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설교 10편 모음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외 10편 설교”|주일낮설교
새생명축복 | 조회 29 |추천 0 |2012.01.04. 20:08 http://cafe.daum.net/SermonSchool/HmtY/364

2012년 신년이 시작되면서 시무식을 하고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들을 하고 있는 요즈음에

우리는 새해를 새사람으로 시작하기를 소망합니다. 새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년주일이 한주간 지났지만 여전히 새해의 새모습이 강단에서 선포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 에베소서 4:17~24)

박조준 목사(갈보리교회)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따라서 대답이 각각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돈이라고 대답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사랑이라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지혜라고 말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쾌락이라고 말할 것이고, 어떤 이는 덕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철인 피타고라스는 한 번 주어진 이 엄숙한 인생, 이 존귀한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보람 있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올바른 생각과 확고한 정신자세, 그리고 분명한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할까? 어떤 마음으로 내게 맡겨진 직분과 사 명을 감당할까? 어떤 자세로 민족 앞에 설까? 어떤 심정으로 역사에 참여할까? 어떤 인생관과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갈까?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나의 설자리는 어디며,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며,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내 삶의 의미 는 어디서 찾을까?'

이러한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과 확고한 신념을 우리는 '인생관' 또는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이 고귀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본 태도가 인생관과 가치관의 핵심을 이룹니다.

그 어떤 것이 중요하다 해도,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생명관을 가질 때, 나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바로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인생관을 가질 때, 나의 인생을 보람 있게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때, 올바로 행동하고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직업관을 가질 때, 자기가 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게 되고 일하는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 리가 올바른 행복관을 가질 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민족관을 가질 때,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때,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자연관을 가질 때, 자연을 아끼고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문명관을 가질 때, 위대한 문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세계관을 가 질 때,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올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옳게 보는 것을 정관(正觀)이라고 합니다. 크게 보는 것을 대관(大觀)이라고 합니다. 통틀어 보는 것을 개관(槪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바로 보아야 하고, 깊이 보아야 하고, 넓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보지 못할 때 피상적 판단을 하게 되고, 넓게 보지 못할 때 편협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보는 것은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 하는 데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와 목표가 달라집니다. 인생관은 단순히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 원리가 되고, 판단의 원리가 되고, 지도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올바로 보는 데서 올바른 행동이 나옵니다. 행동의 근저에는 확고한 이론이 있어야 하고, 실천의 밑바닥에는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이론이 없는 행동은 그 힘이 약하고, 철학이 없는 실천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철학이 없는 국민, 신념이 없는 백성은 일어서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유혹 앞에 타락하기 쉽고, 시련 앞에 좌절하기 쉽고, 고난 앞에 낙망하기 쉽습니다. 초지일관의 행동, 시종여일한 생활, 백절불굴의 태도, 칠전팔기의 의지, 이 모두가 확고한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잠언에 보면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상이 없는 민족은 역사의 시련과 위기에 부 닥쳤을 때, 이것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 국민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결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제의 행동보다 오늘의 행동이, 오늘의 행동보다 내일의 행동이 더 새롭고 훌륭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롭다는 것은 부단히 전진하는 사람의 모습이요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야 합니다. 성경에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말이 나옵니다. '낡은 사람과 새 사람'이란 말이 나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새 마음으로 새 생활을 힘쓰는 새 민족이 되어 새 나라를 만들고, 새 역사를 창조하고, 새 세계를 건설해야 합니다. 만물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 사람이란 무엇이고 낡은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새 사람이란 마음이 새롭고 생각이 새로운 사람이요, 낡은 사람이란 마음이 낡고 생각이 낡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낡았다, 새롭다'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나이입니까? 젊으면 새롭고 늙으면 낡았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새로워야 합니다. 젊은 사람이 낡은 생각을 가질 수가 있고, 늙은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생각이 사람입니다. 잠언에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의 생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생각이 바꿔지지 않고는 그 사람이 새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각의 혁명이요, 의식의 혁명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근본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사람이 바뀝니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석학 구너 뮈르달(Gunner Myrdal)은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명작 「국부론」 (國富論, 1767)이 출간된 지 200년 후 이에 대해 「국빈론」(國貧論, 1968)을 썼습니다. 그는 '남아시아 제국민의 빈곤에 대한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의 빈곤은 자원이나 자본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지역 주민의 불합리한 생활태도와 인습적인 사회제도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가 가난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주민들의 의식구조와 정신 자세와 인생관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이 아시아의 전통적인 인간과 는 유형이 다른 새로운 인간형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비능률, 비활동, 비합리의 악을 없애고 능률과 활동, 그리고 합리적인 생활의 기풍과 사회윤리를 일으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국민의 새 인생관 건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도 경제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경제적 방법이나 원리가 아니라 국민의 의식 개혁을 제시한 것은 퍽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이건 한 민족이건, 번영 과 행복에 도달하려면 올바른 인생관의 확립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관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바로 사는 것이냐? 나의 삶의 목표와 사명이 무엇이냐?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어디서 찾느냐?' 이러한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인생관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해서 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제시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은 사회적?합리적 동물"이라고 했 습니다. 프랭클린은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 바로 인간"이라고 밝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생각합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나의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무엇을 위해 바칠 것인지를 결정하고, 나의 설자리를 알고, 나의 할 일을 깨닫고, 나의 나아갈 목표를 옳게 세우고, 내 생명을 높은 이념을 위해 바칠 때 우리는 사명적 존재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나로서 나의 설자리에 튼튼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사명을 자각하면 대장부가 됩니다. 그런 자리에 설 때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고 겁낼 것이 없습니다. 사람 앞에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 힘씁니다. 인생을 정말 보람 있게 살려면 나 자신이 사명적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인생 을 떳떳하고 힘차게,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사명의 사(使)자는 '심부름할 사' 자입니다. 작은 심부름하는 사람을 소사(小使)라 합니다. 나라의 큰 심부름하는 사람을 대사(大使)라고 합니다. 특별한 심부름하는 사람을 특사(特使)라고 합니다. 몰래 보낸 심부름꾼을 밀사(密使)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천사(天使) 라고 부르고, 목사를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자라고 해서 사자(使者)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사명의 사(使)자는 의미심장한 글자입니다.

명(命)자는 '목숨 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란 심부름 받은 목숨, 심부름 받은 생명이란 뜻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느끼는 것을 사명감(使命感)이라고 합니다.

심부름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를 사명적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 인생관을 우리는 사명적인생관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사명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명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명이란 말을 영어로는 'Miss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Missio'에서 유래된 말인데 '보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직분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사명감을 느낄 때 그는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움직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사명감이 우 리를 용감하게 만들고 부지런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만듭니다.

심부름에는 심부름 보낸 분이 있고, 심부름 받은 사람이 있고, 심부름의 목적과 내용이 있습니다. 심부름 보낸 분은 하나님이시고, 심부름 받은 사람은 우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받은 심부름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은 각각 다를 것입니다. 나를 보낸 것은 한국사회의 한 모퉁이를 개조하라고 여기 보냈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고장을 아름답게 하라고, 학문의 깊은 연구를 하라고, 예술의 위대한 창조를 하라고, 후세를 교육시키는 일을 하라고, 훌륭한 사업을 하라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라고,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라고, 인류에게 유익과 편의를 주는 물건을 연구 개발하라고 보내심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이 백성을 영적으로 하나님께 인도하는 일을 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 심부름의 내용과 목적은 각자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깨닫고 느끼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명작을 쓴 사상가 칼 힐티어(Karl Hilthe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인생 최고의 날이 언제입니까? 고시에 합격한 날입니까? 결혼한 날입니까? 첫 애를 낳은 날입니까? 대학에 합격한 날입니까?

아프리카 탐험의 대업을 성취한 리빙스톤(Livingston)은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실현할 때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외쳤습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집념이 있고 열의가 있습니다. 이것을 꼭 이루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요지부동한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그 동안 그가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수고한 일에 대해서 말하면서

"내가 지금 심령의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각 도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습니다"하는 그의 결단을 말했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를 보세요. 세상에서 큰 일을 한 사람들의 일생을 보세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큰 일을 하게 했습니까? 그들이 큰 업적을 남긴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생애의 어느 시기에, 어떤 결정적 기회에 인생의 확고한 사명을 자각했습니다.

사명을 자각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위대한 책을 읽고, 어떤 이는 생활의 절실한 체험을 겪고, 어떤 이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사명을 자각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19살 때 뉴올리언즈의 노예 매매 시장에서 흑인 노예들 이 백인들에게 매매되는 처참한 비극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언젠가 때가 오면 저 놈의 제도를 힘껏 때려부수겠다."

이 충격과 의분과 결심이 아브라함 링컨으로 하여 금후일에 노예해방의 위대한 일을 성취시키게 했습니다. 그의 가슴속에 맺힌 큰 사명감이 그로 하여금 노예해방의 큰 일을 해내게 한 것입니다.

사명에 눈이 뜨이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없습니다.

사명을 자각하는 것은 인간을 새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인간 혁명의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아테네의 등대의 직분을 다하겠다는 사명의 자각이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죄악과 슬픔에서 구하겠다는 사명의 깨달음이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의 영도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사명감, 그것이 낡은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드는 인간 혁명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그것은 거듭나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은 높은 이상(理想)을 가집니다.

이상이 없는 인생은 목표가 없는 여행과 같습니다. 인간은 이상을 가슴속에 간직할 때 그 이상을 실현하려고 밤낮으로 분투 노력합니다. 이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바람직한 목표, 푯대입니다. 이상이 없는 국민은 타락하고 맙니다. 이상이 없는 사람은 자포자기하기가 쉽습니다. 방안에 등불이 꺼지면 그 방안은 캄캄해집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상의 등불이 꺼질 때 우리의 삶은 낮은 차원으로 전락하기가 쉽습니다.

고난을 뚫고 나아가는 용기, 가난에 도전하는 의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씩씩한 기상, 한 번 세운 목표를 끝까지 향해 나아가는 지구력,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굳은 신념, 칠전팔기하는 끈기, 이 모든 것이 마음속에서 푯대를 향해 끝까지 달릴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가슴속에 이상의 샘물이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이상의 태양이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시인 쉴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하거나 비열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품는 뜻에 달렸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년 벽두에 높은 뜻을 세워야 합니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위대한 뜻을 세우고, 위대한 소원을 가집니다. 소원이 얼마나 크고 높으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세우되 큰 뜻을 세우고, 옳은 뜻을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뜻을 세우되 나쁜 뜻을 세우는 이도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습니다. 뜻이 간절하면 반드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과 방법이 생깁니다. 우리가 뜻을 세우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뜻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집중력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태양 광선을 렌즈로 집중시키면 종이나 나무가 탑니다.

뜻을 세운 다음에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꾸준히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을 기르는 것, 실력 양성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실력 경쟁의 시대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그 훌륭한 목표는 한낱 허망한 공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했습니다. 좇아가는 삶의 자세는 정말 귀합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면 열심히 일합니다.

일하는 것을 영어로는 'achievement'라고 합니다. 성취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뜻을 세우고 푯대를 정하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달려가고 좇아가는 것은 결국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은 나무의 열매와 같습니다. 나무가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지식의 열매는 행동이요, 사상의 목표는 실천이요, 뜻과 힘의 결론은 일에 있습니다.

뜻이 뜻만으로 머무르고, 힘이 힘만으로 머무른다면 뜻과 힘에 무슨 가치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가치가 판단되듯이 사람은 그 행동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봉사의 열매입니다.

인생에는 주고받는 원리가 있습니다. 'give and take'의 법칙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을 받는 만큼 주어야 하고 주는 만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고받는 원리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부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서로 비슷해야 합니다. 짝사랑은 비극입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것은 개인주의입니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것을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받을 생각을 떠나서 주려고 하는 삶, 이것은 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봉사주의 인생관입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의 정반대인 이타주의입니다.

봉사주의는 주려고 하고, 주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그것은 차원 과 수준이 높은 삶입니다.

봉사가 무엇입니까? 스스로 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강요당해서 남을 돕는 것은 진정한 봉사가 아닙니다. 자원해서 남을 도울 때 그것을 봉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봉사는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행동입니다. 위대한 인물이란 위대한 봉사를 한 사람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쳐가 왜 위대합니까? 테레사 수녀가 왜 훌륭합니까? 위대한 봉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 새 사람만이 봉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은 봉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봉사를 하려면 여력(餘力)이 있어야 합니다. 거지는 남에게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합니다. 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무엇인가 주려면 풍성하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남에게 많이 줍니다. 많이 주면 줄수록 위대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러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받는 손보다 주는 손이 복이 있습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줄 때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준다는 생각을 떠나, 누구에게 준다는 생각을 떠나, 무엇을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란서 말에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블레스는 고귀한 신분이란 뜻이요, 오블리지는 의무란 뜻입니다. 고귀한 신분에는 의무가 따른다 는 뜻입니다. 특권에는 사명이 따르고, 신분에는 의무가 수반됩니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은 의무와 책임과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남에게 주는 생활에 있습니다.

샘터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듯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서 봉사, 헌신의 따뜻한 햇살이 늘 퍼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 사람이 되는 길 (본문 : 요한복음 3:1~15)

박조준 목사(갈보리교회)

우리가 다 새해에 새로운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새해에 여러분이 마음으로 바라시는 것도 많은 줄 압니다. 민족적으로도 남북의 통일, 정치의 안정, 경제의 재건, 생활의 개선, 문화의 향상 등 여러 가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는 세계의 평화, 기근으로부터의 자유, 우주에 대한 탐구와 정복 같은 것이 새 천년에 우리 인류에게 부과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각 방면으로 새로운 염원과 이 염원을 실천하기 위 한 여러 가지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출발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새로운 출발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 그대로 있다면 아무리 무엇 을 계획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계획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 새 사람은 오직 거듭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거듭난다'는 것을 영어로는 'born again'이란 말을 쓰는데, '다시 난다' 혹은 '중생 한다'는 뜻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출생이라 는 길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새롭게 나는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나오시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새해에 새롭게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새롭게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새롭게 나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니고데모로 말하자면 그 당시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는 또한 그 당시 최고의 정치기관인 70인공회의 공회원이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었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거듭나야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가 있습니다. 우리가 새 천년을 맞이해서 아무리 새로운 계획을 한다고 할지라도 옛 사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가정을 생각할 수 없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옛 일의 반복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여러 번 정부가 바뀌면서 내건 목표는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은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나라 새 사회 가 건설되었습니까? 결국 옛일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가정을 생각할 때도 그렇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도 그렇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때도 똑같은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거듭나는 진리, 다시 나는 진리는 너무 신비하기 때문에 얼른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우리가 체험 할 수는 있지만 어떻다고 설명하기 는 아주 어려운 진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신비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실로 체험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연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도 우리가 그 현상을 다 체험하기는 하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령 물이라는 것이 평상 온도에서는 액체로 있습니다. 그런데 물의 온도가 섭씨 100도가 되면 끓어 기체가 되고, 섭씨 0도 이하가 되면 얼음이 되고 눈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눈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양으로 승화되는지는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생명의 세계에 들어와 보 면 모든 것이 신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늘 체험하는 일입니다만 우리가 음식을 먹는데 어떻게 이 음식이 몸 안에 들어가서 소화되어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머리칼이 되는지 우리가 다 설명할 수 있습니까? 같은 음식인데도 왜 동양사람이 먹으면 머리칼이 새까맣게 나고 서양사람이 먹으면 샛노랗게 혹은 갈색으로 나는지 우 리가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사람이 먹을지라도 젊어서는 머리칼이 새까맣게 나지만 50이 지나 면 꼭 같은 음식을 먹는데도 흰 머리칼이 되어서 나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에 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태 속에 품어서 열 달이 된 다음에 분만을 합니다. 어머니는 그 아기가 뱃속에서 자라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태아가 형성이 되고,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열 달 후에 귀여운 아기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큰 이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상에 아기가 나는 것도 신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다시 난다' 는 것은 신령한 아 기가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나게 되는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다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도 다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바람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을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체험합니다. 겨울에 바람이 불면 얼마나 춥습니까? 몇 해전 정초에 전도집회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갔었는데 워낙 습기가 많고 날이 흐린데다 바람이 부니까 얼마나 추운지요. 그저 한마디로 찬바람이 뼈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지난 연말에도 구라파에 한파가 몰아쳐 와서 100여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면 바다의 물결이 요동합니다. 그런 것을 보아서 바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히브리말 뜻은 '바람'이란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나는 것도 그 결과를 보아서 아는 것뿐이지 다시 나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다시 나는 것도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 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어린아이가 어머니 배 속, 어두운데서 지내다가 밝은 세상에 나오는 것과 같이 다시 난다고 하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서 광명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데기가 변해 서 매미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합니다. 유충이 성충이 된 후에는 고치를 뚫고 광명한 세계로 나아 옵니다. 말하자면 속박 속에서 살다가 자유로운 세상에 나와서 살게 됩니다. 죄의 속박 속에서 살던 우리 심령이 영적으로 자유함을 얻는 곳으로 나아오는 것이 곧 다시 나는 것이라고 비유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나는 것은 너무 신비한 것이기 때문에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시 난 것의 표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 거듭난 것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몇 가지로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신령한 눈이 열리게 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하늘과 땅, 산과 바다를 볼 때 단순히 하늘만 보고 땅만 보고, 산만 보고, 바다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심령이 되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이 자연계를 볼 때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조물주, 대주재 하나님의 권능과 그 영광과 그 지혜와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라고 한 옛 시인의 표현이 맞습니다. 이 시인은 산을 볼 때 산 만 본 것이 아닙니다. 천지를 지으신 조물주 하나님을 신령한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자연계만 새롭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볼 때도 전에 보던 대로 보지 않게 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지으신 영혼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고, 권력의 자리 에 있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보면 불쌍한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볼 때는 반신불수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민망한 마음으로 보고 전도해서 주님께로 나아와 구원받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뜻깊은 새 천년을 맞으면서 해가 뜨는 것을 먼저 보려고 동해안으로 또는 울릉도로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2000년을 맞는 우리의 의미를 볼 줄 아는 눈이 더 필요합니다. 해만 보면 무엇합니까? 이 새 천년을 의미 있게 맞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주위 환경 처지에 살든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누구나 단 한 번은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죽음인데 이 죽음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단순히 암흑과 절망 과 공포로만 보였지만 거듭난 후에 는 죽음 가운데서도 영원한 소망의 문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면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우주관이 달라집니다. 역사관이 달라집니다.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둘째로, 거듭난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전에 없던 기쁨, 전에 없던 평화, 전에 없던 사랑, 전에 없던 감사가 넘쳐남을 느끼게 됩니다. 유충이 변해서 성충이 되면 다 노래를 부릅니다. 매미가 노래를 부릅니다. 모든 벌레가 노래를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주안에서 거듭나 새 사람이 된, 거듭난 심령은 그 심령 속에 새로운 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고 했는데 거듭난 사람의 노래, 새로워진 심령의 노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찬양이 자연히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기뻐하라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기뻐하라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이 뜻깊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이 때 늘 찬양하고, 늘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친히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 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여러분 마음속에, 여러분 가정 위에, 우리 교회 안에, 이 나라와 민족, 아니 온 세계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람이 거듭나면 새로운 성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곧 젖을 찾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영혼은 전에 사모해보 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사모하게 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히 기도할 마음이 생기고, 성경을 읽고 싶어지고,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갈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좀 생기고 시간 좀 생기면 어디에 갑니까? 술 마시는 데 갑니다. 춤추는 데 갑니다. 투전하는데 가서 짜릿한 감정을 맛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거듭 나면 취미가 달라집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면 관심이 달라집니다. 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마는 저는 예수 믿고 다시 난 다음에는 세상적인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외아들로 자랐지만 외로운 것을 알지 못하고 삽니다. 세상의 취미 오락이 없어도 오늘까지 매일 매일 재미있게 살아 왔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려고 하는 마음, 높은 곳을 사모하는 마음, 보다 깨끗한 것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벌레가 벌레로 있을 때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 벌레가 변해서 나비가 되고, 벌이 되 고, 매미가 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본성입니다. 성충이 된 다음에는 밝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것이 그 본성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절 이하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온전히 완성되었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처음 시작이지만 아무리 작게라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보다 깨끗한 곳을 향하여, 올라가려고 하는 새로운 성품이 생겼다면 이 새로워진 성품이 소중한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가운데도 사람을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의 심령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리는 음 악이 있습니다. 가령 학생이 고전 음악을 늘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어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머리가 맑아져서 성적이 향상되고, 그 성격이 온전해져서 훌륭한 인격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나를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요소, 끌어올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거듭나 새 사람이 되면 새로운 성품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거듭나면 그의 삶이 순결해집니다.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더러운 곳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그 영이 소리치기 때문에 회개하고 더러운 자리에서 나아와 순결한 생활을 하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에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듭나면 겸손해집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할 때 2장 5절 이하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입니까? 하나 님의 아들이 가장 겸손해 지신 날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기와 형편이 비슷하지 않으면 상대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시면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삶은 주님의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바울도 고린도 전서 11장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예수 안에서 거듭나기 전에는 말할 수 없이 교만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거듭나 새 사람이 된 후에 완전히 변했습니다. 거듭나기 전에, 자랑으로 생각하던 육신적인 모든 것을 분토 같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주안에서 거듭나 새 사람이 된 후로는 지난날의 교만했던 삶을 다 버리고 겸손을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은 겸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거듭나면 사랑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거듭난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을 벼락을 쳐서 다 없애 버리자고 주님에게 제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던 사람이 오순절 때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고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 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 열매가 무엇입니까? 첫째가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본래 이 '난다' (生)는 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올 때 내가 이 세상에 오겠다 고 해서 온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저 이 세상에 왔으니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실 우리가 거듭나는 것도 내가 거듭나려고 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로지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거듭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하나는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언제든지 거듭나려면 먼저 그 심령이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고 영접하는 그 사람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를 내 구주로 온전히 믿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그런 심령에 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거듭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 것도, 회개하는 것도, 내 힘만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믿기를 원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게 합니다. 내가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지만 아니하면 내가 주를 영접할 수 있고, 내가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 천년에 출발을 새롭게 하려면 오직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의 생명을 스스로 살펴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 자신도 어느 정도까지는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는 첫 주일에 우리 하나 하나가 마음 속의 모든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거듭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거듭나고 우리 기업이 거듭나고 우리 국민 모두가 거듭 남으로 새 천년에 새 나라 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 새사람 (본문 : 에베소서 4:17~24)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에게는 새해가 있습니다. 절기도 있고,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피조물과 다른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또 그 중에서 우리에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 출발 할 수 있는 새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면서 또 한해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일년을 우리가 잘 관리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좋은 한해로 삶을 살아드리며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한해를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좋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이나 또 정부에 봉사하고 있는 각료들도 새해가 되면 새로운 목표를 정하여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국민을 위하여 그런 봉사를 해야 합니다. 추판사나 영화산업이나 금융계나 언론이나 그리고 학문의 모든 분야까지 어디든지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새해가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는 삶. 계획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계획과 삶의 아무 의미를 모르는 삶. 하던 일 그대로 하고 그냥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이러한 삶은 의미도 없고 발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눅 13장에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이 포도원을 주여. 금년에 다시 한 번 나에게 기회를 주셔서 땅을 깊이 파고 거름을 많이 주어서 내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관리를 잘해서 주님에게 많은 열매를 드리겠다고 이러한 자세를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날에 잘못된 것은 회개해야 되고 또 새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우리가 더 좋은 삶을 더 좋은 초장이 되고 우리의 기업이 되도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우리 하나님의 원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 5대 기업이 금년 1년 수출 목표액이 1000억불이라고 하였어요. 전 국가 100대 기업.10000대 기업이 있습니다. 100대 기업도 큰 기업입니다. 그런데도 이 5개 기업이 수출하는 금액이 1천억불이예요. 굉장하잖아요. 그 나머지 기업 국민이 하는 수출액은 350억불 밖에 안돼요. 그러니 전 국가가 다하는 것도 현대 하나가 하는 것 보다 조금 더 많을 뿐이예요. 그러니 대기업이 얼마나 크다고 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있겠지요.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이 어쨌든 잘되고. 금년에도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수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나라 다른 어떤 분야 보다더 하나님의 관심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내 자녀가 어떤 삶을 살고 내 자녀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대해서 하나님은 천하 보다 귀한 생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녀의 삶에 애착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것을 수출하는 회사도 목표를 정하고 이렇게 수출하겠다고 발표를 하는데 어제는 대우에서 발표를 했어요. 대우에서 190억불을 수출하겠습니다. 했어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 금년에는 새 마음을 가지고 새 마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요 목표로 알고. 이러한 목표를 정한 자들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 사람이 귀합니다. 새 마음이 귀합니다. 새 사람은 새 마음을 가져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옷은 많지만은 마음의 새 옷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옷을 깨끗하게 하는 길만이 인생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새롭게 갖는 길만이 우리 인간의 삶을 위대하게 창조적이고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처럼 그릇도 깨끗한 그릇이어야 하듯이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그릇도 깨끗하여 질 때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으로 쓰여 질 수 가 있다고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옛 습관.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늘 유혹에 끌려 살아가는 이러한 삶 욕심을 따라 가는 삶 썩어져 가는 삶 구습을 쫓는 옛사람이 다섯 가지는 우리가 나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 그로 인하여 우리가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 그 열매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의 열매가 될 수밖에 없는 이런 것들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왜 새해가 왔으니까 좋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습관은 좋은 습관도 있고 나쁜 습관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선생님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제도 속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좋은 습관을 배워야지요.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는 습관 습관을 쫓아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시매 기도는 늘 습관이 되도록 몸에 베여 있어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린다. 이것은 습관이 되어 합니다. 항상 기뻐한다. 감사하다. 전도한다. 이것은 우리 몸에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좋은 습관만 있는 게 아니예요.

