책이 아니라, 시편 달리기, 내일 시편 암벽등반. 정상에서 맛보는 시원함.

법과 언약과의 관계: 법은 언약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예 2 : 소위 출입시편 (enterance psalm): 시 15, 24편
법과 언약과의 관계 : 법은 언약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예 3 : 시 98편: 언약법의 정점으로서의 세 축제
1-3: 구원주 하나님 (과거) - 성자
4-6: 통치주 하나님 (현재) - 성령
7-9: 심판주 하나님 (미래) - 성부

d. 언약체결예식 (출 24:3-8) :
언약을 체결하는 공적행사를 해야 한다.
예 1 : 시 24편: 언약을 체결하는 공적행사를 해야 한다
성만찬 예식에 나아갈 때에 죄를 회개하고 나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먹고 마시는 꼴이 된다.

예 2 : 시 50편
언약적 축복과 저주도 여기에 속한다. 모든 축복과 저주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e. 언약체결축하 피로연 (출 24:9-11)(6p)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다.
좁은 의미의 결혼은 결혼식 자체다.
넓은 의미는 중매장이 오가는 것과 피로연까지, 탄생까지.
출1: - 민34장 가장 넓은 의미다.
(출24:3-8)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문서로 남긴다. 문서이름이 언약문서다. 준행하겠다고 한 번 더 작정한다.
두 구조물을 세운다. 단을 쌓는다. 열두 개로 이루어진 기둥(기념물). 열두 개의 돌로 이루어진 한 단이다.
12지파= 하나님 상징한다.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번제, 화목제 드린다.
이 번제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당신 앞에 전부를 드린다. 전적 헌신의 의미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재만 남도록 태워진다. 다 드린다.
화목제. 당신과 나 사이에 이제 살롬(shelomim)이다.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피의 의식을 가진다. 보통 피는 제단 밑에 쏟는다. 이 피의 반은 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린다. 제단에 뿌린 피는 깡패들끼리 피를 내어 섞어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생명을 걸고 약속한다. 백성들도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동참한다. 예식이 끝나면 백성들의 옷에 피가 자욱하다.
중국 결혼식. 그릇 보자기에 담아서 밟는다. 원상 복구될 수 없듯이, 결혼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약을 깨면 죽는다.
피를 뿌리는 예식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때 심판해도 할 말이 없다.
그것이 적용된 내용이 시편이 있다.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언약을 체결하고 난 뒤의 축제가 벌어진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역사가 진행되면서 하나님의 언약적 구원의 역사를 많이 경험하고 그것을 찬양하는 것이 많다.
많은 찬양시가 여기에 속한다.

구원역사찬양 : 예 : 시 78편
(시78:1-72)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바라 (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11)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 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16)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20)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23)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25)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26) 저가 동풍으로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27)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 같은 나는 새라 (28)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둘리셨도다 (29)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30)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31)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32)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 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 (34)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39) 저희는 육체 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0)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41)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42)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44)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희로 마실수 없게 하시며 (45)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46)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47) 저희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48)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떼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49)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50)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52)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53)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65)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66) 그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소위 역사시이다. 모세시대부터 다윗까지 400년의 역사를 총정리한 역사시.
우리는 역사의식이 약해서 역사시를 잘 다루지 못한다.
우리는 어제를 영원히 다시 맞을 수 없다.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거의 설교되지 않는 시이다.
우리 찬송가 가운데 역사의식을 가진 찬송이 50장이다(큰 영화로신 주)
(1절) 큰 영화로신 주 이 곳에 오셔서 이 모인 자들로 주 백성 삼으사 그 중에 항상 계시고 그 중에 항상 계시고 큰 영광 나타내소서
(2절) 이 백성 기도와 또 예물 드림이 향내와 같으니 곧 받으옵소서 주 예수 크신 복음을 주 예수 크신 복음을 만백성 듣게 하소서
(3절) 또 우리 자손들 다 주를 기리고 저 성전 돌같이 긴하게 하소서 주 구원하신 능력을 주 구원하신 능력을 늘 끝날 까지 주소서
(4절) 주 믿는 만민이 참 도를 지키며 옛 성도들같이 주 찬송하다가 저 천국 보좌 앞에서 저 천국 보좌 앞에서 늘 찬송하게 하소서 아멘.

시78편도 그런 면이 있다.
에브라임 지파(요셉)는
사사기를 보면 와장창 깨진 것을 보여준다(삿8: 비겁한 에브라임 놈들, 기드온이 300명 용사를 가지고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삿7:25-8:5)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 되겠느냐 기드온이 이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 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그러나 입다에서 완전히 끝이 났다(삿12:1-3)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이단 정죄를 잘하는 장자교단이라고 하는 교단들이 이처럼 끝이날 때가 있을 것이다.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하므로 (3)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삿12:5-8)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육년 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이런 것을 시78편에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모판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에 나가 세상을 정복하고 영향을 미쳐 변화시켜야 한다.
직장 속에서 전도하고 전도된 사람들이 도 다른 사람들을 전도해 올 수 있도록 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의의 십일조를 하는 등으로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시78:12-20)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 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16)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20)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와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의 역사가 400년 동안 반복된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다(시78: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의 언약 지키심을 자비를 베푸심이다(시78: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시78:60-65)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61) 그 능력된 자(능력자체)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64)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65)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자비는 회개할 때 주어지고, 다음은 회개하지 않아도 무조건 자비가 부어지는데 그것은 회개하지 않아 계속 주어 팼다. 그러다가 죽을 지경에 이르러 그를 살려주는 모습이다. 그냥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죽을 지경에 가야 주어지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는 조건적인 회복을 말하는 것이며(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말일에 주어지는 것은 무조건적인 회복이다.
65절을 보자.

시편에는 평행법, 핵심단어 찾기가 있다.

예 : 시 103편, 100편(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132편에서 딱 하나의 핵심단어는 2절과 11절의 맹세이다.
2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하는 맹세(서원)이다(1-10절).
다윗이 한 맹세는 5절에 보여준다(시132:2-5)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4)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은 정치가지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되는 것이므로 다윗이 이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다. 잠을 자지 않고 하는(3-4절)
이것을 가지고 다윗이 맹세한 것이다.

11절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맹세이다(11-18절).
(시132:11-14)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이 영원히 하실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널려있어 사람들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행하지 않는 것은 행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목숨을 내어놓거나 손해를 보아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맹세하니 하나님이 영원을 걸고 다윗에게 맹세한다.
이것이 시78편과 연결된 부분이다.
132편을 조금 더 하면 (시132:3-4)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4)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다윗의 후손들이 기도하는데 다윗의 왕권이 영원하다 했는데, 예루살렘이 영원하다 했는데 지켜주십시오 하자 이것을 맹세하신 것이다.
다윗이 노심초사하며 잠을 자기 않고 기도한 이유는 시132:5-8절이다(시132:5-8)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시132:9-17)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조건적으로 언약을 지킬 것을 알았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 개신교 신학생 수가 3000명이 안된다고 한다. 목사가 안 되려고 하는 현상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에브라임 지파가 무너지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 지역에 얼굴이 하얀 사람들이 갈 수 없다. 워낙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야한다.
지금 런던도 옛날의 런던이 아니다. 이슬람이 거점을 삼고 있는 상황이다.
런던의 신학과는 없어지는데 이슬람과는 생겨나는 상황이다.

다윗이 이런 상황에서 통뼈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한 것이다.
다윗이 혼자 들에서 하프를 치며 시편을 노래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준비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으로 총체성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다윗처럼 준비되어 다윗처럼 사역할 수 있다.

토라학교에 청년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성적인 부분보다 믿음 안에서 거룩하게 교제하는 것의 기쁨과 영광, 축복을 안 이들이 이제는 남녀 관계를 멀리하고 주안에서 교제하며 살기를 다짐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니 물질과 다른 것들이 시녀처럼 따라오는 상황이 생겨나는 것이다.

시78편에서 오해하기 쉬운데
(시78:68-70)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그러나 132편에서는
삼하5-7장을 보라. 이것ㄱ이 다윗이 가진 놀라운 자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령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널려있는 하나님의뜻을 행한 것이다.
400년 동안 행하지 못한 여부스 사람들의 성에 대한 것들이 나온다.
다윗은 유다지파의 왕이었다. 그러나 헤브론에 있는 장로들이 왕이 되기를 원하지만 헤브론을 더나 대적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여부스 성에 가서 400년 동안 난공불락의 성을 정복하려고 한다(삼하5:6-7)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
사람이 지은 성의 반드시 약점이 있다.
바로 여부스 성은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지만 물이 문제였다. 그래서 수로를 따라 들어가 정복한 것이다.

이슬람은 서구교회는 제대로 한 번도 정복해 본적이 없다. 우리는 서구 신학의 영향을 받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교회사 가운데 610년에 로마의 교황이 생기면서 중세의 타락한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이슬람이 시작되었다.
이들을 정복하기 위해 신학적인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 첫 번째가 성지문제인 것이다. 지금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든지 믿음 안에는 서있는 그것이 성지가 된다.
이슬람은 코란과 칼을 가지고 있다. 자살특공대, 폭력을 사랑의 원자탄이 되어 가야 부술 수 있다 .
이슬람이 가장 많은 곳은 인도이다. 화란이 인도를 지배할 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의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나 화란에서 독립한 이후 인도는 달라진 것이다.
지금은 화란의 세속성, 악함이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이 이야기 하지 않는데 언약궤를 가져오는 잘못을 범한(삼하6:
그러는 중에 다윗이 너무 좋아 춤을 추다가 바지가 내려가자 아내가 말하는 것을 인해 다윗이 말하는 것을 보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상황과 자기만 생각하는 것을 조심하자.

삼하7장에서 보면 언약궤는 텐트 속에 있는데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 것을 알게 하자 회개하고
다윗언약은 무조건적인 언약이 아니라. 시내산 언약 안에서 다윗이 자발적으로 행하며 일종의 승리를 가지고 온 선물이다.
우리가 이런 시편과 언약을 통해 다윗처럼 이 나라와 민족 세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촛대가 옮겨진다.

