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2강좌
한국교회와 학생선교
여는 글
대학생들은 내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다. 교회사의 중요한 영적 대각성운동은 대부분 학생들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지역교회와의 협력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서 영적 지도자로 훈련시킨다면 민족의 내일의 운명이 밝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한국교회에 주어진 귀중한 특권이며 임무이다.
I. 지도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성경적 예
성경은 이스라엘의 도덕성과 영성을 회복하는 데는 학식을 가진 지도자가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가르침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모세는 당시의 세상 학문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민족을 사랑하였어도 그들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출애굽의 민족적 지도자가 되었다. 또한 학문의 배경을 가진 그는 민족의 도덕성과 영성을 지키는 율법을 기록하였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도덕적, 영적으로 타락했을 때 사사로 부름을 받은 자이다. 가르치는 임무를 가진 엘리 제사장의 집안이 타락한 것은 학문을 하는 지도층의 타락과도 같다. 이 때에 전 이스라엘 민족은 영적으로 타락하고 그 결과 블레셋의 지배를 받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하여 라마를 근거로 순회강연을 하며 말씀을 강론하였다. 이것은 학식있는 지식층을 체계적으로 배양했음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안정된 나라로 회복되었다.
에스라는 말씀을 가르치는 제사장이며 학사이다. 유대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도덕적으로 타락했을 때 에스라의 말씀 사역을 통하여 민족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혼자서 말씀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다른 지식층의 레위인들과 동역을 이루었다.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지식이 있는 바리새인이었다. 주님을 만난 그는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하여 아시아에서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 그는 디모데와 같은 다른 지도자들을 양육하였고 충성된 자들을 개발하고 훈련하도록 권했다. 그는 지도자 양육을 통하여 세계선교를 이룩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지식층을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민족의 영성과 도덕성을 회복시키는데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또한 신약시대에 복음이 전파된 역사는 지식층의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함께 동역을 이룸으로써 세계 선교가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II. 세계선교에 학생선교가 미친 영향
교회사를 살펴보면 민족의 영성과 도덕성이 회복되고 세계선교가 일어나는 배후에는 지식층에 속하는 대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헌신된 소수의 대학생들은 세우시고 이들을 통하여 학생운동을 일으키고 교회와의 연합운동을 일으켜 그의 구속의 역사를 펼쳐 가셨다.
근대의 선교 역사는 독일의 경건주의에서 시작한다. 당시의 유럽의 개신교는 형식에 치우쳐 열매가 없는 죽은 종교와 같았다. 스페네 (Spener 1635-1705)는 형식적인 예배를 탈피하여 교회 건물밖에 목양을 하며 경건주의를 시작하였다. 한 개인의 중생의 체험이 없이는 개인의 경건도 없고, 개인의 경건이 없으면 전도의 열정도 없고 전도의 열정이 없이는 선교의 비전도 없다는 것이 경건주의자들의 믿음이었다. 교회는 그들을 배척하고 그들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대학의 문을 닫아 버렸다. 이리하여 스페네는 1694년에 할레 (Halle)대학을 시작하였다. 젊은 대학생들을 키우는 이곳이 18세기 경건주의 운동의 교육 중심이 되고 선교사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모라비안 교회의 선교사들은 정규교육이나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자들이다. 그러나 모라비아 교회의 선교운동을 시작한 진젠돌프는 할레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그곳에서 선교의 열정을 얻고 그리스도께 헌신한 자이다. 모라비안의 선교 활동이 시작된 지 20년 이내에 앵글리칸과 개신교가 그때까지 21세기 동안 행했던 선교 활동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였다.