나쁜 습관도 있습니다. 나쁜 습관은 가르쳐 주는 선생님도 없고 국가 기관도 없지만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것을 하나 하나 몸 안으로 끌어 드려서 내 마음에 집을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나쁜 습관은 배경이 나쁜 것입니다. 성경은 그 나쁜 습관의 배경은 마귀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이런 나쁜 습관을 얽어서 묶어서 매여서 우리 인생을 파괴하고 불행하게 하는데 인생을 완전히 습관이라고 하는 끈으로 묶는 것입니다. 슬 취하는 습관. 화투 치는 습관. 음란한 습관 불 의한 습관. 거짓말하는 습관. 도적질하는 습관 말도 얼마나 나쁜 습관이 많습니까? 그래서 유명한 파스칼은 말하기를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습관은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나쁜 바이러스 균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유산균 같이 좋은 균이 있듯이 나쁜 균도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나쁜 균은 좋은 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암은 건강한 좋은 세포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은 우리 몸에서 내가 망하기 전에 고통을 당하게 전에 빨리 끊고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절로 없어지는 습관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에스싀라일즈는 말하기를 습관은 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긴 것과 같아서 그 나무가 커짐에 따라 글자는 점점 확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늘도적이 소도적 된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을 훔쳤지만 나중에는 큰 도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말씀입니다. 습관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비는 습관만큼 심한 전제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남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회장 되는 분이 바둑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밤낮으로 기원에 가서 삽니다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아다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멘 이라고 하지를 않고 아다리라고 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바둑을 두면 전부가 그렇게 보입니다. 사람 머리도 전부 바둑알로 보인대요. 밥상에 밥그릇도 전부 바둑알로 보인다고 해요. 모든 것이 전부가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찬송 몇 장을 부른다는 것이 항상 APT동을 찾아다니고 하니까 429동 부르겠습니다. 사람 습관이라고 하는 것 무서운 일 아닙니까?

어제 보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담배를 끊기 위해서 나쁜 습관이 몸에 들어와 꽉 매이는 거예요. 꼼짝을 못하는 것예요 습관을 끊을 수 있어요 꼼짝을 못하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며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거예요 담배를 끊으려고 애연가들이 요사이 발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담배끊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어제 신문에 보니 자신이 선전을 해야 한대요. 공개를 해야 된대요. 나는 담배끊습니다. 나는 담배 안 피웁니다. 소리를 치는 것예요 나는 이 저주받을 담배 인 먹습니다. 나는 이 담배 미워합니다. 싫어합니다. 말을 자주 해야 한 대요. 이 저주받을 담배하며 막 소리를 지른대요. 그래야 끊어지는가 봐요 얼마 습관이 무서운 것입니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한 번 습관에 매이면 평생 종노릇 하다가 끝나는 것이지 벗어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쁜 습관은 우리의 아름다원 인격과 성품과 믿음까지 다 삼켜 버리게 되고 양심까지 다 파괴시켜서 우리의 인생을 좌절과 절망과 불행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옛사람을 두고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새해가 아무리 와도 우리 마음에 옷을 갈아입기 전에는 새해의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새차보다 더 새차 보다더 가장 귀한 것은 마음에 새 집입니다. 새 자동차를 태면 한 달 동안은 기쁘지요. 좋은 집에 들어가면 이년 동안은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집은 영원히 우리를 즐겁게 하고 마음에 새집이 있는 사람은 헌집에 살아도 새집 같이 살고 헌차를 타도 새차 같이 차고 헌옷을 입어도 새 옷 같이 입고 다니는 거예요. 왜? 마음이 가장 우선하고 마음이 근본이에요. 내 마음이 천국이 되면 모든 것이 천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마음은 귀합니다. 새 마음이어야 여러분이 인생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세상에서는 새 마음을 어떤 결심이나 인간의 노력이나 철학적인 어떤 이념이나 생각만 바꾸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보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 새 마음은 인간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좋은 마음 새 마음은 요가나 입산수도해서 한 10년 산에 있으면 새 마음이 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죄악으로 더러워진 이 마음은 이 바탕을 어느 누구도 씻을 수가 없고 바꾸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 위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마음은 사람의 노력으로나 인간에 위해서 변화되는 마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새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새 마음으로 만들어 주시고 주님이 내 안에 오실 때 우리가 새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우리 마음을 청소하실 수 있는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주님만 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또 성령이 오셔서 항상 거하므로 주님이 계시는 마음 이여야 새 마음입니다. 주님에 위해서 고쳐진 마음이어야 새로운 마음이지 주님이 없는 마음은 새 마음이 아니예요.

삭개오를 향하여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왜. 누구로 말미암아 삭개오는 같은 삭개오인데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신 거예요. 예수님이 그 마음에 들어가신 거예요.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그렇습니다. 주님이 오셔야 참 변화 새롭게 된 삶 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마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마음입니다. 기독교의 보화는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 라는 거예요. 겉은 변하지 아니하는데 안에서 변화가 먼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안의 변화는 겉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져 있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마귀가 내 안에 있으면서 아무리 위대한 척, 잘난 척, 고상한 척 해도 그 안이 그대로 있는한은 그는 옛사람이요. 썩어져 가는 삶이요. 유혹을 쫓아가는 삶이예요. 주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주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마음 되고 그전에 좋아하지 않던 기도를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쫓아 가게 되고 말씀을 들으면 좋고 감사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이 마음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지게 되는 거예요. 교회에 가면 좋습니다. 예배드리고 싶습니다.

또 그전에 하던 일은 싫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변화를 받았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내 마음에 거하셔서 이런 평화를 주시고 이런 기쁨을 주시고 축복을 내려 주신 거예요 우리 교회에 지방에 법원 지원장으로 계신 집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제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은혜를 받기 전에는 술집에 가면 예쁜 색시가 술을 따러 주고 하면 기분이 좋았다는 거예요 당연한 거지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를 다니시면서 은혜를 받고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을 본인은 몰랐지만. 그러던 어느 날 또 그 술집에 가서 한잔하려고 하는데 너무 놀라운 것은 술도 먹기 싫고 그 여자가 너무 징그럽고, 추하고, 화장이 유치하고, 더럽고, 상대하기도 싫고,.. 누가 가르친거예요? 그 안에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안이 바뀌어 진거예요. 싫은 거예요. 그 전에 좋던 것이 싫은 거예요. 그전에 즐겼던 것이 좋지 않은 거예요. 새로운 좋은 것을 발견했어요. 이 새로운 분이 오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을 떴어요 그게 싫은 거예요. 달라진 거예요.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 놓습니까?

기계처럼 고치는 것이 사람이예요? 그러면 한사람도 불행할 리가 없겠지요. 사람을 바꾸어 놀 수 있는 능력은 내 안에 우리 주님이 오시고 능력의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는 이렇게 새집을 짓고 새 사람으로 새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 신문을 보셨지요? 대도 조세형 감옥에서 예수 믿었어요. 사람이 변화됐어요 이분은 소년원만 20곳을 다닌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나쁘게 살았어요 그리고, 대도 큰 도적놈 이예요 보통 도둑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도둑놈이예요 이런 사람을 누가 고쳐요? 감옥이 고칠 수 있어요? 이 사람은 15년 동안 한 평 반 되는 곳에서 15년을 독방으로 지났어요 여러분 짐승도 한 평 반에 15년을 가두어 놓으면 죽을 거예요. 그래도 얼마나 대단한지 이곳에서 살아남는 분이예요 이 사람의 변화는 누구로 말미암아 왔느냐? 이 사람을 누가 사람의 마음이 기계예요? 고칠 수 있어요? 이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이 마귀인데 마귀를 누가 쫓아 낼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들어가시니 대도의 마음에 대 평안이 오고 주님의 사랑이 그를 주장하게 되고 은혜가 넘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마음 사람을 고치는 능력 바꾸어 놓는 능력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힘의 연약함을 얼마나 경험 하셨습니까? 결심이 되었습니까? 어떤 결심으로, 노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까? 마음 하나 먹으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내 마음에 오시면 세상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포철에 박태준 회장도 지난주에 포항 중앙교회에서 무릎꿇고 세례를 받더라구요 신문에 보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냥 교회만 다닐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귀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이 세상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까짓 마음 하나 잘 먹는다고 잘 살수 있느냐고요 이 어려운 세상에 마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구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불의하게 살아도 온갖 거짓말해도 살기 어려운데 착한 마음으로 어떻게 사느냐? 여러분, 거짓말하면 어려워요 불의하면 어려워요 죄 짓고 살면 이 세상이 어렵다구요 여러분이 고생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잘사는 것이 무엇이냐?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 주님을 모신 마음, 새로은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힘이예요.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워요 여기에 행복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마음을 찾는 거예요 여기에 노래가 있고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어요 우리가 어려서 학교 다닐 때에는 노래가 없었어요 노래를 부르려고 해도 교과서에 노래 외에는 없었어요 교회를 다녀도 제가 주일학교에서 많이 지도도 하곤 했는데 노래가 있어야지요 몇 가지 정도 성탄절이 되면 항상 부르는 것이 ‘탄일종이 땡땡땡 부르고 노래가 별로 없었어요.

여름학교에도 날마다 ’흰구름 뭉게 뭉게를 부르곤 했어요 그런데 요사이는 노래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가스펠도 너무 많아요 그러나 현대인들이 노래는 많지만 마음에 노래가 있느냐예요 없어도 마음에 노래가 있으면 곡을 만들어서라도 노래를 하게 되어져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내 안이예요 안에 기쁨이 없는데 무슨 기쁨이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좋은 옷 입으면 좋아해야 하는데 좋아하느냐 말이예요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면 신나게 살아야 하는데 신나게 사느냐 말이예요 왜 그렇습니까? 마음의 집이 황폐하고 마음의 집이 마귀의 집으로 변했어요 기쁨보다는 근심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많아요 감사보다는 원망불평이 훨씬더 많아요 좌절과 고통과 불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내안에 우리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예요 주님이 내 안에 오시면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마음이 편하다 기쁘다 천국이예요 즐거운 삶이예요 며칠 전에 곽선희 목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소망교회 기도원에 믿음 좋은 장로님이 계시는데 금년 겨울에 산에 올라가셨다가 그만 나무에 부딪혀서 넘어졌대요 그런데 같이 데려간 진돗개가 장로님을 이리저리 돌보고 물을 갖다 뿌리고 짖고 해서 몇 시간 만에 그곳에서 살아나셨대요 그래서 그 진돗개를 쓰다듬으며 고맙다. 내가 너 때문에 살았다. 너무 고맙다 하며 쓰다듬었더니 개가 쑥 밖으로 나가더래요 그러더니 산에 가서 너구리를 한 마리 잡아 왔더래요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는 것 같아 그것을 다려 먹었더니 상처가 다 아물고 괜찮아 지셨대요 너무 고마워서 칭찬하며 감사의 표시를 했더니 그 날에 나가더니 세 마리를 잡아 왔더래요 그래서 곽 목사님도 드시고 그 장로님도 건강을 회복 하셨대요 그러던 중 그 개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하루 이틀 이 되어도 사흘이 되어도 그래서 온 산을 뒤졌대요 혹시 잘못 되었나 하였는데 그 동민들이 노루를 잡으려고 덫을 놓았는데 그곳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 거예요 추위가 심하지 않아서 사흘이 되었는데도 살아 있었던 거예요 데려다가 치료하고 수술하고 하여 둘이 방안에서 잘 살고 있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 안에 기쁨을 가지고 평안을 가지고 살면 좋은 곳이 있어 좋은 것입니까? 항상 주님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아브라함이 삶이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였기에 그 삶에 힘과 축복과 은혜가 온 것처럼 사도 바울의 삶이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며 찬송하며 살아 갈 수 있듯이 사람의 기쁨과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거예요. 우리 마음에 우리 주님을 모신 심령에 모든 축복이 찾아오는 거예요 현대인들의 불행과 고통은 마음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두고 마음이야 오늘 말씀에 있듯이 썩든, 어떤 유혹을 받아 어디에 매여 있는 내 몸만 건강하고 잘 살면 된다라고 하는 마음을 무시하는 데서 오는 거예요. 우리는 마음을 우선하는 축복도 마음에 있고 거룩함도 마음에 있고 영광도 마음에 있고 온갖 좋은 것들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해도 남의 마음에 상처되는 말도 하지말고 내 마음에 상처되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라고 다 보는 거예요? 마음에 도움이 안 되는 영화는 보면 안되요 연속극이라고 다 보는 거예요? 책이라고 다 보는 거예요? 내 마음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보면 안된다구요 마음을 그렇게 하고서는 우리가 잘 살수 없기 때문 이예요 지난 목요일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중학생을 데려 왔는데 정신이 옳지 않아요 어떻게 이렇게 되었냐고 물으니까. 지난 여름에 밤마다 납량특집을 보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가 돌아버린 거예요 요사이 인터넷이라고 아이들이 다 보면 그 마음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그런 것을 마음에 심어보세요 마음이 인생을 다 주장하는데 마음이 center 예요 에너지 모든 힘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데 그러면 무엇이 되겠느냐 하는 거예요 오늘 청소년들의 모든 문제가 학자들은 어디에서 왔다고 보는지 아십니까? 어려서부터 폭력물 만화 비디오를 보는데서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것 보면 나쁜 사람되는 거예요 아무리 인생을 좋게 가려고 해도 마음이 묶여 있는데 어디로 간다라는 겁니까? 행복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이예요? 산을 올라가듯 올라갈 수 있는 거예요? 마음이 매여 있는데 나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우리마음에 우리 주님을 모신 마음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이 마음으로부터 온 인격과 생애와 삶에 모든 에너지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한전에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장급들도 많고 차장님들도 많고, 이번에 고리 원자력 발전소 몇 백만 kw을 일으키는 곳에 전체 본부장으로 우리 피택 장로님이 내려 가셨어요 한전 덕택으로 모두가 고맙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늘 한전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어요 우리 교인들 덕택에 제가 원자력 발전소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한기가 발전양이 백만 kw라고 합니다 소양댐이 그렇게 커도 20만kw 내기가 어려운데 백만kw는 민간인들 이백만 되는 도시가 환하게 켤 수 있고 가정용품을 다 쓸 수 있는 양을 공급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기에 나오는 양이 그렇습니다 원자력이라고 하는 것은 밑천도 자원도 별로 없이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의 심령은 원자력 발전소와 같습니다. 여기에서 온 인격에 사랑을 공급하고 온 지체에 기쁨의 선을 다 보내어 주고 얼굴에도 기쁨을 눈에도 기쁨을 입술에도 기쁨을 에너지를 공급하는 곳이 여기 마음입니다. 여기에서 감사를 내어 보내고 여기에서 우리의 삶을 적극적인 삶과 믿음의 삶을 에너지를 보내어 주어서 지체를 움직여 나갈 때에 마음이 움직여서 마음에 의하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천국의 삶이요 능력 있는 거룩한 삶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 교인이 돌아가셨는데 한양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수술후 일주일 열흘 입원을 해야 하는데 그만 뛰쳐나오고 먹으라고 하는 것도 안 먹고 의사가 마하는 것을 안 듣는 거예요 고집이 세고 그래서 돌아 가셨어요 젊은 나이 40살에..