5) 언약적 삶의 역사적 자취를 볼 수 있다(7p).
(시133:1-2)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오순절에 모여서 축제를 드리는 장면을 말하는 것이다.
일 년에 세 차례 일주일씩 모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아론의 수염을 말하는 것을 다윗의 처음 임직을 받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임직에 기름을 붓는데 다섯 가지 기름으로 민간이 만들면 즉사하여 성전에서 만드는 관유이다.
원래 관유는 찍어서 바르는데 다윗의 임직에서는 성령의 풍성한 임재를 상징하도록 붓는 것이다.
안약을 행할 때 아론의 대제사장이 행하는 것 그중에 임직 때 붓은 기름부음
그런데 이제는 그 직분이 나누어져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으로 나뉜다.

a. 다윗왕조의 등장 :
예 : 시 2편
이 말씀은 대단히 조직적인 시편이다. 딱 3절씩 한 문단이 배열되어 있다(1-3, 4-6, 7-9, 10-12).
그리고 이것에는 공통적인 문학 기법이 있다.
영어를 배울 때 직접화법이 있다.
이것처럼 여기에도 직접호법을 쓴다.
‘그 상황은 이스라엘의 세 왕이 등극하는 등극식이다.
다윗의 후손이 왕권을 장악하여 등극식에 불려진 시와 찬양이다.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는 것 같다.
(시2:1-3)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열 왕들이 분노하는 장면이다.
여기의 메시아는 왕메시아이다(기름부음을 받을 메시아는 세 종류이다).
대적자들의 소리는 음흉하고
성경에 나오는 문학을 음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시2:4-6)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놀래며 발하는 것을 6절이 보여주는데
3절의 음성은 간사한 음성이지만 6절의 음성은 장중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시2:7-9)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여기서는 말하는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
이 사람은 새로 메시아로 임명받은 왕이 칙령 1호를 선포하는 것이다. 칙령1호이다 보니 권위가 없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전하는 것이다.
젊은 왕이 하는 소리다 보니 장중한 음성이기 보다는 젊은이로서의 카랑카랑한 음성이다.
젊은 왕이 초창기에 하는 소리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말은 입양을 하는 소리로 법적으로 너는 내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니 신자가 되는 것이다.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개념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황제는 천자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8절은 내게 권위만이 아니라 권세를 함께 주신 것이다(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
세 번째는 때려 부수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 9절이다(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젊은 왕이 선포하는 것이다.
(시2:10-12)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이것은 외교특사로 가서 군왕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교훈을 받을지어다. 섬기며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입 맞추라(권위에 순복하라)

열방이 호통, 하나님이 호통을 새 왕이 호통이, 예언자가 파송되어 호통 치는 것이 시편 2편이다.
이런 역사가 세상에 적용된 것은 몇 년이나 되겠는가? 얼마 되지 않는다.
맨날 형편없이 찌그러진 상태에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시2편에서 기대하며 불렀던 것이 헛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20050719 오전 강의 1 끝
20050719 오전 강의 2 시작
토라학교와 강의 들 소개
시편2편의 강의 연속
예수님이 오셔서 세례를 받은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모습을 가지신 예수님이 죄성을 용서받기 위해 받았다고 하는데 아니다.
신약 막1장을 보자.
(막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 잠기는 것으로 임직식을 말하는 것이다. 진짜 성도로 세상 속에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에 잠기는 것은 성령에 잠기는 것을 나타내고 권능을 나타낸 것이다.
(막1:10-15)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다.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시2편이 정확하게 실현된 것이 이 말씀이다.
이제 제 3경륜이 예수님으로 인해 진짜 다윗의 후손으로 권위, 권세, 권능을 가지고 사역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다음의 바톤은 요20장에 나오는 19-23절이다.
(요20:19-23)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님이 공식적인 행위를 하신 것이다.
보낸다. 사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보낸다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자격이다.
시2편- 시133편- 출29-30장에 근거한 것이다.

아들의 권세는 생물학적인 권세가 아닌 사회학적인 권세를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사도적교회는 황태자적 교회인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이 천자, 황태자로서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다.
숨(프뉴마)이라는 단어는 의성어인 경우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숨이 느껴지게 하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한다. 성령은 권능이다.
그리고 권세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23절이다(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권세는 엄청난 권세이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땅의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큰 권세이다.
권위, 권능,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시행될 것인가?
그리스도가 가진 직무는 3중 직무(왕, 제사장, 선지자)이다.

너희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야 전체의 말씀 가운데 30-33장만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그러나 에스겔은 소망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 시작에 소망의 메사시지를 준다. 그것은 그가 가진 제사장의 직분 때문에 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제사장 직분이 중요한가?
페르시아에서 포로된 가운데 해방된 이들이 그곳에서 문화와 종교를 배워가게 되는데 그런 가운데 에스겔이 죽었다 살아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씨와 땅과 주권에 대한 중요한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세 가지 직무를 가지고 세상 속에 들어가 그 가운데 왕으로서 통치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훈련소고 전략계획소이다.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 가장 행복한 사람, 가정, 직장, 나라가 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제사장의 직분 두 가지
① 죄와 죄 없는 것에 대한 제사와 ② 토라를 가르치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이 땅에서 지은 죄와 100여 년 동안 지은 종교적인 죄악들, 그리고 개 같은 성질로 행하는 개인적인 것과 가정, 사회적인 죄악들을 회개해야 한다.
지난해 가장 많은 돈이 해외로 유출되었는데 강남의 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빼나가는데 일조했을까?
세상이 행하는 일들을 막는 일을 교회와 성도들이 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

강남 중앙 침례교회에서 대학부 집회를 하는데 200명이 참석했는데 밤마다 죄악의 똥물들을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사역하면서 이런 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전도사의 말을 들었다. 그 후 청년들 가운데 성적인 문제들이 심각하다. 동성연애가 만연해 있다.
이런 가운데 싸워야 할 일이 사명 자들의 일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정권과 모든 것들을 위해서도 외쳐야 한다.

6.25와 휴전선이 생기게 된 상황 가운데서 생긴 문제들을 회개하고 그 잘못을 회개하도록 왕왕 짖어야 한다.
죄 사함의 권능.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도록 하는 일들.

이런 일들을 하도록 시2, 막1, 요20장을 주시고 적용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 : 시 132편
예 : 시 89편

b. 언약적 심판/자비의 경험 :
대부분의 시편이 여기에 속한다.
언약을 따라 행하시면 복을 아니면 저주를 내리는 것
그러므로 개인, 시대적인 상황은 끝난 지만 영원한 이스라엘은 끝나지 않는다.
예 : 시 78-79편

5. 시편해석의 원리(8p)
1) 전체를 통째로 삼켜라.
이것은 구조분석이다.
우리가 인식하던 못하던 그 안에서 일정하게 사용하는 체계가 있다. 그것이 구조이다.
모든 민족 가운데 사용되는 있는 것들을 Universal Grammer라고 하자.

막14장에서 3-9절에 나타나 있는데 앞의 1-2절과 10-11절이 붙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것들은 똑같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것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1-2절의 예수님의 공동체 밖의 문제
10-11절은 예수님의 공동체 안의 문제
그 중에 3-9절이 있기 때문이다.

여인이 향유를 부은 것은 ① 죽음에 대해 직접 봉사한 것이며, ② 때에 맞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의 제목은 어두움 속에서의 빛의 봉사라고 할 수 있다.

예1 : 시 1편: 악인과 의인의 대조적 삶
1-2절: [A-인생의 시작] : 악인 - 의인
3-4 [B-인생의 중간] : 의인 - 악인
5-6 [C-인생의 결과] :

예 2 : 시 23편
1-2 [A-인생의 시작]: 하나님 함께하심
3-4 [B-인생의 중간]: 하나님 함께하심
5-6 [C-인생의 결과]: 하나님 함께하심
대개 시 23편을 작곡할 때에 3-4절을 빼는 것은 인생을 이해하는 데 치명적인 잘못을 남긴다.
2) 시편은 제 2경륜의 책이다. 이제 제 3경륜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이것을 다시 제 3경륜의 원리(신약적)로 재해석하여 적용해야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재미있는 일이 많다.
화란 사람들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이 참으로 많이 치중한다.
칼빈이 말하는 이 부분에 대한 것들이 이해가 된다.

자녀들을 하나님이 주신대로 나야야 하는데
시128편은 전도가 아니라 자녀들을 많이 나으라는 것인데 자신의 육체적 자녀가 아니라 영적으로 전도해서 나은 자녀들이 많기를 말하는 것이다.

* 중요한 네 개념 *
경륜과 하나님 나라와 언약과 언약법
(구약산책 AT, CD 참조)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pp.360ff.)

예 1 : 시 127편 (가족의 축복시)
물론 육신의 가족이 의미가 있으나 영의 가족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하다
구약에서의 가족 구성 :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후손.
시128편의 내실, 감람나무라는 표현도 그렇다.

신약에서의 가족 구성 : 혈통이나 육적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난 영의 자녀(요 1:12).
(막 3:31-35)
(막 12:18-27 : 부활에 대한 대화)
(막 10:29-31 : 가족을 버린 자)
(눅 14:26-27 :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 2 : 시 137편(저주시)
물론 육신의 가족이 의미가 있으나 영의 가족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여기서 신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찬양이 있다. 포로된 가운데서 노래하는


구약의 대적 : 에돔(7) / 바벨론(8)
여자의 약함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137편은 철저히 신약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우리의 네 가지 대적 :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a) 정사
(b) 권세
(c)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
(d) 하늘의 악한 영들 (엡 6:12)

구약의 대적을 향한 저주가 가능한 것은 구약, 제 2경륜에서 이방은 하나님이 포기한 족속이기 때문이다.
시편 137편을 제 3경륜의 원리로 사용하여야 한다. 이 네 세력을 향한 저주를 내릴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졌고 사용해야 한다.

3) (문학적, 신학적)구조를 파악하라(기승전결)(10p).
문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의 기승전결을 알아야 한다.
시51:1-10
시51:11-19절: 긍정적인 것(시51: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51:15-17)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그 이유는 부정적인 개념 때문에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사의 긍정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다.
제사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인칭의 변화에 주의하라.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변하는 것을 조심하라.
2인칭 : ‘당신’ / ‘주’
3인칭 : ‘그’ / ‘하나님’

예 1 : 시 137편
1-4 : 3인칭 (바벨론에서의 고난)
5-6 : 3인칭 (자신을 향한 선언)
7 : 2인칭 (기도)
8-9 : 3인칭 (저주)
그러므로 시편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예배적 상황 전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다 설교하고 설교하다 기도하는 등의 내용을 볼 수 있다.

시편은 전체가 몇 절인지를 먼저 보라.
시126편에서 하나님을 2인칭으로 표현한 것은 몇 절인가? 4절 한절이다(시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그러나 이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1-3절, 5-6절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시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이스라엘은 건천지역이다. 그래서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한다. 비가 와서 도로가 끊어져 죽음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기분이 좋은 것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토라학교는 학문은 20%, 나머지 인격, 영성 등을 가지고 가르쳐서 박사가 아닌 총사(총체적인 실력을 가진 사람)라는 명칭을 사용하려고 한다.
공동체적, 영성 등을 위해 108가지를 훈련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현재 공부를 하고 난 다음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하고나면 껍질 벗기기를 한다.
그러다보니 선교사들이 가장 잘 토낀다. 그리고 목사들도 힘들어 한다.

4절: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이들은 그곳에 정착했다.
5-6절은 노동가이다. 일하러가세
4절은 하나님이 2인칭이지만, 1-3절, 5-6절에서는 하나님이 3인칭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들이 없다. 이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공의 때문에
20050719 오전2강 끝
20050719 오후1강 시작

이것은 예배가 진행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이 2인칭 : 제사장이 얼굴을 하나님을 향하였을 때이다.
하나님이 3인칭 : 제사장이 얼굴을 백성들을 향하였을 때이다.

예 2 : 시편25편
25:1절은 2인칭(기도)
25:8-10: 3인칭(설교)
25:11절: 2인칭(기도)
25:12-15절: 3인칭(설교)
25:16절: 2인칭(기도)

25;5-18절: 내부(웬수)에서의 1차 싸움
25;1-4절, 19-22절: 외부(원수)와의 2차 싸움
25;1-4절: 원수와의 싸움
25;19-22절: 원수와의 싸움

(시25:6-7)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기억이라는 말은 Zakar로 기억하소서, 마소서, 하소서를 반복해서 쓴다.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소서
주의 인자하심, 선하심을 다라 기억하소서
자비는 기억하고 허물은 기억하지 마옵소서라는 말이다.
기억하지 마소서를 말하려고 하는데 기억할 것(앞, 뒤)을 말하면서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말한다.
주의 언약적 자비를 기억해 부어주시옵소서라는 말과 함께 소시적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옵소서로 절묘한 조직적 체계적 기도이다.

이로써 첫 번째 웬수가 처리되었다.
이것은 죄의 역사성이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이 어린아이가 길거리에서 엄마에게 땡깡노는 것을 보고 자기의 소싯적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고백록이다.

원수 안에 들러 쌓여있는 웬수를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25:8-10)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바지를 경험한 자가 선포하는 것이다.
다시 11절에서 둘째 웬수를 공략하고 있다(시25: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죄의 심각성)을 말하면서 이전에는 죄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죄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법의 차이는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의 차이다.

