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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빌레몬서는 여러 면에서 특이하다. 바울의 서신서들 가운데서 가장 짧은 것으로 단 한 장 25절로 되어 있다. 빌레몬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가운데서 유일하게 개인에게 보낸 서신이기도 하다. 다른 옥중서신들처럼 교리적인 문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빌레몬서는 매우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독교인은 서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비록 빌레몬서에는 용서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정의 실제적인 문제를 통해서 빌레몬서는 용서의 문제를 너무나도 아름답고도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1. 저자 교회사적으로 볼 때 빌레몬서를 바울이 썼다는 사실에 도전을 했던 경우가 두 번 있었다. 첫째는 주후 4세기 경으로 빌레몬서에는 바울의 다른 서신서에서 볼 수 있는 교리적인 내용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교부들, 예컨대 제롬이나 크리소스톰은 바울을 본서의 저자로 입증하였다. 주후 2세기경의 무라토리아 단편(Muratorian Fragment)에는 빌레몬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이단으로 알려진 마르시온도 본 서신을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했다. 둘째는 19세기의 튀빙겐 학파에 속하는 학자들(F. C. Bauer, Van Manen 등)에 의해서 본서의 바울 저작권에 대한 이의가 제기 되었다. 이들은 주후 2세기경의 한 인물이 노예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이 서신을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본서의 서두에 자신이 발신자임을 밝히고 있으며(1절), 그 자신이 친필로 기록했음도 밝히고 있다(19절). 아울러 바울은 본서에서 자기의 신상에 관한 내용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예컨대 자기가 갇혀 있다는 사실(1, 9, 10, 13절), 빌레몬이 자기에게 생명의 빚을 진 것이 있다는 사실(19절), 기도의 부탁(22절), 그와 함께 하는 다섯 명의 이름으로 한 문안 인사(23∼24절) 등은 바울만이 말할 수 있는 개인적인 내용들이다. 이처럼 본서에 나타난 여러 정황들이 바울의 생활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보건대, 본서의 바울 저작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2. 수신자 2절에는 본서의 수신자가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및 빌레몬의 집에 모이는 교회로 되어 있다. 전통적으로는 압비아가 빌레몬의 부인이며, 아킵보는 그들의 아들로 알려져 왔다. 하여튼 바울은 본서가 빌레몬 한 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그의 집에서 모이는 골로새 교회의 모든 성도들도 함께 읽고 그 속에 있는 교훈을 받기 원했음이 틀림없다. 3. 기록 연대와 기록 장소 본서는 다른 옥중서신들(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과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로 연금되어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그 시기는 A.D. 61∼63년경으로 추산된다. 바울은 이때 비교적 자유로운 연금 상태로 셋집에 유하고 있었다(행 28:30∼31). 그는 뭇사람의 방문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를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오네시모였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로마로 도망쳐온 상태였다. 바울은 이러한 오네시모를 복음으로 감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를 위해 편지를 한 장 써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본서이다. 이때 두기고가 오네시모와 함께 본서를 가지고 빌레몬에게 갔었다(골 4:9). 4. 기록 목적 그 당시는 도망친 노예가 집힐 경우, 그의 생사는 순전히 주인의 손에 달려있었다. 노예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살리더라도 그의 이마에 도망자라는 라틴어 단어의 첫 문자인 “F”자가 낙인으로 찍혔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형제로 따뜻하게 맞이할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했다. 바울은 본서를 통해 모든 기독교인들이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살 것을 독려하고 있다. 5. 용서의 신학적 이유 바울은 21절에서 빌레몬이 “용서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본서에 용서와 관련된 교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빌레몬이 이미 용서의 신학적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하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형제를 용서하면서 살아야 할 몇 가지 대표적인 신학적 이유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 당사자를 미워하는 것이요, 마음의 미움은 그를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마 5:21∼22). 2) 용서하지 않은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마 5:23∼24). 3)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6:14∼15).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야지, 징계를 받으면서 살아서야 되겠는가? 4) 우리에게 용서함이 없으면 우리의 이웃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이 그 동료의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을 때, 누가 그 사실을 왕에게 가서 일러바쳤던가? 그의 동관들, 곧 동료 종들이었다(마 18:31). 우리에게 용서가 있으면, 보는 이들의 마음도 기쁘다. 그러나 우리에게 용서가 없고 미움과 복수가 있으면, 보는 이들의 마음도 아프다. 5)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자기가 대신 하겠다는 교만한 생각이기 때문이다(롬 12:14, 19).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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