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 1:18-25
제목 :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나심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인간과 함께 계신다는 뜻도 있고 우리를 구속하시려는 수단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라고도 보는 것입니다(요 3:16, 롬 5:8). 이렇게 그리스도의 나심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로 인하여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행 16:31, 행 4:1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의 과정이 매우 중요한 뜻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1. 성령으로 잉태하였습니다.
본문 18-20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지 동침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25). 그런데 잉태를 하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생리적인 법칙으로 태어났다면 그는 우리의 구주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리적인 법칙을 초월하여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과 같은 방법으로 태어났다면 그도 원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주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구주로 태어나셨습니다.
본문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하였습니다. 하늘의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때에 말하기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죄 많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은 곧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빌 2:6-8).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성경대로 태어났습니다.
본문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하였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고 영원히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살리시기 위하여 창세기에서 원시적인 복음으로 여인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창 3:15). 그리하여 처녀의 몸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기로 예언하셨습니다(미 5:2). 그런데 그 예언대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태어나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의하여 태어나신 것입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서 4:1-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육체로 태어나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심을 믿지 못하면 이는 불신자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함이나 부활하신 사실은 믿음이 아니고는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 마 2:9-12
제목 : 진정한 예배
서론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을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서 경배드리고 예물 드리며 축하한 사실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예배는 인간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리는 거룩한 예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요 4:23-24).
1.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하였습니다. 경배(경배)는 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자기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2.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11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하였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로 나가서 경배를 드리고 그리고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하는 심정으로 무엇이든지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서 찬송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며 감사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러 가자는 말보다는 받은 은혜를 보답하러 교회가자고 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설교교인이 되지 말고 예배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교인이 되면 자기 귀에 듣기 좋게 말하는 이를 찾아 다니지만 예배교인이 되면 설교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말씀에 좌우되지 않고 교회를 출석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받는데다 목적을 두지 아니하고 드리는데다 목적을 두면 교회 출입의 목적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만 좌우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도 거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도가 취할 태도는 교회를 출입할 때에 외형적인 형식은 갖추어야 되는데 동방의 박사들처럼 아기 예수가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서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고 받지 아니하고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관계를 해서도 안될 일입니다. 다만 교회를 출입하는 성도들의 태도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겠다는 정신보다는 드리겠다는 정신,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하겠다는 정신, 좋은 교회를 찾는 곳보다는 좋은 교회를 만들겠다는 정신, 화평한 환경을 추구하기보다 화평을 도모하겠다는 정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보다는 나만이라도 교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종말론적인 성도상을 정립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는 덕을, 자신과 후손에게는 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서 말씀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아가서 그대로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결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알고 월요일부터 주일을 기억하고 엿새 동안에 힘써 일하고 주일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즉 경배드리겠다는 정신으로, 예물 드리겠다는 정신으로, 말씀듣고 순종하겠다는 정신으로 예배를 드려야 진정한 예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 마 3:1-13
제목 : 주의 길을 예비하라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육개월 먼저 온 세례요한이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면서 주의 길을 예비하여 초림하시는 그를 맞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재림하실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회개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1.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1-2 "그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초림하시는 주님이나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데는 회개가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 초림하신 목적이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아니하시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것입니다(눅 5:32). 그리고 주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맞이하는데는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회개하는 길만이 그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2.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본문 5-7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 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하였습니다. 회개는 느끼고 뉘우치는 것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진실로 지은 죄를 자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삼요소는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아야 하고 그 죄를 슬퍼해야 하며 그 죄를 끊어 버리는 행동이 뒤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만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의 회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자복할 때에 그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요 1서 1:8-9).
3.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본문 8-13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길입니다.
결론
세례요한은 초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림하실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여 죄를 자복하고 다시는 죄를 범치 아니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본문 : 마 4:1-11
제목 : 마귀의 유혹
서론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성도들을 유혹하여 타락하게 만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는 사자처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적을 대적해야 합니다(벧전 5:8-9). 아담을 시험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고 그를 시험한 마귀는 오늘의 성도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마 26:41).
1. 물질로 유혹합니다.
본문 3-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어리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을 우선으로 해서 유혹합니다. 사람에게 배제할 수 없는 것이 물질입니다. 그것도 먹고 마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이면 언제나 그 시험에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딤전 6:9-10). 그러므로 이 유혹을 이기는 길은 물질을 초월하는 것입니다(약 1:14).
2. 명예로 유혹합니다.
본문 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하였습니다. 이는 이적을 보여서 명예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명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늘에도 이와 같은 유혹이 없지 아니합니다. 마귀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여야 합니다. 이적은 명예를 얻기에 충분하고 많은 사람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직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4:6).