신약시대의 죄의식은 대단히 적극적이다.

12절부터는 다시 3인칭이다(시25:12-15)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18절은 셋째 원수에 대해 말한다(시25:16-18)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
이것은 죄의 포괄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요청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하심을 따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나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사오니 용서해주셔야 하나님의 이름이 가려지지 않는다.
자기의 고통을 들어 기도한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이만큼 어렵다고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본문은 다르다.
이것이 바른 기도의 전략이다.

나는 지도자인데 나의 마음속에 생기는 죄를 용서하소서. 이것이 나의 무거운 죄입니다.
히틀러는 독일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독일의 일부 사람들은 히틀러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만난 한 독일인 할아버지를 만나 성경을 공부하는데 시편25편을 가지고 하자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 본문이 우리 민족의 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지만 내 안에 있는 죄성,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지만 내 안에 있는 심각한 죄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서 고착화되어 우리의 심령이 피폐해진다.
하나님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포기되지 않는 죄성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밖에 있는 죄성도 아울러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미워해야할 대상은 우리에게 죄를 가져다주는 악한 사탄이다.
이 사탄이 주는 마음과 말과 행동을 깨달아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이 사탄과의 싸움이다.
세상에 있는 악한 것들(사탄이 조종하는)과 싸워야 한다.

이것을 알고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한 언약적 관점을 가지고 자신에게 있는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간다.
이처럼 한 예배 안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죄 고백을 예배 중에 모든 성도들이 함께(목사도 포함)해야 한다.
죄를 고백하고 난 다음 선포하고 다시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도와 말씀과 기도와 말씀이 계속되는 것으로

예 3 : 시 137편
1-4 : 3인칭 (바벨론에서의 고난)
5-6 : 3인칭 (자신을 향한 선언)
7 : 2인칭 (기도)
8-9 : 3인칭 (저주)

예 4 : 시 126편
1-3 : 3인칭 (과거와 현재 회상)
4 : 2인칭 (기도)
5-6 : 3인칭 (미래를 향한 권면)

5)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라(11p).
하나의 시편은 사건과 시간의 진행에 따라 변화 발전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여야 한다.
주로 현재--> 미래
과거--> 미래로 되는 경우가 많다.

예 1 : 시 42-43편
이것이 로이드존스 목사가 로마서 강해를 한 중요한 시편이다.
구조분석
42:1-5 : 과거
5절이 후렴
42:6-11 : 현재
11절이 후렴
43:1-5 : 미래
5절이 후렴
해석
하나님 앞에, 성전에서, 쫓겨난
(시42:1-1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죽어가는 소리를 한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절망의 소리를 하다가 후렴에서는 죽어가는 소리를 하는 것을 호통 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복수)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여기까지는 이 사람의 현재를 말한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리고 이제 이어서 43편으로 넘어간다.
(시43:1-5)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3:1-5)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성산, 장막, 번제단, 성소(언약궤)로 이렇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본다.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아직은 해결이 되지 않았지만 찬송하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현재, 미래의 3부분이 연결된 가운데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42-43편은 한 번에 보아야 한다.

이제 제3경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로이드 존스가 로마서 강해를 쓴 것은 시편43편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영적인 침체에 빠질까?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세례의 의미: 그가 죽을 때 나도 죽고 그가 살았을 때 나도 살았다. 그와 연합해서 죽고 살았다는 것이다.
시43편을 통해서 이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하는 자신의 영혼을 책망하는 나는 환경, 상황, 경험에 영향 받지 않고 계시의 말씀만 붙들고 잇는 자이다.
‘이 때 자신의 의지를 향해서 명령할 수 있다.
새롭게 탄생한 나, 새로운 영적인 관계에 있는 나

롬8장1절에 이르기 전에는 영에 대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8장이 후에서야 영에 대하여 말한다.
영으로 더불어 자녀된, 영적인 좌소, 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60년대만 해도 영이라는 말과 성령에 대하여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단시 했다.
화란에 있을 때 차영배 목사가 와서 오늘날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된 것이 박윤선 박사라고 한다.
1960년대 박윤선 박사가 외국에 유학을 갔다가 사모 때문에 귀국하면서 아브라함 카이퍼와 바빙크의 책을 가지고 와서 연구를 하고 나중에 그곳에 가서 공부를 했다.
이즈음에 박태선 장로가 사경회를 하면서 한국교계에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러지 말고 신학을 하라고 해서 고신에 등록을 하려고 하니 한상동 목사가 모르니 박윤선 목사에게 물어보자 해서 박윤선 목사는 카이퍼에게 물어보게 되었는데 카이퍼는 아래의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반대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성령론은 문제가 된다. 당시 영국의 케직 사경회에 나타났던 놀라운 현상들에 대한 것들을 성경에 나오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외국에서 느끼는 대로 체험도 없이 적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박태선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와 신학적인 문제이다.
박윤선은 웨스트민스터신학이고 웨스트민스터는 화란이 그 중심이다.
그래서 화란의 신학에 맹신하게 되어 한국교회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이다.

영과 성령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를 벗어나는 것은 신비, 감정주의에 빠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신학은 성령과 영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비주의로 비난을 받아 말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말하게 되었다.

2분법, 3분법 보다는 가장 높은 고차원적인 합리의 차원, 영적인 좌소, 영적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이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때 나타나는 것이 무엇일까?
영적 좌소, 영적 실체가 아닐까?
내 영혼을 향해서 말하는 나는?
문학적 수사로 보기도 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42-43편의 말씀을 통해
거듭난 영, 거듭난 실체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거듭난 영에 대해 말하는 위치만 니가 있다.
이는 롬6:11절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런데 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경험하지 않고 여긴다는 것은 워치민니가 발견한 것이다.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믿는 여기는 것이 실체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내 속에서 살아난 영, 영적 좌소 가운데 말하는 것만 듣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 외의 것은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한국교회에 영성에 대한 강조가 일어난 것이다.

믿음으로 기록된 계시로 말미암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 이후에 경험이 뒤따라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롬6:6-8)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8장은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상황에 관계없이 말씀을 따라 내 영의 분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모든 것들이 꼬리를 내리고 우리에게 주인님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가 그것들에 끌려 다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과 영성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 2 : 시 98편
1-3 : 과거
4-6 : 현재
7-9 : 미래

6) 문체의 변화 등의 문학적 기법에 주의하라(11p).

a. 문체의 변화, 특히 기도(원)문, 평서문, 감탄문의 변화에 주의하여야 한다.

20050729 오후2강 시작
1, 19, 119편은 모두 torah 시편이다.

예 1 : 시 19편
1-11: 평서문
12a : 감탄문
12b-14 : 기원문

1-6절: 자연계시
7-14절: 특별계시로
그 중간에 거울을 놓아야 한다.
A는 로
숨은(satar)라는 단어가 핵심단어이다.
A\'는 12절이다(시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숨긴(satar, 사탄) 허물에서 벗어 나게 하소서).

결정적인 전환이 12a에서 이루어진다.
또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칭변화와도 관계된다.
3인칭에서 궁극적으로 2인칭으로 바뀌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라는 단어는 Torah로 바꾸어야 한다.
(시19:7-9)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절부터는 조금 달라져 앞의 것들을 객관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11절은 조금 더 달라져 습관적 적용이다. 경계와 상을 말한다.

1-6절은 완벽한 대칭으로 와야 할 것에 7-11절이 오는데 그 중에 12-에 암덩이라 같은 파격의 미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것 때문에 C. S 루이스는 시편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인간을 가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12절 맨 앞에 그러나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져야 할 실존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것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고 이어서 12b에 또 다시 그리고 13절에서 고범 죄로 자기에게 대한 것을 말한다.
숨겨놓은 죄를 버리기 원하는
떨어지기 원하는 추락하고 추락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면 내 죄과에서
그래서 14절은 절규이다. 원래는 나의 구속자시여라는 것이 먼저 나온다(시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절규인 것이다.
1-11절은 평서문이다.
12절은 감탄문이고
13절부터는 기원문이다.
이렇게 탁월한 문장 선택을 볼 수 있다.
전환점이 12절에 나타나고 여기서 3인칭이고 뒤부터 2인칭이 나온다.

19편의 매력은 혹 덩어리이다.

제3 경륜적 해석
제10번째 계명(탐심)에 대하여 말한다.
나는 죽고 죄성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약한 사람이 인간이다.
롬7장의 마지막의 오호라는 말과 시19편의 나의 반석이시여라는 것은 인간 근본적인 절규로 똑같은 것이다.
‘
인간의 욕심을 죽이면 잘된다.
법적으로는 영의 자녀가 되었지만 실제는 죄성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이것을 죽이기 위해 바울이 롬7-8장을 적었고 1장에서도 말하고 있다.
영으로서 육을 죽이면 살리니

죄성과 육신을 죽임:
육신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고 그 가운데서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롬7-8장이다.
그러므로 시19편은 롬7-8장의 보조 본문으로 쓰면서 인간 내면에 있는 깊은 파괴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고백하는 , 더 깊이 내 속의 고범죄를 드러내고 승리하게 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또 하나의 구절이 창4:7절이다(창4: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때 가인이 ① 얼굴을 수그린다. ② 선을 행함이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 구절로 ③ 선을 행하지 못함은 죄가 문에 엎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안에서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데 이를 이기기 위해 할 일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법적인 상태(언약의 자녀)와 실제적인 상태(죄의 자녀)는 다르다.

내가 주께 범죄했다는 것은
모친= 인간의 근본전인 죄성을 가진 자들이다.

Trio 시편인 시19, 25, 81편은 시편의 최고봉이다.


예 2 : 시 90편(12p)
이것도 문체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10 : 평서문
11 : 감탄문
12-17 : 기원문

결정적인 전환은 11절에서 이루어진다.
(시90:1-17)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16)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이 본문은 공동체적 기도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죄를 지고 가서 싸우는 것이다.
1-10절은 미끄러져 내려가고 11절에 머물러 12절부터 다시 올라간다.
1-2절은 도입이다. 그런데 뭔가가 어색하다.
(시90:1-17)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절의 주는 You로 님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3-6절은 인생일반의 허물에 대해서 말하고
돌아가게= shubah(꺼져, 가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인생 일반의 허물을 망하면서 우리를 말하는 것은 우리는 인생일반보다 더 허무한 것을 말한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7-10절은 우리로 영적인 자녀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가 조금만 잘못해도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작은 죄를 모든 신문에 내는 것과 같은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3-10절에서 추락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추락하고 비참한 것은 얻어터지면서도 진노를 아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가는 전략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노래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12절이다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돌아가게= shubah(꺼져, 가라)는 의미로 돌아가라, 돌아가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Ketword로 이것은 word play이다.
3절에서 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한 것으로 저주인데, 이제 13절에서 사람이 하나님에게 오셔야 한다 초청이다.
아버지의 말을 인간의 말로 바꾸는 인간의 말을 아버지의 말로 바꾸는 것이 기도의 위대함이다.
상상력/ 신학적인 것으로
여기서 비로소 하나님의 호칭 여호와가 나오고 이스라엘의 호칭인 주의 종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제 14-17절까지 일사천리로 올라간다.
12절을 보라(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이것은 헤헤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13절을 보자(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
그리고 14절로 넘어간다.
(14)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이제 책임을 지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15)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마치 인간이 하나님에게 빚 독촉을 하는 것 같다.
(16)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이것은 자손을 책임져 달라는 것이다.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지금 잠이 와도 눈을 부릅뜨고 끼적거리던 우리들을 축복하소서 하는 의미와 같다.

