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핵심 메세지

 

요나서 연구

 

 

 

 

 

 

 

 

과 목 명:

선 지 서

담당교수:

조 휘 교수님

제 출 자

신학과 4 권준광

신학과 4 고상윤

제 출 일:

2010년 10월 7일

 

 

 

 

목 차

 

 

Ⅰ.서론

 

Ⅱ.요나서의 해석 방법론

A. 전설로서 해석하는 방법

B. 비유적인 해석 방법

C. 풍유적인 해석 방법

D. 역사적인 해석 방법

 

Ⅲ.선민사상의 문제로 본 신학적 주제들.

A.이방 선교적 주제(전통적 견해)

B.구속사적 주제

Ⅳ.요나의 선민사상의 배경.

 

Ⅴ.요나의 선민사상문제로 본 요나서 내용분해.

A.구조

B.주해

1. 1차 갈등 (욘1:1~1:3)

2. 2차 갈등 (1:4~1:16)

3. 3차 갈등 (1:16~2:10)

4. 4차 갈등 (3:1~4:11)

 

Ⅵ.적용: 오늘 날의 선민사상은 무엇인가?

 

Ⅶ.참고문헌

 

 

 

 

 

Ⅰ.서론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또한 그분이 만드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고 성실하신 계획의 진행들과 성취를 소망하게 한다. 요나를 통해 그 크신 사랑과 그분의 깊고 넓으신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요나서를 보는 시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 구속사적 포괄적 관점, 이방선교의 호소, 그리스도의 예표, 선민사상의 문제점, 충성된 종의 중요성 등을 생각해 보았다. 짧은 4장의 말씀이 독자로 하여금 깨닫고 느끼게 하는 바가 상당히 다양했다. 그렇다면 요나서를 어떠한 관점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일까? 본 발표조(이하 필자)는 이 모든 신학적 문제들의 근원을 요나의 선민사상으로 보고, 이에 따른 요나와 하나님과의 갈등구도로서 보고자 한다.

 

Ⅱ.요나서의 해석 방법론

 

A. 전설로서 해석하는 방법

실제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에 근거해서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이 있다.

 

B. 비유적인 해석 방법

이 해석 방법에 의하면 요나서의 특징은 포로기 이후 에스라·느헤미야의 배타적인 유대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C. 풍유적인 해석 방법

이러한 해석을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요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방에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어갔다. 이것이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낸 것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이 귀환할 것을 상징한다'는 등의 설명이다.

 

D. 역사적인 해석 방법

이 해석 방법에 의하면 실제 인물인 요나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에 전달하려는 이스라엘의 선교적인 임무를 부분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위의 여러 해석 방법 중 요나서를 역사적인 사실로 보는 역사적 해석방법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채택하였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의 인물이다. 아마도 그는 여로보암 왕의 중엽 때의 선지자였다. 왕하 14:25에 보면 선지자 요나는 여로보암 왕이 앞으로 크게 이스라엘의 지경을 회복하여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넓힐 것을 말했고 이스라엘의 고난당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통해 역사적 해석은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더불어 신약에서도 요나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마태복음 12장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등의 내용이 요나의 역사적 배경을 뒷받침 해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요나서를 허구로 여기고, 해석방법을 풍유, 비유 혹은 우화로 분류하지만 요나서는 그런 양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구약의 풍유(allegory)는 단순하고 인위적인 하나의 줄거리에 맞추어 정형화된 인물이 나오면서, 잘 알려진 역사적 발전을 상징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예를들어 시80:8-19; 겔19장) 비유(parable)는 담백한 문체로 전달되는 아주 짧은 이야기(보통은 몇 문장이다)로 한 가지 요점이나 원리를 보여 주는 표현방식이다.(예를 들어, 사5:1-7; 겔17:22-24) 우화(fable)는 역사나 문화 혹은 개인적인 경험의 여러국면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식물이나 동물이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 이야기다(예를들어, 삿8:7-15) 요나서는 이 가운데 어떤 것보다 훨씬 길고, 훨씬 복합적이고, 훨씬 역사적으로 상세하며, 훨씬 꾸밈없는 자서전이요, 네러티브이다.

 

Ⅲ.선민사상의 문제로 본 신학적 주제들.