3. 권세로 유혹합니다.
본문 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정치적인 시험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권세를 주겠다고 하면서 먼저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의 지배할 권세를 빼앗으려는 수작은 가소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는 본래부터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경배하고 권세를 받으라고 하니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유혹에 빠져서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을 받을 때마다 말씀으로 응수하여 이기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말씀에 굳게 서서 욕심을 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본문 : 마 5:13-16
제목 : 성도의 역할
서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보다도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고 바울사도는 믿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세상에서의 역할은 매우 큰 것입니다. 성도들의 역할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우리들로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롬 2:24). 그러므로 성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1.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하였습니다. 소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존재이지만 때때로 사람들에게 귀하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공기와 햇빛 그리고 비와 같이 귀한 것이 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그것들은 제 사명을 다하여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이 성도들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금이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제몫을 다하듯이 성도들도 세상의 방부제 역할과 맛을 내는 역할을 해야하며 생명의 양분(養分)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이 자체로서만 있으면 별로 큰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녹아서 음식물에 침투되어 자체의 형체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맛을 내는 것과 같이 기독교인들도 일상생활 가운데 녹아져 보이지 아니하면서도 기독교인의 맛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도의 역할은 소금의 역할과 같은 것입니다.
2.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14-15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서 1:5). 예수 그리스도도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5-9, 요 8:12). 그렇습니다. 우리는 빛 자체가 아니고 오직 빛을 받아 반사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빛을 발휘하는데 빛을 받는 거울이 얼마나 정상적인 거울이냐 여하에 따라서 빛의 반사의 정도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거울이 더러워졌다면 빛을 제대로 반사할 수가 없고 거울이 깨끗하면 그 빛을 제대로 반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성도들이 얼마나 말씀대로 바로 사느냐 살지 아니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휘하는 역할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빛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업습니다(히 13:8). 그런데 성도들이 그의 빛을 가리우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빛을 증거하는 세례요한과 같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요 1:6-7).
3. 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명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선하신 이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한 바울사도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향기는 냄새요냄새는 두 가지가 있는데 향기로운 냄새와 그렇지 못한 악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는 주로 먹는 음식물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마늘을 먹으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마늘 냄새가 나고 김치를 먹으면 김치 냄새가 나며 술을 마시면 반드시 술 냄새가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냄새를 나게 할까요. 두말할 필요없이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그의 냄새가 나지 아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진리입니다(요 6:48-58). 같은 원리로 선하신 하나님의 가르침과 그의 도우심이 없이는 누구도 선한 행실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하고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히 11:6, 롬 14:23). 그러므로 성도들은 믿음의 착한 행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결론
성도들은 세상에서 소금의 빛과 선의 역할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보내고 기독교의 우수성을 널리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의무요 역할입니다.
본문 : 마 6:5-8
제목 : 기도할 때에 주의하라
서론
기도는 성도의 영혼의 호흡이며 신앙의 생명이라고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한 기도를 아무렇게나 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일도 있습니다(마 6:9).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하였습니다. 기도는 연설도 아니고 웅변도 아니며 시를 낭독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입니다(계 5:8).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드린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빙자하여 자기를 선전하고 나타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고 대접한다는 구실로 자기를 선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임을 알고 하나님께서만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눅 18:9-14).
2. 사람을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의식해서 기도를 꾸미고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사람들이 듣기 좋게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외식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 기도를 하면서 사람을 의식하여 마음에도 없는 단어를 사용합니까.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하기 쉽지만 사람을 의식하면 기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3. 말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말을 해야 들으시는 것이 아니고 단 한 마디를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들이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거창하게 장엄한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받지 아니하시고 세리의 간단명료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여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 형식의 기도보다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간단한 기도가 더욱 좋은 것입니다. 기도는 아버지께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자기의 간절한 생각을 솔직히 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되풀이하여 시간끌기 작전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공중 기도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결론
기도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믿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차원 높은 기도는 응답을 전제로 하지 아니하고 상달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본문 : 마 7:15-23
제목 : 거짓 선지자
서론
세상에는 거짓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거짓말 거짓 행동 거짓 종교 거짓 음식 등 가짜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가짜가 많다보니 거짓 선지자까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안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가 조심하지 아니하면 미혹을 당하여 영원히 후회하는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짜를 식별하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1. 속 다르고 겉 다릅니다.
본문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 속은 양을 잡아먹는 무서운 이리라는 것입니다. 참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거짓 목자는 양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채운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없어도 안 되고 양이 없어도 안 되는데 피차에 필요성을 인정하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르고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고 의의 일군으로 위장하며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1:13-15). 겉은 그럴 듯 하지만 속은 사단의 일군이라는 것입니다.