내려올 때에 3절(돌아가게= shubah)이 역할을 하고
올라갈 때는 13절(돌아오소서= shubah)이 역할을 한다.

b. 전체를 주도하는 문학적 기법 :
핵심단어(keyword)와
언어유희 (wordplay)

예 : 시 90편
3절 13절
돌아가라 ----- 돌아오소서
(shubah) (shubah)
하나님->인간 인간->하나님
심판과 저주 자비의 호소

이것은 한 시편의 구조와 관계된다.

7) 내용의 전환(12p), 특히 기도에서 찬송으로 전환, 기도에서 확신과 권면으로의 전환에 주의하라. 내용상의 전환이 그 속에 있다.

예 1 : 시 6편
1-7 : 대적을 인한 간구 (2인칭)
8-10 :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3인칭)
간구에서 확신으로 변화는 어떤 내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구조분석
(시6:1-10)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8)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1-4절: 기도: 한나의 기도
5-7절: 확신(작전): 자신이 드리는 내적확신
5절은 하나님의 유혹 작전이다. 기억해서 어떤 것을 표현하고 당신은 행동하는
음부에서는 당신을 감사할 자가 없습니다라는 말로 유혹적 접근을 한다.
6절은 불쌍히 여기는 작전
7절은 불쌍히 여기는 작전
8-10절: 엄청난 확신: 사건이 해결되어 버림

시13편도 위와 비슷하다.
예 2 : 시 13편(13p)
1-4 : 원수로 인한 기도 (2인칭)
5 : 하나님에 대한 확신 (2인칭)
6 : 여호와 찬양 (3인칭)
내용적으로는 4절에서 5절로 급격한 전환을 볼 수 있고 모두 2인칭으로 되었다. 6절에서는 이런 후에 하나님(3인칭)께 찬송할 것을 결단한다.

2. 본론(14p)

1. 하나님과 관계의 출발과 발전(14p)
아버지 것은 다 내 것이고 아버지가 내 의미가 되는 것이다.
(창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말의 의미는 14장 때문이다.
아브람이 빈 털털이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부드럽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가 그렇게 되었는데 너 겁나제?
그런 상황에서 ① 내가 너의 방패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② 내가 너의 상급이 된다는 것이다.
(창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에게 퉁명스럽게 당신이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창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이번에는 솟쳐서 말하되이다.

윌버포스(wilberfos) 의 이야기
언약 관계 안에서 말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시131편 속에 나오는 것과 같다. 젖 뗀 아이처럼 안식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쉼을 말한다.

1) 시 131편
1-2절은 2인칭으로 이말을 하는 사람은 왕, 지도자, 대제사장이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표현하는 것이 관계의 출발이다.
3절: 3인칭
a. 구조분석 : 이미 보았음

b. 신학적 의미 :
이스라엘의 예배인도자(대제사장)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예배공동체가 듣는 앞에서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는 과감함과 솔직함을 본다.

마태 11:28-30의 안식의 이중적 의미를 보라.
① 일차 안식: 인생의 짐은 없어진다.
② 이차 안식: 하나님이 주신 멍에는 진다.
어떤 사람은 일차 안식은 있는데 이차 안식이 없어 얻으려고 주께 나가 멍에를 메는
어떤 사람은 일차 안식은 없고 이차 안식도 없으면서 바라지도 않는 것
어떤 사람은 일차 안식은 없지만 이차 안식을 바라고 믿음으로 나가는 것
어떤 사람은 일차 안식도 있고 이차 안식도 얻어 믿음으로 기쁨으로나 사는 것
교회가 가야할 길?

우리가 이차안식이 없으면 일차 안식이 없는, 잃은 것에 대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 이것은 불신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믿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신학교 시절, 유학시절, 돌아와 정착하고 지금까지에 겪은, 당한 일로 인해 마음의 상태와 진로에 대한 이야기들

내 짐을 내려놓아야 주님의 멍에를 멜 수 있다.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진리가 참입니다.

(사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그 이후에 시131편이 내면화되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람 앞에서 조심하며 살게 되었다.
그 이후 가족 돈을 받아쓰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전화하거나 편지 쓰지 않는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20050719 오후강의2 끝

20050719 오후강의3 시작
2) 시 42-43편(14p)
a. 구조분석 :
42:1-4 : 과거 (42:5 후렴)
42:6-10 : 현재 (42:11 후렴)
43:1-5 : 미래 (43:5 후렴)

b. 문학적 기법 :
기도 -> 자기한탄 -> 자기권면
42: 1 2-4 5
6-7 8-10 11
43: 1 2 (3-4) 5

c. 신학적 의미 :
(1) 후렴(자기권면)의 중요성 :
자기 영혼을 향해서 명하는 또 하나의 자아가 있는 것을 본다.
이 자아는 누구인가 ?
“영이 자아를 향해서

롬 7장의 해석 :
내 속에 독자적인 역할을 하는 죄악

롬 6:1-11의 세(침)례의 의미 :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아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아

롬 8장의 의미 :
내 영(8:15)과 성령의 존재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한다.

(1) 성령의 의미 :
“생명의 성령의 법”
(목적격) (동격)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라는 법
(2) 내 영과 성령의 증거 (8:16)
(3) 고난의 삶 (8:17ff.)


2. 죄, 죄성, 죄의 결과의 발견과 극복(16p)
죄는 죄의 결과이다.
죄성은 죄가 쌓이는 것이다.
죄의 해결이 죄성의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집회를 하면서 알았다.

법적 차원과 공적 차원의 성취
다리 밑의 거지가 임금님 방에 갔다 할지라도 그 옛날의 다리 밑의 행사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아는 다른 이가 고소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 문제가 이미 임금님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1) 시 19편
a. 구조분석
1-6 : 자연계의 (일반)계시
7-14 : 인간계의 (특별)계시

b. 문학적 기법 :
(1) 언어유희(word play)를 통한 대조적 기법을 쓰고 있다 :
자연계의 태양 인간계의 토라
숨다’(satar 6) -- ‘숨다’ (satar 12)
숨지 않는다 숨는다

(2) 문체의 변화 :
1-11 : 평서문
12a : 감탄문
12b-14 : 기원문

c. 신학적 의미 :
(1) 자연계의 계시 중에서 태양이 자연계(지구) 전체에 대해 가지는 절대적 위치와 인간계의 계시인 하나님의 토라가 인간계에 대해 가지는 절대적 위치가 대비되었다.
그러나 인간계의 토라가 가지는 이상한 현상은 인간의 연약을 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2) 세 가지 차원의 지옥경험 :
(a) 12a : 자신의 허물을 깨달을 능력이 없는 인간
(b) 12b : 자신 죄악을 스스로 숨기는 존재로서의 인간
(c) 13 : 고범죄로 노예가 된 자신이 상태를 자각하는 인간


2) 시 25편
a. 구조분석
1-5 : 외적대적에 대한 구원간구
6-10 : 내적 대적1 (소시의 죄/허물)
6-7 : 기도 (2인칭) -
“주의 자비 때문에”
“기억하소서” (자비)
“기억마소서” (죄)
“기억하소서” (자비)
8-10 : 교훈 (3인칭)
11-15 : 내적 대적2 (중대한 죄악)
11 : 기도 (2인칭)
“주의 이름 때문에”
12-15 : 교훈 (3인칭)
16-18: 내적 대적3 (많은 죄악)
16-18 : 기도 (2인칭)
“나의 고난 때문에”
19-21 : 외적 대적에 대한 구원 간구
22 : 공동체적 기도

b. 문학적 기법 :
(1) 2인칭(기도)과 3인칭(권면)의 변화

c. 신학적 의미 :
(1) 외적 대적 vs 내적 대적.
어느 것이 더 어렵고 무서운가 ?
(2) 3대 내적 대적(18p)
1차 대적 : 죄의 역사성
2차 대적 : 죄의 심각성(깊이)
3차 대적 : 죄의 포괄성/다양성
(3) 죄악의 용서의 기초 :
1차 기초 : 하나님의 자비
2차 기초 : 하나님의 이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원히 없앨 수 없는 법적 지위를 가지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수치를 당하게 된다)
3차 기초 : 나의 고통
(4) 기도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외적대적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기도의 씨름은 내적 대적을 향한 것이었다. 내적 대적에게서의 승리는 외적대적에게 대한 승리를 보장한다.
(5) 개인적 기도이나 철저히 공동체적 상황 속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대표의 기도같이 보인다.

3) 시 51편(19p)
점진적 발전을 말하는 것이다.
역설적 방법을 사용한다.

a. 구조 분석 :
1-9 : 죄악의 용서
10-12 : 새마음(영)의 창조
13-15 : 용서하신 주를 찬양
16-19 : 새로운 제사를 드림

b. 문학적 기법 :
(1) 전체적으로 내용의 점진적 발전을 근거로 한다.

(2) 역설적 기법을 사용한다 :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16) -
그러나 제사를 드린다 (19)

c. 신학적 의미 :
(1) 죄의 삼차원 :
(a) 내 죄의 자각 (3)
(b) 주께만 범죄함 (4)
(c)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함 (5)

(2) 새로운 발전 :
죄의 용서 -->
마음의 창조 -->
용서하신 하나님 전파 -->
의로운 제사드림

3. 언약법을 따르는 삶(20p)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갈 때 사용하는 것이다.

1) 시 119:65-72
a. 구조분석 :
알파벳 시편
8계단의 말씀의 체험
1차 : 인격대상 : 하나님--나
말씀을 배움
촉매 : 고난
2차 : 인격대상 : 하나님-나-악인
말씀을 배움
촉매 : 고난

b. 문학적 기법 :
핵심단어 (고난, 67, 71) -->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

2) 시 15편
(출입시편, enterance psalm)
a. 구조분석
1 : 수사적 질문
2-5 : 12항목의 수사적 답변

b. 문학적 기법 :
각 절당 3가지 항목씩 총 12항목을 만든 것은 12를 좋아하는 히브리인의 습관과 관련된다. 12지파, 12제자, 12계율(신 27:15-26).
여기서 제일 마지막 항목은 전체를 종합하는 항목이다.

c. 신학적 의미 :
이 시가 만들어지던 당시에 필요한 행동의 항목을 제시하였다. 이것으로 성전에 축제를 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을 스스로 점검하게 만든 것이다.

3) 시 24편 (언약갱신예식시편)(21p)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a. 구조분석
1-6 : 이스라엘의 나아감
(수사적 질문 - 수사적 답변)
7-10 : 하나님의 나아감
(수사적 질문 - 수사적 답변)

b. 문학적 기법 :
수사적 질문과 수사적 답변의 형식을 전체 속에서 취한다. 1-6에서도 그러하고 7-10에서도 그러하다.

c. 신학적 의미 :
이스라엘이 축제하러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일어나는 현상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출 19:9-25의 원초적인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위한 만남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정결하게 자신을 준비하고, 하나님은 위엄 있게 강림하시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영광의 왕이시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의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4. 자연계시와 특별계시(22p)

1) 시 8편
a. 구조분석
1절: 주의 영광이 아름다움
2절: 그런데 아무도 찬양하지 않음, 그래서 하나님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입을 사용하여서 찬양을 받으심. 그 이유는 원수를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함임.
3절: 그 아이의 하나가 바로 시인인 ‘나’이고, 이제부터 그 나의 찬양이 시작된다.
<나의 찬양의 내용>
3절 : 우주 만물을 관상함
4절 : 그 중에 사람이 아주 특별함
5절 : 천사보다 조금 낮게 하셨지만 존귀하게 하심
6-8절 : 그 존귀함이 만물이 그 발아래 있게 하심
9절 : 이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영화롭도다.
(시8:1-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
(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이런 아이와 젖먹이가 찬양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는데 그가 바로 성도라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른들은 속이 시커멓게 되어 찬양도 하지 않는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찬양을 하는데 찬양의 내용인데 재미있다.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그중에 독특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이 모든 것들은 창1장의 창조에 대한 것들을 상기하면서 말한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처럼 한 어린아이의 찬양을 하면서 어른들의 어둠의 세력과의 대비가 나타난다.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찬양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창조의 본질과 근본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탄을 정죄하고 찬양하지 못하는 자들을 경고한다.