여러분 의사보다 잘난 척 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지 잘난 것이 아닙니다. 의사의 말에 순종치 않는 것은 똑똑한 삶이 아니예요.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거예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 많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가야 병든 몸도 고침 받고 죄의 몸에서도 구원함을 받고 파괴된 잘못된 인생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어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서 못 쓰는 인간을 쓰게 만들고 죽어 가는 인간을 살려서 고쳐서 새사람을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는데 우리 할 일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되요. 온 세계 잘난 사람들 미국의 대통령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데 우리가 무엇이 잘났다고 주의 말씀을 거스리며 살아갑니까? 주여, 말씀해 주세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것이 새 마음 이예요. 이 마음이 힘있는 마음 이예요. 이 마음으로 일년을 사면 일년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잘 사는 영원히 복 받는 삶이 될 줄 믿습니다.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본문 : 에스겔 18:30-32)

김성광 목사(강남교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장 30~32절)

A. 마음과 영의 새로움에 대하여

1. 마음, 영, 새로움

새해가 우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21세기 새 천 년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2012년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새로워진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날짜만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새해는,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생각, 새로운 결심,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없다면 아직도 묵은해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소망을 갖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게 하옵소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옵소서. 부자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매년 같은 생활만 반복되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소망대로 부자가 되지 못합니까? 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합니까? 왜 생활에 발전과 성장이 없습니까? 마음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도, 행동도 변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 1608~1674)은 “마음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고, 천국을 지옥으로 바꾼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문제는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곧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일본의 경제주간지인〈닛케이 비즈니스〉가 올해 신년호 특집 기사로 ‘기업 100년사?라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세계 100대 기업을 선정해서 25년 단위로 흥망성쇠를 추적한 결과에 의하면,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해서 성공한 기업은 17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개 25년 만에 망했다고 합니다.

성공했다 할지라도 새로이 개척하고 개혁하며 그 성공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빌게이츠는 “생존과 쇠퇴를 가르는 조건은 바로 ‘자기변혁(Renewal)?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쇠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보십시오. 1960년대에 10대 재벌이었던 기업 중에서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과 LG 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근래 3년간 다 망했습니다.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근래에도 외환 위기를 맞아 재빨리 구조조정을 한 회사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30대 재벌 중 대우를 포함한 14개 재벌이 망하거나 소유주가 바뀌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변혁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월이 가고 세대가 바뀔수록 자신을 새롭게 재무장해야 합니다.

미국의 MIT대 교수인 루디 돈부시는 한국의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국경제는 금융시스템과 재벌구조, 관료제도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Revolution)를 이루어야만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이 없으면 한국은 성장하지 못하고 희망이 없다. 과감한 개방을 하고 국제화를 추구해야 한다.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여러 가지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관료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한국은 관료수가 너무 많다. 10분의 1씩 자꾸 줄여 나가야 한다.?

여러분은 한국 경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구조조정, 구조조정? 하고 외치지만, 그 결정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적용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망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결단을 가지고 새해 우리 인생을 새롭게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도 미국식 모델을 따라서 좋은 것은 택하여 과감하게 개척을 해야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한 진정한 사회개혁은 없습니다. 사회만 구조조정을 할 것이 아니라, 개인도 구조조정을 하고 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우리 인생에 있어서 구조조정은 무엇입니까?

2. 본문 배경 설명

에스겔 18장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구원과 회복의 복을 받으라고 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는 바벨론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다 백성들이 1, 2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은 그발강가에 정착하여 유프라테스강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에 동원되어 노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절망과 탄식 소리가 나왔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을 들어, 이 고통은 조상들의 범죄 때문이라며 오히려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임한 심판은 각 개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니 조상 탓하며 핑계하지 말고, 회개하라고 교훈 하였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조상 탓을 합니다. 부모 탓을 합니다. 정치가 혼란에 빠진 것도, 경제가 불경기에 처한 것도 다 남의 탓을 합니다. 그러나 정치인, 경제인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도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겔 18:30겔 18:30). 둘째,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겔 18:31겔 18:31). 셋째,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라고 했습니다(겔 18:32겔 18:32).

B.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1.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 회개, 죄에서 떠남, 패망치 않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鞠問)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悔改)하고 모든 죄(罪)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罪惡)이 너희를 패망(敗亡)케 아니하리라?(겔 18:30겔 18:30)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각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자기 죄 값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한 대로 행동한 대로, 하나님은 공평하게 심판하십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누가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에서 방탕과 타락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곧 죄로 인해서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의를 되살리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잠언 28장 13절에서 솔로몬 왕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을 찾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정치인으로서 정치가 왜 잘못 되었는가, 경제인으로서 경제가 왜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바로 파악해야 나라가 잘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국민성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인생관, 잘못된 사고방식은 우리 인생을 파괴하고 불행을 가져옵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容恕)하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길에서 바른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시 34:18시 34:18).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잠 28:13잠 28:13). 용서해 주십니다(사 55:7사 55:7). 또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욘 3:10욘 3:10). 성령을 주십니다(행 2:38행 2:38).

영국의 시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 1564~1616)는 “회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깨끗한 삶을 수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잘못되고 비뚤어진 삶을 버리고 깨끗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습니다. 왜 죄를 짓습니까?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탐욕과 교만과 불신의 유혹, 시험을 주어서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시작은 보여주지만, 끝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미끼를 이용해 고기를 낚는 낚시꾼과 같습니다. 강태공은 날카로운 낚시 바늘에 잉어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아주 싱싱한 지렁이를 꽂습니다. 잉어는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러운 지렁이를 보자마자 한입에 덥석 삼켜버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낚시꾼에게 잡혀서 죽게 됩니다.

지렁이를 삼킨 결과가 무엇입니까? 탐욕과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이며, 부정부패, 정경유착, 죄악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런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자로 ‘죄(罪)는 ‘넉 四자 밑에 ‘아닐 비(非)자를 씁니다. 동서사방이 다 안된다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은 ‘죄?를 그렇게 이해한 것입니다. 그들은 동쪽으로 가도 안되고, 서쪽으로 가도 안되고, 남쪽으로 가도 안되고, 북쪽으로 가도 안되고, 이것저것 다 해도 안되게 하는 것이 바로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죄는 인간을 망하게 만듭니다. 파괴시킵니다. 방탕하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이 가득한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에 외항선을 타는 마도로스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집사였지만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술을 마시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그가 이미 심각한 암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습니다. 3개월 남았습니다. 간에도 위에도 폐에도 암세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는 3개월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이 집사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살았는데, 앞으로 3개월 후면 나는 죽는다. 그렇지만 지옥에 갈 수는 없어. 3개월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착하게 살아야겠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그때까지 전도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3개월 후면 죽네. 그러나 죽으면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어. 자네도 예수 믿고 천국 가게.?

술 마시고 방탕하게 살던 사람이 전도를 하니까, 친구들은 점점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십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는 비록 3개월밖에 살지 못하지만, ‘하나님, 내 전도에 결실이 있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전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도하면서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1년이 되었습니다.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던 사람이 계속해서 3년간 전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암으로 죽지 않고 그 후로도 30년 동안 더 하나님 앞에 충성?봉사?헌신했습니다.

죄 값으로 죽는다 할지라도 병으로 암으로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충성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용서하십니다.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2.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 마음, 영, 새롭게 함, 변화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罪惡)을 버리고 마음과 영(靈)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겔 18:31겔 18:31)

우리는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내 인생을 망치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죄에서 벗어나, 이제는 몸과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 족속아, 이제 너희는 더 이상 죽을 생각하지 마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 왜 절망하느냐? 왜 포기하느냐? 왜 자살하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삶을 보장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創造)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새로운 영을 주시옵소서. 성령을 주셔서 저를 새롭게 만드시고 저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에스겔 36장 26절에는 “또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새 영, 곧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역사 하시면 돌같이 딱딱하게 굳은 마음도 부드럽게, 온유하게, 새롭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강퍅한 마음, 교만한 마음, 불순종하는 마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 모든 불의한 마음이 녹아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세대(世代)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교만 속에 삽니다. 탐욕 속에 삽니다.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탐욕과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세상 사람들을 따라 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심령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창조됩니다.

또한 우리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삼상 10:6삼상 10:6).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시 51:10시 51:10). 여호와를 앙망해야 합니다(사 40:31사 40:31).

마음과 영이 새로워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 말기의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 354~430)는 “마음이 똑바르면 행동도 또한 똑바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비뚤어지고 잘못되었기 때문에 행동도 비뚤어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동차 핸들과 같습니다. 핸들을 똑바로 하면 차가 똑바로 가지만, 핸들이 똑바르지 않으면 차도 똑바로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잘못 먹어서 인생을 비뚤어지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을 똑바로 먹으면 인생도 똑바로 살 수 있습니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여기저기서 도둑이 들었다고 난리입니다. 앞으로는 도둑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둑은 눈에 보이는 도둑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도둑도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도둑만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집을 철저히 단속하고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관합니다. 도둑 맞지 않으려고 어디에 감출지 고민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도둑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둑은 무엇입니까?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어떤 도둑이 더 무섭고 큽니까? 눈에 보이는 도둑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져가고 우리가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도둑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다 빼앗아 갑니다.

이 악한 마귀 사탄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침범해서 양심을 빼앗아 갑니다.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내 기쁨만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기쁨도 빼앗아 갑니다. 싸움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사랑을 빼앗아 갑니다. 생명을 빼앗아 갑니다. 평강과 안정을 빼앗아 갑니다. 인생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도둑도 쫓아내야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도둑 악한 마귀도 쫓아내야 합니다.

허준 선생이 쓴 『동의보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전의 의사는 능히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했는데, 지금의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 그러나 병을 고치려면 먼저 병자의 마음을 다스린 후에 의심을 없애 주어야 한다.?

허준 선생은 마음이 병드니까 몸도 병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병을 고쳐야 몸의 병도 고칩니다. 만약 몸만 고치고 마음은 병들어 있다면 언젠가는 병이 재발하여 더 심각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마음의 병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슬픔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의심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교만과 탐욕에 빠진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동의보감』에만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의 잠언 4장 23절에도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잠언 17장 22절 말씀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몸이 건강합니다. 그러므로 슬프고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모두 쫓아내고 ‘하나님, 즐겁게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합니다.

어느 가정 주부가 인생살이가 불안하고 두려워 점쟁이를 찾아다녔습니다. 그것도 매주 한 번씩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점치러 가기 전날 밤이면 혹시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점을 치고 난 후에도 나온 점괘 때문에 불안해서 밤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점을 치러 다녔습니다. 매주, 점괘 때문에 운명이 흔들리는 점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주부는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점을 안 쳐서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전에 점쟁이한테 다닐 때는 갈 때도 불안하고 올 때도 불안했었는데, 지금은 교회 다니니까 갈 때도 기쁘고 올 때도 기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기뻐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고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절에 가는 사람, 점치러 가는 사람, 교회에 가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비교해 보면, 그래도 교회에 가는 사람의 얼굴이 제일 훤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말씀과 축복이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 죽는 것/사는 것, 하나님은 사는 것을 기뻐하심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겔 18:3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부유함을 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주셔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국기에 별이나 십자가가 있는 기독교 국가는 다 잘삽니다. 복지국가입니다. 잘 먹고 잘살고 다른 나라를 도와줍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리는 역사, 생명의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비록 잘못했다 할지라도 바로잡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기독교 국가만 되면 하나님께서 살려 주십니다. 1천만 기독교인이 2천만이 되고, 2천만에서 4천만, 대통령부터 온 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크리스천이 된다면, 정경유착은 떠나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넘쳐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는 “우리나라에는 교회도 많고 기독교인도 이렇게 많은데 왜 부정부패가 그리도 많습니까?? 하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네 명 중에 한 명만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머지 세 명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죄악에 빠져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네 명 중에 두 명이 교회에 나가고, 네 명 중에 세 명, 네 명 중에 네 명이 모두 교회에 나가게 되면, 정의와 정직과 성실과 의가 나타나서 한국도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도하면 나라가 삽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며 말씀대로 살면 우리 나라도 선진국가가 될 것을 믿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장 15절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長成)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도박꾼들은 다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꺼번에 돈을 벌어서 횡재하려는 욕심 때문에 자기 재산과 인생과 가정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본분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과 평강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하나님께서는)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왜 악한 사람, 죄인이 버젓이 살아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벼락을 치든지 해서 혼을 내시지 않고.?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인도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살기를 더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신 5:29신 5:29). 올바로 살고(왕상 3:10왕상 3:10), 정직하게 살기를(대상 29:17대상 29:17) 원하십니다. 형통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시 35:27시 35:27). 하나님은 성도가 부자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잠 10:22잠 10:22). 화목하게 사는 것(골 1:20골 1:20),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딤전 2:4딤전 2:4), 멸망하지 않고 죽었을 때 천국 가는 것(벧후 3:9벧후 3:9)을 원하십니다.

뱀 중에는 아스피스라는 아주 작은 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뱀에게 물리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잠이 스르르 올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져서 자다 보면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잠이 들지만, 결국에는 온 몸에 독이 퍼져서 생명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순간적으로는 좋고 기쁘고 쾌락을 느낄지 모르나, 결국은 거기에 빠져서 죽게 됩니다. 악한 마귀 사탄은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 교회에 나가지 말라. 충성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말라. 네 욕심, 네 욕망, 네 뜻대로 살아라.? 하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말이 좋은 것 같지만, 그대로 하면 할수록 멸망과 죽음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짐승하고는 다릅니다. 자동차도 길이 있고, 비행기도 항로가 있고, 심지어 천둥오리도 그들이 날아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도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인생의 길을 정하셨습니까? 어떤 방향으로 나가시겠습니까?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축복의 길이 있습니다. 성공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과를 생각하며 길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사업가가 있었는데, 그는 제멋대로 사는 구제불능 인간이었습니다. 돈을 벌었다가는 까먹고 돈을 벌었다가는 까먹고 하도 변덕을 부리니까, 그의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겨우 평강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교회까지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아내를 데리러 와서는 교회 강대상과 창문을 부수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남편이 어떻게 되었지는 아십니까? 몸에 점점 통증이 왔습니다. 간이 점점 굳어 가는 만성 간경화였습니다. 치질에 걸렸습니다. 노이로제, 공포증으로 시달렸습니다. 완전히 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병 때문에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사업도 실패하여 가난에 찌들게 되었습했습니다.

그가 그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살뿐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살할 생각만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교회 집사였던 제수가 목사님을 모시고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감동하게 하옵소서. 죄를 깨닫게 하옵소서. 겸손하게 하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놀랍게도 그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 주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기도도 했습니다. 작은 죄부터 하나하나 아뢰고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주옵소서.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그는 그 후로 술을 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시기만 하면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새벽 기도까지 나갔습니다. 그것도 예배드리기 한 시간 전부터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 한 달째가 되던 날, 그렇게 딱딱했던 배가 풍선처럼 말랑말랑해지고, 통증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는 그를 괴롭혔던 만성 간경화와 여러 가지 합병증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평강을 얻었습니다. 안정을 취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주옵소서.?

한때는 포악했던 성격이 이제는 변화를 받아 하나님 앞에 충성?봉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온 가족이 구원받게 하옵소서. 남은 인생도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방탕하고 타락했던 사람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인간에게는 포기가 있지만, 하나님께는 포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십니다.

C.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서,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를 체험하고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우리는 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죄악에서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나가게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몸과 마음과 영을 새롭게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이제는 저 스스로가 살겠다고 결심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심을 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겠다고, 잘살겠다고, 성공하겠다고, 부자 되겠다고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인생을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낙엽같이 둥둥 떠내려가는 인생에는 파멸과 멸망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웨터 수출사업을 하다가 파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저기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절망과 허무를 느꼈습니다. ‘인생이 이런 것인가? 아냐, 뭔가 있겠지.?

그런데 마침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 나가서 은혜를 받아 마음에 평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에 잘 나갔는데, 3년째 되던 해에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십일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좋은데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니까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 교회 안 나가. 하나님 안 믿어!? 그는 교회를 뛰쳐나가 3년 동안 다시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내가 그만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가보다. 징계를 받아 마땅하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는 다시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내의 중풍병을 고쳐주시고 반신불수에서 일어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회개하고 기도할 때 몸이 뜨거워졌고 성령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부부가 3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치료와 능력이 나타나서 아내의 몸은 중풍으로 인한 마비 증세가 풀리고 정상적으로 피가 순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만에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게 된 아내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십일조는 시험이 아니라, 축복이구나. 축복의 씨앗이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재물의 축복을 주시는데 나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그는 뒤늦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십의 이조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축헌금도 드리고 열심히 헌신, 봉사, 충성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새 집도 허락해 주시고, 그가 원하던 사업도 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 가정에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때문에 시험에 드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로운 축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흥하기를 원하십니다. 병들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영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작년 보다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갑절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서 기적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두 새롭게 시작하자 (본문 : 마태복음 2:18-22)

전가화 목사(서울중앙교회)

희망 찾기.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기업마다 직장마다 개인마다 국가마다 21세기를 맞아서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희망 찾기의 게임과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국가의 경쟁력도 국민의 경쟁력도 개인의 경쟁력도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우리도 오늘 이 첫 주에 희망을 찾아왔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앞에 나오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가진 유일한 희망입니다. 주님의 희망이에요. 예수의 희망이에요.