2. 말과 행위가 다릅니다.
본문 16-20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나무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하였습니다. 말로는 양을 위하는데 행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약 2:26). 그래서 온전한 믿음은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행함이 그 믿음을 온전케 한다고 하였습니다(약 2:22). 거짓 선지자들은 행위보다는 말이 앞장서고 실천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은 희생하라고 가르치지만 실제 자기는 희생을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3. 말씀보다 이적을 강조합니다.
본문 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하였습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은 망하는 것입니다(잠 13:13). 그래서 말을 중요시 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큰 이적으로 미혹하는 것입니다(마 24:24). 심지어는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리고 우상이 말을 하게도 합니다. 말씀은 믿음을 심어주지만 이적은 마귀들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적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라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좋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이적을 행하고 훌륭한 말을 한다고 해서 진정한 선지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신앙 좋은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주께서 인정해주시느냐 아니해주시느냐 여하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 마 8:5-13
제목 : 백부장의 신앙
서론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서 극히 착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은 그의 행위를 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백부장은 어떤 믿음의 행위가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본문 5-7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하였습니다. 주인이 하인의 병든 것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하였습니다. 자기의 병든 것을 위하여서도 기도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인데 하인의 병든 것을 위하여 예수께 간절히 부탁을 드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그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확답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함과 행함으로 하는 것입니다(요 1서 1:18).
2. 주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본문 8-9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교인 자기가 부하에게 명령만 하면 그대로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만 보내시면 자기의 하인의 병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보시고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그의 하인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3. 주께 인정을 받는 자였습니다.
본문 10-13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신앙을 백부장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인정을 받아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인정받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가문은 좋지 않지만 본인의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결론
백부장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백부장의 믿음처럼 좋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히 11:6)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본문 : 마 9:27-31
제목 : 소경의 태도
서론
사람은 거의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태어난 후의 신체적인 구조는 천태만상입니다. 어떤 자는 벙어리로 어떤 자는 소경으로 어떤 자는 귀머거리로 태어나서 태어남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며 자신을 저주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소경 두 사람은 누구를 원망하기 이전에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마침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려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
1. 따라가는 태도였습니다.
본문 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알고 그 분이 아니면 자기들은 고침 받기가 어렵겠다는 판단 하에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르면서 간구하였습니다. 소리를 질렀다고 하였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처지가 체면과 우신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며 부끄러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을 뜨게 하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만 죽자 살자 따르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2. 간구하는 태도였습니다.
본문 27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였습니다.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간구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답답하면 무슨 짓이라도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경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했겠습니까. 소리를 지르는 것이 문제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구원하여 주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또한 소경이 바디매오가 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기다리고 있다가 예수란 말을 듣고 소리를 얼마나 질렀든지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래도 그 소경은 계속하여 소리를 지르며 간구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행위를 믿음의 행위라고 보시고 칭찬하여 주셨습니다(막 10:46-52).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막 9:29).
3. 확신하는 태도였습니다.
본문 28-31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집에 들어가시기까지는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아니하시고 계시다가 집에 들어가서야 겨우 입을 열어 물어 보시는 말씀이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고 하십니다. 그들은 확신에 찬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막 9:2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이 있는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는 감정에 치중하여 그 말씀을 불순종하였습니다.다감정에 취우칠 때에 과오를 범하기 쉬운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결론
그는 주님만 의지하고 따라야만 자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리를 질러서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대로 될 줄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에 어떻게 움직이느냐의 태도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 : 마 10:16-23
제목 : 지혜로운 생활
서론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매우 어렵고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가 부족한 자가 있으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습니다(약 1:5). 솔로몬은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지혜를 구하였습니다(왕상 3:10-13). 그리하여 그는 지혜로 유명한 왕이 되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1. 피하면서 사는 생활입니다.
본문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하였습니다.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아니합니다. 특히 성도들이 불신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롭기가 뱀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뱀은 어느 동물보다도 지혜로워서 자신의 몸을 잘 피하빈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전도하려고 나아갈 때에 힘으로 강자를 이기려고 해서는 안되고 사랑으로 강자를 정복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악마에게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뱀과 같아 신속하게 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교훈입니다. 모든 면에서 성도로서 해될 만한 것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요셉이 성적인 유혹을 받았을 때에 그 자리에서 피하여 도망한 것처럼 피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딤전 6:11).
2. 사람을 조심하면서 사는 생활입니다.
본문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하였습니다. 뱀이 항상 주의 깊게 주의를 둘러 보는 것처럼 성도들은 사람들을 주의 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인하여 미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도 사랑하는 제자가 마귀들 종노릇하는 것을 보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였습니다(마 16:22-23). 마귀는 언제나 사람을 이용하여 유혹하는 것입니다. 아담도 하와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세에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21-22).