우리는 찬양하는 존재로 세우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

이런 시8편을 제3경륜(신약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세상을 잘 통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인간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b. 문학적 기법 :
고리에 고리를 무는 방법을 썼다.

c. 신학적 의미 : 3차원의 의미
1차적 의미 : 구약에서의 의미: 첫째아담의 원래적 기능
2차적 의미 : 신약에서의 의미 1: 둘째아담의 역할(히 2:5-10)
(히2:5-10)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하심이 아니라 (6)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7)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렇게 해서 자유함을 받은 백성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명령(창, 시8편)은 행1:8을 따라 행하라(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난을 통해서 완전해 진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그 길을 가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고난의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님: 모든 이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심
인간의 일반을 말하면서 말한다.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하심
(시18:10)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시18:11-14)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2)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4) 그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파하셨도다
3차적 의미 :신약에서의 의미 2: 둘째아담의 형제(자매)들의 역할

2) 시 19편(23p)
이미 다루었음.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대조를 통해서 인간의 행복을 드러내나 결국 인간은 그 행복보다 불행한 삶을 사는 모습을 나타낸다.

5. 그리스도의 의의 절대성(23p)
시편은 구조가 이상하다.
의인의 고난과 거기에 대한 구원의 찬송이 왔다 갔다 한다.

1) 시 22편
a. 구조분석
1-2 : 의인의 고난 (현재)
3-5 : 구원과 찬송 (과거)
6-21 : 의인의 고난 (현재)
22-31 : 구원과 찬송 (현재/미래)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다가 현재와 미래로
3절의 거하다는 것은 앉는다는 의미이다(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거하는 것과 왕좌에 앉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찬송을 받으시며 좌정하시는 주여 님은 거룩하십니다. 라는 것이다.
이유는
그러나 6절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과거의 불만에서 현재로 돌아와 나는 사람이 아니라 벌레요 짐승이다(시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22:7-20)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이렇게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되 개 같은 자신을 이야기 한다.
21절 마지막 절에서 고백하는 것을 보라(시22: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그리고 예언자의 선포에서 사건의 해결을 통해 형제 회중에서 찬송하는 것으로 옮겨간다. 23절, 27절. 29절까지(시22:23-29)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극단적 고통에 들어간 6-21절까지 그러나 그 중에서 하나님을 극단적으로 찬양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b. 문학적 기법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위대한 찬송이다.

c. 신학적 의미
(1) 고대의 한 시인의 절실한 경험을 반영한다.
(2) 이 속에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가 직접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실제적인 차원을 절감 나게 표현하였다.
(3) 3절 :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좌정하고 계신 주님, 당신은 거룩하시나이다.”
(4) 21절 : “들소 뿔에서 구원하소서.”
(5) 21절에서 22절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6. 그리스도인의 의의 중요성(24p)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1) 시 17편(24p)
a. 구조분석
1-5 : 자신의 의에 기초한 간구
6-12 : 하나님의 자비에 기초한 간구
13-15 : 구원의 간구(결론)
(시17:1-15)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나의 허물을 찾지 못하셨죠? 메롱 그러는 표현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인간적으로 말해봅시다.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이제 조금 있다가 그리스도인의 의의 중요성을 말한다.
어느 놈이 아내를 건드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면 남편 맞아?
(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그때 부르짖으니 내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언약에 따라 행하시니 언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언약대로 행하지 않으면 언약을 따라 행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인생길에 극한 원수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신학교에서 많이 겪었다(열등감, 교만이 섞여 나오는 행동들)
이런 극한 원수가 밖에 있으면 좋은데 이 원수가 이스라엘 안에 있다는 것이 미치고 팔짝 뛸 문제이고 이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10)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이런 원수들을 만나면 36개 줄행랑을 쳐야 한다. 다윗은 언제부터인지 잘했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일어나= qumah yahweh로 숙어이다.
달리다굼할 때처럼
(민10:35-36)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이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호소, 명령- 남편이면 당연히 아내가 당하는 고난에 와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하는)
(14)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나의 의로움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라
17편 전체의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인의 의이다.
이것은 개신교 전체의 금기사항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 면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자녀로서의 권세를 당연히 가지고 아버지에게 자녀가 가진 권위와 권세, 권능을 당연히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들어가는 절대적인 과는 구별된다.
이것은 이미 얻은 자녀로서 그 결과로 자녀에게 주어진 것을 행위로 요구하는 것이다.
자녀의 권세로 마귀를 대적해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시편이라고 말하는 말은 조지는 조직신학의 말이다.

어려울 때 가진 권세와 권위를 사용하는 자녀가 되자.
구원받는 조건이 아닌 구원받은 자녀가 행하는 것이다.

이제 이어지는 18편은 내일 하기로 하자.
20050719 오후3강 끝

20050720 오전1강 시작
성막에 대하여
성막을 법막, 증거막, 법궤, 증거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증거라는 단어는 언약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는 것,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지지고 볶는 것이다.
이 지지고 볶는 것을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50규빗 씩의 번제단과 물두멍, 중간에 있는 언약궤의 지성소, 진설병, 일곱 금등대, 향단 등이 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아가는 곳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곳

지금까지는 성막을 이야기할 때 일반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성전 개념을 가지고 성막을 이해했다.
일반 종교학적인 개념에서 신이 계시는 곳과는 다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면서 부정적인 것이 없어지고 긍정적인 것이 되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하는 대학 때 들었던 노래가 생각난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발만이 아닌 몸을 다 씻어 달라고 했을 때 발만 씻는 것으로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
손발만 씻는 것처럼 우리의 3가지 행위만 회개하고 정결케하는
이렇게 하는 것으로 완전 성결케 되는 것이다.

몸과 손발이 깨끗한 행하는 것을 완전 성결이라고 하자.

열심히 따라 다니던 깡패 출신의 제자가 있다.
전도해서 목사가 되고자 하니 보내 달라고 했을 때 그 의식을 치루어야 하는데 보내 주었다.
이 친구 속에 뭐가 있는가 하면 큰 것들은 끊어졌는데 하나님 안에 들어와 있지만 열등감이 많았다(학위 등).
실력은 자신이 키워야 하는 것이니 학위 때문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 말라. 했는데 두세 번을 튀어 나가 토라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가정마다 있는 개 같은 성격, 지방마다 있는 개 같은 성격(경상도 사람들은 음흉한 것이 있다. 이북 사람들을 화끈해서 화닥닥 해치우는 것이 있다. 전라도는 배신을 잘하는가?
이러한 현상들이 물두멍이다.
어던 사람이 동성연애를 하면 그 기간만큼 지나야 습관이 끊어진다고 한다.
청년들 집회에서 죄성을 토하면 죄가 끊어지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대구에서 청년들 집회를 했는데 부모님의 돈을 훔친 것, 교회 자매들과 사귀어서 3명이 낙태를 했고, 다음날은 동성연애를 퍼뜨린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나중에는 결혼할 자내와 사이에서 그전에 있었던 모든 과거를 불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버릇을 개 못주고 살아가는 교회안의 성도들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번제단과 물두멍을 분리하면 된다.
하나님과 생명을 맞바꾸는 것이다.
번제단을 지나고 물두멍을 지나야 완전성결해진다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

초급, 중급. 최고급 단계에서 완전해지려고 하면......,
각 단계마다에서 최고의 점수를 내는 것이 완전함이다.
내게 주어진 단계에서 최고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완전함이다.
초등학교 아이가 100점을 받아 오면 그 때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100점을 받아왔다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문제를 주면 100점을 받을 수 없다.
이렇게 각 단계를 이해하고 성도들에게 적용해야 성도들이 자유할 수 있고, 담대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다.
진설병은 le chem , panim(얼굴)로 얼굴의 빵이라고 번역하지 않는다.
진설병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해 드리는 올려 드리는 것이다.
나의 드리는 것을 하나님 봐 주옵소서, 그러면서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면서

번제단과 물두멍은 부정적인 것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일곱 가지 금등대는 저녁에만 비추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이 금대는 아침에 빛이 동쪽에 비치면 등대를 끄게 되어 있다.
이것은 완전한 의와 생명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가신 순박함, 깨끗함, 동기부여를 볼 수 있다.

향단을 계8장을 보면 향연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올라가는 것으로 기도와 연관된 것임을 보여주는 데
이 3가지는 성도들의 완전함을 위한 도구들이다.
앞의 두 단계와 뒤의 3 단계를 통한 완전함이 있을 때 아버지가 최고로 기뻐한다.

그리고 제사제도를 모두 죄로 관계된 것으로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아니다.
소제는 정성을 드리는 우리의
화목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나 교회사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18세기 요한 웨슬레의
당시 칼빈주의자들은 썩어 빠진 놈들이다. 노력은 하나도 안하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영광만 말하는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윌리암 케리가 전도하자고 했을 때 하나님의 뜻이면 되는데 우리가 갈 필요 없다고 말한 놈들이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칼뱅은 평생 동안 주석을 하고 그것들을 고쳐나갔다.
그런데 그 후예들은 기독교 강요만 우려먹고 있다.
화란의 신학자들도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모든 칼빈주의자들이 칼뱅주의를 말하니 웨슬레가 이것을 버려버린 것이다.
이레니우스도 노력하지 않는 칼빈주의자들을 버리니 웨슬레가 이를 안고 완전 성결을 주장하면서 책을 썼는데 읽어보면 뭔지 모를 정도이다. 그러니 그 후예들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충만케 하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것을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뜻만 찾고 하나님 영광만을 말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칼뱅은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그는 가다가 몸이 터져 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칼뱅주의를 넘어서고 완전케하는 언약신학을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자기보다 먼저된 사도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행하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받은 1차 은혜, 그러면 2차 은혜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완전한 성결과 최고의 행위를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주적은 세속주의이다.
그래야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넘어선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12명으로 이루어진 독신 공동체
WEC에 이신철 선교사가 가기전 후보자를 선정하는 최고 책임자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선교역사의 최고는 주후 400-600년에 영국의 아이보나 있었던 공동체 선교단체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들은 훈련을 하고 공수하듯 지역에 들어가 농, 어업 등을 감당하며 지역을 변화시켰던 200-300년 했던 것
그런데 결혼한 선교사들을 일류 선교사가 못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들이 일류선교사가 된다고 말했다.

완전한 성결과 행위를 하기 위해 최고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고의 제사는 서원제를 드리는 것이다.
서원제는 수소폭탄과 같다. 그런데 교회가 이것을 쓰지 않고 있다. 이들이 선교지로 간다고 하면 폭탄처럼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것을 말해주는 것이 시18편이다.

시18편은 구약의 기독론이다.
그래서 메시아 시편이라고 말하며 장차 나타날 메시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무식에 바를 약이 없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 개인의 삶을 그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우리도 그대로 하면 된다.