『엇갈린 운명』이라는 책을 읽어 봤어요. 오래 전 얘기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라는 무서운 전쟁이 끝난 후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사선을 넘던 젊은이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았구나'. 발도 든든하고 팔도 든든하고 눈도 다 있고 '살았다. 와! 산 거야' 감격 속에 고향에 돌아가는데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전쟁터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그 상황과는 전혀 다른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저거야, 바로 저거야! 신천지야! 새로운 세계야! 이제껏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세계야. 드디어 희망이 있는 거야'

여러분 2011년, 지난 것은 잊어버리고 '저거야!'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내가 바라던 세계야, 내가 꿈꾸던 저 세계야' 그 두 젊은이는 우뚝 섰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무엇이 보였을까요? 한 청년의 눈에는 십자가가 들어왔습니다.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맞아! 저거야. 하나님이 날 인도 하셨어. 하나님이 날 걸음마다 지켜주셨어. 하나님이 날 보호해주셨어. 하나님의 축복이 나와 함께 하는 거야.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꺼야. 저기를 갈 꺼야' 그는 한걸음에 교회를 달려들어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여기에 오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병사는 언덕에 오른 순간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카페와 술집과 여인들이 있는 집이 보였습니다. '저거야! 얼마나 굶주렸던고, 얼마나 그리웠던고. 저거야! 가서 퍼마실 꺼야. 실컷 놀 꺼야.' 달려가서 밤새도록 먹었습니다. 삼십 년이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운명의 갈림길에서 술집을 다녔던 그 친구는 감옥 속에서 신문 한 장을 보고 오열을 하며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야. 바로 이 친구야. 나와 전쟁터에서 손을 잡고 사선을 넘어가던 친구야.' 클리브랜드라고 하는 미국의 22대 대통령의 취임식 날 신문에서 그 친구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언덕 위에서 30년 전, 운명의 갈림길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의 품을 찾아갔고, 한 사람은 술집을 찾아갔는데 그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달라졌어요. 오늘 여러분 이 눈길을 뚫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온 여러분, 축복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운명의 갈림길이 달라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 언덕 위에 서서 일년 후의 나의 운명의 갈림길은 어떻게 될까? 일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떻게 될까? 오늘의 이 시각, 오늘의 결정, 오늘의 이 선택이 일년 후 내 인생 길에 어떤 갈림길을 가져올까?

우리가 믿고 나오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한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에요. 이 시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1년 첫 주, 내 인생의 앞날이 과연 어떻게 일년 후에 어떻게 다가 올 것인가? 더 깊은 세계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봐야 합니다. 저 깊은 생명의 젖줄인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얕은 것,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다 들여다보는 것, 썩은 것입니다. 얕은 물, 다 들여다보여요. 아무 위험도 없는 거예요. 그러나 오염된 것입니다. 냄세 납니다. 거기에는 신비도 보배도 없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 그곳에서는 아직 보화도 있고 신비도 있고 생명도 있고 아직 살아있습니다. 세계의 구원도 나라의 구원도, 회사의 구원도, 집안의 구원도, 자신의 구원도,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심령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내 마음의 깊이에 있다고 그랬습니다. 무릇 지킨다는 것보다 너희 마음을 자키라. 죽고 사는 권세가 네 마음에 있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목회자인 저는 압니다. 목회자인 저는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으면 거짓의 탈을 벗고 자신의 내적 진실에 연결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내적 진실에 연결된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내가 비로소 내적 진실에 연결되는 그런 감격과 고마움과 기쁨에 눈을 뜰 수가 있습니다. 이 시간이 그 시간입니다. 이 날이 그 날이에요. 거기에 빛이 있습니다. 거기에 희망도 있습니다. 거기에 온갖 보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것은 빛은 어두움을 단번에 흡수해 버립니다. 그 캄캄한 밤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밤에 일어나서 막 더듬어야 돼요. 막 넘어뜨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위치를 올려 빛이 들어오면 단번에 어두움이 흡수되고 맙니다.

2012년을 어떻게 맞을까하고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기 위해서 동해안으로 달려갑니다. 왜 그래요? 새로 뜨는 어둠을 정복하고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어린 시절 산에서 자랄 때를 보면 새벽에 만물이 캄캄합니다. 그 산의 계곡에 깊이와 어둠이 가득 차 있습니다. 깊은 골짜기일수록 무서울 정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동해안의 맑은 수평선 쪽에서 붉은 해가 쑥-쑥-쑥- 떠오르면 단번에 어두움은 정복되고 맙니다.

오늘 이 시간에 아무쪼록 여러분의 깊은 곳에 하나님의 둥근 빛이 쑥- 떠올라서 모든 어두움을 정복하여 올 때의 심령과 갈 때의 심령이 다르고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이 다르고 올 때의 마음과 갈 때의 마음이 달라지는 축복된 이 첫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영혼의 빛은 존재보다 언제나 앞서 가요. 존재보다 언제나 귀합니다. 인생은 어둠 속에서 해결해야하는 문제의 숲이 아니라 보여주고 들어내야 하는 신비의 생명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의 실체를 자기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내 남편이 잘 안다. 내 아내가 잘 안다. 아니에요. 자기가 처한 그 실체와 자기가 처한 그 형편은 자기만큼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없어요. 인생은 어차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가 자기를 일으켜야 하는 대업입니다. 듣지 말아야 할 말로 어쩌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참된 힘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 하지 말하야 할 그 말 한마디로 큰 상처를 남에게 주어본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 온 삶이 무거운 힘으로 짓눌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 그 영혼에 빛이 있어라. 그 삶에 빛이 있어라.

오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하면서 문을 확 열어보니 와! 이게 뭡니까? 새해 첫 주에 온 나라에 하나님이 축복의 눈을 내렸어. 와! 멋있는 아침입니다. 이 더럽고 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다 잠겨주셨어요. 복된 아침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닥쳐오는 저항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때는 참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도 저항이 없으면 비행기가 뜨지 못한답니다. 저항이 없으면 비행기가 날지도 못한데요. 그러니 바람의 저항은 비행기를 날개 하는 축복입니다. 사람은 역경을 통해서 배워요. 선조 들이나 동시대 사람들보다 앞서려고 우리 인간들이 발버둥을 치지만 사실은 깊게 보면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회사보다 앞선다, 다른 사람보다 앞선다, 선조보다 앞선다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어제보다 앞서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요. 사람들이 만족, 만족하지지만 사실 만족해하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나 봤어요. 물론 그것도 거짓 만족이었지만 만일 인간이 삶의 목표가 만족이라고 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 만족하면 사회에 자기도취가 되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망하고 말아요. 만족하지 마십시오. 저 하늘 나라 가기 전까지는 이 땅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꿈속에 그려라. 저 아름다운 나라.

장애물 앞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마세요. 장애물을 만나지 않고는 위대한 일을 이루기는 절대로 어렵습니다. 역경은 삶의 스승일 뿐이에요. 가슴을 폅시다. 나는 이 해에도 든든하게 시작한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세요.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너도 세상을 이기라.

유능한 항해사, 유능한 비행사 바람과 파도를 만나지 않고 어떻게 유능한 사람이 됩니까?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수많은 장애이니 수많은 바다니 수많은 파도니 인생의 위대한 항해사를 만들고 있어요. 결국 아무 실패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바보일 뿐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물결이 바뀌면 때를 따라 장소를 따라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내가 이에 하나님의 파도를 타리라. 하나님의 파도를 타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기니라.

내가 오늘 이 시간에 제일 급선무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포도주를 준비했느냐 안 했느냐는 상관없어요. 하나님은 어느 부대에 내 포도주를 담아야 이것이 싱싱하게 갈 수 있을꼬? 포도주를 준비하는 작업은 하나님이 할 일입니다. 그 포도주를 담은 부대를 준비하는 작업은 내가 해야 되요. 똑같은 부대를 가지고 어떻게 담그겠어요.

오랜 세월 목회를 하면서 축복 받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축복이란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이란 변화의 결과일 뿐이에요. 우리교회에도 저와 함께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을 보고 있고 수많은 간증의 사람을 보고 있어요. 축복이란 절대로 하나님이 그냥 주는 기적이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는 기적이 없습니다. 변화의 결과만이 있을 뿐이지. 그 사람들은 은혜를 따라 그 제단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를 '저 말씀이 내 말씀이다' 그것을 붙들고 일주일 사는 그런 변화의 작업이 있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10년, 20년, 일평생을 다녀도 종교놀이만 하고 종교장난만 하는 변화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예수만 믿어서 그럼 종교꾼이지요. 그 사람 속에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어요. 언제 어디든지 심판관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안에 변화의 등대, 희망의 등대가 되십시오.

만일 여러분 예수를 이런 식으로 믿으면 문제가 있단 말이에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계실 때에 구세주를 뽑는 투표가 있었다고 해 봅시다. 우리들의 대통령을 뽑는 것처럼. 그 때에 예수님이 몇 표나 얻었을 것 같아요. 몇 퍼센트나 얻었을 것 같아요? 누가 예수님에게 표를 던졌을 것 같아요? 누가 예수님의 선거운동에 앞장을 서 가지고 선거운동을 했을 것 같아요? 만일 여러분이 그 시대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표를 던졌을 것 같아요? 예수를 믿은 것이 무슨 감정적이고 이런 것이 아니에요. 잠시 잠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찾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에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길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잡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라.

내면세계에 나를 자유케 하고 나를 감격시키는 그 깊은 좁은 세계에 들어가세요. 파고 들어가 보세요. 이 하늘이 무너지고 저 땅이 커져도 내 내면의 세계에 나를 비춰주는 이 진리의 샘이 있기에 양보할 수 없다는 그런 확신과 감격, 이 세계에 사세요.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알고 있어요. 모든 사람은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해명할 의무가 없어요. 하나님이 내 진실을 알고 있어요. 하나님이 내 본 마음을 알고 있어요. 하나님이 내 사명을 알고 있단 말이에요. 신앙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경험대로 그것하고는 상관없는 거예요. 제비는 인간이 뽑아도 결정은 하나님이 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고로 하나님의 결정 앞에 끊임없는 순종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요즘 사회가 가정을 옹호해주는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10년 전만 해도 행복한 가정, 행복한 아버지, 행복한 아들, 행복한 가정을 모델로 삼던 대중매체의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사회환경의 변화로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 치명적인 손상과 손실을 입기 시작했어요. 가정이 역풍을 맞아서 항로를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주소 하나만 열면 마약보다 더 무서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어마어마한 일들이 우리 아이들을 강타하고 있어요. 밤을 새면서 마약보다도 더 무서운 것에 지금 심취되고 있어요. 어느 위대한 부모도, 어느 건축가도, 어느 잘난 부모도,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집을 지어줄 수 없어요. 전파를 막을 수 있는 담을 지어 줄 수 없어요. 아직 지혜도 경험도 판단력도 모자라는 어린아이들이 호기심과 무방비로 염병처럼 번져 가는 새로운 사회환경에 항로를 이탈한 비행기처럼 휘청거리고 있어요. 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역경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여러분의 가정들을 이 일년동안 잘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왜? 한 해 동안에 깨어지는 가정 많아요. 무너지는 가정 많습니다. 아무쪼록 이 일년동안에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내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 아래 든든히 지키시옵소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어떻게 시간마다 바꾸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작업은 내면의 세계에 대한 변화의 작업입니다.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새 일을 행하는 사람, 자신의 내부의 자원에 풍성함을 신뢰하는 사람, 자신의 내부세계에서 나오는 세미한 소리를 시간마다 듣는 사람, 자신의 내면의 지혜와 판단에 대해서 깊은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대탈출을 해보세요.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고있고 지금까지 한없이 어리석게 주장하던데서 탈출해 보세요. 첫 출발을 이렇게 해보자 말이에요. 내 속에 감추인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 하면 탈출해 보세요. 매일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 쓰는 그런 상투적인 방법으로부터 탈출하세요. 이런 사람은 이렇게 상대해야 하고, 저런 사람은 저렇게 상대해야 하고......그것에서부터 탈출하세요. 조작과 기만과 착수와 착각과 술수와 위장술과 위선과 거짓과 가면과 그 응급처치식 임시변통식 빙빙 돌리는 말장난, 남의 속을 테스트하기, 허세와 허풍과 과욕과 편당과 편파와 허황과 허세와 방종과 탐욕을 다 털어 버리고 내면세계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진실과 한번 연결해 보세요. 모든 낡고 냄새나는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것을 시작하세요.

인생을 헛살지 마세요. 헛되고 헛된 것에 미쳐 살지 마세요. 모든 일들이 내면의 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 사실을 잠시도 잊으면 허세와 허풍과 자기 의에 붙잡혀서 속고 사는 겁니다. 이 일을 행할 때 정말 내면의 평화와 영혼의 풍요가 솟아나는 영혼의 자유를 표현하는 "오! 이거야! 이거야!" 오늘 나는 진실을 표현하고 있어! 오늘 나는 이 사람 앞에 삶의 진실을 표현하고 있어! 오늘 나는 이 사람과 삶의 진실을 얘기하고 있어! 라고 하는 이런 감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이런 기쁨의 세계를 한 번 봐야 되는 것 아니에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라! 영적인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유연하고 대단히 개방적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적인 사람이 절대로 되지 마세요. 종교꾼이 되고 나면 그 표정이나 언어가 특이해집니다.

제가 목회를 35년 하면서 정말 감사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올바를 행동지침을 알려고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 무너지고 실수하고 고통과 고민가운데 살지만 어떤 사람이든 정말 내면 깊은 곳에 올바른 행동지침을 찾고자 하는 열정이 있더라구요.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에요. 사람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고 하는 삶의 열정도 있습니다. 막 사는 사람 같아도 일대일로 만나 얘기해보면 목사님 나도 달라지고 싶은데 나도 내 남편에게 내 자식에게 나도 더 좋은 사람인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하는 그런 열정들이 다 있어요.

이 세상에서 올바른 삶과 분리된 우수함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오늘 첫주를 어떻게 시작할까요? 진실하게 시작합시다. 바르게 시작합시다. 올바르게 나가십시다. 이거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성품이란 한 인간이 갖고 있는 마지막 힘이 뭘까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성품입니다. 한 인간이 마지막 저 한계상황의 밑바닥에 갔을 때 백(background)이 다 떨어지고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자기 주위사람이 다 떨어졌을 때 아무 것도 없을 때 마지막 한계상황의 꼭지점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마지막 힘이 뭘까요? 그것은 성품입니다. 좋은 성품은 그 형편없는 밑바닥에서도 그대로 행동합니다. 못된 성품은 거기서 돈 날아가고 지위 날아가면 엉망이 됩니다.

우리가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믿음을 갖는다는 게 무엇이냐? 우리가 매일 말씀을 듣고 성령에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내 성품을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만들어 가는 해산의 고통입니다. 종교놀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품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성품보다 큰 영향력도 없고 성품보다 더 큰 힘도 없어요.

변화는 사실 논리적이기보다 심리적입니다. 왜 이렇게 변화가 힘들까요?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 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조직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인 원칙의 지배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아요. 다 자기가 영향 받고 조절된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변화란 사물을 과거와 다르게 볼 수 있는 자기 내적인 심리적인 회복이 우선되지 않으면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여기 와서 은혜를 받아야 됩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기도를 하다가 말씀을 듣다가 찬양을 하다가 과거를 과거처럼 보지 않고 과거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이 회복이 되니까 내 시각이 달라지니까 변화가 오더란 거예요.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를 보는 내 방식이 문제일 뿐이에요.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내적 능력이 회복만 된다면 변화는 언제든지 어디에서도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보는 시각과 성품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요. 끝없이 예수를 믿으면서 내 성품을 보는 시각이, 온유하게 보는 시각이, 겸손하게 보는 시각이, 정말 역사적으로 옳게 단계적으로 장기적으로 다각적으로 원칙적으로... 무슨 일을 보든지 다각적으로 보자, 무슨 일을 보든지 장기적으로 보자, 무슨 일을 보든지 나도 가고 역사도 갈 때, 먼 훗날 그 때 그 후배들이 그 후예들이 그 때 참 귀한 일을 결정했다. 원칙적으로 보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를 발생시킨 그 당대의 사고 방식과 시각으로는 절대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 때 그 문제는 그런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그 문제가 풀려요. 오늘은 오늘의 시각이 필요하고 어제는 어제의 시각이 필요한 거예요. 나라가 왜 꼬입니까? 어제의 시각을 가지고 오늘의 문제를 다 진단하고 있어요.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사회가 왜 이렇습니까? 여러분! 언덕 위에서 2001년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들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세요. 과거의 시각으로 과거의 문제나 오늘의 문제를 풀 수 없어요. 주여! 내 눈을 열어 주께서 예비하신 크고 귀한 것을 보게 하소서!

변화가 어렵습니다. 더 훌륭한 목적과 미래를 위해 현재 생각하고 원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선택한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까지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행동의 선택의 자유, 우리가 2001년을 어떻게 할까? 행동의 선택의 자유, 행동의 선택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내가 행동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자유까지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비는 내가 뽑아도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해를 어떻게 시작할까? 겸손하게 시작하세요. 온유하게 시작하세요. 내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깊이 들어야 합니다. 이 해를 무엇가지고 시작할까? 돈 가지고 시작하는 것도 백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해를 온유한 성품으로 시작하세요. 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겸손한 자가 하늘을 움직입니다. 이 해를 어떻게 시작할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며 시작할까? 제일 중요한 선택, 마음의 선택입니다. 온유하게 시작하리라! 그 어느 해 보다도 겸손하게 시작하리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인생의 가장 큰 상처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행동이다. 그 모진 말 한마디다.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행한 실수다. 그것도 다 맞는 말이 아니에요. 힘들지만 그것보다 정말 더 힘든 것은 그런 실수에 대해서 내가 왜 겨우 그렇게 어리석게 반응했던가 하는 자기 반응의 방식입니다. 온유하면 돼요. 온유하면 반응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우리 회장님 이말 잘 들어요. 겸손하면 방식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모세나 우리 예수님의 성품을 온유한 성품이라고 했어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거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자가 세상을 정복합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보다도 더 불쌍한 사람은 누굴 까요? 시력은 있어도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이에요. 이제 2001년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첫발을 디디며 제일 불쌍한 사람은 누굴 까요? 시력은 있으되 꿈이 없는 사람,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드러운 눈, 부드러운 혀로 다시 한 번 보세요. 잠언을 보면 부드러운 눈과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으니라! 라고 했어요.

2001년 첫 주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내용물이 뭡니까? 술입니다. 담을 용기가 뭡니까? 질그릇입니다. 그릇이고 부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릇으로 명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용하는 그릇에 따라 내용물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릇이 내용을 좌우한다는 거예요. 내용이 그릇을 좌우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2001년을 이 말씀을 듣고 시작해야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2001년을 복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다할 수 없는 제일 좋은 해가 되게 하시고, 아니에요.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너의 그릇이 담을 만 하냐? 그릇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릇이...내용물도 중요하지만 새 그릇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새 그릇을 만드는 작업을 우선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용물을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릇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릇까지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이 땅을 생명이 살수 있는 생명의 터를 하나님은 허락하지만 터에서 어떻게 견디느냐 하는 것은 내가 해야하는 작업입니다.

새 포도주는 아직 변화가 무쌍합니다. 아직 발효를 하고 있습니다. 부대에 넣으면 부글부글 끓습니다. 팽창합니다. 예측 불능합니다. 특별히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중동지역이니까 거기다 새 포도주를 가져다 낡은 부대에 넣으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래서 팽창이 되면 펑 하고 터집니다. 여러분, 그릇이 잘못되면 펑! 하고 터져요. 새것을 집어넣으면 그릇도 버리고 새 포도주도 버려요.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한 마디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그 비유가 대단히 의미가 깊어요. 낡은 부대에 넣으면 수용력이 없어서 다 터지고 새 포도주까지 버려요.