3. 성령께 맡기고 사는 생활입니다.
본문 19-20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무능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슥 4:6). 하나님은 언제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모든 염려 주께 맡기고 감사함으로 기도하심이 옳은 것입니다(빌 4:4-7). 우리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께 맡기고 기도하며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결론
지혜로운 생활은 어제 오늘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짓는 장소에서 피하고 사람을 조심하면서 모든 일은 주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마 11:28-30
제목 : 예수의 초청
서론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옺 아니하시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눅 5:32). 그리하여 죄인을 머리 하시지 아니하시고 불러서 죄를 용서하시려고 지금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으며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초청에 기쁨으로 응해야 할 것입니다.
1. 죄인을 오라고 하십니다.
본문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였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죄는 사람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서 하루도 마음으로 편안할 날이 없고 육체적으로도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늘 눌리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늘 눌리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말하기를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시 119:28) 이것이 죄로 인한 영혼의 고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죄로 고통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은 자들을 오라고 하십니다. 편히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들에게는 복음입니다. 찬송가 337장 작사자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F. J. Crosby)는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면서 주 앞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2. 알고자 하는 자를 오라고 하십니다.
본문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하였습니다. 주께서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가벼운 마음과 홀가분한 몸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주께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이 붉고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양털같이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배우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요 8:32).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하였습니다. 몰라서 고통할 때가 있습니다.
3. 평안을 원하는 자는 오라고 하십니다.
본문 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는 자는 쉽게 끌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주께서 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고 주 앞에 나와서 자복만 하면 깨끗함을 얻고(요 1서 1:9, 사 1:18-20) 진리를 알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가지며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요 14:27).
결론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초청에 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 마 12:34-37
제목 : 사람과 언어
서론
그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의 언어가 좌우하는 것입니다. 말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런데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악인에게서 악한 말이 나옵니다.
본문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하였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매개체인데 그 마음이 악하면 그의 말은 반드시 악한 말로 나타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악함을 아시고 그와 같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지만 그들의 속에는 악의와 간교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에게서 어찌 선한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2.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을 합니다.
본문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하였습니다. 사람이라는 창고에 악이라는 물건을 쌓아두면 그 물건이 다른 물건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인가 그것을 꺼내면 그것이 바로 악한 말의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선한 사람의 마음의 창고에 선한 말이라는 물건을 쌓아두면 결국에는 선한 물건을 꺼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3. 말에는 책임성이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 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하였습니다. 사람이 말을 가볍게 하는 것은 말만으로는 큰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고 그 근본 인격과 관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에서부터 살인을 하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귀에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하였습니다. 말의 책임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결론
말은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하빈다(잠 11:11, 벧전 3:10-12).
본문 : 마 13:1-23
제목 : 씨와 밭
서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교훈을 하시는데 복음을 씨앗이라고 설명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는데 나타나는 결과를 비유로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인데 씨가 밭에 떨어져서 나고 결실하기까지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1. 돌 밭에 떨어진 씨가 있습니다.
본문 5-6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하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20-21)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씨가 흙이 얇은 곳에 떨어지면 곧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복음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복음을 받을 때에 신앙이 좋은 것 같이 해도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타락하고 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있습니다.
본문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하였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財利 : 재물과 이익)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22)하였습니다. 씨가 밭에 떨어졌는데 가시떨기에 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가시가 더 많이자라매 가시가 그 기운을 막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받아서 믿는다고 하지만 믿는 목적이 분명하지 못하고 믿음의 결과가 육신의 욕구불만이나 충족시키려는데 머물고 마니까 결국 타락하는 것입니다.
3. 옥토에 떨어진 씨가 있습니다.
본문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23)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받으면 믿는 목적이 분명해야 끝까지 견딜 수 있고 끝까지 견디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마 24:13). 신앙생활이 세상의 것을 얻으려는 목적만 가진다면 이는 중도에서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비록 세상의 것이 조금 잘못 된다고 하여도 구원받은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벧전 1:9, 합 3:17-18).
결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요 밭은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은 성도들은 끝까지 견디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진 것은 아예 싹이 나기 전에 이미 새가 주워 먹어 버렸고 옥토에 떨어진 씨는 백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여 많은 결실을 맺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마 14:13-33
제목 : 안심하라
서론
예수님 당시에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라 다녀서 예수님은 쉴새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이 오천명이 넘었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걱정을 하고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 믿음이 없는 자들은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것을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는데 오천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1. 병든 자여 안심하라
본문 13-14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병인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질병은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죽을 병, 개달을 병, 영광의 병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병에 걸렸다면 천국가는 순간이니 안심해야 하고 깨달을 병이면 회개만 하면 고쳐주시니 안심할 일이요 영광의 병이면 때가 되면 고쳐 주시니 안심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병을 치료하시는 의사입니다(출 15:26, 출 23:25-26).