미국에서의 선교활동도 학생들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농업에 종사하던 밀스 (Samuel J.Mills)는 소명을 받고 윌리엄스 대학(Williams College)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에서 형제단(The Society of the Brethren)이라는 그룹에서 활동을 하였다. 정기적으로 함께 기도하던 이 형제단원들은 어느 날 기도하러 가던 도중 비를 만났는데 건초를 쌓아둔 곳에 피하여 기도한 후에 미국의 첫 번째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그리하여 이들은 건초더미의 형제들(The Hay-stack Group)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 몇 사람은 졸업 후에 앤더버 신학교(Andover Seminary) 에 입학하여 또 다른 학생들과 선교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1810년에 미시추세츠 회중교회 지도자들의 연합회에서 자신들이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간증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미국 최초의 초교파 선교단체인 미국의 해외선교 운동(American Foreign Missionary Movement)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을 통하여 오늘은 미국의 해외 선교사의 70%를 담당하고 재정의 80%을 담당한다. 대학생들의 운동과 지역교회의 연합체가 함께 힘을 합쳐 선교의 열매를 거둔 좋은 예이다. 1880년대에는 성서학원 운동이 일어났다. 젊은 지식층 학생들을 훈련하기 위한 목표로 세워진 성서학원 운동을 통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내외의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무디 성서학원이다. 이 학원은 졸업한 선교사만도 5000명이 넘는다.
학생 서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도 대학생들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무디가 여름 수련회에서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나는 기꺼이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합니다"라는 서명을 하였다. 이 운동은 즉시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다른 외국에까지 번졌다. 이 운동의 표어는 "이 세대에 세계의 복음화"이었다. 이 운동을 통하여 50여년 동안 20500여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였다.
III. 한국의 학원선교 운동과 한국교회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들어온 선교사들은 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다. 언더우드와 아펠셀러는 모두 대학 시절에 선교의 도전을 받은 자들이다. 한국교회는 그 뿌리부터 학생선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학생선교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 교회가 학원선교 운동에 참여하여 지도자를 배출하려 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복음이 전해진 초창기에 기독교는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민족의 지도자를 배출하는데 기여했다. 일제시대 때 한국교회의 학생운동은 주로 민족 운동과 계몽교육 운동이 주축을 이루었고 해방직후에는 반공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으며, 6.25 이후에는 인권 운동이 두드러졌다. 학원가에서 복음을 접한 대학생들이 민족을 사랑하는데 앞장섰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선배들은 사회참여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복음적인 학생운동은 60년대에 더욱 번성했다. '60년대에는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 죠이선교회 (Joy Mission),한국기독학생회 (I.V.F),대학생 성경 읽기 (The Navigators)등이 생겼다. '70년대에는 한 사랑 선교회와 예수 전도단 등 많은 선교단체들이 생겼다. 이러한 학원 선교기관 등은 교회가 젊은이들을 잃고 있던 60년대에 대학 안에 뿌리를 내려 지성인, 그리고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학원 선교단체는 교회가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있도록 전도훈련을 하여 교회성장에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C.C.C.에서는 교회를 돕기 위하여 Explo 74를 개최하여 한국 C.C.C.는 직장과 교회까지 선교분야를 확대하였다. 이때에 323419명이 5박6일 동안 합숙훈련을 받았다. 이후 230만의 한국교인들을 계속하여 훈련하였다.
IV. 조국 근대화에 따른 한국 교회의 문제와 자유주의 신학
선교기관과 지역교회의 협력으로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많은 양적 성장을 이룩하였다. 교회마다 전도와 평신도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조국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회 전체에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이 일어났고 이것은 교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역간의 갈등이 교계의 지도자들에게도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빈부의 차이가 심화된 현실에 불만을 품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한다. 교회는 이들에게 효과적인 전도를 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회의 계층화가 심화된 때에 교회가 올바른 방법으로 사회참여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 것도 한가지 이유라 하겠다. 교회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교회의 양적 증가에 열심이었으나 올바른 사회참여 등불을 비추는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서구에서 19세기에 자본주의의 횡포가 심하여 어린이 노예제도까지 있었다. 인권이 유린을 당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가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 토양에서 공산주의가 일어났다. 이것은 무력한 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오늘날 공산주의 사상과 기독교가 접목하고 심지어 주제신학이 발생한 것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세기 서구의 자유주의 선교신학은 한국의 일부 기독교 단체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독일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복음을 선포(Proclamation)하는 전도바도 사회 참여에 현존(Presence)을 강조한다. 미국 교회도 1차 대전이 끝난 후에 전도보다는 사회참여에 더 관심을 보였다. 세계평화, 인종, 경제정의 등 정치, 경제, 사회문제가 제3세계의 주요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학원가의 KSCF는 "이 시대의 예수"를 표방하며 지상의 유토피아를 세워 사회구원을 이루는 것을 그 목표로 하게 되었다.