우리가 언약 안에서 최고로 반응하면 하도 우리에게 최고로 반응한다.
다윗시대에 다윗을 필적할 존재가 없었다. 그것은 언약법에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에게 그의 위를 영원히 하시겠다고 말한 것이다.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18:1절은 18편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1절의 erchamkr = I Love You와 같은 의미이다.
명사 유래형 동사라고 한다.
대부분의 언어는 동사를 우선하고 거기서 명사, 동명사로 간다.
그런데 어떤 것은 명사가 너무 뚜렷하여 그것으로

원래 엄마의 자궁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사랑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극진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는데 죄를 사해주시고, 자유케하시고 결혼했다. 그러므로 너의 신분이 달라진 것이다. 죄 사함과 자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죄 사함과 자유는 결혼에 들어가는 단계이다.
최고는 결혼의 관계다.
다윗의 고백은 결혼한 후에 I Love You를 말하는 것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기도 (3-6)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도피할 가능성이 제로인 상태에서 부르짖는 것이다.
여기서 다윗이 부르짖는 기도는 일반종교들에서 간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 백성을 건드리는 너희들은 다 죽었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의지하실 분은 남편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출24:3-8절에서 피의 의식을 말했는데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피뿌림은 만약 어길 경우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가운데 부르짖음이 있는데 7-11절은 시내산에서의 부르짖음을 연상케 한다.
(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8)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9)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10)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출19:16-19절에 나오는 내용이 여기에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시내산의 약속이 절대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18:19)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이것으로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내 의를 좇아
내 의는 상 받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내 손의 깨끗함을 인해 주어질 상급과 축복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힘과 능력이 바로 나의 완전함과 행위에 있다.
(시18:20-23)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21)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 하였으며 (22) 그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나니

지금이 소비 사회인데 필요와 편리, 과시 때문에 소비한다. -J. 보들리야
8계명이 소비와 관련된 것은 지금 내가 너무 많이 쓰면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소비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죄악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를 줄이기 위해 소형차를 타고 자동이 아니라 수동으로 해야 30% 정도의 연료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덜덜거리는 차를 타고 접힌 곳이 다 헤어진 14년 된 목도리를 사용하는 교수이야기

외적행위를 통해 온전케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계4:).
완전하여라는 이 말에서 완전한 언약과 완전한 행위를 함께 지켜야 한다.
(시18:24-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5)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완전하게 행하면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들에게 주신다.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캄캄한 가운데 더듬어 나가는 가운데 있지만 완전한 행위를 통해 영적 전쟁에 나가면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시고 완전함으로 승리하게 하신다(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등록금, 사례금도 없는
사례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일하고 필요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공동체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필요한 만큼 사용한다면 나머지가 공동체에 돌아가는 것이다.
필요금으로 가자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33)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5)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37)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미치리니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
완전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40)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자는 이기기 쉽다. 그어버리면 이긴다.
(41)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행하고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42)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4) 저희가 내 풍성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45) 이방인들이 쇠미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이미 준비한 완전한 것 때문에 완전히 승리하게 된다.
(46)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도다 (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실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이것이 다윗의 완전 행위에 대한 시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완전하심으로 갚아주시고 세워주신다. 아멘!

시편26편도 같은 시이다.
(시26:1-10)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7)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시26: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나의 행위의 완전함처럼 앞으로도 완전함으로 행할 것입니다.

b. 문학적 기법 :
(1) 극한 원수(9) -- 기인한 인자(7)

c. 신학적 의미 :
(1) 나의 의가 간구에 기초가 된다.
(2) 하나님의 자비가 간구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자비는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언약을 맺은 당사자를 향한 자비이다.
(3) 삶의 자세에 있어서 세상 사람과 나의 명확한 구별이 보인다 (14-15).

2) 시 18편
삼하 22장과 평행본문.

a. 구조분석
1 : 전체서론 (삼하22장에 없음 기도)

원리적 삶
2 : 구원자 되신 하나님(8개 항목)
3 : 간구함과 구원하심 (일반적)
4-5 : 죽음의 상황 간구(4개 항목)
6-19 : 하나님의 언약적 임재와
언약적 들으심
20-24 : 나의 언약적 의와
하나님 언약적 응답 (3인칭)
25-29 :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
(2인칭)
전투적 삶
30-34 : 1단계 (기본적 전투)
37-42 : 2단계 (본격적 전투)
43-48 : 3단계 (최후의 승리)
49 : 마지막 고백
50 : 미래를 향한 전망

b. 문학적 기법

c. 신학적 의미
(1) 하나님의 자녀의 의가 구원과 영적 전투승리의 중요한 요소이다. 두 가지 모습이 보인다.
첫째, 언약의 자녀로서의 위치이다. 언약의 자녀의 간구에 대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지키셨다(3-19). 이것은 언약적 약속을 이행하시려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둘째, 언약의 자녀의 의로운 삶이다. 이 삶은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필수적이다 (20-27).

(2) 대적의 모습 :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41). 대적이 이스라엘 내에 있고 여호와를 (형식적으로) 의지하는 자일 가능성이 있다.

(3) 절대승리가 가능한 길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언약법에 우리가 얼마나 복종하느냐에 달렸다. 물론 이것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20050720 오전 1강 끝
20050720 오전 2강 시작
7. 영적전쟁(26p)
1) 시 3편

인칭변화
2인칭: 1절
3인칭: 4절
2인칭: 7절

a. 구조분석 :
1-2 : 많은 대적과 그들의 많은 소리
3-4 : 하나님에 대한 확신 1
(성산에서의 응답)
5-6 : 하나님에 대한 확신 2
(천만인에 대한 두려움 없음)
7-8 :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qumah Yahweh !)

분석
1-2 : 많은 대적과 그들의 많은 소리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아직 경험이 따라오지 않아도 고백하는 것
3-4 : 하나님에 대한 확신 1(성산에서의 응답)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4절은 선포와 기도이다.
5-6 : 하나님에 대한 확신 2(천만인에 대한 두려움 없음)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아직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8 : 일어나소서 여호와여(qumah Yahweh !)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꺽으소서)
전쟁을 치를 때 남편 되시는 하나님이 먼저 나가셔서 치르소서하는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공동체 전체를 향한 기도
이 기도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그래서 시 3-5편을 Trio 시편이라고 한다.
시 3편을 One Day Song라고 한다.
시 4편을 Even Song라고 한다.
시 5편을 Morning Song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자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 영적인 싸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전쟁을 하는 하루의 삶은 제3경륜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굉장한 도전을 준다.
우리가 만나는 사건과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사건과 사람을 통해서 어둠의 세력을 알고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3-5편은 눈에 보이는 대적이다. 그러므로 엡6장의 어둠의 세력들이다.

사건과 사람 배후에 있는 것을 어떻게 깨닫고 행할 것인가? 가 중요하다.

언약적 원칙을 따라서 간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b. 문학적 기법 :
많은 대적에 대한 두려움 (1-2) -->
많은 대적에 대한 안심 (5-6)

c. 신학적 의미 :

(1)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qumah Yahweh 민10:35-36 적용)

모세가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두 가지 :
qumah Yahweh ! (일어나소서)
shubah Yahweh ! (돌아오소서)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의 상황에서 주어진 것이다. 시편기자는 이 권리를 사용한다.

(2) 번역 주의 ! :
“악인의 이를 꺽으소서 !” (7)
(3) 개인시인 것 같지만 공동체 시다. 시인인 나는 공동체를 대표해서 싸우는 자이다. 나를 구원하심으로 공동체를 구원하소서라는 관점이 있다.

2) 시 27편(27p)
a. 구조분석 :
1-6 하나님에 대한 신뢰 선포(3인칭)
1-3 : 많은 군대 앞의 나
4-6 : 나의 유일한 소원
7-12 구원의 간구(기도) (2인칭)
13 자신의 구원의 삶에 대한 확신
14 이스라엘을 향한 권고 (3인칭)

해석
1-6 하나님에 대한 신뢰 선포(3인칭)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하나님에 대한 굉장한 선포를 한다.
1-3 : 많은 군대 앞의 나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4-6 : 나의 유일한 소원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권징은 공동체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대단한 승리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7-12 구원의 간구(기도) (2인칭)(7)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과거를 간증하는 기도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더 과거로 돌아가는...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8-9절의 주의 얼굴은 연관된 것으로 내가 주님의 얼굴을 찾듯이 주님도 내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이 찾음은 단순한 찾음이 아닌
과거의 순간에 찾은 저에게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문제를 가져오는데 꼼짝 못하게 하는
13 자신의 구원의 삶에 대한 확신
14 이스라엘을 향한 권고 (3인칭)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14)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25-26편은 내면의 영적인 전쟁을
27편은 죄의 요소는 없이 깨끗한 싸움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b. 문학적 기법 :
(1) 다수와 하나의 대조법 :
많은 대적 -- 하나의 소원인 성소
1-3 4-6

c. 신학적 의미 :
(1) 현재에서 과거로의 여행 :
1-6절 (현재의 찬양) -->
7-12 (과거의 기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먼저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인을 과거의 역사에서 소개한다.
(2) 기도 응답의 두 가지 작전 :
a. “얼굴의 기법” (7-9) :
내 얼굴을 구하라(과거)-->
내가 당신의 얼굴을 구함(과거)-->
지금 얼굴을 구합니다(현재).

이 얼굴은 전반부의 하나님의 장막과 관련 있다. 그 장막에서 공동체의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얼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b. 부모와 하나님 대조(10) :
부모는 나를 버릴 수 있으나 하나님 당신은 나를 버릴 수 없습니다. 절대적 신뢰를 표현한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부정이나 모정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8. 고난을 극복하는 삶(28p)
시편의 1/2가 애통시이다.
이것 때문에 시편은 대단히 정직하다.
찬송 가운데는 죄성정복, 영력을 더하는 찬양은 없는 실정이다.
찬양의 깊이를 더할 찬양들이 시급하다.

1) 시 64편

a. 구조분석
1-2 : 원수로 인한 기도 (2인칭)
3-10 : 원수의 공격과
하나님의 반응 확신 (3인칭)
3-4 : 혀를 사용하는 공격묘사
5-6 : 혀를 사용하는 공격소개
7-8 : 하나님의 반응
9-10 : 의인의 믿음

1-2 : 원수로 인한 기도 (2인칭)
하나님이여 나의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2) 주는 나를 숨기사 행악자의 비밀한 꾀에서와 죄악을 짓는 자의 요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3-10 : 원수의 혀로 인한 공격과
하나님의 반응 확신 (3인칭)
3-4 : 혀를 사용하는 공격묘사
(3) 저희가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4) 숨은 곳에서 완전한 자를 쏘려 하다가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않도다
5-6 : 혀를 사용하는 공격소개
(5) 저희는 악한 목적으로 서로 장려하며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보리요 하며 (6) 저희는 죄악을 도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실감나게 상황을 전개하는데 얼빵한 그리스도인은 당한다.
악당의 속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7-8 : 하나님의 반응
(7) 그러나 하나님이 저희를 쏘시리니 저희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 (8) 이러므로 저희가 엎드러지리니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함이라 저희를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9-10 : 의인의 믿음
(9)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10)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적극적 공격을 미리 알고 기도하고 싸우는 일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우리는 말로 영향을 받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영향을 받고 행동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자.

b. 문학적 기법 :
(1) 직접화법을 사용하여 실감나게 한다 (5-6절)
(2) 갑작스러운 원수의 공격 (4절)
홀연한 하나님의 화살 (7절)

c. 신학적 의미 :
(1) 완전한 사람, 의인,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누구인가 ? 구약적 언약법에 충실한 사람일 것이다.
(2) 이런 사람을 공격하는 악인은 누구인가 ? 이스라엘 공동체 내부의 사람일 것이다.