2. 가난한 자여 안심하라
본문 15-21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분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결코 굶어죽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3. 환난을 당한 자여 안심하라
본문 24-33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배와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항해하는데 풍랑을 만나서 두려워 할 때에 주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가고 싶어할 때에 예수께서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걸을 때는 무사히 걸었는데 물을 바라보고서 무서운 생각이 들어 두려워할 때에 그만 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사 41:10, 마 28:20).
결론
세상에는 두려워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먹이시며 흥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던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안심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마 15:21-28
제목 : 자식을 위한 부모
서론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더 넓고 깊은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병든 부모의 대소변 수발을 3일을 못하지만 그러나 부모는 3년도 싫다하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가나안 여자가 자기 딸이 귀신들려 고통하는 것을 보다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침을 요청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측은하여 동정이 가는 것입니다.
1. 자식을 위하여 절규하였습니다.
본문 21-23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신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하였습니다. 가나안의 한 여인이 자기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절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애타는 행동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그렇게 간절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2. 개 취급을 받았습니다.
본문 24-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개 취급을 받는 순간입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나안 여인을 개로 취급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무조건 도와 달라는 말 뿐입니다. 이것이 자녀를 위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기 하나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병만 고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고대 소설인 심청전을 읽어 보면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도록 하기 위하여 공양미 300석에 자기 몸을 팔아 물에 빠져 죽는 일도 있지만 이는 소설이고 실제 있다고 해도 소수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식도 부모의 마음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3. 자식을 위해서는 좋다는 것입니다.
본문 27-28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은 구할 자격은 없지만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하는 심정으로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니의 은혜를 체험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어떤 일을 당해도 죽음을 각오하고 해내비낟. 그러나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합니다. 부모는 어린 자식을 위하여 대소변을 떡 주무르듯 하였지만 장성한 자식은 늙어 병든 부모의 대소변을 얼굴을 찌푸리며 한 두 번도 억지로 치우는 것입니다.
결론
부모의 자식 위하는 간절한 마음을 생각해서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할 때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이 임할 것이지만(엡 6:1-2)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는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본문 : 마 16:13-20
제목 : 예수는 누구인가?
서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에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예수에게 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1. 예수를 잘못 아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문 13-14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레미야도 엘리야도 세례 요한도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믿는 성도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면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본문 15-16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였습니다. 이는 정확한 대답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성인 중의 하나로 알고 있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는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성도는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히 11:6).
3.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본문 16-2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자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올바른 신앙고백이 우리들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요 4:25-26).
결론
예수를 바로 아는 것이 바른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지적으로는 알고 정적으로 믿고 의지적으로는 믿는대로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딤후 3:14). 이것이 믿음의 삼요소입니다.
본문 : 마 17:1-8
제목 : 심령 부흥
서론
오늘의 거리에는 심령부흥회라는 광고지가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거창합니다. '성령폭발 신유의 은사' '집회 말씀 충만 은사' '충만 기적충만' '와보시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라' 등등 사람을 현혹하는 광고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그럼 과연 심령부흥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본문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하였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데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심령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회라고 명칭을 붙이면 하나님의 말씀만 전파가 되어야 하고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부흥회는 그렇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죽은 심령이 살아나고(요 5:25)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롬 10:17). 그리고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계 1:3).
2. 겸손히 주만 섬겨야 합니다.
본문 6-8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집회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바로 받고 그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릴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에 찔려 어찌할꼬 하였습니다(행 2:37). 그렇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 말씀 앞에 엎드리는 겸손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본문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신령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를 위하여 초막을 짓겠다고 자원하면서 자기의 생각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락하시면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심령의 부흥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은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뜻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결론
심령 부흥회라는 간판을 걸어 놓고 자기 새고나 하고 자기가 하나님 같이 행세하는 태도를 취하며 복을 주는 것 같이 하고 병을 고쳐주는 것 같이하며 함부로 말하는 안하무인이 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회는 정중히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되고 이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겸손히 주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본문 : 마 18:15-17
제목 : 형제가 죄를 범하면
서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죄를 범하면 어떻게 대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2)하였습니다.
1. 직접 권고해야 합니다.
본문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하였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수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멀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수를 하면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스스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자를 보거든 혼자 찾아가서 친근하게 권면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주는 친절이 필요한 것입니다. 온유한 심정으로 권면하는 것이 한 사람을 살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2. 몇 사람이 권고해야 합니다.