'60년대에는 기성교회의 소극적 사회참여를 비판하여 해방신학이 생겼다. 이러한 신학이 한국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성경의 고난의 역사를 한국의 고난의 역사와 동일시하여 반체제 저항 운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민중을 가난하고 소외된 자로 간주하고, 한국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화하여 반체제,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 간다. 극단적인 자들은 한국의 역사에 나오는 일부 불우했던 반체제 인물들 -홍길동, 임꺽정, 전봉준 등등- 을 당 시대의 예수로 간주하고 가난한 자들의 반항을 예수의 뜻으로 해석한다.
한국기독교학생연맹(KSCF)은 개인의 영혼구원보다 정의실현에 비중을 두며 사회구원을 목표로 한다. KSCF는 독일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선교와 해방신학과 상통한다. '70년대에는 KSCF는 같은 이념을 가진 비기독교 학생운동과 이념을 결합하고 연합운동을 시작하였다. 일부 신학자들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데 비기독교 단체와 운동권의 학생들과 연합하여 주체신학을 발생시켰다. 그들에 의하면 김일성은 성부, 김정일은 성자. 주체사상은 성령이라 한다. 주체 신학 영생론에 의하면 부모는 육의 생명을 주었고, 김일성 수령은 정치, 사회적 사상의 생명을 주신 분이고, 그분에게 세례 받아 충성, 순종하는 것이 영생이라 한다. 김일성은 불멸이며 인류의 태양이다. 선과 의의 표준은 그에게 충성, 귀의하는 것이다. 수령은 주체 교회의 몸의 머리다. 천국은 수령과 당의 뜻이 이루어지고 수령이 통치하는 곳이다. 김일성 주체 사상에 의식화되는 것이 중생이다. 이런 유치한 사상이 미국 교포 목사들 중에도 서식하고 있다.
이리하여 사회참여를 개인의 영혼구원에 우선하여 강조한 운동이 반정부 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들의 문제는 개인의 악은 말하지 아니하고 사회의 구조적 악만을 고발한다. 이들은 정치, 경제적 악은 고발하면서도 인간의 윤리는 말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에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악한 방법도 불사한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서 인간의 윤리와 타락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결과 인간의 윤리를 팽개쳐 버린 정총리 구타사건과 같은 패륜아들이 학원에 부끄러움이 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학원의 급진적 운동권 학생들과 기독교가 연합하여 기독교가 변질되는 것을 한국교회는 예의 주시하며 경각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본의 전학련의 활동으로부터 교훈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을 때에 기독교 교회라는 역사적 성역, 세계적 성역으로 잠복했다. 그들은 잠복기간 동안 충성을 다하고 봉사하여 목사의 인정을 받고 교회의 직원이 되었다. 어떤 자는 목사가 되기도 하였다. 2-3학년의 잠복기간이 끝났을 때 그들은 공개적으로 노출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목사와 장로와 교회의 허점을 조사하고 동조자를 규합했다. 부정한 일에 분노를 일으키고 허위 루머를 퍼뜨리기도 하고 공개성토를 하기도 했다. 일본 교단은 이렇게 하여 지금도 총회도 모이지 못하고, 어쩌면 지구상에서 최후의 민중 혁명 해방 신학의 잠재적 기지가 되고 있는 셈이다. 복음적인 목사나 교회는 소수파가 되고 수세에 몰려 침묵하며 개탄만 할뿐이다.