9. 지혜자의 찬양(29p)
너희가 지혜있으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고백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1) 시 32편

a. 구조분석
1-2 : 복된 자에 대한 일반적 선포
3-7 : 과거의 구원 경험
8-11 : 경험에 근거한 교훈

1-2 : 복된 자에 대한 일반적 선포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은 5-6절의 현실에 즈음한 원칙을 설명하는데 자기가 경험한 것을 말한다.
원리적 선포가 사실적 경험을 가지고 즉각 고백하는 것이다.
3-7 : 과거의 구원 경험과 현재의 기도
(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3-5절까지는 자기 개인의 경험을 말고
(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6-7절은 경험이 이어진 현재를 말한다.
8-11 : 경험에 근거한 교훈
(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내가= 시편기자이다.
여기서 2인칭 단수와 9절은 2인칭 복수로 보인다.
2인칭 단수는 이스라엘의 총체를 말하고 9절은 2인칭 복수는 이스라엘의 개인을 칭한 것이다.
(시 32: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누군가? 지혜자(솔로몬)이다.
사실을 아는 자를 지혜자로 이야기하는데 사실을 경험한자가 참 지혜자이다. 그래야 그 경험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이다.
(시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시 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지혜자의 권면인 37편을 다시보자.

b. 문학적 기법 :
시편의 전형인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권면을 하는 방식을 택한다 :
(1) 자신의 경험 :
자신의 고난 (3-4)
해결을 위한 결단과 해결 (5)
응답 후의 선포 (6-7)
2) 권면 :
‘너는’ (8) :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
‘너희는’ (9) : 개별이스라엘
c. 신학적 의미 :
악인과 의인은 모두 이스라엘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의인으로 사는 것이 지혜이다.
어리석은 자는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여도 잘 오지 않고 많은 슬픔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두르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인내가 필요하다.

2) 시 37편 : 땅을 차지함.
(분석 안 함)
이것은 전형적인 지혜시이다.

10. 언약공동체의 원리(30p)
● 두 가지 막강한 진리 무기
하나님의 나라가 21세기를 사는 현대사회에 대하여 두 가지 막강한 진리 무기: 영과 공동체
그러나 불신자들은 이 두 가지가 다 죽었다. 그래서 대마초로 영감을 받으려 한다(웃음).
(1) 그리스도인은 영이라는 사실 :
이것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위력을 가진 것이다.
인간이 인간되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이제 우리는 공동체라는 사실 :
이것은 수소폭탄과 같은 위력을 가진 것이다.
인간이 개체적 존재로 나와 너로 존재하는데 이것을 신조처럼 가지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공동체적 존재로 창조하셨다(창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복수)라는 표현으로 사용하셨다.
이것을 26절은 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말하고 ② 인간을 ③ 자기형상대로
이것을 27절은 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남녀가 우리(인간 존재의 복수)로 존재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복수성과 하나님의 형상의 복수성이 함께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복수성
세분 하나님과 우리들이 맺은 언약
그러므로 내(우리)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고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영적)이스라엘 공동체의 능력을 실감하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인간의 영적인 면은 수소폭탄과 같다.
공동체는 세상의 충만 가운데 충만한 공동체이다.

1) 시 133편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권위가 우리 공동체에게까지 이어진다.
a. 구조분석 :
1 : 형제애의 찬양
2 : 형제애의 비유 1
3 : 형제애의 비유 2

b. 문학적 기법 :
감탄문으로 시작하여 두 가지 비유로 끝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진정한 생명(영생)이다.
그러나 자세히 말하면 비유가 아니라 사실적 모습을 나타낸다.
비유 1 : 이스라엘 공동체의 실제적 연합체로서의 시작을 나타내는 사건을 묘사한다.
비유 2 : 이스라엘공동체가 원근각처세 언약축제를 예루살렘에서 행하기 위해서 몰려드는 장면을 나타낸다.

c. 신학적 의미 :
(1) 왜 아론의 머리의 기름이 비유되었나 ?
아론의 대제사장 임직이 공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 바로 기름이 부어지던 시간이다. 이것이 형제애, 공동체 애의 신학적 기초가 된다. 이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이 예식이 행해짐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의 진실 된 하나 됨과 형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출 30:22-33 : 다섯 가지를 혼합한 기름)

(2) 적용 : 세 단계의 역사발전 :

a. 시 2편
다윗의 후손 메시야가 받은 사역의 삼중근거 :
(1) 메시야로서의 권위
(2) 신자(神子)로서의 권세
(3) 철장으로 다르시는 권능

b. 막 1:9-11
(1) 신자(神子)로서의 권위
(2) 첫 메시야(성령의 부음 받음)의 권능
(3) 죄 사함을 이루는 권세

c. 요 20:19-23 :
(1) 신자(神子)들로서의 권위
(2) 둘째 이후의 “메시야들로서의 권능
(3) 죄 사함을 적용하는 권세

2) 에베소서
여기서 (행16:5-6)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이것은 전격적인 것이다.
(행19:20-25)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에베소 교회에서 무려 3년이라는 최고의 기간을 섬겼다.
3시간짜리 강의를 매일 했다고 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처럼 주의 말씀이 흥왕했다.
제2경륜에서는 이스라엘 안에서만 잘살면 되는 중앙에 있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있는데 독일 학자들은 마음이 비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중앙에 통치 기구를 만들고 일 년에 세 차례 가서 은혜 받고 살도록 한 것이다.
이제 세계를 제패한 상황(모든 나라가 무릎을 꿇은 가운데(제2경륜시대(다윗시대)에서
제3경륜의 로마시대에는 에베소로 만족할 수 없고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통해서 영원한
신약 가운데 최고의 책이 에베소서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에베소서에 나오는 영광스러운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있어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쓰고 죽었지만 이 에베소서를 넘어서는 일이 제3경륜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그렇다면 구약적 예루살렘 공동체로 성전을 사모하는 일로 나타나야 한다.
원리와 수많은 방책들을 따라 모이고 행동하여 지배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고 사모하고 사는 일이 있어야 한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나고 이만큼 완전한 교회가 있겠나? 했지만 거시교회, 우주교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 거대한 운동이 일어나 지역과 나라, 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 선교역사로 나타나야
민족과 세계거민에게 나아가 세속적인 것들을 무너뜨리고 정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헬만 도웨벨트가 자기들만의 유익을 위한 제국주의 식민주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다윗이 제국주의를 하면서 주변 나라들의 조공을 받았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 사회를 지배한 것처럼 원리를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리를 이해하고 따라가기 보다는 의심만 가지고 살아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는 역사적 제자도를 바로 배우고 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3) 시 84편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a. 구조분석
1 도입 (만군의 여호와)
2-7 : 하나님의 성전 사모곡 1
2-4 : 참새/제비를 부러워함
5-7 : 시온의 대로의 축복
8 : 기도 (만군의 여호와)
9 : 기도 (방패이신 하나님)
10-11 : 하나님의 성전 사모곡 2
10 : 문지기를 부러워함
11 : 여호와의 축복
12 결어 (만군의 여호와)

분석
1 도입 (만군의 여호와)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2-7 : 하나님의 성전 사모곡 1
2-4 : 참새/제비를 부러워함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5-7 : 시온의 대로의 축복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 기도 (만군의 여호와)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9 : 기도 (방패이신 하나님)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만인제사장
10-11 : 하나님의 성전 사모곡 2
10 : 문지기를 부러워함
(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진실 된 공동체의 나음과 그 안에서 행함을 영광을
11 : 여호와의 축복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결어 (만군의 여호와)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과경(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여기서는 예배당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이 공간에 모이게 된 결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절간에서 모이자고 이야기하고 모이면 교회가 된다.
그러면 안 좋기는 안 좋더라. 어둠의 공간이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b. 문학적 기법
(1) 만군의 여호와 (1) - 도입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8)
방패 하나님(9)
만군의 여호와 (12)- 결어

(2) 성전에 항상 있어서 시인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두 존재 :
참새/제비 -- 성전 문지기

c. 신학적 의미 :
(1) 만군의 여호와 : 전쟁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사사시대의 하나님의 자계시일 것이다.
(2) 주의 집(성전)에 거하는 자 : 제 3경륜의 의미로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늘 섬기는 자일 것이다. 그 마음에 이 공동체가 모든 것인 자의 축복이 근본일 것이다.


11. 언약공동체의 찬양시(33p)
1) 시 100편
형제와 회중, 온 이스라엘, 열방, 그리고 온 땅이 찬양하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관계이다.
a. 구조분석
1-2 : 온 땅의 찬양
3-4 : 백성들의 찬양
5 : 인자와 성실하신 여호와 찬양

1-2 : 온 땅의 찬양
(시100:1-5)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관계 안에서의 영광이 찬양의 내용이다.
찬양의 주체는 언약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관계는 법적 관계, 생명관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3-4 : 백성들의 찬양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언약 맺은 자들을 분명하게 알아야 세상 신들과 구분된다.
하나님은 언약 맺은 당사자(대상)를 향하여 정의롭게 행하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진리, 공의는 항상 언약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인자는 잘못해도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주는 분이다.
여호와와 우리 하나님은 명사문의 축약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5 : 인자와 성실하신 여호와 찬양
(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b. 문학적 기법
온 땅의 찬양에서 백성들의 찬양으로 발전된다. 이런 모습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시 90편 : 일반세상사람 (3-6) --> 하나님의 백성 (7-10))

c. 신학적 의미
(1) 언약의 공적인 쌍방선언의 중요성 : 3절. 이것을 수식해 주는 것이 이어져 나온다
(2) 열방과는 다르게 이스라엘은 궁정과 그 문에 직접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언약의 두 원리인 인자와 성실(chesed weemet)하신 하나님을 찬양

20050720 오전2강 끝

20050720 오후1강 시작
앞으로는 강의료도 정해서 받지 않고 헌금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강사료도 받지 않고 토라학교 운동에 동참하는 사역을 하려고 한다.
청년들의 사경회 성서한국을 겨울부터나 내년부터 서울지방과 지방을 위해 부산경남지역에서 나누어 하려고 한다.

12. 언약공동체로의 회귀(34p)
한 개인이 언약 공동체로의 회귀를 말하는데 개인의 생각대로 공동체를 떠났다가 이리에게 잡혀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여준다.

1) 시 120-122편
여기서 단계별 발전을 본다 :
<1단계> 시 120편 : 문제의 발견
<2단계> 시 121편 : 문제의 해결 - 공동체 !
<3단계> 시 122편 : 공동체로의 복귀

<1단계> 시 120편 : 문제의 발견

a. 구조분석
1 환란중 간구와 응답
2 그 간구의 내용
3-4 대적에 대한 세상방식의 공격
(수사적 질문 / 수사적 대답)
5 급격한 깨달음 (문제는 내게)
6-7 공동체를 떠난 지 오래됨

분석
1 환란중 간구와 응답
(시120:1-122:9)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이리 기운데서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이다.
그러면 이것에 대한 응답이 내용은 어디에 있는가?
2 그 간구의 내용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3)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이것은 저주를 말하는 것이다. 3절의 궤사한 혀(어둠의 영으로)로 인한
기도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을 때 그래 이거나 처먹으라! 고 하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기도를 잠시 중지한다.
3-4 대적에 대한 세상방식의 공격
(수사적 질문 / 수사적 대답)
5 급격한 깨달음 (문제는 내게)
(5) 메섹(터키)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남쪽 아라비아)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이유는 돈을 좀 벌어보기 위해 신사적으로 하지만 악당을 그렇지 않다.
6-7 공동체를 떠난 지 오래됨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돈을 좀 벌어보기 위해 조금 나간다는 것이 벌서 10년이란 세월이 간(세상으로 가면 이처럼 된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늑대들이기 때문이다.

응답은 120편 속에는 없다.
기도(1-2절)하고 기도를 중단하고 세상 방식대로 행동하는(3-4절) 가운데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는 내용(5-7절)이다(시120:5-7) 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
응답은 이 본문과 121편을 넘어 122편에 나온다.
그래서 시편120-122편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b. 문학적 기법 :
(1) 사건과 시간의 발전을 자연스럽게 따라서 내용이 전개되었다.