본문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중참케 하라"하였습니다. 이는 첫째 방법에 의하여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에 제 이단계 방법으로 사람을 더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범죄한 사실을 알리는 범위를 좁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그 사람이 사랑의 권면을 듣지 아니하는 사실을 증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약에 그가 듣지 아니하면 다음에 취할 방법에 대하여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죄를 지은 사람을 대할 때는 그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3. 교회가 권고해야 합니다.
본문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하였습니다. 첫째 방법으로도 아니되고 둘째 방법으로도 아니될 때는 마지막 수단으로 교회에 알려서 공포하게 하여 그를 경계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3-4)하였습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권징조례 2조에 보면 권징의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은 "진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의 권병(權炳)과 존영을 견고하게 하며 악행을 제거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며 덕을 세우고 범죄한 자의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권고해서 안들으면 권징을 해서 그가 깨닫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자가 되지 말고 사랑으로 권면하여 실수한 자가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 회개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하는 것이 형제 하나를 얻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 마 19:3-12
제목 : 이혼하지 말라
서론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시험하려고 모세가 기록한 신 24:1-4의 말씀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장가든 후에 아내에게서 수치되는 일을 발견하고 기뻐하지 않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내어 보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1.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제합니다.
본문 4-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기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하였습니다. 이는 창세기 2장 24절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요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리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종족 보존의 차원에서도 생각할 수 있고 성결하게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라는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여하간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새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래서 고자가 아니면 모두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잠 5:15-19).
2. 이혼할 수 없습니다.
본문 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서 결혼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엄하신 분부입니다. 유교는 부부의 도리에 대하여 아내를 내어 쫓을 수 있는 조건을 몇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악법이 있는데 불순구고(不順舅姑), 무자(無子), 음행(淫行), 질투, 악질(惡疾), 구설(口舌), 도절(盜竊)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악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부의 도리는 함부로 이혼을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셨는데 함부로 이혼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3. 이혼할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하였습니다. 부부가 어느 누가 먼저이고 간에 음행을 했다면 그 자체가 이미 부부 일체라는 관계를 파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산다고 해도 하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이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이유로는 내어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음행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죄악입니다.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놀아났다면 이는 정신적으로 이미 그 남편 곁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함께 살 수가 있습니까. 반대로 남자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음행을 했다고 한다면 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처리가 되어져도 항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 가정에도 이와 같은 엄격한 법을 세워 놓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이혼은 좋은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치루어서라도 이혼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덕이 되고 자신과 후손에게는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 마 20:20-28
제목 : 무모한 요구
서론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하는 말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하나님의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두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무모한 요구인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 요구를 하고 있습니까.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요한의 야심을 노출시켰습니다.
본문 20-21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하였습니다. 이는 요한의 어머니의 요구였지만 사실은 그의 아들인 요한의 요구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5-37)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 형제의 무모한 야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그와 같은 요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2. 환영받지 못하였습니다.
본문 24-25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하였습니다. 야고보의 형제와 같이 무모한 야심을 노출시키면 옆에서 보고 듣는 사람들이 좋게 여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특히 명예욕에 강한 사람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고 심하면 인신공격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전체를 불러놓고 권세에 집착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같은 행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하여 높은 지위는 사양할 줄 알아야 하고 아무것이나 자기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섬기는 생활을 요구해야 합니다.
본문 26-28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였습니다. 높은 자리를 요구하는 제자들과 또 그렇게 한다고 분한 마음을 가지는 자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명예욕이 없으신 분입니다. 성경에서 진정한 지도자 상을 찾아본다면 예수님은 물론이고 그 외에 사무엘 제사장처럼 물질에 청렴 결백해야 하고 요셉처럼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하며 세례 요한처럼 명예욕이 없어서 저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는 면을 보여준 이들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지도자는 남을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 마 21:12-17
제목 :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서론
교회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지상 명령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모여서 헌신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1. 기도를 드리는 곳입니다.
본문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하였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도 그렇게 기록하였습니다(사 56:7). 그렇습니다. 성도가 모이는 장소가 교회요 교회는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교회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행 2:42). 기도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계 5:8). 그러므로 교회를 모여서 싸움이나 하고 오락이나 하는 장소로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2. 예물을 드리는 곳입니다.
본문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하였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입니다. 그런데 이 헌물들을 드리려고 온 것이 아니고 상품으로 진열된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물은 죽어야 되는데 죽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제물이 되지 못하고 상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물을 요구하시지 상품을 요구하시지는 아니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모든 제물은 죽어서 제물로 드려져야지 상품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롬 12:1). 혈기도 죽이고 감정도 죽이고 정욕도 죽여야 됩니다.