 

A.이방선교적 주제(전통적 견해)

요나서의 대다수의 신학적 주제는 단연 이방 선교적 주제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요나서의 기술 목적은 배타주의적 유대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를 경계하고,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회개하는 자를 심판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시는 사랑과 긍휼에 풍성하신 분으로 소개하며 나아가 온 세상의 주관자로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시길 기뻐하시는 선교적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관점이다. 즉 구약에 나타난 이방인 선교의 현장과 그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B.구속사적 주제

구속사 적인 관점으로 보는 요나서는 하나님께서 진정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요나를 그 곳으로 보냈는지 과연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민족을 집단적으로 자기 백성을 삼아 구원하기시를 원하셨는지 그리고 요나가 니느웨에서 사역한 결과로 니느웨 백성이 구원을 받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지 등등의 여러 질문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나서가 이방을 구원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선교적인 부분이라는 부분보다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향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더 큰 중심내용이라 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존 스텍 교수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이야기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뿐 아니라 그 당시의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요나서가 이방인을 구원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선교책이라 보는 입장보다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라고 말한다. 결국,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함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메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입장은 고대로부터 이었는데 특히 제롬은 “만일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회개했다면 당연히 요나서를 듣는 유대인들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이방선원과 니느웨 백성들이 유대인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보조적으로 출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사명이 감당되어야 한다는 선교의 개념이 연계된 책이라 보는 입장이다.

 

위에서 논한 부분을 요약하면, 구속사적인 견해는 요나서를 이방 선교적 견해로만 보는 것은 선지서 전체의 주제인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이 내용과 멀기 때문에 그렇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나서에서의 이방 선교적인 특성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요나서 4장 10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다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의 말씀은 이방선교에 대한 말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필자가 본 관점은 요나서는 요나의 선민사상에 대한 문제를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구속사적 관점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이다. 그렇다면 창12:3절의 말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는 이스라엘을 통한 모든 족속의 복의 전달자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은 바로 회개의 문제요, 회복되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방 선교적 견해는 구속사적 견해의 포괄적인 내용 속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요나의 선민사상에 문제의 원인을 두면, 구속사적 관점의 핵심인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의 주제와 이방선교의 주제를 동일하게 볼 수 있으며 좀 더 포괄적인 신학적 주제로 볼 수 있게 된다.

본 수업의 교수이신 조휘 교수는 요나서에 대한 해석 관점으로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과 요나의 대결/갈등은 단순히 명령과 순종/불순종의 갈등이 아니라 신학적 갈등이다. 요나서에 나타나는 신학적 갈등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정의와 긍휼의 갈등이고 둘째는 선민사상과 이방인의 갈등이다. 왜냐하면 요나서에 나타나는 요나는 불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라 신앙의 소유자이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나는 그가 어떠한 자인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1:9)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고 있다(1:9, 4:2). 하지만 요나는 그가 믿고 있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의 주권적 긍휼 사이에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요나는 하나님이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 은혜와 구원을 선민에게만 제한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의 우주적 주권과 관심을 보이시면서 요나의 편협한 선민사상을 수정하시고자 하는 신학적 갈등이 그려진다. 요나가 구원을 경험한 후 3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만 여전히 이 신학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남게 되고 4장에서 그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4장은 요나서의 결말을 갈등의 절정에서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요나의 편협한 선민사상에 강한 도전을 주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적 흐름의 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4장에 나타나는 요나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요나의 기도이다.

 

조휘교수는 요나서를 신학적 갈등으로서 정의와 긍휼, 선민사상과 이방인의 갈등구조로 해석하면서 요나서를 부분적으로 해석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방안으로 주장한다. 필자는 조휘 교수가 주장한 내용에서 선민사상에 좀 더 중점을 두어 요나의 선민사상의 문제를 요즘 새롭게 이야기되고 있는 구속사적, 그리고 이방선교적 신학적 갈등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나의 선민사상의 문제는 구속사적 이스라엘백성의 회개와 회복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방 선교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구속사적 큰 틀 가운데 이방 선교의 부분도 있다는 것으로 두 가지의 신학적 주제를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Ⅳ.요나의 선민사상의 배경.

 

요나의 선민사상의 근거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있다. 배경없이 본문을 보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요나의 선민사상의 근거들이 도출된다(본 발표문의 주해 참조). 그리고 배경에 있어서도 요나의 선민사상의 근거가 나타난다.