그런데 새 부대는 어떻습니까? 새 부대는 짐승의 새로운 부대에 새로운 것을 탁 넣으면 아직도 짐승의 탄력성이 있어요. 변화와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어요. 내용물이 변할 때 그 가죽부대도 변해요. 내용물이 커질 때 같이 커져요.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에 아직 가능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막한가운데에 갖다 놓으면 거기서 포도주가 부글부글 끓으면 이것도 같이 부글부글 끓으며 늘어납니다. 이것도 막 팽창하면 가죽부대도 젊었기 때문에 막 팽창합니다. 싱싱하기 때문에 팽창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본문 : 누가복음 9:57-62)

김성광 목사(강남교회)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장 57~62절)

A. 뒤를 돌아봄에 대하여

1. 뒤를 돌아봄 / 앞을 향함

사람이 살다보면 잃었다가 다시 찾는 것도 있지만,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 번 쏘아버린 화살, 급하게 내뱉은 말, 그리고 무엇보다 황금 같은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은행에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밝은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과 어두운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중팔구, 전자는 예금하러 들어오는 사람이고, 후자는 대출금을 쓰고 이자를 물러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똑같이 은행에 와도 희망이 있는 사람은 표정이 밝은데,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표정이 어두운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게이트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게이트 국가‘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청와대나 국정원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 막강한 권력과 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욕심과 탐욕에 빠져서 뇌물 비리에 줄줄이 연루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그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게이트가 하도 많으니까 ‘사탄 게이트‘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은 어차피 지옥에 갈 테니까 내버려두고 교회에 나가는 성도들에게만 들어가서 로비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성도들에게 절망적인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제 끝났다“고 말하게 만듭니다. 또한 부정적인 사고를 갖게 합니다. 아직도 기회가 있는데 해 보지도 않게 만듭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제대로 공부해 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과거의 어두운 면을 보게 합니다. 밝은 면도 있는데 “내 주제에 뭘.“, “이제 나이도 먹고 늙었는데.“, “나는 아는 것도 없는데.“라고 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포기하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게이트‘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와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고 공격하고 훼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용기를 줍니다. 사랑을 깨닫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을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승리하여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3장 18절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옛날 것을 생각하며 집착하면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도 잃어버리고 빼앗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2. 본문 배경 설명

본문 누가복음 9장 57-62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신 후에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쟁기를 잡은 농부의 비유‘를 들어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오병이어의 기적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기 위해 온 세 사람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자는 쟁기를 잡은 농부처럼 뒤의 것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 말씀에 어떤 진리가 숨어 있는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1.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 세상 부귀, 명예, 안락함을 포기하고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7-58눅 9:57-58)

첫번째 사람은 ‘한 서기관‘(마 8:19마 8:19)입니다. 당시 서기관은 율법 학자로, 높은 학식과 부유한 재산과 권력을 모두 가진 최고 상류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서기관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만은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영광을 누리고자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하고 간청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잠자리가 없어서 길에서 유숙할 때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다 응답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절망에 처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겠다고 온 사람에게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자신을 따를 것인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욕심과 재물, 특히 불의한 재물과 죄악 된 것을 포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가질 수 있는 세상의 부귀 영화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욕심과 탐심을 버림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선택하고 충성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도 어떤 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또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자,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러나 그 사람은 큰 부자인고로 그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까, 세상의 재물이 더 중요합니까? ‘하늘에서 면류관을 쓴 자 중에, 이 땅에서 가시관을 쓰지 않은 자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꿔 말해서 이 땅에서 가시관을 쓴 사람은 하늘에서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생할 때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생과 고난이 끝나고 나면 영광과 승리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IMF 이후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도 복권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박의 부푼 꿈을 안고 그들이 한 해에 쏟아 붓는 돈은 6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복권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고 판매하는 ‘복권방‘이라는 신규 업종이 등장했습니다. 주요 고객은 30~50대 남성인데, 매달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어치의 복권을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권 당첨 확률은 4백만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바늘구멍 같은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우리의 최고 희망입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는 더 큰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 내가 맡은 일에 열심과 충성을 다할 때 얻는 보람은, 어떤 면에서는 복권이 주는 희망보다 오히려 더 많은 희망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10년 동안,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쌓아야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를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돈으로 약 18억 정도를 가져야 행복을 느낀다는 통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빌딩이나, 아파트 2채 정도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18억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있어야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수억만 가지면 행복하겠다고 했던 사람도, 그 다음에는 수십억만 가지면, 수백억만 가지면 행복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은 밑도, 끝도, 한도 없습니다.

행복은 물질이 가져다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풍족하지 않다 할지라도, 마음속에 천국이 있으면 천국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청주중앙순복음교회 김 집사님(여)의 간증입니다. 집사님의 남편은 엑스엘파이프를 제조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자꾸 어려워졌습니다. 500평 되는 마당에 재고가 잔뜩 쌓이도록 물건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빚이 점점 늘어나자 회사뿐만 아니라, 집안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편 옆에서 그저 걱정만 하다가, 자기도 뭔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고 사업 자금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40일을 작정하고 아침을 금식하며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 단합예배 등 모든 예배에 다 참석했습니다. 틈만 나면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미 재고가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계속해서 물건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40일 작정 기도가 끝나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동안은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었는데,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주문 전화가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물건을 더 생산해도 다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 달만에 그 많던 파이프가 거짓말같이 모두 팔렸습니다.

기적 같은 축복을 받고, 집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을, 우리 회사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걱정만 하고 계시겠습니까?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에 떨기만 하시겠습니까? 인생을 포기하고 낙심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 세상의 일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우선 순위를 두어라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 9:59-60눅 9:59-60)

두번째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좇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청했습니다. 이 사람의 부친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나이 먹은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부모를 핑계삼아서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모세의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 계명(출 20:12출 20:12)에 근거해서,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는 장례식을 무엇보다 중요한 종교적 의무이자 기본적인 의무로 여겼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을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자기를 위해 떡을 만들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바쳐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먼저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축복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 인간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고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할 것은 나중에 해야 하는데, 순서를 바꿔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왕상 17:13왕상 17:13). 소득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대하 31:5-6대하 31:5-6). 첫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잠 3:9-10잠 3:9-10).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 6:33마 6:33).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눅 10:40-42눅 10:40-42).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행 12:23행 12:23).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갈 1:16갈 1:16~17).

“자기의 길을 가려고 노려해 보라. 그리하면 그대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길을 가도록 노력해 보라. 그리하면 그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위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저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저버리십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 영국인의 우선 순위는 ‘품위‘입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 미국인의 우선 순위는 ‘질서‘입니다. 아시아의 경제대국 일본, 일본인의 우선 순위는 ‘친절‘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한국인의 우선 순위는 ‘체면‘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까? 품위입니까, 질서입니까, 친절입니까, 아니면 체면입니까?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먼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 박사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현재 미국에서 7년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성공하려면 성공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 7가지 습관 중에는 ‘중요한 것부터 시작하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학생도 숙제하고 노는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데, 놀고 나서 나중에 숙제를 한다는 학생은 공부를 잘 못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은 어디에서 차이가 납니까? 아이큐가 아니라, 무엇에 우선 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이 중요합니까, 사랑이 중요합니까? 먼저 재물을 추구하는 부부는 욕심 때문에 불화가 생깁니다. 돈 때문에 부부 관계가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더 중요시하는 부부는 행복합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쉬는 것이 중요합니까,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일은 하지 않고 쉴 것만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먼저 일하고 쉬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일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일이 중요합니까? 세상의 일보다 먼저 천국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때문에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체면 때문에 결혼한다면 불행해집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람 때문에 직장을 선택한다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월급이나 보너스 때문에 직장을 선택한다면 그 직장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청주중앙순복음교회 변 집사님(남)의 간증입니다. 경찰관이었던 집사님은 주일에만 교회에 출석하는 형식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고시에 비유할 만큼 어렵다는 승진 시험을 위해서 만사를 다 제쳐두고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승진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친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은행에서 천만 원을 대출 받아 빌려주었는데, 그 친구가 행방불명되어 자기가 대신 빚을 갚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집사인데, 이렇게 살면 안되지. 이럴 때 믿음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여름휴가 때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그에게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일예배에만 참석하는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까지 나갔습니다. 십일조도 안 드렸던 사람이 정확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성가대에 가서 봉사를 했습니다. 구역장도 맡았습니다. 교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덧 다시 승진 시험 날짜가 돌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봉사를 하다 보니까 공부를 전처럼 많이 하지는 못하고 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에 덜컥 합격을 했습니다. 그는 경감으로 승진을 하고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것이지, 내가 공부해서 붙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무슨 봉사를 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전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경찰관이 교회에 가자고 하니까 모두들 거절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70명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보람 있고 기쁜지 몰랐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전도 사명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축복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응답 받고 사랑 받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식이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기쁘게 해야, 부모가 고생을 해서라도 자식을 자꾸 도와줍니다. 자식이 공부도 안 하고 말도 안 듣는데 부모라고 애써 비싼 등록금을 내고 싶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축복 받을 만한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고 충성해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축복 받을 만한 믿음도 없고 충성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하고 부르면, 하나님도 ‘야 바쁜데 귀찮다. 너보다 더 똑똑하고 열심 있는 사람도 많은데.‘ 하고 제쳐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응답을 받으려면 응답 받을 만한 열정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축복 받으려면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역사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석 권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설교를 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고, 직분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늘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식욕도 없어지고 뭘 먹으면 소화도 안됐습니다. 살이 삐쩍 말라 미라처럼 뼈만 앙상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는데 의사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신경성인 것 같은데 병명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집사님은 겁이 나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러다가 제 명도 못 살고 죽겠어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권사님,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먼저 직분을 감당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권사님은 자기가 죽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전도를 했습니다. 매주일 2~3명씩 전도해서 6개월만에 20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살이 붙었습니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보약을 먹었는지 가르쳐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무슨 약을 먹었습니까? 전도약입니다. 여러분도 전도해 보세요. 20명 전도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성격이 달라집니다. 신앙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권사님은 계속해서 기도하며 전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만 부려서는 안됩니다. 꾀만 부려서는 안됩니다.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3.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 세상의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1-62눅 9:61-62)

세번째 사람은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고 기왕 쟁기를 잡았으면 씨를 뿌려야지, 이 생각 저 생각 딴 생각하다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들었으면 끝까지 싸워야지, 전쟁이 났는데 싸우다 말고 가족한테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하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칼을 들었으면 끝까지 수술을 해야지, 수술하다 말고 딴 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환자를 고치겠습니까? 학생이 공부하려고 연필을 들었으면 끝까지 공부를 해야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무슨 공부를 하겠습니까?

창세기 19장 26절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곳에 살고 있는 롯에게 천사들을 보내어 곧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동이 틀 때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들을 밖으로 이끌어내고, 절대로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풍요했던 옛 생활을 잊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된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할 사람이 자꾸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리기 선수가 자꾸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표를 정했으면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한 번 결정했으면 후회하지 말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지 말고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8-20절에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단합니다. 그물을 팔지도 않고, 누구한테 맡기지도 않고, 누가 가져가거나 말거나 그냥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4장 21절에도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은 나머지를 버려야 합니다. 나머지를 다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리면 새 역사를 전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푯대입니다.

특허를 1000종 이상 내서 ‘발명왕‘이 되었던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Thomas Alva Edison ; 1847-1931)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는 모두 잊었다. 나는 미래만 보고 있다.“

그는 이미 받은 특허만으로도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것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발명을 시도하여 더 많은 특허를 낸 것입니다. 목표를 정한 사람은 앞으로 달려갑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믿으며, 자기의 욕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년에는 어떠했다고 말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발전과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전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게 능력 주셨사오니, 그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강철 왕 카네기(Andrew Carnegie ; 1835~1919)는 ‘실패한 사람들의 10가지 공통점‘을 제시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습관을 가졌듯이,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과거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사람은 실패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2002년이라는 새해가 주어졌습니다. 새로운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전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결단력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성공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에 체격도 왜소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도, 그의 부모는 별로 기대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에게는 “좋지 않은 과거는 깨끗하게 잊어버리자. 오늘 내게 맡겨진 일은 반드시 오늘 해내고야 만다.“라는 남다른 인생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그는 남북전쟁 때 책임감과 용맹성을 발휘해 큰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모도, 주변의 친구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왜소하고 못생기고 보잘것없는 소년이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목표를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 다른 사람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그랜트 (Ulysses Simpson Grant ; 1822~1885) 대통령입니다.

한꺼번에 큰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욕심을 버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며 열심히 살다보면, 결국은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C.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하여 나아가서 축복 받는 성도가 되자

세상적인 것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 하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말고, 세상 것에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재능과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 봉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게 하시며, 복의 근원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교회에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성도로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집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성가대, 교회학교, 어느 부서에서든 하나님 앞에 열심히 충성하고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점점 더 큰 역사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서울목양교회 하 집사님(여)의 간증입니다. 집사님은 출석하던 교회에서 성전을 짓는다고 하여 건축헌금을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1남 1녀를 둔 평범한 주부에 불과하고 형편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도 건축 헌금 좀 많이 드려서 성전을 건축하는 데 보람을 느끼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무렵 아들 동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민간요법으로 직접 한방 약재를 이용한 약을 만들어 아들에게 발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약이 뜻밖의 효과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통한 임상실험을 거친 뒤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그 후 친구 사무실 한쪽에 책상을 하나 놓고 ‘루디아바이오테크‘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안전성을 입증 받아 미국과 일본에 수출도 했습니다. 그래서 연매출 수십억 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건축 헌금을 드릴 수 있는 물질을 주시기를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는 평범한 주부를 특허발명가로, 여성 기업인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건축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건축 헌금을 드리겠다고 기도만 해도 축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만 온전하게 잘 드려도 축복을 받습니다. 금식기도만 잘 해도 병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 하나만 잘 붙들어도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성으로 설교 듣고 교회에만 왔다갔다하지 마시고, 한 말씀이라도 목숨 걸고 지키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주시며,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를 우리에게 반드시 보여 주십니다.

일단 쟁기를 잡았으면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핑계 대고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는 함께 하시지도 않고 축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를 잡으면 끝을 내야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끝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결실, 축복의 결실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일 하며 전도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쓰임 받는 일꾼 되자 (본문 : 마가복음 1:16-20)

김조 목사(삼락교회)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원하시어 이 말씀을 듣게 하시고 또 그 역사에 쓰임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때에는 없는 것 있게 하시고 쓰실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쓰실까요? 돈, 명예, 권세 있는 사람도 쓰시겠지만 그런 조건을 보시는 하나님은 아닌 줄 압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시어 12제자를 훈련시켜 세계 복음화의 기초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12제자 중에서도 많이 사랑 받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들 형제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때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들을 부르셔서 쓰셨을까요? 그들은 모두가 어부였습니다. 사회적인 신분이 높지도 않았고, 재산이 풍부하거나 지식이 많았던 것도 아니며, 문벌이나 성격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이곳에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요15:16요15:16, 갈1:15갈1:15, 엡1:4엡1:4) 우리보다 조건이나 환경이 좋으신 분 얼마든지 있으나 하나님께 선택받았음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격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를 택하여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니(고전1:26-28고전1:26-28) 그 은혜와 사랑 앞에 날마다 겸손하게 순종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차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고 더욱 충성스럽게 일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역사를 이루시기에 쓰임 받는 일꾼도 다양합니다. 크게도 쓰시나 작은 일도 해야 하기에 학벌 좋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학벌은 좋지 않으나 건강한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모세나 바울사도가 큰 일은 했으나 한결같이 말을 못한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나섰으니 이제 쓰임 받는 자가 되십시다. 지금부터 어떤 자를 하나님이 쓰시는가 생각해보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일하고 있는 자를 주님이 쓰십니다. (16, 19절)

그물을 바다에 던지고 있는 작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자를 부르셨고 고기잡이 준비로 그물을 깁고 있는 일하는 자를 부르셨습니다. 능력이나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일하는 자를 쓰시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아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그대로 남겨 똑 같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본전을 했음에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즉 힘, 손, 재능, 기타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고 노력하는 자를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밥을 먹으려 할 때에는 서툴러서 지저분하게 먹지만 자꾸 하려고 할때에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걸어 다니는 것도 처음에는 넘어지고 깨집니다. 그러나 자꾸 일어서서 걸으려 할 때에 잘 걷게 되는 것입니다. 갓 시집온 여자분들 반찬 만드는 솜씨가 처음에는 참으로 볼품 없습니다. 그러나 못하는 데도 계속해서 만들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금년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으니 안돼, 못해 하고 있어서는 버림받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심으로 쓰임 받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즉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18, 20절)

“곧“이라는 말은 즉시 또는 곧바로 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름에 즉시 순종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믿음이었고 즉시 순종하는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는 결단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약2:7약2:7)을 쓰셨습니다. 돈과 지식과 학벌이 아무리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어도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기적도 이루어지고 그들이 크게 쓰임 받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부족하고 연약해도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때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 해도 때 놓치고 나면 쓸데가 없어지고 후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받을 때가 있고 축복도 능력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의 일도 언제나 그 때를 준비하라고 하셨으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자를 주님이 쓰십니다. “보라 지금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이룰 때“(고6:2고6:2) 라고 하셨습니다.

3.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쓰임 받습니다.(18,20절)

배, 그물,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까지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입니다. 어부에게 배는 직업이요, 그물은 전 재산입니다. 그 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일하던 동료까지 버렸기에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주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세상의 것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세상을 포기 할 줄 아는 자가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풍습도 습관도 끊어야 합니다. 인정도 사정도 버릴 줄 알아야 주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안 된다 못하겠다는 생각까지라도 버려야 합니다. 먹는 것 때문에 내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왕의 진미를 끊어 버린 다니엘(단1:8단1:8)을 하나님은 크게 쓰셨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결심으로 고향도 끊어버렸더니 이방여인 룻이(룻1: ) 예수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다. 한해를 시작하는 이때에 잘못된 것을 끊고 버려서 주님께 쓰임 받는 복된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들이여! 이제 새해에는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어 복 받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현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자를 쓰십니다. 믿음을 갖고 행동하되 때 놓치지 않는 자를 쓰십니다. 그때가 지금입니다. 즉시 일어나야 합니다. 또한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는 과감한 결단으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복 있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 이렇게 살자 (본문 : 시편 128:1-6)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오늘 이 시간에는 "새해 이렇게 살자"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새해 이렇게 살자", "새해 이렇게 살자." 네, 지난주일, 2002년 첫 주의 설교제목은 "성령으로 살자"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새해 이렇게 살자." 또 어떻게 보면 "성령으로 살자"의 두 번째 설교다, 이렇게 보아도 좋겠습니다.

2002년이 시작된 지 벌써 13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시작이 반이다." 이 말대로 하면 우리는 벌써 1년의 반을 산 것과 같아요. 설마 "작심 3일"이라는 말처럼 새해의 계획을 벌써 다 잊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직도 새해 설계를,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계획"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또 더 중요한 것이 뭐냐? "실천"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계획을 세워야 하고, 계획을 세웠으면 실천해야 합니다. 허망한 계획만 세우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바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기본 뿌리가 튼튼할 때, 올 한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가장 작은 것부터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변화시켜 나가고, 실천해 나가도록 합시다. 항상 해 오던 것도 과연 내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있는지, 말씀에 비추어서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 한 번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성령으로 살 때, 2002년은 틀림없이 승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에 기초해서 올 한해를 어떻게 준비할까? 또 어떻게 결단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함께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2002년 새해를 여러분의 각자 인생에서 가장 기록에 남는 해, 가장 복된 해로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자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자."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자."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인생에 실패하지 아니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보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시편 128편 1절 상반절에 보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또 하나님께서 진실로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구원받을 사람, 더더군다나 복 받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뭡니까? 예배를 나의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내 인생의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인가? 나의 삶에 가장 긴급한 것인가?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돌리는 것 중에 제일 귀한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자, "나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나는 예배를 가장 긴급하게 여기는가? 나는 예배를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가?" 각자가 대답해봐야 할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은 인생에 성공했습니다. 아벨과 가인, 아벨은 예배에 성공했습니다. 인생이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인생이 실패했습니다. 똑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무엘도 예배에 성공했습니다. 인생이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엘리 제사장의 아들은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인생이 실패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높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서 예배의 성공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원하십니다. 성경에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입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배가 즐거워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서 드리는 1주일 중에 첫날, 주일성수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주일예배 드리는 이것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역예배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그 시간을 정말로 하나님 앞에 감사감격하며 온전히 드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가 있겠냐, 그 말입니다. 천국 가서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다른 일 없이 모두가 다 "할렐루야!"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드리는 예배 행위가 천국의 행위입니다. 우리 모두 매 순간,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늘 거룩한 주일, 1주일 중에 첫날인 이 주일 날,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주일성수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번 한 주간 주안에서 승리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성공하는 사람은 삶에 성공합니다. 예배를 성공하는 사람은 인생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주일 중에 제일 첫날인 주일날 예배가 성공하고, 하루 중에 첫시간에 새벽기도가 성공하고, 특별히 또 여러분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통해서, 구역에서 구역예배를 통해서, 또 수요일날 수요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성경대로 살자

두 번째로, "성경대로 살자." 복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시편 128편 1절로 하반절에 말합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 도"가 뭡니까?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신?구약 66권의 말씀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도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까?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읽는 것도 복입니다. 묵상하는 것도 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이 완성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말씀을 실천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삶이란 그럼 뭘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뭘까요? 성경대로 사는 삶이 뭘까요?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그랬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마 22:37),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마 22:3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뭡니까?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친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나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삶인 것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사,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원수 되었던 우리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시면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렇게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반대로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성령으로 세례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대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우리가 성경으로 이웃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내 자리에서 이웃을 보지말고, 예수님처럼 이웃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의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 인간과 눈높이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7절 말씀(이신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웃과 함께 할 때, 이웃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성경대로 살자."