3.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본문 15-16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하였습니다. 위선자들은 성전에서 형식적인 의식만 행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된다고 합니다(요 4:23-24). 그리고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드려서 구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곳입니다.
결론
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모여서 성도들이 해서는 안될 일은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서로 사랑하며 권면하며 주님의 부활을 전하고 재림을 대망하면서 주의 영광을 중심해서 서로 교제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 마 22:1-14
제목 : 예수는 초청하는데
서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천국으로 초청하는 과정을 세상에서 혼인 잔치를 베풀고 손님을 초청한 것에 비유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초청을 받은 자들의 태도는 초청자의 성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무관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문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하였습니다. 이는 왕의 뜻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초청을 했는데도 이렇다 저렇다 말 한 마디가 없고 자기 일터로 가고 말았습니다. 물론 자기 맡은 일에는 무척 충실하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천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세상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행한 인생들입니다. 오늘날도 전도해 보면 땅에 것에 대한 애착과 관심은 많지만 내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무관심한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적대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문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하였습니다. 이는 무관심하는 자들보다 초청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자들입니다. 무관심한 자들은 보내신 자의 종들을 살려두기 때문에 그 종들이 초청장 돌리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는 종들을 죽여 없애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 이래로 순교당한 하나님의 종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정도입니다. 이는 부모 형제의 교훈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초청자의 뜻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이들을 죄없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3. 예의 없이 참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문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하였습니다. 이는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낫고 적대시하는 자들보다는 몇 배 낫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적어도 혼인 잔치에 손님으로 초청을 받았으면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데 전혀 그와 같은 예의가 없이 거지들처럼 즉 초청에서 제외된 거지들 같이 해가지고 참석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초청자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자리에 더 있지 못하고 결박을 당하여 어두운 곳에 버림을 받아 거기서 울고 이를 갈고 있으리라는 엄한 벌을 받았습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너희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엡 4:1)고 하였습니다.
결론
초청자의 마음이 무척 아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초청자의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한다는 점이고 혼인(천국)잔치에 무관심하고 있는가 하면적대시하여 종들을 죽이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아니하고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은데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 마 23:13-31
제목 : 화 받을 자들
서론
세상에는 각종 법을 범하고 그 법에 의하여 벌을 받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고 벌 받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화 있을진저 하고 그들이 벌 받을 죄를 지적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천국문을 막고 있는 자들입니다.
본문 1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은 화를 받아도 당연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천국 문을 닫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 벌을 받아도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써서 교인하나 데리고 오면 지옥 갈 사람으로 만들고 있으니 어찌 벌을 면할 수 있습니까?
2. 의와 인과 신을 버린 자들입니다.
본문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하였습니다. 이들은 생산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무로 알고 철저하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렸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먹고 약대는 통채로 삼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월하게 취급하고 지엽적인 문제는 중요하게 여기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공의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을 귀하게 여기며 믿음으로 행치 아니함이 죄가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법을 지키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여 서로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며 용서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도 드리라고 하시지만(말 3:10) 공의를 행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겸손히 주를 섬기는 것도 원하십니다(미 6:8). 그래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3. 겉으로만 치장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25-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하였습니다. 사람은 외모로 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치장하는 것보다는 속사람을 단장해야 합니다. 겉 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 사람은 새로워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깨끗한 것처럼 하지만 속에는 더러운 탐욕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들은 사람의 인정은 못받아도 하나님의 인정은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문을 막는 즉 전도문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하겠고 십일조도 드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생활도 있어야 하겠으며 겉으로만 신자같이 꾸미지 말고 속으로 진정한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마 24:32-51
제목 :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서론
이는 주의 재림을 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초림은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오셨지만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하여 회개한 자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삶은 죽음과 재림을 준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제하에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재림의 때가 가까워 옴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32-36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날짜는 모르지만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 태어날 때보다 죽음의 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며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의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재림이 날도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롬 13:11-14, 벧전 4:7-8). 그러므로 깨어 준비하는 생활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생활인 것입니다.
2.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37-41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틀림없이 있는데 그 날짜를 모르는 가운데서 도적 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알려진 날짜에 임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도 알 수 없는 날에 임하기 때문에 항상 성실한 삶을 살면서 생활 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일하다가 잠자다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3. 재림의 소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42-46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른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임무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끄러움이 없이 주를 만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항상 깨어 준비하고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다(계 22:20). 예비한 자에게는 도적같이 오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결론
성도들은 재림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실한 삶을 살아서 생활 터전에서 주님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매일 같이 재림의 소망 속에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본문 : 마 25:1-46
제목 : 재림 때의 희비(喜悲)
서론
세상에는 언제나 희비의 현상이 공존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좋을 때가 있는가 하면 나쁠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는가 하면 슬플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희비는 어느 개인에 국한시키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데 주의 재림 때를 기점으로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1.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못한 자 · · ·
본문 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있는지라... 슬기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림을 평소에 준비한 자들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진리를 말씀에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준비한 자들은 즐거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준비가 없는 자들은 울어야 합니다.