한국 교회는 좌경화된 운동권 학생들과 이들의 배후의 인물들의 책략, 그리고 이들과 연합하는 신학자들의 사상을 경계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하나님의 선교"개념이 도입되면서 학생 자원 운동(SVM)이 와해된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 복음적인 훌륭한 학생운동도 잘못된 사상에 오명되면 파멸을 면치 못함을 일본과 독일, 미국의 교회의 역사가 우리에게 경고하고있다.
잘못된 신학과 이념으로부터 일반 학생들과 복음주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교단체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대학가에서 이들 좌경 운동권과 급진적 기독교의 연합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선교단체는 올바른 사회참여를 가르쳐야 한다. 올바른 사회참여는 혁명적 방법으로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바쳐서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평화적 방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현재의 사회문제가 계층화되고 소외된 자들이 있음에 기인함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와 개개인이 소외된 자들과 아픔을 같이하고 치료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단순히 무시해 버리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대학 내에서 운동권 학생들은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하여 사회의 악을 고발하고 물리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 이때에 복음주의 학생들은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미흡하였다. 이것은 사회악을 입으로 고발하는 사회참여보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자들의 고난에 자신을 희생하며 몸으로 참여하는 사회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약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단체들이 함께 모여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할 것을 결의했던 로잔대회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듯하다.
V. 학원내의 기독교 써클의 활동과 자생 이단들
오늘날의 학원가는 열병을 앓고 있다. 학원가는 이념의 각축장이다. 운동권학생들은 민족, 민주, 민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한다. 이들은 주체사상을 신봉하기도 하고, 막스레닌주의를 수용하기도 하며, 사회를 지배와 피 지배 계급의 투쟁구조로 보기도 한다.
학원가에는 애천교, 통일교와 같은 이단들도 있다. 애천 교회의 창시자 정명석은 통일교에서 잠시 활동을 하여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도입, 수정하여 30개론을 만들어 교리화했다. 통일교는 막강한 재산을 뒷받침으로 대학의 불우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해외유학 등을 베풀기도 한다. 교수들에게는 연구비와 원고료 등으로 지원금을 지불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념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 전도하는데 학원가의 선교단체에 막대한 사명이 있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참된 복음이 민족애와 하나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C.C.C.에서 시작한 "사랑의 다리운동'은 계층화된 한국 사회를 치료하자는 의도로 시작된 운동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건전한 사회참여를 가르쳤다.
C.C.C. 의 거지 순례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민족애와 하나로 묶어 놓았다. 학생들은 조국의 땅을 순례하며 전도한다. 조국의 땅을 사랑하며 조국 순례대행진을 하는 운동과 닮았으며 이것을 복음으로 순화시켰다 이리하여 대학생들에게 선교에 대한 비전과 조국 사랑을 한데 묶어 놓았다.
C.C.C.의 순모임 운동은 복음의 토착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사회가 계층화되어 인간미가 없어져 가는 시대에 순(筍)이라는 것은 작은 그룹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복음을 전하며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복음을 교회의 건물에 국한시키지 아니하고 사랑방으로 옮겨서 기독교를 한국적 문화에 토착화시키려 노력한다. 성경공부 모임은 시골의 우물가, 사랑방, 장터 등 세상으로 향하게 되었다.