셋째, 손으로 수고하자

세 번째입니다. "손으로 수고하자." 따라합시다. "손으로 수고하자." 그렇습니다. 손은 움직이고 수고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일의 수고, 봉사의 수고. 그러므로 손은 계속 움직여야 건강합니다. 자기 몸도 건강하고 신앙도 건강합니다. 정신도 건강합니다. 삶도 건강합니다. 교회도 건강합니다. 나라도 건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시편 128편 2절에 보니까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수고하지 아니하고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아픔을 주는 것입니다.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현대인들 중에는 일을 저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일 안 하고, 땀 안 흘리고, 수고 안 하고, 어떻게 편하게 살까를 궁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노동과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사단이 가져다 준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좇아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또 마가복음 16장20절에 보니까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라고 말씀했습니다.

노동은 신성합니다.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천직입니다. 노동은 타락 이전에 에덴 동산에서부터 있었던 축복이요, 사명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노동은 축복입니다", "노동은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들 때, 사람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을 아담에게 물려주실 때는 아담과 하와에게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다스린다"는 말은 히브리 언어로 어떤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농토를 주었습니다. 그 농토를 가지고 자식은 땀흘리고 일해서 많은 수확을 거둡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어요. 다 만들어 주셨어요. 그냥 주셨어요. 은혜로 주셨어요. 공짜로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다스리고 지키게 하라", "다스리고 지키게 하라."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가 다 노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일했습니다. 방주를 짓기 위해서 자그마치 120년 동안이나 일했습니다. 다윗은 일했습니다. 목동으로 일했습니다. 베드로도 일했습니다. 어부로서, 고기 잡는 어부로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일했습니다. 장막을 짓는 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위인들은 모두가 다 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뭐냐고요? 믿음과 일, 두 가지가 다 있는 사람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는 잘 드렸는데 직장에 가서, 일터에서 일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절대로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많은 공동체가 있는데, 어디에나 두 "꾼"이 있어요. 가정 공동체에도, 직장 공동체에도, 사업 공동체에도, 구역 공동체에도, 교회 공동체에도, 이 사회의 단체 공동체에도, 나라 공동체에도, 두 "꾼"이 있습니다. 어떤 "꾼"입니까? 한 "꾼"은 뭡니까? "말꾼." 한 "꾼"은 뭡니까? "일꾼."

"말꾼"이 많고 "일꾼"이 없으면 그 공동체는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말꾼"이 적고 "일꾼"이 많으면 그 공동체는 건강할 수 있고, 든든히 설 수가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말꾼"은 많고 "일꾼"이 없으면 가정은 무너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말꾼"은 많고 "일꾼"이 적으면 그 교회도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일꾼입니다. 일하는 일꾼인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살후 3:10)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열심히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 "성령의 일꾼", "교회의 일꾼", "나라의 일꾼", "가문을 일으키는 일꾼", "회사를 살리는 일꾼", "일하는 일꾼"이 됩시다.

넷째, 가정을 지키자

네 번째, "가정을 지키자."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가정을 지키자." 가정은 행복의 기초입니다. 가정은 사회질서 안정의 시작입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그 사회는 건강해집니다. 그 사회의 질서가 안정된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서 우리를 어떻게나 많이 공격해 오는지 몰라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어떠한 공격을 받더라도 여러분의 가정이 건강하게 지켜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28편 3절 상반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집이 자꾸 좋아져요. 그런데 집은 더 좋아지나 과연 가정은 더 행복해지느냐? 그 반대 현상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이 지켜지고,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원수마귀가 틈타지 못하는 건강한 가정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이 회복되고 지켜지려면, 무엇보다도 누구의 역할이 중요합니까? 아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따라합시다.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여자가 20년 동안 만든 남자를 한 여자가 20분만에 망칠 수 있다." 앞의 여자는 어머니예요. 뒤의 여자는 아내이거나 이성의 여자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보세요. 이건 내 말이 아닙니다. 잠언서 12장 4절입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이 말이 뭡니까? "어진 아내는 그 남편의 면류관이지만 욕을 끼치는 아내는 그 남편으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얼마나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좋은 아내는 가정에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와 같은 여자.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시 128:3시 128:3)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역할은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사업을 혹시 나가서 하더라도, 정치를 하더라도,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내실은 누가 지키느냐? 아내가 지켜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더라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의 내실을 아내가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직장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같이 맞벌이할 수 있습니다. 뭐 정치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내실만은 아내가 지켜야 합니다. 아내가 가정을 지키는 것은, 이것은 사수, 사수예요. 절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마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여러분, 아내된 여러분들이 다 지켜서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나라에서 포도나무는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아주 좋은 나무였습니다. 아내는 가족이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목마르지 않도록 생명수를 공급해줘야 합니다.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랑의 말, 기쁨의 찬양, 나눔의 행복이 넘쳐나면 목마르지 않습니다. 아내는 가족이 힘써 일하고, 또 열심히 공부하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남편이 나가서 힘차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가 학교에 가서 아주 신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그 영양분이 뭡니까? "기도"인 것입니다. "눈물"인 것입니다.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기도와 눈물과 사랑이 공급될 때, 남편은 나가서 신나게 일하는 거예요. 잘 버는 거예요. 그뿐이 아닙니다. 자녀들은 학교에 가서 신나게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원하는 학교에 당당히 갈 수 있고, 신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위로와 눈물, 어머니의 품과 무릎보다 더 좋은 영양분은 없습니다. 남편을 위로해주는 아내, 남편을 위해서 때로는 눈물도 흘려주는 아내, 자식을 품에 안아주는 어머니, 또 자식을 무릎에 눕게 하는 어머니, 모두가 힘있는 삶의 영양분인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뭐 좋은 음식을 하려고 "어떤 음식을 살까? 어떤 영양제를 구할까?" 하고 궁리하는 것도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좋은 약보다, 좋은 식품보다, 좋은 음식보다, 남편을 위로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눈물 흘려줄 때, 이것이 영양 공급이 됩니다. 자식을 자기 품에 안아줄 때, 자식을 자기 무릎에 앉힐 수 있을 때, 이것이 영양 공급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풍성한 포도나무와 열매가 되어서 가정을 풍요롭게 하도록 합시다.

다섯째, 자녀를 교육하자

자, 다섯 번째입니다. 새해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녀를 교육하자." 따라하시겠습니다. "자녀를 교육하자."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부모가 가르치는 교육으로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 3절 하반절입니다.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정원에 심겨진 감람나무로 키워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세상의 출세만 욕심부리지 말고, 세상의 권세에만 눈이 어둡지 말고, 많은 물질을 가져오는 것만을, 그것을 제일로 여기지 말고, 자식을 어떻게 바르게 키우고, 사람답게 키우느냐? 올바른 신앙인으로 키우느냐? 하나님의 아들답게 키우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표현이 조금 심한지는 모르겠어요. 요새 부모님들은 어떻게 보면 자식을 돼지새끼 키우는 그런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데 취직해서, 돈 잘 벌고, 출세 잘 하기 위해서 자식을 기르고 교육시키는 것은 돼지새끼에게 먹을 것, 영양분 이런 것 막 갖다주는 것과 같습니다. 왜요? 왜 그러죠? 잡아먹으려고. 우리가 자식을 그렇게 기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타까운 현실은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것입니다. "아이고, 목사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우리가 자녀 교육을 위해서 교육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데요. 자녀 교육 때문에 내가 돈이 없어서 파출부까지 하면서 교육을 시키는데, 왜 그런 말을 합니까?"

학원에 보내서 지식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으로 교육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인성교육을 받은 사람.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 신앙교육뿐 아닙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효교육을 받은 사람. 하나님을 섬길 줄 알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가족을 사랑할 줄 알고, 자기의 조국,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될 수 있고, 자연을 사랑할 줄 알고, 인류에 봉사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교육은 지식을 배우는 데만 있지 아니하고, 인격을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지식만 심어주고 졸업장만 따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진정한 교육은 뭐라고요? 인격을 완성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시 1:1-3).

가장 좋은 자녀 교육의 장소는 어디일까요? 가장 좋은 자녀 교육의 장소는 어디일까요? 학원일까요? 학교일까요? 아니예요. "가정." 가정 내에도 어디일까요? "식탁." 가장 좋은 자녀 교육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가정에 가족들이 둘러앉은 "식탁."

그러므로 유대인 가정의 식탁은 밥만 먹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가정 교육의 현장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앉아서 신앙과 효에 관해서 교육하고 대화한다면, 그 식탁이 최고의 교육현장입니다. 더 나아가서 온 가족이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또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합니다. 신명기 6장 6절로 7절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정에서 말씀과 효로 교육된 효자는 밖에 나가서도 효자가 됩니다.

여섯째, 하나님이 복 주신다

여섯 번째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다."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다." 그렇습니다. 시편 128편 4절로 6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그랬습니다. 어떻게 살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새해에 오직 성령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시온에서 복이 흘러 넘쳐 이 땅에서의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악이 변하여 선이 되고, 여러 선들이 합력하여 큰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해요. "세상이 다 악한데 나 혼자 뭐 선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냥 되는 대로 사는 거지요." 아니에요. 작은 도랑물이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이 흘러서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서 바닷물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선이라도 실천하면, 말씀중심으로 살아가면, 이것이 커져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뿐만 아닙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할 수 있고, 사회가 건강할 수 있고, 나라가 튼튼하게 될 수 있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 예루살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만족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과 행복인 예루살렘 성소의 복이 평생토록 임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내 자손의 자손들이 다 잘 되는 것을 본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손이 번창 할 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복을 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각 개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그 나라에 "평강"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시 128:6시 128:6) 하고 말씀하십니다. 각종 선거로 나라가 바쁜 2012년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우리 믿는 자들이 바로 살기만 하면,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분명히 나라에 안정이 오고, 부강이 오고, 평화가 올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뭡니까?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대로 살며,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새해를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형통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받고 누리면서, 나눠주면서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 (본문 : 고린도후서 5:17)

김성광 목사(강남교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A.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에 대하여

1. 새해, 새 것, 새로운 피조물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그 해는 좀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올해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올해는 사업의 기반을 다져야지.‘, ‘올해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지.‘ 등등. 그런데 해마다 그렇게 결심을 하는데, 과연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 1928~ )는 “21세기에는 개인과 가정, 사회, 정치, 경제, 교육, 심지어 종교계까지 새로워지는 문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움‘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새롭게 계획하고 결심하고 각오를 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새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은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CEO(Chief Executive Official),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책도 읽고 강연도 듣고 공부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제일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옛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옛 것에서 새 것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첫째, ‘나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에 아주 민감합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해서 선후배를 따지고, 젊은 사람은 젊어서 못하고 늙은 사람은 늙어서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려면 나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은 생을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용기 있게 전개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낡은 지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지식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10년 전, 20년 전 자기가 대학 다닐 때 배웠던 것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셋째, ‘낡은 경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누적된 타성화 된 경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낡은 경험은 과감히 던져 버려야 합니다. 잘한 것은 교만과 함께 버려야 합니다. 못한 것은 낙심과 함께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해를 맞이해서 어떻게 해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미국 뉴욕의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 1898~1993) 목사님은 『적극적인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명사가 되어, 1년의 반은 동서양을 두루 다니며 강연을 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기자가 와서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니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인생을 변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Because he changed my life).“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생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10년, 20년, 교회에만 왔다갔다해서는 안됩니다.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변화되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과연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축복을 향해서 한 걸음, 두 걸음 전진해 나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1749~1832)는 “우리는 변하고 새로워지고 젊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어지고 낡아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 위해서, 항상 변하고 새로워지고 젊어져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라고 교훈한 말씀입니다. 바꿔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워지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후 5:17)

이 말씀은 새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누구든지, 잘난 사람이든지 못난 사람이든지, 젊은 사람이든지 늙은 사람이든지, 부유한 사람이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많이 배운 사람이든지 적게 배운 사람이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새 것,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밖에서만 빙빙 도는 구경꾼입니다. 교회에만 왔다갔다했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워지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과연 새로워지는 역사를 체험한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변화되고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나오는 세 인물을 들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어떻게 인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성공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지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사도가 된 ‘베드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마 4:18마 4:18~20). 둘째, 소경 거지에서 눈이 보게 되어 예수를 좇은 ‘바디매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막 10:51막 10:51~52). 셋째, 죄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세리 ‘삭개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눅 19:8눅 19:8~9).

B.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고후 5:17)

1.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사도가 된 베드로

- 불신앙인, 어부 → 복음 전도자, 사람 낚는 어부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18마 4:18~20)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시몬 베드로의 배를 잠깐 빌려서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가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웠는데도 잠기게 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침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 본 시몬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서워 말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를 좇았습니다(눅 5:1눅 5:1~11 참조).

그리고 훗날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1마 16:11~20 참조).

그래서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 프랑스, 독일, 영국에 퍼지고 미국을 거쳐서 오늘날 한국에까지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에서 큰 임무를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먹고사는 일상생활에만 관심이 있었던 고기 잡는 어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인간의 생명, 존엄성, 영혼을 귀히 여기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짐승 같은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참모습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도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수십 년 살아온 낡은 인생이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기독교는 ‘거듭남‘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시몬 베드로만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바울, 성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 354~430),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83~1546), 영국의 존 웨슬리(John Wesley ; 1703~1791),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 1875~1965)도 변화시켰습니다.

기독교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변화시킵니다. 미국에 기독교가 들어가자 변화되어 전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변화를 받으면 그 사람이 속한 환경도, 사회도, 국가도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 게리 콜린스(Gary R. Collins)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당신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시키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면 자신이 변화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분주하게 하며 교회에만 왔다갔다했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사상, 생애에는 집중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뜻, 자기의 목적만 추구하다가 오히려 예수님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변화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가정도 달라지고, 나라도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까? 한국 기독교 역사 100년 동안 정치가 달라지고, 경제가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졌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중요시했습니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 최소한 9일장을 하고, 길게는 21일장, 39일장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면 3년 동안 무덤 옆에서 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3일장을 권하면서부터 장례가 간소화되었습니다.

또한 선교사들은 남녀평등을 가르치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습니다. 한국을 현대화하는데 기독교가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은 다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현대화되고 발전하고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한국 민족의 지도자, 백범(白凡) 김구(金九 ; 1876~1949) 선생도 기독교 신앙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18세에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지방의 교구 책임자인 접주(接主)가 되었습니다. 21세에는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 츠찌다(土田壤亮)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23세에는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셨던 그의 어머니는 매일 아들을 위해서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새벽기도가 응답되어, 선생은 28세 때 기독교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때까지 섬기던 학문과 이상이라는 우상을 버리고 새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호를, 당시 가장 낮은 신분이었던 ‘백정(白丁)‘과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의 ‘범인(凡人)‘을 합쳐 ‘백범(白凡)‘이라 고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한 애국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 한국 민족의 지도자로서 가장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고 믿음이 생기면, 교회에 나와서 신앙을 가지면, 인생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소경 거지에서 눈이 보게 되어 예수를 좇은 바디매오

- 질병, 거지 → 건강, 축복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막 10:51막 10:51~5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려고 여리고를 지나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앞은 볼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을 향해 더듬어 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의 많은 사람은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뛰어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져도 그는 다시 일어나 예수님을 향해 나갔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바디매오는 눈을 번쩍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격하여 예수님의 얼굴도 보고, 하늘도 쳐다보고, 주변 사람들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막 10:46막 10:46~52 참조).

우리는 지금까지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 가운데서, 어둠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빛 가운데서 광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5장 34절에서도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를 향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그동안 많은 의원에게 찾아가 보았으나 아무 효험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병이 더 심해져 재산만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무리 가운데 섞여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능력이 그에게 나타나서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무리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이 여자는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 때문에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막 5:25~34막 5:25~34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병이 낫고 건강을 되찾게 됩니다. 예수님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고, 혈루증을 앓던 여자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어떠한 병에 걸렸든지 다 고쳐 주십니다. “왜 내 병은 낫지 않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고쳐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믿나이다“ 하면서도 마음속에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이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해결사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만 가지고 나아가면, 그 믿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해 소망이 무엇입니까? 한 신문사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우리 국민의 가장 큰 새해 소망은 ‘건강‘(48.8%)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경제적 안정‘(21.2%), ‘행복‘(5.9%) 순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무엇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그 소망이 어떻게 이루어지길 바랍니까? 무엇보다도 소망하는 것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건강을 주시옵소서. 재물을 주시옵소서. 행복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나를 통하여 영광 받아 주옵소서.‘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인데, 한번 흘러간 인생은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 사는 것, 별것 아닌 것 같고 아웅다웅하며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건강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프면 신경질과 짜증이 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있어도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그러니까 건강한 거지가 돈 많은 병자보다 낫습니다. 없어서 못 먹는 것이 병들어서 못 먹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일이 있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부든지, 집안일이든지, 아무튼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남아서 남의 일에 이것저것 참견하다 보면, 좌충우돌하게 되고 도대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셋째, 보람 있게 살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를 통해서 보람과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가정, 직장,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기쁨과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돈 때문에 일을 한다면 그것처럼 비참한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파리 대로에 인물도 잘나고 체격도 좋은 ‘앙또앙누‘라는 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꾸뻑하고 모자를 내밀며 구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멀쩡한 사람이 왜 구걸을 하는지 딱해 하며 돈을 던져 주고는 가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점잖은 신사가 지나가다가 앙또앙누를 보고는 호통을 쳤습니다.

“뭐가 모자라서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거지 노릇을 하고 있소! 나도 어린 시절에는 고아가 되어 당신처럼 거지 노릇을 한 적이 있소. 그러나 지금은 큰 제지공장 사장이라오. 나는 성경을 읽고 나서 건강한 사람이 거지로 살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소. 그래서 그때부터 다니면서 종이를 주워 팔기 시작했소. 그 다음에는 수레를 끌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헌책과 종이를 거두어서 한 푼 두 푼 모으기 시작했소. 그 돈으로 서점을 했고, 서점을 해서 돈을 벌어 큰 제지공장의 사장이 된 것이오. 당신도 더 이상 거지 노릇하지 말고 나처럼 일해서 성공하시오.“

그러더니 신사는 주머니에서 성경책을 꺼내 그에게 주었습니다. 거지 앙또앙누는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런 신사가 거지였다니….‘

그 후로 그는 다시는 길거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났습니다. 제지회사 사장이 책을 살 일이 있어 큰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카운터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그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큰절을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 거리에서 거지 노릇을 하던 앙또앙누가 큰 서점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성경을 읽고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푼, 두푼 모아서 서점을 냈고, 각 도시마다 지점을 내어 체인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고 순종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거지도 사장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병든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낮은 자가 높아지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밖에서만 빙빙 돕니다. 교회에만 왔다갔다했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눈을 뜬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기적의 삶을 사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입니다.