요나는 B.C.790년부터 750년까지 통치하였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기간 동안에 살았다. 여로보암은 그의 증조할아버지인 예후 때 이후로 백성들이 끊임없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도록 압력을 받아 왔었으므로 약한 나라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여로보암 아래서 백성들은 그들의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여 그는 하맛과 다메섹을 획득하였고 요나가 예언했던 것처럼 하맛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사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펼쳐있는 전 영역을 이스라엘에게로 회복하였다.(왕하14:25)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요나는 상당히 인정받은 선지자로서 칼빈주석에 의하면 요나는 당시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임무도 맡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당연히 요나로 하여금 선민사상에 더욱더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한 요나의 불순종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모르거나 감정의 기복이 심한 자가 아닌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선지자였으나, 그의 선민사상으로 인해 문제가 된 것이다.

 

 

 

Ⅴ.요나의 선민사상문제로 본 요나서 내용분해.

A.구조

1차 갈등 (욘1:1~1:3)

2차 갈등 (욘1:4~1:16)

3차 갈등 (욘1:17~2:10)

4차 갈등 (욘3:1~4:11)

 

B.주해

1. 1차 갈등 (욘1:1~1:3)

요나는 당시 여로보암2세가 제위 하던 때에 예언을 했다. 그는 사역 초기 이스라엘의 승리와 원래 국경까지의 회복을 예언하였기 때문에 아마 인기가 높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심판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그의 백성들에게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게 하셨다. 아마 요나는 이러한 배경아래 선민사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자신은 선지자로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가운데 요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진다.(1:2) 그리고 그 내용이 당시 지배를 받았었던 앗수르의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었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쓰신다는 것이다. 요나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4장2절에 보면 요나는 자신이 고국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줄 알고 있었다고 고백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1차 갈등은 단순히 요나의 순종/불순종 문제가 아니라 요나의 선민사상에 대한 회개의 권고요, 이방선교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2. 2차 갈등 (1:4~1:16)

2번째 갈등은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는 장면에서의 내용이다. 등장인물은 이방선원들과 요나로 구분할 수 있다. 내용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기 위하여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배는 폭풍에 좌초되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방선원들은 폭풍의 원인이 요나인 것을 알고 난 후 요나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방선원들은 본문에서 이렇게 물어본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느 나라 사람이오? 어떤 백성이오?”(1:8 표준새번역) 뱃사람들은 요나에게 먼저 물어본 것이 바로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였다. 하지만 요나의 첫 번째 대답은 이러하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1:9) 뱃사람들이 먼저 물은 것은 무엇하는 사람인데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임을 먼저 이야기한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자보다는 선민사상에 빠져 있는 요나를 알 수 있고,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3차 갈등 (1:16~2:10)

세 번째 요나의 선민사상을 통한 갈등은 요나의 기도이다. 본 발표문에서는 요나의 기도에 대한 다른 내용들이 많지만 본 발표문에 의도에 맞게 요나의 선민사상에 대한 부분만을 논하겠다.

요나의 기도의 내용은 감사의 기도이다. 하지만 요나서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또한 요나서의 마지막 4장의 요나의 고백을 볼 때 요나의 기도내용은 온전하지 않는 감사의 노래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요나의 선민사상으로 인한 개인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로 밖에 볼 수 없다. 특별히 요나는 2:8-9절에서 보면, 1장의 이방선원들을 지칭하면서 “허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버립니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라고 고백한다. 1장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구원에 가까운 사람은 요나가 아니라 오히려 이방선원들일 것이다. 하지만 요나는 그러한 이방선원들은 단지 이방 사람들이기에 구원이 없고 오직 선민인 자신만의 구원에 대해서만 감격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요나의 감사의 기도에서도 여전히 요나의 선민사상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갈등은 지속된다.

 

4. 4차 갈등 (3:1~4:11)

마지막 네 번째 갈등의 원인 선민사상은 니느웨에서의 요나의 열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는 솔직히 이 발표문을 작성하기 전까지 요나가 왜 열정적으로 사흘 길을 하루 길로 신속하게 외치면서 까지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전했을까였다. 하지만 본 발표문의 주요관점인 선민사상의 문제로 보았을 때 그 답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요나의 열정은 니느웨의 구원이 아니라, 니느웨의 심판이었다. 본문 3:4에 보면 요나는 이렇게 외친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라고 외친다. 이 말을 자세히 보면 심판에 대한 부분만 있지, 그에 대한 대안이나, 구원의 방법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고, 오히려 니느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동물까지 금식하며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요나의 마음의 중심은 4:1-2에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주님은 4:4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요나의 선민사상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고 계시고, 요나의 핵심 구절인 4:10-11절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방 선교적 명령을 나타내시고 있다.