(2) 여러 가지 내용의 말이 포함되었다 : 직접화법
2 : 기도
3-4 : 이스라엘이 세상과
세상방식대로 싸우는 소리
5-7 : 자각의 소리

c. 신학적 의미 :
(1) 원인은 나에게 :
문제의 발단은 대적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지만 문제의 원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떠난 데에 있다.

<2단계> 시 121편 : 문제의 해결 - 공동체 !

a. 구조분석 :
1 자문
2 자답
3-8 : 제사장의 선포와 찬양
3 : 적용
4 : 원리선포
5-8 : 적용

1 자문
(1) 내가 산(복수로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도움을 위해 먼 산을 바라보는 데 입을 열고 멍하니 바라보는
도움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진정한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닌 멍하니 바라보는
어찌할 수 없어 멍하니 긴 한숨 가운데 있는 중에
2 자답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때 벼락처럼 들려오는 음성이다.
2절은 자문이고 3절은 자답이다(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8 : 제사장의 선포와 찬양
3 : 적용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옛날 부르던 찬송이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것은 똑 같은데 하나는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4 : 원리선포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3-4절의 관계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언약을 맺으시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 말은 나는 이스라엘의 멤버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근본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5-8 : 적용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것이 이전에 불렀던 찬양을 회상해 이제는 이방 땅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그리고 이제 122편으로 넘어간다.

b. 문학적 기법
(1) 수사적 질문과 수사적 답변
1절 : 수사적 질문
2절 : 수사적 답변

(2) 원래는 4절을 먼저 말해놓고 적용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여기서는 하나의 적용을 해 놓고(3절), 다시 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4절). 이어서 다시 다양한 적용을 한다(5-8절).

c. 신학적 의미
(1) 4절의 중요성 : 원리선포이기 때문이다. 모든 적용은 여기에서 발전된 것이다.


<3단계> 시 122편 : 공동체로의 복귀

a. 구조분석
1 축제의 시간을 알림 /
공동체 복귀에 기쁨이 넘침
2 성문 안에 들어오는 성급함
3 성문 안을 돌아봄
4 성안에서의 축제행렬을 경험
5 최종행렬목적지 - 다윗의 보좌
6-9 : 화평의 축제와 인사들

1 축제의 시간을 알림 / 공동체 복귀에 기쁨이 넘침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그러면서 고립무안지경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축제의 시간이 되었다고 말해 그것으로 인해 띌 듯이 기뻐 순례를 행하기를 작정하였다는 것이다.
2 성문 안에 들어오는 성급함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벌써 내 발이 성문 안에 들어가 있는 번개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그가 성전을 생각하자 벌써 발이 성문 안에 있다는 것이다.
3 성문 안을 돌아봄
(3)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그런데 성에 들어가니 내가 없는 가운데 이렇게 변화되었는가. 놀라는 것이다.
4 성안에서의 축제행렬을 경험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성 안에서 시작된 축제의 행렬을 바라보니 행진되는 가운데 전례대로 행하는 가운데 판단의 보좌 다윗 집에 이르게 되었다.
5 최종행렬목적지 - 다윗의 보좌
(5)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그래서 행진이 끝나고
6-9 : 화평의 축제와 인사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그래서 찬양하라 찬양하라는 내용이다.
메섹, 게달의 장막에 있던 그가 예루살렘에 와서 이런 광경을 보고 평강을 기원하며 인사하고 다니고 있다.

120편에 나오는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 응답이 122편에 이루어진 것이다.
죽겠다는 상황에 그 문제의 원인이 되는 자들을 없어짐, 고난이었는데 그들과는 상관없이 공동체에 복귀하는 것으로 응답한 것이다.
공동체를 떠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게 하고
121편은 그 해답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122편은 완전한 해답으로 공동체에 복귀하게 된 것을 보여준다.

순례자의 노래 120-122에서 말하고 이제 본격적인 순례자의 노래인 123-124편이 나온다.
공동체의 원리: 인간이 모여서 공동체가 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공동체이다.
나는 너 없이 너는 나 없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나와 너가 하나 되어 공동체로서의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영성이 깊을수록 개인이 없어지고 공동체성으로 나타난다.
공동체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이 기도하는 가운데 개인에게 응답하는 것은 일시적인 관계이다.
공동체의 기도와 공동체에게로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참된 관계이다.

물론 개인 영성을 부인할 수 없고 중요한 것이지만 개인보다는 가족, 교회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없는 것이 영성이다.
참된 영성은 공동체이다.
청년들에게 악기를 많이 주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순전함으로 세워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이 그들에게 수소폭탄을 주는 것과 같고, 그런 그들이 세상 속에 수소폭탄이 되는 것이다.

b. 문학적 기법
(1) 사건과 시간의 발전을 자연스럽게 따라서 내용이 전개되었다.

c. 신학적 의미
공동체로의 복귀에 대한 가슴 벅찬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다.


13. 언약공동체의 발전(37p)
1) 시 127편
2) 시 128편
이 두 시편은 하나님 나라의 기본단위인 가족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한다.
육신의 가족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 3경륜으로 재해석하여야 한다. 진정한 가족은 영적 가족일 뿐이다. 이 지상의 육적 가족은 일시적으로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 가족의 확대와 증가가 제 3경륜을 지나는 우리들의 축복이다.

“성문” : 법적 소송이 벌어지는 곳이다. 영적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우리의 전사들이 많을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고 승리할 것이다.

14. 언약공동체의 회복(37p)

1) 시 126편
(시126:1-5)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이미 다루었음.

c. 신학적 의미 :
(1)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서 필요한 요소를 보인다 :
1. 하나님의 역사 (주관적 경험)
2. 이방의 증거(객관적 증거)
3.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한 기도
(씨의 귀환)
4. 우리의 공동체적 노력과 열심

2) 시 90편: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기도
이것에 상응하는 것이 이사야40:27-41:1장이다(사40:27-41:1)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
첫째 부르심: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둘째 부르심: (사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
셋째 부르심: (사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넷째 부르심: (사41: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하나의 기도에 네 가지의 부르심이 나온다.
이것은 환관이 되어 끌려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답변에 대한 히스기야의 답변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와 그 백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임을 말하고 그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한다.

첫째 부르심: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피곤한 피조물과 피곤함을 모르는 하나님
피곤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둘째 부르심: (사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
하나님이 말로 변론(rib)은 변호하는 것도 있지만 논고하는 것도 함께 있는 것이다.
(사41:1-6)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 (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흥왕하니깐 악당들이 시기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 때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며 악당들을 치시는 것을 보여준다.
(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와서 (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악한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이스라엘이 부활하고
작년에 이화여대 의 학생회장 선거에 토라학교가 개입했는데 민노당의 배경을 가진 학생과 대립하는 토라학교밖에 배경이 없는 여학생이 두렵게 하는 가운데 기도하며 우여곡절 속에 결국 300표 차이로 이기게 되었다.
(사 41:7)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이전의 전쟁은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다. 이 때 우상의 전쟁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상을 옮기면서 우상이 움직이지 않게 못을 박았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가장 부드러운 음성으로 응답하시는데 그것은 언약을 따라 행하는 자녀에게 응대하심
(사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불순종하니 땅 끝에 흩어졌던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네 가지 위로와
(사41:11-12)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네 가지 대적과 그들에 대한 승리
(사41:13-14)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앞의 솜사탕 부르심과 다른 부르심이다.
그들을 벌레로 취급하시고
(사41: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끝장내는 전쟁으로 승리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
새 타작기계로 지렁이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41:16-20)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자가 창조한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이 놀라운 것들을 보라.

진노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
(시90:1-17)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16)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a. 구조분석
1-2 도입시
3-6 인생일반의 허무 (shubah 3)
7-10 이스라엘의 허무 (평서문)
11 누가 주의 노를 알랴 !
(감탄문)
12-13 진정한 지혜를 간구
(shubah 기원문)
14 아침-평생
15 우리를 괴롭히신 연수대로
16 주의 종 / 저희 자손
17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b. 문학적 기법 :
(1) 핵심단어와 언어유희를 통한 기법:
“돌아가라”(shubah, 3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저주의 말)
“돌아오소서(shubah, 13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축복을 요구하는 말)

(2) 이원적 발전 :
3-10 : 부정적인 것의 발전
12-17 : 긍정적인 것의 발전

(3) 단계적 발전 :
각 문단에서 점진적 발전을 하는 것을 묘사한다. 부정적인 것(3-10)에서도 그러하고 긍정적인 것(12-17)에서도 그러하다.

c. 신학적 의미 :
(1) 공동체 붕괴시에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을 보인다.

(2) 대단히 전략적인 기도이다 :
인간의 허무 -->
더 심한 하나님 나라의 허무 -->
최고로 헛된 삶 (11) : 전환점
기본적 회복 (아침,평생,화년수)-->
근본적 회복 (우리 후손에게)


15. 다윗의 왕권과 시온의 영원함(39p)

1) 시 2편

a. 구조분석 :
말하는 네 주체
1-3 : 열방과 민족
-- 도전적인 말/음모
4-6 : 하늘에 계신 자 (여호와)
-- 엄위로 선포하심
7-9 : 기름부음받은 자 (新王)
-- 위임된 권위/권세/권능
10-12 : 제사장, 예언자
-- 복종의 권면

b. 문학적 기법 :
(1) 네 주체가 하는 말을 직접 인용한다.
(2) 궁극적으로는 이방들의 굴복이다. 결국 마지막 소리(10-12)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c. 신학적 의미 :
고대의 신왕은 그 나라의 신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여기서 다윗의 후손이 여호와의 아들로 입양되면서 공적으로 신의 아들이 되는 절차를 밟으며 신적 권위를 입는 것을 보여준다.

(1) 그의 권위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호와에게 있으며, 자신의 법령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
(2) 그리고 그에게 다스릴 권능과 권세가 주어졌다 (7-9절).

2) 시 132편

a. 구조분석 :
전체적으로 인간의 말(서약)과 하나님의 말(서약)로 이루어졌다.

[A] : 인간(다윗)편의 말(서약)
1 : 다윗을 위한 호소
2-5 : 다윗의 서약(열심)
6-9 : 다윗의 노력
10 : 다윗을 위한 호소
[B] : 하나님편의 말(서약)
11-12 : 하나님의 첫째 맹세
(다윗가계를 향한)
13-18 : 하나님의 둘째 맹세
(시온을 향한)
b. 문학적 기법 :
(1) 서약 대 서약의 구조로 되었다.
(2) 직접 인용으로 생동감을 더했다.

c. 신학적 의미 :
(1) 다윗의 서약은 하나님의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그 서약은 하나님의 서약을 받아내었다. 인간이 능동적이고 하나님이 수동적이었다.

(2) 인간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에 비하여 하나님의 보상은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인생의 한번 노력 --> 영원한 보상

3. Q&A
1) 구약전체에 대한 도표는 없는가?
2) 경륜에 대한 설명을 좀 해주시면
하나님의 방법을 하나가 아닌 4가지 방법으로 하시는 것을 나누어 놓은 것을 말하는 것
하나 하나 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순종과 마지막의 실패
그래서 다음으로
3) 15가지 원리로 나눈 원리는?
공동체의 원리로 나눈 것이다.
그것이 후반부에 분명하게 나타냈다.
전반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단계들이다.
4) 추천도서
C. S. 루이스의 시편산책
김재근 교수의 시편에 대한 것도 개인시편이라고 본다.
W. B. C 주석
5) 다윗이 언약신학을 잘 따랐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그 당시에는 당연하게 잘 알아 행하는 것이다.
마치 남편과 아내가 결혼하여 서로를 그냥 잘 알고 행하는 것처럼
당시의 구약시대 사람들은 당연하게 잘 알았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가운데 하려니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