3. 죄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세리 삭개오

- 세리, 죄인 → 아브라함의 자손, 회개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8눅 19:8~9)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시다가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유대인 세리들이 중간에서 세금을 거둬들였는데, 그 과정에서 횡령을 많이 했기 때문에 세리들은 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자기 민족에게 멸시를 받았기 때문에 삭개오는 만족과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하여 그도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다 고개를 들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감격하여 말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출애굽기 22장 이하의 율법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도둑질한 것이 탄로날 때는 2배 내지 4배로 갚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불의와 악을 행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던 세리 삭개오가 회개하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바쳤던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믿음을 보시고 그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눅 19:1눅 19:1~10 참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미움을 버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보답해야 합니다.

에스겔 18장 31절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탕자같이 결국은 망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변화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고 병자를 부르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가 “나 같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내가 너 같은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왔노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죄가 있느냐 없느냐, 많으냐 적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뉘우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사 55:7사 55:7). 뿐만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행 2:38행 2:38).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D. L. 무디(Dwight Lyman Moody ; 1837~1899) 목사님은 “비겁한 선인(善人)보다 용감한 죄인(罪人)이 새 사람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새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위해서 정직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과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다음은 풍성교회 조 집사님(여)의 간증입니다. 남편과 함께 공장을 운영하던 집사님은 사업이 잘되다 보니 돈버는 재미에 교회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인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도가 났습니다. 속이 상해서 술을 잔뜩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허리가 방바닥에 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축축해서 봤더니 하혈을 얼마나 했는지 요가 삼분의 일은 젖어 있었습니다. 허리에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왔습니다.

겨우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뱃속에 커다란 종양이 자라고 있으니 자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 교만했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거야.‘

그는 수술하기 전에 기도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21일 동안 금식하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무서워서 죽을 수도 없습니다.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나를 용서해 주시면 앞으로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봉사하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병원에 가서 수술 전에 다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뱃속에 있던 종양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의사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서 자기가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하루종일 예배를 드렸는데, 똑같은 설교를 여러 번 들어도 그렇게 은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철야예배, 구역예배, 예배라는 예배에는 다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병은 나았지만, 부도가 난 상태라 여기저기서 빚쟁이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빚쟁이가 찾아올 때마다 “미안합니다. 당신 돈은 꼭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는 종양을 치료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전도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를 하니까 어떤 빚쟁이들은 오히려 도망을 갔습니다. 또 어떤 빚쟁이들은 격려하며 밥을 사주고 용돈도 주고 갔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예배드리고 전도하며 일한 결과, 집사님은 3년 만에 빚을 다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기독교는 인생을 새롭게 합니다.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서 전도의 결실을 얻게 합니다.

C.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자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앙의 대표적인 인물 세 명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새로워지고, 바디매오가 새로워지고, 삭개오가 새로워진 것처럼, 여러분도 새로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롭게 변화받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고 전도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변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게로 돌아 오라 (본문 : 예레미아 4:1-4)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와세다 출신으로 새 세대를 대변하는 글을 써온 나가다니 아키히로라고 하는 일본 작가가 쓴 책입니다. 희망도, 꿈도 많지만은 수없이 좌절하는 20대를 위한 충고의 글, 그런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있는 몇 마디를 소개합니다. '새로 운 일을 시작 할 때, 작심삼일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하는 글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심삼일…, 작심삼일…. 한번 결심하고 시작해서 그 마음이 삼일밖에는 못 간다. 의지가 약한 사람을 충고하는 말입니다. 이 현대 젊은이들에게 결정적으로 약한 것이 지구력이 없어요. 생각 도 많고 머리도 좋고 마음도 다 있는데 도대체 뭘 하나 꾸준하게 하지를 못해요. 그게 결정적으로 허점이올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해보지 않으면 만약 작심 삼일이라고 해서 오늘 와서 다시 해 보지 않는다면 작심삼일로 끝날지, 혹은 지속하게 될지도 모를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무엇을 결심해 도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한다면 그 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요. 또 세 번째는 해 보았지만 잘 안 되었다고 하자. 그럼 잘 안되었다는 것, 그걸 공부하게 되고 또, '조금만 참았다면 지속할 수 있었는데'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그 것만 깨달아도 훌륭한 것이고, 사흘 밖에 실천 못 하고 그만 무산되었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자신을 스스로 파악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지구력 하나가 내게 없었구나….' 라고 깨닫는 그것만 가지고도 큰 소득이라 는 것이지요.

여러분 영어 단어를 외워보셨습니까? 학교 다닐 때 이거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한 번 딱 보기만 하면 그저 딱 기억이 되고 다시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얼마 나 좋겠어요. 그런 것을 Photograph Memory라고 그럽니다.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사람들……. 한 번 딱 보면 그 전장 페이지가 다 기억이 나는 거예요 사진 찍듯이. 그러면 뭐 그거 문제가 없지요. 그러나 여기에 대한 일반적 연구는 그렇질 않아요.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해요. 나만 머리가 둔하고, 없는 나쁜 게 아니라고요. 한 단어를 외우는데, 여러분 한 번 콘사이스를 뒤질 때마다 거기다가 표시를 해 보세요. 딱 표시하고, 얼마 후에 표시하고. 다섯 번을 보아야 기억을 합니다 평균. 아마도 다섯 번 보면, 웬만큼 멍청하지 않은 사람은 다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한번보고 잊어버렸다고 해서 자기를 탓하는 거예요. '너는 구제불능이다, 너는 머리가 나쁜가 보다…….' 나쁜 게 아니예요, 그게 보통 이예요. 다른 사람은 다섯 번 이상 콘사이스를 뒤져서 그래서 그 단어를 외운 거예요. 그러니까 노력이 부족했던 거지 결코 머리가 나빴던 게 아니예요. 그런데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은 꼭 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 아니오, 지극히 정상적이요. 그럴 알아야 합니다.

베이비 루스라고 하는 사람은 홈런 왕으로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칠백열네 번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만은, 그가 천삼백삼십 번의 스트라이크 아웃 당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삼백삼십 번의 스트 라이크 아웃이 있고, 칠백열네 번의 홈런이 있었던 거예요. 실패 없는 홈런이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이 불을 켜고 삽니다 만은 이 전등을 만들 때, 에디슨이 이걸 만들 때에요 사백 몇 번의 실패를 했다고 해요. 사백 몇 번의 같은 실패를 하고야 나서 이걸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사백 번 실패 한 것은 생각지 않고 한 번 성공한 것만 생각하더란 말예요. 그 뒤에는 사백 번이라고 하는 뼈아픈 실패가 있었던 거예요. 그런고로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요. 작심삼일이라도 좋으니까, 작심일일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결심하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실패는 방치하면 독약이 됩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깊이 연구해서 잘 살피게 되면 이건 양약이 됩니다. 실패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것이 죄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맹세하라. 내 앞에서 다시 서약을 하라.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 오라.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내게로 돌아 오라, 다른 말로 말하면 다시 만나자 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여, 여기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마는 원본대로 번역을 바꾸면은 우상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 섬기던 백성이 아 이게 우상을 섬긴다니 말이 안되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지금 우상을 섬기고 있어요. 그 더러워진, 신앙적 정조가 깨진 더러워진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돌아 오라,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다시 돌아 오라! 그리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만나자고 말합니다. 여기 에 만남의 초청이 있습니다. 청소년과 젊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해서 한 사백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21세기를 내다보면서 가훈을 정 한다면 어떤 가훈을 정할 것이냐?"

하고 물어 보았는데, 그 통계가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제1위가 뭐냐 하면 '가끔 얼굴 좀 보고 살자' 하도 얼굴들을 못 보니까? 서로 얼굴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제발 얼굴 좀 보고 살자, 이 중요한 얘기가 아닙니까? 제2위가 '사생활 을 존중히 여기자' 그 5위가 IMF를 당해서 너무 어려워서 이런 얘기가 나온 거 같아요. '끝까지 살아남자' 살아남기가 어려우니까. 어쨌든 오늘 성경말씀은 내게로 돌아 오라, 내 얼굴을 좀 보라, 내가 너희들 좀 보고싶다 그거예요.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 오라. 이미 더러워진 자인걸 알면서도 또다시 기대하시고 부르시는 겁니다. 아예 심판 해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람, 저들은 절망했는데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았어요. 오늘도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겁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시카고에 어느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죽은 사람은 세살 짜리 어린아이 입니다. 세살 짜리 어린아이 시체를 놓고 장례식을 합니다. 목사님이 기도 할 때에 다들 눈을 감고 있었는데, 초라하게 더러운 옷을 입은 거지 행세의 남자 하나가 들어왔어요. 그 시체에 세살 짜리 어린아이의 시체에 있는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35센트에 팔아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이 어린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세살 짜리 자기 딸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 신발을 벗겨다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이런 인간, 이걸 누가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금수만도 못한 거지. 다 끝난 인간 아닙니까? 그러나 이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될 때, 구원을 받고 멜트라더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요 유명한 부흥사가 되고 시카고 역사에 기록되는 훌륭한 부흥사입니다. 이 사람은 주로 알코올 중독자를 상대로 전도해서 수천 명의 알코올 중독자를 주님 앞에 인도했습니다.

여러분 이 같은 사람도 주님께로 돌아오면 새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돌아오는 것이 문제요, 나 스스로 무엇을 해 보겠다고, 나 스스로 뭐 결심, 부질없는 짓이요.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말씀하시고 '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가르쳐 맹세하라.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살기로 맹세하라' 다시 맹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이요, 공평은 이웃 에 대한 공평이요, 정의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는 정직함이올시다 정의올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부르실 때 거저 부르신 것만이 아니요, 번번이 실패하는 나약한 존재임 을 아시기에 원인과 또 고칠 수 있는 방법까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인을 알기 때문에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마라. 얼마나 귀중한 교훈인지 모릅니다. 농사 이치라는 것은 좋은 토양이 있어야 되요. 토양, 땅이 있어야 되요. 그 다음에 좋은 종자가 있어야 되요. 그 다음에 비가 오고 또 그리고 햇빛이 잘 나서 이런 자연 여건이 좋아야 되요. 네번째는 농사꾼의 정성어린 수고가 있어야 됩니다. 이 네 가지가 합쳐서 농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토양입니다. 이 토양이 좋지 않으면 농사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자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고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고 가시덤불 과 같은 마음이 있다." 말씀하지 않습니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또 돌짝밭과 같은 마음이 있다. 종자는 좋은데 이 토양이 나쁘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거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생명적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창조적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고로 토양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묵은 땅을 갈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화전민이란 말을 들어봤죠? 화전민이라는 것은 저 깊은 산 속에 가난 한 사람들이 살면서 그 산을 그대로 불을 질러 버려요. 나무를 베고 불을 질러서 새까맣게 태운 다음에 그 것을 갈아서 거기다가 농사를 지어먹는 사람을 화전민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다가 씨를 뿌리려거든 불을 질러야 되요. 다 태워버려, 또 그리고 돌을 제하고 그게 모든 것을 깨끗이 다 옥토, 좋은 흙이 그 토양이 나올 때까지 수고를 한 다음에 소중한 종자를 뿌려야 하는 것이죠. 그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얼마나 중요한 교훈입니까?

이 묵은 땅이라는 것은 버려진 땅을 말합니다. 다 버려졌어요. 그리고 관심 밖으로 버려진 것을 말합니다. 잡초가 우거졌어요. 그 속에는 좋은 땅이 있지만은 가시덤불이 있으면 거기 씨앗이 땅에 떨어질 수가 없고, 떨어져도 자랄 수가 없어 요. 그러니까 가시덤불을 제거 해야죠? 이것이 그만 좋은 종자의 생명력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이런 준비가 좀 필요합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워밍하지요 워밍! 워밍아워가 있어야 됩니다. 생각난다고 결심하고 뛰쳐 올라간다고 운동이 되는 건 아니요. 저희 교회의 교인 가운데 제가 결혼 주례 해 준 그런 권투를 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절 만날 때마다 너무 피곤해 해요. 그 체중 조절하느라고 굶고 막 이래서요, 삐적 마르고 얼마 나 고생을 하는지 몰라요. '저 이거 좀 계속 못 하겠습니다. 그래 다른 걸 해 먹을 수도 없고 큰 걱정입니다. 배운 건 이거밖에 없고' 그리고 늘 고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그랬더니 한 번 게임에 나가려면 석 달 동안 훈련을 한데요. 맹훈련을 하고 그것도 마지막 한달 동안은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합숙 훈련을 하면서 그 험한 코치의 지시를 따라서 얼마나 호된 훈련을 하고 거기에 올라가서 한 번이기든 지든 한 번 뛰는 거예요. 얼마나 힘든 일 입니까? 이걸 알아야 되요. 우리는 만사를 너 무 쉽게 생각하거든요. 그게 아니지요. 공부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공부라는 거, 그냥 내가 오늘 공부하고 싶다고 공부가 되나요, 공부도 워밍아워가 필요해요. 너무 많이 놀면은 다시 공부하기 힘들어요. 공부가 안됩니다. 그래서 놀 때도 설사 휴가 맡아서 놀러 가도 책을 가지고 가야 되는 거요. 하루 에 적어도 몇 시간은 꼭 책을 보아야지 아주 완전히 놀아 버리면 다시 공부 하려면요 마음잡는 데만 몇 달 걸립니다요. 그래 무드 잡다가 세월 가는 거죠. 그래 안 되는 거예요, 그거는요. 그런데 우리는 만사를 너무 쉽게만 생각을 한단 말이예요. 그 미신적 신앙입니다. 적어도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피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불을 질러 버리는 땅아 갈아엎는 그런, 그런 수고가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사실 제가 유학을 이거 두 번 했는데요, 60년대하고, 70년대 초에 했는데 유학 갔다가 와서 한 9년 동안 이따가 다시 갔는데 그 9년 동안에 공부 안 한 거 아닙니다. 계속 공부도 했고 또, 학교에서 가리키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시 9년 후에 다시 갔는데요 공부가 안 되는 거예요. 제가 한 학기하고 그만 둘까 하고 생각했었어요.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한 학기를 다시 지내고 나니까 그 다음에 길이 열리기 시작을 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만사가 공짜로 되는 게 아니에요. 준비하는 것만 가지고 이러한 꼭 시간이, 워밍 아워가 필요하다. 결심 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이렇게 버려진 땅, 오래 해 묽은 땅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이걸 옥토로 만들려면 상당한 손질이 필요하고 또 하나는 이 묵은 땅이라는 것은 무의식 상태를 말합니다. 습관화되고, 체질화되고, 성품화 되어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지요. 그저 방종과 게으름과 사치와 낭비와 거짓과 혈기와 이런 것으로 점철되어 왔어요. 이 아주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이게 죄인지 아닌지도 몰라요. 뭐 잘 못됐다고 생각지도 안 해요. 뭐 사람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뭐 인간인고로 뭐 이래가면서 이게 다 망조라고요 지금. 완전히 이렇게 체질화되어 버렸거든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뀌는데는 땅을 갈아엎는 것 같은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되요. 또 하나, 이것은 고질화 된 것을 말하고 병리적인 고집이나 정당화 된 것이요. 자기는 지금 자기 생활을 완전히 정당화하고 있고, 고정관념에 빠져 있어요. 이걸 깨뜨려야 해요. 오랫동안 해 묵은 거예요. 수 백년 동안 묵어 온 것 이예요. 우리나라의 경제가 잘못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봉건주의적 기업이기 때문이예요. 한 마디로 축소하면은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이걸 못 벗어나기 때문 에 문제라고요. 양반 되려다가 망 한 거예요. 돈만 벌었으면 되지 양반까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양반 인체 하다가 망한 거예요. 다 뭐든지 고정 관념이 있어요. 해 묵은 거예요. 오랫동안 묵어온 것 이예요. 지금도 가끔 결혼 같은걸 할 때 보면은 "뭐, 뭐 저 족보를 따지고 그, 그 집이 저 쌍놈 아니냐?"

뭐 그래요. 양반 좋아하네 지가 무슨 대단한 양반이라고 이 고정관념, 이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 모든 방면에 관계가 되거든요. 익숙해지고 의식화된 것으로 벗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묽은 땅을 갈아엎어라! 그리고 잡초를 제하고 다시 씨를 뿌리라. 다시 말하면 이 옥토와 종자가 깨끗이 만나 야 되거든. 토양과 씨앗이 만나야 되요, 아주 깨끗이. 여기에 아무 방해요소가 있어선 않데요. 여러 지금 이렇게 설교를 듣고 있는 바로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잡초가 왔다 갔다 해요. 이 문제라니 까요? 어느 지난 몇 주일 전에 예배드리는 동안에, 도중에 세분이 이렇게 나갔어요. 그래 제가 나가는 걸 저는 보고 "아마 정말로 급한 일 이 있는 가 보다."

뭐 그렇게 생각했죠? 뭐 그럴 수 있으니까. 나가는 걸 보면서 설교를 했어요. 그 다음에 그 아들이 제게 편지를 했는데 "너무 죄송하다고, 이렇게 중간에 나가서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 나간 이유는 어머니가 집에 가스 불을 끄지 않고 왔다고 해서 이게 자꾸 생각이 나서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고 해서……."

그래 내가 속으로 생각했어요, 분명히 가스 불 저거 껐을 거예요. 안 껐을 꺼다 생각하니, 이거 생각하는 동안 말씀이 한 마디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이 되겠어요? 적어도 이 한 시간만이라도 제발 정 못 하겠거든 30분만이라도 제대로 옥토가 되어서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어떤 분들은 또 이상한 도전을 해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요상한 잡초가 있어 가지구요, 가시덤불이 있어 가지고요. 목사님이 "사랑합니다, 사랑하세요."하고 하면요 속으로 뭐라는지 아세요? '저는 사랑하나?' 그래요.

"참으세요."