I.V.F.는 문서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선교단체이다. 민주, 민족, 민중을 연구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일부 신학자들이 추상적인 개념의 민주, 민족, 민중을 외치며 한국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화하여 반체제, 반정부 운동으로 이끌어 간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인들의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올바로 해석해야 할 때다 I.V.F.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VI. 학생선교를 위한 제언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교단체를 통해 많은 선교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역교회는 선교단체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지역교회는 지역적인 제한성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속해 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축복으로 주셨다. 선교단체는 제한된 연령과 대상을 상대로 한다. 그러나 지역적인 제산성이 없다. 또한 특별한 대상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므로 전문성이 축적되어 있고 헌신된 일군들이 있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거시적 안목으로 볼 때에 서로 보완적이다. 이 둘은 필히 협력해야 한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협력하여 대학에서 복음을 전하는 실제적인 방법들이 있다. 지역교회인 충현교회와 선교단체인 C.C.C. 가 협력하여 신입생을 위한 올바른 대학생활 안내를 했던 것은 서로 협력사역을 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지역교회는 대학을 선정하여 매일 기도하면 좋겠다. 그 대학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의 간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가난한 학생들과 영친운동을 맺어서 기도와 물질로 사랑을 표시할 수 있다.C.C.C.에서 자란 어느 어머니(조영애)는 대학생 30명을 위하여 수시로 기도하며 돌보는데 이는 영친운동으로 대학생에게 전도하고 훈련하는 좋은 예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협력하여 이러한 일을 담당한다면 대학가의 학생들이 복음에 문을 열게될 것이고 사회에서도 복음이 뚜렷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지역교회에서 대학마다 그 주위에 사랑방을 준비해 주면 좋은 것이다. 이런 곳에서 선교단체의 간사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센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랑방은 대학문화를 변혁시키는데 한 몫을 담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곳이 무신론과 공산주의와 이단들의 이념들을 복음으로 깨뜨리는 복음주의 기독교 문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무신론자들의 이념인 진화론을 깨뜨린 창조 과학회는 C.C.C.의 '80세계 복음화 대회 중 한 프로그램으로 탄생되었고, 선교단체가 대학의 문화를 선도하는데 과적임을 증명한다. 지역교회와 함께 이러한 일들을 계속한다면 조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복음화하는데 더 힘이 있지 않겠는가? 선교단체에서 지속적인 신앙강좌를 열 수 있도록 지역교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면 학원의 이념적 장애물들을 공동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올바른 사회참여를 주장해야 한다. 선교단체에서 영향을 받고, 후에 목회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훌륭한 자들이 많다. C.C.C. 에서 자란 민정웅 목사는 농촌에서 사랑방 운동의 모델을 이루었다. 그가 살고 있는 군의 지도자들은 2.3가 그가 목회하는 교회출신이다. 교회에서 하는 협동조합과 신용금고는 사회참여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주수일 사장은 종업원들의 영혼의 복지까지 생각하며, 사원들의 부모와 자녀까지 위한다. 영혼의 복지를 위하는 회사는 노사의 문제까지도 해결이 됨을 본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면서 세상의 문제에 등한시하면 이것은 위선이며, 자기 기만이다. 이렇게 해서는 복음을 전할 수 없고, 의식 있는 학생들이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복음주의 교회가 사회참여에 무관심한 때문이다. 해방신학은 하나님이 심판을 자초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경제성의 실천 연합회"와 같이 올바른 방법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단체와 연합하여 운동을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정의의 실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이 일을 바르게 추진하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대학 4년은 배움의 시절이다. 이 기간을 거치고 나면 사회의 일원이 된다. 그러나 4년동안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하나님께 헌신케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연합해야 한다. 선교단체들과 지역교회가 연합하여 학원선교를 위한 "학원 복음화 협의회"가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러한 연합운동을 통하여 각 단체와 교회들의 개성이나 더욱 살아나도록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지역교회가 이러한 연합운동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32,300여 교단과 4,000여 개의 선교단체가 있다. 선교단체는 그리스도의 몸 중 전도하는 자체이므로 서로 협력사역을 하여야 한다. 로잔대회에서 Whole Church, Whole Gospel, Whole World를 제창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자체들을 협력하여 세상을 한 몸으로 나아가야 한다.