2. 충성한 자와 충성치 못한 자 · · ·
본문 14-30 "또 어던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개할새"하였습니다. 그 때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자신이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주인은 잘했다고 칭찬을 하였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겨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게으르고 무익하고 악한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충성한 자들은 칭찬과 아울러 상급을 받고 충성치 못한 자들은 책망과 벌을 받았습니다. 이리하여 희비가 엇갈리게 된 것입니다.
3. 선행한 자와 악행한 자 · · ·
본문 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하였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불쌍한 자들을 도왔는데 왼편에 있는 자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칭찬 대신에 영영한 영벌에 들어가고 충성된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되어 각각 희비가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결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반드시 희비는 엇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슬피 울며 가슴치는 편에 서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충성하고 선을 행하여 장래에 참된 생명을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딤전 6:17-19).
본문 : 마 26:6-13
제목 : 여인의 헌신
서론
어느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감사해서 구속의 주님에게 눈물로 볼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향유를 머리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본이 될 만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 하였습니다.
1. 몸으로 헌신하였습니다.
본문 6-7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하였습니다. 그는 향유를 가지고 예수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몸으로 헌신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예배드리기를 꺼려하는 실정인데 자원하여 예수 앞으로 나아왔다는 것은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다고 하였습니다(요 12:3).
2. 물질을 드렸습니다.
본문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하였습니다. 상당한 값에 해당하는 고가품이었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제자들이 분하여 말하기를 왜 이처럼 비싼 향유를 허비하느냐고 말합니다. 차라리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좋을 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행한 일은 장래 주님의 장사를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가난한 자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말인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를 생각함이 아니고 도적질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2:4-6). 그런데 이 여인은 진정 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물질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널리 증거되는 것입니다.
3. 그의 행위는 그를 기념케 하였습니다.
본문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행위는 복음을 위한 행위였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의 행위도 전파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나 아끼지 아니하고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감사도 찬송도 기도도 물질도 무엇이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위로 인해 그를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우리들도 우리 주님을 사랑하여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정신으로 몸으로 헌신하고 물질로 보답하여 우리의 행위가 본이 되어 후손들에게 말 없는 교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마 27:27-44
제목 : 세 종류의 십자가
서론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만 지시고 죽으신 형틀이 아니고 그 이전에도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문제는 왜 십자가를 지고 죽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난대로 세 종류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억지로 지고간 십자가 · · ·
본문 31-32 "희롱을 당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하였습니다. 이는 자원하여 지는 십자가가 아니고 억지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안 지면 안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 이유는 창과 칼을 가진 자들이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강요된 행위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자신이 지어서 다소나마 주님을 도왔다는 점이 보람된 일이요 가슴 뿌듯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하여 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입니다.
2. 자기 죄 때문에 지고간 십자가 · · ·
본문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욕하였습니다(44).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들은 억울할 것도 없고 항의할 수도 없는 아무런 가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3. 남의 죄를 위하여 지고간 십자가 · · ·
본문 35-37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슨 죄패를 붙이더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자기의 죄를 위해서 지심도 아니고 억지로 위협에 못이겨 지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이 자원하여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사 53: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구속의 십자가이신 것입니다.
결론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가치가 있는 일에 전력 투구하고 희생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귀한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지는 십자가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 마 28:1-20
제목 : 부활하신 주님
서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활은 기독교를 성립시켰습니다. 만약에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기독교는 성립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매우 뜻이 깊은 것입니다.
1. 말씀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소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고 또 성전을 헐면 사흘에 다시 짓겠다고 하였으며 죽으면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시 16:10). 그래서 바울사도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고전 15:3-4)하였습니다. 부활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된 일이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예언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본문 9-10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여자들에게 보이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평안하느냐고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여자들은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를 드렸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서 다시 예전과 같이 말씀을 하셨고 그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부활은 이론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주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하여 예나 지금이나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노골적으로 없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과학이 발달한 오늘에는 부활이 비과학적이라고 부정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도 역사적인 사건이고 살아나심도 역사적인 사건이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을 무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3.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는 육의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한 주권을 잡으신 것입니다. 그와 같으신 분이 세상 끝날 때까지 지상에서 뿐만 아니요 천국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죽으셔서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제자들이 다시 만났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지상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승천하신 후에도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들과도 함께 하시는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이와 같은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고 그 부활로 인하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로 성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부활한다는 희망 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