 

 

Ⅵ.적용: 오늘 날의 선민사상은 무엇인가?

필자는 요나서를 요나의 선민사상의 문제를 근거로 하여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과거 요나가 가지고 있었던 선민사상이 오늘 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하는 신학도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필자는 적용점을 생각했을 때 요나서의 4장 마지막 요나의 심정이 생각이 났다. 요나는 그동안 선민사상으로 인해 자신이 정의 내린 것들에 의해 하나님을 제한하여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정체성 다시 말해 선교적 부르심을 망각하였다가 그것을 깨닫게 된 상태라고 생각이든다. 동일하게 오늘 날 이스라엘 공동체는 바로 교회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요나가 이스라엘의 궁극적 정체성을 몰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다면 오늘 날의 이스라엘인 교회의 궁극적 정체성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동일하게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교적 공동체일 것이다. 감사하게도 오늘 날 한국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활발히 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교회가 선교를 얼마큼 했느냐는 결과에 중점을 두지 않고, ‘선교적 공동체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싶다. 그렇게 보았을 때 선교적 공동체의 삶이라는 것은 좀 더 폭이 좁아진다. 바로 지역이다. 지역에 선교적 공동체의 삶을 살아내고자하는 교회는 당연히 자신만의 교회만을 보는 ‘개 교회 주의’에 빠지지 않고, 교회의 아름다운 연합을 통해 지역의 복음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으로 그렇게 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본 발표문을 통해 적용점으로 거론하게 된 것이다. 신약에서는 모든 이름 위에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뛰어난 이름으로 세우시고 교회의 머리로 세우사 만물위의 충만함으로 교회를 그의 몸으로 그리고 세우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적 교회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오늘날 지역교회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합하지 못하고 요나의 선민사상처럼 자신의 교회 성장만 본다면 이것이 오늘날의 선민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요나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자신의 민족에 대한 은혜로만 여겼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순종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신약으로 적용해보자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의 연합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뜻 아래 그 약속이 성취되기 위하여 교회와 교회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선교라는 큰 주제보다 현재 우리가 사역하며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역교회들을 사랑하고 그로인해 교회와 교회연합을 통한 선교완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사역의 가치관을 맞춰 연합을 이루는 것이 오늘날의 선민사상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표.1 참조) 그리고 이로 인해 요나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우리로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사역이 올바른 가치관과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될 것이다. 부디 우리의 사역의 끝이 요나와 같이 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내 존재의 변화

과 정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결과)

나

십자가 복음과 연합

개인 구원

구원받은 존재

교회와 한 몸으로 연합

교회의 부흥

부흥된 교회로서의 나

교회와 교회와의 연합

지역과세계의부흥=선교완성

-표.1-

 

마지막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ACTS의 사명이 있다고 본다. 하나의 교단에 갇혀있지 않고 신학공관으로 올바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신학을 하고, 또한 세계복음화를 위해 훈련된 우리 ACTS가 교회의 연합과 세계선교를 통해 선교완성을 이루는 궁극적 뜻에 순종하는 진정한 순종으로서 오늘 날의 선민사상을 극복하고 온전히 쓰임 받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며 발표문을 마친다.

 

 

 

 

 

Ⅶ.참고문헌

 

김희보.「구약 요나.나훔.오바댜주해」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88.

 

반 게메렌. 「예언서 연구」김의원, 이명철 역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2007.

 

손진호.「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요나서」서울: 도서출판 그리심, 2010.

 

이종덕. “요나서의 구속사적 주해와 적용.” 신학석사 학위논문, 고신대학교신학대학원, 2005.

 

조지 L. 로빈슨. 정일오 역. 「12소선지서 연구」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존칼빈성경주석출판위원회. 「칼빈성경주석 12소예언서 3권」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92.

 

G.J.웬함, J.A모티어.「IVP성경주석-구약」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9.

 

조휘. 문학적 정황에서 읽는 요나의 기도, Hermeneia Today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