그러면은 '에이, 목사님 저도 못 참던데? 말은 잘 하네', 이러고 돌아가는 거예요. 이 게 되겠어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희생을 했습니다." 하고 말하면은 "아멘"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거야 사도 바울이니까 그렇지요' 속에서 뒤척뒤척하고 있어요. 이 가시덤불 언제 빠질 거요 이게, 싹 다 지워버리고 불태워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대로 끼끗한 마음으로 수용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떨 때는 설교하면서 가만히 들으면요, 부부간에 앉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면요 옆의 남편을 꾹 찌르면서 "잘 들어둬!" 그러는 거 같아요 보니까? 자기가 들을 생각은 안 하고 왜 남자, 이건 꼭 내 누군가가 들어야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것도 가시덤불 이예요. 불질러버려! 당장. 다 지워 버리고 깨끗한 옥토가 되어 가지고 그리고 말씀을 받아야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 말이에요. 토양의 문젭니다. 여러분 새해를 맞아서 뭘 생각하십니까? 엄청난 일, 굉장한 일, 계획하시겠습니까? 그보다는 Simple mind, Pure receptivity, 아주 깨끗한 수용성을 가져 봅시다. 이제는 말씀을 들을 때 깨끗한 마음으로 들어요. 옥토가 되어서 받아들여 순수한 수용, 아주 깨끗한 순종과 온유와 겸손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로 나갑시다.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 오라! 묽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마라.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 오라. 그럴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꿈을 이루는 길 (본문 : 마태복음 7:7-11)

새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만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대략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첫째는 새해에 아무런 꿈도 이상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새 해를 맞이할 때 꿈도 가져보았고 계획도 세워보았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조금만 지나면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 꿈도 꾸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했지만 아무런 꿈도 계획도 없이 지난 날과 똑 같이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이상과 현실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도 있고 소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꿈은 말 그대로 꿈속에만 있습니다. 그것을 현실 속에서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상은 무지개처럼 언제나 멀리만 있고 현실은 이상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이상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따로 살아갑니다. 이 또한 꿈이 없는 것이나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새해에 새로운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현실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난 날 실패도 했습니다. 실패를 반복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새해에 새로운 결심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에 먼저 물어봅시다. 여러분은 이 셋 중 어디에 속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 시간 아무런 꿈이 없거나, 아니면 꿈이 있어도 현실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라할지라도 쳐다는 보아야 합니다. 자꾸 쳐다보아야 올라갈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올라갈 때도 옵니다. 백 번 실패했더라도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해를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이 없는 인생은 끝난 인생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에 다시 한번 소망과 꿈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꿈을 이루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습니까? 꿈을 이루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마음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계속 졸다가 쓰러지는 제자들을 향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가지고 자기 변명을 할 때가 많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마음은 간절했지만 육신이 약해서였다고 말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물어보십시다. 진정 마음은 간절했던가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 정말 마음이 원했다면 잠이 왔겠습니까? 내일이면 메시야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십니다. 그런데도 잠이 온다고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기분 나쁜 전화 한 통화만 받아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꾸러기 아이들도 내일 아침 소풍 간다고 하면 밤새 잠을 못 잡니다. 그런데 아니 모든 것을 다 걸로 따라다녔든 선생님이 이제 곧 잡혀가십니다. 이런데도 잠이 온다는 말입니까?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올 판국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봐주신 것이지 제자들 뜻이 없었고 마음도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 “너희들 마음이 없구나. 이럴 수가 있느냐.“ 말씀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자들 돌이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사랑의 마음으로 봐주신 것입니다. 실상 제자들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 꿈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별도리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람의 노력과 수고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난 날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성공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일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실패의 원인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꿈도 있었고 방법도 정당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도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한 마디로 기도하면 이루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루지 못한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찾지 않았기 때문이요 문을 두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간단합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지 못했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무슨 일에 실패했을 때, 여러 가지로 원인을 말합니다. 흔히 자본이 부족했다든지 지식이 없었다든지 경험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후회를 합니다. 또한 누구 때문에 실패했다는 식으로 남을 핑계 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뉘우치는 사람은 드뭅니다. 여러분, 성경을 바로 읽어보십시오. 실패의 원인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한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없었기에 실패했고 기도가 잘못되었기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의 사울왕의 실패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역대상 10장 13절 이하를 보면 그의 실패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였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다들 다윗에게 돌이셨느니라.“ 여기 보십시오. 사울의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기도하지 않았는데 꿈을 이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 돌 벌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다 성공이 아닙니다. 기도 없이 성공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습니다. 인본적인 것이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 결코 진정한 보람과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봉사생활, 헌금생활, 뭐 여러 가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핵심은 결코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곧 기도생활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은 사실상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은 아직 하나님과의 만남을 모릅니다. 진정한 은혜와 능력을 알 길이 없습니다.

Jesus CEO (Chief Executive Officer), 라고 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최고 경영자 예수" 라고 하는 책입니다. 한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라고 하는 여자가 쓴 책인데 이 분은 광고대행, 마케팅, 비즈니스 개발 회사인 존스 그룹의 창업자이면서 또 동시에 신앙이 아주 좋은 사역자입니다. 이 분은 자기 스스로 경험하면서 간증하기를 인류역사상 예수님만큼 완벽한 리더쉽을 보여준 사람은 없다고 전제합니다. 21세기의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 상이 바로 예수님에게 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책의 내용을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리더쉽 기법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로서 예수님의 자아극복, 그리고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제자들에게 비전제시, 그리고 제자훈련의 모든 사역에서 그 근본이 기도를 통해, 즉 상사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에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그토록 많이 말씀하시고 그토록 바쁘게 움직이시고 그토록 많은 역사를 이루셨지만, 가중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일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사역을 시작하실 때 기도하셨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고, 시험 당하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고도 저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숨을 거두시면서도 아버지의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벽기도 나오라고 하면 나오기 싫어서 누가 새벽기도 만들어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불평합니다. 온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벽기도를 왜 하느라고 말썽이냐 합니다. 여러분, 온 세계가 안 해도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제일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한 몇 십 년 전 어느 시골에 나뭇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 혼자 살면서도 늘 신앙 생활에 힘쓰며 입에서는 찬송이 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올 때에는 언제나 교회 앞에 나뭇짐을 세워 놓고 성전에 들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를 드린 뒤에 기쁜 얼굴로 나오곤 했습니다. 날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 하루는 그 할아버지한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아서 늘 기도를 하십니까?“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저를 내려다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보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하나님 앞에 내 소원을 아뢰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이보다 복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큰 교만입니까? 분명히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한다 -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의 응답이라고 하면 많은 돈이 생긴다든지, 지위가 높아진다든지, 죽어가는 환자가 살아난다든지, 하는 극적인 일이 있어야만 응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만이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한 다음 일어나는 모든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응답하신다고 했으니 기도한 다음 일어나는 모든 것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진실한 기도를 드렸다면 기도한 다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도와 응답과 생활, 이것을 일직선상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따라 응답 따라 생활 따로 일 때가 많습니다. 잘못입니다. 기도하고, 주일날 말씀을 통해 응답 받고, 그리고 결과로 일 주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능력이 있고 담대함이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못 받았다고 불평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하나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안 주실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안되겠기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주어서는 안 되겠으니 안 주시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하나님 편에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식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도 주기 싫어서 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동시에 주면 자식에게 해로운 줄 번연히 알면서도 조른다고 주는 어리석은 부모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 주시는 것은 안 주시는 것이 좋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안 주시는 것도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진실하게 기도했다면 모든 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 하나님 다 아시는데 왜 구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것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려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얻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나오고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여러분과 교제하기를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기도하기 원하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희 집 둘째 딸이 한 두 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자녀를 길러본 부모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 아이가 얼마나 귀엽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입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집사람보다 아이를 먼저 찾을 때입니다. 제법 단어를 잘 말합니다. 그래서 더 귀여운데, 이상하게 이 아이가 아빠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 다 하는데 아빠라는 말만 하지 않습니다. 제가 따라하라고 했습니다. “엄마“, “언니“, 다 따라합니다. 그런데 “아빠“ 하면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두 살짜리가 무슨 저하고 감정 상한 일이 있다고 다른 말 다 하면서 아빠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저도 수단을 높혔습니다. “아“ 라고 했습니다. “아“ 합니다. “빠“ 했는데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나중 당연히 아빠라고 했습니다만 만약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예수를 십수년을 믿었는데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 아버지라고 부를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실제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인 나와 함께 아버지로서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쉽게 응답이 없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 소원 들어주고 나면 기도하지 않겠기에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계속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어려움이 다가오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평안하니 아버지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주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는 마음, 구하는 자세, 구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이 한마디의 진실한 고백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구해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찾으라고 하십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간절함을 가지고 찾듯이 그렇게 찾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소중한 것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습니까? 그렇게 안타까움으로 간절함으로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찾게 해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찾는 마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거기 있는 줄 알았거든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때까지 계속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인내를 가지고 문이 열릴 때까지 두르리라고 하십니다. 내 앞에 닫힌 문, 우리 가정에 닫힌 문, 우리 교회에 닫힌 문, 우리 민족 앞에 닫힌 문, 열어주실 때까지 계속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드릴 때 하나님 하늘의 문을 여십니다. 은혜의 문,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새로운 은총의 세계가 열려집니다.

이제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주신 꿈을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구하고, 간절하게 찾고, 인내와 겸손으로 두드려 보십시오. 복을 받을 것이요 진리를 찾을 것이요 닫힌 문들이 열릴 것입니다. 하늘의 문, 은혜의 문이 열릴 것이요,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열려질 것입니다. 진실로 새해에는 기도하십시다. 이 기도가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가정을 사랑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속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 민족을 하나님의 능력 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이 놀라운 은총 누리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기도를 통해서만이 진정한 성공으로 나갈 수 있음을 깨닫고, 지난날 기도하지 아니했기에 경험했던 실패와 좌절을 회개하면서 이제 기도하기로 다짐합니다. 성령님 도우시사 진실로 새해에는 기도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하늘의 문을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본문 : 이사야 60:1-3)

오늘 이 시간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런 제목으로 다 같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2012의 새로운 역사가 드디어 시작이 되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큰 꿈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환경적으로 보면 희망이 아닙니다. 절망과 좌절로 가득 찬 것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노사문제도 그렇고. 더더군다나 영적 상태는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의 분위기가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눌려 있습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갖기 위해서 해돋이를 보러 동해로 갔습니다. 또 돈이 좀 있는 사람은 제주도로도 가고, 성산포로도 가고, 돈이 좀 더 있는 사람들은 저 뉴질랜드로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그 태양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나요? 태양을 남보다 한 5분 먼저 봤다고 해서 그 태양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나요? 태양도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그 태양이 아무리 밝아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합니다. 희망은 오직 창조주 되시고,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성취하신 역사가 희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21세기를 살게 하셨다면 분명히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거든요. 20세기만 살지 않게 하시고 21세기를 살게 하신 것은 분명히 환경은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 안에서 희망이 있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뜻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앞에 21세기가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21세기를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시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를 향해서 영생을 주시고, 뿐만 아닙니다. 복을 주시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지 않게 하신 것만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41편 2절에서 이렇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절망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살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 할렐루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지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보호와 은혜를 힘입어서 이제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21세기가 우리에게 새롭게 온 것처럼,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살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갈 것입니다. 교회 와서 주님 만나고, 교회 와서 은혜 받고, 교회 와서 힘을 얻고, 교회 와서 꿈과 희망을 안고, 이제 어둡고 캄캄한 세상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하는 세상에 나가면 우리 때문에 어두움이 빛으로 됨으로 말미암아 밝아질 것입니다. 썩어져 가는 세상이 이제 썩지 않게 될 것이고 맛없다고 하는 세상 삶이 분명 맛있는 삶으로 분명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이고 암흑과 같은 이 시대에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삼으셔서 21세기의 영적 지도자, 영적 축복자, 영적 영웅으로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겠습니다.

첫째, 일어나라

자 그때 주님이 우리에게, 이때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첫째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자. 아멘." '일어나라' 이 말씀은 최고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최고의 힘의 말씀입니다. 최고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이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신 생명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 벌떡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를 치룹니다. 행렬을 멈추고 관 뚜껑을 열고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러니까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 일을 예수님만 하셨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욥바의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일어나라." 죽은 다비다가 살아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은 병든 자를 치유하고 묶인 자를 자유케 하시는 능력의 말씀인 것입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치료를 받은 것처럼, 옥에 갇힌 베드로가 자유함을 얻은 것처럼 "일어나라." 이 말씀이 들리는 사람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질병과 고통 속에서 가난과 슬픔 속에서 모두가 다 일어날 수 있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진실로 하나님의 일꾼 삼으시기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한국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1,200만 성도에게 말씀하십니다. 순복음교회 6만 성도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지금, 3부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본 성전에서, 각 지성전에서, 인공 위성을 통하여서 전 세계에서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여러분들에게 우리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요?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게으른 자여 일어나라." "신앙의 앉은뱅이 된 자여 일어나라." "좌절과 원망과 낙심과 불평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명령하십니다.

잠언서 6장 9절로 11절입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에게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게으른 사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배워라."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일하기 싫은 자여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성령충만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사명자로 일어나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어두움으로부터 일어나고, 하나님을 향해서 사명자로 일어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수업 시간에 아는 질문이 나와도 손을 들지 않은 학생이 있습니다. 세상 표현으로 말하면요, 남들과 다르게 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 하는 것이냐? 절대로 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이 사명을 주셨다면 일어나야 합니다. 달려가야 합니다. 뛰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는 자가 되고,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되고,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 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나도 복 받고, 남도 복을 주는 우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튀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니엘은 튀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그대로 단호하게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채식만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더 건강했습니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윤택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죄와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됩니다. 세상은 죄악 때문에, 시기 때문에, 미움 때문에, 절망 때문에, 원망 때문에, 불평 때문에, 자꾸 어두워져갑니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다 성령 충만함 받아서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면 우리는 새 공기를 마실 수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며, 높은 산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모두가 다 저 높은 곳을 향해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생각하며, 천국을 생각하며 일어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처럼 최고의 자리에 오릅시다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위에 가득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60장 2절 말씀이십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말씀했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개인과 여러분 가정 위에, 여러분 일터 위에 넘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교회 위에 있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한국 교회 위에 있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 위에 있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겠습니다.

둘째, 빛을 발하라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빛을 발하라.", "빛을 발하라." 성도는 하나님의 빛과 영광을 입은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하시겠습니다. "나는 빛이다. 내 속에 하나님의 빛, 예수님의 빛, 성령님의 빛, 그 빛이 있다. 아멘. 아멘. 아멘." 우리가 바르게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발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빛을 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가리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처럼 소위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세대도 없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연예인만 스타가 아니예요. 체육인도 스타인 것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도 스타가 되려고 합니다. 아니예요. 스타는 연예인만으로 만족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스타가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기업인들도 스타가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목사니까, 목사들도 스타가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성도들도 스타가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어느 책에 그런 책이 있잖아요.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있다.", 날개가 없으면 못 올라갔을 것인데, 높이 안 올라갔으면 안 떨어질 것인데,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있다. 스타는 떨어진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스타가 되려고 하지 마시고 존경받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스타가 되려고 하지말고 인정받는 사람이 됩시다. 인정받는 사람, 존경받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도들조차도, 자녀를 세상의 영광과 부를 누리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세상 영광과 영화는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썩어져 없어질 것들인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그 밝기와 그 영광을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빛과 영광이 주어져 있는 것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스타보다도, 세상의 어떤 찬란한 빛보다도 더 위대한 빛이 위대한 영광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과 영광으로 와 계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이사야서 60장 19절 말씀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빛은 하나님의 빛은 예수님의 빛은 성령의 빛은 무슨 빛이냐? 구원의 빛인 것입니다. 죄인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중생하는 겁니다. 또 그 빛은 말씀의 빛인 것입니다. 또 그 빛은 생명의 빛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분 하나님 한 분만으로, 예수님 한 분만으로, 성령님 한 분만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에 말을 합니다. 시편 27편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우리는 빛의 사람들인 것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빛으로 비춘다. 따라합시다. "나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 말씀이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어떻게 그 빛을 발산할 수 있습니까? 내 속에 하나님으로 오신 빛, 예수님으로 오신 빛, 성령님으로 와 계신 빛을 어떻게 발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감사만 하면, 우리가 기도만 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기만 하면, 날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빛, 예수님의 빛, 성령님의 빛이 발산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빛인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예수님을 비추는 예수님의 빛인 것입니다. 이 세대가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우리 자녀들이 점점 더 타락해 가는 것은 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정치하는 사람의 책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의 책임입니다. 난 목사니까, 목사들의 책임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성도니까, 성도들의 책임입니다. 한국 교회가 빛을 발하면, 목사가 빛을 발하면, 성도가 빛을 발하면,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 엄습해 온다 하더라도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 영생의 길, 구원의 길, 성공의 길, 평안의 길, 승리의 길이 환히 보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은 어둡고 캄캄한데서 길을 잃어버려서, 고통 당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어느 것이 그른 것인지 알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서 죄를 짓는지 모르고 삽니다. 잘못하면서 잘못하는지 모르고 삽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만이 길이다. 예수님만이 영생이다. 예수님만이 참 생명이다." 힘차게 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더 성령충만함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그들에게 빛을 심어주고 그들의 길을 안내해 줄 때, 이 세상은 맑고 밝고 환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어두운 곳입니다. 사탄이 역사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갈 곳을 몰라 방황하고, 죄를 짓는 인생들이 너무나 많은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을 밝히게 하고 또 갈 길을 제시해 주게 하고 또 잘못된 것을 또 고쳐주는 사명, 또 더러운 것을 불태워주는 사명을 빛된 우리에게 감당하게 하셨다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60장 1절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내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것, 예수님의 빛을 비추는 것, 성령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빛이 아닙니다.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빛, 예수님의 빛, 성령님의 빛을 우리가 비취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빛을 세상에 반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비유한다면, 하나님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이시라면 우리는 그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달인 것입니다. 해가 동해에서 뜹니다. 서로 넘어갑니다. 시간이 가면 동은 밤이 됩니다. 해가 없으니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해는 달에게 "내가 없는 동쪽의 캄캄한 밤에 네가 비춰라. 내 빛을 받은 달아, 너는 빛을 비춰야 한다." 그리고 해는 서로 갑니다. 또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그 해가 다시 동으로 옵니다. 그때 서는 지구가 둥그니까 캄캄합니다. "햇빛을 받은 달빛이여, 달아, 서양의 어둔 밤은 네가 비춰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우리 모두에게 빛을 주고 가셨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땅에 다시 재림하는 그 날까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가지고 오는 그 날까지 구원받은 성도들이여, 모든 교회들이여, 교회는 예수님 몸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의 지체들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그 빛을 세상에 마치 달과 같이 반사하면서, 비춰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사명인 것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빛을 나만 소유하려고 한다거나 그 빛을 감추는 데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빛을 모두가 알고, 모두가 빛을 공유할 수 있도록 모두가 다 일어나야 한다,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어야 한다, 받은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받은 능력을 증거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해서 함께 누리며 살아나가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말씀하신 주님은 "빛을 발하라." 말씀하십니다.

셋째, 만민이 산다

세 번째입니다. 자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오느냐? 따라하시겠습니다. "만민이 산다. 만민이 산다. 만민이 산다." 그렇습니다. 만민이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도 살고, 너도 산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가 다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다 함께 살고, 교회가 다 함께 살고, 성도가 함께 살고, 민족이 함께 살고, 나라가 다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모두가 다 일어나 빛을 발하면 우리는 다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순복음 인천교회 6만 재적 성도가 더 모두가 일어나고 빛을 발하면, 분명히 인천 모두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4만 5천 교회. 10만 주의 종, 1천 2백만 신자가 다 일어나고 빛을 발하면 남한의 4천 6백만 국민, 북한의 2천 3백만 동포 모두가 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할 때, 우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일어나는 사람, 우리 모두가 빛을 발하는 사람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 받은 사람이다. 복 받은 사람은 뭐냐? 나만 잘 되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너가 잘 되고 내가 잘 될 때,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복 받은 사람의 삶은 어떻게 사느냐? "하나님 먼저, 너 먼저, 그리고 나"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먼저 돌리고, 다른 사람 먼저 성공시켜 주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그 다음에 내가 잘 되는 삶, 이것이 복 받은 삶인 것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면,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편과 그 시어머니가 핍박할 수도 있습니다. 또 중요한 국가고시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사업상 만나는 손님을 대접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업이 어려움을, 당장 손해가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적으로 손해를 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이 땅에서, 하늘에서, 백 배의 복을 받는 비결인 것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말을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로 30절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런 은혜, 그런 사랑, 그런 힘, 그런 축복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잠깐의 고난 때문에 영원한 축복이 보장된 성도의 빛된 삶을 포기하거나 복음의 빛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11절로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 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빛이 드러날 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것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이 드러날 때,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빛이 드러날 때, 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의 빛이 드러날 때에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만인이 삽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만인이 산다." 세상 모든 영혼이 주의 이름을 알고, 그 빛을 누리며 사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리고, 온 가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 더 행복한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름밤에 빛을 보고 곤충이 모여오는 것처럼,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할 때 세상은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고,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60장 3절에 말씀하십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생명의 빛, 진리의 빛, 치유의 빛을 비춰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빛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비추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장4절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성령충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장해야 되는 것 아시기 바랍니다. 잠에서 일어나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고, 때를 따라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무장하고, 날마다 성령충만 하여 하늘의 권능자가 됩시다.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 복음의 빛, 생명의 빛,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빛을 온 누리에 비추며 삽시다. 분명히 어둠이 물러나고 온 세상의 그 칠흑을 밝힐 수 있도록 산 위의 등불이 됩시다. 빛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세주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께서 온 땅을 회복시키시고 온 만민을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만민이 사는 이 사회가 건설되는 데에 주인공 역할을 감당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